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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영화평론가 스티븐 크렘린

흔히 토니 레인즈로 대표되는 한국영화 전문가를 런던에서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소개된 연혁도 짧지만 한국영화라면 토니 레인즈에게 물어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특히 부산영화제를 기점으로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는 평론가가 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몇명의 소장 그룹들이 한국영화에 관한 리뷰를 쓰기 시작했다. 현재 리즈 영화제 프로그래머와 우디네 아시아영화제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는 스티븐 크렘린도 그런 몇 안 되는 소장파 한국영화 전문가이다. 한국배우 중 전도연을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로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을 꼽는 그는 인터넷 아시아영화잡지 ‘AFL Bulletin’의 편집인이기도 하다. 최근 런던에 소개된 한국영화는 <거짓말>과 <섬>이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아직 배급업자들은 아시아영화 속에서 비일상성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서구영화와는 다른, 그리고 뭔가 관객에게 자극적인 것을 아시아영화를 통해 주려고 하는 것 같다. 일본의 사무라이영화와 소프트 포르노가 그런 편견을 심어놓은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메인 스트림에 한국영화가 점점 배급되기 힘든 상황을 만들고 있다. <거짓말> 아니면 <춘향뎐>이다. 그 중간에 <해피엔드>나 <반칙왕>은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영국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은 어떤가. 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인기는 대단하다. 전세계에 130여개가 넘는 국제영화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국영화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화제에서 한국영화는 일종의 붐이다. 영국도 에든버러 페스티벌이나 런던영화제에서 최근 한국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문제는 배급이다. 영화광이나 영화인들은 관심있어 하지만 배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한국영화는 아직 생소한 편이다. 최근 <와호장룡> 성공에서 한국영화가 벤치마킹할 점이 있다면. 중국 5세대가 서구에 소개된 것은 80년대 초반이고 중국의 무술영화도 언더그라운드에서 지난 십여년간 인기를 모아왔다. 중국영화는 20년을 기다려왔고 이제 그 성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는 셈이다. 물론 무술영화라는 점이 더욱더 서구인들의 구미를 당기긴 했지만 중국적인 무언가가 이미 친숙했기 때문에 거둔 결과라고 본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영화는 이제 출발단계다. 시간이 좀더 필요하고 국제시장에 대한 면밀한 리서치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시장과는 달리 세계시장에선 ‘되는 영화’와 ‘안 되는 영화’가 이미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서구영화가 못하는 그런 영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현재 후반작업을 하고 있는 <무사>의 성공여부가 아마 한국영화가 영화제용인가, 아니면 대중적으로 서구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럼 ‘되는 영화’란 무엇인가. 앞에서 언급한 <거짓말>이나 <섬> 같은 경우, 된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될 가능성이 있는 영화다. 또한 <춘향뎐>이나 <정> <무사>도 가능성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큰 성공이 보장되진 않지만 최소한 배급은 이루어진다. 아직도 엑조티즘이 서구 관객에게는 어필한다고 본다. 마지막은 스타를 만드는 것이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왕가위, 기타노 다케시 같은 감독의 영화는 브랜드의 힘만으로도 배급을 가능하게 한다. 지난 98년 베를린영화제에서 김기영 회고전을 가졌는데, 그 파급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최근에도 여러 영화제에서 김기영 회고전을 기획하고 있을 정도다. 이러한 스타 감독의 출현은 한국영화 위상을 한껏 높이는 구실을 할 것이다. ▶희망의 속삭임, 이젠 한국이 뜬다 ▶<바람 속의 속삭임>은 어떤 영화?

<바람 속의 속삭임>은 어떤 영화?

런던 인터내셔널 필름스쿨에서 ‘셰익스피어 감독’으로 통하는 김판수 감독은 유난히 사극 또는 시대극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바람 속의 속삭임>(Whispers in the Wind) 직전에 만들어졌던 단편 <모반>(The Rebellion)도 이러한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반역을 꾀하는 신하들의 혁명을 그린 이 작품은 고증과 세트 디자인을 거쳐 한국 사극으로 만들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런던의 조그만 스튜디오에서 한국 사극이 만들어진 것이다. 무대를 영국 중세로 옮겨온 <바람 속의 속삭임>도 주제나 형식면에서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무사들의 ‘신의’가 강조되었고 80% 이상 세트를 지어 촬영되었다. 아서 왕 시대를 염두에 두고 고증을 했다는 이 작품과 전작의 변별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영주가 신하를 처형한다는 것이다. 감독의 개인적 체험, 즉 산에 올라갔을 때 마치 바람이 자신에게 뭔가 속삭이며 유혹하는 듯한 기분에 힌트를 얻어 만들어진 <바람 속의 속삭임>은 마법사의 유혹에 넘어가 신하를 처형하는 영주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된 줄거리지만 영화의 맨 마지막에 가서 이러한 영주의 행위는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든다. 정말 영주가 신하를 죽인 것일까?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결국 영화는 신의에 대한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다가 어느새 <라쇼몽>의 철학적 물음에까지 와닿는다. 얼마 전에 가진 시사회에서 <맥베스>와 <라쇼몽>의 이종결합이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던 이 작품에 감독은 ‘일체 유심조’라는 말을 남긴 원효 대사의 설화도 영화 속에서 엿볼 수 있을 거라고 한마디 거든다. 셰익스피어가 좋아 영국에서 영화를 공부한다는 전직 영문학도 김판수 감독은 당연히(?) 좋아하는 감독으로 구로사와 아키라를 꼽는다. 현재 모든 사건이 ‘궁궐’에서만 일어나는 <궁>이라는 장편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 ‘셰익스피어 감독’ 김판수가 만들 셰익스피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센스, 센스빌리티> 로 영국인의 감성을 탁월한 이성적 안목으로 읽어낸 미래의 리안의 모습을 그에게서 기대해본다. ▶희망의 속삭임, 이젠 한국이 뜬다 ▶인터뷰 | 영화평론가 스티븐 크렘린

