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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피해 의식

페미니스트에게 세상이 자주 붙이는 딱지가 있다. ‘피해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강의를 하다보면 이런 질문도 곧잘 들어온다. “페미니즘을 알고는 싶은데 피해 의식만 잔뜩 생길까봐 겁이 나기도 해요. 피해 의식을 갖지 않고 페미니스트가 될 방법이 있나요?” 무리도 아니다.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 사회를 다시 둘러보는 시각을 갖게 되면 그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냥 지나쳤던 부분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이런 새로운 앎은 환희만 주지 않는다. 고통이 뒤따른다. “페미니스트가 되고 난 다음에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볼 수가 없어요. 재미있게 보던 예능 프로그램은 짜증이 나고, 드라마나 영화도 보다보면 화가 나요. 친구와 가족들과도 점점 말이 안 통해서 조금씩 멀어지는데, 어떡하면 좋죠?”라며 울음에 가까운 물음을 던지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 외부에서 읽고 들었던 이야기와 겹쳐서 몰입에 방해가 될 때가 있다. 영화관에서 흘러가는 대사와 별도로 이런 자막이 내 머릿속을 흘러간다. ‘저 어마어마한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는 촬영장에서 감독이 여자일 때와 남자일 때 태도가 너무나 다르다던데, 여자감독을 티나게 무시한다지. 사실적인 연기로 극중 긴장을 잘 이끌어가는 저 배우는 애드리브라며 상대 여배우에게 갑자기 육두문자를 날렸었다지. 저 겁탈 장면은 사전에 여배우와 협의는 된 걸까….’ 이러니 피해 의식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피해 의식이 생기는 걸 두려워할까. 일단 우리 사회에서 ‘피해 의식’은 ‘남 탓을 한다’는 말과 동의어로, 보통 부정적인 어조로 쓰인다. 하지만 이건 과대망상이나 남 탓하기라는 문제 행동을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는 일이다. 이런 식의 덧씌우기는 피해자가 ‘건강한’ 피해 의식을 가지는 걸 방해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피해 의식(victim mentality)의 원뜻은 다음과 같다. 첫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 원인이 아니다. 둘째, 피해자는 문제의 발생을 막을 의무가 없다. 셋째, 피해자는 권리를 침해받은 자로서 공감받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피해 의식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없어져야 할 것은 피해 의식이 아니라 피해자를 비난하는 문화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피해 의식 때문에 재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비슷비슷한 영화만 보고 그 익숙함을 재미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때문에 재미를 잃었다면 페미니즘을 멀리한다 해서 다시 재미가 생길 리 없다. 새해에는 남자들로만 가득 찬 스크린에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한다. 재미가 없는 건 내 탓이 아니다.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는 소리와 영상으로 기억을 소환한다

영화관의 불빛이 완전히 꺼지면 등장하는 신데렐라의 성, 그곳에는 두 가족이 산다. 하나는 월트 디즈니의 직계가족. 미키마우스가 휘파람을 불며 방향키를 돌리는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 1928)의 대표 장면이 이 가족의 문패이다. 또 하나는 픽사. 이들의 문패는 룩소 주니어가 폴짝거리며 등장하는 장면이다. 한 지붕 두 가족, 전략적 공생관계, 그러면서도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치열한 경쟁의식. <코코>의 상영은 이러한 긴장감을 여실히 드러낸다. 픽사에서 만든 장편은 늘 단편애니메이션을 먼저 보여준다. 장편 <코코>도 마찬가지다.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라는 단편이 마중물 구실을 한다. 잠깐! <겨울왕국>(2013)의 그 올라프? 반갑기도 하지만 갑자기 혼돈이 인다. <겨울왕국>은 디즈니 스튜디오의 작품이 아니던가? 디즈니·픽사, 한 지붕 두 가족 뭐지, 이 상황은? 일단 지켜보자. <겨울왕국>의 짧은 속편 혹은 크리스마스 후일담과도 같은 이 작품을 보면 꽤나 치밀한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기도 하고, 내심 디즈니와 픽사의 경쟁적 동거관계가 드러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는 본편 <코코>를 위한 바람잡이 역할을 충실히 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 무려 여섯개의 노래(물론 하나는 아주 짧아서 온전한 노래의 형식으로 쳐주기 애매하다만)가 담겨 있다. 크리마스 스페셜 미니 앨범으로 내놓을 만한 구성의 뮤지컬 단편애니메이션은 <겨울왕국>을 싱어롱 콘텐츠로 즐겼던 관객에게는 반가운 보너스와도 같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코코>의 관객에게 ‘싱어롱 이벤트를 다시 즐길 준비 되셨습니까?’라고 외친다. 우리는 <코코>에서 노래가 얼마나 큰 역할을 차지하는지 이미 알고 객석에 앉아 있다. 오프닝 무대 치고는 꽤나 성대하다. 그런데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는 그 짧은 시간에 뭔가 끈질긴 집착을 보여준다. 바로 ‘가족의 전통’이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가족의 전통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올라프의 짧지만 화끈한 여정이 펼쳐진다. 그리고 <코코>에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와 <코코>는 ‘가족의 전통’이라는 시제를 두고 디즈니 스튜디오와 픽사 스튜디오가 각각 자신들의 답안을 제시하는 백일장과도 같다. 그런데 이미 두 스튜디오가 출제자의 의중을 꿰뚫고 있다. 즉, 가족은 소중하며, 전통이라는 것은 외부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현재진행형의 과정이며, 세상은 다양한 전통이 어울려 공존해야 한다는 모범답안을 공유한다. 좀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모범답안을 찾아가는 도중에 배치된 몇 가지 설정들이 서로 겹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다락방 속 상자. 이는 추억의 저장고이면서 흔히 무의식 속 기억으로 이해된다. 엘사와 안나가 공유했던 크리스마스의 추억, 그리고 미구엘이 가족 몰래 에르네스토 델라 크루즈의 기념물을 모아둔 곳. 차이라면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에서는 거기에서 해답을 찾았고, <코코>에서는 거기에서부터 해답을 찾고자 출발한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교차점은 바로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한 접근법을 들 수 있다.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에서는 뜨개질을 활용한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단순한 패턴으로 구현된 형상은 2차원 평면이면서도 털실의 3차원적 텍스처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털실 한올 한올은 마치 저해상도의 비트맵 덩어리를 연상시킨다. 이에 화답하듯, <코코>는 파펠 피카도(papel picado)라는 멕시코의 전통 색종이 공예를 끌어들인다. 천이나 종이에 구멍을 뚫어 형상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기법을 활용하여 주인공 미구엘 가족의 역사를 펼쳐 보인다. 빨랫줄에 널린 색조각들은 그 자체로 영화의 스토리 보드가 된다(움직임이 결부된 애니메틱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카메라는 이러한 2차원 조각의 앞뒤 좌우를 훑어가면서 3차원 공간에 나부끼는 이미지의 평면성을 한껏 부각시킨다. 뜨개질과 색종이 조각을 둘러싼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탐색은 디즈니와 픽사가 애니메이션 제작을 어떻게 ‘가업’으로 꾸려나가려 고민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도 ‘수작업/수공예’를 공통적으로 부각시키는 식으로. 이처럼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와 <코코>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디즈니·픽사, 가문의 전통을 찾아나서다: 해골춤, 음악, 멕시코 언제부턴가 우리는 더이상 픽사를 픽사라 하지 않고 디즈니·픽사로 부른다(입에 붙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하긴 할 테다). 디즈니와 픽사 중 누가 진정한 가업의 계승자인지는 앞으로도 두고 볼 일이기는 하지만 주인공 미구엘처럼 우리도 사진 하나를 들고 그 가문의 전통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과 월트 디즈니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그렇다, 소비에트연방의 바로 그 ‘에이젠슈테인’ 그리고 ‘빨갱이’를 입에 달고 사는 바로 그 ‘월트 디즈니’가 맞다). 꽤나 뜬금없고 의아해 보이는 이 사진은 1930년대 초반에 찍은 것이다. 어떤 연유로? 당시로 말하자면 영화에 사운드가 도입된 직후였다. 몽타주 이미지와 사운드를 어떻게 결합시킬지 관심이 컸던 에이젠슈테인에게 가장 전범이 되는 작품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었다. 여타의 실사영화와 견주어볼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소리와 영상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미키마우징’이라는 말이 영상과 사운드의 ‘싱크’를 대표하는 용어로 쓰이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그 노하우를 어떻게든 알아내고자 에이젠슈테인은 먼 길을 떠나왔다. 기록상 최초의 유성애니메이션은 <증기선 윌리>지만 에이젠슈테인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감독들에게 펀치 한방을 먹인 작품은 <해골춤>(The Skeleton Dance, 1929)이었다. 해골들이 뼈다귀를 두드리며 다양한 악기 소리를 내다니! 막상 할리우드에 와보니 에이젠슈테인도 이곳에서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채플린이 함께 시간을 보내주긴 했지만 아무도 제작 제안을 하지는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에이젠슈테인이 발걸음을 옮긴 곳이 바로 멕시코다. 멕시코에 머물면서 가장 많이 본 것은 아무래도 해골 이미지들이라 현지에서 제작한 <멕시코 만세!>에는 해골이 그득하다. 디즈니의 <해골춤>에 이끌렸던 에이젠슈테인의 행보는 멕시코의 해골 전통으로 귀결된 것이다. 그 와중에 교류를 한 현지의 유명 예술가 중 한명이 디에고 리베라였다. 멕시코의 전통과 당대의 시대상을 뒤섞어 거대한 벽화 작업을 하면서 국민 화가로 추앙받던 디에고 리베라. 그런데 지금은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듯싶다. 에이젠슈테인이 프리다 칼로와도 교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없다. 디즈니와 해골, 멕시코 그리고 프리다 칼로를 연결시키려면 또 다른 경유로를 거쳐야 한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프리다 칼로의 생애를 그린 <프리다>(2002)를 떠올려보자. 