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텔레@UPCOIN24usdc매입비트코인현금화usdc매입비트코인현금화' 검색결과

기사/뉴스(1997)

2만개 중의 하나 <바람을 본 소년>

당연한 이야기지만 필자는 일반인들보다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는 편이다. 어릴 때야 뭐, 밥먹던 걸 잊어버리고 텔레비전에서 하는 만화영화를 보다가 야단맞은 일이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일반 가정의 보급시기보다는 좀 늦었던 1990년에 비디오데크를 들여놓은 이후부턴 비디오 대여점과 해적판 비디오를 통해 거의 닥치는 대로 애니메이션을 보았다(요즘은 고속전용선과 CD-R만 있으면 몇 백원짜리 공 CD에 수십편씩 애니메이션 동영상을 넣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장르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취향이지만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고등학교 시절 학업으로 인해 애니메이션을 거의 보지 못한 반발력 때문인지 웬만큼 그림이나 스토리가 되어주면 웬만한 것은 불문에 부치고 구할 수 있을 만큼 구해서 보았다. 원작인 만화책이 긴 편이라 해적판조차도 제대로 전권이 나오지 않은 <란마1/2>이라는 작품의 TV애니메이션 전 시리즈(120분짜리 비디오 41개 총 161화)를 구해 8일 만에 다 본 적도 있을 정도였다.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이야 그렇게 보진 못하지만 짬이 날 때마다 보는 편인지라 대략 하루에 2∼3편 정도 본 것으로 하여 이때까지 본 애니메이션 수를 계산해보니 2만편 정도 된다. 이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보다보니 디지털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현란한 영상이나 좋아하는 감독이나 작가의 신작, 뇌와 감성을 자극해대는 몇몇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순수하게 작품에 몰입해서 보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는 부작용이 생겼다. 발표시기보다는 조금 늦게 보게 된 <바람을 본 소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고질라> 시리즈로 유명한 오오모리 이쓰키가 총감독을 맡고 전쟁을 테마로 한 소설을 많이 써낸 C.W. 니콜의 원작에 체코 필하모니 실내 관현악단이 연주했다는 음악, 제24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 수상 등의 사전 스펙(?)에 호감이 생겨 손을 대긴 하였지만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이전에 보았던 작품의 이미지들이 중첩되면서 마치 패러디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고 말았다. “오래 전 멸망한 ‘바람의 민족’의 힘을 이어받은 소년 ‘아몬’은 우수한 과학자인 아버지의 새로운 에너지 연구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 에너지를 탐낸 독재자 ‘브래릭’에 의해 부모님이 피살되자 ‘아몬’은 금독수리의 도움을 받아 ‘빛의 놀이’라 불리는 힘으로 탈출한다. ‘바람의 민족’의 근원지인 ‘심장의 섬’에서 곰의 왕 ‘우르스’에게 ‘바람의 민족’의 역사와 멸망되었던 사연을 들은 ‘아몬’은 자신의 힘을 시험하려고 표류하다가 한 바닷가 마을에 다달아 소녀 ‘마리아’에게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그 마을이 ‘브래릭’의 공격을 받아 마을 사람들이 전멸하자 ‘아몬’과 ‘마리아’는 레지스탕스에 들어가 ‘브래릭’ 타도에 나선다”라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다양한 캐릭터, 세밀한 메커닉 설정이나 전투신 등의 장점은 어드벤처 판타지물로서의 미덕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하지만 여러 군데 보이는 소재나 배경이 예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 작품 이미지와 겹쳐 마치 예전에 ‘우주소년 원더키디’에 등장했던 여자주인공의 목걸이를 보았을 때와 같은 안 좋은 기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여 만든 작품을 이것저것 빗대며 폄하시키는 것은 과히 좋은 일은 아니지만, 황금독수리를 보면 <태왕의 왕자 에스테반>이나 <카잔>이, 곰의 왕 ‘우르스’와 심장의 섬을 보면 <원령공주>가, 바닷가마을에서의 공동체생활은 <태양의 왕자 홀스의 모험>이, 그리고 ‘브래릭’의 병사들이 쓰는 병기나 군사들의 모습에서는 <라퓨타>나 <미래소년 코난>이 떠오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인 것 같다. 완전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창조적인 작품을 요구하는 것이 수많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무리한 주문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디서 베낀 듯한 드라마, 쇼 프로, 노래를 수시로 접하는 속에서 제발 애니메이션만이라도 보는 이의 뇌세포와 심장근육을 자극해주는 기폭제 역할을 다해주었음 하는 바람이다. 김세준/ 만화·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

