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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도서] 좌우명, 마우스

<많아지면 달라진다>의 2장에서는 한국의 미국 소고기 개방 반대 촛불시위의 발생과 확산 양상을 다룬다. 동방신기 팬클럽인 카시오페아의 게시판에서 광우병과 미국 소고기에 대한 글을 공유한 여고생들이 촛불시위에 참가한 데 대해, 이 책은 이렇게 분석한다. “학교 운동장과 커피숍에서 주고받으면서 그냥 사라지고 말았을 대화가 이곳에서는 전문 미디어 회사들만 누리던 두 가지 특성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접근성과 영속성이었다. 접근성은 어떤 사람이 쓴 글을 다수가 읽을 수 있음을 뜻하고, 영속성은 어떤 글이 오래 남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연결되면 접근성과 영속성이 크게 높아지는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인터넷 연결이 가장 잘된 나라이다.” 뉴욕대 언론대학원 교수인 클레이 셔키는 <많아지면 달라진다>에서 사람들이 이전에 TV를 시청하던 시간의 1%만 ‘생산과 공유’에 사용하는 세상이 온다고 말한다. 그 1%인 연간 1조 시간은, 1년에 위키피디아 100개 이상을 만들 수 있는 참여에 해당한다. 실제로, 이제 텔레비전 역사상 처음으로 일부 젊은이 집단은 기성세대보다 텔레비전을 덜 보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제시한다. 빠른 대화형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는 젊은이 집단은 순수한 소비를 전제로 하는 미디어에서 행동을 옮겨가고 있다.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아무 대가 없이 창조하고 공유하는 사람들, 여가를 불특정 다수와 즐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들’을 어떻게 예측하고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어떤 수익모델을 만들 것인가를 다루지 않는다. 영화를 보다 말고 화면 뒤로 가 ‘마우스’를 찾는 네살 딸의 에피소드를 인용하며, 새로 연결된 세상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좌우명은 바로 마우스임을 강조한다. 이제 미디어는 소비와 생산과 공유의 가능성을 함께 나란히 포함하며, 그러한 가능성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마지막으로, “독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양이다”라는 독물학자의 통찰이 1조 시간을 가진 새로운 대중에게도 포함되는 이야기인가에 대한 성찰은, 독자의 몫이다.

[이 사람] 방송 다큐에 활력 불어넣고파

방송 다큐멘터리가 떼지어 극장으로 나섰다. 제목은 ‘自然+人 KBS 다큐멘터리 기획전’이고, 10월25일부터 31일까지 CGV대학로와 구로에서, 11월10일부터 16일까지 CGV창원에서 열린다. KBS에서 방영됐던 다큐멘터리 10편이 재편집을 거쳐 극장에서 상영되는 행사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다. 텔레비전과 극장 사이를 열심히 이어준 누군가가 있었을 거다. 그게 KBS 콘텐츠 사업부 박유경 프로듀서다. 경력부터 물었다. “인류학과를 졸업했다. 대졸 최저임금으로 1995년에 입사, 행정착오로 인하여 예능국으로 발령받았다. (웃음) 각종 부서 및 <국악한마당> <가족오락관> 등의 프로그램을 거치고 중국에 유학을 가서 석사도 받고 지금은 콘텐츠 사업부에 근무하면서 출판, 캐릭터, DVD 음반사업 등을 맡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물었다. 이번 기획전에서 어떤 일을 했나. “상영할 다큐멘터리 선정에 참여했고 방송사와 극장과 다큐멘터리 외주 제작사 인력들과의 협업 및 협력관계를 조율했다.” 본인은 부끄럽다지만 이번 기획전을 가능케 한 중요한 마당발이었던 셈이다. KBS가 제작 방영하여 관심을 모았고 극장에까지 개봉하여 예상외의 큰 성과를 거둔 <울지마 톤즈>가 이런 기획전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획전 형식으로 한꺼번에 모아 상영해보자 했던 거다.” 그런데, 자, 사실 여기까지는 준비하면 다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실은 좀 다른 면에서 감동을 받았다. 필살의 추천작 두편, <20년 전의 약속>과 <어머니의 백번째 가을날>의 내용을 한참이나 열심히 설명하던 박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한순간 감정에 젖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정말 이 작품들을 좋아하는구나 아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 기획전은 하나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듀서들에게도, 다소 틀에 박힌 텔레비전용 다큐에도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이런 만남을 폭넓게 이어갈 생각이다.” 그 ‘만남’, 부디 상업적 성공에 눈멀지 말고, 가치있게 발전하면 참 좋겠다.

[유운성의 시네마나우] 영화비평, 길은 있다

지난 9월 열린 토론토영화제 기간 동안 몇몇 영화평론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영화제에서 본 작품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화제는 오늘날 영화비평이 당면한 상황과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는데, 짐작할 수 있겠지만 영화비평의 역할이 이제는 거의 위협적이라 느낄 만큼 축소되고 있다는 의식을 다들 공유하고 있었다. 영화전문지의 구독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의미있는 비평적 담론들은 소규모의 그룹 내에서만 순환될 뿐 그 바깥에선 완전히 길을 잃거나 버려진 신세가 되고 마는 게 현실이다. 혹은 기껏해야 외우기 쉬운 유사 경구로 압축되어 영화 마니아들의 속물적 허세에나 소용닿을 뿐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좀더 자세히 논하는 일은 본 지면엔 걸맞지 않다. 다만 나는 영화비평의 변모 가능한 양상으로서 ‘포스트 프로덕션으로서의 영화비평’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이는 톰 앤더슨의 <로스앤젤레스 자화상>(2003), 피터 폰 바흐의 <헬싱키, 포에버>(2008) 같은 ‘비평적’ 영화들, 그리고 (얼마 전 본 지면에서도 다룬 바 있는) 크리스천 마클레이의 <시계>(2010) 같은 영상설치 작품들, 그리고 보다 대중적인 형식으로는 <뉴요커>가 제공하는 <이주의 DVD> 같은 비디오 포드캐스트 등을 보면서 떠올린 것인데, 이런 작업들에서 작가의 역할은 주로 (일종의 레디메이드 오브제로서) 기존의 영상물들을 다루는 일에 한정되지만 여러 수준의 비평적 입장에서 자유롭게 그것들을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이미지의 아카이브가 상당량 축적된 이후에야 출현 가능한 형식으로서- 이 형식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나 1990년대를 거치며 확산된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중심에 놓이는 것은 오리지널 이미지의 생산이 아니라 기존의 생산물을 편집을 통해 재구성하는 작업, 즉 후반작업 공정에 가까운 활동이다. 그러한 활동이 영화에 대한 비평적 태도와 결부되어 수행될 때 우리는 그것을 포스트 프로덕션으로서의 영화비평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물론 이것은 여전히 한편의 영화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텔레비전 영화 소개 프로그램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사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는 작품들에 ‘포스트 프로덕션’이란 용어를 처음 적용한 이는 프랑스 미술평론가 니콜라 부리오인데, 원래 이는 1990년대 초반부터 미술계에서 중요한 흐름으로 떠오른, 기존의 작품들을 기반으로 디제잉하듯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경향 일반을 가리키기 위한 개념이었다. 부리오가 보기에, 이러한 포스트 프로덕션으로서의 예술작품은 “정보화 시대에 점점 확산되어가는 전 지구적 문화의 카오스에 대한 응답”(<포스트 프로덕션: 스크린플레이로서의 문화>(2001))이었다. 그가 특별히 영상 관련 작품만을 염두에 두고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며 글을 시작하고 있는 건 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작품을 만들고 우린 그걸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우린 그걸 우리 자신을 위해 활용한다.” 여기서의 일이 비평적 활동이라면 우리는 장 뤽 고다르의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함께 고려하는 것으로 포스트 프로덕션으로서의 비평에 대한 정의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비평가들은 이제 영사할 것이다.”

