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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런던] 60년째 방영 중인 영국 최장수 드라마가 있다고?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영국의 최장수 드라마 <코로네이션 스트리트>의 60주년 기념 주간(12월 7~11일) 행사도 많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는 의 <이스트엔더스>와 함께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오래 방영되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라는 수식어로 종종 소개되는 연속극이다. 현재까지 1만여회가 넘는 에피소드가 방영되고 있는 만큼 극중 57명이 출산을 했고 146명이 사망했으며 131회의 결혼식이 진행됐다는 놀라운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10주년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로 오랜 드라마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50주년을 기념하며 실시간으로 방송된 지난 2010년 12월 9일 에피소드에서는 전차가 고가도로에서 추락하는 액션 장면이 담겨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가 지난 3월 말 코로나19로 전국적인 봉쇄령이 내려진 직후 방영 횟수를 주 6회에서 3회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드라마 팬들의 관심은 올해 12월로 예정되어 있던 60주년 기념 행사의 진행 유무에 더 집중됐다. 이에 대해 와 드라마 제작진은 “코로나19 확산으로 60주년 기념 행사의 규모가 다소 줄어든 면은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이를 충분히 기념하겠다”고 밝히며 팬들을 안심시켰다. <코로네이션 스트리트> 제작진은 60주년 기념 이벤트의 일환으로 지난 5월 말에는 로열 메일과 합작한 기념우표 발행을, 11월 24일에는 뉴캐슬 출신의 화가 레이 람버트가 그림으로 표현한 웨더필드의 연기 나는 굴뚝들과 이 거리를 지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은 작품과 3개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내놓았다. 에서 연속극을 책임지고 있는 존 휘스턴은 “60주년 기념 이벤트의 하이라이트는 그간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는 데 있다”고 발표했다. 는 최근 공개된 예고편을 통해 수개월 동안 자신을 통제하고 괴롭혔던 남편 제프와 다투다 자기방어의 일환으로 그를 칼로 찔렀던 사실을 자백한 야스미엔의 살인 미수 혐의를 논하는 재판 결과가 그려질 것이라 전했다. 야스미엔을 연기하고 있는 셀리 킹은 60주년 행사를 기념하기 위한 질의응답 이벤트에서 “법정 사건이 종결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야스미엔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작자 이언 맥레드는 “지난해에 60주년 기념 에피소드 아이디어를 고민할 때, 바이러스에 의한 공격과 관련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당시에는 터무니없는 내용이라고 무시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놀랍도록 끔찍한 선견지명이 아니었다 싶다”고 뒷이야기를 전했다.

[성균관대학교] 뉴미디어 시대를 이끄는 힘

학과소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21세기 첨단 영상 분야를 이끌어갈 영상 전문인을 양성하는 데에 목표를 두고 1998년 신설됐다. 1990년대 초, 당시 국내 영화산업 성장의 주축이 된 삼성영상산업단의 권유로 신설된 이래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영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젊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2002년 정보통신부의 우수 IT 학과 지원 사업의 최우수 학과로 선정된 바 있으며 2003년부터 ‘문화콘텐츠 국비장학생 해외파견 교육지원사업 선정학과’로 선정돼 매년 학생들을 해외 교류대학에 파견하고 있다. 콘텐츠 시장이 급속도로 확장되고 혁신적인 영상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미디어 산업의 지형도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이러한 미디어 시장의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에 새로운 기술과 영상 콘텐츠의 트렌드를 신속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이 인간의 심리를 심도 있게 탐구하고 개념화할 수 없는 요소도 영상을 통해 표현할 수 있도록 인문학과 영상학의 영역을 결합한 영상미학, 영상스토리텔링,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등의 과목을 가르친다. 또한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 디자인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디지털 영상 유저들의 행동 패턴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한다. 그 밖에도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수업을 통해 하나의 스토리를 여러 플랫폼에 맞게 콘텐츠화하는 법을 배운다. 이처럼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와 같은 전통적인 영상 영역뿐만 아니라 실험영화, 인터랙티브영상, 뉴미디어, 트랜스미디어를 아우르는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학부 시절부터 폭넓은 커리큘럼을 경험한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국내외 유수영화제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엑시트>를 연출한 이상근 감독, <도희야>를 연출한 정주리 감독,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구혜선도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동문이다. 교수진도 화려하다. 학과장을 겸임하고 있는 안상혁 교수는 대기업에서 다양한 콘텐츠 유형을 기획, 제작한 바 있으며 해당 경험을 토대로 영상학과의 편제를 구성했다. 뉴욕에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전공한 현대진 교수와 이준희 교수는 모션그래픽 디자인과 멀티미디어 프로그래밍을 담당한다. 프랑스에서 미학과 연출을 전공하고 <오감도> <상류사회> 등을 연출한 변혁 교수는 영상미학을 담당하며 영상학과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그 밖에도 소니 FS7, A7s2, 캐논 C100, 70D, 파나소닉 DVX-200, 삼양 폴라 EF lens, 삼양 XEEN Cine lens,Vfm-056, 아토모스 쇼군, LPT 그립 세트, 틸타 팔로 포커스, 틸타 뉴클리어스 나노, 콤보 스탠드 등 영상 촬영과 제작을 위한 장비들도 세심하게 구비되어 있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에서는 인간과 테크놀로지 사이의 균형을 형성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그 일환으로 앞으로 새로운 영상 플랫폼에서 소프트 파워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영상스토리텔링 교육에 주력할 예정이다. 입시전형 2021년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정시 나군에서 총 15명을 모집한다. 수능 점수 100%를 반영하는 일반전형으로 영역별 반영 비율은 국어 40%, 수학(가군 혹은 나군) 40%, 탐구(사회 혹은 과학) 20%이며 영어와 한국사는 별도의 가산점을 부여해 합산한 후 총점 순으로 선발한다. 이때 제2외국어나 한문을 탐구 영역 중 1개 과목으로 대체할 수 있다. 원서 접수는 2021년 1월 8일(금) 오전 10시부터 1월 11일(월) 오후 6시까지다. 최초 합격자 발표는 2월 7일(일)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성균관대학교 입학처 홈페이지(https://admission.skku.edu/intro.html)에서 확인하자.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교수진 소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의 인재 양성에 힘쓰는 4명의 교수를 소개한다. 먼저 학과장을 겸임하고 있는 안상혁 교수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디자인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로드 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홍익대학교 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내 콘텐츠 분야를 일군 1세대로서 대기업에서 다양한 콘텐츠 유형을 기획, 제작한 경험을 토대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의 체제를 구성하고 학과 내에서 영상미학 분야를 담당한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현대진 교수는 뉴욕대학교에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전공하고 디지털 이미지 디자인과 모션그래픽 디자인, 인터페이스·인터랙션 디자인, 복합장르 공연 등을 연구, 교육한다. 