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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틈새를 찾아라!

우리는 그의 등을 본다. 까만 티셔츠를 걸친 그의 등을 본다. 그는 우리 가까이 있는가 하면 때론 저 멀리 사라져 가는 듯도 하다. 하지만 멀어지는 것은 그가 아니다. 그의 스쿠터는 느리지만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아니 따라잡으려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우리이다. 결국 머뭇거리는 우리 자신이 문제인 셈이다. 그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상상적 공간의 거리는 어느새 감독의 ‘의도’를 떠나 주저하는 우리의 태도, 혹은 비겁함이 유발하는 심리적 거리에 대한 표상이 된다. 하지만 그는 우리를 기어이 그 자리로 데려가고야 만다. 이것은 영화광의 오마주도, 끔찍하게 죽어간 거장에 대한 우수어린 회고도 아니다. 어느새 현실과의 끈을 놓쳐버린 이미지들에 대한 분노, 살해당한 이미지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여기에 있다. 아쉬운 것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이 분노와 안타까움을 실어다 줄 매개로서의 이름, 파졸리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 대신 다른 이름을 가져다 두고 상상에 잠길 수도 있다. 난니 모레티의 <나의 즐거운 일기>에는 이처럼 내러티브의 논리적 전개를 떠나 있으면서도 그 강렬함으로 인해 우리를 감동시키는 순간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너무나도 아름답게 결정화된 순간들. 이러한 순간들 가운데 앞에서 예로 든 ‘스쿠터를 타고’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나를 감동시킨다. 올해 초 스카라극장에서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영화 <마태복음>이 상영된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나는 이 영화를 필름으로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영화관을 찾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나는 자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는 그냥 돌아서야 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이 영화가 상영될 수 있었던 것은 종교단체와 관련된 한 신문사의 이벤트 덕분이었고, 그날 극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이들은 대부분 이 이벤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신도들이었다. 운 좋게 영화를 보고 온 후배를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영화 상영 전에는 관객이 다함께 기도를 드리는 시간도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 먼 거리를 건너온 이 기이한 성서영화가 참으로 기이하게 수용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파졸리니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 접어두고 다시 <나의 즐거운 일기>로 돌아와보자. 감독이자 영화 속의 주인공인 난니 모레티는 휴가철의 텅 빈 로마시를 그의 스쿠터 베스파를 타고 유유히 가로지른다(에피소드 1부: ‘스쿠터를 타고’). 그의 시선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은 결코 관광지로서의 로마가 아니다. 난니 모레티의 로마에는 관광지로서의 로마가 보여주던 익숙한 풍경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모레티가 사랑하는 많은 평범한 건물들과 골목들, 도로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는 휘황찬란한 외양이 보여주는 허울을 벗겨버리는 대신 거기에 자신의 내밀한 욕망과 기억을 기입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즐거운 일기>에서 난니 모레티는 집요한, 이미지의 탐색가이다. 그리고 이러한 탐색은 철저하게 모레티 자신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바로 보고 싶어하는 욕망, 혹은 욕망의 시선이다. 그가 간혹 움직임을 멈추는 것은 영화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플래쉬 댄스>에 출연한 할리우드 배우 제니퍼 빌즈(와 그녀의 남편이자 영화감독인 알렉산더 록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혹은 거리에서 춤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그들의 춤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때로는 건물 안을 들여다보거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라면 50년대에 제빵업자로 일한 트로츠키주의자에 관한 뮤지컬영화를 위한 장소물색중이라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 자신이 살고 싶은 고층건물을 여자친구와 함께 올려다보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우리가 그를 보고 웃는 것은 이러한 욕망을 (일기라는 형식을 빌려) 숨김없이 드러내는 그의 솔직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드러난 행위의 어처구니없는 특성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제니퍼 빌즈 앞에서 수다를 떠는 것이나 ‘섬들’ 에피소드에서 실비나 망가노 주연의 영화를 보고 춤을 따라하는 모습은 제니퍼 빌즈의 말마따나 정말 ‘괴짜처럼’(whimsical) 보인다. 그가 영화 속에서 작은 스쿠터를 타고 이동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도시를 빠르게 가로질러 가는 자동차의 유리창 너머로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오늘날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순간적이고 일회적인 이미지들을 상기시킨다. 하지만 모레티가 스쿠터 위에 올라탐으로써 우리는 그를 지켜봄과 동시에 그가 관찰하는 대상들을 좀더 여유를 가지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어쩌면 <나의 즐거운 일기>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오늘날의 영화적 이미지들이 지니는 속도에 대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혹은 여기에서 도시는 영화의 메타포이다. 