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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베를린] 독일 영화사가 오롯이 이곳에

유럽 최대 영화스튜디오 바벨스베르크가 2월12일 100주년을 맞는다. 이로써 바벨스베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최고령 영화세트장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바벨스베르크는 16개의 스튜디오와 15만6천㎡의 야외세트장을 갖춘 거대 영화세트장이다. 세계적인 실력을 가진 영화세트장 제작자들이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또 지척에 콘라드 볼프 영화학교, 필름파크, 브란덴부르크방송국, 포츠담영화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어 영화와 관련한 볼거리와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바벨스베르크가 자리한 포츠담은 베를린 시내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에 있다. 포츠담은 특히 프리드리히 대왕(1712∼86)이 지은 여름 별궁 상수시(Sans Soucci)로도 유명하다. 현재 프리드리히 대왕 탄생 200주년이라고 떠들썩한 포츠담은 왕이 베를린에서 정사를 돌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물색한 물 좋고 공기 좋은 터다. 그래서 지금도 독일의 유명인사, 연예인들이 모여사는 고급 저택들이 즐비한 비싼 동네다. 가히 독일의 베벌리힐스라 할 만하다. 바벨스베르크는 독일 현대사의 풍파를 겪어낸 장소다. 스튜디오는 독일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제3제국, 동독 공산주의, 통일을 거치면서 살아남았다. 1912년 독일 첫 무성영화 <죽음의 춤>이 여기서 제작됐고, 1921년 독일 영화사 우파(UFA)가 이곳을 인수한 뒤 전성기를 누렸다. 1920년대엔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마지막 사람>(1921),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 요세프 폰 슈테른베르크의 <푸른 천사>(1930) 등 독일 표현주의 걸작들이 이곳을 거쳤다. 나치시대의 프로파간다 영화들도 이곳에서 제작되었다. 제3제국 시대에 우파 25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뮌히하우젠>은 당시 650만마르크의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작품이다. 분단 시절엔 거대 영화 제작사 우파가 동독의 영화사 데파 소속으로 바뀌었지만, 무려 1240편의 영화와 텔레비전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동독 시절의 거장 콘라드 볼프 감독도 이곳에서 영화를 촬영했다. 바벨스베르크 영화학교도 동독 시절 이름 그대로 콘라드 볼프 영화학교다. 과거의 명성만을 안고 사라져가던 바벨스베르크의 화려한 부활은 독일 통일과 함께 서서히 진행됐다. 통일 뒤 바벨스베르크는 민영화의 진통을 겪고 난 다음 거대 상업영화 제작의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2001년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에서는 장 자크 아노의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가 촬영됐다. 바벨스베르크의 부활은 또한 새로운 독일영화의 부흥에도 큰 힘을 얻었다. 2차대전 이후부터 70~80년대까지 서독의 폴커 슐뢴도르프, 빔 벤더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동독의 콘라드 볼프 등 몇몇 유명감독을 빼놓고는 전체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독일 영화계가 통일 직후인 1990년대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베를린파를 비롯한 일군의 젊은 감독들이 부상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영화뿐 아니라, <굿바이 레닌> <타인의 삶> 등 상업적으로 성공하는 영화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바벨스베르크는 <작전명 발키리>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등 거대 자본이 오가는 할리우드영화 촬영을 유치하는 데도 성공을 거두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로만 폴란스키의 <유령작가>(2009)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요즘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영화는 한해 300편 정도다. 베를린이 뜨는 만큼 베를린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도 늘고 있다. 포츠담과 베를린은 바벨스베르크 100주년 축하행사로 벌써부터 분주하다. 포츠담시는 지난해부터 ‘포츠담 2011-영화 도시’라는 타이틀로 콘서트, 영화 상영, 전시회, 강연, 학술회의 등 다채로운 행사를 열고 있다. 베를린 도이체키네마티크도 바벨스베르크 관련 사진전을 열고 있다. 62회 베를린영화제의 기념행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베를린영화제는 시대별로 골고루 선정한 10편의 바벨스베르크표 영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바벨스베르크는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밀레니엄] 두 주인공의 성정치성에 매료

-당신의 흥미를 끈 요소는 연쇄살인보다 두 주인공간의 관계였다고. =어디서도 보지 못한 관계였다. 사람들이 소설에 그토록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두 사람이 보여주는 묘하고, 약간은 삐뚤어진, 과격한 우정 때문이지 않나 싶다.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의 관계가 평범했다면 스티그 라르손의 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스릴러로서도 흥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장면들은 재빨리 보여주고 지나가도 될 것 같았다. 그보다는 두 인물이 결합하는 방식, 그가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 그녀가 그로 하여금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도록 내버려두는 방식 같은 것들에 더 관심이 갔다. 이건 어른들을 위한 영화다. 에이미 파스칼(소니픽처스 대표)도 시리즈물이라고 12세 관람가일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 영화를 맡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부분도 남녀간의 성정치적 측면이었다. -시리즈물이다 보니 제약이 많았을 텐데, 어떤 점들을 고려해야 했나. =<에이리언3>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 내게 주어진 임무는 어디까지나 소설을 영화적 문법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스웨덴에서 미국으로 배경을 옮기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아 스웨덴에서 찍기로 결정했는데, 준비할 시간이 적었던데다 낮이 짧은 스웨덴 날씨 때문에 스케줄 조정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제작사가 매우 협조적이었다. 2편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원래 제작사들은 속편을 만들 의향이 있어도 말을 잘 듣는 감독인지 먼저 확인하기 위해 한편만 계약하니까. 다만 1편에 엮여 2편, 3편까지 계약하게 된 배우들에게는 책임감을 느낀다. -폭력에 대한 묘사 수위에 관해 말이 많은데 루니 마라와는 어떤 상의를 거쳤나. =두달 반 동안 강도 높은 오디션을 거치면서도 루니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리스베트의 자질 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매우 단정하고 품위있는 사람이지만 리스베트가 되기 위해 자신의 원래 모습을 완전히 지워야 했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은 그녀에게는 엄청나게 소모적인 작업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성폭행 장면은 비록 연기라도 마음에 흉터가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약속했다. 그녀를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을 것이며, 어느 정도 노출되는지 알려주고, 캐릭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에 피어싱을 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리스베트에 관한 권리는 전적으로 그녀에 게 있길 바랐다. -그녀에 비하면 미카엘은 선이 뚜렷한 인물이 아니다. =리스베트의 상대역으로 나설 남자배우가 없을까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대니얼 크레이그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한 배우였다. 웬만큼 훌륭한 성품이 아니고서야 그처럼 자신이 맡고 있는 다른 시리즈의 캐릭터(<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편집자)를 끌어와 농담거리로 삼기 힘들 것이다. -복수극이지만 썩 유쾌한 복수극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즐거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속 성폭행 장면이 재밌어 보이면 안된다고, 혐오감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수가 답이 될 수도 없다. 샘 페킨파의 <어둠의 표적>이나 밥 포시의 <스타 80>을 보면 복수가 끝이 아닌 순간들이 있다. 그런 장면들에 감탄하게 된다. 내가 보기에 진짜 해결책은 관객이 그녀의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보고 나면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게 맞다. 타이틀 시퀀스에서도 타르나 탁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원초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리스베트의 악몽을 그려내고 싶었다. 음악을 맡은 트렌트 레즈너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스웨덴에서 촬영하는 동안 18분 분량의 음악을 만들어 미리 보내주기도 했는데 편집 전에 음악을 먼저 들으며 작업해보긴 처음이었다. * 이 인터뷰는 <인디 와이어> <버라이어티> <텔레그래프>에서 발췌 요약한 것임을 밝 힙니다.