이 작품에서 프리다 칼로(셀마 헤이엑)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맬 때, 갑자기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해골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작품 전체의 스타일과는 유독 구분되는, 말 그대로 ‘튀는’ 장면이다. 이 작품을 감독한 줄리 테이머가 일반 대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강렬하게 각인시킨 계기는 <라이온 킹>(1994)을 뮤지컬로 옮겼을 때다. 줄리 테이머의 손에서 새롭게 탄생한 <라이온 킹>은 무엇보다 화려한 색감을 빼놓을 수 없다.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색감보다 한층 더 도드라진 채도로 무대에 올려진 컬러 팔레트였다. 이러한 정글의 화려함이 <프리다>에서는 해골의 차가움으로 급변한다. 이렇듯 멕시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코코>의 해골 커넥션은 디즈니의 족보에서 꽤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굳이 요약하자면, ‘디즈니-에이젠슈테인-디에고 리베라-프리다 칼로-줄리 테이머-디즈니…’ 뭐 이런 식의 연결고리라고나 할까. 디즈니·픽사가 이런 식의 가계도를 애써 추적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어쨌거나 <코코>에서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예술의 대명사로 등장한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관객은 ‘멕시코’ 하면 ‘프리다 칼로’를 즉각 떠올린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반면 디에고 리베라는? 미구엘 가족의 성이 ‘리베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에서 그나마 그 흔적을 찾아야 할까? 그러기엔 리베라는 흔한 멕시코 성씨이긴 한다. 시네마라는 기록 미디어의 족보 미구엘이 그랬던 것처럼 디즈니·픽사도 가족의 전통을 좇다보면 가업의 족보 또한 챙겨봐야 할 것이다. 시네마토그래프가 탄생한 1895년, 같은 해 11월에는 또 다른 쇼킹한 이미지가 선보였다. 뢴트겐이 엑스레이 기술을 활용하여 살아 있는 사람의 뼈를 촬영한 이미지를 발표한 것이다. 별안간 갑자기, 한쪽에서는 피부와 근육을 손상시키지 않고 뼈를 보여주는 ‘사진 아닌 사진’, 다른 한쪽에서는 사실적인 사진 이미지가 살아서 움직이는 ‘활동사진’의 세상이 펼쳐졌다. <코코>에서 살아 있는 자는 피부로 덮여 있고, 죽은 자는 해골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미구엘은 죽은 자들의 세상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피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골로 위장을 해야만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뼈가 노출되면서 원래 속해 있던 살아 있는 자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힘들어진다. 엑스레이와 시네마토그래피가 겹쳐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좀더 미디어의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진과 축음기가 있다. 에디슨은 이 둘을 결합시키고자 했다. 사진은 살아 있던 순간을 영원히 담아놓는 기록물이다. 미라처럼 사진으로 온전히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면 죽은 자는 돌아갈 수 있다, 적어도 <코코>의 설정은 그러하다. 뒤집어보면 산 자는 사진을 통해 이미 떠난 자를 추억하고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코코>에서 아무도 죽은 자를 더이상 기억/추억하지 않으면 그는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했을 때, 그는 자신이 마치 프로메테우스가 된 것마냥 한껏 들떴으면서도 그만큼이나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유인즉 조금이라도 일찍 축음기를 발명했다면,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난 이의 목소리를 기록해두었을 테니까. 에디슨은 사람들이 사진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지, 사진의 여러 활용법 중에서 가장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부분이 어느 지점인지를 알고 있었다. 죽은 자의 소환 혹은 기록을 통한 영생불사. 다만 사진은 살아 있을 때의 ‘순간’만을 이미지로 포착할 뿐 움직이지도 않고 말을 하지도 않는다. 소리를 기록하는 매체인 축음기는 목소리를 온전히 통조림 통(축음기의 원통과 흡사하다) 속에 영원히 저장하고, 언제든 반복해서 재생할 수 있다. 마치 가족 앨범처럼 말이다. 실제로 에디슨은 축음기의 다양한 활용 예를 제시했는데, 음악 녹음 및 재생은 순위가 한참 아래였으며, 가장 전도유망한 활용법은 가족 목소리 앨범이었다. 에디슨은 소리를 기록하는 메커니즘을 고스란히 영상에도 적용하고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성공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제 우리는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선 오페라 가수를 언제든, 어디서든 불러올 수 있다!” 기록 장치로서의 영화이자 복제 매체로서의 영화를 전망한 것이다. <코코>에서 에르네스토는 에디슨의 예언처럼 이승과 저승 모두에서 영생불사의 생명력을 지닌다. 그리고 여기에 다시 텔레비전과 비디오라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테크놀로지가 결합한다. 미구엘은 에르네스토의 공연과 그가 등장한 영화를 비디오에 녹화하여 무수히 반복 시청하면서 빠져든다. 반면 에르네스토의 고약한 과거 행적에 대한 실체는 TV 카메라를 통해 공연장 무대 스크린 위에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이러한 폭로는 위장된 본모습을 드러내는 엑스레이와도 같다. 소리와 영상, 축음기와 사진,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엑스레이 등 <코코>는 과거를 재구성하고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 이제껏 발명된 미디어의 계보를 하나로 묶어서 보여준다. 결국 <코코>가 미디어의 족보를 되짚으면서 포착하고자 하는 대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게 되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되는 것의 관계이다. 이런, 하필이면 지금 시기에 멕시코라니 <코코>의 제작 기획은 2013년부터 시작되었다. 2013년의 미국과 2017년의 미국은 극명히 다르다. 당시만 하더라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테다(트럼프 자신조차도!).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에서 가장 선명했던 비전은 ‘멕시코 장벽’ 설치였다. 만리장성을 쌓겠다는 무모함은, 그러나 트럼프의 지지 기반인 반이민정책 지지자들에게는 가장 확실한 상징이자 청사진이었을 것이다. 멕시코는 이웃이 아니라 불법 체류자의 무한 공급처와도 같았다. 산 자의 세계와 죽은 자의 세계를 오가는 관문에서 해골-얼굴을 스캔해 생전의 사진과 대조하는 절차를 굳이 따지자면 기획 당시로서는 9·11 이후 강화된 공항 내 보안검색에서 착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작품이 완성되고 개봉되던 때의 상황은 훨씬 고약하게 바뀌었다. 검색대의 스캐닝 타깃은 테러리스트에서 불법 이민으로 확대되었으며, 불법 이민자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재분류되는 식으로 흘러간다. 그러니까, 만약 <코코>가 트럼프 당선 이후에 기획되었다면, 이승과 저승 사이의 출입국관리소는 훨씬 엄격하고, 살벌하게 묘사되었을 것이다.

[영화와 책①] 감독이 쓴 책들 - 박남옥·오즈 야스지로·연상호·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감독은 영화로 할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감독이 직접 쓴 책은 많지 않다. 박남옥, 오즈 야스지로, 연상호,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4명의 영화감독이 쓴 책이 반가운 것도 그래서다. 박남옥과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쓴 책은 자전적인 이야기고, 오즈 야스지로가 쓴 책은 생전 그가 쓴 글들을 묶어낸 것이며, 연상호 감독이 쓴 책은 새로운 창작물임을 미리 밝혀둔다. <박남옥: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지음 / 마음산책 펴냄 그는 언제나 아기를 포대기로 싸 업고 있었다. 첫 연출작이자 유일한 작품인 <미망인>(1955)을 찍을 때 돌도 안 지난 아기를 맡길 데가 없어 업은 채 촬영장을 누볐다. 매일 아침 아기를 업고 시장에 가 장을 본 뒤 배우와 스탭에게 먹일 점심을 마련했다. 촬영이 없는 날에는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기를 데리고 고향 대구와 촬영지 부산을 오갔다. 온갖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영화를 찍었던 이 사연의 주인공은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이다. 박남옥이 업고 다닌 딸 이경주씨가 생전 어머니가 써놓은 원고를 일일이 타이핑해 옮긴 책 <박남옥>은 기가 차고 눈물도 차는 박남옥 일대기다. 전쟁 때문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1950년대 충무로에서 고군분투하며 만들었던 영화 <미망인>의 메이킹필름이기도 하다(<미망인>은 결말부 영상과 일부 사운드가 유실된 채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돼 있다가 1997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편집자). 1923년 경북 하양에서 태어난 박남옥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고, 영화, 미술, 무용 등 예술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았던 만능 소녀였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영화 포스터를 사랴, 영화잡지에서 신일선·복혜숙·김소연·김신재·문예봉 등 영화배우 사진을 스크랩하랴, <수업료> <집 없는 천사> <수선화> <풍년가> 등 한국영화의 신문광고 사진을 모으랴 혼자 바빴던 원조 영화 ‘덕후’였다. 특히 일제시대 조선영화의 최고 스타 배우였던 김신재의 열렬한 팬이었다. 손수건을 꺼내야 하는 대목은 해방과 함께 박남옥이 광희동 촬영소에 입사해 영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다. <자유만세>(감독 이규환, 1946) 녹음 작업을 시작으로 편집조수로 일하다가 배우 최은희의 데뷔작인 <새로운 맹서>(감독 신경균, 1947)에서 스크립터를 맡으며 촬영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이후 부모님의 강요로 고향 대구로 귀향하지만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1953년 국방부 촬영대에 입대해 총알이 날아드는 전쟁터를 누비며 기록 영화를 작업했다. 전쟁이 끝난 뒤 친언니로부터 거금 380만원을 빌려 남편이자 시나리오작가 이보라가 쓴 시나리오로 <미망인>을 찍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미망인> 이후 그는 더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가업인 동아출판사 일을 하면서 1960년 창간된 영화잡지 <씨네마 펜> 편집장으로 영화에 관한 글을 쓰다가 영화계를 떠났다. 영화계에 배우 말고는 여성이 전무했던 그때 그 시절, 영화 현장에서 분투했던 박남옥의 몸부림은 울컥하기 전에 존경심이 먼저 든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감독이 손에 꼽을 만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요건 몰랐지?