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KWVWS넴뷰탈디씨펜토바르비탈직구넴뷰탈디씨펜토바르비탈직구' 검색결과

기사/뉴스(1997)

[전영객잔] 당신이 즐긴 것은 무엇입니까? [1]

…(모든 글에 이어서) 결국 나도 <아바타>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다. 지금 열광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영화. <아바타>를 보러가는 사람들은 영화를 본다, 라기보다는 차라리 목격하러 간다, 는 태도로 참을성을 갖고 기다려서 3D 극장(의 중앙 뒷자리좌석)으로 향한다. 줄거리도 잘 알고 있고, 엔딩은 예상한 그대로이지만 아무도 실망을 늘어놓지 않는다. 오로지 테크놀로지의 경이를 즐기기 위해서 영화를 보러간다. 여기에는 어떤 다른 기대도 없다. 그런 다음 갑자기 다들 영화의 미래에 대해서 찬양하거나, 혹은 근심한다. 하지만 우리는 열광이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찬사와 근심의 미래로부터 간극지어진 실재의 제자리로 되돌아와야 한다. 요점은 간단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의 오래된 질문. 왜 영화는 미학이 아니라 기술이 미래를 결정짓는가? 물론 대답도 잘 알고 있다. 이 바보야, 영화는 결국 돈이 결정하는 거라고! 2억6천만달러짜리 영화와 비평적 싸움을 벌이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해야 한다. 나는 좀더 시간적 거리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했다. 이것은 나의 임무이다. 곤란한 임무. 그러나 하스미 시게히코는 단호하게 말했다. 영화가 나빠지는 걸 구경한 다음에는 세상이 나빠지는 걸 보게 될 것입니다. 가장 따분한 비판은 저들은 그저 자본을 앞세운 (문화) 제국주의자들일 뿐이지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가장 역겨운 찬사는 저들 없이 영화의 진화가 이루어진 적이 있나요,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우리가 놓인 자리, 제국의 주변. 영화를 둘러싼 생산과 확산과 분배와 착취와 기만과 매혹의 여러 국면들. 그리고 비평가들의 처세술. 혹은 그들 (각자)의 비평적 전술. 대중의 환호와 일시적인 변덕. 자신의 습관적인 영화관람 행위를 전시하고 그것을 즐기는 블로거들. 자신을 갱단처럼 여기는 악동들. 비평적 테러. 그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영화가 공격당할 때 전투를 불사한다. 새로운 시네필의 지도. 말하자면 영화 인텔리겐차라는 새로운 관객의 형성. 여기에서 분화되어나온 영화 룸펜 지식인들. 그들은 자신을 비평가와 동일시한다. 점점 기민하게 대처하고 냉소적으로 대꾸하는 영화담론의 ‘사이버’ 세계. 마술처럼 일시적으로 한자리로 몰려든 담론의 폭발. 하지만 이것은 좋은 결론인가? 동의하지 않는다. 자본이 결국 미래를 결정하는 논쟁이라면 이것은 아무리 말을 바꾸어도 새벽없는 밤을 준비하는 황혼이다. 미네르바 따위는 여기에 없다. 지칠 줄 모르는 밤. 이것은 비관주의자의 탄식인가? 포기하면 안된다. 비평이라는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 영화는 주어진 선택이라는 수동적 구경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라는 가련한 단서의 애처로움. 낙관주의자들도 웃지 못할 것이다. 당신들의 믿음이 사실이라면 당신들도 영화의 미래 안에서 예외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음산한 논쟁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논의가 어쩌면 영화의 역사에서 군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이 <아바타>에 대해 지금 여기의 시장과 영화의 미래 사이에서 진행되는 우리의 비평적 담론을 방해하는가? 왜 동일한 사건이 다양성의 가면을 쓰고 핵심을 회피하게 만드는가? 3D 효과는 미래의 ‘시네마틱한’ 경험인가? 약간의 우회. 나는 지난해 12월14일 이후 모든 자리에서 내내 <아바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그 자리가 공적이건 사적이건, 모임이건 두 사람의 만남이건, 강의실이건 카페이건, 눈 구경을 하면서 커피를 마시건 눈 걱정을 하면서 술을 마시건, 내내 <아바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없었다. <아바타>는 보는 내내 지루했고, 3D 안경은 너무 불편했다. 나는 안경을 쓰기 때문에 두개를 껴야만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 질문의 요지는 간단하다. <아바타>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내 대답은 없다는 것이다. <아바타>의 줄거리는 거의 바보에 가깝다. 만일 누군가가 이 영화의 서사를 분석한다면 나는 그게 <트랜스포머>를 분석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아바타>는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가 아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스탠리 큐브릭이 아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그저 (스필버그의) <우주전쟁>과 비교했을 때 <아바타>는 2시간41분 동안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하고 평면적인 서사와 매력없는 주인공들의 신파에 가까운 멜로드라마가 진행된다. 그렇다면 <아바타>라는 태풍의 눈은 무엇인가? 당연히 3D 효과의 경험이다. 좋다. 알겠다. 하지만 왜 그 다음 질문을 하지 않는가? 3D 효과는 미래의 ‘시네마틱한’ 경험인가? 나는 <아바타>가 창조적인 예술품이라기보다는 혁신적인 발명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발명을 경험하는 것. <아바타>를 보러가는 것과 3D영화를 경험하러 가는 것은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의 차이이다. 둘 사이에는 어떤 변증법적 긴장도 없다. 동일한 현상의 두개의 측면. 두개의 태도. 예술적 경험을 문화적 체험으로 환원할 때 둘 사이의 차이는 영화를 보는 우리의 형식적 조건들을 완전히 다른 자리로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바타>를 둘러싼 비평담론들은 잠시 그 차이를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구경의 덫에 걸렸다. 예술적 경험의 기쁨을 기술적 발명의 놀라움과 맞바꿔칠 때 영화관객은 감상을 포기하고 카메라의 자리에 가게 될 것이다. 내가 아니라 베냐민이 한 말이다. 이때 왜 그 경험을 갈망하고 움켜쥐려고 하는가? 여기서 신기한 것은 <아바타>를 둘러싼 대중의 열광이 아니라 비평담론의 실패이다. 나는 지금 <아바타>를 지지하느냐, 혹은 비판하느냐를 놓고 입장을 가르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문제제기를 이해한다면 당신은 사태를 완전히 오해한 것이다. 비평이란 영화를 견딜 수 없는 관객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아바타>를 둘러싼 논쟁에서 무효화되었다. 그러기는커녕 비평가들의 <아바타>에 대한 열광에는 무언가 할 일을 하고 있다는 태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일? 3D 테크놀로지의 미래를 예언하는 일. 그러면서 한결같이 영화의 미래를 예언한다. 3D는 영화의 ‘유일한’ 미래인가? 