존 딕슨 카의 탐정들에게 기회를!

고전 추리소설을 각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바 명탐정이라는 인물들이 얼마나 정적인 사람들인지 생각해보라. 그들은 사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도 않고 육체적 액션도 많지 않다. 작가의 인기만 생각하고 접근했다간 낭패당하기 일쑤다. 셜록 홈스 영화가 그렇게 많은 건 그가 보통 명탐정들보다 훨씬 육체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의심난다면 애거사 크리스티 각색 영화들 중 성공한 작품들을 보라. <검찰측 증인>(Witness for the Prosecution, 1957)처럼 탐정이 나오지 않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이 더 잘 어울린다. 아마 예외가 있다면 토미와 터펜스 정도? 하긴 가장 먼저 각색된 크리스티 소설도 이들의 출연작이었다. 파일로 밴스, 엘러리 퀸, 드루리 레인도 각색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 여러분은 지금까지 나온 엘러리 퀸 영화들 중 한편이라도 아는 게 있는가? 이들의 작품을 제대로 살리려면 영화보다 어드벤처 게임을 만드는 게 낫다.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들은 사정이 낫지만, 그들은 이미 수없이 영화화되었다. 그래도 그들 중 괜찮은 작가는 누가 있을까. 난 일단 존 딕슨 카(카터 딕슨)를 뽑겠다. 일단 그는 퍼즐 추리소설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가이니 자격이 충분하다. 그리고 이 작가의 작품 중 제대로 각색된 영화가 별로 없다. 그중 유명한 건 기데온 펠 단편 을 각색한 지닌 크레인 주연의 <위험한 횡단>(Dangerous Crossing, 1953) 정도인데, 여기엔 기데온 펠 캐릭터가 쏙 빠져 있다! 이해한다. 펠 박사가 위기에 빠진 여자주인공과 연애를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난 여전히 존 딕슨 카의 탐정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들 중 상당수는 크리스티 소설처럼 영화화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크리스티보다는 훨씬 시각적이다. 그리고 기데온 펠 정도라면 좋은 배우를 기용해 한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그는 복잡하게 짜인 미스터리 속에서도 독자(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관객)를 지루하지 않게 할 정도로 신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전공인 밀실 미스터리는 소설보다 영화에서 더 효과적이다. 문제가 있다면 일반적인 시나리오작가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가 주연보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역할을 하는 조연에 가깝다는 건데… 그렇다면 그냥 조연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연속살인사건>은 어떤가? 충분히 스크루볼 코미디 재료로 쓸 수 있는 로맨스와 코미디가 있고 제2차 세계대전과 스코틀랜드 유령 전설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도 있다. 펠 박사의 비중은 비교적 적지만 그게 오히려 유리하다. 슬프게도. 펠 박사보다도 더 가능성이 있는 존 딕슨 카의 탐정은 파리의 예심판사인 앙리 방코랑이다. 우선 그는 메이저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영화적으로 각색할 수 있다. 기데온 펠과는 달리 그는 액션도 가능하며 그로테스크한 외모도 시선을 끈다. 그가 담당하는 사건들은 펠 박사의 사건보다 훨씬 멜로드라마틱하고 거창하며 더 영화적이다. 20세기 초반의 유럽 세팅은 향수와 로맨티시즘을 자극한다. 난 어렸을 때 <해골성>을 처음 읽은 뒤로 누가 이 말도 안되는 살인과 고문과 마술 이야기를 영화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요새는 이 책이 존재하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아쉽기 짝이 없다.