의지, 이미지의 틈새를 뚫고가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롱테이크장면에서 모레티는 수다떨기를 그친다. 이제 우리의 목소리로 그 여백을 채워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적했듯 우리에겐 그러한 목소리를 끌어낼 동인이 될 기억이 없다. 실패한 혁명세대의 회고조 영화, 그리고 <헨리 : 연쇄 살인범의 초상>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파졸리니에 대한 기억에 다다른 모레티는 두 번째 에피소드 ‘섬들’에서 좀더 노골적으로 미디어 비판에 나선다. 누가 보더라도 이 에피소드의 의미는 명백하다. 오랫동안 텔레비전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율리시즈> 연구자가, 어쩌다 보게 된 미국 연속극에 빠져 단 며칠 사이에 지독한 텔레비전 중독에 걸리고 만다는 이야기. 거기에 엔니오 모리코네와 비토리오 스토라로를 기용하여 자신의 섬을 홍보하겠다는 스트롬볼리 시장의 존재까지 가세하고 보면 이 에피소드의 의미는 더더욱 명백해지는 것 같다. 사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형식적으로 첫 번째 에피소드와 아주 유사하다. 도시의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던 주인공의 행보는 섬과 섬을 옮겨다니는 것으로 대치되고 오토바이라는 이동수단은 배와 스트롬볼리 시장의 삼륜차 등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이야기의 단선적 진행을 방해하는 자잘한 사건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모레티가 두 번째 에피소드의 명백한 의미를 피해나가면서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역시 너무나도 강렬하게, 아름답게 결정화된 순간들의 포착을 통해서이다. 섬에서 홀로 산책하는 그의 어깨 너머로 천천히 이동하는 배가 보인다. 이어서 텅 빈 축구장에서 혼자서 공을 가지고 노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끌고 들어와 낯선 관광지의 풍경 속에 사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 여기서 우리는 이미지 독해의 한 방법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기억과 욕망을 끌어들이지 않고 이미 주어진 이미지들과 대면하는 것은, 단순히 볼거리들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위험한 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가 주어진 이미지들의 틈 사이로 우리의 의지를 기입하고자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즐거움이 생성되는 것이리라. 영화라는 도시를 걷는 산보객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미디어 중독증에 걸린 인물을 제시한 모레티는 세 번째 에피소드 ‘의사들’을 통해 징후에 대한 진단과 처방의 메커니즘 속에 내재한 모순과 허위를 폭로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독립적으로 떼어놓고 생각한다면 그저 단순히 의료제도에 대한 비판과 불만으로만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를 가지고 잡담하면서 도시를 거니는 자신의 모습을 제시한 첫 번째 에피소드와 미디어 중독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이루어진 두 번째 에피소드와의 관련 속에서라면 이 에피소드는 좀더 넓은 해석의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기억을 끌어들일 것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극중에서 모레티가 앓고 있는 가려움증은 우리의 육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질병에 관한 전반적인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징후는 때로 오독되기도 하며 징후들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방식에 따라 질병은 새로 정의되고 처방 또한 달라진다. 하지만 모레티는 질병은 단지 정의된 것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며 원인이 있는 것이지만 권위를 지닌 자들- 여기서는 의사들- 이 제각기 지니고 있는 해석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오독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인 셈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놀라운 속도로 관람자를 중독시키는 미디어의 힘과 마주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주어진 이미지들의 틈 사이로 우리의 의지를 기입하는 행위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러한 행위는 우리 자신의 끊임없는 감시와 성찰을 통한 예방행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레티가 앓았던 병은 사실 아침에 일어나 시원한 냉수 한잔을 들이켜는 것만으로도 예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컵에 담긴 물을 마시다 갑자기 두눈을 똑바로 뜨고 스크린 너머의 우리를 노려본다. 그는 우리가 마치 텔레비전 화면 속의 인물이기라도 한 것처럼 바라본다. 이는 온전히 스펙터클에 묻혀 있는 관람자들- 여기엔 극중의 ‘정의로운’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상상적인 관객도 포함된다- 에게 가하는 비판이면서 동시에 그처럼 팽팽한 긴장 속에 놓인 예리한 시선을 가질 것에 대한 권유이기도 하다. 더이상 실비나 망가노 주연의 영화를 보면서 그저 춤을 따라할 때와 같은 모레티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이쯤에서 <나의 즐거운 일기>는 이미지들의 도시를 떠돌다 질병을 앓고 치유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각성한 인물에 대한 상상적인 짧은 여행기가 되는 것이다. <나의 즐거운 일기>는 언뜻 보기에 에피소드 상호간의 긴밀한 연결을 결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일 이 에피소드 각각을 그저 따로 즐기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많은 재미를 놓치게 된다. 이 글은 그 결여의 부분들을 채우기 위한 여러 독법 가운데 하나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모레티는 많은 단서들을 영화 곳곳에 남겨놓았다. 구석을 뒤지는 것이 중요하다. 난니 모레티라고 하는, 영화라는 도시의 유쾌한 산보객은 이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잊혀져가고 있던 한 기억의 무덤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잠시 숙연하게 명상에 잠긴다. 이러한 변두리를 그저 변두리가 아닌 하나의 틈새로 인식하는 것, 느리지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 이러한 행위야말로 자꾸만 스펙터클해지거나 점점 심심해져가는 이미지들의 폭력에 맞서는 무기가 될 것이다.길지도 않은 영화의 역사가 어느새 고도(古都)로만 남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유운성 akeldama@netian.com

