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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오마이이슈] 그래도 일본 정부를 믿는다

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버터를 듬뿍 발라 새우를 구워줬다. 놀이터에서 괴물놀이를 지칠 때까지 했다. 방치돼 있던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고, 이웃을 불러 밥을 차렸다. 몇몇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햇볕에 이불을 널고, 박완서 소설을 읽고, 주민센터 요가에 늦지 않게 갔다. 소소한 일상이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그들에게도 그날이 이런 여러 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천재와 인재 중 하나를 고르라면 차라리 인재를 택하고픈 기분이었다. 최소한 맥락을 설명할 수는 있으니까. 숨죽인 채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봤다. 그런 생각도 잠시, 원전 폭발과 방사능 유출 위험을 접하자 이런 구분이 무의미했다. 특집뉴스 끝머리에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기공식에 참석해 “한국 원전이 최고”라고 자랑한 대통령의 모습이 나왔다. 방사선 폭증 위기가 48시간이 고비라는 진단이 나온 날 대통령은 “한국 원전은 일본보다 뒤에 지은 거라 안전하다”고 말했다. 민망했다. “완전히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됐던 위험도 실제로는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며 원전 가동시한 연장 결정을 연기한 독일 총리 모습과 대비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상에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 위험은 없다. 위기 대응 매뉴얼이 강박적이란 소릴 들을 만큼 꼼꼼하고 잘 훈련돼 있는 일본도 대재앙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우리 원전은 진작부터 부실 시공이 확인돼 왔다. 민영 도쿄 전력의 무능과 일본 정부의 소극적 정보공개 및 대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지만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일본 정부를 믿는다. 방사능 위험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피하는 와중에도 반대 차로로는 단 한대의 차량도 튀어나오지 않는 기이할 정도로 고집스러운 질서의식에 기가 막히면서도, 각국에서 온 구호의 손길을 안내하고 협조할 여력이 안된다며 일부 되돌려보낼 만큼 체계를 중시하는 대처 방식을 답답해하면서도, 지금으로선 일본의 재난 대응 시스템과 이를 지휘하는 일본 정부를 믿고 응원할 수밖에 없다. 화면에 비친 일본 도호쿠 지역 해안 마을은 진작에도 화려하지 않았다. 높은 아파트도 허황된 조형물도 없었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수수해도 그 무엇보다 값진 생업이요 터전이었을 것이다. 전화기 든 손을 덜덜 떨던 그녀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했을까. 마음 깊이 기도한다. 부디 더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뉴욕] 그는 미국을 바꾸었네

지난 2월 말 미국의 유료 케이블 채널 에서 첫 방송된 일인극 <서굿>(Thurgood)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연기파 배우 로렌스 피시번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지난 2008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던 연극으로, 최근 워싱턴DC 케네디센터 내 아이젠하워 시어터에서의 한정 앙코르 공연 실황을 녹화 방영한 것이다. 주인공 서굿 마셜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법관으로, 1967년부터 91년까지 재직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1954년 ‘브라운대 교육위원회’ 소송으로 대법원까지 항소한 인물이다. 그는 당시 공립학교에서 널리 행해지던 인종차별 정책을 위헌으로 판결 받아내 흑인인권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굿>의 배경은 하워드 대학의 강단이다. 무대에 첫 등장하는 주인공은 나이 든 서굿이다. 그는 대법관을 사임하고 법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시청자는 그의 강의를 경청하는 법대생이 된다. 로렌스 피시번이 연기하는 서굿은 우리를 향해 자신의 출생부터 가족사와 교육과 커리어, 법대 시절, 미국 흑인인권단체인 NAACP에서 리드 변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대법관 후보로 올라가서 은퇴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굿은 부모의 과거를 회상한다. 기차역 짐꾼으로 일했지만 헌법에 관심이 많아 법정을 자주 찾아갔던 아버지는 늘 서굿과 토론을 벌였다. 교사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교실 바닥청소까지 해야 했던 어머니는 서굿을 대학교육까지 시키겠다는 신념으로 결혼반지까지 전당포에 맡긴다. NAACP가 의뢰를 맡은 법정공방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진주 귀걸이를 판 서굿의 첫 번째 아내 버스터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서굿>은 흑인을 대상으로 한 집단린치가 성행하던 남부지역에서까지 흑인들의 변론을 담당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유년 시절부터 은퇴까지 챕터처럼 나누어 소개한다. 일인극인 관계로 넓은 무대에는 피시번 홀로 등장한다. 세트로는 커다란 강단 겸 책상과 몇개의 의자가 전부다. 하지만 피시번이 열연하는 서굿은 무대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다. 원래 이야기꾼으로 알려진 서굿은 단 한순간도 심오한 작품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지 않는다. 한편 미국 공영방송인 를 비롯해 와 <쇼타임> <스타즈> 등 유료 케이블 채널은 종종 직접 브로드웨이나 런던 시어터 디스트릭 등을 방문하기 힘든 시청자를 위해 인기 무대극을 텔레플레이 포맷으로 TV 방영한다. 이중 하나로 소개된 <서굿>은 에서 3월 내내 방영되며, 곧 DVD로도 출시될 계획이다. 투쟁하는 삶,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서굿>의 배우 로렌스 피시번 다음은 공영방송 라디오 인터뷰 프로그램 <더 트리트먼트>의 영화평론가이자 프로그램 진행자인 엘비스 미첼이 스페셜 <서굿>에 출연한 로렌스 피시번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다. -<서굿>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희곡을 읽은 뒤 작품을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2006년에 처음 읽었는데, 그전까지는 서굿 마셜이 첫 흑인 대법관이었다는 정도만 알았다. 희곡을 읽으면서 그가 흑인인권운동에 중요한 획을 그은 변호사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6년이면 수많은 제의가 있었을 텐데 왜 어려운 일인극을 택했나.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출연을 결정하던 시기에는 ‘나 혼자서 무대 위에서 어떡하나’ 이런 걱정은 안 했다. 승낙을 한 뒤에야 생각하게 됐다. (웃음) -일인극은 캐릭터나 흐름 등 모든 것을 혼자서 처리해야 한다. =물론 첫 리허설과 프리뷰 공연 사이에 “너무 무리한 것 같아. 어떻게 한다고 했는지… 정말 못하겠다”라고 걱정한 적은 있다. 한 10초 정도? -‘투쟁하는 삶’을 모토로 하는 캐릭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배운 것 같다. 남부 출신인 어머니는 인권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흑인 대학에서 공부하셨다. 인종차별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나도 그 시대에 성장했기 때문에 늘 그런 이슈에 신경을 쓰게 된다. -현재 에 출연 중인데 흑인 배우가 주인공인 TV시리즈가 별로 없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출연을 결정한 뒤에야 그런 질문을 받게 됐다. 당시에는 드라마 <유닛>의 주인공도 흑인이었고, 지금은 <크리미널 마인드: 서스펙트 비헤비어>의 포레스트 휘태커도 있다. 이게 버락 오바마의 영향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거기에 별 문제는 없다. 오히려 더 잘된 일이다.