이준희 교수는 뉴욕대학교에서 인터랙티브 텔레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 석사 학위를,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영상학과에서는 멀티미디어 프로그래밍, 게임디자인, 미디어 인터랙션 디자인 등을 담당한다. 파리 팡테옹-소르본 대학에서 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프랑스 국립영화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한 변혁 교수는 <인터뷰> <오감도> <상류사회> 등을 연출했으며 영상미학과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복합장르 공연 등을 담당한다.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는 풍부한 실무 경험과 다양한 영상 분야를 아우르는 교수진과 함께 영상 분야에서 고른 실무 능력을 겸비한 영상 인력을 양성한다. 홈페이지 ftm.kr 전화번호 02-760-0661 교수진 안상혁, 변혁, 이준희, 현대진 커리큘럼 영상학원론, 촬영기초, 영화사, 음악음향실습, 영상음향실습, 인터랙티브영상, 인터랙티브아트, 애니메이션기초, 시나리오워크샵, 영상미학, 영상스토리텔링, 인터페이스와 인터랙션디자인, 디지털디자인, 디지털비디오와 무빙이미지, 게임디자인, 캐릭터애니메이션, 미디어스터디, 영상편집워크샵, 영상편집기초, 영화사 연구, 게임워크샵, 영상비평론, 영상매체경영론, 영상학현장실습, 모션그래픽워크샵, 정신분석과 영상연출, 실험영상워크샵, 광고연출, CF워크샵, 스튜디오촬영워크샵, 장편시나리오워크샵, 다큐멘터리워크샵, 영화연출워크샵, 애니메이션연출, 뉴미디어시대의 영상미학, 다큐멘터리의 이해, 트랜스미디어스토리텔링, 방송포맷디자인워크샵, 뉴미디어콘텐츠워크샵, 콘텐츠기획과 프리젠테이션, 영상학현장실습, 영화기획제작워크샵, TV드라마워크샵, 캡스톤디자인졸업작품연구

영화 '그녀의 조각들' 눈에 비친 희박한 공기

롱테이크 숏이 인상적인 영화 두편이 올해와 지난해 초 우리 곁을 찾았다. 한편은 위기에 빠진 극장의 구원투수가 될 임무를 안고 달렸고, 다른 한편은 OTT 플랫폼의 품에 무난히 안겼다. 지켜지고, 지속되길 바라는 외침이 가득한 롱테이크 속에서 우리는 각자 무언가를 버틴다. 눈에 비친 희박한 공기 <그녀의 조각들>의 롱테이크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조각들’이라 명시된 제목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의 조각들>은 롱테이크를 주된 형식으로 가져가기보다는 특정 장면에 두드러지게 사용한다. ‘왜 롱테이크로 보여주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롱테이크 시퀀스는 마사(바네사 커비)의 출산이다. 출산 장면에는 이런 내용이 담긴다. 가정 출산을 결심한 마사가 느끼는 산통, 예정된 조산사 바바라와의 어그러진 약속, 그를 대신한 다른 조산사 에바(몰리 파커)의 등장, 병원에서의 분만을 권하는 남편 숀(샤이아 러버프), 침실에서 진행된 분만과 딸의 출생, 그리고 잠시 뒤 닥쳐온 예기치 않은 불행까지 한 호흡으로 가져간다. 롱테이크로 펼쳐지는 출산 장면은 관객을 당황하게 한다. 단지 출산 장면이 드물게 묘사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출산 장면을 느린 호흡으로 보여준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2018)에서도 주인공 클레오의 출산 장면을 실시간의 감각으로 묘사한 바 있었다. 물론 이 장면은 클레오의 임신과 불안 등 그녀가 누구인지를 충분히 묘사한 뒤에 등장한다. 반면 <그녀의 조각들>에서는 상황에 관한 사전 준비 없이, 부딪히듯 그 장면을 마주해야 한다. 관객은 이들이 누구이고, 출산 방식을 결정하는 데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등의 전후 사정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시퀀스를 감내해야 한다. 특정 인물의 출산이기보다는 불특정 다수를 포괄하는 대표로서 누군가의 출산을 마주하는 것처럼 관객은 장면의 묘사 그 자체, 혹은 출산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의 앙상블을 지켜보게 된다. 롱테이크는 종종 ‘리얼한 체험’의 맥락에서 이야기된다. 영화의 리얼리티는 시대와 매체의 흐름에 따라 갱신되어왔으므로 이것이 리얼한 체험인가를 묻기 전에 오늘날 대부분이 합의하는 리얼함에 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한다. 심은진은 롱테이크가 다른 매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리얼리티를 구축해왔다고 분석하며 회화, 연극, 텔레비전, 게임 등 네 갈래를 제시한다.(‘영화의 롱테이크와 상호매체성’ ) 이러한 분석을 참고해 덧붙이자면 롱테이크는 크게 고정숏이냐 이동숏이냐, 그리고 배경이 실제 공간이냐 가상이냐에 따라 혹은 그 혼합이냐에 따라 분류된다. 앞서 인용한 네 가지 분류 중 최근작의 롱테이크는 주로 게임의 매체성과 접속하며 가상적인 것을 리얼한 것으로 인식하는 흐름 속에 있다. 반면 <그녀의 조각들>이 보여주는 체험은 실제적 리얼리티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텔레비전, 혹은 연극적인 방식에 가깝다. 무엇보다 롱테이크가 주인공과 동일시한 체험을 위해 마련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출산 장면을 롱테이크로 목도한다고 하여 출산의 간접 체험이 가능할 리 없다. 이때 체험은 시퀀스가 보여주는 내용과 상황에 대한 체험이 아닌, 카메라의 시선을 체험하는 것에 가깝다. 체험과 저항 카메라 시선과의 동일시는 영화가 보여주는 내용으로부터의 거리감을 전제한다. <그녀의 조각들>은 영화화되기 전, 동명의 연극으로 만들어져 무대에서 상연된 바 있다. 연극 역시 영화와 마찬가지로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이 연출하고 각본가이자 감독의 파트너인 카타 웨버가 극을 지었다. 롱테이크 숏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은 어쩌면 영화가 연극의 특성을 느슨하게 공유한 흔적일 수 있다. 고정된 롱테이크 숏은 초기 영화의 주된 방식이자, 영화가 연극과 종종 비교되는 이유다. 무대극의 형식을 영화 용어로 설명할 때, 각 장은 롱테이크 고정숏에 해당한다. 물론 연극과 영화에서 특정 장면을 동일한 길이로 보여주더라도 관객이 체감하는 길이는 분명 다르다. 연극의 지속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는 이유는 연극 무대의 미장센이 관객의 시선을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이 점한 위치에 따라 볼 수 있는 것이 조금씩 달라지며 어느 정도는 분산된 시선으로 무대를 바라본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들이 극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는 데 별다른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배우의 연기와 그가 전하는 대사는 지금 여기의 관객과 소통하는 실시간성을 지니며 시각적 차이를 상쇄한다. 반면 영화에서 카메라의 시점과 동일시는 절대적인 조건이며, 실시간성을 지닐 수도 없다. 연극과 영화에서 롱테이크는 무대가 움직일 수 없는 장소나 장치의 한계를 드러내는 조건이다. 연극에서는 대부분 무대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 무대를 이동하는 극이 있긴 하다) 배우들이 움직인다면,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이동성이 곧 무대를 움직이게 하는 요소다. 연극에서는 한정된 공간 위에서 배우들의 등 퇴장이 사건을 만들어낸다면,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이동하며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상황을 비춘다. 다시 <그녀의 조각들>로 돌아오면 작품의 롱테이크는 연극적인 방식의 영화적 번역으로서의 롱테이크를 보여준다. 영화는 클로즈업을 연상시킬 정도로 실제 인물, 혹은 인물의 상황과 가깝게 밀착해 있다. 중심인물은 마사와 숀 부부와 뱃속의 아기, 그리고 바바라를 대신해 등장한 에바다.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비추는 곳이 곧 무대로, 인물들은 숏 안으로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하며 등퇴장해 사건을 만든다. 이와 함께 이들이 점한 공간인 집을 통해 스펙터클을 만든다. 거실, 욕실, 침실 순으로 중심 공간이 이동하며 각 장소에서 인물들에게 나타나는 몸과 심리의 반응을 묘사한다. <그녀의 조각들>이 집을 보여주는 방식은 샘 멘데스가 <1917>(2019)에서 장소를 탐험하던 방식에 비하면 소박하게 느껴진다. <1917>은 전체 영화를 하나의 숏처럼 보여주려는 의지를 밀어붙인 영화다. 이를 위해 장소의 변화와 이동을 전제로 한 무대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녀의 조각들>은 벽과 문으로 이뤄진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마치 스펙터클이 가능한 공간인 듯 군다. 편집되지 않고 이어지는 시간은 오직 배우들의 연기와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만 기댄다. 스펙터클이 기대되지 않는 자리에서 전환적 스펙터클을 만들어내는 것은 문드루초 영화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특징 중 하나다. 감독은 전작 <주피터스 문>(2017)에서도 롱테이크 기법을 사용했다. 