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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정준희의 클로징] 미디어와 대중(2) - 그들은 정말로 대중적 취향이 뭔지 알고 있을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실로 명언에 가깝다고 늘 생각하는 속담이다. 한길이 평균적인 사람 키에 해당하니 열길이면 15m가 넘는 깊이다. 아무리 맑은 물이라 해도 그 정도 깊이면 그냥 수면 위에서 들여다본다고 알 수는 없다. 물 안으로 들어가보거나 그 물길을 수십년은 노 저어 본 경험이 있어야 알 법하다. 쉽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 속은 더 어렵다. 자연과학이 알아내고자 하는 게 ‘열길 물속’이라면 ‘한길 사람 속’은 심리학의 몫이다. 심리학은 한편으로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의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문학적 통찰에 의지한다. 사회과학이 그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인지 대체로 심리학은 사회과학에 속하는 걸로 간주된다. 최근 뇌과학이 거두고 있는 엄청난 성과에서 보듯 사회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의 저울추는 인문학적 통찰보다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훨씬 더 기울어 있다. ‘열길 물속’을 알아내는 수단에 의존하여 ‘한길 사람 속’도 알아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 열렸으니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일도 한결 수월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정말 그럴까? 넷플릭스가 텔레비전과 극장을 동시에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무렵, 넷플릭스가 확보한 ‘빅데이터’가 사람들의 취향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해줄 것이며 결국 제작 방식에도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다. 넷플릭스 기술로 사람들의 뇌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연결된 전세계 수억명의 이용자들이 토해내는 무시무시한 양의 ‘행동 데이터’가 그들의 마음속을 투명하게 비춰줄 것이다. 그렇게 알게 된 비법이 제작에 투입되면 마침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연금술이 완성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넷플릭스가 극장과 텔레비전을 모두 위기에 빠뜨린 건 맞지만 이들의 연금술이 최적의 제작 비법과 제작물로 이어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소위 빅테크 기업이 부리는 마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다수 대중을 매료시키는 제작자로서 살아보지도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대중의 취향을 콕 짚어낼 수 있는 미디어 연금술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대중을 ‘중2’ 취급하는 게 정답이라던 과거의 텔레비전 제작자도, 취향을 알고리즘화하는 게 비법이라고 주장하는 빅테크 미디어 기업도, 실은 ‘사람 속’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많은 대중을 자기의 앞에 모아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앞에 모였던 건 기가 막히게 재밌어서라기보다는 그게 편리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일단 편리해지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그 안에서 재미를 찾는 게 대중이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콘텐츠의 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건 미디어 창구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특집] <씨네21>이 기록한 한국영화 1995년~1999년

