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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매니지먼트 전쟁시대 [1]

강제규 필름 매니지먼트 진출임박, 싸이더스.튜브와 스타 확보 대전 점화될 듯 영화계의 매니지먼트 사업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싸이더스, 튜브 등 메이저 제작사 및 투자배급사가 매니지먼트 사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강제규필름도 조만간 이 사업에 뛰어들 태세인 것이다. 강제규필름의 한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현재 매니지먼트 사업 추진을 위한 자본 및 관리인력 확보 등의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그동안 매니지먼트쪽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해온 강제규필름으로서는 이 사업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강제규필름이 매니지먼트 사업을 위한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자 영화계가 술렁이는 것은 당연하다. 먼저, 제작사들은 배우들의 과점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사업규모가 1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 나돌면서 제작사들의 우려는 예상한 것 이상이다. 심지어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3강 체제 형성으로 더이상 A급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은 포기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말들도 오간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덩치가 커진 제작사들이 대규모 투자유치를 위해서 관련 사업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다”지만 “제작을 겸한 거대 매니지먼트회사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한국영화를 같이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의 사업이 독점적인 상행위의 확대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 것 같다”라고 말한다. 기존의 스타들을 끌어들이면서 아무래도 배우들이 소속 영화사의 작품들에 비중을 두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배우 몸값 때문에 영화 못 찍는다? 메이저 제작사와 한몸인 거대 매니지먼트사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배우들의 ‘몸값’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최근 한 제작사 관계자는 전작 출연료의 2배를 매니지먼트사가 요구해 계약을 포기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자사가 투자하는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그에 상당하는 액수에 도장을 찍은 것은 “제작을 겸한 매니지먼트사 내부에서 이뤄지는 일종의 가격 담합”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일반 제작사들은 “배우의 개런티 상승이 초래할 제작액수 증가는 결국 위험 부담이 제작사의 몫으로 떨어진다”고 푸념하고 있는 형편이다. 싸이더스와 튜브의 최근 영화들의 캐스팅 경향은 이런 우려를 북돋우고 있다. 싸이더스의 경우, 이미 개봉한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전도연을 비롯해서 <인디안 썸머>의 박신양, <무사>의 정우성, <화산고>의 장혁 등 자사 영화에 자사 소속 배우들이 연이어 주연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싸이더스보다 늦게 출발한 튜브매니지먼트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튜브픽처스가 제작하는 첫 번째 영화 <파이란>에 최민식이, <튜브 2030>에 김석훈이 주연을 맡는 등 넉넉한 자본으로 가능해진 많은 투자, 제작 작품들에 1급 배우들을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역할을 자사 매니지먼트 사업부문이 맡고 있는 것이다. <베사메무쵸> <야다> 등 4편을 동시에 기획, 제작하고 있는 강제규필름의 경우도 싸이더스, 튜브 등과 그리 다르지 않으리란 것이 일반 제작사들의 걱정 섞인 전망이다. 이같은 반응에 대해 싸이더스, 튜브 등은 ‘억지’라고 반박한다.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싸이더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제작쪽과 매니지먼트 사업을 단순히 연계해선 안 된다. 그러는 순간 양쪽 모두 자멸할 수 있다”고 해명한다. 캐스팅이 적절하지 않은데도 굳이 자사 영화에 출연하라고 배우에게 강요할 경우, 그 위험 부담은 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 양쪽 모두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싸이더스의 <봄날은 간다>에 타사 소속 배우인 유지태, 이영애를, 신씨네에서 제작하는 <엽기적인 그녀>에 차태현, 전지현 등 자사 소속 배우를 출연시키는 것도 다 그런 부정적인 결과를 피하기 위함이다. 튜브매니지먼트의 전영민 상무 또한 “배우 매니지먼트의 경우 음반쪽과 달리 수익모델이 없는 상황에서 자사 영화에만 출연해서는 매니지먼트 사업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송강호, 김석훈 등과 함께 튜브매니지먼트에 속해 있는 최민식의 경우 차기작으로 임권택 감독의 작품 <오원 장승업>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매니지먼트 회사도 제작 참여 움직임 사실 매니지먼트 사업 자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배우 매니지먼트의 경우, 출연작과 광고 개런티만으로는 소속 배우들의 계약금, 관리비 등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그럼에도 매니지먼트 사업에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금융자본을 비롯해 영화계에 쏟아지는 자본이 너무 많아서라고 지적한다. 투자 자본을 구하기는 쉽지만, 이에 비해 배우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에 비할 정도다. 그러니 배우 군단을 거느리고 있는 것만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데 유리하다는 것은 상식에 가깝다. “누가 출연하느냐”는 문제는 “얼마를 끌어올 수 있느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코리아픽처스의 김장욱 한국영화팀장은 “투자사의 입장에서 캐스팅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다. 