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UPCOIN24테더송금업체컬쳐랜드코인구매테더송금업체컬쳐랜드코인구매' 검색결과

기사/뉴스(1997)

[마이클 더글러스] 탐욕의 화신이 돌아왔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연기한 가장 강력하고 힘 있는 인물 중 하나가 <월 스트리트>(1987)의 주인공 고든 게코다.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매혹적인 말로 이 영화를 보았던 당대의 출세 지향적 젊은 관객을 무한정 자극했던 월 스트리트 금융가의 악덕 증권 브로커, 그러나 끝내 영화 속 자신은 파멸을 면치 못했던 인물. 더글러스는 이 인상 깊은 악역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손에 쥐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때였다. 20년쯤 지나 속편에 해당하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가 제작되었을 때 더글러스는 동일 인물로 다시 출연한다. 감옥에서 출소한 고든은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밑천으로 강연하고 책을 팔며 산다. 강당에 학생들을 앉혀놓고 월 스트리트의 병폐에 관해 이것저것 짚어가던 고든은 연설의 마무리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자 비장의 비유 하나를 꺼내든다. “그런 건 암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겨내야 할 질병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요? 세 단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연단 위에 놓인 자신의 책을 집어들며) 내, 책을, 사세요!” 이 능청스러우면서도 유머러스한 말솜씨가 돋보이는 장면을 찍을 때만 해도 더글러스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시기에 그가 구강암 말기이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때를 맞았다는 사실을.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의 홍보 시즌이 다가왔을 즈음 더글러스는 병에 대해 알게 됐고 <데이비드 레터먼 쇼>에 나와 이를 공식 인정했으며 이내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복귀는커녕 이미 말기에 이르렀다는 암을 이기는 것초차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1970년대 초에 데뷔했고 2000년대에는 <트래픽>이라는 걸출한 대표작도 있었지만, 사실 더글러스의 전성기는 <로맨싱 스톤>(1984), <위험한 정사>(1987), <월 스트리트>, <블랙 레인>(1989), <원초적 본능>(1992), <폴링 다운>(1993), <대통령의 연인>(1995)을 거치던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였다. 매력적인 쾌남에서 비열한 악당 그리고 팜므파탈에게 협박받는 유약한 남자에 이르기까지, 그는 말 그대로 한 시대의 멋진 남자주인공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그의 이름을 알린 가장 큰 사건은 연기가 아니라 그의 사생활, 캐서린 제타 존스와의 결혼이었고 시간은 정처없이 흘러갔으며 그러는 사이 2010년에 발견된 암은 배우로서 그의 연기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반드시 병을 치료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던 그가 약 2년 만에 완치를 선언하고 정말 돌아온 건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독특하다고 기록될 만한 인물 리버라치로 말이다. 더글러스에게 리버라치 역을 제안했던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훗날 고백했다.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마이클 더글러스는 정말 훌륭한 연기를 해냈다. 그런데 나도 내가 그때 왜 리버라치 역할로 더글러스에 꽂혀 있었는지는 설명을 잘 못 하겠다.” 더글러스와 리버라치,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조합이 직감적으로는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소더버그가 이 역할을 제안했을 때 더글러스가 했던 첫 반응이야말로 리버라치와 더글러스의 만남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제안을 들은 더글러스의 반응은 이거였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나를 놀리려고 이러는 건가?” “탐욕은 좋은 것” 리버라치가 누구여서 그랬던 걸까. 그는 1970, 80년대를 풍미한, “레이디 가가와 마돈나와 엘튼 존 이전에 존재했던 위대한 쇼맨”이었다. 피아니스트가 검은 정장을 입으면 피아노 색깔과 혼동되어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려한 흰색 의상을 입기를 고집했고 치렁치렁한 금반지를 손가락에 끼고서도 기가 막힌 연주 기교를 선보였으며 여는 쇼마다 거의 언제나 전회 매진되는 쇼맨십의 제왕이자 국제적인 인기 스타였다. 한편으로 그는 시종일관 게이라 의심받으면서도 그를 두고 게이라는 기사를 낸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하고는 평생 동안 운명의 여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순수남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곤 했던, 게이였다. 더글러스도 그를 기억한다. “우연히 그를 두세번 본 적 있다. 아버지(고전기 할리우드영화의 대표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팜스프링스의 리버라치 집 근처에 집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는 쇼맨십에 매우 유능했다. 그의 인기는 거의 텔레비전 쇼의 인기 덕분이었고 그 쇼를 통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됐다. 그는 아마도 카메라를 보고 직접 이야기한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다. 관객을 자신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의 대단한 능력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퍼포먼스 스타일과 자신의 공연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쇼를 사랑한 남자>가 엔터테이너로서 리버라치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인물이었는지에 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리버라치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 혹은 리버라치의 가장 중요한 연인이었던 스콧 도슨(맷 데이먼)과의 들끓는 애증이 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다. 젊고 순진했던 개 조련사 스콧은 우연히 리버라치와 만나고, 리버라치가 지닌 매력과 부에 빠져들어 그의 연인이자 집사이자 아들이 된다. 따라서 <쇼를 사랑한 남자>는 리버라치의 사랑과 욕망의 러브 스토리로 온통 가득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더글러스는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너는 단순히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완벽히 리버라치처럼 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균형을 유지해야만 하며 반드시 편안해야 할 것이며 맷 데이먼에게 정말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글러스는 자신의 그 다짐을 잘해낸 것 같다. 스콧을 유혹하고 사랑하는 그날들의 리버라치는 더없이 다정하고 뜨겁게 표현됐으며, 스콧에게 등돌리는 그날들의 리버라치는 더없이 차갑게 표현됐다. 언젠가 영화사가인 데이비드 톰슨은 더글러스가 맡아온 인물들에 관하여 “유약하고 부덕하며 탐욕스러운”이라는 묘사를 동원한 바 있는데, 대개 맞는 말들이다. 아니 거기에 배우 더글러스의 매력이 있었다. <쇼를 사랑한 남자>의 리버라치 역시 그 몇 가지 묘사에 충분히 걸맞을 만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 한 가지를 꼽자면 탐욕스러움이다. 더글러스가 리버라치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은 암 덩어리가 발견되기 이미 수년 전에 계획된 일이었으니 그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쇼를 사랑한 남자>는 더 빨리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암 투병 이전과 이후의 영화는 과연 같았을까. 리버라치의 육체의 쇠약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꺼지지 않는 성애적 탐욕이라는 대조가 지금보다 더 잘 그려질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더글러스가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취한 자세는 전에 없는 과감함이다. 그는 고도의 양식화된 연기 퍼포먼스를 시도했고 또 성공했다. 과감하게 꾸민 것이다. 하지만 그 꾸밈보다 더 중요한 시도는 과감하게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더글러스는 자신의 병마, 그걸 이겨내기 위한 독한 치료가 남긴 육체의 쇠약함을 숨기지 않고 여기저기 드러낸다. 그 때문에 노년에 접어든 리버라치의 성애의 탐욕은 오히려 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리버라치라는 인물로 돌아온 더글러스의 영화적 복귀의 행로도 그때 칭송할 만한 것이 된다. 더글러스는 이미 2013년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어쩌면 상복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르며 인간 역정의 드라마를 높이 사는 오스카에까지 그 흐름이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상을 주고 안 주고는 심사하는 사람들의 소관이리라. 다만 더글러스의 연기 인생과 이 화려한 복귀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역시나 그에게 “탐욕은 좋은 것”이다. magic hour 그 무언가가 무엇인 순간 마침내 스콧 도슨이 리버라치의 집에 눌러살게 되자 스콧을 시샘하는 이 집의 집사는 너도 그의 수많은 애인 중 하나이며 곧 버림받을 것이라고 모욕을 준다. 스콧이 리버라치를 찾아가 집사의 행동에 대해 불평을 하려던 찰나, 그는 리버라치가 숨겨온 깜짝 놀랄 만한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천연덕스러운 리버라치는 “나는 자기 속상해하는 얼굴 보기 싫은데. 자기가 슬픈 얼굴을 하면 나까지 슬퍼진단 말이야. 자기가 몇달간 날 행복하게 해줬는데 난 자길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 거잖아. 나한테는 자기 행복이 전부야 스콧”이라며 이제부터 자신의 중요한 ‘그 무언가’를 관리해주는 사람으로 곁에 남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우스꽝스럽고도 기괴한 순간이 <쇼를 사랑한 남자>의 매직 아워다. 하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린 아직 말할 수 없다. 그 순간의 난처함을 즐기는 건 당신의 권리이니까.