1995년 <씨네21>이란 제호는 독자가 보낸 1만2103통의 제호들 가운데 선택됐다(후보 중엔 <영상21> <필름> <시네컴> <시네마한겨레> 등이 있었다). <씨네21>은 “영화와 영화관을 뜻하는 ‘씨네’와 21세기를 뜻하는 ‘21’을 합성한 것”으로, “영화를 중심으로 텔레비전, CF, 만화 등영상문화 전체를 다루지만 영화가 주된 관심사”라는 매체의 방향성이 반영됐다. “우리는<씨네21>이라는 제호가 장차 영화로부터 뻗어나가고 또 영화로 수렴되는 모든 문화를 축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제호가, 누구든 영화에 관한 정보나 비평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기를 기대한다." <씨네21>은 창간을 기념해 영상산업에 종사하는 100인을 상대로 ‘한국 영상문화를 움직이는 인물들에 대한 의견 조사’를 실시해 ‘전문가 100명이 선정한 영상인 베스트 50인’을 선정했다. 신철 신씨네 대표, 심재명 명기획 대표, 김종학 프로듀서 등 제작자 외에도 강우석·임권택·장선우 감독 등 연출자, 강수연·안성기·채시라 등의 배우, 김수현 작가(<미워도 다시 한번> <배반의 장미>), 송지나 작가(<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등 다양한 인물들이 ‘베스트 50인’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가 트란 안 훙의 <씨클로> 제작 현장 방문기를 보내왔다. ‘베트남의 3륜 자전거’ 혹은 ‘자전거 운전자’를 의미하는 <씨클로>는 1년간의 로케이션 조율 끝에 베트남 현지에서 촬영됐으며 주인공 소년을 범죄의 세계로 인도하는 시인 역은 양조위가 맡았다. 양조위는 이 작품을 위해 베트남어와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문화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언어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회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사회적 교훈이 될 것”이라 말한 토니 레인즈의 말을 증명하듯 <씨클로>는 제5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페미니스트 22인에게 1994년 3월부터 1995년 3월까지 방영된 드라마 속 여성과 남성 중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 싫어하는 캐릭터를 물었다. 90년대 들어 드라마 속 여성들이 다양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로는 일은 명확하게 해내면서도 “사랑 앞에서만큼은 숙맥이 되어버리는” <종합병원>의 이정화(신은경)가 꼽혔고, 가장 싫어하는 여성 캐릭터로는 사랑보다 복수에만 집착한 <아들의 여자>의 김채원(채시라), 가부장제 속 전형적인 주부 캐릭터인 <이 여자가 사는 법>의 유순애(이효춘)가 꼽혔다. 가장 좋아하는 남자 캐릭터는 사회정의를 실현했던 <모래시계>의 강우석(박상원), 가장 싫어하는 남자 캐릭터는 <이 여자가 사는 법>에서 외도를 합리화한 진이중(유인촌)이 선정됐다. 1996년 “영화판에 막 발을 들여놓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두 신예 감독의 단편영화가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 아우가 만든 <2001 이매진>은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에, 형님이 만든 <지리멸렬>은 샌디에이고국제영화제에 출품됐다. 인터뷰 당시 형님은 박종원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아우는 영상원 기술조교로 일하며 내공을 쌓고 있었다. 여기서 형님은 봉준호, 아우는 장준환 감독이다. <플란다스의 개>와 <지구를 지켜라!>가 세상에 공개되기 전인 20세기 말, <씨네21>은 이들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봤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씨네21>은 국내 최초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와 시작을 함께했다. 개막 전 총 7주에 걸쳐 연속 기획 ‘Go! 부산국제영화제’ 섹션을 만들어 영화제의 준비 상황과 상영작 프리뷰 기사를 다루었고,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발간 중이던 일간지 문화를 표방해 ‘씨네21PIFF- CINE21 PIFF SPECIAL’이라는 이름의 데일리를 총 9호 발행했다. 96년 당시 잡지에서 발견한 속단 하나. “국내 최초의, ‘유일한 영화제가 될’ 부산영화제.”(<씨네21> 제63호) 아아, 96년 <씨네21> 편집실의 선배님들 들리십니까? 미래에서 전합니다. 이후에 전주와 부천에서도 국제영화제가 생긴답니다. 1997년 한국 멜로영화의 새 지평을 열어젖힌 작품. 당대 가장 ‘트렌디’한 사랑 이야기. ‘영화’ 배우 전도연의 시작이자 제작사 명필름의 첫 멜로영화. <접속> 촬영 현장을 <씨네21>이 찾았다. “PC통신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80년대에는 정치적 공간에서 집단의 소통이 중요했다면 90년대는 개인의 소통이 화두였다. 컴퓨터는 좋은 소통 매체라고 생각했다.” 이 기사를 스마트폰이나 e북 리더기로 열람하는 독자들에게 장윤현 감독의 말은 어떻게 읽힐까.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를 거친 ‘신인감독’ 허진호의 장편 데뷔작이자, 당대 최고의 스타인 한석규, 심은하의 주연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 한국 멜로 역사에 전설로 기억되는 지금과 달리, 지면을 통해 드러나는 당시의 촬영 현장은 모든 면에서 풋풋하기만 하다. 