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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입체적인 영화

오노레 도미에의 <삼등 객차>(1862∼64, 맨 위)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1808년 5월3일>(1814, 위). <설국열차>가 기억에서 끌어내는 두점의 그림이다. 영화에는 그림으로 설국열차의 역사를 기록하는 화백이 등장하는데 그가 그린 ‘꼬리칸’ 사람들은 특히, 도미에가 즐겨 묘사한 고단한 노동자들을 많이 닮았다. 7/5 일부러 암기하거나 메모해두지 않았어도 개봉연도와 관람한 극장을 대뜸 댈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학창 시절 본 영화들이 주로 그렇다. 함께 보러간 친구만 기억나도 바로 학년이 나오니까. <지존무상>은 교실 뒷줄의 키 큰 친구들끼리 어울려 단성사에서, <굿바이 칠드런>은 대학 입시를 마친 겨울에 씨네하우스에서, <미드나이트 런>은 파고다극장에서 두 학번 선배였던 사촌오빠와 봤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의 한국 개봉은 1990년 봄이 확실하다. 개봉관은 70mm 스크린을 자랑하던 충무로 대한극장이었다. 확언할 수 있는 까닭은 내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상영 중인 대한극장에 뛰어들어간 날이 대학 입학한 해의 봄, 처음인가 두 번째 ‘가투ʼ(길거리 시위)에 나간 날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운동권, 비운동권이 나뉘기도 전인 1학년 1학기였다. 시내 중심가로 나선 스무살들에게 장대한 포부는 없었다. 우리는 세상이 짐작하듯 비장하지도 철없지도 않았다. 그저 선거에서 뚜렷이 드러난 국민의 의사를 3당 합당으로 가볍게 뒤집어버린 정치인들에게, “아니오. 우리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라는 뜻을 표명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다. 가만히 있으면 국민도 그들의 결정을 지지했다고 멋대로 해석할 일이 싫었고, 생업이 있는 어른들은 바쁘니 기운있고 시간있는 학생부터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해 보였다. 이처럼 나름 논리적인 결론으로 나섰지만, 막상 거리에서 최루탄과 곤봉을 든 전경에게 쫓기기 시작하니 내가 왜 지금 이곳에 섰는지 머리가 하얘졌고 그저 눈물나게 무서웠다. 중등 교육과정 체력장을 통틀어 100m를 20초 안에 주파한 적 없는 내 탓에, 2인1조로 짝이 된 선배가 덩달아 붙들릴까봐 심장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대열은 흩어졌고 도망치던 나와 선배는 여차하면 영화 보러 왔다고 둘러댈 요량으로 대한극장의 옆문을 열고 들어가 비상계단에 숨었다. 숨죽인 정적 속에 상영관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남자와 여자의 대사 소리가 웅웅 들렸다. 얼핏 본 간판은 야한 영화 같았는데 대사도 많네, 무심코 생각했다. 영원처럼 느껴진 그 10여분 동안 나는 엉뚱하게도 벽 너머에서 영사되고 있는 그 영화가 무슨 이야기인지 너무나도 간절히 알고 싶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한편의 영화라도 되는 것처럼. 객석에서 그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인 듯 부러웠던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은 무사히 귀가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무렵 자발적으로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통틀어 스무편도 안되는 ‘영화 냉담자’였던 내가 며칠 뒤 소더버그의 데뷔작을 혼자 보러 간 사연은 그러했다. 완전히 묻혔던 추억이 불쑥 고개 든 까닭은, <사이드 이펙트>를 개봉하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에게 보낼 서면 인터뷰 질문을 뽑느라 그의 작품 목록을 되돌아보는 중이어서다. 어쨌거나, 그 시절만큼 내가 본 한편 한편의 영화를 둘러싼 풍경이 선연해지는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영화 보는 일이 일상인 직업을 가져서이기도 하고. 숫자로 관을 구분한 어슷비슷한 인테리어의 멀티플렉스가 극장이라는 공간의 실물감을 지워버린 탓이기도 하다. 무슨 영화를 어느 극장에서 봤는지 기억하기 어렵고, 영화와 영화 사이에 나만의 스토리가 돋아날 틈도 좁아졌다. 지하철로 연결된 쇼핑몰의 꼭대기로 올라가 우주선 같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출구를 나설 때마다 나는 허방을 디딘 사람처럼 잠깐 방향감각을 잃곤 한다. 7/6 알폰소 쿠아론 감독(<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칠드런 오브 맨>)의 신작 <그래비티> 제작 과정에 3D 기술 자문을 지원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지난 7월3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맨 오브 스틸>과 <아이언맨3> 같은 경우는 3D영화여야 할 필연성이 없다는 발언을 했다. 카메론은, 비단 스펙터클만 위해서라면 3D가 아니어도 1억5천만달러 제작비를 투자한 것만으로 충분하다면서 3D는 3D 고유의 미학과 효과를 필요로 하는 영화에 쓰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한편의 영화를 3D로 만드느냐 마느냐가 필름메이커의 예술적 선택이 아니라, 티켓 수입을 올리려는 스튜디오들의 상업적 결정 사항이 된 현실을 우려했다. 구구절절이 맞는 이야기지만 <아바타> 이후 지금까지 많은 공적인 자리에서 3D를 영화의 미래로 지목하고 극장주들의 영사 시스템 교체를 부추겼던 카메론의 과거 발언을 돌이켜보면 발뺌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카메론은 본인의 <아바타>처럼 서사 자체가 3D 맞춤형으로 고안된 영화나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스토리텔링의 차원을 시각의 차원에 반영시킬 수 있는 기획이, 상영 인프라의 교체를 정당화할 만큼 자주 나올 거라고 믿었다는 말인가? 일단 입장료가 비싼 3D 스크린이 보급되고 나면, 스튜디오들이 대부분의 블록버스터를 사후적으로 3D로 변환해 파이프라인을 채우리라는 예상을 못했단 뜻일까? 그렇다면 제임스 카메론은 누구보다 순진무구한 예술가다. 공교롭게도 그저께 ‘라디오 타임즈 닷컴’에는 가 올 연말부터 3D 개발 프로그램을 3년간 중지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그동안 공룡 다큐멘터리, 어린이 드라마, 런던올림픽 개막식 중계, 여왕 연설 등을 3D로 시험 방송해온 결과, 3D 텔레비전을 보유한 영국 내 잠재 시청자(150만 가구)의 반응이 저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3D 부서 책임자는 영국의 미지근한 3D 선호도에 관해, 동시에 다른 일을 하면서 시청하는 TV 특성상 입체안경을 찾아 쓰고 정좌해서 몰입하는 과정을 시청자가 귀찮아해서인 것 같다는, 어처구니없이 단순하면서도 납득이 가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침통하기는커녕 자못 홀가분한 말투로 “잠깐 멈추어 서서 사태를 관망하기 적절한 시점”이라며 자기는 원래 일하던 부서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블루오션에 한번 깃발을 꽂으면 우격다짐으로 시장을 만들어서라도 수익이든 명분이든 짜내는 광경만 보고 살아와서인지, 신선하다. 7/8 <미스터 고> 역시 3D가 이야기와 밀착된 영화라고 하긴 어렵다. 공과 배트가 객석쪽으로 날아와 야구장 관중석에 앉아 있는 환각을 안겨주는 깜짝 효과 정도다. 하지만 정작 3D는 <미스터 고>의 성취와 실패에서 결정적 변수는 아니다. <미스터 고>의 최대 강점은 미덥게 구현되고 이물감 없이 인간 세계에 녹아든 디지털 고릴라이고, 최대 약점은 영화 속 인물들이다. 성충수 에이전트부터 고릴라 링링의 단짝 소녀 웨이웨이에 이르기까지 <미스터 고>에는 우리가 마음을 붙일 만한 캐릭터가 없다. (웨이웨이도 엄격히 말하면 링링의 학대자 중 한명이다.) 꼭 호감이 가야만 관객이 극중 인물에 마음을 붙이는 건 아니다. 요는 매력이다. 매력은 캐릭터가 일관성이 있거나, 이해할 만한 과정을 거쳐 변모할 때 발생한다. 