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CASHFILTER365코인송금대행24시자금믹싱업체코인송금대행24시자금믹싱업체' 검색결과

기사/뉴스(1997)

[오마이이슈] 소신의 계절

나도 소신을 지키고 싶다. 사회적 체면과 지위(씨네리 종신필자라는!)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아무도 나에게 그걸 묻지는 않지만, 미국산 쇠고기 들여온 협상대표에게만 그게 있는 게 아니거든(옆이나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한 소신은 대단히 후지다. 하물며 국민을 적대시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공직’자의 소신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내년이면 여섯살이 되는, 남달리 운동을 좋아하고 심지어 집착하는(바깥놀이 못한 날에는 숟가락 물고 식탁 다리에 매달려 있거나 물구나무서서 텔레비전을 봄) 아이를 둔 처지라 시의 산하기관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체육기관에 보낼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동네에 대단위 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이 기관에 대한 과열조짐이 일더니 지난해에는 ‘새벽 4시에 갔더니 끄트머리였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래서인지 올해에는 공개추첨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반가웠다. 애 운에 맡기는 것이 제일 속 편하니까. 그랬던 것이 등록 시기가 되자 뒤집어졌다. 예전처럼 선착순 마감을 한다는 것이다. 하룻밤 고생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자식을 그곳에 보내고픈 학부모들의 요구가 빗발쳤다고 한다. 나는 난관에 봉착했다. 새벽 혹은 전날 밤부터 덜덜 떨면서 줄을 서서 기어이 아이를 그곳에 보내야 하는가. 불필요한 경쟁이다. 교육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옳지 않을뿐더러 미학적으로도 꼴불견이다. 무엇보다 나의 원래 의도와도 맞지 않다. 아이가 부디 교육기관에서 ‘진을 다 빼서’ 귀가했으면 하는 게, 그래서 바깥놀이를(괴물놀이나 잡기놀이, ‘엄마도 매달려봐’ 따위) 요구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나의 ‘이기적 모성’이니까. 어떻게든 일신상의 안락을 꾀하는 소신파인 내가 줄을 서서야 되겠니? 왠지 여기서 무너지면 ‘로드 매니저 엄마’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공포심마저 들었다. 중요한 건 원하는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양질의 보육·교육기관이 많아지는 것이지만, 그건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합리적으로 검토하던 방침까지 무력화할 ‘어떻게든 내 자식은…’ 대열에 편승하느냐 마느냐 목하 고민 중이다. 나 하나 ‘거부’한다고 이 문제가 달라지겠는가마는 고민 중에 드는 생각은, 적어도 내가 거부하면 이 문제에서 ‘나’를 지킬 수는 있겠다는 것이다.

[영화읽기] 그 애달픈 비관

눈이 크고 목이 짧으며 왜소한 체형을 지닌 인물들의 인상은 마치 아이와 같다. 그 눈짐작은 틀리지 않을 것인데,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못하는 아이들인 ‘키르도레’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칸나미가 도착한 비행 부대 부근은 대단히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다. 부대의 파일럿들은 휴게실에서 신문을 읽거나 맥주를 마시고 때로는 드라이브 인 식당에 가서 미트파이를 먹는다. 하지만 경고음이 울려 적기의 침입을 알리면 복고풍의 전투기를 타고 나가 공중전을 치른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전투장면을 게임 보듯 즐기며 전쟁을 판타지로 경험한다. <스카이 크롤러>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가 <이노센스> 이후 4년 만에 완성한 SF애니메이션이다. 롱테이크와 우아한 리듬의 촬영, 실감나는 전투장면의 재현은 일본 애니메이션 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 작품이 일본 젊은 세대에 ‘희망의 전언’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김봉석이 언급한 바 있다(<씨네21> 776호). <공각기동대>(1995) 이후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은 미래를 신생의 이미지가 아닌 몰락의 이미지에 몰아넣는 재현의 관습을 보여줘왔다. 그의 SF물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시선은 묘한 노스탤지어와 맞닿아 있다. 도래할 신생의 어떤 것, 그 미지에 대한 기대감이라기보다는 이미 상실한 무언가에 대한 나른한 조우. 이 우아한 상실의 시선은 아마도 자신이 억압하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 텐데, 이 글은 이 시선의 행방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평화의 나른한 권태와 가짜 전쟁의 재현 <스카이 크롤러>는 근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한 SF애니메이션이다. 전쟁이 종식되었지만, 평화의 나른한 권태에 빠진 사람들은 군수회사를 동원하여 ‘가짜 전쟁 쇼’를 만들어낸다. 록스톡과 라우테른이라는 군수회사는 ‘키르도레’(Kildren)라는 미스터리한 아이들을 전투기에 태워 전쟁을 수행한다. 중요한 점은 어느 한편이 이겨서 전쟁이 끝나지 않도록 게임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의 룰은 다음과 같다. 키르도레가 동원된 전쟁에 ‘티처’라는 어른 남성이 등장한다. 흑표범이 새겨진 전투기를 모는 이 성인 남자는 모든 상대를 이기는 게임의 변수다. 그래서 라우테른사가 불리할 때는 그 회사의 일원이 되고, 록스타사가 불리할 때는 이 회사의 일원이 된다. 키르도레는 일종의 상수다. 신비롭게도 이들은 죽어도 되돌아와 다시 전투기에 오른다. 눈치챘겠지만 이 ‘전쟁쇼’는 악무한(惡無限), 즉 종결없는 반복지옥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게임의 룰을 벗어날 도리는 없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적이 있고 죽어도 죽지 못한 채 되돌아오는 아이들이 있으며 이들은 절대 어른이 되지 않는다. 영화는 키르도레가 품게 되는 질문,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시감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느슨한 미스터리를 만들어가며 전쟁과 폭력에 대한 외면화된 주제 이면에 정체성과 윤리에 대한 민감한 문제를 배치하고 있다. 일본인에게 혹은 오시이 마모루에게 2차 세계대전은 하나의 최종 전쟁이었으며, 원자폭탄 투하 이후 세계가 균질한 시간대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은 전쟁에 대한 묘한 반감과 더불어 향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지식인의 이른바 ‘근대의 초극’ 좌담에서 전쟁이란 하나의 자연사적 현상이며 역사가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으리라는 입장을 내세운 바 있다. 일본에 있어서 2차대전 이후의 세계는 외부의 전쟁을 관조하며 스스로의 전쟁 욕망을 다스리는 시기였기 때문일까? 패전 이후 폭력이란 내재화되고 미학화되어 전쟁이 불가능한 일본사회의 심리적 대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실제 전쟁이 아니라 이미지로 폭력을 향유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런 입장은 극중에서 쿠사나기를 통해 직설적으로 제시된다. “전쟁은 어떤 시대라도 완전히 없어진 적이 없어. 