총에 맞은 뒤 공중에 몸을 띄우는 기이한 능력을 갖게 된 시리아 난민 아리안(솜버 예거)은 그의 능력을 발굴한 의사 스턴(메랍 니니트제)의 관리 감독 아래 집과 병원 등 좁은 실내에서 몸을 공중에 떠올리는 기술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고, 그들에게 돈을 받는다. 감독은 아리안의 몸이 떠오르는 시퀀스를 나누지 않고 보여주면서 그 장면을 관객 역시 믿도록 권한다. 남자의 움직임은 때로는 그가 회전하는 대신,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을 일시적으로 회전시키는 능력으로 드러난다. 아리안이 회전함에 따라 공간 전체가 함께 회전하는 시퀀스는 마치 우주를 중심으로 한 SF영화에서 한정적으로 쓰여온 스펙터클을 그와 동떨어진 시공간 위에 펼치려는 것처럼 보인다. 우주 속에 던져진 인간을 보여주는 대신, 한 인간으로 인해 가능해진 우주의 차원을 보여주며 소수에게만 허락되어온 우주를 지구에로 가까이 끌어내린다. 누군가의 몸이 공중에 떠오르는 형상은 영혼이 몸을 떠나는 모양의 영화적 표현이기도 하기에, 그의 능력은 곧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난민에게 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발 딛고 설 수 없는 불안정한 토대라는 점에서 난민의 땅에 대한 은유로 우주를 발견한 측면도 있다. 감독은 장르적 한계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 기법이 기존에 사용되어온 방식을 전유한다. <그녀의 조각들>의 롱테이크는 그것이 롱테이크로 보여주어야 했던 이유를 숨기면서 과연 롱테이크로 보여줄 만한 장면은 어떤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불러온다. 이 롱테이크에 관해 개인의 내밀한 사정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영화의 윤리성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런데 그러한 지적이 자신의 장면에서 느껴야 할 쾌감을 부정당한 데 대한 반감과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기억의 장대한 씨앗 물론 작품에서 구사한 형식이 기존 용법에 대한 코멘트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영화 전체를 옹호할 수는 없다. <그녀의 조각들>의 롱테이크는 기존 용법을 비트는 동시에 실은 그 안에서 뚜렷한 목적을 지닌다. 그 목적은 시퀀스를 체험하는 동안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차적으로, 불현듯 인식된다. 롱테이크의 목적은 마치 반전처럼 드러난다. 이때 반전은 서사의 흐름 안에서 숨겨온 비밀을 누설하는 데서 오는 반전이 아니라, 영화의 기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의 반전이다. 마사의 법정 진술 시퀀스는 반전을 가능하게 한 주된 요소다. 조산사의 책임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법정 다툼에서 마사는 주요 증인으로 참석한다. 출산의 순간에 초점이 맞춰진 변호사의 질문과 마사의 대답이 오갈 때 관객은 롱테이크 시퀀스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본 것과 마사의 답변을 대조하게 된다. 조산사측 변호인은 심문 중 마사에게 조산사가 업무를 소홀히 했는지, 가정 분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마사 본인이 선택한 것은 아닌지를 따진 뒤, 아기가 태어난 직후의 상황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그는 아기의 눈이 무슨 색깔이었고, 머리 색깔은 어땠는지, 아기를 안았을 때의 느낌은 어땠는지 등을 묻는다. 그 질문은 딸을 잃은 ‘피해자’의 상처를 후벼파는 과도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사와 관객의 기억을 촉발하는 매개다. 이를 통해 아기의 존재가 시퀀스 내부에서 소외되었음을 자각하게 한다. 아기의 눈 색깔, 아기를 안았을 때의 온도와 냄새 같은 것은 롱테이크 시퀀스 속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던 것들이다. 출산 직후 에바는 아기를 마사의 품에 안겨준다. 남편 숀이 아기를 품에 안은 마사를 촬영하려 할 때, 카메라는 부부에게서 시선을 돌려 에바에게로 향한다. 에바는 이들로부터 등을 돌린 채 거울을 바라보며 깊은숨을 내쉰다. 거울 속에서 번쩍하고 숀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그 직후 거울을 통해 아기의 호흡 정지를 알아차린 에바는 아기에게로 긴급하게 다가간다. 시퀀스 어디에도 아기를 온전히 감각하는 일은 새겨져 있지 않다. 그저 짙은 머리카락의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다는 잠깐의 인상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롱테이크 숏을 소환하는 법정 장면은 롱테이크에서 상실된 것이 무엇이었나를 보여준다. 심문 장면에서 카메라는 대답 직전 마사의 목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마사가 자신의 기억을 더듬는 순간, 관객 역시 기억 속 롱테이크 시퀀스를 더듬는다. 관객이 인물과 동일한 방식으로 기억하는 행위를 할 때, 영화적 체험은 비로소 시작된다. 체험은 롱테이크가 진행되는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끝난 뒤 다시 접속하는 순간 속에 존재한다. 롱테이크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매 순간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출산의 순간 혹은 출산 이후 태아의 움직임을 담는 데는 인색하다.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지속하는 마사의 통증처럼 카메라는 지속하고, 클로즈업에 가깝게 인물들에게 밀착한 카메라는 시각적으로 숨 막히는 경험을 직조한다. 카메라가 인물을 잡는 방식과 카메라의 움직임과 인물이 겪는 상황이 어우러져 집은 숨쉬기 곤란한 밀폐된 공간처럼 보인다. 숀이 구급차를 부르기 위해 문을 박차고 나갈 때 열린 문틈으로 비로소 시각적인 숨통이 트인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마치 스스로 공기가 되려는 것 같다. 마치 공기와 같은 영화들이 있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우리의 시간>(2018) 초반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피사체와 밀착한 채 낮은 곳에서 인물 곁을 맴돈다. 인물의 시선보다 낮은 위치에 놓인 카메라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갈 때, 카메라는 흡사 공기처럼 투명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녀의 조각들>에서 카메라는 인물과 가까이 밀착해 있으나 인물은 카메라를 보지 않고, 카메라는 인물의 움직임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롱테이크가 체험일 수 있다면 그것은 인물의 입장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공기가 되는 것 같은 체험이자, 육신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경험에 가깝다. 정치적 개인에서 개인의 정치로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은 작품을 통해 정치적인 논점을 건드려왔다. <화이트 갓>(2014)은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살던 릴리(조피아 프소타)가 잠시 아버지 다니엘의 집에 맡겨지면서 반려견 하겐과 헤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하겐과의 이별의 원인은 강압적인 부모, 경계하고 고발하는 이웃들, 개의 품종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는 정책 등 다층적이다. <화이트 갓>은 주거지에서 박탈당한 생명체를 그렸다는 점에서 난민이 처한 상황을 SF로 펼쳐낸 <주피터스 문>과 연결된다. <그녀의 조각들>은 이런 흐름에서 벗어난 작품처럼 여겨진다. 이 작품은 문드루초 감독 부부가 실제 겪은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다. 전작이 분명한 정치적 발언을 했다면, 이번 작품은 보다 내밀하다. 변방으로 밀려난 이를 주목해온 감독은 <그녀의 조각들>에서는 다른 차원의 존재론을 펼친다. 딸의 죽음 뒤 마사의 가족은 죽은 딸, 혹은 손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갈등을 빚는다. 마사는 딸의 시신을 의학 교육을 위해 기증하려 하고, 숀은 이에 반대한다. 숀이 딸의 죽음을 개인적인 방식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려 한다면 마사는 어떻게든 그가 태어나야 했던 이유를 세상에 새기고 싶어 한다. 영화는 상실을 통한 고통과 상처의 치유라는 남겨진 자들에 의한 익숙한 상실의 서사를 펼치는 대신 상실된 것의 관점에서 그를 위한 구체적인 행위 방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이 작품의 정치성은 바로 나의 상처가 지금 부재한 누군가의 상처와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한 자의 구체적인 실천으로부터 나온다. 문드루초 감독은 나름의 비율로 현실과 판타지를 섞어왔다. <화이트 갓>에서 난폭하게 폭주하던 개의 무리가 소녀의 트럼펫 소리에 잠잠해지는 순간이 있고, <주피터스 문>에서는 인간의 몸이 하늘로 떠오르는 기적을 보여준다. <그녀의 조각들>에서 기적은 더 깊고 소박해졌다. 마사는 사과 씨앗에 물을 적셔 냉장고에 보관한다. 얼마 뒤 발아한 씨앗을 본다. 지금 막 발아한 씨앗은 클로징 시퀀스에 무성한 열매를 맺은 사과나무로 점프한다. 마사가 사과에 집착했던 이유는 ‘태어난 직후의 딸에게서 사과 냄새가 났다’는 법정 진술을 통해 확인된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에 주목했던 감독은 이제 사과나무를 통해 인간과 식물의 교감을 쓴다. 그와 함께 사과의 씨앗만큼 작은 배아의 상태를 생명체의 근원으로 기억하려 한다. 동물에서 식물로, 식물에서 비존재로 교감의 범위를 넓히면서 영화는 점점 낮고도 미약한 곳을 파고든다. 미세해서 보이지 않는 상태로까지 자신을 투명하게 소멸시키는 것, 그것이 카메라를 통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스펙터클이라는 듯이.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애정의 향연, 연대의 감각