_ 박남옥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남자가 일본 배우 미후네 도시로다. <라쇼몽>(1950), <7인의 사무라이>(1954), <요짐보>(1961) 등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대배우다. 미후네 도시로 옆에서 웃고 있는 남자는 한국 배우 김진규(<하녀>(감독 김기영, 1960), <오발탄>(감독 유현목, 1961) 등 출연). 1960년 4월 도쿄아시아영화제 파티에서 찍힌 사진인데 박남옥은 “이 사진이 마음에 들고 평생 가보처럼 간직했다”고 말했다.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오즈 야스지로 지음 / 마음산책 펴냄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62년작 <꽁치의 맛>은 꽁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영화다. 오즈가 도호에서 <고하야가와가의 가을>(1961)을 촬영하던 중, “쇼치쿠가 빨리 다음 작품의 제목을 정해달라고 재촉해 어쩔 수 없이 정한 제목”이라는 게 노다 고고의 회상이다(노다 고고는 <만춘>(1949) 이후 오즈의 유작 <꽁치의 맛>에 이르기까지 오즈와 평생을 함께 작업한 시나리오 작가다.-편집자). “그저 꽁치를 화면에 보이지 말고 전체 느낌을 그런 식으로 하자는 의도로 지은” 제목이라는데, 이 사연을 알고 나니 책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또한 꽁치와 하등의 관계가 없지만 읽고 나면 꽁치가 막 생각나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와 미조구치 겐지가 시대극으로 할리우드와 유럽을 매혹하고 있을 때조차 오즈는 자신의 영화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 급변하는 격랑의 시대에 오즈 영화의 인물들은 다다미에 가지런히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며 가족과 결혼과 장례를 천천히 논했다.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는 생전 오즈가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준보>를 포함해 여러 매체나 책에 썼던 산문, 편지, 자신의 영화에 대한 평, 대표작 <동경 이야기>(1953) 감독용 각본을 모아 낸 책이다. 잘 알려진 대로 오즈는 1937년 9월 입대해 전쟁터인 중국 상하이에 상륙한 뒤 1939년 6월까지 중국 각지를 거듭 옮겨다니다가 일본으로 귀환했는데, 이 시기 노다 고고, 영화평론가 하즈미 쓰네오와 주고받은 귀중한 편지들과 종군일기가 이 책에 실렸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오즈는 친구들과 편지를 부지런히 주고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야마나카 사다오 감독(<백만냥의 항아리>(1935)와 <인정 종이풍선>(1937) 연출)의 병사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져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친구들이 보내준 소설, <키네마준보>를 읽으며 적적한 밤을 달랬다. 이 편지 중 일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내부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는데, 일본군 위안소 운영과 관련된 세세한 내용들도 기록돼 있다. 물론 오즈는 위안소의 존재를 불편해하고 싫어했던 것 같다. 또 오즈가 <오차즈케의 맛>(1952)부터 <가을 햇살>(1960)까지 자신의 영화에 평을 단 ‘오즈씨의 회고’(<키네마준보> 1960년 12월 증간호에 실렸다)는 오즈의 영화를 볼 때마다 참고하면 그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요건 몰랐지?_ <안녕하세요>(1959)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이야기다. 인간 무리라는 것은 시시한 얘기는 늘 주고받지만 막상 중요한 얘기를 나누려면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런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감독협회 같은 데 가서 이 스토리를 이야기하면 모두 재미있다고 하지만 막상 손을 대지 못해 “역시 내가 해보자”하고 결심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얼굴> 연상호 지음 / 세미콜론 펴냄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서울역>(2016) 등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섬뜩하다. 위선적이고, 욕망이 필터를 지나 그대로 말이나 행동에 투사되기 때문이다. 전작이 그랬듯이 연상호 감독의 첫 그래픽노블 <얼굴> 속 인물들도 그렇다. 임영규는 시각장애라는 한계를 이겨내고 자그마한 도장가게를 캘리그래피 연구소로 키우는 데 성공한 전각 장인이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없이 아버지 임영규와 단둘이 살아온 임동환은 자신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한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는다. 그 시신은 신시가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 야산에서 발견됐는데, 죽은 지 30년이 더 돼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함께 발견된 주민등록증을 통해 임동환의 어머니임이 밝혀질 수 있었다. 임동환은 다큐멘터리 PD 김수진과 함께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추적하기로 한다. 어머니의 가족, 직장 동료를 만나 알게 된 진실은 임영규, 임동환 두 부자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사람들에게 ‘못생긴 괴물’로 기억되는 어머니 정영희의 삶을 추적해 맞닥뜨린 풍경은 개발 광풍이 거세게 불었던 1970, 80년대 한국 사회와 그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한 가정이었다. 노동과 개발만을 미덕으로 삼던 그때 그 시절은 ‘내 얼굴이 어때서!’라고 대들 수 있는 용기도, 주변 사람들의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인권도 허락되지 않았다. 임동환이 마주한 젊은 시절 어머니의 삶은 지옥이나 마찬가지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림받았고, (못생긴 얼굴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결혼해 밤낮으로 노동만 하다가 어떤 사건을 겪고 세상을 떠났다. 감독의 전작 애니메이션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그림체라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지만, <얼굴>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통틀어 연상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그다운 색깔이 진하게 묻어난 작품이다. 대체 어머니 정영희의 정체가 무엇인지 긴장감을 가진 채 책장을 넘기다가 마지막 장에서 확인한 그의 맨 얼굴은 책을 덮은 뒤에도 가슴 한켠을 먹먹하게 한다. 그것이 이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도, 영화로도 만들어지길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요건 몰랐지?_ <얼굴>은 연상호 감독이 <돼지의 왕>과 <사이비>가 끝나자마자 떠올린 이야기다. <사이비> 다음 장편애니메이션으로 염두에 두었지만 <서울역>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연 감독은 <부산행>을 만들었고, 불안한 마음에 오래 묵혀뒀던 <얼굴> 시나리오를 들추게 됐다. <염력>의 프리 프로덕션이 끝나기 전에 <얼굴>을 세상에 내놓겠다고 결심했고, 그간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자유롭게 작업했다”는 게 그의 얘기.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 바다출판사 펴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인 시절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연출 경력을 시작했다. 거장의 신인 시절 대단한 무용담이라도 있을 것 같지만 정반대다. 그의 연출 데뷔작 <지구 ZIG ZAG>(1989)는 대학생이 해외에 나가 홈스테이를 하면서 현지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는 내용의 방송 다큐멘터리다. 짧은 체류 기간 안에 방송에 내보낼 만한 사건을 연출해야 하는 상황이 더러 있었던 모양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현지인이 제작진의 의도와 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주인공 대학생이 제작진의 기대와 딴판이라 낭패를 당한 일화를 털어놓았다. 이 실패기는 28살의 그에게 취재 대상에 대한 ‘공작(연출)’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져주었는데, 이 질문은 훗날 그가 극영화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은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신인 시절부터 영화 데뷔작 <환상의 빛>(1995), 칸국제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아무도 모른다>(2004), 최근작 <태풍이 지나가고>(2016)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생각한 것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자서전보다 자전적인 이야기가 가미된 음성 코멘터리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아무래도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2008),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등 그의 대표작에 얽힌 비화들이다. 고레에다 감독이 침팬지가 진행하는 토크쇼에 출연한 아베 히로시를 보고 풍채는 근사하지만 멋이 없는 주인공 료타 역을 떠올렸고(<걸어도 걸어도>), 현장에서 좀처럼 엔지를 내지 않는 배두나에게 어째서 연기 엔지가 없는지 물었다가 “한국의 영화현장에서는 나 같은 신인이 엔지를 낼 여유가 없으니 거기서 단련되었다”는 대답을 듣고 감탄했다(<공기인형>). 기획부터 시나리오 작업, 캐스팅, 현장에서의 연기 디렉팅까지 각 과정에 대한 고민들이 무척이나 솔직하다.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건 그가 다큐멘터리를 찍던 시절이다. 그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1991)는 미나마타병 화해 소송의 국가쪽 책임자였던 한 관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사건을 ‘피해자인 시민’과 ‘가해자인 국가(복지 행정)’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로 다루지 않고,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관료의 사연을 중심으로 사건을 입체적으로 다루었다. 카메라와 대상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바탕에는 저널리스트적 면모가 깔려 있고, 그런 면모가 어쩌면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요건 몰랐지?_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걸어도 걸어도>에서 시도한 것 중 하나는 감독 조수 시스템이다. 기획부터 자료 리서치, 촬영, 편집, 마무리까지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을 감독 옆에서 경험하게 하고 감독에게 언제, 어떤 의견이든 말해도 좋은 역할이다. 조감독과는 다른 개념이다.