스타들을 어렵지 않게 기용할 수 있다는 점은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요소다”라고 말한다. 싸이더스, 튜브 등 제작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매니지먼트사들이 스타급 배우들을 앞세워 영화제작에 뜻을 두고 있는 것도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영애, 이나영, 송윤아, 한고은 등이 소속되어 있는 에이스타스의 경우 지난해 법인 설립 이후 곧바로 <주유소 습격사건>을 기획한 이관수 프로듀서를 영입, 영화제작을 준비하고 있고 장동건, 이병헌, 고소영 등이 포진한 MP엔터테인먼트나 진희경, 신은경 등이 소속된 윌스타엔터테인먼트 등도 자체적으로 영화제작의 뜻을 갖고 있다. 한편, 강제규필름이 매니지먼트 사업에 착수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면서 싸이더스, 튜브 등도 경계하는 눈치다. 두 기업의 관계자들은 각각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생기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거나, 우리가 목표하는 매니지먼트사의 모델과 다르니 관심이 없다는 말로 피해가고 있지만, 회사 규모를 키우기 위한 과정에서 스타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과열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는 “강제규필름이 신인들 위주로 간다고 하지만, 신인 발굴이 용이치 않은 상황에서 기존 배우들을 영입할 것이다”라고 전망하면서, “시장을 넓혀가는 선의의 경쟁이라면 모르지만, 배우 빼내기 등 땅따먹기 식이라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웬만한 배우들이 대부분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된 경우이기 때문에 이들을 데려가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데, 이는 수익 모델이 많지 않은 업계 현황을 고려할 때 스스로 수명을 단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3대 골리앗 시대, 주사위는 던져졌다 자본력을 앞세운 거대 제작·매니지먼트사에 대한 좀더 강한 비판도 있다.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문성근 이사장은 “강제규필름의 매니지먼트 사업 진출은 싸이더스와 튜브를 겨냥한 것이라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고 말한다. 과녁이 된 두 기업의 관계자들은 여기에다 “강제규필름이 과연 매니지먼트 사업을 운용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황우현 이사는 “강제규필름이 매니지먼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6개월 전부터 들어왔다. 그동안 어느 정도 준비를 했으리라 믿지만, 만약 즉흥적인 발상의 결과라면 별 재미를 못 볼 것”이라고 예상한다. 정작 제작에 주력하기보다는 여러 사업을 펼치는 데 너무 주력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따른다. 황 이사는 “강제규필름의 사업들에는 명확한 목표가 없다. 극장 사업을 한다는 것은 배급을 하겠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외화 수입 등 배급을 위한 어떤 움직임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매니지먼트 사업 또한 단순히 사업 분야를 확대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싸이더스의 노종윤 이사 역시 “우리는 개별시장 자체의 한계성에 대한 불안 때문에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라며 “강제규필름처럼 신규 사업만 띄워놓고 1등을 하겠다는 포부는 과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강제규필름의 유봉천 부사장은 “매니지먼트 사업은 오랫동안 준비해왔고, 이제 안정적인 운용시스템을 갖춘 상태”라고 말한다. 또한 “신인 연기자 발굴에 중점을 둘 계획이므로, 불필요한 과열경쟁은 없을 것”이라며 영화계의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강제규필름이 새 매니지먼트회사를 세울지, 기존 매니지먼트사를 인수할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업계에선 후자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강제규필름은 4월 안으로 매니지먼트 관련 계약을 확정하고, 5월 초에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2000년 싸이더스와 튜브 등 거대 제작사들이 매니지먼트 사업에 뛰어들고 에이스타스, MP엔터테인먼트 등 기존 매니지먼트사들이 합종연횡을 거듭하는 시기를 지나 2001년 강제규필름이 ‘스타’를 쟁취하기 위해 출사표를 내놓으려는 지금, 충무로는 바야흐로 또다른 전쟁을 목전에 두고 있다.

충무로, 매니지먼트 전쟁시대 [2] - 강제규필름 유봉천 부사장

-강제규필름은 매니지먼트사인 이스타즈 등에 투자하는 등 그동안 이쪽 사업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관심은 오래됐다. 배우 관리는 영화산업에 필수적인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인적 자원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자적인 매니지먼트 사업을 준비중인 것으로 아는데. =생산자 입장에서는 투입 요소들 그러니까 스탭, 배우, 기자재 등등을 렌털할 것인가 아니면 자가생산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강제규필름의 경우 어떤 아이템을 만들어내느냐는 것뿐만 아니라 자체 생산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좋은 창작물을 내오려면 투입되는 요소들이 원활히 기능해야 하는데, 자체적인 운용이 가능하다면 결과 또한 좋아지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이 사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매니지먼트 사업이 경제적인 수익가치가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또 자본, 시스템, 인력 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매니지먼트 사업이 돈이 되나.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 물론 투자유치를 위해서 1년 안에 어느 정도 성패를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는 있다. 그래야 더 많은 돈이 들어올 테니까. 중요한 건 어떤 사업이냐가 아니라 누가 하느냐다. 