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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안현진의 미드 앤 더 피플] 개가 가르쳐주는 세상의 도

라이언(엘리야 우드)은 죽을 준비를 하면서도 한없이 찌질하다.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한 유서는 세번이나 고친 뒤에야 프린트했고, 의사인 누나가 처방해준 위약(僞藥)을 신경안정제라고 믿으며, ‘죽음의 셰이크’를 만들면서도 저지방우유과 단백질파우더, 유기농 바나나는 잊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드디어 마친 라이언, 셔츠 단추를 목까지 잠근 반듯한 정장 차림으로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데, 새 아침이 훤하게 밝더니, 평소 흠모해온 이웃 제나가 급한 사정이 생겼다며 애견 윌프레드를 맡기고 간다. 그런데 이 개는 그냥 개가 아니다. 라이언의 눈에 보이는 윌프레드(제이슨 간)는 어린이용 텔레비전 프로그램 출연자가 입을 법한 동물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다. 문제는 라이언의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 다른 이의 눈에 보이는 윌프레드는 까다로운 호주산 성견일 뿐이라는 것. 황당한 의인화는 그 정도의 점잖은 지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마리화나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거짓말에 능한 것이 윌프레드의 의인화에서 부각되는 사람에 가까운 면모라면 개코로 냉장고 안의 우유가 상하는 냄새를 맡고, 5km 밖에서 암컷 래브라도 두 마리가 성교하는 소리를 듣고,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보고, 곰인형만 보면 붕가붕가를 하려는 등 성견의 습성도 가지고 있다. 윌프레드를 둘러싼 아이러니한 설정을 적나라하게 포착한 순간은 윌프레드가 주인인 제나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부비는 장면이다. 라이언과 시청자의 눈에는 공중파 방영이 부적절한 성인용 장면으로 보이지만 제나는 한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그런 윌프레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쉴드> <저스티파이드> 등 남성 시청자를 겨냥한 프로그램으로 명성을 쌓아온 케이블 채널 에서 최근 첫 시즌 방영을 시작한 <윌프레드>는 호주에서 시즌2까지 방영된 동명의 TV시리즈를 미국에서 리메이크한 코미디다. 오리지널에서 동물옷을 입고 윌프레드를 연기한 제이슨 간이 리메이크에서도 호주 억양이 진하게 묻어나는 말투로 라이언을 가지고 논다. 원작에서 라이언의 역할은 간의 절친한 친구이자 <윌프레드>를 함께 만든 애덤 츠바르가 연기했다. <윌프레드>는 두 친구의 경험에서 싹을 틔운 프로젝트다. 여자친구의 애완견이 자신에게 유독 적대적이었다는 츠바르의 일화와 동물옷을 입은 배우들이 극장 밖에서 담배도 피우고 욕도 하던 모습이 재미있어 눈여겨보았던 간의 기억력 만난 2001년의 어느 날, 두 사람은 400만원가량의 자비를 투자해 7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2002년 호주 트롭페스트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코미디상과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수상했고, 2007년 TV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원작이 츠바르와 여자친구의 개가 친해지는 과정을 그렸다면 리메이크는 라이언과 제나를 커플이 아닌 이웃으로 설정하고, 매사에 소심하고 유약한 라이언의 성격을 강조해 남녀관계에 집중되었던 테마를 인간관계로 확장했다. <윌프레드>의 한 에피소드는 30분이 채 되지 않지만 행복, 수용, 두려움, 존경 등 인간사의 키워드를 은유와 풍자, 익살을 통해 그려낸다. 그런 의미에서 에피소드의 문을 여는 짧은 아포리즘은 에피소드의 함축이나 다름없다. “제정신과 행복은 불가능한 조합이다.”(마크 트웨인) “두려움은 쓸모가 있으나 비겁함은 그렇지 않다.”(마하트마 간디). “오직 자신을 믿어라. 그래야 다른 것들로부터 배신당하지 않으리니.”(토머스 풀러). 그렇게 라이언이 윌프레드를 만나 겪는 일탈의 모험은 삶의 조언으로 다가온다. 정작 제이슨 간이 말하는 <윌프레드>는 훨씬 단순하지만 말이다. “두 수컷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어쩌다보니 한쪽은 사람, 한쪽은 개다.”

취향에 따라 골라 보세요

즐감에서 10편 뽑았다. 극장에서 대접 제대로 못 받고, 관객과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 영화로 10편 뽑았다. 눈에 활기 불어넣고 결국엔 가슴치게 만드는 영화가 어디 10편뿐이랴. 즐감에서 자신만의 상영작을 직접 프로그래밍해보시라. <레드> 감독 로베르트 슈벤트케 / 출연 브루스 윌리스, 메리 루이스 파커 호시절 다 갔다고 낙담하는 아저씨들을 향한 대책없는 회춘가. 전직 CIA 요원인 프랭크(브루스 윌리스)가 꿈꾸는 건 과거의 영광도, 두둑한 연금도 아니다. 오십줄에 들어선 이 대머리 아저씨가 총탄 세례를 뚫고 전진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소설에나 나올 법한 불꽃 같은 로맨스를 위해서다. DC 코믹스의 동명 만화가 원작. 바주카포에 맞서 권총을 들고, 꽃꽂이하다 기관총을 뽑는 머리 희끗한 노인들의 못 말리는 액션이 끝내준다. 단, 프랭크 수법을 좇아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전화 걸어 여직원에게 돈 못 받았다고 수작 걸지는 말 것. 사랑은커녕 말년에 옥살이한다.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 감독 루이 시호요스 / 출연 리처드 오배리 돌고래 수가 급격하게 줄고있다는 흔한 환경보고서가 아니다. 이 영화의 부제는 ‘슬픈 인간의 진실’이라고 써야 옳다. 일본의 어촌마을 다이지에서 벌어지는 돌고래 사냥은 은밀하게 자행되어온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다. 그물망에 걸린 돌고래가 피를 뿜으며 죽어갈 때, 바다에 떠오르는 건 끝모르는 인간의 폭력과 탐욕이다. 살해 위협 속에서도 돌고래들을 생명의 바다로 되돌려보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활동가 오배리의 사연을 무신경하게 넘기지 말자. 참고로 한국의 한 지자체는 지난해 다이지로부터 돌고래를 사들여 떼돈을 벌고 있다. 2009년 선댄스, 2010년 오스카 수상작.