[해외뉴스] 봄은 언제 오나

할리우드 중원에 또다시 한파가 불어닥쳤다. 10월1일, 파라마운트픽처스(이하 파라마운트)의 최고운영책임자 프레더릭 헌츠베리가 LA 본사 및 해외 지사 직원 전체에게 보낸 메모를 통해 대규모 정리해고 계획을 밝혔다. 메모에 따르면, 정리해고 주요 대상은 재무, 인사, 정보기술, 국제 홈미디어 배급, 법률, 마케팅 부문이 될 것이며, 그 규모는 총 110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파라마운트는 지난 2008년 12월에도 전 부문에 걸쳐 100여명, 100주년이었던 2011년에도 200여명을 정리해고한 바 있다. 이번 파라마운트의 몸집 줄이기는 올해 특히 부진했던 박스오피스 성적이 주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파라마운트가 “박스오피스 성적 면에서 어려운 한해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좀비 블록버스터 <월드워Z>가 전세계에서 5억3900만달러를 벌어들이고도 겨우 적자를 면했고,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액션범죄물 <페인 앤 게인>과 제레미 레너 주연의 동화 원작 액션 블록버스터 <헨젤과 그레텔: 마녀사냥꾼>도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다. 한편 파라마운트의 모회사인 비아컴의 재정 상태도 어둠 속이다. 필름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수입만 매년 18%씩 감소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올해 3분기까지는 총 6800만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덧붙여 극장부문도 9%, 홈엔터테인먼트는 무려 34%, TV라이선스 부문도 12% 수입이 하락했다.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정리해고 소식을 전하게 된 프레더릭 헌츠베리는 “변화는 언제나 힘들지만… 우리는 이런 변화를 통해 사업의 속도와 유연성을 높이고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누구도 섣불리 낙천적인 전망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지난 5년간, 파라마운트 외에도 대부분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지속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왔다. 해마다 영화제작편수, 평균 제작예산이 감소해왔음은 물론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8월 디즈니•ABC 텔레비전 그룹도 175명 규모에 달하는 정리해고를 준비 중이라 밝혔다. 장기적인 경제난의 여파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할리우드의 비상구는 요원해 보인다.

