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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오승욱의 뒷골목 만화방] 처절한 고통의 기록

달도 차면 기울고 활짝 핀 꽃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어 땅에 떨어진다. 1950년대와 60년대 일본 만화의 대명사와 같았던 데즈카 오사무도 7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드넓은 자기 집 마당에 건물을 보란 듯이 세우고 제2의 월트 디즈니를 꿈꿨던 애니메이션 사업을 접어야 했고, 무시 프로덕션도 부도를 맞아 정리해야 했다. 게다가 만화잡지의 연재도 끊어졌다. 데즈카 오사무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자신의 어시스턴트들에게 <소년 매거진>에 연재 중이던 가지와라 잇키 원작, 가와사키 노보루 만화의 <거인의 별>을 펼쳐 보이며 이런 만화가 어떻게 재미있느냐고 물었던 일은 이 시기의 유명한 일화다. 60년대 중반부터 반(反)데즈카 오사무를 외치는 만화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만화를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와 구별해 극화라 이름 붙였다. <생존게임>과 <고르고 13>으로 유명한 사이토 다카오가 그 선두 주자였다. 50년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보고 자란 소년, 소녀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다. 60년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우주 소년 아톰>을 보고 자란 세대들은 이제 고등학생 또는 대학생이 되었고, 새로운 독자들은 <거인의 별>과 <내일의 죠>에 열광했다. 나가이 고의 만화 <파렴치 학원>은 학부모들이 증오하는 만화로 연재 중단을 요구하며 연일 신문에 오르내렸지만 소년 독자들은 이 만화를 지지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학복물이라는 명칭으로 중학교 교복을 입은 소년들이 패싸움을 하는 열혈 소년만화 <사나이 카키 대장>은 소년들의 혼을 빼놓았다. 데즈카 오사무의 어시스턴트였던 만화가들이 독립해 자신들의 시대를 열었으며, 그 뒤로 오지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배를 쫄쫄 굶으며 희망이라고는 도쿄로 올라가 만화가가 되는 것뿐이라 믿었던 소년들이 그린 손때 묻은 만화 원고들이 독자들과 만났고, 그렇게 만화가로 성공한 그 소년들이 도쿄에 집을 사는 시대가 되었다. 절망에서 부활하다 데즈카 오사무는 시대에 뒤처지고 말았다. 애니메이션 사업을 벌이며 재능을 과도하게 쏟아부은 그에게 남은 것은 지친 머리와 나빠진 시력, 허리 통증이었다.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등장한 열혈남아들이 입을 쩍 벌리고 분노를 표현하는 시끄러운 과잉의 만화들을 데즈카 오사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히 그런 만화들을 그릴 수도 없었다. 그가 찍었던 인감도장들은 빚으로 둔갑해 데즈카 오사무를 온종일 빚 독촉 전화에 시달리게 했다. 그런 그에게 한 사나이가 찾아왔다. 후배 직원을 앞에 두고 업무 지시를 하면서 책상 위에 맨발을 떡하니 올려놓고 성냥불로 발가락 사이를 지지며 무좀 치료를 하는 사내. 임협영화에 등장하는 야쿠자처럼 양복 소매에 팔을 넣지 않고 어깨에 걸친 채 두손은 주머니에 넣고 침을 뱉으며 상대방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무서운 사내. 아즈마 히데오의 만화 <실종일기>에도 등장해 아즈마 히데오를 뻔뻔하게 부려먹다가 단물을 다 빨았다고 생각하자 웃으며 절연!을 말하는 악당. 바로 <소년 챔피언>의 편집장 카베였다. 카베 편집장은 데즈카 오사무가 이제는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고 그의 마지막을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소년 챔피언>에서 지켜주려고 그에게 연재를 부탁한다.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만화의 길로 들어선 데즈카가 무의식중에 자신의 마지막 만화를 자기가 가지 않은 길인 의사가 주인공인 내용으로 그리겠다고 하자 카베는 1화로 완결되는 단편만화 형식으로 그리는 것을 조건으로 연재 시작을 알린다. 사실 의사가 주인공인 만화는 편집부의 후배 편집자가 공을 들여 준비하고 있는 아이템이었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알고도 데즈카 오사무의 마지막 작품을 허락한 것이었다. 당연히 후배 편집자는 항의했고 카베 편집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데즈카 만화는 3, 4회 연재하면 끝이야”라고 말한다. 당시에는 데즈카도 몰랐고, 카베 편집장도 몰랐다. 70년대 초, 열혈 주인공들이 과잉으로 무장하고 날뛰는 시대에 의사가 주인공인 조용한 만화가 절망에 빠진 만화가를 제2의 전성기로 부활시키고, 소년만화잡지의 후발 주자로 위태롭게 생존하던 <소년 챔피언>의 생명을 20년이나 연장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만화 <블랙잭 창작비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3, 4회 연재하면 끝이라던 만화 <블랙잭>이 데즈카를 모르던 소년, 소녀 독자들에게 통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그리고 이후 데즈카 오사무는 거칠 것이 없었다. <불새>의 장대한 여정이 다시 시작되었고, <붓다>가 탄생했으며, <아돌프를 위하여>를 비롯해 <추락천사>와 같은 위대한 단편만화들이 만들어졌다. 198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데즈카 오사무는 “어른들은 다들 금방 죽는다고요!”,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아침까지는 반드시 완성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말하며 숨어 있던 자신의 재능을 마지막까지 쥐어짜며 만화를 그렸다. 800여 페이지 네권 분량의 <블랙잭 창작비화> 속에는 <캡틴 하록> <은하철도 999>의 마쓰모토 레이지를 비롯하여 <사이보그 009>의 이시노모리 쇼타로, <데빌맨> <마징가 Z>의 나가이 고 등등 수많은 만화가들이 등장하고, 소년만화잡지들의 수많은 편집자들, 무시 프로덕션의 직원들과 어시스턴트, 애니메이터들, 데즈카 오사무의 아내와 아들까지 등장해 데즈카 오사무에 대해 말하는데 그 이야기들은 단 한 가지, 마감 시간에 맞춰 원고를 넘기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만화 원고지에 코를 박고 그림을 그리는 데즈카와 줄담배를 피우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감 시간 전에 데즈카의 만화 원고를 받아내려는 편집담당들, 철야! 철야! 철야!를 외치며 하루에 두어 시간 쪽잠을 자면서 그림을 그리는 어시스턴트들의 이야기뿐이다. 장장 800페이지 내내 단 한가지 이야기만을 그린 만화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데즈카에 대한 용비어천가쯤으로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는 작품이지만, 무명의 신인인 원작자 미야자키 마사루와 만화가 요시모토 고지, 두 젊은이는 데즈카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고통을 또박또박 만화 원고에 기록해놓았다. 그래서 800페이지는 재미있는 만화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그 당시 사람들의 처절한 고통의 기록이 되어버렸다. 더욱더 대단한 것은 이 만화의 주인공이다. 이 만화의 주인공은 만화 <블랙잭>도 아니고, 데즈카 오사무도 아니며, 그의 어시스턴트들도 아니다. 만화 <블랙잭 창작비화>의 주인공은 데즈카가 누워 있는 병실을 찾아와 마지막 작별 인사로 그의 손을 잡으며 “데즈카는 자신의 편집 인생 그 자체였다”고 고백하는 <소년 챔피언>의 편집장 카베다. 만화의 마지막 권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이 만화는 대단한 기적을 일으킨다. 무명의 두 젊은 작가는 만화잡지 편집자와 만화가 사이의 피를 말리는 고통의 대가로 탄생한 우정을 그린 것이다.

