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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베를린] 80살 맞은 독일의 페미니스트 1세대 감독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

지난 2월 마르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이 80살을 맞이했다. 독일 언론은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 주자이자 페미니스트 1세대 감독인 폰 트로타 감독의 삶과 작품을 앞다투어 조명했다. 독일 공영방송 도 폰 트로타 감독의 삶과 작품을 그린 90분짜리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해 텔레비전 방송으로 내보냈다. 다큐멘터리는 폰 트로타 감독이 2019년 제69회 독일 영화상 공로상을 수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영화 인생은 독일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1년 제3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독일 자매>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다. <독일 자매>는 70년대 적군파 요원이었다가 체포되어 구금 생활을 하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한 구드룬 엔슬린과 여동생 크리스틴을 모델로 만든 영화다. 청소년기에 학교교육에서 나치 독일의 실상을 접하고 심리적 충격을 받은 자매는 각각 적군파 요원과 독일 첫 페미니스트 잡지 <엠마> 기자로 사회변혁의 길을 택한다. 테러리스트 언니 역을 연기했던 바르바라 수코바와 폰 트로타 감독의 인연은 이때 시작되어 평생 이어진다. 폰 트로타 감독의 <로자 룩셈부르크>(1986)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를 열연한 바르바라 수코바는 1987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에 이른다. 수코바는 폰 트로타 감독의 굵직한 여성 일대기 영화에 출연해 중세 수도원에서 약초 연구로 이름을 남긴 수녀의 일대기를 그린 <위대한 계시>(2009)에서 힐데가르트로,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철학자를 다룬 <한나 아렌트>(2012)에서도 철학자 한나로 분했다. 폰 트로타 감독의 영화 사랑은 파리에서 시작됐다. 미혼모였던 모친과 베를린에서 살았던 폰 트로타는 1950년대 말 파리로 가서 누벨바그 영화에 경도된 젊은 철학도들과 어울리며 책과 영화를 접했다. 당시 그녀는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 후 뮌헨으로 가서 독문학과 불문학을 공부하다가 배우 학교에 들어간다. 폰 트로타 감독이 독일영화계에 발을 들인 것은 배우를 하면서다. 라이너 파스빈더,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과 1971년에 결혼해 91년에 이혼했다. 1975년에는 슐뢴도르프 감독과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만들며 함께 시나리오도 쓰고 감독도 했다. 당시 보수적인 독일 사회에서 여성감독으로 우뚝 서기란 투쟁 없이 불가능했다. 남편이었던 슐뢴도르프 감독도 폰 트로타가 자신의 조력자로만 남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직접 감독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당시 여성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영화들은 독일 언론이나 평론계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폰 트로타 감독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폰 트로타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까? 그녀는 <쥐트도이체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어둡고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면을 찾는다. 사람들이 나를 밖에서 보면 용감한 투사로 보이겠지만, 내 안을 들여다보면 상처받기 쉽고 의심을 품는 부분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런 비슷한 면을 찾는 게 흥미로웠다.”

21세기 한국의 시네필과 영화관의 (비)장소성

극장영화란 무엇인가. 극장영화는 어디로 가는가. 혹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지난주(<씨네21> 1351호) 김호영 교수가 영화관이라는 공간의 역사를, 정찬철 교수가 뉴미디어의 등장에 따라 극장이 어떻게 자기 변신을 해왔는지를 탐색하는 글을 실었다. 이어서 이번에는 이선주 교수가 ‘21세기 한국의 시네필과 영화관의 (비)장소성’에 대한 심도 깊은 사유의 글을 보내왔다. 대중잡지 독자들에게 쉽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꾸준히 이 간극을 좁혀나가는 것이 영화 주간지로서 <씨네21>의 존재 이유 중 하나라고 믿는다. 답이 아닌 가능성으로, 우리의 질문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프롤로그: 영화관에 들어가며 최근 새로운 공간으로 이주하며 재개관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매혹적인 트레일러 영상을 상영하는 영화관이다. 영상은 <러시아 방주>로 시작하여 <연연풍진>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현기증> <벌집의 정령> <스트롬볼리> 등 각기 다른 세계를 향한 창과 문, 외화면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모호한 시선을 몽타주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곧 어떤 낯선 세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설렘을 갖게 된다. 극장의 불이 꺼지고 영화의 세계로 이끄는 영상과 음악(사일런트 파트너의 'Big Screen'이라는 최면적인 선율)의 안내를 통해 관객은 곧 상영될 본 영화의 충만한 관람을 위한 지각의 준비운동을 마친다. “ 실물보다 큰”(Bigger than Life): 시네마테크의 시네필 “메신느 거리의 상영실에서 이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영화들을 탐욕스럽게 받아들였다. 무성영화와 유성영화, 독일 표현주의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실험영화 등등. … 여기에서 그들은 하워드 혹스나 존 포드 같은 감독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시네마테크는 그들로 하여금 장르를 인식하도록 했고 그것을 사랑하도록 했다. … 랑글루아의 프로그램에 꾸준히 오는 관객은 마이어브리지와 마레의 시대 이후의 이미지의 역사에 깊이 침잠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최초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리처드 라우드, <영화 열정> 중) 영화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시네필리아’(cinephilia)는 제의적 행위로서의 영화 관람이나 실물보다 큰 스크린과 이미지, 극장의 어둠, 빛의 프로젝션에 대한 매혹, 즉 필름 자체와 일회적 상영의 경험을 중요한 구성요소로 강조한다. 20세기의 영화를 사랑했던 철학자 및 비평가들은 영화의 존재론과 관객의 매혹을 다루면서 영화(film) 미학 ‘너머’의 시네마(cinema)라는 장치와 영화관이라는 장소에서의 물리적 경험이 낳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롤랑 바르트는 에세이 <영화관을 나오면서>에서 도시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자유로움의 장소로서 영화관이 갖는 장소성에 주목했다. 그는 영화관의 어둠이 주는 낯섦과 은밀함을 현대적인 ‘장소의 에로티시즘’으로 비유하면서 친숙한 공간(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영화를 관람하는 조건과 영화관의 매혹을 비교한다. 바르트는 영화 자체보다도 상영장소(salle)에 더 집중하면서 영화관의 매혹을 설명하지만, 글의 서두나 마지막 부분에서도 밝히듯 그는 또한 영화관을 ‘나오는’ 정황과 영화 속 상상적 세계에 대한 ‘관찰’과 ‘거리두기’의 사유를 드러낸다. 이 글에서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바르트가 이 글을 쓴 1975년 무렵은 68혁명 이후 서구 시네필리아의 역사에서 영화에 대한 매혹(enchantment)보다는 거리두기에 의한 ‘생산적 각성’(productive disenchantment)의 중요성이 제기되며 영화연구와 이론의 제도화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즉 이전까지 시네필리아를 지탱했던 영화의 매혹에서 벗어나 기호학과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등의 방법론을 활용하여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작용과 문화적 영향력을 비판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욕망이 현대 영화이론과 영화학을 정립했던 것이다.