영화 속 인물이라고 모두 착하고 옳을 필요가 없음은 말하나마나다. 단, 모든 인물이 예외없이 밉상일 경우 약간 어려워지긴 한다. 더 정교한 드라마와 더 단단히 빚어진 캐릭터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스터 고>의 인물들의 특징은 편의적으로 느끼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극중에서 손쉬운 이익을 보는 선택을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스토리의 편의에 따라 성격이 갈지자를 그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프로야구에 종사하는 극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스스로도 돈밖에 모르면서, 남을 공격해야 할 때는 바로 “돈밖에 모른다”는 이유로 비난한다. 눈앞의 이익에 태도가 표변한다는 면에서 그들은 서로 성격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다. 인물들 또한 별로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링링을 포획하러 출동한 경찰은 그물을 쏘아놓고는 고릴라가 그물을 잡아채면 감탄한다.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 익명의 관중도 링링에 대해 태도나 ‘여론’을 형성하지 않는다. 홈런을 치면 환호하고 구장 지붕으로 기어오르면 잡히기를 바라고 묘기를 보여주면 다시 즐거워한다. 고릴라의 묘사도 편의적이다. 눈물이 필요한가 스릴이 필요한가에 따라 그들은 존엄한 생명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화는 링링과 레이팅을 인간의 말을 잘 듣는 친구와 인간에게 대드는 맹수로 갈라 끝내 그들끼리 혈전을 벌이게 한다. 야구라는 특정 종목의 쾌감과 스포츠영화로서 <미스터 고>의 재미는 깊은 관련이 없다. 중요한 것은 홈런과 점수와 승부다. 감동은 설정만으로 붙잡기에는 너무 미끄러운 목표다. 이기느냐 지느냐, 내 편이냐 아니냐가 시종 가장 강력한 잣대인 드라마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지속되는 감동을 만들 확률은 시즌 꼴찌 팀의 승률보다 낮다. (계속) 좋아요 <더 테러 라이브> 윤영화 앵커의 헤어스타일링 캐릭터의 외양을 발명하길 즐기는 하정우는 머리칼을 가만 못 놔두는 배우다. 우정 출연한 영화들 속 모습이나 <러브픽션>의 구주월을 보라. 차기작 중 ‘앙드레 김’ 전기영화도 있으니 앞으로도 그의 ‘헤어쇼’는 창창하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윤영화 앵커의 헤어스타일은 방송인답게 정석에 가깝지만 상황과 감정을 민감히 반영해 뺀질거림에서 헝클어짐까지 세분화된 단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culture highway] 다시 찾아온 주원앓이

다시 찾아온 주원앓이 주원의 힘인가, 스토리텔링의 힘인가. KBS 월화 드라마 <굿닥터>가 방영하자마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3급 자폐증 진단을 받았지만 천재적인 암기력과 공간지각능력을 자랑하는 시온(주원)이 소아외과 의사로 성장해나가는 스토리다. 주원은 장애가 있지만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증상인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인물로 분했다. 애교만점 시온에게 빠질 준비 되셨나요? 이번 휴가는 갤러리로 휴가를 즐기러 부산을 찾는다면? 해운대해수욕장 대신 전시회는 어떨까. 가나아트갤러리 부산점에선 대중을 위한 팝아트 전시 을 마련했다. 현대예술을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말길. 텔레비전이나 만화에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미지를 재조립해 친숙함을 더한 재미있는 전시다. 9월7일까지 진행한다고 하니 휴가 기간에 가볍게 한번쯤 들러보면 좋겠다. 뉴페이스를 찾아라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가 4번째 시즌을 맞는다. 우승자들보다 프로그램의 혜택을 더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진행자 장윤주의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홈페이지를 통해서 시즌4에 참여한 후보들의 면면을 살짝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니 궁금한 사람이라면 클릭해보시길. 8월15일 목요일 밤 11시 첫방송. 내 안의 질주 본능을 깨워라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달리는 야생 레이스 ‘푸마 나이트런’ 대회가 9월28일 과천서울대공원에서 열린다. 7천명의 참가자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오후 7시에 총 7km를 달리는 행사다. 장거리달리기라고 지레 겁먹지 말고 매주 월요일마다 진행하는 사전 트레이닝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겠다. 자연과 야생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컨셉의 달리기를 경험해보자. 참가 신청은 8월26일부터. 하나의 역사, 70억의 기억 라이프 사진전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정점의 순간에서 전설이 된 20세기 최고의 사진잡지 . 사진이라는 매체는 를 통해 포토저널리즘이라는 옷을 입게 되었다. 로버트 카파, 앨프리드 아이젠 스타트, 유진 스미스, 유서프 카시 등 당대 최고의 사진기자들이 선택한 위대한 기록을 전시로 만나보자. 9월6일부터 11월25일까지. 연기돌 뉴페이스 가수 기획사들만 아이돌 그룹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니었다. 배우 매니지먼트사 판타지오가 5인조 연기자 그룹 ‘서프라이즈’를 선보인다. 판타지오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 ‘액터스리그’를 통해 선발된 서강준, 이태환, 유일, 공명, 강태오다. 이 샛별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다면 9월 초 방영될 드라마툰 <방과 후 복불복>을 주목할 것. 드라마에 웹툰의 요소를 첨가한 색다른 장르물로, 꽃미남 드라마의 1인자 정정화 감독이 연출한다. 음악의 대화 아주 오랫동안 그녀의 노래를 기다려왔던 기분이 든다. 인디아 아리가 ≪Acoustic Soul≫ 음반으로 데뷔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2년이라니.

[영화제] 충만의 선율, 역동의 리듬

올해로 9회를 맞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8월14일부터 19일까지 청풍호반무대 등 제천시 일대에서 열린다. 음악페스티벌 초청 명단에서나 볼 법한 뮤지션들의 이름이 영화의 크레딧을 채우는, 개성있는 음악영화들이 올해도 다수 상영된다. 그중 당신의 눈과 귀를 만족시켜줄 음악영화 10편을 소개한다. <미셸> 그레고리 만느, 슈테판 비야르 / 2012년 / 90분 / 프랑스 / 시네 심포니 샹송가수 미셸 델페슈를 소재로 한 프랑스 독립영화다. 1970년대 전성기를 보냈던 가수 미셸은 90년 이후 잠적해 종교에 귀의하는 등 개인적 암흑기를 보냈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지는 않지만, 그를 대중에 소개한다는 차원에서 의미있다. 주인공은 법원의 채무집행관인 그레고리다.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 법원 소속 집행관이 된 그는 우연히 가수 미셸 델페슈의 재산을 압수한다. 죽기 전까지 그의 광팬이었던 아버지를 기억하기에, 그는 쉽사리 이 왕년의 스타의 몰락을 지켜볼 수 없다. 때문에 원제가 이르듯 ‘무관심하고 담담하게’(l’Air de rien) 미셸의 재활을 돕기 시작한다. 음악영화인 동시에 주인공의 내면을 비춘 일종의 성장영화다. <팝 리뎀션> 마르탱 르 갈 / 2012년 / 94분 / 프랑스 / 개막작 기타리스트 에릭과 드러머 파스칼, 베이시스트 JP, 보컬 알렉스는 십대 때부터 줄곧 함께 블랙메탈을 해온 친구들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이들은 ‘여름투어’라 부르는 공연여행을 떠나는데, 삼십대가 되자 생계 때문에라도 이제는 곤란하다고 느끼던 차다. 