살아있으니 사랑하고 사랑하니 놀자꾸나

소식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다. 때마침 구스 반 산트의 신작 <레스트리스>가 개봉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의 최고작이 아니라는 평가는 일찌감치 들은 바 있다. 하지만 그런 점들이 이 영화에 관한 흥미로운 관람을 가로막지는 못하는 것 같다. 구스 반 산트는 이전의 영화들과 유사한 범주의 소재를 다루고는 있지만 완연히 다른 이야기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레스트리스>는 과연 어떤 영화인가. 이 영화가 품고 있는 그러나 아직까지는 말해지지 않은 진짜 매력들을 중심으로 소개해본다. 소년과 소녀가 만난 곳은 장례식장이다. 소년의 이름은 에녹(헨리 호퍼), 소녀의 이름은 애너벨(미아 와시코스카)이다. 에녹은 지금 자기와 상관도 없는 사람의 장례식에 와 있다. 거기 와서 가족이나 친구 중 한 사람인 척하며 침통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추모사를 경청하거나 고인의 창백한 얼굴을 조용히 들여다보다 발길을 돌린다. 벌써 여러 사람의 장례식을 그렇게 참관하던 중에 애너벨을 만난 것이다. 그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었고 자신도 몇달간 혼수상태에서 헤매다가 겨우 깨어났으며 지금은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고 다닌다. 반면에 애너벨은 말기 암 환자로 몇달 남짓의 생을 최종 선고받고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을 좋아하고 각종 동물들의 생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며 그중에서도 물새를 가장 좋아하는, 생에 대한 지극한 존중심을 지닌 이 씩씩하고 밝은 소녀는 그러나 자신의 이른 죽음만큼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두 사람이 장례식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후 영화는 죽음을 경험한 소년과 죽음을 앞둔 소녀의 러브 스토리로 흐른다. 적지 않은 평자가 <레스트리스>를 구스 반 산트의 범작 혹은 실패작으로 분류했으나(예컨대 <필름 코멘트>의 별점란에 짐 호버먼과 개빈 스미스는 별 다섯개 만점 중 별 하나씩을 부여했다), 로저 에버트는 애정이 짙게 묻어나는 호평을 남겼다.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는 죽음이라는 자신들의 성지를 본질적으로 숭배하는, 한 청춘 남녀에 관한 보기 드물게 감동적인 로맨스다.… (중략)… 이 이야기는 손쉬운 판타지 혹은 꿈같은 로맨틱코미디가 아니라 시간의 냉혹한 행진으로부터 조금이나마 행복을 훔쳐내려는 두 인물의 시도이다.” 그는 시적인 문장으로 영화의 핵심적인 분위기를 잘 묘사해냈고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구스 반 산트의 무한한 관심거리 , 젊음과 죽음 다만 로저 에버트가 두 주인공의 첫 만남에 관해 설명하면서 에녹과 애너벨 그둘 모두 장례식 구경하기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고 말할 때, 거기엔 약간의 착오가 있는 것 같다. 애너벨은 아는 사람의 죽음 때문에 장례식에 왔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병동의 친구 중 한명이었을 것이다. 게임 중이었던 건 에녹이었다. 그러니 에녹과 애너벨이 처음 만났을 때 애너벨이 보이는 좀 이상한 행동은 사실 생각보다 더 이상한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애너벨은 난생처음 만난 에녹에게 환하고 친근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애너벨은 “요즘은 장례식장에 검은 정장을 입고 오는 사람이 없어서 네가 가짜 조문객이라는 걸 알아보았다”는 식의 대사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설명이 그토록 환한 그녀의 웃음의 의미까지 밝혀내지는 못할 것이다. 애너벨은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한눈에 에녹과 그의 행위를 간파한 다음에 함박웃음을 던져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애너벨에게 죽음이란 늘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괴상한 녀석 하나가 나타나더니 그 현실을 상대로 어둡고 어처구니없는 게임을 벌이고 있다. 애너벨은 죽음이라는 이 현실이 누군가에게는 게임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알게 된 것이다. 그 게임의 탈출구로 자신을 인도해줄 괴짜 친구 혹은 연인이 지금 자기의 눈앞에 당도했다는 직관적인 반가움 때문에 애너벨은 웃는다. 마침내 함께 놀게 될 운명의 짝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에 그녀는 웃는다. 이로써 게임의 일원은 하나 더 늘어날 것이고 그녀의 동참으로 이 게임의 분위기는 우울함에서 명랑함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구스 반 산트의 무한한 관심거리인 ‘젊음과 죽음’이라는 문제가 <레스트리스>에서 재등장한 것이다. 젊음이라는 문제가 얼마나 구스 반 산트의 폭넓은 관심을 끌어내는지에 관해서는 최근에 그가 <브레이킹 던>(!!)의 연출에 욕심을 냈었다는 사실 하나만 지적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젊음만큼이나 그에게 늘 가까이 있는 관심거리인 죽음, 그것으로 구스 반 산트는 그의 영화의 가장 위대한 시기 중 한 부분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한 ‘죽음 3부작’(<제리> <엘리펀트> <라스트 데이즈>)을 통과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레스트리스>의 젊음과 죽음이란 죽음 3부작의 그것과는 면모가 다소 다른 것 같다. 로저 에버트는 에롤 모리스의 영화 <천국의 문>에 등장하는 대사를 인용하며 이 다른 면모를 요령있게 압축했다. “죽음이란 망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산 자를 위한 것이다.” 그러니 <레스트리스>에서의 젊음이란 죽음에 인접하여 고통스럽거나 안타깝거나 미스터리해지는 인물들의 시간이 아니라, 너무도 명료한 그 시한적 삶을 생생하고 소중하게 보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들의 시간이다. 죽음을 경험한 소년과 죽음을 앞둔 소녀의 사랑 이야기는 그러므로 결국에 이런 질문을 품게 한다. 그들은 이제 함께할 짧은 생의 시간을 과연 어떻게 살아내는가. 이 점에서 구스 반 산트는 확신을 지녔던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레스트리스>는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내는 삶에 관한 영화다. 애너벨은 죽을 것이다. 애너벨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영화에서 ‘있는 동안에는 놀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감독의 이 말은 일단 도전적이면서도 좀 엉뚱하게 들린다. 