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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김 감독에게 그런 말을 했다. 아무리 친하다고 서로 아는 것만 빼먹지 말고, 다른 것들을 찾아줘야하지 않겠냐고. <나쁜 남자>는 캐릭터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조씨는 김 감독이 앞으로 찍으려는 아이템이 두세개 있는데 그 안에 자기가 할 역은 기껏해야 우정출연 정도일 것이라고 전했다. 일단은 결별인 셈이다. “얼마전에 김 감독이 이제는 다른 감독들이 조재현이라는 배우를 만들어내는 일만 남았다고 말하더라. 마치 부하 하나 만들어서 전쟁터에 내보내는 이순신 장군처럼.” 조씨는 “이전에는 저예산 영화의 시나리오만 들어왔는데, 최근에는 거꾸로 메이저 영화의 시나리오만 들어온다”면서 “하고 싶은 역할이다 싶으면 저예산 영화에도 꼭 출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페드로 코스타, 리처드 포튼, 임재철, 세 시네필의 난담

제1회 광주영상축제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지만, 장 르누아르, 미조구치 겐지, 장 뤽 고다르, 장 비고 등의 상영작들이 시네필들에게는 즐거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손님으로 영화제를 찾은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페드로 코스타와 미국의 영화학자이자 언론인 리처드 포튼, 그리고 폴리티컬 시네마 등 일부 프로그램을 담당한 한국의 영화평론가 임재철, 세 사람이 만나 쉽게 말문을 틀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시네필의 과거를 공유한 덕분이다. 영화적 유산에 대한 재평가와 누벨바그와 같은 실험에 거름이 된 영화문화의 흐름과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는 영화에 대한 사적인 체험과 취향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4시간이 넘도록 그칠 줄 몰랐다. 페드로 코스타(이하 코스타) 이 영화제는 내게 아주 기묘한 인상이었다. 처음에 난 임재철이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를 보내준 걸 보자마자 이 사람도 나만큼이나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뭘 꿈꾸면서 이런 프로그래밍을 했지? 나이브한 사람 아닌가 하고. 이런 페스티벌에서 정치영화나 이런 영화사적인 고전들이 요즘도 통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영화들이 통하길 바라지만, 글쎄….(웃음) 임재철(이하 임) 내가 바란 게 있다면 시네필들의 커뮤니티를 위해 좀더 확실한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나도 내가 하는 일이 일종의 실험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실패가 확실시되면 아르헨티나로나 이민 갈 생각이다.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웃음) 그렇지 않아도 어제 페드로와 한참 얘기를 했는데, 시네필로서의 과거에 대해 아주 열정적이었다. 로베르 브레송의 촬영감독이었고, <뼈>를 촬영한 에마뉘엘에게 들어서 아는데 브레송이 젊은 시절에 몸을 파는 남창이었다는 뒷얘기부터 시작해서…. (웃음) 그래서 각자의 과거에 대해 얘기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코스타 난 사실 시네필이라 자처한 적은 없는데…. 그저 영화를 보고 싶어했던 거지. 물론 내가 본 영화들에 대해서는 자랑스럽다. 채플린의 영화를 거의 다 본 것. 난 포르투갈 국립영화학교를 다녔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매일같이 시네마테크에 드나들었다. 맨 앞줄 가운데가 내 자리였고, 누가 앉아 있으면 내 자리라고 싸우곤 했다. 거기서 이따금 회고전을 해줬는데 찰리 채플린, 스턴버그, 하워드 혹스, 로베르토 로셀리니 등의 전작을 틀곤 했다. 그럴 때 거기에 가서, 마치 토마스 만의 전집을 읽듯 영화를 봤다. 클래식영화들, 미국영화들.사랑하는 감독과 영화 임 스와 노부히로와 얘기했을 때 그는 나와 거의 같은 세대였다. 그 역시 70년대 미국영화로 영화에 빠져들게 됐다고 했다. 페킨파, 알트먼, 스코시즈. 거기다 몬테 헬만 같은 사람을 추가할 수 있겠지. 하지만 영화를 더 많이 보게 되면서 그들이 그렇게 대단한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알트먼 같은 경우 방법에 대한 의식의 결여 같은 것은 확실히 치명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난 아직도 그 영화들을 별볼일 없는 것들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일종의 센티멘털한 집착이 여전히 있다. 코스타 알트먼에 대해 장 마리 스타라우프는 아마 동의 안 할걸? 그는 <닥터 T와 여인들>을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도 아니라고 했었다. 돈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영화라고. 포튼 하긴 자크 리베트도 <쇼걸>이 최고의 영화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니까. 임 그래서 페드로가 좋아하는 영화 언급할 때 70년대 감독이나 영화를 하나도 언급 안 한 게 놀라웠다. 70년대 포르투갈에서는 미국영화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나? 코스타 70년대 작가들을 만나기 이전에 나는 존 포드, 하워드 혹스등의 전작을 볼 수 있었다. 나한테 특히 존 포드는 최고 중 하나다. 그는 기능적으로도 뛰어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자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70년대 하면 내게 떠오르는 것은 그 많은 형편없는 프랑스영화들이다. 10대 시절 나는 주변의 것들을 모두 싫어했는데 70년대 영화들도 그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브누아 자코 같은 감독들은 정말 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영화를 만들었다. 임 존 포드의 경우는 어렸을 적에 극장에서 <샤이안>을 본 기억이 있고 그의 대표작들을 나중에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그러다보니 그가 얼마나 걸출한 작가인가를 이해하는 데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에서 <일곱 여인>에 이르는 포드의 만년 괴작들의 진가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페드로는 영화체험 측면에서 나보다 훨씬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포튼 나에게 영화는 빌리 와일더가 거의 시작이다. 영화광인 부모님이 극장 가길 즐겼는데, 아마 <뜨거운 것이 좋아>가 내가 처음 반한 와일더 영화였을 거다. 그리고는 뉴욕대학(NYU) 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하면서 레퍼토리 극장들에서 많은 영화들을 봤다. <잔다르크의 열정> 같은 클래식들, 할리우드영화들, 독서와 평론으로부터도 많은 걸 배웠고, 나아가 영화를 발견하는 식이었다. 제임스 애지나 마니 파버 같은 사람들의 리뷰, 그들의 의견에 다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그걸 읽고, 영화를 보러 가고. 레퍼토리 시네마에서 많은 걸 봤다. 고다르, 펠리니, 이후 2∼3달 동안의 스케줄을 체크해가면서. 시네필의 관점은 고유하고 사적이라 어떤 기준을 넘어서 감독의 감각이 나와 맞아야 하는 것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 감각에 맞는 감독은 브뉘엘이다. 한편을 꼽긴 어렵고 그의 작품 전체. 코스타 그건 한 감독이 다른 감독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존 포드가 어떤 감독이 좋냐는 질문에 르누아르, 어떤 영화가 좋냐는 질문에 그의 전 작품이라고 답했다니까. 미조구치 겐지도 아주 아름다운 말을 한 적이 있다. 감독이 감독에게 할 수 있는 최상급의 찬사라고 생각하는데, 오즈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하면서, 그가 한 작업이 자신이 한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미조구치도 훌륭한 감독임에 틀림없지만, 오즈가 자신의 소우주, 아버지, 어머니, 아이, 사촌, 아이, 집, 도시, 시골 등에 대한 영화를 스무편 이상 힘있게, 에너지를 갖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임 어제 코스타와도 애기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르누아르가 대단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는 독자적인 스타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처음 봤을 때 잘 포착되지 않지만 유동체로서의 현실을 포착해내는 대단한 능력이 있다. 