[전영객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낳은 분열

*스포일러에서 시작하는 글입니다. <두만강>의 쟁점에 대해서는 이미 795호에 정한석(‘마술처럼 흔들리는 취권의 순간들’)과 정성일, 허문영의 씨네산책(‘그는 경계에 서 있다’)이 상세히 밝혔다. 그들이 짚어낸 공통된 쟁점은 이 영화 속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데, 순희가 탈북자에게 겁탈당하는 장면, 그때 생긴 아이를 낙태하는 결정, 그리고 영화 말미에 창호가 스스로 몸을 던져 죽는 장면에 대한 것이다. 영화에 대한 호의를 전제로 이들이 제기한 문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정한석은 장면의 내용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진행하는 방식”이 장률의 영화답지 않게 도식적이고 관념적이며 구체성을 상실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성일은 그 죽음들에 대해 영화가 희망의 가능성을 거세한 것은 아닌지 물었다. 허문영 또한 창호의 선택에 “과도한 순교의 책임”이 부과된 건 아닌지 질문하며, 영화가 아이의 죽음을 취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불편함에 대해 말했다. <두만강>은 이러한 쟁점 이외에도 충분히 말해질 만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지만, 이 쟁점을 끌어안을 것인지, 의심할 것인지에 따라 영화에 대한 입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위의 필자들의 지적은 <두만강>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죽음을 주제화한다는 명목하에 극적 장치로 사용하는 일련의 영화들, 이를테면 죽음 자체에 대한 개입은 없고 그것의 상징적 재현의 효과에 몰두하는 영화들 모두에 대체로 해당되는 것이다. 나 역시 영화 속 아이의 죽음은 그 어떤 죽음보다 타자화된 죽음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어떤 경로로든 형상화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리 그 의도가 훌륭해도 일단 의심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러한 무조건적인 의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만한 순간들을 나는 <두만강>에서 마주한 것 같다. 이상하다. 위의 필자들이 언급한 일련의 장면들이 나는 껄끄럽지 않았다. 아니, 아이들의 죽음, 창호의 투신이 갑작스럽거나 어른의 세계를 위해 내던져진 관념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모순된 문장처럼 들리겠지만, 그 죽음들이 그저 죽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게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평소와 다른 이 느낌, 당혹스럽지만 이상하게도 굳게 믿게 되는 이 느낌의 근원을 영화 안에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글은 위의 쟁점들에 대한 위의 필자들과 반대되거나 다른 자리에서 <두만강>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보려고 한다. 소년은 “벌써 떠나가는 길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 창호의 투신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돌아가야만 하는 두 지점이 있는데, 영화 전체에서 가장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순간들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하나는 영화의 첫 장면이다. 한참 동안 카메라가 꽁꽁 얼어버린 두만강의 하얀 풍경을 바라본 뒤, 마을의 어른 둘이 카메라쪽으로 다가온다. 카메라가 고개를 숙이자, 한 소년이 웅크린 채 눈을 감고 누워 있다. 소년을 내려다보던 어른들이 “창호 아닌가?”라고 말하자, 갑자기 소년이 눈을 번쩍 뜨더니 강 저편으로 빠르게 도망을 친다. 영화는 그가 점처럼 사라질 때까지 그 광경을 계속 지켜본다. 창호는 거기서 무엇을 하던 중이었을까.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일까, 죽은 척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것일까.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탈북한 소년들로 추정되는 시체가 언 강 위에 창호와 거의 유사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는 모습이 나온다. 이 두 장면은 서사상의 필요성을 넘어서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품고 연결되어 있어서 쉽게 잊을 수 없다. 죽음을 흉내내는 소년과 실제로 죽은 소년들의 경계(두 장면 사이에는 ‘두만강’이라는 타이틀이 뜬다), 그러나 그 경계를 넘어서 결국은 공유되는 죽음의 공기. 공안이 죽은 소년들의 몸을 강 밖으로 끌어내는 광경을 멀리서 거리를 두고 찍은 두 번째 장면을 보고 나면, 죽은 듯 누워 있던 창호의 몸에 밀착했다가 그가 멀어질 때까지 바라보던 첫 번째 장면이 왠지 창호의 꿈결처럼 느껴진다. 혹은 창호의 그 모호한 행위와 거기 내재된 모호한 기운은 뒤이은 탈북 소년들의 명백한 현실의 죽음과 서로를 품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혹은 창호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이미 육체적으로 영화적 타자의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둘 사이에 어떤 반복, 혹은 교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지점은 영화의 중반 즈음, 탈북 소년 정진과 친구가 된 창호가 정진을 집으로 데려온 뒤, 함께 밥을 먹기 위해 두부를 사러 갔을 때다. 두부를 사서 돌아서는 창호를 두부를 만들어 파는 여인, 아마도 첫 장면에서 얼음 위에 누워 있던 창호를 발견했던 그 여인이 갑자기 소년을 붙잡으며 “니 죽은 게 어떻게 두부를 빌어먹니?”라고 묻는다. 창호는 날카로워진 눈빛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대답없이 나가버린다. 첫 장면의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가 가는 정황이기는 해도, 그로부터 영화가 한참 진행된 뒤, 웃음기를 거두고 정색하며 던져진 여인의 물음, 그걸 서둘러 뿌리치는 소년의 모습은 어딘지 낯설고 생경하다. 말하자면 위의 두 지점에서 창호는 스스로를 죽은 사람처럼 다루거나, 혹은 그는 죽은 사람처럼 다뤄지고 있다. 그걸 단지 아이의 제스처이거나 어른의 농담이라고 치부하기에 그 행위와 말에는 일순간 현실을 정지시키는 것 같은 정적이 감돈다. 그렇다면 이 순간들은 그저 영화 말미 창호의 죽음을 암시하기 위해 거기 있는 것인가. 장률은 인터뷰에서 사람이 죽을 때는 그전에 언제나 반드시 흔적이 있는데, 죽기 얼마 전, 창호가 창밖으로 무술 동작을 하면서 살짝 뛰어내리는 모습이 바로 그가 “벌써 떠나가는 길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멋지게 설명했다. 그런데 앞의 두 지점은 그런 흔적, 혹은 암시와는 좀 다른 느낌을 갖고 있다. 나는 그 순간들을 보며 차라리 죽음은 이미 너무 가까이 있거나, 처음부터 거기 있다는 표현을 쓰고 싶어진다. 창호가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이 느닷없거나 과도한 죽음이라고 생각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때 창호는 죽음의 위협에 당면한 탈북 소년들을 도와주는 자가 아니라, 애초에 그 소년들과 공동의 운명을 지닌 존재처럼 보인다. 물론 살아 있는 소년을 두고 이미 죽음은 거기 있다, 는 표현을 쓰는 건 그를 영화적 관념의 도구로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잠시 창호와 정진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죽음, 행위 그 자체로 읽혀야 하는 까닭 창호와 친구들은 어느 날 폐교 구석에서 불을 쬐며 쉬고 있는 탈북 소년들과 마주친다. 창호 무리는 처음에는 적개심을 보이지만, 탈북 소년 중 한명인 정진이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자, 대신 다가올 축구시합에 나오라고 조건을 건다. 정진은 약속하는데, 음식을 요구하는 정진의 모습에는 구걸과는 사뭇 다른 당당함이 있다. 창호는 음식을 가져오고 정진에게 건넨다. 그때 카메라가 이 모습을 찍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카메라는 창호가 정진에게 음식을 주는 그 순간을 폐교의 창밖에서 멀리 떨어져 찍었다. 둘 사이에는 별말이 없고 창호 무리는 먹을 것을 준 뒤에 바로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러니까 그들은 탈북 소년들이 허기를 채우는 모습을 구경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간 뒤에야 카메라는 폐교 안으로 들어와 비로소 탈북 소년들이 먹는 모습을 그저 지켜본다. 여기에는 그 어떤 비굴함도, 동정도 없고 그저 ‘사실’만 있다. 탈북 소년들은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고, 옌볜의 소년들은 먹을 건 있는데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부족하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가진 걸 부족한 것과 교환한다. 심지어 이후, 정진이 아무도 없는 창호의 집에서 쌀을 가지고 나올 때도, 그는 그걸 당당하게 밝히고, 창호 역시 별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물론 탈북자들에 의한 마을의 피해가 눈에 띄게 커지면서 이 관계도 위태로워지지만, 그전까지, 그리고 영화의 엔딩에서 기본적으로 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이기 위해 애쓴다. 정진과 창호 사이에 쌀, 약속, 축구, 미사일 모형, 그리고 마침내 생명이 교환될 때, 여기엔 서로가 서로를 타자화하지 않으려는 부단한 움직임이 있다. 정진은 불쌍한 탈북자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이때 타자에 대한 환대, 와 같은 거대한 수사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이들의 국적이 다르다는 태생적 차이가 아니라, 물적 조건을 넘어서 이들의 자리바꿈이 가능해지는 순간들, 감정적인 평등함이 작동하는 순간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정진이 탈북자라는 사실 때문에 그 순간들은 늘 (장률의 말대로) ‘목숨을 걸고’ 일어나므로 창호와 정진의 관계에는 언제나 죽음의 기운이 어떤 형태로든 둘러싸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어른들의 현실과 다른 삶의 순수함 가운데 있기 때문이 아니라, 죽음을 중심에 두고 매번 타자의 자리로 가기 때문에 영화적 활력이 나오는 것이며, 나는 그것이 추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미 죽음이 거기 있는데, 창호는 굳이 왜 영화의 마지막, 지붕에서 뛰어내리며 육체적으로 부서져야 했을까. 영화는 그의 죽음을 굳이 그런 식으로 명시해야 했을까. 영화가 후반에 접어들자, 탈북자의 소행으로 짐작되는 사건들로 마을이 뒤숭숭해지면서 정진에 대한 창호의 마음도 잠시 돌아선다. 옌볜의 소년들에게 구타를 당한 정진이 무슨 마음인지 창호도 없는 집에서 창호의 누나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창호가 정진에게 화풀이를 하자, 정진은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며, 이미 여동생은 죽었다고 말한다. 정진이 떠난 뒤, 누나는 그가 창호를 위해 가져온 미사일 모형을 전해준다. 