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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누가 더 센 놈인지 알려주마

영화 <전설의 주먹>을 봤습니다. 영화는 말 그대로 강우석표 영화였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한줄로 요약 가능한 캐릭터였고 배우들은 그걸 충실히 연기했습니다. 뭐, 그렇다고 재미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복잡다단한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해서 영화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요. 영화는 두 시간 넘게 남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과연 그들은 ‘전설의 주먹’이었을까요? 다시 한번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해봅시다. 과연 덕규(황정민), 상훈(유준상), 재석(윤제문)은 주먹도 셌을까요? 격투기 해설자이자 프로레슬러 입장에서 고찰을 해볼까 합니다. 먼저 누가 센지를 알기 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 일어나는 무력 충돌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짱’은 어떻게 결정되나 대개 학교에는 대가리, 짱, 통이라 불리는 주먹이 센 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누가 싸움을 잘하는지 어떻게 정했을까요? 일반적으로 권투나 격투기 시합이라면 챔피언과 도전자가 있고, 이때 벨트가 오가면서 강자와 약자의 서열이 만들어집니다. 또는 토너먼트로 16강, 8강, 4강, 이런 식으로 예선을 통과해서 마지막 승자가 월계관을 머리에 씁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통’이 이렇게 결정이 된 적 있습니까? 드라마 <응답하라 1997> 기준으로 봤을 때 한 학교에서 한 학년에 속하는 300여명 중에서 정말 이렇게 토너먼트 또는 그에 합당하는 공정한 룰로 ‘통’이 선발되었나요? 아닐 겁니다. 대개 반마다 왈패가 몇명씩 있고 이들은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한 것뿐입니다. 대개의 학생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거나 마지못해 이 서열을 인정했을 뿐이지요. 물론 이 왈패 무리에서도 그들끼리의 충돌, 즉 싸움은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때 공정한 룰이 있었나요? 정말 선수들끼리 제대로 싸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을까요? 일요일 오전 케이블TV에서 중계되는 UFC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입장할 때 양옆의 주홍색 재킷을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州)체육위원회에서 파견된 이들로 선수들이 대기실에서 나와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동행하면서 행여 경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는 일을 하지요. 싸움은 매우 정서적인 행동이면서 정신적인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상대편에서 잘나가는 선배를 뒤에 세운다거나 무리의 수가 더 많다거나 한다면 위축이 될 수밖에 없고 경기력에도 분명 영향을 끼칩니다. 자, 이제 한명씩 살펴보지요. <영웅본색>을 좋아하는 재석은 깡은 좋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패닉상태에서 흉기를 휘둘러 교도소에 갈 정도로 판단력이 부족합니다. ‘아무 생각없이 던진 왼손 잽은 재앙의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석은 친구들을 몰고 다니면서 겁을 주고 압박을 할 수는 있어도 실제 싸움에서는 섣부른 행동으로 인해 자멸할 공산이 큽니다. 덕규는 권투를 오랫동안 수련했기에 분명 뛰어난 신체능력을 갖고 있었을 겁니다. 권투선수답게 타격에 대한 면역 또한 가장 뛰어났을 겁니다. 그러나 고교 시절의 키와 덩치를 보면 통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김광선 선수는 88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습니다. 체급이 플라이급으로 당시 그의 체중은 51kg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력 체급이 경량급인 것을 감안한다면 올림픽 무대를 꿈꿨던 51kg 언저리일 확률이 큽니다. 51kg이면 웬만한 여자 연예인보다 가벼운 체중입니다. 이런 하드웨어 사이즈와 근력을 가지고 정말로 ‘체급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주먹 실력으로만 승부를 봤다면 덕규가 상위 클래스에는 속하더라도 정말 1위까지 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럼 이제 딱 한명 남습니다. 바로 상훈입니다. 상훈은 하드웨어로 봤을 때 가장 가능성이 있는 후보입니다. UFC 톱클래스 파이터인 김동현 선수처럼 큰 키에 긴 팔과 다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운동하면 운동하는 대로 몸에 근력이 붙으며 지구력 또한 좋습니다. 영화 중간에 계단 난간을 밟고 점프하는 것을 보아 운동신경도 좋아 보입니다. 그럼 상훈이 과연 통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상훈이 톱 파이터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봅니다. 영화를 보면 상훈이 아이들의 돈을 뺏는, 속칭 삥 뜯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성격을 가지고 최상위 클래스로 갈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인성론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수준을 벗어나서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갖기 위해선 파트너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주먹에 일부러 맞아주고 샌드백을 붙잡고 무지막지한 파운딩 세례를 견뎌낼 파트너가 필요합니다. 또 때에 따라선 자신이 그런 인간 샌드백 역할을 해야 합니다. 효도르를 비롯해서 이 세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또는 날린 선수들은 그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체 남자들은 왜 저러고 사는 걸까요? 왜 저렇게 쌈박질을 좋아하는 걸까요? 영화에서는 성년이 된 주인공들이 ‘돈’ 때문에 싸우는 것 외엔 특별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잠깐 보조설명을 드릴까 합니다. 제 직업은 프로레슬러, 그리고 격투기 해설자이기도 하거든요. 아무래도 현장과 가까운 입장에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그들이 링에 서는 이유 먼저 링 위의 세계를 동경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링 위의 박진감 있는 삶에 영혼이 눈먼 것이지요. 내 손이 상대방의 얼굴을 때릴 때 느껴지는 둔탁한 타격감. 왼쪽 허벅지에 상대방의 로 킥을 맞고 그 고통을 이겨내며, 붙잡고 쓰러뜨리고 올라타고. 우리가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선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학에 떨어지는 것도 적어도 1년(고3 기간)이란 시간이 필요하지요. 링은 그것을 압축시켜줍니다. 5분 3라운드. 15분 동안 승과 패, 둘 중 하나는 필히 찾아옵니다. 이 완벽한 귀결에 혼이 빨려들어간 것이지요. 또 한 부류는 링 밖을 피해 링 안으로 도피한 경우입니다. 링 안에는 오직 두 주먹만 있으면 됩니다. 챔피언이든 도전자이든 오직 두손 또는 룰에 따라 두 다리를 가지고 승부를 봅니다. 하지만 링 밖은 그렇지 않습니다. 동네 구멍가게는 이마트와 싸워야 합니다. 동네 커피집은 스타벅스와 싸워야 합니다. 수빈이네 국숫집도 프랜차이즈 국숫집과 싸워야 합니다. 이 경쟁이 말이 됩니까. 그래서 그 경쟁을 피해서 링 안으로 도피하는 것이지요. <전설의 주먹>에 나온 이들도 아마 이 두 부류 중 한곳에 속해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링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방송국, 주최사, 스폰서의 피라미드 서열 안에서 가장 약자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도 몇해 전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당시 주최사로부터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은 ‘벨트를 직접 보관하려면 300만원의 보증금을 지불할 것’이었습니다. 지난여름, <전설의 주먹> 조감독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영화에 출연해 달라는 것이었는데요. 강우석 감독이 텔레비전 고발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저를 보고 직접 픽업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약 일주일 뒤, 시나리오가 바뀌어서 분량이 많아진 까닭에 전문 연기자로 대체됐다는 통보를 받았는데요. 제 배역은 무엇이었을까요? 독자 여러분은 누구였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당신에게 로즈버드는 무엇이었나요?

