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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굴을 옮기는 뱀파이어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MBC의 시트콤 <세친구>가 종영되었다는 사실은 이곳 미국에서도 큰 화제였다. 일요아침드라마 <눈으로 말해요>와 함께 비디오에 담겨 한국식품점을 통해 대여되면서, 그 인기가 한국 못지않았기 때문. 특히 한국에서와는 달리 지나간 방영분이라도 언제든지 비디오로 빌려볼 수 있었던 까닭에, 아예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한편도 빠뜨리지 않고 시청한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였던 것이다. 물론 정상에 있을 때 과감하게 종영하는 모습을 보여준 점을 높이 살 만하지만, 조금 더 오랫동안 <세친구>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도 사실. 그렇다면 외주제작사인 ‘조이TV’가 방송사를 바꾸어 새로워진 <세친구>를 선보이는 것은 어떨까? <세친구>를 둘러싸고 외주제작사와 MBC가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한국 방송계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외주제작체제가 확고하게 시스템화돼 있는 미국에서도 이런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외주제작사와 방송사간의 계약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있지만, 양쪽 모두 서로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쉽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듀서의 권한이 막강해지고 그들이 방송사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작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인기 프로듀서가 만든 인기작들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져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결국 <세친구>가 종영을 하던 즈음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연일 엔터테인먼트 관련 TV프로그램의 주요 뉴스로 다루어진 그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우리나라에서 한때 <미녀와 뱀파이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사라 미셸겔러 주연의 인기 TV시리즈 <`Buffy, the Vampire Slayer`>. 1997년 3월 방영을 시작한 <미녀와 뱀파이어>는 현재까지 모두 다섯번의 시즌 동안 100회(5월22일 방영)가 방영되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려왔던 작품. 주인공 버피 역의 사라 미셸겔러 이외에도 수많은 틴에이저 스타들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증명해준다. 그 대표적인 예가 그저 <미녀와 뱀파이어>의 단역급에 불과한 엔젤로 출연하다가 매력적인 캐릭터 때문에 1999년 <엔젤>(Angel)이라는 제목의 새 TV시리즈의 주인공이 된 데이비드 보레네즈일 것이다. 이런 <미녀와 뱀파이어>의 인기는 당연히 이 시리즈를 방영해온 워너브러더스의 계열방송사 <`WB`>가 지난 4년여간 TV시리즈 부문에서 공중파 방송사들(<`ABC`> <`CBS`> <`NBC`> 등)과 어깨를 나란히할 만큼 막강한 시청자층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해 가을, <미녀와 뱀파이어>의 제작사인 20세기폭스TV의 프로듀서 조스 웨돈과 <`WB`>간에 의견충돌이 발생하면서부터다. <`WB`>가 방영하고 있는 TV시리즈 중에서 세 번째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WB`>의 지원과 대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왔다는 것이 조스 웨돈의 주장이었다. 물론 <`WB`>는 <미녀와 뱀파이어>에 특별한 계약조건을 허락할 경우,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그 틈을 이라는 또다른 방송사가 파고들었고, 인기 TV시리즈의 방송사 이전이라는 초유의 결과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번 계약에 따라 은 2년간 <미녀와 뱀파이어>의 방영을 위해 약 1억3천만달러를 지불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44편 기준으로 볼 때, 편당 약 240만달러로 <`WB`>보다 50만달러를 더 지불하는 셈. 제작사와 프로듀서의 입장에서는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는 당연한 ‘말 갈아타기’일 수밖에 없었던 것. 팬들의 입장에서도 최소 2년간 새로운 <미녀와 뱀파이어> 시리즈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 하나의 문제는 세인트 루이스처럼 미국의 일부지역에서는 <`UPN`>을 볼 수 없다는 사실. 한편, <`UPN`>의 입장에서도 이미 검증된 TV시리즈를 도맷금으로 가지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손해볼 게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UPN`>이 계약이 끝나자마자 주연급 배우들과 주요 제작진들에게 1인당 약 5만달러에 해당하는 선물공세를 펼쳤다는 사실은 <`UPN`>의 기대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엉뚱하게 피해를 보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창 인기를 끌어가던 <미녀와 뱀파이어>의 외전 <엔젤>이 그 대표적인 예. 버피가 <`UPN`>으로 옮긴 상황에서 <엔젤>이 <`WB`>를 지키는 것은 어딘가 어색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진 <`WB`>가 <엔젤>을 중도하차시키고 <`UPN`>이 <엔젤>마저도 끌어와 방영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확정된 것이 없는 상태. 특히 <미녀와 뱀파이어>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교수 가일의 캐릭터를 확장해 새로운 시리즈로 분리하는 방안이 제작사와 프로듀서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엔젤>의 운명은 더더욱 한치 앞을 모르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하튼 이렇게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진정한 외주제작 혹은 프로듀서의 시대가 돌아왔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다시 말해 양질의 콘텐츠를 창조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파워가 부여될 수밖에 없는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에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을 바꿔 탄’ <미녀와 뱀파이어>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 <미녀와 뱀파이어> 공식 홈페이지 http://www.buffyslayer.com/ ■ 팬 사이트 <더 슬레이어> 홈페이지 http://www.theslayer.net/main.html ■ 팬 사이트 <서니데일 슬레이어스> 홈페이지 http://www.enteract.com/∼perridox/SunS/

배우 최민식 [1]

불혹의 무당, 연기의 신과 춤추다 배우들의 사진 촬영 장면을 구경하다보면 연극계 출신 혹은 전업 영화배우들과 주무대가 TV인 연기자들의 다른 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대체로 그렇다. 연기 경력이나 인기도에 관계없이, 전자에 속한 연기자들은 대개 사진 찍히는 걸 어색해하거나 불편해 한다. 대신 TV에서 주로 활약하는 스타들은 사진기자가 특별한 요청을 하지 않아도 갖가지 표정과 동작을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들도 짧으면 한 시간 길면 서너 시간씩 걸리는 사진 촬영이 즐겁지만은 않겠지만, 연극계 출신에 비하면 그래도 훨씬 자연스럽다. 그들의 이미지에 기대야 하는 영화지로서야 이 편이 더 고마운 건 말할 것도 없다. 최민식은 사진 찍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에게 표지사진 촬영을 요청했을 때 첫반응은, 이미 몇 차례 촬영을 경험했는데도, “혹시 그냥 인터뷰만 하면 안 되겠느냐”는 조심스런 반문이었다. 배우가 사진 찍는 걸 피하고 싶어한다면 언뜻 이상하게 보일진 모르겠지만, 사정을 알고나면 이해가 된다. 감정을 잡으려면 이야기도 있고 캐릭터도 있어야 하는데, 표지 촬영할 땐 아무것도 없이 즉석에서 몇 가지 유형의 표정과 자세를 만들어내야 되니 그게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는 것이다. <파이란>에는 어색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담긴 강재의 증명사진이 몇번 나오는데, 최민식은 관객이 그 사진이 나오는 장면에서 웃는 걸 보고 당황했다고 한다. 웃기려고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 좋게 보이려고 지은 표정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온몸으로 우는 울음만이 참 최민식은 느리고 깊은 배우다. 그에게 연기란 어떤 영혼을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파이란>에서 강재가 바닷가에서 파이란의 편지를 읽고 우는 장면은 다섯번만에 오케이가 났다. 그걸로 하루가 갔는데, 최민식 때문이었다. 최민식은 한번의 재촬영을 위해선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이 필요했다. 짓궂은 TV연예프로가 가끔 연기자들에게 요구하는 즉석 눈물 연기의 재주가 그에겐 없다. 우는 연기는 단순히 눈물샘을 작동시키는 일이 아니라, 몸 전체가 하는 일이다. 한번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 다시 몸이 울음의 상태로 가기 위해선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몸이 울지 않는 쿨한 눈물을, 그는 믿지 않는다. 그의 연기인생도 그의 연기처럼 느리고 무거웠다. 몇번의 굴곡을 거쳐, 아주 천천히 정상에 올랐다. TV드라마 <야망의 세월>(1990)로 어지러운 인기의 롤러코스트를 체험했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너무 빨리 찾아온 빛이 황망히 사그라든 뒤, 10년 동안 그는 아주 조금씩 움직여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당대의 어떤 배우에 의해서도 대체되기 힘들 것 같다. 장르와 비장르의 경계는 물론이고 선과 악, 미와 추의 경계마저 넘는다. <쉬리>의 북한특무대장과 <파이란>의 3류 건달 역을, 한 사람이 연기했다는 건 믿겨지지 않는다. <서울의 달>의 어눌한 노총각 춘섭, <넘버.3>의 ‘왕 또라이’ 검사, <조용한 가족>의 엉뚱한 삼촌, <해피엔드>의 소심하고 무기력한 남편 등 사람들한테 깊이 각인된 그의 배역을 함께 떠올려보면, 그의 연기폭은 한 배우가 이를 수 있는 최대치처럼 보인다. 난 연기자는 무당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는 신내림이고. 논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나도 대학에서 연기를 배웠다. 