마르 델 플라타 국제영화제

◆<물고기자리> 출품된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 국제영화제를 다녀오다 마르 델 플라타=김형태/ 영화감독·<물고기자리> <물고기자리> 해외 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미로비전에서 <물고기자리>가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MAR DEL PLATA)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마르 델 플라타 영화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영화제로 날아가기 전까지 나는 관광 도시로서의 마르 델 플라타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을 뿐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대서양을 따라 400km 남하한 곳에 위치한 ‘은빛 바다’라는 뜻의 해안도시, ‘아르헨티나 낙원’(Atlantina Argentina), 한낮에는 일광욕이나 쇼핑을 하고, 밤에는 8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카지노에서 블랙잭을 즐길 수 있는 남미 최대의 휴양지, 19세기 후반 이래 아르헨티나 상류층에게 휴양지로 사랑받았고, 근래에는 가족 단위의 관광지로 각광받는 도시라는 것 정도. 아르헨티나 직행 노선이 없는 관계로 나는 권영일 프로듀서와 함께 서울을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마르 델 플라타까지 27시간을 날아 영화제 현장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3월6일 출발해 8일에 도착한 것이다. 멀고 먼 나라였다. 이보다 더 먼 여행, 더 먼 영화제가 또 있을까. 자도 자도 끝이 없이 지루한 비행 시간이었지만, 마르 델 플라타라는 미지의 도시에 대한 궁금증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가는 동안 동양 사람을 단 한명도 구경 못했던 우리는, 숙소인 셰라톤 호텔에 도착해서야 조직위원회에서 통역자로 소개해준 한국인 교포 2세 모니카를 보고 마치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밤 8시에 우리는 많은 시민이 둘러싸고 있는 붉은 양탄자를 밟으며 개막장소인 오디토리움(시립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코레아’와 ‘피시이스’(<물고기자리>의 번역제목 Pisces의 에스파니아어 발음)를 외치며 반갑게 맞이해 주는 시민들에게 우린 모니카에게 배운 ‘그라시아스’(감사하다는 에스파니아어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한국영화가 소개된 적이 별로 없고, 올해 경쟁 부문에 중국이나 일본영화가 한편도 없어서인지 한국영화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줬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축하 메세지와 함께 올 베를린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의 <늪>(La Cienaga)이 개막작으로 상영되며 영화제의 열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라틴 관객들, 아시아에 환호하다 >>>>> 마르 델 플라타 영화제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에서 칸, 베를린, 베니스 등과 함께 세계 10대 공식 경쟁 국제영화제, ‘A급영화제’로 분류하고 있다. 1954년 시작된 제법 유서깊은 행사다. 1회는 비경쟁 영화제로 앨프리드 히치콕 등의 영화를 소개했고, 경쟁영화제로 선회한 2회부터 잉마르 베리만, 프랑수아 트뤼포, 아서 펜 등 세계 유수의 감독과 예술영화를 발굴한 남미 최대의 영화제였다. 군부 정권이 들어서면서 1970년부터 중단됐다가, 1996년 다시 부활되어 올해로 16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도 각별해서 1996년 12회 때는 중국의 장위엔 감독이, 1998년 14회 때는 이란의 마무드 칼라리(Mahmoud Kalari) 감독이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영화로는 1999년 15회 때 배창호 감독님의 <정>이 비경쟁에 출품된 적이 있고, 경쟁 부문에 한국영화로선 처음으로 올해 <물고기자리>가 출품됐다. 1999년 15회 대회까지만 해도 매년 10월에 열렸지만, 우수한 영화들이 먼저 열리는 다른 영화제를 돌다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올해부터 3월에 개최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아르헨티나가 자국 영화제와 영화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올해는 경쟁작 18편을 포함해 총 163편의 영화가 출품되었으며, 심사위원으로는 지난해 카트린 드뇌브에 이어 줄리 델피가 참여해 많은 인기를 누렸다. 영화제 공식발표에 따르면, 초청인원 400명, 영화제 예산은 240만달러(31억여원).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먼 거리만큼이나, 우리가 아르헨티나영화에 대해 모르듯, 아르헨티나 역시 한국영화를 많이 모르고 있었다. 반면 기타노 다케시 감독과 장이모 감독 등의 영화들은 극장 개봉이나 케이블 방송을 통해 이곳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올해 비경쟁 부문에 출품된 왕가위의 <화양연화>가 일찍 매진되어, 아르헨티나에서도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제 둘쨋날인 3월9일 오전 <물고기자리> 기자 시사와 기자 회견이 있었다. 한국영화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을 반영하듯, 이곳 영화제에 참석한 기자들 역시 지난해 부에노스 아이레스 영화제에 출품된 <거짓말>과 베를린영화제의 <공동경비구역 JSA> 등 많은 한국영화를 열거하며 <물고기자리>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다음날 아르헨티나 최대 일간지인 <클라린>(Clarin)에선 “사랑과 고뇌를 동시에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언급과 함께 영화제 참가작품 중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소개하며 “약진하는 한국영화”라고 평가했다. 다음날 일반 시사에서도, 만든 사람의 의도에 따라 반응하는 현지 관객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준비하고 만드는 데까지 7년을 들인 <물고기자리>가 개봉 7일 만에 극장에서 내렸을 때의 슬픔과 허탈함을, 이곳에 와서 조금이나마 위로받은 듯 느껴졌다. 아르헨티나 영화, 지하철 역사만큼 유서깊은 >>>>> 아르헨티나 하면 마라도나, 에비타, 탱고 정도를 떠올렸고, 1970년대까지 강대국이었다가 지금은 IMF 금융지원을 받는 라틴아메리카의 한 나라로 알고 있었지만, 와서 보니 내가 얼마나 아르헨티나 대해 무지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하철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을 때, 이 나라 사람들은 이미 지하철을 타고 다닌 셈이다. 1908년에 세워진 콜론 극장(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도 아르헨티나의 ‘좋은 시절’을 반영하고 있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남미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전통과 명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영화제 중반에 열렸던 아주 특별한 시사회, 1929년에 아르헨티나에서 제작된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 시사도 그 전통과 명성의 한자락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행사였다. 