나는 비평담론이 예언가의 역할에서 비평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바타>를 지지하는 그렇게 많은 비평담론 중에서 ‘혁명이 찾아왔다’고 열광하는 사실상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경험)의 핵심인 3D 기술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을 담은 글은 정작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영화가 너무 가까이 있(거나 3D 기술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거나 영화비평의 수사학을 사용하긴 하지만 대부분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아바타>의 3D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최양현의 글이 거의 유일했다(‘최후의 승리까지 한뼘 더 필요해’ <씨네21> 736호). 이 글에서 지적한 대로 0점 지정을 한 숏들의 패럴렉스 미장센 디자인(mise-en-parallax-scene)을 설명하지 않으면 <아바타>에서 미학적 논쟁과 경험의 미래학은 고스란히 남겨질 수밖에 없다. 3D와 2D의 영화적 경계는 어디냐 나는 종종 <아바타>를 보다가 안경을 벗었고 많은 숏들은 2D로 진행되다가 3D로 옮겨갔다(반대로 3D 화면들은 인물을 중심에 놓고 원경은 스크린 프로세스처럼 보였다). 이때 즉각적으로 궁금해진 것은 3D와 2D의 영화적 경계는 어디냐는 것이다. 둘 사이의 경계는 시선과 동선 양쪽 모두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두개의 영토. 이차원의 공간을 삼차원으로 활용하는 것과 가상 삼차원을 놓고 이차원을 배경으로 설정할 때, 먼 것과 가까운 것이 상상적인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오차를 만들어내는 뇌신경의 스크린에서 물리적으로 투사될 때, 영화를 보는 관객은 무엇으로 영화와 봉합(縫合, suture)되어야 하는 것일까? 질문의 핵심은 <아바타>의 3D 프레임과 관객의 시각적 투사의 관계에서 영화를 보는 나의 자리는 어디냐는 것이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시각적 네트워크와 관객의 지각 사이의 거리(perceptual distance)를 재구성하는 메커니즘은 어떻게 시청각적 기호들을 재배치할 것인가? 3D는 영화의 구성을 새로운 조합의 집합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단지 새로운 소여에 불과할 것인가? 이 질문을 과학적 용어로만 설명할 때 <아바타>의 3D 효과는 관념적 상태에 머물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것을 다시 영화적 개념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제임스 카메론과 로버트 저메키스는 어떤 다른 목표를 갖고 있는가?(이상하게도 <아바타>와 거의 동시에 개봉된 <크리스마스 캐롤>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다) 좀더 단순하게 질문해보자. <아바타>의 표면은 3D 안에서 만들어내는 굴곡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가? 이때 표면의 맹점이라는 문제는 어디서 발생하는가? 프레임의 굴곡이 선형진행의 구조 안에서 암흑지점을 만들어내는 지점. 0점 지정의 영화에서 존재하는 것은 맹점인가, 아니면 과잉된 두개의 자리인가? 거기 있다고 가정된 대상을 정말 거기서 볼 때, 나는 이 말의 방점이 본다, 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라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거기라는 지점은 이제까지 영화에서 가정하지 않았던 암흑지점이다. 3D 효과는 바로 이 암흑지점의 페티시즘에 다름 아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저메키스와 다른 점은 패럴렉스 디자인을 하면서 미장센을 일종의 인스톨레이션에 가까운 방식으로 설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레임의 내용을 전시할 때 서사의 진행은 둔해지고 감정은 산만해진다. <아바타>를 보았을 때 내가 즉각적으로 느낀 것은 필요 이상으로 음악이 과잉하고, 대사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대부분 바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바타>의 모든 시청각적 기호들은 지금 프레임에서 진행되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궁금증. 제임스 카메론은 이렇게 바보 같은 서사를 진행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왜 바보같이 단순한 서사가 필요해진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타이타닉>을 3D로 진행한다고 가정해보자. 타이타닉이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는 장면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대부분은 무효가 될 것이다. 왜? 프레임을 전시할 때 화면 안의 요소들 사이의 집합 안에서 운동과 그 관계는 정보가 된다. 감정선의 포기. 시선 네트워크의 단순화. 동선의 평면성. 영화 안에서 (마주)본다는 것과 영화 바깥에서 (쳐다)본다는 것 사이의 차이. <타이타닉>은 전자의 영화이며, <아바타>는 후자의 영화이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무효라는 문제가 있다. 이때 3D의 문제점을 단지 입체효과 때문에 영화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가 단순해진다는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 가설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소박한 결론이다(더 한심한 가설은 <아바타>가 비싼 영화이기 때문에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크 나이트>는 예술영화인가?). 제임스 카메론에게 질문하고 싶은 핵심은 3D라는 전시효과에 매달리게 될 때 부딪치는 한계라는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여기서 영화가 이미지의 전시효과에 집중하게 될 때 영화의 존재론은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빈곤해진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발명은 창조가 아니다 약간의 우회. 다소 산만해 보이는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미지는 ‘하드 보디’(hard body)다. 이 개념을 발전시킨 것은 수잔 제퍼드이다. ‘소프트 보디’가 성병, 부도덕성, 마약, 공해에 오염된 기형, 게으름, 위험에 빠진 태아를 담고 있는 잘못된 몸이라면 힘, 노동, 결단력, 충성심, 용기를 감싸고 있는 표준적인 몸을 ‘하드 보디’라고 불렀다. 이 ‘하드 보디’는 국가 혹은 사회, 몸담고 있는 커뮤니티, 상황이 요구하는 몸을 위해서 종종 국가적 표준을 이상화할 수 있는 판타지를 끌어들였다. 국가적 몸과 할리우드 영웅의 몸의 동일화. 이를테면 ‘매파’ 레이건의 도착과 ‘하드 보디’ 람보의 등장. ‘비둘기파’ 지미 카터의 퇴장과 ‘소프트 보디’ 트래비스의 자멸(<택시 드라이버>). 제임스 카메론은 ‘하드 보디’를 아이러니하게 비틀었다. <터미네이터>와 그 속편은 타임머신에 관한 (역설적) 이야기(의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계-인간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다. 한번은 악당으로, 그 다음에는 도움을 주는 선인으로 ‘동일한’ 터미네이터 T800이 찾아온다. <에이리언2>에서는 리플리에게 로봇 신체를 제공함으로써 ‘여성 하드 보디’를 제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두편의 <터미네이터> 사이에 끼어 있는 <어비스>이다. 