똑바로 서는 법, 발성하는 법, 선동작 후시선, 선시선 후동작 같은 걸 배웠다. 그런 건 꼭 필요하지만 결국 연기의 보조 수단일 뿐이다. 연기는 신내림처럼 자기의 몸 전체가 무언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무당 정석의 1, 2 같은 책이 있어서 그걸 독파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다. 주위에서 장구도 쳐주고 추임새도 넣어주지만 결국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 작가가 쓴 가공의 영혼을 놓고 토론도 하고 분석도 하고 테크닉도 보충해서 준비할 순 있지만, 그 영혼을 내 몸 안에 집어넣는 요령은 어디에서 씌어 있지 않다. 배우는 무슨 수를 써서든지, 감독이 슛이라고 외치기 전에 그걸 해놔야 한다. 환장할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다. 연기를 넘고 배우를 넘고 나를 넘어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은 최민식을 두고 “주름도 연기가 되는 배우”라고 했고,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은 “정지동작을 찍어도 감정선이 살아 있는 배우”라고 했다. 두 감독은 같은 걸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최민식의 연기는 분석적으로 포착될 수 있는, 혹은 시나리오상으로 특정한 동작과 표정이 지시될 수 있는 영역 너머에 있다. <파이란>의 장례식장 장면은, 빼도 아무 관계없을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강재가 파이란의 영정을 바로 세우고 머뭇거리다 담배 한대 피우는 게 전부다. 그저 ‘뻘쭘함’이란 단어말고는 달리 컨셉을 말하기 마땅치 않은 이 장면은 시나리오상에는 없었지만 최민식의 제안을 감독이 받아들여 삽입된 것이다. 감독의 소망은, 그가 정면승부를 원한다면 그리고 그 소망을 체현할 수 있는 연기자가 곁에 있다면, 이야기 진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런 장면들에서 차곡차곡 느낌을 쌓는 것일 터이다. 연기자가 이런 대목에서 감정의 선을 살리는 특별한 요령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기던 아기가 갑자기 설 수 있는 건 몇 가지 요령을 학습해서가 아니라, 모든 근육과 신경과 뼈가 어느 순간 스스로 균형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영화의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파이란>은 최민식이란 배우의 연기 본능이 찾아낸 빛나는 균형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해피엔드>에서 아이와 함께 자다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 있는 서민기의 모습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제일 즐겨보는 TV프로는 <병원24시>다. 그게 내 교과서다. 사람을 배우고, 감정을 배운다. 얼마 전엔, 술만 들어가면 개꼬장 부리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젊은 여인 편이었다. 몸이 아픈 어머니가, 딸이 만류하는데도, 또 술이 엉망으로 취해 집을 개판으로 만들고, 여인은 아파트 복도에 앉아서 울더라. 얼굴이 찌그러들면서 울더라. 저런 게 우는 거구나. 저런 게 진짜구나. 내가 해봤자 강재 흉내내는 것밖엔 안 된다. 그저 진짜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가려고 발버둥치는 것밖엔 다른 도리가 없다. 연기에서 테크닉이란 건 정말 보잘것없는 거다. 가끔 얼굴 표정 변화없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연기를 본다. 그게 쿨하다는 생각이 퍼져 있는 것 같다. 절제미를 과시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게 아주 적절한 연기인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난 그게 테크닉을 위한 테크닉이 든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플 때 얼굴이 찌그러지면서 북받쳐서 운다. 꺼이꺼이 우는 것이다. 어떤 훌륭한 연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언제나 나를 낙심하게 하고 또 배우게 한다. 늙음이 아름다운 남자 “거울 보면 어떤 생각 드세요?” “아이구, 많이 망가졌지요.” 최민식은 1962년생이다. 나이를 감안해도 주름이 깊은 편이다. 왼쪽 눈밑의 주름은 고등학교 때 깡패친구들에게 얻은 흉터고(이때 이미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는 피투성이인 채로 1시간 동안 성형외과를 찾아다녔다) 미간의 주름은 눈이 나빠 자주 찡그리는 바람에 생겼다. <서울의 달>의 춘섭부터 기억하는 젊은 관객은 믿기 힘들겠지만, 그는 10년 전엔 데뷔 때의 차인표와 같은 이미지, 그러니까 백마 타고 온 왕자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본다면 그때의 이미지를 비슷하게라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이란>을 본 어떤 관객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는 “최민식 아저씨가 쭈그리고 앉아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새 너무 늙으셨어요”라는 구절이 있다. 최민식의 말도 이 여린 관객의 말도 반쯤 맞고 반쯤은 틀리다. 최민식은 <파이란>을 하기 위해 일부러 더 늙어버렸다. 불과 1년 전에 찍은 <해피엔드>만 봐도 그의 얼굴엔 푸른 기운이 남아 있었다. 물론 카메라의 트릭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최민식이라면 일부러 늙었다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스무살 시절부터 연기해야 하는 임권택 감독의 <오원 장승업>을 보면 그가 자연적 나이조차 연기의 품으로 얼마나 완벽하게 끌어들이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최민식은 미남이다. 매끈한 꽃미남이 아니라, 알랭 들롱처럼 주름이 그의 미모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늙음을 느끼는 남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타입의 미남이다. 그러나 <파이란>에서 그는 자신의 미모를 철저히 구긴다. 3류 양아치의 추한 세상에 뒤돌아보지 않고 잠겨버린다. 그래서 그는 늙어버린다. ‘신들림’말고는 적당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어떤 경로를 통해 최민식은 우리가 좋은 배우들에게 기대할 법한 이미지의 너비조차 훌쩍 넘는다. 그래서 롱숏이나 미디엄숏으로 잡은 동작의 섬세한 선에서도, 주름의 골까지 드러나는 클로즈업에서도 최민식은 극중 인물의 영혼이 돼버리는 것이다. 두 감독의 말대로 3, 4분을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어도 불안하지 않는 이유다. 최민식의 변함없는 표지는 깊은 눈이다. 박무영의 표독한 기운을 내뿜을 때나 강재의 여린 눈물을 흘릴 때나, 인생을 몇번은 산 듯한 아득한 눈매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영화 밖에서 만날 때면 그는 그 깊은 눈을 무너뜨리며 아직도 어딘지 멋쩍어 한다. 최민식은 멋진 배우다. <파이란> 시사회 때, 지금 서울예대 학장으로 계시는 안민수 선생님이 오셨다. 연기자가 무언가를 알려주신 스승님이다. 인사를 드리니까 “너 옷이 그게 뭐냐. 배우는 멋있게 당당하게 입어야지”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아들을 야단치듯이. 너무 고마웠다. 영화가 마음에 안 들었거나 내 연기가 못마땅했으면 툭 치고 가셨을 분이다. 동국대 다닐 때 배우는 멋있는 사람,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선생님에게서 배웠다. 배우는 멋있는 사람이다. 그래야 한다. 난 아카데미 시상식을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내겐 배우라는 직업을 전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행사로 보인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중국식 롱코트를 입고 입장하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난다. 큰 무대 구석에서 들어오는 데도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멋있었다. 지난해 엘리아 카잔이 평생공로상 받을 때, 배우들이 반은 일어나 박수를 치고 반은 자리에 앉아서 외면하더라. 얼마나 멋있나. 대단한 자존심이 아니면 그런 행동을 취할 수가 없다. 두 고비를 돌아 다시 아득한 산으로 임권택 감독은 <오원 장승업>에 최민식을 캐스팅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오원은 고아에 무학이며 한량인데다 동시에 걸출한 예술가였다. 이 영화에서 배우는 그의 인생을 20살에서 59살까지 살아야 한다. 게다가 나로서도 한 사람의 인생을 좇는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단한 연기력의 소유자가 필요했다.” 최민식은 <해피엔드> 때도 <파이란> 때도 시나리오에 반했지만, 막상 출연을 결심한 순간부터 끙끙 앓았다. 플롯과 스타일이 나서지 않고 연기만으로 미묘한 감정선을 잡아나가야 하는 영화는 배우에게 독이고 약이다. 넘어서면 약이지만 걸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두 고비를 넘어온 최민식에게도 <오원 장승업>은 아득한 산이다. 100년 전의 위대한 예술가의 영혼을 몸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술에 만취해서도 붓놀림 연습을 무의식적으로 해대며, 최민식은 자신의 연기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도전을 앞두고 처방전 없는 속앓이를 이미 시작했다. 기대대로라면, 그는 정말 반쯤 미쳐, 광인 예술가가 돼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가 소처럼 걸어 올라온 그 길은 내려가기도 어렵기 짝이 없어 보인다. 만에 하나, 최악의 경우라도, 안쓰럽게 머리숙인 연기자 최민식의 모습을 그가 보여줄 것 같진 않다. 늘 다짐해둔다. 나를 연기자로서 꼭 필요로 하지 않은 시점이 온다면 중국집 할 생각이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아내에게도 말해뒀다. 카운터에 앉을 각오하고 있으라고. 난 다른 사람들이나 언론에서 하는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고 한다. 칭찬 들으면 기분 좋지만, 그냥 그걸로 족하다. <파이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눈물나게 고마운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내가 무대에서 밀려나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걸 이미 경험했다. 난 이제부터 연기가 시작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불평할 수 없다. 나름대로 인정도 받고, 좋은 가정도 있고, 최고의 예술가와 함께할 영화도 있다. 늙어서도 폼나게 연기하자고 강호하고 경구하고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 소망대로 되지 않는다고 구걸하지는 않겠다. 구걸 자체가 싫어서라기보다, 내가 너무 사랑했고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온 연기자의 삶이란 걸 그렇게 해서 욕되게 하기 싫기 때문이다.