[영화와 건축] <1987> 남영동 대공분실과 도시계획으로 만들어진 근대 공공 공간

도시의 긴 역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공공 공간’이 확대되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도시 지도를 그릴 때 건물을 검은색으로 칠하고 외부 공간은 흰색으로 남겨놓은 지도 표현방식을 ‘형상-배경 다이어그램’(figure-ground diagram)이라고 한다. 지도에서 건물들을 검은색으로 표시하면 길과 광장, 공원 같은 비어 있는 공간의 구조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런 방식의 지도 중에서도 1748년 조반니 바티스타 놀리가 그린 로마의 지도는 특별한데, 교회나 관공서같이 공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건물들은 검은색 대신 내부 평면을 그려서, 공공 공간이 건물 내부로 확장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적인 도시계획으로 잘 알려진 오스만 남작의 파리 개조 계획은 1853년에서 1870년 사이에 파리 시내 2천채 정도의 건물을 철거하고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오스만은 마차도 들어가기 어려운 좁은 길로 이루어진 파리를 관리가 가능한 근대도시로 바꿔놓았다. 오스만 남작의 도시계획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오페라 대로(Avenue de l’Opera) 같은 도시를 관통하는 직선도로의 개설이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이 직선도로들은 주요 공공장소들과 유적, 기념비들을 도시 외부에 노출시킨다. 이 직선도로는 이동에 대한 기능적인 역할뿐 아니라 근대 공공 공간의 삶이 도시에 도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도시의 공간, 투명하거나 관리되거나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1877년 그림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파리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 남자들은 모두 신사복 위에 코트와 모자를 걸친 정장 차림이고, 여자들도 평상복이라기보다는 다소 화려한 차림새를 하고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공공 공간의 복장’을 하고 있다. 마치 사진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카유보트의 그림은 넓은 직선도로가 도시에 준 변화, 공공 공간에 대한 자각을 보여주고 있다. 공공 영역의 확대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1902년은 건축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벨기에의 기술자 에밀 푸코가 큰 크기의 유리판을 산업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해냈다. 투명한 유리창의 대량생산과 건물 입면의 사용은 외부의 공공 공간과 사적인 건물 내부로 구분되던 도시를 변화시켰다. 이전 시대의 건물에서 발견되는 작은 창문들이 석재를 쌓아서 만드는 구조방식에 더 기인하는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큰 유리판의 생산은 큰 창문 디자인을 촉발했다. 투명한 유리의 건물 외벽 사용은, ‘투명성’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도시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리의 사용을 통해서만 현대 도시의 ‘투명성’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과도한 의미 부여로 보인다.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새로운 공공 건물들의 탄생이다. 이전 시대의 도시에서 거리와 광장이 갖고 있던 역할이 아케이드, 백화점, 쇼핑센터, 경기장 등 새로운 종류의 공간들로 확대되었다. 심지어 개별적인 주택마저 ‘유리’로 만들어진 텔레비전에 의해서 변화된다. 이제 개인의 사적인 공간도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공간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등록되고 기록되는 현대 도시의 삶은, 앞에서 말한 ‘놀리 지도’에 남아 있던 어두운 공간을 더욱더 사라지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모두에게 노출되는 현대 도시는 역설적으로 다양한 ‘섬’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찰서, 사기업, 교도소, 정보기관 같은 공간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설들은 그 폐쇄성의 정도에 따라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경찰서와 사기업이 신분 확인을 통해 출입이 허락되고, 교도소가 높은 담으로 도시로부터 격리된다면 정보 기관은 그 존재조차 사라진 유령 공간이다. 그리고 이렇게 ‘관리’되는 공간과 독재정권이 만날 때 그 안에서 쉽게 근대 이전의 어두운 공간들이 다시 나타나게 된다. 영화 속 공간의 인과관계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현재는 7층으로 증축되었지만 원래의 설계에선 5층 건물이었다. 건물을 보게 되면 금방 낯선 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5층 창문이 지나치게 작다는 점이다. 다른 층과는 다르게 얇은 수직 창들이 5층 벽에 늘어서 있다. 검은색 벽돌을 외장재로 사용한 이 건물은 5층의 작은 창문들만 본다면 중세시대의 건축을 닮아 있다. 게다가 5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직통계단은 첨탑의 유배를 연상시킨다. 이 창문들의 좁은 폭이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됐다는 해석도 있지만 그보다는 취조실로 사용되는 5층을 외부세계로부터 격리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니, 고문실로서 5층의 긴 역사는 좁은 창문이 정말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하기도 한다. 영화 <1987>(2017)은 남영동 5층 대공분실에서 시작해서 시청 앞 광장에서 끝이 난다. 남영동 밀실의 죽음은, 검찰, 부검병원, 교도소를 거쳐서 조금씩 광장으로 퍼져나왔다. 언제나처럼 공간을 컨트롤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컨트롤하는 데엔 실패한다. <1987>에는 두개의 피가 흐르고 있다. 박종철 시신을 덮은 천 위로 배어나오는 피와 이한열의 얼굴 위에 흘러내리는 피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은밀한 공간에서 흐르는 피는 천천히 배어나오고, 연세대 정문 앞의 피는 빠르게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다. 본래의 속성에 따르면 자유롭게 열려 있어야 할 대학교 캠퍼스도 1987년에는 관리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학생을 분리해내기 위해 교문 앞에서 학생증을 검사하고, 집회하는 학생들을 캠퍼스 안에 가둬놓으려고 최루탄을 동원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내부에서 관리하는 섬이라면, 대학 캠퍼스는 밖에서 관리하는 섬이다. <1987>의 마지막 장면, 시청 앞 ‘광장’ 집회는 엄밀하게 말하면 시청 앞 ‘도로’ 집회다. 당시의 시청 앞은 분수를 중앙에 둔 교통 광장이었다. 광장을 원하지 않는 시대에 도로를 점거해서 광장으로 만드는 것은 독재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도로 위 아스팔트 위에 서 있는 경험은 사람들에게 지금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다. “그래서 세상이 바뀌나요?”라고 말하던 연희(김태리)도 찾아간 마지막 집회 장면의 흥미로운 점은 광장 주변 건물들의 창문 모습이다. 열려 있는 사무실 창문들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광장은 건물들에도 스며들었다. 그렇게 공공 공간은 정말로 건물 안까지 확장된다. 이번이 ‘영화와 건축’으로 쓰는 마지막 글이다. 지나고 보니, 영화와 건축을 연결하는 논리가 억지스러운 경우도 적지 않아서 창피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영화와 건축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영화가 시간과 관련해서 인과관계나 개연성에 대해서 민감하지만, 공간의 인과관계엔 관심을 덜 기울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공간 구조가 허술한 영화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칼럼이 영화가 공간을 다루는 데 관심을 좀더 갖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씨네21 추천도서 <오정희 컬렉션>

“오래전에 쓴 자신의 소설들을 읽는 일에는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했지만 그것은 참 이상하고 특별한 경험이기도 했다.” 오정희 작가의 문학 50년을 맞이해 출간된 전작 개정판 <오정희 컬렉션>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오정희는 위와 같이 썼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그의 글을 오랜만에 다시 읽는 국문과 출신 독자에게도 어느 만큼은 용기가 필요했다. 갓 대학에 입학한 10여년 전, 합평 시간이었다. 신입생다운 패기와 미문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잔뜩 묻어나는 문체, 소설인지 싸이월드 일기장인지 모호한 여학생의 첫 단편소설을 한 남자 선배가 이렇게 평했다. “네가 오정희를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 이건 오정희도 뭣도 아니야. 여류 소설 그만 보고 서사 강한 걸 많이 봐라.” 여성 작가들은 서사가 약한 자기고백적인 사소설을 많이 쓴다는 편견이 그 속에 있었다. 신입생이 19살, 그 선배 나이도 고작 스물대여섯이었으니 어린 문청들 사이에 있을 법한 흔해빠진 에피소드다. 아마도 그 남자 선배는 오정희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시 읽은 오정희의 소설에는 불확실한 내일에 대한 불안, 가지지 못한 것만 탐하고 주어진 것은 버리고 싶은 인간의 부조리, 전후 빈곤 속에서 소외받은 아이들과 여성들의 삶이 겹겹으로 쌓아올려져 생생한 공간 속에 틈입하고 있었다. 이것이 강렬한 서사가 아니면 무엇이 서사인가. 그는 오정희를 오독했다. 한때 문학도였다면 오정희 이름 석자에 소환되는 풍경과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혹은 글을 쓰고 싶은 이들은 죄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자랐고 질투했고 결국 도달하지 못한 채로 쓰고 있다. 1968년 <완구점 여인>으로 등단한 오정희의 1970년대 소설을 묶은 <불의 강>, 그의 소설 중 가장 널리 읽힌 <유년의 뜰>과 <중국인 거리>가 수록된 작품집 <유년의 뜰>, 주로 중산층의 허위와 우울을 응시했던 80년대 후반의 작품집 <바람의 넋>, 주로 여성의 공허함을 그린 90년대작 <불꽃놀이>, 오정희의 첫 장편소설 <새>까지 총 5권이 실린 <오정희 컬렉션>은 이미 오정희 소설이 한권쯤 서가에 꽂힌 사람이라도 구비해야 할 소설집이다. 오독의 발견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끄자 갑자기 방 안이 조용해졌다. 문을 막아선 아버지의 땅땅한 몸피와 검게 번들대는 가죽 잠바에 묻어온 쇳내 나는 찬 공기는 스산히 저무는 오후 늦은 점심상의 묵은 김치 냄새와 담배 냄새로 절어 있는 방 안 정경을 남루하게 가라앉히며 단번에 방을 가득 채웠다. 아무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 않았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이 꺼지는 것과 함께 문득 감지된 그 침묵은 돌연하고 이상스러웠다. 정지된 화면처럼 큰어머니는 입을 벌린 채, 큰아버지는 안경을 벗던 손짓 그대로 우리의 등 뒤로 불투명하게 흐르던 오후의 흐름 속에 잠시 붙박였다. (<새> 16쪽)