정진은 우표 수집을 하는 창호를 위해 북한 우표를 가져다주고 싶었지만, 구하지 못해서 대신 그만큼 귀한 모형을 가져온 것이다. 창호는 받침 부분이 부러진 미사일 모형을 아무 말도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단조로운 대사와 어딘지 결연한 행동으로 채워진 화면에는 죽음과 생존, 배신과 신뢰, 분노와 애틋함, 연민과 후회 등이 응축된 감정들이 말없이 서로를 건드리며 감동을 자아낸다. 그런 다음 화면은 눈 내리는 창가에 오롯이 세워진 정진의 미사일 모형 장면에 온전히 할애되는데, 왠지 모를 슬픔과 꿋꿋함의 정서가 동시에 스며든다. 우표가 아닌 미사일. 그러니까 편지의 오고 감이 아니라 한번 발사되면 돌아오지 못하고 어디선가 폭발해야만 하는 운명. 정진이 주고 간 미사일 모형을 보면서 창호는 이제 자신이 정진에게 되돌려줘야 할 무언가를 생각하며 다짐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밖에서는 총소리가 들리고 창호는 잠들지 못한다. 이 모든 장면들이 지나간 뒤 벌어진 창호의 투신은 그러므로 비통하기는 해도 급작스럽지 않다. 창호가 지붕에서 내려오라는 어른들의 말에 잠시 프레임 아웃될 때, 우리는 잠시 안도하지만, 창호는 추락의 도약을 위해 잠시 뒤로 빠진 거였다. 소년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어른들과 타협을 보려는 게 아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어 보이는 행위. 그러므로 내게 그것은 누군가를 대신한, 혹은 누구를 위해서 선택한 희생의 행위로도, 물신화된 행위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희망이나 절망의 양분화된 차원으로 규정하기도 망설여진다. 왜냐하면, 창호의 투신은 행위의 결과를 내다보며 선택된 것이 아니라, 오직 행위 그 자체로서 읽혀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 소년은 죽음을 관념적으로 사유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의 투신은 오직 지붕 아래에서 수갑을 찬 채 지켜보고 있는 정진을 향해 있다. 그것은 창호에게 주어진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인 유일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창호의 이런 결단을 죽음이라는 단어, 영화 밖의 우리가 기껏해야 관념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단어로 고정하고 싶지 않지만, 굳이 그래야만 한다면 이 행위를 자살이 아닌, 창호의 두 번째 죽음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의 애매함을 좀더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다른 한축에서 진행되는 순희의 이야기를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난 엄마 대신, 창호와 할아버지를 챙기며 사는 순희는 말을 못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곱다. 장률의 다른 영화를 한편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티없는 여자의 일상에 느닷없이 불행이 침투하리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어느 날 밤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하룻밤만 재워달라는 탈북자의 청을 할아버지는 거절하지 못하는데, 다음날 우리는 노인과 손자가 도시로 외출한 걸 알게 된다. 불길한 예감. 이후 영화는 예상대로 진행된다. 의연한 어린 정진과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볼 수 없게 비굴하게 호소하던 탈북자는 어느새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이 장면은 정한석의 말대로 다분히 도식적인 구석이 있다. 순희가 차려준 밥을 먹고 배가 부르자 그는 술을 요구하고 순희는 술을 건네준 뒤 자리를 뜬다. 그때 아마도 순희가 켰을 텔레비전에서는 북한 찬양 방송이 나오고, 갑자기 미쳐버린 남자는 순희에게 다가가고, 프레임 밖에서 들려오는 순희의 울부짖음,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여전히 흘러나오는 북한 방송의 화면이 겹친다. 이 장면의 모든 상황은 작위적이며, 순희가 강간당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안을 얻는 걸 제외하고는, 그 작위성은 더없이 끔찍하게 여겨진다. 그렇다면 그런 명백한 함정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이 순간을 필요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 탈북자들에 의해 그런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 장면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는 장률의 대답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연히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물론 나는 이 장면의 작위성에 순결한 여자에 대한 영화의 상투적인 가학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모두 거두지는 못하지만, 만약 이 장면이 있어야만 한다면, 그건 이후 순희의 결단들을 영화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설득이 된다. 순희의 이상한 선택 혹은 장률의 복합적인 심경 순희의 선택들. 그건 창호의 선택과 영화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창호의 것만큼 명백하고 단순하지는 않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궁지에 처한다. 그 사건으로 아이를 갖게 된 순희는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그녀는 수술실에서 도망을 나오고,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를 말리지 않는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뱃속의 아이를 차마 죽이지 못한 여자는 결국 아이를 낳는 수순을 따른다.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영화의 결말에 그녀는 다시 병원을 찾는다. 순희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지 않고 나온 이후, 그리고 다시 병원을 찾는 시점 사이에 그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그 사이에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있다. 슬픈 표정으로 눈밭에 앉아 있던 순희 뒤로 마을의 노인 한명이 지나가다 그 옆에 앉는다. 치매에 걸린 듯 보이는 이 노인은 영화 앞부분에서도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매번 두만강을 건너려다 사람들에게 잡혀 집으로 돌려보내지곤 했다. “어렸을 때 어머니 손잡고 이 강을 건널 때만 해도 다리 하나가 있었는데”라고 노인이 중얼거리자, 카메라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면 산으로 둘러싸인 얼어붙은 강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 다음 뒤이은 장면에서 순희는 스케치북에 노인에게 들은 다리의 형상을 그려본다. 그림 속 다리의 풍경이 이상하게도 생생하고 그것이 벼랑 끝에 선 순희에 대한 유일한 위로처럼 느껴져서, 이 장면의 연결에는 신비로운 느낌이 있다. 그래서인지 모든 이야기가 종결된 뒤 에필로그에 이르러, 영화가 눈덮인 두만강 위에 과거의 혹은 상상 속의 그 다리를 세워두고 노인으로 하여금 건너게 하는 판타지 장면에서, 문득 그 다리는 영화적으로 순희에 의해 마련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순희가 다리 그림을 그린 뒤에, 영화가 에필로그에 이르기 전, 그녀로 하여금 기어이 낙태를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더 당혹스럽다. 순희는, 혹은 영화는 상상 속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정서적인 다리를 한편에 기어이 만들어두고, 다른 한편에서는 탈북자의 폭력에 의해 잉태된 아이를 죽이는 결단을 내린다. 물론 그 뱃속의 아이를 어떤 상징으로 단정하고 해석하는 건 위험한 짓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런 두 가지 선택이 영화 속에서 양립할 때, 나는 둘 사이의 간극에 영화의 슬픔이 있다고 느낀다. 말하자면 고향에 대한 장률의 분열. 장률은 어찌할 수 없는 두 마음을, 과거와 현재를, 상상과 현실을 내버려두고 바라본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봉합하거나 채우지 못한다. 순희는 고통을 무릅쓰고 아이를 낳아 이 분열을 메워주는 천사가 아니다. 나는 순희가 장률이 천사라고 칭했던 <이리>의 백치 같은 여인 진서보다 장소의 기억에 대한 장률의 감정이 훨씬 더 구체화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순희가 낙태를 한번 미루고 영화의 끝에 다시 병원을 찾는 시점은 창호가 투신하는 시점과 영화적으로 맞물리며 그건 다분히 의도된 영화적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면 장률은 기억 속의 고향이 결국 삶으로부터 죽음으로 부서질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는 것일까. 혹은 마지막 에필로그의 판타지를 개입해서라도 죽음으로부터 희망을 불어넣고 싶은 것일까. 둘 다 아닌 것 같다. 고향을 판타지적으로 재현하고 싶다는 욕망, 혹은 리얼리즘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 모두 왜곡과 미화, 냉소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걸 장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그러므로 <두만강>의 어떤 부분이, 누구의 선택이 사실적이고 상상적인지, 이 세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묻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다만 나는 장률에게 있어서 고향의 기억을 영화화하겠다는 결심이 희망과 절망, 혹은 삶과 죽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감히 죽음으로부터 삶을 구원할 수도 없고, 행여 그럴 수 있다고 믿어서도 안되지만, 적어도 죽음을 죽음으로부터 꺼내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창호의 마지막 행위, 그 두 번째 죽음은 단순한 자멸이 아니라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마을의 노인이 죽던 날 밤, 사람들이 애도의 노래를 부를 때 환하게 뜬 보름달의 정서, 할아버지가 창호에게 “내 죽으면 여기 묻어라. 앞에 두만강이 보이지 않니”라고 말할 때 노인의 시선을 따라 펼쳐진 아련한 강의 감정, 그러니까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그 순간 영화에 퍼지는 죽음이라고도, 삶이라고도 표현할 길 없는 절실한 기운. 다시 말하지만 죽음을 죽음으로부터 꺼내는 것, 그것이 장률의 기억이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최소의 예의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두만강>은 고향에 대한 오랜 기억과 마주한 감독이 일상적 구체성을 넘어서 감정의 물질성에 도달하려는 시도다. 설령 그 시도의 결과가 관념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해도, (그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 관념도 기꺼이 끌어안겠다고 말하겠다.

