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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모털 엔진

*<카우보이의 노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가버나움>은 검거된 소년 자인의 나이를 치아로 추정하는 광경으로 시작한다. 12살로 짐작되는 소년은 또래보다 체구가 작다. 반면 20대처럼 행동하고 40대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자인은 욕을 들으면 곧장 욕으로 맞받아치고 연명하기 위해 좀도둑질을 망설이지 않는다. 조그만 소년은 크고 힘센 어른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항상 눈을 위로 치뜨고 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가 좀더 거친 영혼을 가졌다면 이런 모습일까? 베이루트 거리에서 캐스팅된 비전문 배우 자인 알 라피아는 나아가 할리우드 청춘스타 같은 카리스마로 관객을 당황스럽게 한다. 게다가 <가버나움>에서 미성년 배우의 놀라운 연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자인이 돌보게 되는, 걸음마도 못 뗀 아기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는 사상 최연소 명배우로 손색이 없다. 01/04 코언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와 함께, 미뤘던 넷플릭스 구독을 결정하도록 나를 떠민 지렛대였다. 아트하우스 스타 감독의 프로젝트이면서 극장 장편영화로서 투자받을 만한 상품성이 애매한 영화를 넷플릭스가 앞으로도 중요한 유인으로 삼을 거라는 징표로 보여서다. 무려 25년 전부터 코언 형제의 서랍 속에 잠들어 있었다는 <카우보이의 노래>는 6편의 독립적- 그러나 주제로 연결된- 이야기의 모음으로, 넷플릭스라는 신규 플랫폼을 만나 마침내 현실화됐다. <카우보이의 노래>는 필모그래피의 양과 질 그리고 일관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코언 형제가 반복적으로 회귀한 주제와 형식 패턴을 일별할 수 있는 앤솔러지다. 여섯 챕터는 서부극의 울타리 안에서 코미디, 뮤지컬, 범죄, 멜로드라마, 귀신영화 등의 하위 장르를 끌어들인다. TV 연작은 고려한 적이 없고 단일한 영화의 여섯 챕터로 구상했다는 것이 코언 형제의 변이지만, 결과적으로 <카우보이의 노래>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상에서 보기에 적합하다. 단편소설집의 형식을 취한 이 영화는 섹션의 처음과 끝을 각각 책의 일러스트와 첫 문단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로 열고 닫는데 리모컨이나 마우스로 화면을 멈추면 영화에 다른 뉘앙스를 더하는 문장들을 읽을 수 있다. 여섯 에피소드 사이의 연관을 더듬으려는 팬들에게도 리모컨은 유용하다. 또한 코언 형제 최초로 디지털 촬영을 택한 <카우보이의 노래>는 CG를 비롯한 시각효과가 적극적으로 구사된 작품이기도 하다. 01/05 <카우보이의 노래>가 제목을 따온 첫 번째 에피소드 ‘카우보이의 노래’는 존 포드 서부극의 풍경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러나 이내 노래하는 총잡이 버스터 스크럭스(팀 블레이크 넬슨)의 기타 안에서 내다보는 특이한 시점숏이 우리가 코언 영화를 보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여섯 단편을 관통하는 주제, 죽음의 불가피성을 제시하는 1화의 톤은 만화적이다. 바에 들어선 버스터가 상의를 털면 피어오른 먼지가 벗은 외투처럼 그의 실루엣을 그리고, 죽은 자는 귀여운 날개를 파닥이며 하프를 안고 승천한다. 노래하는 냉혈한 총잡이 버스터는 말하자면, 웃는 관상의 안톤 쉬거(<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자 만화 <루니 툰>에서의 벅스 버니다. 그러나 메시지는 선명하다. 당신이 제아무리 (심지어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거는 화자인) 버스터 스크럭스라고 해도, 내일은 더 손이 빠르고 노래 솜씨도 우월한 총잡이가 지평선 너머에서 찾아와 반드시 당신을 대체할 것이다. 에피소드2 ‘알고도네스 근방’의 어설픈 은행털이(제임스 프랭코)는 본인이 지은 죄에 내려진 형벌은 피하지만 결국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된다. 코언의 전작 중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2001)의 이발사 에드(빌리 밥 손튼)와 비슷한 운명이다. 이 세계에서 죄와 벌의 인과는 뒤죽박죽이다. 각종 냄비로 무장한 늙은 은행원이 강도의 총탄을 튕겨내며 “팬 숏!”이라고 조롱하는 장면이 있는데, 직전에 도둑과 그의 말을 오가는 숏이 마침 짧은 패닝숏이다. ‘알고도네스 근방’의 짤막한 스케치 다음에는 장중하고 암울한 3화 ‘밥줄’이 이어진다. 유랑 흥행사(리암 니슨)와 팔다리 없는 아티스트(해리 멜링)는 철저한 공생 관계다. 흥행사는 아티스트의 재주를 팔아 돈을 버는 대신 그를 먹이고 입히고 용변보는 걸 거든다. 그러나 수입은 줄어만 가고 한 마을에서 재주 피우는 닭을 발견한 흥행사는 어느 쪽이 싸게 먹히는지 계산하고, 결론을 냉정히 실천한다. ‘밥줄’은 <인사이드 르윈>(2013)의 대사, “돈이 될 것 같지는 않구먼”으로 돌아간다. 공교롭게도 코언 형제는 이 에피소드에서 극히 필수적인 숏과 대사만으로 얼마나 경제적인 필름메이커인지 입증한다. 코언이 그리는 웨스턴의 시공, 미국의 초창기의 모든 인간관계는 투명하게 드러나는 거래다. 교환의 양변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에피소드4 ‘황금빛 협곡’은 늙은 금광 개척자(톰 웨이츠)의 이야기다. 디즈니스러운 CG로 그린 야생동물들이 뛰어노는 처녀지에 들어온 그는 여기저기를 흉하게 파헤치며 금을 찾고 마침내 성공한다. 하지만 이내 불로소득을 원하는 총잡이에게 습격당한다. 금을 발견해도 여생이 얼마일까 의심되는 노인에게, 금은 재산이기보다 삶을 잡아당기는 동력원으로 보인다. 금광은 혈혈단신 개척자의 유일한 대화 상대다. 총잡이를 물리친 노인은 손에 넣은 황금보다 불한당을 이겼다는 자부심으로 기뻐하는 듯하다. 총잡이에 비해 노인은 의롭지만 ‘황금빛 계곡’의 결말은 두 사람 모두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별 차이 없는 얼룩이었다고 말한다. 러닝타임이 가장 긴 에피소드5인 ‘겁먹은 처녀’는 장편으로 확장할 만한 에피소드다. 앨리스(조이 카잔)는 오리건으로 이주하는 도중 오빠를 여의고, 마차 행렬을 감독하는 진중한 카우보이 빌리(빌 헥)에게서 동반자를 발견한다. 솔직하고 공정한 두 남녀는 말하자면 이상적인 인간이다. 물론 결혼에서도 개척 서부에서 인간관계가 거래라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앨리스와 빌리는 기혼 남녀에게 두배로 지급되는 정부보조금을 언급하고, 결혼에 영향받을 동업자와 고용인의 입장을 상의한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라는 부탁을 교환하며 이어지는 구애의 과정은 담백하되 코언 영화에서 본 적 없이 로맨틱하다. 어쨌거나 에피소드5의 선하고 존경스러운 인물들도 죽음의 임의로운 쇠스랑을 면할 수 없다. 방황과 역경을 극복했다고 믿는 순간 회오리바람이 밀어닥친다. <시리어스 맨>(2009)의 결말처럼. 마지막 에피소드 ‘죽을 자만 남으리라’는 주제의 직설적 요약으로, 맺음말이 흔히 그렇듯 주로 야외가 배경인 이전 에피소드들과 달리 창밖으로 CG 하늘만 보이는 마차 내부에서 촬영된 에피소드로 아직 죽음을 인식 못하는 망자들의 여정이다. 세명의 승객은 맞은편의 두 사람이 저승의 안내자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어떤 일이 있어도 고삐를 늦추지 않는 얼굴 없는 마부는, 괴테의 시 <마왕>에서 아픈 자식을 안고 폭풍 속을 달리는 아버지와 닮았다. “살았거나 죽었거나”라는 1화의 지명수배 전단 문구가 반복되고 버스터의 노래로 시작한 영화는 저승 가이드의 노래로 끝난다. 인물에게 냉혹하고, 죄와 벌, 덕과 보상의 자동적 연관을 누차 부인하는 <카우보이의 노래>는, 코언 형제를 냉랭한 염세주의자로 여기는 관객에게 새로운 물증이 될 법하다. 죽음이 도처에서 기습하고, 공정한 법은 오직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개척기 서부는, 코언 형제의 세계관과 라이트 모티브를 형상화하는 최적의 무대다. <카우보이의 노래>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은 코언 형제는 희망적인 영화를 만드는 대신 버스터의 대사로 대꾸한다. “내가 인간혐오자라고요? 아닙니다. 인간들은 성가시고 무례하고 속임수를 부리지만 그보다 나은 것을 기대하는 바보들이나 실망하지, 나는 다 인간 본성이라고 생각해요.”(‘카우보이의 노래’ 중) “불확실성(uncertainty)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 유용한 미덕입니다. 당위는 편하기 위해서 만드는 거예요.”(‘겁먹은 처녀’ 중)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망자들을 데려가는 사자는, 인간은 이야기에 혹하고 그러는 사이에 죽음이 잡아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사자는 삶의 무의미함과 스토리텔링의 무용함을 조롱하는 걸까? 반대로, 불가피한 사멸을 불공평한 이유로 공평하게 맞을 인간은 이야기를 그칠 수 없고 어쩌면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좋아요 더들리 코언 형제의 단골 배우가 포함된 <카우보이의 노래>를 통틀어 제일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는 에피소드3 ‘밥줄’에서 팔다리가 없는 유랑 아티스트를 연기하는 해리 멜링이다. 멜링은 소년 시절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주인공의 밉상 이종사촌 더들리 더즐리로 얼굴을 알렸고 이후 정통 연극배우로 성장했다. 아티스트는 천막무대에서 의자에 비끄러매진 상태로 오직 얼굴과 목소리만으로, 셰익스피어와 퍼시 셸리의 문장, 링컨의 연설을 쩌렁쩌렁 독백한다. 그의 연기는 몇명 안 되는 청중 너머의 광야를 호령한다. 언어의 폭포를 쏟아내는 무대 위와 대조적으로 무대 밖의 그에게 코언 형제는 대사 한마디도 주지 않았다. 지체가 부자유한 그의 목숨줄인 흥행사(리암 니슨)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아티스트는 오로지 눈과 고개의 각도만으로 경계와 힐문, 항의와 체념을 표현한다.

