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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마인> <파친코> 작가, <굿 닥터> 제작자가 말하는 한국과 미국에서 시리즈를 만드는 법

"예산이 늘어난 만큼 드라마는 대범해지고, 영화처럼 보이길 원한다" 한국과 미국의 드라마 작가는 작업 방식이 어떻게 다를까. 작가에게 자율권은 얼마나 주어질까. 한국 드라마를 미국에서 리메이크하려면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무엇일까. 코로나19 이후 국내외 OTT 플랫폼이 급성장하고, 그로 인해 ‘K드라마’가 전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현재, 드라마 작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9월 6일부터 10일까지 온라인과 상암동 일대에서 열리고 있는 2021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주최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다큐멘터리, 영화 등 K콘텐츠의 매력과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야심찬 행사였다. 그중에서 지난 9월 8일 오전 상암동 YTN과 온라인에서 공개된 콘퍼런스 ‘한국과 미국의 작가(쇼러너)가 말하는 드라마, 시리즈를 만드는 법’에서 최근 많은 인기를 끌며 종영한 드라마 <마인>의 백미경 작가,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의 쇼러너 허수진 작가, 미국 간판 드라마 <굿 닥터> 시리즈를 제작한 이동훈 엔터미디어 콘텐츠 대표가 참석해 자신의 제작 방식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이들의 대화를 7가지 키워드로 재구성했다. 백미경 2014년 SBS 드라마 단막극 <강구 이야기>로 드라마 작가로 데뷔해 2015년 첫 장편 <사랑하는 은동아>의 각본을 썼다. 이후 <힘쎈여자 도봉순> <품위 있는 그녀> <우리가 만난 기적> <날 녹여주오> <마인> 등 여러 인기 드라마의 각본을 쓴 작가이자 자신의 제작사인 MK콘텐츠를 운영하는 제작자다. 이동훈 엔터미디어 콘텐츠 대표. 한국 드라마 <슈츠>, 간판 드라마 <굿 닥터> 시리즈 등 여러 드라마를 제작했고, 애플TV+ 창립작인 <파친코> 공동 수석 프로듀서를 맡았다. 현재 한국계 작가 라나 조의 훌루 드라마 <아메리칸 소울>을 준비하고 있고, 미국 드라마 <굿 플레이스>를 한국 드라마로 리메이크하는 작업을 하는 등 여러 프로젝트를 기획, 개발하고 있다. 허수진 폭스 텔레비전 스튜디오 시리즈 <킬링>으로 작가 경력을 시작한 뒤 시리즈 <더 위스퍼스>, 리들리 스콧이 제작한 시리즈 <더 테러> 시즌1 등 여러 시리즈에서 원작 소설을 각색했다. 애플TV+ 창립작 <파친코>의 쇼러너. 1. 한국의 드라마 작가와 미국의 쇼러너가 하는 일 한국의 메인 작가와 미국의 쇼러너는 역할이 다소 다르다. “드라마의 모든 에피소드를 혼자서 집필하는 한국”(백미경)과 달리 미국의 쇼러너에게는 그보다 “많은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다. 미국에서 쇼러너는 한마디로 “크리에이터인 동시에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허수진)다. “작가방을 이끌고 대본 집필뿐만 아니라 스튜디오로부터 받은 제작비를 운용한다. 배우 및 감독 캐스팅, 제작진 세팅, 제작 관리 등 제작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라는 게 허수진 작가의 설명이다. 미국에서 “영화를 감독의 매체, 드라마를 작가의 매체”(이동훈)라고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최근 OTT 플랫폼의 시리즈 제작이 늘어나면서 한국도 미국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공중파 드라마는 작가가 16부작이든 20부작이든 모든 에피소드를 직접 쓰기 때문에 캐스팅을 포함한 제작에 관여할 여유가 없다. 하지만 OTT에서 제작되는 시리즈의 경우 에피소드마다 러닝타임이 기존 드라마에 비해 짧기 때문에 작가가 제작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백미경)고 한다. 2. 작가와 제작진은 어떻게 협업하는가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를 만들려면 작가와 제작진간의 유기적인 협업이 관건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메인 작가 혼자서 모든 에피소드를 집필하는 한국의 경우, “작가의 대본 집필에 대한 경쟁력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지만 현장 컨트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단점”(백미경)도 발생한다.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난 촬영과 편집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것도 그래서”(백미경)다. 미국에서는 쇼러너나 에피소드를 집필한 작가가 촬영 현장에 상주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변수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게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가령 로케이션 섭외가 불발되거나 예산을 감축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대본을 수정해야 한다. 현장에서 배우가 대사 수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감독은 대본을 수정할 권한이 원칙적으로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작가가 쇼러너와 감독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하며 대처하는 것”이라는 게 허수진 작가의 설명이다. 최근 OTT 시리즈 제작이 늘어나면서 작가와 감독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과거에는 현장에서 감독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점점 커지는 추세”(허수진)다. 다만 “감독이 에피소드 대부분을 연출하는 과거와 달리 에피소드 한두개만 찍는 경우가 많아 쇼러너에게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동훈)이다. 3.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의 역할 보통 미국 드라마에서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P, Executive Producer)는 ‘대본을 쓰는 EP’(Writing EP)와 ‘대본을 쓰지 않는 EP’(Non Writing EP)로 구분된다. 같은 EP라도 허수진 작가는 전자, 이동훈 대표는 후자인 셈이다. Writing EP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쇼러너에 해당한다. Non Writing EP의 주요 업무는 아이템 기획 및 개발, 방송사 피칭 등에 집중되어 있다. Writing EP가 쇼러너만큼 현장에서 많은 권한을 가진 건 아니지만 쇼러너가 대본 집필과 제작 진행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건 Non Writing EP가 차별화된 아이템을 기획, 개발하고 방송사를 상대로 한 피칭에 성공한 덕분이다. 드라마가 시리즈 제작이 확정되는 본궤도에 오르려면 두 역할 모두 완벽해야 한다. 4. 할리우드 작가방의 작업 환경 쇼러너가 지휘하는 작가방은 적게는 예닐곱, 많게는 15명의 작가로 구성된다. 이들은 시즌의 방향을 정하고 꼼꼼하게 취재하며 자료를 조사해 각 에피소드의 대본을 쓴 뒤 정해진 시간 안에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걸 돕는다. 허수진 작가가 “폭스 텔레비전 스튜디오 시리즈 <킬링>(2011)으로 작가 경력을 처음 시작했던 10년 전보다 지금은 작가방의 작업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작가방 업무가 체계적으로 운용됐다. ‘베이비 작가’부터 ‘퍼스트 작가’까지 경력에 따라 역할이 엄격하게 구분됐다. 경력이 쌓이면 에피소드 한편씩 할당받는다. 쇼러너가 내 대본을 읽고 피드백이 적힌 메모를 준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최근 OTT간 시리즈 제작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러면서 미국의 드라마 제작비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예산이 늘어나는 건 장점이 있는 동시에 단점도 있다. “예산이 늘어난 만큼 드라마는 대범해지고, 많은 사람은 TV가 TV처럼 보이길 원하지 않고 영화처럼 보이길 원한다.”(허수진) OTT 시리즈 제작은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운용되는 작가방의 시스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OTT 시리즈의 제작 기간이 짧아지면서 대본을 집필하는 데 주어지는 시간 또한 덩달아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작가들이 대본 마감 시간에 쫓겨 촬영 현장에 나갈 여유가 없어졌다. “작가방의 규모가 갈수록 작아지고, 과거보다 많은 업무가 작가에게 주어지며, 이러한 변화는 장기적으로 젊은 작가들이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데 영향을 끼쳤다”라는 게 허수진 작가의 설명이다. 5. 리메이크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은 K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리메이크 움직임도 늘고 있다. “<마인> <힘쎈여자 도봉순> 등 전작 대부분 미국에서 리메이크 제안을 받았다”(백미경)고 한다. 하지만 미국 드라마 <슈츠>를 한국에서 리메이크했고, 미국 시리즈 <굿 플레이스>를 한국 드라마로 기획·개발하고 있는 이동훈 대표는 “시리즈 제작까지 수많은 허들을 넘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즌5 제작을 앞둔 간판 드라마인 <굿 닥터> 시리즈 또한 방송사 피칭부터 파일럿 제작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한국 드라마를 미국 드라마로 리메이크하려면 미국 방송국이나 글로벌 OTT에 수요가 있는지 파악하는 게 먼저다. 작품을 미국 문화에 맞게 각색할 줄 아는 미국 작가를 찾는 것도 과제다. “작가가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미국 정서에 맞는 세계관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 데다가 대본을 완성하면 방송국을 돌아다니며 피칭을 해야 한다. 피칭에 성공해도 곧바로 시리즈 제작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파일 럿이 성공해야 방송사가 시리즈 제작을 고려한다. 이처럼 시리즈 제작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는 게 이동훈 대표의 설명이다. 한국 콘텐츠를 리메이크할 때 “미국 제작자가 원작자의 저작권(All Right)과 권한을 요구하는데 그 협상을 얼마나 잘 끌어내는가에 리메이크의 성패가 갈린”(허수진)다. 백미경 작가는 “미국 제작사의 리메이크 작업에 원작자인 나도 당연히 참여한다. 인상적인 것은 미국은 작가로서 내 의견을 많이 궁금해하고, 작가의 저작권과 창작 권한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들로선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해야 하는 게 관건이니까”라고 전했다. 6. 