배우 최민식 [2]

타인의 영혼으로 사막 건너기 “죽을 맛이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에요.” 좋건 나쁘건 한번 그은 감정의 선이 일필휘지 끝까지 달리는 연극과 달리 단절과 훼방의 연속인 영화 연기를 도대체 어떻게 끌고 가느냐는 질문에 최민식은 그렇게 답한다. 연기 테크닉의 기초를 가르치는 교본은 있지만 가공의 영혼을 몸 안에 들이는 법은 세상 어느 책에도 씌어 있지 않다. 영화 속 인물을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접신’하는 것은 배우 혼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크랭크인 날짜 전에 완수해야 할 숙제라고 그는 말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라는 표현에서 힘줄이 툭툭 불거질 것 같다. 최민식의 그 ‘미치고 환장할’ 노릇은, 연기는 물론 망치질하고 스폰서 잡고 소품 나르며 소극장에서 살다시피한 대학 생활의 마지막 장(章)이었던 동국대 연극영화과 4학년 때 박종원 감독의 <구로 아리랑>(1988)에 프락치 역으로 캐스팅되면서 시작됐다. <썸머타임>의 박재호 감독이 조감독을 하고, 임상수 감독이 연출부 막내였던 시절이다. 당시 출연료는 150만원. 한남동에서 자취하던 최민식에게는 큰 돈이었다. 영화라는 새 장르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울렁였던 그는 농성중이던 신애전자 노동자들이 출연료 한푼 받지 않고 엑스트라로 온몸을 던져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영화도 괜찮은 거구나” 하는 어렴풋한 생각을 했다. “제약은 많겠지만 제도권 최초로 노동문제를 언급한 영화라는 점에 자부심을 갖자”던 박종원 감독의 말대로 영화는 24군데가 잘려서 아세아극장에서 조촐히 개봉됐다. 같은 해 만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그는 손창민의 친구였다. 신도 대사도 적었지만 야전 점퍼에 고무신, 낡은 청바지의 보헤미안 행색의 1970년대 서울대 미대생이 돼야 했던 그는, 미술을 전공한 형과 친구들을 관찰한 대로 청바지 무릎에 낙서하듯 그림을 그려 촬영장에 나갔다. 그러나 세부적 설정에 기울인 그의 열의는 어이없이 일축당했다. “야, 그거 떼!” 납득할 수 없었던 최민식은 술자리에서 장길수 감독에게 대든 뒤 뛰쳐나와 빗길에서 아껴마지 않았던 난생 처음 장만한 자동차를 망가뜨리고 말았다. 1990년 드라마 <야망의 세월>은 최민식을, 그의 용어를 빌리자면 “차인표 같은 시절”, 말하자면 고공 스타덤에 덥석 올려놓았다. <야망의 세월>의 ‘쿠숑’ 역으로, 그는 어느 날 일어나보니 동그라미 숫자도 어지러운 월수입과 CF 모델료를 받는 스타가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너무 좋아서 괜히 허허거렸다. 그렇다고 빌딩을 올리거나 한 건 아니지만 돈을 많이 벌면 사는 방식이 변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은 경험이었다. 빗발치는 캐스팅 요청 속에 <야망의 세월>의 작가에 대한 의리를 지켜 같은 작가가 집필한 <정든 님>에 출연했지만 국책 드라마 색이 짙었던 탓에 본인이 봐도 재미가 없었다. 이어 출연한 <일월>의 시청률도 10%를 넘지 못하자, 2년 새 “천하의 쿠숑도 금세 바닥을 기었다”. 기자들도 방송사 국장도 태도가 달라졌다. 이렇게 잊혀져가는 ‘탤런트’가 되는 걸까. 술 마시고 부대끼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녹화가 끝나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향했다. 마냥 쓸쓸했다. 시골 스탠드바에서 <대전 부르스>를 부르며 <야망의 세월>로 몸값이 치솟던 무렵 출연을 결정한 <우리 사랑 이대로>(1991)는 80% 프랑스 로케이션 촬영으로 제작된 영화였다. 하지만 벗기려는 의도가 다른 고려보다 앞선 영화이기도 했다. 아침마다 이국의 촬영현장으로 나서면서 최민식은 영화를 찍으러 가는 건지 싸우러 가는 건지 잘 판단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의 세 번째 영화가 안겨준 최대의 소득은 연기자에게 신중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관한 교훈이었다. 이듬해 강원도 정선에서 촬영한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최민식의 초기영화 가운데 제일 만족도가 높았던 작품. 감독, 원작자와 함께 최민식이 맡은 ‘김 선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놓고 토론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박종원 감독의 뜻대로 찍었다. 김 선생이 아이들을 체벌하는 장면에서 아플세라 옷 속에 뭔가 넣으라고 어린 연기자들에게 귀띔했다가 ‘이불 터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NG가 났던 일, 할 수 없이 제대로 매를 때린 뒤 여관에서 꼬마들에게 ‘안티플라민’을 발라주던 일은 여지껏 생생하다. 이처럼 <우리들의 일그러진…>은 홍경인 등 교실 가득한 아역 배우와의 즐거운 기억이 많은 영화지만, 황당무계한 추억도 많은 작품. 현장으로 가는 길에 차가 굴러떨어져 달빛 속에서 승냥이와 눈이 마주치는 모골 송연한 위기를 넘겼는가 하면, 정선에 들어서자마자 “최민식, *** 스탠드바 전격 출연”이라는 어이없는 플래카드가 그를 맞이했다. 알고 보니 한무리의 ‘지역사회 건달’들이 이미 박종원 감독을 둘러싸고 그의 업소 섭외를 청탁중이었고, 사태 수습에 나선 최민식은 <가거라 삼팔선>과 <대전 부르스> 두곡만 부른다는 조건으로 무대에 오르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초저녁부터 일찌감치 테이블을 점령한 스탭들 덕택에 최민식은 회식 자리에서 노래를 부른 것과 진배없는 ‘밤무대’를 가뿐하게 마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뒤 한석규와 처음 재회한 MBC 드라마 <서울의 달>(1994)은, 너무 영화적이어서 영화로 돌아가는 길을 깜박 잊게 만든 드라마다. 애초엔 여자들을 등치는 제비 홍식 역이 최민식 몫이었고 그 역시 홍식의 캐릭터를 탐냈지만 그는 결국, 도시가 휘두르는 냉혹한 폭행 앞에 눈을 둥그렇게 뜬 순박한 사내 춘섭으로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됐다. 요즘도 그는 <서울의 달>의 몇몇 대사를 외우고, 쓰러진 홍식의 얼굴 위로 흐르던 “나는 라스팔마스로 간다”는 마지막 보이스 오버를 잊지 못한다. <서울의 달>을 끝내고 최민식은 심신이 메말라 갈라지는 사막 같은 한 시기를 보냈다. 첫 결혼이 깨지고 경제적으로 바닥나는 곤경에 빠졌고 미니시리즈 촬영하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대형사고도 겪었다. 일주일이면 엿새를 술로 새웠고 상처난 다리를 지탱하는 목발을 저으며 대상없는 분노를 내뱉다 친절한 친구들의 등에 업혀 귀가하곤 했다. 무작정 밝고 명랑한 공기 속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로 뛰어든 시트콤은, 뜻밖에도 배우 최민식에게 유익한 수업이 됐다. “컷은 알아서 저희가 넘길 테니 맘대로 연기하세요”라는 주문을 받고 최민식은 연기 도중 자연인으로서 웃고 반응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코앞에 줄지어 앉은 방청객들과 보이지 않는 줄을 밀고 당기는 시트콤 세트에서 최민식은 한없이 자유로우면서도 0.005초의 연기 타이밍을 붙드는 방법을 배웠다. 메마른 시절 넘어온 우리들의 ‘삼촌’ <닥터봉>과 <은행나무 침대>의 성공으로, 온 충무로가 낚시를 던지는 ‘초록 물고기’가 되어버린 한석규에게서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다. 영화 다시 하지 않겠냐고. “당연히 해야지. 너만 하냐?” 그렇게 찾아간 <넘버.3>의 작업은 독특했다. 무슨 영화가 TV드라마도 아닌데, 신인 송능한 감독은 후닥닥 카메라를 돌리더니 대뜸 “다음!”을 외쳤다. 도리어 배우와 다른 스탭들이 당황해서 “잠깐만요!”를 연발하는 지경이었다. 팔굽혀펴기를 하는 장면에서 비행기가 지나가서 동시녹음 기사가 NG를 부르자 송 감독은 “비행기가 좀 지나갈 수도 있지 뭘 그래?” 되물었고, 최민식과 한석규의 놀이터 격투신 도중 빗방울이 떨어지자 “중간에 비가 내릴 수도 있지” 했다. “저런 사람이 사령관 되면 부하들이 많이 안 죽겠구나” 싶었던 최민식은 <넘버.3>를 찍으면서 배우들로 하여금 에너지의 정점에 달하는 귀중한 모멘트를 자꾸 놓치게 하는 촬영 관행에 낭비가 숨어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송능한 감독은 술자리에서도 솔직한 조언자였다. “고매한 선비처럼 굴지 말고, 무좀약이고 변비약이고 CF로 돈 벌어서 좋은 작품해!” 