사실 현실의 모난 부분을 포착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능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거기서 현장에 입회해 있는 듯한 질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수준이 다른 문제가 된다. 코스타 이를테면 브레송을 처음 보게 되면 당연히 경악하게 된다. 영화제의 카탈로그에 의하면 내가 브레송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감독으로 되어 있는데(웃음)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는 걸 숨기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는 <몽상가의 4일밤> 같은 스타일밖에 남는 것이 없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르누아르는 어떤 작품도 몇개의 형식적인 측면으로 환원될 수 있는 작품은 한편도 없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작품이 흥미롭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있다. 포튼 난 늘 브뉘엘의 영화로 돌아가는 것 같다. 장 비고도 그런 감독이지만 4편밖에 안 만들었으니까…. 최근 감독 중에는 잔니 아멜리오도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옛날 이탈리아영화들의 재탕이라고 하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뭔가 남겨줬으니까. 뭐, 로랑 캉테 영화도 괜찮았다. 코스타 난 그의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그와 얘기는 많이 나눴다. 그리고 그의 관심사가 노동자들, 거리의 사람들, 고통받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나와 맞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같은 사람도 지금의 이 상황에서 꽤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는 게 나한테는 악몽이다. 무수한 인터뷰에, 프레젠테이션에, 일종의 자본주의적인 과잉 속에서도 말이다. 그 과정을 받아들인다는 데에서 약간의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게 내 문제라는 것도 알지만, 나한테는 아주 유서깊은 문제다. 현재의 영화비평에 관한 근심 포튼 요즘 학생들에게 단편을 만들어오라고 하면 스코시즈나 타란티노의 페스티시를 만들어온다. 아니면 현재 주목받는 감독들. 그리고 시나리오 코스가 훨씬 많은 지금에 나온 각본들이 예전보다 훨씬 못하다. 그 책과 강의들이 어떤 공식을 가르치기 때문일 것이다. 잘만 만들어진다면 상업영화라고 해서 꺼릴 것은 없지만, 요즘의 할리우드는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로맨틱코미디 하나 못 만든다. 30, 40년대에는 하워드 혹스와 프랭크 카프라처럼 셰익스피어를 코미디에서 살려내는 전통이 있었다. 스튜디오 시스템하에서 오히려 더 좋은 영화들이 나왔다. 코스타 왜냐하면 지금은 영화의 일부였던 것들을 영원히 죽이려 드니까. 그동안 영화가 보여준 테크닉이 숏을 운용하는 방식이 있는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점점 영화를 영화사의 관계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과 이론이 영화에 관여하면서 모든 게 엉망이 됐다. 시네필, 독립영화 등등 모든 것들이 이론에 의해 훈련된다. 예전의 시네필들은 부지런히 토론을 했다. 영화 안에서는 고다르 같은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에 동시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하지만 크리스티앙 메츠와 함께 시작된 것 같은데, 대학에서 갖가지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영화로 흘러들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서울이든, 뉴욕이든, 파리든 젊은이들은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모른다. 실제 영화에 접근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이론에 의존하니까. 그 이론 중 일부는 잘못 조작된 것이기도 하다. 60년대의 모든 위대한 것들이 지나가고, 70년대를 거치면서 아주 나쁘게 변했다. 그때가 내가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였다고 말했지만, 영화학교에서 선생들이 권해준 영화들은 모두 끔찍했다. 한두 가지 예외는 있지만. 바타이유를 읽지 않으면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얘기는 정말, 18살의 소년에게는 엿 같은 일이다. 포튼 내 경우 영화학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애증관계가 있다. 원래는 시네필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학생들도 논문이나 책을 쓰지 않는 한 채플린의 모든 영화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게 특화되고, 마케팅의 문제가 되고, 학계는 물론 영화 자체가 산업이 되고 있다. 출판물과 책으로 산업화되는 경향…. 몇몇 감독들도, 민족영화에도 패션의 사이클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아마 한국영화가 다음 유행이 되겠지? 평론가들도 뭔가 전문분야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의 영화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요즘의 영화연구자에게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60년대 후반 대학에서 처음 영화를 가르칠 무렵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지금처럼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가령 가장 일찍 영화과가 생긴 뉴욕대학의 초창기 교수진을 보자. 에이젠슈테인과 일하기도 했고 영화도 만든 한 제이 레다 같은 사람은 내가 알기에 대학에 가지 않았다. 윌리엄 에버슨도 아마 대학은 안 갔던 것 같고. 아네트 마이클슨은 고작 학사학위밖에 없었다. 페드로 많은 학교들과 비평, 이론과 함께 개인의 판타지는 점점 더 불명료해지는 것 같다. 고독에 대한 욕구가 있는진 모르겠지만, 자신의 방에 갇혀 있을 뿐 더이상 그룹을 이루지 못한다. 난 그런 사람들의 지식을 믿지 않는다. 3∼4편을 보고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식. 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누구고, 엑스트라였던 배우가 나중에는 주연이 되는 변화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 과거의 거장들은 영화를 만들고 공유했다. 그들은 혼자 있을 때와 함께할 때를 잘 구분할 줄 알았다. 왕가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함께도 혼자도 아니다. 내 유일한 스승은 포르투갈 감독인 안토니오 레이스였는데, 그는 많은 영화를 만들진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얘기를 했다. 그 세대는 서로의 영화를 다 봤다. 서로를 좋아하지 않아도, 설사 극렬하게 싸우더라도 서로의 영화를 보러 가고 권한다. 스트라우프는 자크 리베트 영화를 보러 가라고 권하고, 리베트는 스트라우프 영화를 보러 가라고 권한다. 난 영화를 하려는 젊은이들을 보면 왕가위나 라스 폰 트리에가 아니라 항상 찰리 채플린 얘기로 돌아간다. 10분짜리 단편을 비롯해 그의 무성영화들. 포튼 미국에서 비평은 더이상 시네필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소비자 가이드가 되고 있달까. 영화에 별을 매기고, 점수를 매기는 식이다. 소비자주의가 대세인 한은 그런 식의 가치평가가 계속 있을 것이다. 