<카이에 뒤 시네마>의 역사로 말하자면 급진적인 ‘적색 시대’, 거대 이론의 시기인 1970년대를 지나 프랑스 시네필들에게 시네필의 경험과 관객의 존재론이 다시 부각되는 계기를 마련한 책은 바로 1980년에 출간된 장 루이 셰페르의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다. 셰페르는 특정 이론이나 비평적 시각으로 감독이나 작품을 다루지 않으면서도 영화 이미지의 경험과 정동에 주목하면서, 영화적 어둠을 선사하는 영화관이라는 공간과 밤의 경험,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의 존재조건과 시각의 원초적 경험들을 내밀하게 고찰한다. 셰페르는 자신을 영화관에 자주 다니는, 별다른 ‘특성이 없는’ 평범한 남자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의 사유는 일방적이고 수동적인 영화 관객 모델을 넘어 영화적 경험을 통해 세계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이차적 몽타주’를 수행한다. 따라서 그의 시네필 여정에는 정전화나 영화적 지식에 대한 욕망 대신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들이 수반된다. 그것은 영화관의 어둠과 빛의 먼지, 안개처럼 물리적 장소에 실재하며 우리의 지각과 기억에 관여하지만 주변적이거나 알 수 없는 대상으로 남게 되는 경험적 요소들을 포함한다. 즉 언어로 온전히 포착할 수 없는 ‘영화를 본다’는 체험의 의미, “세계와 빛, 경험과 이미지와 기억, 시간과 신체를 둘러싸고 영화적 밤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남긴 혼신의 기록”인 셈이다. 이러한 시네필적 실천들은 모두 영화 보기를 콘텐츠로서의 영화 보기(watch a film)만이 아닌 물리적 장소로서 ‘영화관에 가는’(go to the cinema) 행위, 말하자면 영화의 내용뿐 아니라 영화 관람 전후 상황의 맥락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영화 관람 실천을 포괄한다. 그런데 1960~70년대 이들이 상정한 영화 관람성은 모두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조건이 전제된 상황에서의 영화 경험들이다. 이렇듯 20세기에 만들어진 거의 모든 영화들을 언제든 볼 수 있는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을 행위자로 하는 시네필의 역사는 프랑스나 서구의 영화 문화 안에서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1960~70년대 파리-뉴욕-런던 등을 횡단하며 비판적 실천력을 갖춘 이상적인 주체적 관객으로서 상정된 서구 시네필리아 현상과 비교해볼 때, 한국영화에서 ‘대안적 영화 문화’를 논할 수 있는 시네필의 물리적 조건(영화의 집으로서의 ‘극장’과 셀룰로이드 ‘필름’)이 갖춰진 것은 언제쯤일까? Back to 1995~2005: 한국 시네필의 압축적 형성과 영화의 집으로서의 ‘극장’ “1964년부터 한양대에서, 1967년부터 동국대에서 연극영화과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을 무려 5년간 보지 못했다가, 지난해 KBS TV를 통하여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이나 <인톨러런스>를 보지 않았으면서도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1950년대 유럽의 영화는 주목할 만한 문제성을 제시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영화작가가 베르이망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산딸기> <제7의 봉인> <침묵> <처녀의 샘> 등 화제작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상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겠습니다만, 그러한 기회를 늘 잃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신봉승, <영상적 사고>(1972) 중) 1950~60년대 프랑스에서 영화가 대안적 문화 실천이 될 수 있었던 조건은 비평 노선으로서의 작가 정책 외에도 <카이에 뒤 시네마> 같은 영화 저널리즘, 영화의 집인 시네마테크, 그리고 영화 사랑을 실천한 시네필 등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 영화 잡지 <영화예술>이 ‘좋은 영화 보기’ 관객 운동을 모토로 대학이나 대도시 영화 팬을 중심으로 ‘시네클럽’ 운동을 펼치며 상영회와 심포지엄을 주도했고, 1970~80년대 문화원 세대와 서울영화집단의 이론과 실천, 1980년대 시네마테크를 표방한 비디오테크 활동 등 소비 위주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대항하는 다양한 시네필리아적 현상이 존재했다. 그러나 인용한 글에서도 볼 수 있듯, 한국에서는 시네필리아의 중요한 물리적 조건인 ‘대안적인 프로그램을 상영하는’ 극장이 1990년대까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대 한국 시네필 문화의 진지로 알려졌던 <키노>(1995~2003)도 시네필을 위한 정전(canon)을 제시하긴 했지만 극장이라는 판테온을 절대시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다양한 비극장의 대안적 영화 관람을 소개했다. 1990년대까지 한국 시네필 문화의 중요한 기반은 엄밀히 말하면 ‘비디오테크’ 상영 문화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활동했던 비디오 상영 기반의 영화 단체들은 서울의 ‘영화공간 1895’, ‘OFIA’, ‘문화학교 서울’, ‘시네포럼’ 등과 부산의 ‘1/24’, 광주의 ‘좋은 친구들’, 대구의 ‘영화언덕’ 등 다양했다. 창간호부터 <키노>의 지면 중에는 ‘시네마테크’ 코너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문화학교 서울’을 포함한 전국 비디오테크들의 프로그램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문화원 상영 소식, 독립영화협의회의 월간 프로그램 등이 기자들의 추천사와 함께 실리곤 했다. ‘영화공간 1895’를 주도한 이광모가 이끈 고전예술영화를 수입해 상영하는 동숭시네마텍 같은 예술영화전용관이 1995년에 출범했고, <천국보다 낯선>을 시작으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등을 소개하며 국제영화제 수상작이나 고전 예술영화를 매달 1편씩 개봉했다. 한국의 시네필들이 글로만 접하거나 상상 속의 시네마테크에서만 볼 수 있던 장 뤽 고다르와 잉마르 베리만, 알랭 레네의 필름영화를 극장에서 만나게 된 시기는 영화 탄생 100주년 즈음인 1990년대 중반이었다. 동숭시네마텍은 이름이 표방하는 바처럼 새로운 영상 문화 운동의 주체를 추구하면서 그때까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서구의 공공성을 띤 시네마테크를 지향하며 탄생했지만, 다양한 대안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시네마테크가 아니라 예술영화전용관이었다. 따라서 미개봉된 영화나 수입 금지작, 정전들에 대한 갈증은 이러한 전용관과 여전히 공존했던 비디오테크에서 상영되는 열화된 영상으로 대리 충족되곤 했다. (독립영화의 역사를 포함한) 한국 시네필 문화에서 이러한 비디오필리아의 활동들이 의미 있었던 것은 단지 셀룰로이드와 극장이 결핍된 물적 조건 속에서도 시네마테크의 정신을 실현하고 이상화된 관객으로서의 시네필리아를 체현하고자 했을 뿐 아니라, 작가주의 모델을 넘어 영화의 매혹과 각성 사이의 생산적 긴장을 통해 ‘비판적 시네필리아’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비디오테크는 제도와 자본, 물적 토대의 부재로 인해 현대적 시네필리아의 중요한 요건인 ‘진정성’의 존재론적 구성요소들이 결여되어 있었다. 따라서 2000년대 초반 극장을 기반으로 한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전국적으로 출범하고, 서울을 기준으로 한다면 서울아트시네마와 서울시네마테크가 비로소 극장에서 ‘필름 시네마테크’ 프로그램을 선보였던 시절이 한국에서는 대안적인 극장(시네마테크)의 시네필 영화 문화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일 것이다. 문화학교 서울의 루이스 부뉴엘, 에릭 로메르,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이 성공적으로 개최됐고, 서울시네마테크는 개관 프로그램으로 오슨 웰스 회고전을 열었으니, <영화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1991)에서 책으로 배운 오슨 웰스의 정전들을 필름 시네마테크에 ‘확인’하러 온 시네필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 시기 서울시네마테크에서 발행한 <필름컬처>는 <키노>와는 차별화된 노선으로 미국영화에 대한 취향을 드러내며 세르주 다네나 조너선 로젠봄, 태그 갤러거 등의 비평을 소개함으로써 시네필 문화를 다채롭게 했다. 주간지 <씨네21>과 월간지 <키노>, 계간지 <필름컬처>가 각기 다른 노선으로 시네필 문화를 선도하며 영화가 비평을, 비평이 다시 영화를 이끌었다(이후 영화 잡지들의 춘추전국시대는 2003년 <키노> 폐간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고 <씨네21>만 생존한다). 