[CINE CHOICE] <기노시타 게이스케 이야기> Dawn of a Filmmaker: The Keisuke Kinoshita Story

하라 케이이치 | 일본 | 2013년 | 96분 | 아시아영화의 창 OCT07 CGV3 16:00 기노시타 게이스케는 구로사와 아키라와 같은 해에 데뷔한 동세대이며 <스물 네 개의 눈동자>, <카르멘 고향에 돌아오다> 같은 대표작을 무수히 남긴 일본 영화의 거장 감독이다. 제목이 <기노시타 케이스케 이야기>라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삶 일부분을 소재로 한 극영화다. 1945년 4월 전쟁의 막바지, 도쿄 인근에 크나큰 공습이 지나고 난 직후. 집으로 잠시 돌아온 영화감독 기노시타는 어머니가 병석에 누웠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려고 한다. 하지만 차를 구할 수 없어 손수레에 싣고 머나먼 길을 떠난다. 전쟁 중에 아들이 아픈 어머니를 손수레에 싣고 안전한 땅에 이르기 위해 천신만고를 겪는 이 며칠간의 이야기를 감독은 한편으론 동화처럼 한편으론 텔레비전의 단막극처럼 소박하게 연출했다. 그의 영화들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의 삶의 한 시기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하지만 감독의 영화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장면도 있다. 일본 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만들었던 전쟁홍보영화 <육군>(1944), 그러나 사실상 전쟁을 예찬하기보다는 전쟁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드러내는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주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TIP 주인공 기노시타 게이스케 역할을 배우 카세 료가 하고 있다.

[런던] 영국이 사랑한 여자 그러나…

지난 9월20일 나오미 왓츠 주연 <다이애나>가 공개됐다. <다이애나>는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5년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뒤부터 파리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기까지 2년여를 그린 작품이다. 화려해 보이는 생활과 달리 가정불화로 인해 외롭고 쓸쓸한 생활을 보내던 다이애나가 파키스탄 출신의 외과의 하스나트 칸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안타까운 이별을 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축이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왕세자비의 비운의 사랑과 죽음을 담은 내용으로 제작 초기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임에도 <다이애나>에 대한 영국인들의 평가는 냉담했다.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에서 62만3천여파운드의 수익을 올리며 가까스로 5위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여름영화 성수기 시즌이 아님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다소 실망스러운 수치다. 또한 이 작품은 영국의 실존 인물들을 다뤘던 다른 작품들의 개봉 첫주 수익에서도 많이 뒤처졌다. <철의 여인>의 경우 개봉 첫주 약 215만파운드를 벌어들였었다. 사실 이같은 <다이애나>의 저조한 성적은 지난 9월 초 언론에 영화가 처음 공개되면서 예상됐던 결과다. 프리미어 행사를 통해 영화를 처음 접한 영국 내 유수의 언론들이 이 작품에 대해 내린 평가는 처참하리만큼 냉혹했기 때문이다. 당시 <더 미러>의 평론가 데이비드 에드워드는 “지루하고 값싼 로맨스”라 평했고,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는 “바꿀 수 없는 사실은 1997년 끔찍했던 사고로 사망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2013년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라고 평했다. <더 텔레그래프>의 팀 로비 역시 “올해 최악의 영화”라고 지적했다. 다이애나를 연기한 나오미 왓츠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주요 일간지는 입을 모아 나오미 왓츠의 노력과 연기력은 인정하지만 실제 다이애나 왕세자비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고 평했다. 물론 모든 언론이 <다이애나>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데일리 메일>은 “많은 단점을 가진 작품이기는 하나 올해 반드시 봐야 할 작품 중 하나”로 이 작품을 꼽았고, <이브닝 스탠더드>는 “다이애나비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을 충분히 애절하게 표현했다”고 전했다. 9월 말이면 2주차를 맞이할 <다이애나>가 대중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결과에 영국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구체제와 신문물의 대립 <텔레비전>

방글라데시의 미타누푸르. 이곳에선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비롯해 신문이나 잡지 속 사진을 보는 행위마저 모두 금지돼 있다. 극심한 이슬람주의자인 미타누푸르의 촌장 아민 파토와리(샤히르 카지 후다)는 유대인이 만든 ‘텔레비전’이란 매체를 국가 차원에서 반대해야 한다는 원칙의 소유자다. 그런 촌장에게 사업을 하는 아들(찬찰 초두리)이 있다. 그는 아름다운 코히누르(누스랏 임로세 티샤)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이 젊은 연인은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휴대전화가 필요하다. 현재 둘의 사이는 회사직원 모즈누(모샤라프 카림)가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이어가고 있다. 이후 아들은 아버지를 설득해서 휴대전화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하나를 가지면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차츰 여러 통로를 통해 연인들의 소통경로는 다양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텔레비전 한대가 마을에 들어온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의 매력에 빠져들고, 촌장은 더 강력하게 감시하기 시작한다. 강으로 둘러싸인 탓에 부두를 통해서만 문물이 반입되는, 가상의 시골을 배경으로 한 풍자극이다. 제목이 이르듯 매체 자체의 속성이 영화 속 주제가 된다. 구체제와 신문물은 대립되며, ‘술, 전화, 인터넷’ 등은 죄다 서구문물의 중독성에 대한 메타포로 쓰인다. “속이는 것과 속는 것은 둘 다 죄이며, 그래서 소설과 영화가 해롭다”라는 대사도 마찬가지다. 세련된 촌극은 아니지만 프레임과 인물관계 등이 세밀하게 구조화된 영화다. 따라서 극은 필연적 결말을 향해 유연하게 흘러간다. 젊은이들이 올라탄 환상의 말을 비난하던 촌장이 그 자신도 상상의 말에 올라타는 순간, 그래서 절망보다 웃음이 새어나온다. 이 유쾌한 소동극의 연출은 방글라데시 아방가르드 영화그룹 ‘차비알’ 소속의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 감독이 맡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던 <텔레비전>은 그의 네 번째 장편 극영화이다.