2013년 4월4일, 미국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세상을 떠났다. 그가 갑상샘암 재발로 다시 입원했다는 소식이 날아든 지 하루 만이었다. 누가 뭐래도 대중과의 소통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영화평론가였기에 유독 그의 죽음을 서글퍼하는 이들이 많았다. 갑상샘암과 침샘종양 수술로 아래턱과 목소리를 잃은 뒤에도 평론을 멈추지 않았던 그로부터 우리도 적지 않은 위안을 받았었다. 이 불굴의 ‘신문장이’에게 뒤늦게 어떤 헌사를 바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 2007년 그를 ‘내 인생의 영화평론가’로 꼽았던 송효정 영화평론가에게 이별의 편지를 청했다. 더불어 <씨네21>이 2002년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그와 가졌던 인터뷰 중 일부도 발췌하여 싣는다. 그의 목소리가 그립다. 여긴 4월인데 여전히 춥습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다니, 그리울 정도로 오랜만의 일이군요. 벚꽃이 피고 있고요, 4월인데도 날씨는 괜스레 쌀쌀맞아 옷깃을 동동 여미게 됩니다. 며칠 전 뉴스에서 설핏 당신이 암 치료를 위해 당분간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음날 독감의 몸살로 뒤척이다 당신의 사망 뉴스를 들은 것도 같은데, 미열 속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했습니다. 잘못 들었겠지, 어제 치료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그보다 내 몸을 일으켜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에만 골몰했죠. 누군가 세상을 떠나도, 미열로 몽롱해도 목련은 피고 극장에는 사람들이 가득할 테죠. 4월이잖아요. 봄이거든요. 왜인지 실시간 뉴스로 올라오는 당신의 부고 단신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렇게 일상은 여전히 지속되었을 텐데요. 문득, 몇년 전 당신의 책을 읽고 당신에 대한 글을 썼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신참 평론가 시절에 당신의 책을 읽고 나는 소소하고도 진지한 힘을 얻었던가 봅니다. 한 네티즌의 말처럼 당신의 죽음이 그렇게 많이 회자되었던 것은, 아마도 당신이 이웃집 아저씨 혹은 할아버지 같은 친근함을 주었기 때문이겠죠.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와 그들의 거리를 보다 친밀한 것으로 만들어주었으니까요. 당신은 아마 가장 유명한 미국의 영화평론가일 것입니다. 가장 권위있는 평론가라고 단언하긴 힘들지만 말이죠. “한 사람의 일생을 말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영화 <시민 케인>에서 케인의 보물창고를 헤집던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로즈버드가 케인의 모든 것(everything)이자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인 것처럼, 엄지손가락과 별점은 당신을 그 자체로 설명하지만 동시에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테죠. 1. 오늘의 당신을 있게 해준 것은 1967년 입사하여 46년 동안 직업 기자로서 영화평론을 해온 <시카고 선타임스>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10년 전인 고교 시절 지역 신문사에서 기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것으로부터 계산하면 장장 56년 동안 현업 기자로 활동했던 셈이네요. 미국 최고의 영향력을 지닌 평론가,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영화평론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영화평론가. 이러한 수식 속에서 에버트 당신은 철저하게 미국적으로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시스켈과 에버트>라는 장수 프로그램을 이끌고, 시스켈의 사망 뒤에는 <에버트와 로퍼>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당신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듀나씨가 다른 곳에서 지적한 것처럼 당신은 영화평론가인 척하는 재담꾼이었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별점이란 때론 우스꽝스러운 것이긴 하죠. 하지만 당신이 영화 <선셋대로>를 두고 “사랑이야말로 이 영화가 밀랍인형이나 싸구려 서커스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요소다”라고 했듯이, 영화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야말로 당신의 대중비평의 품격을 지켜주고 있던 건 아닐까요. 당신은 10대 시절 SF(Skin-flick)광이었고, 전설적인 B급 감독 러스 메이어의 <인형의 계곡 너머>의 속편 및 섹스 피스톨스의 영화인 <누가 밤비를 죽였나>의 공동 각본가이기도 합니다. 미국영화협회(MPAA)의 등급심사제도에 공식적으로 반대하며, 별점 2개 이하의 이른바 ‘저질’영화에 대한 책을 내는 일에도 적극적이었죠. 사실 당신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영화 별점이지만, 당신 스스로는 그것이 참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미디어의 변화 속에서, 독자와 소통해야 하는 기자로서의 입지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요. 별점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별점 아래에 꾸준히 진지하고 아름다운 평론들을 썼습니다. 편견없이 공평하게 많은 영화들을 잡식성으로 탐식했습니다. 고급에서 저급까지, 가장 대중적인 미국영화에서 가장 주변부 세계의 영화까지 말이죠. 아래턱을 잃은 이후에도 당신은 여전히 성실하고 열정 넘치는 영화평론가였습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고요. 역설적인 말이지만, 당신이 목소리를 잃은 지난 6년간, 목소리를 대신하여 당신의 별점과 리뷰가 전세계 영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당신의 SNS 메시지를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텔레비전과 신문이 올드 미디어로 밀리고 인터넷과 SNS가 뉴미디어가 되는 시대였죠. 목소리를 잃은 뒤, 당신의 블로그와 이메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대중과 대화하는 소통의 장소가 되었던 것이죠. 문자의 시대였으니까요. 테드닷컴에 올라왔던 당신의 영상을 기억합니다. 당신은 암으로 아래턱을 잃었지요. 말을 할 수 없었고, 음식을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세번의 턱뼈 재건수술을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고 2006년에는 재발하기조차 했죠. 당신은 잃어버린 목소리를 매킨토시 컴퓨터의 알렉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되찾았습니다. 그 목소리의 부자연스러움을 없애기 위해(기계음은 뭔가 기묘하게 낯설거든요) 당신은 예전에 당신이 녹음한 영화평 파일을 재료로 삼았죠. <카사블랑카>와 <시민 케인>을 코멘트하던 당신의 목소리가 알렉스를 통해 재현되었습니다. 이 목소리는 가상의 것이지만, 어찌 보면 필멸의 에버트와 불멸의 영화를 연결해주는 오묘한 것이기도 하네요. 2. 당신이 미국 내에서 유명하게 된 것은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이었고,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였죠. 자신의 블로그에 별점과 리뷰를 올렸고, 2주에 한편씩 올곧은 고전영화 비평을 실어서 <위대한 영화>의 단행본을 3권까지 만들었습니다(한국에서는 현재 2권까지만 번역되어 출판되었고요). 한국에서도 많은 영화기자와 평론가들이 새로운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당신의 영화평을 찾아보곤 합니다. 근래 들어 신문 저널리즘의 힘이 약해지고 있기도 하거니와 그래서 그런지 46년간 전문 기자로서 평론해온 당신의 죽음을 주류 저널리즘 비평의 종말로 판단하는 의견도 있는 듯합니다. 신문과 텔레비전 영화비평의 종말이라고요.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당신이 어디선가 말한 것처럼 영화평론의 시대가 가고, 연예 가십의 시대가 왔습니다. 2008년에는 많은 저널 영화비평이 사양길에 접어들어 <빌리지 보이스>에서 영화필자를 반 이상 감원했고,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가 영화평론가를 모두 해고하며 조너선 로젠봄, 스탠리 카우프만 같은 저명한 평론가들이 지면을 잃어갔죠. 이 시기부터 이미 영화평론의 종말이 성급하게 선언되곤 했습니다만, 요즘에는 그 상황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일찍이 에서 영화평 및 인터뷰 기사를 500자 이내로 제한했던 조치가 있기도 했습니다만, 이는 종이잡지보다 접근이 용이하고 부담이 적은 포털사이트를 선호하는 관객의 성향 때문이기도 합니다. 월간지에서 주간지로, 주간지에서 실시간 업데이트되는 포털로 속도는 점점 아찔하게 빨라져갔고요. 그래서인지 관객은 이제 우리 평론가의 글들을 잘 읽지 않습니다. 때로는 평론가들의 글에 짜증을 내기도 하죠. 관객과 평론가들은 서로 다른 대상을 두고 말하고 있기에 그 대화가 어긋나는 듯해요. 시네필을 대상으로 한 글인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글인가에 따라 평론이 달라질 텐데요, 영화평론가들은 대체로 시네필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은데요, 어쩐지 한국사회에서 요즘 시네필이라 하면 좀 올드스쿨처럼 여겨지는 인상도 있고요. 일반적으로 대중 관객은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포털에 올라오는 별점평으로 영화를 판단하지요. 잘 쓰인 평론보다 스타의 내한이나 스캔들이 영화를 더욱 유명하게 하기도 하고요. 에버트 당신이 말한 것처럼 당신은 아카데믹한 교수가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신문장이입니다. 하지만 몇몇 일간지의 문화면 기자와 이제 하나 남은 영화잡지의 전문기자를 제외하고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프로페셔널한 전업 평론가로 산다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기에, 대부분은 없는 지면과 생활난을 고려하여 투잡을 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대학에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등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에버트 당신이 떠난 이후에 포스트 로저 에버트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합니다. 인터넷을 맴도는 익명의 전체가 IMDb나 포털사이트의 별점을 부여할 테니까요. 당신은 한해에 250편가량의 리뷰를 쓰며, 아마도 그중 200편 이상은 자신이 죽기 전에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죽기 직전까지 글쓰기를 지속한 당신은 테렌스 맬릭의 <투 더 원더>에 별점 3개 반을 매겼지요. 당신이 떠난 지 이틀 뒤에 올라온 리뷰였습니다. 여기서 당신은 테렌스 맬릭의 배우 활용법을 로베르 브레송의 모델론과 연관시켰지요. 리뷰 아래 한 네티즌이 언급한 것처럼 다소 멜랑콜릭한 어조였던가요.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영화 <시민 케인>과 <이키루>는 모두 어떠한 존재의 사라짐에 대해 말합니다. 당신은 말했죠. 1960년인가 1961년에 처음 이 영화를 본 뒤 5년에 한번은 다시 보곤 했다고. “나는 <이키루>를 볼 때마다 감동에 젖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나이를 먹을 수록 와타나베가 측은한 늙은이 같다는 생각은 점점 줄어들고, 우리 중 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점점 많이 든다”고. 아 참, 그리고 마틴 스코시즈 감독과 <갱스 오브 뉴욕>의 각본가이기도 한 스티브 자일리언이 제작에 참여하고 스티브 제임스가 연출하는 로저 에버트 다큐멘터리는 당신의 생전부터 기획되었다고 하더군요. 에버트 당신도 2009년에 <에버트가 본 스코시즈>(Scorsese by Ebert)라는 책을 쓰기도 했지요. 저는 아마도 이 영화가 이탈리아 모던시네마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1999)와 영화의 초창기 역사를 판타지 장르로 다룬 <휴고>(2012)에 이은 스코시즈식 ‘영화사 3부작’이 될 것이라고 예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근 5년 전에 당신에 대해 썼던 글의 마지막 부분을 똑같이 인용해봅니다. 그때 저는 건강해진 당신의 육성을 듣고 싶다고 했었지요. 당신이 생각하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엔딩 대사가 등장하는 <선셋 대로>에서입니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우리와 카메라들과 저기 어둠 속에 있는 경이로운 사람들. 좋아요, 난 클로즈업 준비가 됐어요.” “내 인생의 영화는…” 2002년 로저 에버트와 <씨네21>의 인터뷰 #커리어의 시작 / “시카고대학을 졸업하고 <시카고 선타임스>에 들어가 일했는데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평을 담당하던 전임자가 은퇴하는 바람에 영화평을 쓰라는 제의를 받게 됐다. 나로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전에 영화평론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하겠다고 했고, 그 결정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 그뒤로 35년간 영화평을 썼다.” #<시스켈과 에버트> 쇼 / “나는 <시카고 선타임스>의 영화평론가였고 시스켈은 <시카고 트리뷴>의 영화평론가였다. 말하자면 나의 적이었다. TV에서 우리 둘을 불렀을 때도 역시 상대에 대한 견제가 만만치 않았다. 예를 들면… 시스켈은 <지옥의 묵시록>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이 영화를 걸작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는 내 견해에 동의했다.” #별점에 대하여 /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별점은 지나치게 단순한 것이다. 신문사에서 시켜서 하는 일일 뿐이다. 미국의 수많은 신문이 별점을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최근엔 별점을 좀 보완하려고 별의 개수를 5개로 늘렸다. 3개가 정확히 중간점수가 되게끔…. 어찌됐든 멍청한 짓이다.” #내 인생의 영화 / “<시민 케인>이다. 17살 때 이 영화를 보고… 감독의 존재를 알았고 영화의 내면에 감독의 비전과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다른 영화를 든다면 구로사와 아키라의 <이키루>다.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위대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나는 신문장이다 / “나는 신문장이다. 그건 내가 매일 기사마감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어떤 영화든 대체로 한번밖에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두번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나도 두번 보고 쓰고 싶다.”“글을 쓸 때 이 글을 읽을 독자가 알 수 있는 말로 써야 한다. 신문을 사서 읽는 사람들이 글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면 소용없는 것이다.”