그런데 2000년대 초 비디오테크에서 시네마테크(극장)로의 전환은 한국에서 현대적 시네필이 제도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서구의 시네필과는 다른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비록 유럽 예술영화, 할리우드 고전영화와 같은 정전화 및 이 과정에서 다른 영화들(다큐멘터리, 아방가르드, 아티스트 필름 앤드 비디오 등)의 배제라는 현실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매체와 장소의 전환은 한국에서의 시네필의 의미가 정전화된 감독들의 목록으로 환원되지 않는 ‘영화’ 및 ‘영화 보기’에 대한 자기반영적 고민을 수반했음을 시사한다. 더구나 이러한 이동이 서구에서는 ‘영화의 죽음’이 논의되던 시기, VHS에서 DVD로의 이행기, 아날로그 시대와는 다른 시각적, 매체적 쾌락을 전달하는 디지털 시대로의 이행과 맞물려 압축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에서 한국 시네필의 형성 과정과 극장이라는 장소의 문제는 더욱 세심한 맥락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진정성의 조건을 갖춘 시네마테크의 필름 매체로의 전환과 극장으로의 장소의 전환이 반드시 관객의 역량을 이끌거나 더 생산적인 시네필 활동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다. 필름 시네마테크로 전환된 이후 영화 관람 환경은 향상되었으나, 1990년대 비디오테크에서 수행했던 영화 교육 프로그램이나 문화활동들(토론, 출판 및 강연 등)의 열기는 오히려 줄어들면서 시네필들의 활동은 감소했다. 대안적 영화 문화란 극장의 하드웨어적 퀄리티나 서비스라는 말과 결코 등치될 수 없는 복잡한 국면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극장 노스탤지어가 없는 ‘새로운 시네필리아’ 2015년 서울아트시네마 이전을 계기로 열린 김홍준, 정성일, 허문영의 좌담회(‘1995~2015 변모하는 영화의 풍경’)에서 정성일은 동시대 시네필의 지도를 “시네마테크 시네필, 시네큐브(아트하우스) 시네필, 영화제 시네필, 아이맥스 시네필”로 잠정 분류한다. 이는 모두 영화관이라는 장소를 기반에 둘 때 성립하는 시네필의 개념이다. 그런데 <씨네21>이 ‘밀레니얼 세대 시네필’(1252호)로 명명한 젊은 세대의 시네필 가운데는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없거나 자유로운 경우가 많다. 21세기 서두에 급변하는 영화 환경과 뉴미디어 시대의 시네필리아에 대한 두개의 영향력 있는 앤솔러지인 <영화의 변이: 세계 시네필리아의 변모하는 얼굴>(Movie Mutations: The Changing Face of World Cinephlia, 2003)과 <시네필리아: 영화, 사랑, 기억>(Cinephilia: Movies, Love and Memory, 2005)이 출간된다. 이후 2000년대 후반 영화학 분야의 중요 학술저널인 <시네마 저널> 및 <프레임워크>가 시네필리아의 역사 및 디지털 시대의 시네필 문화를 질문하는 특집호 또는 특별 도시에를 간행했고, 2015년 <디지털 시대의 영화비평>(Film Criticism in the Digital Age), 2020년 <근심하는 시네필리아>(Anxious Cinephilia)가 출간되는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영화 환경에 따른 21세기 시네필리아의 정체성과 영화와 비평의 플랫폼 변화를 고찰하는 연구들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토마스 엘새서는 신성화된 공간의 단일성, 그리고 그 순간의 유일성과 함께 공간 속에서 대상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동일시되어 있었던 전통적인 시네필을 시네필리아 1세대로 규정한다. 반면 그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을 수용하고, 팬-컬트 커뮤니티를 찾아내고 경험을 공유하면서, 영화에 대한 사랑을 비전통적인 형식으로 실천하는 2세대 시네필리아를 명명하고 그들의 비아카데믹한 활동을 주목한다. 엘새서는 시네필리아 2세대에게는 찰나의 영화적 경험이 아닌, 찰나의 자기 경험에 대한 ‘수집가’와 ‘아키비스트’로서의 역할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지위가 부여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시네필리아의 영화 소비 실천을 세개의 시대로 구분하면서 마지막 3단계에 해당하는 1980년에서 2010년대를 ‘경험의 재지역화’라고 명명하며 ‘아마추어 문화의 신성화’ 현상을 주목한 로렌 줄리에와 장 마크 레베라토의 연구로도 계승된다. <영화의 변이>의 공동 편집자인 비평가 조너선 로젠봄과 에이드리언 마틴이 지적하듯, 현대 시네필의 상황은 시네필리아에 대한 기존 논의들에서 주요 논점이 되어온 ‘극장 가기’ VS ‘집에서 보기’간의 대립을 부적절하게 만들어왔다. 기리시 샴부는 2019년 <필름 쿼터리>에 올드 시네필리아와 구별되는 새로운 시네필리아의 매니페스토(“For a New Cinephilia”)를 발표했다. 전통적인 영화관과 표준적인 극영화를 넘어선 여러 형태의 무빙 이미지 체험, 영화 관람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는 정체성의 정치학에 기반한 액티비즘적 활동과 비아카데미적 실천들, 정전화된 미학과 위계적 리스트를 벗어난 즐거움과 가치평가의 개방성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 선언은 시네필리아의 사랑과 즐거움의 담론을 소수의 특권에서 다수로 확장시키면서 오늘날 영화 문화의 포괄적인 이슈들을 다룬다. 이는 <기생충>의 글로벌한 파라(para) 텍스트 비평과 밈의 사례처럼 아마추어 문화나 팬 문화의 역량을 강조하며 과거의 영화 사랑뿐 아니라 오디오비주얼 비평 등 새로운 세대의 영화적 모험까지도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오늘날의 시네필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영화를 사랑하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유희의 실천으로부터 기인하는 이슈들을 탐구한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새로운 세대의 시네필리아를 출현시키고 (‘비디오필리아’, ‘텔레필리아’, ‘모바일 시네필리아’ 등) 시네필리아 개념의 새로운 층들을 덧붙여나간다. 엘새서가 진단하듯, 뉴미디어 시대의 시네필리아는 우리의 미디어 기억의 무한정한 아카이브를 잠재적으로 욕망할 만하고 가치 있는 클립들, 엑스트라와 보너스들로 리마스터링, 재구성, 재설정(re-mastering, re-framing, re-purposing)하면서 기억의 위기에 맞서 영화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포스트모던 영화 문화의 최전선에 있는 자들인 것이다. 포스트-시네마 시대 시네필의 분화와 재배치: 스크린을 접으며 한국 시네필의 역사에서 관객이 시네마테크에서 고전영화를 필름으로 관람하기 시작하고, N차 관람을 포함한 극장 경험이 시네필의 미덕으로 여겨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전 시대의 비디오테크 문화나 문화원 상영, 대학 공동체 상영을 통한 관람 방식은 시네필의 실천이 아닌 것이 되는가? 포스트-시네마 시대에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경험은 가장 이상적인 영화적 경험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유일한 영화가 아닌 복수의 플랫폼의 영화들, 다양한 무빙 이미지, 다른 스크린과 생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장소일 때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극장 중심의 영화산업의 위기는 그러한 다양성의 영화 역사 속의 한 국면일 수 있고, 영화라는 매체나 관객의 영화적 경험의 위기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영화의 지속과 변화를 탐구한 프란체스코 카세티는 관객의 지각뿐 아니라 성찰성과 사회적 실천까지 포함하는 영화적 ‘경험’에 주목하며 ‘재배치’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는 시네마의 연속성을 보증하는 것은 ‘필름-영사기-극장’ 복합체로 된 물리적 측면의 영속성이 아니라, 보고 듣고 감각하는 경험 형식의 생존 여부라고 말한다. 재배치는 영화의 구성요소가 극장을 벗어나 다른 장소 또는 이질적인 인터페이스에 자리 잡을 때 영화적 경험이 부분적으로 보존되는 동시에, 고유한 새로운 경험과 행위들이 부가되는 이중적 작용이다. 따라서 영화적인 것의 재배치는 과거의 기억이나 습관보다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네마가 다른 디스포지티프와 환경으로 지속적으로 재배치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죽음의 분위기를 띠게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불완전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 스스로 다른 것이 되는 것이 포스트-시네마 시대의 영화의 운명인 것이다. 카세티의 말처럼 “시네마는 여전히 발견되어야 할 대상”이고, 오늘날의 시네필은 로젠봄이 이야기하듯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누구의 영화인가’, 그리고 ‘영화가 어디에 있는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JeonjuIFF #7호 [추천작] 에실 보그트 감독, '이노센트'

