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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기획] 틀을 벗어난 작품에 찬사를,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린영화제 하면 으레 정치적이란 딱지가 붙지만 올해만큼 정치 이슈가 들끓었던 적도 드물다. 우선 영화제 시작 전부터 극우 정당 AfD(독일을 위한 대안) 의원들의 초대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최근 독일의 극우당 지지율이 20%로 오르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주말마다 거리로 나서 극우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영화제측은 결국 AfD 의원들을 초대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락지었다. 2월24일 시상식에서는 팔레스타인에 연대한다는 발언,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수상자 가운데엔 서슴없이 “독일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중단하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게다가 시상식 후 베를린영화제 공식 인스타그램 채널엔 반유대적인 포스팅이 올라왔다. 급기야 베를린영화제측은 공식 입장이 아니라 해킹당한 것이라는 해명 글까지 내놓았다. 장르를 넘어 독특한 세계를 펼치다 1980년대 아일랜드 막달레나 수녀원의 인권침해를 다룬 개막작 <스몰 싱스 라이크 디즈>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영화제 초반은 순항했다. 그러나 중반쯤부터 예년의 수준에 못 미치는 영화들이 많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일간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는 “칸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와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한탄했다.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몇개의 하이라이트 작품은 경쟁부문이 아닌 다른 부문에 숨겨져 있었다”고 평했다. 하지만 개성이 강한 영화들이 없진 않았다. 경쟁부문엔 환경, 여성주의, 노인문제, 이주, 동물, 인권, 식민지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장르, 즉 다큐멘터리, 코미디, 역사, 멜로드라마, SF, 심리 공포 영화까지 포진해 있었다. 수상작은 여느 때와 같이 예상을 빗나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낮은 평점을 받거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영화들이 수상한 것이다. 심사위원단은 기존 틀을 벗어나는 실험적 영화들에 손을 들어줬다. 경쟁부문 영화들에겐 약간의 공통점이 존재했다. 빙의와 화신 기법으로 환기를 불러일으킨 영화들이 눈에 띄었고 황금곰상을 받은 <다호메이>도 그런 유의 영화였다. 다호메이(1797~1858)는 현 베냉에 존재했던 왕조의 이름이다. 영화는 26점의 문화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행과 학생들의 토론 등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부분은 쇳소리가 섞인 무시무시한 목소리 사운드를 입혀 식민지 약탈 예술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뒷부분은 반환된 유물을 맞이하는 베냉 대학생들의 열띤 토론이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한다. 영화 산업지 <스크린>은 “식민주의로 인한 피해 복구는 약탈된 유물 몇점을 돌려받는 것처럼 간단치 않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썼다. 감독상을 수상한 <페페>도 독특한 다큐멘터리영화다. 죽은 하마 페페의 굵고 갈라지는 이상한 목소리가 극을 끌고 간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에 살던 하마가 어떻게 콜롬비아까지 와서 군집을 이루고 살다가 사살당하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럼에도 분위기는 밝고 코믹적인 요소를 갖췄다. 독일 일간 <타츠>는 “<페페>는 하마의 일대기와 삶과 죽음의 철학적 질문 사이를 오가며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고 평했다. 프랑스산 SF영화 <디 엠파이어>에서도 빙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한 외계인과 악한 외계인이 작은 마을 사람들에게 빙의해 대결하는 해프닝은 비현실적이고 부조리해서 저절로 코믹적 요소가 갖춰진다. 기발하고 기존의 영화문법을 훌쩍 뛰어넘어 황당무계하기까지 하다. 외계 우주선은 바로크 시대 유럽의 대성당 모습을 갖추고 바흐를 변형한 음악과 안무도 영화의 독특한 미학에 한몫한다. 평단의 호불호가 극히 갈렸으며 낮은 평점을 받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심사위원상을 거머쥐었다. 죽음과 삶에 대한 시선으로 또한 이번 영화제엔 죽음을 다룬 영화가 많았다. 특히 죽음뿐 아니라 노인문제까지 다룬 독일영화 <다잉>, 이란영화 <마이 페이버릿 케이크>는 영화제 내내 높은 별점을 받으며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다잉>은 뿔뿔이 흩어져 화합 불가능한 독일 가족 이야기를 세 사람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세 시간 러닝타임에 텔레비전 미니시리즈처럼 다양하고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다잉>은 삶, 죽음, 중독,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일 소도시에서 치매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아버지, 중병을 앓는 어머니, 베를린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하고 있는 아들, 알코올중독에 빠진 딸. 이 네명을 주인공으로 각 챕터에서 이들의 시각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제 기간 동안 높은 별점으로 금곰상 후보에 올랐었으며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스크린>은 “매티아스 글래스너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이다. 영화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처럼 느껴진다”고 썼다. <마이 페이버릿 케이크>를 연출한 이란의 영화감독 마리암 모그하담, 베타쉬 사나에하 감독은 이란 당국의 출국 금지로 인해 영화제에 불참했고 도리어 이 소식으로 인해 관심을 모았다. 영화는 오랜 싱글 생활을 청산하고 파트너를 찾아나서는 70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가벼운 코미디물이다. 노년이 겪는 외로움을 벗어나 공감과 기쁨을 찾는 순간을 유머로 풀어냈다. 배경이 이란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일거수일투족이 아슬아슬하게 그려진다. 영화산업지 <스크린>은 “이 영화는 삶과 죽음의 기쁨과 부조리함을 재치와 유머로 포착한다”고 표했다. 나치에 저항운동을 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룬 <프롬 힐데, 위드 러브>도 영화제 내내 수상작 후보로 거론됐지만 최종적으로는 수상에 실패했다. 