김희선, `와니만큼 공들인적 없어요`

<패자부활전> <자귀모> <카라> <비천무> 등 그동안 출연한 영화들이 대부분 흥행에 실패하고 욕도 많이 먹은 탓인지 오는 24일의 <와니와 준하> 개봉을 앞둔 김희선씨는 상당히 씩씩한 모습이었다. 실패를 거듭 겪고 난 뒤의 여유나 담담함이라고나 할까. “데뷔한 이래로 1년 넘게 쉬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다른 거 안 하고 오로지 이 영화에만 매달렸어요. 대본 연습만 두 달을 했고, 한 장면 한 장면 찍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다시 찍기도 하고. 작품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았던 만큼 애착도 많이 가는 작품이예요.” 예전에는 찍고 나서 스태프와 함께 고민한 적이 없었고, 시간이 없어 영화에 몰입할 수도 없었다는 그의 반성이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천방지축 이미지의 스타 엔터테이너에서 배우 김희선으로 첫걸음을 떼는 그에게 일단 축하의 인사말을 던졌다. <와니와 준하>에서의 김희선은 정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맡은 역은 대학 진학 대신 일을 택한 6년 경력의 애니메이터 와니. 다정다감한 무명의 시나리오 작가 준하(주진모)와 동거하고 있다. 와니는 언뜻언뜻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지만 준하를 배려하며 따스한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유학간 남동생 영민(조승우)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그의 시선은 과거로 향한다. 그리고 하나씩 어두운 그림자의 진실이 밝혀진다. 동생은 그의 첫사랑이었고, 이복동생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충격으로 갑자기 죽고, 와니는 차마 자신의 상처를 마주 대하지도 못할 만큼 아픔 속에서 살았다. “영화 중에 사람 마음은 참 알기 어렵다는 대사가 있는데, 와니란 인물이 그래요. 털털한 듯하면서도 마음은 약하고, 아픔이 몸에 배어 있어 티가 안 나지만 순간순간 드러나고. 그래서 그런지 완성된 필름을 처음 보고 많이 속상했어요. 뭐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와니와 준하>는 영화 스틸로 사용되도 좋을 만큼 인상적인 예쁜 장면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두 사람의 첫 만남과 갈등을 겪고 다시 서로에게 다가선 두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해 순정만화와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예쁜 영상 이미지에 비해 와니와 준하가 감정의 가장 높은 파고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를 쌓아가는 과정이 밋밋하다. 다른 어느 때보다 영화홍보에 적극적인 김씨는 “지금 영화 시나리오와 텔레비전 드라마 제안이 여러 개 들어와 있지만 <와니와 준하>의 개봉 결과를 지켜본 뒤 결정할 계획”이라며 “이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따스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복례 기자 borae@hani.co.kr 사진 서경신 기자 raoul@hani.co.kr

[로마] 로베르토 베니니의 <피노키오>, 촬영현장공개

꿈속에 살고, 삶을 꿈꾸고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은 가장 유명한 인형의 나라에 오셨습니다. 성경과 코란 다음으로 세계에 많이 읽혀진 책의 주인공, 바로 피노키오의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촬영 시작 이후 처음으로 공개한 자신의 새 영화 <피노키오> 촬영현장에서 유럽 각지에서 찾아온 기자들에게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그의 새 영화를 소개했다. 현재 이탈리아 관객이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영화 <피노키오>는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마을에 차려진 ‘베니니의 꿈동산’에서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다. 멜람포라는 이름의 이 꿈의 동산은 테르니의 작은 도시인 파핀뇨에 차려졌는데, 대형 화학 공장대지에 건설된 이 세트장은 그의 대표작 <인생은 아름다워>의 촬영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멜람포는 약 800억리라의 자본을 투자하여 건설되었으며, 최고의 규모와 장비를 자랑한다. 이제는 거의 텔레비전 세트장으로 이용되는 로마의 치네치타 세트장과 비교되고 있다. 대부분의 장면이 세트장에서 촬영되는 이 영화를 위해 제작진은 소품, 의상 등 간단한 것에서부터 다양한 규모의 마을을 비롯해 등대 규모의 세트까지 모두 자체 제작을 하고 있다. 현재 이 영화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은 120명의 노동자와 150명의 촬영팀이다. 이중 50여명이 이 지역 출신 젊은이들로 이뤄져 있어 <피노키오>는 이 지역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준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베니니는 이번 일을 시작으로 앞으로 이 지역의 많은 인력을 발굴하고 기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 꿈의 동산 멜람포는 영화산업과 지역발전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다리가 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멜람포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경치로 유명한 중부의 토스카나에 실외 자연세트장이 건설되고 있는데, 베니니 역시 관객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준다는 뜻에서 멜람포 건설에 투자했다는 후문이다. 이제는 세계의 시선을 모으게 된 베니니는 이 영화가 자신에게 기대하고 있는 관객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밝히며, 비록 자신이 피노키오의 아버지 제페토의 나이가 되었을지라도 <피노키오>를 연출한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피노키오 작업은 “꿈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며, 삶을 꿈꾸는 것”이라며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또한 인류에게 따뜻한 기쁨을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6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촬영을 한 <피노키오>는 후반작업을 거쳐 내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로마=이상도 통신원

