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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연출한 최진성 감독, "범죄자들은 우리 생각보다 치밀했고, 추적자들은 그보다 더 치열했다"

지난해 <씨네21> 신년호 특집 기사 ‘한국영화 신작 프로젝트’에서 최진성 감독은 극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주진우 전 <시사IN> 기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을 추적한 <저수지 게임>(2017) 등 다큐멘터리 두편을 연달아 작업했던 그가 전작 <소녀>(2013) 이후 오랜만에 극영화 도전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계획처럼 되는가. 그가 내놓은 신작은 ‘n번방 사건’을 추적한 다큐멘터리다. - 극영화를 준비하다가 다큐멘터리로 방향을 선회한 이유가 무엇인가. =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는 영화에 대한 투자가 멈췄다. 그러던 중 넷플릭스로부터 다큐멘터리 연출을 제안받았다. 보나마나 제작이 1년 이상 걸릴 건데 이 과정을 돌파하는 게 늘 만만치 않아서 또 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OTT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정한 자본이 투입된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를 작업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굳이, 또, 다큐멘터리를 연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 n번방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 아이템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범죄 사건과 저울질을 했는데 n번방 사건은 ‘뉴타입 크라임’이었다. 텔레그램이라는 특수한 온라인 공간에서 가상화폐를 대가로 아동·청소년 성착취가 이루어지고, 미국, 영국, 일본 같은 다른 국가도 이 방식을 모방하는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데다 여성들의 피해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범인이 잡히기 전이라 현재 진행형인 이 범죄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사회적으로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 당시 충무로에서도 몇몇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n번방 사건을 영화로 만들려다가 손을 떼거나 보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얘기한 대로 현재 진행형이고, 여성들의 피해가 끔찍한 사건이라 뛰어들기가 쉽지 않은 소재인데. = 연출 계약서 도장을 찍기 직전에 ‘박사’가 잡혔다. 범인이 체포돼야 영화 서사가 완성되는데 박사가 잡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박사가 잡히지 않더라도 기록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기자, 추적단 불꽃, PD, 경찰 등 주요 등장인물들을 사전 취재했었다. 그 과정에서 짜릿하고 흥미로웠던 건 그들이 각자 취재했던 내용들이 하나의 사건으로 쭉 연결되었다는 사실이다.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를 펼치려고 했다가 인물 각각이 맡은 역할이 전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여러 인물이 릴레이하듯 서사를 끌고 가는 현재의 형식이 되었다. 사건에서 취재한 영역도, 맡은 역할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라는 것. - 텔레그램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1인칭 시점으로 펼쳐낸 오프닝 시퀀스는 짧지만 임팩트가 강하다. = 관객을 구경꾼의 위치에 두고 싶지 않았다. 당신의 휴대폰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범죄라는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 SNS상에서 벌어진 범죄를 그려냈던 할리우드영화 <서치>를 레퍼런스 삼아 텔레그램의 레이아웃을 활용한 그래픽으로 n번방 사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의도도 있었다. - 등장인물 중에서 김완, 오연서 <한겨레> 기자와 추적단 불꽃, 두 집단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시켜야 했던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 개인적으로 스릴러 장르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나에게 스릴러가 뭐냐고 물어보면 한마디로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지옥 같은 상황에 휘말리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들었다가 끝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 n번방 사건은 경찰, JTBC <스포트라이트>팀 등 등장인물 누구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꽃’이라는 평범한 대학 졸업반 학생 두명이 공모전에 지원하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다가 ‘사이버 지옥’을 만나는 순간 그 사건에 휩쓸려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다는 사연이 무척 흥미로웠다. 결과적으로 그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이 다 바뀌었다. 김완 <한겨레> 기자도 마찬가지다. 레거시 미디어 중에서 가장 먼저 이 사건 취재에 뛰어든 김완 기자도 처음에는 n번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가 깊숙이 추적하면서 사건에 빠져든다. 추적단 불꽃과 김완, 오연서 기자가 만나는 지점이 굉장히 영화적인 순간이라고 보았다. - 추적단 불꽃은 단순히 사건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범인을 추적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몸을 사리지 않아 인상적이었다. = 기자들은 수습 과정에서 사건 깊숙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기자니, 취재니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범인을 잡으려고 한다. 대학교 4학년생들이, 20대가, 레거시 미디어가 시도조차 하지 않은 영역까지 뛰어든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추적단 불꽃처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못할 것이다. 대학생이 가진 에너지, 20대 청춘의 뜨거운 열정이 이 사건의 중요한 트리거로 작동한 게 아닌가 싶다. - 영화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등장인물에게 받은 범죄 자료 대부분을 모자이크, 블러 처리해 보여준다. 윤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고 태도를 지키는 일이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중요했을 것 같다. = 피해자가 찍힌 사진, 영상 자료는 영화에 단 한컷도 쓰지 않았다. 블러 처리된 이미지조차 실제 자료가 아니라 제작진이 연출해 재현한 거다. 실제 자료를 블러 처리하는 것조차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고, 그게 창작자로서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보았다. 인터뷰 사이에 애니메이션과 재연 영상을 배치한 것도 피해자가 겪은 범죄 상황을 어떻게 하면 간접적이면서도 묵직하게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다. 이 밖에도 남성 연출자가 피해 여성을 만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여성 조감독이 직접 피해자에게 연락해 양해를 구한 뒤 피해 기록을 듣고, 그걸 재가공해 영화에 배치시켰다. 넷플릭스와 제작진 또한 그러한 윤리 원칙을 공감하고,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다. - 이 다큐멘터리는 장르영화처럼 서사 전개가 무척 빠르고, 서스펜스를 공들여 구축하는 데다가 음악이 긴장감이 넘친다. 그렇게 연출한 이유가 무엇인가. =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 다시는 이같은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관객이 서사에 몰입하는 게 중요했고, 그러려면 일반 관객에게 익숙한 문법으로 서사를 전개시키는 게 필요했다. 연출자로서 피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라고 스스로 질문했을 때마다 항상 무기력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벌어진 사건이고, 그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으니까. 하지만 창작자로서 피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추적극이라는 장르 문법을 통해 나쁜 놈은 반드시 잡힌다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그게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았고, 그거 하나만 보고 달려왔다. - 곧 공개를 앞두고 있는데 어떤가. = 비슷한 범죄가 전세계적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분들이 봐주었으면 좋겠다. n번방 사건은 뉴스에서 접할 때와 너무나 다른 사건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범인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도, 이렇게 많은 가해자들이 지능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는지도 몰랐다. 범죄자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치밀했고, 추적자들은 그보다 더 치열했다. 그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기대하고 있다. 개봉했으니 그간 빠져 있던 ‘사이버 지옥’에서 이제는 도망가고 싶다. - 차기작은 무엇인가. = 덱스터스튜디오에서 내부고발자가 된 스파이를 그린 <인사이드맨>이라는 제목의 극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제75회 칸국제영화제 중간 결산

어느덧 중반을 넘어선 제75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칸을 찾은 기자들은 경쟁부문에 초청된 감독들의 네임 밸류에 비해 작품이 전반적으로 심심하다는 아쉬움을 털어놨지만, 영화제 공식 소식지 <스크린 데일리>에서 최고 평점(3.2점)을 기록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다시 달아올랐다. 경쟁부문 후보작 21편 중 16편이 공개된 지금, <씨네21>이 향후 영화제의 선택을 점치는 기사를 준비했다. 올해 한국영화 초청작만 4편에 이르는 만큼 칸에서 만난 영화인도 다양했다.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 배우 탕웨이·박해일,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서 최초 공개된 <헌트>의 이정재 감독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경쟁부문 화제작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과 의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과의 만남은 올해 경쟁부문 분위기를 점칠 수 있는 요긴한 기사가 될 것이다. “Stop raping us!”(우리를 강간하지 마라) 조지 밀러 감독의 신작 <3천년의 기다림>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앞둔 5월24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국기 문양으로 보디페인팅을 한 여성이 레드 카펫에 섰다. 그는 프랑스 페미니스트 단체 SCUM 소속 활동가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여성에게 가한 성폭력을 규탄하기 위해 페스티벌을 찾았다. 그의 행동은 현장에서 즉각 제지됐지만 페미니스트 활동가의 시위는 칸영화제를 찾은 전세계 기자들에게 큰 화제가 됐다. 23일에는 스페셜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페미니스트 리포스트>(감독 마리 페레네스, 시몬 드파르동)팀이 여성 혐오 살인의 피해자 이름을 새긴 배너를 들고 레드 카펫을 걷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올해 칸영화제가 정치 이슈를 공론화할 수 있는 무대로 부각되는 것은 어쩌면 개막 이전부터 예고됐는지도 모른다. 칸영화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보여줘야 하는 시기에 개최됐다. 영화제 시작 전 칸영화제측은 러시아 대표단 및 친푸틴 성향의 기자들의 출입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개막식날 화상으로 참석해 영화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깜짝 연설을 전했다. 제임스 그레이와 예지 스콜리모프스키의 선전 반전과 페미니즘의 직접적인 메시지만이 정치 영역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3년 만에 정상화를 꿈꾸는 칸영화제는 다층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입장을 표명하고 변화를 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극장 내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지 않고 온라인 티케팅 시스템을 도입한 영화제(초반에는 서버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전세계 프레스의 원성을 사긴 했지만)는 계급화를 조장한다는 고질적인 문제로 비판받았던 복장 규정을 비공식적으로 완화했다. 관객은 물론 사진기자들까지 턱시도와 보타이, 굽 있는 구두와 드레스 등 격식을 갖춘 의상을 요구했던 뤼미에르 극장은 청바지에 가벼운 샌들을 신은 관객에게도 입장을 허락했다. 젊은 신인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던, 콧대 높은 경쟁부문의 문턱도 낮추었다. 프랑스의 문화 주간지 <텔레라마>는 “난니 모레티나 테런스 맬릭 같은 단골 감독들은 더이상 뉴스거리가 안된다. 