영화와 그의 두 번째 연애는 그렇게 유쾌하게 시작됐다. <조용한 가족>(1988)에서 최민식이 분한 삼촌 역은 굳이 말하자면 작고 애매한 역할이다. 하지만 불운한 사건의 연쇄에 이리 치이고 저리 밀리며 열심히 삽질을 하는 ‘삼촌’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저런 사람이 근방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조용한 가족>에서 최민식의 원칙은 간결하고도 의미심장했다. “식구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 슬금슬금 욕심나는 역이 있긴 했다. <넘버.3> 때 조필 역이 은근히 부러웠던 최민식은 <조용한 가족>에서도 조카로 분한 송강호의 역할이 탐났다. <조용한 가족>은 무엇보다 양평의 매서운 추위로 기억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대형 드라이어까지 동원했지만 현장은 뼛속까지 꽝꽝 얼어붙도록 추웠다. <조용한 가족>을 찍을 무렵 최민식은 방송 연기를 접을 결심을 했다. 미련은 거의 없었다. <서울의 달> 같은 드라마를 만나는 행운은 드물었고, 소재의 획일화와 제작 시스템의 문제는 뿌리깊어 보였다. 당시 그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식 구도의 아침 드라마에 출연중이었는데, 차에서 자면서 촬영장들을 오가는 스케줄이 너무 강행군이었던 나머지 로드 매니저가 애처로운 사과 메시지만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최민식은 오래 비웠던 연극으로 돌아왔다. 유씨어터 창립 작품인 장진 감독의 <택시 드리벌>을 연습하면서 그는 하나의 대사를 갖고 일주일씩 싸우고 토론하는 무대 생활에 다시 처음처럼 적응해야 했다. 예전에는 자신도 그렇게 살았건만 어찌나 소원해졌던지 처음에는 정서불안에 걸릴 것만 같았다. <택시 드리벌>을 끝내고 나서야 겨우 그 생활이 환기가 됐다. 이제 1년에 한편은 무대에 서리라 결심한 최민식은 1999년 <햄릿>, 2000년 <박수칠 때 떠나라>에 출연했다. 아직도 가슴을 치는 강재의 울음소리 <쉬리>(1999)의 특수 8군단 소좌 박무영이 지닌 이목구비 음영과 실루엣을 갖기 위해 <조용한 가족>의 삼촌은 80kg에 육박하던 체중을 체급을 바꾼 권투선수처럼 절박하게 감량해야 했다. 추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도 따랐다. 액션하다 갈비뼈에 실금이 간 최민식에게, 정두홍 무술감독은 “나는 폐가 터진 적도 있다”는 한마디로 간단히 말문을 막았다. “조국통일 만세!”라는 구호만큼 단순 과격한 발걸음으로 최민식의 연기인생에 저벅저벅 걸어들어온 박무영은 “걸출한 영화배우 최민식”이라는 인식을 대중화하는 공적을 세웠다. 시한폭탄 같은 카리스마의 소유자라 해서 미사일을 옆구리에 끼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최민식은 선연한 이미지로 승부를 걸었다. 선악구도가 뚜렷한 장르영화의 연기인 만큼 이미 관습에 의해 마름질된 캐릭터에 찰흙으로 살을 붙이는 작업이었다고 최민식은 정리하지만, 자기가 길러낸 병기 이방희를 바라보는 박무영의 시선 속에 한 남자의 번민을, 숙적 유중원을 겨눈 총구에 분신을 빼앗긴 고독한 인간의 질투를 장전한 것은 최민식이었다. 박무영과 달리, <해피엔드>(1999)의 오쟁이 진 남편 서민기는 이렇다하게 윤곽을 세울 만한 특징이 하나도 없는 비장르적 인물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정지우 감독의 말대로 최민식은 <해피엔드>에서 긴 대사도 큰 동작도 하지 않는 장면에서 섬광을 발한다. 헌 책방 구석에서 소설을 뒤적이고, 그늘에 숨어 아기 포대기를 끌어안으며 아내가 흘린 배신의 흔적을 마치 자기가 죄인인 양 숨죽여 지켜보던 서민기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주도면밀하게 복수의 칼을 휘두른다. 그 대목을 판타지로 간주하고 연기의 톤부터 다르게 잡았다는 최민식은 막바지 편집 과정에서 서민기의 복수가 현실로 바뀐 것에 대해 두고두고 아쉬워한다. 결혼반지를 버리는 장면에서 최민식은 감독이 주문한 울지 않는 연기와 본인이 낫다고 믿었던 우는 연기를 다 한 뒤, 후자를 쓰게 될 거라고 장담했고 결과는 그의 말대로 됐다. 가장 최근에 헤어진 애인이 제일 아프게 눈에 밟히듯, <파이란>(2001)의 강재는 아직 최민식의 흉중에 서성이고 있다. 원작소설을 읽고 이게 영화가 될까 반신반의했던 그는 잘 각색된 시나리오 초고와 직접 대면한 송해성 감독에 대한 믿음이 서자 곧바로 합류했다. 강재를 좀 ‘살고’ 나서 중요한 장면을 찍고 싶다는 그의 희망을 감독은 촬영 스케줄에 반영해줬다. 최민식은 파이란의 장례를 보러 강원도로 향하는 강재의 여행에 영화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 여정에서 강재에게 일어나는 변화가 자연스럽지 못하면 망하는 거였다. 최민식은 그래서 <파이란>에서 사라져야 했던 많은 장면들이 못내 아깝다. 파이란을 죽음으로 몰아붙인 인색한 소개소장과 함께 회를 먹으며 불편해하는 모습을 비롯해 보지 못한 여인에 대한 연민과 회한이 강재 마음속에 차곡차곡 켜를 쌓아가는 과정을 암시한 많은 연기들이 최종 편집본에 다 담기지 못했다. 찬송가, 목탁소리 속에 썰렁한 파이란의 빈소에서 영정을 바로잡고 꽃바구니를 괜시리 옮겨보는 강재의 뻘쭘한 뒷모습만으로 이루어진 신도 감독의 동의로 성사된 그의 제안이다. 빈소 장면처럼 <파이란>에서 최민식은 다른 경지를 열어보인다. 그는 자신을 사로잡은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의 울혈과 비틀거림을 통해 역으로, 하나의 감정을 가장 온전하고 구체적으로 관객에게 전한다. 골목에서 보스에게 전화를 거는 취한 강재의 무릎이 휘적휘적 꺾일 때, 포장마차에서 일없이 시비를 벌일 때, 방파제에서 파이란의 편지를 읽은 그의 손이 담뱃갑을 더듬을 때 관객은 강재보다 먼저 강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뜻하지 않게 깨닫고 전율한다. 절묘한 타이밍에 찬사가 쏟아진 방파제 장면을 찍던 날. 온종일 바닷가에서 느꺼운 울음을 토하던 그날 최민식은 <오원 장승업>의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무조건 해야지!”가 그의 즉답. 만들려는 사람도 돈대려는 사람도 흔치 않을 영화 아닌가. 그리고 내가 언제 다시 임권택 감독이라는 대예술가와 일을 해보겠는가. 무리를 해서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처럼 흔쾌히 <오원 장승업>에 합류한 뒤로는 매일 새벽이 돼서야 잠이 든다. 스무살부터 쉰아홉살까지를 커버하는 외형적 연기의 어려움은 대예술가의 무거운 혼을 어떻게 불러내느냐에 비하면 아무 문제도 아니다. 게다가 아무래도 영화 속 장승업의 초상에는 임권택 감독의 자화상이 투영되는 것 같으니 더욱 어깨가 묵직하다. “내 주장을 펴기보다 감독님의 요구를 제대로 접수하고 실천하는 것”이 이번 목표라고 최민식은 겸손히 규정한다. “참, 이번에는 여복도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죽이기도 하고 저절로 죽기도 하고 통 영화 속에서 운이 없었는데.” 문득 너스레도 떨어보지만 푹 팬 미간에 괸 고민은 이미 깊어보인다. 붓끝에서 번져갈 예술가의 혼 <파이란>의 연기를 칭찬받으면 기분좋고, 흥행성적이 아쉽다는 말을 들으면 “왜 존경하는 홉킨스 형님은 잘해보겠다는데 여기까지 오셔서 해코지를 하시나?” 귀여운 불평을 하기도 하지만, 최민식은 이제 세상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다만 죽기 전까지 몇명의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가끔 헤아려본다. 영화 속에서 단 한획을 긋더라도 ‘간지’를 제대로 내기 위해 동양화를 배우며 <파이란>의 잔영을 묵향으로 지워가고 있는 요즘 최민식은 대나무를 그린 그림을 보면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귓전에 들린다. <오원 장승업>이 끝날 무렵 그는 어쩌면 오원의 그림처럼 멋대로 흩어진 갈필 끝에서 번져난 선 하나가 마치 우연처럼 가장 정묘한 묘사가 되는 배우로 서 있을지도 모른다. 아홉편의 영화를 돌아보고 한편의 영화를 내다보며 최민식은 “밑도 끝도 없는 작업이에요”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또 무당처럼 남의 혼을 사는 배우로서 “한시적인 삶에 대한 인식”을 뚜렷이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자기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전혀 모르고 있는 표정으로.

