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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케이블 영화] 엑스맨

X-Men 2000년 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안나 파킨 1월1일(화) 밤 10시 영화 <엑스맨>의 재미는 묘한 곳으로부터 나온다. 초능력을 지닌 인물들은 어떤 과거를 지니고 있을까. 그들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예로부터 <슈퍼맨> 등 슈퍼히어로를 등장시킨 만화와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소홀한 감이 있었다. 초능력을 지닌 자들은 신비로운 출생과정을 거쳤으며 아무 고민없이 인류를 돕고, 막강한 괴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묘사되곤 했던 거다. 그런데 <엑스맨>은 다르다. 영화 속 초능력자는 이른바 ‘돌연변이’로 분류되어 세인들로부터 멸시당하곤 한다. 혹자는 그들을 격리시켜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까지 일삼고,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취급한다. <엑스맨>은 블록버스터이지만 원작만화가 갖는 장점을 충분하게 스크린에 살려낸다. 캐릭터들이 갖는 콤플렉스와 자괴감, 그리고 정상적 인간에 갖는 거리감을 놀랄 만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유전자 기술의 거듭된 발전으로 돌연변이 엑스맨이 생겨나자, 상원의원 로버트 켈리를 중심으로 한 무리는 위험성을 주장하며 그들을 격리수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 돌연변이들을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이용하고자 하는 찰스 박사, 인간들을 응징하려는 매그니토는 서로 대립한다. 매그니토는 다른 사람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을 지닌 로그를 납치하려 들지만, 로그는 엑스맨들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난다. 스톰, 사이클롭, 염동력과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닥터 진 등 엑스맨 무리에 기억을 잃어버린 전사 울버린이 합세하고 매그니토에 맞선다. <엑스맨>의 감독 브라이언 싱어는 <유주얼 서스펜트>와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등의 전작으로 주목받았던 연출자. 선댄스영화제에서 이름을 알린 브라이언 싱어는 스릴러와 미스터리 등 특정한 장르물에 소질을 보이는 편이다. <엑스맨>은 여느 대작영화에 비해 스펙터클이 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엑스맨을 전혀 ‘황당하지’ 않은 존재로 묘사한 점은 이채롭다. 마치 현실 속 인물처럼 세심하게 캐릭터를 빚어낸 것.

쾌락주의자 김영하와의 잡담, 농담, 진담 (1)