1999년은 <매트릭스>의 해였다. TV 속 연예인들은 너도나도 키아누 리브스 흉내를 내며 허리를 뒤로 꺾었고, 캐리 앤 모스처럼 학다리 자세로 허우적댔다. 광고부터 시트콤까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카메라 효과와 총알 따라 물결이 번지는 CG가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밤거리는 검정 가죽옷과 롱코트에 점령당한 상태였고.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해킹 전문가를 뉴스 시간에 불러다놓고는 “프로그래밍 실력이 뛰어나면 가상현실 속에서 벽을 타고 달리는 게 가능한가요? 네, 가능합니다”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문답을 주고받는 모습을 본 것도 같다. 영화 속 명대사처럼, 정말이지 매트릭스는 어디에나 있었다. 상영 시간 내내 폼 잡는 대사와 상징물이 가득한 탓에 아는 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매트릭스와 성경과 데카르트와 장자를 엮어가며 썰을 풀기 바빴다.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에 무엇을 고르겠냐는 질문도 지겹도록 들어야 했고. 믿기지 않겠지만 매트릭스로 철학을 배우는 책도 나왔다. 어휴, 한해 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나비들이 장자의 꿈을 꿔야 했는지.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런 철없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당시 심각한 중2병을 앓고 있던 나는 <매트릭스>의 비디오테이프를 몇번이나 처음부터 돌려보며 워쇼스키 감독들에게 푹 빠져들었다. 수년이 흘러 개봉한 후속작 <매트릭스2: 리로디드>와 <매트릭스3: 레볼루션>은 물론, <브이 포 벤데타> <스피드 레이서>까지 섭렵한 나는 확신했다. 워쇼스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자유’와 ‘전복’이라고. 워쇼스키의 영화들은 자유와 전복을 이야기한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세기말 자본주의 세계를 강요하는 컴퓨터들에 맞서 자유를 되찾고, <스피드 레이서>의 주인공 스피드 레이서는 자본가들의 탐욕으로 얼룩진 그랑프리를 실력 하나로 전복시킨다. 처음부터 끝까지 혁명 이야기인 <브이 포 벤데타>는 말할 것도 없고. 워쇼스키의 야심작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주인공들 또한 각자를 억압하는 세계에 맞서 변화를 주도한다. 각각의 사연을 품고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그들의 모습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서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워쇼스키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나는 주저 없이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꼽는다. 워쇼스키가 창조한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거대한 야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1849년부터 2321년까지 여섯 시대를 교차하며, 여섯개의 각기 다른 장르 이야기를, 여섯명의 주연배우들이 시대마다 다른 배역을 1인다역으로 소화하는 것. 여섯 주인공이 마주하는 테마도 하나같이 묵직하다. 노예해방, 퀴어, 자본주의, 노인 소외, 휴머노이드 인권, 문명의 쇠락과 멸망까지. 물론 야심이 크다고 꼭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워쇼스키는 자신들의 야심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했다. 일단, 이 이야기는 영화라는 포맷에 맞지 않았다. 상영시간이 제한된 극장용 영화로는 방대한 테마와 복잡한 플롯을 담는 데 한계가 있었으니까. 게다가 숙제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 이야기의 주 무대인 네오 서울은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다. 한글 간판과 벚꽃과 다다미가 뒤섞인 촌스러운 오리엔탈리즘도 진부했고, 휴머노이드를 활용하는 방식도 게을렀다. 더구나 동양인으로 분장한 백인 배우들의 인종차별적 메이크업은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실패 덕분에 워쇼스키는 일생일대의 역작을 완성할 기회를 얻는다.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센스8>. <센스8>은 텔레파시로 감정과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세계에 흩어진 8명의 주인공. 복잡하게 교차하는 8개의 사연. 얼핏 보기에도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하는 워쇼스키의 야심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우연한 계기로 서로의 정신과 연결되기 시작한 주인공들은 정체불명의 비밀 조직에 목숨을 위협받는 한편, 각자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안고 있다. 시카고에서 경찰관으로 재직 중인 윌은 어린 시절 겪은 살인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런던에서 DJ로 활동 중인 라일리는 복잡한 과거사와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려 노력 중이며, 어릴 적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볼프강은 베를린의 폭력 조직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나이로비의 버스 운전사인 카페우스는 극심한 빈곤 속에서 엄마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분투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 격투가 선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누명을 쓴 채 감옥에 갇힌다. 샌프란시스코의 해커 노미는 트랜스젠더임을 밝힌 후로 가족들과 연이 끊긴 상태다. 멕시코시티의 인기 영화배우 리토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지만 상대역인 여배우가 자꾸만 그를 의심한다. 뭄바이의 칼라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능력 있는 여성으로,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소망은 단순하다. 자유.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대로 사랑할 권리. 단지 그뿐이다. 지구의 정반대 편에 살며 얼굴 한번 본 적 없던 여덟 주인공들은 갑작스런 접촉에 당황하며 상대를 거부하지만, 텔레파시를 통해 서서히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조심스레 각자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공유해 서로를 돕는다. 약자들의 연대. 자유와 전복. 워쇼스키가 평생 동안 반복해 쌓아올린 테마는 이윽고 <센스8>에 이르러 완성된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 또한 서서히 그들과 하나가 된다. 마치 9번째 멤버가 되기라도 한 듯 자연스레 그들 사이에 녹아든다. 시즌2 분량의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새 우리는 그들의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고, 이윽고 완전한 한몸이 된다. 이 경험은 정말 각별하다. 전세계를 누비는 엄청난 스케일의 로케이션만으로도 시청할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특히 한국처럼 생긴 한국이 등장하는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네오 서울의 실패를 재현하지 않겠다는 듯, 워쇼스키는 대부분의 분량을 현지에서 촬영했다.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런던, 뭄바이, 멕시코시티, 베를린, 나이로비, 서울…. 덕분에 우리는 배두나, 윤여정, 차인표 등 반가운 배우를 만날 수 있다. 물론 가끔은 반갑지 않은 배우와 마주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 한없이 폭발하는 애정의 향연 때문이리라. 젠더와 섹스에 대해 이보다 진지하게 정면 승부하는 장르 드라마는 찾아보기 어렵다. 세상이 그어놓은 편견의 선들을 모조리 뛰어넘어 보이겠다는 듯, 워쇼스키는 <센스8>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애정 행위를 묘사한다. 헤테로 섹슈얼과 호모 섹슈얼, 트랜스젠더와 폴리아모리(다자간연애), 데이팅 앱을 통한 즉석 만남, 텔레파시를 통한 초월적 접촉까지. 공들여 촬영된 아름다운 성애 장면을 통해 워쇼스키는 인간 육체의 내부에 축적된 생명의 에너지를 한껏 드러내 보인다. 거기엔 어떠한 한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맞닿은 입술과 손길과 살갗을 통해 땀에 젖은 기쁨이 폭발하는 순간, 그들은 진정한 자유를 만끽한다. 작중에서 선이 말한 대사처럼. “우리가 존재하는 건 섹스 때문이야. 그건 겁낼 일이 아니야. 감사해야 할 일이고, 즐겨야 할 일이지.” <센스8>은 자유와 사랑에 대한 한없는 찬미다. 우리에겐 사랑할 자유가 있다는, 그리고 사랑받을 자유가 있다는. 부디 모두가 자유로이 사랑할 수 있게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크리스토퍼 플러머 추모] 그는 마지막까지 일했다