만인의 연인에서 정신병 환자까지

<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 1951 물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 <젊은이의 양지>는 아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작품으로 드디어 만인의 연인, 세기의 미인으로 떠오른다. 야망과 비애로 가득 찬 한 남자가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티없이 맑은 여인, 그게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역할이다. 영화사상 가장 그윽한 눈매를 지닌 남자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시선을 앳되고 환한 미소로 찰랑거리듯 응시하는 그녀의 연기가 더없이 인상 깊다. <자이언트> Giant 1956 <자이언트>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록 허드슨과 제임스 딘의 연인이었다. 말하자면 신사와 반항아 혹은 듬직하고 다정한 남자와 신비하고 거친 남자가 동시에 사랑하는 여인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한국 관객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황야를 일구는 두 남자의 사랑과 야망의 서사시라고 잘 알려져 있지만 결국 그 두 남자가 끝내 염원했던 것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연기한 바로 그 여인이었다는 것을 그 누가 모를 것인가. <지난 여름 갑자기> Suddenly, Last Summer 1959 테네시 윌리엄스의 원작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한 두 작품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와 <지난 여름 갑자기>. 둘 중 어떤 작품을 그녀의 대표작으로 고를지는 취향의 문제도 작용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생기 넘치는 말괄량이로 자기 자리를 잡은 이 배우가 이제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텅 빈 눈동자의 정신병 환자까지도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 캐서린 헵번이 내지르는 연기를 한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흡수하는 연기로 지지 않고 맞선다.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1963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곧 클레오파트라, 라는 공식이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통용돼왔다. 해마다 빠지지 않고 적어도 한 차례는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방영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다시 보아도 영화 속 그녀는 늘 당당하고 기품있으며 고혹적이었다. 비교적 초기 출연작인 <쿼바디스>와 함께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대표적인 역사극으로 손꼽히는데, 그녀는 이 작품으로 영화가 탐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인 클레오파트라를 영원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1966 시종일관 귀를 찢고 머리를 폭파시킬 것처럼 신경질적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실제 부부였던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화 속 광기의 부부로 재탄생한다. 여기엔 말괄량이도 귀부인도 여왕도 없고 그냥 흉하디 흉한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만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생애 첫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1961년 <버터필드8>이지만 그녀는 마침내 이 작품으로 1967년 생애 두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런던] “전쟁 뒤에 남겨진 상처 얘기하고 싶었다”

켄 로치 감독이 오랜만에 내놓은 스릴러영화 <루트 아이리시>가 지난 3월18일 영국의 예술영화전용관인 쿠존 메이페어 시네마와 스카이 무비 채널의 PPV 서비스를 통해 개봉했다. 지난해 제6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막강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루트 아이리시>는 퍼거스(마크 우마크)가 이라크에서 사설 경비원으로 함께 일한 동료 프랭키(존 비숍)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 리버풀을 찾으며 시작된다. 고향에 돌아온 퍼거스는 친구의 죽음을 설명하는 경비업체 간부들의 이야기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고 직접 진실을 파헤치기로 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루트 아이리시’는 바그다드의 ‘그린 존’과 바그다드 공항 사이에 놓인 위험한 길을 칭하는 말이다. 영화는 전쟁에 대한 언급은 되도록 피하면서 전쟁이 가져오는 다른 여러 영향들 특히 전쟁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사람들 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해 좋은 평을 얻었다. 영화 개봉 하루 전 켄 로치 감독을 인터뷰했다. -영화 개봉일이 드디어 정해졌다. =사실 꽤 제한적인 여건에서 개봉한다. 상업성이 부족한 독립영화들은 극장 개봉에 언제나 커다란 어려움을 겪는다. 영국에서는 미국 상업영화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영화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매체라고 믿는다. 미국 상업영화만 극장 개봉을 할 수 있는 현재의 영화계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루트 아이리시>를 예술영화전용관뿐 아니라 텔레비전 채널의 PPV 서비스를 통해서도 개봉하기로 한 것인가. =그렇다. <루트 아이리시>가 확보한 스크린은 영국 전역에서 고작 20개뿐이다. 스카이 무비에 영화를 제공하기로 한 것은 예술영화전용관을 찾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실제 전쟁장면이 많이 삽입됐다. 실제 장면을 활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음, 일단 전쟁 자체가 아닌 전쟁이 끝난 뒤 남겨지는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전쟁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한 남자, 결코 전쟁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전쟁 중 그가 본 잔혹한 이미지들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해낼지 고민하다 새롭게 촬영할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전쟁장면을 새롭게 찍었을 경우, 관객은 이것이 재창조된 이미지라는 것을 인지하게 될 것이고 이것은 실제 장면이 주는 것만큼 임팩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피나 전쟁 중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모두 실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공포는 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영화에서 퍼거스가 넬슨(트레버 윌리엄스)의 얼굴에 천을 덮고 물을 부으며 심문하는 장면은 아주 사실적이다. =나 역시 현실을 잘 반영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그러니까 부시와 럼스펠드는 이런 방법의 심문이 단지 심문의 효과를 높이는 데 필요한 기술일 뿐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와 다르다. 이것은 분명한 고문이다. -영화적 장치 없이 물고문 장면을 촬영했다고 들었다. =첫 촬영 때는 트레버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고 작은 호스를 만들어 그가 숨 쉴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촬영이 잘 되지 않았다. 결국 트레버가 그냥 해보겠다고 해 5~6시간 만에 촬영을 완료했다. 트레버는 촬영이 끝난 당시에는 괜찮아 보였으나 그로부터 얼마 동안 물고문당하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했다. -당신 작품에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이슈가 많이 등장한다. 영화가 이런 문제들에 실질적인 대안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가. =영화는 대중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답을 해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영화가 어떤 확실한 대안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정치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어떤 특정한 정보나 사회·정치적 논쟁을 이슈화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제기한 이런 이슈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라고 믿는다. -미국시장에 진출해보고 싶지는 않나. 미국쪽에서도 분명 어떤 제안이 있었을 것 같다. =1970년대 초반에는 조금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았다. 유럽영화들에 더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고, 다음으로는 우리 아이들을 ‘미국인’으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또 미국에서는 제대로 된 축구 관람도 못하지 않나! (웃음) -계획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나. =이번 봄부터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다. 감옥에 가지 않는 대신 봉사활동을 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이번 작품처럼 어둡지 않다. (웃음)

끔찍한 농담인가 극한의 예술인가