<도약선생> 감독 윤성호 / 출연 박혁권, 박희본, 나수윤 된장찌개에 햄을 넣는다면, 치즈 케이크에 고추장을 얹는다면. 윤성호 감독의 영화 레시피는 별난 조합의 연속이다. 장대높이뛰기 선수들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혹은 <국가대표>의 짠한 스토리를 떠올렸다간 30분이 채 되지 않아 환불 요구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영록 코치(박혁권)가 전수하는 트레이닝에 따라, 혓바닥을 쭉 내민 사자 자세 혹은 갈급한 사슴의 마음으로, 엉뚱한 끝말잇기 시합을 잠자코 지켜보다 보면 “수평에너지가 수직에너지로 전환”되는 도약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맑게 하고, 심장은 드높이고 싶은 20대에게 추천한다. <테이킹 우드스탁> 감독 리안 / 출연 디미트리 마틴, 이멜다 스턴튼 신화는 성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전설의 록 페스티벌 우드스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다루지만, 리안은 망원렌즈로 거대한 열광을 클로즈업하는 것에 그닥 관심이 없다. 무에서 유를 빚어낸 아름다운 성공스토리로 우드스탁을 포장하는 대신 리안은 당시 젊은이의 혼란에 돋보기를 가져다댄다. 무엇이 유대인이 모여 사는 화이트 레이크를 음악과 대마초에 흠뻑 빠진 히피들의 천국으로 변하게 만들었는가. 축제가 끝나고 거대한 쓰레기 더미로 남은 마을을 바라보며 엘리엇(디미트리 마틴)이 ‘아름답다’고 되뇌이는 까닭은 왜일까. ‘fucking’과 ‘beautiful’ 사이를 오가는 로드무비. <마더 앤 차일드> 감독 로드리고 가르시아 / 출연 나오미 왓츠, 아네트 베닝 카렌(아네트 베닝)은 호의를 받아들일 줄 모르는 여자다. 누군가의 접근을 그녀는 두려움없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엘리자베스(나오미 왓츠)는 호의를 극대화할 줄 아는 여자다. 그녀의 거리낌없는 접근에 누구든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딸을 버린 엄마 카렌의 죄의식과 엄마를 모르는 딸 엘리자베스의 욕망을 나란히 병치하면서 진행되는 이 가족드라마의 엔딩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까, 라고 의심하는 남자와 달리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라고 캐묻는 여성들의 러브스토리로 봐도 좋다.

<트루맛쇼> 감독 김재환 / 출연 박나림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바보상자에 출연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긴 아니다. 여기 대박 친 맛집 사장님들의 기막힌 수완을 보라. 아니, 1천만원만 내면 맘껏 클로즈업해주는 방송사들의 넓은 아량을 보라. <트루맛쇼>는 달콤한 가짜와 씁쓸한 진실을 뒤범벅한 ‘초특급 리얼 다큐멘터리’다. 경천동지할 신메뉴 아이템까지 직접 식당에 제공하는, 방송사들의 구린 ‘거짓말’을 폭로하기 위해 직접 식당까지 차린 제작진의 배포 또한 놀랍다. 골리앗의 팬티를 들추는 다윗의 악취미에 브라보!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감독 서극 / 출연 유덕화, 유가령 서극이 돌아왔다. 무협의 세계로 귀환했다. <칠검>(2005) 이후 5년 만이다. 들려주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에 능한 그의 솜씨는 녹슬지 않았다. 당나라 시대 여황제 측천무후(유가령)의 즉위식을 앞두고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명민한 수사관 적인걸(유덕화)이 나선다. 서극은 <적인걸>이 정통 무협이 아닌, 추리극이라는 점 때문에 이끌렸다고 했지만, 여전히 촉수를 자극하는 건 액션장면들이다. 판타스틱한 비주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서극 월드만의 만유인력을 느껴보자. <고백> 감독 나카시마 데쓰야 / 출연 마쓰 다카코, 오카다 마사키 익히 들었을 것이다.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고백>의 논란과 파장을. 딸을 죽인 학생에게 기어코 복수하는 여교사라니. 하지만 충격적인 소재만이 공포를 조장하는 건 아니다. 포인트는 따로 있다. 되돌릴 수 없는 증오와 천천히 진행되는 광기가 건조하고 차가운 내레이션 위에서 걷잡을 수 없이 뒤섞일 때, 화면 구석까지 분사되는 죽음의 바이러스는 보는 이를 시종 숨막히게 만든다. 이곳이야말로 진짜 지옥이며, 지옥 문을 나설 수 있는 구명의 밧줄 따윈 없다는 극단의 고백 앞에서 삶은 뭐라 대꾸할 것인가. <엄마 까투리> 감독 정길훈 / 목소리 출연 이소은, 김현심 ‘희생’은 아동문학가였던 고 권정생 작가의 일관된 작품 주제였다.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의 대표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의 밑바닥에 이름없는 누군가의‘희생’이 있다고 그는 믿었다. 권 작가의 유작을 원작으로 삼은 <엄마까투리> 또한 새끼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꿩 이야기다. 원작의 엄마까투리와 9마리의 꺼병이들은 아이들이 좋아할,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진 귀여운 3D 캐릭터로 변모했다. 평생을 허름한 오두막집에서 살면서 ‘사랑’을 실천한 권 작가의 분신 같은 인물도 등장한다. <미안해, 고마워> 감독 임순례, 박흥식, 송일곤, 오점균 / 출연 김지호, 서태화 ‘동물’영화라고 했다간 큰일난다. 네편의 단편들을 묶은 이 옴니버스영화는 눈요깃거리로‘동물’을 다루지 않는다. 여기, 등장하는 개와 고양이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군상을 비추는 거울이고, 그들의 허기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 달래주는 귀한 존재들이다. 우연인지, 약속인지 연출을 맡은 네명의 감독 또한 말없이 사람들을 챙기는 동물들의 순한 심성을 고스란히 빼닮은 이들이다. 그러고보니 <혜화,동>의 유기견과 <무산일기>의 백구도 떠오르는군.