시네필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특유한 창조, 프로그램된 시선이 아니라 독창적인 어젠다를 포함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지만 현재의 비평은 더이상 사적인 취향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어떤 영화가 중요하고 뭘 생각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가이드북을 만드는 것과 같다. 많은 나라에서는 영화비평이 이런 소비자 가이드가 돼가고 있다고 본다. 그동안 <시네아스트>도 미묘한 변화를 겪었다. 67년에 만들어질 때에야 기본적으로는 학생운동세대에 의해 만들어져 좌파, 미국의 급진적인 영화와 뉴스 릴, 로버트 크레이머의 영화 같은 전투적인 영화가 화두였다면 지금은 그 시대와 또 다르다. 그때는 정치적인 문제와 분리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할리우드영화들에 대한 리뷰를 싣는 일이 더 많아졌다. 상업영화들, 대중적인 취향도 반영되고. 코스타 내 생각에 오늘날의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어떨 때는 광고고, 비디오 클립이고, 정치적이거나 전투적이라 해도 쇼비즈니스일는지 모르지만 영화는 아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들은 전혀 세계를 발견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시네필들, 아마도 스코시즈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영화에 대한 배타적인 지식에서 출발한다. 이때부터 그들은 영화 이외의 다른 걸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스트로하임 같은 영화가 있었나, 왕가위면 됐지라고 생각한다. 왜 포르노그라피가 필요하냐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항상 포르노그라피가 존재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난 세상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거장들에 대한 재평가 임 정말 갱스터같이 말하지 않나. (웃음) 근데 예전 영화들 중에서도 다시 보면 평가가 달라지는 영화들도 있다. 포튼 고백하자면 난 더이상 에이젠슈테인의 영화를 보면서 많은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물론 그를 존중은 하지만, 죽어라 얘기하고, 쓰고, 그래선지 오데사 계단신을 보면 아무래도 지겹다. 이제는 그것도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렸으니까. 코스타 난 파졸리니에게 아무래도 위화감을 느낀다. 물론 그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의 시대와 사회에 반응하고 저항했던 사람이고, 영화에서도 그게 보이니까. 포튼 음… 이젠 고다르도 뭔가 좌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그의 영화에서도 열정도 줄어들고 코스타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나, 누벨바그는 정말 대단한 에너지가 있었는데….<사랑의 찬가>를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이 든다. 그는 세계의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진 감독인데…. 하지만 그는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않고 숏을 만든다. 난 이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풍부한 장면을 만들 줄 안다고 과시라도 하듯. 수백만의 사람들이 고다르에게, 누벨바그에 영향을 받았는데 아쉬운 일이다. 임 스탠리 큐브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큐브릭은 유난히 한국에서 존경받는 감독 중 하나다. 젊은 친구들이 큐브릭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을 때 솔직히 짜증이 난다. 코스타 큐브릭에 대해 얘기하겠다고? 퇴장할 시간이군. (웃음) 포튼 큐브릭의 초기 영화들은 좋다. 난 그를 만신전에 올려놓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내버리고 싶지도 않다. 기교의 거장이란 점에서는 존경할 만하다. 코스타 아무래도 나를 화나게 하려는 것 아닌가. 큐브릭이 기교의 거장이라니. 나라면 카메라 뒤에서 요술을 부린다고 해서 거장이라고 하진 않겠다. 새로운 광대 하나가 나타났다고 하지. 난 큐브릭에게 거장이란 표현을 쓰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그를 좋아한다면 상관없지만, 그는 분명 거장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보아도 타티가 훨씬 뛰어나고, 존 포드는 그에 비교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여주지만, 큐브릭은 마치 자신이 수백개의 시선을 갖고 있는 것처럼 꾸민다. 그들은 적어도 이렇게 찍는 게 더 멋있기 때문에 숏을 바꾸진 않는다. 큐브릭의 방식은 분명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다. 숏에서 속이기 시작하면 그건 영화가 아니다. 포튼 물론 큐브릭에게는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르누아르와 달리 스펙터클에 대한 집착 같은 게 분명히 있고…. 물론 큐브릭 영화의 정치학은 분명 다른 문제다. <시계태엽 장치 오렌지>는 파시스트적인 영화에 가까우니까. 코스타 그런 게 그의 아주 의심스러운 점이다. 는 좀 낫지만 내게, 큐브릭의 영화를 본 것, 특히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를 본 것은 아주 나쁜 경험이었다. 후진 디스코텍에 가서, 아주 사악한 사람들과 엉망진창인 밤을 보내는 것과 같은. 그의 영화에는 공간도 없다.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이나 무르나우는 거리를 찍으려고 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카메라를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건 그들이 세상을 보는 식이다. 여배우의 얼굴이 이쪽에서 찍으면 더 나아보이기 때문에 시선을 옮겨가진 않았다. 현재의 시네필, 무엇을 할 것인가? 임 내가 현재 시네필들에게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커뮤니티 내에서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이다. 오래 전에 고다르는,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힘이 있었다면, 그들이 항상 영화에 대해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의 영화가 안 좋은 게 더이상 사람들이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게 현재 시네필들의 주요한 양상인 것 같다. 포튼 음. 더이상 커뮤니티가 없다는 것…. 임 커뮤니티가 있다 해도 아주 적고, 나쁜 의미에서 익명성에 빠져 있다. 포튼 집에 틀어박혀 비디오를 보고,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들…. 확실히 요즘은 모든 게 아주 사적이다. 하지만 그래도 뉴욕에서 영화에 미친 소집단, 영화광들을 관찰하는 것은 매력적이다. MOMA에서 영화 한편을 보고, 링컨센터로 갔다가 필름아카이브로 옮겨다니며 영화를 보러 다니는 이들. 대부분은 보통 앞줄에 앉아서 거의 스크린에 이미지에 녹아들길 바라기라도 하는 듯 영화를 보고, 우체국 유니폼을 입은 채 퇴근하자마자 오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난 반대로 대부분 뒤편에 앉는다. 뭘 봤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영화를 봤냐, 서로의 리스트를 대조해보기 바쁜…. 그들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얘기하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다. 다른 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네필이라기보다는 ‘시네매니악’인 이들에게도 어떤 성실성은 있다. 임 그런 사람들에게도 옛 시네필들의 유산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포튼 아마도. 그들은 때로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해 놀랄 만한 지식을 갖고 있다. 저 촬영감독이 누군지, 에드가 울머나 윌리엄 K. 하워드가 감독한 전작 등등. 그런 점에서는 옛 시네필들과 비교할 만하다. 물론 직접 영화를 논하고 만든 옛 시네필들과는 다르지만. 임 현재 한국의 경우는 그런 커뮤니티 자체가 없다. 