논란의 영화가 온다.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다. 제목이 풍기는 도전적인 뉘앙스만큼이나 영화는 첫 공개 직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찬반양론에 휩싸여왔다. 강력한 표현 수위에서부터 영화가 포괄하는 생각들까지 논란의 여지는 강력하다. 그 찬반의 의견들을 짚으며, 동시에 그 의견들이 놓치고 있는 <안티크라이스트>의 핵심을 새롭게 탐색하며 이 논란의 작품을 소개한다. 영화를 공개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 라스 폰 트리에 영화 작업의 진정한 최후 공정으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됐다. 극장에서의 야유와 박수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말과 글의 공방전 그 때문에 종종 일어나는 소동들. 예컨대 2009년 칸에서 열린 <안티크라이스트> 기자회견장의 풍경. 어쩌면 그 자리의 모두가 공모자였을지도 모르지만(자, 누가 시비를 거는지 보자!), 하여간 영국의 한 타블로이드지 기자가 손을 들었고 “어떻게 당신의 영화를 정당화할 것인가?” 하고 물었다. 일단 심사가 한번 꼬이면 비아냥과 허세의 제스처가 본능처럼 튀어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폰 트리에다. <유로파>가 황금종려상 수상에 실패한 것에 불만을 품고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로만 폴란스키를 가리켜 “난쟁이” 운운하기를 서슴지 않았던 그가 아닌가. 그는 참지 않았다. “내가 왜 정당화해야 하는가.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 당신이나 관객을 위해 만들지 않았다. 내가 누구에게라도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운을 뗐고 한번 심기가 불편해지자 마침내 그의 입에서는“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감독이다. 나머지는 다 과대평가 받았다”는 말까지 쏟아졌다. 이날의 입씨름이 꽤 시끄러웠는지, <안티크라이스트>에 관한 많은 기사와 평문들이 잊지 않고 이 시시비비를 적어두고 있다. 이후에도 찬반양론은 멈추지 않았다. 일례로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지수로 표현하는 영화 사이트 ‘로튼 토마토’를 보면 150명의 평자 중 긍정의 평이 72, 부정의 평이 78로 박빙이다. 지지의 글 중 대표적인 건 이런 것이다. “언제나 선동가였던 폰 트리에는 어떤 진지한 영화감독, 심지어는 브뉘엘과 헤어초크 이상으로 관객을 대면하고 뒤흔든다. 그는 섹스, 고통, 지루함, 신학 그리고 스타일 넘치는 실험들로 이것을 한다. 왜 아니겠나. 우리는 적어도 영화사 중역이 끔찍한 물타기를 한 이후가 아닌, 정확히 감독이 의도한 그것대로 영화를 보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로저 에버트) 수적으로 다소 우세한 비판론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라스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로 크고 비만한 병신 예술작품을 행한다. 마치 비평적 남용과 의도적으로 연애라도 즐기듯, 이 덴마크의 악동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자의식적으로 도발적인 이미지로 이 신학적-심리학적 호러 작품을 빽빽이 포장한다.”(<버라이어티> 토드 매카시) “내장된 고통을 만들기를 원하는 <안티크라이스트>는 결국엔 진실한 경험을 투사하는 데 있어서는 덜 성공적이다. 이 급격한 전술은 결국 마비된다.”(<빌리지 보이스> 짐 호버먼) 능수능란한 이미지 직조술 vs 뻔뻔하고 폭력적인 고문 포르노 지지자들은 강력하면서도 몽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감독의 능수능란한 이미지 직조술 혹은 배우들에게서 육체적 극한의 연기를 끌어내어 그것을 통각으로 느끼게 하는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윌렘 데포와 샬롯 갱스부르는 높은 수위의 연기를 해냈고 샬롯 갱스부르는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편, 그 찬사의 기준들이 고스란히 역겨운 가짜로 보이거나 그것에 감독의 진심이 담겨 있다 해도 미숙하다고 판단하는 이들이 이 영화를 반대한다. 극렬 반대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영화는 일종의 뻔뻔하고 폭력적인 고문 포르노에 불과하며 자기 과시로 도배된 허깨비 같은 영화다. 폰 트리에라면 그 찬반의 태도 자체가 필시 못마땅할 것이다. 그의 작품이 논란을 몰고 온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안티크라이스트>는 그 자신의 더 개인적인 결과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가 자신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한 일종의 요법으로서 출발했다고 밝힌다. 우울증이 극에 달해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삶과 꿈에 불현듯 등장하곤 했던 불안과 두려움의 이미지와 유년 시절부터 즐겨 읽었던 스웨덴의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작품의 어떤 불온한 인물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남들이라면 안식과 평안함으로 탈출하려 했을 그 공황기를 광기의 프로젝트로 탈출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내 영화 중 영화적으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영화는 아니지만 이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임에 틀림없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한 인물의 파탄적인 공황상태를 치료하는 과정이다. 부부가 격정적인 섹스를 나누는 동안 그들의 갓난아기가 문이 열린 요람 바깥으로 나온다. 그러더니 창문으로 기어 올라가고 부부의 섹스가 정점에 달하는 그때 아기는 눈이 오는 창밖으로 떨어져 죽고 만다. 장면이 바뀌면 부부는 비탄에 빠져 있다. 아니, 아내(샬롯 갱스부르)가 비탄에 빠져 있고 남편(윌렘 데포)은 그녀를 치유하기 위해 애쓴다. 심리치료사인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그들이 ‘에덴’이라 부르는 아무도 없는 숲속의 작은 오두막을 찾아 안정과 정상을 회복하려 한다. 하지만 이 집 주변에서 오히려 기괴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남편의 치료가 실패할 조짐을 보이더니 마침내 아내는 광기로 물들고 남편을 해치려 든다. 폰 트리에는 프롤로그-비탄-고통(혼돈이 지배하리라)-절망(대학살)-세 거지들-에필로그로 장을 나눠 영화를 전개한다. 장점과 단점은 아무래도 뚜렷해 보인다. 폰 트리에의 영화는 우화 내지는 동화의 방식을 즐겨 취하며 그것으로 서사를 압축 또는 은유하는데 <안티크라이스트>도 그런 장점을 지녔다. 동시에 몇몇 놀랄 만큼 어둡고 불온한 이미지들은 때론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에 접근한다. 그러나 전시적 강도를 더 고려한 것처럼 보이는 위악적인 장면들이 영화를 때때로 위태롭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내의 광기가 극에 달했을 때 그녀가 남편의 성기를 학대하거나 자신의 음핵을 가위로 자르는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혹은 폰 트리에는 어떤 불가사의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매장되어 있는 과거를 불현듯 길어올리곤 하는데, 이때 그 의도의 비약이 심각하여 도리어 유치해지는 때가 있다. 이 영화의 에필로그가 대표적이다. 마지막 헌사, 고백문인 동시에 불안감 가득한 유아적 표식 장단점을 교차하면서 영화는 에덴에서 벌어지는 아담과 이브의 싸움으로, 근대적 합리성의 믿음과 태곳적 선악의 격돌로 나아간다. 그런데 이때 <안티크라이스트>에는 더 말해야 할 중요한 지점이 한 가지 남는다. 폰 트리에는 그 점에 관하여 영화가 다 끝난 다음에야 알려준다. 영화가 끝나자 다소 엉뚱해 보이는 자막이 뜬다. “이 영화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 바칩니다.” 이미 데뷔작 시절부터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경외심을 숨기지 않은 폰 트리에지만, 이처럼 노골적인 경의를 드러낸 적은 예전에 없었다. 성기를 자르고 악마적 본성이 판치는 이 영화와 도저히 어울려 보이지 않는 이 헌사.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이 헌사에 관하여 지적은 많지만 납득할 만한 설명이 많은 것 같지 않다. “폰 트리에가 타르코프스키와 공유하는 것은 바로잡을 수 없을 만큼 위선적인 하찮음과 잔인함, 세속적 권력구조에 대한 강박적 반감”(<필름 코멘트>에 기고한 각본가 래리 그로스의 글)이라고 멋지게 표현한 글이 있지만 이 글은 매력적인 내용과 무관하게 <안티크라이스트>에 관해서는 다소 추상적인 설명이 된다. 적어도 <안티크라이스트>에서라면 두 감독의 사이는 좀더 구체적이다. “내가 조그마한 텔레비전으로 영화 <거울>을 보았을 때 나는 황홀경에 빠졌다. 만약 종교에 관하여 말한다면 이것이 종교적 관계다. 나는 그의 영화들을 수차례 보고 또 보았다. 나는 그가 나의 첫 번째 영화 <범죄의 요소>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가 매우 싫어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건 정직한 리액션으로 느껴진다. 그는 나보다 앞선 세대다. (하지만) 나는 그와 가깝다고 느낀다. 만약 어떤 감독에게 영화를 바친다고 하면 누구라도 당신이 그로부터 훔쳤다고 말하진 않을 것이고 이건 정말 도망치기 쉬운 방법이지 않겠나.” 폰 트리에의 말이다. 그러니 영화사상 대표적인 안티크라이스트(폰 트리에)가 영화사상 대표적인 크라이스트(타르코프스키)에게 영화를 바치는 이 아이러니는 순수한 경외심을 넘어서서 어떤 도전장이며, 그 말은 사실 “이 영화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서 훔쳐왔습니다’라는 고백문인 동시에 행여 훔쳐 썼는데도 누군가가 몰라주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일부러 새겨넣은 불안감 가득한 유아적 표식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이미지를 흠모하되 그의 신앙을 반격하고 그의 미의 철학은 경외하지만 종교 철학은 부정하는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를 철저하게 타르코프스키적 이미지로 주조하면서도 그 결과는 안티 타르코프스키적 영화에 도달한다. 비. 바람. 안개. 불. 공히 타르코프스키의 그것으로 알려진 이미지들이 <안티크라이스트>에서도 중요하고 지배적이며 꿈결 같은 순간들을 형성한다. 다만 그건 향수의 꿈이 아니라 모든 게 끔찍한 악몽의 꿈이다. 만약 인물과 관계된 것이라면, <안티크라이스트>는 언제나 아이가 최후 희망의 징표로 남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와 반대로 그 아이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여성, 순결하고 위대한 여성, 특히 어머니로 대변되는 일종의 마리아는 여기에 없으며 악한 본성을 발산하는 광기의 여인만이 있다(그리고 우연이겠지만 윌렘 데포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그리스도 역을 맡았다). 타르코프스키가 그의 유작 <희생>에서 구원과 호소의 노래 바흐의 <마테 수난곡>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흐르게 한다면 라스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거절과 외면의 노래 <나를 울게 내버려두소서>를 흐르게 한다. 마침낸 타르코프스키가 죽은 나무를 살려내는 영화(<희생>)를 세상에 남기고 떠나갔다면, 지금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에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우뚝 세워두고 불안을 탐색한다. 관객을 조급하게 만드는 폰 트리에의 재능 혹은 사기술 존경하는 선배 감독 영화의 모든 미적 이미지들을 차용하되 그것으로 그의 사상을 전적으로 되받아치기. <안티크라이스트>는 그런 점에서야말로 흥미진진한 안티다. 혹은 더 정확히 말해 타르코프스키와 크라이스트에 관한 강력한 패러디다. 타르코프스키는 그가 숨을 거두던 해인 1986년의 한 인터뷰에서 “나는 이 영화에서 기독교의 자기희생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에서 살아가려 발버둥치는 사람의 한 측면을 다루려고 했다”고 말했다. 현존하는 감독 중 거기에 가장 동의하지 못할 사람이 폰 트리에일 것이며 적어도 <안티크라이스트>가 그 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작품을 타르코프스키에게 바쳤다. 그런데 망자인 타르코프스키가 <안티크라이스트>를 좋아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폰 트리에가 12살 시절부터 테이블 위에 두고 보았다는 니체의 말년의 글 ‘안티크라이스트’. 폰 트리에가 신봉하는 무와 부정에의 의지 혹은 오해가 어디에 물길을 대고 있는지, 막연하게나마 그 안에 대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안티크라이스트>는 폰 트리에의 사상적 논쟁의 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안티크라이스트>에서 타르코프스키의 그림자가 중요하다 해도 그걸 일종의 주요 단서로 미뤄둔 다음 이 영화의 평가를 다시 시도할 필요도 있다. 그 마지막 헌사로서 영화는 흥미롭게 해석될 여지를 갖게 되었지만 그 알리바이와 무관하게 판단은 또한 다른 식으로 작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미적 논쟁이 다시 핵심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안티크라이스트>를 그냥 능란한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성스러운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한 건 이 영화에 관해 우린 어느 편에라도 서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는데 바로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 줄 안다는 것이 더도 덜도 아닌 폰 트리에 영화 <안티크라이스트>의 뛰어난 재능 혹은 뛰어난 사기술이다.