그건 인간에게 그 현실미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야. 같은 시대에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가 싸우고 있다는 현실감. 인간사회의 시스템에는 불가결한 요소니까. 그리고 그것은 절대 거짓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어. 전쟁이 무엇인지는 역사교과서에 실려 있는 옛날이야기만으로는 불충분한 거야. 정말로 죽어가는 인간이 있고, 그게 보도되고, 그 비참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평화를 인식할 수 없어.”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단호한 거부와 반대의 입장을 표면에 드러내는 동시에, 내면에서는 폭력에 대한 묘한 노스탤지어를 심미화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그가 각본을 쓴 애니메이션 <인랑>에서 <스카이 크롤러>로 이어진다. 고요한 평화를 찢는 공중전의 실감나는 재현은 폭력에 대한 강한 선망의 무의식을 건드린다. <인랑>과 <스카이 크롤러>는 전쟁이 불가능한, 혹은 전쟁이 폐쇄된 곳에서 그것을 대체하는 전쟁 게임을 수행하는 폭력-기계로서의 인간을 주제화하고 있다. 키르도레는 본래 군수회사의 상품이었다. 유전자 제어제 개발 도중 키르도레라는 묘한 상품, 즉 어른이 되지 못하며 죽지도 않는 상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들이 다시금 환생해서 돌아오는 까닭은, 그가 지닌 파일럿으로서의 성능을 보유하려는 회사의 의도 때문이다. 키르도레는 테크놀로지 조작을 통해 태어났으며, 자율의지 없이 전쟁 게임 속으로 들어와서 영원히 반복되는 폭력을 대리한다. 이 영원한 데자뷰의 세계에서 주인공 칸나미는 겉으로 보기에는 어떠한 의혹도 없이 주어진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나 내면에 깊은 의지를 지니고 있어서, 생을 끝내달라는 쿠사나기의 요청에 “그래도 너는 살아라, 무언가를 바꿀 때까지”라고 말한다. 결국 칸나미는 전사하고, 영화의 쿠키 영상(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뒤 나오는 부가영상)은 새로 부대로 전속받은 파일럿의 도착을 보여준다. 상관인 쿠사나기는 새로 배속받은 히이가리 이사토(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다)에게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이 기다림, 권태와 퇴폐의 무한 지속 속에서 어떠한 온기처럼 잃지 말아야 할 유일한 한 가지는 이 기대감뿐이다. 무한히 반복 생산되는 상품이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회의하며 숙명에 저항하기 위해 영원한 시간의 반복을 감내하는 주인공의 결의는, 마찬가지로 생산된 프로그램에 불과했지만 스스로를 ‘생명’이라 선언했던 <공각기동대>에서의 프로그램 2501, 일명 인형사와 유사한 각성을 보여준다. 불가능한 전쟁을 대체하는 폭력의 미학 <스카이 크롤러>에서 주인공 칸나미가 배속된 전투부대의 지휘관은 쿠사나기(<공각기동대>의 주인공의 이름과 같다)다. 더불어 <이노센스>에 등장하는 개(실제로 오시이 마모루가 키우던 개로 알려져 있는데)가 등장해서 그의 전작과 연결되는 서사적 회로를 구성하고 있다. <스카이 크롤러>의 쿠사나기는 <공각기동대>의 결말에서 소녀의 의체를 입은 형상과 거의 유사한 키르도레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한편 주인공 칸나미는 ‘진로우’라는 전임자를 대체하여 이 전투부대에 배속되었는데, ‘진로우’란 <인랑>의 인간늑대인 ‘인랑’(人郞)의 일본식 발음과 같다. 광대한 네트로 ‘융합’하여 다른 생명의 진화 단계로 넘어간 쿠사나기와 전쟁 기계인 인랑은 다시 이 폐쇄적이고 반복적인 전쟁 지옥으로 들어왔는데, 이들이 이 회로에서 빠져나올 도리는 없다. 폭력에 길든 인간늑대 ‘진로우’나 살인 무기인 키르도레를 만든 자들에게 테크놀로지란 조작 가능한 것, 즉 숙명과 별개의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자들, 즉 인랑이나 키르도레에게 테크놀로지란 어떠한 숙명 같은 것인데 이들은 자율적 의지로 숙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애니메이션들이 매혹적이며 의미심장한 어떤 주제와 미학을 건설하고 있다면, 그것은 전쟁과 폭력의 비인도성에 대한 고발이나 ‘그래도 넌 살아라’라는 젊은이에게 건네는 희망의 전언과는 다른 방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오시이 마모루 애니메이션의 매혹은 ‘숙명’의 부근에서 나른하고 우아하며 퇴폐적으로 전개되는 폭력의 심미화에 그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나는 칸나미가 죽기 전에 독백한 ‘항상 지나는 길이라도 경치가 똑같은 것은 아니야. 그것만으로는 안되는 것일까?’라는 가능성의 대사를 희망이 아닌 절망의 메시지로 읽었다. 그것만으로는 안되며, 결코 숙명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죽여줄까, 아니면 죽여줄래?’라는 쿠사나기의 도발에서 어떤 가능성을 감지하게 되는데, 그녀가 보여주는 그 애달픈 비관, 폭력의 긍정이면서도 부정인 미묘한 정치성이야말로 오시이 마모루 애니메이션이 보유한 심미성의 근거로 보이기 때문이다. 송효정 영화평론가. 대학원에서 식민지 도시문화를 연구한다. 영화와 문학에 대해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김영진의 인디라마] 갈수록 깊어지는 그의 영화언어에 경배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장률 감독의 신작 <두만강>이 좀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이 영화는 장률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작일 뿐만 아니라 동시대 영화 가운데서도 걸작 수준에 올라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장률의 영화언어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스토리의 예정된 인과성을 비집고 삐죽삐죽 솟아나는 감정의 기세가 강렬해서 영화의 대단원에 이르면 거의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장률의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스타일은 늘 그렇듯이 담담한 외형을 지키지만 내적 리듬의 격렬함은 그 자신의 어느 영화보다 거세다. <두만강>은 두만강 어귀에서 북조선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중국의 어느 조선족 동포 마을이 배경이다.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이 마을에 북조선 사람들이 강을 넘어 탈북해 들어온다. 북조선 탈북자들에게 처음엔 동포로서 호의적이었던 중국 조선족 마을 사람들은 탈북자들이 자신들의 먹을 것을 훔치고 이런저런 해코지를 본의 아니게 저지르자 이윽고 그들을 꺼리고 혐오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가 남한에 돈 벌러간 채 할아버지와 벙어리 누나 순희와 함께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 창호는 북조선과 중국을 수시로 넘나드는 정진이란 북조선 소년과 친구가 된다. 그들의 우정도 어른들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변화를 겪는다. 화면 안과 바깥의 조응과 길항의 연출 방식 간단한 스토리지만 간단하지 않은 것을 담고 있다. 신문 사회면 단신에 나올 법한, 또는 텔레비전 휴먼다큐에 나올 법한 스토리인데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다 여러 입체적 정황을 암시적으로 배치해놓았다. 