영화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열정으로 빛나는 여름날의 기억과 출산 뒤 사형수로 살아가는 임산부의 어두운 현실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감옥에서 출산과 육아를 하는 힐데에게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이 하루하루 버팀목이 되었다고 영화는 역설한다. <할리우드 리포트>는 “안드레아스 드레젠 감독은 힐데의 삶의 빛과 어둠의 균형을 맞춤으로써 공포 가운데서도 희망과 인간성을 찾아낸다”고 썼다. 각본상을 수상한 <더 데빌스 배스>도 자살과 죽음을 다룬 개성 강한 영화다. 1750년 오스트리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갓 시집 온 아그네스는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적응하지 못해 깊은 우울에 빠지고 결국 신경쇠약증에 걸린다. 괴로워하는 아그네스가 목이 잘린 시신을 옆에 두고 넋 놓고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어린이를 살해한 뒤 고해성사를 하기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신념 때문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고 한다. 당시 자살이 구원될 수 없는 죄악으로 여겨졌기에, 죽고 싶어도 자살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어린이 살해를 마지막 방책으로 택했다는 사실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잘 나타내는 것이다. 이국적 분위기의 향연 여성 해방을 주제로 한 영화 중엔 네팔영화 <샴발라>가 주목할 만하다. 아름다운 미장센과 이국적인 풍습, 일처다부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수작이다. 주인공 페마가 길을 떠나 어려움을 겪으며 변화하는 로드무비이자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페마는 임신한 몸임에도 오해로 인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 떠나고 그 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을 깨닫는다. 베를린 방송인 <에르베베>는 “<샴발라>는 불교와 삶에 대한 불교적 시각을 보여준다. 기억에 오래 남을 이미지와 함께 연기도 좋고 연출도 훌륭한 영화”라고 호평했다. 경쟁부문 밖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영화는 파노라마 부문의 <노 아더 랜드>다. 가장 시의적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뤘고,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영화에선 웨스트뱅크 남쪽의 마을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쫓겨나는 상황이 담겨 있다. 시상식에 오른 바셀 아드라 감독은 “가자 지역에서 수십만명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이렇게 있는 상황이 괴롭다”고 전했다. 세계의 거울과 창이 되어줬던 황금곰 파티가 끝났다. 베를린영화제의 5년 임기를 마친 공동 집행위원장 카를로 카트리안과 마리에테 리센벡은 박수를 받으며 떠났다. 내년엔 후임 집행위원장 트리시아 터틀이 영화예술부문과 조직부 모두 떠안아야 한다. 현재 독일 언론에선 영화제 이후 시상식 때 발언과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반유대주의 구호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 상황은 어떻게 수습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어떤 상흔도 없길 바란다.

[인터뷰] 영화사 안의 고고학적 레퍼런스를 담으려 했다, <키메라>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

“두 세계, 나는 그 어느 하나의 세계에서 왔다.” 지금 자신의 영화 세계를 이루는 원천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은 가장 좋아한다는 크리스티나 캄포의 시 첫 구절을 인용했다. 사실 그는 아주 여러 번 <키메라>를 만드는 동안 마음에 담아두었을 영감(靈感)을 기꺼이 인용하며 답을 이어갔다.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세계와 그렇지 못한 세계 사이를 명상으로 오가는 로르바케르 감독이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 말과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캐내기 위해 지나치게 사소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뒤로하고 많은 질문을 건넸다. -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과 시골 풍경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당신이 젊은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가끔 잊게 만든다. 영화감독으로서의 당신을 만든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들려달라. = 나는 토스카나 지방의 시골 언덕배기에 있는 외딴집에서 자랐다. 매일 아침,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떠오르면 동쪽을 향해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내 방으로 햇살이 들이쳤다. 가깝게는 양봉업을 하던 우리 가족의 생활을 관찰하고, 멀게는 산과 들판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금 내가 가진 고유한 시선을 만들어낸 것이 있다면 유년 시절을 보낸 우리 집 창밖으로 보았던 지평선이 펼쳐진 풍경이다. 어머니는 이탈리아가 고향이지만 아버지는 독일인인데, 우리 가족이 다문화가정이라는 점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고향과 대상을 친밀하면서 동시에 생경하고 이질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내 영화 작업에서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 <더 원더스>는 때 묻지 않은 시골에 텔레비전 매체가 침범하고 <행복한 라짜로>의 성자는 자본주의에 희생된다. <키메라>는 낭만과 세속, 자연과 기계의 대비를 강조한다. 순수와 신비가 문명과 자본의 발달로 퇴화한다고 믿고 있나. = 이 영화에 담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바로 물질주의의 도래다. <키메라>는 고대 에트루리아 무덤을 훼손할 자격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감히 믿는 어느 세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집가에게 팔아넘길 목적으로 황금이나 화병, 물그릇을 찾아내는 도굴꾼 무리가 그 중심에 있다. 신성한 가치는 소멸하고 유물은 그저 팔리기 위한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한때를 이 영화를 통해 돌아보려 했다. 그 과정에서 물질주의의 승리, 이윤추구라는 명목하에 자행된 자연 파괴나 소비 중심주의 사회의 추태가 영화 장면으로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속적 세상에서는 모두가 불경해진다. - <키메라>에서는 모든 것이 혼재돼 양면성을 띤다. 고대 에트루리아 벽화와 현대 사진술, 지상과 명부는 물론, 스파르타코(알바 로르바케르)의 이름과 역할의 성별이나 젊은 남신(男神)을 떠올리게 하는 이탈리아(카롤 두아르트)의 중성적인 외모도 그렇다. 