한국과 미국에서 작가가 되는 법 이날 대담에서 작가 지망생들이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질문은 한국과 미국에서 작가가 되려면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하는가였다. “K콘텐츠 파워가 커진 현재 드라마 산업 상황에서 신인 작가의 끊임없는 등장이 중요한 때”(백미경)다. 백미경 작가가 작가 경력을 시작한 계기는 다소 특별하다. MBC 프로덕션 영화 시나리오 공모 우수상, SBS 극본공모전 대상, MBC 극본공모 미니시리즈 부문 우수상 등 세 군데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작가가 된 경우다. “보조 작가로 경력을 시작하든 공모전에 도전하든 누구든지 투지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게 중요하다. 요즘은 좋은 아이템을 찾는 제작사가 많기 때문이다.”(백미경) 미국 또한 작가가 되려면 많은 진입 장벽을 거쳐야 한다. 에이전트를 구해 쇼러너로부터 선택받는 게 중요하다. 허수진 작가는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질문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가 서로를 카피하기 바쁘다. 쇼러너로서 나는 유니크하고 독창적인 이야기를 쓰는 사람을 찾는다. 규칙이나 틀을 깨뜨릴 줄 아는 사람을 내 작가방의 일원으로 선택”(허수진)한다. 작가가 된 경로도, 미국과 한국의 산업 환경도 각기 다르지만, 백미경, 허수진 두 작가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이야기,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7. 드라마 서사의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작품에서 맡은 역할도, 활동하는 무대도 다르지만 백미경, 이동훈, 허수진 세 사람이 만든 드라마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마인> <파친코>), 사회적 약자(<굿 닥터>) 등 다양성(<굿 닥터> <파친코> <마인>)의 가치를 다룬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최근 할리우드와 한국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이동훈 대표는 “할리우드에서 부는 변화의 바람 덕분에 자신감이 좀더 생겼달까”라며 “현재 한국계 시나리오작가인 라나 조와 함께 한국계 미국인 입양아의 이야기를 다루는 훌루 오리지널 드라마 <아메리칸 소울>을 준비하고 있다. 10년 전이었다면 힘을 좀더 길러서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을 텐데 지금은 자신 있게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라고 전했다. 허수진 작가는 “할리우드가 다양한 의견을 듣는 원인 중 하나가 여성과 유색인종의 경제력이 좋아진 것도 있다”라며 “수십년 동안 백인 남성이 여성을 구하는 서사가 반복되다 보니 관객으로선 새로운 이야기에 목이 마른 것 같다. 유색인종인 우리 또한 불편한 진실이나 과거와 다른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백미경 작가는 “<마인> <품위 있는 그녀> <힘쎈여자 도봉순> 등 여성 서사를 주로 기획하고, 각본을 쓴 작가로서 굉장히 벅차고 중요한 질문”이라며 “<힘쎈여자 도봉순>이 성공했는데도 <품위 있는 그녀>가 두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투자받기 어려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여성 서사가 많이 나오지 않나. 그것만으로도 행복하고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인간수업' 때처럼 회피한 것

애초부터 넷플릭스는 극장과 대결한 적이 없었다. 심심한 저녁에 넷플릭스를 보는 관객의 기대와 극장을 찾아가는 관객의 기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넷플릭스 드라마의 흥행 요소는 영화보다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그것과 유사하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강점은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것은 비교적 예측 가능한 서사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는 <오징어 게임>이 가진 장점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반복되는 기시감과 클리셰들은 텔레비전 드라마로서 크게 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징어 게임>은 단순한 서사와 눈을 끄는 미장센, 끝내 다음 화를 보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그러나 나는 몇 가지 이유에서 이 드라마에 팝콘 무비 이상의 의미를 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먼저 <오징어 게임>의 장르적 단순함을 지적하고 싶다. <오징어 게임>은 <도박묵시록 카이지>나 <라이어 게임>과는 결이 다르다. <오징어 게임>의 게임은 주로 근력을 사용하는 데 반해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다중 지능을 이용하여 게임을 해결한다. 이러한 다중 지능 게임은 대부분 승률을 높일 수 있는 해법이 있다. 이 해법을 쓰기 위해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팀을 구성해야 하고, 팀원들을 설득하고, 신뢰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해법을 파악해도 이러한 사회적 관계가 없으면 그 해법은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쓸데없어 보이던 인물의 강직함이나 순박함이 신뢰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게임 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다중 지능 게임을 통해 캐릭터의 능력과 다양성을 보여주며, 사회의 메커니즘을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게임으로서의 묘미가 없는 게임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게임들은 지능을 이용하는 요소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리고 폭력이 허용됨으로써 게임으로서의 묘미를 찾기 힘들다. 게임들은 단지 인물들의 처절함을 표현할 뿐이다. 처절함이 인물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처절한 인물들은 모두 비슷하게 처절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개성은 게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잠시 중지된 틈에서 발현된다. 말하자면 <오징어 게임>속 게임은 물에 빠진 인간들의 절박한 허우적거림과 유사할 뿐, 사회의 민낯과는 관계가 없다. 게임은 오직 상우(박해수)의 민낯을 고발할 뿐이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 고작 한 인간의 악함이라니, 이것은 거대한 낭비다. 사실 <오징어 게임>의 폭력 게임은 폭력과 그에 수반되는 신체의 고통을 볼거리로 제공하기 위한 수단이다. 폭력을 볼거리로 만드는 것은 <오징어 게임>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오징어 게임>은 여기에서 나아가 신체를 낱낱이 해부해서 전시한다. 스너프 필름과 유사한 장기 적출 장면은 서사의 전체적 흐름을 깨트릴 뿐이다. 폭력 게임의 또 다른 목표는 일그러진 남성 판타지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폭력 속에서 남성은 자신이 유리한 지위를 가질 수 있고, 그 지위를 이용하여 여성의 선량한 보호자가 될 수 있다. 권력과 선을 모두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정호연)이라는 흥미로운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서도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는 생명력을 잃는다. 무엇보다 <오징어 게임>은 인물과의 적절한 거리가 없다. 게임에 다시 참가한 참가자들은 그들이 받을 상금이 다른 참가자들의 목숨에 대한 대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 이 도박에 참여했다. 이 도박에 선과 악은 없다. 모두가 가해자일 뿐이다. 다시 말해 기훈(이정재)과 상우는 본질적인 면에서 다를 바 없는 인물이다. 물론 관객은 선하지 않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인물에 몰입할 수 있다.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브레이킹 배드>가 그렇다. 이 드라마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월터가 자신이 죽고 남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마약을 제조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월터가 마약을 제조하게 된 근원적인 이유는 마음속에 자리한 열등감과 분노 때문이며, <브레이킹 배드>는 월터의 작고 뒤틀린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기에 관객은 월터를 충분히 이해하고, 월터의 상황에 몰입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월터에게 설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기훈은 그렇지 않다. 기훈은 어리석지만, 그 어리석음은 기훈에게 거리를 두게 하는 요소가 아니라 기훈의 재참가에 대한 허술한 변명일 뿐이다. 나아가 감독은 기훈을 비판할 수 없도록 해고 노동자와 오버랩하며 복직 투쟁의 트라우마를 만들어준다. 기훈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사회의 탓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훈과 같은 악인을 실제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희생자와 오버랩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드라마는 마치 기훈을 둘러싼 상황으로 인해 기훈이 어쩔 수 없이 악을 선택한 것처럼 보여준다. 이것은 <브레이킹 배드>가 월터를 다루는 방식과는 상반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감독의 전작 <남한산성>이 보여주어야 할 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차가운 국가주의의 시선을 은폐하고 있다고 쓴 적이 있다. 여기서 보여주어야 할 것이란 체스의 말처럼 죽어 나간 병졸들의 평범한 삶이었다. 영화가 인간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은 국가의 시선으로 전쟁을 관람하게 되는 것이다. <남한산성>과 달리 <오징어 게임>은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악한 주인공을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보게 한다. 