조선족 아이들이 늘 눈 내리는 마을 어귀 공터에서 중국 공안과 공차기 놀이를 하고, 치매에 걸린 마을 이장 어머니는 늘 강을 건너려 하고, 명태 등을 수송해 파는 마을 상점 아저씨는 트럭에 몰래 북조선 탈북자를 숨겨 들어오고 하는 따위의 정황들이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창호와 정진 두 소년의 우정이 점진적으로 발전해가는 것이 보인다. 처음엔 못 사는 데서 왔다고 은근히 정진을 괄시하던 창호는 정진이 축구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곧 닥칠 건넛마을 아이들과의 축구경기에서 정진이 함께 뛰어주면 좋겠다고, 이를테면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 정진이 병을 앓는 어린 누이동생에게 먹을 것을 구해주러 도강한다는 걸 안 다음부터 창호는 정진에게 더 잘해주는데 상황은 이들의 우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느 날 밤 늦게 한 탈북자 남자가 창호 집을 찾아와 하룻밤만 창고에서 재워줄 것을 청한다. 이튿날 창호와 할아버지가 시내로 간 사이 탈북자 남자는 자기에게 먹을 것을 준 순희에게 처음엔 엎드려 절하며 감사를 표하지만 배가 부르고 여전히 먹을 것이 상에 남아 있자 은근히 술을 청한다. “술 한잔 먹었으면 딱 좋갔는데….” 순희가 꺼내준 술병을 그 남자가 급히 거듭 들이켤 때 순희는 텔레비전을 켜고 화면에는 김정일을 찬양하는 관제방송이 흘러나온다. 취기가 얼굴에 불콰한 탈북자는 그 화면을 보고 잠깐 경기를 일으키고 순희에게 먹잇감을 찾은 승냥이의 표정으로 대든다. 이 부분은 <두만강>에서 가장 논쟁적인 장면이다. 다른 관객도 그러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이 장면에서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이란 예감을 받았다. 동시에 그 예감이 실제로 적중한다면 이 영화에 실망할 것이란 느낌 때문에 조마조마했다. 그런 일이 왕왕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라 해도 이 영화에서 극적 파장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사건이 벌어진다면 뭔가 인위적인 감독의 개입 흔적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고 이는 하수의 방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예상대로 탈북자가 천사의 성품을 지닌 순희, 말 못하는 순희에게 못할 일을 저지르는데도 영화의 극적 조율방식에 정이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장면에서 카메라는 앞서 말한 텔레비전 화면을 비추고 있고 뭔가 끔찍한 일은 화면 바깥에서 벌어진다. 순희의 비명소리, 헐떡이는 남자의 소리가 김정일 찬양방송의 사운드와 겹치면서 감정적으로 증폭되고 화면이 커트되면 남자는 집에서 나와 허겁지겁 도망치고 그 광경을 창호의 마을 친구인 철부가 몰래 훔쳐보고 있다. <두만강>에서 장률은 이전의 영화에 비해 훨씬 입체적인 방식으로 화면 안에 담긴 것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화면 밖을 보여주는 것에도 상당한 암시의 너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물들이 화면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지속되는 어떤 상황의 묘사가 화면 안과 바깥의 변증법 속에서 길항관계를 이루며 조응하는 패턴은 영화 내내 반복된다. 앞서 조마조마했던 상황이 극적 강조를 넘어 파탄으로 치닫지 않은 것도 이같은 묘사방식 덕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바깥으로도 확장되어 계속될 거라는 관객의 인식이 장률의 연출에 따라 차곡차곡 쌓이면서 우리는 스토리 전개보다는 화면 안과 바깥의 상황에 더 예민해지고 그것들이 이루는 보이지 않는 띠에 반응하게 된다. 이런 것을 장률이 새로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로베르 브레송과 같은 서구 감독이 이미 성취한 미니멀리즘의 변증법을 따라하거나 계승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뭐랄까, 다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너무 가슴이 아플 만큼 현실의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끌어안으려고 하는 감독의 예술적 포용력의 깊이를 이 화면 안과 바깥을 아우르는 스타일이 대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많은 아우성과 슬픔과 분노를 눌러 담은 영화 영화 후반에 이르면 정말로 관객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화면 속 인물들의 담담한 행동과 달리 파도처럼 밀려든다. 친구 철부에게 누나 순희가 탈북자에게 강간당했다는 것을 알고 난 뒤, 그리고 순희가 그 일로 임신한 것을 안 뒤, 창호는 마을 아이들을 데리고 탈북자들을 린치하러 다닌다. 절친했던 정진과 다른 탈북자 소년들에게도 똑같이 막 대한다. 어느 날 정진이 순희 누나가 차려준 밥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집에 돌아온 창호는 욕을 한다. “야, 임마, 네가 왜 여기서 밥을 먹고 있어?” 정진은 당당하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창호에게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한다. 무슨 약속이냐고 창호가 되묻자 이웃 마을 아이들과 축구경기 할 때 꼭 오겠노라는 약속이라고 정진이 말한다. 먹을 것을 싸주려는 순희 누나에게 정진은 이제 자기 어린 여동생은 죽었으니 그것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설명하는 것은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에게 실례다. 더이상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가 예상했더라도 차마 응시하지 못할 대단원의 파국이 펼쳐진다. 그건 앞서 말했던 화면 안과 바깥의 조응과 길항을 엮는 최고조의 장률 연출이 펼쳐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평론가로서 이렇게 쓰는 것이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두만강>의 절정부에서 울고 싶은데 울 수 없는, 꺽꺽대고 목에서 막히는 슬픔을 느꼈다. 거의 참을 수 없는 폐소공포증을 느꼈다. 등장인물들의 삶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이 포괄하는 이 땅의 비극에 대해 갖는 공포였다. 그 어떤 정치가나 예술가가 이토록 비통한 슬픔을 보여줬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 어떤 영화가 이렇게 격조있게 동포들의 삶의 불행을 보여줬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여기서 그 격이란 것은, 화면 안에서 물리적으로 컷을 계산해 붙여서 얻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영화에서 다섯개의 컷이 필요하다면 한두개의 컷으로도 보여주는 게 가능한 시와 비슷한 것이라고 느껴진다. 표현할 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말수가 적어지는 상황처럼, <두만강>의 화면은 과묵함 뒤에 수많은 아우성과 슬픔과 분노를 눌러 담고 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크레딧이 올라갈 때 눈 내리는 두만강 다리를 걸어가는 치매에 걸린 노파의 이미지가 길게 보인다. 이 이미지는 강렬한 상징을 넘어선 근원적인 비극성을 품고 있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장률 감독의 예술적 자아에 그저 경의를 표하고 싶을 따름이다. <두만강>은 올해 가장 푸대접받은 걸작이며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하고 절실하게 바라게 되는 영화이다.