[김남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어금니 꽉 깨물고 스마일

벚꽃 소식이 한창이던 지난주. 21세기인 지금과는 이미 세기부터 차이가 나는 1999년, 제가 처음 서울에 올라와 직장생활을 할 때 동료였던 이가 참 안타까운 나이에 세상을 먼저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이란 곳은 참 신비로운 곳입니다. 고인에 대한 애끊는 이별이 있는가 하면 그런 때 아니면 못 만나는 이들과의 반가운 해후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테마인 장례식장에서 산 자와의 만남을 향유한다는 것 자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이겠지요. 현역 프로 레슬러이자 격투기 해설위원이며, 종종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얼굴을 들이미는 저에게 서로 안부를 물으며 근황을 이야기하다보면 99% 듣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말을 들을까요? 대화의 흐름은 대략 이렇습니다. 요즘 한국에선 프로 레슬링 경기가 별로 없어서 주로 일본에서 경기를 한다고 하면 여비는 어떻게 충당하냐고 묻습니다. 주최사에서 파이트머니 외에 비행기표값과 호텔비를 따로 지급한다고 하면 하는 말이, “참 재밌게 사네”입니다. 이젠 제법 귀에 인이 박여서 그러려니 하고 넘길 법도 한데 그날따라 500번 사포처럼 저도 까칠해지더군요. 아는 형네 집에 얹혀살면서 한솔엠닷컴 018 휴대전화를 쓰던 시절의 지인. ‘오래된 인연이니까 날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내 기분을 망치는 말은 하지 않을 거야’라는, 저도 모르게 내심 기대를 한 게 있었나 봅니다. 세상을 떠난 고인이 계신 곳이니만큼 그리고 이젠 햇수로 두 자릿수를 훌쩍 넘긴 사회생활 경력의 중요한 득템인 포커페이스로 표정과 내면을 격리시키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재밌게 산다는 말은 분명 그 문장만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생산직이나 사무직 노동자에게 사용하지 않습니다. 친숙하지 않거나 또는 간단명료하게 정리가능한 영역의 직업이 아닌 사람들이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프로레슬러, 만화가 또는 영화평론가 같은 사람들 말이죠. 재밌게, 라는 말은 사전적으로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지 않지만 이런 경우 이 문장의 청자가 별다른 노력없이 색다른 취향과 행운을 버팀목 삼아 세상을 즐기고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결코 그런 것은 아닌데 말이죠. 현역에서 활동 중인 프로 레슬러 수가 지리산의 야생반달곰 수보다 적은 나라에서 활동하면서 이웃 나라에서 항공비와 호텔까지 제공받으며 원정경기를 하기까지, 제가 얼마나 링 위에서 많이 거꾸로 박히고 철제의자로 두드려 맞았을까요. 얼마 전까지 만화책을 공터에 쌓아놓고 화형식을 했던 나라입니다. 출판만화시장은 거의 궤멸됐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만화가들은 어떤 생존철학을 갖고 있어야 할까요. 영화평론가요? 지금 독자가 보시는 이 글이 실린 이 잡지가 1천만 영화가 뻥뻥 터지는 이 나라에서 유일한 인쇄매체 영화잡지입니다. 참 재밌게 사네. 이 말이 제 머릿속에서 계속 빙빙 돕니다. 그러면서도 저부터 타인이 노력해서 얻은 결과를 의미없이 격하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봅니다. 참, 그리고 저는 재밌게 사는 게 아닙니다. 엄청나게 치열하게 사는 겁니다. 어금니가 빠개지도록 꽉 깨물고 사는 겁니다.

혼자가 되고 싶니? 라디오를 켜!

지난해 ‘당신의 TV는 텍스트다’ 특집에서 <다큐멘터리 3일>에 대한 글을 썼는데, 1년 사이에 많은 게 바뀌었다. 대통령도 바뀌었고, 내 나이 뒷자리도 바뀌었고, <씨네21> 편집장도 바뀌었고, 꽃잎이 떨어지는 자리도 바뀌었고, 그리고 또, 셀 수 없이 많은 게 바뀌었을 것이다. 도도한 시간의 물살이 우리를 어디론가 이끌어가고 있는데, 같은 컨셉의 원고를 2년 연속 같은 필자에게 청탁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곁들여 달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겠지(아니면 편집부가 게으른 건가, 하하하, 저야 좋습니다만). 1년 사이 즐겨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많이 바뀌었다. 바뀌었다기보다 요즘엔 텔레비전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내가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 텔레비전이 내게서 멀어지고 있는 것인지, 우리 둘 다 서로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것인지, 아무튼 좀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다. 즐겨 보던 예능 프로그램도 이젠 좀 지지부진하고 내 마음을 확 잡아 끄는 프로그램도 없다보니 텔레비전 켤 일이 줄어들고 있다. <무한도전> <썰전> <인간의 조건>이 그나마 챙겨 보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내 마음속의 영원한 1등 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이하 <라디오 스타>)가 있다. 지난해 ‘당신의 TV는 텍스트다’의 청탁을 받고 곧바로 <라디오 스타>를 떠올렸지만, <라디오 스타>는 ‘물’ 같은 프로그램이고 <다큐멘터리 3일>은 ‘탄산수’ 같은 프로그램이다보니 좀더 쓸 얘기가 많은 ‘탄산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물’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졌다. 라디오의 원리로 만든 TV 프로그램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나만의 방이 필요할 때마다 책상 위의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사람들의 말소리가 내 주위의 커튼이 되었고, 나는 언제나 혼자있을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울 때도, 밖에서 누군가 시끄럽게 떠들 때도, 내 주변의 소리들이 지옥의 비명처럼 느껴질 때도, 수학책으로 몰입해 들어가고 싶을 때도(이건 좀 효과가 없더군)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는 다른 차원으로 나를 데리고 가는 웜홀이었고,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망토였고, 외부로부터 나를 방어해주는 보호막이었다. 현실이 불쾌하고 사는 게 고역이던 한 예민한 아이는 라디오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거기서 들었던 음악을 다 기억하고 있다. 거기서 들었던 말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유머도 거기서 배웠고, 책도 거기에서 알았다. 라디오 속에 등장하는 사연들을 들으며 그런 친구들을 사귀고 싶었다. 라디오가 없었다면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라디오 스타> 소개에서 ‘라디오’ 얘기를 이렇게 길게 쓰는 것은 프로그램 제목이 ‘라디오 스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디오 스타>가 ‘라디오’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라디오 스타>가 첫 방송을 시작할 때는 좀 어이없어 보이긴 했다. 보이는 라디오와 다를 게 없었다. 2인자들로 구성된 진행자들은 일어나기도 귀찮아했고, 앉아서 떠들기만 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메인 DJ’라는 말도 안되는 설정부터 게스트를 불러놓고 자기들끼리만 떠들고 있는 황당무계한 진행 방식까지,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프로그램치곤 모든 게 낯설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 낯섦이 매력으로 변했다. <무릎팍도사>에 밀려 때론 5분 방송의 굴욕도 당하고, 때론 통편집의 수모도 겪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독자적인 프로그램이 됐다. <라디오 스타>는 무리해서 많은 걸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이지만, 보여주기보다는 들려주려고 한다. 예쁜 풍경도 없고 화려한 세트도 없다. ‘고품격 음악방송’이라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매주 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언제나 조촐하고, 옹색하고, 소박하다. 공연 세트 한번 만들어놓고는 오랫동안 생색을 낸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놓은 다음 네 검객들의 본격적인 쇼가 시작된다.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이 과도를 들고 게스트들의 껍질을 예쁘게 까준다면, <라디오 스타>의 DJ들은 좀더 큰 칼로 마음을 깊이 찌른다. 게스트들만 찌르는 건 아니다. 옆에 앉은 DJ를 서로 찌르기도 하고, 자신을 찌르기도 하고, 때로는 누굴 찌르는지도 모르고 찌르기도 한다. 껍질은 진작에 다 벗겨졌다. 상처가 남지만, 이것은 누구의 상처일까. 모르겠다. 때로 <라디오 스타>는 말로 하는 굿판 같기도 하다. 신나게 웃고 떠들고 나면 뭔가 바뀌어 있다. 좋아하지 않았던 게스트인데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싫지 않다. 좋아하기엔 아직은 힘들지만 싫어할 수는 없다. 선을 넘고 도를 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사람을 사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는다. 말 때문이다. 어떤 말은 너무 부족하고, 어떤 말은 너무 과한 것 같다. 어릴 때 우리는 몸으로 친해졌지만 이제는 말로 친해진다. 자신과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과 친해지기 힘들다. 때로는 그게 걸림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고 싶은 말, 속에 있는 말 다 하고 나서야 친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자신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라디오 스타>를 보면서 (또는 들으면서) 말의 수위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라디오 스타>에는 선을 넘어가는 말의 쾌감이 있고, 도가 지나친 농담의 악랄함이 있다. 속이 시원할 때가 많다. 어릴 때 라디오를 들으면서 느꼈던 말의 쾌감을 <라디오 스타>에서 다시 듣고 있다. <라디오 스타> 제작진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주로 <라디오 스타>를 듣는 편이다.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라디오처럼 이용한다. 들으면서 그림 작업을 하거나 영상 편집 작업을 한다. 그러다 가끔 이상한 묘기 자랑 같은 걸 할 때만 영상을 본다. 그렇게 듣기만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들은 내게 진정한 라디오 스타다. 어릴 때와 달리 지금은 내 방도 있고, 작업실도 있지만, 완전한 혼자가 되고 싶을 때 소리로 나를 둘러싼다. 아늑하다. 다음주 방송분이 최고? <라디오 스타> 최고의 에피소드 ‘해돋이 특집’ 단언컨대, 단 한회도 재미없었던 적은 없다. <라디오 스타>는 게스트가 중요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아, 이번엔 정말 내가 싫어하는 게스트네’라고 생각할 때도 재미있고,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게스트네’라고 생각할 때도 재미있다. 김구라가 빠진 게 1년이나 지났는데, 그게 좀 아쉽긴 하다. 진정한 드림팀이 되려면 김구라와 신정환까지 가세해서 6인 체제로 가야 한다(와, 정말 난장판이 되겠구나). “저의 대표작은 지금 쓰고 있는 작품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범하고 뻔뻔한 소설가처럼(그게 접니다!) <라디오 스타>의 최고회는 아직 보지 못한 다음주 방송분이다. 그래도 꼭 하나 꼽으라면, 지난 연초에 있었던 ‘해돋이 특집’이다. 예고편을 보다가 그렇게 ‘빵’ 터진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머리카락 없는 것도 서러운데 그걸 이용해서 ‘해돋이 특집’을 기획하다니, 도대체 예의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야, 라며 박수를 쳐주었다. <라디오 스타>는 프로듀서와 작가, DJ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발 더 나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작가들이 챙겨오는 깨알 정보들은 ‘도대체 저런 걸 어디서 캐왔나’ 싶은 것들이 많다. 프로듀서들의 의연한 자막도 많다. ‘레전드’로 꼽히는 것 중에 이런 자막이 있다. ‘신나는 명절/ 정이 넘치는 한가위/ 환상의 연휴/ 정말 꿈만 같으셨죠?/ 신나는 휴일도 오늘로 끝!/ 차분한 일상을 위한 마지막 추석 파티!/ 여기는 고품격 추석 특집 방송’. DJ들의 오프닝을 자막으로 내보낸 것인데, 평범해 보이지만 앞 글자만 추려보면 ‘신정환 정신차려’다. 이런 멋진 사람들 같으니라고.