여름영화 가이드 - 고양이를 부탁해

감독 정재은 출연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이은주, 이은실 개봉예정 8월 말 감상 포인트 CF 속 예쁘장한 기호로 부유해온 스무살, 그 속내를 섬세한 산문으로 읽는 즐거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나이. 그러나 막상 바람 많은 세상으로 나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 <여고괴담> 시리즈의 오기민 프로듀서가 설립한 영화사 마술피리와 촉망받는 신인 정재은 감독의 첫 장편 <고양이를 부탁해>는, 다섯 여자애들이 독감처럼 앓는 스무살의 기록이다. 고교 단짝이던 태희, 혜주, 지영, 비류, 온조는 졸업 뒤 조금씩 소원해진다. 증권회사에 취직한 혜주는 근사한 커리어우먼의 인생을 동경하고, 생활고에 눌린 지영은 점점 말이 없어지며, 비류와 온조는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다정다감한 태희는 헐거워진 우정을 동여매려 애쓴다.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고양이를 부탁해>에는, 두 여고생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그렸던 정재은 감독의 단편 <둘의 밤>의 공기가 감돈다. <비트>의 오토바이도 <여고괴담>의 원혼도 없는 대신 <고양이를 부탁해>는 소녀들의 빰에 돋은 솜털까지 쓰다듬는 꼼꼼한 연출로 스무살의 출구 잃은 욕구와 내면의 삶을 드러내는 청춘영화를 보여줄 듯하다. ▶ 여름영화 올 가이드 ▶ 주목할 만한 감독들의 작가영화 ▶ 그 밖의 영화들

야드비가의 베개

Story 매혹적인 여인 야드비가(일디코 토트)와 결혼한 온드리스(빅토르 보도)는 온몸이 폭발할 듯한 기쁨과 기대를 갖고 첫날밤을 맞이한다. 그러나 야드비가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동침을 거부하는데, 결혼 전에 사귀던 바람둥이 법률가 프란시(로만 루크나르) 때문이라는 사실이 곧 알려진다. 아내를 잃을까봐 두려워진 온드리스는 징병을 피하기 위해 경찰 밀정 노릇까지 떠맡지만 야드비가와 프란시의 관계가 정리되기는커녕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아이까지 맡아 기르게 된다. Story 초하(初夏)를 향해가는 극장가에는 또 하나의 정격 드라마 한편이 내걸린다. ‘또 하나’라 함은 헝가리영화인 <야드비가의 베개>가 운명에 사로잡힌 캐릭터와 남자배우의 연기력을 중심으로 한 고전적인 드라마라는 점에서 한국영화 <파이란>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야드비가의 베개>는 자의식 강한 여성관객에게 편치 않은 감정을 줄 소지가 다분하다. “여자로 변신한 악마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울부짖는 온드리스에게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야드비가의 불륜은 맹목적이고, 그런 야드비가를 끝내 사랑하는 온드리스의 고통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남자를 파멸시키는 요부’ 모티브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거두고 본다면, 이 영화는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의 에너지가 스크린에 음화(陰畵)로 찍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질투에 사로잡힌 오셀로가 순결한 데스데모나의 목을 조른 것과 달리 질투에 사로잡혔으나 순수한 남자가 어리석고 뻔뻔스러운 여자 때문에 스스로 죽음에 이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온드리스 역을 맡은 빅토르 보도는 성적인 에너지와 사랑, 질투 등으로 광란하는 젊은 남자의 얼굴과 육체를 과격하게 그려내 보이는데, ‘저것이 혹시 헝가리안 랩소디를 통해 감지했던 헝가리적인 에너지가 아닐까’ 싶을 만큼 낯선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슬로바키아 분리주의와 반유대주의 등 국가와 민족, 인종이 얽힌 헝가리사회의 정치적 소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으나 감독의 주된 관심사는 운명과 사랑, 성적인 에너지의 무한한 힘과 파괴적인 충동, 대를 잇는 카르마 등에 놓여 있다. 온드리스가 군에 입대하던 날 야드비가의 모습이 사라진 플랫폼에 오랫동안 서 있던 어머니의 모습과 온드리스의 시신 앞에서 기도하며 오열하는 한 남자의 비밀을 겹쳐 놓으면 이 영화 속 인물들의 ‘카르마’가 해명된다. 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시인, 소설가, 극작가, 자연철학자였던 괴테(1749∼1832)의 긴 창작 생애에는 좀 특별한 데가 있다. 주요 작품만으로 따진다면, 그가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낸 것이 스물다섯 때이고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쓴 것은 마흔일곱이 되어서의 일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일흔둘에 그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여행> 완결판을 내고 또 거기서 11년 뒤인 여든셋에 극시 <파우스트> 제2부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해에 그는 죽는다. 그가 <파우스트>를 완성하고 죽었다는 것이 꼭 특별한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특별한 것은 그가 근 60년 동안 마르지 않는 샘처럼 ‘창조성’을 유지했다는 사실이다. 보통의 사람에게 여든셋이란 이미 적당히 노망기 들거나 혼미해져 코끼리 다리가 넷인지 다섯인지 기억하기 어렵고 기억하는 일조차 귀찮아질 만한 나이다. 그런데 그 나이에 이르도록 창조력이 왕성하게 살아 있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이 비범한 힘의 비밀은? 괴테의 어떤 시편에는 이 비밀의 단서 하나를 제공하는 듯이 보이는 대목이 한 군데 나온다. 그가 자기 부모를 회고해서 쓴 듯한 구절이 그것인데, 풀어쓰면 이런 내용이다. “아버지에게서 나는 생김새를 물려받고 삶에 대한 진지한 추구의 자세를 배웠다. 그리고 어머니에게서 나는 삶을 즐기는 법과 이야기 지어내기의 즐거움을 물려받았다.” 이야기 지어내기의 즐거움(Lust zu fabulieren)이라? 이 즐거움은 무슨 생물학적 디엔에이(DNA)가 아니라 괴테가 어머니에게 배워서 알게 된 즐거움- 경험과 체득의 디엔에이임에 틀림없다. 아닌 게 아니라 괴테의 어머니는 ‘이야기’로 아들을 키운 여자이다. 셰헤라자데처럼 그녀는 어린 괴테에게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주어 아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어머니, 말하자면 ‘아들의 셰헤라자데’이다. 그녀는 회고한다. “바람과 불과 물과 땅- 나는 이들을 아름다운 공주들로 바꾸어 내 어린 아들에게 이야기로 들려주었다. 그러자 자연의 모든 것들이 훨씬 깊은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밤이면 우리는 별들 사이에 길을 놓았고 위대한 정신들을 만나곤 했다.” 어머니의 회고는 좀더 계속된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아이의 눈은 잠시도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어떤 인물의 운명이 그가 원하는 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어떤지 나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원치 않는 쪽으로 사건이 진행되면 아들의 얼굴에는 분노가 서리고, 그가 눈물을 내비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중간에 이야기를 끊고 들어올 때도 있었다. ‘엄마, 공주는 그 못된 양복쟁이하고 결혼하면 안 돼. 양복쟁이가 악당을 쳐부순다 해도 말야.’ 그럴 때면 나는 거기서 이야기를 멈추고, 결말은 다음날 밤으로 미루었다. 그런 식으로 내 상상력은 가끔 아들의 상상력과 자리를 바꾸었다. 어떤 때는 바로 다음날 아침 그가 바라던 대로 주인공의 운명을 고쳐 이야기해주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 넌 벌써 짐작하고 있었지? 결과는 네가 생각한 대로 된 거야.’ 그러면 그의 얼굴은 흥분으로 빛났고, 나는 그의 어린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괴테의 놀라운 창조력이 오직 어머니 덕분이었다는 식으로 한 군데로만 몰아 창조성의 원천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창조성의 다른 이름은 상상력이며, 괴테의 경우 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키워준 첫 번째 공로자는 밤마다 별과 별 사이에 길을 놓아주었던 그의 이야기꾼 어머니이다. 더구나 그 길 놓기는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다. “가끔 내 상상력은 아들의 상상력과 자리를 바꾸었다.” 괴테의 어머니는 어떤 정해진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려준 것이 아니다. 그녀는 아들의 예민한 반응에 적절히 반응하고 아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든다. 반응은 이미 상상력의 참여이고 발휘이다. 이야기 들려주기가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라 ‘아들과 자기 사이의 특별한 사건’이라는 것을 괴테의 어머니는 잘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들이 반응하고 그 반응에 어머니가 반응함으로써 화자와 청자는 서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극받는다. 이 자극은 이야기 지어내기를 즐거운 일이게 한다. 밤하늘의 별과 별 사이를 즐겁게 나는 상상력은 또 별과 인간을 잇고, 지상의 별들인 사람과 사람의 가슴 사이에, 사람과 개구리 사이에 길을 놓는다. 이야기는 단순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상호 반응이며 길 놓기이고 연결하기이다. 이 연결의 능력이 상상력이다. 교육열 높다는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동화책 사다 던져주고 “네가 읽어”라 말하거나 무슨무슨 학원으로 내쫓음으로써 할 일을 다 했다고 흔히 생각한다. 비디오만 열심히 틀어주는 부모도 많다. “내가 시간이 어딨어?”라고 우리는 말한다. 이 ‘우리’에게 괴테의 어머니는 말한다. “별들 사이에 길을 놓아라, 함께.” 도정일/ 경희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jidoh@khu.ac.kr

충무로의 옷을 벗겨라!