영화제는 진화해야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라며 올해 두 번째 장편영화로 경쟁부문에 입성한 루카스 돈트와 레오노르 세라이예에 주목했다. 특히 올해 경쟁부문은 감독의 출신 국가부터 장르, 소재와 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밸런스를 고려한 작품 선정을 보여줬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제의 존폐 위기가 거론되는 지금 영화제의 존재 의미를 증명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올해 경쟁부문 상영작은 총 21편으로, 5월25일(현지 시각 기준)까지 16편의 작품이 공개됐다. 여기엔 이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 형제, 크리스티안 문쥬, 루벤 외스틀룬드 그리고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박찬욱, 클레르 드니 등 거장 감독과 세 번째 장편영화를 찍은 이란 출신의 알리 압바시가 포함되어 있다. 러시아 대표단의 참석은 금지됐지만,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수년간 가택 연금됐던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신작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스웨덴계 이집트인 타릭 살레 감독의 <보이 프롬 헤븐>은 정치와 종교가 무관하지 않은 국가에서 지도자(이 영화에서는 이맘, 이슬람교 교단 조직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하나의 직명이다)를 선정하는 비민주적인 절차를 묘사한다. 제임스 그레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아마겟돈 타임>은 지금까지 공개된 작품 중 가장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 중 하나다. 1980년 뉴욕 퀸스, 레이건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고 10살 소년 폴(뱅크스 레페타)은 예술가가 되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학교 선생님이나 가족들은 수업 과제와 관련 없고 반짝이는 독창성도 발견할 수 없는 그의 그림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공립학교에서 만나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되는 조니(제일린 웹)만이 그의 사정을 이해해주는데, 둘의 만남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폴이 가족 내 학대의 피해자이자 학교에서 무시당하는 부적응자라는 설정은 혜택받은 계급에 있는 자들이 가질 수 있는 편견과 한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폴의 성장통은 중산층이 되기를 꿈꾸는 유대인 이민자 집단에 속한 자신과 계급 상승의 가능성조차 없는 흑인 친구의 계급 차를 인지하면서 시작된다. 대중적인 화법으로 차별의 다층적인 구조를 성찰한 드라마로, 이는 1980년대 미국뿐만 아니라 동시대 어느 국가에서나 유효한 시각이다. <경계선>으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고 세 번째 장편영화로 경쟁부문에 입성한 알리 압바시의 신작 <홀리 스파이더>는 이란 내 여성 혐오를 날카롭게 포착했다는 호평과 더불어 기대 이하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고 있다. 매춘부를 대상으로 한 이란의 실제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진실을 추적하는 여성 저널리스트의 진득한 추적을 그린다. 프랑스 문화 주간지 <텔레라마>는 “문제는 감독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 어떤 충격효과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목이 졸려 죽임을 당하는 여성의 클로즈업으로 그가 느끼는 고통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두번, 세번 반복될수록 감독 자신이 폭력의 스펙터클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은 84살의 최고령 감독 예지 스콜리모프스키가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를 재해석한 영화 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새로운 형태, 화려한 색채, 모험 가득한 장면, 지각을 자극하는 여러 실험”을 언급하며 노장의 과감한 도전에 대해 호평했다. 논쟁적인 수위를 경고하는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감독의 인터뷰로 화제를 모았던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가 상영될 때, 내심 사람들이 기대했을 구토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관객을 보다 당황시킨 것은 79살의 그가 1980~90년대 집중적으로 탐구해왔던 세계로 돌아가 쉽지 않은 뚝심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비디오드롬> <엑시스텐즈> <더 플라이> <크래쉬> 등 기술의 진보 이후 인간과 기계의 포스트휴먼적인 결합과 새로운 섹슈얼리티를 영화 이미지로 구현해 온 크로넌버그는 이번 작품에서 신체가 새로운 돌연변이를 겪는 선진 사회를 예언한다. 합성 기술의 발달로 신체의 소유와 통제가 가능해진다면 제목 그대로 미래의 범죄는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난해한 스토리와 늘어지는 연출로 현지에서 반응은 엇갈리고 있지만, 크로넌버그 영화가 언제나 그래왔듯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크라임스 오브 더 퓨처>가 차지하는 자리는 근미래에 비로소 판가름날 듯하다. 다르덴 형제는 세 번째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을 수 있을까. 장 피에르 다르덴·뤽 다르덴의 카메라는 <토리와 로키타>에서 거주 증명서를 얻고 벨기에에 정착하기 위해 분투하는 아프리카 이민자 남매의 등을 따라간다. 프랑스 일간지 <레 제코>는 “절제와 신중함으로 이 끔찍한 이야기를 귀감이 될 만한 비극으로 만들었다. 심사위원단은 이 위대한 영화에 둔감할 수 없을 것이며, 황금종려상을 안겨줄지도 모른다”고 호평했다. 하지만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다루는 반복적인 소재와 태도를 문제삼는 <가디언>의 피터 브래드쇼 같은 평론가는 “이 작품은 기이하게 형식적인 ‘곤봉’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결말 자체는 비록 취약한 이민자들을 착취하는 무자비함을 암시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방식이 너무 순진하다”고 지적했다. 혼돈의 시대 , 영화제의 존재 의미 26일 오전 기준 칸영화제 공식 데일리지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한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다. <헤어질 결심>은 영미권 공식 소식지인 <스크린 데일리>에서 3.2점을 기록하며 지금까지 공개된 16편의 영화 중 유일한 3점대를 기록했다(<헤어질 결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어지는 박찬욱 감독, 배우 탕웨이·박해일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어느 때보다 정치적 이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영화제가 <헤어질 결심>을 주목하는 이유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점이다. 외신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박찬욱 감독 하면 떠오르는 수위 높은 폭력과 섹스가 없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인터넷 비평 사이트 <시네마 티저>는 “폭력적이고 관능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이상하게도 순결하고 플라토닉적이며 때로는 나른함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평했다. 또한 “매혹적이고 독선적인 네오 누아르”(<스크린 인터내셔널>)라든지 “유머와 우울함이 가득한 박찬욱 연출력의 정점”(<버라이어티>)이라는 반응은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적 함의보다 장르와 연출에 집중하는데, 이는 정치적 이슈와 함께 출발하며 당초 예상했던 칸영화제의 경향과는 맥을 달리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색깔이 짙은 영화와 영화미학 본연의 가치에 치중한 영화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행태도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정치는 사회문제를 겨냥한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는 작업에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다. 장르영화의 입지를 견고히 하거나 영화를 영화이게 만드는 조건에 대해 성찰하는 일이 어떻게 정치와 무관할 수 있을까.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칸영화제 75주년 행사에 참석해 “시네마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과거로 가기를 원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볼 것이다. 우리는 팬데믹이 끝난 후 시네마가 우리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싸워야 한다. 시네마는 여전히 살아 있다.” 칸영화제 규칙 제1조에 명시된 설립 약속이 “우정과 보편적 협력의 정신으로 영화예술의 진화를 위해 양질의 영화를 공개하고 선보이는 것”이었다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올해 칸영화제가 어떤 작품에 손을 들어주든, 그것은 혼돈의 시기에 가장 상징적인 영화제가 보여줄 수 있는 자세로 해석될 것이다. 폭력과 차별에 목소리를 내는 형태든, 장르와 상업성에 대한 고민이든, 팬데믹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으로 극장영화가 위기를 맞은 시대에 시네마의 정의를 고집스럽게 내리는 방식이든 어느 쪽이어도 의미가 있다. 영화제 후반에는 알베르 세라의 <퍼시픽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브로커>,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 켈리 라이카트의 <쇼잉 업>, 레오노르 세라이예의 <마더 앤드 선>이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다. 이중 특히 언론의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브로커> <클로즈> <쇼잉 업>이며 <브로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클로즈>의 루카스 돈트 인터뷰는 차주 본지에 실릴 예정이다. 75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수상 결과는 오는 29일 폐막식에서 공개된다.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디즈니+에 소리 소문 없이 스며든 훌루

<기묘한 이야기> 시즌4와 맞불 작전을 펼쳐야 할 <오비완 케노비>가 늦게 나온다고 너무 노여워하지 말자. 이제 스타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훌루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디즈니+에서 찾아보자. 2019년 론칭 후 무섭게 넷플릭스를 쫓고 있는 디즈니+가 한국에선 유독 힘을 못 쓰고 있다. 2021년 11월 론칭 후 이제 반년을 넘긴 디즈니+의 활성 사용자 수는 앱 분석 서비스인 와이즈 앱의 4월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140만명을 넘겼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한국 활성 사용자 수가 1천만명이 넘는다. 디즈니 내부에서도 지금의 성과는 무척이나 답답하지 않을까. <범죄도시2>가 나오기 전까지 올해 최고 스코어를 기록했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보기 전 디즈니+에서 <완다비전>을 꼭 봐야 할 정도로 디즈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중요한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너무 많은 마블 작품이 디즈니+의 시리즈로 나오기 시작해 오히려 마블 피로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디즈니+에 들어가면, 첫 화면에 우리를 맞이하는 로고는 6개다.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 지오그래픽, 스타다. 여기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블, 스타워즈는 꾸준히 오리지널 시리즈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시청자들은 콘텐츠가 적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자신들의 콘텐츠가 여전히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미국에서는 디즈니+의 콘텐츠가 더 많을까? 그렇지 않다. 미국 내 디즈니+ 사용자는 스타 브랜드 채널의 콘텐츠를 볼 수 없다. 스타에는 디즈니의 대표 방송 채널인 'ABC'의 콘텐츠, 그들이 인수했던 폭스 계열의 FX(를 타깃으로 한 드라마들이 제작된다), 20세기 스튜디오, 텔레비전(예전 20세기 폭스)의 콘텐츠가 있다. 왜 이 콘텐츠들을 미국 내에서 볼 수 없냐면, 미국판 웨이브인 훌루에서 오리지널 혹은 독점으로 제공하고 있는 콘텐츠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4500만명의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훌루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시청할 수 있다. FX의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리즈, 훌루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라이프 앤 베스> <드롭아웃> <내가 그를 만났을 때> 등 별도의 글로벌 론칭은 어려울 것 같은 훌루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디즈니+의 스타에서만 볼 수 있다. 문제는 잘 찾아봐야 한다는 것.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듯한 추천 엔진이 내가 찾고 싶은 콘텐츠를 찾는 걸 도와주진 못하니까 말이다.