알렉스의 폭군적이고 변덕스러운 기질을 탓하며 세 친구는 합심해 연주를 그만두기로 마음먹는데, 때마침 알렉스가 헬페스트 페스티벌에 초청됐단 낭보를 들고 나타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렇게 공연을 떠나고, 사건이 벌어진다. 영화 <팝 리뎀션>은 신예 마르탱 르 갈 감독의 데뷔작으로, 블랙코미디 요소를 지닌 일종의 뮤지컬 로드무비다. 비틀스의 애비로드 등 다양한 클리셰들이 극을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끈다.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 제이 벌거 / 2012년 / 92분 / 미국 /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 기타의 신 에릭 클랩턴과 섹스 피스톨스의 존 라이든, 산타나의 카를로스 산타나와 롤링 스톤스의 찰리 워츠, 그리고 프로그레시브의 제왕 닐 퍼트가 진저 베이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큐멘터리 <드럼의 마왕 진저 베이커>는 인터뷰이들의 이름으로도 충분히 가슴 뛰는 영화다. 진저 베이커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가장 선명한 그림은, 2차대전에서 사망한 아버지의 시신을 따라 기차를 뒤쫓던 때라 한다. 영화는 나치의 폭격이 시작되던 해 런던에서 태어나, 에릭 클랩턴과 함께 전성기를 구가하던 순간을 거쳐, 약물 중독으로 인해 폐인으로 살던 나이지리아에서의 모습, 그리고 현재 남아공에서의 일상까지 진저 베이커의 전 생애를 이야기한다. <엄마에게 바치는 노래> 리안 룬슨 / 2012년 / 109분 / 미국, 캐나다 / 세계 음악영화의 흐름 전설적 포크싱어인 케이트 맥개리글의 지인들이 모여서 고인을 추억하는 콘서트를 연다. 영화 <엄마에게 바치는 노래>는 63살에 세상을 등진 케이트 맥개리글을 기리며, 2010년 6월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에서 열린 추모콘서트에 대한 ‘기록영상’의 성격을 띤 다큐멘터리이다. 참가한 뮤지션의 면면이 무척 화려하다. 고인의 자녀인 루퍼스 웨인라이트와 마사 웨인라이트를 비롯해 노라 존스, 에밀루 해리스, 지미 펄론, 테디 톰슨 등이 수준 높은 공연을 벌인다. 빔 벤더스가 프로듀싱한 이 영화의 연출은 배우 출신의 감독 리안 룬슨이 맡았다. 1997년 컨트리 가수 윌리 넬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데뷔한 뒤, 현재 그녀는 연출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마지막 랩소디> 기용교시 벤체 / 2011년 / 75분 / 헝가리, 프랑스 / 시네 심포니 헝가리의 낭만주의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전기영화이다. 1911년 헝가리의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극이 시작된다. 작곡가 리스트의 이야기를 준비하던 극단원들은 막바지 리허설 도중에 19세기 옷차림을 한 미스터리한 여인과 조우한다. 그녀는 극의 내용이 실제 자기가 아는 스토리와 다르다며 트집을 잡는다. 이렇게 여인의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이야기 속의 다른 이야기로 빠져든다. 1886년 부다페스트에서 시작해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사망할 때까지, 영화 <마지막 랩소디>는 실재했던 리스트의 말년의 역사를 뒤쫓는다. 역사를 다룬 극이지만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됐고, 그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리스트의 뮤즈 ‘리나 슈말하우젠’의 일기에서 힌트를 얻어 구상되었다. <카르수> 메르세데스 스탈렌호프 / 2012년 / 87분 / 네덜란드 / 뮤직 인 사이트 어려서부터 가수를 꿈꾼 카르수 돈메스가 부모 소유의 식당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터키식 레스토랑의 홀 가득히, 17살 소녀의 서정적 음색이 울려퍼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싱어가 될 때까지, 영화는 그녀의 3년간을 뒤쫓는다. 마침내 가수가 되어 텔레비전 쇼에 초청된 그녀를 사회자는 노라 존스에 비견해 소개한다. 실제로 그녀는 터키의 고유한 문화, 네덜란드의 최신 유행 요소들, 미국의 재즈나 팝이 뒤엉킨 유니크한 자신만의 영역을 지향하고 있다. ‘카르수’라는 이름의 뜻은 ‘스노 워터’라고 한다. 아버지는 딸의 목소리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레 피아노와 뒤섞인다고 소개하는데, 그래서인지 우리 귀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친숙하게 다가온다. <폴 사이먼, 그레이스랜드 그 이후> 조 베링거 / 2012년 / 101분 / 미국 / 뮤직 인 사이트 70년대 전설적 포크록 듀오인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폴 사이먼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앨범 ≪그레이스랜드≫의 발매 25주년을 기념해 사이먼이 직접 남아공을 방문한다. 앨범의 제작 당시 그는 자신의 노래에 아프리카 음악을 도입했는데, 이 때문에 극 사이사이에 남아공 뮤지션들과의 매력적인 합동공연 클립들이 더해진다. 영화 <폴 사이먼, 그레이스랜드 그 이후>에는 당대의 인종차별과 관련해 그가 겪었던 일련의 사건도 함께 담는다. 음악과 함께 이 사회적 경향들을 되돌아보는 것 역시 의외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인터뷰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조 베링거 감독은 이 작품으로 에미상에 노미네이트됐다. <문글로우> 장해랑 / 2013년 / 102분 / 한국 / 한국 음악영화의 오늘 베니 골슨의 <블루스마치>가 연주되는 가운데, 대한민국 재즈 1세대라 불리는 ‘The lives’의 원년 멤버들이 소개된다. 클라리넷의 이동기와 색소폰의 김수영, 재즈 피아니스트 신광웅과 트럼펫의 최선배, 퍼커션 류복성과 드러머 임헌수, 보컬 김준 등은 스승도 없고 악보도 없던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스테이지에 남은, 한국 음악계의 진정한 승자들이다. 다큐멘터리 <문글로우>는 작은 무대에서 거대한 음악을 창조하는 이들을 비추며,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짜 예술이 무엇인지를 진솔하게 답한다. 재즈 1세대들의 원숙한 연주를 듣는 것도 충분히 즐겁지만, 올해 3월 재정 문제로 문을 닫은 홍대 재즈클럽 ‘문글로우’를 기록한 것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음악영화. <우드스탁의 추억> 바버라 코플 / 2009년 / 87분 / 미국 / 주제와 변주 오스카 수상 경력을 가진 여성 감독 바버라 코플의 다큐멘터리이다. 알려졌다시피 우드스탁은 미국의 보이지 않는 대중문화 흐름을 주도한 최대의 음악축제다. 때문에 영화는 다양한 푸티지 필름들을 재활용한다. 제목처럼 우드스탁을 소개하지만, 1998년 동일한 감독이 만들었던 <우드스탁 ’94>와 다르게 이번에는 40주년을 맞아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축제의 이면을 기록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 특색이다. 당시를 떠올리며 <뉴욕타임스>의 버나드 콜리에는 “아름다운 사고”란 표현을 썼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이 역설적 표현에 동조하게 된다. 울타리를 넘어 ‘사랑과 평화’를 외치는 대중들, 경제적 손실에도 행사를 감행했던 프로모션의 기록이 우아하게 담긴다. <안전불감증> 프레드 뉴마이어, 샘 테일러 / 1923년 / 73분 / 미국 / 시네마 콘서트 할리우드 고전영화 <안전불감증>은 찰리 채플린과 당대를 함께 풍미한 배우 해롤드 로이드의 대표작이다. 주인공은 시골에서 직장을 찾아 대도시 LA로 떠나온 해롤드다. 그에겐 시골에 두고 온 약혼자 밀드레드가 있는데, 성공해 도시로 부르겠다고 공언한 상태이다. 어느 날 그가 보낸 선물을 받고 그녀가 오인해 혼자 도시로 찾아오고, 해롤드는 자신의 가난을 숨기기 위해 좌충우돌하다 여러 소동을 벌인다. 1923년 완성된 무성영화인 까닭에 사운드트랙은 오직 경음악뿐이다. 해롤드 로이드는 1919년에 있었던 사고 때문에 손가락 두개를 잃었다고 하는데, 이 영화를 찍을 당시 4, 5m 높이의 건물 벽에 실제로 매달렸다니 새삼 영화에 바친 그의 열정에 감탄하게 된다.