[스페셜] 단념의 정조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태풍이 지나가고>가 영화적 호흡을 쌓아가는 법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홈드라마는 언제나 평균 이상의 감동을 준다. 이 장르에서 그가 만든 최고작 <걸어도 걸어도>(2008)의 성취에 못 미친다 해도 상관없다. 좀 이상한 얘기지만 <태풍이 지나가고>는 두 가지 점에서 슬픈 여운을 남기는데, 첫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홈드라마가 늘 그렇듯이 죽음과 이별을 포함하여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한 단호한 체념 같은 것이 배어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중에선 가장 친절하게 관객에게 설명하려드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고레에다의 화법은 이미 충분히 친절한데도 그는 점점 관객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로 가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든다. 이는 더 많은 관객을 원하는 게 아니라 더 관객이 줄어드는걸 원하지 않는 연출의 방어심리인 것 같아 슬프다. 묘하게도 이는 영화 속 기키 기린이 연기하는 할머니 요시코가 아들과 딸, 며느리에게 줄곧 중언부언하며 잔소리를 하는 상황과 겹쳐 다가온다. 상황을 돌이킬 수 없지만 그게 안타까워 말을 보태다가도 에잇,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인 것이다. 대안의 삶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아버지의 인생을 반복하고 있다. 가족을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하는 것도 모자라 집 안 어딘가에 숨겨둔 비상금을 훔치거나 집 안 물건을 저당잡히며 살았던 아버지의 삶은 한때 문학상을 받았던 소설가지만 흥신소에서 부업일로 연명하는 료타에게 대물림된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료타는 이혼한 아내와 아들에게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도 못하며 어쩌다 생기는 돈은 경륜과 복권으로 탕진한다. 영화 초반에 그가 아버지 장례식 직후 어머니의 낡은 연립주택을 찾아와 하는 것은 아버지의 값나가는 유품을 뒤지는 일이다. 료타의 어머니는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고 말하지만 료타는 셋슈 작가의 진귀한 족자를 찾아 전당포에 맡겨 돈을 벌 생각이다. 그 족자는 상자만 진품인 모조품이었다. 료타의 행동은 아버지를 꼭 닮았기 때문에 가족에게 쉽게 들통난다. 어머니는 거짓말을 할 때면 세번 반복하는 료타의 습관을 지적하고 료타의 누나도 료타가 벽장 속에 어머니가 숨긴 돈봉투를 찾아내려 할때 미리 바꿔치기해놓고 약 올리는 메모를 남겨놓을 만큼 료타의 행동을 꿰뚫고 있다. 요컨대 료타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실패자이며 도둑이고 거짓말쟁이다. 아버지를 닮지 않기 위해 공무원이 되려고 했던 그가 이렇게 된 건 인생의 행운을 바라며 도박에 탕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복권에 매달리는 자신을 힐난하는 이혼한 아내에게 자신은 꿈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순수문학이 대접받지 못하는 세태를 한탄하면서도 그는 누구보다 속물적으로 산다. 흥신소에 의뢰 들어온 일들 가운데 불륜 현장을 포착한 것을 미끼로 협잡도 서슴지 않는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삶을 되돌리거나 다른 방향으로 도약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료타는 아들 싱고(요시자와 다이요)에게 무능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의 아들 싱고도 아버지 료타를 닮아 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싱고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칭찬받은 글재주를 할머니가 칭찬하자 이 아이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할머니가 아빠를 닮기 싫으냐고 묻자 이 아이는 “엄마는 아빠가 싫어서 헤어졌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러곤 아빠가 사준 복권이 당첨되면 커다란 집을 짓고 가족이 다시 모여 살자고 말한다.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할머니는 기뻐하지만 이 아이의 천진난만한 꿈이 허무맹랑한 것이라는 건 싱고 그 아이 자신도 알고 있다. 싱고는 어느새 아버지의 삶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심하게 야구에서 홈런보다는 포볼로 진루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포볼로 진루하는 데 계속 실패하면 이 아이는 홈런을 노려 계속 헛스윙을 남발하며 한방을 기대하는 삶을 사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삶을 되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은 다소 침울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대안의 삶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가든 그들의 삶에 어떤 극적 전환점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까지 그들이 살아왔던 궤적은 어떤 방식으로든 바꾸기가 힘들고 오직 필요한 것은 단호한 체념에 따른 긍정뿐이다. 영화는 이에 관한 다소 과도한 대사들을 여러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주입한다. 흥신소 소장은 료타에게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남자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충고하고 료타의 어머니는 료타에게 ‘행복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런 말들은 근사하지만 너무 직접적인 문어체라서 주제를 굳이 확인시키는 보완물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런 부연설명은 좋은 영화가 될 수 없게 하는 독이다. 그런데도 <태풍이 지나가고>에서 이 말들은 아슬아슬하게 상투형으로 굴러떨어지지 않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견고한 영화적 호흡 덕분이다. 등장인물들이 이 말을 하는 전후 화면 맥락에서 고레에다의 연출은 쉼표를 거듭 찍으며 실내 공간의 아우라를 살리는 마법을 부린다. 음식을 만드는 시간, 음식을 먹는 시간 태풍이 휘몰아치는 밤, 료타와 료타의 전 아내, 료타의 아들 싱고는 료타 어머니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일요일 오전에 싱고를 만났던 료타는 친할머니를 보고 싶다는 싱고의 청을 받아들여 어머니의 집에 왔고 싱고를 데리러 온 료타의 아내 쿄코(마키 요코)도 태풍이 심해져 어쩔 수 없이 이전 시어머니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들이 동상이몽으로 하룻밤을 보내는 이 대목이 <태풍이 지나가고>의 클라이맥스인데, 낡고 오래된 좁은 연립주택 내부에서 능숙하게 인물들의 대화와 행동을 잡는 고레에다의 연출은 관객에게 최적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어머니가 카레 국수를 만들고 쿄코와 싱고가 그걸 거드는 사이 료타는 실없는 말을 이어가면서 모처럼 예전과 같은 가족적 분위기를 만끽하려 하는데 물론 상황은 자연스럽지 않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료타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얘기하고 그걸 듣는 쿄코는 살짝 불편하다. 어머니와 쿄코의 대화 사이에 료타가 끼어들려 하면 대사가 중첩되면서 료타의 말들이 묻히는 가운데 그들의 행동과 표정을 우리는 잘 안무된 프레임 안에서 관찰하게 된다. 수선스럽게 활기를 과장하는 료타의 어머니와 료타에 비해 쿄코는 차분하다. 일찍 성숙한 싱고는 그런 어른들의 상태를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카레 국수를 먹는 과정에서 진행된다는 게 중요하다. 정성스럽게 카레 국수를 만드는 과정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은 이들이 붙잡고 있는 과거의 결속에 대한 그리움을 대체하는 이미지다. 함께 준비하고 먹는다는 것은 가족이 하는 가장 흔한 일이자 가장 중요한 일이다. 먹으면서 그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그 기분을 현재에 불러오고 그 느낌으로 미래를 준비한다. 이 가족에게는 그 기회가 실은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도 료타의 어머니와 료타는 안타깝게 그걸 되살리고 붙잡으려 한다. 쿄코는 그게 불편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료타가 잘되고 그럴 리는 절대 없더라도 료타가 정신 차리고 유능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료타가 목욕을 하고 쿄코와 싱고가 거실에서 게임을 하며 료타의 어머니가 가계부를 정리하는 무언의 장면들이 흐를 때 화면 바깥에선 태풍이 임박해 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이들이 시연하는 일상의 절차들은 그 바람 소리만큼 위태로운데 이들은 각자 다른 마음을 품은 채로 겉으로는 과거에 늘 함께했던 일상의 순간을 예외적으로 드물게 현재에 시연한다. 이제 이 영화에서 감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상황이 나온다. 싱고가 목욕을 하는 동안 료타와 쿄코는 방 안에서 잠시 속내를 나눈다. 료타는 쿄코가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에 대해 질투를 숨기지 못하고 쿄코는 양육비도 보내주지 못하는 료타의 바뀐 것 없는 무능을 타박하며 그 대화를 종료한다. 그들의 대화가 끊길 때 거실에선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 틈에 바깥의 바람 소리가 화면으로 치고 들어온다. 잠시 예전의 일상적 공기를 억지로나마 나눴던 료타와 쿄코의 위장된 따뜻함은 사라져버리고 이들의 대화는 양육비를 언제 줄 거냐는 쿄코의 냉랭한 말로 끝난다. 어른은 사랑만으로 살 수 없다는 쿄코의 말에 반응하듯 이어지는 장면에서 료타는 어머니가 잠든 틈을 타 벽장을 뒤져 스타킹에 말아놓은 돈봉투를 찾아내려 애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 봉투에는 쓸모없는 마분지 조각만 들어 있고 료타의 도둑질을 예견한 누나의 조롱하는 메모만이 적혀 있다. 가정의 원상회복을 원했던 료타의 마음은 절실했어도 그는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고 그는 자기 본성대로 도둑질을 한다. 그는 도둑질마저 실패한다. 화면은 그때 예기치 않은 전환점으로 넘어간다. 어머니의 비상금을 훔치려다 실패한 료타는 아버지를 기리는 향을 켜고 타다 재가 되어버린 향초들을 모아 신문지에 펼쳐놓고 심지를 고른다. 양립할 수 없는 행동을 대사 없이 자연스레 이어나가는 이 장면의 묘사는 여러 면들이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료타는 무능하고 나쁜 아들이자 가장일 수 있지만 아버지의 부재를 자기식으로 애도하는 선한 아들로서의 행동을 동시에 한다. <태풍이 지나가고>는 이런 식으로 사소해 보이는 장면들에서 잔상을 남기는 상황을 곧잘 묘사한다. 예를 들면 영화에는 이야기의 진행과 상관없이 배치된 이런 장면들이 있다. 료타의 어머니가 칼피스 음료를 컵에 조금 담고 나머지는 물로 채워 자기식의 아이스크림을 만든 다음, 화분에 줄 물을 페트병에 담는 것을 보여준 후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걸 평범한 롱숏으로 담아낼 때 이 일상의 사소하고 평화로운 순간들은 곧 닥칠 태풍으로 사방 사물이 흔들리는 풍경에 압도당한다. 앞과 뒤가 급격하게 달라져도 그게 가능할 수 있는 게 우리 일상이고 지속적인 삶이며 그 삶을 살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 감흥은 길게 이어지는 대사들로 곧잘 깨진다. 료타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했던 행동, 도둑질하는 자식과 아버지를 추모하는 자식이라는 상반된 모습을 같은 순간에 시연했던 그 감흥은 그 상황을 목격한 료타의 어머니가 “저 향이 아버지라고 생각했지?”라고 굳이 부연 설명할 때 단단했던 질감이 살짝 깨지는 실망감을 준다. 이 장면에서 어머니가 하는 말들은 영화의 주제를 직설로 친절하게 풀어낸다. 허름한 연립주택에서 40년이나 살 줄 몰랐다는 어머니의 한탄은 남편과 아들의 무능에 대한 간접적인 힐난임과 동시에 이미 살아낸 삶을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을 드러내며 그럼에도 그 집에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이 삶에 대한 미련을 토로한다. 꿈에 나타난 죽은 남편을 거론하며 “네 아버지도 나도 늘 살아 있네, 이렇게 생각하지”라고 말하는 료타의 어머니는 삶의 물질적인 윤기를 체념한 가운데서도 불멸을 바라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행복 운운하는 말들은 굳어서 생명력을 얻지 못하지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등려군의 노래를 들으며 료타의 어머니가 주절거리는 말들은 어떤 경지에 이른 단념을 표시하기 때문에 생생하다. ‘깊이, 바다보다 더 깊이, 푸르게, 하늘보다 더 푸르게’라는 등려군 노래의 후렴구를 놓고 료타의 어머니는 말한다. “난 바다보다 더 깊이 누구를 사랑해본 적이 평생 한번도 없었어.… 없을 거야 보통 사람은. 그래도 살아가는 거야. 날마다 즐겁게. 그런 적 없어서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이런 매일매일을. 그것도 즐겁게.” 예기치 않게 속깊은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은 주제를 너무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만 앞서 꾸준히 쌓아두었던 영화적 호흡 덕분에 가까스로 훼손되지 않고 그 준엄하고 슬프고 약간은 행복한 느낌을 화면에 남겨둔다. 료타가 자신의 아버지와 그랬던 것처럼 싱고를 데리고 태풍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놀이터 미끄럼틀 속에 들어가 과자를 먹으며 놀다가 그들을 찾으러온 쿄코와 함께 놀이터 근처에서 잃어버린 싱고의 복권을 찾는 그 이후의 장면은 시각적으로 그리 인상적이진 않아도 이 영화의 지향점을 완곡하게 드러낸다. 료타와 쿄코와 싱고는 당첨되면 큰 집을 사겠다는 싱고의 염원을 담은 그 복권들을 다 찾아내지는 못한다. 놀이터에서 잃어버린 복권을 찾는 가족의 이미지는 미련하게 보이지 않고 오히려 따뜻해 보인다. 앞서 기키 기린이 능숙하게 연기한 료타 어머니의 단념을 담은 행복의 이상에 관한 말을 우리가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인생의 행운은 앞으로도 주어지기 힘들 것이고 개별 인간들의 진화도 이뤄질 리 없을 것이며 남은 것은 대개 상실과 이별뿐일진대 그렇더라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는, 그것도 태연하게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단념의 정조는 이 분야의 거장인 오즈 야스지로의 홈드라마와 통하는 게 있을 것이다. 물질적 흔적들의 이미지 영화의 끝, 료타의 어머니는 남편의 셔츠를 찾아내 료타에게 입힌다. 아버지의 유품은 다 버린 게 아니었느냐는 료타의 물음에 어머니는 깜빡하고 잊어버린 게 남아 있었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과거에 대한 단념과 애도를 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 있으나 동시에 다 버릴 수 없는 과거의 흔적, 현재에 이어지는 과거의 느낌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도 암시한다. 이는 료타가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들고 나왔던 아버지의 벼루가 상상 이상으로 귀한 고가품이라는 걸 전당포에서 확인하는 장면에서도 되풀이된다. 그 벼루는 흔한 게 아니었으며 버려지지 않고 집 안에 남아 있었다. 버려지고 단념한다 해도 들러붙어 있는 것들을 껴안으며 굳이 재수가 좋지 않더라도 작은 크기의 삶의 행복들을 즐기는 것이라는 언명은 상투적일 수 있으나 그것들의 귀함을 일깨우는 이 영화의 물질적 흔적들의 이미지는 역시 힘이 세다.