그중 베니아미나(일레 야라 비아넬로)는 아리아드네와 페르세포네를 뒤섞은 듯한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 <키메라>에서는 지상과 지하, 산 자와 망자의 관계성이 서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화에 실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는데 아리아드네를 참조했기 때문은 아니고, 단순히 아르투(조시 오코너)와 베니아미나의 인연을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요소가 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떨어져 있으면서도 이어져 있는 두 인물의 이야기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염두에 두고 썼다. 베니아미나는 주로 집안의 막내에게 붙이는 이름인데, 인물을 설정하고 이름을 정하면서 성별에 무게를 두기보다 숨겨진 이야기가 이름을 통해 전달되었으면 했다. 영화 바깥에 존재하는 캐릭터의 삶을 궁금하게 만드는 인물의 이름 또한 땅속에 파묻힌 보물이나 마찬가지다. - 영화의 화법이 전작에 비해 화려해졌다. 화면의 대범한 상하 전환도 그렇지만 빨리 감기와 슬로모션의 적절한 배치에서 옛 영화의 향수가 느껴진다. = 아무래도 유물의 흔적을 따라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적 어감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사적 레퍼런스를 찾아 담으려 했다. 영화사의 단면을 드러내는 다양한 매체와 다른 영화는 물론이고 영화의 기원으로 회귀하는 장치와 미장센을 활용했다. - 유물과 벽화의 시점이 드러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 우리는 무언가를 보는 주체이자 대상이기도 하다. 고대 유물에 머물렀던 사람의 시선은 자연과 사물에서 순환하여 다시 사람을 바라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로마>(1972)에도 도굴되는 순간에 빛을 잃는 벽화와 비슷한 장면이 있지만 더 깊이 있게 접근하고 싶었다. 본래의 색채가 사라진 벽화 이야기는 원래 수많은 고고학자와 도굴꾼이 전한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이다. - 전작을 예로 들면 이탈리아영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탈리아인의 정서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키메라>에서는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유머 감각이나 수어에 가까운 이탈리아인의 몸짓을 전면에 드러낸다. = 이 영화가 굉장히 극적인 서사를 담고 있어서이기 때문이다. 여러 주제를 담고 있지만 아르투와 베니아미나의 관계 측면에서 <키메라>는 분명히 상실과 이별에 관한 영화였고, 그래서 최대한 가볍게 그리려고 했다. 영화가 아르투의 모험과 여정을 따르는 것도 동일하게 극적인 것을 가볍게 가져가려는 의도에서 나온 산물이다. - 이탈리아를 시녀처럼 부리는 플로라 부인(이사벨라 로셀리니)과 딸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대화의 사소함, 은근한 배려와 험담, 재잘대는 대사의 박자 때문에 여신들의 대화 장면처럼 느껴진다. 연출에 어떻게 공을 들였는지. = 플로라 부인의 딸들이자 베니아미나의 언니들은 막냇동생의 요람을 둘러싼 다소 무례한 요정과 같은 인물들로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 자매는 끊임없이 입을 모아 떠들어댄다. 이들은 절대 베니아미나의 부재를 대신할 수 없는 존재다. 언급된 장면은 대사가 과할 정도로 넘쳐 언어가 더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게 되어 결국 귀를 닫고 눈으로 듣게 되는 지점이라 생각했다. 대사를 통한 언어와의 접촉보다도 배우의 몸짓이나 시선과 같은 언어 이외의 요소에 집중하게 될 정도로 많은 대화가 오가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 여신상을 발견한 뒤 영국인과 이탈리아인이 보이는 행동의 대비가 강렬하다. 특히 유물을 해체해서 옮기는 도굴꾼의 모습을 살인 장면처럼 연출했다. = 우리에게는 놀랍지만 도굴꾼에게는 일반적인 행위다. 도굴꾼은 대체로 커다란 예술품을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부숴서 조각으로 해체한다. 불법 경로로 약탈하거나 도굴한 유물이 조각난 상태로 발견되는 일은 아주 흔하다. 여성의 신체를 향해 수세기 넘게 자행됐던 폭력을 여신상을 빌려와 표현하려 했다. 온전한 유물을 훼손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모독이다. - 피에트로 마르첼로, 프란체스코 문치, 사베리오 코스탄초 등 이탈리아 감독과 작품으로 교감하며 영향을 주고받는지 궁금하다. 동세대 자국의 영화감독들과 어떻게 교류하고 있나. = 요나스 카르피냐노와 아주 각별하게 지낸다. 꾸준히 서로의 작품을 보고 감상과 소재를 공유하면서 조언을 주고받고 있다. 문치, 마르첼로와는 다큐멘터리 <내일>(2021)을 함께 연출하기도 했고, 코스탄초와 알레산드로 코모딘 역시 내게 소중한 친구다. <키메라>의 트리트먼트를 쓸 때 마르첼로에게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았고, 코스탄초는 각본을 제일 먼저 읽고서 감상을 전해주었다.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일은 중요하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형태와 유형의 영화가 존속해나갈 수 있도록 영화 작업을 이어가는 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자 함께 노력하고 있다. - 아이들은 어딘가에서 솟아난 존재 같고, 어른들은 소유자가 없는 땅 위에 공동체 이루어 삶을 꾸린다. 사랑의 가능성도 <키메라>에서 엿보인다. 차기작은 어떤 영화가 될까. = 이탈로 칼비노의 <이탈리아 동화집>을 영화화하는 식의 아이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영화의 각본을 집필 중이다. 현재로선 자세히 말할 순 없어도 다음 작품도 희망이라곤 없지만 생동감과 기쁨이 넘치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런던] 스크린 역사의 한 부분, 경매 통해 ‘오만과 편견’ ‘에버 애프터’ 등 영화·드라마 의상 팔려

의 1995년 TV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피츠윌리엄 다아시로 분한 콜린 퍼스가 입었던 ‘젖은 셔츠’가 지난 3월5일 런던에서 열린 경매에서 구매자의 프리미엄 5천파운드를 포함한 2만5천파운드(약 4250만원)에 낙찰됐다. 옥션측은 셔츠의 경매자에게 당시 퍼스가 셔츠와 함께 신었던 부츠와 사인도 함께 전달할 거라고 밝혔다. 이 셔츠는 영국의 한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나 아직 장소와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진 바는 없다. 사실 이 셔츠는 퍼스가 촬영 중 입었던 세장의 셔츠 중 하나다. 첫 번째 셔츠는 이미 자선 경매로 낙찰됐으며, 나머지 두장은 <전망 좋은 방>으로 오스카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한 디자이너 존 브라이트가 1965년 설립한 의상실 ‘코스프롭’이 소유하고 있었다. 코스프롭은 마지막으로 남은 한장은 자신들의 자료 보관소에 보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콜리 퍼스의 ‘젖은 셔츠’는 그가 호수에서 수영하고 나와 들판을 거닐 때 입었던 것으로, 당시 이 장면이 전파를 타자 시청자들로부터 유례없는 호응을 얻었다. 드라마 <오만과 편견>의 의상디자이너였던 디나 콜린은 “이 장면은 대본에는 없었던 것”으로 “당시 남성의 나체를 TV에 내보낼 수 없던 방송법 때문에 급히 만들어진 장면”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텔레비전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자 고전 배우인 퍼스의 평판을 ‘섹스 심벌’로 변화시킨 최고의 순간”이라 평하기도 했다. 