<그대 이름은 장미> 하연수 - 빛나는 처음들

“모든 경험이 처음이었다.” <그대 이름은 장미>에서 젊은 장미 역할을 맡은 하연수는 신인배우라고 부르기에는 데뷔 연차도, 참여한 TV 드라마 작품 수도 많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데뷔작 <연애의 온도> 이후 두 번째로 출연한 작품이다. 2016년에 작업했지만 여러 사정상 개봉이 밀려 3년 만에 관객과 만난 셈이라 홍보 스케줄도 처음이라고. 사실상 신인배우 하연수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인 동시에 배우에게는 뒤늦게 다시 데뷔하는 기분을 안겨줄 듯 하다. 출연 당시에만 하더라도 절실한 마음에 그저 “감사한 기회였다”는 그녀는 어느덧 연기와 연기 사이, 배우를 빼도 인간 유연수(본명)가 오롯이 남도록 일과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30살 배우가 됐다. -<연애의 온도> 이후 두 번째 출연작으로 2016년에 작업했지만 이제야 개봉했다. =얼마 전에 가족 시사회를 열었는데 엄청 떨렸다. (웃음) 다들 나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전해준 에너지가 지금도 느껴진다. 행복하다. -데뷔작 <연애의 온도> 이후 첫 주연을 맡은 tvN 드라마 <몬스타>가 음악 드라마였다. 가수의 꿈을 키워나가던 젊은 시절의 장미를 맡게 된 데는 춤과 노래 실력이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오디션 때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사실 춤도 거의 각목이 부러지는 느낌이 드는 수준이었는데 그나마 노력해서 촬영 때는 흔들흔들하는 정도는 됐다. 어느 날 촬영 중간에 스탭들과 노래방에 가서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을 불렀는데 감독님이 들어보더니 “이 정도면 됐다”고 하시더라. 감독님은 ‘세또래’라는 1980년대 여성 3인조 그룹의 무대 분위기를 원하셨는데 허스키한 목소리지만 최대한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를 내보려고 했다. -tvN 드라마 <감자별 2013QR3>에서 억척스럽고 생활력 강한 개구리 공주 나진아 역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후 본격적인 첫 영화 주연작이다 보니, 장미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기대하는 바도 있었을 것 같다. =당시 드라마 촬영장만 오가다가 영화 프리 프로덕션 과정은 처음이었다. 스탭들과 술 마시면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너무 고마웠고 놓칠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꿈과 현실을 모두 좇는 장미는 배우로서 거쳐야 할 관문 같았다. -장미를 연기하는 건 엄마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했을 것 같다. =아이를 위해서 꿈보다는 현실을 택하는 장미의 모습을 연기하는데 엄마 생각이 정말 많이 났다. 극중 장미와 딸 현아가 싸우는 장면은 거의 내가 사춘기 시절에 겪었던 모습 그대로다. 돌이켜보면 엄마 말을 매번 잘 듣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장미를 비롯해 등장인물 대부분이 시대 재현을 위해 외형적으로 많은 걸 꾸며야 했다. =두 종류의 가발을 썼다. 최우식, 이원근 배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더 잘 어울렸다. (웃음) 처음 입어보는 나팔바지 의상도 생각보다 잘 소화할 수 있었다. -장미를 연기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프거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밤에 잃어버린 현아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장면. 출산 연기를 할 때도 그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딸을 잃어버렸을 때의 심정을 대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나. 힘들었지만 가슴에 많이 남고 지금 하라고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기 활동 외에 사진도 찍고 직접 책도 출간했다. 두 번째 사진집을 구상 중이라고.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필름카메라의 매력에 빠져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집을 출간할 때는 구성부터 디자인, 인쇄소 감리까지 세세하게 직접 해봤다. 내가 없어져도 책과 사진은 계속 남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작업한다. 그리고 촬영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카메라 렌즈 사이즈부터 모든 용어를 알아들으니 카메라 앞에서 뭘 할지 잘 알 수 있다. -최근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 경험 등을 바탕으로 뭔가 만들어볼 생각인가. =직접 출연한다기보다 그림이나 사진 작업으로 소통하면 어떨까 한다. 영화 2016 <그대 이름은 장미> 2012 <연애의 온도> TV 2018 <리치맨> 2017 <오! 반지하 여신들이여> 2014 <전설의 마녀> 2013 <감자별 2013QR3> 2013 <몬스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의 공동 감독 JR을 첫 서울 전시회에서 만나다

갤러리보다 스크린이 친숙한 사람들은, 제이알(JR)을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생애 처음 선택한 공동 감독으로 소개받았다. 사진 이미지를 공공 공간에 설치하는 도시 아티스트이자 거리 아티스트인 JR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동안 파리의 옥상과 외벽, 지하철에 그래피티를 남기는 작업으로 10대 중반에 경력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경계를 이루는 긴 벽에 같은 직업을 가진 양국 시민의 초상 사진을 둘씩 짝지어 붙였고, 2008년 시작한 ‘여자들이 영웅이다’(Women are Heroes)프로젝트에서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끌어안고 관대하게 세상을 지탱하는 여성의 얼굴을 브라질 촌락과 대양을 건너는 배에 입혔다. 비일상적 크기로 확대돼 노동과 삶의 공간 전면을 점령한 보통 사람들의 클로즈업 흑백사진은 “여기 인간이 있다”고 웅변했고, 지역사회의 맥락과 만나 풍성한 메시지를 생성했다. 숨은 얼굴을 전면(façade)에 드러냄으로써 이미지의 위계를 뒤엎는 JR의 작업은, 세계 곳곳의 자원자들이 카메라를 든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본인이 찍은 사진에 한정하지 않는 JR의 설치 작업으로는 아카이브 이미지를 역사적 구조물에 얹은 ‘언프레임드’(2009~) 프로젝트도 있다. JR은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검역을 받고 수용됐던 엘리스섬의 버려진 병원 내벽에 당시 기록사진을 설치해 잊힌 건국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엘리스섬 프로젝트(사진③)는 2015년 로버트 드니로가 출연한 단편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어 2018년에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에 2층 건물 세배 높이의 비계(scaffolding)를 세우고 독일 통일 직전 장벽 위에 올라탄 청년들과 경비병을 찍은 사진을 부착했다. 난민 수용 범위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한 세대 후 독일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장벽을 일깨운 것이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이 개봉하고 반년 만에 JR이 서울을 찾은 까닭은, 최근 작업의 청사진과 제작 과정을 공개한 ‘Unveiling(베일을 걷다)’(1월17일~3월9일, 갤러리 페로탱 서울)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의 정면을 뒤쪽에 자리한 시계동의 전면 이미지로 덮어 특정 포인트에 서면 피라미드가 사라지는 환영을 연출한 (2016, 사진④), 미국 데스 밸리 황야에서 보이는 산의 일부를 흑백 이미지 빌보드로 대체한 (2017, 사진⑤) 등의 설계와 결과물 10점이 관람객을 만난다. 촬영과 설치는 JR에게 있어 작품의 첫 두 마디 모티브일 뿐이다. 미술관을 보러 왔지만 셀피를 찍기 위해 정작 대상을 등지는 관광객들을 돌려세우고 싶다는 아이디어로 시작된 루브르 프로젝트는 군중의 휴대폰 카메라 속에서 완성됐다. 한편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의 앨범 《Everything Now!》의 커버로 쓰인 데스 밸리 프로젝트는 스피커를 부착해, 음반에 인쇄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온 팬들과 사막까지 찾아온 팬들의 통화로 음향의 차원을 더했다. 영화로 익숙한 페도라와 검은 안경을 착용하고 매치스틱 맨 같은 실루엣으로 등장한 JR은 노래하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작품 설명이었지만, 아녜스 바르다와 절창의 듀엣을 이루었던 톤은 영락없이 “이리로 와서 함께 놀아요!”라고 꾀는 장난꾸러기의 그것이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당신에게 선글라스를 벗으라고 계속 청하고 결국 성공한다. 프로젝트에 모델로 참여한 사람들도, 당신은 그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데 당신과 눈을 맞추지 못한다는 점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아, 나와 작업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색안경을 쓰지 않은 눈을 본다. 현장을 촬영하는 카메라가 있을 때만 색안경을 쓴다. 지금도 안경 옆으로 내 눈이 보일 것이다. 불운하게도 익명이 되기 위해 선글라스는 필요하다. 가령 멕시코-미국 장벽 작업의 경우 내 얼굴이 알려졌다면 국경을 넘을 때 제재와 방해를 받았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모자와 안경은 내 얼굴을 가리지만 이것을 써야만 사람들은 내가 JR임을 알아본다. 잠복할 때는 색안경을 벗는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공중으로 떠오르는 자세를 자주 취하더라. 이유가 궁금하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 대한 오마주인가? (웃음) =오마주는 아니고 점프할 수 있는 한 뛰어보려고 한다. 언젠가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때가 올 테니까. 카메라와의 놀이이기도 하고 보는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 그다지 깊은 생각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다. -당신의 대다수 작품은 지역성과 불가분의 관계(site-specific)에 있다. 