[김영진의 영화비평] <터널>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에서 감지되는 불길한 전조

<부산행>에서 시작해 <터널>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 순으로 이어진 나의 올해 여름 한국 블록버스터 관람은 극심한 메슥거림을 느끼는 것으로 끝났다. 극장가에서 자취를 감춰가던 <인천상륙작전>을 마지막회에 관람했는데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과 비례해 속이 계속 울렁거렸다. 생각해보니 <덕혜옹주>를 볼 때도, <터널>을 볼 때도 그랬다. 스크린에선 격정적인 상황이 펼쳐지는데 나 스스로는 납득이 가지 않으면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신체적 반응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영민한 창작자는 그 시대에 과잉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표현하지 않는다. 표현한다 해도 소용없기 때문이다. 올여름 한국 블록버스터들은 이미 과잉으로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소란스럽게 부연하는 것으로 내겐 보였다. 중요하니까 봐주고 감동해주세요, 라고 호객하는 제스처들이 요란한 가운데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는 기묘한 진공상태의 화면들로 가득 찬 이 영화들을 보면서 한국영화계가 좋지 않은 방향에서 근본적인 변동을 맞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함을 느꼈다. 현실의 비극을 착취한 <터널> 비교적 고르게 언론에서 상찬받은 김성훈의 세 번째 장편영화 <터널>은 택한 소재의 특성을 무시하는 작법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무너진 터널에 갇힌 주인공 정수(하정우)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보여주는 데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수 두병과 케이크만 갖고 있었던 정수는 구조가 장기화되면서 초인적으로 버텨야 하는데 별다른 생존 수단이 없다. 터널에 갇혔던 또 다른 희생자 여성(남지현)과 물을 조금 나눈 데다 케이크는 그 여성 희생자와 동승했던 개가 다 먹어치웠다. 구조될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한계선인 17일을 넘겼는데도 정수는 초인적으로 잘 버틴다. 자기 오줌을 마시며 버티면서 터널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을 웬만큼 받아뒀다 해도 이 생존 알리바이는 잘 성립되지 않는다. 터널을 파들어가는 작업에 오차가 있었고 정수는 구조 예정일을 훨씬 넘겨 30일을 버텨야 했다. 그때부터 서사는 정수의 사정을 보여주기보다는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중단된 주변 터널 공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벌어지는 사회적 혼란을 서사의 반전 장치로 쓴다. 감독은 단 한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하고 있으나 내겐 그의 말이 좀 위선적으로 들린다.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이 영화의 서사는 예상할 수 있었던 희생양을 배치하는데 사람 좋은 작업반장(정석용)이 구조작업 과정에서 실수로 비명횡사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캐릭터를 우리는 이전 몇 장면에서 볼 수 있었는데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이 구조 현장에서 봉사하며 음식을 관계자들에게 내던 중 바닥에 떨어진 달걀부침을 빗물에 씻어 먹을 만큼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구조작업이 장기화되는 걸 불평하는 동료들을 달래며 작업을 독려하는 중에 사고사한다. 그의 죽음으로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구조를 둘러싼 여론은 더 악화되고 급기야 죽은 작업반장의 어머니가 여전히 사고 현장에서 음식 봉사를 하던 정수의 아내 세현에게 날달걀을 던지며 비난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세현이 만들어준 달걀부침이 더러워졌는데도 개의치 않고 먹었던 아들과 세현에게 날달걀을 던지는 그 사람의 어머니를 대비시키며 영화는 세현의 죄책감을 정당화한다. 남편 때문에 인명피해가 나고 사회적 손실이 커지는 걸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는 달걀세례를 당하면서도 정중하게 “죄송합니다”라고 거듭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한다.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 취급을 받으며 미안해하는 이 상황을 통해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월호 비극의 현재형을 떠올릴 것이다. 이런 유비 관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영화는 극적 장치로 누군가의 불우한 죽음을 도구로 삼았다. 이건 정당화될 수 있는 극적 장치일까 반문하게 되는 것은 영화가 그런 극적 흐름을 만들어내는 동안에 우리는 잠시 정수의 안위를 잊기 때문이다. 정수는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지지만 어떻게 버텼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잘 버티고 있던 그에게 그의 아내 세현이 라디오 음악방송에 나와 메시지를 전한다. 이게 개연성이 있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정수 역시 일시적이나마 희생자가 정당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비극의 도구로 이용된다. 라디오를 들으며 난 아직 살아 있다고 중얼거리는 정수의 말이 관객을 향한 것은 자명하다. 그는 세현의 행동을 보며 느꼈던 것과 비슷하게 관객으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게 만드는 극적 도구다. 여기서 거듭 질문해볼 수 있다. 그는 어떻게 고통을 견뎠는가. 하정우는 정수의 캐릭터를 능란하게 연기하지만 우리가 불편하지 않게 그 캐릭터와 동화될 수 있게끔 적절한 선을 긋는다. 터널 구조물 잔해들에 둘러싸인 좁은 차 안에서 그는 영웅적으로 버티는데 느물느물 혼잣말을 하며 어떤 상황에서든 유머를 잃지 않는 캐릭터다. 조난된 그와 멀지 않은 곳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차에 갇힌 젊은 여성을 발견했을 때 그가 보여주는 행동들도 인간적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그녀를 보살피려 하지만 생수를 나눠 마셔야 하는 것과 같은 자기 안위와 관계된 선택을 해야 할때 슬쩍 망설인다. 정수는 극한의 상황에 대처하는 영웅적 자질이 있는 사람이지만 연약하고 흔들릴 수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다. 반복하지만, 그런데 그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구조반 대장 대경(오달수)의 의지 덕분에 그는 마지막에 살아남는다. 대경은 모두 저만 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이 세상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능력이 있는 상식적인 윤리감각을 갖춘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그는 정수의 구조에 절대적인 책임감을 품고 있다. 관계 장관이나 공무원들이 구조를 둘러싼 과정에서 자신들의 성실함과 유능함을 위장하는 거짓 연기를 하고 이를 언론이 생중계하는 아수라장의 현실에서 그는 정수가 오줌을 받아먹을 때 자신도 오줌을 먹어볼 만큼 타인의 고통에 예민하다. 누군가는 기를 쓰고 몸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확인시키는 또 다른 영웅이기도 하다. 우리가 감동할 수 있는 연대를 그려내고는 있으나 이 대목에서도 영화는 인물들의 고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정수가 오줌을 마시는 것도 대경이 그를 따라하는 것도 설정으로만 제시돼 있다. 오줌을 마시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한가.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어떤 불가항력의 상황에서 피해자가 된 사람을 보여주는 구조의 맥락을 보여주는 것 이상으로 그 피해자의 고통을 다룰 의무가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겪었던 고통을 견딜 만한 것으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그가 갇혀 있는 상황은 안타깝고 슬프지만 그의 고통은 그의 고통을 대리해 느끼는 세현과 대경을 통해 암시적인 수준으로만 묘사된다. 