[베를린] 같고도 다른 질문

지난 10월 개봉한 에드거 라이츠 감독의 <또 다른 고향>(Die andere Heimat)이 화제다. <또 다른 고향>은 올 베니스영화제에서도 선보이며 호평받았다. 독일 언론들은 라이츠의 이번 영화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최고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다른 고향>은 원래 텔레비전 드라마인 <고향>(Die Heimat) 3부작의 프리퀄이다. 1984년부터 2006년에 걸쳐 방영된 라이츠의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 <고향>은 독일인에게 친숙하다. 이 드라마는 총 60시간에 이르는 분량으로 2차대전 뒤 독일에서부터, 68세대의 독일 대학가, 독일 통일 이후 시기까지를 아우른 대서사시다. 감독의 자서전적 이야기라 더욱 흥미롭다. 또 독일 모젤 지방의 작은 마을 샤바흐에 사는 주인공 헤르만 시몬의 가족사이자 독일 현대사를 체험할 수 있는 사회연구라 할 만하다. 네 시간 러닝타임의 <또 다른 고향>은 텔레비전 <고향> 시리즈의 주인공 헤르만의 증조부 야콥 시몬의 이야기다. 라이츠의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됐는가?”라는 끊임없는 물음은 1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징한 흑백화면에 유려한 카메라는 질척이는 땅에 닭들이 돌아다니고, 골조가옥들과 우물이 서 있는 가난한 마을로 관객을 이끈다. 말굽대장간 집의 작은아들 19살 야콥은 아버지 일을 돕기보다 몰래 숨어 책을 읽으며 몽상에 잠기기를 좋아하는 소년이다. 책 읽는 것을 들키면 야단치는 아버지를 피해 숲으로 도망가 이곳저곳을 쏘다닌다. 영화의 배경은 3월 혁명 이전 시기인 1842년부터 1844년이다. 당시 독일을 풍미했던 먼 곳을 동경하는 낭만주의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야콥은 남미 인디오에 관한 책에서 그들의 언어를 독학하며 브라질에 이민 가는 꿈을 품고 있다. 때마침 마을에 기아와 돌림병이 돌고, 결국 브라질로 이민 가는 이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야콥과 주변인들 그리고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당시의 시대정신과 인물의 심리상태가 ‘지금, 여기’로 소환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라이츠 감독은 60년대 뉴 저먼 시네마 출발 신호탄이 됐던 오버하우젠 선언의 주역 중 한명이다. 올해 81살인 그는 독일 전후 역동의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텔레비전 시리즈 <고향>이 감독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자아 찾기’였다면, 라이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조상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았을까’로 질문을 넓혔다. 결국 나는 그들로부터 온 존재가 아니던가.