우리는 얼마나 작으냐

마약판매에 절대 반대하는 사람들도 중국에서 처형된 신 아무개의 일에는 분노하거나 한탄한다. 국가가 재외국민의 인권을 그토록 방치할 수 있느냐는 질책이 쏟아져 나온다. 필로폰 사용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최근의 황수정 사건을 다루는 방식을 한번 생각해볼 법 하다. 브라운관의 ‘청순가련’ ‘요조숙녀’가, 더구나 한사람의 ‘공인’이 이럴 수 있느냐는 도덕적 비난 앞에 그는 노출돼 있다. 공인이라면 공직에 있는 사람, 또는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분명 공직에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텔레비전 드라마 출연은 공적인 일인가. 그의 연기활동은 그 드라마와 함께 대중예술의 영역으로 분류해놓아야 할 것이고, 연기라는 행위는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공적인 일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그러면 왜 그는 필로폰을 함께 마신 이보다 이목을 끄는가.(너무 답이 뻔해서 질문이랄 수도 없다.) 유명인이니까. 기업들이 상품을 팔기위해 그들의 유명함을 거액의 광고모델료를 내고 사듯이, 언론은 상품 그 자체인 자신들을 팔기위해 그들의 동정을 채취한다. 어디서나 그렇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마약을 했다, 치료를 받고 재기했다, 다시 마약을 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한국까지 날아온다. 그래도, 사용자보다 판매자가 주로 처벌되는 풍토 탓인지 전달하는 태도가 조금 다르다. 아니면, 사생활을 존중해야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의식해서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경우는 지나치게 과격하다. 이름의 환금성과 경제적 가치는 높아졌으나 그것이 인격으로까지 옮겨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존중받을 만한 일을 해야한다는 말은 일면 옳은 듯 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존중하는 일은 언제나 모든 전제를 이겨내야 하는 법이라는 ‘원칙’을 안심하고 접어둔다. 수의를 입고, 오라를 찬 그 ‘여자’의 사진이 보내는 신호를 보라. 그 순간 우리에겐 “왕궁 대신에” 분개할 재료,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대신 증오할 대상이 제공된다. 분개 대신 조소, 증오 대신 경멸이라고 정정해야겠지만, 그런다 하더라도 참 우리는 얼마나 작으냐.

장혁, `난 정우성과 다르다`

<화산고>의 김태균 감독은 제작비 60억원짜리 블록버스터답지 않게 신인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신인이 아니었으면 이 고된 촬영을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는 게 김감독의 말이다. 촬영기간 11개월 동안 안전장치도 없이 5~10m 높이의 와이어에 매달리고, 6번 졸도하기까지 하면서 고생한 주인공 신인은 장혁(25)씨다. <학교> <왕룽의 대지> 등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이미 스타이지만 본격적인 영화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경수는 어린아이 같고 만화적인 캐릭터다. 어렸을 때 만화광이었다. 그때 봤던 <미래소년 코난> 같은 만화와 <토이스토리> <슈렉> 등 3D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표정을 연구하고 따라했다. 만화의 표정은 섬세하진 않지만 포인트가 세게 들어가 있다.` <화산고>에서 장씨의 표정은 정말 만화같다. 약간 좌우 비대칭인 그의 얼굴이 훨씬 더 찌그러져 보이고, 웃을 때 헤 벌린 입에선 금새 침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다. 그러나 액션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와이어신뿐 아니라 디셀로나(공기압을 사용해 사람을 빠른 속도로 잡아당기는 기계)의 공기압이 갑자기 증가해 기절한 적도 있다. 졸도해도 깨어나면 또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에 실려간 적은 한번 밖에 없다. 안전장치가 변변치 않아 믿을 건 와이어를 잡아당기는 사람들인데,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소주도 마시면서 친해지니까 믿음이 생기더라.` 장씨는 `제2의 정우성`이란 별명에 대해 `우성이 형이랑 무척 친한데, 내가 보기엔 별로 안 닮았다.` 면서 `같이 다녀 보면 우성이 형은 인파 속에 있지 않고 방랑자처럼 혼자 가는 것 같다, 나는 방랑자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제2의 정우성'이라는 호칭이 처음에 내 이미지를 만들고 인지도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다른 이미지로 변신하고자 할 때는 걸림돌이 될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 의도가 많았다. 앞으로 만화 <하리케인 조>의 조 같은 극단적 아웃사이더에서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안성기 같은 역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 보고 싶다. 그래서 배우로서 내 이미지가 동그란 원을 그리게 되면, 관객들이 내가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이런 느낌일 거야' 하고 예단하지 않고 `이번엔 어떤 느낌일까' 하는 궁금함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장씨는 또 `멋있는 데서 오는 카리스마보다 인간적인 느낌에서 오는 카리스마가 더 강한 것 같다`면서 `멋있어서 따라하고 싶은 건 오래가지 않지만, 인간적인 느낌은 울게도 하고 감동도 시키면서 깊게 각인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의 다음 영화는 조민호 감독의 <정글쥬스>로 청량리 윤락가 주변에서 사는 `조폭 똘마니'들의 이야기다. 일주일 전에 촬영을 마쳤고, 지금은 텔레비전 사극 <대망>(송지나 각본, 김종학 연출)을 준비중이다.