이 장면은 이후 넷플릭스의 인기 시리즈 <브리저튼>에서 조너선 베일리가 호수에서 나올 때 재현된 바 있으며,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퍼스는 다시 한번 미스터 다아시로 분하기도 했다. 코스프롭과 경매 업체 케리테일러옥션이 공동 주최한 이번 경매에 소개된 의상들은 모두 코스프롭이 소유하고 있던 것으로, 여기에는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중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의상들이 포함됐다. 코스프롭측은 이 의상들이 400여년 이상의 패션사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퍼스의 셔츠 외에도 조니 뎁이 1999년 <슬리피 할로우>에서 입었던 의상은 2만4천파운드에, 드루 배리모어의 1998년작 <에버 애프터> 의상은 1만6천파운드에 팔렸다. <에비타>의 의상과 소품도 큰 인기를 얻었는데, 마돈나가 입었던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드레스와 주제곡 의 가 사 집 등도 인기리에 판매됐다. 그 밖에도 케이트 블란쳇, 줄리 앤드루스, 주드 로, 톰 하디, 에디 레드메인, 귀네스 팰트로, 주디 덴치, 레이프 파인스, 앨런 릭먼, 마르고 로비 및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입은 의상 등이 소개됐다. 케리 테일러측은 이번 경매에 대해 “전설적인 연기자들이 입었던 의상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낙찰자들에게는 스크린 역사의 한 부분을 소유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갖게 했다”고 평했다. 존 브라이트는 “나는 영화와 TV, 연극 의상 디자인에 평생을 보냈다. 예술과 창의성은 아이들을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 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의 나의 확고한 믿음”이라며, 이번 경매의 모든 수익금은 자신이 세운 자선단체인 ‘브라이트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의 플랫폼 전략, 유럽에 54개 패스트 채널 론칭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유럽에서 54개의 무료 광고 지원 스트리밍 텔레비전(패스트(FAST)) 채널을 론칭했다. 이 채널들은 LG 채널스, 삼성 TV 플러스, 티보+와 같은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니 원 포트폴리오의 일부다. 이 채널들은 코미디, 스릴러, 클래식, 리얼리티 쇼 등을 포함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북유럽 국가 등 다양한 유럽 지역 시장에 맞춰 다시 후반작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각 지역의 모국어로 방송될 예정이며 <사인펠드> <브레이킹 배드> <맨 인 블랙> 등 대부분 넷플릭스와 같은 유료 서비스에서 방영하는 콘텐츠들이다. <사인펠드>는 넷플릭스가 엄청난 비용을 들여 SVOD 판권을 가져온 바 있다. 소니픽처스엔터테인먼트의 유럽 내 패스트 채널 론칭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의 중요한 변화를 시사한다. 이는 파라마운트, 디즈니,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와 같은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을 개발하며 독자적인 콘텐츠 배포 전략을 펼치는 것과 대비되는 전략이다. 이들 기업은 각자의 플랫폼을 통해 직접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소니는 TV 제조사들이 제공하는 FAST 서비스와 파트너십을 선택했다. 이는 시장에서 TV 제조사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LG 채널스, 삼성 TV 플러스, 티보+와 같은 이러한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소니는 더 넓은 사용자 기반에 접근할 수 있고, 다양한 지역에서의 콘텐츠 소비 성향에 맞춰 서비스를 최적화할 수 있다. 패스트 서비스는 광고 지원 방식을 통해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기 때문에 케이블TV나 구독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용자층을 포착할 잠재력을 가진다. 라이브러리 콘텐츠는 유료 플랫폼에서 점점 접근성이 떨어지지만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특히 경제적 여건, 지역적 제한, 또는 기술적 장벽으로 인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옵션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용자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결국 소니의 전략은 TV 제조사들이 미디어 콘텐츠 배포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니의 패스트 채널 론칭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향방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며 다양한 콘텐츠 제공자들과 플랫폼 운영자들 사이의 경쟁 및 협력 관계를 재편할 가능성이 크다.

엇갈리는 할리우드 신작들

<동조자>에 이어 박찬욱 감독의 또 다른 할리우드 시리즈가 나온다. 라이언스게이트 텔레비전이 <올드보이>를 영어로 각색한 TV시리즈를 제작 중으로, 2013년 개봉한 영화 <올드보이>(감독 스파이크 리)에 이은 두 번째 할리우드 리메이크다. 부사장 겸 기획개발 책임자인 스콧 허스트에 따르면 “<올드보이>를 고전의 반열에 올린 원초적 감정과 아이코닉한 격투 장면, 박찬욱 감독의 원초적인 표현 스타일을 그대로 선보일” 예정이다. <플라워 킬링 문>으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고배를 마신 82살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두개의 차기작 소식으로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다. 우선 전설적인 가수 프랭크 시내트라의 사생활을 파고드는 전기영화는 스코세이지의 가장 재능 넘치는 후계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주인공으로 초대했다. 이어서 엔도 슈사쿠의 소설 <예수의 생애>를 원작으로 한 영화도 제작 중이다. 펀딩에 나선 스코세이지 감독은 <사일런스>에서 주연한 앤드루 가필드의 출연도 확정했다. 촬영은 올해 말에 이스라엘, 이집트 등지에서 시작된다. 한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10번째 장편영화이자 은퇴작으로 발표했던 <더 무비 크리틱> 제작을 돌연 취소했다. 미국 매체 <데드라인>에 따르면 사유는 감독의 단순한 변심이다. 1977년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포르노 잡지에 신랄한 영화 리뷰를 썼던 한 실존 평론가를 브래드 피트가 연기할 작품으로 알려졌다. 성공한 영화광의 추억 속에 있던 숨겨진 평론가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기회를 막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헤이트풀8>도 제작 보류를 알린 뒤 한 차례 번복 후 작업에 착수한 이력이 있는 만큼 아직 <더 무비 크리틱>이 완전히 증발했다고 단정내리기는 어렵다.