1999년 <당신의 나무>란 소설을 읽은 다음부터 필자는 자주 어둡고 흐린 하늘 아래, 거대한 나무와 뒤엉킨 채 서서히 퇴락해가는 앙코르와트의 사원을 상상했다. 그 소설에서 “거대한 석조 불상의 틈새에 뿌리를 밀어넣어 수백년간 서서히 바수어온 나무”를 본 다음이었다. 이 나무는 사원을 허물어뜨리는 동시에 지탱해왔다고 했다. 이 나무가 아니었다면 부서지기 쉬운 돌로 된 사원은 진작에 흙이 되었을 거라고, 나무와 사원은 이렇게 서로 얽혀 900년을 버티어왔다고도 했다. 그뒤 대체 어떤 극중인물이, 왜 그곳에 갔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이상하게도 그 나무만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비장한 이미지로 고정돼,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 글은 이미지로 남았다. 이 나무의 주선으로 소설가 김영하(33)를 만났다. 흔히 얘기되듯 그는 확실히 우리 문학에 없는 이야기를 풀어냈고, 무엇보다 그의 소설은 읽는 재미가 유별났다. 그리고 그는 올 초 <씨네21>에 ‘이창’이라는 이름의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칼럼은, 소설처럼 기존의 칼럼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감수성을 보여줬다. 그는 자기 주위에서 잡다하고 사소한 일들을 끄집어냈다. 말 그대로 신변잡기(身邊雜記)다. 이건 절대 폄하가 아니다. 이걸 폄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대 담론이나 도덕적 엄숙주의에 너무 깊이 물들어 있는 자일 거다. 그는 우리 사회를 순식간에 병리적 공황상태로 몰아가는 사건들에 대해 얘기하는 대신, 경쾌하게 일상을 가로지르며 미세한 균열들에 확대경을 들이댔다. 그런 그의 칼럼은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나만이 아니라 <씨네21>을 만드는 사람들, 독자들도 그러했을 터이다. 한데 그가 기고 종료를 선언했다. 마지막 칼럼에서 그는 ‘짤렸다’라고 눙쳤지만, 사실 가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어쨌든 그가 <씨네21>을 짜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불러내 그 이유를 따져보기로 했다. 아니, 실은 그라는 사람이 많이 궁금했다. 나는 뽀다구나는게 싫다 왜 이창을 그만 쓰나. 이창 쓴 지 1년 됐는데 이젠 호흡이 긴 글을 쓰고 싶다. 칼럼은 호홉이 짧은데다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건 소설가랑 잘 안 맞는다. 소설은 애미함을 승인한다. 하지만 칼럼은 분명한 태도에서 감동이 온다. 그래서 칼럼은 문학적이지 않다. 재미있는 경험이었으나 오래 쓸 글은 아니었다. 진짜 신변잡기를 썼다. 18세기에 이덕무나 박제가 같은 한학자들이 신변잡기를 썼다. 이덕무의 <첨언소품>을 보면 책 읽다 향(香)자만 갉아먹은 책벌레를 잡아서 정말 그 벌레에게 향기가 나는지 봐야겠다는 얘기가 있다. 이들의 신변잡기 당대로서는 혁명이었다. 공맹, 군신관계, 사대부의 도덕을 논하던 시기에 그들의 신변잡기는 반역과도 같았다. 이덕무는 존재를 걸고 그런 하찮은 글을 썼던 거다. 그게 우리의 90년대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난 사소한 것의 정치학을 말하고 싶었다. 난 큰 이야기가 싫다. 왜 작은 것에서 우주를 본다고 하지 않나. 그러고 싶다. 주변에 대한 관심은 타고난 기질인가. 그렇다. 거창하고 대단하고 ‘뽀다구’나는 게 싫다. 그런 기질 때문에 갈등을 빚은 적은 없나. 많다. 난 여성적이다. 남자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 정치, 축구, 도박을 싫어한다. 축구를 싫어하는 남자, 처음 봤다. 축구가 굉장히 남성적인 서사다. 11명의 남자들 두팀을 이뤄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국 한쪽 이기고 한쪽은 지고. 난 여자들 옷 사는데 따라다니길 좋아한다. 아내가 옷 사러 갈 때 몇 시간씩 돌아다녀도 즐겁다. 아내는 그런 내가 여자친구 같단다. 여자친구들은 내가 남자라는 걸 깜박할 때가 있다고들 한다. 난 남자가 많은 곳에 가면 불편하다. 여자들이 관계지향적인 데 반해 남자들은 지배를 원한다. 서열을 정하지 않으면 30분도 그냥 앉아 있지 못한다. 만난 지 30분 만에 선배라고 ‘영하야, 말 놔도 되지’, 이러는 거 너무 싫다. 한국 남성들은 그런 심성을 억압하도록 교육받지 않나. 성장기에는 상처 많이 받았겠다. 그랬다. 운동권 안에서도. 남성적으로 산다는 건 한마디로 정치적으로 산다는 거다. 그건 너무 피곤하다. 90년대 이후 최소한의 사람들과 최소한의 관계만 맺고 산다. 정치활동도 안 하고 아무것도 조직하지 않고 어디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문단에서도 신경숙, 은희경, 배수아 같은 여성작가들과 더 친하다. “로맨스는 최고의 판타지” 김영하는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발표하면서 신세대 작가군의 대표주자로 주목받았다. 이 소설에서 그는 역사, 시대, 민족을 밀어내고 판타지를 두껍게 껴입은 현실을 빌려 죽음, 섹스, 에로티시즘을 이야기했다. ‘이미지 중심의 서사’ 또한 주목받았다. 기존의 한국문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감수성의 출현이었다. 그뒤 최근작 <아랑은 왜>까지 그의 소설의 큰 줄기는 꺾이거나 변하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백지연은 그를 두고 “김영하는 영상 문화의 프리즘을 통해 현대적 일상성의 세계를 묘파한 소설들로 주목받는 젊은 작가이며, 이미지로 포착되는 일상 문화의 양상을 김영하만큼 감각적이고 매끄러운 서술기법으로 풀어내는 작가는 드물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산문집 <굴비낚시>도 펴냈다. 영화평과 에세이, 일기에 ‘애미하게’ 걸쳐 있는 그의 글을 그는 “자조적으로” 생선도 가공식품도 아닌 굴비에, 자신의 글쓰기를 굴비낚시에 비유했다. 