폭주족과 본드 흡입 그리고 상시적 폭력과 무절제한 성관계. 2001년에 발표된 <눈물>이 아니다. 1984년에 발표된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다. 무려 17년 전에 발표된 영화이니 이 작품이 당시의 관객에게 얼마나 커다란 충격을 주면서 사회적 물의를 불러일으켰을까를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냉정하게 말해서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은 당시 우리 청소년들의 실상을 좀더 선정적으로 왜곡 내지 과장시킨 측면이 없지 않은데, 그렇게 된 연유의 일단은 그 원작소설이 일본산(産)이었다는 데 있다. 어찌되었건 김진아가 10대 가출소녀로 나와 몽롱하면서도 도발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이 작품은 <눈물>과는 달리 흥행에 성공하여 그 속편까지 만들어진다. 본래 김호선이 연출할 계획이었으나 제작 도중 불의의 사건으로 갑자기 구속되는 바람에 그의 조감독이었던 이미례가 완성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1986년에 김호선이 연출한 속편까지 시나리오는 모두 당시의 신예였던 임유순이 썼다. 건국대 국문과 출신의 작가 임유순의 작품세계는 선정적인 소재와 강렬한 드라마로 특징지워진다. 여고동창생 세명의 각기 다른 남성편력을 그린 <유혹시대>는 김진아·오수비·이혜숙이 저마다 자신만의 매력을 뽐내며 스크린을 뜨겁게 달궜던 작품이다. <학창보고서>는 여고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만의 갈등과 방황 그리고 학교로의 복귀를 그린 작품인데 아역 출신의 배우 이상아의 앳된 얼굴이 해맑다. 남편과 아내가 각기 따로 애인을 가져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가 다시 가정생활의 회복을 조심스럽게 타진해본다는 스토리라인을 가진 작품이 <제2의 성>이다. 본래 이혜영의 골수팬인 나(정확히 표현하자면 유년기의 친구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이만희 감독의 집과 바투 붙어 있어서 뻔질나게 놀러다녔다)는 이 영화 역시 극장에서 봤는데, 그 음울하고 쓸쓸한 분위기와 핍진한 심리묘사가 꽤나 인상적인 작품이었다고 기억한다. 임유순의 필모그래피는 1989년부터 김호선 감독과 손잡고 연달아 발표한 세편의 작품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극동스크린에서 제작된 이 세편은 모두 흥행에서 성공하여 연타석 안타를 기록한다. 유홍종 원작의 <서울무지개>는 신분상승을 위해 발버둥치는 연예계의 여인과 그녀를 철저히 빨아먹은 다음 간단히 폐기처분해 버리는 권력과의 함수관계를 다룬 사회성 짙은 드라마. 당시 신인이었던 강리나가 열연을 펼쳐 영화 속의 플롯 그대로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녀가 맡은 배역 유라의 실제 모델이 누구냐를 놓고 선정적인 가십들이 난무하기도 했다. 재일동포 여배우 김구미자를 주연으로 기용한 <미친 사랑의 노래>는 일종의 베트남전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 암울한 멜로.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옛애인을 그리워하던 그녀가 결국 풀장의 익사체로 떠오르는 라스트가 긴 여운을 남긴다. <사의 찬미>는 현해탄에서의 동반자살로 유명한 윤심덕과 김우진의 실화에 약간의 영화적 손질을 가하여 스크린에 담은 작품. 시대극 특유의 우아한 미장센과 화려한 의상이 일품이어서 그해의 각종 영화상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윤심덕 역에 장미희, 김우진 역의 임성민, 그리고 이들 두명 모두와 묘한 우정관계를 유지했던 작곡가 홍난파 역에 이경영이 출연한다. <아담이 눈뜰 때>는 19살의 재수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정일의 감각적인 중편소설을 각색한 작품. 타자기와 뭉크화집 그리고 턴테이블이라는 장정일식 화두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에 집필된 임유순의 작품들은 태작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혼자 뜨는 달>은 언제 개봉됐는지도 모르게 소리소문 없이 묻혀버렸고, 임성민의 유작으로 기록되는 <애니깽>은 아예 실체도 없이 소문만 무성한 영화가 되어버렸다. 대종상 심사위원회가 프린트도 완성되지 않은 <애니깽>에 온갖 상들을 몰아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공정성 시비가 일곤 했던 대종상의 권위를 완전히 바닥에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은 것이다. 이후 대종상과 영협이 장기간 표류상태로 돌입했으며 젊은 세대들을 주축으로 한 영화인회의가 새롭게 발족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올해는 영협과 영화인회의가 손을 맞잡고 대종상을 국민적 영화제로 거듭나게 만들려 노력한 원년이다. 훗날의 영화사가들은 올해의 대종상을 어떻게 평가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84년 이미례의 <수렁에서 건진 내 딸> ⓥ 86년 정인엽의 <유혹시대> 87년 이미례의 <학창보고서> 88년 고영남의 <제2의 성> 89년 김호선의 <서울무지개> ⓥ ★ 90년 김호선의 <미친 사랑의 노래> ⓥ 91년 김호선의 <사의 찬미> ⓥ ★ 93년 김호선의 <아담이 눈뜰 때> ⓥ 94년 이형탁의 <혼자 뜨는 달> 96년 김호선의 <애니깽> ⓥ는 비디오출시작 ★는 자(타)선 대표작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277호에서 Demonic Possession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신내림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영화 <엑소시스트>가 1949년 미국 워싱턴 DC 근처인 메릴랜드주의 마운트 레이니어라는 마을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Demonic Possession 현상을 모델로 했다고 아주 짧게 언급하고 지나간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개봉이 쉽지 않을 것 같았던 <엑소시스트>의 감독판이 국내에서도 개봉된다고 하니 그 실제 이야기를 좀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영화를 좀더 재미있게 보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정확히 말해서는 <엑소시스트>의 원작인 윌리엄 블레티의 71년작 동명소설의 모델이 된, 그 실화의 내막은 다음과 같다. 그 주인공은 49년 당시 13살이었던 롤랜드라는 이름의 소년. 어느 날부터 그가 사는 집 천장에서 기분 나쁘게 긁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 그의 부모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 계기였다. 물론 처음에는 그저 천장에 쥐들이 들어와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쥐를 잡아주는 사람을 고용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천장에서 쥐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소리는 더욱 시끄러워져만 갔던 것. 그뒤부터 이른바 10대 청소년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인 심령현상 중 하나인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롤랜드의 집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는 유령’이라는 뜻이 암시하듯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주로 소리와 연관되는 경우가 많은데, 롤랜드의 집에서도 2층에서 계단을 통해 누군가가 내려오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던 것. 이와 더불어 거실과 주방의 가구들이 제멋대로 움직여져 있는 것이 발견되는 일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런 일종의 폴터가이스트 현상들이 점점 심해졌던 것. 급기야 롤랜드의 침대가 밤만 되면 요동을 치며 흔들려 롤랜드를 잠에 들지 못하게 했고, 침구들이 롤랜드의 온몸을 감싸는 일들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기에 이러한 현상들이 악령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믿은 롤랜드의 부모는 그 지역을 담당하고 있던 루터 슐츠라는 신부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슐츠 신부는 롤랜드의 집과 성당에서 연달아 악령을 퇴치하려는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슐츠 신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롤랜드를 둘러싼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가 않았다. 이에 롤랜드의 부모는 아예 롤랜드를 슐츠 신부와 함께 지내도록 했지만, 성당 안에서도 롤랜드의 주변에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결국 슐츠 신부와 롤랜드의 부모는 롤랜드를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특별기관에 맡겨 문제를 해결해보려 했지만, 롤랜드의 내부에 있는 악령은 롤랜드의 몸을 빌려 부모와 신부에 대항해 싸우고 소리를 지르며 이를 거부했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영화 <엑소시스트>에서 나온 것처럼 악령이 롤랜드의 안쪽 피부를 긁어 ‘Go To St. Louis’라고 썼다는 사실. 