[트위터 스페이스] 다혜리의 작업실: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감독 및 출연자들과의 대화

※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다혜리의 작업실’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작품 세계와 글쓰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는 코너입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https://youtu.be/lEfjVzUMucY 이다혜 @d_alicante 다혜리의 작업실 여덟 번째 게스트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이하 <사이버 지옥>)를 연출한 최진성 감독, N번방 문제를 최초로 세상에 알린 불꽃의 단, 기성 언론 중 처음으로 이 문제를 알린 <한겨레> 김완, 오연서 기자, 이렇게 네 분입니다. 5월 18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은 N번방 사건을 맞닥뜨린 기자, PD, 경찰 등 24명의 인터뷰를 통해 범죄의 실체를 밝혀나가는 추적 다큐멘터리입니다. 작품이 공개되고 일주일 정도 지났습니다. 넷플릭스 뉴스레터를 보니 <사이버 지옥>이 한국 1위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 1위를 했다고 합니다. 최진성 감독 아시아권 관객들이 압도적인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뭘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 사건이 발생하기 더 쉬운, 취약한 환경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사이버 지옥> 작업을 시작하신 때가 언제인지도 궁금합니다. 최진성 감독 2020년 3월, 넷플릭스와 한국의 범죄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논의했고, 1순위로 떠올린 게 N번방 사건이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알게 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사건이었음에도 넷플릭스를 통해 다뤄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불꽃의 단님은 가장 먼저 N번방 사건을 접했고, 이 사건이 알려지는 과정을 지켜보셨습니다.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단-불꽃 @56flame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 범죄에 정치권, 수사기관, 사법기관의 관심이 잘 쏠리지 않더라고요. 텔레그램이나 ‘N번방’, ‘박사방’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알려지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오히려 트위터 같은 SNS에서 사건이 알려지면서 익명의 인물들이 목소리를 냈고, 그 덕에 언론도 점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주빈이 잡힌 이후 범행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고, 공론화가 빠르게 진행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완 기자 @funnybone1030 우리는 언제나 살인사건에 충격 받지만, 사실 살인은 매일 일어나거든요. 모든 살인사건에 언론이 관심을 주기는 어렵죠. 성범죄도 비슷합니다. N번방 사건을 다루면서도 우리가 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이버 지옥>에서도 얘기를 했습니다만, 어느 순간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내가 ‘박사’의 악행을 보도하는 것이 그냥 허공을 묘사하는 것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는 거죠. 그런 함정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계속 되묻는 과정이 어려웠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취재하면서 피해자, 가해자 모두 접촉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피해자 중 미성년자도 굉장히 많은데, 당시 취재가 이뤄진 방식에 대해 들어봤으면 합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054 그들을 접촉하기 위해 기자들이 할 수 있는 건 제보 받기 말고는 없거든요. 저희가 마련한 창구를 통해 피해자 분들과 그 지인들이 제보를 해주셨고, 피해자 분들이 저희의 인터뷰 요청을 수락하시도록 열심히 설득했습니다.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인터뷰에 나서주신다면 그걸 막아주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소라넷 사건, 웹하드 카르텔 등의 디지털 성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사의 행태에 실망한 분들이 계셨음에도 피해자분들이 용기를 내서 조심스럽게 저희에게 협조해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단-불꽃 @56flame N번방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할 때도 디지털 상의 아동청소년 성착취 문제에 대한 언론의 이해도는 마이너스에 수렴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당시 추적단 불꽃에 ‘제일 끔찍한 가해 장면을 보내달라’, ‘판매가 이뤄진 성착취물을 캡쳐해 보내달라’라며 연락한 기자들도 있었어요. 단편적이고 자극적으로, 성착취의 맥락을 읽을 수 없게끔, 그냥 이런 별나고 미친놈들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말더라고요. 불꽃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쓴 이유도 그런 단편적인 보도에 지쳐서입니다. N번방, 소라넷 이전부터 이어져온 성 산업 구조를 다루고 싶었고, N번방 사건이 그런 맥락에서 튀어나온 한국적 범죄라는 걸 끊임없이 말하고 싶었어요. 최진성 감독 <사이버 지옥>을 만들면서도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드러날 수 있는 자료, 선정적인 영상은 다 배제한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한다거나 추상적인 드라마 컷, 인서트 컷으로 피해자 분들의 고통 묘사를 대체하는 방식이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러운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저희 영화가 피해자 분들께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태도이자 감독의 책임 있는 자세라 생각했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최진성 감독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고통은 영속적입니다. 성착취 영상의 삭제 시스템이 잘 개발된다면 고통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단-불꽃 @56flame 피해자가 본인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더 증언할 수 있도록 도와야합니다. 수사기관 실무자, 여성단체 상담가 등 실제로 피해자를 만나는 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을 맞아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김완 기자 @funnybone1030 범죄 근절을 위해 사법적으로 제일 중요한 건 확실하게, 엄하게 처벌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디지털 성범죄는 한 번도 그렇게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죠. 수사 인력이 보강돼야 하고, 전담 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054 교육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해왔습니다. 조주빈 세대는 10대부터 디지털 기기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 기기가 범죄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텔레그램, 트위터 등에서 일어나는 성착취가 범죄라고 인식하게 된 지도 얼마 안 됐단 말이죠. 몰래 사진을 찍는 것, 성착취물을 다운받아 소지하는 것 모두 범죄고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학교와 집에서 가르치는 게 시작입니다. 이다혜 @d_alicante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겪은 분들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질문 드리겠습니다. 단-불꽃 @56flame 아동청소년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가 있어야 경찰 신고, 접수를 할 수 있습니다. 삭제 지원이나 상담을 필요로 할 때도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해요. 그런 상황이 허들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 허들을 같이 넘어줄 어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디지털 성착취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시민단체에 자문도 구해보시고, 국가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054 어떤 어려움에 처해있는지 정리해서 기자에게 보내주시면 기자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취재를 시작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의지할 곳이 없는데 무언가를 바꾸고 싶다면, 도움을 받고 싶다면, 기자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다혜 @d_alicante 마지막으로 최진성 감독님, 아직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을 안 보신 분들께 시청을 독려하는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최진성 감독 <사이버 지옥>을 통해 우리의 관심이 모여서 확장되어야 피해자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관객 분들도 그렇게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미 있고 재미있는 영화니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칸국제영화제 결산⋯ 황금종려상에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 '헤어질 결심' 박찬욱은 감독상, '브로커'의 송강호는 남우주연상에

칸영화제 폐막식 당일로 플래시백. 5월28일 오후 7시. 폐막식이 열리려면 아직 1시간30분이나 남았지만 폐막식 중계를 보려는 기자들이 일찌감치 몰려 기자실의 공기는 뜨거워지고 있었다. 기자실의 명당은 부지런한 한국 기자들의 몫이었다. 한국 기자들은 폐막식 전에 미리 짐을 쌀 수 없었다. 2019년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의 영광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이어받을지도 모른다는 (충분히 기대해봄직한) 예상 때문이었다. 실제로 폐막 당일,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팀 모두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건 수상과 연결된다는 얘기다. 기자들은 분주하게 기사의 리드를 뽑았다. 대체적 예상은 <헤어질 결심>에 황금종려상이나 그에 버금가는 상이 주어질 것이고,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단에 놓일 수준의 작품은 아니었기에 송강호의 남우주연상에 무게가 실리는 쪽이었다. 박찬욱 감독의 황금종려상은 언제?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여우주연상에 <성스러운 거미>의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가 호명되고, 각본상에 타릭 살레 감독의 <보이 프롬 헤븐>이 불린 다음,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이 소개될 차례가 되자 익숙한 한글 이름 세 글자가 들려왔다. “<브로커>의 송강호!”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자 한국 기자들은 단체로 환호성을 질렀다. 한국 배우 중 칸영화제에 최다 진출(<괴물>(2006), <밀양>(2007),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박쥐>(2009), <기생충>(2019), <비상선언>(2021), <브로커>(2022))한 배우 송강호는 한국 남자배우 최초로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렸다. 3년 전에는 <기생충>의 주인공으로, 지난해엔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칸을 방문하며 부쩍 칸영화제와 긴밀하게 스킨십을 해온 송강호의 이번 남우주연상 수상은 한국영화에서 차지하는 송강호의 독보적 위치에 대한 존중과 최근 한국영화가 보여준 상징적 위상에 대한 인정이 혼합된 측면이 있다. 강동원, 이지은, 배두나, 이주영 등 배우들의 앙상블이 중요한 영화인 <브로커>는 송강호의 원맨쇼를 구경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고, 배우상과 작품상의 공동 수상이 불가한 칸영화제의 원칙 때문에 상대적으로 감독과 영화 자체에 스포트라이트를 내줘야 했던 경험이 많았던 상황을 생각하면, 비록 <브로커>의 상현이 송강호 최고의 캐릭터는 아니라 할지라도 꽤 시의적절한 수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말 그대로 역사적 순간은 뒤이어 찾아왔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수상하는 순간, 올해 칸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축제의 한복판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박찬욱과 송강호. 오랜 기간 한국영화를 떠받쳐온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영화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서로 다른 두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헤어질 결심>은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 두 인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형사와 용의자라는 캐릭터 구도를 빌려 장르적으로 풀어낸 영화다. 히치콕의 영화들을 연상케 하는 작법과 스타일로 클래식한 영화의 멋과 재미를 안기는 이번 영화는 시각적 잔상에 몰두하는 대신 감정적 여운에 집중하며 고유의 기품을 발산한다. 세련된 유머, 다층적 의미의 대사,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한데 어우러져 흥미로운 질서를 구축한다. 히치콕의 자장 안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연습했다는 박한 평도 있지만 박찬욱의 감독상 수상은 모두가 수긍할 만한 결과였다. <프랑스 엥포>는 “박찬욱의 감독상은 충분히 정당하다. 작품의 우아함은 숏마다 드러난다. <올드 보이>의 심사위원대상, <박쥐>의 심사위원상, <헤어질 결심>의 감독상. 박찬욱은 언제쯤 황금종려상을 받게 될까?”라 했고, <파리 마치>는 “작가영화와 대중영화의 완벽한 결합”이라며 작품에 지지를 보냈다. 한국영화의 성취로 뜨거운 칸영화제였지만, 경쟁부문 수상 결과 전체를 놓고 보면 올해 칸영화제는 확실한 노선 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티탄>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처럼 파격적인 결과도 없었고, 지나친 예우는 아쉬움을 남겼다. 프랑스 현지 언론은 대체로 ‘모순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이라 총평했고, <텔레라마>는 21편 중 10편이 수상한 것을 두고 “올해 심사위원들은 너무 자비로워서 문제였을까?”라며 나눠주기식 수상에 이의를 제기했다. 황금종려상…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가 최선이었나 황금종려상은 5년 전 <더 스퀘어>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루벤 외스틀룬드의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에 돌아갔다. 구토와 설사가 난무하는 체면 차리지 않는 블랙코미디를 포복하며 즐긴 것은 맞지만, 이 작품에 황금종려상을 안기는 것이 최선이었나 하는 의문은 남는다. 모델 인플루언서 커플과 세계 최고의 부호들을 모아놓고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공고한 계급을 전복하는 루벤 외스틀룬드의 냉소적 희극은 분명 다른 경쟁작들과 차별화되는 개성을 보여주지만 전작보다 단순해진 풍자와 과도한 1차원적 개그를 재미있는 난동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한 건 한없이 일상적인 상황- 이를테면 레스토랑에서 밥값을 누가 계산하느냐 하는 문제– 에 사회적 고정관념과 계급 문제와 젠더 문제를 뒤섞어 골때리는 코미디 시퀀스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는 감독의 솜씨엔 감탄하지 않을 수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정치적 올바름이란 모두가 예외 없이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성역 없음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이앵글 오브 새드니스>가 <더 스퀘어>와 비교해 확실한 도약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면 올해 황금종려상은 다른 이에게 돌아갔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르덴 감독의 경쟁자는 그 누구도 아닌 다르덴 감독이듯, 그래서 올해 심사위원단이 다르덴 감독의 영화를 경쟁부문에 초청해놓고 ‘75주년 특별상’을 특별히 만들어 수여한 것처럼, 일정한 수준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건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고레에다 히로카즈, 크리스티안 문쥬, 박찬욱 등 여러 거장들에게 공평하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올해 황금종려상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클로즈>에 돌아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클로즈>는 클레르 드니 감독의 <스타스 앳 눈>과 함께 심사위원대상을 공동 수상했다. 이 공동 수상은 우정과 부성애와 성장과 탐험과 자아성찰을 모두 담으려다 길을 잃어버린 <여덟개의 산>과 당나귀의 시점을 취해 아름다운 예술적 실험을 감행한 가 심사위원상을 나눠가진 것보다 더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다. 클레르 드니의 <스타스 앳 눈>은 미국 작가 데니스 존슨이 1986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끈적한 열대기후의 니카라과에 발이 묶인 미국인 기자와 영국인 사업가가 사랑을 하고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다. <스크린 데일리>는 “정치 스릴러인 척하는 에로틱 캐릭터 드라마인 척하는 프랑스 작가영화”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관능적이고 나른하고 철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마거릿 퀄리(앤디 맥다월의 딸이다)의 매력이 유일하게 러닝타임을 버티게 하는, 산만하고 도취적인 영화다. 그렇기에 <스타스 앳 눈>과 평단의 찬사를 받은 <클로즈>가 심사위원대상을 공동 수상한 것을 두고, 클레르 드니에 대한 심사위원장 뱅상 랭동의 ‘예우’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다시 <클로즈> 얘기로 돌아가서, 벨기에의 젊은 감독 루카스 돈트의 <클로즈>는 올해 칸의 최고 수확이었다. 1991년생 신성은 거장 다르덴 형제 감독과 함께 올해 벨기에영화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8년, 발레리나를 꿈꾸는 트랜스젠더 소녀의 이야기 <걸>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받아 황금카메라상과 퀴어종려상 등을 수상했던 루카스 돈트는 두 번째 장편 <클로즈>로 올해 경쟁부문에 진출해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했다. <클로즈>는 13살 두 소년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함께 뛰놀다 한 침대에서 잠이 드는 것이 일상인 레오와 레미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새 친구들을 사귀면서 ‘관계’를 시험받는다. 관계를 정의할 필요가 없었기에 행복했던 소년들은 자신들을 커플로 바라보는 친구들을 의식하며 사이가 멀어진다. 소년들의 깊은 우정은 사실 사랑에 가깝지만, 사회적 시선을 감당하기에 이들은 아직 어리다. 감각적 연출이 극대화된 초반부, 감정적으로 휘몰아치는 후반부 모두 헤아릴 수 없이 감동적이다. 심사위원대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루카스 돈트 감독이 눈물을 훔치던 순간은 올해 시상식에서 가장 순수한 감흥을 준 순간이었다. 기억해야 할 영화들 수상은 불발됐지만 기억해야 할 영화들도 있다. 여러 번 칸에 초대받았지만 이번에도 빈손으로 돌아간 제임스 그레이의 <아마겟돈 타임>과 뒤늦게 칸에 입성한 켈리 라이카트의 <쇼잉 업>은 이른바 수상하기 좋은 부류의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 팬들을 미소짓게 하기엔 충분한 작품들이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유년 시절이 반영된 자전적 영화 <아마겟돈 타임>은 1980년을 배경으로 중산층 유대인 소년 폴이 흑인 친구 조니를 만나 세상의 부조리를 경험하고 갈등하고 성장하는 드라마다. 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외할아버지로 등장하는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기, 명대사도 인상적이며 일그러진 욕망과 트라우마 대신 인간의 정직과 용기를 옹호하는 따스한 시선이 제임스 그레이의 근작에선 느끼지 못했던 감흥을 전한다. <퍼스트 카우> <어떤 여자들> <어둠 속에서>의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쇼잉 업>을 통해 귀엽고 위트 있게 일상을 사유한다. 감독과 오래 협업해온 미셸 윌리엄스가 전시를 앞둔 예술가로 출연하며, 영화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관계들로 이루어진 예술가의 진부한 일상과 그 내부의 진동을 가만히 포착하고 특별하지 않은 것의 특별함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올해 경쟁작 21편의 수준이 최고였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지금의 시대와 예술을 사유하는 21편의 세계는 그만큼 다채로웠다. 다채로운 세계와의 만남. 그것이 가능하도록 한 영화제라는 축제의 장. 팬데믹 이전으로 시계를 돌린 듯했던 제75회 칸영화제가 마침표를 찍었다. 칸에서 본 많은 영화들이 국내 관객과도 곧 정식으로 인사 나눌 수 있길 기대하며, 올해 칸영화제에 안녕을 고한다.