[영화제] 괜찮아 얘들아

일찍이 엥겔스는 가족해체의 무의식이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공적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역설적인 역사의 장난’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 ‘사생아, 불륜, 가족의 해체’ 등 자극적 소재들이 스크린을 넘나드는 것을 보면서, 유독 그의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올해 15회째를 맞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이 과격한 서구화의 출구를 제시할지 모르겠다. 지난 15년간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문화 인프라 개발에 기여한 이 행사는 어느덧 40개국 142편에 이르는 다양한 영화들을 선보이는, 서울 최대 규모의 영화제로 성장했다. 올해는 8월22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간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과 아리랑시네센터, 성북천 바람마당과 성북아트홀, 한성대학교 등 성북구 일대에서 영화제가 진행된다. 개막작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 개막작은 스콧 맥게히와 데이비드 시겔이 연출하고, 줄리언 무어가 출연한 <메이지가 알고 있었던 일>이다. 헨리 제임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는 부모들의 양육권 다툼을 소재로 해 7살 메이지가 겪는 일화를 담는다. 도입부의 설정은 원작을 그대로 따른다. 하지만 10년간의 성장 기간을 다루는 소설과 달리 영화는 시간을 압축해 각색됐다. 배경 역시 센트럴 뉴욕으로 바뀐다. 아이의 시선을 중심으로 한 카메라의 움직임이 특히 인상적인 영화로, 아역 오나타 에이프릴의 연기가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연출자의 연령대에 따라 분류된 단편영화 상영작들은, 영화제 유일의 ‘경쟁 섹션’에 속한다. 올해 초청된 작품은 총 56편이다. 9∼12살 어린이들이 만든 영화를 소개하는 ‘경쟁 9+’ 부문에는 김준영 감독의 <지우개>를 비롯해 각국의 다양한 단편영화 10편이 초대된다. 청소년이 제작한 영화를 선정한 ‘경쟁 13+’ 부문에는 핀란드의 유호 카리알라이넨이 연출한 <눈먼 사랑> 등 26편이 초청되었고, ‘경쟁 19+’ 부문에는 일본의 다자와 우시오의 <다루의 여행기> 등 20여편의 영화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섹션마다 대상을 비롯한 예술실험상 등 10개 부문의 시상이 따로 마련돼 있다. 세개의 섹션, 두개의 특별전으로 나뉜 비경쟁부문의 프로그램 또한 풍성하다. 어린이들을 위한 ‘키즈아이’ 섹션에서는 9월 개봉예정인 <괜찮아 3반>이 포함돼 있다. 소설 <오체 불만족>의 저자로 알려진 오토다케 히로타다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원작 역시 그가 직접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했다. 팔다리가 없는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주인공이 초등학교 담임으로 부임하면서 겪는 일화를 담는데, 소재의 강렬함은 히로키 류이치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으로 상쇄된다. 한편,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이들을 다룬 노르웨이영화 <캐스퍼와 엠마>는 어린이영화 특유의 발랄하고 경쾌한 분위기로 관객을 사로잡는 수작이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알록달록한 분위기 속에서 엠마와 캐스퍼, 그리고 그들의 봉제인형이 벌이는 에피소드를 담는다. 동화와 뮤지컬 방식이 가미된 연출이 인상적으로, 다수의 텔레비전 시리즈로 인정받은 아르네 린드너 네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청소년을 위한 최신 영화를 소개하는 ‘틴즈아이’ 부문에서는 독일의 베른트 샬링이 연출한 <업사이드다운>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평범해 보이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열살 소년 사샤이다. 아이는 나쁜 손버릇과 거짓말 탓에 엄마의 신뢰를 잃은 데다 또래에 비해 글을 읽고 쓰는 것까지 느린 편이다. 때문에 사회복지사무소에 위탁되고, 그곳에서 복지사 프랑크를 만난다. 집중력 장애 치료를 받으며 변화하기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사회화의 의미와 그 반작용을 생각할 수 있다. 이어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출신 톰 길로이가 연출 데뷔작 <낯선 땅>을 들고 관객을 찾는다. 베를린영화제 청소년부문에 초청돼 눈길을 끈 이 영화의 주인공은 십대 소년 아티커스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엄마와 함께 숲속 통나무집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전반부에, 엄마의 죽음 이후 홀로 남겨진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후반부에 소개한다. 올 베를린 청소년 대상작 <쇼핑> 등 주목작 다수 성인을 위한 성장영화를 소개하는 ‘스트롱아이’ 섹션에서 돋보이는 작품은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언급된 카시아 로수아니에츠 감독의 <베이비 블루스>다. 급부상한 폴란드의 신예 여성감독이 선정한 주인공 나탈리아는 17살 소녀로, 이제 막 7개월 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담지만 그렇다고 우울한 영화는 아니다. 동시대 폴란드 청춘들의 이미지를 대변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는 패셔너블한 동시에 혼란스러운 이미지로 뒤덮여 있다. ‘블로그 형태’의 편집방식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야기는 종종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정지되며 간혹 검은 화면으로 절단되기도 한다. 구성의 특이성에 있어서는 레하 에르뎀의 <진> 역시 뒤처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마찬가지로 17살이다. 그녀는 터키 군대와 쿠르드 반군간의 전쟁을 피해 홀로 숲속에서 지내는데, 감독은 자연의 정경이나 거북, 곰과 같은 피사체들을 통해 소녀의 심경을 반사해 비춘다. 영화 중반부 이후 소녀가 사회에 편입되어 도리어 상처받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누아르풍의 동화’가 된다. ‘다문화’와 ‘청소년 성폭력’을 다루는 특별전 섹션에서 눈여겨볼 작품으로는 마크 알비스턴과 루이스 서더랜드 감독이 공동 연출한 <쇼핑>을 들 수 있다. 1981년의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해 다문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무기력한 사모아인 어머니와 폭력적 기질의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윌리와 솔로몬 형제가 주인공이다. 형 윌리가 일하는 대형 상가에, 어느 날 배짱있는 도둑 베니가 출현해 단번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아이는 변화하기 시작한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청소년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당시 심사위원단은 “아역들의 연기가 돋보이고, 날카로운 편집과 강력한 시각적 효과, 가족의 모순이 끌어안은 고통과 사랑의 마음을 잘 표현한 영화”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외에도 청소년 영상문화 저변의 확대에 기여할 다수의 수작들이 관객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평생의 영웅, 그의 단점까지 전부

평범한 로맨틱코미디나 그보다 좀 못한 액션 장르물에 자주 등장하며 대단한 연기파 배우들의 계보와도 거리가 있는 애시튼 커처가 스티브 잡스의 파란만장한 젊은 모험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전기영화 <잡스>의 주인공으로 정해졌을 때 그가 정말 이 입지전적인 인물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내기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을 법도 하다. 결론. 커처가 갑자기 위대한 연기를 펼치진 못한다. 하지만 보론. 그는 누가 보아도 대단한 열정을 쏟아내고 있으며 혼신의 힘으로 잡스가 되고자 한다. 연상의 전 부인(데미 무어)과 엄청난 액수의 재산 분할을 놓고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영화 바깥의 얼룩진 그의 모습이란 여기 없다. 오로지 <잡스>의 잡스가 되기 위해 스스로에게 강력한 최면을 걸고 있는 배우 커처가 있을 뿐이다. 그 이상으로 움직이기, 그의 모든 것을 공부하기 아직은 트위터가 모든 이들의 것이 되기 이전, 커처는 이른바 최초의 트위터 스타에 속했다. 그는 트위터를 누구보다도 먼저 받아들였고 그 가능성을 믿었으며 그것으로서 자기의 사회적 위치를 설정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2009년에 있었던 과의 한판 대결이었다. ‘과 나 둘 중 누가 먼저 100만 팔로워를 모을지 승부를 벌이자’며 그는 거대 미디어를 도발했다. 대결의 승자는 그였다. “거대 미디어가 하는 것만큼이나 어떤 한 사람도 많은 사람들에게 방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그 이벤트의 목적이었다. 그가 쇼에만 능했던 건 아니다. 커처의 또 다른 직업은 사업가인데 그것도 아주 유능한 사업가다. 그는 2000년에 디지털 미디어, 텔레비전, 영화 등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 ‘카탈리스트’를 공동 창업했고 2011년에는 벤처 투자 회사인 ‘A-Grade’를 공동 창업했다. 커처는 2010년 미국 잡지 <타임>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위’ 안에 들었고 각종 경제지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을 선정할 때마다 그와 그의 기업은 늘 명단에 올랐다. 잡스의 몸에 흘렀던 기술적 진화에 대한 직감과 애정과 관심 그리고 야심적 사업가로서의 피가 커처에게도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니 잡스가 커처의 평생의 영웅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으며 수년간 애플의 주식을 갖고 있었던 건 당연한 일이다. 잡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자신에게 닥친 기분에 관하여 커처는 이렇게 회상한다. “아주 기묘한 감정적 반응을 느꼈는데 그 실체는 잘 몰랐다. ‘나는 그의 죽음에 왜 이렇게 충격을 받은 걸까?’ 그러자 나는 이 사람에게 영향받은 내 인생의 모든 점들에 관하여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라도 그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잡스는 내게 토머스 에디슨이나 헨리 포드와 같은 천재였다. 그는 정말이지 형식과 기능을 함께 녹인, 아름답고도 실용적인 생산물을 만들어낼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 두 분야를 다 해낸 사람은 <모나리자>라는 그림을 그리며 비행 장치도 함께 만들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정도랄까.” 평생의 영웅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자 커처는 일단 외양적으로 완벽해지는 게 필요했다. 이 부분에는 그다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원래부터 닮은 눈매에 그럴듯한 몸의 패턴까지 입혀지자 영화 속 커처는 영락없이 잡스처럼 보인다. 커처가 특히 신경 쓴 것은 잡스의 걷는 방식과 말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어깨를 약간 구부리고 앞으로 쏟아질 듯이 몸을 기울이는 동시에 무릎은 제자리걸음을 하듯이 허공에서 휘적거리는 그 특유의 걸음걸이 그리고 프레젠테이션 때마다 청중의 귀를 사로잡은 잡스만의 말투를 커처는 거의 상징적일 정도로 강조한다. 잡스의 생각과 체질과 취향을 섭렵하는 것도 빠지지 않았다. 생전에 잡스가 남긴 방대한 연설과 인터뷰를 찾아 읽은 건 물론이며 그가 일생을 살며 경험한 몇몇을 커처도 경험해보기로 한 것이다. 가령 그가 먹었던 것들 먹기. 당근 주스, 포도, 팝콘. 그가 읽은 책들 읽기. 요가와 힐링에 관한 책들. 그가 좋아했던 음악 듣기. 밥 딜런. 그가 존경한 사람들 공부하기. 에디슨. 에드윈 랜드. 그가 좋아한 예술사조나 예술가 이해하기. 바우하우스. 장 미셸 폴롱, 안셀 애덤스. 그리고 그가 알고 지내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 만나기 등. 단점을 감추지 않는다 커처가 잡스가 된다는 건 심지어 생전의 잡스가 남긴 그의 단점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잡스는 인간적인 결함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에서도 그 점은 도드라진다. 영화 속 한 장면. 애플이 성공을 거두고 주가를 올리던 그 때, 잡스는 회사의 수익을 나눠주는 과정에서 현재 공헌도가 적다는 이유로 과거에 창립을 도운 친구들을 모두 배제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커처의 답변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 궁극적으로 나의 목적은 내가 존경했던 누군가에게 경외를 바치는 것이다. 경외를 바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그의 재능과 단점 모두에 대해서 정직해지는 것이다.” 커처는 이렇게도 말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잡스의 위치를 정당화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잡스가 그들에게 보상하는 게 옳다고 본다. 하지만 누가 우리의 성공에 여전히 핵심적인가. 이 어려운 질문은 마치 풋볼팀을 관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예전에 공헌한 선수라고 해도 지금 그렇지 않으면 그를 붙잡을 수만은 없는 거다.” 커처는 잡스의 단점에 정직해지는 것을 넘어 아예 그 단점을 단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마치 잡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최신의 것들에 늘 호의적인 사람답게 커처는 <잡스>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최근에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지식 검색 사이트인 쿼라(QUORA)를 통해 공표한 적이 있다. 그중 인상 깊은 말이 있다. “그냥 살았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시대정신에 관여하며 살아 있는 누군가를 묘사할 기회란 일생에 단 한번뿐인 도전”이라는 것이다. 실은 그런 게 잡스의 정신으로 알려진 것들이기도 하다. 잡스의 어록 중 하나. “최고의 부자가 되어 무덤에 묻히는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오늘도 무언가 멋진 걸 해냈구나’ 하고 말하며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 그게 바로 내게 중요한 것이다.” 성공이냐 실패냐는 결론과 무관하게 커처도 뭔가 해낸 것이다.