특히 여주인공의 대사를 빌려서 한 그 말이 더욱 그렇다. 지금 놀자니 무슨 말인가. 그는 지금 주인공을 가리켜 죽지 않고 살기 위한 의지를 지닌 인물로 표현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동안만은 놀겠다는 의지를 지닌 인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이 영화의 진실이다. 에녹과 애너벨, 그들은 어떻게 둘의 남은 생을 살아갈 것인가라고 우리는 앞서 물었는데, 대답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열심히 노는 것으로 살아간다. 에녹과 애너벨이 만난 이후로 그들의 삶이란 함께 노는 것이며 잘 사는 삶이란 함께 잘 노는 것이다. 놀이로서의 상연에 몰입하는 이유 여기 관련된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 영화의 전반적인 간결성 내지는 단순성의 분위기다. 인물들은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으며 복잡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영화적 리듬도 단순하다. 이야기의 간결성 또한 그런 느낌에 한몫을 더한다. 에녹의 환상이거나 유령이라고 말해질 만한 가미카제 친구 히로시(가세 료) 부분을 제외하면 영화는 거의 서브플롯이라 할 만한 걸 지니지 않은 직선 구조다. 영화는 역전이나 반전이나 미스터리에 고개를 돌리지 않으며 앞으로 또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구스 반 산트는 인물들이 그 선을 따라가며 놀이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보살핀다. 두 번째는 장소들의 뉘앙스다. 이 영화는 차라리 ‘한 장소에서 놀고 그 다음 장소로 이동하여 다시 다른 놀이로 노는 플롯’을 지녔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건 두 인물의 사랑의 행로와도 겹친다. 에녹과 애너벨이 함께 머물렀던 자리들, 그러니까 공터와 축구장과 영안실과 할로윈의 가장행렬이 열렸던 숲속과 그보다 더 깊은 숲속에 자리잡아 그들의 첫 섹스를 품어주었던 오두막과 그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지낸 다음 집으로 돌아올 때의 바람 불고 비 내리던 골목길들. 후반부에 이르면 영화는 이들이 머물렀던 주요 장소들을 다시 비추는데, 거기에 그들은 없고 그들이 남긴 그 장소의 시적 공기만이 남아 있다. 그들은 장소를 바꾸며 단순하게 논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건 주로 무엇을 하며 노는가이다. 에녹과 애너벨이 만난 첫 장면을 다시 말해야 할 것 같다. 애너벨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에녹이라는 단순히 가짜 조문객의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매개로 놀고 있는 자의 등장을 알아본 것이다. 앞서는 게임이라고 칭했지만 이것은 소극적 퍼포먼스다. 그러니 애너벨이 즉각적으로 알아본 건 에녹이 무언가 놀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그 놀이의 종류가 바로 일종의 퍼포먼스, 곧 상연이라는 점이다. 놀이로서의 상연, 이것이 영화 내내 이어지는 에녹과 애너벨의 놀이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다. 처음에 두 사람의 놀이의 형태는 단순히 타인들의 죽음을 더 가까이 관람하기 위한 영안실 방문 같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더 능동적으로 논다. 할로윈 데이의 가장행렬을 따라나서 외양의 아이러니와 유머로 죽음에의 공포를 밀어내보려고도 한다. 틈만 나면 바닥에 시체처럼 누운 다음 몸의 윤곽을 연필로 그려보는 시체놀이도 한다. 그러다가 더 많은 창의적 상연에 이른다. 그들의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의 의복을 걸치고는 그들이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사는 것 같은 그들만의 상연을 펼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애나벨이 죽고 에녹이 남았을 때의 순간을 미리 예상하며 그 두 사람이 만들어보는 슬프지만 귀여운 한편의 짧은 연극이다. 그들은 이 상연의 연쇄들을 통해 죽음을 마주보고 밀쳐내고 끌어당기고 미리 경험한다. 적어도 지금은 함께 행복하게 살아 있다는 존재 증명을 스스로 해내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서로 함께 살아 있는 한 사랑하고 사랑하는 한 최선을 다해 놀고 노는 동안에는 상연한다. 두 배우의 싱그러운 존재감 이것은 소년소녀의 성장담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청춘의 극단적인 러브 스토리를 접하고 나면 이런 습관적인 정의를 내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레스트리스>는 그런 정의를 단호히 거절하는 영화다. 이것은 미숙한 연애담인데 이 연애담은 하나의 성장담이 아니라 기필코 놀이담이다. 그리하여 <레스트리스>에서 에녹의 주위에 늘 머물던 히로시가 그러니까 에녹의 친구이지만 애너벨의 눈에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히로시가 어느 때인가 애너벨의 눈에도 보이는 순간이 올 때, 그렇게 에녹과 애너벨의 첫 만남 이래 영화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불가능의 순간이자 텔레파시의 순간이 올 때, 문득 그들의 놀이가 시작됐던 것처럼 문득 그 놀이를 끝낼 때가 온다. 물론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끝끝내 이 놀이의 끝을 어떻게 다시 한번 그들만의 방식으로 마감하는지는 이 영화의 라스트신이 여실히 보여줄 것이지만 말이다. <레스트리스>를 구스 반 산트의 수작 반열에 올리는 건 우리 역시도 망설여진다. 죽음 3부작의 감격이 너무 컸던 까닭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어 보인다. 이 놀이담은 그 자체로 귀엽고 생기롭다. 황혼이 깃든 만물의 풍경들과 시적으로 더해지는 음악,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편집, 그리하여 마치 산들바람이 몸을 만지고 지나간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이 영화의 모든 좋은 점들, 그중에서도 불가사의한 몸짓과 표정을 순간마다 드러내는 두 배우의 싱그러운 존재감과 그것을 끌어낸 구스 반 산트의 사려 깊은 연출력이 가장 빛난다. <레스트리스>는 두 소년소녀가 재잘거리고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영화다. 미아 와시코스카의 웃음은 언제나 물새 모양으로 자유롭고 헨리 호퍼(지난해 타계한 대배우 데니스 호퍼의 아들)의 고갯짓은 인생을 향해 던지는 물음표 같은 형상일 때가 많다. 아직 견고한 관습을 미처 갖추지 않은 이 두 젊은 생명체가 손잡고 기대고 웃고 입을 맞추고 뛰고 하는 그 생생한 운동과 감정의 리듬만으로도 <레스트리스>는 안아주고 싶은 음악적 감각의 소품이 된다. <레스트리스>는 때이른 죽음을 추모하는 정교하고 장엄한 장송곡이 아니다. 남아 있는 삶의 생기로 쉼없이 들떠서 들썩이는 놀이 행진곡이다.