<질투는 나의 힘>의 주인공 배종옥

“4년 만인가요?” “아니, 10년 만이죠.” <깊은 슬픔>보다는 <걸어서 하늘까지>를 ‘본격적으로’ 했던 마지막 영화로 기억하는 배종옥에게, 요즘 촬영중인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은, 거기서 그녀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박성연은, 10년 만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질투는 나의 힘>은 스물일곱살짜리 대학원생 남자가 어느 유부남에게 애인을 뺏기고, 묘한 질투심에 잡지 편집장인 그 유부남 주위에 머무르면서 또 한명의 여자를 알게 되지만, 그녀 역시 그 때문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질투’의 이야기. 배종옥은 수의사 출신 사진기자인, 자유분방한 30대 여자 박성연을 연기한다. 서른일곱, 여전히 단단한 목소리와 눈매가 변함없는 배종옥에게, 그런 여잔 “지금까지 안 해본 역할”이다. 한참 만에 다시 하는 영화에다, 영 새로운 캐릭터까지, ‘긴장’되지만, 그게 바로 그녀가 원했던 것. “해온 것보다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가져왔던 것들을 다 버리고 싶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바뀌었어요. 스탭들도 젊고, 밤샘촬영도 많고…. 밤신 하면 다 밤샘 촬영이에요. 딴 데도 그런가요?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1988년 <칠수와 만수>로 영화데뷔, <젊은 날의 초상>(1990),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1990), <걸어서 하늘까지>(1992), 그리고 5년을 건너뛰어 <깊은 슬픔>. 이십대 중후반에는 비교적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녀가, 텔레비전 드라마에는 꾸준히 출연해온 데 비해 영화판에 뜸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러 가지 일이 있었죠. 무엇보다 내가 노출을 거부했으니까. TV 탤런트를 주로 하던 여배우들이 그때만 해도 노출까지 해가면서 영화하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예의 구슬 구르는 듯한 목소리가 똑부러지게 이유를 댄다. <질투는 나의 힘>은, 드라마 촬영이 많아 올해는 좀 쉴 생각에 한번 퇴짜를 놓았다가, “작품이 재밌고, 또 박성연이 재밌어서” 다시 받아들인 작품이란다. 맨손으로 강아지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옷을 갈아입거나 하는 것에서 웬만해선 남자와 내외를 하지 않으며, ‘아무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그런 집은 집도 아니라며 잠자리를 고정시키지 않는 여자 박성연은, 일견 희한한 인물 같지만 배종옥에게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라고. “그런 여자가 어딨을까, 찾으면 찾기 어렵겠지만, 전 그런 여자 많이 봤어요. 30대를 맞아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직 정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결혼을 할까, 해도 마땅치 않고 그렇게 갈등하는 여자들 많거든요.” 그녀가 흥미로워 그녀를 연기하게 됐지만, 한 가지, 머리를 감다 말고 벗은 상반신을 욕실 문 밖으로 내밀며 전화받으라고 하는 장면 만큼은 가슴 윗선으로 카메라 프레임의 제한을 요구했다. 그래서 약간 시나리오가 수정된 셈이지만, 그밖에 소소한 노출은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수준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란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종옥은 야무진듯 하면서도, 싱거운 소리 잘하고 허풍도 잘 떤다. 냉소적이고 퇴폐적인 이미지의 박성연이 그 모습에서 어떻게 뽑혀나올까? 배우로선 인기 시트콤 고정 출연이 독도 되고, 약도 된다. 적어도 배종옥에겐 약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거짓말>에서 차마 삼키지 못한 속울음으로 보는 사람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 것도 배종옥이었다. 신기하게도, 트로이카 같은 리스트에 속한 적 한번 없는 이 30대 여배우가 날이 갈수록 더 넓어지고 깊어진 모습으로 사람들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내년 1월, 이성강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에서 주인공 성우의 엄마 목소리로 배종옥은 예비 스크린 나들이를 한다. <질투는 나의 힘>으로 배종옥을 만나는 일은 내년 5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취화선> 촬영 100일 동행기 [3]