[추모] 반세기, 당신의 이야기에 흥분했습니다

그는 결국 단 한번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지 못했다. 단 한편의 영화로 영화사에 지워지지 않을 족적을 남기며 거장의 반열에 드는 이도 있지만, 적어도 시드니 루멧은 아니다. 33살에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로 화려하게 데뷔한 이래 25편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지만 100대 영화에 뽑힌 것은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네트워크>(1976)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니 루멧만큼 거장이란 칭호가 어울리는 감독도 드물 것이다. 무려 4차례나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고배를 안겨준 아카데미가 2005년 그에게 선사한 평생공로상이 진정 빛났던 까닭은 그것이 단지 81살의 영화계 원로에게 형식적으로 바치는 빛바랜 영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2년 뒤 루멧은 무시무시한 완성도로 미국의 비극을 포착해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2007)를 선보인다. 데뷔부터 마지막 작품이 된 이 영화까지 무려 50년의 세월을 격하여, 녹슬지 않은 날카로운 감각과 사그라지지 않을 열정을 과시하던 ‘평생 현역’ 시드니 루멧이 지난 4월9일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림프종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나이 향년 여든여섯. 늘 현재진행형이었던 그의 영화인생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세월도 시대도 아닌 오직 죽음뿐이었다. 변하지 않는 ‘시대의 양심’ 1924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한 루멧은 유대인 연극배우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4살 때부터 뉴욕의 아다시 극장 소속의 아역배우로 연기 경험을 쌓는다. 더불어 어린 시절 막 보급되기 시작한 텔레비전의 생방송을 보고 자란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950년 에 채용되어 무려 500편 이상의 TV드라마를 연출한다. 연극으로 다져진 연기 경험과 방송 현장에서 체득한 저널리즘 특유의 현장성은 이후 그의 영화 작업의 기반이 된다. 1957년 배우 헨리 폰다의 강력한 요청으로 데뷔한 <12명의 성난 사람들>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며 일약 주목받는 감독이 된 루멧은 이후로도 꾸준히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지적이면서도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는 감독으로 주목받는다. 그는 드라마, 코미디, 로맨스, 스릴러, 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소화한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의 장기는 사회성 짙은 영화들에서 주로 발휘된다. 데뷔작을 시작으로 <뜨거운 오후>(1975), <네트워크> , <심판>(1983) 등 4편의 작품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지만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늘 과감하게 다루는 사회비판적 성향 때문인지 번번이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이유로 인해 변하지 않는 ‘시대의 양심’으로서 할리우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 중 한명이기도 하다.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들은 대개 오랜 시간 영화 작업을 하더라도 가장 빛나는, 혹은 시대를 대표하는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영광의 시기에 갇힌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루멧의 가장 놀라운 점은 5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을 꾸준히 생산해내며 늘 청년의 활기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작품은 때로는 주목받지 못하고, 더러 완성도에 편차가 있을지언정 적어도 재미없는 영화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그의 힘은 이야기로부터 비롯된다. 흔히 루멧의 영화를 <에쿠우스>(1977), <다리에서 본 전망>(1961)과 같이 희곡을 영화화한 연극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 <뜨거운 오후>(1975, 동성애 문제), <허공에의 질주>(1988, 급진주의자의 삶)와 같이 가족과 개인의 정체성 문제에 집중한 작품, 그리고 <형사 서피코>(1973, 부패한 경찰), <네트워크>(매스미디어 문제), <전당포>(1965, 홀로코스트)처럼 사회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작품으로 구분하곤 하는데 본질적으로 이 세 경향은 이야기와 캐릭터라는 큰 틀로 포섭된다. 그가 유난히 영화감독들에게 사랑받는 감독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루멧만큼 영화의 보편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충실히 활용하고 또렷한 목소리를 내는 감독은 드물다. 할리우드 역사상 이야기를 가장 잘 다루는 감독으로 알려진 루멧의 핵심은 연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저며낼 줄 아는 비판의식과 그것을 과감히 발하는 행동의 용기, 그리고 그것을 극적으로 녹여내는 이야기의 구성력에 있다. 전시와 공감의 화법 특정 스타일에 집착하기보단 이야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한 루멧은 그의 유명한 저서 <영화 만들기>에서 ‘좋은 스타일이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래도록 고민하고 준비하여 현장에서 신속하게 촬영함으로써 현장에서도 연극처럼 배우의 감정선을 살려주며 함께 호흡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스타일은 수많은 스타일들을 ‘영화’라는 대명제 속으로 통합시킨다. 그는 형식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할리우드식의 환상이나 장르의 쾌감을 전시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되 문제의식이 녹아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특정 시기에 붙잡히지 않고 늘 시대와 호흡하는 영화적 활력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영화가 포착하고 재현하는 비극적 감수성은 늘 동시대와 치열하게 호흡하는 시대정신의 발현으로 읽힌다. 그렇게 루멧은 끊임없이 관객에게 말을 건다. 장르를 유용한 이야기 도구로 활용할 줄 아는 이 능수능란한 거장의 손길은 멜로드라마든 범죄물이든 법정드라마든 개의치 않는다. 그는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영화언어를 활용하여 사회를 얇게 저며 미국사회의 병폐와 그 속의 개인을 드러낸다. 때론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처럼 비극과 절망으로, 때론 <12명의 성난 사람들>처럼 황폐화된 민주주의에 대한 은유와 회복에의 희망으로. 그 와중에도 변함없는 것은 루멧이 관객에게 말을 거는 태도이다. 설득과 훈계가 아닌 전시와 공감의 화법. 여전히 관객의 지성을 믿는 이 거장의 따뜻하고도 서늘한 화법은 늘 현재와 호흡한다. 영화에 의한 사회의 변화를 믿지 않으면서도 부조리와 사회의 병폐를 이야기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고, 인생을 사는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영화를 선택한 ‘행동하는’ 거장은 스스로 ‘영화라는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영상공작소] 당신이 바로 모바일 필름메이커!