[유오성] ‘어른’이 된 준석이 돌아오다

<친구>(2001)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의 최대 흥행작 중 한편이었다. 이 영화는 각종 유행어를 낳았고 향수를 자아냈다. 동수(장동건)와 준석(유오성)이라는 두 주인공도 자주 회자되었다. <주유소 습격사건>(1999) 등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졌던 유오성은 <친구>를 계기로 일약 스타가 됐다. 하지만 그 뒤로 유오성은 오랜 시간 정체해야만 했다. 적어도 영화배우로서는 뚜렷한 대표작 없이 10여년을 보냈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친구2>에 다시 출연한 지금, 그는 다시 준석이 되어 있다. 그의 소회가 궁금했다. -이 시리즈는 “<친구2>로 끝나야 한다”고 단호하게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친구3>에 관한 계획을 묻기에 그렇게 답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다. <친구>라는 귀중한 원석이 있기에 여기까지 온 게 사실이지만, <친구2>를 지나고, 나중에 또 어떻게 구현될지 그건 모르는 일이다. <친구2>가 <친구3>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정도의 작품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반드시 여기서 끝내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 했던 게 아니라 적어도 차후를 생각하면서 만든 그런 수단은 아니라는 거였다. 영화가 열린 구조로 끝나고 있지만 그조차도 수단은 아니다. -그 열린 구조의 후반부에 대해 처음에는 어떻게 받아들였나. =처음 시나리오에서는 오히려 닫힌 구조였다. 감독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내가 건의한 결과다. 아, 영화 속 저 인간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궁금증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시나리오 작업 과정 중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편인가.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이 영화가 전작에 너무 기대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전작의 내용들이 자꾸 개입하고 또 닫힌 구조로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친구>는 극장에서만 820만명이, 텔레비전으로만 3천만명 넘게 본 영화다. 그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걸 반복하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열린 구조 같은 걸 건의했던 거다. 물론 전체 방향을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본다. 감독 자신이 갖고 있었던 몇 가지 생각 중 어느 것을 더 확고히 밀어붙일 수 있도록 옆에서 누군가 용기나 확신을 주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겠다. -그럼 결과적으로 <친구>와 <친구2>의 변별점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 =개념이 좀 확장됐다고 본다. <친구>는 동년배들의 우정과 의리가 강조된다. <친구2>는 가족의 개념이 강하다. 그리고 <친구>에 동년배들의 한 시기가 들어가 있다면 <친구2>에는 인생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 준석이 차 안에서 쓸쓸하게 말하는, “내보고 오라고 하는 데가 있나” 하는 그 대사. -오랜 시간이 지나 <친구2>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친구2>가 만들어진다는 소문은 2012년 말부터 계속 듣고 있었다. 동수는 죽었고 준석이 감옥에 갔는데, 그럼 어떻게 풀어낸다는 걸까 궁금했다. <친구2>로 <친구>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나한테 운명처럼 또 선물처럼 온 것이니 솔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물론 감독에게는 장난스럽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거 잘못 만들면 당신이나 나나 바보 된다”고 말이다. (웃음) -출연을 제안받았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제안받았나. =처음부터 곽 감독에게 직접 연락이 왔던 건 아니고 주변에서 제안이 먼저 왔었다. 일의 순서를 따지자고 했다. 저작권 문제부터 먼저 풀자, 그다음에 시나리오 나오는 거 보고 결정하자, 그렇게 전했다. 그러다가 올해 2월에 부산에서 곽 감독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좀전에 말한 시나리오 수정 같은 그런 과정들을 거친 거다. 내가 처음 받은 건 시나리오 2고였는데 그것으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 만에 수정이 됐더라. 감독 머릿속에 여러 버전이 있었고 지금과 같은 게 그중 하나였기에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수정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곽경택 감독과의 오랜 불화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시나리오가 물론 중요하지만 사람끼리의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일이란 안되는 것 아닌가. 그런 문제는 <친구2>를 하면서 서서히 풀어간 것인가(2002년 한 의류업체 광고에 <챔피언>의 영상 일부가 사용된 것을 두고 유오성쪽이 초상권 문제 등을 제기했다. 양방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이를 계기로 배우 유오성과 감독 곽경택은 근 10여년간 등을 돌리고 지내왔다.-편집자). =화해고 뭐고 할 문제가 아니다. 작품을 하면서 풀 것도 없이 이미 다 끝난 문제였다. 같이 나이 먹다 보니 달라진 것도 있다(유오성과 곽경택은 1966년생 동갑내기다.-편집자). 서로 싸우고 경쟁하고, 뭐가 옳고 그르고, 그런 거 따질 필요가 없는 거다. 따져서 뭐하나. 별로 잘난 것도 없는데. 자기나 나나 뭐 잘된 것도 없고. 자기는 <챔피언> 하고 대판 깨지고, 나는 <별> 찍으면서 별들에게 물어보고 있고. (웃음) 김성수 감독이 그러더라. “봐라, 이 자식들아 왜 싸워가지고, 도대체 너희 뭐냐?” (웃음) 지금은 곽 감독도 나도 가정이 있고 애도 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는 어린 시절이었다. 인생이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구나 싶은 거다. 우리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누군가 단순히 조금 더 앞에 있고 뒤에 있을 뿐이지, 그냥 다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잘난 척하지 말아라. 잘났으면 날아다니지 왜 걸어다니냐”고. -기자 간담회장에서 <친구>를 찍을 “당시에는 속도의 문제였고, 지금은 방향의 문제”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렇게 그냥 길을 가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곽 감독을 만나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아이고, 그렇게 잘났으면 왜 이러고 있냐?” 