[할리우드 뉴페이스 10] 부드러움 뒤에 강인함

일찍이 스파이더맨의 특징은 무엇이었던가. 일단 기본적인 자격 조건은 유약남이다. 수줍고 여리고 감수성 뛰어난 청년. 하지만 영웅의 옷을 입었을 때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당당해지는 그런 남자여야 한다. 앤드루 가필드가 당대의 가장 뜨거운 할리우드 시리즈 중 한편인 <스파이더맨4>의 차세대 피터 파커로 낙점된 걸 보면 그런 양면의 이미지를 호소력 있게 잘 전달했던 것 같다. 그간에 여러 역할을 거치며 주목을 요하는 신인 남자배우로 거듭 거론되었던 것도 아직 초보 신인에 불과한 그가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었던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가능성은 일찍부터 검증됐고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체조와 수영으로 다져놓은 몸이라 그런지 균형감각이 있으면서도 그는 어딘가 우수에 젖은, 그리고 주변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아웃사이더의 역할을 더할 나위 없이 잘해냈다. 2005년에 텔레비전 출연으로 얼굴을 알리더니 2007년에는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남자배우 10인에 오르고 2008년에는 드디어 영화 <보이 A>에서 그의 진가를 발휘한다. 유년 시절에 죄를 짓고 복역한 뒤 나와 다시 사회의 적응하려는 이 힘겨운 청년의 일화를 그는 유능하게 연기해냈고 영국 아카데미 어워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 뒤로는 영화배우로서 쾌속항진이다. 2009년에 마크 로마넥의 <네버 렛 미 고>를 거쳐 오는 11월에 우리를 찾을 데이비드 핀처의 <소셜 네트워크>, 그리고 <스파이더맨4>까지. 로버트 드 니로나 대니얼 데이 루이스, 알 파치노를 존경한다고 한 걸 보면 욕심이 많은 친구다. 그가 <스파이더맨>으로 돌아올 때 영웅은 또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보자. 아니, 그전에 <소셜 네트워크>에서 그의 연기를 확인할 수 있는데, 꽤 근사하다.

[파리] 우울한 11월에는 다큐를 보세요

무더운 여름, 시원한 극장은 한국인의 주요 피서지. 햇볕 짱짱한 여름, 어두침침한 극장은 햇볕에 굶주린 유럽인의 기피 장소 1위이다. 청명한 하늘빛 덕에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변화를 감안하더라도 가을은 한국인에게 일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아침이고 낮이고 가릴 것 없이 어둑어둑한 회색빛 유럽의 가을 하늘은 기나긴 겨울을 예고하는 그야말로 ‘우울함’의 대명사이다. 이렇듯 프랑스의 11월은 바로 겨울맞이를 준비하는 참으로 우울한 시즌임과 동시에 영화 배급이나 실내 문화 행사 진행에 가장 위험부담이 적은 시기이기도 하다(대부분의 유럽 배급업자들은 새 영화를 개봉하는 날, 날씨가 좋을까 대단히 노심초사한다). 이런 ‘꿀꿀한 날씨’의 장점(?)을 적절히 이용해 프랑스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매년 11월을 ‘다큐멘터리의 달’로 지정해 한달 내내 전국 국립·시립 도서관, 문화원, 대학, 작은 극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 규모, 장르의 다큐멘터리를 다양한 관객층에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를 가진다. 또 대부분의 다큐멘터리(상영작의 70% 정도)들은 상영 이후 영화작업 참여 스탭이나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관객과 토론의 자리도 마련한다. 이 행사는 전국적으로 1200여개 상영관, 3천여개의 상영, 15만여명의 관객으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프랑스의 11월의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이 행사의 일환으로 ‘스크린의 다큐멘터리’(Documentaire sur Grand Ecran) 조직과 괴테학회(Goethe-Institute) 공동으로, 11월3일부터 5일 동안 독일 다큐멘터리스트 볼커 코엡의 회고전을 진행했다. 이 행사는 파리를 거처 리옹, 클레르몽 페랑, 투르, 툴루즈 등 프랑스 지방에서도 연이어 한달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언제나 상영 뒤 토론과 만남의 자리가 있다 ‘스크린의 다큐멘터리’의 배급 담당 에마뉘엘 마들린 독일 다큐멘터리스트 볼커 코엡의 회고전을 준비한 단체 ‘스크린의 다큐멘터리’의 에마뉘엘 마들린과 짧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당신이 속해 있는 단체 ‘스크린의 다큐멘터리’와 그곳에서 당신이 맡고 있는 일을 간단히 설명해달라. =우리는 2000년에 ‘다큐멘터리의 달’ 행사가 대대적으로 시작되기 10년 전인 1990년에 조직되었다. 그 당시 프랑스 관객은 텔레비전의 르포와 영화예술로서의 다큐멘터리의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가 그 자체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자는 취지로, 단체 이름이 잘 설명하듯이 극장에서의 다큐멘터리 상영을 주된 목적으로 해 활동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의 달’이 일년 중 한달 동안 집중적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데 반해 우리는 일년 내내 행사를 치른다. 정기적으로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상영하고, 관객과 피드백을 가질 수 있는 토론의 자리를 마련한다. 또한 다큐멘터리 카탈로그도 제작해 배급의 기반을 서서히 구축해왔다. 현재 우리 단체의 카탈로그에 속해 있는 영화는 230개 정도 된다. 나는 이곳에서 배급을 담당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배급만 담당하고 있는데, 극영화 배급과 특별히 다른 점과 노하우는 무엇인가. =‘다큐멘터리의 달’ 행사와 ‘스크린의 다큐멘터리’ 상영의 공통점이 무엇인 줄 아나. 언제나 영화 상영 뒤 토론과 만남의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를 보러오는 관객은 (매체의 특징이 그렇듯이) 영화에 제시된 현실과 진짜 현실과의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작품에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극영화의 관객처럼, 영화의 세계만을 일방적으로 제공해서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관객에게 피드백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객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든 관객이 다큐멘터리를 하나의 완성된 예술작품으로 인식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2000년 이후, ‘다큐멘터리의 달’ 행사는 우리 단체가 활동범위를 넓히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우리 단체도 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강신웅] 10년의 방향을 벗어나고 싶지 않아요