<이노센트> The Innocents 에실 보그트/노르웨이/2021년/117분/불면의 밤 어떤 세계는 누군가에게 영원히 열리지 않는다. <이노센트>가 비추는 아이들의 세계가 그렇다. 어른은 알 수 없는 아이들만의 세계. 날카롭고 스산하며 도처에 위협이 도사린 세계로 이다와 안나가 발을 들인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한 이다와 자폐증이 있는 언니 안나는 외톨이처럼 보이는 소년 벤과 피부병을 앓는 소녀 아이샤를 만나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서로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공유하면서다. 아이들은 텔레파시를 통해 멀리 떨어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는가 하면, 염력을 써서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곧 아이들의 관계에는 어둠이 내려앉는다. 고양이를 죽이던 벤의 폭력성이 자신을 해코지한 이들에게 복수를 가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점차 강력해지는 벤의 능력 앞에서 도움을 청할 대상도 없이 아이들은 고립된다. 아이들 사이의 긴박한 도주극은 연쇄살인마나 괴생명체 없이도 스릴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다. 같은 땅 위에 존재하지만 어른에게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세계는 질식할 듯 폐쇄적이고, 닫힌 공간에서 악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 아이들의 입장은 관객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영화의 주된 무대인 노르웨이의 푸른 숲과 평화로운 주택가는 두려움이 만연한 아이들의 세계와 대비되며 긴장감을 배가한다. 그 무엇보다 공포를 자극하는 요소는 순수와 잔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이들의 면면이다. 에실 보그트 감독의 아이들은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매개자가 되어, 초능력이라는 흥미로운 상상력과 죽음에 가까운 악몽을 함께 직조한다. 미완성의 존재들이 인도하는 서늘한 판타지는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 잊어버린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런던] '탑건: 매버릭' 72번째 '로열 필름 퍼포먼스' 작품으로 선정

<탑건: 매버릭>이 영국 내 공식 개봉일인 5월25일보다 약 일주일 앞선 5월19일 런던 레스터 스퀘어의 오데온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 2월23일 ‘리빙 위드 코로나19’ 정책을 발표하고, 4월1일을 기점으로 코로나19와 관련한 모든 제약 사항을 해제했다.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영화와 TV 자선단체’(The Film and TV Charity)는 지난 4월7일, 72번째 ‘로얄 필름 퍼포먼스’ 작품으로 <탑건: 매버릭>을 선정했음을 알리며, 2019년 12월4일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을 마지막으로 2년 반 동안 중단됐던 자선 모금 행사의 귀환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행사의 참가 티켓은 4월19일 공식 판매를 시작했는데, 시작 당일 모두 매진되는 기염을 토했다. <탑건: 매버릭>의 프로듀서인 제리 브룩하이머는 “영국 영화산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놀라운 자선단체와 뜻을 같이할 수 있어 영광”이라고 전했다. 영국 왕실이 후원자로 있는 ‘로열 필름 퍼포먼스’는 1946년 레스터 스퀘어의 엠파이어 극장에서 마이클 파월 감독의 <천국으로 가는 계단> 상영으로 시작됐다. 이후 76년이 지난 현재까지 총 71편이 대중과 만나며,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 종사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필수 기금 모집에 기여했다. 이 상영회에 소개된 작품들로는 <나는 결백하다> <미지와의 조우> <인도로 가는 길> <타이타닉> <007 스펙터> 등이 있으며, 여기에는 조지 6세를 비롯해 엘리자베스 여왕, 마거릿 공주 등이 참여한 바 있다. 이 단체는 코로나19 팬데믹중에는 1만여명이 넘는 관련 산업 종사자들에게 정신적, 재정적 지원을 했으며, 최근에는 직장 내 따돌림 상담 서비스도 개설했다. 영화와 TV 자선단체의 CEO 알렉스 펌프레이는 “로열 필름 퍼포먼스는 영화 및 TV 산업에 종사하는 똑똑하고 창의적인 인재들을 돕는 데 좀더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탑건: 매버릭>의 영국 프리미어 상영이 이 기회를 더욱 확장하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재식의 오늘은 SF] '환상특급'의 시대

‘환상특급’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공중파 텔레비전에서는 외화라는 이름으로 외국 텔레비전 시리즈를 무척 많이 방영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한국 TV 프로그램 못지않게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화제가 되는 외국 TV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 시절 인기를 끌었던 <6백만불의 사나이>나 <맥가이버>는 지금도 한국 TV 프로그램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을 정도다. 누군가 괴력을 발휘하는 장면에서 <6백만불의 사나이> 효과음이 나오는 장면이나, 무엇인가를 멋지게 만드는 장면에서 <맥가이버> 주제곡이 배경에 흘러나오는 연출은 여전히 가끔씩 볼 수 있다. <환상특급>은 그 정도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강렬한 이야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사람들이 적었다고 할 수도 없다. 원래는 미국에서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에 인기를 끌었던 TV시리즈 중에 이 있었는데, 그것이 1980년대에 다시 부활해서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방영되었고, 그 새 에피소드들이 한국에 건너오면서 <환상특급>이라는 번역 제목을 얻게 되었다. 이 시리즈는 한국에서는 보통 단막극이라고 부르던 앤솔러지 구성으로 되어 있어서, 전체 내용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에피소드별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짤막하게 선보이는 형태였다. 주로 SF, 판타지, 공포 단편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았고, 에피소드 하나만 맡으면 되기 때문에 신인 배우, 무명 배우들이 주연을 맡는 일도 꽤 있었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유명 배우들의 초창기 모습을 언뜻언뜻 볼 수 있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사실 1960년대에 나온 원판 역시 한국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1975년 후반 무렵부터 MBC를 통해 ‘제6지대’라는 제목으로 더빙판이 방송된 것이다. 그런데 이 제목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드물다. 나는 ‘제6지대’라는 제목을 기억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그에 비해, 1980년대판인 <환상특급>은 1986년부터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KBS를 통해 방영되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제6지대>와 달리 <환상특급>에 나온 절묘한 이야기의 놀라운 감성이나, 충격적인 결말을 보고 감탄한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난 적도 여러 번이다. 유명한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면, 모든 것이 이상적인 미래 사회가 배경인데,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만한 인재는 그 좋은 세상을 불안한 쪽으로 바꿀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떤 아이가 시험을 너무 잘 보았다는 이유로 오히려 정부로부터 제거되는 처분을 받는 시대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입시 위주의 사회에서 더 강렬하게 다가올 만한 이야기였는지, 이 이야기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나는 1980년대에 세계적으로 잠시 SF의 부흥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와 <스타워즈> 시리즈의 속편들과 같은 할리우드 SF영화들이 어마어마한 흥행을 한 블록버스터로 줄줄이 개봉되었고, 그와 동시에 <건담> 시리즈 같은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이 전세계의 TV 방송국에서 자주 방영되던 시대다. 1950년대 SF물 유행을 냉전 시기 사회 분위기와 연관 짓는 분석이 흔한 걸 생각해보면, 1980년대 레이건 집권기 미국의 강경 정책에 의한 신냉전 분위기가 SF 유행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SF 부흥기의 분위기를 타고, SF 소재가 풍부한 1980년대판 <환상특급>이 인기를 끌었다고도 풀이해볼 수 있을 듯싶다. 