웃픈 우리 영화의 날들

김태영 감독이 <58년 개띠 노총각감독 서울 위드 러브>라는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제목의 영화를 찍는다고 연락을 해왔다. <세계영화기행> 등 다수의 TV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독립프로덕션 인디컴미디어의 대표인 그는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면서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다. 몸 한쪽이 마비돼 지팡이 없이는 걷는 것도 불편한 몸. 가난하고 몸 불편한 노총각 감독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고, 8월15일 크랭크인 현장에 <씨네21>을 불렀다. 영화의 정체도 궁금했고, 그간의 김태영 감독 얘기도 궁금했다.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찬 이야기를 전한다. 인디컴미디어 수상 경력 1993 <베트남 전쟁, 그 후 17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 TV비극부문상, 제20회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 1994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 제21회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 1995 <세계영화기행> 제23회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상 1998 <생명시대1> 98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 비디오 부문 우수작품상 2000 <생명시대2> 2000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 비디오 부문 대상& 감독상 2001 <어머니와 아들> 제6회 베를린 국제 민속영화제 특별상 수상 2002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제39회 대종상영화제 4개 부문 수상, 제23회 청룡영화제 시각효과상 2006 <아버지의 나라> 2006 독립제작사협회 대상 2010 <천사의 아침> 2010 대한민국 신화창조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2011 <샹그릴라의 여자 우체부> 제5회 BCM 다큐 사전제작지원상 수상 2012 <바비> 제42회 지포니영화제 그리폰어워드 “누추하지만, 희망의 궁전입니다.” 딜쿠샤 2층 ‘뽕짝 아줌마’ 억순이의 방에 들어서자 김태영 감독이 신난 아이의 표정을 하고서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8월15일.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위치한 붉은 벽돌의 2층 양옥집 딜쿠샤에서 김태영 감독은 10년 만의 재기를 꿈꾸며 영화 <58년 개띠 노총각감독 서울 위드 러브>(이하 <58년 개띠>)의 첫 촬영을 시작했다. 공간이 주는 기운이 묘했다. 발을 뗄 때마다 삐걱 소리를 내는 마룻바닥은 90년 된 이 집의 역사를 그대로 웅변하고 있었다. 3.1 독립선언서를 태어난 지 하루 된 아들의 요람 밑에 숨겨 세계에 알린 UPI 통신사 기자 앨버트 테일러 부부가 지었던 딜쿠샤. 지금은 그곳에 억순이를 비롯한 15가구가 살고 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혼합된 <58년 개띠>에 억순이는 희망을 상징하는 현실의 인물로 영화의 처음과 끝에 등장할 예정이다. 트로트 가수가 꿈인 억순이는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가사도우미로 일한다. 그렇게 번 돈으로 이른바 ‘고속도로 휴게소 앨범’을 제작했지만 제작비 1천만원이 무색하게 앨범은 찾는 이가 없어 반품 처리됐다. 캐스팅을 위해 억순이를 만난 김태영 감독은 “그거 사기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억순이는 이렇게 답했다. “그게 제 꿈인 걸요. 트로트 앨범 내고, 공중파에서 절 한번 불러주는 게.” 이날 억순이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노래 <고장난 벽시계>에 맞춰 여러번 빙그르르 춤을 추었다. 억순이의 콧잔등엔 땀이 맺혔다. 힌디어로 희망의 궁전, 이 상향, 행복한 마음을 뜻한다는 딜쿠샤. 억순이와 딜쿠샤의 기운을 듬뿍 받기 위해 김태영 감독은 이곳에서 크랭크인을 한 게 아니었을까. 반전의 리턴매치를 향해 딜쿠샤에서 촬영을 마친 10여명의 스탭들은 근처 교회 주차장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도시락을 거의 비워갈 때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식사 시간 종료를 알리고 다음 촬영을 재촉하는 지나가는 비. 서울 성곽길에서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은 ‘박카스녀’가 노총각 김 감독을 유혹하는 장면을 찍은 뒤 스탭들은 다시 경복궁으로 향했다. 휴일이라 경복궁은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궁에서의 촬영은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고 촬영 진행비도 따로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김태영 감독은 촬영비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이날 꼼수를 부려 몰래 촬영을 시도했다. 두명의 촬영감독과 김태영 감독만 경복궁으로 입장했다.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만큼 김태영 감독은 <58년 개띠>에서 연출과 출연을 겸한다. 영화 주인공인 노총각 김 감독으로 변신한 김태영 감독은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관광객 틈에 섞여 근정전으로 뻗은 길을 묵묵히 걸었다. “장애인 연기만 자연스럽지 다른 건 어려워요.” 뙤약볕 아래서 그는 ‘왕의 길’을 세번 왕복했다. 걸음은 느렸다. 그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나중에 물었다. “내가 전생에 왕은 아니었을까, 상상했죠.” 서울에서 나고 자란 김태영 감독은 시간이 날 때면 자주 고궁을 찾는다.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 그는 경복궁, 창덕궁을 산책하며 조선의 왕들과 왕비들을 수시로 대면한다. 이번엔 아예 고종과 명성황후를 영화로 불러들였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와 <로마 위드 러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김태영 감독은 <58년 개띠>에서 과거로 훌쩍 시간여행을 감행한다. 고종, 명성황후,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그리고 이상과 금홍이 <58년 개띠>에서 노총각 김 감독과 만난다. <58년 개띠>는 하나의 장르로 규정할 수도 없고, 이야기를 한줄로 요약하기도 어려운 영화다. 굳이 정리하자면,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놓인 노총각 영화감독이 서울을 배경으로 상상 연애를 하고,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이웃들을 만나면서 다시 의지를 다진다는 이야기다. 형식적으로는 다큐와 픽션, 현실과 판타지의 결합을 시도한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충만한 김태영 감독은 이 영화를 “몽상가의 짬뽕 프로젝트”라고도 했다. “평생 한번밖에 없는 기회인데, 망할 때 망하더라도 기왕이면 다 해보고 망하자(웃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항상 이렇게 최초로 하는 게 문제라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영화가 될 뻔했던 <미스터 레이디>를 제작하다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 됐잖아요. 이번엔 제대로 반전의 리턴매치를 해봐야죠.” 영화라는 이름의 생존 확인 “뇌출혈로 쓰러지고 10년 된 지금이 최악이에요. 진짜 최악!”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위치한 인디컴미디어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는 도중 김태영 감독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웃으며 발신 자 이름이 뜬 휴대폰 바탕화면을 보여주었다. ‘**텔레콤 미납센터.’ 지금의 사무실을 10년 동안 유지해온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한때는 <베트남 전쟁, 그 후 17년> <카리브해의 고도, 쿠바> <세계영화기행> <아시아영화기행> 등 웰메이드 TV다큐멘터리 제작사로 유명했던 인디컴미디어였지만, 지금은 사무실 보증금 까먹은 지 오래요, 월세도 부득이 미뤄 낼 때가 다반사다. 어디 사무실만 그런가.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아파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그는 월세로 얻은 아파트에서 현재 3명의 남자와 동거 중이다. 한명은 별거 중인 기러기 아빠이고 두명은 이혼남이다. “이건 추태집합소나 마찬가지예요. (웃음) 빨리 각자 재기를 해서 헤어져야 할 텐데.” 경제적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를 받았던 일 등 김태영 감독은 숨기고픈 자신의 일상을 <58년 개띠>에 고스란히 노출한다. <괴물>과 <26년>을 제작한 영화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58년 개띠>의 시나리오를 보고 “더 뻔뻔해져야 한다”고 조언을 했단다. “어차피 (장애와 가난을) 드러낸 거 마케팅으로라도 활용하게 나보고 뻔뻔해지래. 