심해 속의 ‘낯선 존재’를 만나기 위해 인간은 무시무시한 수압을 견딜 수 있는 ‘하드 보디’ 잠수복을 입는다. 그러나 잠수복은 수압을 견디지만 호흡 곤란을 가져온다.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 <트루 라이즈>는 제임스 카메론 버전의 제임스 본드 액션이다. 차이가 있다면 ‘하드 보디’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유머이다. 그런 다음 환유로서의 ‘하드 보디’인 호화로운 여객선 타이타닉에 두 연인을 태운 다음 추운 겨울바다 한복판에서 그것을 다시 빼앗는다. 부서져버린 육체. 애매하지만 남겨진 감정. <타이타닉>은 제임스 카메론의 결론이다. 20세기는 여기서 끝났다. 그리고 14년 동안 침묵을 지켰다. 말하자면 기다림. 미래를 앞에 놓고 예언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거나 잡담이다. 역사는 변수가 많고 상황은 수시로 변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위험을 무릅쓰고 싶다. <아바타>는 영화사에서 어느 자리에 놓일 것인가? 질문을 약간만 비틀어보자. <아바타>의 3D는 토키인가, 딥 포커스인가? 비유적으로 질문을 바꿀 수도 있다. <아바타>는 <재즈 싱어>인가, <시민 케인>인가? 김혜리는 (사석에서) 좀더 간단하게 질문했다. <아바타>는 (상업적) 이벤트인가, (예술적) 혁명인가? 내 대답은 둘 다이다. 문제는 폭스사는 <재즈 싱어>라고 생각한 것이고, 제임스 카메론은 <시민 케인>이라고 믿은 것 같다는 사실이다. (영화적으로) 결과는 <재즈 싱어>가 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이 남아 있다. <아바타>는 <재즈 싱어>인가, <성의>인가? 무성영화로부터 토키영화에로 옮겨온 1929년 ‘이후’처럼 기술적 전환뿐만 아니라 영화문법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아니면 1953년 시네마스코프 ‘이후’처럼 새로운 스크린 사이즈의 추가에 지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여기서 잠깐 영화사의 기술적 ‘혁명’에 관한 몇 가지 기록을 환기하고 싶다. 이십세기 폭스사의 대표였던 윌리엄 폭스는 와이드 스크린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집착했었다. 워너영화사가 사운드를 영화에 끌어들였을 때 폭스는 영화의 미래가 와이드 스크린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미 1929년에 두편의 70mm영화를 만들었다. 불행히도(다행히도?) 영화관은 폭스의 요구에 맞는 스크린을 준비하지 않았다. 워너영화사는 폭스의 70mm에 대항해서 65mm 바이타스코프를 개발했다. MGM은 폭스 사이즈를 받아들였고,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는 워너 사이즈를 받아들였다. 폭스는 이때 좀더 나아가고 싶어 했다. 폭스는 진지하게 ‘이미’ 1929년에 3D 화면을 테스트했다. RKO는 이 시기를 영화에서 일종의 전환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3D 효과가 나는 내추럴 비전을 <댄저 라이트>에서 실험했다. 이들은 운이 나빴다. 무성영화에서 토키로 넘어오면서 사운드 레코딩 문제는 극장에 1.33 사이즈 영사기를 강요하다시피 했다. 사운드와 스크린 사이의 기술적 경쟁은 서로에게 적대적인 관계로 전화하였다. 사운드는 영화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지만 와이드 스크린은 관객에게 단지 화면에 커졌다는 이상의 만족감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할리우드는 와이드 스크린에 맞는 장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사운드는 뮤지컬과 갱스터무비를 만들어냈다. 춤과 총소리, 노래와 비명. 한 가지 더. 1929년 할리우드영화는 텔레비전이 아니라 라디오와 경쟁하는 시대였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갑자기 라디오의 미디어 기능을 동시에 갖추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미디어 사이의 잡종교배였다. 발명은 창조가 아니다. 그렇다면 3D는 무엇과의 교배인가? 즉각적으로 당신은 온라인 게임을 떠올릴 것이다. <아바타>를 경험하면서 느끼는 낯선 반응은 어쩌면 내가 전혀 게임을 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바타>는 게임에 익숙한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 사이에서 서로 다른 친화성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논의를 하기에 이 자리는 적절치 않다.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예술적 야심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기록. 시네마스코프가 처음 개발되었을 때 영화기술적 핵심은 ‘안경을 쓰지 않고 보는’ 3D영화였다. 그래서 1953년 2월17일자 <버라이어티>의 <성의>에 대한 소개는 “안경을 쓰지 않고 보는 현대의 기적을 보라”였다. 그렇다면 시네마스코프는 3D영화로 가기 위한 매우 긴 장기적 이행기의 중간 단계 사이즈였던 것일까?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고 관객은 3D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일까? <아바타>는 시네마스코프의 21세기 버전인가? 나는 화면비에 관한 지루한 역사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그냥 간단하게 폭스사는 전통적으로 끈질기게 화면이 결국 영화의 미래라고 믿었다. 최초의 시네마스코프영화인 <성의>는 폭스사의 ‘혁명’이었으며, 지금 3D영화 <아바타>도 폭스사의 영화이다. 이것을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문화’ 산업에서 미래를 선점한다는 문제. 미래의 독과점. 어쩌면 이런 논쟁을 당신은 따분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3D에 환장하는 모습도 고작해야 이런 기술적 ‘환영’(幻影/歡迎) 논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바타>가 영화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라기보다는 외설적 판본처럼 보인다. 우리는 영화의 새로운 미래의 잠재적 가능성을 위해서 무엇을 건너가야 하는가? <아바타>는 분명하게 대답한다. 응, 그건 미학이 아니라 돈이야.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건너가서 만날 수 있는 미래는 무엇인가? 이때 자본을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제임스 카메론의 예술적 야심에 찬 비전은 역사적으로 모두가 실패한 3D 효과라는 물신주의의 성공에 대한 열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희극에 가까운 프로젝트가 정말 성공했을 때 사태는 2D영화의 전면적인 파국이 될 것이다. 그때 무엇이 전도될 것인가? 혹은 무엇을 전도시킬 것인가? 나는 논쟁의 초점을 어떤 각도에서 들어가도 3D로부터 벗어날 때 핵심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아바타>를 수정주의 서부극이나 문화이론의 패러다임을 빌려온 이데올로기 판본으로 읽는 것은 사실상 이 영화의 기술적 쇼크를 문화적 영역으로 끌어들여서 충격으로부터 방어하려는 보수적 오독(misreading)이다. 만일 오로지 <아바타>를 문화적 판본으로만 읽는다면 이건 가장 나쁜 형태의 매우 지루한 뉴 에이지 아류의 동어반복으로 보인다.