액션과 친숙함의 힘, 마동석에 관한 해외 평단의 평가

제69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산행> 선정, 제72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악인전> 선정,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부문 <범죄도시4> 선정,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서 강한 펀치를 구사하는 히어로 길가메시 역할까지 마동석은 해외 평단에 꾸준히 얼굴을 알려왔다. 국내 범주를 넘어 해외로까지 발을 뻗은 그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자기만의 확고한 캐릭터를 구축한 마동석을 두고 언급되는 흥미로운 글로벌 평가를 모았다. 제69회 칸영화제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의 “역대 최고의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이었다는 극찬을 받은 <부산행>은 가족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하고 자상하지만 그를 위협하는 이들에겐 망설이지 않고 공격하는 윤상화 역을 마동석에게 부여함으로써 도구 없이 맨손으로 좀비를 제압하는 캐릭터를 완성했다.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는 “<부산행>의 주요 인물들이 한정된 공간 안에서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청소년, 임신부)을 데리고 긴장감을 높이려면 좀비들과 비등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에 윤상화의 강력한 펀치와 맨손 싸움은 극적 몰입도를 높이고 이야기의 개연성을 부여한다. 마동석의 공격력은 <부산행>의 탄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일조했다”고 평했다. 이어 <할리우드 리포터>에서는 “좀비영화의 흥미 포인트는 누가 좀비에게 먹힐 것인지 가늠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강력한 사람이 좀비에게 당할 때 예상치 못한 절망과 앞으로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관객을 이야기 안으로 바짝 끌어당길 수 있다. 마동석은 <부산행> 전반과 후반에 낙차를 만드는 유일한 배우다”라고 언급하며 마동석의 극적 필요성을 짚어냈다. 제72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으로 상영된 <악인전>은 해외 평단에서 마동석을 독보적인 주연배우로 인식한 작품이다. 영국 영화 매거진 <리틀 화이트 라이즈>는 “<악인전>은 스타일리시하고 끊임없는 자극을 주지만 그 과정에 주연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이 영화가 마동석의 영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전 <부산행>에서 해외 관객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피력했다면 <악인전>에서는 마동석이 자기 자신을 최대로 활용한 연기를 보여줬다. 시소 위에 탄 듯 긴장감 넘치는 감정 연기는 물론 큰 신체를 십분 활용한 액션까지 눈에 띈다.” (영화평론가 마이클 리더) 이어 영화 전문지 <엠파이어>가 <악인전>을 두고 “박세승 촬영감독의 깔끔하고 생동감 넘치는 촬영 감각으로 시각적으로 스타일리시하다. 스토리상의 깊이가 부족한 점을 영화 전반의 세련된 스타일, 마동석의 섬세한 액션, 듀오간의 합이 보완한다. 이 작품으로 명확해졌다. 마동석은 스타다”라고 전한 말을 통해 해외 평단에 안정적으로 안착한 마동석의 입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터널스>의 로튼 토마토 지수는 전문 평론가 기준 47%, 실관람객 기준 77%에 달한다. 최고 평론가들의 평가로 압축하면 신선도 36%까지 떨어진다. 다소 아쉬운 평가가 이어진 <이터널스>에서는 마동석을 향한 다양한 평가가 이어진다. 먼저 미국 대중문화 평가지 <폭스10>은 “<이터널스>의 약점 중 하나는 마동석을 잘 활용하지 못한 데에 있다. 몇몇 전투 신은 무중력 CGI로 전개되며 다소 가볍게 보여진다. 싸움꾼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길가메시가 화려한 전투를 보이지 못한 것에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로 인한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며 예리한 분석을 남기기도 했다. 상반된 의견도 있다. 미국 은 <이터널스>를 두고 “초능력을 지닌 각각의 인물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관계성과 협치의 재미를 보여준다. 마동석이 맡은 길가메시가 초강력 펀치를 날릴 때 테나(앤젤리나 졸리)는 무기를 소환해 빈구석을 정확하게 겨냥한다. 치유력을 가진 아작(살마 아예크)까지 안정적인 조화를 이루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고 언급했다. 다른 배역들과 마동석의 균형과 화합이 눈에 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로 선정된 <범죄도시4>의 해외 반응은 호의적이다. 먼저 미국 대중문화 매거진 <버라이어티>는 전편과 다른 <범죄도시4>의 마동석 활용법을 주목했다. “<범죄도시4>는 불필요한 장면을 최소화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동석이 대처해야 할 것들을 빠르게 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지루해 보이는 구간을 짧게 덜어내고 마동석의 타격 높은 맨손 액션을 화려한 스텝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영화다.” 영국의 영화 매거진 <스크린 데일리>는 <범죄도시4>의 안정적인 구성과 기획을 짚어냈다. “전작에서 유려하게 펼쳐냈던 코미디와 액션의 조화는 이번 편에서도 마동석의 연기를 타고 돛단배처럼 안정적으로 순항한다. 이번 작품의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는 것도 마석도 고유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해서다. 시즌을 거듭하는 친숙한 캐릭터는 관객이 낯선 인물과 친해지는 과정을 짧게 축약시킨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갖는다. <부산행>에서 획기적인 액션 연기를 선보인 후, <범죄도시> 시리즈는 마동석의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매력을 적극적으로 십분 활용했다. 찌푸린 얼굴과 거대한 주먹, 마동석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스크린 페르소나인 마석도가 빛을 발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보인다.”