[영하의 날씨] 지금 누굴 연기하고 있나요?

“다른 사람인 척해본 적 있어요?” 몇년 전 지인과 그의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일이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지인의 아내가 되물었다. “살아오면서 자기 정체를 감추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해본 적이 있냐고요. 실제 생활에서든 인터넷에서든.” “없는데요.”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일까? 나는 그녀의 즉각적인 부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연 자기 정체에 대해 늘 진실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공항의 입국 카드나 웹사이트 가입신청서에 언제나 진짜 직업을 적고 칵테일파티장에서 어떤 허세도 부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얼마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더러 아주 심한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 기혼인데도 미혼이라고 한다거나 비정규직인데도 정규직처럼 행세한다거나 출신 학교를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상대방의 오해를 유도하기도 한다. 몇년 전 시끄러웠던 신정아씨 같은 경우는 극단적으로 심하게 정체를 윤색한 경우일 것이다. 그녀는 심지어 자기가 정말로 예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다고 믿어버린 것 같았다. “제가 예일대학이 있는 뉴헤이븐에 한번도 안 간 것은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학위를 딴 것만은 확실해요.” 이런 말이 얼마나 이상한 말인지 모른다는 것부터가 그녀가 얼마나 자기의 가짜 정체에 깊숙이 빠져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택시를 타고 자기가 근무하는 대학으로 가자고 하면 기사가 자꾸 교수냐고 묻고, 그렇다고 하면 무슨 과 교수냐고 또 묻고, 그래서 경제학과라고 하면 내릴 때까지 이 나라 경제에 대한 기사의 강의를 들어야만 하기 때문에 늘 전공을 물리학과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그의 술책은 북한 핵에 엄청난 관심을 가진 택시기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잘 먹혔다고 한다. “물리학이라… 혹시 핵물리학자 아니시오?” “아, 아닙니다. 그냥 이론 물리학자입니다”라고 했지만 택시기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 핵이 얼마나 심각한 위협인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더란다. 그 뒤로는 천체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한다. 기자들은 곧잘 취재를 위해 직업을 위장하고 작가들 역시 작가라고 밝혔을 때 겪게 될 부작용을 우려해 이런저런 다른 ‘대체’ 직업을 갖고 있다. 10여년 전에 갓 등단한 20대 여성 작가 세명이 인터넷에서 알게 된 남자 셋과 오프에서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여성 작가들은 인터넷 채팅 때부터 장난 삼아 자신들의 정체를 텔레마케터로 위장했다. 오프에서 만난 회사원 셋과 가짜 텔레마케터 셋은 꽤나 즐거운 술자리를 벌였다. 취흥이 꽤 오르자 여성 작가 한명이 자기의 진짜 정체를 밝혔다. “실은 우리 모두 작가거든.” 남자들은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럼 검색해 봐. 진짜라니까.” 결국 남자 한명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여자 셋이 모두 작가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자 남자들은 불같이 화를 내더니 모두 나가버렸다고 한다. 이 얘기를 내게 전하면서 그들은 물었다. “남자들은 우리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에 화가 났던 걸까요, 우리가 작가여서 화가 났던 걸까요, 아니면 텔레마케터가 아니어서 화가 났던 걸까요?” 내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텔레마케터 연기는 재밌었어?” 그들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의 그들은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연극배우들처럼 보였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의 배우들은 모두 중죄를 범한 수감자들이다. 영화에서 이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를 연기한다. 살인이나 조직범죄에 연루된 수감자들이 브루투스가 시저를 암살하는 장면을 연기한다는 것은 설정에서부터 대단히 흥미롭다. 원로원이 배경이지만 시저의 암살은 엄연한 살인이고, 그것도 조직범죄다. 이들은 대중에게 인기가 높은 독재자 시저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모두가 알다시피 <줄리어스 시저>는 영국인 셰익스피어가 중세 말기 영어로 쓴 희곡이다. 그것을 현대 이탈리아어로 다시 번역해 공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극중 수감자들은 “에이, 그건 나폴리 사투리라고 할 수 없지”라며 다툰다. 배경은 고대 로마이고 원작은 셰익스피어이며 공연장은 다시 현대 로마의 감옥이다. 영화는 수감자들이 연극을 제작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종의 페이크다큐에 가깝다. 그러니까, 수감자들은 ‘교도소에서 <줄리어스 시저>를 무대에 올리는 수감자들’을 연기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수감자들이 극중극인 <줄리어스 시저>의 장면들을 연기할 때는 대단히 그럴듯한데, 오히려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연기할 때는 매우 어색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연기 연습을 마치고 자기 감방으로 돌아와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구나” 같은 대사를 치는 장면은 브루투스와 시저, 안토니우스를 연기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부자연스럽다(대사 자체도 일부러 저런 것을 넣었을까 싶게 오글거린다). ‘극중 인물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혹은 ‘극과 현실을 혼동한 나머지’ 수감자들이 서로 다투거나 불화하는 장면 역시 어설프기는 마찬가지다. 수감자 배우들은 시저와 브루투스 역할은 멋지게 해내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의 역할은 잘해내지 못했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를 보고 나오면서 떠올린 것은 오래전에 한 연극연출가와 나눈 대화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극을 싫어하는 사람 못 봤습니다. 보는 건 지루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하는 거 지루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군인이든 학생이든 정신병원의 환자든 막상 연기에 들어가면 바로 몰입하거든요.” “사람마다 연극적 자아라는 게 따로 있는 건가요?” 내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인간에게 연극적 자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연극적 자아가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어릴 적 소꿉놀이를 생각해보세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데도 아이들은 엄마, 아빠, 의사와 간호사를 연기합니다. 인간은 원래 연기자로 타고납니다. 이 본성을 억누르면서 성인이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 다른 사람인 척하려는 욕망을 억누르면서 사회화가 되는 겁니다. 연극은 사람들 내면에 숨어 있는 이 오래된 욕망, 억압된 연극적 본성을 일깨웁니다. 그래서 연기하면 신이 나는 거예요.” 그의 말은 <시저는 죽어야 한다>에서 죄수들이 왜 <줄리어스 시저>의 배역은 태연하게 소화하면서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연기하는 일에는 서툴렀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힌트를 준다.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존재,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끝없이 변화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게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가장 연기하기 어려운 장면은 바로 우리의 일상일 것이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마릴린 먼로를 모델로 한 역작 <블론드>에서 조 디마지오와의 결혼 생활, 즉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을 힘겨워하는 마릴린 먼로의 육성을 들려준다. “대디, 난 무서워요. 영화 밖 실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장면은 왜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걸까요?…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일상에서는 누구도 ‘컷’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삶은 때로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것만 같다. 그럴 때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주면 참 좋을 것이다. “자, 다시 갑시다.”