악인을 마치 비에 흠뻑 젖은 강아지 같은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관객은 뜨거운 감정으로 드라마를 보게 되기에 비판의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 <오징어 게임>뿐만 아니라 한국영화나 드라마에 이와 유사한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이 그렇다. 주인공 지수(김동희)는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꿈을 꾸며 살아가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관객은 성매매 알선업자인 지수를 비판하기 어렵다. 지수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인해 관객은 지수의 악보다 지수를 둘러싼 어른들의 악만을 보게 된다. 피해자들이 사는 나라 <인간수업>의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인간수업>이 굳이 외면하는 사실은 성매매 여성이 포주에게 돈을 주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점이다. 드라마의 안온한 가상 세계 안에서 성매매를 자유로운 계약으로 그려냄으로써 포주는 악당이 아니라 선량한 보호자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다. 기훈은 끝까지 살인하지 않는 인물인데, 이것은 드라마가 기훈에게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도주로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기훈에게 자신의 목숨이냐, 살인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주기 때문이다. 이로써 기훈은 타인의 목숨값을 노리는 도박꾼이 아니라 악한 세계 속 연약하고 선량한 피해자로 남게 된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곳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확정하려는 시도는 선과 악의 경계를 지우는 효과를 가져온다. 즉, 악한 것은 이 사회이며, 따라서 이 사회의 말에 지나지 않는 내가 저지르는 악덕은 모두 사회의 것이라는 변명을 관객이 믿게 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악은 자신이 악이 아니라는 확신에 찬 사람들이 만들어낸다. 그들은 자신도 피해자라고 항변하고 있을 것이다.

대만영화의 현재를 만나다

대만 로맨스영화는 한국 극장가의 오랜 스테디셀러다.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나의 소녀시대>(2015) 등 많은 청춘영화들이 국내 관객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도 대만 청춘영화의 인기는 꺼질 줄 몰랐다. 지난 1년 동안 <남색대문> 극장판 <상견니> <해길랍> 등 여러 대만 로맨스영화가 침체된 한국 극장가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대만 영화산업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청춘영화만 있는 게 아니다. <씨네21>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한국을 찾은 대만콘텐츠진흥원(TAICCA)을 통해 대만 영화산업의 트렌드와 다양한 개성의 대만영화 신작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대만콘텐츠진흥원은 2019년 6월 설립된 대만 문화부 산하의 기관이다. 영화뿐 아니라 텔레비전, 대중음악, 출판, 패션, 예술, 문화 기술 등 대만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대만콘텐츠진흥원은 대만 영화산업의 성장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뉴스를 발표했다. 대만의 4대 멀티플렉스가 모여 만든 법인 굿 핸즈 필름(Good Hands Film)과 함께 제작사 볼 필름을 설립해 대만 자국영화를 직접 제작, 배급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가 극장과 함께 제작사를 차리고, 그 제작사를 통해 매년 3~5편의 자국영화를 만들고 글로벌 OTT와 극장에 배급하겠다는 발표는 한국 영화산업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딩샤오칭 대만콘텐츠진흥원 회장은 “볼 필름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관객의 인사이트와 마케팅 트렌드를 반영할 거고, 이러한 시도는 대만 영화 및 TV 산업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직접 나선 셈이다. 장르가 다양해진다 - 다큐멘터리부터 범죄, 액션까지 이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하고 있는 대만영화의 현재는 얼마 전 막을 내린 제26회 부산영화제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부산영화제에 초청받은 대만영화는 총 10편(영화제 초청작 9편과 아시아 프로젝트 마켓 선정작 1편)이다. 사실 한국 관객에게 대만영화 하면 에드워드 양, 허우샤오시엔 등 두 거장으로 상징되는 대만 뉴웨이브나 <남색대문>(감독 이치엔, 2002), <말할 수 없는 비밀>(감독 주걸륜), <상견니>(감독 황천인, 2019, 왓챠에서 공개된 버전은 21부작이고 국내 극장가에선 12부와 13부를 극장판으로 상영된 바 있다. <상견니>는 국내에서도 리메이크하기로 확정됐다.-편집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감독 구파도) 같은 청춘 로맨스영화가 익숙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부산에서 공개된 작품들을 포함한 최근 대만영화는 장르가 다큐멘터리, 스릴러, 범죄, 드라마, 액션 등으로 다양하고, 장르의 틀 안에서 젊은 감독의 개성과 에너지를 과감하게 드러내며, 대만 사회의 현실과 문제를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먼저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서 상영된 영화 <옌 씨의 수행>은 중산층 가정에서 살아가는 중년 여성 옌 부인의 억눌린 감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복수극이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큰 응어리가 자리하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의 과거 내연녀가 치매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남편에게 복수할 길을 찾는다. 촬영감독이기도 한 치엔시앙 감독은 중년 여성의 무미건조한 일상과 거세된 욕망을 섬세하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청몽홍, 차이밍량 등 대만 감독과 오랫동안 작업한 베테랑 배우 천샹치는 옌 부인의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모습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역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서 선보인 영화 <머니보이스>(감독 이린보천)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이주한 청춘의 사랑과 경제적 고민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LGBT 서사다. 애인 샤오레이와 동거하는 페이(가진동)는 성매매로 돈을 벌어 시골 마을에 사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어느 날 페이가 고객으로부터 폭력을 당하자 샤오레이가 그를 찾아가 복수를 한다. 하지만 고객의 부하들이 샤오레이를 찾아가 보복하자 페이는 샤오레이를 피해 그곳을 떠난다. 그로부터 5년 뒤 페이는 또 다른 도시로 이주해 접대부 생활을 이어간다. 경제적 문제 때문에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청춘의 사랑과 도시에서 겪게 되는 경제적 문제 그리고 고향을 떠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시골의 전통적 가치관이 이야기와 인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스타 배우 가진동이 게이 청년 페이를 연기했다. <머니보이스>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부문에 초청됐다. 와이드앵글 부문 다큐멘터리 경쟁에 초청받은 <야생 토마토의 맛>(감독 라우 켁 후앗)은 대만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2·28 사건을 스크린으로 불러낸 다큐멘터리다. 1947년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는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 패배하고, 대만으로 도주했다. 국민당 정부가 대만을 장악하기 위해 고압적인 정책을 실시하자 민심이 폭발해 가두 시위를 벌인다. 정부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2월28일부터 5월16일까지 조직적으로 국민을 대량 학살했다. 대만 계엄령의 시발점이 된 이 사건은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까지 대만 사회에서 언급되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야생 토마토의 맛>은 2·28 사건에 대한 가오슝 지역 사람들의 집단 기억을 끄집어낸다. 일본군의 중요한 군사 지역이던 가오슝 지역의 역사부터 2·28 사건의 피해자와 그들의 자손까지 이어지는 깊은 상흔을 어루만진다. 역시 다큐멘터리 경쟁작인 <크로싱 엔드>(감독 시요룬)는 2002년 한 커플이 다리 위에서 이별을 하는 과정에서 여자가 추락해 사망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범죄 다큐멘터리다. 남자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구급차를 부르지만, 여자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죽는다. 목격자가 최초의 진술을 뒤집고 그들이 여자를 난관 아래로 던지는 걸 봤다고 진술하면서 남자와 그의 친구는 수감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시요룬 감독은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무고한 사람을 지원하는 민간 조직인 ‘대만 결백 프로젝트’와 함께 이 사건을 재구성한다. 영화는 대만 결백 프로젝트가 두 남자가 살인사건의 범인인지를 입증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억울하게 감옥에서 10여년을 보내게 된 이 사건이 두 남자와 그들의 가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공들여 다룬다.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시키는 힘이 있는 작품.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받은 <2020년의 비>(감독 리용차오)는 리용차오 감독이 미얀마의 옥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자 젊은 가장 아티안과 그의 가족의 사연을 7년 동안 카메라에 기록한 이야기다. 두 아들과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티안의 삶은 고단하다. 수백명이 사망한 광산 붕괴 사고 때문에 늘 불안감에 시달리며 일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미얀마의 폭우는 온 집을 물에 잠기게 한다. 