[유선주의 드라마톡] '우리는 오늘부터'

막장 드라마를 만나면 꼭 공식 홈페이지의 기획 의도를 읽으러 간다. 거창한 목표와 조잡한 결과물간의 괴리가 클수록 얄궂은 재미도 커진다. 그래도 말한 대로 책임지길 바라는 기획 의도를 만날 때도 있다. 의료사고로 임신한 드라마 보조작가 오우리(임수향)가 주인공인 SBS <우리는 오늘부터>는 베네수엘라 텔레노벨라를 리메이크한 미국 의 <제인 더 버진>(넷플릭스)을 다시 한국판으로 옮겨왔다. 원작의 중요한 성취에 한국식 양념을 치는 드라마에 자주 실망했던 터라, 2년 사귄 연인과 냉동 정자의 주인을 오가는 우리의 로맨스는 남편 찾기로, 임신을 유지하는 결정은 생명의 가치 등으로 재포장한다 해도 그리 놀라지 않았을 테다(불은 뿜었겠지만). 해서, ‘사랑 없이! 남자 없이! 여자 혼자! 임신한다면? 이건 여성이 중심인 가족을 만들 기회 아닌가요?’라는 기획 의도가 뜻밖이었다. 임신을 소재로 죄책감을 심는 드라마에 바짝 긴장하는 입장으로 <우리는 오늘부터>를 편하게 즐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가치관이 다른 모녀 삼대를 비롯해 각자의 이해관계로 반목하던 여성들이 연대하며 요란한 사건 사고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원작의 핵심으로 파악하고 한국판에 적용하려는 기획 의도를 붙들고 지켜본다. 16살에 우리를 낳은 엄마 오은란(홍은희)은 딸이 자신을 부끄러워한다고, 우리는 자기가 엄마의 꿈을 꺾은 존재라고 여기다 앙금을 털어낸다. 혈연이니까 화해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원작은 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다른 여성과 갈등을 푸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한국판이 여기까지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망한 드라마라고 비웃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CHECK POINT 29살 오우리는 혼전순결 서약을 지키다 날벼락 같은 임신을 했고 영화 <십개월의 미래>의 또 다른 29살 최미래(최성은) 역시 기억에 없는 임신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닌가 의심한다. 임신의 중단과 유지가 온전히 여성의 선택과 결정이 되려면, 그 선택의 근거가 되는 정보가 투명해야 하는데 실상은 임신 중단의 의료적 과정이 불투명하고, 임신한 여성이 겪는 변화와 일터와 사회에서의 취급도 말해지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임신부를 지우는 세상에서 미래는 자신이 사라져도 모를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낀다.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재난의 본질을 내다보다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베란다에 새들이 마실 물통이라도 걸어놓아야 하나 고민한다. 인터넷 마트에서 배송 신청을 하려다가 장바구니를 든다. 고체치약을 씹는다. 기온이 높아져 펭귄들이 아사했다는 소식을 본다. 사진이 보일까 무서워 눈으로만 기사를 훑는다. 과일을 사며 20년 후에도 이 과일을 먹을 수 있을지 진심으로 걱정한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연비 나쁜 자가용을 날마다 몰고 다닌다. 사람 두명과 고양이 세 마리가 사는 집에서 에어컨을 방마다 켠다. 많은 서류를 인쇄한다. 세탁기와 건조기와 의류관리기를 쓴다. 택배로 물건을 산다. 물을 틀어놓고 세수하는 습관을 아직도 완전히 고치지 못했다. 사놓고 안 먹은 음식이 냉동실에 가득하다. 가뭄과 기온 변화로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이나 생존을 위협받는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에 울되, 그 이야기를 와이파이가 연결된 커다란 텔레비전으로 본다. 기후 위기 대응에 가장 효과적인 일은 아이를 덜 낳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 한명이 연간 배출하는 탄소배출량이 약 58t인데, 빨래를 1년간 자연건조해서 줄일 수 있는 탄소배출량이 0.2t이라고 하니 실로 효과적이다. 그다음이 자동차 이용하지 않기와 장거리 비행하지 않기다. 나는 차도 타고 비행기도 탄다. 그에 더해 건조기까지 사용한다. 결국 내가 제대로 하는 유의미한 기후 위기 대응은 비출산 하나뿐인 셈이다. 이렇게 방만하게 살면 망해도 싸다. 30년 뒤의 나는 아마 너무 덥고 더럽고 불쾌한 도시 한복판에서 2022년의 서울을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수많은 SF에서 묘사한 디스토피아나 아포칼립스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인 나를 쉽게 상상한다. 그 늙고 병든 나는, 세상이 이 꼴 날 줄 모르고 국제선 비행기 타기(타지 않으면 연간 탄소배출량 1.6t 감소)를 좋아하고, 계절에 안 맞는 과일을 사먹고, 육식주의자라며 고기를 구워 먹던(채식 시 연간 탄소배출량 0.8t 감소)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릴 것이다. 아마 기후 위기에도 그렇게 대충 살았다고 후회하겠지. 그런데 70대인 나라는 등장인물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면, 이 인물이 후회만 하지는 않는다. 미래의 나는 두번 오지 않을 낭비의 시대에 청춘을 보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솔직히 아주 조금, 안도한다. 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튼 차로 이동하고, 음식이 남아 주기적으로 냉장고와 냉동실을 치우고, 갓 건조된 뽀송한 수건을 쓰고, 수천 미터 상공에서 나는 비행기에서 술을 마시고 이부자리를 펴던 그 사치의 기억. 이 노인의 만족감이 문득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기후 위기의 섬뜩함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나는 위기를 초래한 많은 낭비 속에서 이미 평생의 반 정도를 살았다. 시간이 흐르는 한, 우리 세대가 향유한 만큼 비용을 지불해야 할 날은 오지 않는다. 방만하게 살아 망해도 싼 세대가 아니라 그다음, 혹은 그다음 다음 세대가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이기적이고 무책임해지기 쉬운 재난의 본질 앞에서 나는 문득 망연해진다.