개중에는 영화의 안으로 깊이 들어간 글도 있지만, 영화를 사유의 장으로 들어가는 문이나 삶을 뒤돌아보는 거울로 삼는 경우가 더 많다. 서문에서 밝힌 대로 “무중력에 상태에 비견될 만한 무억압 상태에서” 그는 자유롭게 상상한다. 신창원 검거 사건에서 <쇼생크 탈출>를 떠올리고, <부기 나이트>를 보고선 “텔레토비와 포르노는 한 배에서 나온 이란성 쌍생아”라는 다소 엉뚱한 결론에 이른다. 이러한 그의 행보 때문에 제작자들은 시나리오를 맡길 소설가로 제일 먼저 그를 떠올렸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그는 <컷 런스 딥>의 이재한 감독과 함께 <개와 늑대의 시간>의 시나리오를 썼다. 시나리오는 어떻게 돼가나. 거의 끝나간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다. 한-미관계를 배면에 깐 정치적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다. 좀더 좁혀 말하면 탐정 누아르에 가깝겠다. 인간의 죄의식, 무기력, 사랑의 파멸적 속성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쓰기는 혼자 하는 작업이라 외롭고 고독한데, 이번 시나리오 작업은 공동창작이라 즐거웠다. 평론가들은 ‘이미지 중심의 서사’를 당신 소설의 핵으로 꼽는다. 많은 사람들이 내 소설이 영상적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내 소설은 오히려 문학적이다. 96년에 <나는 나를…>의 판권을 동아수출공사에 팔았다. 그런데 결국 시나리오가 안 나왔다. 막상 그 소설엔 영화화할 요소가 많지 않다. 에세이의 성격이 강하고 사건이 많지 않아서 시나리오로 옮기면 재미가 없다. 사실 영화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말하지만 당신 소설은 쉽게 영화로 상상이 된다. 게다가 시나리오까지 써서 한국의 폴 오스터를 꿈꾸는 건 아닌가 했다. (웃음) 어휴, 내 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건 재미없다. 장편 쓰느라 일년을 고생했는데 시나리오 쓴다고 그 고생을 또 해야 하나. 내 소설은 의외로 고전적이다. 죽음, 질투, 분노 등 그리스극에나 나올 법한 고전적 주제를 다룬다. 히치콕도 그런 주제를 다루었다. 그래서 난 히치콕이 좋다. 영화가 싫다고 말은 하지만 실은 영화를 꽤 많이 본 것 같다. 당연히 봤으리라고 생각하는 영화들을 안 봤다. 예를 들면 <포레스트 검프>. 아직까지는 소설이 훨씬 좋고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스크린>에 글 쓰기 전에는 일년에 두편 봤다. 비디오도 보기 싫다. 대신 TV에서 하는 주말의 명화를 잘 본다. 그것도 채널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것이어서 영화 앞부분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보면서 말도 많다. 그냥 영화려니 하고 봐줘야 하는데 ‘저건 말도 안 돼’ 하고 따진다. 그래서 영화광인 아내는 내가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 중의 하나에 들 거라고 핀잔준다. 영화는 2차원이고 소설은 3차원이다. 소설은 우리가 화면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지만 영화에는 우리가 개입할 차원이 없다. 감정이입할 여지도 별로 없다. 정우성처럼 잘생긴 배우들이 나오는데 어떻게 나의 이야기라고 받아들이겠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영화적인 소설이 나올 수 있나. 내 소설 보고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그건 순전히 텍스트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다. 어렸을 때부터 이미지 떠올리기를 좋아했다. 영화학도들이 애기하듯 영상이 영상을 만들지는 않는다. 영상으로 영상을 사고할 수는 없다. 복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그건 잘해봐야 타란티노다. 거장들이 거장인 이유는 묵직한 주제와 그걸 밀어붙이는 힘 때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란>을 만들었던 것도 셰익스피어를 열심히 읽어서가 아니었을까? 영화평론을 글로밖에 할 수 없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나. 그건 영화로 영화를 평할 수는 없다는 것이며, 이는 다시 말해 영화엔 비판 기능이 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하는 사람들,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부인이 영화광이니까 아무래도 부인 따라서 극장에 가거나 비디오를 보게 될 텐데. 아내도 결혼 뒤에는 영화보다는 책을 많이 본다. 영화 보는 취향도 다르다. 아내는 공포영화나 엽기적인 영화를 좋아하는데 난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한다. 멕 라이언이 나오는 영화, 너무너무 행복하게 본다. 반면 신체훼손형 영화는 맘 편히 못 본다. 당신은 판타지 성격이 강한 소설을 쓰는 작가이고, 영화에서 호러는 판타지의 대표 장르인데, 모순 같다. 로맨스야말로 판타지다. 해피엔딩이야말로 가장 원초적 행복 아닌가. 내가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하는 건 어렸을 때 겪은 분리불안 때문인 것 같다. 엄마가 무서워서 그랬는지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 그런데 로맨틱코미디에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끝내 행복하게 결합하는 남녀를 보면 분리불안이 해소된다.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하는 남자들, 영화 보면서 심리치료를 하는 거다. 그런 남자를 유치하다고 공격하면 안 된다. 나 같은 사람은 김기덕 영화 보면 안 된다. ▶ 쾌락주의자 김영하와의 잡담, 농담, 진담 (1) ▶ 쾌락주의자 김영하와의 잡담, 농담, 진담 (2)