그만큼의 극적 시간을 메우는 것은 우리의 기시감을 확증시키는 에피소드들, 국가기관의 무능과 언론의 선정적 작태와 사회 구성원들의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들이다. 이것들을 보며 분노하고 잠깐 슬퍼하는 건 쉽지만 대신 정수의 고통을 대리 체험하는 것은 어렵고 불편하다. 정수가 낙천적인 천성으로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해도 좋다. 그렇더라도 영화는 그의 고통을 스크린에 더 담아냈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영화의 후반부 대목은 과학적으로도, 극적 맥락으로도 납득하기 힘든 생략과 비약으로 관객을 추상적인 정서로 몰고 가 즐기게 만든다. 많은 언론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이 영화가 세월호를 의식하지 않고 볼 수는 없는 영화라고 한다면 그것의 핵심은 현재형의 고통을 얼마나 스크린에 영화적으로, 아니면 최소한의 사실성에 기초한 디테일로 묘사할 것인가에 있다. <부산행>이 약간의 의구심을 자아내는 부분을 <터널>은 더욱 노골적으로 전면화한다. 이 영화는 현실의 비극을 반영한다고 했지만 실은 현실의 비극을 착취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비극을 음미하고 슬퍼하게 한 다음, 분노하게 만들고 이윽고 승리의 감정까지 쥐여주면서 안전하게 빠져나가도록 돕는다. 한달여를 터널에 갇혀 있던 정수가 이윽고 구조되는 순간에, 대경은 정수를 대신해 공무원들과 기자들에게 욕을 퍼붓고, 정수는 들것에 실려가면서 엄지를 척 치켜든다. 재미있는 설정이지만 이것은 정수의 고통의 연대기를 클라이맥스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키면서 얻은 것이다. 아울러 정수의 고통에 따른 현실적 비극을 교묘하게 환기시키기 위해 극중 인물을 한명 더 죽이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설정이다. 나는 이런 대목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며 거기에 세월호 비극의 메타포라는 결론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고 본다. 역사를 다루지 않고 착취한 영화 <인천상륙작전> 현실의 반영이 아닌 착취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이재한의 <인천상륙작전>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흉물스러운 영화이다. 첩보전으로 시작하는 플롯이지만 피아가 잘 구별되지 않는 총격전으로 상당수의 상영시간을 채우고 배우들은 시종일관 머리보다는 기운으로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실존 인물들이 나오는 성공한 작전을 다룬 영화로서 역사적 기초 상식이 없는 관객을 계도할 목적이 있었다는 걸 인정하더라도 방식이 세련되지 않아 보기 피곤하다. 일단 이범수가 연기하는 북한군 인천 방어사령관 림계진은 살인광이자 전쟁광이라는 것까지 인정하더라도 머리가 너무 나쁘고 기세등등한 것에 비하면 자기 임무에 늘 실패한다. 겉으로는 세 보이지만 군인으로서 무능한 데다 적당한 시점에는 늘 살인을 교사하거나 자신이 속한 조직의 악함을 시연하는 캐릭터다. 악당이 흡인력이 없으니까 그 앞에서 늘 주눅든 채 긴장을 견디는 표정으로 일관하는, 북한군으로 위장한 대한민국 해군 대위 장학수(이정재)도 덩달아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 같다. 이 영화에서 묘사된 전쟁의 지표들은 잔인하고 처절하고 어쨌든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의 흔적들이 아니라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악당들의 제지를 뚫어내는 국군의 성실함과 용감함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이미지들로 제시된다. 북한군은 아군에 비해 훨씬 많이 죽고 그들을 제압하는 아군들의 대다수는 영웅적으로 죽음을 택하며 특히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전쟁터가 아니라 게임 공간을 대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주인공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병사들을 제압하는 판타지가 전개된다.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이 과장된 전투담의 영웅이자 도구로 쓰인다는 인상을 강화하는 건 맥아더 캐릭터다. 리암 니슨이라는 존재감 있는 배우를 캐스팅한 영화 속의 맥아더는 늘 신처럼 군림하면서 좌우를 압도하는 구원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심지어 걷는 모습조차도 배제된 이 인물은 맥아더에 대해 어떤 역사적 지식도 생산하지 않는 대신, 이 모든 상황을 집전하는 초월적 존재로 묘사된다. 회상 장면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가 장학수의 용맹스런 모습을 보며 자기 아들처럼 생각했고 그들을 위해 작전을 집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온,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절대자이고 그의 권능에 기대어 한국군은 초인적인 활약으로 작전을 미리 대비하고 있던 북한군대를 초토화시킨다. 인물들을 특정 의도에 맞게 기계처럼 배치한 이 영화는 역사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역사를 착취하는 영화이다. <덕혜옹주>, 역사 왜곡에 따르는 착취의 흔적 가리기 <덕혜옹주>를 연출한 허진호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데 따르는 착취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상당히 고심한 흔적을 드러낸다. 덕혜옹주(손예진)의 인간적 고뇌를 정서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유효한 수단인 멜로드라마적 장치를 억제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고종에게 데릴사위로 간택됐으나 덕혜옹주와 결혼하지 못했던 김장한(박해일)은 일본에 끌려간 덕혜옹주 앞에 일본 군인의 신분으로 나타나 호위무사처럼 그를 보호하고 그를 상하이로 망명시키려는 계획을 주도한다. 개인의 관계를 축으로 역사를 병풍처럼 위치시키는 방법을 취한 셈인데, 문제는 주인공에게 저항의 아이콘이 될 만한 서사를 부여하는 상상력을 적용하면서 또 다른 방향에서 <인천상륙작전> 못지않은 목적 드라마로 향했다는 점이다. 국민이라는 근대적 개념이 성립되기 전인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멸망한 왕조의 딸을 국가적 정체성의 대변인으로 재옹립하는 게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시도인지를 따지기 전에 이 영화는 그런 시도 때문에 상당수의 화면을 덕혜옹주의 고뇌하고 슬퍼하고 미쳐가고 결단하는 표정에 할애한다. 중국에서 찍은 <위험한 관계>(2012) 때부터 허진호는 이전의 자기 스타일을 버렸지만 그 영화에서 희미하게 배어 있던, 인물의 내면을 수식하는 전체 분위기에 대한 감성은 이 영화에선 송두리째 사라지고 없다. 고종의 말년부터 덕혜옹주의 일본 감금 생활을 묘사하는 중반부까지 이 영화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상투적인 컷 연결 기법으로 일관한다. 등장인물의 대사들이 독립과 주권 회복으로 한정돼 있는 사이, 허진호적인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상실과 쇠락의 삶에 관한 고유한 정조는 화면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늙은 김장한이 등장하는 영화의 첫 장면을 빼면 이 영화의 대다수 장면은 허진호가 아니더라도 연출 가능한 기계적인 배치로 이뤄져 있다. 데뷔할 때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던 재능으로 지금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공간을 뛰어나게 환기시켰던 감독이, 부재와 상실은 과거와 같지 않은 현재의 공간에서 아프게 재생된다는 걸 보여줬던 감독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린 국권을 갈망하지만 결코 투사는 될 수 없었던 여인의 비극을 다루면서 텔레비전 드라마의 컷 연결을 고수했다는 것만으로도 <덕혜옹주>는 올해의 화제작이라 할 것이다. 이 모든 영화들에서 주인은 감독이나 제작자가 아니라 화면 맨 처음에 명기되는 투자자들이다. 언제부터인가 관례로 정착된 이 크레딧 배치를 보는 건 새삼스럽지 않지만 올여름 극장가의 한국영화들은 유난히 자본에의 종속성을 실감하게 했다. 개별적으로 창작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든 간에 올여름 한국영화를 통해 확인된 자본가들의 작업지침은 현실을 착취하라는 것이었다. 손톱만큼의 새로운 지식도 재생산하지 못하는, 앎에의 욕구에 전혀 봉사하지 못하는 이 영화들은 오락과 예술의 균형 추를 잡는 영화라는 매체에서 예술이라는 이름을 당분간 추방할 것이라는 불길한 전조로 읽힌다.