시네필이 아니라 일본애니메니션이나 홍콩 무술영화 마니아들처럼 한 장르나 감독에 집중하는 영화마니아들은 있지만. 이들은 물론 영화를 보는 방식에서나 얘기하는 방식에서 모두 기존 시네필들과 완전히 다르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격심해짐에 따라 고전적인 시네필이 더이상 존재할 지점이 없게 된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거창한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저 예전의 시네필이 가지고 있었던 취향의 완전무결함(integrity) 혹은 성실성을 어떻게 오늘날 살아남게 하는가 하는 정도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그나마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한다. 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정리 황혜림 blauex@hani.co.kr페드로 코스타(Pedro Costa) 마뇰 드 올리베이라에 이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포르투갈의 영화감독. 리스본의 영화학교 출신이지만, 시네마테크에서 할리우드의 고전영화들과 로베르 브레송의 작품들을 접하며 영화를 배웠다고 말한다. 80년대부터 단편영화 작업과 호앙 보텔로 등의 조감독을 거친 뒤, 89년에 <피>로 데뷔했다. 아버지의 빚을 떠안은 형제들의 이야기인 흑백영화 <피>부터 그의 카메라는 줄곧 빈곤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향해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된 세 번째 영화 <뼈>에서는 궁핍한 삶의 무게에 짓눌린 채 희망없이 살아가는 여자와 남자, 리스본의 슬럼가를 극도로 절제된 영상에 담았으며, 마약과 가난에 절어 살며 <뼈>에 출연했던 여성의 실제 생활을 좇는 최근작 <반다의 방>도 함께 소개됐다. 리처드 포튼(Richard Porton) 1967년 창간 이래 영화산업 및 학계와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영화의 예술과 정치를 다루는 전방위 잡지”를 표방해온 미국의 영화계간지 <시네아스트>의 편집위원. 80년대에 <시네아스트>에 합류했으며, 현재 편집장 개리 크라우더스 휘하에서 신시아 루시아와 함께 공동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빌리 와일더를 비롯한 할리우드 고전영화로 시작해 뉴욕의 시네마테크를 드나들며 고다르, 루이스 브뉘엘과 장 비고의 전복적인 상상력,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사회참여적인 다큐멘터리 등으로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이어왔다. 뉴욕대(NYU) 영화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뉴욕시립대(CUNY) 등 대학 강단에서도 활동해온 영화학자이자 언론인이다. 저서로는 내년에 국내에도 출간될 예정인 <영화와 아나키즘적 상상력>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양지와 그늘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7일 폐막됐다. 출범 이듬해에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란 평가가 나라 밖에서 들여온 이 영화제는 이제 ‘세계 최대의 아시아 영화제’라는 호칭조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부산은 우리들에겐 세계 영화의 오늘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외국의 영화전문가들에겐 아시아 영화의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독파할 자리를 제공하는 명실공히 ‘아시아 영화의 창’이 되었다. PPP를 통해서 아시아 주요감독들의 새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으니, ‘미래’란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 부산에서 한국영화가 모든 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우리가 뛰어난 가작을 적잖이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국제영화제인데 주최국을 너무 배려한 건 혹시 아닌지 염려됐다. 그러나 “눈에 띄는 건 한국영화뿐이었다”는 어느 심사위원의 심사 후일담을 전해듣고 노파심을 조금 덜어냈다. 어쨌든, 이 일은 관객들이 외면한 올해의 저예산 수작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을 성 싶다. 또하나, 부산이 한국영화를 밖으로 보여주는 창구노릇을 유효적절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겠다. 몇해째 정부는 예산지원은 올해로 그만이라는 절연선언을 거듭해왔는데, 이는 영상산업을 21세기 문화입국의 근간으로 삼겠다는 정책과 정면 충돌한다. 영화를 경제적 가치로 일괄치환하는 시선으로 보더라도(개인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지만) 영화제는 장기투자할 만한 부문이다. 누구도 예상못한 빠른 속도로 역할을 증명해버린 부산영화제 앞에서 정부가 그 지원의 의미를 반추하게 되리라 믿는다. 칸도, 베를린도, 베니스도 그 지원으로 영화제를 이어올 수 있었다. 김동호 위원장을 비롯한 부산의 구성원들이 제한된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해왔다는 점도 참조할 사항이다. 한국영화인들과 부산시민들이 부산영화제 지킴이 구실을 자청하고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올 부산에서 아름다운 일만 일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신상옥 감독이 북한 체류시절 만든 <탈출기>가 끝내 일반 관객 앞에 상영되지 못했다.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이라는 사직당국의 경고를 받고, 영화제 쪽은 고심끝에 언론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제한상영을 해야 했다. 마감을 하러 일찍 서울로 돌아오는 바람에 영화를 볼 수 없었는데, 최서해의 원작에 지극히 충실했다고 <한겨레> 문화부의 이상수 기자는 말했다. <탈출기>는 일제의 수탈에 시달리던 한 가장이 극빈의 원인을 제공한 일제와 맞서싸우기로 결심하게 된 경위를 밝히는 편지형식의 단편이다. 이 영화를 이적표현물이라고 판단한 이의 아군은 그렇다면 제국주의 일본인가, 라고 그는 반문했다. 근본적 질문을 접어두고나니 한 독일감독의 이름이 떠올랐다. 1946년 동독에서 최초의 ‘전후영화’를 만든 그는 10년 뒤 서독으로 이주했다. 서독은 동독에서 만든 감독의 영화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주 이듬해 <운터탄>이란 영화가 처음 상영됐다. 서독의 경제기적을 비판한 영화였고, 자막에서 이름을 빼기는 했지만, 서독에서 만든 그의 영화를 동독의 텔레비전이 방영하기도 했다. 볼프강 슈타우테, 베를린 영화제 영포럼 부문에선 84년 타계한 그의 이름으로 상을 준다. 동에서건, 서에서건 통일과 사회정의를 영화의 과제로 삼았던 그의 생애를 걸어. <탈출기> 부산 사건은 아직도 지배적인 우리의 냉전의식을 돌아보게 한다. 두 감독이 분단된 땅을 오간 경위가 비록 다를지라도.

[국내광고] 가짜 유명인 등장시킨 광고 두 편

제작연도 2001 광고주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제품명 스카이라이프 대행사 제일기획 제작사 KU프로덕션(감독 박대민) 제작연도 2001 광고주 삼성전자 제품명 센스큐 대행사 제일기획 제작사 쥬프로덕션(감독 서정완) 광고계에 ‘가짜’ 유명인이 판치고 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할리우드 스타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모차르트 등 물 건너온 이국의 스타가 국내 CF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 ‘별’ 가운데 고인(故人)도 있으니 광고의 실제 출연자는 진짜가 아님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무늬만 스타인 흉내내기 모델(이미테이션 모델, 혹은 임프레셔니스트(impressionist))다. 사례 하나. 퇴임한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하루를 그린 스카이라이프 광고다. 보디가드들을 거느린 채 근사한 저택에 들어선 클린턴. 집에 오니 막상 할 일이 없자 하품을 터뜨리는 그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텔레비전을 켠다. 