거만할 정도로 자국 문화에 대해 자부심이 많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유럽의 영향을 받아 예술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또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때 연간 제작편수가 10편대로 떨어질 정도로 주춤했던 영화 산업도 다시 활기를 띠고 있었다. 현재 아르헨티나 영화의 1년 제작편수는 100여편에 이른다. 편당 순제작비는 평균 6억∼7억원선. 그중 70% 이상은 나라에서 주관하는 영화기구 ‘잉카’(INCAA)에서 제작비를 지원하는 형태이며, 나머지는 민간방송사인 <폴카>(POL-CA)에서 제작비를 투자한다. ‘잉카’에서는 저예산의 예술영화 위주로, <폴카>에서는 상업영화 위주로 제작하고 있다고 하는데, 관객의 선호도는 역시 <폴카>에서 만든 상업영화쪽. 극장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복합극장이 유행(전국에 1400여 스크린)이며, 할리우드영화가 상영작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60년대 아르헨티나를 라틴아메리카 혁명영화의 발원지로 만들었던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열기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 가버린 듯 했다. 영화제에 참가하는 동안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극장 시스템이었다. 경쟁작만 상영하는 오디토리움 극장은 1600석 좌석의 대극장이면서도, 사운드 시스템이 맨 뒷좌석까지 원음 그대로 전달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짜여져 있었는데, 그것이 아르헨티나 극장 전체의 중간 수준이라고 했다. 또 하나, 관객의 다양한 연령층에도 놀랐다. 50대 이상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관객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20대였을 때 아르헨티나는 경제 강국이었고, 그때 영화를 즐기던 그들이 지금 노인이 되어서도 이렇게 극장을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이런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다른 극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고개 들어 남미시장을 보라 >>>>> 10일간의 공식 일정을 끝내는 폐막식날, 작품상은 시골의 어린 도둑 이야기를 사실감 있게 표현한 폴란드 영화 <나는 도둑>(It’s Me, the Thief) 에 돌아갔으며, 감독상은 하녀 자매가 주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살해한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살인의 상처>(Les Blessures Assassines)의 장 피에르 드니(프랑스) 감독에게 돌아갔다. <물고기자리>는 수상을 하지 못했지만, 영화제 조직위원회 관계자가 아르헨티나 배급 의사를 밝혀왔다. <물고기자리>가 한국영화의 남미시장 개척에 조금이라도 일조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이곳 영화인들은 벌써부터 오는 4월 열릴 부에노스 아이레스 독립영화제에 출품될 한국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 작품들의 선전을 기대하며 앞으로 양국간 영화교류가 더욱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수상 결과 최우수 작품상 야첵 브롬키(폴란드) <나는 도둑>(It’s Me, the Thief) 최우수 감독상 장 피에르 드니(프랑스) <살인의 상처>(Les Blessures Assassines) 최우수 여우상 줄리 마리 파르멍티에(프랑스) <살인의 상처> 최우수 남우상 율리세스 뒤몽, 페데리코 루피(아르헨티나) <로사리가시노스>(Rosarigasinos) 최우수 각본상 야첵 브롬키(폴란드) <나는 도둑> 라틴아메리카 최우수 작품상 벤투라 폰스(스페인)<`anita no pierde el Tren`>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바친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맨숭맨숭 입에 올리던 별 뜻 없는 인사말이 이정향(37) 감독을 만나서는 가장 굵직한 질문이 됐다. 3년 전 겨울 우리를 예쁜 자전거에 태워 미술관 옆 동물원에 데려다놓고는, 지금껏 편지 한통 없었던 그녀가 드디어 두 번째 영화 소식을 알려왔다. 왜 그리 오래 걸렸냐고 볼멘소리를 하려다보니, 하긴 이정향 감독은 언제나 넉넉한 ‘쉼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조감독이 되고, 두 번째 조감독을 하고, 데뷔하기까지 그는 매번 2년, 3년의 터울을 타박타박 건너왔으니까. 튜브픽처스가 <파이란>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하는 영화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는, “엄마가 섬 그늘에…” 하는 동요 소절을 흥얼거리게 만드는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 갑작스런 ‘동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세상이 잘 알지 못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일러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집으로…>는 <미술관 옆 동물원>과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을 만들어낼 궁리인지, 물어야 할 것은 딱 두 가지라 생각했는데, ‘수다’가 끝났을 때 테이블 위의 1.5리터짜리 오렌지주스 병은 텅 비어 있었다. 그동안 뭘 하고 누구를 만나며 지냈나. 한 1년은 <미술관 옆 동물원>을 잊는 일을 했다. 동네 만화가게를 두루 돌아다녔고 집 근처 한강변도 걸었다. 밖에서 타기는 좀 창피해서 집안에서 킥보드를 타기도 했고. 케이블TV 드라마 <섹스 앤 시티>와 <프렌드>도 방영시간 맞춰 택시를 잡아탈 정도로 즐겨봤다. 친구는 한두명만 만났다. 지난해에는 <미술관 옆 동물원> 개봉에 앞서 도쿄와 나고야도 다녀왔고 2월 말에는 포르투갈 포르투영화제에 가서 꿋꿋한 포즈로 퇴락한 15세기 도시 건물들을 보고 감동받기도 했다. <가을동화>도 무척 재미있게 봤다고 들었다. 공들인 배경이 좋았다. 줄거리보다는 대사가 정갈하고 예뻤고, 원빈이라는 배우가 정말 근사했다. 일과 일 사이에 터울이 왜 이리 긴가. 기본적으로 일하는 것을 고통스러워하고, 가능하다면 조금만 일하고 싶어한다. 코알라를 닮았다. 코알라는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욕창이 생기는 게으른 동물이란다. 빈둥거리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체력이 약하기도 해서 충분히 쉬고 재충전하자는 주의다. 두 번째 영화에 들어가기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지난해 3월, 완성된 시나리오를 <미술관 옆 동물원>의 제작사에 가져갔는데 기획도 시나리오도 거의 재고 여지가 없다는 거절을 받았다. 그리고 영화사가 갖고 있던 로맨틱 코미디 한편을 제의받았지만 할 생각이 없었다. 마음을 크게 다치고 좌절해서 영화사는 물론 친구들에게도 시나리오를 보이지 않고 은퇴까지 생각했는데, 할머니와 아이에 대한 저예산 영화이야기를 들었다며 튜브픽처스의 황우현 이사가 6월경 연락을 해왔다. 뜻밖에도 튜브와 또 한곳의 같이 일하고 싶던 영화사, 두 제작사에서 의외로 긍정적인 답을 해와 오래 고민하다 먼저 답을 준 튜브픽처스와 일하게 됐다. 2월 초에 결정됐다. <집으로…>는 언제 처음 착상한 이야기인가. <집으로…>는 1997년 초 <미술관 옆 동물원> 시나리오를 써놓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썼던 시나리오다. 쓸 때부터 이건 나의 두 번째 영화가 될 거야 했는데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웃음) 지금도 갖고 있는 초안들 중에 이게 세 번째다 싶은 작품이 있다. 감독의 말로 <집으로…>를 소개한다면. 