[trans x cross] 반려자의 자격 -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반려견 교육법 알리는 강형욱 동물 행동 전문가

개와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2인자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들이 우리를 더 사랑한다. 그럼에도 개와 함께 사는 일은 난해하다. 혹시나 쉽다고 느낀다면 개를 막 대하거나 인간의 방식을 곧장 적용하기 때문이다. 반려견 행동 전문가 강형욱은 반성(反省)의 달인이다. 개를 가족으로 맞고도 노력하지 않는 보호자의 게으름을 단호히 지적하고, 개를 교육하는 자신의 방법론을 훈련소 견습생으로 일한 열여섯살 이후로 줄곧 반성하며 발전시켜왔다. 저서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된다>(2014)와 같은 해 설립한 반려견 행동 클리닉 보듬의 활동, 그리고 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통해 강형욱은 “누가 보스인지 인식시켜라”라는 원칙에 입각한 압박 훈련법을 반박하는 안티테제를 보급해왔다. 그는 처벌이 아닌 보상을 개에게 동기로 제시하고, 즐거움을 조건반사의 방아쇠로 쓴다. 국회에서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가 열린 8월31일 강형욱 훈련사를 만났다. 서글서글하지만 단단한 그의 인상은 픽사 애니메이션 <업>(2009)의 골든 리트리버 더그와 무척 닮았다. 훈련사의 반려견 다올과 바로가 따라들어왔다. 애정과 신뢰에 주리지 않아 평온한 강아지들은 기자의 발을 건드리며 책상 밑을 오갔다. -출연한 방송에서 개보다 강아지, 견주보다 보호자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예전에는 나도 “개 공부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에서 ‘개’는 누군가에게 우스갯소리고 놀림의 뉘앙스가 있다. 그래서 ‘강아지’, ‘반려견’이라는 말을 쓰게 됐다. 하지만 차차 개라는 단어를 되찾아가야겠다. 견주는 마치 차주처럼 소유의 뉘앙스가 강해서 보호자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의뢰인을 “보호자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아, 내가 보호자구나’ 하는 책임감을 느끼며 달라지는 태도를 감지한다. -목소리가 나직하고 손동작이 풍부하다. 일로 형성된 습관인지. =내 목소리 톤은, 강아지에게 자극을 주지 않는 동시에 보호자에게 확실히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긴 시간 다듬어진 거다. 개에게 하는 “앉아!”와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목소리 톤을 달리하면 강아지는 내가 다른 생각을 한다고 여긴다. 두 다리를 바닥에 고정하고 되도록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얼굴과 보디 랭귀지를 많이 써서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출연 중인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실시간 댓글이 달리는 프로그램이다. 한국 사회에서 반려동물이 화제가 되면 늘 그렇듯 시비를 거는 댓글도 있을 것을 짐작하고 섭외에 응했을 텐데. =압박 훈련에 반대하는 교육법을 소개하면서 7, 8년 전부터 전화로 메일로 욕을 많이 먹었다. 짧은 목사슬로 행동을 강제하는 훈련을 해온 사람, 그 훈련을 시킨 보호자들에겐 내 방법이 위협으로 받아들여졌다. 선의로 한 일이 잘못됐다고 말하니까. 다행히 스스로 숙고해서 판단한 길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편이다. 남들이 던져오는 질문을 이미 내가 더 길게 자문하고 답을 얻었기 때문이다. -기존 한국의 TV가 동물을 보여주는 방식에 문제의식이 있었나? 출연 중인 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이하 <세나개>)는 로고송 가사부터 당신의 생각이 기초가 된 프로그램처럼 보이는데 기획부터 참여했는지. =심리학에서 행동의 근저에는 회피동기와 접근동기가 있다고 말한다. 회피동기는 더우면 에어컨을 켜듯 순간의 불편을 모면하려는 욕구다. 접근동기란, 당장은 얻는 게 없지만 미래와 꿈을 위해 투자하는 케이스다. 많은 보호자들은 회피동기로 훈련사를 찾는다. 당장 개의 짖음과 배변 실수를 멈춰달라고. TV 시청자의 주의를 끄는 내용도 보호자의 필요를 즉각 채워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내 관심은 접근동기다. 장후영 PD와 제작진이 나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믿어줘서 방송에서도 내가 믿는 바를 꺾지 않고 보여줄 수 있었다. -유전, 환경, 후천적 경험으로 성격과 행동이 결정되긴 인간도 마찬가지인데 <세나개>를 보면, 제목대로 문제가 보호자의 변화로 대부분 해결된다. 사람에 비해 개의 경우 환경과 후천적 경험이 더 결정적인가? 유전적 요소로 교정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나. =개의 유전력은 인간보다 강하다. 그래서 부모견에 대해 충분히 알고 강아지를 입양해야 하는데 펫숍에서 개를 사면 불가능하다. 펫숍이 없어지고 브리더(breeder)가 늘어나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은 “하면 된다”라는 사고가 뿌리 깊어 모두가 일단 강아지를 입양하고 그래서 유기견이 양산된다. 선진국일수록 개의 두수가 적다. 그 사회의 조정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진짜 반려할 수 있는지 철저히 조건을 검토하기 때문이다. 유전력이 강해도 훈련사들은 가능한 변화를 믿고 교육한다. 방송을 보면 착각하기 쉽지만 나는 마법사가 아니다. 다만 문제가 된 이 강아지가 향후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보여주는 능력은 있다. 나는 단 6시간 녹화에서 강아지의 6개월 뒤 모습을 보여줘서 보호자에게 접근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보호자가 함께 변하려는 의욕이 없다면 교육이 아니다. 결혼과 같다. 내 아내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걸 받아들이고 서로의 모습을 재밌게 바라본다. “하하, 괜찮아. 나도 그럴 때 있어.” -개를 사랑하게 된 계기를 기억하지 못할 만큼 언제나 개가 생활의 일부였나. =아버지가 운영하는 개 농장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너무나 개를 좋아했고, 동시에 먹고살기 위해 개를 팔았다. 남들은 호랑이, 나비 같은 단어로 한글을 뗐다면 나는 골든 리트리버, 요크셔테리어 같은 말로 뗐다. (웃음) -어린 시절부터 개들을 관찰 기록하는 일을 취미로 삼았다고 들었다. =군대에서는 선임에 대한 관찰 일지를 썼다가 걸렸다. 군에서 기록은 간첩 행위로 간주될 수도 있으니까. 회사 직원들도 싫어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각각 어떻게 머리를 넘기고 시선을 돌리는지 다 안다. (웃음) -노르웨이 반려견 행동 전문가 투리드 루가즈(Turid Rugaas)의 영향이 컸다고 밝혔는데. =루가즈에게 무작정 메일을 보냈는데 친절하게도 동료인 앤 릴 크뱀(Anne Lill Kvam)을 소개해주었다. 노르웨이로 가서 크뱀의 옆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선생님이 사는 모습까지 보는 것이 배움이라고 생각했고, 그녀의 가르침이 본인의 개에게 하는 행동과 일치하는지가 내겐 중요했다. 크뱀은 개 훈련이 아니라 나의 유년기와 부모와 감정적 추억에 대해 물었다. 그런 대화로 강아지의 불안이나 공격이 기인한 감정을 유추하는 태도를 배웠다. 이미 9년차 훈련사였는데도 깨지고 반성했다. 지금도 나는 계속 배우는 중이다. 5년 후에는 또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개도 사고와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것과 과도한 의인화의 차이가 무엇일까. =내 생각을 개에게 입히는 것이 의인화이고 강아지의 행동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관찰이다. 많은 보호자가 비싼 강아지 용품을 사주고 그 보상을 원하지만 그것은 의인화이고 개의 필요는 다르다. 홈리스의 개가 패리스 힐튼의 개보다 행복하다. 개들에게 앙케트를 하면 최고의 보호자 직업은 언제나 함께 있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이직자, 백수, 노숙자일 거다. -영화가 만들어낸 개에 대한 오해가 있을까. =줄을 풀었는데도 옆에서만 맴도는 이상화된 모습은 좀 위험하다. <베토벤>(1992)의 경우는 현실성이 있다. 개들은 좋은 관계에 있다면 아기를 돌보려고 한다. 솔직히 개 영화 잘 못 본다. 보고 있으면 어떤 식으로 촬영했을지 보여서. -한국의 동물 관련법 중 가장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항은 무엇인가. =변 치우기와 줄 매기, 인식표 착용을 어기는 보호자들에게 과태료를 철저히 징수해 그 돈으로 공공 유기견 보호소의 보호기간을 늘리고 단 열흘이라도 최선을 다해 주인을 찾아주고 좋은 걸 먹이고 보살펴야 한다. 실제로는 열흘 동안 유기견들을 제대로 먹이지도 변을 치우지도 않는다. 99.99%가 입양되지 않기에 담당자들은 “어차피”라고 방기한다. 수요일 12시가 안락사라면 11시 55분까지 수액을 맞히며 돌봐야 한다. 거기엔 돈이 필요하고 그건 법을 정확히 시행하면 확보할 수 있다. 다음으로 강아지 공장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슬로건이 있지만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골든 리트리버, 올드 잉글리시 시프도그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걸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입양 신청자를 엄격히 심사하는 브리더는 유기견을 방지하는 큰 역할을 한다. 펫숍과 브리더 입양 중 무엇이 바람직한지 이해가 확산된 다음, 펫 공장을 제재해야 실효성이 있다. -유기견을 입양할 때 유의할 점이 있나. =입양하고도 강아지를 계속 유기견으로 바라보는 예가 많다. 계속 불쌍히 여기고 부정적 감정으로 대하면 개도 항상 긴장하거나 응석받이가 된다. 유기됐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개는 두번 다시 보호자를 놓치고 싶지 않아 불안해한다. 어제도 오늘도 똑같고 내일도 같을 것이고 넌 이제 계속 여기서 살 거라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 -개 아닌 다른 동물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의 이해가 적용된다고 보는가. =모든 동물들한테 적용돼야 한다. 안 되더라도 해야 한다. 때리고 강요하는 교육이 실효가 있다 해도 믿지 않을 거다. 인간으로서 중심을, 존엄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코담요 개가 코를 쓰도록 독려하는 교육(nose work)은 반려견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강형욱 훈련사가 강조하는 방법 중 하나다. 작은 주머니와 나풀거리는 천조각이 부착된 담요 곳곳에 뿌린 간식을, 코로 찾아내는 과정에서 개들은 인간으로 치면 입, 눈, 귀를 합쳐놓은 감각기관인 코를 활성화하고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운다. 물론 최상의 노즈 워크 환경은 깨끗한 자연이지만, 동네 산책길이 지저분해 걱정스러운 초보 반려가족, 혹한과 혹서로 외출하기 힘든 환경이라면 코담요는 차선책이 된다.