아서 크리스토퍼 옴 플러머 Arthur Christopher Orme Plummer (1929.12.13~2021.2.5) “너 나보다 겨우 두살 많잖아. 우리 왜 이제야 만난 거야?” 2012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령의 남우조연상 수상자가 된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무대에 올라가 우선 오스카 트로피와 오랜 회포부터 풀었다. 위트 있는 첫인사로 과시한 그의 ‘전설적’ 위상은 오랜 기립 박수에 걸맞은 장중한 연설 대신 겸허한 감사 인사로 매듭지어졌다. 82살의 베테랑은 축제의 밤 이튿날 다시 현업에서 활동하는 할리우드 최고령 배우의 일원이 되어 유유히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관객은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기쁨을 9년간 더 누릴 수 있었다. 감미로운 음성으로 를 읊조렸던 트랩 대령, 70년의 연기 인생 중 에미상과 토니상을 각각 두번 수상하고 마침내 오스카 남우조연상까지 거머쥔 불굴의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91년의 일기를 마치고 지난 2월 5일 영원히 잠에 들었다. 미국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53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온 아내, 오랜 친구이자 46년간 현장을 함께한 매니저가 그의 곁을 지켰다. 70년간 빼곡히 채워진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필모그래피는 적시에 당도한 기회를 낚아챈 행운의 사나이의 그것이다. 플러머의 연기 궤적은 미디어 산업의 변천사를 요약한 훌륭한 견본이자 성실하게 일해온 직업인이 꾸려낸 순탄한 보고서다. 1929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나 퀘벡 근방에서 성장한 그는 1940년대에 고국에서 활동하면서 불어로도 유창한 연기를 펼쳤다. 라디오 드라마의 성행과 함께 연극 무대와 방송국을 오가며 커리어를 쌓았고, 1954년 뉴욕으로 건너가 브로드웨이에서 데뷔한 후 곧장 런던 웨스트앤드로 진출하며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삶에 금세 적응했다. 플러머의 강직한 코는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위한 것이었고, 웅장한 체격과 중후한 목소리, 음영이 짙게 드리운 조각상 같은 이목구비는 <오셀로> <맥베스>의 주역을 위해 준비된 축복이었다. 영국 왕실국립극장,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가 보내온 총애는 2004년 <리어왕>까지 계속됐다. 그는 1960년대 초까지 텔레비전 대중화와 컬러화, 케이블 채널의 확장세 속에서 TV드라마에 활발히 이름을 올렸고 평생 동안 80편에 육박하는 TV 경력을 부지런히 완성했다.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은막의 세계에 발을 들인 첫 작품은 시드니 루멧 감독의 <스테이지 스트라이크>(1958)지만 스크린 스타의 반열에 합류한 결정적 계기는 로버트 와일러 감독의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이다. 당시 숀 코너리를 제치고 이십세기폭스사의 야심작에 투입된 플러머는 훗날 영화 팬들이 <사운드 오브 뮤직>에 드리운 나치의 그림자를 잊고 멜로드라마적 낭만으로 기억하도록 만든 주범이 됐다. 이후 플러머는 <태양 제국의 멸망>(1969), <나폴레옹>(1970), <왕이 될 남자>(1975) 등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하며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견될 정도였지만, (젊은 시절에 꽤나 귀족적이고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던 대로) <사운드 오브 뮤직>을 회자하는 세간의 반응에 자주 탐탁찮아 했다. 1976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수년간 소화했던 뛰어난 역할들에도 불구하고 ‘사카린’ 같은 역할로 알려지게 되어 유감이다”라고 직설을 던질 정도로 예술성의 평가에는 냉정했으나, 줄리 앤드루스와는 줄곧 신사다운 우정을 유지했다. 2010년 <사운드 오브 뮤직> 45주년 행사에 참석해 다정하게 추억담을 나누는 플러머의 모습에선 한결 느긋함도 느껴진다. 부모의 이혼 후 “관심을 받기 위해 촌극과 마임에 몰두”했고, 형제도 없이 홀로 보내는 캐나다의 긴 겨울밤을 “큰 소리로 책을 읽으며”(<타임>) 지샜던 캐나다 소년은 그렇게 미국인들의 캡틴, 영국인들의 햄릿이 되어 스타의 삶을 살았다. 1990년대의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스타트렉6: 미지의 세계>(1991), <12 몽키즈>(1995)에서 장르영화에 대한 전위적인 안목도 드러낸다. 대기업 비리를 고발한 기자 마이크 월리스를 연기한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1999)로 주목받았고, 러셀 크로의 상대역으로 정신과 의사를 연기한 <뷰티풀 마인드>(2001)는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할리우드는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품은 비옥한 세월의 주름을 펼쳐 역사와 판타지의 무대로 삼았다. 그는 <알렉산더>(2004)에서 아리스토텔레스로, <내셔널 트레져>(2004)에서 존 애덤스로, <톨스토이의 마지막 편지>(2009)에서 톨스토이로 변신했고,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2009)에선 테리 길리엄 감독과 재회해 영혼 세계를 빚었다. 대중의 배우가 되는 일에 마음을 고쳐먹은 그는 다수의 아동영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목소리 연기에도 부지런히 임했는데, 그중 픽사의 <업>(2009)에서 연기한 탐험가 찰스 F. 먼츠는 빌런 캐릭터가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음을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전성기는 80대에 또 한번 예고 없이 찾아왔다.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2009)으로 생애 처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듬해 <비기너스>로 다시 한번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결국 트로피를 차지했다. <비기너스>에서 플러머가 연기한 캐릭터 할은 45년간의 결혼 생활 후 시한부 판정을 받고 커밍아웃을 선언한 남자다. 마이크 밀스 감독의 독특한 서정과 조우하고 퀴어영화의 시대에 호흡하는 그의 행보는 동시대 관객에게 크리스토퍼 플러머라는 스펙트럼에서 아직 보지 못한 부분이 훨씬 많을 거라는 이상한 조바심도 안겼다. 이윽고 그는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 하차한 케빈 스페이시를 대신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올 더 머니>(2017)에 합류하면서 전설적인 무용담도 만들었다. 개봉 두달 전에 프로덕션에 투입된 플러머가 보여준 것은 엄청난 대사 암기력과 현장 장악력만이 아니라, 대체 캐스팅에 아랑곳하지 않는 대배우의 품격이었다. 트럼프 시대에 반응한 할리우드의 새로운 클래식 <나이브스 아웃>(2019)에서는 살인 미스터리의 중심축이 되어 미국 사회의 축소판을 흔들고 떠났다. 119개의 영화, 71개의 텔레비전 시리즈, 17개의 연극 무대를 통해 연기의 일가를 이룬 배우가 영원한 탐구의 대상으로 남으리라는 점에서, 가문의 수장이자 대문호인 할란 트롬비 캐릭터는 플러머를 대신해 절묘한 고별사를 남긴 셈이 되었다. 2015년 미국 토크쇼 <코난>에 출연한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길고 꾸준한 자신의 이력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난 절대 은퇴하는 법이 없을 거예요. 은퇴를 바라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조금 유감스러워요. 그건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스스로가 자부한 대로 플러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성과 자신감, 커리어의 부침을 허락하지 않는 프로페셔널함을 끝까지 지켰다. 그는 90대가 된 타계 직전까지 2021년 개봉예정인 애니메이션 <황금 가면의 영웅들>과 <울트라덕>의 목소리 녹음을 마쳤다. <사운드 오브 뮤직>을 그리워하는 세대와 <나이브스 아웃>을 즐겨본 세대가 모두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살아온 시간보다 몇 곱절이나 길게, 배우는 존재한다. 세월은 그의 영화 앞에서 언제까지나 기세를 잠재우고 유순한 관객이 되어줄 것만 같다.