얼마 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여러 영화감독님이 스마트폰으로 영화 찍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몇몇 현장을 보면 카메라만 스마트폰이지 나머지는 몇억짜리 예산의 영화 현장과 그리 다르지 않더군요. 수십명의 스탭과 함께하는 현장에는 커다란 지미집과 즉석에서 촬영소스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 모니터가 있고, 스마트폰 앞에는 고가의 망원렌즈를 부착하고 촬영감독님이 손수 만든 스테디캠에 연결… 하지만 그걸 보고 착각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가 모바일 기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현장은 그런 럭셔리한 모습하고는 거리가 멀거든요. 그들은 이미 유명하신 감독님들이고 아마도 통신사나 휴대폰 회사에서 홍보차 큰돈 줘가며 한번 찍어보라는 경우이거나 연출·제작자가 영상기기의 얼리어답터 정도 되는 경우일 겁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유명하지도 않고 통신사에서 돈을 주지도 않을 것이며 더욱이 아주 가난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한번도 영화를 만들 거라고 엄두를 내거나 혹은 꿈도 꿔보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카메라가 달린 작은 휴대폰만 있거나 가방 속에 똑딱이 디카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 우리는 누구일까요? 바로 ‘모바일 필름메이커’가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바일 필름메이커란? 모바일 기기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보다 적은 스탭 수로 초저예산(Micro Budget이라고도 하죠)영화를 만들거나 혹은 혼자서 No Budget(!)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가능해졌다는 의미이며, 앞으로 이러한 환경에서 의외의 사람들이 새로운 형태의 놀라운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할 거라는 의미입니다. 그 ‘의외의 사람들’이 바로 잠재적 모바일 필름메이커, 여러분들입니다. 앞서 말한 럭셔리한 영화 현장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그런 현장이 먼 나라의 남 일 같은 사람들, 영화 만들기를 철들기 전에 한번쯤 꿈꿨고 이제는 그 꿈을 마음 한켠에 깊이 묻어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여러분이라는 것이죠. 그런 여러분의 손에 쥐어 있는 휴대폰의 카메라나 혹은 가방 속의 똑딱이 디카로 사실은 장편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극장에서 상영할 수도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이 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을 단순히 예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예전에 디지털 캠코더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죠. 소비자가 영화를 만드는 시대가 왔으며 영화 제작의 혁명적 바람이 불 것이라고. 물론 다양한 디지털영화가 나오고 영화 산업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들 모두가 영화감독이 되진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캠코더는 그저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거나 결혼식을 찍는 도구였으며, 서랍 한구석에 찍어놓은 테이프만 쌓여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모바일영화는 좀 다릅니다. 이 가볍고 작은 캠코더는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큰맘먹은 사람들이 거금을 들여 구입해서 책상 위에 모셔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24시간 들고 다니는 제2의 눈과 같은 것이니까요. 로테크 이미지, 약점을 강점으로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찍을까 하고 고민한다면 일단 가지고 있는 영상 기기의 강점과 한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폰4를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죠. 지난해에 나온 아이폰4는 500만 화소의 카메라가 후면에 장착되어 있습니다. 이 카메라는 720P라는 준HD급의 동영상을 찍을 수 있습니다 (주1). 스마트폰에 달린 카메라가 HD급의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은 잘만 하면(!) HD 방송이나 디지털 극장 상영에 기술적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스마트폰의 작고 작동하기 편한 특성은 생생한 사실성을 확보하고 의외의 현장성을 기록하거나 혹은 보는 자의 은밀함 등을 드러낼 수 있는 강점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해외영화제에서 선보인 모바일영화를 보면 이러한 특징들을 잘 보여줍니다(주2). 그러나 카메라 렌즈가 작은 관계로 흔들림에 약하고 초점 통제가 쉽지 않으며 어두운 환경에서의 화질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약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는 것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인데 이게 뭔 말인가 하면,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게 싫으면 피해 갈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약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빛이 없는 현장에서 35mm 필름의 퀄리티나 고가의 카메라 룩을 내기 위한 여러 방법이 있지만 오히려 암부에서 깨지는 픽셀 화면을 활용해 스마트폰의 카메라가 가진 특유의 로테크 이미지를 영화의 개성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고민해보자라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가난한 모바일 필름메이커들의 첫 번째 덕목, ‘발상의 전환’ 입니다. 흉내내기 vs 발상의 전환 아이폰의 앱스토어를 찾아보면 영화 만들기에 필요한 많은 앱들이 존재합니다. 그 앱들을 사용하면 아이폰 하나로도 촬영, 편집, 상영까지 영화 제작을 위한 각각의 프로세스를 가능케해줍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그 모든 프로세스는 기존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새로운 영화 제작·배급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기도 한데, 아이폰으로 영화 만들기에 기존 방식을 답습할 이유도 없지만 그걸 따라 해봐야 소용도 없다는 것이죠. 모바일 기기가 가진 장단점을 최대한 이용해 그 효과를 극대화한 놀라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도전의식만이 이러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바일 필름메이커들의 두 번째 덕목 ‘도전하는 실험정신’입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한계점을 역발상을 통해 강력한 영화적 무기로 바꾸고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실험정신으로 무장한다면 쏟아져 나오는 모바일영화 중에 여러분의 영화는 그 독창성으로 빛을 발할 것입니다. 모바일영화제인 ‘The Disposable Film Festival’ 수상작들을 보면 화면 초점을 일부러 나가게 한 영상이나 디카 사진을 이용해서 만든 애니메이션, 웹캠으로 만든 뮤직비디오 등 창의적 역발상으로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습니다(주3). 특히 이들의 공통점은 모바일폰이나 포켓 카메라의 로테크 이미지들로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로테크 장비들이 가진 독특한 질감과 그 한계를 뛰어넘는 도발성이 결국 새로운 형태의 예술 작품을 탄생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내 손의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자라고 결심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을 찍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 ‘무엇’을 찍기 위해선 먼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추상적인 컨셉이든 구체적인 사건이든 간에 머릿속에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Story’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야기는 아마도 나의 제작 예산과 제작 환경에 맞춰 그 안에서 가능해야 할 것이며 내 주변의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이용해서 완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제일 잘 아는지,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 고민해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그 안에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군데군데 비어 있는 조각을 발상의 전환과 도전적인 실험정신으로 채울 수 있다면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는 멋진 영화로 완성될 것입니다. 만약에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스마트폰의 좋은 점 하나. 이러한 단계에서부터 여러분을 좌절에서 구해줄 수 있는 수많은 앱이 있습니다. 아이폰 앱 중에는 iStoryWriter같이 스토리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앱이라든지 공포영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Short horror story, 100+ ghost story처럼 여러분들의 이야기에 영감을 줄 앱들이 있으니 참조할 수 있겠지요(주4). 하지만 참조는 역시 참조일 뿐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몫은 역시 모바일 필름메이커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일루셔니스트 / 네가 원한다면 / 고교 졸업반 / 내일의 죠

재미와 감동을 그대 품 안에!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이 여기 모였다. <일루셔니스트> The Illusionist 애니페스트 / 2010년 / 80분 / 프랑스 / 실뱅 쇼메 <윌로씨의 휴가>(1953)나 <플레이타임>(1967)을 본 관객이라면 잊을 수 없는 영화사의 아이콘, 윌로씨를 기억할 것이다. 키가 크고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는, 의도치 않게 주변에 온갖 소동을 불러오던 소심하고 착한 남자. 윌로씨를 창조했으며 직접 연기까지 한 이는 감독 겸 배우 자크 타티다. 타티가 마지막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1982년 사망했고, 2010년 실뱅 쇼메가 연출을 맡았다. 텔레비전과 영화와 록스타에 밀려 점점 설 곳을 잃어가던 나이든 마법사 타티셰프가 스코틀랜드에 흘러들어온다. 투명한 색조는 스코틀랜드의 청명한 공기를 손에 잡힐 듯 시각화하며, 빠르게 변하는 세계와 불화하며 알코올중독과 고독에 지쳐가는 서커스 단원들의 애수 어린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빛을 발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애잔한 2D애니메이션의 수작. <네가 원한다면> Anything You Want 시네마페스트 영화궁전 / 2010년 / 101분 / 스페인 / 야케로 마냐스 더이상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엄마의 부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엄마’처럼 입고 화장하기를 요구하는 순간, 이 영화는 기존 영화와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 영화는 여장남자란 소재를 너무 가볍게도, 혹은 너무 진지하게도 다루지 않는다. 아버지 레오가 여자로 변장하기 위해 나이 든 게이인 알렉스에게 화장을 받는 장면은 영화가 사회가 규정한 고정관념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레오는 딸을 위해 엄마의 모습으로 분장하면서 사회의 어떠한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딸이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일 때까지 묵묵히 그녀를 지켜주고 보살펴준다. 이야기의 출발은 통속적이지만 그 통속성을 변주하고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다.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인 <노벰버>의 감독, 야케로 마냐스 감독의 2010년 신작이다. <고교 졸업반> Senior Year 시네마페스트 영화궁전 / 2010년 / 95분 / 필리핀 / 제롤드 타로그 필리핀 마닐라의 고교 졸업생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고교 졸업반>은 실제 학생 배우를 카메라에 담으며 그들의 미래를 함께 그려보는 영화다. 영화는 졸업 연설문 작성, 어린 연인의 갈등 같은 졸업생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10년 뒤 동창회에서 다시 만나는 졸업생들의 모습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 뚱보는 살을 뺐고, 게이라고 놀림받으며 남학생들 사이에서 괴롭힘당했던 연약한 아이는 꽃미남이 되었다.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경쾌한 음악이 나오는 <고교 졸업반>은 초반부에 매우 말랑말랑하고 경쾌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의 사연에 집중하는 후반부에 이르면서 점점 깊은 상처를 드러낸다. 사춘기 친구들의 미묘한 갈등부터 시작해서 동성애, 가정불화까지 이르는 꽤 묵직한 문제를 다룬다. 싱그러움이 넘쳐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고교 졸업반>의 매력인데, 그 아이들의 상처를 목격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일의 죠> Tomorrow’s Joe 시네마페스트 영화궁전 / 2011년 / 131분 / 일본 / 소리 후미히코 야마삐(야마시타 도모히사의 애칭) 팬이라면 복싱영화 <내일의 죠>를 놓칠 수 없다. 야마삐는 그룹 NEWS의 리더이자 배우로 활약하는 아이돌이다. 일본 아이돌에 열광해서 이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과 달리 김종서가 주제가를 부른 추억의 애니메이션인 <허리케인 죠>를 기억하는 관객도 있겠다. 다카모리 아사오 원작, 지바 데쓰야 작화로 1970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죠의 치열한 권투장면과 죠의 쓸쓸한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 <내일의 죠>는 애니메이션에 비하면 치열함과 외로움이 희석된 느낌이다. 가드를 내리고 펀치를 받아내는 죠의 권투는 여전하고 특기인 크로스카운터는 고속촬영을 통해 충실히 재현되었다. 라이벌 복서인 리키이시와의 한판 승부와 우정도 관객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본 상업영화의 감동 코드는 고독한 복서 죠를 원하는 애니메이션의 팬에게 아쉬움을 남길지도 모른다. 야마삐 팬이라면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다. 그의 조각 같은 근육을 볼 수 있다.