우리 모두의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아들을 혼자 키우던 젊은 엄마가 생활고로 말미암아, 떠나온 지 10년이 넘은 고향의 어머니에게 일곱살난 아들을 잠깐 맡긴다. 평범한 어린아이인 손자는 구질구질한 시골을 싫어하지만 벙어리인 할머니와 한달간 생활하면서 둘 사이의 뭔가가 변한다. 결국 아이와 엄마는 그들의 ‘집으로’, 할머니도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의 시선은 상우라는 이름을 가진 손자의 것이지만, 주인공은 산처럼 끄떡없는 할머니다. 상우는 그러니까 돌아오는 게 아니라 돌아가는 셈이다. 최근 개봉작 중 히가시 요이치 감독의 <그림 속 나의 마을>이 생각나는데. 행여나 비슷할까봐 <그림 속 나의 마을> <동동의 여름방학>, 허안화의 <상하이의 휴일>, 중국영화 <마음의 향기>를 봤다. 하지만 다행히 설정이나 풀어나가는 방식, 캐릭터가 판이했다. 영화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 비슷해질까봐 남의 영화는 안 본다. 작년말부터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에서는 어떤 이야기도 자기 식으로 찍는 이재용 감독의 <순애보>가 가장 좋았다. 외할머니와 각별했나. 태어날 때부터 늘 계셨고 함께 살았던 외할머니가 지난해 여름 아흔으로 돌아가셨다. 다른 손주도 예뻐하셨지만 우리는 특별히 친밀했다. 나는 할머니와 많이 싸우고 못되게 굴었다. 할머니와 나는 소리지르고 짜증내고 싸웠지만 서로가 없으면 못살았다. 오빠와 여동생은 엄마 가슴을 만지려고 떼를 썼는데 남매 중 아웃사이더였던 나는 스킨십과는 좀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할머니와 나눴던 것 같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할머니 이야기를 울지 않고 하기는 퍽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영화에는 개인적 기억도 들어가겠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할머니는 곧 자연이다. <집으로…>에서 할머니는 벙어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사투리 녹취를 누구에게 하나 고민하다, 불현듯 자연이 말이 없듯 할머니가 말을 못한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할머니를 벙어리로 설정하고 수화책을 샀다. 내 외할머니도 언어발달이 미숙했다. 이도 성치 않고 일만 하느라 사람을 많이 못 만나서였다. 식구 중에서 나만은 그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왜 친할머니가 아닌 외할머니인가? 왜 손녀가 아닌 손자인가. 친할머니, 외할머니의 차이는 아시아에서 여성의 위치와 관계 있다. 가부장 사회에서 가장의 어머니인 친할머니에 비해 며느리의 어머니인 외할머니는 약자다. 나는 친할머니, 외할머니를 다함께 모시고 살았는데, 친할머니 밥을 늘 외할머니가 챙겼다. 아들을 둔 어머니라도 딸네 집에 가면 위치가 격하되는 것이다. 우선 약자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풀고 싶었다.손녀 아닌 손자로 정한 것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현장에 남자배우가 하나라도 있었으면 바라서일까? (웃음) 그게 아니라 내가 할머니를 주로 사내애들 짓거리로 괴롭혀 드렸기 때문인가 보다. 아마 이정향 감독에게 <미술관…>의 춘희 같은 여자이야기를 다시 기대한 사람이 많을 텐데, <집으로…>는 좀 모험적인 선택으로 들린다. 부담은 없나. 첫 영화 때는 여자감독이라는 핸디캡이 있어 확실한 상업영화가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술관동물원>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상업영화이면서도 시나리오의 이중구조가 신인다운 신선함을 담고 있어서 데뷔작으로 적합했다. 두 번째는 다른 영화를 하고 싶었다. <미술관…>은 음식으로 치면 온갖 조미료에 고명을 얹은 현란한 영화다. 하지만 멸칫국물에 가장 간소한 재료로 맛을 내는 좋은 음식도 있다. <집으로…>에는 판타지도 플래시백도 은유도 풍자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좋아할 듯한 이야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소재에 관한 걱정보다 전작을 본 관객이 갖는 영화의 질(質)에 대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염려된다. 기본적으로 완성도가 높으면 관객은 온다고 믿지만, 하겠다고 나선 제작사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여러 번 한다. 그래서 고맙다. 제작사도 스탭들도 내가 흥행감독이어서가 아니라 이 시나리오에 대한 애정으로 달려들어 주었다. 공간과 인물 관계가 간소한 점은 <미술관…>과 비슷할 듯한데. 그렇다. 아이와 할머니, 몇몇 동네 사람이 나오고, 공간도 산골 마을의 집과 마당이 전부다. 주인공이 여자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점도 같다. 춘희를 통해 여성 내면의 미를 보여줬다면 이 영화에서는 여성의 또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싶다. 꼬마 상우도 <미술관…>의 철수가 어렸을 때 이렇지 않았을까 싶은 캐릭터다. 폴 뉴먼과 영화음악을 좋아하다가 영화에 이끌렸다고 들었다. 역시나 <미술관…>은 배우와 음악이 오래 남는 영화였다. 이번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는. 장소와 배우다.장소는 인물과 연결돼 있다. 아역 탤런트 둘을 후보로 저울질중인 상우 역을 빼면 비전문 배우를 기용한다. 특히 할머니와 마을은 닮아 있어야 한다. 마땅한 공간을 정하면 그 안에 할머니가 계실 것 같다. 그분을 찾아 그분이 살아온 집에서 찍을 생각이다. (막막한 표정을 짓자) 기적을 바랄 뿐이지만 꼭 찾을 것 같은 믿음이 있다.결정만 되면 한달쯤 내가 먼저 집에 들어가 밥도 얻어먹고 기숙하려 한다.지난주에도 강원도와 충청도로 팀을 나눠 헌팅을 다녀왔다. 시골 할머니도 몇분 인터뷰를 하긴 했다. 헌팅이 빨리 되면 일주일 안에라도 크랭크인하고 여기서 막히면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제작 환경은 만족스럽나. 팀은 다 꾸려졌는지. “이건 이래도 될까요?”라고 제작사쪽 의견을 물으면, “그건 감독님 마음대로 하는 건데…”라고 답해서 당황했다. 내가 잘못하는 결정까지 전폭적으로 따라주는 듯해서 겁이 더럭 나기도 한다. 그만큼 연출에 전념해서 잘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음악과 편집은 <미술관 옆 동물원>의 스탭과 다시 뭉쳤다. 촬영, 조명, 미술은 신인인데, 데뷔할 무렵 목숨바쳐 일하던 나의 초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 부럽기도 하다. 대강의 스케줄은. 봄에 찍어야 한다. 왜냐면, 찍다가 더워지는 건 몰라도 찍다가 추워지는 건 내가 못 견디니까.겨울보다는 여름이 낫지만 여름은 벌레가 많아 골치다. 두꺼비, 뱀, 개구리도 무섭고. 내 욕심으로는 7월까지는 프린트를 뽑아냈으면 한다. 영화가 잘 나오면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에게 바친다는 헌사를 넣으려 한다. 못 만들었는데 그렇게 하면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를 욕되게 할 것 아닌가. (웃음) 이렇게 맑은 날이면, ‘외할머니가 살아계신다면 같이 할 텐데’ 싶은 일이 없는지. 휠체어에 앉혀 아파트 밖으로 산책시켜 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휠체어도 없었다. 할머니는 참 고우셨는데 노인네가 귀신꼴로 나가면 뭐하냐고 고개를 흔드셨다. 하지만 생전에도 한번 못해드린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너무 뻔뻔한 것 같고 그냥,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 순대랑 피자 이런 걸 사서 드시게 해드리고 싶다. 외할머니는 계란프라이도 아깝다며 잘 안 드셨다. 글 김혜리 기자 vermeer@hani.co.kr 사진 이혜정 기자 hyejung@hani.co.kr