[파리] 프랑스 영화인들 대거 참여한 넷플릭스 시리즈 '뤼팽' 시즌2 제작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미드’나 ‘영드’와 달리 ‘프드’라는 단어는 아직 어색하다. 거센소리에 같은 모음이 중복되어 발음하기 매끄럽지 않다는 일차적인 이유가 아니라 프랑스 드라마가 국외 팬들에게 그만큼 영향력이 없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일 테다. 실제로 프랑스인들도 자국 드라마나 시리즈물에 그다지 높은 기대를 하지 않고, 감독과 제작사, 배우들도 드라마/텔레비전에 대해서는 장편/극장보다 ‘쉬운 차선책’, 좀더 막말로 하자면 ‘변절’과 연관지어왔다. 단적인 예로 2015년 넷플릭스가 제작한 첫 프랑스 드라마 <마르세유>(출연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찬반이 엇갈린 애매한 시청자들의 반응과 달리 “산업 재난”(<르몽드>), “경이롭기까지 한 놀라운 실패작”(<텔레라마>) 등 평단의 일관적인 비판을 받고 결국 시즌3 방영이 취소되었다. 그리고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2017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당시 이 영화를 극장 개봉하지 않겠다는 넷플릭스의 정책에 프랑스 영화인들이 일제히 반발했고, 이에 영화제측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은 프랑스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서약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따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딥 프레임을 건드리면 행동은 바뀌는 법. 전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으로 2020년 프랑스영화 극장 관객수는 전년 비교 70% 하락했고, 지난해 10월 30일 이후 극장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그러는 사이 굵직굵직한 영화계 인사들이 OTT 서비스와 TV드라마에 본격 투입됐다. 특히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인물 2위로 뽑힌 <언터처블: 1%의 우정>(2011)의 주연배우 오마 사이는 넷플릭스가 제작한 드라마 <뤼팽>에서 음식 배달원, 청소 노동자, 백만장자를 넘나드는 천의 얼굴을 가진 괴도 신사 뤼팽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 작품의 연출은 <인크레더블 헐크>(2008), <타이탄>(2010),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2013)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다 고국으로 돌아온 루이 르테리에가 맡았고, 총지휘는 고몽사의 책임자 시도니 도마스와 부책임자 크리스토퍼 리안데가 맡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참여진의 이름과 타이틀만으로도 영화 개봉 전부터 관객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월 8일 처음 방영된 <뤼팽>은 4주 만에 세계적으로 7천만 플랫폼 가입자를 유혹했고, 넷플릭스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시청률 1위를 차지한 프랑스 드라마가 되면서(참고로 프랑스 드라마가 국외에서 넷플릭스 톱10 리스트에 오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숨겨뒀던 ‘프드’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제작진은 현재 시즌2의 여름 개봉을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뤼팽>이 한번의 지나가는 파도가 아니라 ‘프드’의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길 기대해본다.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미래를 그리는 소녀

초능력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것도 기왕이면 다양한 초능력자들이 얽히고 설키며 서로의 능력을 뽐내는 이야기가 좋다. 그냥 초능력만 뽐내도 될 것을, 요즘 영화 속 친구들은 왜들 그렇게 서로에게 유치한 별명을 붙이고 이상한 쫄쫄이를 입어대는지. 나는 슈퍼히어로 장르가 유행하는 세태에 불만이 많은 편이다. 사실 이야기 노동자에게 초능력은 손쉽게 스펙터클을 만들어낼 수 있는 치트키 중 하나다. 주인공들에게 뻔하디뻔한 능력 몇개만 쥐여줘도 사람들이 금세 ‘우와’ 하며 빠져들게 마련이니까. 사람들은 대개 초능력을 좋아한다. 이건 지겹도록 오래된 전통이다. 4천년 전 <길가메시 서사시>부터가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의 이야기였고, 그리스신화 속 신들도 초능력을 하나씩 가졌다. 심지어 예수님도 기적을 행하지 않던가. 기원전에 쓰여진 힌두 경전에서조차 신도들이 기나긴 설법을 지루해할까 봐 초인들의 전쟁 이야기를 도입부에 삽입하곤 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초능력 이야기에 끌린다. 누구나 한번쯤 초능력을 갖기를 간절히 소망했었고, 혹시 내게 그런 능력이 숨겨져 있진 않을까 착각해본 경험이 있다. 그런 탓에 제대로 된 초능력 이야기를 만나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흔한 도구인 만큼 능숙하게 다루기 어려우며, 남발된 탓에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다. 게다가 워낙 반복되어온 소재이기에 써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아이디어가 이미 고갈된 상태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참신한 초능력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폴 맥기건 감독의 <푸시> 역시 이런 뻔하디뻔한 초능력 영화 중 하나다. 염력, 예지력, 텔레파시, 사이코메트리, 초능력자를 감시하는 비밀 조직, 새하얀 병동에서 이루어지는 불법 실험, 기억상실, 뭔가 있어 보이는 과묵한 선글라스 악당, 초능력을 강화하는 위험한 약물…. 아이고, 나열된 단어만 읽어도 벌써 극장에서 열번은 보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줄거리도 딱히 특별하진 않다. 지질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남자주인공이 신비로운 소꿉친구(사실 소꿉친구인지 명확지 않다)와 재회해 자신의 혈통과 힘을 깨닫고 거대한 적을 무찌른다는 왕도적 스토리. 영화는 하이틴 판타지 소설과 소년 만화에서 지겹도록 반복된 원형을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 그만큼 좋지 않은 클리셰를 다 갖춘 작품이기도 한데, 대책 없이 뻔한 실수를 반복하는 주인공이나 그런 주인공에게 순순히 죽어주는 편리한 악역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부터 저 사람들이 대체 왜 저러나 싶어지기도 한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주연배우인 크리스 에반스가 이런 지질이 주인공 역할을 정말 끔찍하게 못한다는 거다. 그가 캡틴 아메리카가 된 이후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물론 <푸시>가 <어벤져스>보다 먼저 촬영된 영화지만 이제 우리는 그를 캡틴과 분리해서 생각할 방도가 없다. 크리스 에반스는 이 영화에서 지질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정말이지 절묘하게 어정쩡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겠다만. 한껏 욕을 늘어놓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작품을 정말 사랑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들이 뭐라든 내 마음속 최고의 작품이 하나씩은 있지 않던가? 내게는 <푸시>가 그런 작품이다. 몇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석 같은 영화. 언젠가 초능력 소설을 쓰게 된다면 <푸시> 같은 작품을 쓰리라 매번 다짐할 정도다. 비록 깔끔하게 엮어내진 못했지만, 이 영화에는 너무나 흥미롭고 매력적인 재료들이 가득하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지점은 이 작품이 초능력을 묘사하는 방식에 있다. 90년대 로큰롤 뮤직비디오처럼 감각적이고 호사스러운, 시각 매체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다양한 시도가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SF 작가로서 이런 자극은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언’과 ‘기억’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활용도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는 미래를 예지하는 초능력자인 ‘와쳐’와 기억을 조작해 타인을 조종하는 초능력자 ‘푸셔’가 서사의 거대한 두축으로 등장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와쳐의 예언에 의해 미래를 속박당하고, 푸셔의 조작에 의해 자신의 과거를 의심하는 상황에 놓인다. 여기에 더해, 다수의 예언가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미래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미래는 점차 복잡하게 뒤엉켜간다.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주인공과 타인의 미래를 훔쳐보는 악역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 서로의 기억을 편집하고 조작하는 두 진영의 치열한 정보전. 그리고 후반부의 참신한 트릭까지 합쳐지면 꽤나 매력적인 두뇌 싸움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매력적인 결과물이 나왔냐고 묻는다면 글쎄…. 각본이 조금만 더 똑똑했다면 좋았을 텐데. 매력적인 초능력자들 중에서도 특히 다코타 패닝이 연기한 예언가 ‘캐시’는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열세살 소녀에게 주위 사람들은 상영시간 내내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데 그럼에도 캐시는 꿋꿋이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을 그려 미래를 예언하지만 정작 그림 실력이 완전 꽝이라는 설정도 재미있다. 이처럼 과거도 미래도 엉망으로 조작된 이들에게 과연 자유의지는 존재할까? 꽤 심오하고 흥미로운 주제다. 하지만 이런 매력적인 설정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거대한 대의도 개인적인 동기도 상실한 채 누군가가 깔아놓은 계획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움직인다. 때문에 관객인 우리는 그들의 행동에 공감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작정하고 이 주제를 깊게 파고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 영화의 또 한 가지 사랑스러운 요소는 홍콩이라는 독특한 무대다. 로케이션과 세트의 구분이 어렵지만 꽤 그럴싸하게 촬영된 홍콩의 골목골목은 정말 아름답고 유니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많은 초능력자들이 그 좁은 도시 안에 숨어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정말이지 홍콩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아닐까. 최근 여러 가지 이유로 방문하기 어려워진 탓에 예전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기껏 홍콩을 무대로 삼았으면서 스크린에서 활약하는 건 온통 서양인이고 그나마 등장하는 홍콩 사람들은 전부 무식한 범죄자뿐이라든지. 그나마 인상 깊게 등장하는 여성 인물마저도 뻔한 눈화장에 뻔한 일자 앞머리를 하고 있다든지. <푸시>는 보석처럼 훌륭한 재료를 한껏 채워넣은 영화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의 재료를 그러모은 탓에 무엇 하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펑 터져버린 안타까운 작품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겐 최고로 흥미로운 영화겠지만 누군가에겐 최악의 시간 낭비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이런 저런 머릿속 의심을 깨끗이 놓아버릴 수만 있다면 이렇게 재미있는 초능력 영화도 드물 것이다.