part2 유운성이 건진 아까운 걸작

섹슈얼 이노센스 The Loss of Sexual Innocence 감독 마이크 피기스 주연 줄리언 샌즈, 새프론 버로즈 제작연도 1999년 출시사 크림 마이크 피기스의 영화를 볼 때엔, 조금쯤은 의혹의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영화는 뭔가 실험적인 것 같기는 한데 어딘지 모르게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다. 아마 이런 느낌이 가장 덜한 영화는 <브라우닝 버전>이었을 테지만 그건 또 지나치게 평범하고 점잖은 이야기였다. 라틴어를 가르치는 노교사와 그의 어린 제자간의 따뜻한 우정. 짐작건대 스스로의 유년 시절에서 소재를 끌어온 것인 듯한 <섹슈얼 이노센스>는 아예 거의 스토리는 염두에 두지 않은 채 이미지들의 흐름을 따라 자유로이 전개되는 영화다. 성적 모험기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한편, 아담과 이브의 우화가 지극히 탐미적인 영상을 통해 재구성된다. 결국 신화의 인물들은 점점 현실적 공간으로 이동해오고 현실의 인물들은 너른 사막을 배경으로 한 신화적 공간 속에서 파국을 맞이한다. 일디코 엔예디의 <나의 20세기>와 키에슬로프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 적절히 섞인 듯한 한 쌍둥이의 이야기가 갑자기 개입해 들어오면서 우리를 의아하게 만드는데, 결국엔 하나의 내러티브 안으로 무리없이 통합되는 걸 보면 피기스의 재능이 그래도 범상치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넬리 앤 아르노 Nelly & Monsieur Arnaud 감독 클로드 소테 주연 에마뉘엘 베아르, 미셀 세로, 장 위그 앙글라드 제작연도 1995년 출시사 엠브이넷 영화를 좋아하는 주변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단 한번도 클로드 소테에 관한 언급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영화는 골수 작가주의 영화광들에게는 영 밋밋한 것일 터이고, 영화란 자고로 재미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썰렁하기 그지없는, 그야말로 오갈 데 없는 프랑스영화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본 그의 멜로드라마 몇편은 개인적으론 최고로 꼽을 만한 것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막스 오퓔스의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데이비드 린의 <밀회>, 그리고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 등과 함께 그의 영화는 영화를 보는 내내 줄곧 공감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소테의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낭만주의가 완전히 거세된 모더니즘 이후의 멜로드라마이다. <금지된 사랑>의 주인공 스테판은 사랑이란 없으며 오직 게임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금지된 사랑>처럼 <넬리 앤 아르노>에서도 이른바 비극적 사랑이라는 낭만적 유희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랑의 도피란 말 그대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것이 된다. 또한 해피엔딩도 비극적 결말도 없으며 오직 관계의 재구성만이 있을 뿐이다. 무언가 놓쳐버린 것, 지나간 것을 아쉬워하지만 결코 크게 동요하지는 않는 인물들을 엄격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룸으로써 소테는 역설적이지만 진정 ‘즐거운 인생’을 느끼게 해주는 감독이다. 혐오 Repulsion 감독 로만 폴란스키 주연 카트린 드뇌브, 이언 헨드리, 존 프레이저 제작연도 1965년 출시사 9FILM 올해 출시된 영화 가운데 가장 반가운 영화. 대학 시절 나로 하여금 감탄을 내뱉게 만들었던 두편의 폴란드영화는 안제이 바이다의 <재와 다이아몬드> 그리고 폴란스키의 <물 속의 칼>이었다. 폴란스키는 초기에 만든 영화들에서 인물들을 부조리한 상황으로 내몰고는 거기서 묘한 웃음을 끌어내는 재능- 이 점에선 <궁지>가 단연 압권이다- 을 선보였는데, <혐오>는 이런 그가 정색하고 달려들 때 영화가 얼마나 소름끼치는 것이 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최근작 <나인스 게이트>는 그 강도는 덜하지만 그래도 초반 30분간은 훌륭하다. 원 프롬 더 하트 One from the Heart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주연 프레데릭 포레스트, 테리 가, 나스타샤 킨스키, 라울 줄리아 제작연도 1982년 출시사 파워 오브 무비 발표된 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영화가 왜 갑자기 출시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반가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 시리즈나 <지옥의 묵시록> 정도의 영화를 기대하면서 <원 프롬 더 하트>에 접근한다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이 영화는 코폴라가 80년대에 만든 자잘한 범작과 실패작들의 첫머리에 놓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돌이켜보면 <아웃사이더>나 <터커> 등은 그리 나쁘진 않다). 오히려 코폴라보다는 음악가 톰 웨이츠의 팬들이 더 반길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데, 소주 한두어병 걸치고 나면 나올 목소리로 묘하게 심금을 울리는 웨이츠의 광팬이라면 만사 제치고 봐도 괜찮을 영화. 인페르노 Inferno 감독 다리오 아르젠토 주연 이렌느 미라클, 레이 매클로스키 제작연도 1980년 출시사 빅스 몇몇 사람들이 그토록 무섭다고 말한 <서스페리아> 같은 건 사실 어이가 없다 못해 낄낄거리며 봤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를 보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게 웬만한 코미디영화보다 더 우습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오 바바의 <사탄의 마스크> 같은 영화가 소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르젠토의 이 영화는 제법 볼 만한 고딕호러 가운데 하나다. 양식화된 세트와 조명- 광원이 무엇이냐 따위는 절대로 묻지 말 것- 을 통해 잔뜩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는 난데없이 잔혹한 난도질을 선보인다. 아나모픽 렌즈를 이용해 촬영한 영상을 그대로 텔레시네하는 바람에 화면이 위아래로 길게 늘어져 보이니 이를 감수하고 볼 것. 치즈케, 블랙커피 No Looking Back 감독 에드워드 번즈 주연 에드워드 번즈, 로렌 홀리, 존 본 조비 제작연도 1998년 출시사 폭스 원제 ‘No Looking Back’을 이렇게 바꿔놓은 이유가 궁금해지는 영화. 여주인공이 식당 웨이트리스라서? 영화를 잘 보다보면 전개방식이 꽤 흥미롭다는 걸 알게 되는데, 처음엔 고향에 돌아온 한 남자의 연애담처럼 보이다가 점점 그의 옛 애인인 여자의 자아발견에 관한 이야기로 옮아가는 것이다. 즉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가 주인공을 달리하는 셈이다. 이상하게도 요즘엔 소도시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다룬 미국영화들이 꽤 재미나게 다가온다. 존 본 조비가 남자 주인공의 친구이자 연적으로 등장한다. 스크리머스 Screamers 감독 크리스천 더과이 주연 피터 웰러, 로이 듀피스 제작연도 1995년 출시사 SKC 우연히 보게 된 B급 공상과학영화. 극중에서 스크리머스란 사람이 가까이 가면 갑자기 튀어올라 공격을 가하는 무시무시한 대인지뢰의 이름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계장치가 자가 진화를 거듭하여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외양을 갖추게 됨으로써 인간들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점. 특히 주인공이 소년의 모습을 한 변종 스크리머스를 만나게 되는 장면은 정말이지 섬뜩하기 짝이 없다. 사실 영화가 지닌 흥미의 대부분은 원작소설에서 연유한 듯한데 원작은 필립 K. 딕-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자- 의 단편 <두 번째 변종>으로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바 있다. 에디 머피의 라이프 Life 감독 테드 드미 주연 에디 머피, 마틴 로렌스, 네드 비티 제작연도 1999년 출시사 콜럼비아 여기서 같이 소개하는 에드워드 번즈의 <치즈케, 블랙커피>가 마음에 든 사람들이라면, 그보다 훨씬 매력적인 테드 드미의 <뷰티풀 걸> 또한 반드시 한번 보기를 권한다. 재미로 따지자면 <라이프>는 <뷰티풀 걸>에 한참 못 미친다. 다만 여타의 영화들에서 엄청나게 빠른 수다로 우리의 넋을 빼놓았던 두 흑인배우가 여기선 적절한 수준에 머물면서 제법 연기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기서 제목 <라이프>는 두 주인공의 인생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극중의 그들이 처한 상황 즉 ‘종신형’을 지칭하는 것. 뛰는 백수 나는 건달 Office Space 감독 마이크 저지 주연 론 리빙스톤, 제니퍼 애니스톤 제작연도 1999년 출시사 폭스 정말이지 제목 죽이는 영화다(새삼 출시사들의 유머에 감탄하는 바이다). 이것도 제목이 하도 괴상해서 호기심에 빌려본 비디오 가운데 하나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영화는 <비비스와 버트헤드>로 이미 우리에게 소개된 바 있는 마이크 저지가 만든 극영화이다. 여기서 마이크 저지는 다분히 상황에 기댄 유머를 선보인다. 흡사 만화책의 컷 구성과 유사하다고 해야 할까. 굉장히 느린 페이스의 영화인데 어느 순간(약간은 어이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폭소를 터지게 하는 힘이 있다. 직장생활에 지친 이들을 위한 영화판 ‘무대리’. 철십자 훈장 Cross of Iron 감독 샘 페킨파 주연 제임스 코번, 맥시밀리언 셸, 제임스 메이슨 제작연도 1976년 출시사 영화랑 물론 이 영화는 국내에서 개봉되기도 했고 오래 전에 비디오로 출시까지 되어 잘 알려진 영화다. 하지만 굳이 여기서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철십자 훈장>이 올해 새로 출시된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금쯤 다시 한번 페킨파의 영화들을 되씹어볼 것을 권유하기 위해서이다. 페킨파의 영화는 <고원을 달려라>와 <케이블 호그의 발라드> 등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출시되어 있다. <메이져 던디> <와일드 번치> <어둠의 표적> <게터웨이> <관계의 종말> <가르시아> <킬러 엘리트> 그리고 <오스타맨>까지(모두가 출시된 지 상당기간 지난 것들이라 미처 리스트에 포함시키지 못한 영화들임). 유운성/ 영화평론가▶ part1 김봉석이 뽑은 B급영화 ▶ part2 유운성이 건진 아까운 걸작 ▶ part3 손원평이 사랑하는 드라마

[파리통신] 2001, 좋았던 마지막 해?