김혜리 기자의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스포일러 인터뷰

박찬욱 감독이 몇편의 사랑영화를 만들어왔나 헤아려보고 흠칫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아가씨>는 대놓고 러브 스토리였고 조금 비밀스러운 데야 있지만 <스토커> <올드보이>도 여기 묶을 수 있다. 6부작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신작 <헤어질 결심>에 이르러 관객이 박찬욱식 멜로드라마를, 혹은 그 변태성을 전에 없이 화제로 삼아 즐거워하고 있다면 그건 이번 영화의 연인이 그나마 보편적으로 감정이입하기 용이한 인물들이라서일 수도 있다(동시대 인간이고, 헤테로섹슈얼이고, 근친이나 적이 아니다). 혹은 마침내 연애가 영화의 중심 사건이자 플롯이 되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피해 사랑을 표현하는 말과 몸짓의 총화다. 욕망의 문답은 취조와 심문의 언어를 빌려오고 정의, 진실, 예의 같은 다른 범주의 인간 행위가 끌려들어온다. 송서래(탕웨이)와 장해준(박해일)은 자부심에서 비롯된 기품이 있는 남자와 여자다. 깨끗하지만 친절을 모르는 남편에게 모욕당하며 살던 서래는 경찰서 사체 검안실에서 해준을 처음 만난다. “중국인이라 한국말이 서툽니다.” “한국말, 저보다 잘하시는데요.” 어색하게 시작된 둘의 대화는 예상을 뛰어넘어 지속되고 어떤 강보다 험하게 굽이치며 끝내 바다까지 흘러간다. 품위 있는 두 인간의 사랑은 그러나 그들의 품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랑으로 말미암아 해준은 과거부터 쌓아올린 현재를, 서래는 미래를 위협받는다. 우스꽝스러움과 애절함이 산 정상에서 만나고 죄와 영광이 가장 깊은 바다 밑에 한데 묻힌다. <헤어질 결심>은 수석과 분재를 확대한 듯한 모양의 바위와 나무가 있는 해안에 마지막으로 도착한다. 자연의 축소판인 수석과 분재를 다시 실물 크기 바위와 나무로 옮겨놓은 것 같은 그 이미지는 현실과 관념, 구상과 추상 사이 박찬욱 영화가 서 있는 자리의 표식 같기도 하다. <공무도하가>의 백수광부처럼 파도 속으로 걸어들어갈지 썰물이 남기고 간 폐선의 잔해처럼 살아갈지 짐작할 수 없는 남자는 영겁의 시간에 갇힌 것처럼 보이고 서래의 웃음이 들리는 듯하다. 이번에도 박찬욱의 연인들은 세상 끝에 당도하지만 서로를 보지 못함으로써 사랑은 영원해진다. 2023년 오스카 레이스에 <헤어질 결심>이 가을부터 합류할 경우 차기작 <동조자> 제작 스케줄과 조정이 될까? 그런 아무도 시키지 않은 걱정을 하며 박찬욱 감독을 만나러 갔다. 그는 연출적 선택에 대해 “아껴뒀다가 썼다”라는 표현을 종종 썼다. 영화언어의 한 음절 한 음절을 귀중히 다루고, 무난한 숏은 곧 실패로 여겨 파기하며, 불가피한 조건을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격상시켜 결과에 통합하는 그의 연출 태도는 작품이 거듭될수록 굳건해지고 있었다. - <헤어질 결심>은 투자자 이름을 나열하는 한국영화 특유의 크레딧이 오프닝에 생략돼 있고 곧장 총성으로 시작합니다. = 그런 한국영화도 종종 있지 않았어요? 영화를 총성으로 시작한 것은 사건 현장, 심지어 액션을 상상하도록 오도하려는 뜻도 있었어요. - 저는 사건 현장의 소리인가 싶어 몇발이 발사됐는지 속으로 셌어요. = (웃음) 허무하라고 한 거예요. 해준(박해일)은 총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인물인데 틀린 선입견도 만들고 싶었어요. 관객은 사격장 신이 나오면 표적을 얼마나 잘 맞혔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데 그것도 안 보여줬죠. - 그렇게 허를 살살 찔러가며 시작한 영화는 러닝타임 90분 즈음까지 부산을 배경으로 진행되고 이후 50여분은 이포에서 전개됩니다. 두건의 살인 -뒷부분에는 철성(서현우)의 어머니 사건도 숨겨져 있지만-, 두곳의 경찰서, 두명의 경사 파트너. 이처럼 가운데가 접히는 형식은 <아가씨>도 그랬지만 <아가씨>는 원작의 구조가 이미 있었잖아요. <헤어질 결심>의 2부 구성은 어느 단계에서 결정됐나요? = 초창기 트리트먼트를 쓸 때, 서래(탕웨이)가 중국 사람스럽게 예를 들면 당시(唐詩) 같은 옛날 문장 형식의 말을 좀 하면 좋겠다고 정서경 작가와 이야기했어요. 그 결과물의 예가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같은 대사죠. 그런데 어느 날 정서경 작가가 <산해경>을 가지고 왔어요. - <산해경>은, 특별한 서사는 없고 어디로 가면 무슨 산이 있고 어떤 신기한 짐승이 있다고 나열하는 식의 책인데요. = 어쨌든 산과 바다에 관한 책이고 산과 바다는 우주죠. 공교롭게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바다에서 끝나니까 제목만으로도 영화에 부합하는 것 같았어요. 각본에는 완성된 영화에서보다 <산해경>이 중요하게 언급되죠. 서래의 외조부 계봉석이 취미 삼아 필사했고 본인이 덧붙이기도 했다는 대사도 있었어요. 그리고 서래는 물려받은 계봉석 판본 <산해경>을 공부 겸 한국어로 번역하며 필사한 거죠. 그러다가 영화를 두 챕터로 아예 나눠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산과 바다라고 표기한 타이틀 카드가 각장 서두에 나오는 편집본이 오랫동안 있었어요. 형식적으로 단정하고 괜찮았는데 러닝타임이 길다는 걱정이 나오면서 내가 관객이라면 보통 영화 한편 끝날 즈음 갑자기 ‘바다’라는 소제목이 뜨면 여태 본 만큼 또 봐야 하나 싶어 공포스러울 거 같았어요. 실상 ‘바다’는 절대 ‘산’만큼 길지 않은데, 그러면 난 정말 억울한 거죠. 그래서 뺐어요. (좌중 웃음) - 극중 부산은 우리가 아는 부산이지만 이포는 가공의 도시입니다. 호미산도 경남 의령의 호미산이 아닌 듯합니다. 이포를 만든 것은 영화가 이 도시에 필요로 하는 속성 -원전, 안개, 조수간만- 을 한꺼번에 가진 실존 도시가 없어서였나요? = 그렇죠. 호미산은 이포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 부산과 이포 챕터 사이의 시간적 갭이 13개월인데, 이건 어떻게 계산해 나온 시간인가요? = 1년보다 짧으면 서래가 큰 변화를 겪기에는 좀 밭은 것 같았고 마음의 정리도 될 만한 긴 시간은 곤란할 것 같았어요. 원래는 두 번째 남편 임호신(박용우)을 만나는 경위에 관한 신이 각본에 있었어요. 서래가 돌보는 화요일 할머니가 결국 돌아가시고, 상갓집에서 어떤 유족보다 섧게 우는 서래를 아들이 눈여겨봤다가 접근한다는 설정이었어요. - 그 장면이 있었다면 임호신이 조금 더 입체적이었겠네요. = 아쉬워요. 그걸 찍기로 한 시점엔 이미 이대로 가면 굉장히 긴 영화가 되겠다는 압박이 있어서 찍지 않았어요. - 그렇다면 이포 부분의 서래가 본연의 모습에 가깝다고 보면 될까요? = 어느 서래가 진짜냐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도수(유승목)와 살다보니 해소하지 못한 욕망이 많아서 값비싼 물건도 사고 싶고 그럴 마음이 생겼을 수 있는 거고. 사랑의 심문 - 스릴러의 틀로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영화적으로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 긴장이 깨지지 않는다는 점이죠. 나는 사랑영화를 볼 때 대개 좀 지루해졌어요. 밀당도 있고 다툼도 있지만 결국 그들의 사랑은 변치 않고 헤어지거나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해도 그들의 사랑은 당연하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긴장이 떨어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랑하는 관계에 의심이 개입하면 좀더 드라마틱해지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만나 연애해도 의심할 수 있지만 용의자와 형사로 만났을 때의 의심과는 비교할 수 없겠죠. - <친절한 금자씨>부터 함께한 정서경 작가와 작업하면서 <헤어질 결심>에서만 겪은 일이 있다면요? = 배우를 정해놓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죠. 박해일은 실제로 캐스팅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이런 사람을 상상해보자. 예를 들면 박해일 같은”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사람마다 박해일에게 받는 인상은 다르겠으나 내가 사적으로 만나보고 받은 인상은 담백한 사람, 친절한 사람, 점잖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연애의 목적>에서 너무 강한 인상을 줬는지 다른 사람들은 의외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꼿꼿해요”라고 해준이 서래를 묘사하는 말이 내가 박해일에게 받는 느낌이기도 해요. 긴장하지 않으면서 꼿꼿한 사람이라고 해준이 서래를 묘사하는 건 자기 이야기예요. 덧붙여 박해일에 대한 내 인상을 굳힌 작품은 <덕혜옹주>였어요. 캐릭터가 군인이라는 면도 작용했겠지만 실존 인물을 그린 작품에서 가공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자칫 허황돼 보일 수도 있는데 박해일이 하니 의젓하고 기품이 있었어요. - 왜 이번 작품은 배우부터 정했어야 했나요? 사랑 이야기라서? = 박해일은 작가에게 이미지를 제시하기 위해 참고했던 이름인데 실제로 이뤄졌으니 행운이었고요. 남자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애초부터 직업과 성격이 잡혀 있었는데, 여자는 용의자라는 점 외에는 백지 상태였어요. 그런데 정서경 작가가 갑자기 중국 사람으로 하자고 해서 왜냐고 물었더니 그래야 탕웨이를 캐스팅할 수 있지 않냐는 거예요. 나 역시 탕웨이를 좋아했고 오래전부터 탕웨이를 캐스팅할 수 있는 영화를 우리가 좀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해온 터였죠. (한국영화에) 굴러들어온 복인데 마땅한 기획이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헤어질 결심>의 여주인공은 무엇이건 만들어갈 수 있으니 기회였죠. - VIP 시사회에서 탕 배우가 아이맥스 상영관에 꽉 찬 관객을 가리키며 “산처럼 보인다”고 하더군요. 극중 대사를 인용하는 인사였는데 평소에 말을 밀도 있게 하는 사람 같았어요. <헤어질 결심>은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다”라는 대사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순간부터 해준의 사랑이 시작됐다고 봐야 할까요? = 배우들도 그걸 꼭 물어요. 그래서 여러 가설을 주고받았는데 내 경우는 심문 과정에서 서서히 시작됐다고 생각했어요. - 처음 시신을 보러 온 서래와의 대화 중 이례적으로 사이가 길게 뜨고 “패턴을 좀 알고 싶은데요” 하는 순간 같기도 하고. = 난 그 장면 찍을 때 “아이고, 대사를 까먹었구나. 그 몇 마디 되지도 않는걸, 쯧쯧” 하며 컷을 부르려고 했는데(좌중 폭소) 배우의 의도였어요. 물론 사이를 떼라고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길게 할 줄은 몰랐지. 그래도 만나자마자 너무 반한 사람처럼 보이면 곤란할 것 같아 일단 보류했는데 현장 편집으로 보니 침묵의 순간이 너무 재밌어서 결국 사용했어요. 그 밖에 사랑의 시작이 될 만한 순간이 몇몇 있어요. 시신 상태를 어떻게 확인하겠냐는 질문에 서래가 처음에는 ‘말씀’으로 듣겠다고 해서 실망했다가 사진으로 선택을 바꾸니까 반기는 표정으로 변한다든가. 동족이라고 느끼는 거죠. - 계단참에서 해준이 수완(고경표)에게 부검에 대해 서래에게 설명해주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묘하게 찍혀 있어요. 대화인지 독백인지 알 수 없도록 해준과 수완을 나눠 찍었는데 해준이 계단 모퉁이를 돌아 위층으로 사라지는 순간이 이제 그는 수완과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는 신호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 그냥 두 사람이 분리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후로는 둘이 대치하는 국면으로 전개되죠. - 초밥 먹은 상을 치울 때 10년 산 부부처럼 손발이 척척 맞는 대목도 그렇습니다. = 그러고 나서 해준이 따라오라며 먼저 방을 나가고 서래는 다시 안 돌아올지 몰라 가방과 코트를 챙겨 드는데 밖에서 해준이 마치 보고 있는 것처럼 “다시 올 거예요!”라고 소리쳐요. 그러면 서래가 별일이네 하는 표정을 지으며 코트를 내려놓죠. 그게 탕웨이의 아이디어였어요. 서래가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나의 사랑이 시작됐다”라고 말은 했지만 내 생각엔 사랑을 깨달았다는 의미지 사랑은 그전부터 싹텄죠. 사건이 종결돼 유품까지 돌려받았으면 더이상 이 남자를 속일 이유도 없는데 계속 밥도 먹고 절도 가고 홍산오(박정민) 사건이 해결된 날 찾아와 재워준다고도 하고. - 재워준다고 방문한 날은 기도수 사건의 증거를 인멸하려는 목적도 있었지 않나요. = (시큰둥하게) 어쨌든 종결됐다고 하는데, 굳이 뭐 그렇게까지. - 사건이 끝나서 기쁘냐고 물어보는 것도 불필요한 질문이잖아요. = 그 대화를 좋아해요. 탕웨이도 대놓고 말하는 품이 탕웨이 같고 박해일도 왜 묻냐고 했다가 잠시 후 인정하는 것이 박해일 같아요. - 이야기의 반환점인 서래의 아파트에서의 이별 장면에서 카메라 움직임이 주의를 끕니다. 카메라의 위치가 높아 인물들이 깊이 가라앉은 것처럼 보였다가 해준이 떠난 다음 서래가 다시 떠오릅니다. = 서래가 자리에 앉으며 프레임 아래로 나갔다가 카메라가 틸트 다운하며 다시 들어오죠. 