Z세대 최고의 스타로 등극한 젠데이아의 변천사

본명은 젠데이아 머리 스토머 콜먼(Zendaya Maree Stoermer Coleman). ‘젠데이아’라는 예명으로 스크린과 공연장, 텔레비전을 오간다. 할리우드가 일찍이 “Z세대 최고의 스타!”라고 호들갑을 떤 1996년생 배우 젠데이아는 확실히 미국 10대에게 제1의 워너비로 사랑받는 존재다. 그는 데뷔와 함께 스타 반열에 오른 드문 행운의 소유자다. 13살에 디즈니 채널의 틴에이지 시트콤 <우리는 댄스소녀>(2010)의 주인공으로 주목받았고, 16살에 이미 자기 이름을 딴 TV시리즈 <젠데이아의 스토리>(2013)를 얻어낼 만큼 손꼽히는 영 앤드 리치 스타로 불렸다. 음반 시장도 빠르게 반응해, 2012년부터 할리우드 레코드와 함께 팝스타의 명성도 일궈왔다. 그러나 이런 화려함은, 셀리나 고메즈의 뒤를 잇는 미국 10대의 셀러브리티라는 틀 바깥에서 젠데이아를 상상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디즈니 채널의 스타는 곧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에서 스파이더맨의 여자 친구를, <위대한 쇼맨>(2018)의 서커스 쇼컬을 연기하면서 미국인들의 ‘블록버스터 달링’이 됐다. 2019년 미국 매체 <복스>는 ‘무엇이 젠데이아를 엄청난 셀러브리티로 만드나’라는 기사를 내고, 그 첫머리로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의 레드카펫에서 벌어진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아직 영화계의 신인이었던 19살의 젠데이아는 드래드록 헤어(머리를 굵게 땋아 길게 늘어뜨린 스타일로 흑인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를 선보였다가, 한 연예 매체 기자로부터 “머리가 젠데이아를 삼키고 있다”, “잡초 같다”는 평을 듣는다. 인종차별적 발언에 분개한 네티즌은 이튿날 젠데이아가 자신의 SNS에 올린 장문의 입장문을 읽고 금세 위로받았다. 그녀는 “드래드록 헤어는 내게 힘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이라고 우아하지만 분명하게 못박았다. 이후 젠데이아는 가수, 배우, 그리고 책을 낸 작가이면서 인종주의와 페미니즘을 위해 싸우는 액티비스트로 자리 잡으며 만능 아이콘을 원하는 Z세대의 롤모델이 됐다. 젠데이아가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하는 과정은 배우로서 도약하는 시기와도 맞물렸다. 샘 레빈슨 감독의 시리즈 <유포리아>에서 마약중독자 루를 연기한 그는 2020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부문 역대 최연소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된다. 레빈슨 감독은 <유포리아>의 소녀가 <맬컴과 마리>의 성숙한 여성에도 적역일 것임을 진작 눈치챘다고 밝히면서, 젠데이아가 “언젠가 감독 데뷔도 할 것으로 강력히 예상되는 인재”라고 덧붙인 바 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다재다능한 젠데이아가 적어도 당분간은 연기에만 전념해주었으면 싶다. 비정하고 신랄한 모욕, 눈물의 호소, 코웃음, 아련한 애정, 실망과 광기를 표출하는 <맬컴과 마리>의 마리에게서 우리는 이미 배우 젠데이아의 무한한 미래를 목격해버렸다.

[인터뷰] '정말 먼 곳' 강길우 - 편안함의 내공

낯선 이에게서 문득 편안함을 느낄 때처럼, 배우 강길우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이상하리만치 미덥고 묵직하다. 박근영 감독의 데뷔작 <한강에게>(2018)로 본격적인 장편영화 활동에 시동을 건 그는, <파도를 걷는 소년>(2019), <마음 울적한 날엔>(2020)을 거쳐 올해 <정말 먼 곳>에서 그동안 집약한 내공을 펼쳐 보인다. 미술학도에서 연기로 전향해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서 연기의 태도를 다진 뒤, <명태> <시체들의 아침>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의 단편영화에서 꾸준히 활약한 강길우는 자신만의 궤적을 흔들림 없이 지켜온 배우다. <정말 먼 곳>에서 그가 연기한 진우는 연인 현민(홍경)과의 사랑을 곁눈질하는 사람들로부터 고통받고, 동생 은영(이상희)에게 오랫 동안 함께한 딸(김시하)을 내주어야 할 처지에 있다. 말 없는 동물처럼 묵묵히 자기 삶의 무게를 진 남자에게서 비극을 읽어내기란 쉬운 일이지만, 강길우는 그 안에 하루에도 수십번 빛과 그림자를 달리하는 풍경처럼 온갖 감정의 편린을 빼곡히 채워넣었다. 강길우만의 차분한 속도, 그리고 궁금한 깊이를 만났다. -첫 장면에서부터 양털을 깎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강원도 화천에서 목장 운영을 생업으로 하는 남자가 되기 위해 외양부터 완전히 변신했더라. =공간에서 이질감이 없어 보였으면 했다. 머리도 수염도, 기를 수 있는 건 다 길렀다가 촬영 한두달 전에 방향을 바꿔서 완전히 밀어버렸다. 태닝을 했고, 소처럼 우직한 모습이 보였으면 해서 체중도 10kg 증량했다. 배우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기 모습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스갯소리로 주변에 나를 비주얼 배우라고 소개한다. 멋있어서가 아니라, 캐릭터에 필요한 비주얼을 철저히 맞춘다는 의미로. (웃음) -진우는 이미 산속에서의 삶에 충분히 적응한 사람처럼 보인다. 박근영 감독과 촬영 전부터 오래 함께하면서 메소드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안다.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는 것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게 더 중요했다. 영화를 찍기 5~6개월 전부터 일부러 다른 작품은 하지 않고 <정말 먼 곳>에만 몰두했다. 외양부터 태도, 극중 세계가 주는 고독함까지 다른 작업과는 섞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게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딸을 키우는 역할이라, 한달 정도 농구하러 스포츠센터에 오는 아이들을 태워주는 운전기사로 일해보기도 했다. 덕분에 배우와 달리 늘 규칙적인 노동을 하는 진우의 리듬도 알아갈 수 있었다. -화천에 도착한 현민과 마중나온 진우가 포옹할 때 시간이 잠시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은 순간이 있다. 영화 내내 두 배우가 무척 친밀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홍경 배우와는 숙소에서 같은 방을 썼다. 촬영 기간인 한달 내내 거의 잠만 잘 수 있는 좁은 방에서 함께했는데, 매일 밤마다 장면과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케미스트리가 생기더라. -과거를 설명하지 않는 영화지만 진우가 게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척받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떠나온 인물임은 알 수 있었다.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실은 매우 좁고 갑갑한 곳에 갇힌 느낌으로 살지 않았을까, 그래서 말문을 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영화에서 잠깐 진우와 현민이 같은 대학에 다녔다는 정보가 나오는데 진우가 인생의 어느 시기에 자기 정체성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헤아려보았다. 진우의 과거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숨이 막혔다. -진우는 현민과 은영 외에도 목장 주인 중만(기주봉), 그의 딸 문경(기도영), 그리고 중만의 모(최금순)와 유사 가족으로서 긴밀한 관계를 이룬다. =진우를 가운데 두고 모두가 연결된 구조라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둘이 나오면 50%씩, 셋이 나오면 33%씩 나눠 가진다는 마음으로 상대 배우를 믿고, 듣고, 바라봤더니 그제야 다가오는 게 있더라. 연기의 원론에 충실했달까. (웃음) 중만도 진우처럼 혼자 딸을 키웠고, 역시 홀로 중만을 키운 할머니는 이북을 떠나온 타향민이라는 점에서 진우와 비슷하다. (할머니 캐스팅에 고심하던 박근영 감독에게 강길우가 직접 이홍매 감독의 외할머니이자 연길 출신의 연기 베테랑인 최금순 배우를 소개했다.-편집자) -연기를 하기 전엔 미술을 했고 뮤지컬에서 노래 실력도 증명하지 않았나. 발산할 재능이 무척 많은 배우인데 독립영화에서 오히려 비우고 절제하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하하, 노래는 소싯적에…. 이런 형태로 시작하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비워야 또 채울 수 있으니까. 앞으로 보여드릴 것이 더 많다는 생각에 스스로도 기대가 된다. 다만 구태여 많은 작품을 하기보다는 한 작품을 가능한 한 더 잘하고 싶다. 배우는 맡은 작품의 수가 아니라 ‘좋은 작품’으로 기억된다. -출연작 <더스트맨>도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 소속사 없이 혼자 활동하고 있는데 고민도 많아질 시기이겠다. =간간이 매체 출연 제의가 있는데 관련해 산업 속에 들어갈 때 배우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지점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체감하고 있다. 신념과 방향성을 어떻게 다듬고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할지, 그걸 믿어줄 회사와는 또 어떻게 만나면 좋을지 차근차근 고민하고 있다.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불새의 못다 한 꿈