이번에 서울에서 전시하는 루브르 미술관 피라미드, 데스 밸리 프로젝트의 경우는 심지어 특정 시점에서 보아야만 의도한 효과를 낸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로서 실내 갤러리에서 관람객을 만나고 전시하는 활동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브랜드나 기업의 협찬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킨다. 10대부터 거리에서 시작한 내 작업의 중심 매체는 사진이었다. 설치된 작품 사진을, 갤러리를 통해 컬렉터들에게 판매한 수익이 활동을 지속하는 제작비의 유일한 출처다. 그러므로 내게 거리의 작업과 갤러리 전시는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 -도시의 외벽이 당신의 전시장이고 캔버스다. 벽에 관해서라면 세계 최고의 전문가다. 서울에서 고작 이틀을 보냈지만 거리의 벽과 도시 전경에서 받은 인상이 있는지. =건물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먼저다. 한 도시 혹은 구역 전체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와 흐름이 중요하다. 멕시코-미국 국경에 설치한 <키키토>(2017, 사진①)의 모델은 장벽 옆 언덕에 사는 어린아이였다. 만약 아이의 사진이 서울 한복판에 설치됐다면 모델도 사진의 의미도 달랐을 것이다. 서울을 다시 방문한다면 건축물보다 사람들의 흐름부터 주의 깊게 보고 싶다. 내 작품의 깊이감은 조형적 밀도와 층위보다 작품과 사람들이 마주쳐 만드는 우연한 사건들에 의해 생긴다. 예술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죠 -작품의 다수가 거대한 규모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선을 피할 수 없다. 스케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각 프로젝트의 적절한 사이즈는 어떻게 결정하는가. =작품의 크기는 맥락에 따라 완전히 상대적이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는 건물들이 아담해서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사무실의 벽만 한 사진도 지나치게 커 보인다. 반면 서울이나 파리, 뉴욕에 설치한다면 광고 이미지와 경쟁해서 눈에 띄어야 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는 철거를 앞둔 광산촌의 여성 재닌이 집 전면에 붙은 본인의 커다란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울컥하는 광경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신과 바르다 감독은, 거대한 초상 이미지를 통해 노동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합당한 위엄과 숭고함을 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한 해석은 아니다. 우리의 의도는 공적 공간에 놀라움을 창조하는 것이지만 그 놀라움은 인간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다. 광산촌의 재닌에게는 자신의 이야기와, 강제 이사 명령과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현실의 자신보다 큰 존재가 되려는 그녀의 소망을 지지한다고 이해했다. 그래서 집으로 초대해 가족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작업을 통해 그와 연결되고 보답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정유공장의 설치작품을 본 출근길 직원이 “예술은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겠죠. 맞죠?”라고 한 말에 동의하는 셈인가. =매우 훌륭한 예술의 정의였다. 게다가 그는 확신하지도 않았다. “맞죠?”라고 질문했다. -1인 초상 사진의 경우 28mm 렌즈를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활동 초기 소유한 유일한 렌즈여서 그렇게 된 것인가, 아니면 28mm로 찍은 얼굴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있나. =초기에 내가 가진 유일한 렌즈이기도 했고 나를 피사체에게 무척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들어준다. 나는 정규 미술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작업을 해나가는 동시에 방법론을 만들었다. -그럼 지금은 다양한 렌즈를 목적에 맞게 쓰나. =그렇다. 여전히 인물 사진에서는 주로 단초점렌즈를 쓰지만 벽에 대형 작업을 할 때면 멀리 떨어져서 사람을 찍어야 한다. 근거리에서 찍으면 대상의 왜곡이 생겨서 벽에 설치된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야를 교란하게 되니까. 그래서 카메라는 멀리 설치하고 리모컨과 모니터용 아이패드를 쓴다. 그렇게 피사체 가까이에서 커뮤니케이션 하면 원하는 포즈를 얻어내면서도 실루엣은 왜곡되지 않는다. -흑백은 현대영화에서 비현실, 추상, 판타지를 의미하곤 한다. 블랙 앤드 화이트를 선택하고 고집하는 미학적 이유가 있나. =초기에는 돈이 없어서 흑백을 택했다. 거리에 붙일 사진을 컬러로 인화하려면 흑백보다 비쌌다. 인화된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종이에 복사한 흑백 이미지도 썼다. 경제적 이유가 먼저였고 나중에는 거리에 범람하는 컬러 광고 이미지와 차별화하는 데 흑백이 유효했다. 미학적 이유가 출발점이 아니었지만 작품이 축적되면서 스타일이 되었다. -초기 스트리트 아트 활동에서는 서명을 남겼다. 지금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작가의 이름을 모른 채 스트리트 아트를 본다. 사람들이 모두 내 인스타그램을 구독하는 건 아니다. 한편 작품에 호기심이 생겼다면 인터넷에 키워드와 주소를 넣어 아티스트를 검색해볼 수 있다. (맞은편 벽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의 작가를 나는 모르지만 원하면 물어볼 수 있다. 광고는 반대다. 무엇을 사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낱낱이 분명히 지시하며 어떤 선택의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 예술은 작품과의 거리를 포함해 우리에게 선택권을 준다. 나 역시 그 점을 존중하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셀카를 찍는다. 어떤 사람들은 셀카 문화를 제일 매끈한 모습만 전시하는 자기도취적 행태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당신이라면 디지털 시대의 자화상 사진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을 법하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찍는 동안 우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법이기도 하고, “내가 이곳에 존재했다”고 보여주며 애정의 화답을 기다리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아녜스는 원래 셀피(스마트폰 등으로 찍은 자신의 사진)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르게 이해하게 됐다. 노 브랜드, 노 로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등장하는 대형 프린터가 장착된 포토부스 밴은 언제부터 이용했는지 궁금하다. 원래 있던 기계를 튜닝한 것인지 당신의 발명인지. 포토부스 밴이 당신의 작품에 더해준 바는 무엇인가. =2011년 TED에서 상을 받고 상금으로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세계 각지에서 인물 사진의 옥외 설치로 메시지를 표현한 작업)를 시작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포토부스는 본래 미술관 안에 설치돼 있던 시설인데, 트럭에 장착한 다음 그 힘을 깨달았다. 미술관 포토부스의 이용자들은 사진은 찍지만 남이 보도록 전시하지는 않는다. 트럭을 쓰면 인화된 사진을 건네며 어디에 쓸 건지 묻는다. 그냥 집에 가져간다는 사람들에게 벽에 붙이면 더 재미있지 않겠냐고 제안하며 풀과 붓을 주면 많은 사람들이 동조한다. 아녜스는 이 차에 반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 쓴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나라와 문화에 따라 트럭 옆구리에서 출력되는 본인의 대형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를 것 같은데. =만국 공통으로 “와우!”다. 나는 마법 트럭이라고 부르는데, 그저 얼굴을 크게 보여줌으로써 얼마나 많은 미소를 창조할 수 있는지 모른다. 지금은 브라질에 1대, 미국에 2대, 유럽에 1대, 일본에 1대의 마법 트럭을 갖고 있다. 일본인들도 즐겁게 반응했을 뿐 아니라 외벽에 많이 붙였다. 한 일본 작가는 지진과 쓰나미 재해를 입은 후쿠시마 지역을 돌며 같은 작업을 했다.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는 나 없이도 확장되고 있다. 이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서 보낸다. 우리 스튜디오는 그들이 보낸 파일을 메일로 받아 무료로 인화한 다음 찍은 사람들에게 돌려보낸다. 사진의 규격은 포스터 크기로 통일했다. 그러나 어떤 참여자는 인화 방법을 찾아 원하는 크기로 출력하고 배너에 인화해 천막으로 쓰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스로 ‘인사이드 아웃’의 일부라고 말한다. 흑백사진이고 특정 브랜드나 단체와 연관되지 않는다는 원칙만 지키면 수용한다. -예전부터 영화에 관심이 깊었나? 당신의 단짝을 제외하고 좋아하는 프랑스 감독이 있다면. =늘 관심은 있었지만 시네마를 잘 알지는 못했다. 처음 나를 시네마와 연결해준 영화는 13살 때 본 마티외 카소비츠의 <증오>다. 나 자신이 영화의 배경인 파리 변두리에서 자란 이유도 있지만 언제나 텔레비전을 통해 보통 컬러영화만 보았던 터라 다른 심도와 영화적 코드를 구사한 흑백 작품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영화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최초로 깨닫게 됐다. <증오>는 오늘날까지도 내 레퍼런스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도시에서만 작업한 당신을 시골로 데려가고 싶었다고 영화에서 말했다. 하지만 이전에도 아시아의 시골에서 작품을 만들지 않았나.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던 시점이어서, 아녜스는 도시에 설치된 내 작품에만 친숙했을 뿐이다. 우린 그저 함께 여행을 떠날 핑계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시력을 잃어가는 아녜스가 무엇을 보는지 이해하고 싶었고 그는 도움을 주는 한쌍의 눈으로 나를 썼다. -당신이 일종의 포커스 풀러였던 셈인가. =맞다. 영화의 사진들은 네개의 손과 네개의 눈이 만들어낸 결과다. 