게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자신을 포함해 아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될까봐 걱정이 많다. 아티안의 친형이기도 한 리용차오 감독은 아티안, 어머니, 조카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위험에 노출된 개인의 노동과 생활이 국가와 자본의 구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실을 강조한다. 동시대 관객의 관심사를 탐색하다 이 밖에도 <다리>(감독 창요성)는 댄서 옥영(계륜미)이 사고 때문에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남편의 다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다. 아내가 남편의 다리를 찾는 현재와 부부가 처음 만나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과거가 교차로 오가며 전개된다. 범죄, 스릴러, 코미디 등 여러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서사를 흥미진진하게 펼치는 에너지가 있다. 대만의 스타 배우 계륜미가 남편의 다리를 찾는 아내를 연기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짱개>(감독 장지위)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화교 청춘을 그린 영화다. <가타오 외전: 최후의 방랑자>(감독 강서지)는 어린 시절 함께 성장했던 두 남녀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누아르영화로 넷플릭스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쓰레기 도시의 리프>(감독 치엔이)는 16살 소년 리프가 가출해 쓰레기 도시로 가서 30년 된 비닐봉지 배기를 만나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는 애니메이션이다. 리프와 쓰레기 동료들을 해방시킬 배기의 모험을 통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듀나 유니버스를 위한 안내서

당신은 ‘듀나DJUNA’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시는지? 아무래도 <씨네21>의 독자라면 영화평론가 듀나를 가장 먼저 떠올릴 가능성이 높겠다. 또 어떤 이들은 정체를 감춘 그의 익명성에 집중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이들은 그냥 트위터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풀어놓는 토끼 정도로 생각하고 계실는지도 모르겠다.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듀나의 이미지는 ‘SF 작가’다. 아니, SF의 전설이다. 아니, 아니, 그걸로도 부족하다. 듀나는 이 땅에 현현한 SF의 화신…. 음음, 팔불출 같은 팬심 표출은 이 정도로 하고, 아무튼 오늘은 SF 작가 듀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듀나는 한국 SF 문학 계보에서 중요한 작가 중 하나다. 그는 90년대 PC통신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100편이 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현재도 수많은 SF 창작자들을 자신의 중력에 가둬두고 영향력을 발산하는 적색거성 같은 존재다. 사실상 듀나는 한국 SF의 역사를 관통하는 기둥과 같다. 장담하건대 만약 당신이 SF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고 파고들기 시작한다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듀나의 장(場) 안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 사석에서 이렇게 듀나를 소개하고 나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한다. “듀나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뭐부터 읽으면 되나요?” 자, 여기서부터 생각이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당신의 취향을 모르기 때문이다. 듀나의 세계는 깊고 방대해 당신이 좋아할 만한 작품 하나쯤은 마련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어떤 작품부터 추천해야 할지 곤란할 때가 많다. 설명의 편의상 듀나의 작품 세계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작품을 추천해보려 한다. 미리 말해두건대 이는 공인되지 않은 구분법이며 학술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 21XX년 1학기 K대 교양과목인 ‘고전 한국 SF 문학의 이해’ 교재에 따르면 이 모든 리스트는 듀나의 극초기 작품으로 분류될 뿐이다. 초기 듀나 세계의 정수를 탐구하고 싶다면 단편집 <태평양 횡단 특급>을 추천한다. 어떤 팬들은 이 책이야말로 범접할 수 없는 듀나의 마스터피스라 칭하기도 하는데,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도 특히 단편 <태평양 횡단 특급>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달리는 국제선 기차 위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책에 수록된 <끈>과 <기생>을 좋아하는 편이다. 초기 듀나 작품의 특징을 아주 단순화해 정의하자면 영미 장르문학의 장르 관습과 한국문학의 세련된 문장이 결합된 형태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레퍼런스 삼을 국내의 SF가 전무하다시피한 상황에서 듀나는 이 둘을 재료로 자신의 기반을 다졌다. 과거 작품들이 쌓아올린 장르 관습에 대한 충분한 애정과 능숙한 활용은 듀나 문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만약 시기적으로 가장 앞에서부터 탐구하고 싶다면 단편집 <면세구역>부터 읽으면 되겠다. <태평양 횡단 특급>에 비해 스타일이 들쭉날쭉하지만 이 책에서만 읽을 수 있는 좋은 작품들도 존재한다. 더 앞선 시기에 출간된 단편집 <나비전쟁>도 있긴 한데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게다가 <면세구역>과 수록작이 반쯤 겹친다. 내가 보유하지 못한 유일한 듀나의 단행본으로, 도서관에서 겨우 찾아 읽었다. 이쯤 되면 거의 사료의 영역인 듯하다. 고고학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다면 중고 서점을 뒤져보는 것도 좋겠다. 초기 듀나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대리전>을 추천한다. 이 작품은 듀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인 ‘부천’이 배경인데, 한국이라는 무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인 것 같다. 부천 사람들의 몸에 통신으로 접속한 외계인들의 조용한 전쟁을 다룬 이 작품은 단편과 장편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하고, 둘 다 훌륭하고 재미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지는 극히 한국적이면서도 살짝 기괴한 유머 코드는 이후 여러 작가들의 어레인지를 거치며 한국 SF의 보편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대리전>을 통과하면 여러분은 이제 듀나 세계의 중세로 접어들게 된다. 본격적으로 듀나만의 유니크한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시기다. 모두가 동의하진 않겠지만 나는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중기 듀나의 시작점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동명의 단편집에 수록된 이 단편은 ‘링커 우주’라는 세계 설정을 처음으로 선보인 역사적인 작품이다. 링커 우주는 ‘링커 바이러스’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작품들을 총칭하는데, 감염된 생물의 용불용설적 진화(생물에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있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학설)를 촉진하는 이 특수한 바이러스를 재료로 듀나는 다양한 실험적인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진화가 극단적으로 촉진된 기괴한 우주에서 인간을 규정해온 틀은 모조리 박살나고, 세계는 꿈틀대는 변모와 도태의 장으로 바뀌어간다. 듀나 특유의 차갑고 관조적인 시선이 몹시도 매력적이다. 링커 우주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시리즈인 ‘배터리 우주’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주위 사람들을 초능력자로 만들어주는 ‘배터리’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줄거리가 펼쳐지는 일군의 시리즈는 일종의 성장담이다. 단, 여기서 성장하는 건 인류 그 자체지만. 100편이 넘는 듀나의 작품 중에서도 내가 최애하는 <민트의 세계>가 바로 배터리 우주에 속하는 작품이다. 한국을 무대로 민트라는 정신감응자(일종의 텔레파시 능력자)와 친구(?)들이 모험을 벌이는 일종의 하이스트물로, 듀나의 단편작들이 가진 매력에 깊고 흥미로운 장편 서사가 더해졌다. 특히 후반부 액션에서 결말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너무 좋다. 나는 여전히 이 작품보다 매혹적인 SF를 알지 못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얼마 전까지 나는 링커 우주와 배터리 우주를 듀나의 ‘후기’ 작품이라 소개했었다.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기준으로 듀나는 전기와 후기로 나뉘며, 전기 듀나와 후기 듀나 중 어느 쪽을 좋아하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취향이 갈린다고 믿었다. <대본 밖에서>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SF 전문 무크지 <오늘의 SF> 창간호에 게재된 이 짧은 단편은 충격적이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이 작품의 구조를 파고 또 파며 분석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후기’로 분류하게 된 이 작품의 특징은 ‘비움’이다. 드라마 속 세상을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인 <대본 밖에서>는 앙상한 뼈대만 남을 때까지 이야기의 요소를 비워내고 또 비워낸다. 어디까지 비워내도 이야기로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으로 보일 정도다. 그럼에도 이 짧은 이야기는 완벽하게 성립한다. 막대한 경이감까지 일으킨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라지는 미로 속 짐승들> <불가사리를 위하여> 같은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같은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듀나는 새로운 페이즈로 접어든 것이 분명하다. 30년간 내리 소설을 써온 사람이 여전히 변모하고 진화하고 있다니. 듀나야말로 링커 바이러스의 본체가 아닌지. 우리는 아직 듀나의 끝을 모른다. 여전히 장르의 최전방에서 한국 SF를 첨단으로 이끄는 거대한 중력. 그게 듀나다.