[현지보고] 익숙함 속에서 빛나는 영화 길어올리기

지난해 황금종려상을 가져간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사랑’이라는 뜻)가 영감이라도 제공한 걸까. 5월15일 개막한 제66회 칸영화제는 핑크빛 무드로 가득하다. 시각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랑의 이미지는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 외벽을 둘러싼 공식 포스터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입을 맞추는 포스터 속 두 남녀는 칸이 사랑한 미국인 배우 부부,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다. <뉴 카인드 오브 러브>(1963)의 현장 사진을 기반으로 한 이 포스터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올해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인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해 수많은 미국 감독들이 프랑스의 작은 소도시 칸의 품에 안길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주의 감독의 귀환 66회 영화제 개막에 앞서 칸을 뜨겁게 달군 이슈는 미국 작가주의 감독들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코언 형제, 스티븐 소더버그, 제임스 그레이, 알렉산더 페인, 짐 자무시 등 다섯 미국 감독들의 신작이 올해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경향이 새삼스럽진 않다. 지난해에도 제프 니콜스의 <머드>, 앤드루 도미닉의 <킬링 뎀 소프틀리> 등 다섯편의 미국영화가 경쟁부문에서 자웅을 겨뤘으니까. 하지만 올해의 이름들이 훨씬 더 묵직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해 영화제가 독립 제작사를 주축으로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진입한 미국 인디 감독들의 신작을 선보였다면, 올해는 파라마운트, 웨인스타인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손길을 거친 노련한 미국 작가들의 영화들이 경쟁부문에 포진해 있다. 과연 “올해의 경쟁부문은 아메리칸 시네마의 강렬한 힘을 보여줄 것”이라는 예술감독 티에리 프리모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더불어 66회 영화제의 개막작인 <위대한 개츠비>(바즈 루어만)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개막작 <더 블링 링>(소피아 코폴라)이 미국영화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칸과 오스카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두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리안이 올해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았다는 점도 미국에 열렬한 러브콜을 보낸 올해 칸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현지 언론과 미국 매체들은 앞다투어 칸과 할리우드의 밀월 관계가 본격적으로 재개됐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 작가들이 황금종려상에 한발 더 다가섰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들과 더불어 경쟁부문에 무게감을 더할 이름있는 감독들이 이번 영화제엔 가득하기 때문이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로만 폴란스키, <천주정>의 지아장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이 칸 경쟁부문에 이름을 아로새겼다. 그런데 바꾸어 말하면 올해 칸의 경쟁부문은 대개 익숙한 감독들의 차지다. 19명의 경쟁작 감독 중 13명이 이미 같은 부문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으며, 그중 세명- 코언과 소더버그, 그리고 폴란스키- 은 황금종려상 수상자다. 이외의 감독들도 신선하다고 보긴 어렵다. 칸의 다른 부문에 초청돼 이미 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 스테판 들로름은 칸영화제 특별판 에디토리얼을 통해 올해 경쟁부문에 저예산영화와 젊은 감독들이 부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무엇이 작가영화의 입지를 어렵게 만드나? 우리의 삶을 주시하고, 열정적이고 섬세한, 어느 감독의 첫 영화 혹은 저예산영화는 대중의 관심을 끌 수는 없는 걸까? 왜 이런 영화들은 칸 경쟁작에 출품할 수 없나?” 그의 말대로 확실히 올해 칸의 경쟁부문은 새로운 발견보다 안정적인 이름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세계를 확립한 감독들이 고유의 자장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변주해나가는지에 주목하는 것도 오래전부터 칸이 해왔던 역할이다. 성과 가족, 관계에 대한 드라마의 강세 개막 이틀째를 맞이한 영화제의 메인 거리인 크루아제의 분위기는 차분한 편이다. 마치 영화제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퍼붓는 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의 칸엔 극장에서 뛰쳐나가 구호를 외치고 싶은 충동을 유발하는, 사회/정치적 메시지로 가득한 영화가 없다. 오히려 극장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영화 속으로 끝없이 침잠해 들어가고픈 내밀한 테마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마조히즘과 성의 역학 관계를 다룬 동명 소설이 원작인 폴란스키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 10대의 성을 다룬 프랑수아 오종의 <영 앤드 뷰티풀>과 압델라티브 케시시의 <라이프 오브 아델>, 미국 뮤지션 리버레이스와 동성 연인의 삶을 조명한 스티븐 소더버그의 <비하인드 더 칸델라브라>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하지만 티에리 프리모는 이들 영화 중에서 올해 칸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작품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장담한다. 몇몇 작품의 감독들은 “섹슈얼리티라는 테마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실험하는 듯 보인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올해의 경쟁작들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테마는 ‘가족’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많은 감독들이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의 이면을 탐구하려 한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오직 신만이 용서한다>는 가족의 죽음에 복수를 다짐하는 모자의 이야기고, ‘어반 웨스턴’을 표방하는 미이케 다카시의 <짚의 방패>는 손녀딸을 죽인 남자의 머리에 어마어마한 상금을 거는 백만장자 아버지에 대한 영화다. 알렉산더 페인의 로드무비 <네브래스카>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카메라를 놓는다. 전반적으로 2013년의 칸영화제는 관계에 대한 드라마들이 강세를 보인다.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나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처럼 추상적이고 거대한 개념을 좇는 영화들은 올해 경쟁부문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아마 2013년 칸에 당도한 예술가들은 우주와 지구의 섭리보다는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황금종려상의 향방을 점치는 이들의 의견이 올해만큼 분분했던 적도 없다. 무엇보다 심사위원 아홉명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달라 도무지 그 속을 가늠할 길이 없다. 역사드라마부터 장르물까지 드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에 관심을 표해온 스필버그의 한표는 어느 작품으로 향할 것인가. 진지한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안 문주와 쉽게 타협하지 않는 일본 감독 가와세 나오미, 예리한 감각을 지닌 영국 감독 린 램지의 선택은 어떻고. 프랑스 잡지 <텔레라마>와의 인터뷰에서 스필버그는 “민주주의!”라는 말로 심사위원장으로서 자신의 나아갈 길을 설명했지만 역시 부담을 느끼는 모양인지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는 “마지막 결정의 날을 준비하며 시드니 루멧의 <12명의 성난 사람들>(살인사건에 판결을 내리는 배심원들의 이야기다-편집자)을 봐야겠다”는 말로 기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이렇게 성대한 영화 축제의 막이 올랐다. 지금은 극장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기자회견 “영화제, 경쟁은 없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소감, 그리고 심사의 기준을 말해달라. =크리스티안 문주_영화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건 정말 힘들다. 나는 감독이 진솔함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볼 거다. 감독으로서의 첫 의무는 그가 원하는 걸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고. 리안_진솔함은 정말 필수다. 그 점을 본 뒤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미학과 정치, 사회적인 관점에 대한 숙고를 거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도 못 이을 만큼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 있을 거다. -스필버그에게 묻겠다. 당신이 등의 영화로 칸을 찾았을 때 주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며 느낀 소감을 말해달라. =스티븐 스필버그_나는 우리가 판단을 내리고, 영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평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관객의 이목을 끄는 좋은 경쟁이 존재한다는 점을 안다. 엄선된 관객의 취향을 놓고 경쟁하는 영화들도 있다. 그러나 사과와 오렌지의 차이점을 말하는 건 나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영화제를 경쟁으로 보지 않는다. 이건 영화를 축하하는 2주간의 행사지 한 영화를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며 경쟁하는 2주가 아니다. -스필버그와 리안에게 묻는다. 당신 둘은 올해 오스카를 앞두고 <링컨>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캠페인을 벌인 라이벌이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다시 만난 소감을 말해달라. =리안_스티븐과 나는 좋은 친구다.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는 나의 영웅이다. 스티븐 스필버그_우리는 경쟁자였던 적이 없다. 우리는 항상 동료였다. 나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리안도 존경한다. 칸의 심사위원이 되어 좋은 점 중 하나는 여기에 캠페인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이다.