장승업, 고흐와 동시대 화가 2001년 7월16일 날씨 맑음 이 영화의 공식적인 크랭크인은 내가 이 시나리오를 읽은 지 보름 뒤인 7월16일 월요일이었다. 날씨 맑음. 이 자리는 기자들을 부른 첫 번째 현장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날 한국화에 관한 세미나를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한국화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22권의 한국화 책을 사들고,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영화와 회화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감스럽게도 유홍준 선생이 쓴 두권의 <화인열전>에는 장승업이 빠져 있었으며(그런데 안견과 신윤복도 빠져 있었다. 장승업을 고의로 폄하한 것 같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한국화에 관한 책들에서 김홍도와 김정희에 비하면 장승업은 매우 적게 다루어져 있었다(다루어져 있어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쓰여진 것들이 많았다). 영화에서 화가를 다룬 작품도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다. 고흐를 다룬 빈센트 미넬리의 <생의 갈망>,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례프>, 구로사와 아키라의 <꿈>에서 반 고흐를 만나는 에피소드, 자크 리베트의 <벨 느와제즈>(우리나라 제목으로 <누드 모델>로 알려진), 미조구치 겐지의 <우타마로를 둘러싼 다섯명의 여자>, 모리스 피알라의 <반 고흐>와 같은 작품들이 있을 뿐이다(아마도 내가 빼놓은 중요한 영화들도 있을 것이다). 자료들을 읽다가 발견한 이상한 한 가지 공통점. 유난히 반 고흐에 관한 영화들이 많으며, 장승업은 반 고흐와 동시대 화가였다는 사실이다. 또는 반 고흐와 장승업은 영화라는 기계장치가 발명되는 시대에 살아 있었던 사람들이며, 그들은 우리의 근대에로 들어오는 시대의 문턱에서 활동했던 화가들이다. 임권택 감독이 그려내고자 하는 장승업, 당신은 누구십니까? 임권택 감독 촬영현장에 비디오 모니터가 생기다니… 2001년 8월16일 맑았다 비 서울에서는 날씨가 맑았으나 전라남도 강진으로 내려가는 길에 비를 뿌리기 시작하다. 영랑생가에서 촬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장에 인사드리기 위해서 찾아 내려갔다. 아직 장승업은 어른이 되기 이전이며(따라서 장승업이 나오기는 하지만, 최민식씨는 오지 않았다) 영화에서 김병문 선생이 거지였던 장승업을 은암 선생에게 추천해서 그곳에 내려가 그림의 기초를 배우는 대목이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다음이며, 영랑생가에는 촬영차와 조명기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모든 것은 늘 보아온 것이지만, 다만 내가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임권택 감독 현장에 비디오 모니터가 생긴 것이다. 물론 지금 한국영화 현장에서 비디오 모니터는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아흔일곱편의 영화를 비디오 모니터 없이 작업한 임권택 감독의 현장에 비디오 모니터가 생긴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내가 알기로 한국영화에서 처음 비디오 모니터를 사용한 영화는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일 것이다. 왕가위는 <화양연화>에서 처음 비디오 모니터를 활용했다. 왕가위는 “비디오 모니터는 현장을 바꿔놓는다”라고만 짧게 대답했다. 임권택 감독은 <춘향뎐>에서 비디오 모니터를 처음 사용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현장에 하루이틀 구경가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내가 제일 우습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영화기자들이 고작 한나절 영화현장을 들러본 다음 그 영화에 대해서 논하려 들 때이다. 사람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겸손해야 한다. 나는 인사를 드리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첫 견학길은 다음날 아침 발길을 돌렸다. 15여 차례의 NG, 대체 이유가 뭘까? 2001년 9월10일 충청북도 청송문화재단지를 찾아가다. 날씨 맑음. 두 번째 현장 방문으로 이날은 장승업이 기생 매향의 기방을 찾는 장면을 먼저 찍었다. 최민식씨를 그날 처음 보았다(사석에서는 스크린 문화연대 사무실에서 만나보았지만 현장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뒤늦게 유호정씨가 도착했다. 기생방에 장승업이 기생 매향을 찾는 장면을 단 한번에 오케이 놓은 다음 옆의 대나무 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날 밤에는 장승업과 기생 매향이 다시 만나는 한벽루 주변의 장면이다. 장면 #102. (달빛 교교한 오솔길을 거니는 승업과 매향) 매향 “화명이 어찌나 자자하던지 오시는 걸 미리 알았습니다.” 승업 “애저녁에 끌려가 죽은 줄만 알았네. 소식을 물어 찾았네만 아는 이가 없더니….” 매향 “서울서는 목숨을 보존키 힘들어 이곳저곳 흘러다니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장면 #102-A (구름 속에 비어져 나오는 둥근달) 승업 “정인(情人)은 있는가?” 매향 (못 들은 척 웃는다) “바로 한양으로 가시나요?” 승업 “저렇게 그림을 조르니 한 달포 예서 머물 걸세.”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현장에서 어둠은 깊숙이 내리게 마련이다. 겨우 9시 반경인데도 이미 어둠은 칠흑처럼 떨어져 내렸다. 별달리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았고, 조명은 대나무 숲 뒤로 세워졌다. 두 사람이 대나무 숲이 펼쳐진 담벽길을 따라 걸어오면서 대화를 나눈다. 