그리고 바로 웃으면서 소주 한잔했다. 앞으로 우리 서로 미안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대신 이 영화 잘 만들자고 했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작업이었다. 서로 작업 스타일 면에서는 어땠나. =본질적으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하다. 다만 처음이 좀 힘들었다. 교도소를 걸어나오는 초반 장면을 찍는데, 몸이 굉장히 힘들더라. 아마 영화 근육을 내가 좀 잊고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감독도 실은 걱정을 좀 했나 보더라. 12년 만에 하는 건데 예전 준석의 분위기가 날까 하고. 그런데 스탭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내가 터벅터벅 감옥에서 걸어나오는 걸 보고 감독이 “저기서 준석이가 나온다”고 좋아했다더라. -준석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특별한 준비를 하진 않았다. 사투리 연습을 다시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정도였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더라. 내가 <친구> 때 좀 찐득하게 외워놨구나 싶더라. -영화는 세 인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준석의 아버지 이철주(주진모)의 일화가 오히려 준석과 성훈(김우빈)의 일화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배우로서는 어떻게 느꼈나. =아니, 나는 오히려 이철주의 일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쪽이다. 원래 감독이 구현하고자 한 것이 세대간의 갈등, 어떤 인생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철주라는 인물이 지닌 상징성이라는 것이 있다. 영화적으로 그것 나름의 미덕이 있다고 본다. 준석과 성훈 장면으로만 가면 리듬상 지나치게 숨통을 죄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이런 문제도 있다. 배우가 연기를 했는데 그 장면들이 날아가면 배우는 상처를 많이 받는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해봤다. 서글퍼진다. -<친구2>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준석의 면모라고 한다면 그가 ‘어른’이라는 것이다. 전작의 준석과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을 어떻게 연기하려 했나. =<친구>의 준석은 격정적이다. 폭발하고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하지만 <친구2>의 준석은 나이 들었고 이제는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도 줄어들었다. 나이 먹으면 힘도 빠지게 되어 있다. <친구>의 준석이 행동을 통해 강제로 남을 굴복시키려 했다면 <친구2>의 준석은 말로서 설득하려 하지 않나. 인생의 시기마다 다 갈 길이 따로 있는 거다. 언덕을 올라갈 때도 있고 그러다 쉬는 그루터기를 발견할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니 연기하는 데 큰 부담감이 없었다. 격렬한 연기를 하는 건 오히려 쉽다. 하지만 나는 연기를 할 때 3인칭 시점이 필요하다고 본다. 변신이라는 건 사실 말이 안되는 것 같고, 그보다는 내가 연기하는 이 인물을 내가 지금 어떻게 하려 하고 있는지 관찰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준석은 한 장면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 속에서 크게 울거나 웃거나 하지 않는다. =준석이 성훈을 앞에 놓고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아마 그 옛날 같았으면 지금처럼 하지는 않았을 거다. 더 격렬하게 했을 거다. 지금은 어떻게 하나? (영화 속 연기를 재현하며) “니 나하고 부산 접수할래?” 하고 그냥 조용하고 무심하게 말하지 않나. <친구2>의 준석이라는 인물을 보면 인생의 즐거움이 별로 없다. 가장 친했던 놈 동수는 떠나갔고, 영화상으로 보면 나머지 친구들도 다 없다. 예전 같으면 칼을 휘둘러도 더 격정적으로 했겠지만 지금은 그러지도 않는다. 준석이 액션을 하는 건 후반부에 딱 한번 등장하지 않나. 하긴 그 장면을 보고 내가 아는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은 하시더라. “거기 한 200명이 있다고 해도 준석이 있는 그 앞으로는 못 가겠더라”라고. 장례식장 이후의 장면들을 말하는 건데, 그 장면들이 좋다. 이 마지막 25분까지만 관객을 데리고 가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부하가 준석에게 어디로 가겠느냐고 물으면 준석이 ‘어디 내보고 오라는 데가 있나?’ 하고 말하는 후반부 자동차 장면이 있다. 배우로서 그 장면을 좋아한다고 앞서 말했다. 보는 사람에게도 그 장면은 공들여 찍었다는 인상을 준다. =그 장면에서 내가 한숨을 훅 쉬는 게 너무 좋다고 그러더라. 나는 관객이 그 장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길 바랐다. 아, 나는 준석이 저 자식보다 낫구나, 내게는 나를 반겨주는 가족이 있구나 하고. 저 자식이 저렇게 살다가 저렇게 됐지만 나는 저놈만큼 비참하지 않아,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친구2>는 그런 걸 음미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차기작 계획 있나. =아직 없다. <친구2>가 일단 잘돼야지. -물론 영화배우 유오성으로서의 관심사란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열심히 하는 것일 거다. 그렇다면 자연인 유오성으로서 최근의 관심사는 어떤 것들인가. =일상성을 따르는 것. 순리를 따르는 것. 도리. 그리고 조급해하지 말고 감사하자. -최근 영세를 받았다고 들었다. =지난해에 아내가 먼저 받았다. 어머니도 실은 천주교인이었다. 이 영화를 하면서 내가 건 조건이 딱 하나 있었다. 일요일에는 촬영 못한다는 거. 일요일에 어기지 않고 성당에 갔다. 울산과 부산 등지에서 촬영하면서도 매번 서울에 왔다. 거의 6개월을 그렇게 보냈다. 영세 받는 날 축하하기 위해 우리 회사 대표가 성당으로 찾아왔기에 내가 그랬다. “내가 핑계대고 딴짓하나 싶어 감시하러 온 거 아니냐고.” (웃음) 시사회장에서 (김)우빈이가 저기 수녀님도 우리 영화를 보러 오셨다고 신기해 하기에 별말 안 하고 그냥 눈만 한번 찡긋해줬다. 그 수녀님이 바로 내가 다니는 성당에 계신 분이고 내가 초대한 분이었다. 그동안 유오성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었다. 상대하기 껄끄러운 사람. 불화가 잦은 사람. 유오성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인터뷰하러 온 어떤 기자는 내가 되게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았다고 고백하더라.” 구설에 올랐던 불미스러운 실화들, 거기에 얽힌 소문들이 그런 이미지를 제공해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완숙을 강조했다. 인터뷰 도중 유오성이 가장 자주 꺼낸 말은 “이제 나이를 먹고 보니…”다. 이제는 세상을 좀더 넓고 고요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보니, 라는 뜻일 거다. 유오성은 그런 마음으로 준석을 연기했을 것이다. 현실의 시간으로는 12년, 영화 속 시간으로는 17년, 그렇게 유오성과 준석은 함께 ‘어른’의 자리에 와 있다.