그런데 장애인이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난 너무 싫어요.” 김태영 감독은 오른쪽 팔다리를 못 쓰는 3급 장애인이다. 서울예대 영화과 후배인 고 조명남 감독과 트랜스젠더가 된 종갓집 장손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영화 <미스터 레이디>를 준비하다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그렇게 됐다. 김태영 감독은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제작하기 전 조명남 감독과 구두로 <미스터 레이디> 제작을 약속한 상태였다. 소재도 장르도 너무 앞서간 탓에 주위에선 영화제작을 극구 만류했지만 김태영 감독은 약속을 지 키고 싶었다. 하지만 촬영이 반 이상 진행된 상태에서 결국 영화제작은 무산됐다. 출근길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3일 뒤 병원에서 깨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6개월 뒤엔 낫겠지” 싶었단다. 지금처럼 무리없이 상대와 대화할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3, 4년밖에 되지 않았다. “솔직한 얘기로, 장애인인 거 너무 싫어요.” 그럼에도 김태영 감독은 퇴원하고 얼마 되지 않아 “불편한 몸을 질질 끌고 사무실에 나와” 영화며, 방송이며 다시 제작에 착수했다. “내겐 일 외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일에 빠져서 노는 게 진짜 즐거워요. 그 즐거움이 지금까지 나를 끌고 온 힘이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돈 안되는 다큐멘터리 말고 돈 되는 상업영화를 제작해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2007년엔 조명남 감독과 함께 <대도 성학수>라는 영화를 준비했지만 그러던 중 조명남 감독이 암 선고를 받았다. 영화 역시 최종 계약 단계에서 무산됐다. 이후 <위대한 개츠비>라는 영화를 준비했지만 투자사 한곳이 발을 빼면서 꿈은 좌절됐다. 지인들에게 “5만원만 빌려줘” 하고 다녔던 게 그즈음이었다. 김태영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남들은 쉽게 누리는 걸 쉽게 누리며 살지 못했다. 그에겐 외로움을 함께 나눌 여자도 없고 가족도 없다. “엄마가 5명이었는지 6명이었는지 몰라요. 어릴 때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하면서 제 유랑생활은 시작됐어요. ”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음악다방에서 DJ로 활동하다 방송국에서 FD로 일하며 16mm영화를 만들고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와 영화과에서 공부를 마치고 인디컴미디어라는 독립프로덕션을 세웠다. “경제적으로 고통스러웠지만 16mm 독립영화를 만든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의 자기 확인이요, 방송이나 예술은 성적순이 아니란 것의 증명 작업이었고, 학력에 대한 반항이었다.” 책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다>에 김태영 감독이 직접 쓴 글이다. 이장호 감독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와 함께 제38회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됐던 <칸트씨의 발표회>(1987)나,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군 병사의 양심선언을 다룬 <황무지>(정부의 단속에 의해 상영되지 못했다)는 김태영이라는 존재를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인간을 바로 보는 것.” 김태영 감독은 이것이 다큐멘터리를 하게 된 최초의 동기였다고 한다. “꿈꾸는 데 나이가 어딨냐” 세상에 눈뜨게 해준 것이 다큐멘터리였다면, 김태영 감독의 외로움을 달래준 오랜 친구는 단연코 영화다. “영화는 꿈의 엔터테인먼트인 것 같아요. 영화를 보는 그 두 시간만큼은 진짜 행복하니까.” <58년 개띠>에서 노총각 김 감독과 후배 감독은 이 런 얘기를 나눈다. “맨날 꿈만 꿔서 어떡해요. 우리 꿈꿀 나이 지났어요.” “꿈꾸는 데 나이가 어딨냐.” 김태영 감독은 영화를 보며, 영화를 만들며 영화(榮華)를 꿈꾼다. 현재의 꿈은 “계속해서 꿈꿀 수 있게 <58년 개띠>가 성공”하는 거다. 더 소박하게는 무사히 “영화를 완성”시키는 거다. 목표로 한 제작비 1억원을 아직 다 모으지 못했다. 김태영 감독의 지인과 최용배 대표가 1천만원씩 투자한 상태다. 스탭들은 대부분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고, CG, 믹싱 등 후반작업도 후배들의 도움을 받기로 약속받았다. 9월2일부터는 크라우드펀드 사이트 ‘굿펀딩’(goodfunding.net)을 통해 제작비 모금을 시작했다. 총 30회차 일정으로 10월 말까지 촬영을 무사히 마치면, 영화는 내년쯤 극장에 걸릴 수 있을 것이다. “급하게 찍지 않고 천천히, 철저하게 촬영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영화가 잘 만들어지면 로카르노영화제에 출품할 욕심도 있고요.” epilogue 인디컴미디어 사무실을 방문했던 날 김태영 감독은 돌아서는 기자의 손에 한아름 책을 안겼다. <황무지>의 시나리오와 <칸트씨의 발표회> 팸플릿과 김태영 감독이 쓰거나 제작한 책들이었다. 그 뒤로도 김태영 감독은 기사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인디컴미디어에 관한 신문기사 스크랩이나 자신의 다큐 이력을 정리한 글들)을 수시로 보내주었다. 사무실에 빈손으로 들른 게 못내 미안해 “다음번엔 제가 밥 한번 사겠습니다” 했더니 손님의 지갑을 열게 하는 건 주인된 도리가 아니라고도 했다. 김태영 감독은 자신을 찾아주고 기억해준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고마움을 표하고 마는 사람이었다. “<58년 개띠>가 잘되면…”이라는 가정법이 현실이 돼 그의 빚진 인생이 빛 든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58년 개띠 노총각감독 서울 위드 러브> 배우 & 캐릭터 길용우(고종) 대한제국의 황제이자 비밀조직 ‘제국익문사’의 수장인 고종 역은 김태영 감독과 서울예대 선후배 사이인 길용우가 연기한다. 이번 영화에선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한 왕”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김태영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항상 좋아했다. 김 감독이 오랜 고통의 시간을 벗어나서 새로 일을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뭐라도 도와주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 진혜경(명성황후/와글녀) 진혜경은 고종의 사랑을 기다리는 비련의 명성황후와 와글밥집 사장인 와글녀, 1인2역을 맡았다. “영화 속 명성황후는 김태영 감독님이 생각하는 모든 로망의 집합체이다.” 시나리오 초고엔 명성황후와 김 감독과의 뽀뽀 신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명성황후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진혜경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단다. 박창희(순정효왕후) 순종효왕후는 고종의 며느리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후다. “옥쇄를 치마폭에 숨겨 나라를 지키려 한 온화하고 강단있는 왕후다. 그 모습에 김 감독이 반한다. 순종효왕후는 김 감독을 ‘낭군~, 낭군~’ 하고 부른다.” 참고로 박창희는 네일아티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유럽에서 선정한 올해의 네일아티스트상을 수상할 만큼 대단한 실력자라고. 한초원(덕혜옹주) 고종의 막내딸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는 초등학교 5학년인 한초원이 연기한다.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다. 김태영 감독은 한초원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순간 ‘아, 덕혜옹주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첫 영화인 만큼 한초원은 덕혜옹주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단다. 조찬형(이상) 천재시인이자 제비다방 사장인 이상. 영화에선 진지한 모습보다 엉뚱한 모습이 강조될 것 같다고 한다. “상대 배역이 달샤벳의 아영이다. 여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게 이번이 처음인데, 아영이가 워낙 사랑스럽다보니 이상 역시 사랑스러워보여야 하지 않나 싶다.” 아영(금홍) 이상의 애인인 금홍은 달샤벳의 아영이 연기한다. “금홍은 이상의 여성관에 큰 영향을 끼친, 평양 최고 기생이다. 영화에선 이상에게 굴비를 사달라고 조르는 귀여운 인물로 등장한다.” 최근 아영은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 영화 <노브레싱>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의 재미를 만끽하는 중이다.