강제규필름의 경우 운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정리되어 있다고 자부한다. -지난해 싸이더스 등이 등장하면서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생겨났다. 하지만 배우 독점 등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싸이더스는 벤치마킹할 만큼 바람직한 회사다. 싸이더스 등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비합리적인 체질이 어느 정도 개선됐다고 생각한다. 체계적인 배우 관리, 해외 진출 가능성 타진 등이 가능해진 것이다. 사실 개인 매니저가 할 수 없는 일이다. 할리우드의 경우 사원이 2천명 이상 되는 6∼7개의 대형 에이전시들이 산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덩치가 커졌다는 것을 두고 비판하는데,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건 다른 문제다. 배우에게 자사영화에만 출연하라는 강요 같은 것은 없다. 배우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 아닌가. 이 영화 하라고 떠맡겨서 잘되는 영화는 없다. 에이전시의 기능은 좋은 파트너, 작품 등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개체, 대리인일 뿐이다. 대신 규모있는 사업체라야 좋은 배우를 수시로 발굴할 수 있다. -강제규필름이 검토중인 매니지먼트사의 모델이나 원칙이 있다면. =기존 배우와 함께할 수도 있지만, 그 부문에만 주력하진 않을 것이다. 목표는 좋은 신인을 발굴하는 것이다. 가장 이른 시일 내에 스타를 만들 수 있는 일종의 등용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철저한 훈련이 더해진다면 모든 영화사에서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배우 양성이 어렵진 않을 것이다. 일단 시작한다면 우리 목표는 1등이다. -들리기엔 규모가 꽤 큰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자본금이 필요할 텐데. =여러 투자 파트너들과 협상중이다. 회사 형태는 독자적인 법인을 신설하는 것만으로 한정하지 않고, 지금 현재 활동중인 회사를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형태도 고려하고 있다. 자금이 세팅되는 대로 곧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강제규필름이 사업을 펼치는 데만 신경을 쏟는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가. 정확히는 사업 확장이라기보다 영화제작을 위해 기반을 다진다고 보는 게 맞다. 극장이나 매니지먼트 사업에 대한 투자도 결국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인터뷰] 영화 <친구> 투자·배급 김동주씨

영화 <친구>에 몰리는 사회적 관심이 대단하다. 개봉한지 3주가 채 안된 20일까지 서울 130만명, 전국 350만명이 들었다는 신기록도 신기록이거니와, 곳곳에서 이 영화의 흥행원인이 뭔지 분석을 내놓기 바쁘다. 김대중 대통령도 영화를 보고 한마디 했고, 부산시는 5월초에 범일동 등 영화에 나오는 부산시내 5개 거리를 `친구의 거리'로 지정할 예정이다. 부산출신인 곽경택 감독은 고향 친구들로부터 “부산에서 출마하면 틀림없이 당선된다”는 말을 듣고, 몇몇 국회의원들은 이 영화의 홍보 담당자들에게 다음 총선에서 홍보를 맡아달라고 주문한다. 또 조만간 텔레비전에서 유오성, 장동건씨가 함께 달리다가 헤어지면서 “친구야, 연락하자”고 말하는 내용의 휴대폰 광고가 대대적으로 방영된다. 불황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요즘 <친구>에 투자하고 배급한 코리아픽처스의 김동주 대표(36)는 가장 행복한 사람중의 하나다. <친구>는 지금까지의 흥행만 가지고도 투자원금을 제하고 100억~110억원의 순이익이 예상된다. 마케팅비용 포함해 투자된 33억원 가운데 25억원이 코리아픽처스가 운용하는 자금인 만큼, 이익을 제작사와 6대4로 나누고 그 6할을 투자자끼리 투자비율로 나누면 이 회사에 돌아오는 몫은 최소한 50억원이 넘는다. 게다가 지금의 추세라면 서울 200만명, 전국 500만명을 넘는 건 기정사실이라고 하니 돈방석은 떼논 셈이다. 흥행의 비결은 일단 영화 자체에 있겠지만, 마케팅 전략을 무시할 수 없다. “이전에 일신창투에 있을 때 곽 감독이 만든 <닥터K>의 투자 및 마케팅을 담당했다. 그때 흥행이 매우 안 좋았다. <친구>의 투자를 결정할 때 곽 감독에게 `손해만 보지 말자'고 했다. 그런데 영화를 70% 정도 찍었을 때 러쉬필름을 봤더니 생각이 달라졌다.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8억원으로 잡았던 홍보·마케팅 비용을 두배로 늘렸다.” 이에 따라 시사회를 일찍 잡고, 신문 방송사를 상대로 배우와 감독이 마라톤 인터뷰를 벌이고, 대대적인 옥외 광고를 냈다. 결국 <친구>는 개봉 전부터 여론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쉬리>와 <공동경비역 JSA>, 모든 흥행 기록에 도전한다”는 건방진 카피가 관객의 또다른 흥행신화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겼다. 개봉 첫주의 흥행이 성공하자 `과연 그럴까'하는 의아심이 `정말 손님이 몰리네'하는 놀라움으로 이어지면서 더 많은 관객이 극장으로 달려갔다. 이 카피도 김 대표가 직접 썼다. “주변에서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니냐고 주저했지만 그렇게 밀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면 이런 감각은 어디서 나올까. “12년 영화계에 있다보니 생긴 모양이다. 나는 영화공부 한 적이 없다. 광고회사에 있을 때 `좋은 광고는 아름답던 촌스럽던 상품이 많이 팔리는 광고'라는 생각을 영화에 그대로 적용한다. 많이 보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친구>는 지금이 불황이어서 옛날을 생각할 것이고, 마침 지금의 경제주체인 386세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행이 될 것 같았다.” 김 대표는 이번 흥행에 고마운 사람으로 뜻밖에 미국의 리들리 스콧 감독을 꼽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한니발>의 수정을 요구했을 때, 한국에서 모자이크 처리해도 될 것을 그가 직접 손질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이 영화 개봉이 미뤄져 <친구>과 관객을 독식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경희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광고회사에 들어갔다가 20세기폭스사, 익영영화사, 일신창투를 거쳐 지난 98년 창립한 코리아 픽처스의 대표로 스카우트됐다. 그동안 <스피드> <나홀로 집에> <접속> <퇴마록> 등 흥행작의 마케팅에 관여했고, <친구>는 코리아 픽처스에 온 뒤 <아나키스트>에 이은 두번째 투자작이다.

전주영화제 - 시네마스케이프