차갑지만 현실적인 멜로드라마 <결혼은, 미친 짓이다>

● 개인적인 취향 이야기를 좀 하자면 내 기억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영화들은 태반이 멜로드라마다. 어렸을 적에 흑백 텔레비전으로 본 ‘주말의 명화’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에 영혼이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했던 <사운드 오브 뮤직>, 윤심덕의 애사를 통해 자의식과 시대 사이의 갭에 관한 두려움을 예감케 했던 <사의 찬미>, 사랑의 망설임과 두려움에 관한 프랑스영화 <겨울의 심장>(국내 개봉 제목은 잊어버렸다) 같은 것이 쉽게 떠오르는 예다. 이런 영화들은 마음의 민감한 현, 일명 심금을 지잉 울려준 다음 길게는 일주일쯤 넋이 나가게 만들곤 했다. 돌이켜보건대 멜로드라마는 나에게 여성으로서의 성장과 사회화 과정에서 성적 정체성을 구성하고 역할 모델을 발견하는 교과서 구실을 담당했던 것 같다. 남성들이 가족과 학교, 군대와 직장생활을 통해서 조직적으로 일관되게 사회화 과정을 겪는 것과 달리, 여성들은 다소 사적이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이 과정을 통과한다. 그런 의미에서 멜로드라마는 여성의 개인적인 판타지와 사회적인 역할 교육이 마주치는 중요한 접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멜로드라마 연구와 여성 연구 사이에 종종 긴밀한 상관성이 발견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비단 연애나 결혼, 가족과 같은 여성의 사적인 경험과 공간을 다룰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이슈를 흡수하고 반영하며 재조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단 유럽학계의 미시사 연구와 일상의 정치학을 경유하지 않더라도, 급격한 사회 변동 시기인 1950∼60년대에 나온 한국의 멜로드라마를 보더라도 뚜렷한 현상으로 관찰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감독 유하)는 우선 마음의 현을 울리는 힘을 갖춘 멜로드라마다. 아울러 현대 한국사회의 결혼 제도에 대한 성찰과 함께, 제도의 이면에 존재하는 풍속도와 심성을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멜로드라마의 계보에 올라설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유하라는 감독의 재탄생을 알린다는 점에서도 반갑다. 영화의 내용이나 형식에 대한 과도한 강박관념 없이 부드럽게 관객을 흡수하고 설득하는 부담없는 화법은 최근 한국영화에서 오히려 보기 드문 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평이하면서도 의미있는 말장난, 대사와 편집을 활용한 유머 등 상업영화의 문법 안에서 관객과의 소통 가능성을 확장하려는 노력도 간과하기 어려운 미덕이다. 십여년 동안 줄기차게 섹시스타로서의 붕뜬 이미지를 고정시켜온 엄정화와 스크린 신인인 감우성의 연기 톤을 비교적 조화롭게 조율한 것도 돋보인다. 결혼의 고고학: 스쳐가는 통과의례를 주목하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오프닝의 결혼식 장면을 포함해서 도합 세번의 결혼식이 등장하고 대사 속에서 또 다른 결혼식이 한번 더 언급된다. TV나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멜로드라마는 짝 찾기에 나선 선남선녀가 마침내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에 도달하는 것으로 끝을 내거나, 아니면 몇 세대의 결혼이 이미 얽히고 설킨 가족 내부의 일상을 곰살맞게 소묘하는 가족드라마로 양분되어 있다. 반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바로 그 경계선 언저리에 관한 이야기이고, 더욱이 결혼식의 정면이 아니라 이면에 관한 영화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몇컷의 스쳐가는 장면으로 넘기고 마는 통과의례를 주목하면서, 그 화려하고 양식화된 의례를 감싸고 있는 베일을 홀랑 벗겨보이는 발칙함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네번의 결혼식은 기존의 멜로드라마가 부여해온 낭만주의나 신성함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에 제도로서의 결혼이 갖는 절차와 목적, 양식화된 의례의 획일성 같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라는 게 우스꽝스러운지,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이른바 리얼리즘적인 톤이 뜻밖에 의뭉스럽고 냉소적인 효과를 낸다.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가족 제도의 역할과 경험들은 19세기에 들어서서야 고안되고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현행 가족 제도는 거대 기업들조차도 스스로를 ‘가족’이라는 이미지에 갖다붙일 만큼 부르주아 경제체제의 핵심 장치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결혼이란 순전히 개인적인 선택처럼 보이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는 가족 단위의 치밀한 지략과 계획이 동원되는 일생 일대의 대역사가 되는가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프티 부르주아 계층에 속하는 여성주인공 연희(엄정화)를 통해 결혼의 이같은 정략적 성격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프티 부르주아에게 결혼은 교육과 더불어 신분 상승의 결정적 요소 중의 하나인데, 연희는 미모와 안주인으로서의 자질을 지참금 삼아 의사를 줄줄이 배출한 부르주아 가문에 입성한다. 그 대가로 직장을 포기하고 결혼을 생의 유일한 지평선으로 선택하는 계약을 마무리한다. 앞치마의 페티시즘이 보여주듯이, 그녀는 애교와 음식 솜씨를 통해 부르주아 안주인이라는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낼 것이고 출산과 육아, 자식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는 부르주아 가족 재생산의 순환고리를 완수할 것이다. 