지상파의 고민이 시작됐다

신촌역에서 연대 근방 하숙집까지 택시(!)를 탄 ‘삼천포’(김성균)가 종로를 지나 서울역의 야경을 스치면서도 택시기사에게 뭐라 항의도 못하던 그 시각. 하숙생을 기다리다 지친 성나정(고아라)의 가족들이 보던 텔레비전에도 홍식(한석규)의 꾐에 넘어가 갓 상경한 춘섭(최민식)의 긴장한 표정이 겹친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MBC <서울의 달> 외에도 <마지막 승부> <사랑을 그대 품안에> 등의 드라마가 자주 노출된다. 나정의 엄마(이일화)가 잠시 KBS <한명회>를 언급했지만, 당시의 유행과 정서를 이야기할 때 주로 부름받는 건 MBC 드라마였다. 1991년 SBS의 개국에 MBC는 고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 콤비의 <여명의 눈동자>로 맞섰고, 일본 버블경제 시절의 트렌디 드라마를 이식한 <질투>에 이어 신데렐라 드라마의 조상 격인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스타 차인표를 배출하기까지 ‘드라마 왕국’의 아성은 흔들림이 없었다. <응답하라 1994>의 시간선에는 MBC 드라마의 좋았던 시절도 겹치는 셈이다. 패권을 쥐고 있던 MBC 드라마에 95년 <모래시계>로 역습을 가했던 후발주자 SBS의 전략은 tvN의 현재와 매우 유사하다. 개국 초기 SBS는 타 방송사와 동시간대 편성을 피하고 자극적인 소재 경쟁을 주도했으며, 적은 제작비로 효율을 높이는 <오박사네 사람들> 등의 시추에이션 코미디 형식으로 시장의 틈새를 공략했다. tvN 역시 유연한 편성과 지상파 아침드라마 못지않은 선정적인 드라마를 내놓는 한편, <막돼먹은 영애씨> 등 저비용으로 출발한 시즌제 드라마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평범한 30대 직장여성의 인간관계로 현재 시즌12까지 이어온 <막돼먹은 영애씨> 이후, 타깃을 좁히고 공감을 끌어내는 디테일에 주력한 기획은 ‘군디컬 드라마’ <푸른 거탑>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SBS가 80년대의 정서를 공유하는 이들의 열광을 끌어낸 <모래시계>로 판세를 뒤집었듯, tvN은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을 같은 문화를 소비했던(혹은 같은 소비가 문화가 되었던) 기억으로 묶어낸 2012년 드라마 <응답하라 1997>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개국 초기엔 대표가 국감장에 불려갈 정도로 선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았던 채널이 어느덧 사회적 신드롬을 낳는 시리즈를 안착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비슷한 시기에 개국해 2008년까지 의욕적으로 자체 제작 드라마를 선보이던 드라맥스의 편성표는 현재 지상파 드라마 재송출로 채워진 형편. 온미디어 계열 채널의 흡수/합병 이후, 사실상 적대자가 없는 CJ E&M이 모기업이란 점도 tvN 드라마가 살아남는 데 이점으로 작용했다. 케이블에서 지상파 수준의 광고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CJ E&M은 시청층을 분리하고 채널을 특화시킨 뒤, 드라마로 결합하는 방식의 기획에도 분주하다. 미리 만들어둔 몇곡을 극의 분위기에 맞춰 반복 사용하는 틀을 뒤집고, 드라마 캐릭터들이 음원을 만들어낸 tvN의 음악드라마 <몬스타>는 CJ E&M 계열인 Mnet과 공동제작한 경우. 오디션 프로그램 <꽃미남 캐스팅 오! 보이>의 우승자를 <꽃미남 라면가게> <닥치고 꽃미남밴드> 등 ‘꽃미남’을 전면에 세운 드라마에 투입하는 기획도 강점인 쇼/오락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결합하는 시너지를 노렸다. 신원호 PD처럼 비드라마국 출신 연출가를 영입해 드라마를 제작한 점도 지상파 조직에선 쉽지 않은 시도다. 기획단계에서 작품의 규모에 합당한 제작비를 조율하는 CJ E&M의 시스템 또한 안정적인 제작을 담보한다. 외주 제작사는 일정 시청률을 넘어야만 광고수익으로 제작비를 보전하며 연출가나 작가 또한 시청률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상파 드라마 환경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고 그만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이다. 김병수 PD와 송재정 작가의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나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 <감자별 2013QR3>가 tvN에서 방영되는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개국 7주년을 맞은 tvN은 KBS에서 CJ E&M으로 자리를 옮긴 곽정환 PD의 시대극 <빠스껫 볼>을 지상파 미니시리즈와 동시간대에 편성하는 강수를 두었다. 지금 궁금한 것은 시청률보다 이들이 어느 수준의 제작역량을 보여줄 것인가다. 지상파에서 내놓을 맞수는 무엇일까? 공채 PD와 작가 공모전 시스템으로 쌓은 인력을 제대로 성장시키고 있는지, 또 외주 제작사와의 관계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은 아닌지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제] 다양한 정서와 질감의 축제

국내 단편영화제 중 최고의 관객점유율을 보유하며 해를 거듭할수록 무서운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2013 최강애니전이 남산 서울애니시네마에서 개최된다. (재)SBA서울애니메이션센터, 애니충격전 연합사무국, 주상하이 한국문화원 주최로 11월20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최강애니전은 세계 4대 애니메이션영화제인 안시(프랑스), 오타와(캐나다), 자그레브(크로아티아), 히로시마(일본)를 비롯해 세계 10대 영화제의 수상작들을 엄선해 선보이는 영화제로 유명하다. 최고의 작품들을 단순히 소개할 뿐 아니라 경쟁부문을 마련하여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선발하는 기회도 마련하고 있다. 올해 경쟁부문에는 총 34개국의 장/단편 애니메이션 101편이 최고의 자리를 두고 열띤 경쟁을 벌인다. 비경쟁부문에서도 총 236편이 소개된다. 국경과 문화를 초월해 이란, 라트비아, 벨라루스 등 낯선 나라의 다양한 애니메이션도 만날 수 있다. 특히 한국 최초로 영화제의 해외 진출 기회가 마련되어 올해부터는 최강애니전을 중국(상하이), 일본(도쿄/요코하마)에서 만날 수도 있다고 한다. 단편경쟁부문에는 놀라운 상상력과 비주얼, 참신한 발상을 뽐내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의 신체 변화를 섬세한 질감으로 표현한 <아보보>(폴란드, 아니타 퀴아트코브스카-나크비, 안시 최고졸업작품상), 일본 고도성장기를 함께한 컬러 텔레비전이 고물상에 버려지면서 일어나는 애달프고 향수어린 이야기를 다룬 <골든 타임>(일본, 이나바 다쿠야, SICAF 단편관객상), 누드모델, 시사만화가, 작가, 카바레 가수이자 무엇보다 20세기 초 파리 전위적 예술가들의 밤의 여왕이었던 키키의 회고담을 바탕으로 제작된 매혹적 이미지의 <몽파르나스의 키키>(프랑스, 아멜리 아로, SICAF 단편우수상), 고요하고 쓸쓸한 소년과 우유맨의 환상적 만남을 그린 <우유가 필요해>(노르웨이, 그론모/안나, 오타와 시민상 및 최우수학생부문특별상) 등 다양한 질감과 온도와 정서를 보이는 단편들을 만나보자. 가족과 함께라면 <마법 빗자루>(안시 TV부문 그랑프리, 아니마문디 관객특별 어린이용단편)나 <어드벤처 타임-글리치 이즈 글리치>(오타와 최우수 TV 어린이 특별상)를 추천한다. 장편부문에서는 총 6편이 경쟁한다. 탈출한 재소자가 외딴 마을에서 겪는 기이한 운명을 다룬 <사도>(스페인, 페르난도 코르티조 로드리게스, 안시 장편부문관객상)는 사악하고 수상쩍은 유머가 섞인 공포 스릴러를 선보인다. 두 친구가 유고슬라비아 근방을 여행하기로 결심하고는 ‘티토’라는 미라 친구를 만들어 그를 동참시키는 과정을 낯설고 실험적 이미지로 선보이는 <티토와 함께>(스웨덴/독일, 막스/헬레나, 오타와 장편그랑프리)도 놓칠 수 없다. 식민지시대, 군사정권기, 그리고 미래의 브라질을 관통하는 600년 시간을 오가는 대하 서사 판타지 <리우 2096-사랑과 분노에 관한 이야기>(브라질, 루이즈 볼로그네지, 안시 장편그랑프리)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정신을 핸드드로잉, 콜라주, 포토몽타주, 스텐실의 서로 다른 스타일로 엮어낸 애니메이션 앤솔러지 작품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니마>(아르헨티나, 마리아 베로니카 라미레즈, 홀란드 장편그랑프리)에서는 남아메리카 애니메이션에 담긴 역사와 문화, 독특한 이미지들의 향연을 만날 수 있다. 최강신인열전에서는 모리 료이치(일본), 마이클 랭건(미국), 샤론 가짓(이스라엘)의 독창적 작품들을 만난 뒤 그들과 대화하는 기회도 주어진다. 더불어 해외 유명 애니메이션 전문가 24인의 다양한 마스터클래스도 기다리고 있다. 경쟁부문 못지않게 풍요로운 비경쟁부문도 최강감독열전, 최강아카데미열전, 최강스튜디오열전, 최강아시아열전 섹션으로 다양하게 열리니 취향에 맞게 골라볼 수 있다. 올해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에 한해 무료관람 이벤트도 진행된다.