<와이키키 브라더스> 감독 임순례 한국| 2001년| 105분 <세 친구>의 임순례 감독이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밴드의 여정을 따라가는 음악영화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리드 싱어 성우, 드러머 강수, 오르간 주자 정석, 색소폰 주자 현구 4명으로 구성된 밴드. 불경기로 유흥업소에도 불황이 닥치자 칠순 잔치 등 출장밴드로 전전하다가 성우의 고향 부근인 수안보에 일자리를 얻는다. 하지만 30대 중반에 별 볼일없는 모습으로 귀향한 성우의 마음은 편치 않다. 약사, 공무원, 환경운동가로 변신한 고교 동창들을 만나보지만 제각각 삶에 찌든 이들에게는 소통의 여지가 별로 없다. 그나마 첫사랑 인희와의 재회가 미묘한 위안을 안겨준다. 멤버간의 불화, 건강 악화 등으로 밴드마저 몇번씩 와해의 위기를 거치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음악도 계속된다. 미래에 대한 별 희망없이 밤을 지샌 ‘세 친구’를 고루 감싸던 아침해처럼 지방 나이트클럽 구석, 밑바닥 인생들의 남루한 일상의 틈에도 희망의 온기는 스며 있는 것이다. <북경 자전거> Beijing Bicycle 감독 왕샤오슈아이| 중국·대만| 2001년| 113분 자전거가 없어진 자리에 멍하게 선 소년.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의 남자를 볼 때만큼이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소년에게 자전거가 생계수단이자 꿈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북경 자전거>는 은색 자전거를 매개로 두 소년의 일상을 파고든다. 구웨이는 시골에서 상경해 자전거 배달부로 일하는 소년. 성능 좋은 자전거를 빌려주고, 어느 정도 실적을 올리면 아예 준다는 배달회사의 말에 열심히 달리지만, 주인이 되기 직전에 자전거를 도둑맞는다. 망연자실해진 구웨이는 자신만의 표시를 해둔 자전거를 찾아 헤매다가 지안과 맞닥뜨린다. 지안에게도 그 자전거는 절실하다. 또래 문화로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다가가는 수단이고, 동생의 학비를 훔쳐 산 것이기 때문이다. 몇번씩 자전거를 뺏고 뺏기던 소년들은 결국 하루씩 나눠 타기로 합의를 본다. 자전거를 샅샅이 훑는 도입부 카메라의 시선이 암시하듯 이 영화에서 자전거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지아장커, 장위엔과 함께 주목받아온 중국의 6세대 감독 왕샤오슈아이는, 자전거를 통해 각각 다른 처지에 있는 소년들의 일상과 꿈을 드러내면서 변화하는 중국사회에 대한 담담한 소묘를 그려냈다. <인력 자원부> Ressources Humaines 감독 로랑 캉트| 프랑스·영국 | 1999년| 100분 푸른 유니폼의 아버지와 말쑥한 정장의 아들이 한 공장에서 만난다. 파리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을 앞둔 아들이, 아버지가 30여년간 일해온 공장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관리직으로 일하며 엘리트코스를 보장받은 아들 프랑크는 집안의 자랑이다. 인력자원부로 배정받은 프랑크는 주당 35시간 근로제를 두고 노조와 협상이 결렬되자 노동자들의 의견을 듣는 설문을 제안한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무엇을 할 것인가조차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아버지를, 또 그렇게 몸바쳐온 직장에서 일거에 해고당할 아버지의 삶을 지켜보는 프랑크의 마음은 착잡하다. 게다가 선의에서 시작한 설문이 결국 노조와의 협상없이 일을 진행하려는 회사 경영진에 악용되자 프랑크는 파업을 지지한다. 아들의 장래를 염려해 입을 다물던 아버지도, “아버지가 창피했지만, 이제 아버지를 창피해 했던 제가 창피해요!”라고 외치는 아들의 말에 파업에 동참한다. 부자간의 갈등 위에 쉽게 화해할 수 없는 계급간의 갈등과 실업문제를 겹쳐놓고, 차분한 리얼리즘의 화법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시선이 힘있다. <아름다운 빈랑나무> Betelnut Beauty 감독 린친센| 대만| 2001년| 106분 <달콤한 타락> <천마다방>을 통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소개된 바 있는 대만의 젊은 감독 린친센의 신작. 갑작스런 비가 쏟아지던 여름날의 타이베이, 펭과 페이가 만난다. 펭은 군대에서 막 제대했고, 집에서 벗어나고자 번번이 가출을 시도하는 페이는 엄마에게 끌려 집으로 돌아가던 길. 결국 가출에 성공한 페이는 빈랑 열매를 팔며 살아가고, 우연히 다시 마주친 둘은 빗속의 교감을 떠올리며 사랑에 빠진다. 타이베이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 연인들의 사랑은 감미롭지만 일상은 만만하지 않다. 페이는 자신과 엄마를 떠난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품고 있고, 막연한 꿈을 좇던 펭은 페이를 위해 제빵업으로 돌아가지만 친구 때문에 폭력과 절도에 휘말린다. 남매의 근친상간을 다룬 <달콤한 타락>, 혼란한 시대 속에서 어긋난 연인들의 <천마다방>보다는 가볍고 감각적이나, 세상으로 나선 젊은 날의 불안하고 여린 속살, 어쩌면 늘 갑작스럽게 닥치는 파국이 감상적인 여운을 남기는 대만 젊은이들의 일그러진 초상. <아모레스 페로스> Love’s Bitch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 멕시코| 2000년| 150분 하나의 이야기를 몇 가지 시점으로 나누어 전개하는 구성은 타란티노 이후 더이상 낯선 방식이 아니다. <아모레스 페로스>는 세 가지 이야기를 하나의 얼개로 엮은 영화. 급박한 자동차 추격전이 벌어지는 도입부, 피 흘리는 개를 태운 채 쫓기던 두 남자의 차가 치명적인 충돌사고를 당한다. 무슨 일인가 하는 궁금증이 풀리기까진 꽤 걸린다. 갑자기 플래시백한 영화는, 사랑하는 형수 수잔나와 도망치기 위해 투견으로 돈을 벌어 모으는 옥타비오, 톱모델 발레리아와 잡지 편집장 다니엘의 불륜, 그리고 가족과 세상에 잊혀진 채 떠돌이개를 돌보며 살아가는 킬러의 사연을 차곡차곡 늘어놓는다. 별 관련 없어뵈는 이들이 서로의 삶에 뜬금없는 인서트컷처럼 끼어들고, 결국 각자의 얘기가 하나의 퍼즐로 이어지기까지 그 연결 조각을 꼼꼼히 맞춰가는 영리한 스릴러. 판타스포르투 영화제 신인감독상 및 작품상을 수상했다. <오테사넥> Otesanek 감독 얀 슈반크마이에르| 체코| 2000년| 125분 체코의 동명 전래동화를 각색한 작품. 호락 부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불임부부다. 우연히 사람처럼 보이는 나무뿌리를 발견한 남편은, 극도로 상심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나무 아이를 조각해 준다. 나무토막에 불과했던 아이는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엄마의 손길에 생명을 얻지만 기쁨도 잠시. 점점 먹성이 엄청난 괴물로 변해 이웃사람들까지 하나둘 먹어치운다. <오테사넥>의 동화를 읽은 이웃집 소녀 알츠베카만이, 비극적인 운명을 예감하면서도 사람의 욕망에서 태어나 버려진 아이를 돕고자 애쓴다. <오테사넥>은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체코의 애니메이터 얀 슈반크마이에르의 신작. 