[신 전영객잔] 강우석 스타일을 지지함

나에게 강우석의 영화는 늘 옛날 미국영화의 무구한 오락적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공공의 적> 이후, <한반도>를 제외하곤 난 늘 그의 영화를 일관되게 지지해왔다. <전설의 주먹>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영화가 예상만큼 흥행하지 못한 것을 두고 놀랐다. 나는 이 영화의 건전한 오락적 가치가 충분히 대중적으로 통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편의 영화의 흥행 여부를 작품 자체의 가치만으로 판별할 수는 없다. 다른 대다수 영화에 비해 긴 상영시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한계라는 것도 이 영화의 흥행 스코어를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웠던 언론의 호평에 비해 이 영화가 상대적으로 낡았다는 상당수의 비판적 시각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를 옹호하고 싶다. <전설의 주먹>이 다루고 있는 삶의 남루함이라는 소재에 외면할 수 없는 강우석의 윤리적 정직성이 스며들어 있고 그가 묘사한 인물의 유쾌한 자기 존엄 긍정에 동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업 스타일과 영화적 어법의 상관관계 강우석의 현장 지휘는 빠르고 효율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촬영현장을 두세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늘 해가 지기 전에 그날의 촬영분이 끝났다. 그는 촬영을 마치면 배우들과 주요 스탭들을 데리고 어딘가 정해놓은 맛집에서 굵고 짧게 회식을 가진 다음 숙소로 돌아간다.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연출한 존 포드에 관한 다큐멘터리 <디렉티드 바이 존 포드>를 보면, 존 포드가 모뉴먼트 밸리에서 서부극을 촬영할 때 네시나 다섯시에 촬영을 마무리하고 매일 밤 캠프파이어를 즐겼다는 일화가 나온다. 제작부는 촬영 준비만큼이나 매일 바뀌는 캠프 파이어의 놀이 메뉴를 정하는 것이 주요 일과였고 신선한 잔치 코스를 준비하지 못하면 존 포드는 매우 언짢아했다고 한다. 이 얘기를 강우석과 작업했던 배우와 사석에서 나눴더니 그의 답은 이랬다. “그건 강 감독님 현장과 똑같네요. 우리도 매일 그렇게 놀았어요.” 촬영현장의 작업속도가 빨랐다는 것은 거꾸로 조명 세팅에 들이는 시간이 그만큼 짧고 신속했다는 뜻이다. 강우석의 영화는 빛에 둔감하고 이는 그의 영화가 낡아 보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는 드라마의 줄기와 등장인물의 감정선만 살아 있으면 다른 것은 크게 개의치 않는 유형의 연출자이다. 스탭들을 자주 바꾸지도 않는다. 류승완은 그의 그런 성향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 대해 잘 지적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이준익 감독과 마찬가지로 그의 가장의식이 문제다. 그는 헤드스탭들이나 조/단역배우들을 웬만하면 늘 함께하던 충무로 사람들로 쓰려고 한다. 그 사람들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의식이 그의 영화를 좀 낡아 보이게 한다.” 강우석도 비슷한 말을 사석에서 한 적이 있다. “난 영화작업이 잔치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늘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즐겁게 영화 찍으면서 작업이 끝나면 맛있는 것도 먹고 서로 격려하면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 그 재미가 없으면 영화할 이유가 없다.” 물론 이것이 강우석 영화의 둔탁한 빛의 질감과 예산에 비해 감각이 떨어지는 듯이 보이는 프로덕션 디자인의 낙후성을 변명해주진 못할 것이다. 나는 거꾸로 이게 강우석이 영화를 대하는 어떤 태도, 이미 1980년대 말에 일찍 감독으로 데뷔한 그가 충무로에서 익힌 영화적 어법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화적 프레임의 관능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연출을 익히지도 않았고 현장에서 정해진 예산으로 빠르게 영화를 찍는 법을 배웠다. 그가 영화적 앵글을 고민했다기보다 자기만의 호흡으로 비로소 접수한 듯이 보인 것은, 특히 클로즈업 효과의 강렬함 면에서 <공공의 적> 때부터였다. <실미도>에서도 그랬고 <공공의 적2>에서도 그의 클로즈업이나 대화장면 연출은 상투형을 넘어서는 간결한 인상이 진했다. 누아르의 분위기가 강한 원작 만화를 스크린에 옮긴 <이끼>에서도 그는 빛을 다루는 데 무심한 자신의 연출 스타일을 고수했고 대신 몇몇 인상적인 배우들의 결정적 순간을 담아냈다. 정재영과 유해진과 유선과 유준상은 자신들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가장 강력한 외형을 이 영화에 남겨놓았다. 이 남자들의 걸음걸이를 보라 <전설의 주먹>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영화에서 임덕규를 연기한 황정민의 어중간한 걸음걸이를 좋아한다. 그는 미적미적 걷는다. 황정민이 연기하는 임덕규는 한때 전도유망한 복서였으나 그 전망을 이루는 데 실패하고 아내와 사별한 뒤 손님이 들지 않는 국숫집을 운영하는 가난한 중년 남자로서, 딸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무기력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최적의 걸음걸이와 미적지근한 태도를 갖추고 있다. 이는 어린 시절의 임덕규를 연기한 (이미 <파수꾼>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박정민의 간결하고 모나지 않은 절도있는 행동과 비교된다. 과거와 현재가 오가는 영화의 구성에서 젊은 임덕규는 민첩하고 군더더기 없는 자세를 갖추고 있는데 나이 든 임덕규는 어딘가 모르게 허술하다. 영화에서 대비해 보여주는 폭력장면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겠다. 임덕규는 고교 시절에 복서로서 또래들의 폭력에는 가담하지 않으려고 한다. 주먹깨나 쓴다고 알려진 아이들이 그의 곁에 모이지만 임덕규는 끝내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가 폭력을 쓰는 것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당한 판정패를 당한 뒤 친구들과 밤거리를 배회하면서 건달들과 호기있게 붙어본 것뿐이다. 상당히 양식화된 형태로 진행되는 이 패거리 싸움에서 어린 임덕규는 끝까지 절도있게 자세를 갖추고 싸운다. 여기서 그가 폭력을 행사하는 폼은 남자다운 기개를 유치하게 과시하려는, 링 위에서는 끝내 인정받지 못한 실력을 증명하려는 것이고 이 기개는 아주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서둘러 패배로 끝난다. 싸움실력을 과시한 임덕규와 친구들에게 하달되는 바깥세상으로부터의 주문은 폭력 하청배의 일이고 아이들은 그 일에 휘말려 허둥지둥 도망치거나 사로잡혀 인생을 그르친다. 나이가 들어 케이블TV의 격투기쇼 상금을 획득하기 위해 출전한 링 위에서 임덕규는 주먹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마냥 어색해한다. 여기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로서의 폭력은 어린 시절 호기있게 휘둘렀던 주먹마냥 가볍지 않은 실존적 근심을 임덕규에게 던져준다. 그는 잠깐 동안의 폭력행사로 인생을 그르쳤고 이제 청춘기를 바쳤던 복싱 실력을 돈을 벌기 위해 중인환시리에 써야 하지만 망설일 수밖에 없다. 어른이 된 상태에서 그는 폭력을 통해 존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 주먹을 휘둘러야 한다는 자본제적 폭력적 상황에 대해 맞서지도 못하고 망설인다. 영화의 대단원에서 그가 거북이라 불리는 싸움꾼과 힘겨운 격투기를 벌일 때 정두홍의 무술연출은 다소 억지로 버티고 있는 듯한 배우 황정민의 근육과 뼈가 실제로 훼손당하고 있는 듯한 충격을 관객에게 전해준다. 닭장처럼 조악하게 설계된 격투기장에서 황정민이 연기하는 임덕규가 실전무술의 기술을 조금씩 발휘하며 힘겹게 버틸때 사실상 이 장면들에서 연기하는 것은 배우 황정민의 얼굴이 아니라 그의 근육과 살들이다. 그는 돈과 명예 사이에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버티는 상태에서 자기 존엄을 걸고 여하튼 싸운다. 이 대단원의 장면과 비슷한 감흥을 주는 장면은 임덕규가 친구들에게 린치당하고 처참한 몰골이 된 딸을 보고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딸 친구들의 계략에 빠져 한적한 야산 공원에서 불량 학생들과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다. 임덕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풀이하는 듯한 아이들의 객기 어린 가학적 폭력본능을 다스리려 하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른 덕규에게 모욕을 준다. 이윽고 벌어지는 싸움판에서 임덕규는 전광석화와 같은 펀치로 아이들을 다 때려눕히지만 여기서 카타르시스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 장면에서도 때리는 자와 맞는 자의 의미의 맥락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임덕규는 이 폭력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지만 맞는 아이들은 모른다. 그건 마치 격투기쇼가 벌어지는 닭장 같은 결투장에서 돈을 위해, 또는 명예를 위해 대드는 상대방들과 달리 임덕규는 그 폭력의 무의미를 체감하는 것과 같다. 폭력은 남들에게 보여지기 위한 것으로서만 의미있다. 주인공이 아이들이었을 때 폭력의 행사는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자랑스런 표식이다. 그 표식은 유치하고 무의미한 것이지만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도 가학과 피학이 공전하는 이 폭력의 보여지는 것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격투기쇼를 계속할 것을 망설이는 임덕규에게 이요원이 연기하는 TV 쇼의 연출자는 아버지라면 돈이 되는 것이면 뭐든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다그친다. 이 폭력은 돈을 벌기 위한 쇼로서의 도구이다. 강우석은 직설적 비유로 이 물리적 폭력의 실세를 자본주의적 위계관계의 폭력과 겹쳐놓는다. 유준상이 인상적으로 연기하는 이상훈은 학창 시절 단짝이었던 친구가 회장으로 있는 대기업의 홍보부장으로 일하고 있는데, 영화 속 우리가 그를 처음 보게되는 장면에서 그는 룸살롱에서 주먹에 피를 흘릴 만큼 기물을 때려부순 회장님의 폭력 뒤처리를 하고 있다. 그는 회장님이 자본제 사회에서의 갑의 권력을 우월하게 행사하는 동안 그 뒤에서 후유증을 처리하고 있다. 황정민의 임덕규가 미적거리는 동작으로 실패자의 존엄을 형상화한다면 유준상의 이상훈은 절도있는 동작으로 겉으로는 성공한 직장인이되 속으로는 끝없이 굴욕을 감수하는 자의 치욕을 감춘다. 이상훈이 어느 언론사 편집국장과 접대 술자리를 가졌을 때 상대방 부장은 독한 소맥잔을 연거푸 이상훈에게 강제로 권하면서 회장의 수하인 그의 지위를 조롱한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술잔을 다 받아마신 이상훈이 회사로 돌아올 때의 걸음, 성큼성큼 한 발자국도 멀쩡한 자의 자세를 잃지 않겠다는 듯이 걷는 반듯한 걸음은 유준상의 늘씬한 양복 매무새에 드러나는 육체적 존엄과 잘 어울린다. 그는 끊임없이 모욕받는 직장인이지만 그 모욕을 자신의 정중한 동작으로 감추고 승화한다. 유준상이 사내에 들어와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걷다가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우억거리고 난 다음에 재빠르게 자세를 추스르며 다시 씩씩하게 걸어가는 자세는 아름다웠다. 존엄, 순정, 그리고 다짐 <전설의 주먹>은 결국 인간의 자기 존엄 회복에 관한 이야기이고 사나이들의 순정에 관한 이야기이며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고 하는 다짐에 관한 영화이다. 아빠의 순정이 영화의 전면에 주제로 제시되고 있지만 동시에 격투기장의 난잡한 세트모형이 암시하는 우리 삶의 누추한 실상에 관한 영화이고 그것과 평행을 이루며 제시되는 대기업 회장과 조직폭력배 두목의 갑질하는 삶의 모욕에 관한 영화이다. 나는 이런 것들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보조 장치로 깔려 있다는 식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사회적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었을 뿐이고 그것에 반응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는 것에 영화가 주력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임덕규와 이상훈과 윤제문이 연기하는 유치한 마초 신재석은 그들의 경직된 육체들이 속절없이 허물어져가는 유사 스펙터클의 진경을 통해 그들의 마음까지 비춰 보여준다. 그들의 육체와 동작, 표정들은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 만큼의 탱탱한 긴장을 갖고 관객의 시선을 버티어낸다. 이것은 영화감독 강우석의 오랜 연륜이 해낼 수 있는 인상적 고정점이며 따라서 텔레비전 스타일로 퇴화했다거나 낡은 스타일의 효과라고 보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강우석은 삶의 누추함을 담는 한편으로 그것과 맞먹는 인간들의 존엄과 자존심을 자기 스타일대로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평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겠지만 나는 <전설의 주먹>이 좀 더 많은 관객과 행복하게 만나지 못한 게 애석하다. 강우석은 우리에게 무구한 오락적 가치를 보여준다. 그는 우리 삶의 상처와 증상을 세밀하게 파헤치는 대신 그걸 견디어내는 인간의 시각적 인장을 묘사하는 중견감독의 재능을 증명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강우석이 이 영화로 상처 입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할 것 같다. 그가 새 영화로 관객과 행복하게 만나길 바란다.