그런데 TV 리모콘을 든 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클린턴이 위성방송을 선택하자 열심히 청소하던 가정부가 갑자기 프로골퍼로 변신하는 놀라운 광경을 만난다. 눈을 꿈쩍거리며 정신을 차리는 그가 또다른 위성방송으로 채널을 돌려본다. 이번엔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아가씨가 등장해 서핑보드 같은 스포츠레저용 상품을 광고하고 있다. 상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검색창이 화면에 나란히 떠 있음에도 그는 온통 미녀의 수영복 몸매를 감상하는 데만 정신을 팔려있다. 이때 뒤에서 한눈파는 남편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전 퍼스트레이디 힐러리가 날 선 목소리로 호통을 친다. 그러자 힐러리의 심기를 이해한다는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상어가 화면에서 튀어나와 클린턴을 향해 돌진한다. 실감나는 영상 퍼레이드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소파 뒤로 고꾸라지는 클린턴. 멋쩍은 얼굴로 ‘와, 대단한 접시야’라고 한마디를 던진다. 접시는 위성방송 안테나를 지칭하는 말. 즉 이 광고는 디지털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가 전직 대통령의 하루를 특별하게 바꿀 만큼 기존 방송보다 한 차원 높게 흥미진진한 영상세계를 선보이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례 둘. 삼성전자의 노트북 브랜드 센스큐(Q) 광고. 숀 코너리, 마이클 잭슨 등 이름난 해외스타를 시리즈로 내세워온 이 CF는 스타와의 만남 같은 현실에서 쉽게 가능하지 않은 특별한 이벤트를 노트북 센스큐의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통해 맛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방송을 타고 있는 광고에선 존 트래볼타와 우마 서먼이 ‘V자’ 모양의 손으로 눈가리고 트위스트 춤을 추는 영화 <펄프 픽션>의 한 장면으로 전속모델 김정화가 틈입하는 상황이 나온다. 김정화에게 파트너를 빼앗긴 가짜 우마 서먼이 김정화를 밀어내겠다고 몸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웃음을 자아낸다.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의 말투 등을 모사하는 ‘캐리커처’ 스타일의 코미디가 일상의 유머로도 일반화한 현재, 유명인을 닮은 그들의 광고계 습격은 아주 새로운 사건은 아닐지 모른다. 이미테이션 모델이 진짜를 그럴듯하게 가장하는 이들 광고는 유명인의 지명도와 특별함에 기대 극적인 재미를 추가하고 메시지의 파워를 높이겠다는 노림수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광고는 익숙한 히트작의 한 장면을 차용해 코믹하게 제품 메시지를 전달하는 패러디 CF보다 한술 더 뜬 노골적인 희화화의 재미를 함축하고 있다. 가짜를 통해 진짜에 근접하겠다는 립싱크 같은 효과나 참과 거짓의 혼란을 유도하는 ‘감쪽같은 속임수’가 아니라 명백히 가짜임을 드러내며 원전에 대한 익살스러운 변주를 함께 즐기자고 제안하는 ‘속보이는 거짓말’을 구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귄위주의의 상징인 대통령을 바람둥이 기질이 다분한 웃기는 중년남성으로 표현한 스카이라이프 CF는 주목할 만하다. 대통령이라고 특출나게 근엄할 필요는 없겠지만 무게를 벗어던진 채 호들갑을 떠는 클린턴의 모습은 거칠 것 없는 유머의 지평을 보여주며 유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진짜 클린턴이 재임 시절 성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짜 클린턴이 미녀에게 넋을 빼는 모습은 그럴듯한 설정이었다. 가짜 유명인을 앞세운 광고는 정색하면서 진실되게 브랜드의 가치를 설파하고 자랑하는 직접적인 방식과 거리를 두고 있다. 광고도 어차피 허구와 연출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가짜의 ‘쇼’를 질펀하게 펼쳐놓으며 전달하고 싶은 얘기를 간적접으로 밀어넣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들 CF의 전략은 등을 느슨하게 기댄 채 거리를 두고 가볍게 즐기기에 적합한 것인지 모르겠다. 판단의 몫을 시청자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주입식 보다는 부담스럽지 않은 장점도 있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

듀나의 비교론 반지의 제왕 vs 해리 포터

드디어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반지의 제왕>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같은 주에 개봉되는 영화들은 아니지만 이 두 시리즈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 대상이 된다. 둘 다 모두 경악스러울 정도로 성공적인 환상문학 작품이 원작이라는 것, 둘 다 시리즈물이며 앞으로 한동안 일년에 한편꼴로 개봉되어 계속 경쟁상대가 될 것이라는 것, 둘 다 원작의 명성이 불러들인 참견꾼들로 가득하다는 것….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표면상의 유사점일 뿐이다. 겉으로 드러난 숫자와 레벨들을 모두 떼어낸다면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을 1대1로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 도대체 환상물의 시리즈라는 이유만으로 이 두 작품을 직접 비교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둘 사이에 무언가 더 있는 것일까? <반지의 제왕>, 장르팬들의 집단의식적 이미지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의 장르는 무엇일까? 가장 손쉬운 답변은 ‘둘 다 환상문학(또는 영화)이다’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이의도 제기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에는 호빗 같은 종족들은 살고 있지 않으며 마법사 아이들을 교육하는 호그와트와 같은 학교는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작가의 머리 속에서 나온 환상이다. 그러나 쉬운 답변이 대부분 그렇듯 이 답변도 그렇게까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여기서부터 답변을 조금 세분화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일단 단어 정리가 필요하다. 우선 종종 오용되는 ‘환상문학’과 ‘판타지문학’ 문제부터 처리하자. 번역처리하면 동의어가 되어버리는 이 두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따로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 ‘환상문학’은 말 그래도 환상적인 설정을 다루는 모든 문학작품을 총칭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판타지문학’이라고 불리는 장르는 영어권에서 ‘칼과 마법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장르이다. ‘판타지문학’을 ‘환상문학’에서 분리시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얄팍한 이야깃거리 정도로 정의하려는 시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먼저 밝혀야겠다. 늘 하는 말이지만 장르는 작품의 질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칼과 마법사’ 장르를 정의하는 것은 작품의 질이 아니라 규격화된 설정이다. <반지의 제왕>은 쉽게 ‘칼과 마법사’ 장르 안에 안착된다. 문제는 톨킨이 이 작품을 ‘장르물’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가 <모르그 거리의 살인>을 추리소설로 쓰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톨킨이 쓴 <호빗>과 <반지의 제왕>은 장르의 시조이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위해 창조한 세계는 그뒤로 끝도 없이 모방되고 변형되어 장르를 형성하게 된다. ‘칼과 마법사’ 장르가 당연하다는 듯 ‘판타지’로 총칭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직까지 ‘환상문학’의 세계에서 이처럼 성공적으로 장르화가 성공한 예는 없었다. 톨킨이 ‘칼과 마법사’ 장르 팬들에게 그처럼 열정적인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 때문이다. 톨킨 애호는 일종의 조상숭배다. 