과장된 연기의 실사를 기본으로, 가지를 팔처럼 꿈틀대며 아이 울음소리를 내는 기괴한 나무 아이 캐릭터, 중간중간 알츠베카가 읽는 책 화면으로 삽입되는 원작동화 등 애니메이션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빚은 판타지가 막강하다. <옐로우 카드> Yellow Card 존 리베르| 짐바브웨| 2000년| 90분 <옐로우 카드>는 아프리카 짐바브웨라는 낯선 나라 청춘들의, 낯익은 성장의 풍경을 좇아가는 영화다. 17살인 티엔니에게 삶은, 새로 얻은 샛노란 축구 유니폼처럼 폼나고 밝은 것이었다. 그는 축구팀의 기대주고 학교 회장 후보감이며 여학생들에게 인기도 많다. 하지만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입원한 아버지 대신 친척의 결혼식에 가야 하는 바람에 중요한 축구경기를 놓친 티엔니는, 심란한 가운데 오랜 친구 린다와 하룻밤을 보낸다. 억지로 간 결혼식에서 상류층 소녀 줄리엣과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린다는 임신을 알린다. “아기를 업고 축구하는 젊은 남자”의 이미지를 떠올렸다는 감독은, 성에 대한 무지로 10대의 임신문제와 에이즈 보균율이 높은 아프리카 젊은이들의 세태에 대한 가벼운 경고와 함께, 민속음악의 리듬만큼이나 생기있는 성장기를 경쾌한 웃음으로 풀어냈다. <햄릿 2000> Hamlet 감독 마이클 알메레이다| 미국| 2000년| 111분 조르쥬 멜리에스의 흑백 무성영화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십번 영화의 재료로 쓰였던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 무대는 2000년의 뉴욕, 대기업 ‘덴마크 코퍼레이션’의 집안이다. 회장인 아버지가 죽은 뒤 어머니가 삼촌 클로디어스와 서둘러 재혼하자 햄릿은 배신감을 느낀다.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면서 삼촌에 대한 의심을 점점 굳혀가는 햄릿. 캐주얼한 정장에 뜨게모자를 쓴 이 현대의 햄릿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펜트하우스와 클럽, 비디오 대여점에서 냉소적인 독백을 쏟아낸다. 뉴욕의 마천루숲으로 건너온 만큼, <햄릿 2000>은 원작을 ‘현대화’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유령이 처음 보이는 곳은 엘리베이터 감시화면이며, 클로디어스를 떠보기 위한 연극은 햄릿이 직접 여러 이미지를 편집한 영화로 바뀌었다. 그 밖에 제임스 딘의 영화, 디지털 촬영화면, 총 등 각종 현대적인 장치는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고풍스런 대사와 묘한 대비를 이루며 마치 하나의 부조리극 같은 인상을 준다. <돌체> Dolce 감독 알렉산더 소쿠로프|러시아|1999년|61분 1986년에 작고한 일본의 유명 작가 도시로 시마오. 그에 대한 기억과 미망인과 딸의 일상을 묘사한 시적인 다큐멘터리 <고다르- 영화의 역사> Histoire(s) du cinema+Le Origine du XXIeme siecle 감독 장 뤽 고다르| 프랑스| 1998년| 187분 20세기 영화의 전방에 서온 거장 고다르가 보여주는 영화의 역사. 영화 장면들의 인용과 나열, 곧 영화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움직임, 대화를 통해 영화란 무엇인가를 역설하는 한편 새로운 영화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벤자멘타 연구소> Institute Benjamenta 감독 퀘이 형제| 영국| 1995년| 104분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기괴하고 음울하면서 개성있는 이미지의 세계를 펼쳐온 퀘이 형제의 실사영화. 종업원이 되기 위해 순종과 기계적인 예의를 배우는 벤자멘타 연구소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판타지로 풀어냈다. <피아스코> Fiasco 감독 래그나 브라가슨| 아이슬랜드| 2000년| 92분 할아버지, 어머니, 손녀, 바들 집안 3대의 특이한 사랑이야기. 할아버지는 콧대높은 왕년의 여배우에게 반하고, 손녀는 선원과 유부남 은행원인 두 애인에게 임신했다며 속을 떠보며, 어머니는 성격이 불안정한 목사를 위해 헌신한다. <러브 컴 다운> 감독 클레멘트 비고| 캐나다| 2000년| 102분 권투선수인 매튜와 코미디언 지망생 니빌은 아버지가 다른 형제.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매튜, 거듭 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약을 끊지 못하는 니빌 등 트라우마를 극복해가는 젊은이들의 상처와 사랑을 담았다. 황혜림 기자 ▶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 전주영화제 - 시네마스케이프 ▶ 전주영화제 - 아시아 인디영화 포럼 ▶ 전주영화제 - 구로사와 기요시 특별전 ▶ 전주영화제 - 한국단편영화와 한국영화 회고전 ▶ 전주영화제 - N비전 ▶ 전주영화제 - 오마주 ▶ 전주영화제 - 회고전 ▶ 전주영화제 - 다큐멘터리 비엔날레 ▶ 전주영화제 - 다큐메이션 ▶ 전주영화제 - 미드나잇 스페셜 ▶ 전주영화제 - post68

<한니발>

Story 그리고 10년 뒤, 베테랑이 된 클라리스 스탈링 요원은 마약범 소탕 작전을 지휘하게 된다. 잠복중이던 스탈링은 마약범이 아기를 안고 소굴에서 나오자 급히 작전을 취소한다. 그러나 다른 기관에서 나온 요원들이 그의 명령을 무시한 채 총격전을 시작하고, 스탈링은 기관총을 한손에 들고 저항하는 마약범을 죽인다. 아무리 범죄자라지만 아이를 안은 여자를 살해했다는 비난으로 곤경에 처한 스탈링에게, 두개의 전갈이 온다. 하나는 10년 전 경찰관 3명을 죽이고 사라진 뒤 종적을 감춘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 그는 스탈링을 위로하며, 자신이 은둔생활에 지쳤음을 비친다. 다른 하나는 한니발의 4번째 희생자이자 유일한 생존자 메이슨이다. 한니발이 준 환각제에 취하여 자기 얼굴의 살점을 떼내 개에게 주었던 메이슨은, 현상금을 내걸고 법무성에 압력을 넣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며 한니발에게 복수할 기회를 찾고 있다. 그러나 플로렌스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니발은 경찰과 메이슨의 부하를 살해하고 다시 사라진다. 눈앞에서 한니발을 놓친 메이슨은 함정을 판다. 한니발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스탈링을 난국에 빠트리면, 반드시 한니발이 그의 곁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Review 시종일관 피와 살점이 튀는 공포영화 <양들의 침묵>에 작품상, 감독상, 주연상 등 아카데미상의 주요 부문을 몰아준 것은, 놀랍지만 당연한 선택이었다. <양들의 침묵>은 무엇 하나 흠잡을 곳이 없는 영화였다. 원작은 <레드 드래건>에서 시작하여 <한니발>로 끝나는 3부작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니발이라는 영화사상 전무후무할 매력적인 ‘살인마’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한 조너선 드미의 연출력과 앤서니 홉킨스, 조디 포스터의 조화는 정확하게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었다. <양들의 침묵>은 각자의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내며, 모든 면에서 정점에 오른 걸작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제작자인 디노 디 로렌티스는 <양들의 침묵>이 성공을 거둔 뒤, 토머스 해리스가 쓸 한니발 렉터 박사의 속편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니발>이 출간된 것은 99년 7월. 