[신 전영객잔] 말(言)의 행로

<우리 선희>에 대해 “이번에 미친 짓 중 하나는 노래를 통째로 넣는 것”이라는 홍상수 감독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특집 ‘홍상수의 첫 경험’, <씨네21> 921호). 영화 안의 음악으로 세번 나오는 <고향>은 이미 알려졌듯, 1941년에 발표된 가수 이난영의 노래를 최은진이 다시 부른 곡이다. 그의 어떤 직관이 이런 시도를 하게 만들었는지 우리가 알 길은 없으나, 그간 홍상수의 음악에 친숙한 우리에게도 이 곡은 어딘지 과도하게 들린다. 물론 일차적으로 그 느낌은 그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근대가요가 흘러나오고, 그걸 부른 가수의 음색이 드라마틱하며, 무엇보다 이 노래에는 구체적인 가사가 있다는 점에 근거할 것이다. 애절하게 호소하는 가사를 더없이 애절하게 부르는 가수의 노래와 홍상수 세계의 조합에 대해 적어도 나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홍상수의 전작들에서 음악의 감흥은 음악 자체의 내용이나 개성이 아니라, 그 음악이 세계와 만나는 순간 빚어내는 낯선 감각에서 비롯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홍상수 영화에서 음악은 서사를 보충하는 기능으로 보는 이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 적이 없다. 홍상수는 우리 귀에 익숙한 클래식 음악들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황에 등장시켜 세계를 예상치 못한 차원의 감각지평으로 풍요롭게 확장하는 걸 즐겨온 감독이다. 혹은 그의 오랜 파트너인 정용진 감독이 연주한 단순하고 맑은 피아노 선율은 세계의 쓸데없는 것들을 눌러서 가장 투명한 순간을 살아나게 하는 또 하나의 독립된 세계였다. <우리 선희>에서 <고향>은 전작들의 음악들과 다르다. 앞서도 말했듯, <고향>이라는 노래의 특이성, 그러니까 음악의 구조와 내용도 다르지만, 그 느낌은 무엇보다 이 노래가 영화에 흘러들어오는 과정에서 이전과는 뭔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인상과 더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음악의 정조가 영화 속 세계와 충돌하거나 접속하며 그 세계를 다른 차원으로 이행하고 도약하게 만들었던 전작들의 방식에서 음악이 영화세계의 표면과 부딪치며 만들어낸 감흥은 영화 속의 인물들은 모르는, 영화 밖의 우리만이 누릴 수 있는 체험이었다. 그런데 <우리 선희>에서 <고향>이 당황스러운 건 영화 속 인물들이 그 노래에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영화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홍상수의 지난 영화들을 상기하면 이건 분명 낯선 광경이다. 우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지금 무언가를 듣고 있다. 그 노래가 디에게시스(diegesis) 내에서 나오는 것으로 설정되었으니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리 간단히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다. 이 노래의 작동과 이에 대한 인물들의 기묘한 반응에는 보다 복잡하고 모호한 움직임이 있고, 그걸 물을 때, <우리 선희>에 대한 새로운 물음도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를 위해 <고향>이 흘러나오는 세 장면을 언급하려고 한다. 학교 앞 치킨 집에서 선희가 먼저 나가버리자, 취한 문수는 텅 빈 가게에 덩그러니 남겨진다. 그때 프레임 안으로 <고향>이 들려오고 문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프레임 밖 어딘가를 잠시 쳐다본 뒤 얼굴을 감싼다. 문수의 낙담스럽고도 우스꽝스러운 처지와 프레임 밖으로 향하는 문수의 갑작스러운 시선, 도무지 치킨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의 어색하지만 강렬한 조합도 잊기 어렵지만, 더 이상한 인상이 있다. 다음 장면에서 문수는 북촌의 골목을 걷고 있는데 이전 장면에서 나오던 노래가 끊이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체 이 노래의 위치는 어디일까. 치킨 집 어딘가에서 나오는 것 같았던 이 노래가 그대로 이어지며 북촌의 골목길에서도 들린다면, 이 노래는 영화 안에 존재하는 것일까, 밖에 존재하는 것일까. 혹시 이 노래는 문수를 따라다니는 환청이고 그렇다면 우리 역시 문수의 환청을 듣고 있는 것일까(이 노래가 ‘아리랑’에서 다시 나오자 문수는 재학을 향해 “이거 나 좀전에 들었던 노랜데, 진짜!”라고 흥분해서 말하지만 이 말의 뉘앙스는 어딘지 자연스럽지 않다). 문수가 노래를 듣고 있었던 게 아니라, 노래가 문수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까. 그렇다면 이 노래가 처음 흘러나오는 순간, 프레임 밖 어딘가를 돌아보던 문수의 시선은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대답은 불가능하다. 다만 나는 <우리 선희>가 전작들과 비교해 “시간이 혼동되지 않고, 꿈이 등장하지 않으며, 인물의 속마음이 들리지 않는”(‘아름답고 귀한 욕망의 원주운동’, 921호)다는 정한석의 지적에 일면 동의하면서도 <고향>의 괴이한 움직임과 그 안에서 반응하는 인물의 괴이한 행동, 시선이야말로 중층적이고 모호하며, 때로는 귀기어린 기운을 영화에 퍼뜨리는 활동이라고 느낀다. 그들은 음악을 보고 있다 문수와 재학이, 그리고 선희와 재학이 술집 ‘아리랑’에서 만나는 장면들 끝에도 이 노래가 나온다. 문수와 재학 사이의 삐거덕대는 대화의 끝에, 선희와 재학 사이의 애틋한 행동이 오가는 중에, <고향>은 정황상 ‘아리랑’의 주인(예지원)이 프레임 밖으로 나가 트는 노래로 그들의 공간에 흘러들어온다. 앞선 치킨 집 장면에서 문수가 프레임 밖으로 갑자기 시선을 이동하던 것처럼, 여기서도 인물들은 노래가 불쑥 끼어드는 순간, 동시에 화면으로 고개를 돌려 뚫어지게 응시한다. 말하자면 <고향>이라는 신파적인 노래가 마치 파도처럼 프레임을 삼켜버린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인물들의 시선은 이렇게 반복적으로 프레임 밖 어딘가로, 혹은 화면 어딘가로 빨려들어간다. 이 노래는 어디서 들려오는 것일까. 지금 이들은 무엇에 홀린 것일까. 일상적으로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도중 감동적인 노래가 흐를 때, 우리는 그것이 텔레비전에서 나오거나 라이브로 연주되지 않는 이상, 그 노래가 나오는 곳을 궁금해하며 쳐다보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장면들에서 인물들이 <고향>에 대해 보이는 무의식적인 반응은 분명 이상한 것이다. 그들은 들리는 걸 그저 들으며 흥에 취하는 대신, 보고 있다. 마치 거기 음악의 육체성이 있다는 듯이.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가 듣는 것을 그들도 듣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지금 그들은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향>이라는 음악의 혼령은 대체 프레임 밖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 그 프레임 밖은 여전히 ‘아리랑’이라는 시공간일까. 거기에는 다른 차원의 시공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다소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물음의 연쇄지만, 내게 이 장면들은 그런 질문의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게 하는 충격을 안겨준다. 홍상수의 영화들을 보며 나는 프레임 밖의 비밀에 대한 호기심에 이렇게 사로잡혀본 적이 없다. 영화 안에서 유일하게 이 노래를 듣지 못한 최 교수에게도 이와 유사한 순간이 있다. 이 순간에는 <고향>이 아니라 정용진의 피아노 선율이 영화 밖에서 흐른다.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며 술을 마신 선희와 최 교수는 다음 숏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골목을 걷는다. 선희는 최 교수를 껴안고 최 교수는 그런 선희의 손을 풀었다가 그녀의 손을 다시 잡고 프레임 밖으로 급하게 나가버리는데 이후 이들의 행로는 생략된다. 술에 취한 그들의 걸음걸이와 프레임 밖 어딘가로 시선을 빼앗긴 듯한 최 교수의 표정, 어딘지 우습지만 간절한 제스처들이 이 순간에 진귀한 리듬을 부여한다. 물론 이 숏의 내용을 설명하기는 쉽다. 최 교수는 반짝이는 모텔의 불빛을 보고 그쪽으로 황급히 걸음을 옮기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 멀리 어딘가로 던져지는 최 교수의 몽롱하면서도 결기어린 시선과 둘의 세세한 행동의 리듬은 여전히 나로 하여금 이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보이는 것들의 충만한 표면들로 구조화되어 거기 감응하게 했던 홍상수의 전작들에서 우리가 느껴본 적 없는 것들이 <우리 선희>에서는 우리를 건드리는 것 같다. 홍상수의 이전 작품들에서는 ‘보이는 것’들, 바꿔 말하면 상투적인 것들이 너무 명징하게 드러나거나 인물들이 보고 있는 것들을 카메라가 정색하고 쳐다보며 그 정체를 다시 보이게 하면서, 오히려 모호함과 생경함을 우리에게 안겼다면(남산이나 성곽이나 동상들을 떠올려보라), 이 영화에서의 모호함과 생경함의 근원은 다르다. <우리 선희>에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걸 그들만 보게 함으로써 대상 자체가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만 보게 함으로써 그런 기운을 자아낸다.