[스페셜] 닛카쓰 스튜디오의 ‘로망 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일본 로망 포르노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

올봄, 일본의 닛카쓰 스튜디오가 ‘로망 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 계획안을 발표했다. 현재 일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다섯 감독들, 나카타 히데오, 소노 시온, 유키사다 이사오, 시라이시 가즈야, 시오타 아키히코가 지금은 사양된 장르인 ‘닛카쓰 로망 포르노’를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다시 제작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8월24일, 도쿄에서 로망 포르노 리부트 프로젝트 제작발표 기자회견이 열렸다. 닛카쓰 스튜디오의 사토 나오키 사장이 프로젝트를 소개했고, 다섯 감독들이 각자의 영화에 대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날의 기자회견 내용을 지면에 옮기며 닛카쓰 로망 포르노가 이 시점에서 왜 다시 제작되는지도 살펴보았다.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과의 개별 인터뷰도 덧붙인다. 닛카쓰 로망 포르노가 부활한다. 1960년대 후반, 일본의 영화 스튜디오들은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점차 불황에 접어들었다. 닛카쓰도 그 무렵 도산 위기에 처했다. 닛카쓰 스탭 노조는 회사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저비용 고효율’을 모토로 극장용 성애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닛카쓰 로망 포르노의 시발이다. 닛카쓰는 첫 작품으로 중산층 주부의 부도덕한 성생활을 그린 <단지처: 오후의 정사>(1971)를 만들었고 영화가 흥행하자 로망 포르노 제작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로망 포르노를 만드는 감독들은 스튜디오에 월 2회 이상 배급을 목표로 편당 평균 제작비 750만엔, 70분의 러닝타임으로 열흘 안에 순발력 있게 영화를 내놓아야 했다. 성애영화인 만큼 10분마다 한번씩 섹스 신이 등장해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이를 뒤집으면, 기본적인 제작 조건만 지키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도 관계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저예산으로 제작된 성애영화이지만 스튜디오의 전문 인력과 시스템 덕에 비교적 완성도 높은 드라마와 작가적 개성을 갖춘 영화가 다수 배출될 수 있었다. <이치조 사유리의 젖은 욕망>(1972), <방황하는 연인들>(1973), <빨강머리의 여자>(1977) 등을 만든 구마시로 다쓰미와 <창녀 고문 지옥>(1973), <실록 아베 사다>(1975) 등을 연출한 다나카 노보루가 닛카쓰 로망 포르노의 대표 감독들이다. 포르노영화는 아니지만 이마무라 쇼헤이의 <신들의 깊은 욕망>(1968), <복수는 나의 것>(1979) 등은 이 시기 로망 포르노에 깊이 영향을 준 작품이다. 와타나베 마모루, 히가시 요이치, 소마이 신지, 모리타 요시미쓰, 다키타 요지로, 구로사와 기요시 등 현재 그 이름이 익히 알려진 감독들도 커리어 초반엔 로망 포르노를 만들며 창작력을 다듬었다. 그렇게 성애영화의 탈을 쓴 명작이 숱하게 탄생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비디오 대여점 등을 유통망으로 장악한 AV시장이 확대되면서 로망 포르노는 시장에서 사장되었고, 닛카쓰는 18년간 제작한 1100여편의 작품을 남기고 1988년 로망 포르노 제작을 중단했다. 로망 포르노 시장을 새롭게 발견하다 그리고 올해 닛카쓰는 로망 포르노를 다시 제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사토 나오키 사장은 “2012년 닛카쓰 100주년을 기념해 일본과 뉴욕, 유럽 등지에서 로망 포르노 상영회를 열었다. 예상치 못한 큰 반향이 있었다. 새로운 세대의 젊은 관객이 대거 극장을 찾았다는 점, 그 관객의 60%가 여성 관객이라는 점이 뜻밖이었다. 우리는 로망 포르노의 시장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말로 로망 포르노를 리부트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나카타 히데오, 소노 시온, 유키사다 이사오, 시라이시 가즈야,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은 각자 사랑과 관련된 키워드를 하나씩 가지고 과거 닛카쓰 로망 포르노의 규칙을 활용해 만든 신작을 발표했다. 촬영기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나카타 히데오는 ‘레즈비언’으로 <화이트 릴리: 백합>을, 소노 시온은 ‘예술’로 <안티 포르노>(가제)를, 유키사다 이사오는 ‘로맨스’로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를, 시라이시 가즈야는 ‘사회’로 <암고양이들>(가제)을, 시오타 아키히코는 ‘싸움’으로 <바람에 젖은 여자>를 연출했다. 나카타 히데오의 레즈비언 로맨스 <화이트 릴리: 백합>은 도예가 도키코와 견습생 하루카의 성애를 다룬다. 과거의 남자로 트라우마가 생긴 도키코는 하루카의 사랑을 시험하듯 여러 남자와 난잡한 잠자리를 갖는다. 하루카는 인내와 관용으로 도키코를 지켜본다. 그런데 공방에 젊고 잘생긴 남자 견습생 사토루가 들어오면서 도키코와 하루카의 관계는 변한다. 나카타 히데오와 닛카쓰의 인연은 깊다. 나카타 히데오는, 1961년 닛카쓰에 입사해 <꽃의 유혹>(1971)으로 데뷔 후 꾸준히 리얼리즘 계열의 로망 포르노를 만들었던 감독 고누마 마사루의 조감독 출신이며 고누마 마사루에 관한 다큐멘터리 <새디스틱 마조히스틱>(2000)을 연출한 경력도 있다. 그는 레즈비언을 주제로 영화를 찍은 이유에 관해 “<새디스틱 마조히스틱> 상영회의 관객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로망 포르노가 여성에게 주요하게 호소하는 지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노 시온은 “굳이 포르노를 찍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닛카쓰의 제안을 거절했다. 재차 ‘그렇다면 내가 안티 포르노를 찍겠다’고 하자 마음대로 하라더라. (웃음) 이 시장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를 고민하며 <안티 포르노>를 만들었다”는 연출의 변을 밝혔다. <안티 포르노>는 액자 구성을 취하고 있다. 자기애 넘치는 21살의 젊은 예술가 교코는 언제나 36살의 어시스턴트 노리코에게 ‘여왕’으로 군림한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컷!” 소리가 들려오고, 교코와 노리코가 배우들이었음이 드러난다. 실제 상황에선 노리코를 연기한 배우가 교코를 연기한 배우보다 선배다. 두 여자는 ‘여왕과 노예’로서 위치 바꾸기를 반복한다. 유키사다 이사오는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짐노페디>를 들으며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에 제목을 비슷하게 지었다”고 한다.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는 영화감독 신지가 낯선 여자의 등장으로 무기력에서 벗어나 열정을 되찾는 한편,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다시 그의 내면을 채우게 될 슬픔과 우울감에 괴로워한다는 내용이다. 유키사다 이사오는 “처음의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었다. 나는 만족스러웠지만 닛카쓰에선 여성 작가와 여성 프로듀서를 내게 붙여주었다. 덕분에 여성성이 주인공을 어떻게 구원하는지가 더욱 잘 드러나게 됐다”는 비화를 언급했다. 시라이시 가즈야의 <암고양이들>은 이케부쿠로의 가난한 세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다. 마사코는 큰 빚을 안고 있고 리에는 나이 든 홀아비를 돌보는 주부이며 유이는 두 아이를 데리고 사는 싱글맘이다. 세 여자가 사랑의 역설과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혐오와 불만 등 부정적 감정을 주요하게 그린다. 경제적 문제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사연은 현재 일본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지고 있기에 <암고양이들>은 다큐멘터리에 가깝게 촬영됐다. 시라이시 가즈야도 다른 영화사에서 핑크영화를 만든 경력이 있는 와카마쓰 고지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일정 부분 성애영화와 연을 맺은 전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암고양이들>은 “다나카 노보루의 <고양이들의 밤>(1972)으로부터 ‘세 여자’란 설정을 빌려오며 다나카 노보루에게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오리지널 창작물 제작에 힘이 실리다 사토 사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영화 제작의 다양성에 관해 다시 생각한다. 자유가 재능을 배출한다. 닛카쓰는 젊은 감독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영화적 자유로움을 허락하는 스튜디오로 발돋움하고 싶다”는 포부를 강조했다. 그의 말마따나 새로 리부트되는 로망 포르노 프로젝트의 두 가지 의의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 찍기가 힘들어진 일본영화계에서 감독의 온전한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됐다는 것과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한 작가영화, 성애영화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일본영화계에서 작가들의 오리지널 창작물이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 것은 여전히 힘겨워 보인다. 다만 104년 전통을 가진 대형 스튜디오가 창작자들을 위한 발판을 구축하려 노력한다는 점은 일본영화계에 약간의 환기가 될 수도 있겠다. 이날 시오타 아키히코는 “감독 자신의 오리지널 기획물을 영화화하는 것은 현재 일본에서 무척 힘들다. 닛카쓰는, 마치 하이쿠처럼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마음껏 작가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기회를 준 셈이다”라고 발언했다. 일본의 메이저 남성 감독들이 ‘포르노’라는 장르 안에서 여성 관객을 위한 영화를 만들겠노라 선언한 일 또한 유의미하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취급돼온 성애영화 장르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본영화계의 유리천장을 두들기는 신선한 시도로도 읽힌다. 닛카쓰 로망 포르노 프로젝트 신작들은 시오타 아키히코의 <바람에 젖은 여자>를 필두로 11월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된다. 오는 10월에 열리는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화이트 릴리: 백합>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바람에 젖은 여자> 세편이 미드나잇 패션 상영작으로 초청돼 국내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culture highway] French Spirit!

French Spirit!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잔다라 페스타 2016>에서 프랑스의 인디밴드 여섯팀의 무대가 열린다. 마르세유 출신의 3인조 밴드 차이니스 맨은 록, 솔, 펑크, 일렉트로닉 장르를 아우르며 턴테이블 스킬을 선보일 예정이다. 밴드 컬러스 인더 스트리트, 3인조 콜트 실버스는 강렬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자랑한다. 통렬한 사회비판으로 유명한 더 디지 브레인스, 듀엣 코코모의 70년대풍 사운드도 놓치기 아쉽다. 여기에 밴드 텔레페릭의 록 사운드도 귀를 자극한다. 10월2일 밤 10시 홍대 무브홀에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의 자세한 소식은 www.facebook.com/zandarifesta에서 확인 가능하다. 대륙의 북디자인을 만나다 중국 북디자인계의 스승처럼 여겨지는 1세대 디자이너 뤼징런의 북디자인 전시가 열린다. <전승과 창조-뤼징런의 북디자인과 10명의 제자展>이다. 뤼징런이 지금까지 40년간 작업해온 도서 표지, 삽화, 포스터, 영상물 등을 전시하며 그의 영향을 받은 유망한 젊은 작가 10인의 작품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니 북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필히 관람할 것을 권한다. 중국 전통에 바탕한 우아한 북디자인을 접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9월24일부터 10월23일까지 한달간 파주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감상할 수 있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시리즈 강연 스토리가 매체의 경계를 점점 허물고 있다. 마블과 DC 코믹스가 히어로영화로 만들어지는가 하면,웹툰이나 웹소설이 영화로 각색돼 제작되는 경우도 많다. 아카데미 로카가 배주연 박사, 슈퍼히어로 전문가 제이&시드, 헤드플레이 권재현 대표, 기린제작사 박관수 대표 등 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 여러 매체에 해박한 전문가를 모시고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시리즈 강연을 연다. 강연은 9월21일부터 10월12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30분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다. 자세한 사항은 아카데미 로카 홈페이지(www.theloca.kr)를 참조할 것. 홍대에서 즐기는 문학과 과학 제12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9월29일부터 닷새간 홍익대 주차장 거리 일대에서 열린다. 이번 축제는 ‘질문하는 문학, 상상하는 과학’을 주제로 폭넓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국내 대표 출판사 90여곳이 참여하는 거리 도서전, 인간과 기술 발전에 대한 과학자들의 강연, 프랑스 작가들을 초청한 북토크, 3D 프린터 전시, 어린이책 놀이터 등이 예정돼 있다. 신인 그림책 작가 공모전인 ‘상상만발 책그림전’을 통해 나온 수상자들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늦가을, 몽환의 끝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록밴드, 시규어 로스가 내한공연을 갖는다. 올해 6월, 2년 만의 신보《Overdur》를 발표한 이들은 1997년 데뷔해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대자연을 상기시키는 음악으로 이름을 알려왔다. 특유의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사운드는 <바닐라 스카이> <127시간>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등 숱한 영화들의 O.S.T로 활용되기도 했다.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11월22일 오후 8시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최애 극장의 비결 한 사람의 최애(가장 좋아하는) 극장이 되기까지, 극장이 기울이는 다방면의 노력을 담은 책 <극장은 콘텐츠로 말한다>가 나왔다. 책은 기획전, 영화제, 관객 대면 프로그램, 캠페인, 수입과 프로그래밍으로 분야를 세분화해 보다 상세하고 실용적인 극장 운영 노하우를 전한다. 다양한 극장 콘텐츠 기획을 선보인 바 있는 저자 강기명은 CGV 다양성영화 팀장으로 현재는 영화 비즈니스 전문 아카데미 로카를 창립해 실무교육을 돕고 있다. 저자의 오랜 극장 운영 경험이 책 곳곳에 생생하게 녹아 있다.