연희에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이같은 결혼의 실상을 낭만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모든 결혼은 사랑으로 맺어졌다는 환상, 혹은 그래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주입하는 멜로드라마의 여성주인공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대신 그녀는 결혼이나 가족이라는 것이 사실은 얼마나 모순적인 동기와 움직임, 감정들에 노출된 가공할 만한 비밀의 장소인지를 천연덕스럽게 보여준다. 인터넷 아이디(ID)가 프로이트식 이드(id)로 달려간다는 누군가의 지적처럼 오늘날 이런 분열증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집단적으로 표출되는데,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결혼 제도와 현대적인 섹슈얼리티라는 이슈가 주류 상업영화 안에서 본격적으로 폭발하는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생활의 역사: 섹슈얼리티는 고삐 풀려 돌아다니고 있다 이 영화의 갈등축은 크게 두 가지이다. 결혼을 통해서 경제적인 안정과 신분 상승, 정서적이고 성적인 친밀감이라는 서로 다른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키고 싶어하는 여자의 욕망이 그 하나다. 다른 하나는 자존심과 자의식, 자유로운 생활 태도를 갈망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갖지 못한 남자의 태도이다. 두 사람은 한 가지 면에서는 서로 통하면서도, 다른 한 가지가 서로 어긋난다. 결혼해서 살까, 헤어지고 말까? 두 사람은 갈등의 정체와 그것의 잠재적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남자가 그것을 입으로 줄줄이 꿰면서 경험과 통찰력을 과시하는 동안, 연희는 자신의 두 가지 욕구를 두개의 결혼생활로 나누어 충족시키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현실화시킨다. 하나는 공식적인 결혼이고 다른 하나는 비공식적인 결혼, 이를테면 동거이다. 화자가 준형(감우성)이고 연희는 준형의 시선 없이는 화면에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일견 남자 이야기로 보이지만, 드라마의 강력한 중심이 여자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영화는 여자의 감정적인 욕망선, 그러니까 비공식적인 결혼생활쪽을 충실히 추적한다. 그녀의 공식적인 결혼생활은 준형의 추측과 몇번의 간단한 전화통화를 통해 간단히 제시될 뿐이다. 두 가지 결혼생활의 대립은 영화 속에 나오는 두 종류의 사진들을 통해서 명료하게 대비된다. 공식적인 결혼을 기록하는 사진들은 하나같이 지루하게 양식화되어 있는 반면, 연희의 사진은 내밀하고 사적인 순간을 꼼꼼히 구성하는 추억의 연대기를 이루고 있다. 사진이라는 것이 자기 삶의 본질을 이미지의 파노라마로 재구축하려는 노력이라면, 연희의 사진은 그녀가 결혼을 통해 진정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사진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앞치마가 진심으로 복무하는 것 역시 비공식적인 결혼생활쪽이다. 현실생활에서는 이미 가족 제도의 통합성에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갈등의 요소들이 급팽창한 지 오래다. 평등주의와 개인주의의 진전, 독신주의나 이혼의 증가, 반항적인 사춘기 소년소녀들, 게다가 보헤미안적인 예술가와 댄디즘을 숭앙하는 지식인 등 다양한 층위에서 가족 제도에 대한 공격이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결혼이 섹슈얼리티를 수용하기에 유일하고 최적의 방식이라는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 남녀 모두 결혼 연령이 30살 전후로까지 늦춰지면서 섹스의 대기상태가 역사상 가장 길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결혼 제도 바깥의 육체와 성에 대한 억압은 고작해야(?) “당신의 노년이 쓸쓸할 것”이라는 엄포 정도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가두어 두기를 원했던 섹슈얼리티가 고삐 풀려 돌아다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성과 사랑에 관한 비밀스럽고 경건한 상징 장소였던 신혼 부부의 침대조차 그 권위를 잃어버린다. 연희가 아직 신방도 차려지지 않은 신혼 침대에 준형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비록 불발되긴 했지만 여성 관객조차도 “어머나!”라는 비명을 지를 만큼 충분히 신성모독적이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연희는 드라마 안에서 처벌받지 않은 채(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들키지 않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준형의 집 앞에 나타난다. 준형은 그것들에 담긴 연희의 집요한 의지를 뒤늦게 절실히 깨닫는다. 그 어처구니없는 의지와 뒤늦은 깨달음의 의미는 관객에게도 전염되고 두 사람의 멜로가 지니는 이같은 설득력은 결혼 제도의 위기와 모순, 현대인의 분열증에 대한 설득력으로 이어진다. 대중문화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진보 진영 역시 가족의 신화에 공공연하게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며 그들의 사상 안에 가족이라는 뇌관을 차라리 제거해버리고 있다는 점에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발칙함이 특별해 보인다. 이 영화는 또한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이 ‘러브 하우스’가 될 때까지” 뛰겠다는 TV 프로그램이나, 해체된 가족의 재봉합을 우회적으로 설득하는 영화 <집으로…>와는 영 다른 곳에 서 있다. 그 지점은 차갑지만 현실적이다. 연희가 드러내는 특수한 태도는 그것을 이기심이나 뻔뻔함 혹은 병리적 증세 등 무어라 부르든 상관없이 이 시대 사람들의 은밀한 내면 풍경이다. 이 때문에 그녀의 분열증은 모종의 감동을 주며, 역사적인 중요성을 안고 있다. 비바! 멜로드라마!김소희/ 영화평론가 cwgod@hanmail.net