<친구>를 둘러싼 4가지 의문

<친구>가 흥행 폭풍을 일으키면서, 다소 모호하기 처리된 장면에 대한 네티즌들의 문제제기와 갖가지 해석이 인터넷과 PC통신을 뒤덮고 있다. 오해가 있으면 ‘친구’가 아니다. 각본까지 쓴 곽경택 감독의 조언을 얻어 이 의문들에 대한 답을 마련했다. 의문 1. 준석의 아버지는 동수가 죽였다? 중국집에서 차상곤이 “이기 바로 의린기라”며 동수에게 칼과 수표를 건네는 장면 바로 다음에 준석 아버지의 장례식장이 이어붙다보니 이 관련없는 두 시퀀스의 충돌은 묘한 연상작용을 낳았다. 그것은 바로 동수가 준석의 아버지를 죽였을 거라는 추측. 그러나 앞서 준석의 아버지가 형두(기주봉)에게 “내는 더 미련도 없다”하는 말은 간암으로 죽을 날짜를 받아놓고 있던 상태에서 나온 말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그래도 한 몇 개월 더 간다 카드라…”라는 말이 있었다. 감독은 장례식장에서 동수가 준석에게 애정어린 눈빛과 말을 전달하는 것으로 그 시점까지는 둘 사이가 ‘친구’사이였음을 표현했다. 의문 2. 동수의 마지막 대사는 무엇인가? 비오는 거리, 시퍼런 사시미칼에 수도 없이 찔리던 동수가 미친 듯이 자신을 찌르고 있는 준석 조직의 막내와 눈이 마주치자 힘겹게 내뱉는 말. 듣는 이에 따라서는 ‘허파부터 아이가’(허파를 찔러야 말을 못한다는 ‘살인강습’ 장면이 앞에 있다) 혹은 ‘나이를 이만큼 먹은 사람은 그만큼만 찔러도 죽는다’식으로 제각기의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장동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많이 찔렸으니 그만해도 죽는다’는 이 말은 칼을 ‘먹는다’는 것이 ‘찔린다’라는 건달식 표현을 알아차린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사투리에 죽어가는 신음소리, 게다가 빗소리와 어우러진 장중한 음악까지 함께 흐르는 바람에 여러 가지 창의적인(?) 해석을 낳게 되었다. 의문 3. 마지막 장면에서 준석은 죽는 것이다? 친구와의 면회를 끝내고 준석이 감옥의 복도를 걸어가는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참담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헨드핼드로 흔들리는 화면은 그런 의문을 증폭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 준석은 10여년의 형을 받고 복역중이고 영화 속 준석 또한 죽는 것은 아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죽이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멀쩡히 살아 있는 내 친구를 아무리 영화지만 죽이기는 싫었다”고 한다. 그저 감독은 면회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어린 시절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고 “준석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준석의 얼굴이 화이트 아웃되며 유년 시절의 해변가로 마무리지었다고 한다. 의문 4. 동수는 준석이가 죽였나? 가장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동수는 누가 죽였나”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동수 살해를 지시한 건 준석이다. 동수의 죽음과 연관된 몇 가지 부가 의문들을 풀어가면 해답은 분명해진다. ▶부가의문 1. 소주잔은 왜 3개인가? 도루코가 죽고 난 뒤, 준석의 표정은 계속 굳어 있다. 아버지 산소 앞에 준석은 소주잔을 올린다. 한잔은 아버지를 위해 한잔은 어머니를 위해,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올리는 잔은 무엇일까? 이미 이 시점부터 준석은 도루코를 살해한 동수를 제거하라는 지시를 상부로부터 받은 상태.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조심스럽게 올리는 마지막 소주잔은 ‘동수를 위한 잔’이다. 이 장면은 영화상에서는 준석이 나이트클럽을 찾아가기 전에 나오지만 시나리오상에는 동수의 죽음과 교차편집되어 있다. 감독은 “시나리오대로 붙여보니 동수의 죽음의 긴장감이 떨어져” 이 신을 앞에 배치했다고 한다. ▶부가의문 2.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했던 말’은 무엇인가? 동수를 죽이기로 결심한 준석은 동수와의 마지막 협상을 위해 나이트클럽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준석은 동수에게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니가 내보고 했던 말 생각나나” 하고 묻는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했던 말은 바로 이것. “내는 이제 고아다”라며 비통해 하던 준석의 말에 동수는 “니는, 어른이다 아니가”라며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준석은 이런 식으로 어린 시절을 상기시키면 혹시 동수가 “하와이로 가라”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까 하는 기대를 품은 것. 또한 이런 환기는 준석의 제안을 거절한 동수로 하여금 방심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다. 그렇게 가까웠던 친구인데 설마 어떻게 하랴 하고 동수도 관객도 마음을 풀 때, 준석의 무서운 지시가 떨어지는 것이다. ▶부가의문 3. 떨어지는 담배는 왜 클로즈업되나? 담배꽁초를 떨어뜨리는 것은 협상의 성패 여부에 따라 동수를 제거하라는 신호라고 보면 된다. 이 지시에 따라 동수를 배신하고 은기는 동수의 목을 조르고 행동대원들의 공격은 시작된다. 원래 동수의 수하에 있었던 은기는 이미 준석의 조직으로 돌아선 상태. 준석이 소지품검사를 당하던 장면에서 불안하게 담배를 피워대던 은기의 모습에서 배신을 앞둔 초조한 심경이 드러난다. 나이트클럽에서 나오던 준석을 마치 멀리서 지켜보는 듯 처리되었던 신은 보통 가해자의 시점으로 공격할 대상을 지켜보는 방식을 리버스함으로서 관객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혼란을 가져다 준다. ▶부가의문 4. 그렇다면 ‘왜 쪽팔리나’? 면회실, 상택은 준석에게 왜 법정에서 동수의 죽음을 사주한 사실을 인정했냐며 ‘니, 와그랬노’라고 울먹이며 묻는다. 그때 준석의 입에서 무심하게 흘러나온 말 “쪽팔리서…”. 이 말은 ‘정의감에 불타는 아줌마의 남편’의 경우 ‘준석이 동수를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자의적인 해석을 내리며 준석이 동수의 죽음을 사주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지만, ‘쪽팔리다’의 가장 적절한 해석은 본인이 사주한 일들을 시인하지 않았을 경우 행동에 옮긴 ‘동생’에게 모든 죄가 떠맡겨질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게다가 ‘건달 비즈니스적’으로 생각한다면 부인하는 것이 상례이겠지만 동수라는 ‘친구’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은 그에게 ‘쪽팔려선 안 된다’라는 생각을 부채질한 것. 백은하 기자 ▶ <친구> 지지론 - 아픈 시절, 아름다운 녀석들 ▶ <친구> 비판론 - 맹목적 우정, 눈먼 신화

다시 문제는 아이디어

<스파이 키드>의 선전으로 할리우드에 부는 가족영화 바람 할리우드에 ‘때 아닌’ 가족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방학과 크리스마스 메뉴이던 가족영화가 제철을 무시하고 속속 제작에 들어가고 있는 것은 최근 개봉한 <스파이 키드>의 선전 때문. <스파이 키드>는 개봉 2주째 부동의 1위를 고수하면서, 박스오피스 1억달러 고지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가족영화를 준비중인 제작자들은 “마케팅만 잘하면, 시기와 무관하게 관객이 몰린다”며 고무돼 있는 상태. 도 <스파이 키드>의 성공 사례가 “가족영화가 할리우드의 엘도라도”임을 입증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1990년 <나홀로 집에>의 성공 이후, 가족 단위 관객을 겨냥한 작품들은 대부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었다. 이는 <나홀로 집에> 이후 영악한 어린애와 멍청한 악당의 대결을 그린 졸속 아류작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실사 가족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진데다가, 제작자들이 캐릭터 상품 등의 다양한 머천다이징으로 부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선호하게 됐기 때문. 여러 가지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스파이 키드>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컴퓨터게임에 단련된 어린 관객에게는 화려한 액션과 세트, SFX 등 매혹적인 비주얼을, 007시리즈를 보고 자란 성인 관객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고 있다. <스파이 키드>는 개봉 2주째 맞붙은 <포켓몬3>을 가볍게 누를 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 3500만달러로 제작된 <스파이 키드>는 홈비디오와 DVD 판매 수익만으로도 제작비와 마케팅비를 환수할 수 있다. 미라맥스는 <스파이 키드>의 TV 방영권을 폭스사에 팔았고, 벌써 속편을 기획하고 있다. <스파이 키드>를 이을 기대작은 11월 개봉 예정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사 니켈로데온은 시간을 멈추는 시계에 대한 액션어드벤처 <클락스토퍼스>의 촬영을 마쳤고,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또래 관객을 겨냥한 또다른 프로젝트들을 기획중이다. 이 밖에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가족영화 프로젝트가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족영화 제작이 활기를 띠고 있는 데는 <스파이 키드>의 선전이라는 계기만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가족영화는 극장 개봉 향후 몇년간 홈비디오, DVD, 케이블, 머천다이즈 등으로 꾸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고, 미국 내에서보다 세계 시장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시장이 넓고 상품 개발 가능성이 많다는 것. 또한 캐스팅 디렉터들이 입을 모으듯, 어느 때보다 재능있는 아역 배우들이 넘쳐난다는 사실도 제작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그러나 그만큼의 위험 부담도 있다. 이는 최근 <발렌타인> <슈거 앤 스파이스> <톰캣츠> 등 10대 영화들의 연이은 실패가 보여주는 교훈. 는 한 제작자의 말을 인용, 가족영화의 제작 러쉬가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을 경고한다. “한때 10대 영화가 3천만달러에서 4천만달러의 흥행 보증 수표이던 시절이 있었지만, <톰캣츠>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젊고 예쁜 배우들과 실없는 농담만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수 없다. 아동영화는 더 힘들다. 안일하게 기획된 영화는 안목있는 부모들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스파이 키드>의 제작사 디멘션의 밥 와인스타인 회장도 “시장을 망치는 것은 빈약한 상상력”이라며, 중요한 것은 ‘다시’ 창조적인 아이디어임을 강조하고 있다. 박은영 기자

입소문? 없으면 만들어!