[스페셜] 어떻게 영화산업이 우리들의 목록을 제한하고 있는가? - <에센셜 시네마>

“나쁜 영화를 보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다.” 영화 사이트 뮤비(Mubi)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내건 자극적인 슬로건이다. 이 사이트가 제공하려는 영화들은 이른바 좋은 영화들, 말하자면 ‘에센셜 시네마’들이다. 일종의 정전(canon)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 목록은 어떻게 결정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다양한 비평가들의 목록들을 봤었다. 제임스 아제, 마니 파베르,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피터 보그다노비치, 앤드루 새리스, 로저 에버트, 조너선 로젠봄, 하스미 시게히코 등 유수의 비평가들의 목록들이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영국영화협회(BFI), 미국영화협회(AFI), 프랑스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영국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 <필름 코멘트> 등의 영화기관, 잡지가 선정한 조금 더 공식적인 목록들도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꼽은 100편의 한국영화, 부산국제영화제가 꼽은 100편의 아시아영화들도 있다. 이는 최고의 영화들을 말하는 것인가, 혹은 비평가들의 고약한 취미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의 목록들인가? 혹은 예산을 배정받지 못해 창고에 필름들을 쌓아놓은 아카이브가 고육지책으로 국가예산을 뽑아내 우선적으로 복원, 소장하려는 목록들인가? 사실 목록들이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어떻게 작품들이 선별될 수 있는지, 배제와 통합의 원리가 무엇인지, 가치 평가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가 도리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영화의 모범시민 폴 슈레이더는 이미 답을 내놓은 바 있다. 이른바 영화 정전을 위한 흥미로운 7가지 표준들. 아름다움, 기묘함, 형식과 주제의 단일성, 전통, 반복 가능성, 관객의 참여, 모럴리티 등이 그러하다. 평론가 에이드리언 마틴이 제시한 정전은 보다 전략적이다. 첫째, <스타워즈> 정전(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스타워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혹은 박스오피스 정전이 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고도 명예까지 차지하고픈 블록버스터 목록들이다. 둘째, <시민 케인> 정전. 1950년대와 60년대, 국제 영화제에서 발견된 목록들에 이어 아트하우스의 단골 상영작이 된 영화들이다. 누벨바그 시절, 비평가들이 구축한 오래된 정전이다. 마틴은 이 목록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글로벌 시네마에서 이 정전이 지나치게 남성, 유럽-미국 편향적이며 미학적, 세대, 지리적 배분에서 심각한 편식이 나타나고 있다. 다큐멘터리, 단편, 여성영화, 실험영화들 또한 결핍된 목록들이다. 셋째, 그가 주창하는 키아로스타미 정전이 있다. 두 번째와 세번째의 정전에서 결핍되고 누락된 영화들을 보완한 새로운 정전이다. 마틴의 자극적인 분류법에 더해 가장 흥미로운 정전화의 실천이 시도된 것이 이제 소개하려는 미국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의 <에센셜 시네마>라는 책이다. 2002년에 출간된 이 책은 특별히 ‘영화 정전의 필요성’을 주창한다. 그는 영화의 정전이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읽는 영화 교과서(아마도 데이비드 보드웰의 책들), 혹은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에 기재된 목록들, 혹은 박스오피스 성적을 올린 영화들만 남게 될 것이라 분노한다. 정전화에 대한 그의 저작이- 비록 이미 <시카고 리더>라는 신문에 쓰였던 글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21세기 초두에 나온 것은 특별한 시대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21세기 들어서 잡지, 케이블 텔레비전, 인터넷, 기관들을 통해 너도 나도 리스트를 발표하며 정전화 작업을 공식화했다. 로젠봄은 이런 목록들 가운데 특히 AFI가 1999년에 발표한 ‘100편의 미국영화’를 공격했다. 고결한 영화 취향을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나는 그의 글 한구절도 읽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대신 그의 질문은 이러하다. “어떻게 할리우드와 미디어가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제한시키고 있는가?” AFI의 리스트는 오스카상을 수상한 작품들, 유명 배우와 고예산의 영화들,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도모하기 위한 고도의 홍보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로젠봄은 이러한 리스트가 할리우드 배급 채널의 지배와 단지 할리우드 작품들을 홍보하는 데 열중한 잡지들, 그런 작품들을 소개하는 데 동원된 비평가들의 합작이라 여긴다. 산업의 손에 넘겨진 목록을 넘어서기 위해 로젠봄은 대안적인 미국영화 100편의 리스트를 공개했다. 언더그라운드, 아방가르드, 독립영화들이 포함된 ‘대안적인 100편의 미국영화들’이다. <에센셜 시네마>는 로젠봄의 이런 실천에서 나온 영화의 정전을 확장하기 위한 정전의 전략(정치학)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에센셜 시네마>의 흥미로운 자극은 이른바 정전의 선별전략, 말하자면 정전화에 필수적인 비평적 기준을 갱신하는 노력에 있다. 각 장의 글들이 비록 다른 목적으로 쓰였던 글이지만 이 느슨한 연결에서 로젠봄이 제시하는 몇 가지 흥미로운 주장을 엿볼 수 있다. 일단, 그가 제시한 영화 목록의 방대함이다. 100편이 아닌 1천편의 에센셜 시네마다. 하루에 세편씩 본다면 꼬박 1년이 걸릴 목록이다. 서양의 작품만은 아닌(그는 영화가 문학에 비해 언어적 차이가 덜 지배적인 예술 매체라 여긴다), 아시아, 아프리카를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 미학적 고려만은 아닌(예술작품에 대한 선호란 결국 소비지상주의의 다른 버전이기에) 통상적으로 대중적 영화라 부르는 영화들을 포함한 목록이며, 적은 편수라고 말해야겠지만, 다른 목록들과 비교해보자면 여성감독들의 작품이 많이 수록된 편이다(물론, 아녜스 바르다 영화가 고작 세편이며, 샹탈 애커만 영화는 5편에 불과하다). 정전화로 고려될 영화의 유형을 확장한 목록들이기도 하다. 가령, 비디오 작품들, 텔레비전용 영화, 애니메이션, 단편, 실험영화들의 목록을 포함한다. 물론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그러하듯 사심 가득한 목록들도 있다. 이 책의 중요성은 로젠봄의 글이 단지 할리우드의 문화 지배를 다루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나는 이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에서 우리나라 현실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읽고 있다. <경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조지프 맹케위츠, 프리츠 랑과 고다르의 연관 관계. 헬로우 시네필리아 <무비 무테이션즈>(Movie Mutations: The Changing face of World Cinephilia) 조너선 로젠봄 외 지음 / BFI 펴냄 <에센셜 시네마>와 함께, 실은 먼저 읽어야 할 책이 전세계(사실은 개인적인 네트워크인) 비평가들의 서신 교환으로 작성된 <무비 무테이션즈>이다(국내 미출간). 조너선 로젠봄이 1997년에 발의해 시작한 비평가들의 서신 교환- 원래는 프랑스 저널 <트래픽>에서 시작했다-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로젠봄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그가 만난 상이한 국적의 시네필 비평가들이- 대략 1960년대생들이다- 지역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젠봄과 멜버른의 에이드리언 마틴, 뉴욕의 켄트 존스, 빈의 알렉스 호르워스, 파리의 니콜 브레네들이 나눈 서신 교환들은 그들 각자의 영화 문화의 경험, 취향들을 전시한다. 이들은 시네필 돌연변이들(Mutants)로 수전 손택, 데이비드 톰슨, 데이비드 덴비 등이 즐겨 말한 ‘영화의 죽음’에 대항해 새로운 시네필리아의 시대, 혹은 세대를 제창한다. 작가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세계영화의 지도가 변경 중에 있기 때문이다. 더이상 유럽 중심적이지 않다. 게으른 비평가들만이 제대로 지금 그 변화를 지켜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에센셜 시네마>의 목록들이 어떤 지역적, 글로벌한 조건의 변이에서 나온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은 필수다. 동세대 비평가들의 논의뿐만 아니라 레이몽 벨루, 그리고 하스미 시게히코와 나눈 하워드 혹스, 마스무라 야스조에 관한 대화가 실은 더 흥미롭긴 하다.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우리가 보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텔레비전을 켠다. 채널은 TV조선. 내 살다살다 TV조선을 보는 날이 다 오다니. 아침 시트콤을 보는 심정으로 우병우의 검찰 출두를, 대통령이 담화문을 발표하는 장면을 본다. 호빠 출신과 무당의 조합. 그 날고 긴다는 문화계 황태자의 굴욕적인 호송 장면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한순간 놓치면 줄거리를 따라갈 수도 없는 급박한 전개다. 누군가가 그랬다. 가장 대중적인 시나리오는 익숙한 구조에 신선한 설정으로 탄생한다고. 대통령 임기 말에 습관적으로 터지는 측근 비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현실적인 설정을 얻어 역대급 스캔들이 되었다. 임성한 드라마를 챙겨 보던 친구를 한심해하던 나에게도, 이것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마성의 드라마다. 한때 열혈 영화청년의 정신을 되살려 난 분노를 뒤로하고 조용히 이 아침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해체/분석해본다. 눈앞의 반전을 위해 급급하게 만들어진 시나리오가 아니다. 치밀하게 초반부터 장치를 깔아둔 공이 많이 들어간 각본이다. 증거는 이 드라마가 무려 40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거다. 처음은 가정불화였을 것이다. 단지 아버지 마음에 안 드는 딸의 남자친구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가정이 대통령 일가였다는 것이고, 그 아버지는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탄탄한 지지층을 만들어냈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였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탄생한 비련의 여주인공. 