맛있는 대사, 웃음 한줌, 눈물 한 방울…

영화를 보셨는가. 그렇다면 읽을 차례다. 혹은 그 반대라도 상관없다.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에 익은 에피소드들이 툭툭 떨어질 것이며, 책을 먼저 읽었다면 영화와 원작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을 테니까. 니콜라의 세계에 처음 입문하는 초심자부터 더 자세히 파고들기를 원하는 숙련자까지 모두 아우르는, <꼬마 니콜라> 시리즈 단계별 독서를 소개한다. 초급반 추천/ <꼬마 니콜라> <꼬마 니콜라의 쉬는 시간> <꼬마 니콜라의 여름방학> <꼬마 니콜라와 친구들> <꼬마 니콜라의 골칫거리> 니콜라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싶다면, 시리즈의 뿌리인 <꼬마 니콜라>를 비롯해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다섯권을 읽길 권한다. 니콜라가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친구 마리 에드비주의 생일파티나 학생주임 부이옹 선생님 이야기, 선생님 때문에 먹던 빵을 떨어뜨리고 이성을 잃는 니콜라의 먹보 친구 알세스트에 대한 에피소드는 영화에 차용되었다.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꼽자면 <꼬마 니콜라>에 수록된 ‘멋진 꽃다발’이 있다. 니콜라는 엄마에게 선물할 꽃을 사지만, 집에 오는 길이 평탄치 않다. 결국 다 찌그러진 꽃을 내밀며 울음을 터뜨리는 니콜라의 모습은 짠하면서도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중급반 추천/ <우리는 천하무적> <선생님은 너무해> <아빠는 괴로워> <공동 꼴찌> <초콜릿 공장 소동> 기본 시리즈를 섭렵했다면, 이제 르네 고시니의 딸 안나 고시니가 출간한 미발표 원고들을 읽을 차례다. 1977년 르네 고시니가 작고한 뒤, 그의 딸 안나 고시니는 이사를 하다가 수백장의 니콜라 원고를 발견한다. 그녀가 발견한 80편의 미발표 원고들은 책으로 묶여 출간되자마자 이틀 만에 초판 5만5천부가 모두 매진됐다. 이들 원고에서도 르네 고시니가 창조해낸 위트있는 에피소드를 엿볼 수 있다. 수학숙제의 답이 틀렸다고 선생님이 주의를 줬는데 알고 보니 아빠가 푼 문제라든지(<우리는 천하무적>), 선생님이 단체 반성문을 벌로 내리자 자기는 잘못도 안 했는데 반성문을 쓸 수 없다며 떼를 쓰는 모범생 아냥(<선생님은 너무해>)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니콜라는 순진하게 보이다가도 방심하는 순간 영악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공동 꼴찌>의 다음 대사가 압권이다. “클로테르가 꼴찌를 하지 않고, 극장에 못 가거나 간식을 못 먹거나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으려면 자전거를 빼앗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에요. (중략) 산타 할아버지가 원하신다면 클로테르가 어른이 되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될 때까지 내가 그 자전거를 맡아줄게요.” 상급반 추천/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 이 단계쯤 되면, 알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챙겨’ 보는 거다. <꼬마 니콜라의 빨간 풍선>은 2008년 꼬마 니콜라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책이다. 르네 고시니가 생전에 쓴 열편의 에피소드들을 읽고 장 자크 상페가 그림을 그려 완성했다. ‘빨간 풍선’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알베르 라모리스 감독의 단편이 먼저 떠오르지만, 생각해보면 빨간 조끼가 트레이드마크인 니콜라와 빨간 풍선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부활절 달걀’ 에피소드의 경우 꼬마 니콜라가 처음 등장한 1959년 잡지에 실렸던 이야기이며, 풍선이 터질까봐 엄마와 함께 집에 걸어오지만 이웃집 아저씨를 놀라게 하려고 그 풍선을 단숨에 터뜨린다는 ‘빨간 풍선’ 이야기는 미발표 원고에 속한다.