[영하의 날씨] 기묘한 우회 현명한 트릭

놀라운 일을 겪은 뒤에 그 놀라운 일을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마르코 폴로는 아랍 세계와 중국을 다녀와 <동방견문록>을 구술했지만 끝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까지도 <동방견문록>은 마르코 폴로가 뱃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이리저리 조합하고 윤색한 것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꽤 있고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당대 최대의 이벤트를 소재로 <일리아드>를 지었다. 이게 워낙 반응이 좋았던지 일종의 속편인 <오디세이아>도 만들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일리아드>의 스핀오프인 셈이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길고 긴 트로이 전쟁을 목마 하나로 승리로 이끈 꾀 많은 인물이다. 아킬레우스에게 무용에서는 뒤졌고 권세에서는 아가멤논을 넘어설 수 없었다. 그런데도 ‘독자’들은 그를 사랑했다. 호메로스와 그의 동시대 이야기꾼들은 이 사랑스러운 영웅의 천신만고 귀향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러 버전이 있었겠지만 현재까지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은 호메로스의 버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오디세이아>를 어린이를 위한 축약본으로 처음 읽었다. 서사시가 아닌 소설풍으로 개작된 이 <오디세이아>에도 있을 것은 다 있었다. 뱃사람들을 홀리는 사이렌, 바위를 집어던지는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 등. 그런데 얼마 전에 완역 <오디세이아>를 읽게 되면서 몇번이나 놀랐다. 어린 시절에 읽은 축약본과 지금 읽고 있는 이 <오디세이아>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우선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난 트로이를 출발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영웅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미움을 받아 끝없이 바다를 떠돌고 있는데 이 문제를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라고 항의하는 아테네로부터 막을 연다. 그 자리에 없었던 포세이돈을 제외한 뭇 신들의 묵인을 얻어낸 아테네는 행동에 나선다. 아테네는 오디세우스의 심약한 범생이 아들 텔레마코스를 찾아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먼저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텔레마코스는 어머니 페넬로페를 노리는 구혼자들의 방해를 무릅쓰고 배를 빌려 항해에 나선다. 그러니까 이야기 초반에 항해에 나선 사람은 우리의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그의 듣보잡 아들이었다. 외로운 섬에서 오랫동안 요정 칼립소에게 붙들려 있어 이제는 고향에 돌아갈 꿈조차 잃어버린 오디세우스는 헤르메스와 아테네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파이아케스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이곳에서 이 서사시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등장한다. 잔치에 초대받은 오디세우스가 한 유명한 가객이 오디세우스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장면을 직접 보게 되는 장면이다. 데모도코스라는 이름의 이 가객(어쩌면 이 가객은 호메로스 자신일지도 모른다)에 대해서 오디세우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좌중에게 소개되었을 때 (아직 정체를 밝히지 않은) 오디세우스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데모도코스!… 나는 모든 인간들 중에 특히 그대를 사랑하오. 그대는 아카이오이족의 불행을 그들이 행하고 당한 모든 것과 그들의 모든 노고를 마치 그대가 몸소 그곳에 있었거나 그곳에 있던 누군가에게 들은 것처럼 그야말로 제대로 노래하기 때문이오.” 그러면서 오디세우스는 ‘신청곡’을 내는데, 바로 자기 자신이 고안해 트로이성을 함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목마 얘기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가객이 이에 호응하여 트로이 목마 에피소드를 풀어놓자 당사자 오디세우스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울음을 터트린다. 그것을 보고 파이아케스의 왕 알키노오스는 그가 조금 전 이야기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임을 알아차린다. 이때부터 오디세우스는 데모도코스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아 자기가 직접 자기 고생담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그전까지 이야기의 저자가 데모도코스였다면 이 순간부터는 오디세우스 자신이 저자로 나서는 것이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방식인가.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가 ‘상연되’는 현장에 갑자기 등장해 자기 입으로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것.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이야기들, 예컨대 사이렌이나 키클롭스, “내 이름은 ‘아무도 아니’오” 등은 모두 이 부분에 들어 있다. 만약 <오디세이아> 축약본을 만들어야 하는 편집자라면 이 부분만 들어내 책으로 엮어도 된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디세우스가 자기 입으로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당대의 독자들에게도 믿기 어려운 것들이었을 것이다. 호메로스는 일련의 정교한 서사적 장치를 통해 이 믿기 어렵지만 매력적인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을 매우 부드럽고 능란하게 의심 많은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서두에서 벌어진 신들의 회의는 바다를 떠도는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오디세우스 자신에 의해 제시된 신비로운 고생담은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중층적 구조 안에 위치하게 되면서 그 진실성을 따질 필요가 없는 것으로 바뀌어버린다. 트로이의 목마를 구상해낸 그 ‘꾀바르’고 ‘지략많’고 ‘임기응변에 능’한 오디세우스가 하는 말 아닌가. 전부 꾸며낸 것이라 해도 좋고 전부 사실이라 해도 좋은 것이다. 어쩌면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물게 된 어떤 섬에서 여자 만나고 애 낳고 그럭저럭 진부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갑자기 돌아와서는 제 과거를 근사하게 꾸며내고 있다, 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재밌는 것은 오디세우스 자신의 입으로 전하는 이 신비로운 전설들의 환상성 덕분에 아테네와 제우스, 오디세우스의 아들과 페넬로페가 등장하는 서두는 상대적으로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호메로스는 마치 20세기의 포스트모던 소설가들처럼 이야기 구조를 중층적으로 배치해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굉장한 설득력을 덤으로 확보하고 있다. 마르코 폴로가 거듭하여 <동방견문록>에 수록된 모든 얘기가 다 진실이라고 주장했음에도 그 진위를 오래도록 의심받는 것과 비교해본다면 <오디세이아>라는 텍스트가 가진 이 기묘한 핍진성과 설득력은 참으로 놀랍다. 작가의 역량은 여러 가지로 평가될 수 있겠만 그중 하나는 그가 말하는 이야기를 독자로 하여금 얼마나 그럴듯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느냐일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오디세이아>와 유사한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항해 도중 지난한 고생과 신비로운 모험을 겪은 주인공은 먼 훗날 자신을 찾아온 한 소설가(그들은 만나기 전에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다!)에게 자신의 신비로운 고생담을 말해준다. 풍랑으로 부모를 잃고 호랑이와 구명보트에 올라 대양을 가로지르고 미어캣으로 가득한 식인의 섬에 기착하기도 한다. 이 믿기 어려운 전설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작가는 흥미롭게도 2800여년 전 호메로스의 트릭을 채택했다. 현명한 선택이었고 이 부분은 리안 감독의 각색 과정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호메로스는 이미 2800여년 전에 그런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모험을 택하기보다 안정을 고수하다

올해 칸영화제 수상 총평에 관련해서는 두 가지 소문부터 전하는 게 좋겠다. 심사위원들이 명확하게 두파로 갈렸다는 말이 떠돌았다. 하지만 프랑스의 주간지 <누벨 옵제바퇴르>는 심사위원 중 한명이었던 프랑스 배우 다니엘 오테유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전했다. “맹세하건대 심사위원들이 두파로 나뉘었다는 소문은 허위이다. 심사위원들간에 화합이 잘됐다. 우리는 공식적으로는 네번 모였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상영이 끝났을 때마다 만나서 토의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아무 문제없이 원활하게 의견을 나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무언가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할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화요일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쉬가르 파라디의 <과거>를 선호한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다. 그리고 폐막 당일인 일요일 오후 5시쯤에는 이 이란 감독에게 황금종려상이 돌아갈 것이라는 소문이 전세계 기자들 사이에서 돌았다. 하지만 2명의 심사위원은 이 소문을 듣지 못한 것 같다.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안 문주와 영국 감독 린 램지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두 사람의 설득력이 나머지 심사위원과 스티븐 스필버그를 움직일 만큼 대단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심사위원들 모두가 원만하게 합의한 결과인지 혹은 영화나 인터뷰로 짐작하건대 고집이 보통이 아닐 두 감독의 뒤늦은 설득이 전체 심사의 향방을 갈랐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매년 수상에 관한 소문이 그러하듯 그 진위를 따지기 어렵다. 다만 결과적으로 튀니지 출신의 프랑스 감독 압델라티프 케시시가 쟁쟁한 다른 감독들을 물리치고 가장 높은 영예의 자리에 오른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케시시의 영화 <아델의 삶-1&2>가 제6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심사위원 대상에 코언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 감독상에 아마트 에스칼란테의 <헬리>, 심사위원상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여우주연상에 <과거>의 베레니스 베조, 남우주연상에 <네브래스카>의 브루스 던, 각본상에 지아장커의 <천주정>, 신인감독에게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에 앤서니 천의 <일로 일로>가 호명되며 각각 올해의 영예를 안았다. 프랑스의 대표 일간지 <르몽드>는 <아델의 삶- 1&2>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과 관련하여 “‘문화적 예외’(프랑스 문화부가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정해둔 문화정책안이다.-편집자)는 시네아스트들의 독창성을 유지하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한 스필버그의 말을 인용하며 이 수상의 의미를 문화적 차원에서 해석하는 걸 잊지 않았다. “우리는 최근 두번의 황금종려상을 잊을 수 없다. 팀 버튼이 심사위원장이었던 2010년에 수상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영화 <엉클 분미>와 올해 스필버그가 수상한 <아델의 삶-1&2>다. 현재 우리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문화적 법규를 두고 벌이는 긴장감 넘치는 협상기간을 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필버그가 용감하게 해낸 ‘문화적 예외’ 보호에 대한 발언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르몽드>)라고 썼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하지만 ‘문화적 예외’를 보장하기 위해 꼭 <아델의 삶-1&2>를 선택했어야만 하는 건 아니므로 이 의견은 다소 아전인수 격으로 들린다. 이 영화의 작품성이 끼친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 더 핵심일 것이다. 공개된 직후 이 영화는 프랑스 현지 매체들 사이에서 실제로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형식 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 케시시의 사실적인 실험주의영화 <아델의 삶-1&2>일 것이다.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방식은 마치 감독 잉마르 베리만이나 화가 마네의 영향력 아래서 이 감독이 영화를 찍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인록>)거나 “<아델의 삶-1&2>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만들어졌으며 특히 여배우들의 역할이 돋보였다”(<텔레라마>)는 칭찬이 뒤따르고 있다. 대체로는 받을 만한 작품이 받았으므로 불만이 없다는 분위기다.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에 대해서도 같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논란의 여지를 가장 크게 남긴 건 감독상이다. “아마트 에스칼란테는 폭력적인 장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사실주의는 폭력성을 고발하는 데 힘을 실어주기보다 그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텔레라마>)는 평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칸 수상작 중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건 감독상을 수상한 멕시코 감독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포스트 테네브라스 럭스>였다. 칸의 심사위원단은 두해째 멕시코의 문제적 감독에게 연이어 감독상을 안겼고 그 결과 반론의 포화도 피해가지 못했다.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에 대해서도 적잖은 반론이 있다. <누벨 옵제바퇴르>의 기사가 두 가지 양상을 전부 포괄하는 대표적인 의견이다. “<과거>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베레니스 베조는 두 가지 이유로 이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본다. 첫째, 작품 자체가 심사위원단이 호평한 작품이므로 어떤 의무감이 작용했을 수 있다. 둘째, 여배우들의 열연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 <아델의 삶-1&2>가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감독과 두 여배우의 이름이 함께 호명되었다는 사실이다”라고 쓰고 있다. 여우주연상을 <아델의 삶-1&2>의 두 여배우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와 레아 세이두가 받아야 했지만 작품이 황금종려상을 받아 다른 배우에게 갔다는 뉘앙스다. 그건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게다가 지난해 루마니아의 젊은 소녀 배우 두 사람이 공동으로 여우주연상을 가져간 것이 어쩌면 올해 똑같은 방식의 결과를 내놓지 않으려는 심사위원단의 선택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이번 시상식의 진짜 오점은 남우주연상의 브루스 던이다. 그의 연기에 반기를 들 이유는 없지만 <비하인드 더 칸델라브라>에서 게이 커플로 열연한 마이클 더글러스와 맷 데이먼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좀 불쾌할 정도다”라고 <누벨 옵제바퇴르>는 이어서 쓰고 있다. 남우주연상으로 마이클 더글러스와 맷 데이먼이 부각되었던 건 사실이어서 현지에서 브루스 던의 수상은 대체로 올해의 깜짝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르몽드>는 그 밖의 작은 수상작들 혹은 수상 불발에 그친 작품들을 거론하며 총평에 나서고 있다. “지아장커의 영화는 각본상보다 더 나은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에 대해서 사실 몇몇 평론가들은 심사위원상보다는 더 좋은 상을 예측했었다. 특히 소더버그 영화에서 열연한 마이클 더글러스와 맷 데이먼은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짐 자무시의 영화도 충분히 좋은 상을 받을 만했고 <지미 P>와 <이민자>도 흠잡을 데 없는 연출이었다고 본다.”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 단편부문 황금종려상 수상 한편, 한국영화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 칸 영화제에는 기성 한국 감독들의 장편영화가 없었다. 하지만 신예 감독들이 만든 세편의 단편영화가 있었다. 공식 경쟁 단편부문에 초청된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 공식 경쟁 시네파운데이션 부문(대학 재학생들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경쟁부문)에 초청된 김수진 감독의 <선>, 비평가 주간에 초청된 한은영 감독의 <울게 하소서>다. 이중에서 문병곤 감독의 <세이프>가 단편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1999년 송일곤 감독의 <소풍>이 같은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영화는 불법 게임장 환전소에서 일하는 여직원과 그곳을 드나드는 도박 중독자 사내의 이야기다. 문병곤 감독은 2년 전에도 비평가 주간에 단편 <불멸의 사나이>가 초청된 바 있으며, 당시에도 마지막까지 강력한 대상 수상작으로 점쳐졌던 실력파다. 프랑스의 문화지 <인록>은 올해의 칸영화제를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한다. “2013년 칸에서 자주 거론되었던 테마와 단어는 사회적 폭력, 빈부 대립, 동물 학대, 동성애 등이다. 반대로 그동안 많이 보아왔던 형식과 스타일은 버려지지 않았다”라고. 사회적 주제가 다양하게 등장했지만 형식적으로는 평범한 한해였다는 뜻일 것이다. 그건 어쩌면 모험보다는 안정을 중시하는 칸의 장기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은 경향일 것이다. 제66회 칸영화제는 올해도 이렇게 역사의 또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정의를 의심하다