군산 신창동 공터에 지은 초원사진관 세트가 너무 진짜 같아 동네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오기도 했다고. 1999년 서울 관객 100만명을 신의 경지라고 부르던 1999년, <쉬리>가 개봉 32일째에 서울 143만, 전국 320만 관객을 동원했다. 경이로운 기록에 <씨네21>은 <쉬리>를 하나의 사회현상이라 보고 신드롬 분석 특집기사를 썼다. 단체관람을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영화에 등장한 핸드폰과 음료가 특수효과를 누린다는 취재 내용에서 당시의 들뜬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작품 내부로도 깊숙이 들어갔다. 한국에서 재현한 할리우드의 스펙터클을 강점으로 꼽으면서도 이데올로기적 한계를 지적하는 평자들의 양쪽 의견을 다양하게 전하며 담론의 장을 형성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 <접속>의 전도연, <비트>의 고소영. <씨네21>은 멜로영화의 흥행을 주도하던 세 여성배우에게 ‘20세기 충무로 여배우 트로이카’라 이름 붙이며 그들의 매력을 분석하는 특집을 진행했다. 심은하가 “희로애락의 정형화된 연기를 벗어나 나른함과 쓸쓸함이 스민 일상적 심리의 미세한 결을 포착”할 줄 안다면 전도연은 “시나리오를 본능적으로 해석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가진 의외성의 인재”, 고소영은 “커다랗게 치켜뜬 눈, 좋고 싫음이 그대로 묻어날 것 같은 목소리, 탁월한 패션감각을 갖춘 과감한 스타”였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정성스러운 배우론을 읽다가도 자꾸만 이들의 싱그러운 얼굴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비평] 속도를 높이되 도착하지 말 것: <크래쉬>라는 반복의 무대, <크래쉬: 디렉터스 컷>

익히 알려져 있듯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크래쉬>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데이비드 크로넌버그는 인터뷰에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당시 코폴라가 강한 반감을 표했으며 직접 상패를 건네주는 것조차 거부했다고 회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1998년 국내에 검열본이 개봉했을 때 <크래쉬>의 홍보 팸플릿에는 코폴라의 평이 실려 있다. “<크래쉬>에 상을 주는 이유는 첫째, 대담하기 때문이고 둘째, 뻔뻔스럽기 때문이다.”(동숭씨네마텍 팸플릿) 코폴라의 사례가 보여주듯 <크래쉬>를 둘러싼 반응은 모순에 처해 있다. 영화의 인물들은 교통사고와 그로 인해 훼손된 신체를 페티시 삼고, 자동차가 으스러지는 순간에 절정에 달하려는 도착적인 행위를 반복적으로 추구한다. 그리고 <크래쉬>는 이 관능을 너무도 성공적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욕망과 ‘거의’ 일체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 관능에 몰입하는 것이 도덕적 거부감을 낳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동차와 충돌하는 순간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는 것처럼 <크래쉬>의 관능은 그것을 체험하는 일에 대한 반작용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크래쉬>는 충격적인 영화일 수 있지만, 동시에 충격을 무대화하는 퍼포먼스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 분열적 경험은 영화 보기라는 활동이 재현의 대상과 ‘결코’ 일치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누설한다. <크래쉬>는 단순히 욕망의 극단을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다. ‘쾌락의 극단을 향해 질주한다’는 식의 설명은 한없이 불충분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 자동차는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사물이 아니거니와 영화 또한 도달 가능한 욕망을 향해가는 모험의 여정이 아니다. <크래쉬>를 본다는 것은 대상과 ‘거의’ 일체화되려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음이라는, ‘거의’와 ‘결코’ 사이를 무한히 왕복하면서 지극히 강박적인 반복을 통해 도달 불가능한 관능으로 향하는 일이다. <크래쉬>에서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라기보다 인간의 신체와 더불어 움직이고 부딪히면서 끊임없이 변형되는 것이다. 