[오마이이슈] 협찬 정신

아하 협찬 때문이었구나. 지난 연말 어느 저녁 텔레비전에 지글지글 맛있어 보이는 고기가 나오기에 침 흘리며 유심히 보았다. 시종 수입 쇠고기는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멘트로 일관했는데 대체 왜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건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화면 가득 맛있는 장면과 통관 절차만 보여줬을 뿐. 무슨 실험 결과 안전하다거나 어떤 검사를 해보니 깨끗하다거나 하다못해 검역 과정에 새 기술이 도입됐다거나 하는 그렇고 그런 정보 하나 등장하지 않았다. 명색이 과학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알고보니 정부 협찬으로 제작한 꼭지란다. 한우도 아니고 수입 쇠고기 홍보에 나랏돈 쓰이는 것도 거시기하지만 아휴, 촌스러. 제작진은 얼마나 짜증났을까(나 한때 협찬 받아본 여자야~). 하여간 올겨울 ‘윈터 이슈’들은 하나같이 후지고 구리다. 대통령 딸과 손녀의 해외순방 동행 뉴스와 뒤늦은 청와대의 허둥지둥 해명은 ‘소심한 듯 다크한’ 이 정부 패션의 화룡점정이랄까. 자비로 부담할 것이라 하지만 대체 ‘사후 정산’을 어떻게 해. 대통령 특별기 좌석값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인도 정부에서 이들에게 든 의전과 경호 등 비용을 청구할 리도 만무하잖아. 게다가 부양가족이 아닌 가족을 외교 관례상 데리고 다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네. 일찍이 성냥으로 속눈썹 말아올리고 급우들이 하이틴 로맨스에 열 올릴 때 고고하게 <논노>를 교과서 아래 깔고 보던 소녀 시절의 내 기준에 따르면, 패션은 단순한 옷차림이 아니다(비록 지금은 고무줄 바지로 연명하지만 나름 실용주의거든. 그리고 공식 행사장에는 이렇게 입고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영업장에는 절대로…). 말투와 제스처, 나아가 행동과 처신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정신과 세계관을 드러내는 키워드다. 정신세계가 그리 넓고 깊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고 말끝마다 돈돈돈 하는 분을 일컬어 우리는 ‘업자’라 부른다. 4대강의 엄청난 미래 가치도 건설 붐과 이에 따른 땅값 상승으로만 계산하니까 이 사달이 난 거잖아. 오죽하면 돈 없는 학생들 돕겠다는 등록금 취업후상환제가 고리 대부업으로 전락했을까. 이런 사장님이 해외 출장에 가족 동행 협찬 좀 받은 걸 갖고 이렇게 파르르 하는 걸 보니 확실히 나는 소인배다.

[포커스] “아날로그 필름, 아직도 발전중이다”