여기서 영화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난다. 장르 애호가들은 개별 작품을 장르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다. 그리고 그 렌즈는 장르 탄생부터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변형되어 고정된 것이다. 하지만 톨킨은 장르물을 쓰지 않았다. 그렇다면 장르 애호가의 고정된 시선은 톨킨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오히려 억제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만약 그 장르 애호가가 숭배하는 소설을 시각적인 매체인 영화로 각색하려는 감독이나 작가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세세한 질문에 답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다음 구체적인 문제점을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컴퓨터 게임이나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의 이미지에 물든 피터 잭슨 버전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장면들은 비교적 ‘칼과 마법사’ 장르가 덜 고정된 시기에 발표된 랠프 박시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장면들과 상당히 다르다. 그렇다면 그건 잭슨 개인의 개성일까? 아니면 21세기 장르 애호가의 시선이 고정된 결과일까? 만약 톨킨 팬들이 잭슨의 비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 과연 그것이 긍정적이기만 한 걸까? 롤링의, 롤링에 의한 <해리 포터…> <해리 포터…>는 톨킨의 대척점에 서 있다. <해리 포터…>는 철저한 장르물이다. 장르의 기초를 다졌던 톨킨과는 달리 J. K. 롤링은 <해리 포터…>를 처음부터 기성품으로 만들었다. 단지 <해리 포터…>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면 롤링이 기존의 장르 안에 얌전히 포섭되는 대신 몇몇 독립된 장르를 가져와 한데 묶었다는 데 있다. 적어도 <해리 포터…>에는 다음과 같은 장르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기숙학교물, 어린이 추리소설, 빅토리아 시대풍 멜로드라마, 영국식 판타지, 호레이쇼 앨저식 성공담, 기타등등 기타등등… <해리 포터…>가 ‘아동문학’이라는 사실은 종종 이상할 정도로 무시되고 있다. <해리 포터…>를 진지하게 비평하려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아동문학이라는 스티그마타를 뜯어내 이 작품을 ‘진지한 작품’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젖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해리 포터…>가 아동문학이며 환상문학이라는 사실은 아주 중요하다. 아동문학만큼이나 환상문학을 장르화시키고 지속적으로 보존한 장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트래버스의 <메리 포핀스> 시리즈, 캐롤의 <앨리스> 시리즈, 어슐러 르 귄의 <어스시> 시리즈,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보라. 심지어 톨킨의 장대한 세계도 <호빗>이라는 아동문학 작품에서 시작했다. 이런 작품들이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에 끼친 영향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해리 포터…>의 창의성은 잘못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우린 <해리 포터…>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구체적인 선례들을 쉽게 끄집어낼 수 있다. 특히 질 머피의 <워스트 위치> 시리즈는 중요하다. 롤링은 마녀 기숙학교를 다룬 이 시리즈에서 호그와트의 기본 아이디어를 거의 그대로 끌어오고 있다. 80년대 중반에 텔레비전 영화로 제작되었고 최근 들어 미니시리즈로 제작된 이 작품의 각색 버전과 <해리 포터…>를 비교하는 것은 여러모로 유익하다. <해리 포터…>를 평가하면서 ‘칼과 마법사’ 물과 ‘마법학교 이야기’를 비교하는 것은 두 장르를 비교하는 것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평가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서툰 꼬마 마녀 밀드레드와 이마에 벼락 마크가 있는 운명의 영웅 해리 포터의 비교를 통해 얻어진다. <해리 포터…>의 영화화를 간섭하는 사람이 <반지의 제왕>의 간섭자들과 정반대인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반지의 제왕>은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작품이 형성하고 다져놓은 장르와 장르 팬들의 소유가 되었다. <반지의 제왕> 영화화는 한 작가의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년 동안 조금씩 발전한 한 장르에 대한 집단의식적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다. 하지만 아직 장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적 없는 <해리 포터…>는 아직 이미 존재하는 조각들을 모아 재편성한 작가의 입김이 더 셀 수밖에 없다. J. K. 롤링이 엄격하게 영화의 충실도를 검사했던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해리 포터…>의 개성은 기존 조각들을 조립한 방식에 숨어 있으므로 영화감독의 자유를 허용한다면 결국 롤링을 떠난 전혀 다른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좋은 장르 영화대신 ‘J. K. 롤링’ 원작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작품을 소유한 작가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작자와 팬들 사이에서 감독의 균형잡기 팬의 소유인가, 작가의 소유인가라는 차이는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라는 두 시리즈를 갈라놓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반지의 제왕>과 피터 잭슨쪽이 유리하다. 우선 아무리 수십년 동안 고정된 이미지라고 해도 미들어스의 이미지는 여전히 표현 폭이 넓다. 결국 톨킨이 창조한 것은 이야기라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이다. 세상은 이야기보다 몸을 펼 구석이 넓기 마련이다. 피터 잭슨이 만든 미들어스는 분명 몇몇 관객의 맘에 들지 않겠지만, 그건 힐데브란트 형제가 그린 미들어스의 그림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들의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피터 잭슨의 버전은 여전히 인정받을 수 있다. 그건 결국 자잘한 취향의 문제이다. 캐스팅 역시 마찬가지이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리브 타일러의 기용이 팬들의 분노를 일으켰는데, 일단 영화를 보면 리브 타일러도 꽤 괜찮다. 타일러의 엘프어 발음이 얼마나 좋은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여기서도 관객이 타협해야 할 것은 배우가 가진 기존 선입견이지 신성 모독 따위는 아니다. 사실 잭슨은 톨킨의 세계를 재창조하기 위해 열성팬들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도 없다. 이미 그 역시 수십년 동안 삭은 톨킨 팬이므로, 그가 창조하는 이미지는 어쩔 수 없이 일반 톨킨 팬들이 맘속에 품고 있는 이미지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결과는 상당히 ‘주류적’이어서, <데드 얼라이브>의 감독에서 느낄 수 있는 팽팽한 개성은 느끼기 힘들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감독이 자신의 개성을 일부러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이 가진 비전을 구현하는 것이다. 잭슨은 그럴 수 있는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다. 결과가 비교적 덜 개인적이라고 해도 그는 여전히 자유로운 예술가다. 하지만 <해리 포터…>의 영화화에는 그런 자유로움이 없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J. K. 롤링은 영화의 모든 면에 사사건건 간섭했다. 이런 간섭이 나쁘다고 만은 하지 않겠다. 