국내의 SF 마니아들에게 한국 SF 역사상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전설적인 SF 전문 출판사 ‘불새’의 폐업을 꼽으리라. 불새 출판사의 마지막 폐업(1인 출판사인 불새는 그 이름에 걸맞게 폐업하고 부활하기를 반복했다)은 특히 나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는데, 왜냐하면 당시 불새의 차기 출간 예정작이 <코드웨이너 스미스 걸작선>이었기 때문이다. 코드웨이너 스미스(Cordwainer Smith)가 누구냐고? 그는 1950년대에 활동한 미국의 SF 작가다. 코드웨이너 스미스라는 이름부터가 일단 너무 멋있다. 게다가 이 사람, 살아온 이력을 들여다보면 깊게 빠져들 수밖에 없다. 코드웨이너 스미스의 대부는 신해혁명의 주역 ‘쑨원’으로, 이는 국제 정치 활동가였던 아버지와의 친분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도 스미스는 동아시아 정치 지도자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지내는 유년기를 보냈으리라 추측된다. 때문에 스미스는 어릴 적부터 전세계를 누비며 테러와 납치의 위협을 피해 30번 이상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고, 아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문화적 특성과 차이를 자연스레 몸에 체득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을 거쳐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무려 23살에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6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적 재능과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동아시아 외교와 군사 심리전 전문가로서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첩보원으로 중국에 파견되기도 하고,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군사 자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꾸준히 소설을 썼다. 이언 플레밍이나 존 르 카레가 그러했듯 처음에는 첩보 소설을 몇편 썼는데, 결국 SF로 전향했다고 한다. 코드웨이너 스미스라는 필명 또한 SF를 쓰기 시작하며 지은 이름이다. 외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나에게 코드웨이너 스미스는 그야말로 환상 속 유니콘 같은 존재다. 나는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너무나 간절히 사랑하지만, 40편에 달하는 그의 저작 중 내가 읽어볼 수 있었던 작품은 딱 5편뿐이다. 왜냐하면 국내에 번역 출간된 작품이 5편뿐이었으니까. 더 안타까운 사실을 알려드릴까? 아마도 여러분 중 대부분은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 해도 이 중 세편밖에 읽어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섯편의 번역작 중 <황금의 배가 오! 오! 오!>와 <수즈달 중령의 범죄와 영광>은 현재 구입해 읽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은 2007년 창간되어 2010년까지 명맥을 이어온 장르 전문지 <판타스틱>(FANTASTIQUE)의 2008년 3월호에 수록되었다. 다섯편의 작품 중 <황금의 배가 오! 오! 오!>는 내가 독자로서 가장 사랑하는 해외 SF 단편이자, 작가로서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크게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먼 미래 우주의 인류를 보호하는 집단인 ‘인류대행기관’ 시리즈에 속하는 짧은 단편인데, 그중에서도 심리전과 첩보전의 재미가 탁월한 작품이다. 행성 라움소그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인류대행기관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한척의 배를 파견한다. 황금의 배는 놀랍도록 거대하고 놀랍도록 빠르게 움직여 그 실체를 누구도 직접 확인하지 못한 비밀스러운 배다. 사람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실은 황금의 배가 지나간 후엔 언제나 그 적들이 초토화된다는 것뿐이다. 살짝만 내용을 스포일러하자면 황금의 배는 가짜다. 황금의 배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빛보다 빠르게 행성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 행성의 대기권 내부에서는 반란 세력을 와해시키기 위한 또 다른 비밀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황금의 배라는 거대하고 우스꽝스러운 상징물과, 그 과장된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극도로 효율적이고 차가운 ‘진짜 전쟁’의 그늘. 작품은 협소한 지역의 사소한 사건을 짧게 다루고 있을 뿐이지만, 이 간결한 묘사만으로도 미래 인류가 어떤 정치적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인류대행기관이 어떤 사상을 지닌 조직인지 거대한 우주 세계를 효과적으로 짐작게 하며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냉혹한 첩보와 기만적 심리전이 진득하게 배어 있는 스페이스 오페라 본연의 재미도 탁월하다. 1950년대에 이미 이런 세련된 SF를 쓴 작가가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같은 잡지에 수록된 <수즈달 중령의 범죄와 영광> 또한 탁월한 아이디어를 지닌 시간 여행 이야기다. 이 작품은 아이디어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포일러여서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할 수 없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굉장하다. 그리고 정말 귀여운 고양이들이 나온다. 매우 독창적인 방법으로 위기에서 탈출하는 수즈달 중령의 이야기를 꼭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위의 두 작품을 구해보기 힘들다면 에 실린 <스캐너의 허무한 삶>이나 <방황하는 씨’멜의 연가>를 한번 찾아보시길. 이 두 작품 또한 ‘인류대행기관’ 시리즈에 속하는 작품들로, 인류에 대한 코드웨이너 스미스만의 개성적인 고찰과 투쟁을 담고 있다. <스캐너의 허무한 삶>은 몸에 대한 짧은 단편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우주여행에서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신체와 정신을 분리한 존재들인 ‘스캐너’들이 등장한다. 스캐너들은 뇌와 몸을 완전히 분리해 센서와 기계장치를 통해서만 외부를 인식하며, 아무런 감각도 통증도 느끼지 못한다. 불법 시술을 통해 일시적으로 감각을 다시 일깨운 스캐너 마텔은 우연히 감각 차단 없이도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고, 자신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보수적인 스캐너 조직에 맞서 투쟁하기 시작한다. <방황하는 씨’멜의 연가>는 동물의 유전자가 섞여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하층민(언더 피플)들에 대한 이야기다. 하층민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믿는 대행기관 의원 제스토코스트는 고양이의 유전자가 섞인 하층민 여성 씨’멜을 만나 하층민들의 권리 신장을 이루고자 한다. 백인 남성이 손녀뻘 여성과 사랑에 빠져 시혜적으로 권익 향상을 이루어주는 이야기 구성은 아쉽지만, 작품의 발표 시기를 고려하면 다인종 다문화를 존중하고자 하는 이러한 문제의식 자체는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당시 주류 백인의 장르였던 영미 SF계에서 코드웨이너 스미스는 소수자와 약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몇 안되는 작가였고, 때문에 어슐러 K. 르 귄으로부터 진심 어린 찬사를 받기도 했다. 또 스미스는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쥐와 용의 게임>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파트너 고양이의 마성에 흠뻑 홀려버린 텔레파시 우주 비행사들의 이야기니까. 이 작품은 현재 각종 온라인 서점에서 전자책으로 판매되고 있다. 부디 뜻있는 출판 관계자께서 이 칼럼을 읽고서 분연히 일어나 불새 출판사의 못다 한 꿈을 이뤄주시기를. 오늘도 <판타스틱> 전권이 나란히 꽂힌 서고 앞에서 <코드웨이너 스미스 걸작선>의 출간을 간절히 기도해본다. 에후, 쓰고 보니 진짜 꿈같은 소리구먼. <황금의 배가 오! 오! 오!>나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