패션용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최근 현장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 정도라고 할까. <국가대표>(2009)로 첫 선을 보인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대세가 된 레드원 카메라 말이다. 요즘엔 드라마 <추노>를 찍은 카메라로 더 유명하다. 이후 이 카메라로 안 찍은 영화를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레드원 카메라는 충무로의 유행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필름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필름과 비슷한 화질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무로가, 특히 10억원 내외의 저예산상업영화들이 너도나도 앞 다투어 이 카메라를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그만큼 디지털이 급성장했다. 풍부한 명암과 색 구현하는 ‘이터나 비비드 500’ 지난 1월25일, 잠실 롯데월드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후지필름 신제품 발표회가 다소 비장하게 시작된 것도 그래서다. “최근 디지털 산업이 성장하면서 필름 업계가 다소 위축된 것은 사실”이라는 최승돈 후지필름 이사는 “이번에 선보일 신제품 ‘이터나 비비드 500’(ETERNA Vivid 500)을 통해 필름이 다시 영화산업의 중심에 서게 되었으면 한다”는 말로 행사를 열었다. 그러니까 필름 업계 스스로 디지털이 필름을 따라잡았음을 인정하고, 다시 한 발짝 앞으로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또 이번 행사는 그간 한국 영화용필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인 코닥의 아성에 도전하겠다는 후지의 출사표이기도 하다. 확실히 이터나 비비드 500은 고감도필름으로서 훌륭했다(‘500’은 필름감도로, 빛에 반응하는 정도를 뜻한다. 숫자가 높을수록 고감도라 불린다). 한국의 황기석, 윤주환 촬영감독과 미국촬영감독협회의 페든 파파마이클, 클레이머 모겐타우, 디온 비비 촬영감독이 만든 테스트 영상을 본 결과, 다른 필름에 비해 색 재현 능력이 월등히 뛰어났다. 광량이 적은 해질녘이나 새벽에도 피사체가 가진 색을 선명하게 살려내는가 하면, 어둠 속에서도 미세한 밝음과 붉은 립스틱 색 등을 모두 표현할 줄 안다. 또 적은 광량으로도 밤장면 촬영이 가능할 정도로 계조가 풍부하다. 한마디로 밝음과 어둠의 큰 대비 속에서도 높은 채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고감도필름의 단점을 극복했음을 의미한다. 보통 입자가 굵어서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고감도필름은 색이 필름 위에 완전히 입혀지기도 전에 상이 맺히는 경우가 많다. 고감도필름이 채도가 낮은, 무채색 느낌이 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번 신제품을 통해 “기존의 것에서 한 단계 진화했다”는 윤주환 촬영감독은 “무엇보다 밝음과 어둠, 그리고 색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필름누아르 장르에 적합한 필름”이라고 말했다. 역시 테스트 촬영을 해본 디온 비비 촬영감독(<콜래트럴>(2004), <마이애미 바이스>(2006) 등 촬영)도 이에 동의했다. “전체 조명 없이도 섬세한 그림자까지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한 어둠을 얻을 수 있었다.” 필름의 고비용 문제, 해결 가능할까 이처럼 촬영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지만, 여전히 레드원 카메라와 같은 디지털 매체에 쏠려있는 게 충무로의 현실이다. 이에 필름 업계는 디지털에 대항하기 위해 몇몇 자구책을 마련했다. 지난해 11월, 필름 비용을 줄이기 위해 후지필름이 한국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와 함께 실시한 ‘3P’(Perforation) 테스트가 그중 하나. 3P는 이런 식이다. 필름 한 프레임에 구멍이 좌우 4개씩 있다. 퍼포레이션이라는 이름의 이 구멍을 좌우 3개로 줄이면 어떻게 될까. 줄어든 면적만큼 프레임 숫자가 늘어난다. 그러니까 사용할 수 있는 프레임의 숫자가 많아진다는 말이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카메라에 필름을 끼우는 부분인 게이트 역시 4개에서 3개로 개조해야 한다. 이렇게 개조하면 후반작업비용이 약 30% 절감된다는 게 테스트의 결과다. 또 4P에 비해 화면의 좌우가 늘어나 시네마스코프(2.35:1) 작업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 “원래 시네마스코프용으로 개발된 것은 아닌데 3P는 이미지의 손실없이 시네마스코프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을 발견”했다는 게 영진위 기술사업부 조성민씨의 말이다. 3P는 필름을 사용하고 싶지만 제작비 때문에 고민하는 프로듀서와 촬영감독들에게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로 3P로 필름 비용 절감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영화가 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 <포화 속으로>와 원빈의 신작 <아.저.씨>가 바로 그것. “보통 400자 필름을 사용하면 3분50초 정도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3P를 적용해보니 5분50초, 그러니까 2분 정도 더 쓸 수 있더라”라는 최명기 프로듀서는 “필름 관련 비용이 30% 절감됐다”고 만족해했다. 하지만 3P가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카메라 한대당 개조비용 7천만원을 부담해야 하고, 4P에 최적화된 극장 영사기에 맞추기 위해 D.I.(Digital Intermidiate: 디지털 후반작업)는 필수다. 신제품 개발, 필름 비용 절감방법 등 필름 업체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영화인들은 무조건 디지털을 선택하는 풍토를 경계한다. 비용이 싸다는 이유로 말이다. <박쥐>(2009),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의 정정훈 촬영감독은 “작품의 퀄리티를 위해 어떤 카메라가 잘 어울리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카메라 선택에는 반드시 미학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디지털이 계속 성장하는 것처럼 필름 역시 신제품이 계속 나오고 있다. 신제품을 써봐야 더 나은 필름이 또 나오는 게 아닌가”라고도 했다. 그만큼 작품의 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인 <달빛 길어올리기>(2010)를 디지털로 촬영하고 있는 황기석 촬영감독 역시 “장르에 맞는 카메라를 선택하는 게 평범한 진리”라고 강조했다. 촬영방식에 적합한 매체를 골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포화 속으로>의 경우 추운 겨울에 로케이션 촬영이 많다보니, 온도에 굉장히 민감한 레드원 카메라보다 필름카메라가 더 적합하다”는 게 최명기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작품에 따라 필름과 디지털 혼용되어야 디지털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프로듀서의 입장에서 현상, 인화, 텔레시네 등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필름보다 비교적 간단한 공정의 디지털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위축된 충무로의 투자환경에서 한푼이라도 더 깎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필름이 사라질 것이라는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도 안된다. 디지털과 필름, 필름과 디지털 모두 창작자에게는 중요한 도구이고, 관객에게는 다양한 볼거리다. 그런 의미에서 후지필름의 와타나베 히로시 국제마케팅 매니저의 말이 떠오른다. “디지털이 대세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날로그 필름에 대한 지지층은 굳건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디지털과 필름이 공존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아날로그 필름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도서] 존재론적 문학실험

출판사 설명 하나만 정정하자.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더불어 세계 3대 SF작가로 손꼽히는 필립 K. 딕.” 이게 무슨 달나라 토끼가 반중력 우주선에서 초공간 점프하는 소리? 세계 3대 SF작가, 그러니까 SF 문학계의 빅 스리(Big 3)는 아시모프, 클라크, 그리고 로버트 하인라인이다. 여하튼 필립 K. 딕의 팬들이라면 온갖 영화평론가들이 영화화된 단편들만을 가지고 필립 K. 딕의 철학을 사유할 때 좀 배알이 꼴렸을 텐데, <매트릭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이버펑크 개똥철학 영화들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유빅>의 출간은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무대는 (언제나 그렇듯이) 가까운 미래다. 시간여행이 가능하고 죽은 사람마저 ‘반생인’이라는 이름으로 생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다. 염력과 텔레파시도 이미 일상화됐다. 그러다보니 초능력자들에 의한 사생활 침해가 잦아졌고, 런사이터 어소시에이츠를 비롯한 여러 기업은 초능력을 무효화시킬 줄 아는 ‘관성자’들을 고용해 사생활 침해 방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런데 열한명의 관성자들을 데리고 달로 떠난 런사이터 어소시에이츠의 대표 글렌 런사이터가 폭탄 테러로 사망하고, 주인공 조 칩은 이상한 메시지를 받는다. 달에서 죽은 것은 런사이터가 아니라 동행한 관성자들이라는 거다. 대체 누가 살아남은 것이고, 누가 죽은 것일까. 혹은, 삶과 죽음이라는 게 더이상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유빅>은 필립 K. 딕의 존재론적 문학실험의 진수다.