[해외뉴스] 그 감동, 기술이냐 연기냐

킹콩의 순애보 앞에 울음을 터뜨린 관객은 많다. 탐욕스러운 눈빛을 번득거리던 골룸을 보며 프로도만큼이나 소름끼쳤던 관객도 많다. 인간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침팬지 시저에게 압도당할 관객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스크린 위에서 관객에게 공포와 감동과 슬픔을 전달하는 ‘디지털’ 캐릭터의 표정과 제스처는 디지털 기술에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캐릭터들의 퍼포먼스 캡처 연기를 해낸 배우에게 돌려야 할 것인가? 터놓고 말하자면 퍼포먼스 캡처 연기자가 ‘일반’ 연기자와 동등한 대접을 받으며 오스카 연기상 후보로 지명될 수 있을까? 골룸과 킹콩, 시저를 모두 연기한 앤디 서키스는 최근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모션 캡처 슈트를 입은 배우들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10년 넘게 흘렀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내게 ‘아, 당신이 골룸 목소리 연기를 했죠?’라고 말을 건넨다.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골룸과 킹콩을 ‘연기’했다.” 디지털 캐릭터가 담보하는 정서적인 핵심이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에게서 비롯된다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배우의 ‘맨 얼굴’이 아닌 전혀 다른 생명체의 얼굴이 덧입혀졌기 때문에 종종 배우와 캐릭터가 분리되는 오해를 낳는 것이다. 서키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디지털 분장일 뿐이다.” <가디언> 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앤디 서키스의 주장을 “예고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썼으며, <뉴욕타임스> 평론가 마놀라 다지스 역시 “우리는 침팬지 시저에게서 인상적인 디지털 마술만 보는 게 아니다. 정말 현실감 넘치고, 분노하거나 생각에 잠긴 캐릭터를 보는 것이다”라며 강조했다. <반지의 제왕> 개봉 당시만 해도 놀랍고 신기한 ‘기술적’ 구경거리였던 디지털 캐릭터는 이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 이르러 진지한 논의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이 영화는 어쩌면 연기사에 있어서도 ‘진화의 시작’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유운성의 시네마나우] 필리핀영화의 귀환

남다른 감식안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동시대 필리핀영화가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필리핀영화로는 리노 브로카 이후 처음으로 브리얀테 멘도자의 <서비스>가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고 당시 24살에 불과했던 라야 마틴의 네 번째 장편 <상영 중>이 감독주간에서 상영되었으며, 라브 디아즈의 <멜랑콜리아>는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마틴의 두 번째 장편 <필리핀 인디오에 관한 짧은 필름>(2005)이 뒤늦게 프랑스에서 개봉해 그 해 <카이에 뒤 시네마> 베스트10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9년 중반까지 기세를 이어가던 필리핀 독립영화인들의 행보는 그 해 9월1일 그들의 든든한 정신적 후원자였던 영화평론가 알렉시스 A. 티오세코와 그의 연인인 슬로베니아 저널리스트 니카 보힝크가 권총강도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별안간 주춤하게 된다.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가는 그들 사후에 필리핀 독립영화감독들은 물론이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호세 루이스 게린, 존 지안비토 등 외국 영화감독들이 그들에게 헌정한 작품의 목록이나 필리핀 내 몇몇 영화제가 마련한 추모 프로그램(9월에도 하나가 예정되어 있다)을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2010년, 존 토레스의 <후렴은 노래 속의 혁명처럼 일어난다>처럼 몇몇 빼어난 작품들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필리핀영화들은 거의 없었고 디아즈, 마틴, 멘도자의 신작은 나오지 않았다. 반갑게도, 그동안 숨을 고른 필리핀 영화인들의 귀환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라브 디아즈의 6시간짜리 장편영화 <출산의 세기>가 베니스영화제 라인업에 뒤늦게 추가되었는가 하면, 이자벨 위페르가 출연한 브리얀테 멘도자의 <포획>이 이미 완성되었으며 (그의 전작 <할머니>(2009)가 그러했듯) 올해 베니스에서 깜짝 상영 될 것이란 ‘소문’도 들려온다. 그리고 라야 마틴은 스스로 “현대판 <필리핀 인디오에 관한 짧은 108필름>이 될 것”이라고 밝혔던 9번째 장편영화 <부에나스 노체스, 에스파냐>를 완성했고, 이 작품은 얼마 전 폐막한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라야 마틴이 “네오 사일런트 SF”라 부른 <부에나스 노체스, 에스파냐>는 스페인 여배우 필라르 로페스 드 아얄라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소규모의 스태프와 함께 스페인에서 촬영한 슈퍼 8mm 무성영화다. 무성영화 시기의 착색(tinting) 기법을 본뜬 다양한 색조의 화면들이나 텔레포트(공간이동) 같은 SF적 설정 등이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로테르담 영화제 트레일러로 기획된 1분짜리 단편 <아르스 콜로니아>(2011)와 더불어 이 젊고 모험적인 감독의 ‘미학의 정치’가 현재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적인 영화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두 작품에서, 마틴은 앞서 언급한 착색 기법을 비롯해 음화(negative), 과다노출, 이중인화, 스크래치 및 핸드페인팅 등을 전면적으로 활용해 이미지의 대상(인물과 사물, 상황과 행동)과 이미지의 결(texture) 간의 분리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과거의 이미지들이 사라지고 낡아가는 시대, 텔레비전 시대에 태어난 마틴과 같은 세대들에게, 이미지를 명료하고 통일된 상태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라야 마틴은 “오늘날 이미지를 파괴하는 일은 불가피하다. 리얼리즘에 대한 저항 속에서… 한때 역겹도록 잘못 다루어졌던 이미지를 읽는 새로운 방식, 우리 세대가 보아온 초라한 모습의 이미지들과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해외뉴스] 찰리우드에 주목하라