아녜스가 카메라를 잡고, 내가 물고기를 프레임 안에 들어가도록 움직이고 같이 셔터를 누르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시력 상실은 두렵고 슬픈 일인데 당신들은 자연스럽고 밝게 표현했다. =눈은 아녜스에게 작업을 위한 주된 도구지만 이제 때가 온 것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항상 낙천적이고 긍정적 비전을 유지한다. 존경하는 바다. -아녜스 바르다는 전설적 거장 시네아스트로서는 경이로울 만큼 자기중심적 태도가 없다. 그의 정체성은 살면서 만난 사람과 사물들로 이뤄져 있는 것처럼. 그리고 당신에게도 작품에서 자기를 부각시키지 않는 태도가 있다. =직접 그것을 화제로 대화한 적은 없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의 접근법이 비슷함을 느꼈다. 유사성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기뻤고 더 일찍 만나지 못해 안타까웠다. 아녜스 역시 광고와 거리를 두고 타인을 존중하며 독립적으로 작업한다. -아녜스 바르다가 카르티에 재단 갤러리에서 가진 회고전을 구경한 적이 있긴 하다. =나와 만나기 전 일이라 자세히는 알 수 없다. 내 경우는 그처럼 브랜드가 갤러리 이름에 포함된 경우도 극히 조심스럽다.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친화력이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단시간에 친해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설득해낸다. 결과는 같아도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식은 다를 듯한데 비교할 수 있나. =우리 둘 다 타인에게 관심이 많지만 사람들도 예술가를 궁금해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 다가와서 묻고 싶어 한다. 젊은 남자와 나이 든 여성이 짝지어 다니는 점도 흥미로워했다. “할머니랑 손자 사이예요?” “아뇨. 이 사람은 JR이고 내 작업 파트너예요.” “어머, 미안해요.” 이런 식으로 일이 시작되곤 했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에서 찍은 과정이 궁금한 대목이 있다. 루브르 미술관 전시실에서 당신이 아녜스 바르다의 휠체어를 밀고 달리는 시퀀스다. =루브르의 피라미드를 사라지게 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 때 아녜스가 나를 촬영했다. 매주 화요일이 미술관 휴관일인데, 설치 중인 아티스트인 내겐 입장 패스가 있었다. 미술관 직원이 달리지 말라고 했지만 아녜스가 “오, 하지만 내 친구 고다르를 위해 비디오를 꼭 찍고 싶은 걸요? 한번만 뛰게 해줘요”라고 졸랐다. 직원은 어쩔 수 없이 “난 저쪽에 가 있을 테니 찍어요. 그렇지만 조심해요”라며 자리를 떴다. (웃음) -말이 나온 김에, 영화 마지막에 만나지 못한 장 뤽 고다르로부터 그 후로 다른 소식은 없었나. =없었다. 하지만 아녜스가 말하기를 고다르는 늘 시네마를 끝까지 밀어붙이는데 덕분에 우리 영화를 예측 못한 방식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가 우리에게 문을 열어줬더라면 영화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나는 싸운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로서 당신은 작품의 보존을 의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에겐 무엇이 남는가? 작업과정을 항상 사진과 비디오로 남기나. =스케치와 사진이 남는다. 그래서 전시회가 아주 중요하다. 작품을 산 누군가가 이미지를 소유하고 세대를 이어 전해질 테니까. -그렇다면 카피라이트에 관한 입장은 무엇인가. =예컨대 루브르 피라미드 프로젝트가 설치돼 있는 동안 누구든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인화할 수 있다. 내가 파는 것은 직접 서명한 사진뿐이다. 카피라이트는 없는 셈이다. -상업적 영화나 광고의 배경에 당신의 작품이 포함되는 경우는. =소송을 한다. 자동차, 보험회사 등 여러 차례 승소해서 돈도 많이 벌었다. (웃음) 맞다. 우리 변호사는 훌륭하다. 그가 기업에 전화를 걸어 내용증명을 보내겠다고 하면, 그들은 우리에겐 35명의 변호사가 있고 20년은 재판을 끌어갈 돈이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광고 기획단계에서 받은 메일과 우리가 보낸 거절 메일이 있다. 그들이 모르는 척 촬영을 진행한 것이다. 때로 나는 법을 넘어 작품을 설치한다. 그러고는 그 이미지의 불법적 이용에 대해 고소하는 셈이니 패러독스다. -영어권 매체는 몰래 도시의 거리에 이미지를 전시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뱅크시와 비교한다. 그러나 지금은 루브르, <타임>이 당신에게 작품을 의뢰하고 가수 퍼렐 윌리엄스 등 여러 셀러브리티와 공동작업을 한다. 제도권 내부로 흡수되고 길들여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나. =그렇지 않다. 내가 23살 때 뱅크시가 런던의 자기 갤러리에 첫 전시를 하도록 초청했다. 같은 해에 나는 테이트 모던에서도 전시회를 열고 미술관 외벽에 작품을 설치했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몰랐던 스폰서 닛산이 있음을 알고 로고를 떼도록 싸워야 했다. 활동 초기부터 그랬지만 기존 제도권 안팎을 막론하고 작품이 전시되는 프레임을 방어하기 위해 나는 싸운다. 멕시코-미국 국경의 작품도 미국 비자를 빼앗기고 미국 내 스튜디오를 닫을 위험을 감수했다. 하지만 그것은 좋은 공포다. 예술은 회사 경영과 다르다. 더 큰 수익과 고용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창조하고 실패할 준비를 하고 탐색한다. 내 작업이 다치기 쉽다는 위험을 인식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위험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예술가에겐 안전이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이 보여주는 의외의 매력들

“정말 좋아합니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육상을 그만둔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45살의 패밀리 레스토랑 점장에게 돌직구로 고백해버린다. 주변에서 줄줄이 구애하는 또래 소년들은 뒷전이다. 전설적인 달리기 실력만큼이나 거침없는 17살 소녀의 로맨스가 적잖이 걱정스러울 무렵,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순정 멜로를 표방하지만 실은 성장스토리가 목적지임을 영리하게 드러낸다. 일본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동명의 원작 만화를 읽고 보니 그제야 이해가 간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이 여고생을 향한 판타지에 매몰되지 않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몇 가지 미덕을 정리해봤다. 섣불리 꿈을 포기한 청소년이 미래가 없는 어른을 좋아하는 이 난감한 형국을, 영화는 제목처럼 산뜻하고 선명하게 풀어나간다. 난감한 로맨스지만 완급 조절만큼은 확실히 솔직히 인정하자. ‘여고생이 40대 아저씨를 사랑하는 내용’으로 뭉뚱그려 생각하면 뻔하고 후지다는 첫인상을 피하기 힘든 이야기다. 지천에 널린 훈훈한 또래들을 물리치고, 마치 정해진 수순인 양 홀아비를 사랑하는 소녀라니. 그런데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이 로맨스의 난감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고, 오히려 이를 적시함으로써 효과적인 이해의 단서들을 부연해나간다. 아키라(고마쓰 나나)의 소꿉친구는 점장 마사미(오이즈미 요)를 처음 보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완전 아저씨”라고 일축하고, 마사미가 아키라의 친구와 평범하게 대화하는 모습만으로도 누군가는 “무슨 일이에요? 치한이에요?”라고 묻는다. 아키라의 고백을 듣고 걱정스러워진 마사미가 집에서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틀자 대뜸 “45살 식당 종업원이 17살 여고생을 추행했습니다”라는 뉴스가 나와서 기겁하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 꽤 능한 인물인 마사미는 아키라와 무해한 관계가 되기 위해 그녀의 마음을 바꿔보려고 애쓴다. 배우 오이즈미 요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구애를 거절하면서도, 자기 감정에 푹 빠진 소녀의 마음을 다치게 않게 하려는 노력을 섬세히 표현했다. 메가폰은 쓰마부키 사토시가 주연한 코미디영화 <져지!>(2014)로 데뷔한 나가이 아키라 감독이 잡았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2015), <데이이치의 나라>(2017) 등을 거치며 코미디와 서정적인 드라마 양쪽 모두에 재능을 보인 감독이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에서는 아키라가 태풍을 뚫고 독감에 걸린 마사미의 집을 찾아간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한밤중에 마사미의 집에서 어색하게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은 멜로의 전형 같지만, 장면의 마무리를 보고 나면 인상이 좀 달라진다. 해열 패치에 마스크로 무장한 마사미는 택시 창문 너머로 아키라에게 차비를 쥐여주다 말고 강풍에 날아가버린다. 영락없는 슬랩스틱 코미디다. 인기 만화가 영화를 만났을 때 남성 독자를 겨냥한 청년 만화인가 했는데 어느새 슬쩍 성장과 치유의 스토리로 귀결된다. 마유즈키 준이 쓴 동명의 만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일본에서 현재까지 누적 판매부수 약 212만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육상을 쉬게 된 17살 소녀 타치바나 아키라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점장 콘도 마사미에게 구애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린다. 클래식한 순정만화의 계보를 그대로 이어받은 연약한 그림체, 깨끗한 감성, 시적인 대사 등이 인기의 주요 요인이다. 주간 만화잡지 <빅 코믹 스피리츠>에 연재한 만화는 지난해 완결됐다. 그사이 2018년 1월에 <후지TV>가 12부작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했고, 영화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일본에서 5월 25일에 개봉해 꽤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우선 돋보이는 것은 애니메이션과 영화 모두 원작 캐릭터들의 외양을 충실히 구현했다는 사실이다. 조연들의 머리 모양새까지도 대체로 일치할 정도다. 특히 주인공 타치바나 아키라 특유의 스타일, 까만 긴 생머리에 싹둑 자른 앞머리는 아키라를 연기한 배우 고마쓰 나나의 아이코닉한 스타일과도 비슷해 제작 초기 단계부터 캐스팅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영화화 각본은 <가구야 공주 이야기>(2013), <메리와 마녀의 꽃>(2017) 등을 쓴 사카구치 리코가 맡았다. 