3인3색 비평, 듀나 평론가의 '듄'

원작자를 넘어설 각오가 필요해 프랭크 허버트의 <듄>영상화와 관련된 신화와 진실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1965년에 처음 출간된 뒤로 두 가지 미신을 끌고 다녔다. 하나는 SF 역사상 최고 걸작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화가 불가능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듄>이 최고의 SF 소설 또는 소설 중 하나라는 주장은 거의 직관적으로 반박될 수 있다. 일단 몇 페이지만 읽어도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대단한 야심작이기는 하다. 적어도 첫 번째 책은 재미있다. 장르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하지만 걸작이 되기엔 문제가 많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 책이 결국 한 무더기의 패스티시 덩어리라는 것이다. <듄>의 세계는 어떤 곳인가. 인류가 항성간 여행을 통해 전 은하계를 커버하는 제국을 건설했는데, 그 세계에서 백인 남자들이 공후백자남 놀이를 하며 만년의 시간을 날리고 있다. 이 자체가 통탄할 일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의 사고방식, 행동, 언어는 아서왕 이야기와 <젠다성의 포로> 사이에 있는 잡다한 옛 문학에서 가져와 SF 설정에 얼기설기 엮은 것 같다. 한마디로 이 세계의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대신 옛날 사람 흉내를 내고 있다. 얼마 전에 SNS에서는 맘스터치에서 치킨버거 주문하는 과정을 성경 말투로 푼 게시물이 인기를 끈 적 있는데 그걸 생각하시면 되겠다. 그 결과물은 재미있지 만 보기만큼 믿을 만하지는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원작을 고스란히 옮기면 걸작이 되나? 둘째로, 이 책은 당시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낡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 백인 남자가 오리건에 있는 모래언덕과 (아마도)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감명받아 만든 가짜 아랍 문화와 가짜 백인 메시아에 대한 멋진 이야기로 당연히 제국주의 뽕에 찬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방향으로 흐른다. 소설이 종교와 철학을 다루는 방식은 20세기를 거쳐 21세기의 험악한 시대에 도달한 우리에겐 무책임하고 나태해 보인다. 셋째, <듄>은 그렇게까지 좋은 시리즈가 아니다. 성공적이었던 1편 뒤에 나온 여러 편의 소설들은 정도 차가 있지만 대부분 1편 뒤에 긴 꼬리처럼 달라붙은 사족이었다. 허버트 사후에도 이 시리즈는 계속 이어지고 있고 그 책들은 아직 안 읽어 봤는데 읽는다고 해서 내 의견이 특별히 바뀔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듄>의 세계는 한권의 긴 책으로 충분히 소화될 수 있는 곳이었다. <듄>이 제대로 영화화하기가 불가능한 작품이라는 주장의 반박은 심심할 정도로 쉽다. 지금 1부가 나온 드니 빌뇌브의 <듄>은 이 소설의 세 번째 각색물이다. 사람들이 앞의 두편에 만족하지 않을 수는 있는데, 같은 소설이 세편이나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면 (심지어 드라마는 속편도 나왔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각색이 힘든 작품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듄>의 각색 불가능성에 대한 신화 절반은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가 만들었다. 1970년대에 호도로프스키는 <듄>을 어마어마한 길이의 대작영화로 만든다는 야심을 품었지만 장엄하게 실패했고 그 영화는 만들어지지 못한 영화 중 가장 걸작이라는 애매한 명성을 얻었으며 심지어 이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까지 나왔다. 상상 속 모래행성에서 호도로프스키가 벌인 모험은 좋은 이야깃거리다. 하지만 영화는 타협 속에서 만들어지는 협업 예술인데, 호도로프스키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타협을 안 했다. 다시 말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애물은 원작 소설이 아니라 호도로프스키 자신이었다. 그 비전에 충실한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쳐도 영화가 훌륭하거나 재미있었을 가능성도 별로 높지 않다. 그리고 보다 현실적인 예술가가 타협의 과정을 통해 <듄> 영화를 만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듄> 영화는 1984년에 나왔다. 그해 최악의 흥행 실패작이고 데이비드 린치의 유일한 망작이다. 이 작품 역시 이 소설의 각색 불가능성에 대한 증거로 종종 불려온다. 이 영화의 혼란스러움, 잡다함, 조잡함의 상당 부분은 1980년대 관객에게 원작의 방대하고 복잡한 월드 빌딩의 재료들을 극영화의 러닝타임 안에서 전달하기 위해 무리한 수를 둔 결과였다. 하지만 옹호할 구석이 없는 건 아닌데,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두 번째 <듄> 각색물은 <사이파이 채널>에서 방영된 3부작 미니시리즈다. 이 작품에서부터 각색 불가능성에 대한 미신은 조금씩 시들어간다. 역시 그렇게까지 걸작은 아니고 저예산 때문에 종종 애를 먹지만 프랭크 허버트의 방대한 세계의 정보를 영상 매체로 옮겨 설명하기 어렵다는 미신은 거의 완벽하게 깨진다. 심지어 이 시리즈가 그린 아라키스의 세계는 나중에 나온 빌뇌브의 세계보다 다채롭다. 빌뇌브의 아라키스가 영웅 서사를 위한 배경이라면 미니시리즈 버전 아라키스는 실제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느껴진다. 미니시리즈의 가장 큰 이점은 물론 러닝타임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점도 있었으니 그동안 일반 대중이 <듄>과 같은 이야기를 훨씬 이해하기 쉬운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건 ‘각색 불가능성’에 대한 미신과 상관없이 <듄> 영화가 은근슬쩍 많이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이 여가에 익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타워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심지어 <비틀쥬스> 같은 영화들은 다 어느 정도 프랭크 허버트의 영향 아래서 만들어진 <듄> 영화였다. 이제 사람들은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SF 세계 사람들이 사막에서 모래충을 타고 질주하거나 칼싸움을 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게 되었다. 허버트의 <듄>은 빌뇌브보다 린치의 세계 자, 이제 얼마 전에 개봉된 빌뇌브 버전 이야기를 하자. 아직 2부작 영화의 1부이긴 하지만 이 작품이 지금까지 나온 <듄> 각색물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액션이 많은 2부는 더 재미있을 것이고 빌뇌브가 두 번째 영화를 작정하고 망칠 가능성은 비교적 낮다. 하지만 이 영화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결정판’인가? 하면 신기하게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빌뇌브의 개성이 허버트의 개성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빌뇌브가 아무리 청소년기 때부터 <듄>의 팬이었다고 해도, 빌뇌브가 상상하는 <듄>은 허버트의 <듄>과 많이 다르다. 거의 흑백영화에 가까운 화면은 경건할 정도로 절제되어 있고 당황스러울 정도로 안 웃긴다. 후자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팬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듄>의 충실한 각색물은 완전히 안 웃길 수가 없는 설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빌뇌브의 영화가 이렇게 작정하고 안 웃긴다는 것은 원작의 중요한 무언가, 즉 바로크적 성격이 청소되었다는 뜻이다. <듄>은 좀 웃기고 괴상하고 어처구니없고 종종 형편없이 못생겨야 정상이다. 허버트가 꿈꾼 세계는 빌뇌브의 세계보다 린치의 세계에 가깝다. 린치 영화의 괴상함과 조악함은 오히려 이 영화가 의외로 허버트의 비전에 충실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허버트는 평론가들이나 관객이 뭐라고 하건 린치 영화를 꽤 좋아했다고 한다. 허버트의 진짜 버전이 무엇이건 빌뇌브가 이를 무조건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온 1편만 해도 허버트의 주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기미가 보인다. 21세기에 <듄>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만들려면 원작자를 넘어설 각오를 해야 한다. 그 때문에 원작자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베네 게세리트 시리즈인 <시스터후드>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겠지만.