이 영화를 아시나요? (3)

보고 듣는 것은 아는 것에 우선한다 유현목 감독의 <문>(1977) 유현목 감독의 <문>에 대한 나의 기억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텔레비전에서 길쭉하게 위아래로 늘린 흑백화면으로 보았던 영상의 조각들이다. 다른 하나는 고 하길종 감독의 에세이집에서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와 더불어 “한국영화의 장래에 밝은 빛을 비추어주는”(정확한 표현인지 자신은 없지만) 훌륭한 영화라고 극찬했던 글을 읽었던 기억이다. 이 두 가지 기억의 편린들은 나의 두뇌가 수집한 고전 한국영화에 대한 담론과 지식의 조각들에 고고학자가 파편화된 토기를 복원하듯이 접합되어, “내가 아마도 이런 영화를 본 것이겠지?”라는 추정을 가능케 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추정을 하나의 판단으로 굳어지게끔 하였다. 올해 들어 완벽과는 한참 거리가 있지만 최소한 영화의 화면비, 색깔과 음영을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는 프린트로 <문>을 관람할 기회가 주어졌다. 순간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나의 머릿속에 하나의 그럴듯한 전체상으로 굳어져 있던 <문>이라는 ‘복원된 토기’는 실제 모습과 마주치자마자 누가 수류탄이라도 던져넣어서 폭파한 것처럼 슬로 모션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나는 ‘아마도 이런 영화를 본’ 것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문>이라는 1977년작의 이른바 ‘재발견’의 가치를 증명하는 요소들을 열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일성 촬영감독과 그의 협력자들이 펼쳐놓는 숨이 콱 막힐 듯이 아름다운 영상, 최창권 작곡가의 드라마틱하게 ‘영화적’인 음악과 어우러지는 황병기, 황병주, 설금옥 연주자들의 가야금 선율의 유려함, ‘TV 탤런트’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이미지들을 완전히 와해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최불암과 박근형의 경이로운 연기 등. 이러한 놀라운 미적 성취 및 서사와 연기의 힘 이외에도 <문>에는 ‘작가주의’니 ‘리얼리즘’이니 하는 개념들로 단순화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겐 없다. 단지 유현목 감독이 <수학여행> <불꽃> 심지어 <엄마와 별과 말미잘>에 이르기까지 내가 본 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삼라만상을 맑게 바라보는 자세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일본사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한 나로서는 <문>이 일본인 캐릭터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야쓰하시 부자(父子)는 고토(琴)의 현대화 및 대중화라는 현실적인 목표와 자신들의 음악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다시 한번 그것을 쇄신하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고뇌한다. 이들은 물론 한국인 연기자들이 한국어로 연기하는 캐릭터들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욕망이 ‘가야금 민족주의’에 종속되거나 ‘국민문화’ 간의 콩쿠르로 치환되는 일이 없이 영화 안에서 완수된다는 점에서 그 어떤 한국영화의 일본인 캐릭터들과도 차별된다. 그들은 (실제 역사상의 식민주의자들과 달리) 우담선생과 그의 딸의 주체성을 인식하며 또한 한국인 가야금 연주자들도 그들의 욕망을 승인한다. “우리가 너희보다 잘났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왜 모르느냐?” 또는 “너희는 우리와 달리 객관적으로 나쁜 놈들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느냐?”라는 투의 제국주의(그리고 그 제국주의를 쏙 빼닮은 ‘반제국주의’)를 표상하는 어리석은 질문들은 <문>에서는 아예 그 자취가 없다. 이러한 <문>의 시각은 유현목 감독이 에티오피아에서 이스라엘로 베게나(열개의 현이 달린 하프와 비슷한 악기)의 원류를 찾아서 떠나는 모슬렘 아프리카인 작곡가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할지라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을 것이다. “보는 것이 아는 것에 우선한다”라고 장 뤽 고다르가 어딘가에 썼다고 한다. 아마도 고다르가 이 말을 한 맥락은 다르겠지만 <문>을 다시 보는 것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아는 것’보다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었다. 부디 이러한 ‘한국영화’에 대한 무지몽매함을 깨칠 수 있는 행복한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물음표 임권택 감독의 <가깝고도 먼 길>(1978) 나는 임권택의 68번째 영화 <가깝고도 먼 길>을 처음 보았을 때 어리둥절했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기괴하)다. 낙도 어린이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돌아오던 초등학생 인철이 배가 난파되는 바람에 북한에 상륙한다(이게 말이 되나?). 거기서 또래의 북한 어린이 동만을 만난다(반공영화로군, 난 이미 어떻게 끝날지 잘 알고 있어!). 둘은 우여곡절 끝에 친구가 되어(그럴 줄 알았어)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가려고 한다(자,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그리고 휴전선을 넘다가 둘 다 총에 맞아 사살당한다. 도대체 어쩌자고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을까. 이 몸서리쳐질 정도의 냉소적 아이러니의 세계. 동화에 가까운 가정에서 시작한 이 영화는 거의 성공할 것만 같은 자리까지 우리를 데려가서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을 끌어내다가 갑자기 방향을 선회해 모든 노력을 제로로 만든 다음 이게 우리의 현실이에요, 그러니 제발 나에게 불가능을 요구하지 마세요, 라고 능동적으로 영화가 자기 자신을 맞받아쳐서 부숴버린다. <가깝고도 먼 길>은 반공영화가 스스로 자신의 낭만적 망상에서 시작해서 반공 이데올로기의 욕망이 성립되지 않는 현실과 대면하도록 이끌고 간 다음 문득 통일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상상을 상징화할 수 없는 곤궁 안으로 밀어넣는다. 이때 당신은 이 영화의 시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직 박정희가 살아 있을 때 만들어진 거의 마지막 반공영화. 이미 임권택은 1976년 <왕십리>를 찍은 ‘다음’부터 걸작들의 행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 영화는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영상시대 동인들의 도시 저변의 하층계급에 관한 ‘팝콘’ 비애극(pop corn-Trauerspiel)들보다는 훨씬 훌륭하다. 1978년에 심훈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상록수>는 문예영화의 걸작이며,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든 같은 원작의 영화화인 김기영의 <흙>과 비교하면 두 대가가 어디서 서로 풍경과 미학적으로 헤어지고 한편으로 어떻게 박정희 시대의 마지막 피비린내 나는 부패의 공기를 공유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해 아마도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비통하리만큼 아름다운’ <족보>를 만들었다. 이듬해 79년 <신궁>과 <깃발 없는 기수>를 만들었고, 마침내 80년 <짝코>, 그리고 81년 <만다라>를 완성했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임권택의 창조의 곡선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던 중이었다. <가깝고도 먼 길>이 숨은 걸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 영화는 너무 괴상해서 어쩌면 1978년, 그 순간 임권택이 가지 않은 또 다른 영화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러나 임권택은 자기 영화에서 ‘그 이후’ 던져진 세상에 대한 냉소의 태도를 일체 버리고 성찰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이 <깃발 없는 기수>와 <짝코>, 그리고 <만다라>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향’의 목표를 선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가 가지 않은 선택은 ‘지양’을 통해서 환상을 쳐부수는 쪽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가정이다. 다만 나는 임권택에 관한 생각을 할 때마다 1978년에 하여튼 잠시 멈춰 선다. 그저 그 생각을 잠시 고백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내 가정은 정확하게 딱 여기까지이다.