씨네21 추천도서 <다이스맨>

서른이 넘은 뒤 희열이라고 부를 만한 도전이 인생에서 사라진 것 같다고 느끼는 한 남자가 있다. 그 문제를 동료(정신과의사)들에게 말했더니, 다들 말하기를 육체가 쇠퇴하듯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단다. 문제는 자살 욕구가 있음을 깨달으면서부터다. “외국에 가도, 불륜을 저질러도 만날 똑같은 기분입니다. 돈을 벌어 쓰는 것도 그렇죠. 분석을 받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죄다 약에 취했거나, 절망에 빠졌거나, 만날 보던 얼굴들이고요. 제 일은 효과는 있지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새로운 철학이라는 것도 결국 그게 그거고, 제가 자부심으로 삼았던 정신분석도 이 문제에는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아요.” 그는 집의 창가에서 프로이트의 초상화를 보다가 주사위를 보고 생각한다. 그러고는 “주사위 윗면이 1이라면 알린을 강간하자”고 마음먹는다. 알린은 그와 함께 일하는 동료 정신과의사의 아내이자 그의 아내와도 절친한 사이다. 1은 강간, 다른 숫자는 침실. 그리고 주사위의 결과는 1. 여기서 결과에 놀라 움츠러들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며 다시는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면 이 소설은 탄생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는 주사위를 계속 던진다. 처음에는 섹스와 강간을 위해 주사위를 던진다. 그 와중에도 두 가지 원칙은 지키려 노력한다. 첫째, 내키지 않는 선택지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둘째, 언제나 다른 생각을 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고 주사위의 결정을 따른다. 즉, 자신이 하고 싶지만 통제를 벗어난 행동이라 저어될 때, 주사위라는 핑계를 만들어낸 셈이다. 하지만 질문은 점점 통제를 벗어나는 쪽으로 흐른다. 이제 그는 가족을 버리고 떠나거나 사람을 죽이는 문제에까지 주사위를 던진다. <다이스맨>은 1971년에 쓰인 소설. 저자 루크 라인하트는 대대로 고위 공직자를 배출한 명문가의 장남으로 영문학 강사로 일하며 뉴욕에서 아내와 살았다. 그가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완성한 <다이스맨>은, 정신과 의사에게 강간살해의 경험을 욕설을 섞어 토로하는 내담자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비롯해 남성이 할 법한 폭력적인 상상들로 가득하다. 이 소설은 <런던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컬트소설’로 꼽히기도 했다. TO YOU 독자들이여, 좋은 친구이자 나와 같은 어릿광대인 독자들이여, 나의 다정하고 하찮은 인간들이여, 그래, 여러분이 주사위맨이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들은 내가 여기서 묘사한 자아, 타버린 자아, 즉 주사위맨을 영혼 속에 영원히 담고 가야 하는 운명이다. 당신들은 다중인격이며 그중 하나가 나다. 나는 당신들 속에 영원히 가려움증을 유발할 벼룩 한 마리를 만들어놓았다. 아, 독자들이여, 내가 태어나게 하지 말아야 했다.(308쪽)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환상을 보존하는 방식에 관하여

다소 지엽적인 질문 하나를 던져보고 싶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하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왜 영화관에 가지 않을까. 크리처(더그 존스)를 찾기 위해서라는 예외적인 목적을 제외하고 엘라이자는 극장에 가지 않는다. 엘라이자가 영화를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코너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자일스(리처드 젠킨스)의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영화를 보곤 한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전작에서 텔레비전이 하나의 미장센처럼 활용된 바 있긴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단순한 미장센을 넘어 우주탐사, 소수자 차별 등과 함께 1960년대를 반영하는 지표 중 하나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엘라이자가 영화관에 가지 않는 상황 역시 시대를 대변하는 것일까.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할 당시, TV에 영화 관객을 빼앗기게 된 현실을 우려하는 시각이 팽배했으나, 델 토로가 굳이 지나간 논란을 끌어들여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텔레비전을 통해 영화가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앞서 물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왜 별안간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자신의 영화 내부에 새겨넣었을까. 델 토로의 영화에서 영화관을 다룬 적이 없었기에 이는 던져봄직한 질문이다.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도 있겠다. 델 토로는 왜 영화관을 그리면서도 이를 전면화하지 않고 바깥으로 밀쳐두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관은 엘라이자와 자일스의 방이나 엘라이자가 근무하는 항공우주국에 비해 전면화된 공간은 아니지만 빛으로 어른거리거나 음악으로 스미며 구획된 경계를 넘는다. 이것은 감독이 영화관을 사유하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엘라이자의 공간이 시네필에게 최고의 장소’라는 의견에 동의하며 ‘엘라이자의 다락방에는 늘 영화가 상영되는 소리가 새어들어온다’고 설명하는데(장영엽 기자, <씨네21> 1143호), 이것이 공간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공간의 연결성은 감독이 언급한 대로 일단은 소리 혹은 빛으로 표현된다. 주목할 것은 순환하고 교환되는 영향의 방향성이다. 영화관이 엘라이자의 공간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때로는 엘라이자의 삶이 영화관으로 흘러들면서 두 공간은 교통한다. 엘라이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첫 시퀀스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은 두 공간이 한축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엘라이자가 연한 청록색 욕조에 물을 받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직선으로 하강해 층 사이에 놓인 철근과 콘크리트를 지나 영화관까지 하나의 연결된 숏(플랑세캉스)으로 보여준다. 엘라이자의 공간 중에서도 특히 욕실과 영화관을 연결지은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두 공간의 연결은 제목이 말하는 ‘물의 형태’가 영화관 혹은 영화라는 매체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엘라이자가 크리처와 사랑을 나누는 결정적인 장면에 이르러 영화는 카메라 무빙을 통해 두 공간의 연결성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엘라이자의 공간이 영화관에까지 흘러넘치는 상황을 약간은 코믹한 방식으로 기입한다. 엘라이자는 문틈을 막아 욕실 전체를 물로 가득 채우는 무모한 방식으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물은 아래층 영화관까지 흘러들어 입을 벌린 채 잠든 관객의 얼굴 위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이때 관객의 얼굴은 정확히 천장을 향한 채다. 고개의 방향은 ‘진짜’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이 어디인가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물이 떨어지는 영화관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자면 관객 얼굴에 물을 뿜곤 하는 4D 입체영화의 방식과 유사한데, 관객이 혼비백산하는 대목에서는 어쩐지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1895)을 보고는 놀라 달아났다는 초기 영화 관객이 연상된다. 다소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영화에서 설정한 시대적 배경인 1960년대 외에도 초월적인 시간이 그 순간 장소 안에 기입되며 곳곳에 흘러든다. 영화관을 투과해 흐르는 초월적 시간 영화관은 단지 엘라이자의 공간만이 아니라, 영화 곳곳에 빛을 드리우며 영화적인 것을 상상하고 발견하게끔 만든다. 달리 말해,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영화관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움직이며 생성되는 공간이다.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투명한 ‘물’들과 ‘막’들은 그 자체로 스크린과 다르지 않으며, 그것을 독특한 방식으로 화면에 불러들이는 자는 크리처다. 아가미 인간인 크리처의 몸을 감싸는 물은 크리처와 인간을 구분하는 일종의 막이다. 애초에 모양이 없는 물은 어딘가에 담겨야 하므로, 물은 다시 막을 소환한다. 델 토로의 전작에서 막은 괴생명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데 더욱 효과적인 기능을 발휘했던 것이 사실이다. <크로노스>(1993)에서 달걀 모양의 곤충기계는 접촉된 인간의 신체를 파고들었으며, <미믹>(1997)의 바퀴벌레 인간 주다스와의 접촉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런데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크리처의 파괴성은 은유적으로 표현되며, 비교적 온순하다.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의 손가락을 물어버린 상황이 피투성이가 된 손과 바닥을 뒹구는 손가락으로 생략되는 사이, 엘라이자의 언어를 그대로 습득하는 크리처의 순수성이 빈틈을 메운다. 인간과 변종 사이에 필수적이었던 막은 접촉 가능한 것으로 변화한다. 처음에 단단한 큐브 속에 있던 크리처는 어느 순간 넓은 욕조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엘라이자를 맞는다. 욕조의 타일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조심스러운 대화를 시작한다. 다음 만남에서 크리처는 아예 욕조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스트릭랜드의 손가락을 물어버린 일로 물 밖으로 꺼내져 고문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델 토로의 세계에서 괴생명체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작용했던 막이 반대로 인간으로부터 크리처를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는 것은 특징적이다. 