디즈니+, 마블 히어로와 함께 한국 출격!

드디어 그날이 왔다. 11월12일 월트디즈니컴퍼니의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가 한국에서 공식 출시됐다. 월트디즈니컴퍼니는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및 미디어 기업이다. 전세계 1억160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디즈니+는 1만6천 회차 이상의 영화 및 TV프로그램을 구비하고 있으며 이미 61개국에서 서비스 중이다. 마블 스튜디오의 <완다비전> <로키> <팔콘과 윈터 솔져>와 <스타워즈>시리즈 <만달로리안> 등 대표적인 오리지널 시리즈가 오직 디즈니+를 통해서 공개된다. <씨네21>에서는 디즈니+ 상륙과 함께 독점 콘텐츠인 <완다비전> <로키> <팔콘과 윈터 솔져>를 미리 살펴봤다. 김소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DTC 사업부 총괄 상무의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향후 디즈니+가 한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경쟁력을 키워나갈지 방향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스트리밍 서비스 플랫폼의 무한경쟁과 함께 무엇을 볼지에 대한 우리의 즐거운 고민도 시작됐다. 파도가 닥쳐도 왕좌는 흔들리지 않았다. 월트디즈니컴퍼니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서도 2020년 기준 654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는 다소 충격을 받았지만 그 여파는 의외로 그리 크지 않았다. 비결은 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빠른 사업 확장에 있다. 극장과 파크 등 오프라인 부문이 타격을 받은 만큼 스트리밍 서비스 부문으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내용물은 이미 확보하고 있으니 플랫폼과 채널의 신속한 전환이 가능했던 셈이다. 이처럼 디즈니+의 강점은 이미 확보하고 있는 방대한 콘텐츠 라이브러리에 있다. 오랜 기간 사랑받았던 디즈니의 영화 및 TV프로그램뿐 아니라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6개의 핵심 브랜드를 중심으로 풍성한 라이브러리를 통해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구비하고 있다. 그 밖에도 <킹스맨> <위기의 주부들> <그레이 아나토미> <심슨 가족> 등 ABC와 20세기 스튜디오, 디즈니 텔레비전스튜디오, FX 프로덕션, 서치라이트 픽처스가 제작한 유수의 스타 브랜드들이 포진해 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월트디즈니컴퍼니는 10월14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위한 향후 콘텐츠 라인업을 공개했다. 이날 발표에서 신규 콘텐츠 라인업을 소개한 제시카 캄 엔글 월트디즈니컴퍼니 아태지역 콘텐츠 및 개발 총괄 역시 “디즈니의 콘텐츠 전략은 우리의 브랜드 파워, 규모, 우수한 창의성에 대한 목표를 기반으로 아태지역 최고의 스토리텔러들과 협력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디즈니는 향후 몇년간 디즈니+를 통해 글로벌 브랜드 콘텐츠, 스타 브랜드를 통한 일반 엔터테인먼트, 아태지역 각국의 현지 언어로 제작된 오리지널 작품들까지 다수의 신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 제작사와 함께 제작 예정인 프로그램으로는 <런닝맨>의 스핀오프인 <런닝맨: 뛰는 놈 위에 노는 놈>, 배우 정해인과 블랙핑크 지수 주연의 <설강화>, 강다니엘의 첫 연기 데뷔작 <너와 나의 경찰수업>, 이수연 작가의 미스터리 스릴러 <그리드>, 웹소설 원작의 드라마 <키스 식스 센스>,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대형 프로젝트 <무빙> 등이 있다. “디즈니의 글로벌 역량과 아태지역 최고 콘텐츠 제작자들을 연결함으로써, 디즈니+에서 독창적인 스토리를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는 루크 강 월트디즈니컴퍼니 아태지역 총괄 사장의 비전은 이미 구체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실현 중이다. 콘텐츠 왕국 디즈니를 등에 업은 디즈니+의 진격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되는 가운데, 향후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본격적인 경쟁의 막이 올랐다. 디즈니+ 사용법 디즈니+는 월 9900원 또는 연간 9만9천원의 구독료로 LG유플러스 IPTV 및 모바일, LG 헬로비전 케이블TV, KT 모바일을 통해 즐길 수 있다. 최대 4대의 기기에서 동시 접속이 가능하고 최대 10개의 모바일 기기에서 다운로드를 지원한다. 시청 제한 기능을 통해 자녀들을 위한 인터페이스 등 각 사용자에 맞춰 프로필을 설정할 수 있으며, 그룹워치(Group Watch) 기능으로 가족 및 친구들과 온라인에서 함께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11월12일부터 디즈니+ 공식 웹사이트 혹은 안드로이드 및 iOS 앱을 통해 가입 가능하다.