[김중혁의 No Music No Life] 외로움이 몸부림치기 전에

노래를 듣다가 울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데 노래 속의 어떤 단어나 목소리나 멜로디가, 불쑥, 귀로 들어오더니 뒷골을 타고 내려가 심장을 후벼판 다음 재빨리 얼굴로 올라가 눈물샘을 건드린다. 그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내가 어쩌다 눈물을 흘리게 됐는지도 알지 못한다. 눈물은 얼마나 재빠른지 손쓸 틈이 없다. 흐르고 난 뒤에야 닦아낼 수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노래가 있을 거다. 듣는 순간 무방비 상태가 되는, 갑자기 한숨을 쉬게 되고 어느 순간 가슴이 아릿해지는 노래가 있을 것이다. 한번 눈물을 쏙 빼고 나면 들을 때마다 슬픔은 반복된다. 오랜 시간 동안 노래에 익숙해지면 슬픔은 사라지지만 몇년이 지난 뒤 그 노래를 들으면 슬픔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나에게는 롤러코스터의 노래가 그랬다. 지금도 2002년의 신촌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롤러코스터의 음악을 좋아해서 첫 번째 앨범부터 얼마나 열심히 들었는지 모른다. 이어폰을 꽂고 계속 들었고, 노래방에 가서도 불렀고(마이크 뺏겼고), 콘서트에도 따라가서 들었고, 거의 매일 들었다. 그들의 명반 ≪일상다반사≫가 조금씩 지겨워질 때쯤 다음 앨범이 나오기를 목 빼고 기다렸는데, 나온다는 말만 많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10년 전 울컥하게 한 롤러코스터 조원선의 목소리 2002년의 어느 날, 나는 신촌을 걷고 있었다. 생각없이 신촌을 걷던 내 귀에, 너무나 익숙한 조원선의 목소리가 들렸다(요즘은 이런 풍경도 모두 사라졌지만). 레코드 가게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정신을 빼앗긴 채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비트는 강했지만 노래는 슬펐다. 사람들은 바쁜 걸음으로 곁을 지나갔고, (그때만 해도 뚜렷한 직업이 없었으므로 시간이 많았던) 나는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유령처럼 보였다. 그들의 실루엣은 현실의 장면 같지 않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 나는 슬펐다. 사람들의 걸음걸음이 모두 슬펐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각자의 방향으로 정신없이 사라져가는 게 너무 슬퍼 보였고, 절대 알 수 없을 그들의 삶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롤러코스터의 이었는데,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신촌의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가사도 어찌나 절묘했던지.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다. 니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한참 후에서야 알았다.’ 그래, 그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그게 그렇게 슬플 일인가, 감수성 과잉이지, 그렇지, 나도 안다, 아는데, 가끔은 모두들 그렇게 슬플 때가 있지 않나. 슬픔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존 레이티의 <뇌, 1.4킬로그램의 사용법>이라는 책에는 슬픔을 이렇게 설명한다. “두뇌에서 슬픔은 좌측 편도체와 우측 전두엽의 활동을 증가시키고, 우측 편도체와 좌측 전두엽의 활동을 감소시킨다.” (네? 뭐라고요? 설명을 더…) “슬픔을 통해 우리는 잠시 멈춰서 재편성하고 재평가한다. 우리에게 충분한 고통을 주어 변화할 동기를 유발한다.” (아, 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슬픔이란 광범위하다. 불안으로 인한 슬픔은 극단적인 선택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슬픔은 오히려 삶의 깊이를 더해주는 자극제인 셈이다. 작아져서 슬픈 나를 위하여, 손성제의 ≪비의 비가≫ 두달 전에 다시 한번 그런 일이 있었다. 10년 전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나는 덜컹거리는 지하철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셔플 기능을 켜둔 채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원선의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얼음처럼, 차가워요, 단단하게, 굳어져가요, 그 속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이제는 아무도’라고 노래하는 조원선의 목소리는 시끄러운 지하철 소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내 몸을 떨리게 했다. 10년 전의 목소리와 달라진 게 없었고, 오히려 더 서늘해졌다. 조원선의 앨범에 들어 있는 노래가 아니라 손성제의 ≪비의 비가≫에 들어 있는 <마음, 얼음처럼 단단하게>라는 곡이었다. 그때부터 ≪비의 비가≫ 앨범을 계속 들었다. 이 앨범은 그야말로 슬픔의 파노라마, 슬픔의 버라이어티, 슬픔의 포커스, 슬픔의 집대성이었다. 첫곡부터 끝까지 한번도 웃지 않는다. 웃음기를 보이기는커녕 자꾸만 땅속으로 기어들어간다. 그러나 그 슬픔은 우울로 이어지는 슬픔이 아니고, 자신을 괴롭히게 되는 그런 슬픔이 아니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게 되는, 동정 가득한 슬픔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의 크기가 작아진다는 뜻이다. 혼자 차지하던 세계에 타인을 들어오게 하는 것이고, 타인이 잘 살 수 있게 내 영토를 줄이는 것이다. 내가 자꾸만 작아지니까 슬픈 거고, 그래서 자꾸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날 사랑하냐고, 날 좋아하냐고’ 묻게 된다. 손성제의 ≪비의 비가≫는 작아지는 내가 슬퍼서 부르는 노래다. (연인이든 세상이든)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한 뒤에 느껴지는 슬픔에 대한 노래다. ‘2011년의 앨범’을 꼽는다면 ≪비의 비가≫를 무조건 포함시켜야 한다. 이렇게 모든 노래가 하나의 방향으로 화살표처럼 움직이는 앨범은 드물다. 모든 노래가 좋지만 ‘앨범’으로서 더욱 훌륭하다. 앨범의 첫곡부터 듣기 시작해 마지막 곡을 다 듣고 나면 어딘가를 관통했다는 기분이 든다. 커다란 감정의 덩어리를 삼켰다가 씹은 다음 뱉어낸 듯한 기분이 든다. <상상초월 쇼케이스> 공연을 할 때도 슬픔은 여전했다. 손성제는 조용하지만 또박또박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사람인데, 노래를 부를 때면 갑자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본인은 좋은 보컬리스트가 아니라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의 노래에 그보다 잘 어울리는 목소리는 없다. 바람 같은 목소리, 가지 끝의 나뭇잎이 떨리다가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듯한 목소리다. 손성제는 색소폰을 부는 사람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어찌 보면 그의 색소폰 소리나 그의 노래나 다를 게 없었다. 관악기들이 그렇게 쓸쓸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속에다 숨소리를 불어넣기 때문이고 손성제는 색소폰에 숨을 불어넣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니 모든 노래가 그렇게 쓸쓸했던 거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아마도 사라지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감정일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혼자였다면 절대 알 수 없을 감정,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영토를 줄여본 사람이 아니라면 알 수 없을 감정, 함께하는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지만 결코 그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이 바로 외로움일 것이다. 앨범에서 가장 쓸쓸한 트랙은 <멀리서>라는 곡이다.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객원가수 김지혜의 목소리와 기타 소리 위에 사람들의 소리가 겹친다. 텔레비전 소리 같기도 하고, 공연장에서 들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웃고, 환호하고, 박수치고 있다. 그들이 환호하고 돌아가는 시간의 어두운 골목에서, 웃음과 박수가 모두 끝난 뒤의 적막 속에서, 자려고 누운 침대 위로 보이는 어두운 천장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은 순식간에 그들을 기습 공격할 것이다. 순식간에 심장을 후벼파고 우울을 극대화할 것이다. 외로움이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가자. 그게 훨씬 덜 아프다. 외롭지 않다고 자신을 세뇌하다가 어이없는 한방에 무너지지 말고 우리가 먼저 찾아가자. 내가 보장한다. 손성제의 앨범 ≪비의 비가≫를 듣는 순간, 이번 가을과 겨울의 가장 깊고 환한 외로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이 오기 전에 만나러 가자. 2011년 가장 슬픈 노래들.