[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거리두기의 미덕

‘휩쓸린다’는 감각은 현대인에게 친숙하다. 정보와 노동의 속도는 생체 리듬을 추월하고, 자극성 강한 감상주의적 문화는 우리 마음을 급작스레 들었다 놓기를 거듭한다. 해일처럼 덮쳐오는 일상의 사태와 감정 속에서 우리는, 있는 힘껏 헤엄쳐야만 간신히 제자리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고 느낀다. 하물며 세상의 흐름을 역류해 원하는 방향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거의 영웅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혼란이 엄습해 쉽사리 물러가지 않을 때 대응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묘사’하는 것이다. 묘사하는 행위는 텔레비전의 ‘느리게 다시 보기 화면’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당면한 사태로부터 안전거리를 확보해주고, 그 가장자리에 처한 자신의 상태까지 파악할 여유를 준다. 주관적 시점으로 조율된 리얼리티는, 간혹 상상치 못한 의미나 아름다움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이를 ‘보기’와 ‘쳐다보기’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에게 ‘묘사’의 도구는 말과 글이겠지만, 예술가에겐 각자의 도구가 있다. 팝 바날리즘(banalism, 사소하고 진부한 것을 그린다는 뜻) 작가라고 불리는 폴란드 화가 빌헬름 사스날(1972~)은 생활의 표면을 구성하는 온갖 이미지에서 소재를 취한다. 일례로 2001년작 <폴란드의 일상생활>은 만화 형식으로 아내의 입원, 아들의 탄생, 아파트 내부 공사 등을 기록해 “최초로 70년대생의 사실적 일상사를 쓴 연대기 작가”라는 평판을 불렀다. 정보화 세대 화가에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의 현실은 매개된 현실- 잡지, 광고, 신문의 사진, 만화, TV, 인터넷 이미지- 을 포함한다. 언론에 공개된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의 장비를 무심한 정물화처럼 그리는가 하면, 구소련의 선전선동용 이미지를 순수 장식미술로 재현한다. 역사를 전유해 주관적 비전 안으로 끌어당겨놓고 시치미를 떼는 식이다. 대상의 이미지를 본래 맥락에서 비스듬히 이탈시키는 사스날의 경향은, 사생활의 풍경을 묘사할 경우에도 발견된다. 2009년작 <무제>는 웅덩이 가장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반영을 들여다보는 화가의 어린 아들과 그를 지켜보는 아내의 모습을 담았다. 단란한 가족의 한때를 담은 스냅 사진처럼 보이지만 이 그림에는 감정의 직접적 전이를 꺼리는 베일이 덮여 있다. 붓자국을 노출하면서도 묘사의 선과 색면을 단순화하는 붓질, 색채를 자제한 흑백 위주 팔레트가, 복제된 이미지의 구체성을 지우고 그 흔적과 그림자만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상회화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이 그림에서 흔히 우아한 디자인에서나 발견되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 결국 사스날의 회화는 매우 동시대적이고 내밀한 스토리에서 출발해 대단히 사실적인 묘사로 완성되면서도 관객의 반응을 지정하기 직전에 멈춘다. 이 화가에게 페인팅은 덜어내고, 환원하고, 거리를 확보하는 작업이다. 영화 이미지가 포토리얼리즘을 넘어 촉각까지 파고드는 요즘, 우리가 장차 시각 예술에서 그리워할 미덕은 적당한 거리에 대한 사려가 아닐까 하는 상념이 인다.

“고전에 오마주 바치길 두려워해서는 안되지”

-<셔터 아일랜드>는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을 먼저 읽었나,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나. =시나리오가 먼저였다. 심지어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읽었다. 그때가 밤 10시30분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이 있어 잠자리에 일찍 들었어야 했는데 도저히 대본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더라. 시나리오는 고전영화의 문법과 고딕소설의 본질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건 유혹적인 이야기였다. -실제로 이 영화는 1940~50년대의 누아르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있다. 혹시 영화를 만들면서 염두에 둔 고전영화들이 있나. =1940년대 초 발 루튼이 제작한 저예산영화의 분위기와 정서를 참고했다. <캣피플> <죽은 자들의 섬> <일곱 번째 희생자>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등의 작품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크 러팔로에게는 <로라>와 <과거로부터>를 보여주었다. <로라>에서는 주인공 다나 앤드루스의 넥타이 매는 법이나 방 안으로 들어가는 동작 등을 보도록 했고, <과거로부터>에서는 자신이 어느 상황에 당면했는지 알지 못하는 캐릭터를 이해해보라고 했다. -이처럼 많은 고전영화를 참고한 이유가 뭔가. =나는 추억을 좋아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보존주의자(preservationist)다. 우리는 고전영화의 분위기를 되살려낼 수는 없다. 그런 영화들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들어졌으니까. 하지만 그걸 참고할 수는 있지 않겠나. 우리는 오마주를 바치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다만 경의는 진지하게 바쳐야 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는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에 이은 네 번째 작업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단지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작업하는 방식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작업 방식이 좀더 난해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촬영이 끝나고 두달 뒤 레오와 만나 몇 장면을 돌려보았다. 그는 “저 장면 찍을 때 정말 끔찍했는데”, “기억나네요, 젠장! 저때는 완전 최악이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런 말을 장면마다 연발하더라. 구토장면이나 숲속을 달리는 장면을 찍으면서 겪었을 고통이 그의 말에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아마도 이 영화는 그의 출연작 중 가장 고된 영화였을 거다. 하지만 나는 레오가 <셔터 아일랜드>를 통해 놀랄 만한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촬영과 조명은 <셔터 아일랜드>의 음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듯하다.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테디의 심리상태를 조명과 화면 분위기, 그리고 섬 자체로 표현하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따라서 프레임마다 주인공의 정신적 상태를 함께 전달해야만 했다. 우리는 세트장 이상의 장소를 만들어내야 했다. 나는 촬영감독 로버트 리처드슨, 그리고 미술감독 단테 페레티와 끊임없이 의논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진짜 통제하는 자이며 누가 통제받는 자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시각적 표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최근 당신이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이 예전과 많이 다른 듯하다. 예전에는 영화에 뭔가 터뜨리고 분출하는 지점이 있었다면 최근작들에선 많이 차분해진 것 같다. =다른 많은 감독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난 이제 젊었을 때처럼 화를 쉽게 내지 않는다. 같은 상황이라도 유머로 대처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나이가 들면서 분명 바뀐 듯하다. -지금은 CG를 이용한 블록버스터나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 필름이 각광받는 시대다. 당신이 추구하는 지적이고 교양있는 영화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데. =영화사가 시작된 지도 벌써 100여년이 지났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나는 간밤에 우리 영화의 작가인 폴 슈레이더를 만났는데, 그가 나에게 이러더라. 마티, 이해할 수 있어? 젊은 사람들은 컴퓨터를 잘 쓰네. 그들은 <분홍신>(마이크 파웰이 만든)의 복원판 DVD를 보며 자네의 코멘터리를 들을 거야. 그중 몇몇은 스카이프라고 부르는 인터넷 전화로 이렇게 통화하겠지. “얘, 나 <분홍신> 보는 중인데 여기 스코시즈 코멘터리도 있어.” 이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다. 새로운 세대는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본다. 그리고 난 그 방식이 뭔지를 알지 못한다. 난 그저 내가 아는 대로만 행동할 뿐이다. (웃음) -다음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나. =최근 의 신작 드라마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파일럿 제작을 끝냈다. 지금은 조지 해리슨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를 작업하고 있고, 작가 프란 르보비츠를 다룬 또 다른 다큐멘터리도 작업 중이다. 이후에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전기영화 제작도 추진할 예정이다. (이상 인터뷰는 <뉴욕타임스> <텔레그래프> <셔터 아일랜드>의 기자회견 녹취에서 발췌 및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홍콩필름마트서 <하녀> 등 한국작품 주목