애니메이션에서 활약했던 작가답게 순진한 감수성을 자연스레 구현했고, 연재 만화의 긴 이야기에서 주요 에피소드를 깔끔하게 엄선했다. 고마쓰 나나라는 이례적 얼굴 누군가는 이 영화를 ‘포니테일을 하고 패밀리 레스토랑 유니폼을 입은 고마쓰 나나가 망고 파르페를 파는 영화’로 요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작의 타치바나 아키라는 고마쓰 나나라는 라이징 스타가 연기한 덕분에 비로소 완벽해졌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은 비가 내리는 감성적인 그림 혹은 극도로 쨍하고 화사한 그림을 강조하는데, 고마쓰 나나는 모델 출신 배우답게 풀숏에서 풍경의 일부로 배치되었을 때도 무척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매컷이 화보라는 표현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캐릭터와 배우가 꽤 공통점이 많다는 묘한 우연의 힘도 있다. 아키라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종종 사람을 노려본다는 오해를 받곤 하는 눈빛의 소유자다. 그냥 쳐다보는지 째려보는지 구분하기 힘든 눈빛은 고마쓰 나나가 모델로 성공한 요인이기도 하다. 이국적이고 모호한 눈빛으로 패션지 독자들을 사로잡은 그녀다. 다만 출연 배우가 너무나 포토제닉한 피사체인 나머지 종종 영화가 버리지 못한 장면들도 눈에 띈다. 원작 만화가 태생적으로 피할 수 없었듯, 남성의 판타지를 겨냥한 관음적인 숏들은 분명 비판의 여지가 있다. 반짝반짝한 일본 성장영화의 감수성이란 나가이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만화에 비해 좀더 쾌활하고 시원한 보폭을 갖췄다. 눈이 부신 여름날의 학교운동장에서 시작해 창가 책상에 엎드린 고마쓰 나나의 얼굴로 단숨에 들어가는 도입부의 카메라워크가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리듬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남들보다 몇배나 민첩하다고 알려진 소녀의 발걸음을, 트랙을 질주하는 육상부 아이들의 움직임을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따라가는 영화다. 과장된 만화적 제스처 없이도 만화의 활기를 구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할까. 결과적으로 순정물, 청춘물의 컨벤션을 모아두었는데도 산뜻하고 뭉클하다는 게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의 가장 큰 장점이다. 힘차게 내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파열된 아킬레스건처럼, 아키라는 서툰 사랑의 추돌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건 폭우는 아무리 거세다 해도 언젠가 그칠 거라는 것을 전제로 시작된 이야기다. 섣불리 머무르지 말라는, 비가 개면 우산을 접고 다시 갈 길을 가라는 신중한 조언이 오랜 짝사랑에 대한 소고 속에서 전달된다. 잔뜩 흐린 날들 뒤에 찾아온 맑은 날의 반짝임이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에 있다.

[파리] <혁명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들>, 프랑스 시민 의식에 답하다

2018년 10월, 프랑스 정부의 유류세 인상 세제 개혁안 발표로 촉발된 ‘노란 조끼’ 시위. 특정 지도세력 없이 전국적으로 번져나간 이 시위는 젊은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지지도를 곤두박질시켰다. 도대체 프랑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해답은 노란 조끼 운동이 촉발되기 2개월 전, 앙굴렘 프랑스어권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주디스 데이비스 감독의 <혁명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68항쟁에 참여했던 활동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앙젤(주디스 데이비스). 그녀가 8살이 되었을 땐 이미 동베를린에 맥도날드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념으로 똘똘 뭉친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던 어머니는 가족과 이념을 동시에 버리고 깊은 산속 마을로 들어가버렸다. 성인이 되어 도시 계획가가 된 앙젤은 몇몇 지인들과 함께 소규모 토론 모임을 만들고 ‘정의’와 ‘시민 의식’의 회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시작한다. 이렇게만 보자면 한없이 무겁고 지루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만 연극배우 출신인 데이비스 감독은 “관객을 사로잡는 코미디 형식(문화 주간지 <텔레라마>)”을 차용, “현대사회에 대해 고지식하고 이상적임과 동시에 아주 구체적인 생각을 성공적으로 전달(영화 월간지 <포지티프>)”한다. 이처럼 2월 7일 프랑스 전국에 개봉한 <혁명이 나에게 남긴 모든 것들>은 가지가 많아 바람 잘 날 없는 나무와도 같은 최근의 프랑스를 가장 면밀하게 반영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시나리오작가③] 배세영 작가 - 관객이 누구 하나와는 공감할 수 있도록

배세영 작가는 최근 들어 자신을 찾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수원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인터뷰하러 서울로 나온 김에 미팅도 잡았다고 했다. 지난해 가을 비수기 시장을 견인했던 <완벽한 타인>과 1600만명을 동원해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극한직업>이 연달아 흥행한 덕분에 주가가 가파르게 오른 그다. <극한직업>이 극장에 걸린 동안 <각본인> <빅딜> <깊은 밤을 날아서> 등 세편의 각본을 썼다니 물 들어올 때 열심히 노를 저었다. 충무로에서 그는 죽어가는 캐릭터와 밋밋한 대사를 살려내는 명의로 소문이 자자하다. <극한직업>을 제작한 김성환 어바웃필름 대표가 문충일 작가가 쓴 초고의 각색을 배 작가에게 요청한 것도 그래서다. 고 반장(류승룡)과 영호(이동휘) 두 형사가 사건을 주도적으로 끌어가고, 마 형사(진선규), 장 형사(이하늬) 같은 주변인물이 둘을 방해하거나 불평불만을 터트리는 초고가, 마약반 형사 다섯명이 끈끈한 팀플레이를 선보이며 마약범죄조직을 소탕하는 지금의 영화로 바뀐 건 배 작가의 심폐소생술 덕이다. “이들의 위장 수사를 케이퍼무비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웃음) 악역이든 작은 역할이든 갑자기 나타나서 말 한마디 툭 던지고 사라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은 캐릭터라도 존재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극한직업>은 지질한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소동을 벌이다가 나중에 그들의 숨겨진 능력이 <어벤져스>처럼 퍼져나갈 때 관객에게 통쾌감을 주고 싶었다”는 게 배 작가의 설명이다. 영화 개봉 전에 이미 유행어가 된 명대사,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경찰서장(김의성)에게 깨지는 상황에서 고 반장이 갑자기 걸려온 배달 전화를 받고 말하는 영업 멘트다. “심각한 상황에서 진지한 대사들이 오갈 때 누군가가 그 분위기를 풀어주지 않으면 오글거려서 못참는 성격이다. 고 반장이 ‘지금 치킨이나 튀길 때야’라고 화를 내다가도 정작 배달전화가 오면 영업 멘트를 꺼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좋아한다.” 캐릭터를 개성 있게, 대사를 맛깔나게 살리는 그의 글쓰기 재능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찌감치 감지됐다. 그는 담임 교사의 관심을 받고 싶어 ‘엄마가 집을 나갔다’거나 ‘아빠가 엄마를 때렸다’ 같은 내용의 거짓말을 지어내 일기장에 썼다. 일기 내용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연기(?)까지 했다. 가령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깔끔한 옷차림을 일부러 흩뜨리거나 자신을 걱정하는 선생님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창밖을 쓸쓸히 쳐다봤다. “맹랑한 아이였다. (웃음)” 소설 같은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란 담임 교사는 그를 혼내기는커녕 “이 정도로 사람을 속일 수 있는 글이면 작가를 해야 한다”라며 4학년 때 그를 문예반에 넣어주었다. 문예반 활동이 작가 배세영의 출발인 셈이다. 문예반에서 처음 썼던 시가 교육부가 그해 발간하는 시집에 실렸고, 이후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인간 내면 깊숙이 파고 들어가는 글을 썼던 동기들과 달리 그는 대사가 많은 재미있는 소설을 썼다. 학교 사람들로부터 “칠락팔락하고 깊이가 없는 글”이라는 지적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벽에 수그리고 앉아 발톱만 깎는 글은 못 쓰겠더라. 오히려 발톱을 깎다가 벽에서 갑자기 요정이 튀어나와 그를 따라 신비로운 세계로 여행 가는 이야기를 썼”다. 당시 그가 재미있는 글을 즐겨 쓴 건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지낸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부모님이 학교 성적이 좋은 나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이모 집으로 보냈다. 이모가 잘 챙겨주었지만 부모님이 그리웠고, 집이 그리울 때마다 글을 썼다. 밝고 재미있는 이야기만 썼고, 그 글을 친구들에게 보여준 뒤 그들이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고 만족해했다.” 될성부른 시나리오작가는 떡잎부터 남달랐다. 배 작가가 시나리오작가로 발을 들이게 된 건 장진 감독의 영화 <기막힌 사내들>(1998)을 보면서다. “100번 넘게 봤다. 나중에 비디오테이프를 샀다. 대사를 줄줄 외울 만큼 좋아서 미칠 것 같더라. (웃음)” 그는 당시 썼던 시나리오를 들고 장진 감독을 찾아갔다. 장진 감독이 그에게 “우리 회사에 들어와서 일해라”라고 제안하면서 그는 장진 감독의 소속 작가로 7년을 함께 일했다. 그때 기획해서 쓴 작품 중 하나가 의 <여의도 텔레토비>다. 텔레토비라는 아동 교육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활용해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한 코너였다. 이 코너는 우연한 계기로 기획됐다. “당시 정당들이 당 대표를 뽑던 시기였다. 남동생이 TV를 보다가 당마다 각기 다른 색을 보고 ‘뭐야, 텔레토비야?’라고 말했는데 즉각작으로 ‘이거다’ 싶었다.” 매일 정치 이슈를 따라잡아야 하고, 텔레토비 캐릭터 4명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했던 <여의도 텔레토비>는 배 작가에게 좋은 훈련이 됐다. “매일 정치 뉴스를 빼놓지 않고 봤고, 방송 직전까지 더 좋은 대사가 없는지 찾았으며, 좋은 대사가 떠오르면 새벽까지 PD와 통화하며 대본에 넣으려고 했다.” 