광고 제작자 제임스 발라드(제임스 스페이더)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자동차를 향해 기계 이상의 애착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이 충돌한 차량의 동승자였던 헬렌(홀리 헌터)과 가까워지며 본(엘리어스 코티어스)을 알게 되고, 차체가 부서지고 파편이 날아가는 충격과 동시에 성적 에너지를 표출하려는 본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된다. 그들은 유명 스타의 자동차 사고를 재현하는 쇼를 벌이거나, 자동차 사고에 대한 경고가 담긴 교육용 비디오를 함께 시청하고, 사고 차량 안에서 섹스를 하며, 도로 위에서 서로를 들이받아 치명상을 입고 때로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여기서 인간(의 의지)과 기계는 서로의 신체를 망가뜨리거나 서로가 망가지는 과정에 개입함으로써 새롭게 합성된다. “크로넌버그의 영화에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는 것은 새로운 발명품이나 현상을 발표하고 전시하는 장면들이다.” (김병규, <씨네21> 1468호) 크로넌버그의 영화에 늘 발명품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본래의 일상적 용도에서 이탈하여 해부와 재구성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까 ‘발명’을 ‘외과수술의 흔적을 새긴 것’이라고 바꾸어 말해보면 어떨까. 신체를 절제하고 내부를 헤집는 외과수술은 오히려 신체를 훼손하는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상태다. 크로넌버그의 영화는 이러한 수술의 긴장을 화면에 도입하는 장소다. 물론 <크래쉬>에는 <네이키드 런치>의 타자기나 <미래의 범죄들>의 수술대, <엑시스턴스>의 게임 콘솔처럼 낯설거나 기괴한 형태의 기계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아니, 적어도 완성된 형태로 등장하지 않는다. 본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현대 기술에 의한 인간 신체의 재형성”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이 영화에서 기계는 인간의 신체와 자동차가 서로 결합하고 훼손하며 흉터를 새기는 과정에서 발명된다. 이것은 섹스와 거의 유사하다. 물론 자동차와 인간이 직접 성교를 나누는 <티탄>에 비하면 <크래쉬>가 자동차와 섹스를 접붙이는 방식은 생각보다 급진적이지 않다. <크래쉬>에서는 자동차와 인간의 일체화를 위해 섹스가 매개로 동원된다. 자동차와 인간의 신체가 결합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섹스는 아무리 해도 부족한 결핍의 상태로 제시된다. 영화의 오프닝은 세개의 섹스 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임스의 아내 캐서린(데버라 카라 웅거)은 비행기 격납고에서 파일럿과, 제임스는 촬영장에서 카메라걸과 섹스를 나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집 베란다에서 각자의 외도를 묘사하며 섹스를 한다. 캐서린이 제임스에게 묻는다. “그래서 느꼈어?” 제임스가 그러지 못했다고 말하자 캐서린은 답한다. “다음번엔 되겠지. 다음번엔….” 이 말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캐서린과 성교를 하며 제임스가 중얼거리는 대사이기도 하다. <크래쉬>는 “다음번엔 되겠지”라는 말을 끝에서 되갚아주는 구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앙갚음은 외도로 인한 복수심 같은 감정적 인과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에게 섹스는 둘 사이에 다른 이를 끌어들이는 행위일 뿐, 일체화되고자 하는 소망의 미끄러짐 속에서 섹스는 언제나 결코 완수될 수 없는 시행착오로 남는다. 크로넌버그의 초기 영화 <스테레오>에서도 일체화를 소망하는 실험체가 등장한다. 이들은 실험을 통해 말을 할 수 없는 대신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한계 없이 공유할 수 있게 되지만, 결국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만다. 흥미롭게도 <스테레오>는 대사가 없는 무성영화다. 이는 언어능력을 제거한 피험자들의 외상이 영화의 형식적 특징으로 전이된 듯한 인상을 준다. <크래쉬>에서도 인물들 사이에서 텔레파시와 유사한 정신적인 교통이 발생한다. 가령 제임스는 사고 후 “요즘 차가 더 막히나? 사고 있기 전보다 세배쯤 심한 것 같아”라고 말하고, 헬렌 또한 자동차가 10배는 많아진 것 같다고 느낀다. 자동차를 향한 소비 페티시즘, 물신화와 같은 산업의 징후를 적극적으로 내면화한 정신은 서로의 의식에 침투하며 경계를 허무는 조건이 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광고산업의 외상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제임스의 직업이 광고감독이라는 점, 그리고 그가 사고를 당한 순간에 광고 자료를 읽고 있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의미심장하다. 