할리우드영화 인터넷 마케팅, 가짜 팬사이트 제작에 열올려 영화팬인 당신은 좋아하는 영화의 공식 홈페이지와 팬사이트 중 어떤 것에 더 마음이 끌리는가. 물론 거칠지만 생생한 느낌이 살아 있는 팬사이트라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나온 할리우드영화의 팬사이트에 접속할 땐 눈을 크게 뜰 필요가 있다. 팬사이트임을 자처한 여러 사이트 중에는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가짜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의 기사에 따르면 최근 LA 인근 지역의 한 컴퓨터 박사는 여러 스튜디오에 영화 15편의 가짜 팬사이트를 만들어주고 15만달러의 거액을 챙겼다고 한다. 주당 1만달러가 넘는 이 알짜배기 아르바이트의 핵심은 좀더 촌스럽게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 홍보용 사진 대신 잡지책에서 오린 사진을 쓴다거나, 혹은 스튜디오에서 제공한 일부러 엉성하게 찍은 세트 사진을 쓰거나, 일부러 덜 세련된 디자인의 글씨체를 쓰거나 하는 것이 구체적인 방법이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홈페이지 주소를 추적해도 스튜디오의 이름은 찾을 수 없도록 해 홈페이지에서 제작사의 정체를 못 찾아내도록 하는 것이 이들 임무의 마지막. 가짜 웹사이트들의 목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입소문을 내는 것이다. 영화관계자들이 관련 게시판에 들어가 팬을 가장하고 글을 올리거나 하는 방법이야 이전에도 많이 쓰였지만 팬들이 만든 비공식 홈페이지들이 점차 힘을 얻으면서 이처럼 스튜디오들이 사이비 팬사이트를 조작하는 것이 새로운 게릴라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입소문에 목숨 거는 스튜디오와 온라인 공간의 익명성이 만나면서 영화 <블레어윗치>가 낳은 인터넷 마케팅 바람이 약간 이상한 방향으로 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블레어윗치>가 실화를 가장한 홈페이지로 관심을 모은 것처럼 뉴라인시네마가 지난해 제작한 스파이크 리의 영화 <뱀부즐드>는 영화 속에 나오는 텔레비전 쇼의 내용만을 가지고 홈페이지를 만들어 이곳을 찾은 팬들로 하여금 텔레비전 쇼가 실제로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3개국의 영화팬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는 ‘카운팅다운 닷컴’(countingdown.com)의 경우 ‘최고의 팬사이트’를 자처하며 영화팬들을 위한 각종 영화정보와 포럼 사이트임을 내세우지만 지난해 드림웍스가 소유권을 일부 갖게 되면서 아직 시나리오도 써지지 않은 <인디아나 존스4>의 홍보에 나서는 등 스필버그 영화에 가장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 순수 영화팬 사이트로서의 성격을 잃고 있다. 이처럼 활개치는 가짜 홍보 사이트에 대해 아직 이를 규제할 법은 없는 형편이다. 각종 미디어의 광고를 관할하는 정부기구인 연방무역위원회와 연방통신위원회 역시 아직 감시의 손길을 뻗질 않고 있어 이같은 가짜 사이트에 대해서는 스튜디오의 양심에 모든 걸 맡겨야 하는 상태다. LA=이윤정 통신원