[타인의 취향] TV로 영화 보던 즐거움은 어디로

영국 출신의 피터 휴잇이라는 감독이 연출한 유명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범하지도 않은 <메이든 헤이스트>(2009, 사진)라는 코미디영화가 있다. 취향에 미친 세 노인네에 관한 영화다.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는 로저(크리스토퍼 워컨)는 미술관에 걸려 있는 <외로운 여인>이라는 그림을 평생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걸 인생의 유일한 낙으로 삼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이 그림이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가게 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그즈음 그는 미술관의 다른 경비원 두 사람, 찰스(모건 프리먼)와 조지(윌리엄 H. 메이시)도 자신과 같은 심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찰스는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그림 한점을, 조지는 늠름한 남성의 나체 동상 한점을 평생 남몰래 애지중지해왔던 거다. 그들이 마침내 각자의 취향을 위해 합심하여 이 세 미술품을 탈취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코미디다. 세 사람의 나이를 대강 어림짐작으로 합할 때 200살은 넘어 보이니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최고령 ‘하이스트 무비’ 주인공들이자 가장 귀여운 좀도둑 영화에 속하는 것 같다. 얼마나 지난 뒤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우연찮게 별 생각 없이 어느 전시회에 들렀다가 20세기 초기에 활동한 그러나 나로서는 잘 알지 못하는 어느 미국 화가가 그린 1920년대 그림 한점을 보았다. 에드워드 호퍼 등 유명세 있는 화가들의 그림과 함께 걸려 있는데도 하필이면 그 그림만 눈을 찌르고 들어와 한참을 떠날 줄 모르고 그 앞에 서 있었다. 아주 가끔이나 그림을 보러 가는 무식한 처지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는데 평생 처음으로 얼마면 이 그림을 살 수 있을까 자문해보았고 실은 그 가격이 얼마이든 나의 가계로 그걸 해결할 순 없을 것이니 그럼 <메이든 헤이스트>의 살짝 정신 나간 노인들처럼 훔치는 건 어떠한가 하는 머릿속 농담에 이르렀던 기억이 난다. 그 그림의 내용과 제목을 말하고 싶진 않다. 언젠가 어디에선가 그 그림이 돌연 없어진다면 그건 아마 저 영화의 노인들처럼 내가 훔쳤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헛소리를 하고 있나 싶어 돌이켜보니,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수년간 즐겨 봐왔으나 대략 몇년 전부터 부쩍 질적으로 저하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개인적으로 더이상 애정을 갖기 어려워진 EBS <세계의 명화>와 <일요시네마> 때문이다. 그림이면 목숨 걸고 훔치기나 하면 되지, 토요일 밤이나 일요일 낮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 약간은 철지난 운치에 젖은 채 구식의 경로로 영화 보기를 즐기던 나의 취향은 요즘 사라졌다. 그런 취향을 만족시켜주던 그 프로그램들은 훔칠 수도 뺏을 수도 없는 그런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 때문에 이런 헛소리가 나왔던 것 같다.

[design+] 치정과 불륜의 무대

늦게 퇴근한 모양이다. 4명의 가족이 모인 2층의 거실, 남자는 신문을 읽으며 혼자 저녁 식사를 하는 중이다. 탁자 위에는 탁자보가 씌워져 있고, 그 위에는 음식들이 간단하게 놓여 있다. 의자의 등받이는 서양인 체형에 맞춘 것인지 담벼락처럼 드높다. 여자는 남편과 마주 보지 않고 그의 뒤편 피아노 의자에 어정쩡하게 앉아서 바느질로 수를 놓는 데 열중하고 있다. 그녀의 뒤로는 음악선생인 남편이 이사 직전에 마련했던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고, 그 위에는 미니어처 인형들이 나란히 도열해 있다. 그 양편에 서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모형이 그 인형들을 호위하고 있고, 바로 위의 벽면에는 두개의 탈바가지가 거실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편, 짙은 회색빛의 노출 벽면에는 원형의 금속 공예 장식물이 각각 두개의 노리개를 매단 채 걸려 있고, 커튼으로 감싼 듯 보이는 흰색 벽면에는 네개의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피아노와 탁자가 함께 놓인 비좁은 공간에 벽면마저 산만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이들은 행복한 표정이다. 발코니 창 앞의 공간은 아이들 차지다. 두 남매는 그곳에 앉은뱅이 탁자를 놓고 실뜨기에 빠져 있다. 밤이 깊어지면, 이제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것이며, 여자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1층 거실에서 재봉틀을 돌리며 남은 일거리를 마무리할 것이고, 남자는 2층에 남아 내일 수업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면 여자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가보자. 발을 내딛을 때마다 삐거덕대며 비명을 토해낼 것만 같은 나무계단이다.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달랑 세개의 백열전구로 복도를 밝히면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흥미롭게도 이 집에서 현관문을 제외한 모든 문은 여닫이문이 아니라 미닫이문이다. 문이 닫히면 밀실이 되지만 문이 열리면 열린 공간이 되는 입식 방들의 기묘한 구조. 이제 좀더 시간이 지나면, 1층 거실에는 텔레비전이 들어와 흑백의 거친 빛 입자를 분사하면서 금발의 팔등신 미인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며, 2층의 빈방에는 하녀가 들어와 집수리와 이사로 심약해진 여자를 도와서 가사를 돌볼 것이다. 이 가족 앞에는 4 . 19혁명과 5 . 16쿠데타 같은 정치적 격변이 기다리고 있지만, 청년기에 두번의 전쟁을 경험한 남자가 하녀와 정분나는 일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혹은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자가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오는 젊은 여성들과 바람 피우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그들은 낡은 건물이긴 하지만 새로 수리한 이층 양옥으로 이사해 중류 계층에 진입한 가족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취미로 유명했던 1919년생 감독이 1923년생 배우를 남자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에서 그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그들의 유년기 기억에 남아 있던 일부다처제의 봉건 잔재는 이제 치정극의 내적인 동인으로 거듭날 것이며, 그들을 매혹할 젊은 여자들은 상행선 열차를 타고 계속 서울로, 서울로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 영화 잘 짓는 남자

말도 못하게 추운 날. 김중현 감독은 밤늦게까지 <가시>의 예고편을 편집 중이었다. <가시>는 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결과물인데, 다른 작품들과 함께 3월8일 국내 개봉이 확정됐다. 개봉하는 건 좋아도 얼른 손을 털고 새 작업에 매진하고 싶어 하는 눈치도 엿보인다. “일들이 뭔가 계속 진행 중이다. 그동안 차분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부족했다. 자잘한 일들이 많았다고 해야 하나.” 그럴 만도 했을 거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출품되어 주목받았고 올해 초에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 초청이 확정됐고 그 뒤로도 마이애미영화제, 홍콩영화제까지 아직 <가시>와 함께 갈 길이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족 때문에 돈의 수렁에 빠지고 악순환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젊은이를 그린 이 영화는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삶의 고통이라는 문제를 건드렸나 보다. “내게는 과분한 평이지만 가슴이 아프다, 힘들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 아무래도 내 영화의 인물들이 극단의 빈곤에 있다 보니 그걸 리얼하게 받아들인 분들이 해준 말씀 같다. 나로서는 왜곡하지 말고 솔직하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평이나 감상이 감사할 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느껴주신 거니까.” 다만 스스로의 평가는 좀 야박하다. “가끔 영화제에서 상영할 때 보면 아쉽거나 답답하다. 여유를 더 가졌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동료들과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 같았던 촬영현장에서의 그날을 말할 때는 그도 자연스레 들뜬다. “어머니가 판타지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대책없이 도로에서 운전도 못하는 여배우에게 운전을 시켜가면서, 게다가 재촬영까지 하면서 찍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걸 찍었던 날, 다들 비슷한 느낌을 느꼈다는 걸 알게 됐다. 뭔가 같은 걸 본 느낌이라고 할까.” 영화제에서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면 좀더 예민해져서 안 보이던 것까지 보인다고 하니, 어쩌면 그의 이번 베를린행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될지 모르겠다. “어떤 선생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밥맛은 아는데 밥은 지을 줄 모른다고 하신 적이 있다”며 그는 겸손하게 웃었는데, 그러니 그의 올해 계획은 이런 거 아닐까? 밥맛도 잘 알고 밥도 잘 짓는 감독. 맛있는 밥 기대하자.