델 토로는 괴물 같은 것과 인간이 얼마나 비슷한가를 주지시키면서도 끝내 화해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묘사해왔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에 이르러 그 관계는 뒤집힌다. 이런 상황이 괴생명체를 좁고 어두운 지하도가 아니라 2층 다락에서 누군가의 일상과 조우하도록 만든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괴생명체들이 인간의 일상을 파괴할 정도로 힘이 셌다는 것을 상기해볼 때, 영화 속에서 크리처는 엘라이자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엘라이자가 크리처를 떠나보내기로 했던 건 크리처의 유약한 속성 때문이지, 인간계에 스며들지 못하는 파괴적인 속성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크리처는 고양이의 머리를 뜯어 먹음으로써 그가 인간 생활에 완전히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을 표시한다. 중요한 건 크리처의 행위를 대하는 자일스와 엘라이자의 반응이다. 이들은 고양이의 죽음을 애도하긴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일상을 뒤흔든다거나 크리처를 내몰 정도의 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섹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엘라이자와 크리처의 섹스가 암시적으로 표현되면서, 규칙적으로 이뤄져온 엘라이자의 자위행위와 크리처와의 섹스를 연속된 것으로 상정할 여지를 마련한다. 크리처와의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물’이었고, 엘라이자의 자위에서도 그랬다. 다만 크리처와의 만남 이후 물은 전보다 훨씬 남용되었고, 그녀의 자위행위 역시 좀더 확장된다는 인상을 준다. 막을 뚫고 들어가는 데 혈안이 된 우주 개발의 욕망과는 대조적으로 환상이 엘라이자의 삶에 침투하는 방식과 이에 관한 엘라이자의 반응은 부드럽고 나직하게 조응한다. 엘라이자가 크리처와 함께 뮤지컬 속으로 들어가는 환상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때 환상의 틈입은 일상을 깨고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조명의 변화를 통해 일상의 자리가 흑백 화면으로 대변되는 환상의 자리로 점차 전환되면서 성취된다. 흑백은 막의 일종으로 환상을 표시하는 경계이자, 엘라이자의 입장에서는 그 환상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은 채 그것과 합일되려는 겸허한 태도를 표시한다. 환상을 보존하면서도 그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태도가 이 장면의 무드를 통해 강화된다. 환상과 일상의 공존 스크린은 괴생명체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구획하는 투명한 막일 뿐 아니라 단단한 몸과 그 위를 뒤덮은 끈끈하고 축축한 막으로서 크리처의 신체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해부당할 위기에 처한 크리처를 구출하는 시퀀스를 통해 강조되는 크리처의 예민한 신체와 그 성질은 영화관이라는 공간, 그리고 필름이라는 물질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대책 없고 무모하기까지 했던 크리처 구출 시퀀스에서 가장 유효했던 전략 중 하나는 건물 전체를 일시적으로 정전시키는 것이다. CCTV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이 전략은, 영화가 상영되기 위한 필수조건 중의 하나인 어둠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가정을 밀어붙이자면, 크리처를 위해 적절히 물의 염도를 만드는 장면은 곧 필름을 현상하거나 보존하기 위한 작업을 연상시킨다. 크리처가 이따금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는 것 역시 스크린에 관한 하나의 은유와 맞닿는다. 크리처의 신체는 환상을 보존하는 최소한의 막들과 그 막이 우리에게 되비추는 환영들을 도처에 불러들인다. 영화관에서 브라운관으로, 브라운관에서 모니터로, 모니터에서 모바일 화면으로 환영을 재생하는 창구가 분화되고 쪼개어지는 오늘날의 양상이 영화에서 분기하는 끊임없는 막들의 향연을 통해 예고된다. “여기에 미래가 있다”는 구호와 함께 끊임없이 소환되는 청록 빛깔은 (파이 광고 문구의 녹색, 캐딜락의 청록빛) 실은 엘라이자의 시선이 거치고 간 일상의 막들이 내뿜는 빛을 가리키는 적절한 수식어처럼 보인다. 그중 하나가 엘라이자가 자일스와 함께 보던 텔레비전이다. 엘라이자와의 첫 만남에서 크리처는 투명한 큐브의 막 속에서 손을 뻗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이때의 큐브는 엘라이자가 자일스와 함께 보던 텔레비전을 연상시킨다. 어릴 적 텔레비전 속에 진짜 사람이 존재한다는 원시적인 상상을 했던 것을 기억해보면, 크리처가 안쪽에서 반응했을 때의 놀라움은 텔레비전 속에 존재하던 사람이 화면 밖에 존재하는 내게 말을 걸어온 것처럼 섬뜩하고도 기이한 일이었을 거라 짐작된다. 크리처의 신체는 곧 화면 속에 놓여 있던 환상의 대상으로서의 신체이며, 그 신체는 막을 벗어나 엘라이자의 삶에 서서히 스민다. 자일스의 텔레비전을 통해 흑백영화가 상영될 때, 텔레비전이 내뿜는 빛은 묘한 청록색을 띤다. 청록빛은 텔레비전 속 인물들이 마치 물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를 통해 크리처와 텔레비전이 비추는 인물들은 하나의 계열을 이룬다. 물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은 또 있다. 스트릭랜드의 집무실 한쪽 벽은 CCTV로 채워져 있는데, 나는 종종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 대신 배경에 놓인 CCTV 속 인물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곤 했다. 존재는 보이지만 그들이 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CCTV 속 인물들 역시 물속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리를 번역하지 않는 CCTV가 정당하게 주장할 기회가 말살된 비주류 인간이 처한 상태를 암시함은 명백하다. 비주얼적인 연관성을 통해 위기에 처한 크리처와 TV 속 흑백영화, 그리고 CCTV 속 감시당하는 사람들, 특히 엘라이자와 젤다(옥타비아 스펜서)를 위시한 하층 노동자들이 비슷한 위치에서 나란히 정렬된다. 자일스에게 자신과 괴물이 다르지 않다고 강변하던 엘라이자의 주장은 이미지를 통해 이미 암시됐던 바다. 엘라이자가 이를 손으로 말하는 동시에 자일스의 입으로 반복시킨 이유는 그것이 관객을 향한 것임을 의미한다. 언어의 번역과 반복을 통해 엘라이자는 관객을 자신과 나란한 위치로 조용하지만, 단호히 끌어온다. 이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은 다시 영화다. 엘라이자가 크리처를 찾아 영화관에 당도했을 때, 크리처는 영화관 중앙에 선 채로 영화에 몰입해 있다. 이때 영사되던 영화가 무엇이었고, 어떤 장면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앞선 인터뷰에서 감독은 ‘영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 아니라 작은 규모나 사소한 영화들이 우리에겐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를 염두에 둘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영화가 아닌, 그저 영화를 보고 있었다는 상태 자체일 수 있다. 크리처가 영화관에 숨어들기 전 몰두해서 바라보던 것은 자일스가 크리처의 모습을 본떠 그린 몇장의 스케치들이다. 크리처는 그것이 자신의 얼굴임을 인지한 듯 유심히 들여다본다. 영화를 마주한 크리처의 정지된 응시는 그가 자신을 그린 자일스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정지 상태를 반복한다. 연속된 크리처의 응시를 통해 영화 매체와 크리처간에, 친연성을 넘어선 동일성을 상상할 여지가 마련된다. 인간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크리처는 영화의 내러티브나 캐릭터가 아닌 영화관의 스크린과 대면해 그것이 주는 기운을 흡수한다. 영화를 대면한 크리처의 응시 이제 대구를 이루는 오프닝과 클로징이 보여주는 거대하고도 비밀스러운 장막을 마주할 차례다. 크리처가 쓰러진 엘라이자를 안고 강물에 뛰어드는 마지막 시퀀스를 보고 난 뒤 오프닝 시퀀스를 돌이켜보면, 엘라이자가 물속에 잠긴 이유는 납득된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의 방 전체가 물에 잠긴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델 토로는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2006)에서도 첫 장면의 비밀이 마지막에 이르러 풀리며 대구를 이루는 방식으로 극을 여닫은 바 있다. 오필리아가 피 흘리며 쓰러진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 처음에는 역재생의 방식으로, 마지막에는 원래의 흐름대로 반복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셰이프 오브 워터>의 오프닝은 결정적인 순간이라기보다 엘라이자가 잠에서 깨기 직전의 일상이다. 오프닝이 결말에 비추어 과거인지 미래인지조차 불분명한 이 시간은 그저 한순간 속에 정지한 채 보존되어 있다. 이때 물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존된 기억, 혹은 기억-물질로서의 영화라는 매체를 다시 환기한다. 물은 과거의 한순간으로 다가가기 위해 기억을 더듬는 양상을 시각화한 물질로도 보인다. 공간의 측면에서 보자면 카메라 워크에 의해 관계성이 내내 강조되었으나 분리된 것으로 존재했던 엘라이자의 방과 영화관이 그 순간 합일된다. 확장하면 그 순간 속에 일상과 환상이 더는 분리되지 않는 오늘날의 삶이 포개진다. 공간의 합일은 확고한 반면, 엘라이자와 크리처의 결합은 위태롭다. 특히 오프닝에서 왜 결합의 삶을 그리는 대신 엘라이자의 일상을 떼다놓은 것인지 의문스럽다. 오프닝과 클로징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자일스의 목소리는 하나의 설화로서의 ‘이야기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어딘지 누군가의 죽음 이후 그의 삶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처럼 들린다. 특히 마지막에 시를 읊는 장면은 <악마의 등뼈>(2001)에서 카사레스가 죽음을 앞둔 캐서린에게 시를 읊어주던 장면과 겹친다. 그렇다면 자일스는 애도와 추모의 시를 읊은 것일까. 마지막 시퀀스의 환상을 동화처럼 믿을 것인가, 아니면 환상 이전에 벌어진 참혹한 광경에 마음을 둘 것인가. 델 토로는 관객에게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는 환상의 안과 밖을 고루 보여주며, 현실의 참혹함과는 대조적인 환상의 승리를 동시에 그린다. 다만 이번에는 환상과 현실이 대조된 채 분리된 것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의 체제가 점프하지 않고 하나의 흐름 속에 포개진다. 엘라이자가 크리처를 만난 뒤 홀로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걸터앉아 슬쩍 욕조쪽을 바라볼 때, 그녀가 바라본 것은 물이자 환영이자 크리처였고 그것은 분리되지 않는다. 델 토로는 마치 모든 분리에 저항하기라도 하듯 현실과 환상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 순간 말하고 싶어한다. 시각적으로 감지할 뿐 잡을 수 없는 환영의 감각은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크리처라는 살갗을 통해 육화되고 감각된다. 정말 크리처가 존재했는지 한낱 신기루였는지 알 수 없다. 신기루에 불과할지라도 이들의 포옹을 힘껏 믿을 수밖에 없는 건, 우리가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방식이 대개 그러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판타스틱 부니베어> 카니발쇼를 꿈꾸는 한물간 동물 서커스단