<오디션>, 만화 vs 애니메이션

◆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탈바꿈중인 <오디션>, 제작현장을 급습하다 ‘드디어… 무대다!!’ 어두운 공연장, 미묘한 흥분과 호기심이 뒤섞인 공기 속, 무대라는 그들만의 세상 위에 4명의 소년이 등장한다. 타월을 목에 맨 채 맨발로 뛰어나온 보컬 황보래용, 긴 금발을 두 갈래로 묶어올린 미모의 드러머 류미끼, 덩치는 좋지만 순진한 인상의 베이시스트 장달봉, 눈을 찌르는 앞머리 뒤에 반항기를 숨긴 기타리스트 국철의 ‘재활용밴드’. 이들 4명이 꿈을 향해 오디션에 나서는 첫 무대는, 소리와 움직임이 유독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만화에서 태어난 재활용밴드가 지면 밖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으니까. 만화 <오디션>이 장편 애니메이션 <오디션>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디션. 언젠가 국내에도 미국의 <얼트 컬처> 같은 대중문화 용어사전이 나온다면, 이 단어에는 적어도 세 가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1. 배우, 가수 등 예능 지원자의 선발 심사. 2. 4명의 소년들이 음악이라는 꿈을 찾아 오디션에 참가하는 과정을 그린 작가 천계영의 음악만화. 3. 만화 <오디션>을 원작으로 라스코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의 재미와 질을 논하기에 앞서 <오디션>은, 인기만화의 단행본 판매수량이 권당 2만부 정도이던 시절 권당 10만부 이상 팔렸고, 노트 등 캐릭터 상품으로 특히 10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몇억원대 수익을 올린 전례없는 작품이다. 그렇게 시장에서 검증받은 <오디션>이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 세 번째 설명 뒤에 따라붙을 말이 ‘원작 못지않은 성공을 거둔 히트작’이 될지, ‘원작의 인기에도 불구하고…’가 될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말이다. 만화 <오디션>, 순정만화계의 블록버스터 <오디션>은 98년부터 지금까지 만화잡지 <윙크>에 연재되고 있는 천계영의 음악만화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들이 밴드를 만들고, 제목그대로 ‘오디션’을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들이 모이게 된 계기는 음반업계의 최대기업인 송송그룹의 오디션. 송송그룹 회장이 외동딸 송명자에게 자신이 10여년 전 우연히 만났던 4명의 음악천재를 찾아내서 오디션에 우승해야 유산을 상속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4명의 천재란 전북 초광역 근처 풀밭에 앉아 자연의 소리에서 음계를 찾아내던 달봉, 해운대 바다에 빠졌을 때 1km 떨어진 해안에까지 들리도록 커다란 미성으로 구조를 외치던 래용, 동호대교 난간을 막대기로 긁어 소리를 내면서 정확히 2초마다 그 리듬을 바꿔대던 미끼, 날렵한 손놀림으로 음반점에서 훔친 CD를 처음 듣자마자 뮤지션의 내면을 꿰뚫던 국철. 아버지의 일기를 바탕으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4명의 소년들을 찾아내기 위해 명자는 고교 시절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사립탐정 박부옥을 찾아간다. 하지만 각각 중국집 배달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왕따 고교생, 데뷔 직전인 신인가수의 백댄서, 강력반 반장에게 쫓기는 유능한(?) 소매치기로 변한 소년들의 현재는, 음악적 재능을 묻어버릴 만큼 비루하다. 생활에 찌들어 악기를 만져볼 일조차 없던 이들은 명자에게 ‘재발견’되고, 재활용밴드를 결성해 320여개팀이 토너먼트식으로 겨루는 오디션에 나선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축은 재능만큼이나 개성이 제각각인 아이들의 캐릭터와 오디션의 대결구도다. 특히 청학동 총각들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청학동 댕기즈, 밸런타인 데이에 전국에서 가장 초콜릿을 많이 받는 멤버로 구성된 여성 5인조 밸런타인 넘버원 등 록과 힙합, 댄스를 넘나드는 가지각색의 팀들이 겨루는 오디션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사건. 성대결절로 12살에 가수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음악신동, 금세 등을 돌리는 세상에 절망하고 남성을 거세한 뒤 티베트에서 섀도 창법(한 사람이 한번에 두 가지 목소리를 낸다는 전설적인 창법)을 배워 돌아온 카스트라토 이노무시키와의 대결 같은 설정은 극적 긴장감을 탄탄하게 유지한다. 관객의 환호소리를 측정하는 사운드 레벨미터, 코드의 반복이 리프라는 용어설명부터 임계가청주파수, 미국 록밴드 키스의 트리뷰트 밴드 ‘핫터 댄 헬’까지 끌어온 다양한 음악지식도 맛깔스런 감초. 늘씬한 몸매의 패션모델 같은 미소년, 미소녀 캐릭터들과 힙합 바지부터 드레스까지를 아우르는 화사한 패션, 젊은 유머감각도 10대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다. 하지만 <오디션>이 품은 보석은, 무엇보다도 힘겹고 불안한 10대의 그늘에서 꿈의 생기를 발견해가는 아이들의 성장기다. 백인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일하러 나간 사이,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방바닥에 누워 시계들의 엇갈리는 초침 사이를 쪼개는 놀이를 하면서 리듬을 발견하는 미끼의 사이드 스토리는 <오디션>이 그저 예쁘장한 팬시상품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아버지에 대해 아는 거라곤 뮤지션이었다는 기억밖에 없는 고아 철이가, 부자지간이라면 아버지의 음악을 알아들을 거라며 늘 노래가 흐르는 CD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음악에 눈뜨는 사연처럼, 경쾌한 무대 뒤로 따스한 사람의 체취를 전하며 읽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오디션>,뜨거운 관심만큼 부담스러운 그렇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원작만화 장편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라스코엔터테인먼트(이하 라스코)는 MBC의 <귀여운 쪼꼬미>, KBS의 <짱이와 깨모> 등 국산 창작 TV애니메이션을 주로 만들어온 제작사. 민경조 감독이 이끄는 라스코와 <오디션>의 인연은, 댄스그룹 H.O.T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우리들의 맹세>를 제작했던 98년 말로 거슬러올라간다. H.O.T의 매니지먼트사 SM기획에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라스코에 의뢰해왔고, 그때 H.O.T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고 있던 <오디션>의 작가 천계영씨를 처음 만난 것이다. 그 이전부터 순정만화 몇 편을 놓고 애니메이션 제작을 고려해왔던 민경조 감독은 천계영씨와 <오디션>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원작의 인기도 인기거니와, 지금까지도 연재중인 미완성의 작품을 완결된 애니메이션으로 구상하는 것은 적잖은 부담과 시간이 드는 작업이었다. 99년 5월부터 구체적인 기획에 들어가 여름 동안 천계영씨에게 시놉시스를 받고 스토리와 캐릭터 개발에 들어갔다. 스토리를 원작에 충실하게 갈 것이지 외전 형식으로 아예 바꿀 것인지, 2차원의 만화 캐릭터를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입체적인 디자인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드라마의 중요한 장치인 음악을 어떻게 쓸 것인지 등 까다로운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완결이 안 됐지만 단행본으로 7권까지 나온 내용만 다 소화하려고 해도 3∼4시간의 러닝타임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토리는 압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작진은 원래 8차에 걸쳐 진행되는 오디션 중에서 4가지 대결을 고르고, “음악을 중심으로 한 뮤직드라마로 가면서 사이사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인서트로” 집어넣는 방식을 택했다.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때 으레 발생하는 문제지만, 펜으로 그린 만화 캐릭터의 매력을 어떻게 애니메이션에 맞게 잘 살려내는가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원작이 있으면 아무래도 캐릭터 작업 때 운신의 폭이 좁다는 오덕환 작화감독은 “원작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고자 했지만 애니메이션의 성격상 펜으로 그린 만화의 디테일을 다 표현하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만화는 평면이지만 애니메이션은 3차원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캐릭터가 360도 입체감을 갖도록 변형해야 하고, 몇장이라면 몰라도 (<오디션>의 경우) 8만매 이상을 공동작업으로 그려내야 하는 공정에서 원작의 섬세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캐릭터 개발에만 6∼8개월씩 공을 들였음에도, <오디션>의 캐릭터 초안은 만화팬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지난 2월16일 라스코 홈페이지 오픈과 함께 캐릭터 초안이 공개되자 자유게시판에는 <오디션>의 진행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들의 반응이 올라왔다. 120여건에 이르는 글 가운데 캐릭터에 대한 실망을 담은 것들이 적지 않았다. ‘미끼사랑’, ‘래용천사’ 등 이름부터 <오디션>의 열성팬임을 감지할 수 있는 이들은, 캐릭터가 원작과 너무 다르다, 천계영씨에게 그림을 맡겨달라는 요구부터 원작을 망쳤다, 심지어 국산애니메이션은 망했다는 때이른 개탄까지 다양한 원망(?)이 들어 있었다. 4월에 수정한 2차 캐릭터 초안과 배경을 공개한 뒤 좀 나아지긴 했지만, 원작의 유명세를 톡톡히 치룬 셈이다. ‘진짜’오디션, 재활용밴드를 찾습니다 한편 만화에서는 상상만 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직접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은, 제작진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부분이다. 1차, 2차 등 차수마다 각각 다른 곡을 불러야 하는 오디션이 극을 끌어가는 만큼, 12곡 정도의 다양한 음악을 준비 중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일본의 록밴드 라르캉 시엘이 2곡을 만들기로 했고, 국내 밴드로는 경쾌한 모던록풍의 에브리 싱글데이와 하드코어펑크를 구사하는 닥터코어 911, 스래시와 인더스트리얼의 실험을 보여주는 크래시 등이 섭외된 상태. 라르캉 시엘은 엔딩곡과 4차에 걸친 오디션 가운데 음악적 클라이맥스랄 수 있는 카스트라토 이노무시키와의 대결곡을 맡을 예정이다. 막강한 상대 이노무시키의 곡으로는 카운터테너 파브리스 디 팔코의 <`Ombra Mai Fu`>를 내정해두고, 막 녹음을 끝낸 에브리 싱글데이의 곡 하나는 사이트에 미리 공개해 반응을 살펴보는 등 음악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16일부터는 재활용밴드를 대신해 <오디션> 주제가를 부를 뮤지션을 공모한다. 라스코 홈페이지와 마니또, N4U 등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국내 뮤지션들을 모집하고, 라르캉 시엘과 디 팔코의 일본 기획사 드림 아크스 관계자 등 일본 스탭들도 참여한 가운데 오디션을 거쳐 한팀을 선발할 계획이다. 제작은 현재 50% 정도 진행된 상태. 포이동의 망한 카페 하나를 모델로 재창조한 재활용밴드의 연습실, 예술의 전당을 참조한 오디션 무대, 여의도 고수부지 등 실제 장소 헌팅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그린 배경들은 거의 완성단계다. 기본적으로는 원화와 동화를 종이에 그린 뒤 컴퓨터에 스캔받아 채색부터 디지털로 작업하는 2D 디지털 애니메이션이지만, 오디션 무대를 입체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5∼6분 분량의 3D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할 거라고. 캐릭터의 수정, 보완이 끝나는 대로 동화와 채색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미 <명탐정 코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참여했던 마쓰조노 히로시가 초기 스토리보드를 그려준 것을 비롯해, 레이아웃, 색지정 등 일부 작업에는 도에이의 스탭들이 합류할 계획이다. 80∼85분에 이르는 장편을 만들기 위한 예상 제작비는 마케팅비용 6억원을 포함해 약 35억원선. 주요 투자자 중 하나였던 삼부파이낸스가 부도로 투자를 접으면서 한때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공동투자자 중 하나였던 멀티미디어업체 ‘미래를 여는 사람들’이 주투자자로 나서고, 라스코의 성원들이 각출한 회사자본금에서 부족분을 조달해가며 15억원 정도를 마련했다. 원래는 다소 빠듯하게 여름 개봉을 목표로 했으나, 예산과 캐릭터 보완으로 제작기간이 좀 늘어나면서 11월 완성을 바라보고 있다. 12월경 “어린이 회관이나 전시장이 아니라 극장”에 폭넓게 개봉하고, 동시에 일본 배급을 추진하는 것이 제작사의 바람. 주위의 우려와 기대에 대해 “지금 일일이 다 설명할 수도 없고,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감독의 말대로, 이제 남은 일은 팬들의 기대와 제작진의 노력이 만나는 그 지점 어딘가에서 <오디션>이 관객의 마음을 두드려줄 애니메이션의 리듬을 찾아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글 황혜림 기자 사진 이혜정 기자 ▶ <오디션> 캐릭터들 ▶ <오디션> 민경조 감독 인터뷰