[유선주의 TVIEW] 소품은 살아있는데…

<후지TV> 개국 50주년 드라마 <불모지대>(2010)는 일본군 장교였던 이키 다다시(가라사와 도시야키)가 종합상사에 발을 들이고 회사를 키우며 한발씩 위로 올라서는 일본 경제성장기 배경의 시대극이다. 일터의 풍경이나 양복, 헤어스타일의 변화는 이키가 유행을 좇는 캐릭터가 아니라 유난하지 않은 편인데 그가 일에 매달린 사이 출퇴근하는 집의 거실 풍경으로 세월이 흐른다. 빈궁한 살림에서 시작해 가장이 승진할 때마다 조금씩 살림이 피고 좌식에서 입식으로 가구들이며 생활 스타일이 바뀌는 이키네 가정. 남의 나라, 안 살아본 시절의 성공담을 망연하게 구경하는 와중에 깜짝 놀란 장면이 있다. 차분하게 내조하는 이키의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며 수편물을 잡고 있는 모습이 나온 뒤, 곧 온 집안이 손뜨개 레이스로 도배가 된 장면이다. 이것은 남편을 일터에 빼앗긴 일본 여성의 원념이 담긴 수편물인가! 농담이고, 내내 조용하던 이키의 부인이 공간을 장악한 순간이다. 일본의 수편물 유행은 시간차를 두고 레이스 교본이나 시집갈 때 하나씩 구비해 가던 <여성대백과사전>의 홈패션 항목으로 수입돼 한국에도 집집마다 레이스 광풍이 분 적이 있었다. 우리 집 역시 어머니의 폭풍 뜨개질로 커튼이며 식탁보, 가구 커버들이 모두 레이스로 덮였고 어머니는 그래도 코바늘을 놓지 않았다. 일본 거실이나 한국 거실이나 시간차는 있지만 어떤 시절을 관통한 전국적인 유행이 스몄던 거다.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빛과 그림자>는 세트나 소품에 공을 들인 태가 역력하다. 1970년 지방 소도시의 극장을 물려받은 청년 강기태(안재욱)는 영화에 투자했다 사기당하고 쇼단을 유치해 위기를 모면하려 하나 그도 여의치 않다. 아직 인물들의 성격도 단선적이며 눈뜨고 당하는 사기장면도 긴장감이 부족해서 세트나 소품 구경하는 쪽이 재미가 더 크다. 극중 다양한 장소의 의자들을 비교해보면, 순양극장 좌석에는 극장이름과 자리번호가 프린트된 머리 커버가 씌워져 있고 공화당 후보의 응접실에는 가죽소파 머리와 팔걸이 부분에 흰 커버를 씌웠다. 보리수 다방의 소파는 두툼한 ‘비로도’ 천으로 감싼 소파에 나무 팔걸이, 다방이름과 전화번호를 프린트한 머리 커버, 여주인공 정혜네 미용실은 풀색 비닐 소재 소파에 테이블에도 비닐을 깔았다. 기태의 집으로 들어가면 노란 미송나무로 마감된 거실에 금성 텔레비전과 괘종시계며 문갑, 스탠드, 도자기와 분재가 여기저기 놓였다. 홈드레스를 입은 기태 엄마(박원숙)는 ‘양키 아줌마’가 가지고 온 미제 물건들을 늘어놓고 수다를 떨거나 자개장과 좌식 화장대가 놓인 안방에 누워 콜드크림 마사지를 받기도 한다. 식모를 부리는 부엌은 식탁이 놓인 곳보다 한단 낮고 조각 타일을 깔아뒀다. 가스레인지와 풍로를 함께 쓰는 것도 옛날식이다. 이제까지 봐왔던 시대극과 비교하자면 여기저기 공을 들인 게 분명한데 어쩐지 성에 차지 않는다. 저 집에 사는 것 같은 사람은 그나마 기태 엄마 하나뿐. 다양한 장소들, 가구와 소품들에 주연배우들이 녹아들지 못하는 건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이용하거나 인물이 장소를 장악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싸한 부엌을 만들어두곤 다 차려놓은 식탁 장면만 쓰고 다방에 가서는 대화만, 풍전 나이트에선 춤만 추는 식이다. 아직 초반인데 괜한 걱정인가 싶어도 이 드라마는 70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의 긴 세월을 다룬다고 하고 기태네도 머잖아 몰락할 판이니 세트며 가구들이 아까워 죽겠다.