역도부 소녀 6명의 성장기를 그린 <킹콩을 들다>, 바람난 네 남녀의 읽히고설킨 관계를 다룬 <바람 바람 바람>, 40대 중년 부부 세쌍의 민낯과 위선을 그려낸 <완벽한 타인>, 마약반 형사 다섯명의 위장 수사를 다룬 <극한직업> 등 배세영 작가가 쓴 영화는 상당수가 여러 인물들이 한꺼번에 나와 서사를 전개시키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은 사건은 거의 다 나온 것 같다.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사람마다 대처 방식이 다르지 않나. 새로운 이야기는 거기서 나오는 것 같다. 제작자들이 내게 각본을 맡기는 것도 그걸 기대하기 때문 아닌가 싶다”는 게 배 작가의 얘기다. 그는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는 비결을 꺼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 <완벽한 타인>은 관객은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때 집중하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 관객을 지루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게 관건이었다. 관객을 이야기 내내 집중시키기 위해 모든 캐릭터를 분명하게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됐다.” 육아를 하고 있는 ‘워킹맘’ 배세영 작가는 부지런하다. 천명관 작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감독 곽경택)를 각색하고, JTBC 드라마 대본도 쓴다. <극한직업>의 어마어마한 흥행이 시나리오작가로서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코미디영화가 다시 많은 관객의 공감대를 이끌어내 반갑다. <완벽한 타인>과 <극한직업>이 연달아 흥행한 덕에 많은 사람들이 시나리오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것 같다. 고료만 받았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작가로서 영화 흥행에 기여한 만큼 보상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것 같다.” ● 가장 좋아하는 영화 시나리오_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 어린 마츠코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노래를 부르는데 이에 무척 공감됐다. 나 또한 부모님과 떨어져 살 때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큰 소리로 동요 <고향땅>을 불렀다. 노래를 부른 뒤 앉아서 시를 썼다. 그때 느꼈던 그리움이 글을 쓰게 한 것 같다. 지금도 마음이 허할 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보고 한번 운 뒤 글을 쓴다. 또 시나리오작가로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1997)다.” ● 시나리오 작업할 때 습관이나 챙기는 물건_ “쓰기 전에 시나리오 첫장부터 읽어서 내려간다. 가령 18신까지 썼으면 19신부터 쓰는 게 아니라 1신부터 다시 읽으며 19신까지 간다. 시나리오 뒷부분을 쓸 때도 첫장부터 읽으면서 고치고 또 고친다. 퇴고를 동시에 하는 셈이다. 그때 대사는 소리 내 읽는데 입에 잘 붙을 때까지 고친다.” ● 필모그래피 2019 <극한직업> 각색 2018 <완벽한 타인> 각본 2018 <원더풀 고스트> 각색 2017 <바람 바람 바람> 각본 2014 <우리는 형제입니다> 각본 2012 <미쓰GO> 각색 2012 <미나문방구> 각본 2011 <적과의 동침> 각본 2010 <된장> 각색 2009 <킹콩을 들다> 각본 2007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 각본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⑤] <지난밤 너의 미소> <라스 크루세스> <애칭>

<지난밤 너의 미소> Last Night I Saw You Smiling 카빅 능 / 캄보디아, 프랑스 / 2019년 / 75분 / 국제경쟁 1963년 지어진 캄보디아 프놈펜의 상징적인 건물 화이트 빌딩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2017년 5월, 일본의 한 기업이 캄보디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화이트 빌딩 매입을 발표했고, 이후 콘도가 들어설 예정이다. 화이트 빌딩에서 자란 영화의 감독이자 촬영을 맡은 카빅 능은 자신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이주를 앞둔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카빅 능의 카메라는 차분하고 정직하게 건물의 곳곳을 비춘다. 대부분의 신에서 카메라는 정지된 채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복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요리하고 빨래를 너는 사람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가족, 이웃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마지막으로 건물과 작별하고 짐을 챙기는 손길 등. 2019년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넷펙상을 받은 작품. <라스 크루세스> The Crosses 테레사 아레돈도, 카를로스 바스케스 멘데스 / 칠레 / 2018년 / 78분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1973년 9월, 칠레의 군사 쿠데타 직후 제지회사(CMPC)에서 일하던 19명의 직원이 종적을 감춘다. 경찰에게는 노동조합, 좌파 정당 활동을 하는 이들의 리스트가 존재했고, 이 리스트에 의해 구속된 19명은 결국 싸늘한 주검이 되어 묻힌다. 테레사 아레돈도와 카를로스 바스케스 멘데스 감독은 사건이 일어난 라자 지역의 현재를 포착하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과거를 상기시킨다. 억울한 죽음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무는 베어지고 사람들은 출퇴근하고, 종이는 만들어진다. 영화는 중간중간 블랙 화면을 삽입하고 다양한 시각 자료와 사운드 요소를 더해 사건의 잔혹성을 알린다. 칠레 정부가 민간인 학살에 관여하고 45년이나 지나서야 이 사건은 공개되었다. 아직 이것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애칭> Pet Names 캐럴 브랜트 / 미국 / 2018년 / 75분 / 시네마페스트 지친 표정으로 밤거리의 놀이기구를 바라보는 리(메러디스 존스턴)의 시선을 따라가며 시작된다. 대학원까지 중퇴하고 말기 암 환자인 엄마를 보살피는 데 최선을 다하는 딸이지만, 그녀의 하루는 무기력하다. 와중에 엄마의 병세 악화로 함께 계획한 캠핑도 혼자 가야 할 처지가 된다. 즉흥적으로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였던 캠(르네 크루즈)을 캠핑으로 초대하고, 캠의 강아지 구스까지 함께 숲으로 떠난다. <애칭>은 헤어진 연인이 숲에서 주말을 보내며 오랜 상처와 마주하고, 암울한 현재와 불확실한 미래, 삶과 죽음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가는 이야기다. 메러디스 존스턴은 주연배우이자 각본가, 협력 프로듀서, 작곡가로 영화에 참여했다. 르네 크루즈 역시 주연 배우이자 작곡가로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33년씩이나? 유명 영화들이 지각 개봉한 사연

다르덴 형제의 1999년 작품 <로제타>가 5월 관객들을 만난다. 당연히 재개봉일 것 같았지만 엄연히 극장 개봉은 처음이다. 흔히 영화계에 조롱거리로 등장하는 '창고 영화'와는 아예 의미가 다르다. 창고 영화란 한참 전에 만들어졌지만 만듦새가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시기적으로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경우 개봉을 미룬 영화들에게 붙여진 다소 불명예스러운 별명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영화들은 다르다. 도리어 '늦게라도 개봉해줘서 고맙다'는 안도를 부른 영화들을 모았다. 로제타 / 20년 다르덴 형제의 첫 번째 걸작이라 불리는 <로제타>는 오는 5월 국내에서 처음 개봉된다. <내일을 위한 시간>(2014), <언노운 걸>(2016) 등 다르덴 형제의 근작들은 모두 극장에서 개봉돼 시네필들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 모았다. 때문에 형제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로제타>가 20년 만에 첫 개봉을 앞뒀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은 다르덴 형제 특유의 리얼리즘 영화 세계를 추종하는 팬들이 많지만, <로제타>가 발표되던 1999년 당시에는 국내 관객들에게 낯선 화법의 영화였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자 어머니와 함께 사는 십대 소녀 로제타가 경제적 위기로부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제52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칠드런 오브 맨 / 10년 <칠드런 오브 맨>의 지각 개봉은 오히려 타이밍이 절묘했다. 알폰소 쿠아론의 SF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2006년에 만들어졌지만 10년이 지난 2016년에서야 한국에서 개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씩이나 미뤄진 개봉이 절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난민’, ‘저출산’의 화두가 2010년대에 이르러 극심한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칠드런 오브 맨>이 다루고 있는 암담한 미래, 디스토피아의 서사는 결코 대중들이 선호하는 주제가 아니기에 이같은 시대적 상황이 맞물리지 않았더라면 철저히 외면 받았을지도 모른다. 뒤늦은 개봉으로나마 <칠드런 오브 맨>을 본 관객들은 일제히 쿠아론의 마스터피스라며 입을 모았다. 환상의 빛 / 21년 고정적으로 찾는 관객이 많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그만큼 꾸준히 작품을 내놓는 성실함 마저 팬들에겐 달가운 점이다. 2016년의 여름은 그의 영화 두 편이 동시에 극장에 걸린 계절이었다. 하나는 11번째 장편 <태풍이 지나가고>, 다른 하나는 데뷔작 <환상의 빛>이다. 무려 21년이 지나 유능한 감독의 출발을 알렸던 히로카즈의 첫 장편이 스크린에 옮겨졌고, 팬들에게는 그의 가장 오래된 작품과 최신의 작품을 비교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가 됐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남편의 그림자를 지고 살아가는 유미코의 이야기 <환상의 빛>은 죽음과 상실의 테마를 관조적 시선으로 바라본 히로카즈의 남다른 시작이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26년 대만 뉴웨이브 영화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명감독 에드워드 양. 