화면의 아름다움은 이 영화의 형식적 특징이자 페티시즘을 통해 일체화되고자 하는 강박이 전이된 표면이다. <미래의 범죄들>에서 팀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이 종양을 제거하는 퍼포먼스를 섹스로 받아들였던 것처럼, <크래쉬>의 형식은 보는 이로 하여금 거의 모든 장면을 섹슈얼하게 읽어내게끔 자극한다. 신음의 강도나 체위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물리적인 섹스가 아닌 장면도 지극히 섹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가령 가브리엘(로재나 아켓)이 쇼룸에 전시된 세단의 운전석에 탑승하려 시도하는 장면에서, 가브리엘이 다리에 착용한 보철기구에 카시트가 걸려 찢어지고 만다. 이 장면이 섹스처럼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제임스가 조수석에서 이 상황을 관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장면 바로 뒤에 제임스와 가브리엘이 차 안에서 실제 성교를 나누는 장면이 이어지지만, 이 행위는 쇼룸에서 일어난 일과 단절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가브리엘이 검정색 세단에 탑승하려 애쓰던 순간부터 섹스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는 두 사람의 성행위에 자동차를 끌어들이기 위한 영화의 편집술이다. <크래쉬>는 이런 식으로 결코 끝난 적 없는 하나의 섹스를 제시한다. 끝나지 않는 섹스는 노동과 다름없다. 다시 한번 주지하건대, 이 영화는 쾌감으로 질주하는 모험이 아니라 무한히 반복되는 재생산의 형벌에 가깝다. <크래쉬>에는 전율과 환희의 얼굴이 없다. 모든 것에 익숙해진 듯, 제임스는 사고를 당할 때조차 무감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이 텅 빈 얼굴에서 충돌과 쾌락의 교차를 읽기 위해서는 ‘쾌감의 극단이 고통’이라는 익숙한 도식을 넘어, 조금 다른 경로가 필요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화자는 사회와 적대한 채 끝없이 침잠하는 자가 도달한 자기 성찰을 고백한다. 그는 치통 속에도 쾌감이 있다는 비유를 드는데, 그 쾌감은 바로 신음 소리에서 표현된다. “이건 솔직한 신음이 아니라 적의에 찬 신음인데 (…) 이 신음 속에 고통스러워하는 자의 쾌감이 표현되거든.” 치통을 앓는 자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그로부터 쾌감을 느낀다. 고통에 쾌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음을 다른 이에게 들려주는 일에 쾌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쾌락은 통증을 신음으로 변형시켜 ‘쇼’의 현장으로 만드는 데서 온다. <크래쉬>의 쾌감은 죽음과 최대한 근접해지는 순간의 쾌감일 수도 있지만, 현실을 되풀이할 수 있는 ‘쇼’로 변형하는 데서 오는 적대적 즐거움일지도 모른다. 제임스는 처음 사고를 당한 뒤 교통사고에 대한 경고를 귀 아프게 듣다가 막상 당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이후 제임스는 안전벨트가 답답하다는 듯 거칠게 풀며 사고에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는 가상현실의 인물처럼 행동한다. 교통 시스템은 사고를 통제하려 하면서 필연적으로 사고를 재생산하는 현대적 죽음의 메커니즘이다. <크래쉬>의 인물들은 쇼를 통해 예기 불안을 현실화하고, 페티시즘의 함정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시스템의 역설을 내보이는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그들에게 도로는 주행이 내포하는 위험 요소들을 자발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쇼의 장소이며, ‘보여지기’의 욕망을 충족하는 무대다. 문제는 쇼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본은 캐서린과 제임스가 탄 차를 쫓다가 고가도로 아래로 추락해 최후를 맞는다. 이 사고가 그의 프로젝트였는지, 단순한 사고였는지는 알 수 없다. 쇼가 끝난 적 있던가? 본의 죽음은 극적인 계기가 되지 못하며, 쇼의 일부와 다음 사이를 채우고 있을 뿐이다. 다음 장면에서 제임스는 도로 위를 가로지르며 캐서린의 차를 추격하고 있다. 자동차는 끊임없이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충돌을 위한 거리를 벌기 위해 잠시 멀어지는 것뿐이다. 제임스의 자동차와 부딪힌 캐서린은 고가도로 아래로 추락한다. 제임스는 “다음번엔 되겠지”라고 중얼거리고, 캐서린은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지금 당장 이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눈물은 ‘다음번’이 수없이 반복된 미래에서 흘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로넌버그의 영화는 언제나 미래를 다룬다. 그 미래는 첨단이 아니라 현실의 가능한 조합들로 수술된 대안 세계이며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본 적 있는 미래가 다시 한번 상연된다.