영화사 백두대간이 광화문 씨네큐브의 운영에서 손을 떼고 케이블TV 방송 사업을 하는 티캐스트가 급하게 극장을 인수했을 때, 오랫동안 국내 영화문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아온 극장 씨네큐브의 정체성을 걱정했던 건 비단 <씨네21>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수 이후 그간의 과정을 보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올해 씨네큐브는 10주년을 맞아 기존의 정체성을 더 단단하게 다지겠다고 나섰다. 처음에는 정중한 말씨로, 후반에는 사람 좋은 너털웃음으로 인터뷰에 응해준 티캐스트의 강신웅 대표는 머뭇거리지 않고 비전을 약속했다. 당신이 알고 있고 바라고 있는 이 극장의 취향과 품격을 유지할 것이라고. 기분 좋은 약속을 듣고 왔다. -그동안 영상 사업 관련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얼마 전에는 티캐스트 총괄상무에서 대표이사가 됐고. =전반적으로 관련된 업무에 대한 총괄책임을 지라는 뜻이다. 총괄상무는 이사회의 한 구성원이고 지금은 그 대표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큰 차이는 없다. 뭐 차이가 있다면 봉급이 조금 올랐다는 거? (웃음) -극장 사업의 경우,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다른 케이블 사업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껴지나. =오래 전 삼성영상사업단에 있었다. 방송 사업 분야, 수입이나 제작 분야에 근접했던 편이라 극장 사업도 아주 낯설지는 않다. 영화를 선정해서 일정한 회차에 맞춰 넣는 것이 방송편성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처음 할 때는 걱정을 많이 했다. 주변에서도 우려를 많이 했고. -백두대간이 나가고 많은 사람들이 이 극장의 정체성을 의심한 건 사실이다. =그랬을 거다. 초반에는 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문까지 났으니까. 급하게 맡다보니 당황스러웠고 고충도 있었지만 지금은 안정화됐다. 예술영화를 위해서 멀리에서 우리 극장까지 오는 관객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씨네큐브라는 브랜드가 고정 관객을 많이 갖고 있고 다시 정상화되는 데 그분들이 큰 기여를 했다. 그분들에게 품격을 보여주고 싶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이 극장의 포지션은 누군가가 약속없이 아무 이유없이 와서 영화 한 편을 봤는데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냥 와서 보면 여기는 항상 좋은 영화를 할 거다, 하는 기대로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다. 일반적인 상업영화를 하는 곳이 아니라 누적, 반복 관람이 가능한 그런 영화들을 선정하고 상영할 생각이다. 좋은 영화로 감동을 주고 싶다 -씨네큐브는 한국 영화문화 안에서 일종의 상징적 공간이다. 티캐스트가 장기적으로 이 극장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 =물론이다. 이 건물이 여기 있는 이상 계속 있을 거다. 건물이 없어지더라도 다른 곳으로 가면 된다. 10년 동안 운영되어왔던 방향이 소중하고 그 방향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 애정을 이어갈 것이다. 지금도 사업성,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고 있다. 마니아 영화로만 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상업영화를 극장에 상영하면서 정체성을 애매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날로그 감성을 유지한다고 해야 할까. 매출로 따져본 적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전체 사업에서 아주 작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브랜드와 극장이 전부 예뻐 보인다. 돈 벌자고 달려들면 의미가 없다. 씨네큐브라는 존재감이 큰 거다. 우리의 영화 취향과 방향에 맞게 구체적으로 수입, 배급을 할 거다. 언젠가는 거기에 맞춰 자체적으로 제작도 할 수 있겠지만, 영화시장에 기웃거린다는 말을 듣는 게 걱정스러워서 그런 말은 잘 안 하는 편이고. -연내 극장 개·보수를 한다고 들었다. =1관과 2관을 번갈아 보수할 생각이다. 공사를 하더라도 극장이 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관을 번갈아가며 공사한다. 의자를 바꾼다. 뭐, 오감형 4D, 그런 의자는 아니고(웃음) 깨끗한 의자로 바뀌는 거다. 우리 극장의 관객은 책을 좋아하고 극장 로비를 둘러보는 분도 많으니 그런 분들을 위한 공간도 많이 늘리려고 하고. 어떤 영화들이 상영되는지 미리 보여드리기 위해 텔레비전 모니터도 설치할 생각이다. 따뜻한 느낌이 나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다. 홈페이지까지는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는데, 영화 교류의 장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준비를 갖추려고 한다. 이런 것들은 물론 티캐스트 운영 1년 반을 기념해서 하는 게 아니다. 씨네큐브 10주년을 기념해서 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영화들을 좋아하나. (웃음) =잡식성이다. 마틴 스코시즈를 특별히 좋아한다. <보드워크 엠파이어>(Boardwalk Empire)라고 에서 마틴 스코시즈가 제작한 방송용 드라마가 있다. 미국에서는 잘되는데 갖고 오면 잘 안되는 것들이 있다.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다. 마틴 스코시즈, 그 양반의 개인적인 연출 특성상 이 드라마도 시청률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 같진 않지만(웃음) 그래도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내년 중에 방영될 거다. 미국의 초기 이민자에 대한 것이다. 되게 비싸게 샀다. 이 드라마가 그 유명한 마틴 스코시즈가 만든 건데 그를 알고 있나, 칸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묻기에, 그런 얘기 하지 마라, 잘 안다, 그런 말 하면 나 화난다, 그렇게 말해줬다.