이것이 무언가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부모와 슐츠 신부는 롤랜드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그가 제일 좋아했던 숙모집 근처 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곳에서도 사태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롤랜드는 급기야 점액질로 된 이상한 물질들을 코와 입을 통해 토해내기 시작했고 핏자국이 나는 글자들이 그의 몸을 뒤덮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심지어는 몸 안쪽에서 가해진 충격으로 그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모습이 그의 부모 앞에서 벌어지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병원에서는 현대의학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문제라는 의견을 내놓았고, 엑소시즘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천주교에서는 세명의 엑소시스트를 파견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이들은 무려 35일 동안 하루에 한 사람씩 번갈아 엑소시즘을 시행했고 마침내 롤랜드를 점령하고 있던 악령을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 결과 롤랜드는 이전과 다름없는 건강을 회복했고 5개월이 지난 뒤에 자신이 살던 마운트 레이니어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뒤 그에겐 이상한 현상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런 그의 놀라운 경험은 당시 사람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주요 신문들이 그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원작소설을 쓴 윌리엄 블레티도 대학 3학년이었던 당시, 신문을 통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가 우연히 당시 엑소시즘을 시행했던 신부 중 한 사람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을 계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롤랜드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을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고 영화 <엑소시스트>와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비슷한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의문이 제기되어왔다. 그러다 1993년 토머스 알랜이라는 작가가 당시 롤랜드에게 일어난 일들을 엑소시즘을 시행한 신부 중 한명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라는 책을 냄으로써 그런 의문은 어느 정도 종식된 상태다. 책이 발간된 이후 롤랜드는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도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고 단 한번도 대중 앞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그가 살아 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당시에 엑소시즘을 시행했던 신부들의 경험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고 롤랜드의 친구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이 생전에 남긴 증언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약 롤랜드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면, 그에게서 생생한 증언을 듣고 싶은 것은 비단 몇몇 사람들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에게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겠지만 말이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니스트 ▶ <엑소시스트> 공식 홈페이지 http://theexorcist.warnerbros.com/ ▶ <엑소시스트>의 실화 사이트 http://www.strangemag.com/exorcistpage1.html ▶ <엑소시스트> 팬 페이지 http://www.geocities.com/Hollywood/set/6537/exorcist.html ▶ <엑소시스트> 디렉토리 http://www.geocities.com/Hollywood/Heights/9850/exorcisthome.html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

■ 청소년 대상 국산 TV 애니메이션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 이 나오기까지 “그 애가 올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 아이에게선 향기가 느껴져. 은은하지만 아주 독특한 향기.” 원형의 미래도시 제논의 흐린 상공을 가르며 떨어진 한 줄기 빛이 춤추듯 움직이는 영상 위로 흐르는 내레이션. 알고 보면 극중인물에 대한 설명이지만,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의 첫 대사는 흡사 시청자에게 내미는 소개장 같다. 지난 5월3일부터 매주 목요일 6시 KBS에서 방영되는 새 국산 TV애니메이션 시리즈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은 이렇게 첫선을 보였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뭔가 ‘독특한 향기’를 예고하는 주문 같은 서두와 함께. 가지 않은 길- 청소년 애니메이션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은 국내애니메이션업체 동우애니메이션에서 2D디지털로 제작한 26부작 TV애니메이션 시리즈. 91년에 설립된 이래 <맨인블랙> <고질라> <재키 챈> 등 컬럼비아를 비롯한 미국작품과 <빨간 망토 차차> 등 일본애니메이션의 하청작업으로 제작경험을 쌓아온 동우애니메이션이 처음 선보이는 창작물이다. 4시부터 7시까지, 아무래도 폭넓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기 어려운 방영시간대를 배정받는 국내 TV애니메이션의 경우,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어린 시청자들을 고려한 기획이 대부분인 현실. “청소년들이 볼 만한 작품이 없는” 상황에서, “좀 어렵더라도 청소년들, 일본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들도 즐겨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게 김영두 동우애니메이션 대표의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동우애니메이션이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의 원안을 기획한 JRN과 공동제작에 나선 것은 지난해 초. 하지만 확보된 어린이 시청자들에 비해 얇고 불투명한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위험부담을 안은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은 제작 초기부터 산고를 겪었다. 데모가 좋은 반응을 얻었음에도 편당 1억원씩 약 26억원에 이르는 제작비 마련이 어려웠고 극장용 장편으로의 전환, 일본과의 합작 추진 등 몇 차례 방향 수정을 거듭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JRN이 손을 떼면서 거의 사장되기에 이르렀던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 기획은 지난해 말 KBS의 제작지원 공모에 당선되면서 회생의 기회를 맞았다. KBS에서 10억원을 지원받은 동우애니메이션은 JRN으로부터 판권을 샀고 4월로 예정된 빠듯한 방영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 올 초부터 제작에 들어갔다. 1주일 만에 캐릭터 수정을 끝내고, 2월부터 콘티 및 실제작에 들어간 결과 현재 7화까지 완성된 상태. 구로동에 위치한 동우애니메이션 건물, 4층에서 8층까지 4개층에 걸친 작업공간에서는 지금도 나머지 분량 제작이 한창이다. SF와 미스터리의 접목 10∼15살이라는 비교적 고령(?)의 시청자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만큼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은 기존 국산 TV물과 다른 전략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국내애니메이션으로는 보기 드물게 SF와 미스터리를 접목한 시도.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은 컴퓨터 네트워크 속을 떠돌며 현실세계를 위협하는 소녀 영혼과 이를 둘러싼 비밀을 풀어가는 10대 게이머들의 대결을 소재로 한다. 무대는 2097년, 화산 분화구를 막은 위에 건설된 첨단 도시국가 제논. 제논의 10대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인터넷 게임 동아리 ‘스피어헤드’의 성원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발군의 기량을 자랑하는 게이머들인 슈도, 민트, 베베파우 등이 주인공이다. 전설적인 게이머 모데라토가 이들을 제논 외곽의 폐쇄된 위성안테나 기지에 불러 모아 자신이 만든 ‘레몬 게임’을 시험하게 한다. ‘레몬 게임’은 접속하는 게이머가 사이버공간에서 로봇으로 변신해 가상의 적과 싸우는 게임의 일종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없던 레몬 향기와 함께 소녀의 환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게임 속 적이 더 막강해지고 게이머가 실제로 다치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소녀의 환각은 현실세계의 컴퓨터 시스템에도 심각한 이상을 일으킨다. 컴퓨터 시스템 장애와 사고가 거듭되고, 사원의 샘물까지 핏빛으로 물드는 괴현상이 일어나자 제논은 수십년 전 화산폭발과 같은 대재앙을 예감하는 불안에 휩싸인다. 레몬 게임 속 소녀가 현실의 위험을 부른다는 것을 눈치챈 스피어헤드 팀원들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연구하는 실험에서 죽어간 소녀의 과거와 이를 둘러싼 음모를 차례로 밝혀낸다. 때론 진지하게, 때론 경쾌하게 이처럼 컴퓨터 네트워크상의 존재, 기계와 인간, 게임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등을 다루는 설정이 낯설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나 <아바론>, 혹은 <레인> 같은 일본SF애니메이션이나 <매트릭스> 같은 SF영화처럼 비슷한 모티브의 작품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하지만 로봇 메커니즘 위주의 아동물이 주류를 이뤄온 국산TV애니메이션의 흐름에서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은 주목할 만한 변주다. 진돗개와 소박한 동심의 우정과 일상을 사실적으로 담은 <하얀 마음 백구>나 신종 생물과 인간의 전쟁, 인간사회의 암투에 휘말린 젊은 전사들을 통해 진지한 SF액션을 시도한 <가이스터즈>가 그랬듯이 국내의 창작애니메이션의 이야기 진폭을 넓히고 다양한 화법을 고민하는 시도인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캐릭터나 배경, 화면 연출 등에서도 조금씩 드러난다.