[동국대 전산원 영화영상학부]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지원하고 배려하다

◆ 입시가이드: 정시전형_연기학과와 영화영상제작학과 각각 50명씩 선발한다. 두 학과 모두 실기 40%+면접 40%+학업계획서 20%를 반영한다. 연기학과는 개인이 준비한 3분 이내의 개인 연기와 시험 당일 제시되는 상황을 연기하는 지정 연기를 각각 20%로 반영한다. 영화영상제작학과는 실기 당일 준비된 영상 10분가량을 보고 지정된 양식으로 작문을 한다. 105년 역사의 학교법인 동국대학교가 운영 중인 동국대학교 전산원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점인정기관으로 인가받아 36년간 이어져 온 학사학위과정 교육기관이다. 유사한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에 비해 공신력이 높고, 우수한 수업 장비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학생들의 관리에도 책임감 있다. 일반 대학이 아닌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이라고 하면 대개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동국대학교 전산원으로 진학하는 것은 4년제 대학과 똑같이 학사학위 취득이 가능하고, 국내외 타 대학으로의 편입이나 취업활동이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측면에서 사실상 일반 대학보다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현재 컴퓨터공학과, 멀티미디어 콘텐츠학과, 경영학과, 국제통상학과, 관광경영학과, 사회복지학과, 연기학과, 영화영상제작학과 등 8개 학과가 운영 중인데, 수능성적이나 내신과는 무관하게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및 교육법령에 의해 동등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 4년제 교육과정을 빠르면 2년 만에 마무리하고 조기 졸업하는 것이 가능하다. 따라서 빠르게 진행되는 교육과정에 무리없이 적응할 수 있도록 실기 위주의 효율적인 교육 방식과 이에 따른 시설 지원이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특히 이번부터는 주말 학위 과정이 신설되었다는 것이 이전과 크게 다르다. 동국대학교 전산원과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주말 경영학사 학위 취득과정은, 공부는 하고 싶은데 시간을 내기 힘든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일주일 중 토요일 단 하루만 꾸준히 출석해도 동국대학교 총장 명의의 경영학과 학사 학위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이수 기간은 4년이고 계절학기도 포함된다.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시작되어 밤 9시20분에 끝난다. 학위 취득을 위해 총 140학점을 이수해야 하며 여기에는 전공 60학점과 교양 30학점이 포함된다. 과정 이수 중 자산관리사(20학점), 물류관리사(20학점), 텔레마케팅관리사(18학점), 전산운용회계사(18학점), 행정관리사(3급은 14학점, 2급은 20학점) 등의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할 경우 학점으로 인정된다. 리허설은 공연처럼, 공연은 리허설처럼 동국대학교 전산원 영화영상학부 연기학과의 ‘기초연기Ⅱ’를 학생들과 함께 들었다. 연기연습실에 붙어 있는 “리허설은 공연처럼! 공연은 리허설처럼!”이라는 플래카드가 인상적이다. 인자한 미소의 김용규 교수는 간단한 인사 뒤 바로 혹독한 연기 수업에 들어갔다. 신체 각 부위를 이완하는 기본 스트레칭이 먼저였다. 스무명도 채 안되는 학생들은 개인용 매트에 누워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뱉었다. 긴 호흡을 위해 복압을 강화하는 훈련이 이어지고, 발성훈련과 걷기훈련이 이어졌다. 널찍한 연기연습실은 몸속의 공명을 느끼며 낮은 소리로 발성 연습을 하는 학생들의 소리로 가득 찼다. 이어 학생들은 나란히 서서 몸에 힘을 빼고 걷기 시작했다. “힘 빼고 걸어! 마음 가는 대로, 남 따라하지 말고 자기 충동대로! 충동적으로 걸어!” 학생들의 걸음 걸음을 유심히 살펴보며 김용규 교수가 간간이 외쳤다. 가상의 공을 가지고 즉흥연기를 할 땐 연습실이 웃음소리로 넘쳤다. 정말 눈앞에 무겁고, 가볍고, 빠르고, 느린 공이 있는 것처럼 학생들은 보이지 않는 공을 마음껏 굴리고 던졌다. “똑같은 동작 하지 말고! 항상 신선하게! 새로운 것!” 김용규 교수는 ‘충동적인 나만의 감정’을 특히 강조했다. 여기까지의 이 모든 과정은 매일 반복된다. 기본 신체 훈련을 마친 뒤 학생들이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고 소도구를 챙긴다. 연극 <날 보러 와요>의 한 장면을 연기 실습하는 것이다. 조금 전까지 자연스러운 표준어를 구사했던 한 남학생은 의상을 갈아입자마자 정말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것처럼 구성진 사투리 연기를 선보였다. 김용규 교수는 이따금씩 수업 시간에 ‘자기화 과정’을 거친다고 소개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사회의 눈이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 절제하고 억압해온 내 안의 욕구를 연극적으로 장면화하는 과정입니다. 거칠게 욕을 하고, 매달리고, 울고, 소리지르고 하는 이 모든 표현들을 현실화하면서 억압된 감정을 긍정적으로 해소하는 거죠.” 영화영상제작학과의 스튜디오에서는 김훈광 교수의 ‘영화촬영Ⅱ’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어두컴컴한 스튜디오에서는 조명 테스트 수업을 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한쪽엔 대형 모니터가 있고, 스튜디오 한가운데에 핀 조명이 내리꽂힌다. 여러 종류의 카메라를 들고 있는 학생들은 핀 조명을 빙 둘러싸고 카메라를 조절하면서 이리저리 비춰보고 있었다. 학생들이 찍고 있는 그림은 대형 모니터로 바로 확인됐다. “45% 나올 때까지 맞춰봐. 조금 뜨잖아. 45%가 안 나오는 이유가 뭐야? 조명이 부족하단 얘기야. 앞으로 조금만 나와볼까?” 김훈광 교수는 핀 조명 아래와 모니터 앞을 오가며 학생들의 조명을 꼼꼼히 살폈다. 이어지는 스피디하고 간결한, 그리고 정확한 지적. 지금 현재도 영화 현장에서 활동 중인 김훈광 교수는 현장 스탭을 대하듯 학생들을 지도했다. 학생들 역시 김훈광 교수의 속도에 지지 않고 빠르게 질문하고, 빠르게 답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스튜디오에 감도는 이 예민한 긴장감은 뭘까? “조리개를 조금 닫아봐. 맞춰야지. 그래. 그렇게.” 마침내 미세한 차이로 빛이 들어맞자 스튜디오를 옥죄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탁 하고 풀린다. 학생들의 사소한 동선까지 배려 동국대학교 전산원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장소는 활용도 높은 연습실도 아니고, 첨단 장비로 꽉 찬 스튜디오도 아니다. 교수실과 입시홍보팀, 학생복지 담당 부서가 모두 거대한 하나의 사무실을 공유하고 있는 학생지원센터다. 입시홍보팀 유정호 과장은 이 독특한 설계가 “학생들이 민원 처리를 할 때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긴 시간 수업을 안내한 김용규 교수는 학생들을 줄곧 ‘우리 애들’이라고 불렀다. 멀리 있어 지나쳐버려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학생들은 굳이 김용규 교수의 앞까지 와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간다. 교수와 학생이라기보다도 아버지와 막내처럼 보이는 관계다. 그냥 아이도 아니고 막내다. 학생들의 사소한 동선까지 조금 먼저 생각하는 배려와 학생들을 ‘우리 애들’로 키우는 마음이 동국대학교 전산원의 힘이다. “아이들의 성장 눈에 보인다” 동국대학교 전산원 영화영상학부 김용규 교수 -동국대 전산원 영화영상학부만의 자랑거리를 소개한다면. =탄력적인 커리큘럼을 운영 중이다. 연출을 공부하다가도 연기로 옮길 수 있고, 연기를 하다가도 연출로 갈 수 있다. 한 분야에 대한 심화적인 공부도 가능하고 다방면의 공부를 자유롭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창작 공연도 30개 이상 올렸다. 무대연출부터 연기까지 학생들이 전부 한다. 학교에 오면 정신없이 공연 준비만 한다. 아이들에게 많은 무대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 -학생에 대한 지원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우리 애들에게 든든한 힘이 돼주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우선한다. 물질적 지원은 물론이고, 가장 안정된 상태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현장에 계신 분들을 많이 모셔서 현장감 있는 수업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좋은 선생님들과 우리 애들을 맺어주고 싶다. -학교에서 원하는 인재상이라면. =문화계에 필요한 인재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지난해와 어떤 것이 달라졌나.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건 우리 아이들의 성장이다. 사회로 진출해서 자기 일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기도 하고, 무대에 올리는 공연 수준도 훨씬 높아졌다. 대학원에 진출한 아이도 있고, 독특하게 가요계로 들어가 가수가 된 아이도 있다. 지난번 제3회 노인영화제와 청소년영화제에서도 대상을 수상하는 등 꾸준히 영화를 찍고 있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연극영화계에서 자신을 살아남게 하는 것은 결국 실력이다. 카메라로 클로즈업해서 얼굴 표정만 잡아봐도 안다. 외모나 스펙이 아무리 뛰어나도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랜 시간 버텨내기 힘들다. 개인의 포트폴리오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바쁘게 공연 준비도 하려면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 독선에 빠지지 말고 ‘어울리는 것’을 배우는 것도 필수다.