[김소희의 오마이이슈] 이번엔 전투기, 먹튀도 중독인가봐

한 가족의 외식 풍경. 엄마, 아빠, 초등 저학년으로 보이는 형제가 저마다 스마트폰과 게임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직장인들의 점심식사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술집에서도 연출되는 장면이다. (파업 농성 중인 MBC 구성원들이 팻말 들고 앉아 저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진도 봤다.) 애들 쌈박질, 부부 승강이, 침튀기는 상사 뒷담화… 이거 다 어디 갔어 이거. 게으름 끝에 본의 아니게 저항자가된, 2G폰을 쓰는 나로서는 그리하여 가끔 놀이터에서 엄마들 틈에서도 멀뚱해진다. 다들 뭘 그리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냐면…, 다 알잖아. 기저귀 찬 아이들조차 중독될 정도로 IT기기가 관계와 소통을 과잉 지배하는 상태로 10년, 20년이 가면 어떡하지. 정말 이러다가 스마트(smart)가 아니라 스매시(smash: 산산이 부수다) 되는 거 아니야? 큰맘 먹고 큰돈 들여 떠난 해외 휴양지에서도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밖에 없다며. 에휴. 걱정이 많아진 걸 보니 한살 더 먹긴 먹었나보다. 텔레비전 시청시간과 공격성이 비례하고 지나친 게임기 노출은 튀어오르는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을 낳는다는 무시무시한 연구 결과도 있지만, 그래도 인간은 자기를 보호하는 쪽으로 본능적으로 진화한다고 믿는다. 자극도 지나치면 피로해지고 욕심도 넘치면 배 터진다는걸 모르나. 끝까지 ‘먹튀’하려는 그들의 ‘본능’은 뭘까. 구매에 8조원 넘는 비용이 드는 차세대 전투기 기종을 공개 입찰도 하기 전에 미국제로 하겠다고 각하가 오바마에게 구두로 약속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해 방미길 선물이었단다. 송영선 언니가 한 말이라 믿지 않을 사람도 많겠지만, 올해 10월까지 무려 14조원어치의 무기를 들여오려고 용을 쓰는 와중이니 완전 허튼소리는 아닐 것이다. 비용 부담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간다. 두고두고 운영비도 골칫덩이다. 왜 필요한지는 며느리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렇게 줄줄 미국에 상납하는 꼴은 놔두면서 무슨 수로 병사월급을 40만원대로 올리나. 진짜 닭장(새우리) 맞나봐. 한나라당의 새 당명 새누리당을 두고 새비리당 새부리당 비틀기 놀이가 한창이다. 이런 재미있는 놀이의 확산은 IT기기의 순기능이겠다. 중독시대, 거르지 않으면 진짜 새된다.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인정하는 지혜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가 필요한 곳은 예배당이나 투표소만은 아니겠지.