한국영화를 봤네, 한국 사랑 돋네

지난 11월11일부터 14일까지 뉴욕대학교 영화과는 한국영화에 대한 토론, 한국영화 상영(<옥희의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 <휴일>), 그리고 한국 음식으로 가득했다. “한국영화-미디어와 초국가성”이라는 제목으로 뉴욕대학교, 한국 교류재단, 코리아 소사이어티, 뉴욕 한국문화원, 한국영상자료원이 후원한 학술행사가 열렸다. 미국 예일대학교 더들리 앤드루,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소영 교수 등 영미권 학자, 평론가, 산업 관계자 30여명이 초청됐다. 이번 행사에서 논의된 것은 <맨발의 청춘>과 <올드보이> 등 불법·합법적으로 일본의 원작 텍스트를 끌어들인 한국영화의 문화적 번역(얼 잭슨 주니어, 한국예술종합대학), <괴물>의 사운드를 담당한 라이브톤 최태영 등이 돌비 컨설턴트로서 한국상업영화의 독특한 사운드디자인에 미친 영향(줄리안 스트링거, 노팅엄 대학), 그리고 2000년대 이뤄진 범아시아 합작영화 붐과 70년대 한국·홍콩 합작 경향의 연관관계(이상준, 뉴욕대학) 등이었다. 한국영화를 주제로 한 단독 국제 학술행사로는 북미 지역 최대 규모로 진행된 이번 컨퍼런스에서 가장 인기리에 진행된 세션은 ‘포커스 디스커션’. 뉴욕아시아영화제의 고란 토팔로비치, 최초의 아시아드라마 합법 스트리밍 서비스 사이트 ‘드라마피버’(www.dramafever.com)의 승 박, 비공식 <왕의 남자> 팬 사이트(wang-ui-namja.com)의 대니얼 고든, 그리고 영화 웹진 시네어섬(cineawesome.com)의 한국 및 아시아영화 담당 루퍼스 드 람 등 팬으로서 한국 문화와 인연을 시작한 4명의 패널이 참여한 시시콜콜한 수다를 전한다(이후 대담 기사는 11월13일 오후 5시30분부터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공식 디스커션과 이후 별도로 진행된 추가 인터뷰와 대담을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고란 토팔로비치 Goran Topalovic 이름 토팔로빅이 아니라 토팔로비치. 17살 때 옛 유고연방에서 뉴욕에 발을 디뎠다. 경력 좋아하는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위해 ‘서브웨이 시네마’를 만들어 뉴욕아시아영화제의 전신 격인 ‘두기봉 회고전’을 개최한 지 10년. 차이나타운의 팬보이는, 1년에 한번 아시아영화에 목마른 뉴요커를 위한 오아시스, 뉴욕아시아영화제 공동 수장이 되었다. 최근 한국영화 최고작 <부당거래>. “시네필 류승완이 필름메이커로서의 자신의 길을 찾고 성숙해지면서 감독으로서 뛰어난 본능을 완벽하게 발현했다. 그의 모든 영화를 사랑하지만 이번 영화는 정말 뿌듯했다. 홍콩에 두기봉이 있다면 서울에는 류승완이 있다.” 대니얼 고든 Danielle Gordon 경력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금융회사에서 정보기술 담당으로 8년째 일하고 있다. 영화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평생 고전, 무성, 예술, 인디영화 ‘전문’ 팬으로 살아왔다. 최초로 접했던 한국영화 <춘향뎐>. 2007년 <뉴욕 타임스>에 실린 뉴욕영화제 기사에서 리뷰를 접한뒤 관람을 결심. 승 박 Seung Bak 한국 이름 박승권. 11살 때 가족과 미국행. 이름의 첫 글자를 영어 이름으로 택했지만 그나마 ‘승’보다는 ‘성’에 가까운 발음으로 불린다. 경력 경제학 전공. 연수익 3억달러 규모를 자랑하는 파이낸셜 소프트웨어& 미디어회사의 부사장, 책임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다가 최신·인기 한국 드라마를 무료로, 영문 자막으로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 ‘드라마피버’(www.dramafever.com)를 공동 창립했다. 최고의 한국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남녀 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좋아할 만한 보편적이고 훌륭한 이야기.” 루퍼스 드 람 Rufus de Rham 경력 뉴욕대 영화학과 학부 졸업, 현재 같은 대학 석사과정에서 영상아카이빙 및 보존을 공부 중. 시네어섬에 한국영화 관련 아티클을 쓰고, 아시아영화 전문 팟캐스트 브이시네마(vcinemashow.com)의 고정패널로 활동 중. 인생의 목표 한국에서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최고의 SF영화를 제작·감독하는 것(이미 트리트먼트가 있다). 류승완 감독과 술 마시기(자리만 마련된다면 ‘베프’가 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다). 고란 토팔로비치 개인적으로 1990년대 말, 특히 1999년이 한국영화에서 중요하다. <쉬리>를 처음 보고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구나!” 하고 깨달았으니까. (웃음)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DVD로 봤을 때의 감동은 대단했다. 뉴욕아시아영화제에서 ‘Korean Cinema Attacks’라는 한국영화 특별전을 개최했을 때 관객도 놀라는 걸 확인했다. 첫째,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네, 둘째, 근데 다들 엄청나네. 승 박 가족과 평생 함께 즐겨봤던 한국 드라마를 어떻게 하면 쉽게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지를 궁리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한인마트에서 불법 녹화된 비디오를 대여하는 것 말고 다른 모델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수익모델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2009년 8월 처음엔 방문자가 한달에 3만, 4만명이었는데 현재는 월 40만명 정도다. 대니얼 고든 <뉴욕 타임스>에서 <왕의 남자> DVD 리뷰를 읽었고, 그 뒤로 그 영화는 10번도 넘게 봤다. 그 정도 예산으로 만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모든 문화적인 백그라운드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중영화 자체에 매료됐다. 루퍼스 드 람 고등학생 때 한국 친구를 따라 한달간 대구를 방문했을 때 본 <신라의 달밤>이 최초의 한국영화였다. 정말 재밌었고, 진짜 놀랐다.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다니! (웃음) 이후 “"친구 아이가” 같은 부산 사투리로 배우고, 본격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 3학년 때는 아예 연세어학당에 등록해서 한국에 살았는데, 대부분 영상자료원에서 살았다. 대니얼 고든 해외에서 한국영화를 보는 팬으로서 모든 한국 DVD의 부가영상에 영어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달시 파켓의 사이트(www.koreanfilm.org)에서는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도 좋은 정보처다. 한국영화나 배우들도 손쉽게 팬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물론 여전히 한국 콘텐츠에 대한 ‘영문’ 소스는 한정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지만 의외로 인터넷에서 깊이있는 자료를 찾기가 힘들다는 걸 깨닫고 많이 아쉬웠다. 외국 팬들 위해 영문 자막·사이트 만들어주세요 루퍼스 드 람 트위터를 통해 부지영, 윤성호 등 내가 관심있는 독립영화감독들과 멘션을 주고받는다. 인터넷 기술의 최첨단을 걷는다는 한국에 온라인을 활용한 합법적인 배급방식이 자리잡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국 콘텐츠를 궁금해하는 더 많은 외국인들을 위한 영문사이트 제공이 시급하다. 