모범생 경찰 폼잡는 경찰 <쇼타임>

중견배우 로버트 드 니로와 에디 머피, 두 배우는 서로 다른 연기 세계를 구축해왔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드 니로와 <비벌리 힐스 캅>의 머피를 떠올린다면,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할 영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톰 데이 감독의 <쇼타임>은 놀던 곳이 다른 이 두 캐릭터를 과감하게 주연으로 캐스팅해 만든 액션 코미디다. 머피보다는 드 니로가 타락한 셈이다.미치(로버트 드 니로)는 말수 적고 성질 급하고 자기 일에 충실한 마약반 형사다. 그는 전형적인 ‘일 중독’형 경찰이다. 물론 이혼당했다. 어느 날 미치는 마약밀매조직 검거 작전을 펴다 경찰의 활동을 실황으로 찍으려던 방송사 카메라에 잡힌다.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방송사의 극성 때문에 범인을 놓친 미치는 화가 치밀어 방송사 카메라를 권총으로 쏴버린다. 이 장면을 본 방송사의 베테랑 프로듀서 체이스 렌지(르네 루소)는 미치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경찰 24시’를 구상한다. 여기에 경찰업무보다는 텔레비전 출연이라는 ‘잿밥’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트레이(에디 머피)라는 경찰이 끼여든다. 트레이는 순찰이 주요 업무인 ‘순경’이지만 카메라 앞에만 서면 거칠고 강렬한 형사로 변신한다. 카메라라는 프리즘이 왜곡시킨 모습과 실제상황의 대비가 웃음을 선사한다. 24일 개봉. 이상수 기자leess@hani.co.kr

올 여름 극장가 세계 애니 `우르르`

올 여름,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들의 극장가자는 성화에 내내 시달려야 할 것 같다. 그 어느 해보다 여름 애니메이션의 경쟁이 치열한 탓이다. 특히 디즈니와 드림웍스라는 양대 메이저가 맞붙던 여느 해와 달리, 다양한 국가와 스튜디오에서 만든 애니메이션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화려한 테크닉의 입체(3D)기술과 전통적인 평면(2D) 기술의 대결도 흥미를 끈다. 메이저들의 한판은 야생마 스피릿의 모험을 그린 드림웍스의 <스피릿>(7월5일)으로 시작된다. 월트 디즈니의 <릴로 & 스티치>(7월12일)는 예쁘고 가녀린 디즈니 여주인공 모습에서 벗어난 오통통한 릴로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다리가 여섯인 외계인 스티치가 쏘아대는 화장실 유머도, 디즈니의 변신을 기대하게 해준다. 두 회사가 올해 평면기술을 다시 대폭 도입한 데 비해, 폭스는 입체 애니메이션 <아이스 에이지>(8월9일)를 내건다. 빙하시대를 배경으로 맘모스와 나무늘보가 길잃은 인간의 아기를 가족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먼길을 떠나며 벌이는 모험으로, 해외에선 이미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6월28일)은 화려한 상상력과 깊이있는 철학적 세계관으로 이미 전주영화제에서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작품. 항상 관객숫자가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징크스’를 깨줄지도 주목된다. 조금조금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애니메이션들도 적지않다. 텔레비전 시리즈 <러그래츠>로 유명한 미국 니클오데온의 <지미 뉴트론>(6월6일)은 외계인에 납치된 부모들을 찾아 모험에 나서는 소년들의 우주모험극이다. 일본, 미국의 애니메이션 틈에서 덴마크 애니메이션 <어머! 물고기가 됐어요>(7월26일)도 기대주. 물고기가 된 세 개구장이의 이야기로,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따뜻한 캐릭터와 환상적인 바닷속 세계가 돋보이는 영화다. 한편 월드컵 마스코트 아토, 니크, 케즈를 내세워 국제축구연맹이 기획한 <스페릭스>(5월31일)는 일찌감치 개봉해 월드컵 붐 조성에 한몫할 예정이다. 하지만 여름 개봉대기작에 한국 애니메이션이 한 편도 없는 점은 아쉽다. 김영희 기자dora@hani.co.kr