[정준희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일상의 바깥, 일상 안의 틈새

우리 일상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장치는 ‘주기성’이다. 아침 해가 뜬다. 일어난다. 양치질을 한다. 옷을 차려입는다. 지하철을 탄다. 책상에 앉는다. 점심을 먹는다. 다시 책상에 앉는다. 지하철을 탄다. 저녁을 먹는다. 텔레비전을 틀거나 휴대폰 혹은 태블릿을 연다. 졸음이 쏟아진다. 양치질을 한다. 침대에 눕는다. 다음날 아침에도 다시 또 해가 뜰거라 믿으며, 잠 속에 빠져든다. 특정 시간대에 비슷한 모양으로 반복되는 이런 일상은 지겹고 따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을 준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주기적이지 않은 것들은 대체로 비일상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주기성을 깨는 활동이나 사건은 주로 대단히 비극적인 경우가 많은데, 어떤 것들은 종종 유쾌함을 주기도 한다. 일상이 멈춰 선 그곳에 아주 가끔 시쳇말로 ‘깜놀할’ 즐거움이 끼어들 때도 있기는 하나, 대개의 유쾌함이란, 마치 오랫동안 기획하고 준비했던 여행처럼 일상의 주기성을 의도적으로 파괴한 결과로서 얻어진다. 아주 가끔 찾아오는 (또는 목적의식적으로 준비한) 비일상적 유쾌함을 기약하며, 반복되는 일상의 고통과 지겨움을 이겨내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혹은 지루하고 덤덤하게 회전하는 일상이 쌓이고 쌓인 덕분에 소중한 즐거움이 얻어질 수 있는 거라며 감사해하는 이도 있을 테다. 내 경우엔 그런 반복 자체를 기꺼워하는 편이 다. 월화수목금토 각각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일요일은 그런 일들을 위해 따로 떼어둔 일종의 여분(스페어)이자 완충판으로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일상처럼 주기적으로 반복되지만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다르다. 아니 달리하려 노력한다. 대단한 비일상을 기획하고 준비하기에 마땅치 않은 삶을 살다 보니 스스로 만들어낸 자디잔 파격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른 이들보다 덜 고통스럽고 덜 무료하면서 원하기만 한다면 나름의 주관으로 재구성해낼 수 있는 종류의 주기적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맞다. 내가 잘해내서라기보단 그나마 그럴 수 있는 조건 덕분이라고 말하는 게 아무 래도 옳은 것 같다. 약간 먼 길을 오가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한 심리학자의 행복론을 들었는데, 이런 나의 대처에 나름의 이론적 토대와 실증적 근거가 있었던가 보다. 아주 가끔 주어지는 높은 강도의 비일상적 즐거움에 의존하기보다, 주기적 일상 속에 숨어 있는 낮은 강도의 충족을 찾아 이름표를 붙여두고 그것을 기억하여 반복하는게 행복(감)의 총량을 높이는 더 낫고 현명한 길이라고 한다. 마침 그날은 피하고 싶은 의무를 행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그 길 끝에는 도무지 유쾌하달수 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돌아올 때쯤이면 그래도 의무라는 이름의 달력 한장을 뜯어낼 수 있었을 테다. 오가는 길의 산이 싱그럽고, 하늘은 파랬다. 비가 왔다 해도 그건 또 그대로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피플] '가필드 더 무비' 배우 이장우, 유머의 달인처럼

주황빛 털에 커다란 입, 뛰어난 먹성과 나른한 성격을 지닌 가필드는 세계에서 유명한 고양이 중 하나다.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을 지닌 능구렁이 같은 가필드가 18년 만에 <가필드 더 무비>로 돌아왔다. 집 밖을 나서기 극도로 싫어하는 고양이 가필드의 모험기에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팜유 라인’으로 인기를 끈 배우 이장우가 한국어 목소리를 녹음했다. 라사냐 하나에도 금세 행복해지는 가필드에게서 삶의 행복을 발견했다는 이장우 배우를 만나 <가필드 더 무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그간 드라마와 뮤지컬을 오가며 연기 활동을 했지만 애니메이션 더빙은 처음이다. = 쉽지 않았다. 증폭된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캐릭터의 감정을 전달하는 주말드라마와 비교할때 더빙은 다른 차원의 기술이었다. 평소 상대 방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장면도 더빙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한다. 특히 애니메이션 더빙은 조금이라도 극 중 캐릭터와 감정적인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모든 것이 어색해진 다. 여태 쌓아온 연기의 노하우를 버리고 처음 부터 다시 배워야 한 시간이었다. - 원작에서는 배우 크리스 프랫이 호탕하고 걸쭉한 목소리로 능청스러운 가필드를 연기했다. 본인이 연기한 가필드는 어떤 매력이 있나. = 처음 녹음을 할 때 크리스 프랫의 가필드를 염두에 두고 낮은 저음으로 능청스러움을 연기했다. 첫 녹음본을 듣자마자 충격을 받았다. 목소 리와 영상이 아예 따로 놀더라. 걸쭉하고 낮은 목소리로 가필드를 표현하는 것이 한국어 더빙 에선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원작의 크리스 프랫과 달리 톤을 한층 더 올려서 쾌활한 나만의 가필드를 만들었다. 나의 가필드는 에너지가 넘친다. 악의가 하나도 없는 무해한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 연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최대한 마음속의 부정적인 감정을 덜어내려고 노력했다. - <가필드 더 무비>엔 가필드가 노래 부르는 장면도 등장한다. 뮤지컬 <레베카>에 출연할 정도로 뛰어난 가창력을 발휘할 기회였을 것 같다. = 가필드가 부르는 노래는 우유 농장의 CM송이 다. 왕년에 농장의 마스코트였던 황소 오토 앞에서 주제가를 부르는 장면이다. 처음에는 부끄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쭈뼛쭈뼛 흥얼거리다 자기 흥에 못 이겨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끝이 난다. 나 역시 흥하면 빠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온 가족이 노래를 좋아했다. 노래방에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나 할머니도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 했다. (웃음) 가필드가 노래하는 장면에 함께 빠져들어 신나게 연기했다. - 영화 속 가필드의 능청스러운 모습과 <나 혼자 산다>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닮았다는 반응이 많다. 본인이 느끼기에 어떤 점이 가필드와 유사한가. = 내겐 더 큰 행복을 꿈꾸며 계속 미루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가필드도 항상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는 캐릭터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밤에 야식을 먹는 등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산다. 