한국영상자료원의 VOD 서비스 정도는 해외에서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 한국 독립영화를 합법 다운로드할 수 있는 사이트, 인디플러그를 알게 되어서 신나서 들어갔는데, 영문 제공이 안되는 거다! 대다수의 한국 사이트가 익스플로러에서만 회원가입과 결제 등이 가능하고 공인인증서가 필요하거나, 주민번호를 입력해야 회원가입이 가능한 구조도 문제다. 승 박 처음에 한국에서 MBC 등의 공중파 방송국을 상대로 파트너십 계약을 맺을 때 가장 큰 장애는 인터넷 배급에 대한 의심 혹은 두려움이었다. 인터넷 배급이 해적판 유통을 용이하게 할 거라는 회의가 팽배해 있었다. 아무도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피버’는 긍정적인 경험적 수치를 제공하는 출발지점이다. 고란 토팔로비치 미국은 외국영화에 자국영화 시장을 내주지 않기로 악명이 높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외국영화를 통해 외국 문화를 더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극장들은 언제나 돈이 되는 영화만 튼다. 그러니 인터넷을 배급 창구로 개척하는 것은 합리적인 수순이다. 승 박 우리 사이트에서 한국인 비율은 5%에 불과하다. 30%가 아시안, 40%가 백인, 나머지가 흑인과 히스패닉이다. 온라인에서 국적과 지리적 위치는 무의미하다. 이후 ‘아시아 팝컬처’를 카테고리로 하는 콘텐츠를 배급하는 게 목표다. 한국 드라마 팬이라면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일본이나 중국의 드라마도 좋아하더라. 한국, 일본, 중국, 대만 그 어떤 국가의 대중문화든 익숙해지면 나머지 국가 역시 거부감 없이 즐긴다. 그러니 배급이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객에게 접근할 수 있다. 과거에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듯 쉽게 접할 방법을 제시해주기만 하면 된다. 루퍼스 드 람 한국영화가 인터넷을 통한 합법적인 유통에 앞장서지 못한 것은 2차시장 붕괴에도 원인이 있다. 미국에서 DVD 시장의 최대 소비자인 10대들이 한국에서는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낸다. 이들은 20대가 되어도 여전히 부모와 함께 살기 때문에 집에서 영화를 보고 음식을 해먹는 등의 미국식 데이트 문화가 불가능하다. DVD방 같은 콘텐츠 제공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이윤이 돌아가지 않는 구조의 소비패턴만 양산된다. 온라인을 통한 2차 판권 시장을 고민할 기술적 여건이 갖춰졌지만 이번엔 10대들이 불법 다운로드에 먼저 맛을 들여버린 게 문제다. 코미디·멜로·액션 두루 섞은 ‘짬뽕 장르’의 매력 고란 토팔로비치 요즘의 관객은 모종의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즐거움을 공유하는 적극적인 수용자들이다. 그들에게 한국영화가 ‘한국영화’로 인상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한국영화가 미국에서 어떻게 성공을 거둘까, 라는 건 비즈니즈맨 혹은 거대 시장의 입장만 반영할 뿐이다. 콘텐츠로서 한국 대중문화의 가능성은 무척 크다. 더이상 ‘어른’을 위한 상업영화를 만들지 않는 할리우드와 달리 한국에선 여전히 성숙한 어른 관객을 대상으로 뭔가 사회적인 발언을 시도하는 상업영화가 만들어지고 또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예술영화와 장르영화가 종종 결합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대니얼 고든 한국영화가 미국에서 상품으로 지니는 가치는, 그것이 아시아 대중문화 중에서도 거의 모든 장르를 포괄한, 그 자체로 일종의 장르처럼 소비된다는 점이다. 일본 하면 호러, 홍콩 하면 액션, 하는 인식과는 다르다. 내가 한국영화에 매료된 것도 그 때문이다. <왕의 남자>에는 코미디, 비극, 멜로, 액션 등 모든 종류의 이야기가 다 있다. 승 박 나는 드라마밖에 이야기할 수 없는데, 한국 드라마는 매우 리얼하다. 거대 예산에 엄청난 특수효과로 무장한 미국의 TV시리즈와 비교해봐라. 시즌제로 해를 거듭해서 제작되는 미국 TV시리즈와 달리 결말이 명확한 것도 한국 드라마의 장점이다. 모든 게 어떤 식으로든 매듭짓기 때문에 질질 끌지 않고 볼 수 있다. 좀 바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한국 드라마 속 배우들은 다들 예쁘고 잘생겨서 좋아한다는 미국인들도 많다. (웃음) 한국에서 시청률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드라마 <소울메이트>도 배우를 좋아하게 된 유저들이 계속해서 본다. 한국에서의 시청률은 우리 사이트에서의 성패와 무관하다. 고란 토팔로비치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외국에 보여주고 싶은 것에 대한 모델이 확실하다. 영화는 대중영화 외에 고전이나 예술영화여야 한다는 것이라든지. 근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라도 미국의 대중시장에 제대로 번역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정 멜로드라마나 코미디. 한 나라의 문화 콘텐츠에 대한 인식은 그 나라에 대한 역사와 사회 전반에 대한 인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시장에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뒤처져 있지만 지난 10년 사이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런 것들은 언제나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루퍼스 드 람 ‘Asian Extreme’이라는 레이블링은 일종의 인종주의라고 생각해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름 유효한 구석은 있다. 한국 장르영화가 극단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바로 폭력의 물리적인 거리 때문이다. 총을 사용하는 할리우드영화에는 수백명의 사람을 죽여도 일정한 거리 밖에서 벌어진다. 근데 총기 문화가 없는 한국영화 <친구>를 봐라. “고마해라 마이 먹었다 아이가” 하는 장면. 평생의 친구에게 쉰 몇번 칼을 맞는 동안 코앞에서 계속 눈을 마주친다. <달콤한 인생>이 한국영화처럼 안 느껴졌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인물들이 총을 예사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승 박 ‘드라마피버’는 아시아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소개를 제공하는 출발지점이다. <엽기적인 그녀>나 <올드보이>가 많이 알려졌다 해도 그런 걸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태반이라는 전제가 있다. 나온 지 몇년이 지난 <대장금>이나 <내 이름은 김삼순>이 여전히 순위를 다투는 걸 보면 이건 현실적인 전제다. 온라인 세계에선 ‘최신작’이라는 개념이 없다. 중국의 어떤 관객은 지금도 <대부>를 인터넷으로 처음 접한 뒤 “세상에 이런 걸작이!”라고 감탄한다. 물론 언어라는 장벽은 언제나 무시할 수 없다. 루퍼스 드 람 드라마 <쩐의 전쟁>을 중국 불법 DVD로 구해서 본 적이 있다. 처음 1, 2회 때는 그냥 자막 번역이 이상하다 하는 정도였는데, 나중엔 아예 영어라고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은 점점 궁금해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승 박 중요한 건 뉘앙스다. 이를테면 백수가 친구에게 “야, 자장면이나 먹자!”라고 말한다 치자. 이건 그냥 “나가서 뭐나 먹자” 정도면 무리가 없는데 이걸 “우리 나가서 검은 콩 소스 국수 먹자”라거나 혹은 자장면을 jjajangmyeon으로 표기한다. 