[Review] 빵과 장미

■ Story 멕시코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밀입국해 들어온 마야(파일러 파딜라)는 언니 로사(엘피디아 카릴로)가 일하는 청소 용역회사에 취직한다. 중간관리자는 밀입국자인 마야를 취직시켜준 반대급부로 한달치 급료를 가로채간다. 청소부의 대다수가 남미 밀입국자인 이 회사의 근로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늦게 출근했다고 그 자리에서 해고해버리고, 동료 청소부를 밀고하도록 꼬드긴 뒤 거부하면 또 잘라버린다. 마야가 취직한 지 석달쯤 지나 노동운동가 샘(에이드리언 브로디)이 이 용역회사의 청소부 명단을 훔치러 들어온다. 경비원에게 들켜 쫓기는 샘을, 마야는 대형 쓰레기통 안에 숨겨준다. 다음날 샘이 마야와 로사 식구의 집에 찾아와 청소부들이 단결해 싸워야 한다고 선동한다. ■ Review 켄 로치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수사가 됐다. 소련이 해체되고, 거대담론이 무너지고, 노동계급의 연대의식이 아스라해진 90년대에도 줄기차게 계급적 관점을 지키면서 억압받는 약자들의 투쟁을 영화로 만들어왔다. 고지식함, 비타협적인 태도, 좀더 나쁘게 시대착오적이라는 의미로 ‘켄 로치적’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쌓았던 그의 대중적 인기는 필모그래피가 쌓여갈수록 줄어들어 이제는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만이 켄 로치 영화의 고객으로 남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세기가 바뀐 2000년에 그가 내놓은 영화는 제목부터 <빵과 장미>이다. ‘빵’은 생존권, ‘장미’는 단순히 먹고사는 것에 더해 인간이 누리려 하는 여유와 풍요를 의미함은 미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반세기 전에 브레히트는 “지금 장미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그 밖의 모든 억압과 불의에 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서 켄 로치는 “우리는 빵뿐 아니라 장미도 원한다”고 외친다. 나치 파시즘의 만행이 코앞에서 저질러지던 그때와, 지금 세계화 시대의 풍요를 염두에 둔다면 두 말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빵과 장미>처럼 ‘켄 로치적’인 제목이 있을까. 직설적인 제목에 걸맞게 영화의 주인공들은 풍요의 상징인 미국, 그중에서도 최고소득의 변호사와 펀드매니저가 모여 있는 LA 고층 건물에서 이들과 정반대로 열악하게 살아가는 청소부들이다. 마야의 집에 찾아온 샘이 말한다. “82년 청소부의 시간당 임금은 8.5달러였고 의료보험, 치과보험 모두 가입이 됐다. 99년 청소부의 시간당 임금은 5.75달러에 아무런 보험혜택도 없다. 그 강도 같은 놈들은 미국의 최빈곤층에게서 20년 동안 수천억원을 가로채갔다.”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가 밀입국자여서 노조도 만들지 못한다. 로사는 남편이 당뇨병으로 고생하는데도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동생 마야를 취직시키기 위해 중간관리자에게 몸까지 내준다. 중간관리자는 그래놓고도 마야의 첫 월급을 가로채간다. 이 영화에서 ‘장미’는 사치스러운 게 아니다. <레이닝 스톤>에서 딸의 성찬식 예복을 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 청소부들이 얻고자 하는 건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다. 이들이 샘의 도움 속에 사주와 맞서 싸워 소득을 얻어내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쫓아가는 <빵과 장미>는 줄거리만 요약해놓고 보면 도식적이다. 그러나 늘 그렇듯 켄 로치 영화에서 줄거리를 위해 캐릭터가 소외되는 일은 드물다. 켄 로치와 단짝이 된 폴 래버티가 6년 동안 실제 LA 청소부들의 운동에 동참하며 애쓴 덕택에 영화의 인물들은 남미 특유의 낙천성과 거기에서 오는 힘을 놓치지 않는다. 시위하다 체포돼 끌려간 경찰서에서 이들은 에밀리아노 사파타, 판초 비야 주니어 등 남미 혁명지도자들의 이름을 대며 낄낄댄다. 로맨스와 유머도 중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노동운동가 샘이 강연 도중 마야의 유혹을 받고 섹스하는 장면은, 얼핏 민중영웅의 투사적 이미지 안에 갇히기 쉬운 샘에게 인간의 부드러움과 세속성을 불어넣는다. 변호사 사무실 합병 축하파티장에 청소부들이 몰려들어가 한판 시위를 하고 나오는 대목에선 베니치오 델 토로, 팀 로스 같은 스타들이 파티장의 게스트로 출연해 예상밖의 재미를 선사한다. 아울러 이 유명인사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청소부라는 직업의 특성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한 청소부가 말한다. “우리가 유니폼을 입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야.” 그러나 <빵과 장미>를 도식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건 무엇보다 켄 로치의 세계관이다. 그는 분명 비타협적인 원칙주의자이지만 관념적인 과격함이 없다. 일거에 승리하기를 바라는 욕심이 없다. 이 영화에서 청소부들은 임금인상을 쟁취하지만, 마야는 멕시코로 추방된다. 그래도 마야는 자존심과 명분을 얻고 간다. 자존심과 명분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켄 로치가 말하는 희망은 거기까지다. 딱 거기까지만 얘기하고 영화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건, 얼핏 쉬워 보이지만 웬만한 경륜과 자신감이 아니면 못하는 일이다. <빵과 장미>의 촬영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실제로 LA의 청소부들은 거리시위에 나가 3년간 25%의 임금인상을 얻어냈고 곧이어 LA의 호텔 노동자들도 단결해 같은 성과를 얻었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실제 청소부이자 노조 간부인 마이론 파예스는 “영화가 내 삶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고 영국 언론 <가디언>이 전했다. ‘켄 로치적’이라는 수사는 아무에게나 붙일 수 있는 게 아닌 듯하다. 임범 isman@hani.co.kr