찰리우드(Chollywood). 중국영화시장과 할리우드의 끈끈한 협력관계에서 파생한 신조어다. 8월22일 영화산업지 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주 동안 할리우드와 중국 영화계 사이에 오간 대규모 파트너십 계약만 3건에 달한다. 먼저 <인셉션> <행오버2>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는 중국의 화이브러더스 미디어 코퍼레이션, 홍콩의 건설회사 폴 와이 엔지니어링과 함께 조인트 벤처 ‘레전더리 이스트’를 세웠다.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는 레전더리 이스트를 통해 2013년부터 “전세계 관객을 겨냥한 메이저 이벤트 영화를 일년에 한두편씩” 제작할 예정이다. 첫 영화는 에드워드 즈윅의 <만리장성>일 공산이 크다. <가디언>은 이번 계약을 통해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가 중국에서 개봉하는 외화가 ‘1년에 스무편 이하’로 제한된 수입 규제를 우회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카우보이 & 에이리언>의 제작사 렐러티버티 미디어는 중국의 화지아 영화 배급사와 스카이랜드 영화-텔레비전 지부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렐러티비티 미디어의 블록버스터영화들이 스카이랜드 브랜드의 보호 아래 중국 개봉을 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의 미디어 연합체 DMG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의 공동 파이낸싱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보다 앞서 폭스서치라이트와 중국 회사 IDG 차이나 미디어는 <설화와 비밀의 부채>에서 힘을 합치기도 했다. 2010년 한 해에만 극장수익이 64% 증가할 정도로 중국의 영화시장은 가장 주목받는 미개척지다. 하지만 ‘찰리우드’를 향한 할리우드의 도전이 쉽지만은 않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은 “모든 면에서 간섭하는 중국 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합작영화로서 자격을 갖추려면 최소한 한명의 중국 배우가 출연하고, 최소 한 시퀀스는 중국에서 찍어야 하며, 까다로운 검열도 통과해야 한다. 살인, 폭력, 공포, 악령, 악마가 등장하면 안된다. 허무주의 조장, 환경 오염, 동물 학대도 등장해선 안된다.”

배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3)