웨스턴 장르 전통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팀이 고안한 판타지 어드벤처 액션이 뒤섞인 <론 레인저>(2013)는 그냥 봐도 호탕하다. 놀이동산에서 스피디한 기구를 탈 때 느끼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렇긴 하나 더 즐겁게 보기 위해 장르적인 혈연관계를 추적하고, 당대적인 메시지를 추론해보자. 이 영화는 고전적인 관습 안에 시의성을 녹여낸다. 널리 알려진 바대로 웨스턴은 미국의 건국신화다. 서부 개척, 문명화의 영광과 그늘이 공존하는 스토리와 정의롭지만 외로운 남성 영웅은 웨스턴의 골간을 이룬다. <론 레인저>도 화소나 도상에서 이런 전통을 이어받고 있지만, 건국신화에 질문을 던진다. 고전적 장르로서 웨스턴 쇠퇴 이후 등장한 새로운 웨스턴들이 던진 질문과는 다르다. 흑인이나 여성 영웅이 등장하거나 백인이 인디언 문화에 동화되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 짐짓 전통의 수호자 같은 포즈를 취하며 한편으로는 한바탕 놀이인 척하며 웨스턴을 뒤흔들고 나아가 미국식 정의를 의심한다. 좀 과민하게 보자면 그렇다. 미국의 정의는 과거형이다 최초의 웨스턴이 에드윈 S. 포터의 <대열차 강도>(1903)라는 점만 보아도 기차(증기기관차)와 거기서 벌어지는 추격전이 웨스턴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기차-강도는 소떼-카우보이와 더불어 웨스턴의 양대 축이다. 이렇게 중요한 기차에 새겨진 글자는 당연히 간과할 수 없다. <론 레인저>에 등장하는 기차에는 ‘Jupiter’와 ‘Constitution’이라는 단어가 씌어 있다. 그리스의 제우스에 해당하는 로마의 신 주피터는 신들의 제왕이자 국가의 수호신이다. 이 두 단어가 적힌 칸 사이에 지방 검사가 서 있는 화면은 의미심장하다. 불문율 법체계인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의는 헌법 정신 아래 실질적인 법의 집행자인 지방 검사에 의해 수호되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정의’라는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선량한 시민과 국가가 임명한 레인저(수비대)를 살해하고, 적대적 매수를 통해 철도 회사를 집어삼키고, 이주노동자를 착취해 은을 탈취하려는 악당을 추격하고 퇴치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행동을 정의 구현이라고 말한다. 본래 ‘론 레인저’는 미국 대중서사의 유명한 레퍼토리다. 우리로 치면 ‘암행어사’ 정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1930년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발한 <론 레인저> 시리즈는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로 매체를 옮겨가며 재생산되었다. 기본 뼈대는 늘 비슷하다. 악당 손에 형을 잃은 주인공이 눈을 가리는 복면을 하고 ‘실버’라는 이름의 말을 타고 활약하는 내용이다. 인디언 톤토가 주인공을 구해주고 도와주는 것도 같다. 대중매체에서 첫 등장한 것은 1930년대지만 시대적 배경은 1800년대 후반이다. 웨스턴이 성행한 것은 1900년대 초부터이나 서부개척이 이미 마무리되었기에 배경은 1800년대 후반부가 되는 것이다. 제리 브룩하이머와 고어 버빈스키 합작으로 이번에 다시 만들어진 <론 레인저>도 큰 줄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액자구조다. 영화 전체의 내용이 톤토가 소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인디언생활박물관처럼 보이는 곳의 전시룸에 들어가 있는 늙은 톤토는 어린 소년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고 있다. 결국, 짤막한 현재가 앞, 뒤로 붙여진 플래시백 구조의 이 영화는 미국의 정의가 과거형임을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전시룸에나 존재하는 인디언의 전통처럼 박제되어 명목만 있는 것이 아닐까 반문하고 있다. 플래시백의 엄연한 효과 중 하나가 돌이킬 수 없음과 현존하지 않음이다. 미국식 정의가 회상되지만, 있었다고 한들 돌이킬 수 없고, 있었든 없었든 현존하지 않는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붐은 없어서 갈구하는 현상이 아닐까? <론 레인저>를 너무 심각하게 보는 것일 수 있다. 파란만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모든 이야기가 일장춘몽일 수 있듯 판타지로 보면 간단하다. 그러나 영화는 선명한 글자로 주제를 암시한다. 국가의 수호신과 헌법이란 단어를 단순히 멋부리는 기호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론 레인저>는 웨스턴 장르의 총결산 같다. 이미 <대열차 강도>는 언급했고, 무수한 웨스턴 명작 중 세편만 골라 <론 레인저>와 맥락을 비교 하고자 한다. 1900년대 초반 유행한 웨스턴은 잠시 시들한 시기를 거쳐 <역마차>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웨스턴의 대명사인 존 포드 감독과 배우 존 웨인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실제로 말을 타고 달리며 위험천만한 액션 신을 찍은 영화로 유명하다. <론 레인저> 서두에는 <역마차>에 대한 오마주라 할 만한 액션 신이 등장한다. <론 레인저> 제작팀은 아날로그 액션을 연출하기 위해 8km에 달하는 레일을 깔고 기차도 제작했다고 한다. 주연인 아미 해머와 조니 뎁은 대부분의 신을 직접 연기했다. <론 레인저> 시리즈에서 계속 사용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은 액션에 경쾌함을 증가시킨다. 같은 음악의 사용은 시리즈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한다. 이제 주인공의 외로움으로 넘어가자. 열차 액션물, 버스터 키튼, 그리고… 제목부터 ‘외로운’(lone)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으니 외롭겠지만 <론 레인저>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외로워 보이진 않는다. 주인공 존(아미 해머)과 톤토(조니 뎁)는 모두 원한이 있는 인물이지만 화려한 모험극에서 외로울 시간은 별로 없다. <역마차>의 존 웨인, <황야의 결투>의 헨리 폰다, <셰인>의 앨런 래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명랑하다. 과거의 존과 톤토보다 현재의 늙은 톤토가 더 외로워 보인다. <론 레인저>의 액자구조에서 재현된 과거와 현재 사이의 시간은 증발된다. 악당을 물리친 존은 마을을 떠난다. 그다음 이야기는 알 수 없으므로 시간이 증발된다. 웨스턴의 주인공들은 문명과 비문명의 경계 영역에서 법과 선을 수호한 뒤에 스스로 황야로 사라진다. 또한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지만 그녀와 결합하지는 않는다. 그런 비감의 절정이 <셰인>이었다. 석양으로 사라지는 셰인을 부르는 소년의 목소리는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다. <론 레인저>의 존도 형수를 사랑하지만 그녀 곁에 남지는 않는다. 이건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은 정착을 의미하고 문명은 합법적인 틀을 제공하므로 반문명과 외로움을 숙명으로 지닌 웨스턴의 주인공이 살 수 없는 조건이라 떠나는 것이다. <황야의 결투>의 보안관은 소떼를 탈취하고 형제를 죽인 일당을 응징하고, <셰인>의 방랑자는 마을을 습격한 무리를 퇴치하고 평화를 지킨다. 고전적인 웨스턴에서는 재산을 지키는 것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악당들은 늘 가축을 훔치고 곡물을 약탈하지만 조직적인 범죄로 비치진 않는다. 이에 비해 <론 레인저>의 악당들은 상당히 조직적이고 합법과 불법을 모두 동원한다. 철도회사 인수나 은광 채굴은 개인 재산의 탈취 정도가 아니다. 공적 인프라, 국가 자원을 훔치는 것이다. <론 레인저>에서는 이 점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리고 확대해석하면 현재 미국으로 대표되는 선진국의 다국적 침탈에 대한 은유도 읽을 수 있다. 은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중국인이라는 점도 범상치 않다. 고전 장르로서 웨스턴은 인디언, 멕시칸 정도에 관심이 있었다. <론 레인저>가 보여준 이런 시의성을 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글은 평가 이전에 보기, 읽기를 전제로 한다. <론 레인저>를 재미있게 볼 방법은 많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와 비교해도 좋고, 열차 액션물들과 함께 보아도 좋다. 멀리는 버스터 키튼의 슬랩스틱 코미디부터 가까이는 김지운 감독의 만주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까지 다양한 열차 액션물이 있다. 물론, 다 필요없고 그냥 <론 레인저>만 볼 수도 있다. 이 글은 웨스턴이란 장르 관습과 전통 속에서 살폈다. 대중서사인 웨스턴은 확정된 텍스트가 없다. 미국의 건국신화인 웨스턴은 만들어지는 시기마다 당대의 정치성을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론 레인저>도 시의성을 띨 수밖에 없다. 건국신화로서 웨스턴의 변하지 않는 성격은 이데올로기의 분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