<에브리바디 페이머스> 본 아저씨의 꼬리에 꼬리를 문 단상

● 도미니크 데루데르 감독의 <에브리바디 페이머스>는 질박한 외모의 17살 소녀 마르바가 스타 가수로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서사의 굵은 줄기는 텔레비전이 주도하는 현대의 쇼비즈니스 세계를 질주하고, 작은 줄기는 딸의 성공을 위해서 뭐든 할 각오가 돼 있는 무능하고 무모한 전통적 아버지의 부정(父情) 행각을 좇는다. 1. 아름다운 자연에 넋을 잃거나 아름다운 건축물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데는 아무런 윤리적 자의식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아름다운 여성 앞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미스 코리아 대회를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 더러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거기에는 사람의 외모에 공개적으로 미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그 사람의 인격을 훼손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을 것이다. 말할 나위 없이, 외모(만으)로 사람의 값어치를 판단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렇다면, 지적 능력(의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교육적 배경)(만)으로 사람의 값어치를 판단하는 것은 그것보다 덜 부당한 일일까? 1.1. 영화 속에서 마르바가 극적 반전을 거쳐 신데렐라가 되는 것은 외모라는 기준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린 (집단적) 정열의 힘이다. 비록 그 정열을 끌어낸 것은 요행의 여신에게 도움을 받은 방송 제작자의 연출 능력이었지만. 그리고 톱스타(쿨한 용어로는 ‘디바’라고 한다지?) 데비가 다 떨어진 인생의 해고 노동자 윌리에게 끌리는 것은 지적 능력(의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직업의 위세)이라는 기준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버린 (개인적) 정열의 힘이다. 정열은, 적절한 오리엔테이션을 거치면, 기존 가치체계의 경직성을 눅여주는 약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열은, 제어되지 않을 때, 최악의 중우(衆愚)정치를 풀무질하는 검은손이 될 수도 있다. 2. 속된 말로 ‘뜨기’ 전의 연예인들이 매니저나 방송사 프로듀서에게 성을 ‘상납’한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영화를 보니, 우리 사회만이 아니라 벨기에에도 그런 관행(이나 적어도 그런 관행에 대한 소문)이 있는 모양이다. 마르바는 옷을 벗으라는 데비의 매니저 마이클의 요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이성과 잠자리를 할 때 뭔가 역겨움이, 자기 혐오감이 치밀어 오르지 않을까? 자신이 윤리적으로 글러먹었다는 느낌말고, 미적으로 어긋나 있다는 느낌 말이다. 3. 대중매체가 관리하는 현대에는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유명하다는 것은 돈을 쉽게 버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 가운데 하나라면, 그것을 아주 틀린 생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것은 possible의 영역이지, probable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곧잘 대중의 누선(淚腺)을 건드려야 하고, 대중의 누선을 건드리려면 뭔가 이색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별난 빛깔’은 브라운관이라는 세트 안에서 세심하게 연출돼야 한다. 마르바를 한순간에 스타로 만든 것은 그녀를 향한 헌신적 부정이 브라운관을 매개로 사람들의 누선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데비의 음반 판매량에 가속이 붙은 것은 그녀의 피랍이 텔레비전 뉴스를 탔기 때문이다. 이 사건들은 둘 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대니얼 부어스틴이 얘기한 바 ‘가짜 사건’이다. 3.1. 가짜 사건이 완전한 무(無)에서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도 최소한의 질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질료가 자극적일수록 사건의 창조가 손쉬워진다. , , 같은 앨범을 통해 컨트리뮤직의 신화를 만들고 있는 루이지애나 출신의 여가수 메리 고셔의 경우도, 브라운관 앞 대중의 누선을 자극할 만한 동성애, 가출, 알코올중독, 마약복용, 복역 등 성장기의 극적인 질료를 갖추지 않았다면, 오늘날 그녀에게 비쳐지는 스포트라이트가 이토록 집중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불우’라는 상징재를 보유한 그녀의 영광이 동성애나 사회적 부적응에 대한 체제의 관용을 조금도 늘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것들은 단지 현재의 밝음을 더 찬란하게 만드는 과거의 어둠으로, 일종의 데커레이션으로 소비될 뿐이다. 메리 고셔의 양지가 따스할수록, 동성애자와 사회 부적응자의 음지는 더 춥다. 그런 사회적 소수파에게 우리의 메리가 건네는 연대의 진정성은 이런 콘트라스트를 더 두드러지게 만들 뿐이다. 4. 한 유럽 저널리스트는 중국이나 일본에 견주어 한국이 유럽인들에게 어떤 정형화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많은 동아시아인들에게는 아마 벨기에가 그럴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분해돼버리듯, 동아시아인들에게 벨기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사이에서 분해돼버린다. 영화 속의 도시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플랑드르의 한두 도시는 내게 비교적 익숙하다. 그곳에 가고 싶다. 안트워프의 중앙역에서 스헬데강까지를 햇살 속에서 느릿느릿 걷고 싶다.고종석/ 소설가·<한국일보> 논설위원 aromachi@hk.co.kr