인물을 놓쳤다가 다시 찾아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이고 그 장면의 시공이 좀 다르게 느껴지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서래의 집은 계속 등장한 장소지만 그 순간을 위해 천장이 많이 보이는 앵글을 아껴뒀다가 내리누르는 느낌으로 썼어요. 어쩌면 SF - 형사가 용의자를 감시한다는 설정에서는 서래가 일방적 욕망의 대상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불균형을 바로잡는 장치 중 하나가 해준과 서래가 동족이라는 가설인 것 같아요. = 사회적 조건이 매우 이질적인 두 사람이지만 살면서 중요시하는 면이 통한 거죠. 감시당한다는 상황은 불쾌한 것인데 지금 믿음직한 남자가 잠을 안 자고 지켜주는 기분이 든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정말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겠죠. 형사를 속여야 하는 용의자의 자리에서 벗어난 심리 상태인 거지. 뭐, 이미 초밥의 맛을 볼 때부터 호감을…. (좌중 웃음) 작은 실수가 있었는데 시마스시라는 초밥집이 실제로 있다는 걸 모르고 상호를 지었어요. - 사실 엿보기는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같은 예술영화부터 1980년대 할리우드 에로틱 스릴러까지 무수히 쓰인 장치라, 어떻게 진부하지 않게 찍을 것인가가 중대한 과제였을 법합니다. 엿보는 쪽이 대상이 있는 공간으로 텔레포트한 것처럼 연출하셨는데 이 방식으로 무엇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나요? = 호기심이죠. 첫 순간이동의 계기가 서래의 얼굴이 커튼에 가려졌을 때예요. 얼굴을 더 잘 보려고 망원경을 든 해준의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안으로 들어가 있는 겁니다. 안 보일 때 오히려 상상의 클로즈업이 작동하는 거죠. - 그런데 2부에서 서래가 해준을 훔쳐볼 때에는 순간이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욕망의 작동 방식은 해준의 고유한 것이구나 짐작했습니다. = 서로 다른 방식을 택하는 거죠. 편집 중 없어진 장면 중에는 서래가 돌봄 노동을 얼마나 프로페셔널하게 수행하는지에 관한 해준의 감탄도 있었어요. - 탕웨이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목표가 먼저고 서래를 디아스포라의 일원으로 설정한 것이 나중이라는 사실이 의외입니다. 외국어로 대화한다는 문제가 영화에서 여러모로 중요한 모티브라서요. = 예를 들어 탕웨이와 영화를 찍고 싶어서 중국 사람으로 캐릭터를 설정했다면,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주연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 어떻게 서툰 언어로 연애 스토리를 끌고 갈 것인가, 즉 약점을 어떻게 에둘러 갈지를 중심으로 접근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조건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서 마치 각본이 먼저 정해지고 배우를 구한 것처럼 보일 정도가 되길 바랐어요. <복수는 나의 것>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신하균이 연기한 류가 말을 못하는 것은, 당시에 하도 캐스팅이 어려워 홍콩 배우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 기본적으로 사랑에는 언제나 암호의 요소가 있으니까 외국어의 모호함이 잘 어울리는 면이 있지만, <헤어질 결심>에서는 외국어 사용자는 네이티브보다 말의 사전적 정의를 정확히 안다는 사실도 중요해 보입니다. 무엇보다 해준은 서래의 정확한 화법을 좋아하는 남자고, 두 남편은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자이거나 한국어를 지저분하게 쓰는 사람들입니다. = 서래와 해준이 동족인 이유 중 하나죠. 관객이 막 웃어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한국말을 못 알아듣더라”라는 대사를 내심 좋아해요. - <아가씨>에서는 남에게 들은 말을 자기 말처럼 제3자에게 반복하는 상황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번역 앱이 쓰였습니다. 여기에는 언어의 거리와 시간적 거리가 동시에 게재됩니다. 통역에 걸리는 시간도 있고 과거에 녹음된 걸 현재 듣는 시차도 있죠. 덕분에 해준과 서래의 연애뿐 아니라 보편적으로도 모종의 ‘이격’(離隔)이 사랑의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 예컨대 한국어를 못하지 않는 서래가 굳이 통역 앱을 써서 중국어로 말할 때에는 굉장히 중요한 내용일 테니 해준은 궁금함이 더 간절해지고 그 갈망을 관객이 공유하게 됩니다. 한편 서래는 한국어로는 정확히 전달하기 어려워 답답했던 감정을 발산하고요. 그러고는 앱이 내 말을 잘 전달하나 유심히 듣죠. 내가 외국 가서 인터뷰할 때 통역이 정확히 전하고 있나 듣고 있는 것처럼. (웃음) - 그러고 보니 앞서 2부의 서래가 본래 서래에 가까울 거라고 짐작한 데에는 통역 앱의 음성이 1부에서는 남성, 2부에서는 여성이었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 2부의 호미산 장면에서만 여성 목소리가 나오죠. 실존하는 통역 앱보다 기능이 훨씬 우수해서 일종의 SF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웃음), 여성 음성을 선택할 수 있는 모드가 13개월 후에 개발된 거죠. (웃음) 여자 목소리는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는 호미산의 대화를 위해 아껴뒀어요. 죽은 자와 눈 맞추기 - <산해경>은 1부의 서래 집 벽지에서 보듯 시각적 모티브도 된 것 같습니다. 한편 해준의 부산 집은 온통 M. C. 에셔의 큐브 같은 격자무늬투성이고 이포의 정안(이정현) 집에는 기하학적 추상화들이 걸려 있던데요. = 해준의 벽지는 고야드 가방의 패턴처럼 보일까봐 걱정도 했는데 그냥 반듯하고 규칙적이고 정리벽이 있는 사람이 좋아할 법한 느낌을 살렸어요. 네모에 갇힌 고지식한 느낌과 루틴의 반복을 표현했죠. 서래 집의 벽지도 반복 무늬긴 하지만 변화의 기운이 있죠. 정안 집의 그림은 말레비치 계열 그림의 변형일 거예요. - 1부에는 기도수 추락사 사건 외에, 알고 보면 치정 범죄(crime of passion)인 서브 사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홍산오 사건의 속성과 비중에 대해서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각본에서 기능으로 보면 장해준 형사가 일하는 매너를 보여주는 예시이고 시간적으로는 사랑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했을 텐데요. =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가 쓴 마르틴 베크 시리즈나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를 좋아하는데 여기 보면 강력반 형사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면서 메인 사건과 서브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는 기법이 등장해요. 두 사건이 관련이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 끝에 가서 만나기도 하고 여러 용도가 있어요. 홍산오 사건은 돈을 둘러싼 젊은이들의 사건같이 보이다가 나중에 가서 본질이 드러나죠. 그리고 서래가 이 사건의 해결에 영감을 주는데 수사관도 아니면서 힌트를 주려면 인간 본성 내지 사랑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겠죠. 해준이 옥상에서 산오와 대치해 설득할 때 갑자기 “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말이야”라며 죽은 기도수가 살아 있는 양 이야기하잖아요. 정말 용의자를 설득하려고 트릭을 쓰는 건지 정말 과몰입해 자기 이야기를 흘리는 건지 구별되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 두 차례의 추격전이 모두 옥상 같은 공간에서 마무리됩니다. 앞의 추격전은 서래가, 뒤의 추격전은 산오의 애인(정하담)이 바라보고 있죠. 비금봉과 호미산까지 포함하면 해준은 항상 높은 곳으로 힘들게 올라가서 진실과 마주치는 편입니다. = 그러게. <현기증>이 연상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지금 드네요. 이지구를 추격하는 첫 추격전에서는 계단이 길고 높아서 젊은 수완이 못 쫓아오는 상황을 만들려고 했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공포를 다루고 있는 영화니 어울린다고 봤습니다. 홍산오를 추격하는 신도 눈 뜨고 추락한 시체와 서로 마주 보는 기도수 때 상황을 반복할 필요가 있어서 두번 다 옥상이 배경이 됐습니다. - 후반에 가면 시신의 자세로 해준이 눈을 뜨고 누워 있는 숏도 나오는데요. = 해준도 결국은 그 남자들처럼 살해되거나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관객이 계속 갖고 가길 원했어요. 해준은 서래가 결혼했던 두 남자에 대해 형사의 입장을 넘어서 관심을 갖기 때문에 약간의 동일시가 이뤄져요. 기도수가 즐겼던 위스키의 맛을 알고 싶어서 똑같은 걸 사서 맛보고 휴대용 플라스크도 사서 다니죠. 서래의 두 번째 남편 임호신을 만난 이후 손가락 관절을 꺾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기도 합니다. - 기도수와 임호신은 둘 다 비싼 시계를 차고 있던데요. = 임호신의 롤렉스는 기도수의 것을 물려받은 거예요. 서래도 웃기는 사람이지. 전남편의 시계를 깨진 유리만 갈아서 선물했어요. - 서래 집에 있던 대만산 위스키가 회식 자리에 등장해서 해준이 들고 온 건가, 환상인가 했어요. = 편집됐는데 부하 형사 미지가 해준의 신용카드를 받아 사오는 장면이 있었어요. - 기도수가 출입국 관리국에서 일하다 압수한 술일까 상상도 해봤습니다. = 기도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요. 오디오, 음반, 암벽등반 그리고 위스키가 그것이죠. - 영화에 등장하는 오디오 마니아나 고전음악광은 변태인 경우가 많아요. 박동훈 감독의 <계몽영화>에도 그런 인물이 나왔죠. 그런데 기도수는 비싼 오디오로 음악을 들을 때는 미닫이문으로 아내가 있는 공간을 차단해요. 조금 무리해서 해석하면 기도수가 아내 서래를 대하는 태도는 식민지를 대하는 점령국의 그것 같았습니다. 소유물로 취급하고 훈장도 주고 학대하고. 말러 교향곡 5번을 사용하셨는데 말러가 자아가 비대한 인물이 사랑할 만한 음악이라서인가요? = (웃음) 맞아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말러 애호가들이 듣고 화를 내면 어쩐담? 나라면 킥킥 웃겠지만. 다들 ‘말러 애호가들이 그런 면이 있지. 나는 아니지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박쥐>에서 시어머니(김해숙)가 남인수, 이난영의 노래를 좋아하는데 태주(김옥빈)는 극혐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을 비호감 캐릭터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쓰면서 변태적 즐거움을 느끼나봐요. 발음보다 중요한 억양 - 탕웨이 배우는 대부분 출연작에서 연애 내러티브를 만드는 동시에 로맨스 속에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마이클 만의 액션 스릴러 <블랙 해트>조차 탕웨이의 얼굴에 감정의 대부분을 걸고 있어요. 덧붙여, 두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하는 작품에서 중국어 대사를 할 때 굉장한 카리스마와 품위를 발한다는 인상을 받아왔습니다. = 누구나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쓸 때는 취약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점을 좀 활용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모국어를 말할 때 생기는 자신감으로 인해 관계가 역전될 듯한 아슬아슬함이 발생하죠. 중국어로 말하는 통역 앱 사용 장면을 몇번이나 만든 이유도 그런 탕웨이의 위엄을 관객이 느끼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 한국어 대사를 감독님이 직접 녹음해주셨다고 탕웨이 배우가 인터뷰했는데 대안은 없었나요? (웃음) = 원래는 여성 연극배우가 한국어 대사를 내 디렉션으로 녹음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나더러 해달라고 탕탕(탕웨이의 현장 닉네임)이 부탁하더라고요. 나는 배우도 아니고 남자인데. - 원래 연기 시범은 안 하시는 걸로 알아요. = 대사는 억양이 중요해서 정확히 알고 싶었는지…. 나 역시 발음은 알아듣기만 하는 수준이면 되지만 억양은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딜 강조하고 말끝을 올릴지 말지는 의미의 이해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니 억양만큼은 어느 한국인보다 더 정확해야 했어요. 