비방디 유니버설, 합병통해 메이저로 부상할 가능성 높아져 작가영화 제작에 적신호 2001년은 프랑스영화 재생의 한해였다. 1986년까지 40%를 상회하다 이후 27%까지 떨어졌던 프랑스영화 시장점유율이 처음으로 다시 40%를 넘어섰고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프랑스영화가 19편이나 됐다. 극장을 찾은 관객 수도 2000년에 비해 11%가 늘어났고 프랑스영화를 본 관객의 80% 이상이 만족감을 표시했다. 지루하고 말 많은 영화로 소문나 외국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던 프랑스영화가 <아멜리에>를 선두로 미국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축제 분위기 속에서 우려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대성공을 거둔 영화들의 대부분이 프랑스영화 평균제작비인 1500만∼4천만프랑을 훨씬 넘어서는 블록버스터 오락영화인지라 중소규모 작가영화들의 제작여건은 더 악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 또 프랑스 오락영화의 대성공에 밀려 외국의 작가영화들은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 점을 들어 앞으로 이런 영화들의 배급시장이 더욱 축소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렇지만 들뜬 분위기를 결정적으로 깨놓은 것은 지난해 12월17일 비방디 유니버설이 미국 USA 네트워크의 일부를 합병했다는 소식이다. 이 합병으로 비방디 유니버설은 미국에서 영화와 방송의 새로운 메이저로 부상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게 됐다. 프랑스의 문화적 예외주의의 종언을 선언하며 세계화를 부르짖는 비방디 유니버설과 프랑스영화계의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은 프랑스영화의 가장 중요한 투자자인 유료채널 카날플러스가 지난 2000년 비방디 유니버설에 합병됐기 때문이다. 84년 설립된 첫 유료채널인 카날플러스는 프랑스 방송위원회(CSA)와 영화진흥위원회(CNC)의 조정 아래 결정된 협정에 의해 방영영화의 60%를 유럽영화(이중 40%가 불어권 영화)로 채우고 총사업액의 20%를 영화에 투자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이 공생관계 덕에 다양한 프랑스영화, 특히 중소예산의 작가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될 수 있었던 것. 영화관계자들의 걱정은 협정이 만기되는 2004년 이후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한 세계화를 꿈꾸는 미디어제국의 한 계열사가 된 카날플러스가 지금과 같이 프랑스영화에 투자할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 문화예술지 <텔레라마>는 최신호 표지로 <아멜리에>의 주인공 아멜리가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담았다. 더없이 좋았던 2001년 프랑스영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족처럼 웃는 모습 옆에 `혹시 좋았던 마지막 해?`라는 질문이 붙어있는데, 이건 많은 영화인들의 의구심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 파리=성지혜 통신원

[로마 리포트] 15년간의 꿈, TV로 실현하다

타비아니 형제 TV용 영화 <부활> 방영, 비평·흥행 모두 성공적 <빠드레 빠드로네>(1977)로 이탈리아영화를 세계에 알린 거장 파올로·비토리오 타비아니 형제의 신작이 공개됐다. 그들의 새 영화가 주목을 끄는 것은 작품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텔레비전 자본으로 만들어져 극장이 아니라 TV를 통해 개봉됐기 때문이다.지난해 12월26일 프랑스 텔레비전으로 처음 공개된 <부활>(Resurrezione)은 타비아니 형제의 말처럼, `다른 사람들이 성경을 아끼듯 우리가 애정을 갖고 있는`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소설인 <부활>을 영화화한 것이다. 영화는 원작에서처럼 순수한 여인 카추샤가 귀족 디미트리와 사랑에 빠지고, 그에게서 잊혀진 뒤 결국 윤락녀로 좌절하며, 살인누명을 쓰고 선 법정에서 디미트리를 다시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국영방송에 속한 라이(Rai)픽션이 60억리라를, 그리고 프랑스의 팜파프로덕션과 독일의 바르바라필름이 50억리라를 대는 등 총 110억리라의 공동투자를 통해 제작됐다. 3시간2분짜리 이 작품은 4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체코와 슬로바키아에서 촬영됐다.파올로·비토리오 타비아니 감독은 “15년간 <부활>을 영화화하길 원했다. 하지만 기획단계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부담이 됐던 것이 바로 상영시간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TV픽션을 선택했다. 텔레비전용 영화를 만드는 것을 절대 양보나 외도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가 간직했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큰 가능성이라고 여겼다. 또한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을 느끼며 촬영할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러웠다. 관객이 작가들을 이해할 수 있는 큰 장점을 TV가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매우 큰 만족감을 표시했다. 또 이들은 “<부활>은 톨스토이 작품 중 최고는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작품이기에 더욱 애착이 갔고, 그렇기에 우리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부담없이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영화`라는 악평을 받았던 99년작 <너는 웃지>(Tu ridi)와 달리, 비평계 역시 타비아니 형제의 이번 작품에 대해 큰 호응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비평뿐 아니라 흥행에서도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라이방송사는 1월14일과 15일 황금시간대인 저녁 8시50분에 이 영화를 방송했는데, 이틀 동안 688만7천여명이 시청하는 성공을 거뒀다.영화에 대한 방송사의 지원은 현재 이탈리아 국영방송을 중심으로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라이방송사가 기획안을 받은 뒤 2년 동안 준비해 발표된 것으로,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을 위해 많은 시간과 진행비를 투자하는 유럽 방송계의 흐름을 보여준다. 타비아니 형제 역시 이번 TV와의 공동작업이 성공적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들은 차기작 역시 라이방송사와 함께, 나폴리의 여성 혁명가 루이사 산펠리체를 소재로 한 두바스의 소설을 영화화할 것이라고 발표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로마=이상도 통신원

오락프로그램으로 살펴본 TV 경제학 (2)