[flash on] 잘 만든 픽션은 다큐처럼 다가와야

아시아영화의 발굴과 제작지원을 목표로 한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야심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방글라데시의 영화감독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의 발견은 단연 돋보이는 성취다. 2009년 BIFF에선 그의 <제3의 인생>이 소개됐고, 아시아영화펀드 지원으로 완성된 <텔레비전>은 지난해 BIFF 폐막작으로 선정된 뒤 각종 해외 영화제로부터 기분 좋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방글라데시 영화계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파루키 감독이 <텔레비전>의 개봉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에게 방글라데시영화라는 신세계에 대해 전해 들었다. -<텔레비전>은 2003년 투레쿠에 마수드 감독의 <클레이 버드> 이후 방글라데시영화로는 두 번째 해외 개봉작이다. =대단히 기쁘다. 두 번째 해외 개봉까지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렸다. 그간 방글라데시의 젊은 영화감독들은 아시아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지만 끊임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방식으로 해보려고 애써왔다.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방식’이란 어떤 것인가. =방글라데시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반영한 영화라면 그게 곧 방글라데시의 영화가 아닐까. 한국, 이란 등의 영화를 따라하지 않고, 또 스타일 구축에만 집착하지 않는.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마음을 따라가는 게 우선이다. 스타일은 그 뒤에 자동적으로 구축될 것이다. -극영화인 <텔레비전>은 방글라데시가 당면한 세대, 종교, 빈부 문제 등을 아우르는 한편의 다큐멘터리 같더라. =텔레비전이 없는 마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지는 불경스럽다’고 믿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분명 존재한다. 영화 속 모든 요소들은 방글라데시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고 내 나름대로 영화에 반영한 거다. 진정한 영화감독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만든 극영화는 ‘정말 있을 법한,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또한 좋은 다큐멘터리는 ‘이건 허구일 거야’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연기, 카메라 움직임, 서사 등 모든 게 잘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새로운 문화와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당신 영화의 화두인가. =어릴 적에 이미지를 불온하게 여기던 아버지 때문에 사진을 커튼으로 다 가려두고 살짝살짝 보곤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심하게 반항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서로 미안한 감정이 생기더라. 하루는 아버지가 영화 속 촌장처럼 엉엉 우시는데 강한 인물도 울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톨레랑스를 생각하게 된 건 그래서다. 내 어머니는 여전히 이미지는 나쁘다고 믿고 TV도 안 보시지만 영화를 만드는 아들을 무척 자랑스러워하신다. 아무리 강한 믿음이 있다 해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마음을 열 줄 알아야 좀더 평화롭고 살 만한 사회가 되지 않겠나. 나이 지긋한 촌장이 아직도 받아들여야 할 게 많다는 걸 인정하는 <텔레비전>의 마지막 장면도 같은 맥락이다. -<텔레비전>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내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도 됐다. =BIFF가 주효했다. 특히 <텔레비전>이 지난해 폐막작으로 선정된 뒤로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고 수상도 하게 됐다. 그중 아시아/태평양스크린어워즈(APSA)에서 최고의 시나리오에 노미네이트된 건 영화를 말하는 나의 방식에 외국 관객도 매력을 느꼈다는 것인 만큼 굉장히 뜻깊었다. -한국영화를 언급하는 게 상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방글라데시에 개발 붐이 일던 시대에 내 또래 영화인들은 한국, 이란 등 외국영화를 많이 접했다. 왕가위, 허우샤오시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뿐 아니라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 감독들도 그때 알게 됐다. 신진 감독들의 영화로는 <무산일기> <파주> <여행자>를 굉장히 좋아한다. -차기작 는 어떤 작품인가. =다 짊어질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허황된 꿈을 꾸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현실 세계가 강력한지 아니면 상상이 만들어낸 세계가 더 강한지를 보고 싶었다. <텔레비전>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질문이지만 다른 스토리와 방식으로 구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