그의 영화 중 최고라 일컬어지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만들어진 지 26년이 지나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됐다. 그동안 명성만 무성히 듣고 이 영화를 궁금해하던 영화 팬들은, 237분(4시간 남짓)에 이르는 상당히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앞다퉈 극장을 찾았다. 10대 소년 소녀들의 어두운 세력 다툼과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그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1959년의 대만이 안고 있던 사회 정치적 상황과 시대의 분위기를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다. 대만을 대표하는 배우 장첸의 어린 시절 모습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하나의 묘미가 돼 준다. 천공의 성 라퓨타 / 18년 <천공의 성 라퓨타>는 18년 만인 2004년에서야 늦개봉을 했다. <천공의 성 라퓨타>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창립작이다.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하늘에 둥둥 떠있는 섬’에서 착안해 구상한 라퓨타 성을 통해, 하야오는 그의 일관된 주제인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역설했다. 사실상 초기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이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품들이 수년을 훌쩍 넘겨 개봉했다. 여기엔 <이웃집 토토로>(1988년 작, 2001년 개봉), <마녀 배달부 키키>(1989년 작, 2007년 개봉), <붉은 돼지>(1992년 작, 2003년 개봉) 외 다수 작품이 해당하는데, 2000년대 초기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서 역사적 배경을 찾을 수 있다. 라붐 / 33년 영화보다 사운드트랙으로 더 유명한 프랑스 영화 <라붐>은 1980년에 만들어져 2013년에 한국의 극장에 걸렸다. 무려 33년 만의 개봉이다. 그럼 도대체 그 유명한 헤드폰 신과 함께 자동 재생되는 음악 ‘리얼리티(Reality)’며, 책받침 3대 여신 중 하나였다던 소피 마르소의 인기는 어디서 온 걸까? <라붐>은 극장이 아닌 브라운관을 통해 소개됐다. 당시 한국은 <라붐>의 TV와 비디오 판권만을 갖고 있었으며, 텔레비전을 통해 더빙 방영되기도 한 <라붐>은 첫사랑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2013년 첫 극장 개봉을 치른 <라붐>은 그간 국내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마지막 장면을 함께 공개했다. 에이리언 / 8년 지금까지 나열된 영화들의 지각 개봉에 비하면 8년 정도는 귀여운 수준이다. 하지만 속편 <에이리언 2>가 본편인 <에이리언>보다 먼저 개봉됐다는 사실이 흥미로워 소개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역작 <에이리언>은 1979년이라는 제작 시점을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한 만듦새를 자랑하는 괴수 영화였다. SF 영화의 새 역사를 쓴 <에이리언>은 많은 후대감독들의 손에서 태어난 속편들로 인해 다시 그들을 명감독의 반열에 올리기도 했다. 최초의 <에이리언>은 단순히 ‘잔인하다’는 이유로 국내에 제때 개봉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한 <에이리언 2>가 먼저(1986년) 개봉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속편의 흥행으로 인해 본편인 <에이리언>은 8년 만인 1987년에서야 늦개봉을 했지만, 2편에 한참 못 미친 흥행 성적을 냈다.

[내 인생의 영화] 유태경 감독의 <열혈남아>

감독 왕가위 / 출연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 제작연도 1988년 나는 하숙생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갓 상경한 대학 새내기 시절, 하숙집에서 선배들의 머슴(?) 생활을 했는데 그들은 밤에 나를 종종 불러 재밌는 이야기를 시키곤 했다. 처음 며칠은 무사히 넘겼지만 레퍼토리는 바닥났고 재미가 없거나 준비된 얘기가 없으면 난감했다. 몇주 뒤 새로 선배 한명이 입주했는데 그와는 늘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잠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로드쇼>나 <스크린> 같은 영화 월간지를 탐독하던 나였지만 대학에서 학사경고를 받아가며 영화 생각만 하던 선배가 해주는 얘기는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그런 선배 덕분에 비디오방에서 재발견한 영화가 <열혈남아>(원제 <몽콕하문>)다. 이미 중학생 때 친구집에 모여서 봤던 영화다.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을 기대했던 친구들에게 온갖 비난을 들었지만 이 영화를 몰라본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던 경험이 있다. <열혈남아>는 다른 홍콩영화들과 달랐고 비현실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며 설익은 청춘과 닮았다. 그래서 이 영화와 왕가위 감독이 좋아졌다. 어린 시절 사람을 죽이고 뒷골목 건달로 살아가고 있는 소화(유덕화)는 불안하지만 자신을 따르는 동생들을 보살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먼 친척뻘인 아화(장만옥)가 병원을 다니러 소화 집에 머물고, 아화는 거칠고 불안한 모습의 소화에게 연민과 애정을 느낀다. 소화 역시 아화를 마음에 두지만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함께할 수 없을 거라 직감한다. 멜로는 엇갈림의 서사다. 김영하 작가가 어느 글에서 “엇갈리지 않고 오다 가다 만나면 그건 텔레토비지 멜로가 아니다”라고 얘기했던 게 기억난다. 사실 멜로가 엇감림의 서사라는 대목보다 텔레토비는 오다 가다 만날 수 있나, 라는 궁금증으로 기억되는 문장이지만 아직도 멜로를 대할 때면 슬며시 떠오르는 말이다. <열혈남아>는 내게 멜로영화다. 필연적으로 비극으로 끝날 걸 알면서도 마음 한쪽에서 엇갈리지 않기를 러닝타임 내내 바라면서 보게 된다. 이 영화에는 두 가지 엇갈림이 있다. 첫째는 소화와 아화가 보여주는 사랑의 엇갈림이다. 애초에 소화는 사랑 때문에 다른 걸 저버릴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화는 번번이 엇갈리는 결정을 하지만 그런 소화에게 나 역시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화와 창파(장학우)가 보여주는 의리의 엇갈림이다. 잠시라도 영웅으로 살고 싶어 하는 창파는 자신이 믿고 따르는 소화를 위해 잘해보려 하지만 매번 일을 그르치면서 상황을 비극으로 몰고 간다. 나의 대학 초년 시절은 엇갈림에 대한 감상에 몰두하던 시기였다. 감정이 풍부해서 그랬을까. 나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민을 그런 식으로 소독하며 지냈던 것 같다. 가끔 대학 시절 감정에 흠뻑 빠져 써놓은 글들을 읽게 될 때가 있다. 그 문장은 나 스스로도 낯설 만큼 짙은 감정들이지만 억누르지 않은 솔직한 감정들로 채워져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는 망설여지지만 날 나처럼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꺼내 보이고 싶은 글들이다. 내게 <열혈남아>는 그런 글들과 같은 영화다. ● 유태경 영화감독. VR툰 <조의 영역> <살려주세요>를 연출했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공학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리메이크한 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 호평과 혹평 사이에 놓이다

충격과 공포 그리고 혼돈.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를 관람한 뒤 당신이 느낄 감정이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동명 호러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오리지널 영화의 팬들과 감독의 전작(<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을 사랑한 관객 모두의 기대를 벗어난다. 마지막 순간까지 완전히 봉합되지 않는 수많은 서사의 갈래들과 실험영화를 연상케 하는 불균질한 장면들, 난폭한 점프컷과 음험한 이미지의 향연을 2시간32분에 걸쳐 체험하고 나면 당장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 이 모든 것들의 의미를 해설한 글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다리오 아르젠토는 어떻게 봤을까 이처럼 과감한 탈주는 필연적으로 영화에 대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2018년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된 뒤, <서스페리아>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오래된 악몽에 대한 풍부하고 명쾌한 해석”(<인디와이어>), “신념, 정치, 무용, 마녀사냥에 대한 복합적이고 도발적인 함의”(<데일리 텔레그래프>)를 담았다는 평가가 있는 한편 “무섭지도, 재밌지도 않다”(<버라이어티>)거나 “기묘하게 열정적이지 않은 영화”(<가디언>)라는 반응도 있었다. 분명한 점은 루카 구아다니노가 원작의 후광에 기대지 않고 그 무게에 짓눌리지도 않은 채 오롯이 자기만의 관점을 담아 <서스페리아>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 관점에 동의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겠으나, 호러영화 역사의 영원한 고전이 된 작품의 발자취를 따르면서도 영화를 보는 내내 원작의 어떤 장면도 생각나지 않았다는 점만큼은 리메이크작의 놀라운 성취라고 할 수 있겠다. <서스페리아>는 “바더 마인호프(서독의 극좌파 테러리스트)를 석방하라!”는 구호가 베를린의 잿빛 거리에 울려퍼지던 1977년을 배경으로 한다. 넋이 나간 듯 보이는 소녀 패트리샤(클로이 머레츠)가 정신과 의사 클렘페러(틸다 스윈턴)를 찾아와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유서 깊은 아카데미의 무용수인 그는 클렘페러에게 “그 여자들은 마녀”라며 자신이 그들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클렘페러는 패트리샤의 말이 망상에 불과하다고 여기지만, 패트리샤는 사라지고 그는 소녀의 실종에 무용 아카데미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패트리샤의 실종 뒤 무용단에는 수지 배니언(다코타 존슨)이라는 미국인 무용수가 입단한다. 