실컷 울고 용서받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언론 시사회 직전 민규동 감독을 만났다. 그는 호들갑을 떨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이제 막 영화가 공개되기 직전의 흥분 상태에 놓인 감독답지 않게 시종일관 또렷하고 편안했다. 그는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개인적인 이유에서부터 앞으로 남은 장기적인 관심사까지 말했다. -이 영화를 하게 된 특별히 개인적인 계기들이 몇 가지 있다고 들었다. =언젠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런 문장들이 나를 크게 건드리는 게 있었다. 그즈음에 친구가 췌장암 선고를 받기도 했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남의 이야기로 들을 때는 진부했는데 가깝게 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니 현실적으로 믿기지 않았다. 그 친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일들이 옛날에 놓쳤던 사람들까지 떠올리게 했다. 첫 영화를 찍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와 나는 마치 영화 <집으로…>처럼 단둘이서 살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영화가 인생보다 중요한 때여서 발인을 할 때에야 뒤늦게 갔는데, 친척들은 곡을 하고 그러는데 나는 눈물이 나질 않았다. 실은 친구에게도 감정이 비슷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잘 가라 이런 인사를 할 기회를 놓쳤고 나중에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내 영화에서 죽음이 형식이나 그릇이나 매개로 다뤄진 적은 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든 거다. 그렇게 해서 실컷 울고 용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빚을 지고 사는 느낌을 풀어볼 순 없을까 하는. 그래서 언젠가 듣고는 슬픈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던 이 작품을 떠올리게 된 거다. 내가 처음 해보는 헌정의 영화랄까. -드라마를 보았나. =드라마가 방영됐던 당시에 나는 집에 텔레비전이 없었다. 전화기를 집에 막 놓고 좋아하던 때였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찾았을 때는 다시 보기 서비스가 없었다. 내가 본 드라마 장면은 나문희씨가 어떤 방송에 출연했을 때 자료 삼아 보여준 클립 정도다. 그리고 실은 이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다음에는 드라마가 궁금하지 않았다. 신기한 건 드라마를 안 본 사람들이 다들 이 드라마를 알고 있고 봤다고 생각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대본을 보니까 실은 나도 모르던 이야기였던 거다. 어떤 공통적인 기시감 같은 게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원작자 노희경씨의 반응은. =영화는 아마 오늘 오셔서 보실 거다. 시나리오는 보셨다. 시나리오를 꼭 보여주어야 한다고 해서 보여드렸다. 아마 나 말고 전에도 이걸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워낙 원작자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반영되어 있다 보니 훼손될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저는 지문 하나 대사 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말하신 적도 있다. 각색은 무서운 시험을 치르는 느낌이 늘 있어서 내 시나리오를 보고 싫어하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좋았다고 하셨고 특히 바뀐 부분들이 좋았다며 더 바꿔도 될 뻔했겠다고 하시더라. 그 다음에는 훨씬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드라마의 주인공 역을 맡은 나문희와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은 배종옥은 자애로운 여성상에서는 같은 범주에 있어 보이지만 사실 많이 다르다. 배종옥을 캐스팅할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뒀나. =다른 배우인 게 맞다. 나문희가 더 전통적이라고 해야 할까. 더 구수하고 촌스럽거나 훨씬 더 핍박을 많이 받았거나 전쟁통을 통과했을 것 같은 전통적인 이미지. 그게 우리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를 시작했을 때 다시 그런 고전적 이미지, 보기만 해도 슬픈 엄마라는 배우를 취할 것인가 아닌가, 그런 사람이 존재할까 자문했다. 대답은 쉽지 않았다. 나문희 선생님도 어쩌면 그때 그 드라마를 통해서 그런 이미지를 갖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고 한때는 잘살았지만 지금은 조금 기운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엄마, 전통적인 인상에 대한 반사적인 인물이면 어떨까 싶었다. 어울리지 않으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주변에서 다들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그건 아마 배종옥씨의 어떤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 또박또박한 말투와 목소리, 그러면서도 하이톤의 뱃소리. 그런 면모가 한편으론 고전미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줄리언 무어와 조디 포스터의 혼합형으로 나는 느꼈다. 연기도 그런 톤으로 부탁했고. 뭔가 초가집에서 살아온 ‘사골 어머니’의 느낌과는 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종옥씨가 결정되는 순간 이 영화의 나머지 부분들이 상당부분 결정됐다. -인희가 욕실에서 피를 토하고 남편을 끌어안고 우는 장면을 힘들게 찍었다고 들었다. 영화의 첫 번째 정점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인생에서 딱 한번은 겪을 수밖에 없는 순간, 내가 죽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참혹한 순간, 그 순간이 오면 미칠 듯이 슬플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 표현을 요구했고. 그런데 한겨울, 좁은 화장실, 그 추운 땅바닥에 앉아서 연기를 하려니 생각만큼 안 나오는 거다. 처음부터 힘들 거라고 예상한 신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였다. 시간이 갈수록 눈물이 말라갔다. 이번 영화는 감정을 위해서 테이크를 많이 가지 않았는데 그날은 많이 갔다. 마지막에는 많이 지치니까 배우의 눈과 목소리가 실제로 지쳐서 정말 자연스러워지더라. 그런데도 나는 내가 바라는 데까지 더 가고 싶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찍어야겠구나 생각도 했다. 나중에 들으니 배종옥 선배는 다른 날 다시 찍는 게 좋지 않을까, 감독이 괜한 고집을 부린다고도 했다더라. (웃음) 사실은 처음으로 포기를 한 순간이다. 그런데 다시 찍지는 않았다. 의외로 육체적인 건 표현이 잘됐다. 이미지보다 맥락 안에 이 장면을 둘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보면 어느 정도 표현이 된 거다. 지금은 아쉬움이 없다. -가족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실은 감독의 장기적인 관심사가 궁금해졌다. =내가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한 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가족이기보다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일곱 단계의 갈등에 관한 것이라고 해야 더 가깝다. 가족 이야기는 그동안 내게 일종의 금기 같은 것이었다. 이 영화로 가족의 소중함을 웅변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마음이 없다. 엄마의 가치, 생명의 가치를 들여다보고 있기는 한데 그 안에 내가 어떻게 서 있는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게 어떤 경우에는 형벌이기도 하고 구원이기도 할 거다. 다음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로 전환할 거다. 장르에 대한 욕심도 있고 내 안의 어떤 미시적인 정서에 관한 것도 있고. 이 영화는 내게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터닝 포인트’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