영국의 푸와 패딩턴, 미국의 위 베어 베어스, 평창의 반다비까지 곰돌이들의 귀여움은 언제나 옳다. 중국에서 태어난 부니베어는 앞선 곰 캐릭터들에 비해 야생의 특질이 부각된 투박한 외양을 지녔다. 가슴에 선명한 반달무늬가 새겨진 큰형 브라이언(조연우)은 외모만큼 저돌적이고 씩씩한 성격, 동생 브램블(신정훈)은 겁 많고 게으른 대신 상냥한 마음씨가 빛난다. 영화는 카니발쇼를 꿈꾸는 한물간 동물 서커스단이 부활과 자유를 향해 조금씩 걸어나가는 과정을 비춘다. 홍수에 휩쓸린 브라이언이 졸지에 아랫마을의 서커스단에 합류하면서 형제의 삶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반복되는 고도의 훈련에 지친 동물들은 관습에 반기를 드는 브라이언의 출현에 환호를 보내고, 두려운 공중 곡예는 어느새 놀이와 축제로 탈바꿈한다. 여기에 애타게 형을 찾던 브램블과 고향 친구들이 극적으로 합류하면서 일탈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영화는 서커스와 동물 포획, 지나친 산림 개발 등 환경 파괴와 동물 복지에 관한 제재를 다양하게 끌어들이는데, 아동용 애니메이션임을 감안해도 스릴과 코미디, 주제의식 모두 어정쩡한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다만 잊을 만할 때쯤 등장하는 서커스 장면이 기분 좋은 생동감으로 활기를 불어넣는다. 일렉트로닉 음악과 알록달록한 색감, 온갖 묘기들이 펼쳐지며 천막 안의 작은 무대를 환상 속으로 이끈다.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서 출발한 <부니베어>의 다섯 번째 극장판으로 중국에선 2016년에 개봉한 작품이다. 숲을 파괴하는 악당인 벌목꾼 로거 빅이 이번 시리즈에선 의외의 아군이 되어 형제를 돕는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서식지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소공녀>의 영어 제목 마이크로해비타트(Microhabitat)는 미미한 서식지를 의미한다. 애벌레에게 거처 겸 식량이 되는 낙엽이나 작은 동식물이 연명할 환경이 되는 통나무 조각이 예다. <소공녀>의 미소(이솜)도 신세지거나 다치지 않고 오직 ‘서식’하고자 한다. 가사도우미 일로 집세를 내고 일과 후 담배와 위스키를 맛볼 수 있다면 족하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담뱃값이 뛰자 미소는 집과 기호품 중 더 큰 행복을 택하고 방을 뺀다. 여행 가방에 생필품을 꾸려넣은 미소는 친구들을 하나씩 방문해 달걀 한판과 가사노동을 숙식과 교환한다. 그녀의 선택은 합리적이고 누구도 해치지 않으나, 사람들은 미소가 사는 방식을 불편해하며 자꾸 ‘상식적’ 삶에 끌어들이려 한다. 동화 <소공녀>의 세라처럼 미소는 어떤 처지에서도 품위를 지키는 인간이다. 그녀는 뭔가를 갖기 위해 삶의 소신을 꺾거나 아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02/22 숀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지난해 가을 영화제에서 미리 본 나는, 첫눈에 반한 자의 저주받은 숙명에 따라 시시콜콜한 뒷이야기를 캐고 다니게 됐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핼리(브리아 비나이트) 모녀는, 2008년 미국 금융 위기로 양산된 ‘숨은 홈리스’의 일원이다. 숨은 홈리스란, 노숙은 하지 않으나 자동차와 모텔, 가족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 디즈니월드 주변 퇴락한 모텔촌을 공동작가 크리스 버고시와 돌아다니던 숀 베이커는 굳은 얼굴의 한 아저씨에게 제지당했다고 한다. 남자의 손에는 야구 방망이인지 전동 드릴인지 충분히 무기가 될 물건이 들려 있었다. 사실인즉 한 모텔 관리인인 남자는 수상쩍은 두 백인 중년 남자로부터 보호자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호하려던 것이었다. 숀 베이커가 직접 겪은 이 상황은, 매직캐슬 모텔 매니저 바비(윌럼 더포)가 배회하는 성도착자를 아이들로부터 떼어놓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한 시퀀스가 되었다. 그리고 피고용인으로서 한계를 잘 알면서도 곤궁한 처지의 투숙객들에게 마음을 쓰는 이 실제 관리인은,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취재원이 됐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영화를 준비한다는 일행의 말을 들은 그는 “영화? 우리 모텔에 배우 앤드루 가필드도 묵었는데”라는 말로 감독과 작가를 식겁하게 했다고 한다. 당시 후반작업 중이던 문제의 영화는 역시 플로리다주 올랜도 지역을 배경으로 집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라민 바흐러니 감독의 <라스트 홈>(2014). 심지어 관리인은 바흐러니 감독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바꿔주었고 숀 베이커는 두 영화의 차이를 확인하고 한시름 놓았다고 한다. 6살 무니 역의 브루클린 프린스도 나를 검색의 개미지옥에 빠뜨렸다. 올랜도 출신의 이 배우는 경력자로서 오디션에 응했는데, 나중에 친구 스쿠티 역으로 발탁된 크리스토퍼 리베라와 같은 면접 그룹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소년이 오디션을 위해 힘을 내야 한다며 푸시업을 시작하자 브루클린 프린스는 질세라 쭈그려 앉기 운동을 하며 준비체조에 합세했고 그날 감독은 프로듀서에게 무니를 발견했다는 낭보를 알렸다. 브루클린은 리서치에도 철저한 연기자로 모텔촌에 사는 또래 친구들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과 모니터링도 구했다고 한다. <할리우드 리포터> 팟캐스트에 초대된 브루클린 프린스의 인터뷰는, 조숙한 어린 배우에게 심드렁한 관객의 입가에도 미소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역할 모델로 엘르 패닝, 다코타 패닝, 에마 왓슨, 데이지 리들리, 갤 가돗을 거명하는 프린스는 지난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엘르 패닝이 자기를 만나러 영화잡지 사무실까지 왔던 행복한 기억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언제가 나를 정말 정말 보고 싶어 하는 다른 배우가 있다면, 엘르처럼 꼭 만나러 가서 기쁘게 해줄 거예요. 비행기를 타야 하더라도요.” 칸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에 참여해 커다란 극장에 만장한 관객과 같이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본 소감을 묻자 프린스는 별거 없다는 듯 “우리 집 텔레비전도 되게 커요”라고 대꾸했다. 살짝 당황한 진행자가 재차 묻자 이 배우는 어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안다는 투로 “숀이 내 감독이라 감사했고 내가 옳은 길을 택해서 만족스러웠어요. 나도 이제 스토리를 들려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어요. 다음 계획이요? 그건 신의 손에 달렸죠.” 언니로 모셔야겠다고 생각하려는 참에 브루클린 프린스는 특종을 건네주듯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세계 최초의 어린이 감독이 되고 싶어요!” 02/24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숀 베이커 감독 필모그래피에서 처음으로 100만달러가 넘는 예산으로 제작됐다. 본래 2012년작 <스타렛>을 마치고 촬영에 들어가길 희망했으나, 아이폰5S로 찍은 <탠저린>(2015)이 독립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다음에야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전작 다섯편의 예산을 몽땅 합친 것보다 넉넉한- 그래봤자 영화산업 전체로 보면 초저예산인- 제작비를 갖게 된 숀 베이커는 곧장 35mm 필름 촬영을 선택했다. 단, 엄마와 억지로 헤어지게 된 무니와 작별 통보를 들은 젠시(발레리아 코토)가 손을 잡고 디즈니월드 안으로 달려들어가는 마지막 장면만은 아이폰으로 찍었다. 매체에 무심한 관객이 보더라도 즉각 알아챌 수 있도록 화면의 질감과 시야는 확연히 달라진다. 무엇보다 아이폰을 다시 사용한 불가피한 이유는, 디즈니월드의 허가를 받지 않은 촬영이어서 필름 카메라를 반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신의 특별함은, 극중에서 한번도 무너지지 않았던 매직캐슬 모텔과 디즈니 매직 킹덤의 경계를 아이들이 처음으로 뛰어넘는 광경이라는 데에 있다. 관광객을 직통으로 실어 나르는 헬기는 무니의 동네를 스치지도 않으며, 엄마 핼리는 하늘의 그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끝내 붙잡혀 돌아오고야 말 아이들의 질주를 엔딩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디즈니월드 장면은 무책임한 엔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선행한 100여분을 주시한 관객이라면, 그해 여름 이후 핼리와 무니의 행로를 예고하는 것은 다른 프로젝트의 영역임도 직감할 것이다. 사후적인 정당화일 수 있지만, 숀 베이커 감독은 “이때까지 영화가 아이들의 현실이라면, 라스트신은 아이들의 머릿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고 말한다. 알렉시스 사베 촬영감독은- 아이폰6S 플러스의 롤링 셔터 기능을 사용했다고 인터뷰는 전한다- <탠저린>과 대조되는 덜컹이는 화면을 티나게 구현했다. 클로즈업도 시점숏도 거의 없는 이 영화는, 촬영기를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렌즈를 여섯살의 키 높이로 대뜸 낮춤으로써 인물의 주관적 시점을 표현한 셈이다. 돌아보면 과연 그때까지 무니와 친구들은 디즈니월드에 발을 들이지 못하지만, 매직 킹덤의 공기를 숨쉬며 논다. 유령 하우스 대신 건설이 중단된 콘도에서 위험천만한 놀이를 즐기고, 사파리 대신 국도변의 소떼를 구경한다. 심지어 놀이동산 입구에서 자유이용권 팔찌를 팔기도 한다. 그처럼 의식 안에서만 존재했던 마법의 왕국으로 무니와 젠시가 뛰어들어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통쾌한 해방감을 잠시 맛본다. 감독의 전작 <스타렛>에는 주인공이 계획하는 파리 여행이, <탠저린>에는 알렉산드라가 꾸는 가수의 꿈이 비슷한 자리에 있었다. 이것은 영국의 켄 로치, 마이크 리의 영화가 결코 보여주지 않는 무지개다. 동시에 우리는 무니와 젠시를 따라가지도 돌아서지도 못하고 멈춘다. 그곳은 관리인 바비 아저씨와 감독 숀 베이커의 자리이기도 하다. 좋아요 조찬 회동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는 모든 면에서 지극히 시의적절한 할리우드 리버럴 드라마이자, 이미지와 움직임을 다루는 달인의 쇼케이스이며 메릴 스트립과 톰 행크스라는 두 거물의 본질을 실어나르는 최상의 비이클이기까지 하다. 세 번째를 확인시키는 장면은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와 새로운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이 극중 최초로 마주앉는 간단한 아침 미팅 신만으로도 관객은 마음 놓고 기대치를 높일 수 있다. 두 인물은 선의의 동료이지만 편집과 경영의 입장을 각기 대변하는 맞수이기도 하다. 원칙주의자 벤은, 캐서린이 장사꾼 사주가 아님은 알지만, 연성 기사에 관한 캐서린의 작은 의견도 딱 잘라 거절한다. 여기서 벤은 방어적이고 캐서린은 치고 들어갈 만큼 공격적이지 않다. 체념에 익숙한 캐서린의 예의바른 상냥함은 그녀의 단단한 심지를 가린다. 대화는 군데군데 오디오를 겹치며 마디 없이 흐른다. 슬쩍슬쩍 손등을 스치다 이뤄지는 악수 같다. 겉보기엔 톰 행크스가 주도하는 장면이나, 기실 행크스는 그에게 친숙한 인물형을 가볍게 연기하며 메릴 스트립의 새로운 시도에 공간을 내주는 중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의 ‘아타리 2600’에 대해