미국 오하이오 출신으로 마담 블랑(틸다 스윈턴)에게 무용을 배우기 위해 베를린으로 온 수지는 특유의 거침없는 태도로 블랑의 관심을 끌고 무용단의 대표작 <폴크>(VOLK)의 주연 자리를 따낸다. <폴크>의 공연이 다가올수록 아카데미의 소녀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수지가 악몽을 꾸는 일도 잦아진다. 수지의 단짝이자 패트리샤의 절친한 친구였던 사라(미아 고스)는 클렘페러로부터 패트리샤의 일기장에 적혀 있던 마녀의 존재에 대해 듣는다. 다리오 아르젠토가 연출한 오리지널 <서스페리아>의 이야기는 단순했다. 미국인 무용수가 마녀들이 운영하는 독일의 무용 아카데미에 입단해 기이하고 두려운 일들을 겪고, 자신을 희생제물 삼아 젊음을 유지하려는 사악한 마녀에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찬찬히 뜯어보면 말도 안 되는 설정이 수두룩하지만 아르젠토의 영화 대부분이 그렇듯 이 작품의 매력은 탐미적이고 과장된 프로덕션 디자인과 소름 끼치는 스코어, 독창적이면서 끔찍한 살인 장면에서 비롯되는 말초적 쾌감을 즐기는 데 있었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리메이크작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결을 가지고 있다. 1977년의 베를린이라는 특정 시공간(다리오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가 개봉했던 바로 그해다)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당대 독일의 역사, 사회, 정치, 윤리적 맥락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하며, 관객 또한 이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영화를 봐주었으면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아르젠토의 <서스페리아>가 본능적인 감각으로 만든 영화였다면,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는 지성을 통해 정교하게 구축된 영화다. 다리오 아르젠토가 구아다니노의 리메이크작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데,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위와 같은 이유로 리메이크작 <서스페리아>를 이해하려면 1977년의 베를린 또는 독일 사회에서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야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1977년 중에서도 서독의 극좌파 테러리스트 그룹 바더 마인호프가 위력을 떨치던 마지막 몇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서방의 자본주의 세력들은 소련을 중심으로 힘을 키워가던 사회주의 세력을 막는 데 급급해 나치주의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않았다. 독일의 젊은 세대들은 파시즘에 물들었던 사회가 아무런 반성 없이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인 학생운동을 시작한다. 저널리스트였던 안드레아스 바더와 좌파 성향 잡지의 편집장이었던 울리케 마인호프가 결성한 ‘바더 마인호프’(‘적군파’라는 명칭으로도 유명하다)는 그중에서도 가장 과격하게 운동을 전개하는 단체였다. 급진적인 사회 변혁을 꿈꿨던 이들은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납치하고 독일 연방검찰총장과 경제인연합회장 등을 암살한다. 독일 언론은 바더 마인호프가 감행한 일련의 사건들을 ‘독일의 가을’이라고 불렀다. 구아다니노의 <서스페리아>에서 ‘독일의 가을’과 관련된 소식은 극중 TV, 라디오 등의 미디어를 통해 도처에서 들려온다. 하지만 엄격한 규율과 통제, 지도자에 대한 학생들의 선망과 경의로 운영되는 마르코스 무용단에서 바더 마인호프 테러와 같은 외부의 사건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잡음일 뿐이며 파시즘은 이곳에서 은밀하면서도 분명하게 작용된다. 사실 이 무용단을 이끄는 건 마녀들이다(원작 영화에서 선생들의 정체는 일종의 스포일러였지만 이 작품에서 무용단을 지도하는 선생들의 마녀로서의 정체성은 영화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마르코스와 무용단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블랑은 마녀 집단의 두 실세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마르코스의 세력이 블랑의 그것보다 조금 더 우세해 보인다. 이들은 마녀 의식을 위해 학생들을 희생제물로 삼지만 단순히 가해자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블랑 선생님은 전쟁 때도 무용단을 지켜낸 강인한 분”이라거나 “우파가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만 볼 때도 저항했다”는 사라의 말, 여성의 재정 자립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모든 것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무용단의 운영 방식은 초자연적인 맥락을 넘어 사회적 맥락으로 구별되는 ‘마녀’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이 영화는 여성을 마녀에 비유하는 여성 혐오적인 사상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알다시피 마녀라는 개념은 중세 시대와 계몽주의 시대에 도입되면서 선입견을 낳았다. 교회와 공동체 사회에서는 독립적이거나 모임을 좋아하는 여자들 혹은 혼자 다니는 여성이 마녀라는 사상을 퍼뜨렸고 실제로 마녀라고 낙인 찍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준비하며 아예 자신을 마녀라고 칭하는 여자를 생각해냈다. 그러면 마녀로 몰려 희생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당당히 외치게 되니까.”(루카 구아다니노) 틸다 스윈턴이 연기하는 블랑은 마녀들 가운데서도 가장 매혹적인 존재다. 그는 의식에 제물로 쓰일 학생을 발탁하고 통제하는 음험한 목적을 가졌지만 동시에 완벽주의자적인 태도로 무용이라는 예술을 대하는 아티스트다. 재능이 엿보이는 제자이자 가르침을 온전히 따르지 않음으로써 스승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수지와 교감하는 모습은 블랑을 한층 더 복합적인 인물로 만든다. 특히 블랑과 수지의 관계를 필두로 한 스승과 제자, 어머니와 딸의 관계에 대한 영화의 몇몇 설정은 전복적이면서도 도발적이다. “어머니는 으레 (아이를) 돌보고 양육하며 헌신적이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 우리의 지레짐작이라면? (중략) 모성은 깊은 갈등과 산후우울증, 아이와의 연결에 대한 거부를 동반하며 엄마와 딸 사이에는 종종 경쟁이 벌어진다.” 그 자신의 말처럼 루카 구아다니노는 이 영화를 통해 모성에 대한 선입견에 이의를 제기하고 모녀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서스페리아>의 어머니들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자식을 희생시키려 하고, 유일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 투쟁한다. 딸들은 어머니를 따르지 않으며 때로는 어머니의 자리를 야심만만하게 넘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들이 대상화되지 않고 자기 자신의 행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호러영화에서 주인공은 폭력의 대상이 되거나 위협당한다. 우리는 수지가 때때로 위험에 노출되지만 결국은 공포영화의 주체가 되길 바랐다”라는 각본가 데이비드 카이가니치의 말과 맥락을 함께한다.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에서 겁에 질려 살해당하던 여성들은 구아다니노 영화에서 그 의도와 결과가 어떻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을 하고 힘을 사용하며 그 결과를 감수한다. 영화의 후반 30분 내내 이어지는 거대한 피의 축제 역시 누구의 것도 아닌, 그들 자신의 것이다. 이들 여성이 집단적으로 행하는 제의인 무용은 (아르젠토의 영화와 달리) 시종일관 어둡고 음울한 이 영화에 시각적으로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한다. 다윗의 별을 닮은 무대 안에서 붉은 실로 짠 옷을 입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무용수들은 폭력적인 동시에 흠결 없이 아름다웠던 나치 시대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공연의 이름이 ‘민족’을 뜻하는 ‘VOLK’라는 점, 공연을 관람하는 이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세대인 클렘페러라는 점은 더욱 노골적으로 이 장면의 의도를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몸의 움직임은 마녀의 주술을 이루는 수단이다. 수지가 블랑의 지도에 따라 격정적으로 춤을 출 때, 거울방에 갇힌 올가의 뼈와 장기가 수지의 움직임에 맞춰 기묘하게 뒤틀리는 장면은 잔혹하면서 그로테스크하다. 생성과 파멸이 한데 뒤얽힌 이 장면은 오리지널 영화와 차별화되는 리메이크작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스페리아>는 어둠 라디오헤드의 보컬 톰 요크가 맡은 스코어는 생성과 파멸의 기운이 격렬하게 맞부딪히는 이 영화의 무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의 음악은 전설적인 오리지널 영화의 스코어를 맡은 고블린의 찢어지는 사운드와 다른 방식으로 불길하고 매혹적이다.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불안하고도 변화무쌍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것을 구현하기에 톰 요크보다 더 나은 사람은 없었다”라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말처럼 톰 요크의 영화음악감독 데뷔작인 <서스페리아>는 속삭이는 듯한 멜로디와 악몽같은 사운드로 감각적인 공포를 체험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태양이라면 <서스페리아>는 어둠이다.” 이 영화의 편집을 맡은 월터 파사노는 이렇게 말했다. 전작을 통해 인간 내면의 욕망과 어둠을 과감하게 탐구해왔던 루카 구아다니노는 그러한 자신의 관심사를 이어가되 가장 전위적이고 담대한 스타일과 형식으로 <서스페리아>를 완성했다. 이 작품이 구아다니노 최고의 걸작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20세기 유럽 사회의 가장 어두운 역사를 끌어와 초자연적 현상과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야심만큼은 루카 구아다니노가 현재 가장 주목받는 동시대 유럽 감독의 위치에 놓인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