그리고 일가를 이룬 남자친구는 죽음 이후에도 그녀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녀를 보좌한다. 그리고 세대를 넘어, 그들은 콘크리트 같은 지지층을 딛고 한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비리와 부패를 자행한다. 언젠가 그 여주인공이 했던 고백은 진심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이 비극은 그 평범한 가정 안에서의 일로 끝났을 거다. 긴 세월에 걸친 엄청난 스케일이 무색하게, 하루아침에 콘크리트가 무너졌다. 형광등100개를 켠 듯 그녀에게만 집중됐던 조명이 뒷배경을 비춘 순간 여주인공은 공주님에서 초라한 패널 앞의 꼭두각시로 전락해버렸다. 이 정도면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속 절름발이 정도는 쉽게 뛰어넘을 희대의 반전 캐릭터 아닌가.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두명의 캐릭터 문제도 아니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은 알고도 모르는 척, 은근슬쩍 꼭두각시놀이를 즐겼다. 정신 차려보니 이곳엔 정의라는 달달한 것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고 협잡꾼이 되지 않으면 멍청하다는 소릴 듣는 사기꾼의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정말 믿기 힘들지만, 이 드라마는 현실이다. 뉴스는 시트콤이 아니고 영화도 아니고 대하드라마도 아니다. 엄연한 현실이다. 나는 그들을 팔짱 끼고 구경할 수 있는 TV 밖 시청자가 아닌, 그들에 의해 상식과 삶과 가치를 배신당한 등장인물 중 하나인 것이다. 때문에 즐거울 수 없다. 남의 일처럼 웃으면서 조롱할 수 없다. 도무지 분노하지않을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만약 이게 진짜 드라마라면 클라이맥스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난 이 드라마가 끝나지 않길 기도한다. 최소한 여주인공의 퇴장으로 끝나버려선 안 된다. 망가져버린 이곳의 가치와 상식이 제대로 서는 모습까진 무조건 연장방영해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분노를 잃지 않고 지켜볼 생각이다.

[성균관대학교] 고전적 매체부터 뉴미디어까지, 영상의 모든 것을 가르친다

학과소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영상을 사용한 새로운 개념의 공연과 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아트와 같은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커리큘럼을 갖춘 학과다. 영상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영상 전 분야를 수학하며, 기존의 틀을 벗어나 주도적으로 영상에 대한 비전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토양을 다지게 된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21세기 첨단 영상 분야를 이끌어갈 영상 전문인을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1998년 설립된 이래 디지털 영상 산업에 최적화된 학과편제를 갖추었고 2002년 정보통신부 우수 IT학과 지원사업의 최우수 학과로 선정되었다. 또 2003년 문화관광부의 문화콘텐츠 우수학과 지원사업에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하는 첨단 디지털 영화’로 최우수 학과로 2년간 선정된 바 있다. 영상에 대한 전반적인 탐구 과정을 포괄하는 커리큘럼은 이론과 실기,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치지 않는다. 저학년 때 매체를 개괄하는 영상학원론, 미디어의 다양한 특성을 탐구하는 미디어스터디, 영상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영상스토리텔링 등을 학습하는 동시에 시나리오워크샵, 촬영기초, 영상편집기초, 애니메이션기초 등의 실기 수업으로 기술의 초석을 다진다. 고학년 때에는 비평이론의 틀과 방법론을 배우는 ‘영상비평론’,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등을 통해 사유를 확장하며, 게임워크샵, 영화연출워크샵, TV드라마워크샵 등 매체별 워크숍 수업을 통해 작품을 제작하며 실전 감각을 익힌다. 고전적 매체를 넘어서 뉴미디어를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은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만의 강점이다. 매체간 융합을 통해 뉴미디어를 개발하는 인터랙티브영상, 디지털 영상 공간 유저들의 행위를 연구하는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디자인 수업을 비롯해 하나의 스토리를 다양한 플랫폼에서 콘텐츠화하는 스토리텔링을 배우는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등의 수업은 시시각각 다변화하는 미디어를 발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책임질 교수진도 탄탄하다.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이준희 교수와 현대진 교수 등 뉴미디어에 정통한 교수들과 <오감도>를 연출한 변혁 감독, <말하는 건축가>의 정재은 감독, <꼬마버스 타요> 프로듀서인 이우진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등 현업에서 활동 중인 교수들이 이론과 실기 수업을 두루 책임진다. 탄탄한 커리큘럼과 교수진의 수준 높은 강의의 결과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현재 각 분야에서 활약 중인 수많은 동문을 배출했다. 영화계에는 <검은 사제들>을 연출한 장재현 감독, <도희야>의 정주리 감독 등 자기 색을 뚜렷이 드러내는 감독들을 비롯해 투자배급사 CJ E&M에 재직 중인 동문 등 다양한 분야에 동문들이 포진해 있다. 그외에도 공연기획자, 미디어 아티스트, 모션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동문을 비롯해 KBS 등의 방송사, 광고기획사 제일기획, 네이버 주식회사, 게임업체 NC소프트, 애니메이션 제작사 아이코닉스 등 다양한 분야에 동문들이 재직 중이다. 현대예술과 대중문화에 걸쳐 현재 가장 두드러진 화두는 융합일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뉴미디어에 대한 탐구에서 한발 나아가 인문학적 토대를 기반으로 예술과 공연,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매체를 융합한 디지털 컨버전스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뉴미디어와 영상미학 강의를 비롯해 영상학과의 변혁 교수가 기획 및 제작한 시네마틱 퍼포먼스인 <자유부인>과 <윤이상을 만나다>에도 많은 영상학과 재학생들이 참여한 바 있다. 시대의 흐름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뉴미디어 교육에 앞장서고 있는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이론과 기술, 비전을 갖춘, 시대에 앞서가는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입시전형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2017년 입학정원은 총 37명이다. 2017년 수시모집에서는 글로벌 인재 15명, 논술우수자 10명, 예체능 특기자 5명을 선발했으며, 정시 모집에서는 7명을 선발하며 나군에서 지원을 받는다. 정시 모집의 경우 수능 점수 100%를 보는 일반전형으로 진행하며, 국어 30%, 수리 30%, 영어 30%. 사회탐구 선택 2과목 10%에 한국사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합산해 전형 총점 순으로 선발한다. 2017년 1월2일 오전 10시부터 1월4일 오후 6시까지 접수 받는다. “ 매체를 넘나드는 영상 스토리텔링 능력이 핵심 경쟁력”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이준희 전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가 여타의 영화학과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학과명에 영화나 방송 등과 같이 목표로 하는 매체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는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크기 및 형태의 스크린, 러닝타임, 관람 형태 그리고 기술의 발전에 최적화된 영상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것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보고, 이에 맞춰 설계한 커리큘럼이 마련되어 있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가 지향하는 교육 목표와 교육관은 무엇인가. =기존 매체를 위한 연출이건 융복합적인 실험적 시도이건 주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에 매체의 특성을 고려한 콘텐츠의 형식을 디자인하는 것이 순서다. 예술이나 인문학적 이해는 이를 위한 필수 소양이다. 교육과정에서는 다양한 매체 또는 장르를 경험하며 얻은 지식을 체화하고 이를 실험적으로 융합하는 것을 권장한다. -어떤 인재를 양성하려 하나. =유연한 사고와 리더십을 갖춘 인재 양성이 목표다. 유연한 사고는 매체에 대한 유연성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작업 환경 속 역할의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 다른 분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을 의미하고, 리더십은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주위 사람들의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홈페이지 ftm.kr 전화번호 02-760-0661 교수진 안상혁, 이준희, 현대진, 박광춘, 변혁, 정재은, 이우진, 박준원 등 커리큘럼 영상학원론, 촬영기초, 영화사, 음악음향실습, 영상음향실습, 인터랙티브영상, 인터랙티브아트, 애니메이션기초, 시나리오워크샵, 영상미학, 영상스토리텔링,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디자인, 디지털디자인, 디지털비디오와 무빙이미지, 게임디자인, 캐릭터 애니메이션, 미디어스터디, 영상편집워크샵, 영상편집기초, 영화사연구, 게임워크샵, 영상비평론, 영상매체경영론, 영상학현장실습, 모션그래픽워크샵,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실험영상워크샵, 광고연출, CF워크샵, 스튜디오촬영워크샵, 장편시나리오워크샵, 다큐멘터리워크샵, 영화연출워크샵, 애니메이션 연출, 뉴미디어시대의 영상미학, 다큐멘터리의 이해,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방송포맷디자인워크샵,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콘텐츠기획과프리젠테이션, 영상학 현장실습, 영화기획제작워크샵, TV드라마워크샵, 졸업작품워크샵, 캡스톤디자인 졸업작품연구, 디지털시대의 영상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