순정이 다 뭐여

2020년 여름이 1973년 이후 최장 장마를 기록한 해라는 걸 기억하는가. 50일 넘게 장맛비가 쏟아지는 지역도 있었는데, 영화인들에게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슬럼프에 빠진 시인과 동화작가를 꿈꾸는 시골 농부의 동거를 그린 <싸나희 순정> 현장도 장마로 인해 여러 번 연기됐다. 주인공 시인 유씨를 연기하는 전석호 배우가 “장마가 계속되는 바람에 더이상 촬영을 미룰 수 없는 마지노선에 와 있다. 배수의 진을 쳐놓고 찍는 중”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장마가 끝나자 본격적인 무더위가 이어졌다. 총 23회차 중 13회차에 접어든 8월16일, 촬영지인 전라북도 고 창군은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스마트폰은 기온 33도를 가리켰다. <싸나희 순정>은 시를 쓰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유씨가 충동적으로 기차에 올랐다가 충청도 시골 마을 마가리에 도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순박한 시골 주민 원보(박명훈)의 집에 얹혀살던 유씨는 팬티 바람으로 방바닥에 누워 있다가 차림 그대로 동네 슈퍼인 ‘우주 슈퍼’를 찾아 혼이 나는데, 34신은 우주 슈퍼에서 시작해서 널따란 논으로 이어졌다. 도망치는 유씨가 논두렁을 뛰어가고 자전거를 타고 논을 지나던 원보도 그 모습을 지켜본다. 벼에 아낌없이 햇볕을 쬐어주기 위해 나무도 그늘도 없는 논두렁에서 서서 촬영 현장을 메모하고 있자니 굵은 팥죽땀이 줄줄 흘렀다. 30분 정도 서 있었나, 머리가 띵할 정도로 더워서 시계를 보면 시간이 5분 정도 흘러 있을 정도였다. “덥죠? 오늘은 그래도 좀 시원한 편이에요.” 막 첫신을 마친 박명훈 배우가 땀을 닦으며 웃었다. <기생충>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순박한 시골 농사꾼이 된 그는 앞머리를 내리고 고구마색 양말과 샌들을 신고 있었다. 그나마 바람이 불어서 시원하다는데, 벼와 함께 익어가며 연기하는 배우들이 대단했다. 맨다리를 내놓고 난감한 상황을 연기하는 전석호 배우의 목덜미에도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그의 오목한 인중에도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오늘 촬영은 유씨가 마을 사람들하고 말을 섞게 되는 시작점”이라며 “소소한 이야기 속에서 관객이 웃을 수 있는 유머스러운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11월25일 개봉하는 <싸나희 순정>은 동명의 스토리툰(글 류근, 그림 퍼엉)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여성의 신체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을 다룬 데뷔작 <코르셋>으로 90년대 말 충무로에서 활약한 정병각 감독이 연출을 맡아 약 23년 만에 돌아왔다. 01 “그거 빤스 아녀?” “팬티 아닙니다. 반바지예요!” “이 변태 자식이.” 유씨가 팬티만 입고 논가를 달리자 마가리 주민이 대 빗자루를 들고 뒤쫓아온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는 한여름 낮. 뜀박질이 여러 번 이어진다. 그렇게 탄생한 34신은 영화에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전석호 배우는 이 소동에 대해 “이 사건을 계기로 유씨가 마가리 사람들과 친해진다”라고 설명했다. 02 영숙(김재화)이 운영하는 우주 슈퍼 안. 고창의 한 슈퍼가 <싸나희 순정>의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탈바꿈했다. 슈퍼 안쪽에 자리한 안방에서는 주인장의 노모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싸나희 순정> 제작진은 영화 촬영을 이어갔다. 마가리 주민들 사이로 섞여들어가는 유씨와 같은 현장이었다. 03 “정병각 감독님은 영화계의 대선배님이자 선생님이잖나. 예순이 넘어 오랜만에 연출하시는데 정말 열정적이다. 이런 한여름에도….”(박명훈) 한국영화아카데미 3기인 정병각 감독(오른쪽)은 <코르셋>(1996)으로 주목받은 뒤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와 함께 10대 영화 <세븐틴>(1998)을 연출했다. 04 “저 보러 오셨어요?” “그런 거 아녀유.” “그럼 저 바람 좀 쐬어주실래요?” 금붕어 어항을 보러 카페를 자주 찾는 원보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 카페 사장(심은진)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 산책을 하자고 제안한다. 아이돌 그룹 베이비복스 출신 심은진 배우가 카페 사장으로 변신해 원보와 미묘한 관계에 놓인다.

비틀린 신념 속 선택의 문제를 고민한다

<지옥> 4부부터는 완전히 달라진 세계가 펼쳐진다. 정진수 의장(유아인)이 사라지고 난 뒤 새진리회를 믿는 사람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사람들은 지옥의 고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여기 공포에 의해 억압되는 세상에 던져진 한 부부가 있다. 방송국 PD인 배영재(박정민)는 새진리회가 탐탁지 않다. 바쁜 업무 탓에 이제 막 출산한 아내 송소현(원진아)의 곁을 지켜주지 못할 때 죄 없는 아기에게 지옥의 고지가 내려진다. 절망에 좌절할 틈도 없이, 이들 부부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새진리회의 손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미쳐버린 세상 속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박정민 배우는 “부산국제영화제 때 3화까지만 공개됐는데 역할을 상세하게 소개해드릴 수 없어서 아쉬웠다. 부산에서 반응이 좋았는데 내가 나오는 4화 이후로도 괜찮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송소현 역의 원진아 배우는 “<지옥>은 볼거리고 많고 무서우면서도 재밌는 작품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 보고 난 후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질 것이다”이라며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진지한 작품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했다. 재미와 의미, 양쪽을 모두 성취한 새로운 시리즈 <지옥>이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두 배우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옥>에 합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박정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19) 촬영 차 태국에 있을 때 연상호 감독님에게 연락이 왔다. <지옥>이란 웹툰 연재를 시작했으니 한번 봐달라는 거였는데, 몇주 후에 다시 연락이 와서 이걸 넷플릭스 시리즈로 만들 건데 혹시 출연할 생각이 있냐고 물으셨다. 아직 연재가 되지 않은 분량에 나오는 인물인데, 4부 이후의 주인공이고 뒷부분이 더 재밌다며 나를 설득하셨다. 사실 3부까지만 봐도 너무 흥미진진한 내용이라 뒤를 더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물론 나중에 완성된 시나리오를 전달하시면서 감독님이 내게 사과하셨다. 다음에 꼭 더 좋은 역할을 주겠다고. (웃음) 농담이고, 너무 좋았다. 이 시대의 소시민을 대변하는 평범한 인물이라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원진아 나도 뒷부분 내용이 다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1, 2, 3부의 시나리오만 봤다. 내 역할은 있지도 않았지만 거기까지만 읽어도 좋았다. 다른 배우가 캐스팅되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조급해졌는데, 나중에 내가 맡게 된 송소현이 어떤 캐릭터인지 확인했을 때 역시나 만족스러웠다. 박정민 배우가 맡은 배영재 PD는 원작과 성격이 가장 많이 달라졌다. 까칠하게 구시렁거리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따라올 자가 없다. 박정민 배영재는 새진리회가 지배하는 비틀린 현실과 그들에 좌지우지되는 언론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방송국 PD다. 원치 않게 새진리회와 엮이게 되고 그 안에서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판타지라고 볼 수 있는 장르 안에서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처럼 그려보고 싶었다. 다만 틀에 박힌 캐릭터로 보이고 싶진 않았다. 갑자기 사고처럼 닥친 불행 앞에서 믿고 있던 것들이 다 무너질 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나름의 방식을 찾아보려 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보여드려야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배영재의 아내인 송소현은 이제 막 출산한 상태라 바깥 활동이 거의 없다. 그런 만큼 혼자 무너져내리는 상황을 표현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원진아 소현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지옥의 고지가 떨어지면서 혼란과 절망을 겪는 인물이다. 살아온 사연이 극중에 짧게 표현되는데, 소현의 경우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더 큰 아픔을 겪는다. 항상 작품을 찍고 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여전히 공부하고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다만 현장에서 연기할 때만큼은 그 상황에 모든 걸 쏟을 수 있도록 집중하려 노력한다. 송소현은 워낙에 극한상황에 놓인 인물이라 애매한 건 없었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끝없이 감정이 무너져내리는 인물인데 흐름에 맞게 잘 가고 있는지, 조절을 하고 있는지가 고민이었다. 감독님이 그 부분을 잘 잡아주셨다. 원진아 배우의 경우 몇번의 오열하는 장면에서 거의 혼자 다 이끌고 간다. 박정민 맞다. 저랑 감독님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5부에 나오는 원진아 배우의 독백은 앞으로 나올 신인배우들의 레퍼런스가 될 것 같다. 