<나를 사랑한 스파이>여 다시 한번

영화로 각색할 만한 스파이 소설의 걸작들을 고르는 건 영화로 각색할 만한 정통 추리소설을 고르는 것보다 백배 어렵다. 왜? 이들은 퍼즐 미스터리와 달리 훨씬 영화화하기 쉬우며 이미 대부분 각색되었기 때문이다. 의심나면 한번 보라. 조셉 콘래드의 <비밀 첩보원>, 존 버캔의 <39계단>, 서머싯 몸의 <어센든>, 에릭 앰블러의 <디미트리우스의 관>, 존 르 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와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렌 데이튼의 해리 파머 시리즈(스파이의 이름은 영화화된 뒤에야 붙은 것이긴 하지만),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자칼의 날>, 잭 히긴스의 <독수리 착륙하다>, 로버트 러들럼의 본 시리즈, 켄 폴리트의 <바늘 구멍>…. 이들은 스파이 소설의 대표작 리스트지만 첩보영화/드라마의 대표작 리스트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지 않다. 실화로 소재를 돌린다면?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발키레의 히틀러 암살 미수, 에이스 스파이 라일리, 하이드리히 암살, 케임브리지의 5인, 로버트 핸슨 사건…. 이들은 모두 직접 있각색되었거나 다른 소설들의 소재가 되어 영화화되거나 드라마화되었다. 영화판 사람들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치가 않다. 그들을 얕보지 말라. 당신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라면 그들은 몇 십년 전부터 알고 있다. 이언 플레밍, 조셉 콘래드… 이들을 다시 보라 그래도 몇편 골라보라면? 우선 난 이언 플레밍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의 작품들이 대부분 영화화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언 플레밍이 쓴 소설들이 모두 충실하게 영화화된 건 아니며, 일부는 그냥 제목만 빌렸다. 다시 말해 아직 여유가 있다. 이들 중 각색자들의 입장에서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건 <나를 사랑한 스파이>. 소설과 영화가 전혀 다르고, 원작은 일반적인 본드 시리즈의 형식에서 과감하게 떨어 져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인 여자주인공의 1인칭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만 읽으면 이게 본드랑 무슨 상관이냐고 따지고 싶을 지경이다. 실제로 본드는 소설이 한참 진행된 뒤에야 겨우 등장한다. 물론 이 영화를 일반적인 본드 영화의 규격에 맞추어 영화화하기는 어렵다. 아마 홍보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다. 게다가 원작이 제목과 더 잘 어울린다. 조셉 콘래드의 <서구인의 눈으로>는 어떤가. 도스토예프스키를 싫어했던 폴란드 작가가 쓴 가장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소설이다. 글쎄, 난 이 러시아 혁명주의자들 사이에 엉겁결에 낀 프락치 청년의 이야기를 관객이 그렇게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주제가 드러나고 드라마가 완성되는 거의 자폭에 가까운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대부분의 독자는 손발이 저리는 증상을 느낀다. 하지만 그거야 <로드 짐>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스파이들이란 대부분 제임스 본드 같은 영웅이 아니라 <서구인의 눈으로>의 라주모프 같은 인간들이다. <서구인의 눈으로>는 스파이 장르물에서 훌륭한 교정효과를 낼 수 있다. 내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건 영어와 러시아어가 겹치고 혼용되는 모양새인데, 아, 할리우드라면 여기에 전혀 관심이 없을 거다. 에릭 앰블러의 첫 소설 <어두운 국경>은 어떨까. 그렇게 인기있는 책은 아니며, 앰블러의 대표작도 아니다. 소설 자체가 당시 유행했던 싸구려 서스펜스물의 패러디니, 아마 요새 독자들은 시치미 뚝 뗀 유머와 진지한 액션을 구별하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 30년대 소설은 더 그럴싸한 영화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이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면은 핵폭탄을 다룬 최초의 소설 중 하나라는 것. 핵폭탄이 나오는 <풍운의 젠다성>인 것이다! 원작의 과학 묘사는 엉망이지만 이에 대해 보다 상세한 지식을 가진 우리는 이를 개선해서 더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결말은 소설보다 더 애잔하다. 주인공이 핵폭탄의 비밀을 파괴하고 간신히 돌아왔을 때, 라디오에서 오토 한과 프리츠 스트라우스만이 최초의 핵분열 실험에 성공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엔딩을 생각해보라. 원작에는 없지만 그렇게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엘리자베스 보언의 <한낮의 열기>가 각색된 적 있는지 검색해봤다. 해럴드 핀터가 각색한 TV드라마가 하나 있긴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무대로 두 스파이 사이에 놓인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이 로맨스에 관심있는 사람이 이렇게 적은 건 이상한 일이다. 보언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로널드 커크브라이드의 소설 <짧은 밤>을 각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라 믿는다. 우선 이중첩자 조지 블레이크의 탈출을 모티브 삼은 이 냉전 첩보소설의 이야기가 시대에 조금 뒤떨어졌기 때문이고(읽어본 적은 없지만 시놉시스만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둘째, 이 작품은 앨프리드 히치콕이 죽기 전까지 계속 영화로 만들기 위해 다듬고 있었던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짧은 밤>을 거치지 않더라도 조지 블레이크의 이야기는 여전히 영화화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가 비록 ‘적’이라고 해도, 이미 냉전은 끝났고, 영리한 적군의 탈출담을 그린 영화의 전통이 존재하며, 그와 그의 탈출 공범인 숀 버크와의 관계는 진지하게 파볼 만하다. 참, 역시 읽은 적은 없지만 조지 블레이크가 나오는 한국 소설도 있다. 박영숙의 <더블 크로스>. 한국전 때 당시 주한 외교관이었던 조지 블레이크가 한국 첩보원과 한국 여성을 두고 삼각관계를 벌인단다. 불쌍한 블레이크. 책은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영화보다 극적인 실화들 실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제대로 영화화될 가치가 있는 이야기로, 노르웨이의 중수공장을 폭파하고 나치의 핵폭탄 개발을 저지한 노르웨이 특공대와 레지스탕스 이야기가 있다. 안다. 이미 커크 더글러스 주연으로 <텔레마크의 영웅들>이 나왔다. 하지만 영화는 실화의 박진감의 반의반의 반도 갖추지 못했다.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데, 그걸 굳이 각색해서 심심한 멜로드라마로 만들 필요가 있나? 그리고 이번엔 제발 노르웨이인 주인공들 역할은 노르웨이 배우들에게 맡기자. 영화화될 법한데 안 나오는 ‘실화들’은 또 있다. 왜 아무도 알린 그리피스의 ‘회고록들’에 관심이 없는 걸까? 미국인 패션모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OSS에 발탁되어 스페인 사교계에서 돈을 펑펑 쓰는 호사스러운 삶을 살며 스파이질을 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백작부인까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주장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이 정도면 80년대 미국에서 많이 나왔던 통속적인 미니시리즈의 소재로 충분하지 않나? 실제로 일어난 적은 없지만 일어날 뻔했던 작전들도 있다. 이중 황당한 거 하나. 제2차 세계대전 때 OSS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를 납치할 계획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는 걸 아시는지? 하이젠베르크가 노벨상을 탄 위대한 물리학자이고 독일 핵분열 연구팀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니 얼핏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이 계획을 짤 때, 그가 (위대한 이론물리학자답게) 건전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 못하는 기계치였고 엄청난 마마보이였다는 사실은 몰랐다. 한번 시치미 뚝 떼고 이 계획이 진짜로 일어났다고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간신히 독일에 침투해 들어간 주인공들에게 하이젠베르크는 이곳에 남아 연구를 사보타주하는 게 자신의 임무라고 주장하며 (까짓 거 믿어주자) 주인공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보다 충성스러운 나치 과학자가 핵폭탄 제조에 필수적인 연구를 했음을 알게 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을 제대로 아는 첩보원이 필요하다. 주인공들은 당장 OSS에 연락해서 혹시 물리학에 대해 잘 알면서 금고털이 기술이 뛰어난 첩보원을 파견할 수 있는지 묻는다. OSS에서는 닐스 보어에게 이 내용을 전달하고 보어는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딱 한명 있는데요’라고 대답한다. 그날 밤 OSS는 병든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리처드 파인먼을 끌고 와 스위스행 비행기에 태운다…. 그냥 그럴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지아장커, 왕가위, 허우샤오시엔 신작이 모두?