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의 캐릭터들은 판에 박힌 미소년, 미소녀 영웅들과 좀 다르다. 앞머리가 삐쭉 선 다혈질의 슈도는 잘생겼다기보다는 제멋에 사는 개성파고, 부스스한 머리에 턱수염이 까칠한 모데라토는 어수룩한 떠돌이의 이미지다. 스피어헤드의 막내이자 코믹한 감초 역할인 밤과 주근깨 소녀 푸딩도 미모와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발랄하고 예쁘장한 민트나 수려한 모범생 캐릭터인 베베파우도 때로 희화화된 모습으로 망가지길 서슴지 않는다. 비교적 전형적인 미모를 고수하는 인물은 소녀 유령 코라와 수수께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체불명의 소녀 티엘 정도랄까. 전체적으로 미모보다 개성적인 외모와 성격을 강조한 인물들은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의 지향을 드러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기계와 인간 생체의 결합을 실험하는 문명의 이기에 희생된 소녀를 둘러싼 음모라는 암울한 소재를 다루되, 게임과 X스포츠를 즐기며 분방한 제멋에 사는 N세대의 경쾌한 이미지와 가벼운 개그를 배치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좀더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는 것이다. 소재의 무게와 미스터리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지나치게 심각해지는 것을 경계한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의 색깔은 배경에서도 마찬가지. 레몬 게임 장비가 설치된 안테나 기지나 비밀이 깃든 중세풍의 사원은 어두운 톤으로, X게임장이나 제논의 중심가는 화사한 톤으로 배경을 대비시켰다. 배경 중에서도 특히 게임이 벌어지는 기지 안팎이라든가 철골 구조물 등을 이용한 게임 속 가상공간은 묘사가 돋보이는 부분. <아바론>의 애쉬처럼 게임기를 착용하고, 센서 장갑을 낀 인물들이 게임에 접속하면서 로봇 캐릭터로 변신하는 과정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 날렵한 로봇들의 액션도 기대 이상의 매끈한 영상을 보여준다. 이처럼 세련된 만듦새는 역동적인 게임 전투장면과 개성이 다양한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갈등과 웃음으로 완급을 조절하며 숨은 음모의 실체에 다가서는 구성과 더불어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다. <포켓몬스터>의 아성에 도전한다 지난 5월17일 3회분까지 방영을 마친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의 시청률은 6% 정도. 시청률 10%를 상회했던 <하얀 마음 백구>의 성공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같은 시간대에 SBS에서 방영되는 <포켓몬스터>가 평균 시청률 20%를 맴도는 막강한 라이벌임을 감안하면 괜찮은 성적이다. KBS와 동우애니메이션의 인터넷사이트 및 애니메이션 관련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반응도 매우 호의적이다. (안타깝게도) 국산애니메이션인지 몰랐다, 일본애니메이션 못지않게 잘 만들었다, 재미있다는 호평이 대다수. 김영두 대표에 따르면, MIPCOM 등 해외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미국의 배급사와 20억원 상당의 판권계약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이 계약이 체결되면 KBS의 지원금을 제외한 16억원의 제작비를 상쇄하고도 수익을 남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7월경에는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 게임을 출시할 예정이며, 이후 청소년을 겨냥한 의류 및 핑거보드, 출판만화 등 캐릭터사업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작품에 힘을 실어갈 계획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차용한 개그 연출이 가끔 극의 리듬을 흐린다거나 과장법에 익숙한 성우들의 연기, 음향 효과의 미진함 등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이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을 일신하고 표현의 결을 좀더 풍부하게 가꿔가는 작품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듯 하다. 촉박한 일정에 쫓기면서 놓친 부분도 있고, “청소년이라는 목표층을 생각하면서도 소수를 위한 작품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수위를 낮추기도” 했지만, 아쉬움은 과제로 남겨두겠다는 게 남종식 총감독의 말. 첫 술에 배부르긴 힘들고, “복습을 잘 해서 다음엔 같은 문제를 틀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에 대한 바람도, “잘 되는 것보다는 조금은 새로웠다는 인식으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다.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은 나머지 23개의 이야기를 지켜봐야겠지만,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에서 풍겨오는 향기는 예사롭지 않다. 그러니 미리 실망을 ‘두려워 말고’(‘바스토프’는 ‘Be A Stranger to Fear’, 의역해서 ‘두려워 말라’는 뜻으로 극중에 쓰인다)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에 접속한다면, 은은하지만 독특한 제 향을 찾아가는 창작 애니메이션의 더딘 걸음을 함께 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황혜림 기자 남종식 총감독 인터뷰 "캐릭터가 모두 예쁘란 법 있나"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의 총감독을 맡은 남종식 감독은 컬럼비아의 <맨 인 블랙> 등 해외의 유수 애니메이션업체의 하청작업을 통해 경험을 쌓아온 애니메이터다. 국산 장편애니메이션 <아마겟돈>의 act1의 작화를 맡은 바 있으며, 91년부터 동우애니메이션에 합류해 현재 이사를 겸임하고 있다. 어느덧 경력 15년이 넘는 중견 애니메이터가 됐지만, 어린 시절 애니메이션을 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했다는 고교 시절, “꿈도 없이, 퇴학 좀 안 시켜주나” 하다가 졸업했고,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그를 눈여겨본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애니메이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은 그가 단독으로 연출하는 첫 창작물. “하청 일과 선배들에게 많이 배웠다”는 그는 하청 때문에 창작을 못한다기보다는 일을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빠듯한 일정으로 작업해야만 하는 상황임에도,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의 안정된 만듦새를 끌어내고 있다. 막상 뚜껑을 연 <사이버 영혼 바스토프 레몬>은 그간 소개된 데모나 캐릭터와 사뭇 다르다. 특히 슈도 등 개성있는 캐릭터가 돋보이는데, 원안에서 어떻게 달라졌나. 사이버 영혼, 레몬 향기, 네트워크 게임 같은 기본 설정은 원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애초 기획자의 컨셉은 일본에서 이런 종류의 애니메이션이 잘됐으니까 그 비슷하게 해보자는 거였다. 캐릭터도 좀더 일본만화 같았고. 그런데 KBS 방영이 결정되고 사실상 기획기간 없이 바로 제작에 들어갔고 김영두 사장님이 마음대로 하라고 맡겨줬다. 그래서 설정은 유지하되 캐릭터와 콘티, 시나리오를 다 뒤집었다. 다 눈 크고, 예쁘고 잘생긴 것도 좋지만 성격에 맞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덕분에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뭐 이러냐고 욕도 먹었지만. (웃음) 레몬 게임 속 로봇들의 액션신은 매끄럽지만 좀 심심하다. 사실 리얼하게 보여주기엔 제약이 많다. 직접적으로 맞거나 베는 건 안 되니까 슬쩍 비껴간다. 슈도의 첫 전투장면만 해도 원래 검을 쓰려고 했는데, 투과광으로 바꾸라는 말을 들어서 광선검을 썼다. 개인적으로도 일상은 폭력적이지만 애니메이션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맘도 있지만. 그런 기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6시 방영인데, 아예 OVA나 개인 작업이라면 몰라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거니까. <공각기동대> <아바론> <레인> 등 소재와 이미지가 비슷한 작품들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솔직히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는 편이 아니다. <아바론>과 <레인>은 못 봤고 <공각기동대>도 다 보진 않았다. 그 작품들을 본 사람들에게 비슷하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큰 부담은 없었다. SF미스터리의 심각한 분위기에 비해 개그가 과장되게 느껴지는데, 시청자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배려인가. 기본적으론 네트워크상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미스터리고, 네트워크 게임과 로봇 액션은 주시청자인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소다. 전체적으로 무거우면 마니아들은 더 좋아하겠지만, 개인 작업도 아니고 26억원을 들여서 만드는 작품인데…. 너무 심각하면 만화영화가 주는 즐거움이 줄어들 것도 같고, 무거운 주제지만 일상적인 이야기로 끌고 가고자 했다. 커다란 땀방울 등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차용한 개그연출이나 음향효과, 성우들의 연기는 좀 아쉽다. 개그연출은 다들 좀 익숙해 있어서 원화할 때부터 이 타이밍에선 이렇게 해야 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공식화된 연출방법이랄까. 그렇지 않으려면 하나하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더 해야 하는데, 일정에 쫓겨서 미처 다 하지 못했다. 아쉬움도 많지만 숙제로 남겨뒀다. 복습을 잘해서 다음에 같은 문제를 틀리지 않도록 해야겠지. 첫술에 배부를 순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