어눌한 발음과 정확한 억양이 결합할 때 생기는 재미가 있죠. - 시사회에서 어떤 한국영화보다 대사가 잘 들려서 놀랐습니다. 특별히 녹음과 믹싱에서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 현장 동시녹음도 완벽을 추구했지만 끝없이 테이크를 갈 수는 없으니 소리의 길이와 입모양만 정확하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후시녹음에서 처절한 노력을 했어요. 창도 없는 밀폐된 녹음 부스는 30, 40분만 서 있어도 멀미가 나는데 탕웨이가 어떤 대사는 수십번 이상을 반복하고 나는 형사처럼 유리창 밖에서 지켜보며 서로 기계가 되어갈 때까지 녹음했어요. 그렇게 후시녹음을 마치고도 대사를 숙지하고 있는 우리 귀에 들어온다고 처음 보는 관객에게도 그럴까 염려돼 블루캡(녹음실) 직원 중 우리 영화를 담당하지 않는 직원들에게 테스트를 했고 그래도 귀 밝은 사운드 전문가들 아닌가 싶어 스탭들의 비영화인 친인척을 초대해 다시 체크했죠. 마지막에는 베이징 녹음 스튜디오를 빌려 생중계하면서까지 보완했어요. - 여연수 경사(김신영)는 왜 동료들 사이에 따돌림을 받나요? = 칸에서 영화를 본 한국 기자들이 성 정체성을 질문했어요. 소수자라서 왕따냐고. 뜻밖이었어요. 부산에서 우울증에 걸려서 전근 온 거냐고 해준에게 묻는 모습에서 보듯, 궁금하면 바로 물어보고 사회적 스킬이 별로 없는 인물이라 사람들이 멀리한다고 생각했어요. - 대칭을 이루는 고경표 배우의 수완이 (코미디언 출신) 김신영 배우의 연수보다 더 장르적인 캐릭터라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김신영씨 소속사 대표님은 처음 제안을 듣고 농담인 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웃음) 철성의 취조 장면에서 욕한 것도 애드리브였다고 들었습니다. = 우정 없는 우정출연인 줄 알았다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원래 욕은 각본에도 있었지만 김신영씨가 연배 있는 경상도 분들이나 아는 “돌 빨았나?” 같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독창적인 표현을 조사해왔어요. 작업 과정은 다른 배우와 똑같았어요. 연극 10년쯤 하던 배우를 발견해 캐스팅한 기분이었어요. 봉준호 감독이 송새벽 배우를 <마더>에 데려온 것처럼. 스마트한 클래식 멜로드라마 - 산보다 바다를 선호하는 서래와 해준은 극중에 인용된 공자의 정의에 의하면 인자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감상(感傷)을 덜어내려는 선택이었을까요? =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긴다기보다 적어도 인자한 사람은 확실히 아니다 정도일 겁니다. 서래는 필요하다면 무자비한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을 테고 해준은 ‘인자’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 나 정도로는 어질다고 보기 어렵다는 쪽이 아닐까요. - <헤어질 결심>의 부제를 ‘스마트폰 시대의 사랑’으로 지어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번역 앱, 운동 앱, 추적 앱 그리고 아이폰의 문자 입력 중 말줄임표까지 서사에서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아이폰으로 촬영한 단편 <일장춘몽>이 있었지만 <헤어질 결심> 역시 일종의 애플 영화가 아닌가 싶기까지 했어요. = 서래와 해준이 같은 종족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똑같이 소나타를 몰고 폰도 같은 회사 것을 썼어요. 갤럭시였어도 무관한데 애플쪽에서 협찬을 했어요. - 가정용 전화가 보급됐을 때, 그리고 핸드폰을 누구나 사용하게 됐을 때도 스크루볼 코미디나 스릴러의 각본 쓰는 방식이 영향을 받은 역사가 있습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인데 <헤어질 결심>처럼 스마트폰의 기능을 결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쓴 영화는 처음 본 것 같습니다. = 옛날 영화나 소설을 21세기 배경의 영화로 각색할 때 어려운 점이죠. 그냥 원작의 시대를 가져오는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는 우리도 앱이 너무 많이 나오지 않나, 줄여야 하나 고민했는데 관객 입장에서 쉬운 해결책이 있는데 왜 어렵게 돌아가나 의문이 들 것 같았어요. 억지스럽게 플롯을 전개하느니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고 기왕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문자를 보낼 때 보는 것은 폰 액정이지만 마음으로는 문자를 받는 상대의 얼굴을 보고 있는 거죠. 그러니 시점숏의 주인은 핸드폰이 아니라 서래인 겁니다. - 그외에도 사물 시점의 숏이 많습니다. 손목시계의 무브먼트 시점도 있고 죽은 자의 안구 속 시점도 있고요. 사물의 시점이 영화에 더해지며 생기는 효과는 무엇인가요? = 처음엔 해준이 살인 현장에서 눈 뜨고 죽은 사람의 망막에 마지막으로 새겨진 범인을 꼭 잡아주겠다고 약속하는 심정으로 피해자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다양한 경우로 확장됐어요. - 해준의 별명을 ‘폰 모으는 남자’로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웃음) 세어보니 월요일 할머니의 폰, 호신의 대포폰, 철성의 폰, 서래가 차에 두고 간 폰까지 모조리 해준의 손에 들어와요. = 스마트폰 활용을 회피하기를 포기하고 나니까 자꾸 빠져들더라고요? 이왕 그렇게 된 거 몰아주기로 했어요. (좌중 폭소) - 스마트폰을 적극 사용하지만 동시에 매우 고전적인 멜로드라마 장면들이 있습니다. 자동차 뒷자리에 해준과 서래가 나란히 앉은 장면은 교향악까지 합세해 데이비드 린의 <밀회>를 연상시키고, 절에서 데이트하는 시퀀스는 꼭 한국이나 일본의 옛날 영화 속 장면 같아요. 박해일 배우가 신성일처럼 보이고요. 입고 있는 트렌치코트도 그렇고. = 해준이 나름 데이트를 위해 차려입은 거예요. (웃음) <헤어질 결심>의 영감이 된 정훈희의 <안개>가 김수용 감독의 <안개> 주제가이기도 해서 과거 한국영화에 대한 존경심도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았대도 서래는 외국인이니 해준이 관광객을 안내하듯이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사찰을 선택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해준의 성격이 절을 선호할 것도 같고 박해일의 <나랏말싸미> 영화도 떠올랐고요. 촬영지는 순천 송광사입니다. - <올드보이>의 대표색이 보라라면 <헤어질 결심>은 청록인 것 같습니다. = 파랑으로도 녹색으로도 보이는 색이고 바다와 산의 색이기도 해요. 바다는 빛에 따라 파랑으로도 녹색으로도 보이고, 산도 보는 거리에 따라 그렇죠. 사실 서래가 입는 청록색 원피스도 파랑 한벌, 녹색 한벌을 만들었어요. - 그리고 관객한테 당신들 눈이 문제라고 덮어씌우려고요? (웃음) = 안개가 이 영화의 중요한 기후 현상인데 그 속에서 뭔가 흐릿하고 불분명한 것을 보고 싶었어요. 서래는 이렇게 보면 살인자고 저렇게 보면 피해자니까요. - 서래의 가발에 대해서는 편집 전에도 설명이 없었나요? = 가발을 설명하는 ‘대사’는 없었고 그저 벗는 동작이 보이고, 여러 가발이 거치대에 씌워져 있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면 관객이 2부의 서래는 자주 변신하는 존재구나, 충분히 짐작하리라 생각했어요. 어시장에서 해준 부부를 만날 때 서래는 가발은 아니어도 웨이브를 많이 넣고 브리지까지 한 머리를 하고 있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중국에서 엄마를 돌볼 당시의 헤어스타일을 호미산 갈 때 재현했다는 사실입니다. - 호미산에서 서래가 머리에 쓰는 랜턴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정념이 본격적으로 폭발하는 장면인데 우스꽝스러운 소품을 선택했어요. 프레임 내부에서 조명 구실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서래가 이 조명으로 인해 얼굴 없는 존재로 화합니다. = 일단 다른 광원이 없고 눈이 내려 달도 없는 산인데 그 장면을 컴컴하게 찍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헤드랜턴을 쓴 현실적 이유였어요. 빛의 방향도 바꾸기 용이하죠. 랜턴을 쓰면 상대방 얼굴에는 강렬한 빛이 떨어지고 빛을 쏘는 쪽은 역광 때문에 얼굴이 흐릿해져요.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서래의 얼굴이 랜턴의 빛으로 인해 완전히 사라진 풀숏입니다. 리허설하다 우연히 발견하고 너무 좋았는데 막상 슛 들어가니 잘되지 않아 배우가 어색하지 않은 한도에서 길게 찍었어요. 서래가 무슨 외눈박이 거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외경스럽고 공포스러운 이상한 이미지입니다. - 극중 드라마가 두편 있고 모두 새로 찍었습니다. 하나는 무녀가 나오는 시대극이고 다른 한편은 <적색경보>라는 한류 드라마입니다. 후자는 그럴 법한 설정인데 전자는 어떤 스토리가 있나요? = 전자는 <태백산맥>의 소화라는 어린 무당의 러브 스토리를 떠올리면서 만들었어요. 극중 드라마의 제목도 그래서 <흰 꽃>입니다. - 영화를 보면서 끝까지 맞추지 못했던 조각들이 있습니다. 먼저, 마지막 서래의 해변 신에 나오는 장대는 어떤 용도인가요? = 어디까지 언제 물이 잠기는지 예전에 답사 와서 구덩이를 파야 할 장소를 표시해둔 겁니다. - 호신의 죽음을 회상하는 플래시백에서 서래가 현장을 치우는 도중 호신이 눈을 뜨는 숏이 있어요. 서래가 절명시킨 건가요? = 이미 죽은 상태의 경련 같은 겁니다. 듣고 보니 그런 오해를 낳을 수 있겠군요. - 이포 바닷가의 목격자 중 한명이 심하게 기침을 하는데 요양 온 환자라는 설정인가요? = 그냥 감기 걸렸거나 그때 사레가 들렸거나… 뭔가 관객의 신경을 거스르고 싶었어요. 마침내 미결되다 - ‘마침내’라는 부사가 영화에서 여러 차례 되새겨집니다. 영문 자막은 어떤 단어로 번역됐나요? = 달시 파켓과 함께 고민한 결과 ‘at last’로 했어요. ‘오로지’도 두번 쓰고 ‘도무지’ 같은 단어도 생각해봤지만 운명적인 느낌을 주고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마침내’를 썼어요. - 영화에서 ‘마침내’는 ‘그러다가 결국’이라는 뜻으로 처음 쓰이고 서래가 잠결에 우는 장면에서 ‘이제야’처럼 쓰이다가 결말에 이르러 ‘기어이’의 뜻을 품게 됩니다. 마지막 시퀀스는 ‘마침내’가 쌓여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그림 속으로 표표히 건너가버리는 동양 설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진 해안 풍경도 어찌 보면 수석이나 산수화를 실물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라 <산해경>의 삽도를 실물화하면 이럴까 싶기도 하고요. = 서래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산해경>의 글만 번역한 것이 아니라 그림까지 베껴 그렸는데 제일 잘 그려진, 펼친 페이지 하나만 영화에 보여준 것이 아쉬워요. 마지막 장소는 해가 져야 하니 서해안에서 찍어야 했지만 1부에 나오는 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바위 또한 있어야 해서 동해안에서도 헌팅을 많이 했어요. 산 모양 바위가 있는 해안은, 사람들이 세트 아니냐고 해서 억울한데 동해 삼척의 부남해변입니다. 생김새 덕분인지 무당이 세운 신당도 있고 계단도 있었어요. 해준이 파도를 맞으며 멀어지는 해지는 바다는 서해의 학암포입니다. 서래와 해준이 주차하는 부감 롱숏은 마검포고, 해준이 서래를 찾아 헤맬 때 부는 누런 바람도 실제로 불었던 모래바람입니다. - 마지막 해변 시퀀스 처음에 나오는 해안도로 직부감 롱숏은 극히 회화적이라 그 순간부터 영화가 추상적 세계로 진입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해안도로 부감숏이 두번 나오는데 해준이 해안에 도착할 때 나오는 두 번째 부감숏의 오른편을 보면 파도의 포말이 모래사장에 남기는 궤적이 서래의 옆모습 윤곽이에요. 만든 우리끼리만 아는 표시죠. - <헤어질 결심>의 결말을 그저 사실적으로, 서래의 끝은 자살로, 해준의 끝은 서래를 찾아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서래의 퇴장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내가 정해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서래가 숨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이유도 같습니다. 하지만 해준의 경우는 서래를 찾아 먼바다로 나아가 죽는다고 보는 관객이 없기 바라요. 서래는 어디까지나 자기가 해준의 미결사건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라고 작별인사를 하잖아요. 서래가 살았건 죽었건 해준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건 분명하고, 시체조차 못 찾은 해준은 서래가 살아 있다고 믿고 죽는 날까지 찾아 헤매거나 제 발로 나타나기를 기다리겠지요.