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동안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끌리는 경험은 적어도 내게는 처음이다. 꿈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문이 모호하거나(<북촌방향> <다른나라에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인물들의 동질성이 모호하거나(<옥희의 영화>), 시간의 축이 모호한(<하하하>) 전작들이 보이는 것들의 명확함을 흔들며 구조적인 신비를 드러냈다면, <우리 선희>에서 인물의 등장과 퇴장, 시간의 흐름은 “굵고 큰 덩어리들이 몇개 안되면서 이어”진다는 홍상수의 표현처럼 단순하고 단단한 편이다. 대신 그 ‘큰 덩어리’ 각각에 리듬을 부여하는 덩어리 내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작용, 영화적 요소들의 움직임이 중요한 것 같다. 전작들이 안에서 더 안으로 갈라지며 층위를 쌓아갔다면, 이 영화는 안과 밖의 호흡으로 리듬을 만든다. 누군가를 부르고 그 부름에 화답하는 목소리로 인물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순간을 이 영화는 프레임 안팎을 오가는 시선과 목소리의 운동을 통해 종종 신기한 리듬으로 전환해낸다. 이를테면 문호가 재학의 집 앞에서 그를 부를 때, 유사한 방식으로 최 교수가 재학을 부를 때, 두 인물은 하나의 숏에 담기지 않는다. 우리는 재학의 집 안에서 창가에 얼굴을 빼고 선 재학의 등을 보며 창밖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문호의 목소리를 듣는다. 혹은 골목길에 선 최 교수가 재학의 창가를 올려다보는 광경에 울려퍼지는 재학의 목소리를 듣는다. 말하자면 두 인물이 동시적인 시공간에 존재하며 시선과 목소리를 교환한다는 것이 영화적 사실임에도, 여기에는 이상한 머뭇거림과 엇갈림의 간극이 있다. 프레임 안으로 불쑥 밀려 들어오는 보이지 않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밖으로 향하는 시선의 이미지는 서로 다른 층위에 존재한다는 인상을 준다. 한 사람의 목소리와 다른 한 사람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실은 두 사람의 숏이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어딘지 불균형한 움직임으로 지탱되는 이 장면들은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다른 장치 없이 오직 영화적인 요소들의 움직임으로만 정서적 낯섦과 묘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말의 세속 안에서 <우리 선희>는 그러므로 어딘가로 던져지고 돌아오는 시선, 소리, 말이 중요한 영화이며, 그 던져짐과 돌아옴의 방향과 타이밍, 즉 그 행로가 기묘한 영화다. 앞서 예를 든 장면들에서는 물론이고, 이 영화에서 선희를 중심으로 돌고 도는 말의 궤적이 그렇다. 내 앞의 당신에게만 해당되는, 당신만을 매혹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말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다른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반복될 때, <우리 선희>는 말의 진위나 출처보다 그것의 자율적 활동의 활기에 더 매료된 것처럼 보인다. 그 행로에서 말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그 말의 톤이, 말의 뉘앙스가, 그리고 말이 이끌어내는 반응이 어떤 미묘한 차이의 리듬을 발생시키는지 보고 싶어 하며, 그 각각의 차이가 불러일으키는 충만감, 간절함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선희>에서 반복되는 말의 내용은 (단 한 사람에게) 유일무이하지 않지만, 말이 던져지는 순간의 공기, 말의 행로가 파놓은 기억들은 언제나 유일무이하다. 선희와 세 남자의 유사하지만 다른, 수평적으로 나열된 만남 혹은 확정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생략하는 관계, 그러니까 홍상수가 말한 “굵고 큰 덩어리들”을 붙잡으며 종종 거울처럼 서로를 비치게 하는 축은 선희라는 실체이기보다는 선희와 함께 생성되는 말의 행로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 말들이 반복되며 만들어내는 행로는 선희와 세 남자들 사이에서 우연이 작용한 결과지만, <우리 선희>라는 세계에 최소의 구조를 부여하는 영화적 필연이다. 나는 <우리 선희>가 실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말의 한계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세간의 평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선희>는 오히려 그 실체라는 것이 말로 따라잡을 수 없는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말의 작용, 행로와 함께 변하는 것이라고 믿는 영화에 더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선희는 세 남자의 선망을 받으면서도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끝내 말로 표현 불가능한 기이한 여인이 아니라, 말의 행로 속에서 자신을 진심으로 알고 싶어 하길 멈추지 않는 여자다. 말의 내용에는 개의치 않지만, 말의 행로를 민감하게 따라가며, 말이, 소리가, 음악이 들리는 곳을 쳐다보고 거기 매번 달리 반응하는 인물들이 여기 있다. 우리는 그들이 거기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끝내 알지 못하며, 영화 또한 모르는 것 같다. 다만 그 행로를 붙잡고 기억하며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 같다. 결국 말은 다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해버리는 건 홍상수의 방식이 아니다. 말의 상투적 파편들로 어떻게 질문을 꺼뜨리지 않으면서 그 과정에서 아주 잠깐 스쳐가는 투명한 한순간을 건져낼 것인가. 말의 세속 안에서 그 세속을 꿰뚫는 맑음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 영화의 마지막, 선희는 떠났고 카메라는 고궁의 사라진 무언가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남자들을 멀리서 어리석고 귀여운 작은 개미처럼 찍었다. 선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안고 말의 행로를 따라온 결과가 결국 저 세 남자들처럼 지금은 텅 빈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것이라 해도 이 마지막 장면의 찡하게 아름다운 정취와 깊이는 그 행로가 더없이 소중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만 같다.

진정한 예언자 <어떤 여인의 고백>

멀리 혹은 가까이 들리는 폭탄 소리. 전쟁과 내전으로 점철된 아프가니스탄의 한 마을에서 군인과 반군은 밤낮으로 지배와 수복을 반복한다. 식물인간 상태의 남편(하미드 자바단)을 간호하는 여자(골쉬프테 파라하니)는 폭격 속에서도 남편을 떠날 수 없다. 사랑하는 방법도 이유도 모르는 남편에게 여자는 지난 결혼 10년간 그저 고깃덩어리였을 뿐.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는 전쟁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듯 전쟁 영웅 출신 남편은 어이없는 다툼에 휘말려 식물인간이 되었고 모두 전쟁을 피해 떠나고 없다. 폭격과 강간의 위협을 느끼며 남편을 간병하던 여자는 누워 있는 남편을 ‘인내의 돌’로 삼기로 한다. 이모가 들려준 민담에 의하면 인내의 돌에 비밀을 털어놓으면 끝내 산산이 부서지면서 비밀을 가진 자의 고통을 해방시켜준다고 한다. 대담히 자신의 비밀과 바람을 말하던 여자는 처음에는 악령에 홀린 모양이라며 자기 검열을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억눌린 감정과 분노, 욕망이 토로되자 점차 해방감을 느껴간다. 그리고 우연히 말 더듬는 군인과 불가피하게 만남을 지속하게 되면서 자신이 진짜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홀린 채 진리에 도달하는 자가 선지자라면 여자야말로 진정한 예언자일 것이다. 전쟁 영웅이 아니라 여성들의 깨달음 속에 진리는 더 가까이 있다. 영화는 폭력적이고 성차별적인 지하드의 명분보다 여성적 성찰과 에로스의 포용력에 방점을 두었다. 감독 아티크 라미히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프랑스 망명작가다. 조국의 상황을 알리기 위한 매체로 영화를 선택하여 소르본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페르시아어로 쓴 자신의 첫 소설 <흙과 재>(2000)를 영화로 만든 이래 영화감독, 텔레비전 드라마 감독,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어로 쓴 첫 소설인 <인내의 돌>로 2008년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으며, <어떤 여인의 고백>은 이를 영화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