물론 그외에도, 충격적인 결말의 힘과 여운을 잘 살릴 수 있도록 3분, 8분 만에 이야기가 끝나버리는 아주 짧은 에피소드를 과감하게 편성했다든지, 컬러 텔레비전과 새 시대의 특수효과를 멋지게 사용한 에피소드들이 있었다는 점도 <환상특급>이 인기를 얻은 이유였을 것이다. <환상특급>의 인기는 이 시리즈 하나의 인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어메이징 스토리>라는 비슷한 시리즈가 탄생되는 계기가 되었고, 일본의 비슷한 TV시리즈 <기묘한 이야기>가 탄생한 데에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유행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서, 1990년대 초중반에는 <환상여행> <테마게임>같이 기이한 이야기를 다룬 단막극 시리즈들이 긴 시간 인기를 끌며 제작되었고, 심지어 방송사별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코미디언이나 가수들이 주인공이 되어 “무슨무슨 극장” “무슨무슨 드라마” 등의 제목으로 짧고 강렬한 이야기들을 꾸며서 보여주는 내용이 몇년간 쏟아졌다. 세월이 흘러 OTT나 유튜브와 같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 2020년대가 된 요즘, 다시 새 매체에 걸맞은 강렬하고 짧은 단막극 시리즈를 부활시켜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넷플릭스를 통해 <블랙 미러>가 화제가 된 이후에, “한국판 <블랙 미러>를 만들어보겠다”는 제작사 관계자도 나는 최근에 여럿 만나 보았다. 심지어 미국의 OTT에서는 아예 <환상특급>을 새로운 시즌으로 다시 부활시키기도 했는데 아직까지는 딱히 큰 반응은 없는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일까? 신인 배우, 신인 작가, 신인 연출자들이 과감한 시도를 실험적으로 선보일 수 있었던 1980년대판 <환상특급>에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트위터 스페이스] 다혜리의 작업실: 2022 젊은작가상 대상 '초파리 돌보기' 임슬아 작가와의 대화

※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다혜리의 작업실’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작품 세계와 글쓰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는 코너입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이다혜 @d_alicante ‘다혜리의 작업실’ 일곱 번째 게스트는 단편소설 <초파리 돌보기>로 2022 제13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임솔아 작가님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이원영’입니다. 노년에 접어든 원영은 건강한 초파리를 골라 번식시키는 실험실 아르바이트를 좋은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여러 동식물 중 초파리를 돌보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이유가 있을까요? 임솔아 @limsolah2772 초파리는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사람들이 안 좋아하잖아요. 초파리를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게 초파리의 특징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초파리 돌보기>는 어떻게 쓰시게 됐나요? 임솔아 @limsolah2772 언젠가 엄마와 통화를 하다 해피엔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엄마가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쓰면 안되냐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때 저도 모르게 알겠다는 답이 튀어나왔지만 전화를 끊을 때까지만 해도 이걸 소설로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동료 작가분이 “소설 한편보다 네가 더 중요하다”며 그렇게 한번 써보라고 하셨어요. 과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이 괜찮을지만 고민했는데 그제야 소설이 아닌 내가, 어머니가 괜찮을지 생각하게 됐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어요. 이다혜 @d_alicante 소설을 쓴 후에는 고민의 결론이 났나요? 임솔아 @limsolah2772 사실 고민이 끝나지는 않았어요. (웃음) 그래서 결말도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힐 거예요. 제가 어느 한쪽으로 결정을 못 내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이전에는 행복한 결말이 진실을 가리는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고 여겨서 그런 감정만으로 뒤덮지 않는 결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몇년 전부터 내가 더 괜찮은 방향, 더 좋은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상상 안 하는 건 아닐까 싶었어요. 지금도 양쪽 생각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이 작품을 어머니께서 읽으셨는지, 결말에 만족하셨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임솔아 @limsolah2772 어머니가 읽으셨고요, 결말에 대한 얘기는 안 하셨어요. 다만 주문이 많아서 미안했다는 말씀을 하셨고요. 젊은작가상을 받고 나서 텔레비전에 제가 잠깐 나왔다는데, 그걸 무척 기뻐하셨어요. 이다혜 @d_alicante 혹시 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다른 소설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감상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임솔아 @limsolah2772 유난히 자주 떠올리는 작품이 있어요. 김혜진 작가의 <미애>입니다. 강아지와 산책할 때 남의 아파트 단지를 걷곤 하는데, 화단에 꽃이 피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소설 속 미애가 봤던 황량한 아파트 단지가 떠오릅니다. 이다혜 @d_alicante 작가님이 반복하신 표현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초파리 돌보기> 작가노트에 “너무 열심히 하면 무서워져”라고 쓰셨는데, 시집 <겟패킹>에 수록된 시 <리기다소나무>에도 “열심히 하지 마요/ 너무 열심히 하면 무서워요”라는 대목이 있어요. 이런 인상적인 말들을 열심히 메모하는 스타일인가요? 임솔아 @limsolah2772 알아보는 분이 계실 줄 몰랐어요. 너무 반갑네요! 그 말이 저한테 인상적이어서 두번 쓰게 된 것 같아요. 소설과 시 메모는 다른 곳에 합니다. 시는, 손바닥만 한 메모장에 문장 전체를 써요. 그중 버릴 건 지우고 남는 걸 가져가는 방식으로 컴퓨터에 옮기며 시를 쓰고요. 소설은, 화이트보드나 포스트잇에 키워드만 적어둬요. ‘실험실’, ‘초파리’, ‘해피엔드’ 이런 식으로요. 혼자서 가만히 벽에 붙은 키워드들을 보다보면 소설의 얼개가 떠오르거든요. 거기에 살을 붙이는 식으로 써요. 이다혜 @d_alicante 메모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와 소설이 구분된다고 하셨는데, 완전히 엄격하게 지켜지는 건 아닐 것 같기도 해요. 어떠신가요? 임솔아 @limsolah2772 예전에는 같은 얘기를 시로도 쓰고 소설로도 썼어요. 책으로 묶을 때만 중복되지 않게끔 하고, 다 썼어요. (웃음) 요즘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편인데, 저도 모르게 구분이 되는 것 같아요. 키워드가 떠오르면 ‘소설이구나!’, 문장이 떠오르면 ‘시구나!’ 합니다. 이다혜 @d_alicante 다음에 만나게 될 작가님 책은 시집일까요, 소설집일까요? 임솔아 @limsolah2772 지금 장편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에, 장편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계간 <문학동네>에서 여름호부터 연재됩니다. 남선우의 책갈피 <초파리 돌보기>에는 반가운 지명과 장소가 여럿 등장합니다. 소설을 쓸 때 직접 가본 곳을 떠올리며 쓰시나요, 가보지 않았더라도 조사해가며 쓰시나요? 소설에 나오는 과기원 앞 벚꽃길에도 가본 적 없습니다. 그래도 상상하며 쓰는 것 같아요. <초파리 돌보기>의 지유는 “내 소설 속 인물들 직업이 다 비슷비슷하잖아. 특별한 직업을 쓰면 좋을 것 같아서”라고 말합니다. 작가님도 비슷하게 생각 중이신가요? ‘특별한 직업’이란 무엇인가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소설에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나 아르바이트 등의 비정규직이 주로 나옵니다. 제가 생각하는 조금 특별한 직업은 아르바이트가 아닌 전문 직종 혹은 회사원이에요. 임솔아에게 ‘해피엔딩’이란? 아직도 여전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웃음)