몇번 리허설을 해보고 슛에 들어갔다. 카메라는 두 사람을 따라 수평으로 레일을 깔았고, 그 위에 크레인을 올려놓았다. 비디오 모니터를 세워놓기는 했지만, 연기자들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임권택 감독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모니터를 열심히 보는 것은 매번 연기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동선과 표정을 일일이 체크하는 최민식씨와 유호정씨였다(그 뒤로 나는 유심히 보았는데 최민식씨는 아무리 짧은 장면도 반드시 모니터 화면으로 자기가 나오는 장면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건 예외가 없었다. 이상하다 싶으면 “감독님,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만큼 자기 연기의 플랜에 확신을 갖고 있는 배우였다). 감독님은 두 사람의 동선을 따라 같은 속도로 걸으면서 대사를 나누는 두 사람의 표정을 세세히 보았다. 임권택 감독은 오케이 사인을 내리기 전에 이미 그 장면이 마음에 들면 함박웃음이 꽃피는 얼굴이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게 웃음이 피지 않았다. 계속해서 엔지를 불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내 옆에 서 있었지만 그 장면이 왜 엔지인지를 알 수 없었다. 두 연기자의 얼굴이 조금씩 굳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걸어오는 속도와 대사의 속도가 붙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대사를 어떤 타이밍에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리저리 바꿔보았다. 그러더니 감독님은 정일성 촬영감독을 불렀다. 이번에는 아예 카메라의 동선을 바꿔보자고 말했다. 열네번의 엔지 다음에 레일은 위치를 바꾸고, 크레인의 각도도 바꾸었다. 두 사람은 연기 동선을 새로 배치받았다. 이미 앞의 동선에 익숙해서인지 두 연기자는 반복해서 엔지를 냈다. 그건 내가 옆에서 보기에도 이상하게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잠시 휴식을 하는 동안 임권택 감독이 비디오 모니터 앞에 앉아서 스크립터에게 앞의 장면을 모두 다시 틀어보자고 말했다. 아무 말 없이 보던 감독님은 다 끝나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이가 좀 이상해, 하여튼 모이가 안 맞어.” 감독님의 혼잣말이지만 그 순간 옆에 서 계시던 정일성 촬영감독과 김동호 조명기사, 조감독, 그리고 모두가 얼굴이 굳었다. 시간은 열두시를 넘고 있었다. 이제 한국영화 현장에서 임권택 감독의 그 장면이 될 때까지(!)라는 그 전설적인 순간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모든 스탭들에게는 지옥의 순간이지만, 나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치 않게 빨리 마주친 셈이다. 모기들이 조명들을 찾아 날아들었고, 늦여름인데도 찬 공기는 옷매무새를 파고들었다. 임권택 감독은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였다. 카메라는 처음 설계가 바뀌면서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처음에는 수평의 움직임이었던 것을 이번에는 사선으로 바꾸어 카메라를 이동하고, 장승업과 매향은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서 하던 대사를 서서도 해보고, 그 반대로 매향이 멈춰서고 장승업이 그녀를 원형으로 돌면서 대사를 나누기도 하였다. 한번 정해지면 그 장면에서 최선을 다해보지만, 번번이 임권택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여름은 새벽이 이르게 찾아오는 편이다. 결국 새벽 세시 반. 임권택 감독은 최민식씨와 유호정, 그리고 정일성 촬영감독과 김동호 조명기사를 한자리에 모아 그냥 한마디 하셨다. “여기는 그 대사가 묻어나는 장소가 아니요. 돌담길도 이상하고, 아무 맛이 안 살어. 암만 해도 여기서는 그게 안 나오는데, 여름이 끝나기 전에 다른 장소를 찾아봅시다.” 촬영은 결국 여섯 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그 장면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가 있는 법이다. “그렇지요. 차라리 날씨가 안 맞으면 그냥 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장소가 안 맞으면 그건 도리가 없는 것이지. 암만 해봐야 가짜 같거든. 그런데 그 장소가 그런지 아닌지는 그걸 해봐야만 안다는 것이요. 그러니 미치는 거지. 암만 해봐도, 배우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 다음에 카메라를 온갖 데다가 들이대도 결국에는 아닌 데는 아닌 것이요.”(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 이 장면은 조감독에게 나중에 들어보니 남원에 가서 한번에 오케이가 났다고 한다. 그 대사가 묻어나는 장소란 어떤 의미일까? 앙드레 바쟁은 장 르누아르에 대해서 쓰면서 이 말을 인용한다. “맞지 않는 장소에서 찍는 것보다는 못 만든 세트장에서 만드는 편이 낫다.” 조선춘화도 화집에서 빌려온 정사체위 2001년 9월11일 이튿날은 장승업과 매향의 야외에서의 정사장면이 있는 장면이다. 날씨 맑음. 장소는 청송문화재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담배밭에서 촬영되었다. 