(홍콩=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한국 영화들이 홍콩필름마트에서 주목받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CJ엔터테인먼트 등 8개의 한국 부스가 필름마트에 개설된 가운데 한국 부스를 찾는 바이어들의 발걸음이 필름 마트 첫날인 22일부터 마지막 날인 25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표 주자는 미로비전이 제작ㆍ배급하는 리메이크작 '하녀'다. '하녀'에는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이 출연하는 점이 구매자들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 유럽에서 명성이 높은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도 한몫했다. 김기영 감독이 만들었던 원작(1960)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미로비전의 남경희 해외사업팀 부장은 "아시아 바이어들이 '하녀'에 대해 정확한 사전 정보를 가지고 오는 것 같다"며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국내 최대의 투자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텔레시네마' 7편을 주력 종목으로 들고 왔다. '동방신기'의 영웅재중, '빅뱅'의 탑과 승리 등 아시아에서도 통하는 아이돌이 나서는 한일합작영화들이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의 이재한 감독이 연출하고 '러브 레터'의 나카야마 미호가 주연으로 출연한 '사요나라 이츠카'도 인기다. 일본에서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현재까지 약 135억엔(1천700억원)의 매출을 올린 히트작이다. CJ엔터테인먼트 해외영업전략팀의 김성은 팀장은 "중화권에서 제안이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텔레시네마나 '사요나라 이츠카' 등은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의형제'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선보인 쇼박스 라인업도 인기다. '의형제'는 일본 배급사 SPO엔터테인먼트에 팔렸고, 필름마트가 열리기 전에도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거북이 달린다' 등이 일본 배급사에 팔렸다. 해외세일즈 대행사인 '파인컷' 부스에서는 '아이리스 극장판'이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문의가 폭주하고 있지만 다소 비싼 가격은 협상에 걸림돌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일본인 바이어는 "아이리스의 인기가 필름마트에서 매우 높다. 하지만 높은 가격 때문에 사는 걸 포기했다. 우리뿐 아니라 여러 회사가 그런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세일즈 대행사인 'M라인' 부스에서는 코믹물 '청담보살'과 액션 장르 '홍길동의 후예'가 인기다. 추소연 M라인 과장은 "'홍길동의 후예'는 5편 정도가 임시계약된 상황"이라며 "확실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이나 코미디가 인기를 끄는 것 같다"고 했다. 신진 제작.배급사의 약진도 눈에 띈다. '블러디 쉐이크'(Bloody Shake)라는 호러 장르를 들고 온 P.A.M 코리아미디어는 약 40차례에 걸친 미팅을 했다. 강행군이었지만 성과는 상당했다. P.A.M은 대만 J&B엔터테인먼트에 '블러디 쉐이크'를 파는데 성공했고, 대만 IPTV와의 계약도 확정했다. 프랑스의 키노발 프로덕션, 중국의 선더 필름 엔터테인먼트, 홍콩의 에이스 히어로 필름 앤드 엔터테인먼트 등과는 계약 마무리 단계에 있다. P.A.M 김지용 대표는 "협상 과정이 힘들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주문을 받은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채희승 미로비전 대표는 "작년보다도 훨씬 많은 바이어들이 홍콩필름마트를 찾았고,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은 것 같다"며 "바이어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다면 내년에는 부스를 하나 더 늘려 2개의 부스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buff27@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가수 데뷔 윤상현 日 광고모델 발탁

(도쿄=연합뉴스) 이태문 통신원 = 일본에서 가수 데뷔를 앞둔 탤런트 윤상현이 일본 기업의 광고 모델로 뽑혔다. 일본 소속사인 크로스원(CROSS ONE)은 28일 윤상현이 생초콜릿, 포테이토칩 초콜릿 등 다양한 초콜릿 상품을 출시 중인 로이즈(ROYCE')의 모델로 뽑혀 다음달 24일부터 TV광고와 거리의 대형스크린 광고 등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미 촬영을 끝낸 윤상현은 "예전부터 로이즈 제품을 팬들이 보내준 선물로 먹은 적이 있어 잘 알고 있는데, 광고 모델 제의가 들어와서 기뻤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편, 화제작 '내조의 여왕'에서 태봉이로 출연해 지난해 MBC연기대상의 최우수 남자 연기상을 수상한 윤상현은 오는 31일 싱글 '사이고노아메(마지막 비)'로 가수 데뷔하며, 4월부터 시작하는 NHK의 '텔레비전으로 한글강좌' 상황 드라마에도 출연한다. 또한, 출연작 '겨울새'에 이어 '내조의 여왕'이 다음달 24일부터 LaLaTV로 방영되고, 그에 앞서 22일에는 최신작 '아가씨를 부탁해'도 위성채널인 위성극장을 통해 방송되며, LaLaTV와 로이즈가 손을 잡은 대대적인 '윤상현 응원 캠페인'도 전개될 예정이다. gounworld@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