[특집] 스타일의 핵심 - ‘영화 같은 시리즈’를 둘러싼 여러 전략들, 에 대한 4가지 FAQ

Q1. 는 어떻게 아성을 쌓았나. 응접실을 영화관으로 만들기. 홈 박스 오피스를 표방한 1972년 신생 케이블 네트워크 는 영화 방영 중 중간광고를 없애는 신의 한수를 택했다. 일리가 있다. 영화관엔 상영 전 광고만 있을 뿐 중간광고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약간의 구독료만 더하면 극장에서 금방 막을 내린 영화를 집에서 광고 없이 바로 볼 수 있는 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기엔 운도 따랐다. 마침 1970년대는 미국 내 케이블TV 수요의 폭발적 증대가 이루어진 시기였기 때문이다. 1974년 5만명에 불과하던 케이블TV 이용자는 1978년 150만명으로 급증했고, 는 1977년부터 흑자를 기록했다. 의 광고 배제 전략은 영화의 2차 배급을 넘어 ‘영화 같은 시리즈’를 만들어낼 때에도 변동 없이 적용됐다. 그래서 는 광고주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었고, 광고의 외압을 받지 않은 내실 있는 콘텐츠 제작에 오로지 집중할 수 있었다. 구독 기반의 채널이기 때문에 욕설이나 노출, 폭력 표현에 대한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규제로부터도 자유로웠다. 의 중간광고 배제 전략은 시청자들에게 프리미엄 콘텐츠를 집에서 편안히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과 작품에의 깊은 몰입 모두를 가능케 했다. 단연 TV채널이 접근성과 콘텐츠의 질 모두를 챙긴 사례로 불릴 만하다. 의 차별화 전술은 1990년대 후반 큰 빛을 본다. 전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오즈> <섹스 앤 더 시티> <소프라노스>가 각각 1997년, 1998년, 1999년 내리 공개된 것이다. 는 수위 높은 범죄물과 성에 대한 담론을 스크린이 아닌 브라운관으로 끌고 들어오며 참신함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해냈다. 는 콘텐츠를 공개하는 전략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는 자사의 OTT인 맥스를 유치 중인 지금도 여전히 대부분의 시리즈를 매주 한편씩 공개한다. 구독자의 지속적 ‘본방사수’를 유도하는 이 전략은 빈지워칭이 가져오는 피로를 방지하고 실시간 시청을 촉구하며 시청률 향상까지 도모한다. 구독자 보상 전략 또한 어느 플랫폼보다 가 앞섰다. 는 구독자 전용 전편 시사회 및 관객과의 대화, 제작진 인터뷰 등 고객이 독점으로 누릴 수 있는 이벤트를 일찍이 개최해왔다. 구독자간 자연발생적인 바이럴마케팅 효과와 높은 브랜드 충성도가 뒤이을 수밖에 없다. Q2. 는 어떤 기록을 세웠나. 는 위성방송의 새 역사를 썼다. 1970년대만 해도 중계탑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 다수의 케이블 채널이 이용 중인 마이크로파 네트워크는 겨울철에 유지 관리가 어렵다는 명백한 단점도 있었다. 뉴욕을 넘어 미국 전역에 서비스를 확장하고자 했던 는 1975년, ‘우주’에 활로를 뚫었다. 정지 궤도에 통신위성을 두고 미국 전역의 케이블 사업자들에게 직접 신호를 송출하는 방안을 고안한 것이다. 이는 방송 기술의 발전에도 중대한 분기점이 된 기술혁신이다. 그렇게 는 세계 최초로 통신위성을 활용한 텔레비전 네트워크가 되었다. 이외에도 는 다수의 ‘최초’ 타이틀을 보유 중이다. 는 미국 최초의 구독형 네트워크이고, 이들이 1983년 제작한 영화 <더 테리 폭스 스토리>는 케이블TV가 처음으로 제작한 영화다. 당연히 에미상, 골든글로브상, 피보디상에서 최초로 상을 받은 케이블TV 타이틀 또한 가 보유 중이다. 특히 <소프라노스> <왕좌의 게임> 등이 에미상을 싹쓸이한 경력 덕에, 는 아직도 매년 에미상 노미네이션 발표 이후 넷플릭스, 훌루 등의 ‘엄마 친구 아들’이 되어 노미네이션 개수를 비교당하기 일쑤다. Q3. HBO 맥스와 HBO의 차이는? 