독일 영화학자인 토마스 엘새서에 따르면 과거 세계영화는 ‘할리우드와 유럽 그리고 기타’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할리우드와 아시아 그리고 기타’로 분류된다. 아시아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미학적으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산업적으로는 전세계 영화 제작 편수 중 50% 정도가 아시아에서 제작되고 있고(2007년 2406편, 2010년 2191편), 2010년 기준으로 국가별로도 인도(1위), 중국(3위), 일본(4위), 한국(7위) 등 아시아 대륙 국가들이 영화산업 규모 10위권에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검열과 통제(이란, 중국, 싱가포르 등), 영화산업의 전근대화, 천재지변으로 인한 산업의 위축 등 아시아영화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들은 여전히 넘쳐난다. 이는 곧 2012년 아시아영화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거장과 베테랑 감독들의 귀환 일반 관객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거장들이 내놓는 신작이다. 두기봉은 올해 두편의 영화를 내놓는다. 오는 밸런타인데이에 개봉하는 정수문, 고천락, 고원원 주연의 멜로드라마 <고해발지연2> 이후에 제작비 1억위안의 대작 <마약전쟁>을 제작 중이다. 콤비인 위가휘가 시나리오 를 쓰고, 중국 본토의 하이룬영화와 TV그룹이 제작비의 대부분을 투자하고 있다. 고천락, 손홍뢰, 엽선 등이 주연을 맡았고, 영화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 홍콩, 대만의 거장 3인이 만드는 무협영화는 오래전부터 많은 팬들의 기대를 받아왔지만 진척이 더뎌 아쉬움이 컸다. 두기봉이 제작을 맡은 지아장커의 <재청조>는 드디어 2월에 촬영에 들어간다. 왕가위의 <일대종사>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상당 부분 촬영이 진행됐지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이유로 완성이 지연되고 있다. 왕가위 감독이 설립한 젯톤의 한 관계자는 올 칸영화제 상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켜봐야 할 듯하다. 알려진 대로 <일대종사>는 전설적인 무예인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인데, 먼저 제작된 견자단의 <엽문> 시리즈가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두면서 투자자로부터 흥행에 대한 압박도 받고 있다고 한다. 허우샤오시엔의 <섭은랑> 역시 촬영일자가 미정이다. 이미 여러 차례 촬영이 연기되었지만,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올봄에는 반드시 촬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나라 시절의 여검객 섭은랑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에는 서기, 쓰마부키 사토시, 장첸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재청조>와 <일대종사> <섭은랑>이 올해 안에 모두 완성 된다면 그야말로 기록적인 한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주성치는 세 번째 <서유기>로 다시 돌아온다. 직접 시나리오, 주연, 연출(<타뢰대>의 곽자건 감독과 공동연출)을 맡았으며, 서기도 출연한다. 중국과 홍콩의 개봉예정일은 8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도 신작을 내놓는다. 일본에서 제작 중인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이 그것이다. 그로서는 옴니버스영화 <티켓>과 <사랑을 카피하다>에 이어 세 번째로 해외에서 찍는 작품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73살인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스타일은 변함이 없지만, 20대의 콜걸과 만나 사랑을 나누는 80대 노교수의 이야기는 새롭다. 프랑스의 오랜 파트너인 MK2가 일본과 공동투자와 배급을 맡고 있어, 칸영화제 진출이 유력하다. 바흐만 고바디의 신작 <리노의 계절>도 주목 대상이다. 이슬람 혁명기를 배경으로 한 러브 스토리를 담은 이 작품은 모니카 벨루치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다. 현재 준망명 상태인 바흐만 고바디는 터키에서 모든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다. 최근 작품 활동이 뜸했던 또 한명의 거장인 아볼파즐 잘릴리도 2007년 <하페즈> 이후 신작 <개구리>를 내놓는다. 빚쟁이들의 돈을 대신 찾아주는 해결사 일을 하는 청년의 시선을 통해 이란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현재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다. 그의 작품이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여 만들었다. <천국의 아이들>의 마지드 마지디는 이란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대작 <무함마드>를 찍고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이란은 물론 범이슬람권의 프로젝트로 진행되고 있다. 이란의 연기자들이 크고 작은 역을 맡아 출연하고 있으며, 전세계의 이슬람권 국가에서 투자를 하고 있다.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2011년을 최고의 해로 보냈던 아쉬가르 파라디는 8월에 신작 <벽이 곧 우리>의 촬영에 들어간다. 일정상 올해 안에 완성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소노 시온과 구로사와 기요시, 이시이 가쿠류, 오기가미 나오코, 아오야마 신지의 신작이 눈길을 끈다. 2011년을 화려하게 보냈던 소노 시온은 지난 1월13일 <희망의 나라>의 촬영을 시작했다. 전작 <두더지>에 이은 ‘3·11 대지진’에 관한 두 번째 영화다. 대지진 이후 고향 땅을 떠나기를 거부하는 세쌍의 부부와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칸영화제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일본 개봉은 가을로 예정되어 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위성TV 채널 <와우와우> 제작으로 TV영화 <속죄>를 이미 완성했고 방송도 탔다. 미나토 가나에(영화 <고백>의 원작 소설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딸의 살해현장을 목격한 딸의 친구들을 만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이즈미 교코, 아오이 유우, 고이케 에이코, 안도 사쿠라 등 호화 캐스팅으로도 주목을 끌었다. 문제는 극장 개봉. 미니시리즈 형식에다가 극장판으로 편집하기가 쉽지 않은 작품이라 극장 개봉 계획은 아직 없다. 다만, 영화제에서는 상영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 2003년 이후 장편극영화를 발표하지 못했던 이시이 소고는 이름을 이시이 가쿠류로 바꾸고 오랜만의 신작 <살아 있는 사람 있나요?>를 2월18일 개봉한다. 초창기의 펑크 스타일로 다시 돌아간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특한 감성의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오기가미 나오코는 신작 <고양이 대여>를 이미 완성하였고,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 초청을 받았다. 많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독신 여성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대여해주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이다. <마이 백 페이지>로 작가의 반열에 올라선 야마시타 노부히로는 <고역열차>를 만든다. 중졸에 전과 기록도 가지고 있는 니시무라 겐타의 2011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동명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품으로 모리야마 미라이, 고라 겐고가 주연을 맡았다. 일본에서는 7월14일 개봉예정이다. 다작하는 감독들의 신작 올해 3편의 영화를 동시에 발표하는 감독이 있다. 와카마쓰 고지다. 그는 올해 <해연호텔 블루>와 <11·25 자결의 날> <천년의 유락>를 발표한다. 후나도 요이치의 원작을 영화화한 <해연호텔 블루>는 5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한 남자가 배신한 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쫓다가 한국에서 밀입국한 여자를 만나고, 점점 광기에 사로잡히며 파멸의 길로 빠져드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3월24일 개봉예정이다.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고찰한 <11?25 자결의 날>은 여름에 개봉할 예정이다. 두편 다 완성되어 시사회까지 마쳤다. 나카가미 겐지의 원작을 영화화한 <천년의 유락>은 일본의 하층민 계급인 부락민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현재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다. 와카마쓰 고지가 이처럼 한꺼번에 세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의 건강 때문이다. 지난 몇년 사이에 그는 암 진단을 받고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다. 현재는 작품 활동을 할 만큼 회복되었지만, 그로서는 오히려 영화 만들기에 더 몰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미이케 다카시도 두편의 영화를 개봉한다. 이번에는 인기 게임과 만화를 영화화한다. 인기 게임을 영화화한 법정스릴러 <역전재판>은 2월11일 일본 개봉에 앞서 1월15일 개막한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었다. 1970년대의 가지와라 이키의 동명의 청춘 만화를 영화화한 <아이와 마코토>는 6월16일 개봉한다. 최근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는 기복이 좀 있는 편이라, 결과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최근 홍콩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소이청 감독도 올해 두편의 영화를 발표한다. 손오공 이야기를 3D와 아이맥스 버전으로 만드는 대작 <대료천궁>과 카 체이스 영화 <차수>다. 견자단, 주윤발 주연의 대작 <대료천궁>은 소이청의 첫 중국 본토 촬영 작품이며, <차수>는 뛰어난 운전 실력을 보유한 탈옥범을 잡으려는 신참 경찰의 고군분투를 그린 액션영화다. 동남아영화의 일취월장 올해 동남아시아영화는 주목할 만한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먼저, 필리핀. 필리핀은 최근 수년간 독립영화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지역이었다. 그런 흐름을 이어 최근 각 ‘지역’으로 독립영 화 제작이 확산되고 있다. 즉, 전혀 새로운 독립영화가 탄생할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세부, 일로일로, 루손, 비사야스, 민다나오 등이 대표 지역이다. 필리핀영화개발위원회는 지역영화 제작을 장려하기 위해 필리핀의 각 지역을 돌며 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는 잠보앙가, 바키오, 일로일로, 산페르난도, 라나오 델 수르 등에서 영화제가 개최되었다. 올해는 이들 지역영화를 한자리에 모아 시상하는 영화제를 출범시킨다. 