장면 #103 (강변, 앉은 자세로 정사를 나누고 있는 승업과 매향) 매향 “선생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세상살이 시름이 다 사라지니 이상하지요?” 승업 “그려서 위로주고, 그리면서 위로받는 게 환쟁이들일세. 자네와 나처럼 내 그림 통해 맘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디 그리 흔한가?”(서로 찾아드는 매향과 승업의 손) 시간경과 (꿈결같은 정사 뒤, 충일감에 누워 있는 두 사람) 승업 “이러지 말고 함께 사는 게 어떻겠나?” 매향 (웃으며) “화류계 떠도는 것도 모자라, 도망까지 다니는 신세입니다.” 승업 “…여기는 괜찮은가?” 매향 “아전 놈 하나가 눈치를 챘는지… 지분거리는 통에, 이곳도 떠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마치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하는 키 높은 담배밭인데,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장승업과 매향이 앉았다. 두 사람의 정사는 매향이 뒤로 앉아서 장승업을 올라타고 정사를 벌이는 후배위의 체위로 잡혔다. 감독님이 이 장면을 참조했다고 보여주신 책은 조선춘화도 화집이었다. 이 책에는 당시 그려진 수많은 춘화도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 책을 넘기면서 본 것은 유교가 지배하고 엄숙한 양반들과 선비들의 근엄한 얼굴 아래 숨죽이며 지내던 옛 조선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인간적인 체취였다. 임권택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정사장면들을 이 책에서 발췌하여 체위를 결정하였다. 이 책은 자주 이 영화현장에서 인용되곤 했다. 임권택 감독은 간단한 지시만 한 다음 그 자리에서 조감독을 불렀다. 그리고 이 장면을 열네개의 숏으로 쪼갰다. 이건 아주 의외였다. 당연히 롱테이크로 갈 거라고 생각하던 나는 갑자기 장면을 쪼개어서 들어가는 순간, 내가 <춘향뎐>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개의 숏을 더블 액션으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대사를 따라 마스터숏으로 시작해서 매향의 눈물 흘리는 얼굴의 클로즈업까지 파고들었다. 그 카메라의 동선은 장승업의 마음이 매향의 마음 안으로 파고들 듯한 순서를 따라갔다. 그러나 번번이 엔지를 내는 것은 연기자들이 아니라 바람이었다. 담배밭을 흔들어 주어야 하는데, 바람은 내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위에 찬란한 햇살이 떨어져야 하는데도 구름은 내내 심술을 부렸다.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워물던 감독님은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하자 김동호 조명기사에게 “매향에게 빛을 떨어뜨려 주세요” 하더니 바로 일어나서 슛을 불렀다. 그리고 순식간에 열네개로 그 장면을 쪼개 들어갔다. 거의 망설이지 않는 정확함. 행여나 감정이 다칠세라 중간에 쉬지 않고 정사를 따라가면서 이러저리 나누는 것을 정일성 촬영감독은 거의 그 머리 안에 들어가서 그 속의 그림을 복기해내듯이 순서대로 따라갔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오랜 작업이 가져온 장인들의 경지일 것이다. 그것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소름 끼칠 만큼 숙련된 솜씨였다. 영화는 숏을 이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결국 영화는 장면을 어떻게 나누냐의 문제이다. 그것이 장 피엘 우다르가 브레송의 <잔다르크의 재판>을 보면서 상대-숏 없이도 대화를 펼쳐낸 저 기적의 순간과 마주한 순간의 탄식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내부의 인물없이 외부의 인물이 없지만, 외부의 인물없이 내부의 인물도 없는 숏나누기의 봉합(suture)을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이 영화에 부여한 철학적 의미라고까지 말한다. 우리는 그 순간 영화 안으로 들어가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끼어든 시선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영화의 숏들은 자리를 벗어나고(out-of-joint), 신은 성립되지 않는다(미안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숏이 안 맞는다. 심지어 텔레비전 드라마는 그걸 무시하고 찍는다. 그것이 내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이다). 햄릿의 아버지가 유령이 되어 그의 아들에게 들려준 첫 대사. “시간이 멋대로 가고 있다.”(Time is out-of-joint) 이 말은 영화에서 시간이 어떻게 제 자리를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경구로도 읽혀야 한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인물은 영화에서 유령이 된다. 내가 그 장면을 옮겨놓은 메모를 읽으면서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취화선> 팀은 장승업의 유랑길을 따라서 조선시대 말 충청도를 거쳐 호남땅 풍경 안으로 이리저리 떠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