‘오징어 게임’ 비영어권 최초로 에미상 작품상·남우주연상 후보 올라

[한겨레] 박해수·오영수·정호연도 조연상 후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한국 드라마 최초로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에미상의 드라마 부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 ‘성기훈’으로 출연한 이정재도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됐다. 에미상을 주관하는 미 텔레비전예술·과학아카데미(ATAS)는 13일 오전 0시30분(한국 시각) <엔비시>(NBC) 생중계를 통해 제74회 에미상 후보를 발표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후보로 지명됐다. <오징어 게임>은 <석세션> <기묘한 이야기> <베터 콜 사울> <유포리아> <오자크> <세브란스> <옐로우재킷> 등 나머지 7개 작품과 경쟁한다.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된 이정재는 <오자크>의 제이슨 베이트먼, <석세션>의 브라이언 콕스 등과 겨룬다. <오징어 게임>에서 ‘조상우’역을 맡은 박해수와 ‘오일남’을 맡은 오영수는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 후보로 서로 경쟁하게 됐고, ‘강새벽’을 연기한 정호연은 드라마 부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은 오는 9월12일 열린다. 한겨레 황준범 기자

'외계+인' 유니버스는 이렇게 창조됐다

이안의 레드 / 무륵의 블루 조상경 의상감독은 이안(김태리) 의상의 모티브를 해인사의 요선철릭 유물에서 가져왔다. “메인 컬러를 레드로 잡고 이안이 남사당패에서 자란 전사라는 점을 고려해 깃 부분에 조각보 방식으로 수를 놓았다. 저고리는 아랫부분이 치마처럼 주름이 퍼지는 액주름포를 활용했는데, 액주름포는 옆선에만 주름이 들어가서 서 있을 때와 움직일 때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반면 무륵(류준열)의 의상은 훨씬 얇고 가벼운 인상이다. “모시, 옥사, 명주 등의 천연색 천을 사용했고 홑겹으로 만들어진 옷을 여러 벌 입어 걸을 때 자락이 더 퍼지게끔 디자인했다. 오방색을 그대로 쓰기보다 간색(두개의 오방색을 섞어 만든 색.-편집자)을 배색해 비색, 청록색, 취람색 등을 만들어 사용했다.”(조상경 의상감독) 정체를 숨긴 가드의 코트, 자장 법사의 가면 가드(김우빈)는 그레이 톤의 잘 재단된 코트를 입고 등장한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미니멀하게 가는 것이 컨셉이었다. 오랜 시간 지구에 잘 머무르고 있다는 점, 또 이안을 돌보는 보호자로서의 면모를 고려해 그레이 톤의 코듀로이, 니트 등 온기 있는 소재를 골랐다. 썬더가 가드로 변신했을 땐 더 발랄한 분위기의 점프 슈트, 선글라스, 70년대 스타일의 빈티지 양복, 핑크색 의상 등을 가져왔다.”(조상경 의상감독) 빌런인 자장 법사(김의성)는 가사(장삼 위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는 승려의 법의.-편집자)를 이용해 겹겹이 감춰져 있는 신비로움을 표현하고 자수로 질감을 드러내려 했다. “색감은 붉은색을 중심으로 두고 노랑과 파랑을 섞어 토색과 자황색을 활용했다. 모든 원단을 수작업으로 염색했는데 작업 시간이 오래 걸려 촬영 전날까지 손을 봤다.”(조상경 의상감독) 자장 법사가 쓴 가면은 광대가 부각된 채 입은 웃고 있는 전통적인 탈 형태와는 확연히 다르다. “외계인의 얼굴을 염두에 두고 도안을 완성했다. 색채감은 최종 결과물에서 조금 바뀌었는데 초창기에는 무지갯빛이 도는 느낌이었다가 이후 좀더 어두운 흑색으로 색을 눌러주었다.”(류성희 미술감독) <외계+인>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소품들 고려와 현대를 잇는 신검 “외계인들이 고려의 문명에도 스며들었다는 영화의 세계관을 고려해 두 이질적인 존재들의 연결성을 신검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가운데 보석을 기점으로 신검의 위쪽엔 외계 물질 같은 푸른빛의 액체 금속을 위치시키고, 아래쪽은 다뉴세문경(청동기 시대에 제작된 거울. 보물 2034호.-편집자)의 패턴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했다.”(류성희 미술감독) <외계+인>의 정체성을 압축한 무륵의 부채 “부채는 무륵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아이템이자 <전우치>와 이어지는 최동훈 감독님의 인장과 다름없어 특별히 신경 썼다. 살을 펼치는 순간 숨겨져 있던 또 다른 3차원 공간이 펼쳐진다. 부채에 그려진 고양이는 민속화의 그림체를 살리고 칼, 방망이와 같은 무기는 부채의 어느 방향에 얹힐 것인지 감독님과 조율해나갔다.”(류성희 미술감독) 유물에서 영감받은 삼각산 신선들의 무기 “흑설과 청운의 도술 무기 중 거울은 다뉴세문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물의 패턴이 외계의 것처럼 기이하단 점에서 착안해 거울 뒷면에 패턴을 꼼꼼히 그려넣었다.”(류성희 미술감독) 외계 문명을 창조하다 “<외계+인>의 내용이나 배우의 감정선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시각적 효과가 명확하고 과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감독님의 요청이 있었다.” (제갈승 VFX 슈퍼바이저) 회화 작품, 조각, 조형물 등 최동훈 감독이 전한 레퍼런스를 토대로 제갈승 VFX 슈퍼바이저는 우주선과 외계인 디자인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외계인은 자세히 보면 피부색이 각기 다르게 설정됐다. 또한 월등히 진화된 종족으로 “눈을 제2의 뇌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시각 기관은 상대적으로 커진”(류성희 미술감독) 반면, 텔레파시로 소통하기 때문에 “코와 입과 같은 신체 기관들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제갈승 VFX 슈퍼바이저)는 특징이 있다. 우주선의 경우 ‘이게 정말 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엔진과 같은 기계 요소들을 배제시키며 심플하게 작업했다. 로봇으로 변한 가드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캐릭터의 성격을 고려해 얼굴의 디테일을 최소화했고, 반대로 썬더는 어린 이안과의 감정 교류가 많기 때문에 눈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이 제갈승 VFX 슈퍼바이저의 설명이다. 안상수 타이포 디자이너의 작업으로 완성된 <외계+인> 고유의 외계 문자는 가드가 탈옥했던 외계 죄수를 관리하는 공간의 벽면, 영화 포스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비로운 공간 밀본, 압도적인 크기의 도심 세트 자장 법사가 상주하는 밀본은 비밀스러우면서도 압도적인 위압감을 자아낸다. “메인 빌런이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소담스러운 절처럼 느껴지지 않길 바랐다. 밀본 자체가 외계인 나름대로 인간의 종교를 해석해 만들어낸 위장의 공간이라는 점도 의식했다. 그런 맥락에서 가장 공들인 것이 100개의 팔을 가진 불상이다. 한국 불교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으며 외계인의 주요 정체성이 촉수라는 사실에 기반해 디자인했다.” (류성희 미술감독) <외계+인>의 공간 중 가장 크고, 비용이 가장 많이 투입된 것은 도심 세트다. “전체 길이 200m, 가로폭 100m에 이르는 왕복 4차로에 서울 시내 어딘가의 건물들을 옮겨왔다. 엄청난 크기와 빠른 속도의 외계인들이 휩쓸고 지나가려면 꽤 방대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디자인부터 시공까지 약 7개월이 걸렸고, 건물 2~3층 높이까지는 실제로 짓고 그 이상은 CG로 합성했다. 그 밖에도 가로수와 조경, 전신주, 신호등까지 설치한 다음 서너번의 변환을 통해 여러 개의 도로와 블록이 늘어선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이하준 미술감독) 고려와 현대의 차이를 극대화한 촬영 김태경 촬영감독이 주목한 것은 고려와 현대의 차이점이었다. “고려 시대에서는 캐릭터들이 무협 기반의 액션을 펼치기 때문에 쇼 브러더스 영화와 같은 작품들의 촬영 스타일을 참고했다. 반면 현대에선 인물들이 외계인, 로봇과 초현실적인 액션 대결을 펼치기 때문에 카메라 워킹이 훨씬 계산적이고, 빠르고, 템포감이 있어야 했다. 톤 면에서도 고려 시대는 따뜻한 붉은 톤, 현대 분량은 창백한 톤을 많이 써서 차이를 두려 했다.” <외계+인>은 김태경 촬영감독에게 “기술적으로 가장 고난도의 SF영화”였다. “실사 배경에 3D 캐릭터를 얹는 작업이 많지 않았나. 프리비주얼도 만들고 스탭들이 외계인의 키를 가늠할 수 있는 막대를 머리에 끼고 현장에 투입되기도 했지만, 외계인의 움직임과 우주선의 크기 같은 것들은 주로 상상에 의존해야 했다.” 인간의 것을 넘어서는 외계인과 촉수의 빠른 속도를 담고,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무륵을 쫓기 위해 와이어캠까지 동원됐다. 절권도처럼 간결하게, 춤처럼 유연하게 절제된 이안의 액션은 절권도와 택견을 참고한 결과다. “김태리 배우의 에너지가 워낙 강해서 이안의 동작을 화려하게 갈 필요가 없었다. 간결하게 선은 살리되 파워풀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컨셉을 정리했다. 총기 액션은 이안이 총을 전술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상황을 고려한 결과물이다.”(류성철 무술감독) 도사인 무륵은 이안에 비해 훨씬 움직임이 날렵하고 잔동작도 많다. 유상섭, 류성철 두 무술감독은 “무륵은 무거울수록 재미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1990년대 홍콩 무협영화의 와이어 액션과 태극권과 같은 무술에서 손동작을 많이 참고했다”고 입을 모은다. 가드의 액션은 브레이크 댄스, 팝핀과 같은 비보이 댄스가 레퍼런스가 됐다. “가드가 손에서 레이저를 뿜는 움직임, 썬더가 가드로 분했을 때의 발랄하고 가벼운 느낌들을 댄서의 춤에서 많이 가져왔다.”(류성철 무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