시넹 팜반사 컴페티션(Sineng Pambansa National Film Competition)이 바로 그것. 각 지역을 대표하는 장편극영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을 대상으로 한 영화제로, 오는 6월 다바오에서 첫 행사가 열린다. 그리고 이 행사에서 브리얀테 멘도자의 신작 두편(<포로>와 <자궁>)이 상영될 예정이다. 제62회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처음 소개되는 <포로>는 외국인 국제구호원이 민다나오의 반군에 납치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을 맡아 이목을 끌었다. 칸 혹은 시넹 팜반사 컴페티션에서 최초로 공개될 영화는 <자궁>. 이제 막 촬영을 시작한 <자궁>은 ‘바하우’라 불리는 바다집시에 관한 영화다. 필리핀 남부해안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바하우’는 특히 배를 만드는 기술로 유명하다. ‘레파-레파’라 불리는 배는 그들의 집이기도 하다. ‘레파-레파’를 타고 이 섬, 저 섬을 떠돌며 생활하는 것이다. <자궁>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남편에게 두 번째 부인을 구해주면서 벌어지는 질투와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필리핀 남부의 타위-타위 지역에서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다. <자궁>은 브리얀테 멘도자의 이전 작품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품이 될 것이며, 필리핀의 ‘지역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가 <자궁>을 시넹 팜반사 컴페티션에서 공개하는 것도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멘도자는 이밖에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더 만들고 있다. 필리핀의 소수부족을 탐구하는 <트리부>, 필리핀의 가톨릭 신앙심에 대한 고찰 <크리스토>가 그것이다. 7월의 시네말라야영화제에서 공개될 신작 리스트도 주목해야 한다.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의 <야생의 삶>, 메스 데 구즈만의 <디아블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 감독인 로이 아르세나스의 두 번째 작품 <레퀴엠>, 레이먼드 레드의 <카메라 옵스큐라>, 제프리 제투리안의 <포사스> 등 기대작이 수두룩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에드윈과 가린 누그로호를 주목해야 한다. 에드윈의 신작 <동물원에서 온 엽서>는 인도네시아영화 사상 처음으로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특히 에드윈은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영화아카데미 1기 출신이며, 장편 데뷔작 <날고 싶은 눈먼 돼지>가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서 처음 소개되었는가 하면, <동물원에서 온 엽서>는 2009년 아시아프로젝트마켓(구 부산프로모션플랜) 초청작이다. 기린 사육사인 할림의 보살핌으로 동물원에서 자라난 처녀 라나가 사랑에 빠져 동물원을 떠나서 많은 일을 겪은 뒤에야 할림과 동물원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로써 인도네시아영화는 가린 누그로호, 리리 리자와 더불어 에드윈이라는 젊은 피를 수혈받아 국제무대에서 인도네시아영화의 존재가치를 더욱 부각하게 됐다. 현재까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가장 대표적인 감독으로 손꼽히는 가린 누그로호는 최근 작품 활동이 드물었지만, 올해 두편의 작품을 발표한다. 로테르담영화제에 초청된 <눈가리개>는 종교적 신념과 종교적 근본주의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 작품이다. 현재 그는 인도네시아 최초의 원주민 주교의 네덜란드·일본 투쟁기를 그린 <소에기자>를 만들고 있다. 타이도 기대작들이 많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아르테TV>에서 제작하는 한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으며, 4월에 공개될 예정이다. 메이저 회사와의 작업에 염증을 느낀 위시트 사사나티앙은 독립영화인 <수리아>를 들고 다시 돌아온다. 킥복서로서는 천하무적이었지만 개인적 삶은 처절했던 전설적인 타이 킥복서 수리아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은 스릴러영화 <왜곡>을 선보인다. 연쇄살인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다룬 작품으로, 이미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 중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독립영화그룹에 속한 핵심 감독들의 신작 소식이 별로 없다. 탄추이무이, 우밍진, 호유항 감독의 신작 준비작업이 더디게 진행 중이고, 리우성탓의 <어디에 살고 있니?>가 9월 이전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아미르 무하마드는 최근 작품 활동을 잠정 중단한 상태이고, 제임스 리는 주류 영화계에 들어가 다작 활동을 하고 있다. 2007년 데뷔작 <주머니 속의 꽃>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상을 수상하며 단번에 주목할 만한 신인으로 떠올랐던 리우성탓의 <어디에 살고 있니?>는 말레이시아의 한 가난한 농부가 병석에 누운 장모를 돌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집을 처갓집 근처로 옮겨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타이 애니메이션 <야아크>에 주목 아시아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강세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을 비롯한 몇몇 아시아 국가에서 의미있는 장편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는 특히 타이의 <야아크>(Yaak)가 기대작이다. 타이는 ‘칸쿠웨이’ 시리즈로 이미 애니메이션 제작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는데, 600만달러 규모로 만들어지는 <야아크>는 타이 애니메이션 역사에 새로운 한획을 그을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인도의 <라마야나>는 타이에서도 널리 읽히는 대서사시인데, 여기에 로봇 이야기를 입힌 작품이다. 제작기간만 5년으로, 4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올해도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많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잘 알려진 호소다 마모루가 <늑대아이 아메와 유키>를 7월에 개봉한다. 늑대인간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키우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흥행에서도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공각기동대> <동쪽의 에덴>의 가미야마 겐지는 <009 리: 사이보그>를 가을에 개봉한다.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60년대 원작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3D CG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가 프로덕션 I.G와 CG 전문 스튜디오 ‘삼차원’이 힘을 합쳐 만드는 작품이다. 또 다른 애니메이션의 명가 스튜디오 4°C는 <베르세르크>를 개봉한다. 미우라 겐타로의 동명 원작 만화를 3부작으로 만들 예정이며, 그 첫 작품인 <황금 시대편: 패왕의 알>(구보오카 도시유키 감독)이 2월4일 공개된다. 사토시 곤의 미완성 유작 <드림 머신>은 완성이 미지수다. 사토시 곤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매드하우스 전 사장인 마루야마 마사오가 완성을 약속했지만, 매드하우스가 <니혼TV>에 매각되고 마루야마 전 사장도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완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인도의 지역영화들, 그리고… <루나 파파>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분들께 기쁜 소식. 바흐티아르 후도이나자로프 감독(타지키스탄)이 신작 <바다를 기다리며>를 거의 완성했다. <탄케르 탱고> 이후 6년 만이다. 황량한 모래사장에서 바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선장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루나 파파>에서 보여주었던 중앙아시아 특유의 신비주의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2월 중 완성 예정. 방글라데시의 새로운 영화운동 ‘차비알’을 주도하고 있는 모스타파 파루키의 신작 <텔레비전>도 기대작. 생명체를 사진으로 재현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하람’의 관점에서 텔레비전을 버리려는 이맘과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을 사람들간의 우스꽝스러운 싸움을 그린 작품으로, 현재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다. 이라크에서는 모하메드 알 다라지의 신작이 주목을 끈다. 2008년 <바빌론의 아들>로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던 다라지는 현재 이라크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손꼽힌다. 그의 신작 <기차역>은 바그다드역에서 자살테러를 기도한 스물세살의 젊은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가 자살테러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이라크가 안고 있는 사회·정치적 문제를 하나하나 밝혀나갈 예정이다. 인도는 필리핀과 마찬가지로 지역영화가 올해의 화두로 대두될 것이다. 전통적인 작가영화의 산실인 콜카타, 케랄라 지역 외에도 펀잡, 고아, 푸네 등지에서도 새로운 작가영화가 나오고 있고, 앞으로도 줄을 이을 것이다. 주류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작품은 발리우드 뉴웨이브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아누락 카시압의 <와세이푸르의 갱>이다. 탄광 지역에 산재한 마피아들의 치열한 영역다툼과 복수를 그린 대작으로, 감독은 부인하지만 인도판 <대부>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다. 현재 촬영을 마쳤으며, 5월과 12월에 1, 2부로 나눠 개봉할 예정이다. 인도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제작자 겸 감독과 당대 최고의 배우가 만나는 특급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야쉬 초프라와 샤룩 칸이 바로 그들이다. <넘버 원>이라는 제목의 이 특급 프로젝트는 야쉬 초프라의 8년 만의 연출작이며, 그의 영화인생 50주년 기념작이기도 하다. 샤룩 칸 외에도 현재 인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카트리나 카이프도 출연할 예정이며 A.R. 라흐만이 음악을 맡았다. 제작사인 야쉬 라지 필름은 <넘버 원>을 9월에 완성할 예정이며, 토론토영화제나 부산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주인공의 올곧은 마음이 전염된다 <나루토 질풍전 극장판: 블러드 프리즌>