은장도를 가지고 다니세요 고현정_사즉생인가…. 선생님은 어떤 나무 좋아하세요? 조용헌_소나무, 느티나무, 대나무. 그 중에서도 대나무의 솨솨하는 댓잎소리는 약간 음산할 수도 있지만 그를 빗소리 대신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죠. 사시사철 잎이 지지 않으니 저녁이면 새들이 깃들어 잠을 잡니다. 게다가 옛날에는 대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있으면 호랑이가 뚫고 들어오지 못했어요. 허리를 S자로 꺾지 못하니까. (웃음) 집을 가리고 싶을 경우에도 대나무를 심으면 빨리 자라 2, 3년 만에 가려줄 수 있어요. 고현정_그럼 우리나라 산 중에는 어떤 산을 좋아하고 즐겨 찾으세요? 조용헌_나를 품어주고 달래주는 지리산이 좋습니다. 고현정_지리산도 힘들겠다. 품어줄 사람이 많아서. (좌중 웃음) 조용헌_요즘은 한 5천명 될 겁니다. 둘레가 500리니까 10만명 들어가도 괜찮아요. 지리산에 가면 자살하는 이 없고 굶어죽는 사람 없다고 하죠. 몸이 처질 때는 바위산인 설악산, 북한산이 좋고 허탈하거나 우울할 때는 흙이 많은 오대산, 지리산이 좋습니다. 계룡산도 명산이죠. 저기 나무 사이로 보이죠? 그런데 우리 이야기가 너무 중구난방이네. 고현정_제가 그렇죠, 뭐. (한숨) 조용헌_현정씨는 생활소품이나 액세서리 중에 어떤 물건을 좋아하십니까? 고현정_가방도 좋아하지만 저는 (작은 손수건을 꺼내며) 이런 천들을 좋아해요. 조용헌_촉감 때문입니까? 고현정_음… 더러워지면 제가 빡빡 씻어 말릴 수 있어서요. 혹시 여자가 꼭 가지고 다녔으면 하는 물건이 있으신가요? 조용헌_1번 은장도. (좌중 폭소) 왜냐고? 공격과 수비를 위해서죠. 남자는 주먹이 있으니까. (웃음) 고현정_(판단력도 있다고 하셨으니) 전 이제 은장도만 갖추면 되겠네요. 실과 바늘은 지금도 꼭 갖고 다니는데! 조용헌_허허, 이제 천 말고 칼 가지고 다니십시오. 고현정_선생님은 어떨 때 가장 화가 나세요? 조용헌_자존심 상할 때죠. 그런데 화를 내면서도 성내는 나를 쳐다보는 또 다른 내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과잉행동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사람은 어느 정도 화도 내야 자기를 방어합니다. 무골호인으로만 살면 힘들어요. 고현정_무골호인은, 주위가 힘든 것 같아요. 조용헌_무골호인은 큰일을 못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칼을 도(刀)라 하고 살리는 칼을 검(劍)이라 해요. 그래서 살인도와 활인검이 있어요. 종양을 떼내는 칼은 활인이고 목을 치는 칼은 살인이죠. 도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러야 큰일을 해요. 장수라면 살인도도 갖고 있어야 함부로 못 달려듭니다. 조폭은 칼로 바로 찌르는 자고 장군은 뽑지는 않고 손잡이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고현정_어디 가야 그런 장군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분들은 아주 드문가요, 아니면 계시는데 저 같은 사람은 못 보는 건가요? 혹시, 선생님은 장군 아니신가요? (웃음) 조용헌_저는 장군들의 관전평을 쓰는 사람이죠. 차범근은 아니고 신문선입니다. (좌중 웃음) 고현정_축구 좋아하세요? 조용헌_관전하기에는 야구가 더 재미있습니다. 작전의 범위가 넓으니까요. 번트도 대고 도루하다 죽기도 하고. 고현정_예스! 저는 투수가 던지고 타자가 치려고 할 때 모든 주의가 확 한 지점으로 모여드는 장면, 그 순간이 너무나 짜릿해요. 작전에 따라 외야 수비가 약간 들어오기도 하고요. 야구는 기다리는 시간도 많고 어딘가 한산하지만 그 에너지들이 어느 순간 좍 모여요. 조용헌_묘한 미학이군요.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시는군요. 고현정_야구는 축구에 비하면 열심히 달리는 경기는 아니잖아요. 타자들의 연습 스윙이라든가 그런 시간들이 제가 하는 일과 비슷한 면이 있어요. 그리고 어린 시절 추억도 있어요. 오후 야구중계가 있는 주말이면 아빠가 재래시장에서 닭을 예약해놓았다가 받아와 닭죽을 쑤셨어요. 서울분인 어머니는 그게 싫어 외출해버리셨고요. “딩딩” 소리와 함께 중계가 시작되고 7, 8회 말쯤 되면 죽이 다 끓어요. 아빠가 닭가슴살을 일일이 발라 “이제 먹자”고 들고 오셨죠. 그 냄새와 기억이 좋게 남아서 지금껏 야구에 끌리는지도 몰라요. (웃음) 철저히 이중적으로 사세요 조용헌_현정씨는 인기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고현정_인기는… 세금과도 같은 것 같아요. 얻으면 뭔가를 치러야 하는. 조용헌_뒷장에 세금 계산서가 붙어 있군요. 고현정_인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인기가 오면 불평하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그래서 빨리 세금 내듯 뭔가 치러서 초연해지고 싶기도 하고 떨궈버리고 싶은 부분도 있어요. 그러면서도 없어서는 안될 무엇 같기도 해요. 인기 때문에 제 곁에 늘어난 ‘식구’들도 있으니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요. 조용헌_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라고 여기나요? 고현정_(곰곰 생각) 반반인 것 같아요. 하다 보니 팔자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오히려 그래서 아주 못되게 팔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일부러 다른 걸 욕심내기도 해요. 말년에는 다른 공부를 할 수 있을지 몰라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근데 그건, 어쩌면 더 팔자라고 느낀다는 뜻이겠죠? 선생님, 배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조용헌_철저히 이중적으로 살아야죠. 고현정_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조용헌_노출되는 상황에선 거기에 맞춰서. 스위치를 딱 내리고 사생활 모드로 전환됐을 때에는 편하게 살 수 있어야죠. 매 순간 ‘나는 배우다’라고 생각하고 살면 병이 옵니다. 스마일 콤플렉스죠. 줄곧 미소짓고 얼굴에 “나 교양”이라고 쓰고 다니면 어느 날 약 없이 잠들 수 없게 돼요. 그나저나 나는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면 참지 못하는데 배우는 그것이 생업이니 엄청난 수양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현정_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이 된다는 건 본인이 그런 일을 원해서일 경우도 있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리 되고 나면 귀찮아하고 불평하는 친구들을 봐요. 그런 걸 보면 야단치고 싶기도 해요. (웃음) 조용헌_현정씨 취미는 뭡니까. 고현정_남편 있는 줄 알고 살림하기요. (좌중 폭소) 농담 아닌데? 정리정돈하고 멸치 머리 떼고 똥 빼고, 누가 보면 곧 남편이 올 것 같아요. 혼자 사는 여자가 저럴 리 없는 거죠. (웃음) 특기는 안 물어봐주세요? 전 하도 옛날에 데뷔해서 그런 거 아무도 안 물어봐요. 조용헌_특기는 뭡니까. 고현정_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요. 조용헌_허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사람이 다 실수하고 외양간 고치는 겁니다. 자기 몸을 상하는 큰 실수를 제외하면 다 용납할 수 있는 실수입니다. 배우로서 성취감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요? 배우하길 참 잘했다고 느껴 행복했던 순간 말입니다. 상을 받았을 때라든가. 고현정_정말 상은 관심이 없고요. 저는 성취감도 별로 없는 편이에요. 다만 <모래시계>에서 “동일방직 직공들 시위하는데 나, 쌀 샀다?” 하는 혜린의 대사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찡하고 올라와서 한번에 촬영이 끝난 적이 있어요. 그때 작은 짜릿함이 있었고요. <선덕여왕>에서도 몇몇 대사를 하는 순간에 시원함이 있었어요. 조용헌_살면서 가장 어려운 대목이 무엇입니까? 판단을 내려야 할 때? 고현정_아뇨. 판단은 다 하고 있어요. 판단대로만 갈 수 없고 상황에 맞게 타협을 봐야 한다는 점이 어렵죠. 도화살이 아니라 천을귀인입니다 고현정_선생님 책을 보면 다실(茶室)을 예로 들면서 집 안에는 신성한 장소가 한 군데는 있어야 한다고 쓰셨어요. 거기에 대해 말씀을 더 듣고 싶었어요. 요즘은 인테리어 디자인이니 뭐니 해서 잊고 사는 부분인 것 같아서요. 조용헌_신성한 공간이 있어야 자기를 정화할 수 있어요. 사람으로 치면 나를 전적으로 알아주고 격려해주어 마음을 정화해주는 큰 인물을 만나는 것과 같죠. 어쩌면 그게 신(神)입니다. 다실에서 차를 마시면 향도 맡아보고 혀로 맛도 보고 무쇠주전자에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산속의 폭포수 소리로 여기게도 됩니다. 차를 우리고 잔에 옮기는 과정은 긴장은 없지만 집중을 요구해요.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동안 다른 걱정이 줄어듭니다. 고현정_신성스런 공간은 작아도 괜찮은 것이죠? 조용헌_괜찮습니다. 오히려 작아야 압력밥솥처럼 기운이 꽉 찹니다. 큰 방에서 살면 단명한다는 말도 있어요. 자금성에 가봐도 황제가 자는 방은 작습니다. 침실은 작을수록 좋고, 기를 뺏기지 않도록 텔레비전이나 많은 물건을 놓지 않는 게 좋아요. 즐겨 보는 책 한권과 물 주전자 정도. 천장도 너무 높으면 안 좋아요. 고현정_선생님, 누군가가 제게 도화살이 많다던데요. 조용헌_하하. 도화살이 아니고 아까 말한 천을귀인, 천을성이 비추는 겁니다. 하늘이 보호하고 사람이 따라요. 세금 계산서라고 말했죠? 오늘 한 초식 배웠네요. 정확한 표현이었습니다. 현정씨에게 오늘 받은 인상은 재색을 겸비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보호할 지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현정_(웃음) 그러니까 은장도만 사면 되는 거죠? 조용헌_(크게 끄덕이며) 은장도만 사면 돼요. 고현정_사이즈는…. 조용헌_(기다렸다는 듯) 대, 중, 소 세 가지. 술은 빨강, 파랑, 노랑으로 달아서. (좌중 폭소) 고현정_(웃음) 안 물어봤으면 NG죠, 선생님? 조용헌_틀림없이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고현정의 선물 to. 조용헌<돌아오라 소렌토로> <금발의 제니> <산타루치아>. 고현정이 조용헌 칼럼니스트에게 선사한 CD 트랙 중 일부다. 젊은, 아니 앳된 이미자의 사진이 오리지널 표지에 들어 있는 이 음반에는 잠자리 날개처럼 고운 어린 프리마돈나의 목소리에 실린 옛 노래들이 담겨 있다. “<즐거운 나의 집>이 그렇게 슬픈 노래인지 몰랐어요.” 최근 집을 뒤집어엎다시피 정돈하다가 어느 조각가로부터 선사받았던 이 CD를 다시 발견했다는 고현정은, 사라진 시간을 경애하는 인터뷰이와 명재 고택의 주인장에게 그리움의 정서에 물든 이 한 타래의 음악을 다시 선물했다. 아주 수줍은 표정으로.