TV 경제학 3장 판매- 소비자 편 <느낌표!>(MBC 토요일 밤 9시45분)는 한국 최고 MC들만 모였다. 모든 코너들이 캠페인성이다. 교육개혁 ‘신동엽의 하자 하자’, 환경보호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 교양 강의 ‘경림이의 길거리 특강’ 그리고 김용만과 유재석이 진행하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호응이 높은 것은(혹은 호응도가 높다는 것이 프로그램 중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한달에 한권씩 권장 도서를 정한다. ‘책을 읽읍시다’는 권장 도서를 실질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노력한다. 길거리로 나가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을 찾고, 이 사람에게 소설의 세부 내용을 질문한 뒤 맞히면 책꽂이에 놓인 책을 무작위로 뽑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재미를 위해서 100권 추가라는 종이쪽지를 책 속에 숨기기도 하고, 고른 책을 정해진 장소까지 들고 가도록 하기도 한다(1월13일 방영분부터 책을 그냥 트럭에 싣는 것으로 바뀌었다). 11월 중순 정해진 이달의 권장 도서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다. 이 책은 창작과비평사 주관 제4회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에서 창작부문 대상을 받았으며 한 인터넷 서점에는 초등학교 5, 6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다. 글자도 크고 그림도 있다. 어른이 읽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전 국민의 필독서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이 책에 대한 소개가 나가자 책은 12월 베스트셀러 순위 1위를 차지한다. 이후 순위를 내려갈 줄 몰랐다. 전 판매수익금은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되는데 이 책을 출간한 창작과비평사에서 내놓은 수익금은 4억원이다. 12월 중순 한달간 권장 도서로 정해진 책은 <봉순이 언니>다. 1998년에 나와서 한때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 읽을 사람은 다 읽어 베스트셀러 등극은 어려우리라 보이는 이 책 역시 같은 길을 걷는다. 베스트셀러 1위를 내려갈 줄 몰랐던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제친 것이 이 책이다. 1월 셋쨋주 종로서적과 교보서적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인터넷 서점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종로 교보 2위, 알라딘 3위는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다.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다면 이것은 이미 제작자의 손을 떠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먼저 프로그램 내에서 따져볼 일이 있다. 즉 시청자들에게 ‘책들’이 아니라 ‘이 책’을 읽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라는. 이 코너에서는 다분히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사회자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다짜고짜 질문한다. “최근에 읽은 책이 무엇이냐”, “감동적인 구절이 무엇이냐”. 이 질문에 책 속의 구절을 인용하는 사람 앞에서 MC들이 무릎을 꿇고 탄성을 지른다. 지식이 갖는 위험한 위엄이 보이는 순간. 그러다가도 이 사람이 권장 도서를 읽지 않았다면 그 권장 도서를 건네주는 것이 보상의 다다. 하지만 권장 도서를 읽고 그 책의 세부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면 앞에서 말한 상품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재밌게 만들기 위한 장치. 어휴 아까워라거나 아이고 저런 애도 책을 다 읽네라는 ‘느낌’을 유발하는. 이 ‘느낌’이, 이 재미를 위한 장치가, 무작위의 시민들이 특정 책을 읽도록 무장시킨다. 특정 책을 노출시키는 것은 <봉순이 언니>의 작가가 책의 배경이 된 장소를 찾아가는 등의 이벤트로 강화된다. 프로그램 내의 결정적 자승자박은 MC들이 베스트셀러 순위가 집계된 곳 앞에 가서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지표가 아니라 단순히 자신들이 밀고 있는 책이 1위 했다는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이유는 무엇인가. 카메라에 걸린 ‘독자’도 이런 말을 한다. “느낌표에서 미는 책이 이번 달에는 이 책이라서….” 캠페인인가 광고성 이벤트인가 좋은 의도로 이루어진 일이며 독서 인구 확대에 혁혁한 공을 이뤘다는 평가가 프로그램에 따르기도 한다. 이 혁혁한 공은 국민들의 독서 패턴을 관리하는 자신의 노출 강박증에서만 그렇다는 것, 책을 읽자고 하지만 여전히 TV 앞에 책이 무력하다는 것을 확인한 한에서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경제학. 만약 수익금을 모두 불우이웃 성금으로 내놓는다는 전제에서 특정 옷을 광고하고 그 옷을 입은 사람들만 찾아 다니면서 선물을 준다면? 명백한 광고성 이벤트다. 광고에 대한 규제가 심한 TV에서 광고성 ‘책’ 이벤트에 아무런 지적이 없다. 책은 문화적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해서다. 책은 상품으로 유통된다. TV 속에서는 문화가 현실세계에서는 상품인가. 캠페인 ‘대상자’(일반인)가 캠페인에 자극받았다면(그리하여 프로그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르기 위해서는) 책을 ‘사서’ 읽어야 한다는 것만 알았어도 이런 괴리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파괴력을 실물경제에 가하고도 ‘문화적 캠페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TV 모금액, 어떻게 움직이나? 돈 모으는 텔레비전 ‘이웃을 돌보는 것’은 ‘선정성과 오락성’으로 공격받던 오락프로그램의 비상구다. 그 시작은 97년 국제통화기금(IMF). 모두가 어렵다던 시절, 모두가 돕겠다고 나섰다. 1위를 하면 상품이나 상금을 우승자가 타가던 데서 상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대체하고 출연자들은 출연료만 받는 것이 대세로 굳어졌다. 요즈음 오락프로 중 경쟁프로가 유달리 많아졌는데, 경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상금을 걸게 마련이다. 이 상금 역시 대부분 사회복지 성금으로 나간다. <해피 투게더>(KBS2)의 경우 노래를 무사히 부르면(‘쟁반 노래방’) 장학금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문제를 잘 맞히면(‘막상막하’) 그들의 돈이 장학금이 되어 전달되게 된다. ARS를 통해 기금을 모집하는 경우도 많고, 마라톤을 뛰어도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집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러 가지 경로로 이루어지는 듯 보이는 이 기금 모집은 사실은 단순한 그림을 그린다.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데 법적 허가를 받아야 하는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이 있기 때문이다. 3억원 이하의 경우에는 주소지 관할 특별시장·도지사의 허가가, 그 이외의 경우에는 행정자치부 장관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TV 프로그램의 경우 사회복지 단체에 기금을 위탁하는 방식이다. KBS1 <사랑의 리퀘스트>의 경우 사회복지재단과 함께 기금모집을 하며 그외의 경우는 사회복지 공동기금에 대부분의 기금이 기탁된다. 사회복지 공동기금에 최근 TV 프로그램을 통해 모금된 기금이 위탁된 것은 <초특급 일요일 만세>에서 가수 조성모가 마라톤을 통해 모금한 기금 4억4천여만원, <느낌표>에서 창작과비평이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통한 수익금 2억5천만원(약정금 5억원), 김중미 작가의 기부금 1억4천여만원 등이다. 그외에 모금액이 많지 않을 경우 자체적으로 집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법 조항에 어긋난다. 연말연시를 맞아 기금을 모집할라치면 ARS 기금이 올라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빠르다. 방송3사가 다 ARS 번호판을 하루종일 켜두는데 그 올라가는 속도가 시청률과 엇비슷해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TV에서 모집하는 기금의 액수는 전체 기부금 액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것이 통상적이다. 사회복지 공동기금에서 2001년 12월1일부터 2002년 1월31일까지 벌이고 있는 ‘희망 2002 이웃돕기 캠페인’은 총 423억원이 목표액인데, 이미 목표액이 초과달성되었다고 한다. 그중 ARS를 통한(TV와 라디오 통합) 금액은 9억6천여만원이다. 기부금품법의 기본원칙 3개는 기억할 만하다. 첫 번째 기부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 복지수요가 공정하게 충족되도록 배분되어야 한다. 세 번째 배분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공개되어야 한다. 구둘래 kuskus@dreamx.net▶ 오락프로그램으로 살펴본 TV 경제학 (1) ▶ 오락프로그램으로 살펴본 TV 경제학 (2)