뻥튀기영화가 좋다

1971년생·LA 레코딩 워크숍 졸업·UCLA 뮤직 비즈니스 레코딩, 엔지니어링 수학·<비트>(아태영화제 사운드이펙트상) <반칙왕>(한국영화축제 최우수녹음상) <오! 수정>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눈물>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친구> <파이란> 등 녹음. 라이브 톤 소속. 영상원 전문사 믹싱 강의 뻥튀기 영화가 좋다. 소위 리얼리티 영화는 할 일이 없다. 어떤 감독의 경우는 배경음에 애들 노는 소리를 넣어놨더니 현장음이 아니라며 빼달라고 했다. 애들 노는 소리가 리얼리티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리얼리티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태영씨가 생각하는 리얼리티란 현실적 음이 한번 더 ‘리얼하게’ 가공될 때 생긴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더라. 가죽점퍼가 내는 소리가 졸라봤자 때만 나올 헤드락보다 더 리얼하고, 휴지에 물을 묻혀서 짜는 소리가 피를 흘리는 소리보다 더 리얼하다. 만들어진 소리는 믿음을 강화한다. 감정선을 조절하는 것은 음악이다. 눈물이 나올려고 할 때, 문득 정신을 차려 귀기울여보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극도로 절제된 그 순간에는 효과음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그럴수록 음악이 조율하는 감정을 제 방향으로 가도록 한다. <친구>에서 동수가 칼을 열몇번 ‘먹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클래식이다. 비극적 죽음에 걸맞게 음악 또한 장중하다. 그런데 감독이 칼소리를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아름다워야 한다”는 단서를 붙여서. 그는 일반 칼을 시멘트에 갈아서 낸 소리(이것이 뼈에 칼이 닿는 소리 대신이다)에 서브 우퍼에서 소리가 나도록 저음을 보강해 유한 느낌이 나도록 했다. 칼이 몸을 파고드는 소리는 클래식이 자아내는 비극적인 정조에 소스라치는 잔인함이 끼어들게 한다. 진짜 소리가 아니라 여러 가지로 고심한 소리가 영화의 감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역시 짜가가 한건했다. <깊은 슬픔>으로 돌비디지털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할 때 미국에서 기술자가 왔다. 그는 미리 작업해놓은 소리를 보고 얼마 동안 작업했냐고 물었다. 2주간했다고 했더니,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6개월 동안 하라면 우리는 못한다”고 최태영씨는 농담을 하지만 벼락치기 일정은 불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못박은 개봉 날짜에 맞춰 후반작업 일정이 짜인다. 일단 기간이 지나면 미흡하다고 하더라도 “수고하셨습니다” 하고는 들고 가버린다. 할리우드 기술자도 놀라고 간 신속한 손놀림도 ‘딱 한달’은 필요하다고 한다. 덧붙이는 그의 바람. 소리를 감안한 그림을 찍어라. 할리우드영화의 경우에는 비행기가 지나가면 소리의 물결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런 소리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연결되지 않으면 난데없다. 그 전에 비행기가 등장하는 짧은 단독 신이 있다. 소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콘티를 짤 때 미리 고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는 그림 위주로만 콘티를 짜고 그렇게 찍어오기 때문에, 소리가 뚫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 그림에 어울리는 소리는 단순할 수밖에 없다. <소름>의 예고편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6.1채널로 녹음을 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에서부터 사용한 6.1채널은 우리나라에서 지금 상용되는 5.1채널에 백서라운드를 하나 더 첨가한 것이다. 그는 보물섬이라는 팀 활동을 했다. 세명이 노래를 부르는 그룹이었는데 그는 노래는 부르지 않고 미디연주와 편곡 등을 담당했다. 그러다가 음반 제작에 도움이 됐으면 해서 미국으로 갔고 과거와 그 당시의 인연이 공작해서 현재의 그를 만들어냈다. 노래방 가면 그가 소리에 입문했을 당시의 노래를 선곡할 수 있다. 제목은 “꿈의 세계로”. 글 구둘래/ 객원기자 사진 이혜정 기자

봄나들이

미친 더위에 때이르게 벚꽃이 피고, 황사 바람에 비까지 찾아들어 또 꽃들이 진다. 에이, 버얼써 졌지요, 출장을 다녀온 동료는 남녁 꽃소식을 묻자 타박을 한다(진짜 타박은 아니고, 웃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려면 여의도를 지나야 하는데, 늦은 밤 꽃가지 아래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쌍쌍의 남녀가 끝없이 줄을 잇는다. 그래, 봄밤나들이구나. <씨네21>도 계절을 못이겨 나들이를 준비했다. 길은 두 갈래다. 창간 6주년을 앞두고 여는 씨네21영화제가 그 하나. 지난 해 조선희 창간편집장이 시작한 이 행사의 출발배경은 단순하고 소박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국제영화제들이 생겨났고, <친구>처럼 부산에서 출발해 전국을, 영호남의 경계까지 넘어서 휩쓰는 영화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문화의 서울편중현상은 가시지 않았다. 좀더 단순하게 말하자면, <씨네21>의 독자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영화를 기사로만 읽는다는 얘기다. 독자시사회 같은 소소한 즐거움도 모두 서울분들 차지다. 편지함에는 그런 소외를 섭섭해하는 목소리들이 거의 언제나 담겨 있다. 그것이 올해에도 작은 만남을 준비하는 이유다. 서울부터 광주, 부산까지 여섯 도시를 돈다. 주문들이 무성하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이곳 극장에서 안 틀었어요. 꼭 구해주세요. 비디오가 나왔다지만, 어디 필름으로 보는 것만 한가요, <수쥬>도요. 우리도 <구멍>을 필름으로 보고 싶은데요. 새로운 영화들 사이에 '주문작'들을 챙겨 넣는다. 그 옆길은 좀 엉뚱해 보일지 모른다. 영화 밖으로 향하는 길들을 내고, 영화를 사랑하는 분들께 나들이를 청했다. '영화를 벗어나라'는 저희들의 명령형 제목에 부디 노여워마시기를. 8분의 평론가가 8권의 책을 추천해주셨는데, 이 책들은 이른바 영화책들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들의 정신의 지도를 정신분석적으로, 또는 문화정치적으로 작성하거나, '이성'의 이름으로 자행돼온 폭력과 억압을 해부해보이기도 한다. 아니다. 영화밖을 비추는 책이라고만 부를 수는 없는 것이 애초 영화가 세계나 인간과 절연된 별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봄날, 우리들은 어디선가 반드시 만날 것 같다. 씨네영화제가 열리는 어느 작은 극장에서건, 책들이 숲을 이룬 어느 공간에서건, 이런 인사가 필요할 듯 싶다. 그렇지요? 영화의 친구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