[영상공작소] 개봉영화만 극장 상영? 나도 할 수 있다

편집과 출력, 잘 마치셨나요? 그럼 이제 영화 제작의 가장 마지막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편집 다 했는데 뭐가 또 남았냐고요? 바로 관객과 함께하는 ‘상영’입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됐든 불특정한 사람들이 됐든 우리가 ‘영화’라는 틀을 빌려 한 이야기는 결국 누군가와 나누어야만 완성됩니다. ‘우리 가족 영화 만들기’의 회차마다 강조했던 것처럼 상영회 역시 전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대한 좋은 화질로 출력을 하고, 극장을 대관하고, 홍보 전단을 만들고 사람들을 초대하면 됩니다!(말만 들으면 엄청 대단한 일 같죠?) 그냥 우리끼리 보려고 만든 건데 굳이 상영관을 대관해서까지 상영회를 할 필요가 있나 반문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 집에서 텔레비전나 컴퓨터를 통해 보면서 상영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어떤 매체를 통해 작품을 상영하느냐에 따라 그 작품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빛이 차단되고 다른 소음이 없는 극장은 ‘어쩔 수 없이’ 집중해야만 하는 곳이라 이런 공간에서 상영을 하면 편집할 때도 보이지 않던 장단점을 모두 발견할 수 있어요. 멀티플렉스나 규모가 큰 극장들도 대관을 하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드라마 속 ‘본부장님’이 아닌 이상 적게는 몇 십만원에서 많게는 몇 백만원까지 되는 대관비를 내는 건 쉽지 않겠지요(물론 가능하신 분은 얼마든지 큰 극장을 대관하셔도 됩니다. 많은 관객을 불러 수익을 낼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하하). 그래도 걱정 마세요. 가족 단위의 상영이나 소규모 상영을 위해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극장’ 상영이 가능한 공간들이 있으니까요. 서울의 경우 ‘오재미동’, ‘아리랑 시네센터’ 등은 회원가입을 하면 상영관을 빌릴 수 있습니다. ‘오재미동’은 30석 규모의 상영관을 세 시간 동안 대여하는 데 6만원의 대여비가 들고요, ‘아리랑 시네센터’는 10석 규모의 상영관을 대여하는 데 시간당 7천원이 듭니다. 미디액트는 전용상영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상영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50여명이 사용할 수 있는 대강의실이나 이보다 약간 규모가 작은 회의실을 빌려 영화 상영을 할 수 있습니다. 서울 이외의 각 지역에서도 영상미디어센터의 상영관을 빌릴 수 있습니다. 지역 미디어센터의 경우 상영관이 70~100석 규모가 되는 큰 곳도 많고, 대여 비용은 3만~10만원입니다. 홍보물 만들기 이번 기회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근방의 미디어센터를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겠네요. 영상 제작 전반에 관한 도움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면 홍보물을 제작해봅시다. 홍보물에는 영화의 제목, 줄거리, 감독 및 주요 출연진, 상영시간 등의 개요와 함께 작품을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를 찾아 넣어봅니다. 대표 이미지를 찾는 것은 우리가 작품을 구상하며 연습했던 캐릭터 구축, 이야기를 한줄로 요약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영화’라는 장르를 빌려 ‘이미지’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줄거리를 요약하면서 작품의 이야기가 잘 흘러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이 이야기를 작품 속에 있는 하나의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이죠. 제가 속해 있던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에서 제작한 <개청춘>을 예로 들어볼게요. <개청춘>은 ‘그냥 청춘이고 싶지만 이 사회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20대들의 생활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입니다. ‘개 같은 청춘’으로 살고 있지만 세상에 이야기하는 걸 시작으로 진짜 청춘을 열어보고(開) 싶은 우리 세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개청춘>의 대표 이미지는 좁은 대야 속에서 쉬지 않고 헤엄치고 있는 잠수부 인형의 모습이었습니다. 열심히 움직여도 갇혀 있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는, 손잡을 동료 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인 지금의 ‘개청춘’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 시간 반의 러닝타임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이 장면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요. 홍보물을 만드는 것은 관객을 초대하고, 정보를 알려주는 용도이기도 하지만 제작자 스스로가 영화를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해요. 영화의 홍보물이니만큼 이미지가 많은 게 좋습니다. 작품의 대표 이미지와 함께 감독의 얼굴도 넣고, 영화 속의 스틸 몇 장면을 더 추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상영 뒤엔 관객과의 대화까지 상영회 당일에는 미리 상영관에 가서 상영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합니다. 홍보물도 상영관 입구에 잘 진열해두고, 장소 안내지도 붙여둡니다. ‘우리 가족 영화’이니만큼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보게 될 테니 간단하게 다과를 준비하는 것도 좋겠죠? 조금 오버해서 ‘감독 입봉’이라는 현수막을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후후. 상영을 마치고 쑥스럽지만 관객과의 대화를 꼭 진행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를 마지막에 완성해주는 건 결국 관객입니다. 어떻게 보았는지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궁금한 것은 없는지 질문을 받아보기도 하세요. 이 내용을 잘 기록해두면 좋습니다. 내가 제작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했던 것과 완성된 작품을 보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게 어떻게 다른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던 정보들이 어디에서 빠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후 작품을 수정하기에도 좋고, 다음 작품을 만들 때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때로 관객은 연출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조차 더 아름답게 읽어내기도 하고, 당연히 알아주리라 생각했던 것도 외면하는 경우가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서운한 감정이 든다면 뒤풀이에서 풀어내면 되죠! 상영회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 영화 만들기’는 끝이 납니다. 6회차의 ‘영상공작소’에서 다룬 많은 부분이 기억에서 금세 잊히겠지만 일상에서 이야기를 찾아내는 즐거움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가족영화’라고 이름 붙였지만 6회차에 걸쳐 이야기했던 내용은 ‘내가 기억해 두고 싶은 내 삶의 조각을 기록하는 것’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결국 내 삶이라는 건 나를 포함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니까요. 처음부터 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틈틈이 짧은 에피소드를 기록해두면서 만드는 재미를 몸속 깊이 새겨두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꼭 그 작품이 관객(단 한명이더라도)과 만나서 이야기로서 완성되는 순간도 경험하시길 바라고요.