[충무로는 통화중] 똑바로 해결하라

최진영(26)씨는 최근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졸업장`을 받았다. 모 대학 영화학과에 재학중인 그는 올해 2월 졸업을 앞둔 상태였지만, 지난해에 만들었던 16mm 졸업작품 <투해피 투다이>의 네거필름이 후반작업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되어 학교쪽의 `선처`가 아니고선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했던 처지. 얼마 전 법원이 텔레시네 작업을 맡았던 W업체의 과실을 인정, 최씨에게 배상금 1천만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이 아니었다면 졸업 여부는 어찌됐을지 모를 일이다. 최씨가 민사소송을 통해서야 아슬아슬하게 대학문을 나서게 된 과정을 들어보면 기가 막히다.지난해 9월, 네거필름 편집을 끝낸 최씨는 시사 내내 인물들의 움직임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걸 느꼈다. 심지어 헹가래를 치는 인물을 슬로로 잡은 엔딩 장면에선 의도치 않았던 점프컷 현상까지 발발했다. 경악을 머금고 1주일 동안 추적한 결과, 키코드 작업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1초에 24프레임으로 구성된 필름의 특성상 네거필름에는 각 프레임당 위치를 나타내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를 텔레시네 작업을 위해 비디오 신호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15프레임씩 밀려서 새겨진 것이다. 애초 잘못 옮겨진 키코드 정보를 근거로 네거필름 작업을 했으니 연결장면에서 화면이 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해당 업체는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최씨가 요구한 복구비용 300만원이 너무 과하다고 외면했고, 작업마저도 감독 대신 자신들이 알아서 붙여주겠다고 했다. 결국 11월7일 최씨는 너덜너덜해진 <투해피 투다이>를 법정으로 넘겼고, 법원은 “학생작품이라고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는 너무도 당연한 결정을 내렸다. 덧붙여, 승소한 감독의 변. “돈 때문에 그런 것 아니에요. 매번 당하면서도 쥐꼬리만한 합의금을 받아들여야 하는 어린 감독들을 대신해서 했어요.”이영진

대학로, 영화배우 양성소!

지난해 9월, 명필름이 제작하는 김응수 감독의 <욕망>의 배우 오디션 본선장. 응모자 400명 가운데 10명을 1차로 추린 결과 3명이 방송국 탤런트 출신이고 나머지 7명이 연극배우였다. 최종 선발된 4명의 주연배우는 탤런트 이수아씨 1명을 제외하곤, 이동규·안태건씨 등 나머지 3명이 모두 대학로(연극배우) 출신이었다. 다른 연극배우 2명은, 같은 명필름의 영화 <버스정류장>의 조연으로 캐스팅됐다.명필름 심보경 이사의 말. “연극배우들의 연기가 깊이가 있었다. 방송국 출신의 연기는 어딘지 가벼워보였다. 또 `새로운 얼굴`이라는 기준에도 방송국 출신은 잘 맞지 않았다.”개인 인맥을 통해 충무로로 진출하던 연극배우들이 어느 순간 충무로 정상에 깃발을 꼽고 `대학로의 충무로 점령'을 선포해버렸다. 90년대 중반부터 지난해 초까지 최민식, 설경구, 송강호, 유오성씨가 그랬다. 이보다 조금 늦게 신하균, 임원희, 정재영씨 등 이른바 `장진 사단`의 연극 배우들이 장진 감독과 함께 집단적으로 충무로로 들어와서, 이제 막 대학로 출신의 2세대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 <복수는 나의 힘>(신하균), <이것이 법이다>(임원희), <피도 눈물도 없이>(정재영)의 주연은 이들의 몫이다. 이제는 연극배우들이 공개된 오디션을 통해 충무로에 주연급으로 입성하기까지 한다.조연과 단역은 2~3년 전부터 완전히 대학로의 몫이다. <친구>의 조직폭력배 두목 기주봉, <달마야 놀자>의 성질급한 폭력배 김수로와 능청맞은 스님 이문식, <공공의 적>의 형사반장 강신일씨와 잡범 성지루·유해진씨를 뺀다면 이들 영화는 희멀건한 죽에 그쳤을지 모른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오지혜, <나비>의 김호정, <나쁜 남자>의 김정영씨 등 여자 연극배우 출신도 빠질 수 없다.60~70년대에는 엑스트라 조합이나 배우협회가 영화배우의 등용문이었다.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텔레비전 탤런트들의 영화 나들이가 붐을 이뤘다. 그러나 탤런트 출신 가운데 충무로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배우를 꼽아보면 고소영 장동건 김희선씨 등 열명이 채 안된다. 지금은 대학로가 영화 배우들의 공급을 온전히 책임지는 양상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해 가는 모습이다.“당연하다. 배우 수업을 제대로 하는 건 대학로밖에 없다.”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의 말처럼 연극배우들의 도약은 우선 연기가 된다는 데 있다. 특히 최근 많아진 코미디 장르의 영화에 연극적 연기의 과장된 표현법이 무척 요긴하게 쓰인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공공의 적>에서 형사 설경구를 따라다니는 두 잡범 성지루, 유해진씨의 코미디는 무대 위의 퍼포먼스를 방불케 한다. 이런 건 연극 배우가 적격이다. 송강호씨가 두각을 나타낸 것도 <넘버3>의 `너 소야? 나 최영의야!'식의 코믹 연기였다.”(명필름 심보경 이사) 게다가 연극계는 가난하지만 영화판은 돈벌이가 된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로에선 배우들의 영화나 텔레비전 출연을 고깝게 보던 시선도 이제는 많이 누그러졌다.요즘 연극계의 입이 삐죽 나온 것은 당연하다. “연극 개막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요즘 같으면 연습을 할 수가 없다. 해가 뜨면 해떴다고, 비가 오면 비 온다고 영화촬영장으로 달려간다. 3월이면 꽃핀다고, 10월이면 낙엽진다고, 겨울엔 눈 온다고 간다. 이걸 무작정 말릴 수도 없고.”(연출가 김석만씨)충무로로 나온 연극배우들도 어딘지 마음이 죄스럽다. 그래서 지난해 말 기주봉, 최정우, 정재진씨 등 영화판으로 온 연극 동료들이 모였다. 이들은 영화에서 번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1년에 한편이라도 돈 때문에 못 만들었던, 꼭 만들고 싶었던 작품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고 기주봉씨가 전했다. 장진 감독도 신하균, 임원희씨 등 자신의 사단을 이끌고 올해말 연극 한편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영화가 연극계에서 배우를 충원하는 건 무척 선진적인 시스템이다. 연극은 수십번의 리허설을 갖지만 영화는 바로 실전이다. 영화에 출연했다가 연극도 다시 하고 자유롭게 왕래하면 된다. 배우는 영화배우, 연극배우 구별할 것 없이 통합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연극계가 워낙 불황이라 그곳을 떠올리면 마음이 답답하다.”(장진 감독)정재숙 임범 기자isman@hani.co.kr ▶ 연출가들도 충무로행 `스탠바이`