크리스 콜럼버스의 <해리 포터…>가 지금만큼 유쾌한 판타지영화로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롤링의 간섭 때문이다. 거의 그대로 사용된 롤링의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진진했고 영국인 배우들만을 기용하라는 것과 같은 고집스러운 요구의 결과도 상당히 긍정적이었던 것이다. 사실 롤링의 야무지고 종종 냉정하기까지 한 유머는 할리우드식 가족영화와는 쉽게 융화되지 않는 것이어서 롤링이 사사건건 참견한 것도 이해가 가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간섭은 영화 자체의 힘을 어느 정도 빼놓고 만다. <해리 포터…> 원작의 진짜 매력은 찰스 디킨스가 썼을 법한 노골적인 멜로드라마에 영국식 메마른 위트를 뒤섞는 특유의 수법에 있었다. 영화는 줄거리나 대사 상당수를 그대로 가져왔고 할리우드식 감상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 냉정한 위트는 놓치고 만다. 위트와 유머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그냥 원작의 스토리만 가져와서는 잡아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을 메트로놈에 맞추어 연주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연주자, 이 경우는 최종 각색자와 연출자의 재량이 마음껏 발휘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최종 각색자와 연출자가 서슬이 퍼런 원작자의 감시 아래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자기 해석을 넣은 여유가 줄어들고 영화는 어느 정도 김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해리 포터…>는 훌륭한 어린이영화지만 최상의 각색은 아니다. 영화가 날아가기 위해서는 소유자가 어느 정도 굴레를 풀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J. K. 롤링에게 그런 여유를 바라는 건 지금으로서는 무리인 것 같다. 장기전의 개막, 누가 판타지의 절대강자가 될것인가? <반지의 제왕>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미 우리는 원작의 내용을 다 알고 있고, 잭슨이 삼부작의 세 작품을 하나의 영화로 취급하며 촬영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잭슨이 1편의 수준만 유지한다면 <반지의 제왕> 삼부작은 흥미로운 수작으로 남을 것이다. 문제는 연결되는 스토리의 장편영화를 상업적으로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과연 열린 결말로 끝나는 엄청 긴 장편 액션영화에 관객이 제대로 호응해줄 것이가에 따라 영화사의 운명이 결정되니까. 하지만 이건 영화사 사람들이 머리를 굴려야 할 부분이지 우리 같은 관객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장기 예측이 쉽고 단기 예측이 어려운 <반지의 제왕>과는 달리 <해리 포터> 시리즈는 단기 예측이 쉽고 장기 예측이 어렵다. 1편이 대단한 흥행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아마 2, 3편까지도 마찬가지 호응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아직도 미완성이다. 과연 롤링이 남은 세편도 같은 수준으로 유지시켜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배우들이 7년 동안 성장하면서 그만큼 성장을 보여줄지도 우리는 모른다. 관객이 거의 10년이 넘어가는 요란한 마케팅과 하이프를 견뎌낼 수 있을지도 우리는 모른다(이 점은 <반지의 제왕>이 유리하다. 유보되는 결말이 계속 우리를 기다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걸 다 고려한다고 해도 <해리 포터> 시리즈의 앞길은 <반지의 제왕>보다 훨씬 험난하다. 대부분이 영화 자체보다는 영화사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3년 동안 우리는 이 두 작품이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며 경쟁하는 것을 봐야 할 것이다. 그동안 두 영화를 비교하는 소리들도 끝도 없이 들어야 할 것이다. <반지의 제왕> 마케팅부에서는 이미 <해리 포터…>를 겨냥한 끝도 없는 홍보 문구를 뿌려대고 있다. 다음해에는 아마 <해리 포터…>가 비슷한 방법으로 반격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그런 비교에 말려들어야 할까? 지금까지 쓸데없이 긴 문장을 낭비해가며 두 작품들의 차이점을 비교해봤지만, 둘은 결코 이런 식으로 묶여 다루어져야 할 작품들이 아니다. 두 영화(또는 소설)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감상되고 비판받아야 할 자격이 있다. 영화사나 홍보사가 둘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엮으려고 해도 그걸 무시하는 게 우리 같은 관객에게는 이득이 된다. 듀나 www.djuna.org▶ 듀나의 비교론 반지의 제왕 vs 해리 포터 ▶ <반지의 제왕>의 지난날, <해리 포터...>의 앞날

올해 눈에 띄는 `조연들`

올해의 스크린을 편안하게 만들어준 `빛나는` 조연으로는 기주봉, 공효진 외에 이원종, 유해진, 김수로, 송옥숙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주유소 습격사건>의 자장면 배달부, <반칙왕>의 프로레슬러, <달마야 놀자>의 조폭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김수로는 <화산고>에서 장혁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해 이젠 `조연 전문'이라는 딱지가 어울리지 않는 경우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형사, <반칙왕>에서 박상면의 연습게임 상대 레슬러로 얼굴이 익은 이원종은 <신라의 달밤>에서 영준(이성재)의 조직에 당한 뒤 치사한 복수를 꾀하는 경주 토착 조직의 보수 마천수로 나온다. 천연덕스런 사투리와 뻔뻔한 표정으로 이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은 그는 <달마야 놀자>에서 스님으로 둔갑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97년 극단 목화의 연극배우로 입문한 유해진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용가리, <무사>에서 도끼를 잘 쓰는 도충으로 나왔으며, <신라의 달밤>에서는 두 조직을 한 번씩 배신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질박한' 외모가 배역의 특징을 저절로 드러내는 그는 새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에서 억울한 용의자로 몰리는 용만으로 등장한다. 여자 조연 가운데는 단연 <라이방>의 송옥숙이 꼽힌다. 탤런트 출신인 송옥숙은 <낙지 먹는 여자> 등 텔레비전 베스트 극장에서 친숙한 연기자다. <학생부군신위> <개 같은 날의 오후> <아름다운 시절> 등 이미 숱한 영화에 출연해 주로 억척스럽거나 강인한 30∼40대 여성의 모습을 연기해온 송옥숙은 <라이방>에선 구멍가게 주인이면서 유한마담인 척 택시기사를 유혹하는, 바람기와 아둔함이 섞인 아줌마역을 능숙하게 소화해냈다. 조연들의 연기가 눈에 띈다는 건 작품을 빚는 손맵시가 좋아졌다는 뜻이다. 올해는 조연 배우들의 폭이 한층 더 넓어진 한해라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엑소시스트> 감독·작가, 저작권 소송 제기

<엑소시스트>(1973)의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과 시나리오 작가 윌리엄 피터 블래티가 워너브러더스사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했다.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에 제출한 고소장에서 이들은, <엑소시스트 2000>이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프리드킨에게 주기로 워너브러더스사와 프리드킨이 맺은 구두계약을 워너쪽이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5월, 프리드킨과 블래티는 <엑소시스트 2000>의 텔레비전 라이선스 문제로 이미 한 차례 워너브러더스사를 고소한 바 있다. 워너쪽이 와는 너무 낮은 액수로, 자회사인 터너 브로드캐스팅과는 무상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게 문제였다. 그 고소에 대한 보복으로 예의 수익분배 구두계약을 워너가 파기했다는 게 프리드킨쪽의 주장. 이들은 나아가 워너브러더스사가 가진 <엑소시스트> 새 버전에 관한 모든 권한을 말소할 것까지 요구하고 있다.