그런 점에서 가필드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 원작 만화처럼 <가필드 더 무비>도 미국식 유머가 돋보인다. 한국 관객들에게 미국식 유머를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그게 가장 어려웠다. 미국식 유머를 한국어로 번역해 놓았을 때 아예 맥락이 달라져버려 특유의 맛이 안 살더라. PD님이 최대한 미국식 유머를 빼고 한국인들이라면 알 법한 유머 코드를 채워넣는 데 주력했다. 그런 장면들은 녹음 과정에서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도 영화가 개봉하면 바뀐 유머들이 잘 통할지 너무 궁금하다. 몰래 극장에 가서 객석에 앉아 웃어야 할 타이밍에 같이 웃어볼까 고민 중이다. - <가필드 더 무비>는 먹보라는 가필드의 특성에 맞춰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한다. 요리 실력으로 정평이 난 배우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음식이 있다면. = 라사냐를 꼽고 싶다. 전에도 몇번 먹어봤지만 크게 인상에 남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필드 더무비>를 보면서 가필드가 라사냐를 맛있게 먹는 모습에 당장 요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 라. 레시피를 찾아보니 종류가 다양했다. 김치 찌개처럼 속 재료를 바꾸면 변형 레시피를 무한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라사냐는 집에 사람들이 놀러 올 때 크게 만들어서 나눠 먹기 좋은 음식이다. 다 같이 모여 좋은 시간을 보낼 때 나만의 레시피를 개발해 만들어볼 생각이다. - 반대로 가필드가 먹었으면 하는 음식도 있을까. = 가필드는 밤마다 냉장고를 들락날락거린다. 우리 집 냉동고에 만두가 정말 많다. 바로 튀겨 먹으면 야식으로 최고다. (웃음) 영화에 등장한다면 크기가 좀 컸으면 한다. 특히 여행 가서 먹은 음식 중에 호쇼르라는 몽골식 튀김만두가 있다. 양고기 베이스에 정말 크기가 크다. 가필 드가 입이 크니 입 안 가득 만두를 먹는다면 정말 귀여울 것 같다. - <가필드 더 무비>를 보면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 영화 속 가필드와 아버지의 관계를 굉장히 유쾌한 친구처럼 그려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를 보면서 이런 아빠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주변에도 아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동료들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주변에 추천하고 싶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모험을 떠나고 난관을 이겨내면서 끈끈한 우정을 다지는 관계가 그동안 부정을 다룬 영화들과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도 가족에 대한 갈망을 점점 크게 느끼고 있다. 가필드와 존과 오디 그리고 빅 사이의 관계를 보면서 맛난 음식을 먹으며 일상을 보내는 삶이 부러워졌다.

[칸 개막 레포트] 개막작 '더 세컨드 액트' 리뷰, 형식을 깨부순 도발적 실험이 돋보인다

데이비드(루이 카렐)가 친구 윌리(라피엘 퀴나르)와 걸어가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내용인즉 자신의 애인인 플로렌스(레아 세두)에게 도무지 매력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플로렌스는 데이비드에게 자신의 아버지 기욤(뱅상 랭동)과 인사를 나눌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부녀와 딸의 남자 친구, 남자 친구의 친구가 조우하는 상황이 <더 세컨드 액트>에서 펼쳐진다. ‘제2막’이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인물, 배경 설명과 같은 도입부 없이 ‘더 세컨드 액트’라는 레스토랑에 곧장 인물들을 불러모은다. 때문에 이 네 사람이 실은 배우이며 앞서 말한 줄거리가 극 중에서 촬영 중인 영화의 설정이란 사실은 불시의 순간 갑작스레 밝혀진다. 미장아 빔(mise en abyme)이라는 형식 안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는 시도는 이미 익숙하다. 다만 <더 세컨드 액트>에선 배우의 발화를 통해 카메라의 존재를 지속적으로 인지시키면서도 외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가령 배우들이 계획되지 않은 대사, 행동을 할지라도 ‘컷’을 외치는 목소리가 없다. 배우들은 각자의 개인사를 자유자재로 촬영 현장에 끌어들이고 이과정은 중계되듯 롱테이크로 보여진다. 이들의 폭주에 제재를 거는 것도 배우 자신이다. 이들은 자정작용을 하듯 현재 촬영 중임을 고한 뒤다시 데이비드와 윌리, 플로렌스, 기욤으로 분해 극을 이끈다. 이 기묘한 넘나듦이 독특한 유머를 발생시키는 틈새가 된다. 캉탱 뒤피외 감독은 <믿거나 말거나, 진짜야> <디어 스킨> 등 이전 연출작에서 여러 장르적 특색을 섞는 실험을 시행해온 창작자다. <더 세컨드 액트>에선 영화, 영화 제작 과정, 나아가 연기까지 메타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의도가 두드러진다. 실제 각본은 정교하게 구성됐을지 모르나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시간과 장소, 갈등과 같은 기본적인 조건만 갖춰놓고 그 안에서 배우들이 주체적으로 극을 꾸려가는 상태를 지켜보는 모양새가 됐다. 당연하게 혹은 신성하게 여겨졌던 영화의 수많은 요소가 이 과정에서 풍자의 대상으로 변모한다. 제4의 벽도 쉽게 허물어진다. 주연배우들이 돌발 행동을 할때 엑스트라들은 “이것도 영화의 일부야?”라며 조심스레 질문한다. 끝과 시작, 의도와 비의 도, 현실과 가상… 모든 게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작동하는 세계. 그 와중에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는다. 제77회 칸영화제 개막작이 상영될 때 극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기욤이 “더이상 이 이상한 영화 못 찍겠다”며 탈주하거나 윌리가 개인적인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역설하는 순간마다 관객들의 폭소가 터져나왔다. 하나 윌리의 일부 발언에는 혐오 표현이 담겨 있다. 풍자가 목적이었더라도 소재를 택하고 그것을 전복하는 상황의 묘사는 더 섬세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해외평도 다소 갈리는 추세다. 실험적 시도와 아이디어 자체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영화를 더 세밀하게 다듬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프랑스 매체는 대체로 우호적이다. <프리미어>는 “배우들의 케이오 승리를 인정한다”며 이들의 연기력에 찬사를 보냈고 프랑스 주간지인 <텔레마라>는 “이상적이고 흥미진진한 개막작”이라고 평했다. 굴곡진 지점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목표한 형식적 실험에 충실한 작품임을 증명하면서 <더 세컨드 액트>는 칸영화제의 문을 열었다.