<뮤턴트 에일리언> `해괴망측하게 한번 놀아볼까`

남자가 샤워를 하고 있다. 몸의 일부를 클로즈업했더니 `와이(Y)`자 형으로 굴곡이 나 있고 가운데에 털이 있다. 어, 이게 어디야? 남자였는데. 카메라가 멀어진 뒤에 보면 옆구리의 일부분이다. 다시 클로즈업했다가 멀리 빠지기를 몇 차례. 계속 은밀한 부위를 떠올리게 하지만 무릎 뒤쪽이나, 팔꿈치 주름 등 다른 곳이다. 애니메이션 <뮤턴트 에일리언>은 시작부터 `해괴 망측하게 한번 놀아보자'며 관객에게 장난을 건다. 빌 플림튼 감독은 57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생각과 장난질을 멈출 의향이 전혀 없는 것 같다.플림튼은 전작 <나는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97년)의 도입부에 “고상한 취향은 창의력의 적”이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한 뒤, 이상한 전파를 맞아 상상한 대로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남자를 주인공으로 인간 욕망과 권력자의 속성을 맘껏 풍자했다. 기괴하고 우스꽝스런 성행위가 등장하고, 사람의 내장이 팝콘처럼 튀어나왔다. 그의 단편은 손이 귀로 들어갔다가 눈으로 나온 뒤에 다시 코로 들어가면서 머리를 꽁꽁 묶어버리는 등 사람 얼굴을 밀가루 반죽처럼 갖고 노는 유머가 허다하다. 흔히들 영혼의 형상을 담고 있을 것으로 간주하는 소중한 얼굴을 완전히 물질화시켜 깔아뭉개는 플림튼의 애니메이션은 보는 이들에게 묘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그는 권력도 같은 방식으로 깔아뭉갠다. 그의 기벽이 그대로 살아있는 <뮤턴트 에일리언>는 지난해 애니메이션의 칸영화제로 불리는 앙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대상을 받아, 플림튼을 `미국 애니메이션의 이단아`에서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작가로 등극시켰다.첫 장면에서 샤워를 하던 남자는 우주 비행사이다. 샤워 겸 소독 뒤에 우주복을 입고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우주성 최고권력자의 속셈은 딴 데 있다. 이 권력자는 우주선의 기름을 방류시켜 버린 뒤, 귀환이 불가능해진 주인공에게 자신이 미리 써준 편지를 읽게 한다. `나는 미국을 위해 우주에서 사라집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읽는 장면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뒤, 우주성에 성원이 답지하면서 우주사업은 날로 번창한다. 하지만 음모의 희생양이 돼 우주 한복판에 버려진 주인공은, 동물들을 싣고 난파된 우주선을 만나 그들과 함께 우주선 안에서 살아간다. 돼지, 뱀, 새, 개구리 등과 뒤섞여 섹스가 이뤄지고, 동물들은 돌연변이(뮤턴트) 2세들을 낳는다. 주인공은 그 2세들과 함께 20년 뒤 복수를 벼르며 지구로 돌아온다.구성이 마카로니 웨스턴을 닮았고, 돌연변이 동물들은 <포켓 몬스터>의 포케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방식은 시종일관 경쾌하고, 옆길로 빠져서 엉뚱한 에피소드를 장시간 끼워넣기를 서슴지 않는다. 지구에 남겨진 주인공의 딸이 애인과 섹스하기 직전, 수녀와 창녀가 튀어나와 설전과 육박전을 벌인다. 지구로 돌아온 주인공이 기자회견에서 들려주는 거짓 경험담은 오디세이의 플림튼 버전이다. 플림튼은 이번에도 권력을 큰 표적으로 삼아 조롱과 풍자의 화살을 날리지만, 그 부분은 신랄하다기보다 이야기의 한 구성요소로 정형화된 듯한 느낌이 강하다. 그보다 옆길에서 들려주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짭짤한 재미를 주는, 성인용 애니메이션의 별미이다.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