[타인의 취향] ‘꼴빠’의 탄생

취향은 유전되기도 한다. 지난 일요일 새벽 AC밀란과 나폴리의 이탈리아 세리아 축구를 보다가 어린 시절 기억의 조각들이 떠올랐다. 일요일이면 아버지는 동네 대중목욕탕에 나를 데리고 갔다. 사람 많아 북적거리는 그곳이 싫었지만 목욕을 끝내고 마시는 갈색병의 맥콜은 좋아했다. 한쪽 구석의 높은 곳에 설치된 텔레비전에는 늘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 중계가 흘러나왔다. 어느 날 아버지는 목욕탕이 아닌 사직구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집 앞에서 111번 버스를 타고 사직동에 내리면 통닭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사직구장에 이르는 길엔 통닭집이 줄을 잇는다. 통닭이 너무 먹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매표소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옆을 보니 긴 끈을 이용해 아래층에 있는 아저씨가 입장해 있는 2층의 아저씨에게 가방을 올려 보내고 있었다. 출입구 안내판에는 ‘병 소주는 반입 안된다’고 적혀 있다. 아버지의 팩 소주는 무사통과였던 것 같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검표를 하면 사람들은 무작정 뛰었다. 영문을 몰랐던 나도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달렸다. 조금이라도 그라운드에 가까운 좋은 자리에 앉기 위한 몸부림이다. 컴컴한 실내를 통과해 관중석 출입구를 지나자 인조잔디의 초록색 그라운드가 펼쳐진다. 그때까지 그렇게 넓은 공간을 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기억도 없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랄까. 관중석에 들어설 때의 그 순간은 그전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짜릿함으로 내 머릿속에 각인됐다. 영국 런던을 연고지로 한 축구클럽 아스날의 팬이 주인공인 닉 혼비의 자전적 소설 <피버 피치>를 원작으로한 동명의 영화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어린 주인공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지금은 사라진 하이버리구장의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주위가 밝아지고 엄청난 함성이 귀를 때리는 화면 속 그 이미지는 20여년 전 내가 경험한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나는 아버지가 사준 우동을 먹으며 말했다. “아빠, 다음에 또 오면 안되나?” “그래, 알았다.” 아버지는 무심하게 말하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때는 관중석에서 담배를 피워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추석, 고향집 거실에 누워 야구 중계를 봤다. 아버지가 다가와서는 양승호 감독의 욕을 하며 손아섭 칭찬을 하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과 같은 ‘꼴빠’가 되지 않았을 거다. 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할까. 흔하고 흔한 모태 롯데 팬의 탄생기였다.