[리뷰]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도파민의 시대에 생의 의욕을 집요하게 고양하는 아드레날린 시네마

전력망 붕괴, 폭염과 팬데믹, 화폐 가치의 하락….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인류를 위협하는 대혼란은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된다는 스크린 밖 진리를 강조하며 영화 속으로 뛰어든다. 모든 자원이 품귀한 파멸의 시대, 영화의 작중 배경은 문명 붕괴 후 45년으로부터 출발한다. 대지의 풍요가 가득한 녹색의 땅에 살던 소녀 퓨리오사(애니아 테일러조이/알릴라 브라운)는 바이커 군단에 납치된다. 퓨리오사의 어머니 메리 조 바사(찰리 프레이저)는 맹렬한 집념으로 바이커 군단을 추격하지만 끝내 딸의 눈앞에서 디멘투스(크리스 헴스워스)에게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그날 이후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에게 ‘리틀 디멘투스’라 불리며 그와 바이커 군단이 벌이는 흉포한 약탈과 폭력에 내내 노출된다. 바이커 군단은 가스타운을 정복하기 위해 임모탄 조(러치 험)가 압제하는 시타델에 쳐들어가고, 민족간 혈맹을 이유로 퓨리오사를 임모탄 조의 신부로 넘긴다. 퓨리오사는 임모탄 조의 신부들이 처한 유린을 목도한 후 ‘화물꾼 소년’으로 둔갑해 유능한 정비공으로 살아간다. 한편 시타델의 근위대장 잭(톰 버크)은 조수로 일하는 퓨리오사의 전사로서의 자질과 복수심을 간파한다. 잭은 퓨리오사에게 시타델로부터 벗어날 힘을 가르쳐주겠다 약조하고 둘은 황무지의 전사로서 무공을 쌓는다. 세월이 흘러도 황무지의 무법자로 군림하는 디멘투스가 무기농장을 점령하려 하자, 퓨리오사와 잭은 디멘투스와 바이커 군단을 처단하려 나선다. 그리고 퓨리오사의 심중엔, 디멘투스를 향한 원한이 여전히 불타고 있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후속작이 9년 만에 세상에 공개됐다. 제목에 쓰인 사가(saga)가 말해주듯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매드맥스> 연작을 영웅소설 혹은 대하소설로 만들려는 조지 밀러 감독의 야심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영화는 의수를 단 사령관 퓨리오사가 어떻게 전사가 되었는지 고전소설 속 영웅의 일대기 구조를 차용해 148분간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놓는다. 전사(前事)의 여백을 두고도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입증했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내러티브에 만족했던 관객이라면 프리퀄의 스토리텔링이 다소 생경하거나 불만일 수 있다. 외전의 특성상 설명이 불가피한 서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조지 밀러 감독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러닝타임 중 애니아 테일러조이의 대사는 30줄 정도에 불과하다”(<텔레그래프>)라고 밝혀 화제를 모은 인터뷰를 떠올리지 않아도, 영화는 대사 대신 프레임으로 언어 이상의 감동을 전하며 전작의 매력을 계승한다. 퓨리오사의 머리카락이 절벽 끝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숏으로 시간의 경과를 표현한다든지 관객이 가장 궁금해할 법한 퓨리오사의 전사를 단 한숏으로 드러내는 순간이 유독 그렇다. 고강한 액션 역시 막강한 활력을 자랑한다. 특히 퓨리오사의 액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은신과 등반 위주의 동작에서 카 체이싱과 격투로 나아가는데, 매 액션 시퀀스마다 퓨리오사만의 액션이 지닌 이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살아 있다. 유토피아가 사라진 시대에 어떤 가치가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지에 관한 조지 밀러의 날카로운 통찰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CLOSE-UP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서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는 ‘눈’이다. 퓨리오사에게 고통을 선사한 숙적인 동시에 퓨리오사의 자질을 발견해낸 멘토인 디멘투스는 퓨리오사가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을 직시하도록 강요하다가도 다른 경우엔 눈을 감아도 좋다고 말한다. 작품 속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는 망원경과 조준경에 눈을 대고 적들을 응시한다. 와중에 가장 형형한 눈빛은 역시 퓨리오사를 연기한 애니아 테일러조이로부터 나온다. CHECK THIS MOVIE <드레스메이커> 감독 조슬린 무어하우스, 2015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호주 출신 감독 조지 밀러와 호주 출신 배우 크리스 헴스워스가 의기투합해 만든 영화다. 호주 출신 영화인들이 사막에 대해 지닌 은근한 애향심은 말해 입 아프다. <드레스메이커>는 호주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조슬린 무어하우스 감독이 만든 패션영화다. 크리스 헴스워스의 동생으로도 알려져 있는 배우 리암 헴스워스가 호주 사막에서 남성미를 과시하며, 영국에서 장시간 거주한 애니아 테일러조이보다 훨씬 긴 세월 영국에서 자라고 활동한 케이트 윈슬럿이 퓨리오사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