김성훈 기자의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취재기 (2019.12~2021.11.11)

2019. 12 “선배 인스타그램 없앴어?” 김완 <한겨레> 기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갑자기 사라져 이상하다 싶어 텔레그램에 들어가 그에게 물었다. 김완은 박근혜 정권 때 국정원이 ‘엔터팀’을 운영해 영화계를 사찰했다는 내용의 단독 보도를 함께했던 동료다. 그에게 짧은 답장이 왔다. “ㅇㅇ 신상 털려서 다 비활성.” 그는 “‘청소년 텔레그램 비밀방’에 불법 성착취 영상 활개”(<한겨레> 2019년 11월10일자) 단독 보도를 시작으로 텔레그램에서 벌어지는 아동·청소년 성착취 사건을 연달아 보도하던 때였다. 수면 위로 올라온 텔레그램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는 생각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끔찍했다. <한겨레>가 지난 두달 동안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라는 제하의 연속 기획으로 보도한 기사는 충격적이었다. <한겨레> 기자들이 텔레그램 익명 대화방에 잠입해 그 실태를 지켜본 뒤 폭로한 내용에 따르면, 범죄자들은 일자리를 주선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텔레그램 방으로 유인해 사진, 영상을 찍도록 협박하고, 수천명이 모인 익명의 대화방에 대량 유포했다. 피해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해자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연속 보도로 추적단 불꽃의 존재도 처음 알게 됐다. 미디어를 전공한 대학생 2명(추적단 불꽃)이 지도 교수의 제안으로 공모전 ‘제1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에 나가기 위해 ‘불법 촬영’과 관련한 자료를 조사하다가 텔레그램 익명방을 접하게 됐고, 그곳에 잠입해 지켜본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의 실태를 최초로 폭로했다. <한겨레>는 이를 ‘n번방 사건’으로 처음 호명하며 연속 보도를 시작했다. 텔레그램이라는 특수한 온라인 환경에서 피해 여성의 신상을 치밀하게 털었고 수천명, 수만명에 이르는 구경꾼들에게 가상화폐를 받아챙긴, 새로운 유형의 범죄임에도 <한겨레>와 추적단 불꽃이 연일 내놓은 보도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더군다나 첫 보도가 나가자마자 텔레그램에서 신원이 명확하지 않은 불특정 다수가 김완 기자의 SNS를 뒤져 그와 그의 가족 사진을 털었다. 여느 아동·청소년 성범죄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김완의 취재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2020. 3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검거. 2020. 5 김완에게서 전화가 왔다. “최진성 감독님이 연출하는 넷플릭스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어.” 무슨 영화인지 물어보니 알려주지 않았다. 최진성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다. “넷플릭스 찍는다면서요.” 답장이 왔다. “정리되면 말하려고 했는데 n번방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요.” n번방? 몇몇 감독과 프로듀서가 n번방 사건을 극영화로 만들려고 시도했다가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라 감당하기 부담스러워 보류했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실제 사건을 재가공할 여지가 많은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실존 인물이 등장해야 하는데, 사건의 피해자가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무사히 진행될 수 있을까. 2020. 5. 11 n번방 개설자 ‘갓갓’ 문형욱 검거. 2020. 10 서울시 상암동의 한 고깃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최진성 감독, 김완, 오연서 <한겨레> 기자, 최광일 JTBC 탐사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이하 <스포트라이트>) PD, 최은정 조감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최 감독은 이들을 “다큐멘터리 출연자”라고 소개했다. 오연서는 김완 기자와 함께 n번방 사건을 보도한 기자다. 최광일은 ‘박사방’의 운영자인 박사(조주빈)를 취재한 내용을 방송에 공개한 PD로, 기자가 모태펀드 블랙리스트를 취재하기 위해 ‘역삼동 모 주택’에 잠입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을 <스포트라이트>에 소개할 뻔한 적 있다. 최광일 PD는 박사방 취재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박사가 가족의 신상을 파겠다고 협박했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스포트라이트> 방송으로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겠다는 협박이었다.” ‘박사방’에서 김완의 신상이 털렸고, 더 많은 아동·청소년 여성들을 <한겨레> 보도로 인한 피해자로 만들겠다는 내용과 똑같은 협박이었다. 저마다 n번방 사건을 취재한 후일담이 오갔다. 최 감독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보를 함구한 채 “추적단 불꽃을 포함한 출연진들은 사전 인터뷰를 진행한 뒤 촬영에 돌입할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다. 2020. 10. 14 대법, 조주빈 징역 42년 확정. 2020. 12 오후 8시밖에 안됐는데 가로등이 없고 한겨울인 탓에 사방이 암흑천지다. 얼마나 달렸을까, 파주의 모 세트장에 겨우 도착했다. 며칠 전 최진성 감독이 연락해와 “우리 촬영 시작했는데 놀러올래요? 김완이 출연하는 장면이에요”라며 촬영 현장에 초대해주었다. “국내에선 한번도 진행된 적 없는 스타일의 다큐 현장일 거”라는 예고와 함께. 굳게 닫힌 세트장 문을 낑낑거리며 열자 극영화 현장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세트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트 가이드를 자처한 최진성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등장인물마다 각기 다른 컨셉의 공간 6개(두 공간은 리모델링을 해서 영화 속 인터뷰 공간은 총 8개)를 만든 거라고 한다. 이날 촬영의 주인공인 김완 기자의 공간으로 이동하니 촬영을 준비하는 스탭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카메라 옆을 지키던 박홍열 촬영감독(<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여배우는 오늘도> <밤의 해변에서 혼자> 등 촬영,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연출)이 반갑게 맞는다. 카메라에 연결된 프롬프터 같은 장치가 눈에 들어온다. “인테로트론(에롤 모리스 감독이 1980년대 고안한 장치)이에요.”(최진성) 인터뷰이가 관객의 눈을 보고 직접 대화하는 듯한 효과를 만드는, 일종의 텔레 프롬프터다. 옆에 있던 박홍열 촬영감독은 “인터뷰이의 시선이 관객의 눈을 마주치지 않는 보통의 다큐멘터리와 달리 이 장치는 김완 기자가 관객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말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고 설명했다. 최진성 감독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이 이건 당신에게 하는 얘기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주고 싶어서 이 장비를 활용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감독과 촬영감독으로부터 한참 설명을 듣던 중, 김완 기자가 헤어·메이크업을 마치고 세트로 들어왔다. 그는 “서사에서 어떤 역할인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내가 어떻게 n번방 사건 취재에 뛰어들게 됐고, 취재 과정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테로트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최진성 감독과 김완 기자를 보니 관객도 n번방 사건을 자신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몰입할 수 있을 듯하다. 자정이 가까워져서 세트장을 나오니 하늘에서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2021. 11. 11 텔레그램 n번방 최초 개설자 ‘갓갓’ 문형욱 징역 34년형 확정.