정교한 연출로 이룬 비통속 멜로 <오직 그대만> Always

<오직 그대만> Always 송일곤│한국│2011년│108분│개막작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를 오늘날의 한국에서 재현해보고 싶다는 감독 송일곤의 염원에서 빚어진, 치명적 러브 스토리. 영화는 현재 주차장 요원으로 살고 있으나 한때는 잘나가던 복서였던 남자 철민(소지섭)과, 실명의 위기에 처했으나 유능한 텔레마케터인 여자 정화(한효주)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과거의 ‘어떤 사연’이 그들을 필연적으로 연결시킨다. 그 사연이나 탄생 모티브 등으로 인해 일련의 기시감이 영화에 감돈다. 기시감들은 이 운명적 멜로에 친숙함과 식상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영화는 통속적일 대로 통속적이다. 통속적인 건 그러나, 영화의 외연적 층위에서 그렇게 비칠 뿐이다. 소지섭-한효주 투톱의 매력이 발군이리라는 것쯤은 굳이 강변할 필요 없을 듯. 두 스타는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호연을 선사한다. 빈말이 아니라, 그 커플은 철민과 정화를 ‘산다’. 디테일에서의 극적 비틀기 및 정교한 연출 스타일 등이 통속 멜로를 비통속적으로 비상시킨다. 눈이 멀어져가는 결정적 장애에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주인공이라는 설정부터가 그렇다. 그 여인이, 자신과도 관계있는 남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건 어떤가. 남자는 복서였건만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다. 그는 화가 치밀 대로 치밀 법한 순간에도 인내할 줄 안다. 그가 끝내 주먹을 쓰는 건 ‘오직 그대만’을 위해서다. 감독 특유의 생략·절제도, 이런 유의 멜로물에서 쉽사리 목격할 수 없는, 어떤 경지를 부여한다. 일찍이 말했듯, “영화는 말과 액션을 남발하지 않으면서, 클라이맥스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정점에서 구사되는 철민의 액션은 <영화는 영화다>의 비장미·폭발력을 압도한다. 감독은 또 감각적이나 결코 피상적이지 않은, 주목할 만한 비주얼·사운드 디자인으로 영화에 격을 부여한다”. <꽃섬> <거미숲> <마법사들> 등을 통해 송일곤 감독이 전작들에서 선보였던 정적인 스타일을 이번에도 반복한다는 건 물론 아니다. 롱 숏, 롱 테이크 위주로 응시하곤 하던 예의 연출 스타일을 넘어, 캐릭터들의 호흡을 충실히 따른다. 그 호흡이 대중성을 부여하며, 영화의 재미를 보장한다.

프랑스영화의 초월적인 아름다움

흔히 30년대의 프랑스영화에 ‘황금기’(Golden Age)란 표현을 쓴다. 1930년부터 1960년까지를 아우르는 올해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프랑스 특별전’에도 같은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 수식은 자연스레 이 특별전을 역사적 맥락에서 감상하도록 관객을 유도한다. 왜 30년대가 황금기인지, 그리고 이후의 영화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를 ‘미학적 관점’에서 앞서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이 여기 담겨 있다. 일례로 노엘 버치가 ‘30년부터 56년까지의 프랑스영화’를 다루며 이 시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누벨바그 이전의 비교적 덜 알려진 훌륭한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서라도 이 시기는 묶어야 하며, 할리우드의 클래식 무비에 대항한 프랑스영화의 근본을 찾기 위해 이들 작품은 꼭 봐야 한다고. 2차대전의 외상으로 혼란스러워진 프랑스에 이렇듯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작품의 시기가 도래할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영화사의 축복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의 말마따나 이번 특별전의 리스트는 극장을 판테온으로 둔갑시키는 힘을 가진다. 상영작의 범위는 꽤 다양하다. 장 르누아르를 필두로 마르셀 카르네와 로베르 브레송 등 프랑스영화 팬의 귀에 친숙한 이름에서 시작해, 장 그레미용의 <이상한 빅토르씨>나 <여름의 빛>, 사샤 기트리의 <꿈을 꾸다>와 <절름발이 악마>와 같이 국내에 거의 소개된 적 없는 작품도 있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도 기존에 익숙한 영화가 아니라 <오르페브르의 부두>로 소개되고, 자크 타티는 <축제일>로, 아벨 강스는 <잃어버린 천국>으로 소개된다. 카르네 또한 항상 자크 프레베르와 함께 이야기되던 <인생유전> 외에도, 다소 덜 알려진 <북호텔>과 <이상한 드라마>로 온다. 조금 억지스런 해피엔딩, 괴팍스런 쾌활함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한 <이상한 드라마>를 재평가할 기회가 될 것이다. 사실 프랑스의 초기 장편발성영화는 문학이나 연극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맥락에서 흥미로운 작품이 몇편 있다. 당대 유명 배우였던 뤼시앵 기트리의 아들인 사샤 기트리는 자신이 쓴 연극을 영화로 직접 옮기는데, 이게 바로 <꿈을 꾸다>이다. 이 작품에는 실제 사샤 기트리의 부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사샤 기트리와 재클린이 롱테이크 사이에 빠르고 긴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할리우드의 어떤 클래식 로맨틱물보다 우아하다. 또 다른 사샤 기트리의 작품 <절름발이 악마>도 연극을 영화화했다. ‘앙시앵레짐부터 7월 왕정시기’까지 오랜 권력을 누린 인물 ‘텔레랑’의 일대기를 다룬 일종의 에피소드극이다. 연극무대에서 훈련받은 배우들의 연기를 살피는 것도 흥미롭고, 대사 역시 감상의 포인트가 된다. 물론 이 시기를 이야기하며 ‘시적 리얼리즘’을 빠뜨리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앞서 언급한 카르네의 영화들, 그리고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와 <토니>를 비롯한 장 르누아르의 작품을 이 카테고리에서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이상한 드라마>나 <오르페브르의 부두>를 스릴러의 시대적 취향으로 묶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이 두편은 장르 외에 ‘마침내’ 행복하길 선택한다는 플롯의 공통점을 지닌다. 음울한 이데올로기로부터의 도피를 목적으로 한 영화뿐 아니라, 당시 프랑스 국민의 아메리카 대륙을 향한 정서를 살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타티의 첫 장편인 <축제일>은 프랑스 시골의 한 우편배달부가 미국의 배달 시스템을 따라하다 도리어 일을 망친다는 플롯인데, 감독이 직접 연기한 어리숙한 배달부는 왠지 프랑스의 정서를 응원하게 만든다. <꿈을 꾸다>의 남아메리카인 언급도 같은 맥락에서 흥미롭다. 이외에 영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홈페이지(www.cinemathrque.seoul.kr)를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