아타리와 스필버그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게 될 국내 관객에게 게임기 ‘아타리’는 추억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금 우리는 세가와 닌텐도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운좋게도 어린 시절에 아타리를 경험했던 나는 까만 보디에 까만 팩을 꽂고서 거대한 어댑터를 꽂아둘 트랜스를 사러 전파상을 찾아다녔다. 지금도 아타리를 구할 수는 있다. 뉴욕 맨해튼과 퀸스 전역에 있는 레트로 게임숍에서 아타리 게임들을 팔고 있다. 얼마 전 이스트 빌리지의 한 숍에서 우연히 아타리의 게임 를 보게 되었는데 쇼케이스에 고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기가 찼던 기억도 난다. 스티븐 스필버그에게는 가 자신의 인생을 대표하는 영화겠지만 게임 는 아타리 게임기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게임 기업 아타리는 ‘Innovative Leisure’ , 즉 ‘창의적인 놀이’라는 캐치프 레이즈를 내건 수장 놀런 부슈널에 의해 탄생됐다. 아타리의 어원은 적을 포위하고 자기 진영을 넓힌다는 의미의 바둑 용어로 몇년 후 아타리가 맞이할 운명적 복선이기도 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 묘사되는 IOI의 수장 놀런 소렌토의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놀런 부슈널은 파트너 테드 데브니와 탁구게임인 아케이드판 <퐁>(1972)을 만들어 떼돈을 벌었다. 가정용으로 발매했던 <퐁>은 40개가 넘는 회사가 모방했고 결과적으로 미국 전역에 수백만대가 팔렸다. 당시 부슈널은 가정에서도 <퐁>을 할 수 있고, 또 소프트웨어까지도 바꿔서 플레이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롬 카트리지 게임기 ‘아타리 2600’을 만들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금난에 시달리자 그는 <퐁>의 히트를 기회 삼아 당시 아타리를 워너커뮤니케이션의 매니 제라드에게 2800만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1977년 9월 11일, 결국 세상에 나타난 아타리 2600(통칭 Atari VCS)은 모든걸 바꿔놓았다. 당시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살기 좋은 환경에 적마저도 없는 테라포밍 행성 같았다. 시장이랄 것도 없이 시도하는 모든 것이 역사가 될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아타리 2600은 시장을 완전히 독점했고, 막강한 그래픽과 사운드는 몰입도를 높여줬다. 사람들은 조이스틱을 들고 텔레비전 화면에 개입할 수 있었고, 컴퓨터라는 게 뭔지 비로소 막연하게 알아가기 시작했다. 아타리는 넘버링을 바꿔서 후기 모델을 출시했는데 후속 모델인 2700의 경우, 무선 컨트롤러를 도입할 예정이었다. 당시의 기술 수준을 감안하면 대단히 혁신적인 행보였다. 부슈널은 출시된 지 불과 1년 만에 워너와의 의견 차이로 1978년에 아타리사를 떠난다. 그는 향후 5년간 아타리와 겹치는 시장 업무를 중단해야 했다. 구글이나 애플 이전에 아타리는 꿈의 직장이었다. 일과 파티의 구분 없이 매일 법인카드로 술과 마약을 즐기던 직원들이 <템페스트> <아스트로이드> <센티피드> <건틀렛> 같은 걸작 게임들을 뽑아냈다. 부슈널의 고용방법은 간단했다. 똑똑한 사람들을 파티에 데려오는 것. 놀면서 일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이들은 기술적이고 창의적인 엔지니어로 성장했다. 게임 개발자 하워드 스콧 워쇼는 1982년 5월에 <야르의 복수>를 성공시켰던 인물로 아타리에서도 에이스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가 1982년 6월 박스오피스에서 대히트를 치고 있을 때 스필버그의 천재성에 매료된 워너사의 스티브 로스는 스필버그와 유니버설사로부터 게임 판권을 따냈다. 이전에 <레이더스>를 통해 아타리와 게임 플랫폼에서 단맛을 본 적 있던 스필버그는 당시 하워드 스콧 워쇼를 개발자로 지명했다. 하워드 스콧 워쇼는 즉시 스필버그 앞에서 게임 브리핑을 했다. 영화의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신선하고 혁신적인 게임으로 감동을 주자고 생각했던 그에게 스필버그는 게임을 그저 <팩맨>처럼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 조각 먹다 남은 피자 모양을 보고 만든 캐릭터에서 출발한 <팩맨>은 성공의 대명사였다. 당시 스필버그의 제안으로 유추해보건대 그는 게임을 또 다른 창작의 영역이 아니라 거대한 판권 시장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비디오게임의 대목인 크리스마스 시즌까지 불과 5주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게임 출시를 너무 급하게 추진한 것이었다. 오리지널 아타리 게임 개발은 보통 5~6개월이 소요되지만 그는 단 5주 만에 완성된 게임을 스필버그에게 보냈다. 스필버그의 승인이 떨어지면 그 즉시 발매에 돌입할 수 있었다. 스필버그가 1983년에한 방송국과 나눈 인터뷰에서 하워드 스콧 워쇼를 미치광이 천재라고 묘사하며 “게임은 어려웠지만 동시에 재미있었다. 내가 만든 영화 기반이니까 당연히 만족한다”라고 말한 적 있는데 스콧 워쇼는 원작자의 만족에 안이하게 대처했다. 그 흔한 베타 테스트도 없이 바로 출시를 결정해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 아타리 제국은 멸망했다. 창업한 지 불과 3년 반밖에 지나지 않은 때에 벌어진 일이었다. 1982년, 영화 를 싫어하는 사람을 지구상에서 찾기 어려웠던 그때,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아이들 대부분은 게임을 선물로 받았다. 하지만 아타리 게임 는 너무 어렵고 난해했다. 악질적인 아타리의 퍼블리싱도 문제를 더 키웠다. 소위 말하는 끼워팔기에 소매점들로 하여금 1년치 재고를 미리 주문하라고 선주문 압박을 가했다. 그 후 1년치 게임 재고 400만개가 아타리 창고를 덮쳤다. 아타리는 물론이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미국 비디오 게임 시장 전체의 빙하기가 시작됐다. 트럭 몇십대분의 악성 재고 게임들이 엘라모고도 사막의 한 매립지에 파묻혔다. 아타리의 귀환 사건 이후 게임산업을 무너뜨린 주범으로 몰린 하워드 스콧 위쇼에게 고작 8킬로바이트의 코드로 10억달러짜리 산업을 파괴할 힘이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본인은 그 평가가 완전히 정당하지는 않았다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술회한다. 그리고 파묻은 게임은 도시전설처럼 부풀려져 퍼져나갔다. 2013년, 전세계 게이머들은 이 진실을 목격했다. 뉴멕시코 환경국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파묻힌 게임에 대한 진실 공개를 거부하고 있었으나, 캐나다 엔터회사 퓨얼 인더스트리사에 반년간의 발굴 및 다큐멘터리 제작 권한을 일임하면서 진실이 알려졌다. 발굴 현장에는 수많은 게이머들과 개발자인 하워드 스콧 워쇼, <레디 플레이어 원>의 원작자인 어니스트 클라인까지 함께 했다(그는 이 현장에 원작에서처럼 들로리안을 타고 나타났다). 실제로 매설된 게임의 양은 72만8천개였다는데 발굴된 양은 1300개였다. 아타리와 게임 와 관련해 어떤 누구에게서도 스필버그 책임론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역사상 최악의 게임을 언급할 때면 언제나 스필버그의 영화 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커버가 등장했다. 스필버그 자신도 이를 결코 모를 리 없었을 거다. 어쩌면 게임기 ‘'아타리 2600’이 <레디 플레이어 원>의 결정적 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스필버그만의 속죄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스필버그와 이스터에그 또한 주인공 웨이드의 마지막 미션으로 주어지는 게임 아타리 2600의 <어드벤처>는 1979년에 발매된 세계 최초의 액션 어드벤처 게임이자, 최초의 이스터에그 게임이다. 당시 아타리에서는 단 한명의 게임 개발자가 아이디어를 내고 코딩과 그래픽, 효과음까지 만든 다음 자녀들과 테스트해본 뒤에 발매 수순을 밟는 1인 제작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게임 제작자의 이름을 게임 속에서 볼 수 없도록 하는 내부방침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개발자가 게임 속에 비밀 방을 만들어두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세로로 새겨넣었던 것이다(이 최초의 기록은 얼마 전에 깨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사장이자 아케이드 게임 마니아인 에드 프라이가 1977년에 출시된 아타리의 <스타십1>에서 이스터에그를 발견했다). 이스터에그는 원작과 영화에서 개발자가 남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열쇠로 묘사된다. 여담이지만, 1980년대의 닌텐도 팬이라면 닌텐도 캐릭터가 영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점에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닌텐도나 세가의 콘솔로 게임 인생을 시작한 이들이 많을 테니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스필버그가 1980년대 중반부터 일어난 일본발 게임 혁명의 주역인 닌텐도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다소 타이트한 닌텐도의 라이선스 관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에 동키콩 대신 킹콩과 매시업한 다음 ‘콩’이라는 이름으로 착시를 줬다고 짐작해본다. 영화에서 첫 미션을 수행하는 장면에서 스테이지 아래로 녹색 프레임이 펼쳐지는 장면, 참가자들을 부비트랩으로 방해하는 기믹 역시 사실상 게임 <동키콩>에 대한 묘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오아시스의 설계자 할리데이가 유년기를 보낸 방바닥에는 <닌텐도 파워>로 짐작되는 잡지가 펼쳐져 있다. 묘하게 포커스는 나가 있지만 노란색과 빨간색으로 쓰인 제목에서 잡지 <닌텐도 파워>가 떠오르지 않을 게이머는 없을 것이다. <닌텐도 파워>는 당시 잡지 뒤편에 이스터에그를 수록해 큰 인기를 얻었으니까 말이다. 평소 스티븐 스필버그의 행보가 달갑지는 않았다. 소년, 소녀들이 활약하는 모험 활극의 마이스터임에도 그는 마치 유대인 감독의 의무를 다하려는 듯 역사의 한복판으로 가버린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레디 플레이어 원>이 너무 늦게 도착한, 우리 세대의 정서를 쥐어짜는 상업적 크로스오버, 무책임한 매시업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스필버그는 2018년의 방식으로 아타리를 소환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국적과 시대를 불문하고 총망라하면서 자신 역시 그것들을 지금도 충분히 기억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영화를 보며 한때 우리가 잃어버리고 지냈던 감정을 따뜻하게 보상해준 느낌이 들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뒷자리의 남성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들이 알아본 캐릭터들을 외쳐대는 소리를 들으며, 그 순간 스필버그가 우리에게 남긴 이스터에그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의 이스터에그 찾기에 얼른 동참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