정작 그걸 보고 있는 나는 뭘 해야 하지 싶을 정도로 집중력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가지고 있는 감정이 풍부하고 어떤 환경에 가져다놓아도 순식간에 집중한다. 놀랍고 부럽다. 원진아 데뷔할 때 즈음 연기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다 <파수꾼>을 보면서 꿈을 키웠을 거다. 박정민 선배의 연기를 보며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감탄했고 언젠가 꼭 한번 같은 작품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이번에 함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성덕이 된 기분이었다. <부산행> 때부터 연상호 감독의 현장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걸로 유명하다. 이번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원진아 그 말 그대로다. 이렇게 빨리 끝나는 촬영 현장도 있구나 싶어 놀랐다. 항상 종료시간보다 조금 일찍 끝났던 기억이 있다. 감독님 머릿속에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림이 명확했기 때문에 필요한 것만 찍었다. 자세한 디렉팅보다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좋은 것과 아쉬운 것에 대한 리액션을 분명하게 해주셨다. 현장에 있는 가장 좋은 관객이다. 그걸 보면서 신마다 확신을 가지고 연기할 수 있었다. 박정민 <염력>(2017) 때도 워낙에 즐거운 현장, 가고 싶은 현장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가 많았다. 애니메이션했던 덕분인지 명확한 비전이 있다.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배우 나름의 표현과 해석을 존중해주신다. 이번에도 대본을 받은 뒤 감독님에게 배영재란 인물을 내 마음대로 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자유롭게 연기했다. 구시렁거리는 대사는 대부분 내가 만들어낸 애드리브인데, 감독님이 나중에 자막팀이 힘들어질 거라며 한 소리 하셨다. (웃음) 박정민 배우는 이번에 <반장선거>란 단편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는데. 박정민 찍으면서 이 세상 모든 감독님들에게 새삼 존경심이 들었다. 많은 것들을 책임지고 선택하는 만큼 예민해지지 않을 수 없는 자리다. 그런데 현장에서 항상 모두를 유쾌하게 만들어주시는 걸 보면 정말 그릇이 크신 분이다. 지옥의 사자들뿐 아니라 여러 특수효과들이 들어간 현장이다. 원진아 내내 안고 있는 아기, 튼튼이는 고퀄리티의 더미다. 생긴 것도 약간 박정민 배우를 닮았다. 어쩌면 아기와 가장 많은 연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도 아기를 건네받을 때 다들 소품으로 대하지 않고 살아 있는 아기처럼 조심스럽게 대했다. 솜털도 있고 숨도 쉰다. 함께 호흡하는 배우처럼 느껴졌다. 박정민 지옥의 사자들은 당연히 CG인데, 텔레토비 같은 쫄쫄이 옷을 뒤집어쓰고 함께 연기했다. 안무가 분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냥 휘적거리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1~3부가 신의 의도와 인간의 죄, 지옥의 유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4부부터는 선택의 문제에 대한 고민들이 이어진다. 원진아 1~3부가 혼란과 방황의 세계였다면 4~6부는 이미 비틀린 신념에 삼켜진 안쓰럽고 씁쓸한 세계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자신의 신념에서 오는 게 아니라 다수의 공포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 다수의 목소리가 정의인 것처럼 덧씌워진 세상이다. 이를 바로잡으려는 사람들이 소수라는 세계관이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리 먼 이야기 같지 않다. 현실을 새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충격효과가 있다. 소현의 대사 중에 “선택권이 있나요”가 있다. 누군가 던져준 양자택일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박정민 인간의 그릇된 신념이 가져오는 비극, 그 반대편에서 그들과 싸우는 사람들의 투쟁에 대한 이야기다. 다수의 맹목적인 행동들로 인한 피해자는 결국 평범한 이들이다. 선택이라기보단 낭떠러지 앞에서 할 수 있는 제한적인 운신의 폭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소현 역에 좋은 대사가 참 많다. 나는 별로 없어서 내가 대사를 막 만들고 편집당하고 그랬는데. 이 자리를 빌려 넷플릭스 자막팀에 사과드린다. (웃음) 배우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선택을 받기도 하는 게 일상인 일인데, 이제까지 했던 선택 중에 본인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선택이 있다면. 원진아 막막했지만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뭐가 되었든 한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결국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 누군가가 나를 배우라고 불러주는 상황 자체가 감사하다. 그때 배우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던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박정민 원래 영화 전공을 하다가 연기를 한 케이스다. 당시 1년 동안 엄청 갈팡질팡했다. 연기를 하겠다는 마음은 확고했지만 그걸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과를 옮길까? 자퇴하고 극단을 들어갈까? 아직도 그때의 선택이 옳았던 건지에 대한 판단은 안 선다. 다만 그 기간에 내가 품었던 수많은 마음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2022 전국 영화영상학과 입시가이드] FAQ | 다양한 시각을 얻을 수 있는 영화 관련 도서 추천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 유운성 지음 | 보스토크프레스 펴냄 비평가 유운성의 신간으로, ‘세기의 아이들을 위한 반영화입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영화입문’ 앞에 붙은 ‘반’이라는 단어를 “‘anti-’의 뜻으로 쓴 것인지 ‘counter-의 뜻으로 쓴 것인지도 밝히고 싶지 않다”는 저자의 태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고정되지 않은 의미 속에서 도리어 풍부하게 잠재된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평적 시도가 엿보인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레퍼런스는 봐야 할 영화 목록을 끊임없이 늘려가게 만들 것이고, 각자의 영화관을 넓힐 수 있는 즐거운 지적 여정이 될 것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 떻게 영화하는가’라는 세개의 질문을 뚜렷하게 이끌어가는 이론서이자 비평집이다. <매체의 역사 읽기> 안드레아스 뵌, 안드레아스 자이들러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부제대로 ‘동굴벽화에서 가상현실까지’ 아우르는 <매체의 역사 읽기>는 현대 사회의 매체 지평과 대중문화를 개괄적으로 파악하기에 실용적인 교양 입문서다.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영화보다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영화가 발명되기까지의 배경과 경위를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영상매체 전반을 파악하는 데 긴요한 지식이 될 것이다. 영화 외에도 책, 잡지, 사진, 연극,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까지 인류의 매체가 변화해온 모습을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설명하는 책이며, 장마다 개별 매체의 특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시각적으로 다양한 삽화들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장마다 말미에 삽입된 연습 문제를 통해 내용을 복습할 수 있다. <진실의 색: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 히토 슈타이얼 지음 | 워크룸프레스 펴냄 독일의 아티스트이자 현대미술계에서 피해갈 수 없는 연구자 히토 슈타이얼의 <진실의 색: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은 제목 그대로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쓴 이론서이며 작가의 특징에 맞게 미술과 연결된 논점들도 얻을 수 있다. 대부분 입시생이 극영화의 꿈을 꾸지만, 다큐멘터리라는 매체와 형식만이 가지는 특징을 파악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다큐멘터리 이미지가 어떤 방식을 통해 표현되며, 현실을 담은 틀로 여겨지는 다큐멘터리가 실제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또 서로 작용을 주고받는지 재고한다. 저명한 저자의 이름에 처음에는 다소 위축될 수 있겠지만, 차분히 따라 읽어가다 보면 그다지 난해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적혀 있다.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벤 매컨, 데이비드 소르파 외 지음 | 본북스 펴냄 본북스의 ‘영화’ 시리즈는 미하엘 하네케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거장 난니 모레티, 그리고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공고한 세계를 구축한 두 감독 웨스 앤더 슨과 크리스토퍼 놀란도 다룬 바 있다. 여러 저자의 글을 엮은 책이라 다양한 시각을 참고하기 좋고, 각 영화감독들의 근작까지 아우르는 노력도 기울여 업데이트된 관점을 얻을 수도 있다. 한 작품을 두고 서로 다른 연구자가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었는지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흥미를 놓치지 않는 공부가 오래가는 법. 관심 있는 감독을 선택해 그 감독을 바라보는 렌즈들을 참고한다면 더없이 즐거운 공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