[김영진의 인디라마] 노동의 당당함이 좋아

이성규 감독의 다큐멘터리 <오래된 인력거>는 초반과 끝 장면이 맞물려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샬림이 이제 더이상 촬영하지 말라고 역정을 내는 데서 시작한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샬림의 인력거꾼으로서의 삶의 연대기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 다음 초반부에 보여준 그 시점에 다다른다. 아내와 아이들이 병을 앓으면서 삼륜차를 사기 위해 모아둔 돈이 줄어들자 샬림은 절망한다. 자신의 꿈이 사라지고 있노라고 울먹이던 그는 더이상 자기 삶에 간섭하지 말라고 카메라를 거부한다. 그 장면에서 갑자기 감독 이성규가 카메라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는 파국에 이른 촬영현장에서, 카메라 앞에서 샬림에게 영어로 미안하다고 사과하기 시작한다. 거듭 사과하며 샬림을 껴안는다. 3세계를 바라보는 인습적인 시선 벗어나 연출자가 카메라 앞에 나서는 것은 다큐멘터리에서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다. 연출자가 화자가 되는 일도 흔하고 종종 카메라 앞에서 피사체인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도 곧잘 있다. <오래된 인력거>에선 그게 느닷없이 일어난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임 쏘리, 아임 쏘리”라고 거듭 이성규 감독이 샬림에게 말할 때 영화를 보면서 은근히 품었던 의심이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해소되는 걸 느꼈다. 예를 들어 샬림이 자기 인생의 꿈이라고 말하는 삼륜차를 사는 일의 실현 여부에 관해 생각해보자. 인도의 가난한 최하층 계급 인력거꾼의 삶을 찍는, 부자는 아니겠지만 샬림보다 더 나은 형편의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해 영화를 보는 우리는 민감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 돈으로 800만원의 구입비용이 들고 등록비까지 합하면 1200만원가량이 든다는 샬림의 삼륜차 구입의 꿈은 솔직히 말해 누군가의 도움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꿈이다. 이런 형태의 자선이나 구조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아프리카에 가서 유명인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번듯한 집을 지어주는 것을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봤다). 불행에 빠진 대상을 촬영하면서 거리를 두고 관찰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윤리적 갈등을 드러낸다. 이들을 찍을 돈으로 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다. 혹은 이 사람들에게 출연료를 줘 도울 수도 있다. 아니면 그들의 가난을 촬영팀이 소재로 착취할 위험도 있다. 앞서 언급한 감독의 ‘미안하다’라는 화급한 마음의 표시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서 피사체를 상대할 때 맞닥뜨리는 모든 인간적 곤경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가 픽션으로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스크린이나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은 흔하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실제 불행을 겪는 사람들을 여하간 대상으로 삼는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인력거>는 이 지점에서는 솔직하다. 설령 그것조차 자신들의 윤리적 곤란을 드러냄으로써 정당화하려는 방편으로 삼는다고 비난한다면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는 보지 않았다. 이 영화를 보기로 선택한 관객에게도 그건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마음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는 우리는 도덕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우리는 세상의 어두운 그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소비하지만 그것에 대해 별다른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정면으로 그 불편함을 드러낸다. <오래된 인력거>에서 샬림의 삶을 보여주는 시각은 그의 가난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노동을 상술하려는 쪽에 있다. 그는 인력거를 끄는 노동을 하는데 이 일은 가장 저임금을 받는 일에 속하고 그 때문에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신발을 신고서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샬림은 늘 맨발로 인력거를 끈다. 다른 인력거꾼들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는 기교적으로 보일 만큼 다양한 앵글로 인력거를 끄는 샬림을 화면에 담는다. 이것이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동시에 노동하는 인간의 당당함을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할 것이다. 요컨대 샬림은 말로 자신의 곤궁을 카메라에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가 일을 할 때 그의 당당한 자존도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는 가난한 마초 가장이지만 자신이 건사하는 가족을 위해 초인적인 노동을 감내하는 데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 당당함이 제3세계 사람들의 삶을 구경거리화하는 대다수 인습적인 텔레비전 카메라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준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관객의 시선에 대해 수평적으로 맞서면서 샬림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개별화하고 있다. 카메라로 그의 삶은 보편적 휴머니즘이라는 틀 안에, 공감과 연민과 위로의 틀로 가장한 수직적인 시선의 압제에 굴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란 미학적 테제를 벗어난 형식 이런 장점이 일관되게 이 영화에서 관철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성규 감독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장르에서 오래 작업한 장인이고 그의 작업 관행은 어쩔 수 없이 능숙한 테크니션의 손길로 드러난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하여 찍은 화면을 그는 자유자재로 섞고 시공간을 하나의 연대기로 편집하며 화면과 반응화면의 틀로 편집된 것들은 뚜렷한 극적 흐름을 띤다. 미로 스페이스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만난 그는 이 영화에 쓰인 숱한 편집효과의 실례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이를테면 우기에 물에 잠긴 콜카타 시내에서 인력거를 몰며 일하는 샬림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반의 한 시퀀스는 하룻동안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여러 날 동안 찍은 숏들을 편집한 것이다. 샬림의 젊은 동료인 마노즈가 과거의 충격적인 상처를 털어놓는, 논란이 될 만한 영화 속 한 장면에서도 트릭이 쓰였다고 한다. 마노즈가 맨 정신에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고 주점에서 술에 취해야만 과거를 주절주절 얘기하는 걸 취재해놓은 상태에서 마노즈를 따로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한 화면을 샬림과 대화하는 장면에 끼워넣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런 장치들이 덜커덕 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뭔가 연출된 느낌, 혹시 이것이 현장에서 자연스레 포착된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된 것의 시연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논란이 될 뿐만 아니라 비판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거론한 장면이 진실인가, 진실이 아닌가에 관해 그 경계를 묻게 되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마노즈가 상처를 갖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카메라 앞에서는 꺼내놓지 않는다. 샬림이 아무리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촬영 스탭은 그를 따로 설득해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을 찍었다. 그러고는 샬림과 얘기하는 대목에 붙였다. 나는 이 장면에서 처음과 끝이 맞물리는 장치와 비슷한 형식적 고려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일관된 극적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된 이런 트릭이 덜커덕거리는 이물감을 준다면 그것은 카메라 바깥에서 벌어지는 진실 유무의 판단 이전에 감성적으로도 걸리는 부분이다. 진실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중요하다. 어쩌면 그 형식을 존중하는 것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굳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고유의 가치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현실은 편집되는 것이다, 라는 명제는 맞다. 편집은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왜곡이나 창작자의 주관적 수용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창작자의 주관적 수용을 관객에게 밝히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예의다. 이것이 현대 영화의 기본적인 미학적 테제였다면 <오래된 인력거>는 그것조차도 관객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상정하고 창작자의 주관적 편집이 용인될 수 있다는 믿음 끝에 나온 형식적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인력거>는 완성도가 뛰어난 다큐멘터리이며 그 뛰어난 완성도를 위해 희생한 것이 적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감독 이성규의 진심을 믿는 쪽이지만 다음에는 그가 더 뻔뻔스럽게 극적 완결성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현실 앞에 순응하며 카메라의 부분적인 무능을 드러내는 쪽으로 가는 것 중에 택일했으면 한다. 이런저런 미덕과 이물감이 공존하는데도 감독이 그가 찍는 대상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느끼는 애증과 신뢰가 적실하게 드러나고 그게 관객의 마음에 흔적을 낸다는 것이 <오래된 인력거>의 매력이다.

[이 사람] 데즈카 오사무는 유효한 키워드

1월13일부터 22일까지 씨네코드 선재에서 열리는 데즈카 오사무 애니메이션영화제를 기획한 이철주 프로듀서는 막힘이 없다. 데즈카 오사무뿐만 아니라 문화 기획 전반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두루 피력한다. 그는 자신을 ‘문화기획자’라고 소개한다. 2004년 야외 오페라 <아이다>, 캄보디아 국립박물관 내한전, 연극 <햄릿>, 북한 금강산 극단 내한공연, 북한 음악 관련 음반 시리즈 등이 그의 손을 거쳐 태어났다. 한해 전에는 국제만화예술축제를 출범시켰고 그 계기로 올해는 데즈카 오사무 영화제까지 성사시켰다. “만화와 순수미술의 경계가 거의 없어지는 상황 아닌가. 그에 가장 걸맞은 아티스트는 누굴까 생각해봤다. 오사무야말로 일관되게 생명의 소중함, 인권, 반전쟁, 평화에 관하여 일관된 예술가의 태도로 말해왔다. 지금의 한국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키워드라고 판단했다. 지난해에 마침 데즈카 오사무 프로덕션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어 제안을 했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데즈카 오사무의 한국에 대한 애정은 사실 남달랐다고 한다. 신동호 화백과도 각별한 친분을 맺고 있었고 한국쪽에 하청을 주기 시작한 것도 그였다고 한다.” 이철주 프로듀서는 이번 영화제의 특별함을 강조하는 걸 잊지 않는다. “그동안 간간이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들을 볼 순 있었지만 몇편의 단편 정도였다. 이번 특별전에서 선보일 작품들은 그간에 소개되지 않았던 단편이 중심이고, 장편도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버전과는 다른 처음 보는 버전일 거다. 대부분 해외 전시의 경우 데즈카 오사무 프로덕션이 작품 선정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우리쪽에서 기획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철주 프로듀서는 “82학번이다.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보며 성장한 세대다.” 그의 원체험이 비로소 그의 일이 된 셈이다. “문화기획자들의 주전공은 다 다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새로운 것을 선호한다”는 그의 모험심 덕분에 우리는 지금 데즈카 오사무의 영화를 제대로 만나게 된 것이다.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의 기획은 분야를 막론하고 다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