<내일을 향해 쏴라> <아메리칸 뷰티>의 콘래드 홀

한편의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건 사각의 스크린에서 훌훌 벗어나 관객의 마음에 무한히 각인되는 영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969년 당시 서부영화 흥행사상 최고 수입인 2900만달러라는 기록(이 기록은 21년 뒤인 <늑대와 춤을>이 갱신하기까지 이어졌다)을 세우며 순식간에 주연인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퍼드를 할리우드의 영웅으로 등극시키는 위력을 발휘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의 한 장면 또한 예외일 수 없다. B. J. 토머스의 감미로운 가 흐르는 가운데 폴 뉴먼과 캐서린 로스가 함께 자전거를 타는 서정적인 영상은 지난 시절의 영화를 오늘에 되살리는 묘약으로 기능한다. 뉴스영화를 연상시키는 세피아톤의 화면 안에서 미국 중서부 시대는 완벽히 재창조되었으며, 확 트인 조망과 어우러진 정확한 초점은 두 무법자의 황폐한 삶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작은 기술의 변화로 이야기를 한층 강화시키는 촬영감독 콘래드 홀의 움직임은 마지막 순간 탄환 속으로 질주하는 두 주인공의 죽음에 이르러 예의 주시를 멈추고 고정됨으로써 영화를 하나의 전설로 끌어올리기에 이른다. 안정감 있는 촬영으로 인물의 심리를 포착해내는 데 주력해온 콘래드 홀은 1956년 촬영을 시작한 이래 50여년을 카메라와 함께한 촬영계의 달인이다. 1926년 타히티 태생인 홀은 작가인 아버지 제임스 노먼 홀의 영향으로 예술적인 분위기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이후 남캘리포니아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형편없는 실력으로 전공에는 통 흥미를 갖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부터이다. 단순한 흥미에서 시작되었다지만 영화로 전공을 바꾸면서 동료들과 함께 실험영화를 찍었으며, 미국촬영가협회에서 최초로 촬영 장학금을 받는 실력을 발휘한다. 졸업 뒤, 동료들과 독립영화 작업을 하던 홀은 TV시리즈 로 촬영감독에 데뷔하였으며, <엣지 오브 퓨리>(1958), <인큐버스>(1965)와 같은 저예산영화를 작업하면서 촬영감독으로 자산이 될 실력을 갖추어나간다. 처음 촬영한 극영화 <와일드 씨드>(1965) 이후 <모리터리>(1965)와 (1966), <인 콜드 블러드>(1967)로 연속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면서 빠르게 할리우드의 주류 촬영감독으로 인정받은 홀은 한때, 10년간의 공백기를 갖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하스켈 웩슬러와 광고회사를 경영하였으며,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하려는 바람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실제 그는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각색하기도 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추어보면 73살의 나이에 촬영한 <아메리칸 뷰티>가 번쩍 눈에 띤다. <내일을 향해 쏴라>에 이은 두 번째 오스카상 수상작인 이 작품의 성공은, 1994년에 이미 그가 경력이 황혼에 접어든 베테랑 촬영감독에게 주어진다는 미국촬영가협회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하였다는 사실에 비추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들지 않는 촬영에 대한 열의와 연륜으로 이루어진 노장의 렌즈는 이 영화로 감독에 데뷔하는 신참 샘 멘데스를 뒷받침해줄 훌륭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좋은 작품이라는 판단이 있었기에 보수는 개의치 않았으며, <위대한 승부>에서 스티브 자일리언 감독과 함께했던 것처럼 첫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과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에게 주위의 평판이나 성공에 대한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새로움을 향한 도전이다. 그간 여러 편의 영화에서 섬세한 어둠의 이미지를 포착해낸 홀의 시선은 이 한편의 영화를 그려내는 데 집약된다. 미국 중산층을 관통하는 어둡고 그늘진 이미지는 내부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심리상태와 대비되어 긴장을 고조시켜주며 재조명되었다. 자신 앞에 펼쳐진 빈 백지를 채워나가는 심정으로 홀은 기술을 손끝에 담아 스크린에 차곡차곡 영상화시켜나간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촬영 또한 감정을 담아내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의미에서의 기술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바로 ‘어떻게’가 아닌 ‘왜’ 이 장면을 찍는지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칠 줄 모르는 저력을 가진 촬영감독으로 홀은 이렇게 충고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면모를 그 시대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단지 기술적인 면에서뿐만이 아니라, 좀더 명석하고 훌륭한 인격을 쌓아야 한다는 의미에서이다. 이것이 작품을 꾸준히 살아 있게 만드는 비결이다.” 이화정/ 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Conrad Hall 필모그래피 <더 로드 투 퍼디션>(The Road to Perdition, 2001) 샘 멘데스 감독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 1999) 샘 멘데스 감독 <시빌 액션>(A Civil Action, 1998) 스티븐 자일리언 감독 <톰 크루즈의 위다웃 리밋>(Without Limits, 1998) 로버트 타운 감독 <러브 어페어>(Love Affair, 1994) 글렌 고든 캐런 감독 <위대한 승부>(Searching for Bobby Fischer, 1993) 스티븐 자일리언 감독 <제니퍼 연쇄 살인 사건>(Jennifer Eight, 1992) 브루스 로빈슨 감독 <집단 소송>(Class Action, 1991) 마이클 앱티드 감독 <불타는 태양>(Tequila Sunrise, 1988) 로버트 타운 감독 <블랙 위도우>(Black Widow, 1986) 밥 라펠슨 감독 <마라톤 맨>(Marathon Man, 1976) 존 슐레진저 감독 <스마일>(Smile, 1975) 마이클 리치 감독 <부서진 세월>(The Day of the Locust, 1975) 존 슐레진저 감독 <캣치 마이 소울>(Catch My Soul, 1974) 패트릭 맥구한 감독 <일렉트라 글라이드 인 블루>(Electra Glide in Blue, 1973) 제임스 윌리엄 구에르치오 감독 <팻 시티>(Fat City, 1972) 죤 휴스톤 감독 <해피엔딩>(The Happy Ending, 1969) 리처드 브룩 감독 <트릴로지>(Trilogy, 1969) 프랭크 페리 감독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조지 로이 힐 감독 <헬 인 더 퍼시픽>(Hell in the Pacific, 1968) 존 부어맨 감독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 1967) 리차드 브룩스 감독 <폭력 탈옥>(Cool Hand Luke, 1967) 스튜어트 로젠버그 감독 (The Professionals, 1966) 리처드 브룩스 감독 <하퍼>(Harper, 1966) 잭 스마트 감독 <인큐버스>(Incubus, 1965) 레슬리 스티벤스 감독 <모리터리>(Morituri, 1965) 베른하드 위키 감독 <와일드 씨드>(Wild Seed, 1965) 브라이언 휴톤 감독 <더 아웃터 리미트>(The Outer Limits, 1963) 레온 벤손 감독 외 <엣지 오브 퓨리>(Edge of Fury, 1958) 로버트 거니 주니어 감독 외

[케이블 영화] 엑스맨

X-Men 2000년 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안나 파킨 1월1일(화) 밤 10시 영화 <엑스맨>의 재미는 묘한 곳으로부터 나온다. 초능력을 지닌 인물들은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을까. 그들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예로부터 <슈퍼맨> 등 슈퍼히어로를 등장시킨 만화와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소홀한 감이 있었다. 초능력을 지닌 자들은 신비로운 출생과정을 거쳤으며 아무 고민없이 인류를 돕고, 막강한 괴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묘사되곤 했던 거다. 그런데 <엑스맨>은 다르다. 영화 속 초능력자는 이른바 ‘돌연변이’로 분류되어 세인들로부터 멸시당하곤 한다. 혹자는 그들을 격리시켜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까지 일삼고,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취급한다. <엑스맨>은 블록버스터이지만 원작만화가 갖는 장점을 충분하게 스크린에 살려낸다. 캐릭터들이 갖는 콤플렉스와 자괴감, 그리고 정상적 인간에 갖는 거리감을 놀랄 만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유전자 기술의 거듭된 발전으로 돌연변이 엑스맨이 생겨나자, 상원의원 로버트 켈리를 중심으로 한 무리는 위험성을 주장하며 그들을 격리수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 돌연변이들을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이용하고자 하는 찰스 박사, 인간들을 응징하려는 매그니토는 서로 대립한다. 매그니토는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을 지닌 로그를 납치하려 들지만, 로그는 엑스맨들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난다. 스톰, 사이클롭, 염동력과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닥터 진 등 엑스맨 무리에 기억을 잃어버린 전사 울버린이 합세하고 매그니토에 맞선다. <엑스맨>의 감독 브라이언 싱어는 <유주얼 서스펜트>와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등의 전작으로 주목받았던 연출자. 선댄스영화제에서 이름을 알린 브라이언 싱어는 스릴러와 미스터리 등 특정한 장르물에 소질을 보이는 편이다. <엑스맨>은 여느 대작영화에 비해 스펙터클이 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엑스맨을 전혀 ‘황당하지’ 않은 존재로 묘사한 점은 이채롭다. 마치 현실 속 인물처럼 세심하게 캐릭터를 빚어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