나루토가 누명을 쓰고 붙잡힌다. 곧바로 호오즈키성(귀등성)이라는 닌자 감금시설에 갇히는데, 성주 무이는 붙잡힌 닌자들이 차크라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몸에 천뢰를 새긴다. 차크라를 쓸 수 없는 나루토는 한낱 평범한 닌자에 불과하다. 호오즈키성을 빠져나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마을에서 풀어달라는 정식 요청이 있거나 죽어서 나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무이를 죽여 천뢰를 풀어야 한다. 나루토는 호오즈키성에서 만난 풀마을의 암부 류제츠의 도움을 받아 무이를 없애려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한편 무이는 나루토의 인주력을 이용해 ‘극락의 상자’를 열려고 한다. 극락의 상자를 여는 자는 소원을 이룰 수 있다. <나루토 질풍전 극장판: 블러드 프리즌>의 초반은 나루토의 결백을 증명하는 이야기처럼 진행된다. 그러나 나루토가 호오즈키성에 갇힌 이유, 그 배후의 인물과 음모를 밝히는 게 핵심은 아니다. ‘극락의 상자’에 얽힌 무이와 무이의 아들 그리고 류제츠의 사연에 이 영화의 주제가 담겨 있다. 눈앞의 소중한 것도 지키지 못하면서 대의를 말하는 태도, 인간의 끝도 없는 욕심을 질타하는 건 포기를 모르는 근성의 소년 나루토다. 나루토는 “천뢰보다 무서운 건 내 마음이 꺾이는 거야”라고 말하는데, 나루토의 그런 올곧은 마음은 자연스레 다른 이들에게 전염된다. 영화 후반부에는 괴물 사토리와 나루토 일행의 전투장면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나루토 질풍전 극장판: 블러드 프리즌>은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반전이 곳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로 승부하려 한다.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야마 아키라가 각본에 참여했으며, 기존의 극장판 시리즈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와는 연결되지 않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띠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