제5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1]

단편영화의 꿈을 이루어 드립니다! 한국코닥주식회사와 <씨네21>이 공동 주관한 ‘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제도’가 올해 다섯 번째 지원작들을 발표했다. 선정작은 정서경 감독의 <전기공들>, 홍두현 감독의 <신도시인>, 조미정 감독의 <승부리 사건파일>이다. 올해 응모작은 모두 95편으로 지난해 81편보다 조금 늘었다. 이 가운데 8편이 본심에 올랐다. 당선작 3편 이외에 <엄마, 아름다운 5월>(서원태), <먼곳>(신상순), <별주부전>(조상범), <웃음을 참으면서>(김윤성), <발기부전을 위한 비디오>(신철호)가 막판까지 각축을 벌였다. 올해 심사위원은 오기민(마술피리 대표), 박찬욱(영화감독), 정성일(영화평론가), 김봉석(영화평론가)이 맡았다. 당선작 3편에는 한국코닥이 35mm 필름 1만자(시가 650만원 상당)를 제공하고, 이 필름의 무료 현상 및 인화를 영화진흥위원회, 서울현상소, 세방현상주식회사, 헐리우드 영상제작기술에서 돕는다. 또 한국코닥과 무비캄, 신영필름이 35mm카메라 장비 대여, 고임표 편집실과 박곡지 편집실에서도 편집 작업료를, 형보제작소와 무비라인, 와이드비전에서는 편집된 작품의 텔레시네 작업료를 할인해주는 등 혜택도 준다. 완성된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의 우선 심사 대상으로 선정된다. 심사평 새롭게, 독특하게, 또는 탄탄하게 시나리오와 기획안만으로, 앞으로 만들어질 단편영화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시나리오는 기초공사일 뿐이다. 그 틀 위에 수많은 기둥과 장식들이 덧붙여진다. 게다가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와 다르다. 시나리오가 아무리 튼튼해도, 관습적인 영역 안에서 맴돈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때로는 단 한줄의 대사나 지문에서, 그 영화의 전체 상이 맺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순간을 꿈꾸며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그런 순간에 동참하기 위해 95편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미리 아쉬운 점을 밝히면, ‘실험영화’가 없다는 것. 전체적으로 ‘세련됨’이나 ‘상업적’이란 단어를 너무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코닥 단편영화 지원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재능에 대한 지원이다. 아직 숙련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일은 심해의 보물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름의 기준과 지침으로 일단 8편을 골랐다. 시나리오를 각자 읽고, 크로스 체크를 하고, 의견이 엇갈릴 때에는 끝까지 토론을 했다. 하나의 소재나 주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파고들거나, 독특한 영상감각의 단초를 드러내거나 혹은 포트폴리오의 장점이 확연한 감독의 작품을 골랐다. 8편이 뽑히기까지의 과정도, 거기서 면접을 거쳐 다시 3편을 선정할 때도 만장일치였다. 독특한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웃음을 참으면서>(김윤성), 청소년의 성에 얽힌 기발한 발상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발기부전을 위한 비디오>(신철호), 떠들썩한 축제의 현장이 떠오르는 <별주부전>(조상범), 휴가 나온 신병과 엄마의 정감어린 풍경이 담긴 <엄마… 아름다운 5월>(서원태), 정지된 사진에 얹힌 분열된 가족의 자화상이 이채로운 <먼 곳>(신상순), 도시인의 이기주의를 비판하면서 소리에 대한 자의식이 뛰어난 <신도시인>(홍두현), 농촌의 한가로우면서도 익살스러운 정경이 탄탄하게 짜여진 <승부리 사건파일>(조미정),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몽상적인 장면이 이어지는 <전기공들>(정서경). 이 8편의 작품 중에서 <신도시인> <승부리 사건파일> <전기공들>을 골랐다. 어느 작품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이 작품들의 장점이 두드러진 탓이다. 자신이 찍을 영화에 대한 장악력,(<신도시인>), 능숙하면서도 관습적이지 않은 탄탄한 드라마트루기(<승부리 사건파일>), 시나리오부터 독특한 영상이 예감되는 상상력(<전기공들>) 등. 시나리오보다 영화가 더 기대되는 작품들이다.