대체 저게 뭔가를 생각하느라 텍스트에서는 관심이 떠나버릴 수밖에 없다. 대니얼 고든 나는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모든 욕을 f**k으로 번역하는 게 이상했다. 자꾸 그렇게 심한 욕이 나와서 처음엔 진짜 이상했는데 한참 뒤에야, 아마도 한국인들은 그걸 일상적으로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가벼운 욕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하게 됐다. 고란 토팔로비치 해괴한 홍콩영화의 영어자막에 익숙해져 있어서 한국영화의 자막은 문제로 느끼지도 못했다. 예전의 홍콩영화 자막은 미국 팬들 사이에서 패러디나 농담의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 (웃음) 이명세 감독의 ‘드링킹 세션’ 듣고 한국 문화 배워 루퍼스 드 람 한국영화에서 언어만큼 미묘한 게 바로 술자리 문화다. 한국에서 1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주도를 배웠는데(웃음), 그 이후 대부분의 한국영화를 볼 때마다 ‘아, 이런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대니얼 고든 맞다. 나도 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더랬다. 처음엔 주변 여자들에게 어필하려고 그러는 건가, 짐작했었는데. (웃음) 고란 토팔로비치 이명세 감독이 뉴욕에 체류할 때 ‘드링킹세션’을 수강했는데, 한국 문화에 대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까지는 아니어도 절반 이상을 그때 배웠다. (웃음) 이젠 삼겹살집에서 소주가 없으면 내가 먼저 허전하다며 소주를 찾는다. (웃음) 물론 한국영화가 뭔지 알겠다고 생각했던 예전과 달리 아무리 해도 모르는 게 있다는 걸 안다. 이를테면 <짝패>처럼 나중에 보면 전혀 새로운 영화라는 걸 깨닫는 경우가 많다.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홍콩영화 등의 흔적만 봤다. 그런데 197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영화 안에 있던 것이 뭔지 진짜 알 수 있었다. 잘생기지도, 엄청난 육체를 가진 것도 아닌데,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두 주먹만 믿고 그 길을 가는 한국적인 남성 액션영웅의 모습이 거기에도 있다. 대니얼 고든 몇년 만에 친구들 사이에선 한국 문화 전문가가 됐다. 동생이나 친구 커플들은 어떤 한국영화를 보면 좋을지 문의하거나 <괴물>을 보고 한국영화의 팬이 되었다며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다른 나라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배우면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영화 한두편을 본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세계를 향한 통로를 개척한 셈이다.

죽음과 함께 방문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대가

올해 9월12일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영화감독 클로드 샤브롤을 기리는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가 2010년 12월14일(화)부터 26일(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상영작은 <미남 세르쥬>(1958), <사촌들>(1959), <마스크>(1987), <지옥>(1994), <의식>(1995), <거짓말의 한 가운데>(1999), <초콜릿 고마워>(2000), <악의 꽃>(2003) 총 8편이다. 데뷔작 <미남 세르쥬>와 두 번째 작품 <사촌들>은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전자가 시골에 온 도시 사람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도시에 온 시골 사람의 이야기다. 두편은 샤브롤의 초기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영화들이니 이 자리에서는 내용 대신 다른 식으로 소개하는 편이 새롭겠는데, 가령 이 영화들이 나왔을 당시에 동료들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을까. 에릭 로메르는 “<무방비 도시>에서 거리로 나아간 이탈리아의 그것처럼 샤브롤과 함께 우리는 대지로 귀환한다”고 썼다. 한편, <사촌들>을 본 장 뤽 고다르는 라퐁텐의 우화 시골 쥐와 도시 쥐의 이야기로 영화를 비유하면서 “레네가 돌리숏을, 그리피스가 클로즈업을, 오퓔스가 프레이밍의 사용을 발명한 같은 방식으로 샤브롤은 패닝숏을 발명했다”고 선언한다. 궁금하다. 어떤 장면이 <미남 세르쥬>를 본 에릭 로메르에게 대지로의 귀환을 말하게 하고 또 <사촌들>을 본 고다르에게 패닝숏의 발명을 선언하게 한 것일까. 그 다음 상영작들은 몇 십년을 건너뛴다. 우리에게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아저씨로 오래 기억되고 있는 프랑스의 배우 필립 누아레가 주인공 중 한명인 <마스크>는 텔레비전 쇼의 유명 진행자 크리스티앙과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집에 잠시 기거하는 작가 롤랑, 그리고 크리스티앙의 양녀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지옥>은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한 뒤 어느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휴양지를 운영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부인이 젊은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불안증에 시달린다. 두편 모두 샤브롤의 대표작으로 흔히 꼽히진 않지만, <마스크>에서는 위선이, <지옥>에서는 불안이 샤브롤의 인물들을 덮쳐 이 영화들을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샤브롤의 영화에서 이런 위선이나 불안은 종종 부르주아 세계의 것이며 그건 마침내 파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샤브롤의 작가적 귀환을 알렸던 <의식>은 부르주아의 파멸의 시간을 가장 명료한 방식으로 보여준 영화로 꼽힌다. 풍족함이 넘치는 어느 가정에 들어온 가정부, 그녀의 유일한 친구인 마을 우체국 직원. 그들이 만들어내는 라스트신에서의 충격적이지만 무미건조한 사건은 오래도록 샤브롤의 이름 아래 회자되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샤브롤 자신도 “이 영화는 확실히 계급전쟁의 도식적 관망을 묘사한다”고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때 그는 더 중요한 말도 한 것 같다. “영화에서 나의 시작점은 이야기와 인물 사이의 관계이고 나는 인물과 인물 사이의 충돌이 일으키는 구조를 믿으며 내가 수많은 스릴러를 만들긴 했어도 플롯에는 정말 관심이 없고 관심있는 것은 미스터리, 인물들의 고유한 미스터리”라고 했다. <거짓말의 한 가운데>에서는 어느 어촌 마을의 살인 사건으로, <초콜릿 고마워>에서는 이혼했다가 재결합한 부부와 그들을 찾아온 어떤 젊은 여인으로, 그리고 <악의 꽃>에서는 세대를 거치며 이어져온 집안의 업보가 드디어 또 한번 반복되는 것으로 그 미스터리는 시작되거나 지속된다. 샤브롤의 영화에서 그 어떤 방문은 종종 되돌리기 어려운 사건의 도착을 함께 알리곤 했다. 이번 클로드 샤브롤 추모 영화제를 찾은 8편의 영화의 방문도 실은 그의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사건과 함께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