무려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소설 속의 시간도 10년이 지나갔다. 그동안 한니발의 재림을 기다린 사람은, 아쉽게도 앤서니 홉킨스뿐이었다. 조너선 드미는 속편의 감독을 거절했고, 설상가상으로 조디 포스터도 고사했다. 게다가 <한니발>의 원작은 그리 평이 좋지 않았다. 이리저리 표류하던 <한니발>은 다행히 <글라디에이터>로 재기한 리들리 스콧의 손에 들어갔고, 줄리언 무어가 스탈링 역을 수락했다. <양들의 침묵>의 재현은 아니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가능케 하는 A급 진용을 갖추게 된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10년 뒤에 일어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실제로 10년 뒤에 쓰여졌고, 그래서 전작과는 완전히 별개라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실이 좋았다”는 리들리 스콧의 말처럼, <한니발>은 전작을 보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데이비드 마멧에 이어 <쉰들러 리스트>의 스티븐 자일리언이 다듬은 시나리오는 중심인물의 하나였던 메이슨의 여동생을 빼고 동성애 코드를 약화하는 등 소설보다 빠르게 이야기를 긴박하게 진행하고, 다양한 액션장면들을 추가했다. 특히 한니발이 은거하던 플로렌스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추격전을 풍성하게 강조했다. 안팎으로 시달리다 한니발의 현상금으로 한몫 챙기려는 파치 경감의 캐릭터도 원작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다. 소설의 결말과 다르게 처리한 마지막 장면은 기대에 못 미친다. 이미 걸작으로 등재된 다른 감독의 작품에 이어지는 속편을 만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되는 일이다. 리들리 스콧은 시리즈물로 확고하게 자리를 굳힌 <에이리언>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속편을 만든 적이 없다. 리들리 스콧의 첫 속편인 <한니발>은 우려처럼 <양들의 침묵>을 능가하지 못한다. 캐릭터의 구축이나 매혹적인 악마의 낭만적인 모험으로 관객을 끌어가는 놀라운 리듬과 구성력, 심지어 리들리 스콧의 장기인 현란한 이미지까지도 전작을 따르지 못한다. 빛과 그림자가 격렬하게 부딪치는 극단적인 장면의 묘사는, 리들리 스콧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블레이드 러너> <블랙 레인> <위험한 연인> 등에서 보여준 리들리 스콧의 테크닉은 분명 거장의 손길이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은 ‘작가’이기를 포기하고, 익숙한 ‘쫓고 쫓기기’의 게임에만 열중한다. <한니발>은 유려한 리듬과 인상적인 장면들로 전개되던 플로렌스를 벗어나자, 같은 길을 맴돈다. <한니발>에서 가장 매혹적인 이미지는, 한 인물이나 스토리에 얽매이지 않는 오프닝 크레디트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한니발’이라는 캐릭터가 전작만큼 매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니발 렉터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우리를 겁나게 하는 동시에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학의 모든 주요 악마들이 가진 것처럼,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드는지 호기심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니발 렉터의 매력은 다른 중요한 악마들보다 덜 신비적인 것에 있다. 그는 존재하고, 우리의 삶에서 같이 호흡하기 때문”이라고 말은 하지만, <한니발>은 그렇지 않다. 사랑의 감정보다 농밀하게 스탈링과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던 한니발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예술작품’ 혹은 ‘일품요리’를 만드는 데 고심하는 장인이 등장할 뿐이다. <한니발>은 <양들의 침묵>의 산맥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김봉석 기자 lotus@hani.co.kr 10년의 세월, 깊어진 연기 I <한니발>의 배우들 전작이 그랬듯이, <한니발>도 배우들의 연기가 맛을 더한다. 앤서니 홉킨스는 여전하다. 너무 여전해서, 오히려 무감각해질 정도다. 스탈링을 초대하여 뇌를 파먹는 만찬을 하다가 승강이를 벌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한니발은 내면의 악마를 힐끗힐끗 놓아버린다. 스탈링에 대한 연정과 내부의 악마성이 얼핏얼핏 스치며 교차되는 연기는 탁월하다. 1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매혹적인 악마 한니발의 캐릭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악마는 역시 영원불멸인가? <부기 나이트> 등 아카데미상 후보에 두번이나 오른 줄리언 무어의 연기력은 이미 검증되었다. <한니발>의 10년의 세월을 먹은 스탈링도 훨씬 안정되었다. 내면의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완고한 윤리관을 지닌 스탈링 역에 줄리언 무어말고 다른 배우를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심지어 <양들의 침묵>의 장면을 떠올릴 때도, 줄리언 무어의 얼굴이 박혀있을 정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스탈링의 한니발에 대한 감정이 원작과는 약간 다르게 묘사되었다는 것이다. 스탈링이 한니발에 대해 느끼는 이중적인 감정은 제대로 표면에 부상하지 않는다. 그 덕에 한니발과 스탈링의 관계는 전작보다 모호해졌다. 뜯겨나간 얼굴을 얼기설기 꿰매놓은 메이슨 역을 연기한 게리 올드먼은, 얼굴 대신 목소리로 연기한다. 메이슨의 육체는 성한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몸으로 연기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바람이 새나가는 탁한 목소리로 한니발에 대한 증오심을 피력하는 모습은 진풍경이다. <좋은 친구들>에서, 갱이면서도 ‘선함’을 결코 잃지 않았던 레이 리요타는 부패한 법무성 관리 폴 크렌들러를 맡았다. 출연작마다 ‘선함’과 ‘악함’을 자유자재로 보여주었던 레이 리요타는 <한니발>에서, 가장 야비한 인물이란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준다. 심지어 그의 치졸한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아마도 영화 사상 가장 ‘사실적’으로.