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공범 ‘부따’ 강훈 징역 15년형 확정.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에 출연한 전 추적단 불꽃 단, “피해자가 보호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 n번방 사건으로 많은 언론과 인터뷰했고, 강연도 했고, 정부 부처 회의에도 참석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대와 지지를 구하기도 했고.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로 한 이유는 그런 활동의 연장선인가. = 아무래도 기사나 유튜브는 사건을 단면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텔레그램이라는 특수한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가 벌어지는 구조를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최진성 감독님으로부터 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이용자 수가 많고, 나 또한 구독자인 데다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2020)를 재미있게 봤던 터라 넷플릭스라면 급하게 제작하지 않고 높은 완성도로 이 사건을 다룰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 촬영한 지 약 2년이 지난 까닭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웃음) 사전 질문지를 포함해 150~160개 정도의 질문에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 넷플릭스가 글로벌 OTT 플랫폼이라 해외 이용자들에게도 선보일 수 있다는 점도 출연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 그렇다. <오징어 게임> <소년심판>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다룬 넷플릭스 작품들을 흥미롭게 보았다. 넷플릭스에서 영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어가 자막으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전세계 이용자도 성범죄와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리라고 생각했다. 기존 언론은 n번방 사건을 단순 범죄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지 고민하는 관객에게 이 작품이 여성과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추적단 불꽃이 기성 언론과 달랐던 점은 단순히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널리즘’의 역할을 넘어 피해자와 연대하고, 범죄자를 잡기 위해 추적하는 ‘아웃리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 우리 역할을 처음부터 그렇게 정한 건 아니었다. n번방 사건을 알게 된 계기도 교수님의 제안으로 공모전에 나가기로 했고, 공모전 아이템을 찾다가 불법 촬영과 관련한 자료를 모니터링하게 됐고, 그러다가 와치맨이 운영하는 ‘고담방’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n번방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곳에서 자행됐던 범죄의 실체를 추적하다가 취재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러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다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관료주의적 문화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우리 또한 기자가 사건에 깊숙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피해자가 경찰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드는 활동을 했다. - 책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에 언급했던 것처럼 ‘채증 사진’을 반복 확인해 피해자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신경 썼듯이 이 작품 또한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가 되지 않게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 심지어 계약서에 그런 조항이 있었다. 최진성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은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이중, 삼중으로 자료를 확인하고, 재가공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는 단체라 이런 부분들까지 고려해서 촬영이 진행됐고,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실명이 아닌 단과 불로 계약했다. 제작진과의 연락도 여성 조감독님을 통해 진행했다. - 영화가 공개되고 난 뒤인 5월24일 화요일 밤 11시 <씨네21> 트위터 스페이스 ‘다혜리의 작업실’에서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할 예정인데. = n번방 사건이 세상이 알려지고 2, 3년이 지난 뒤에 이 영화가 공개되지 않나. 범인의 일부가 잡혔다고는 하지만 피해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또 해결되길 원하는 익명의 감시자들이 있다. 다혜리의 작업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성범죄 사건과 아동·청소년 인권 문제를 알릴 수 있는 방송이 되길 기대한다. - 어떤 관객이 이 다큐멘터리를 보길 원하나. = 넷플릭스의 한국 구독자들뿐만 아니라 <오징어 게임>을 본 분들은 다 봤으면 좋겠다. (웃음) 이 영화는 연출된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났던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디지털 성범죄와 아동·청소년 성착취에 대한 논의가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n번방 사건은 인생을 바꾼 사건이기도 한데. = 이 사건 이전에는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평범한 학생 기자였다. 공모전에 당선된 이후에도 언론고시를 준비했었는데 이 보도로 아무리 상을 많이 받아도 꿈에 그리던 기자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스스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조주빈이 잡히고 난 뒤 추적단 불꽃 활동을 했던 지난 2, 3년 동안 가장 긍정적인 변화는 해탈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는 거다. 뭐든지 하면 되는 거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세상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 거다. 그게 또 어떤 결실을 거둘지 모르니.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연출한 최진성 감독, "범죄자들은 우리 생각보다 치밀했고, 추적자들은 그보다 더 치열했다"

지난해 <씨네21> 신년호 특집 기사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에서 최진성 감독은 극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주진우 전 <시사IN> 기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을 추적한 <저수지 게임>(2017) 등 다큐멘터리 두편을 연달아 작업했던 그가 전작 <소녀>(2013) 이후 오랜만에 극영화 도전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계획처럼 되는가. 그가 내놓은 신작은 ‘n번방 사건’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 극영화를 준비하다가 다큐멘터리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가 무엇인가. =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는 영화에 대한 투자가 멈췄다. 그러던 중 넷플릭스로부터 다큐멘터리 연출을 제안받았다. 보나마나 제작이 1년 이상 걸릴 건데 이 과정을 돌파하는 게 늘 만만치 않아서 또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OTT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정한 자본이 투입된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를 작업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굳이, 또, 다큐멘터리를 연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 n번방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 아이템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범죄 사건과 저울질을 했는데 n번방 사건은 ‘뉴타입 크라임’이었다. 