고립된 인간모습서 웃음 끌어내 <묻지마 패밀리>

<묻지마 패밀리>는 세 신인감독 박광현, 박상원, 이현종씨의 단편들을 모은 옴니버스 코미디 영화다. 기획 및 전체 프로듀서를 장진 감독이 맡았다. 꼼꼼한 구성의 <내나이키>가 가장 눈에 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가 뻔질나게 텔레비전에 등장하던 80년대 초, 가난한 달동네 대가족의 소박한 꿈을 담았다. 중학생 명진은 개인택시 운전하는 게 꿈인 아버지와, 개인택시 운전사 사모님이 되는 게 꿈인 어머니와, ‘어여’ 죽는 게 소원인 할머니와, 1등 해보는 게 꿈인 큰 형과, 싸움 이겨보는 게 꿈인 작은 형과, 예뻐지는 게 꿈인 누나를 두고 있다. 13살 소년의 꿈은 반짝이는 나이키 운동화.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온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명진의 이야기는 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한 여관을 무대로, 각 방에서 펼쳐지는 인간군상들을 재기발랄하게 그린 <사방에적>은 영화 <포룸>의 설정을 연상시킨다. 배신한 애인을 불태워 죽이려는 남자, 불륜관계의 남녀, 조폭들을 죽이려는 킬러, 이들에 치이는 여관 종업원 등등의 코미디가 독특한 분위기다. <교회누나>는 마지막 반전은 좋지만, 결말까지가 좀 지루하다. 배우들의 신나는 놀음 한 판 같은 <묻지마 패밀리>는 은근히 보는 이들의 기분까지 흥겹게 만든다.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출연한 배우들은 ‘막가는’ 역할들을 마다않는다. ‘자기들끼리의 잔치’라 볼 수도 있고, 사회성이 쑥 빠져버린 코미디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립된 개인들이나 소통 불가능한 인간들의 희극은 그 자체가 현실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기에 영화가 만드는 웃음은 허탈하지 않다. 김영희 기자

엄마 잔소리도 없고..축구 닮은 경기에..동심 `들썩`

성인들까지 관객으로 아우르는 대작 애니메이션의 본격적인 여름싸움이 시작되기 전, 어린이들을 주요타깃으로 한 두편의 애니메이션이 각각 1주일 간격으로 개봉한다. 서너살짜리 꼬마들부터 초등학교 저학년이 특히 좋아할 만한 영화들이다. 먼저 오는 31일 월드컵 개막과 함께 개봉할 <스페릭스>는 국제축구연맹이 기획과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작품. 텔레비전 시리즈물로 일찌감치 꼬마들과 ‘눈도장’을 찍었던 2002 월드컵 마스코트인 아토 등이 등장한다. 빛과 행복의 존재 아트모스족과 어둠과 비참함의 존재 널모스족은 스페릭볼이라는 경기를 통해 매해 경쟁을 벌인다. 극장용은 전설적인 양팀의 선수였던 아토와 로스가 각각 어린 선수들의 코치가 되어 벌이는 한판 승부의 내용을 담았다. 결승전 한 게임이 내용이기 때문에 스토리가 단순하고, 주요 캐릭터들 이외는 컴퓨터 그래픽의 수준도 떨어져 어른들에겐 성이 안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익숙한 게임과 축구를 결합한 듯한 스페릭볼의 경기규칙이나, 널모스팀 캐릭터들의 화려하면서도 묘한 색감 등은 일반 시사회장의 꼬마 관객들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수다스럽게 스페릭볼을 중계하는 프렌과 지이의 목소리는 인기 개그맨 강성범, 심현섭씨가 각각 맡았다. 내달 6일 개봉하는 <지미 뉴트론>은 감독 존 데이비스를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려놓았던 작품이다. 지미는 스스로 로켓을 만들고, 껌을 이용한 자동차를 만드는 '천재소년'이지만, 완벽한 발명엔 번번히 실패한다. 어느날 지미가 토스터기로 만든 외계인 통신기를 통해 지구의 존재를 알게 된 ‘달걀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무서운 신 풀트라에게 바칠 제물로 마을의 어른들을 몽땅 끌고가 버린다. <지미 뉴트론>은 이야기의 반전이나 복잡한 캐릭터를 애니메이션에서 즐기는 관객들의 기대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빨 닦아주는 기계, 신발끈 묶어주는 로봇, 이불 개주는 로봇… 이렇게 어린이들이 꿈꿀 만한 모든 것을 거침없이 묘사하는 전반부는 신이 난다. 배가 터지도록 솜사탕을 먹어도, 샤워하면서 오줌을 싸도 잔소리하는 부모가 없다는 사실에 처음엔 아이들은 좋아 펄펄 뛸 정도다. 이내 부모들을 그리워하게 된 아이들이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우주선으로 개조해 떠난다는 설정도 재미있다. 김영희 기자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