대학입시 심층 면접 예상 문제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문 1.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문대성의 입장이 되어 의견을 말하라. 요즘 태권도협회가 국가대표 선발전의 잡음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지난해 시드니올림픽 선발전에서도 미담 속의 잡음이 한 차례 있었다.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것 자체가 금메달 수상과 직결되는 태권도. 이 종목에서 10여년 이상 세계를 평정한 불세출의 영웅 김제경을 위하여 김경훈과 문대성이 기권과 부상이라는 이름으로 선발전 자체를 ‘무의미한 영광’으로 만든 바 있다. 그런데 김제경이 부상으로 시드니행이 좌절되자 그때부터 영광에 금이 갔다. 협회는 2, 3위에 재대결을 결정했고 이에 99년 세계챔피언인 2위 문대성 선수가 1위가 낙마하면 2위가 출전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보이콧을 했다가 어쩔 수 없이 재대결을 치렀는데 김경훈에게 지고 말았다. 김경훈은 시드니의 면류관을 썼다. 너무 쉬운 문제라구? 그렇다면 문 2. 당신이 다음 시합의 4위 선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시드니의 꽃 강초현. 올림픽 이후 그녀의 삶은 180도로 바뀌었다. 새 아파트를 얻었고 충남대 체육교육학과에 일시 진학한 바 있으며 독일 사격장비업체, 온라인게임회사, 의류업체의 모델로 새 삶을 살았다. 베스트드레서 시상식이나 우리 영화 보는 날 같은 행사에 도우미로 불려다녔으며 조성모, 이휘재 등과의 깜짝 이벤트에도 나갔다. 부도덕한 뮤직비디오 <아시나요>의 파문을 수습하기 위한 기획사의 전략에 말려들었다는 충고는 사후약방문이었다. 그 모든 과정에 미디어가 개입했다. 강초현은 해병 청룡부대에 입소해 지옥훈련을 받았다. 강초현은 미디어의 강요에 따라 여자 코스보다 세배 이상 긴 남자 코스에 도전했으며 로프를 잡고 중간까지 갔다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카메라는 이 과정을 생생히 잡아냈다. 이들은 시합장까지 쫓아갔다. 수십대의 ENG 불빛과 셔터 소리를 들으며 사대에 오른 강초현이 지난 몇 개월 동안 꼴찌에 예선 탈락을 반복한 것은 당연한 노릇인지 모른다. 결국 며칠 전 서울월드컵대회 선발전에서 강초현은 17위의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다. 여갑순 이후 여자 사격의 대들보였던 비운의 최대영이 1위, 장미가 2위, 비공인 세계타이기록을 세운 이문희가 3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사격연맹의 어이없는 규정 해석과 무언의 압박에 따라 2위를 차지한 장미 선수가 출전 포기를 밝혔고 연맹은 17위의 강초현을 대표로 뽑았다. 올해 전문대에 입학한 장미 선수는 잇따른 대회출전으로 수업결손이 많아 출전을 포기했다고 밝혔는데 전혀 설득력이 없다. 진작에 수업이 걱정이었다면 선발전에 출전하지 말았어야 했으며 그럼에도 2위가 포기했다면 4위가 선발되는 게 원칙 아닌가. 강초현 역시 지난 시드니 선발전에서 무명으로 2위를 했다가 자신보다 관록 높은 3위를 내보내야 한다는 변칙 대신 2위를 내보내야 한다는 원칙에 힘입어 시드니로 갔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 상황. 자, 이 과정을 4위의 입장에서 풀어본다면 어찌될 것인가. 마지막 문제. 다음 제시문을 읽고 ‘착한 사람은 위대한 예술을 만들 수 없다’는 말 같지도 않은 가설을 믿는다는 전제 아래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비장하게 죽는 장면을 비판적으로 설명하라. 에스더 김은 한국계 미국인 태권도 선수. 탁월한 기량으로 대표 선발이 유력했으나 같은 체급의 동료 케이 포가 준결승에서 부상을 입는 바람에 에스더 김은 아예 결승전 출전을 포기해버렸다. 결과는 몰수패. 에스더 김의 놀라운 결정 덕분에 포가 대표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미담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 스포츠 감상주의의 대제전인 올림픽으로서는 에스더 김의 이 기막힌 드라마를 놓칠 수 없었다. 각종 외신과 인터넷을 들끓게 한 이 미담은 <오프라 윈프리 쇼>를 통해 천사들의 이야기로 등극하였으며 미국 올림픽위원회는 에스더 김에게 스포츠맨십상을, 그리고 미 하원의장은 감사장까지 수여하였다. 사마란치는 특별 초청 케이스로 에스터 김을 시드니로 불렀다. 에스더 김에게는 ‘진정한 승자’라는 닉네임이 주어졌다. 이 세레모니의 조연 케이 포는 어찌해야 좋은가. 준결승에서 뼈아픈(실제로 케이 포는 무릎 연골 덮개가 탈골되는 중상을 입었다) 부상을 입은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진정한 승자’의 조연이 되어야만 하는 케이 포. 원하지도 않게 ‘진정한 승자’의 들러리가 된 케이 포. 결전의 날. 시드니 올림픽파크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플라이급 1회전에서 케이 포는 덴마크 선수에게 패해 패자부활전으로 밀려난 뒤 결국 예선 탈락했다. 이때 중계 카메라는 매트의 패배자 케이 포를 잠시 비추더니 관중석의 ‘진정한 승자’, 탈락의 비운을 맞은 동료를 향해 아쉬운 눈물과 격려의 손짓을 보내는 에스더 김을 비춘다. 혹시 케이 포는 일부러 진 것은 아닐까. 에스더 김은 그날 경기장에 나오지 말았어야 한 것은 아닌가.