텔레그램이라는 특수한 온라인 공간에서 가상화폐를 대가로 아동·청소년 성착취가 이루어지고, 미국, 영국, 일본 같은 다른 국가도 이 방식을 모방하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데다 여성들의 피해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범인이 잡히기 전이라 현재 진행형인 이 범죄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사회적으로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 당시 충무로에서도 몇몇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n번방 사건을 영화로 만들려다가 손을 떼거나 보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얘기한 대로 현재 진행형이고, 여성들의 피해가 끔찍한 사건이라 뛰어들기가 쉽지 않은 소재인데. = 연출 계약서 도장을 찍기 직전에 ‘박사’가 잡혔다. 범인이 체포돼야 영화 서사가 완성되는데 박사가 잡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박사가 잡히지 않더라도 기록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기자, 추적단 불꽃, PD, 경찰 등 주요 등장인물들을 사전 취재했었다. 그 과정에서 짜릿하고 흥미로웠던 건 그들이 각자 취재했던 내용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쭉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를 펼치려고 했다가 인물 각각이 맡은 역할이 전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러 인물이 릴레이하듯 서사를 끌고 가는 현재의 형식이 되었다. 사건에서 취재한 영역도, 맡은 역할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라는 것. - 텔레그램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1인칭 시점으로 펼쳐낸 오프닝 시퀀스는 짧지만 임팩트가 강하다. = 관객을 구경꾼의 위치에 두고 싶지 않았다. 당신의 휴대폰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범죄라는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 SNS상에서 벌어진 범죄를 그려냈던 할리우드영화 <서치>를 레퍼런스 삼아 텔레그램의 레이아웃을 활용한 그래픽으로 n번방 사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의도도 있었다. - 등장인물 중에서 김완, 오연서 <한겨레> 기자와 추적단 불꽃, 두 집단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시켜야 했던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 개인적으로 스릴러 장르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나에게 스릴러가 뭐냐고 물어보면 한마디로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지옥 같은 상황에 휘말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들었다가 끝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 n번방 사건은 경찰, JTBC <스포트라이트>팀 등 등장인물 누구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꽃’이라는 평범한 대학 졸업반 학생 두명이 공모전에 지원하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다가 ‘사이버 지옥’을 만나는 순간 그 사건에 휩쓸려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사연이 무척 흥미로웠다. 결과적으로 그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이 다 바뀌었다. 김완 <한겨레> 기자도 마찬가지다. 레거시 미디어 중에서 가장 먼저 이 사건 취재에 뛰어든 김완 기자도 처음에는 n번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가 깊숙이 추적하면서 사건에 빠져든다. 추적단 불꽃과 김완, 오연서 기자가 만나는 지점이 굉장히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보았다. - 추적단 불꽃은 단순히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범인을 추적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몸을 사리지 않아 인상적이었다. = 기자들은 수습 과정에서 사건 깊숙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기자니, 취재니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범인을 잡으려고 한다. 대학교 4학년생들이, 20대가, 레거시 미디어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영역까지 뛰어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추적단 불꽃처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못할 것이다. 대학생이 가진 에너지, 20대 청춘의 뜨거운 열정이 이 사건의 중요한 트리거로 작동한 게 아닌가 싶다. - 영화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등장인물에게 받은 범죄 자료 대부분을 모자이크, 블러 처리해 보여준다. 윤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태도를 지키는 일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중요했을 것 같다. = 피해자가 찍힌 사진, 영상 자료는 영화에 단 한컷도 쓰지 않았다. 블러 처리된 이미지조차 실제 자료가 아니라 제작진이 연출해 재현한 거다. 실제 자료를 블러 처리하는 것조차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고, 그게 창작자로서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보았다. 인터뷰 사이에 애니메이션과 재연 영상을 배치한 것도 피해자가 겪은 범죄 상황을 어떻게 하면 간접적이면서도 묵직하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이 밖에도 남성 연출자가 피해 여성을 만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여성 조감독이 직접 피해자에게 연락해 양해를 구한 뒤 피해 기록을 듣고, 그걸 재가공해 영화에 배치시켰다. 넷플릭스와 제작진 또한 그러한 윤리 원칙을 공감하고,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다. - 이 다큐멘터리는 장르영화처럼 서사 전개가 무척 빠르고, 서스펜스를 공들여 구축하는 데다가 음악이 긴장감이 넘친다. 그렇게 연출한 이유가 무엇인가. =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 다시는 이같은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서사에 몰입하는 게 중요했고, 그러려면 일반 관객에게 익숙한 문법으로 서사를 전개시키는 게 필요했다. 연출자로서 피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스스로 질문했을 때마다 항상 무기력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벌어진 사건이고, 그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으니까. 하지만 창작자로서 피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추적극이라는 장르 문법을 통해 나쁜 놈은 반드시 잡힌다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게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았고, 그거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 곧 공개를 앞두고 있는데 어떤가. = 비슷한 범죄가 전세계적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분들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n번방 사건은 뉴스에서 접할 때와 너무나 다른 사건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범인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도, 이렇게 많은 가해자들이 지능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는지도 몰랐다. 범죄자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치밀했고, 추적자들은 그보다 더 치열했다. 그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기대하고 있다. 개봉했으니 그간 빠져 있던 ‘사이버 지옥’에서 이제는 도망가고 싶다. - 차기작은 무엇인가. = 덱스터스튜디오에서 내부고발자가 된 스파이를 그린 <인사이드맨>이라는 제목의 극영화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