반공전쟁영화의 설계사

탁월한 개인 혹은 한명의 영웅이 등장하여 전세를 뒤엎는 전쟁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인다. 그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희화화되어 한낱 만화에 불과한 허섭쓰레기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베트남전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 <람보> 시리즈가 꼭 그렇다. 리얼한 전쟁영화란 잔혹한 증언이다. 거기에는 전쟁의 참상과 광기 그리고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맥하게 스러져간 숱한 인간군상들의 가슴 치는 아우성이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룬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전반부가 그렇고, 인천상륙작전 및 중공군과의 교전을 다룬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그렇다. 이만희 감독의 이 걸작 스펙터클을 비디오를 통해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완성된 지 30년 가까이나 되는데도 최근까지 이 작품의 리메이크를 꿈꾸는 내 또래의 젊은 감독들이 여럿 있는 것을 보면,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한국 전쟁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칭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한우정은 돌아온 해병이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서울사범대학 재학중 한국전쟁을 맞아 해병대에 입대한 참전용사이자 이후 1963년까지 해병대의 정훈장교로 복무한 직업군인 출신이다. 그는 5·16쿠데타 이후 군관계 영화촬영 협조를 위해 정훈국에 드나들던 시나리오 작가 유한철과의 교분을 바탕으로 충무로 사람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는데,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만희가 만든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고 대표작이다. 이 작품의 대대적인 흥행성공으로 한우정은 아예 군복을 벗고 충무로에 진입하여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한다. 이듬해 제작된 <협박자>는 북한군의 금괴를 훔쳐 월남하다가 친구의 배신으로 좌절한 인간의 복수극을 다뤘고, <추격자>는 좌파 친구의 모함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난 다음 그 복수를 위해 9·28수복 즉시 북한까지 쫓아간다는 내용인데, 모두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상정될 수 없는 스토리라인으로 1960년대에 크게 유행했던 반공전쟁영화의 전형적인 플롯을 갖추고 있다. 반공전쟁영화의 전형이면서도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된 어이없는 경우를 당한 작품이 저 유명한 . 국군간호장교들을 호송하던 북한군 장교가 중공군에 맞서 싸우다가 결국 그들과 함께 남한에 귀순한다는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는데, 북한군 장교의 복장이 너무 근사하고 그 인품이 훌륭하게 묘사되었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으로 걸려들었다. 이 작품은 결국 광신적인 매카시즘과 참혹한 여론재판 끝에 <돌아온 여군>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다. 이듬해 한우정-이만희 콤비는 인민군 동생이 반공유격대인 형의 설복으로 남한에 귀순한다는 내용의 <군번없는 용사>를 통하여 자신들의 결백(?)을 만천하에 증언한다. 선연한 흑백논리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냉전시대의 서글픈 풍경이다. <동대문시장 훈이엄마>는 줄곧 이들 콤비의 영화에서 촬영을 맡아 발군의 솜씨를 보여주었던 서정민이 직접 연출한 작품으로 당시 사회문제화했던 전쟁미망인들을 다루고 있는데, 김지미의 훌륭한 연기에 힘입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공포의 18일>은 1958년 2월에 발생한 KAL기 납북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적 터치의 반공영화다. 한우정은 영원한 해병이다. 다혈질의 호쾌한 성격인 데다가 두주불사로 알려진 그를 나는 지난해 영상작가전문교육원에서 강의하면서 먼 발치에서나마 몇번 뵐 기회가 있었다. 여전히 당당한 체격이었고 멋진 옷차림이었으며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한우정이 쓴 작품들은 대부분 오리지널 시나리오인데 그의 마초적인 기질이 그대로 반영되어 전쟁물 아니면 액션물 내지 추리극이다. 70년대 이후 방송사로 옮겨가는 바람에 충무로에서의 작품활동이 뜸했던 그의 최신작은 역시 한국전쟁을 다룬 <해병묵시록>. 북한이 도모하던 세균전을 저지하기 위해 적진 깊숙이 침투된 남한 해병대의 활약상을 다루고 있는 전형적인 반공전쟁영화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흥행에서는 참패했지만 이 영화를 통해 한우정은 오래된 구호를 재확인시켰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심산|시나리오 작가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63년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 ⓥ★ 이만희의 <돌아보지 말라> 1964년 이만희의 <협박자> 이만희의 <추격자> 1965년 이만희의 1966년 서정민의 <동대문시장 훈이엄마> 이만희의 <군번없는 용사> ★ 1967년 이만희의 <흙바람> 안영로의 <지명수배> 1968년 조해원의 <공포의 18일> 1969년 임원식의 <마인> 1995년 이병주의 <해병묵시록> ⓥ ⓥ는 비디오출시작 ★는 자(타)선 대표작

사기스 시로 영화음악 프로듀서 인터뷰

<무사> 영화음악을 맡기로 한 계기는?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렸나. 1년 전 영화음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웃나라에서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게 기뻤고 베이징에서 김성수 감독을 만나서 이야기하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을 만나기 직전 시나리오를 받아봤는데 시나리오도 좋았다. 기존에 했던 영화음악들과 달리 역사극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일본TV에서 역사드라마의 음악을 한 적은 있지만 영화로 시대극을 해본 적은 없다. 그 점이 흥미를 끌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사>가 좋았다. <무사>의 음악은 사실상 김성수 감독으로부터 나왔다. 영화음악은 그냥 음악이 아니라 화면에 새겨넣은 음악이다. 감독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가장 중요하고 나는 그가 원하는 걸 하는 것이다. 아무리 김성수 감독의 영화지만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개인적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난 사운드트랙은 감독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셀린 디옹의 음반이나 서태지의 음반은 셀린 디옹과 서태지의 음악이지만 영화사운드트랙은 감독의 것이다. 난 음악 프로듀서로서 영화에 참여한 것이다. 수많은 스탭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음악가로서 영화음악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뭔가. 영화음악을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음악가로서 난 감독으로부터 음악에 대한 영감을 얻을 뿐이다. 특별히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음악을 하는 건가. 그렇다.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아버지가 TV드라마와 영화 프로듀서로 일했다. 어려서부터 영화를 자주 접했고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해 알게 됐다. 아버지가 현장에 자주 데려가셨는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배우, 스탭, 제작자들이었다. 쇼비즈니스를 일찍 접했고 그런 일에 흥미를 가졌다. 영화감독이 될 생각은 없었나. 어쩌다 음악가가 됐나. 5∼6살 때 교회 오르간을 치면서 음악에 흥미를 가졌다. 10대 초반엔 영화감독을 하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난 안 된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내가 10대였던 60년대는 록과 재즈에서 혁명적인 음악들이 나온 시기였다. 재즈에 관심있던 나는 학교에서 밴드를 만들었고 작곡을 시작했다. 17∼18살 때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재즈밴드의 색소폰 세션맨으로 일했고 20대 접어들어선 재즈밴드를 만들었다. 그러다 편곡을 부탁받은 노래 하나가 가요차트에서 성공하는 바람에 작곡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됐다. 그때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써주곤 했다. 영국에서 살고 있다던데 언제부터 일본을 떠나 활동했나. 30대가 되자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파리에서 3년간 머물면서 활동했고 그 다음엔 런던으로 옮겼다. 도쿄, 파리, 런던을 옮겨다니며 생활하지만 차이는 별로 없다. 언제나 스튜디오가 내 집이고 내 생활이다. 새로운 음악을 만날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고 그런 점에서 외국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데 안노 히데야키와의 작업은 어땠나. 안노와는 <나디아>부터 함께 일했다. 첫 작품인 <나디아>를 할 때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안노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하지만 두 번째 영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할 때는 눈짓만으로도 뭘 원하는지 알았다. 훌륭한 감독은 영화뿐 아니라 음악에 대해서도 안다. 김성수 감독도 음악을 잘 아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음악가로서 당신의 목표는 어떤 것인가. 음악을 하면서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좋다. 좋은 창작자들을 많이 만나고 일본뿐 아니라 중국,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게 즐겁다. 국적이 어디든 음악은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도록 만든다.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게 좋고 <무사>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 <무사> 후반작업 현장 ▶ 김성수 감독 인터뷰 ▶ 사기스 시로 영화음악 프로듀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