는 1972년 설립된 케이블방송 채널이다. 그리고 2020년 5월 의 오리지널 콘텐츠와 여타 채널의 콘텐츠까지 스트리밍서비스로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이 바로 HBO 맥스다. 의 모회사이자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사인 워너브러더스가 넷플릭스 주도의 글로벌 OTT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전한 것이다. 이어 2022년 워너브러더스와 다큐멘터리 전문 채널 <디스커버리>가 합병에 성공하여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라는 미디어 업계의 공룡이 등장했다. 커진 몸집에 맞춰 2023년 5월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는 당사의 대표적인 스트리밍 플랫폼 HBO 맥스와 디스커버리+(<디스커버리>의 스트리밍서비스)를 통합한 스트리밍서비스 맥스를 출범시켰다. 이름에서 HBO를 제외한 이유는 주로 성인 시청자층을 노렸던 HBO 맥스의 색깔을 다큐멘터리, 아동용 콘텐츠 등까지 포괄한 맥스의 전방위적 성격에 녹이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맥스의 출범과 함께 발표된 프로젝트는 바로 2026~27년 공개 예정된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제작이었다. 의 성인용 콘텐츠를 넘어 전세계 남녀노소 시청자를 모두 사로잡겠다는 맥스의 포부가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난 예시다. 물론 는 여전히 자사의 특성이 드러난 콘텐츠를 독자적으로 제작하며 균형을 지키려는 중이다. 정통의 레거시미디어 로 시작해 HBO 맥스로 스트리밍 시대에 적응한 뒤, 이 시대를 집어삼키려는 목적으로 나타난 맥스가 과연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Q4. 왜 한국에 HBO 맥스의 상륙이 어려운가. HBO 맥스는 2021년부터 한국 지사의 채용을 진행하는 등 본격적인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2022년 출범을 예고했지만, 2022년 상반기에 한국 진출을 포기했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가 2023년부터 HBO 맥스를 새로운 스트리밍 브랜드인 맥스에 통합하면서 HBO 맥스의 한국 진출이 좌초된 것이다. 대신 맥스는 자사 콘텐츠를 해외 플랫폼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공급하는 전략을 한동안 지속했다. 다만 이러한 전략은 국가별로 개별적인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진출 속도를 늦추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2024년 말 맥스는 일본과 뉴질랜드 등 7개 아시아 국가에 진출했고 “2025년에 호주, 한국, 동남아시아 등 시장에 출시”(<할리우드 리포터>)할 계획이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호주에서 맥스가 정식 출범한 것과 달리 한국은 3월부터 쿠팡플레이가 콘텐츠 협력 파트너십을 통해 와 맥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왜 한국엔 맥스가 직접 진출하지 않은 것일까. 이는 맥스가 광고 요금제 중심의 전략을 취하려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의 글로벌 스트리밍, 게임 CEO인 장 브리악 페레트는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광고 요금제(AD TIER) 시장의 활용이 가능한 시장을 찾고 있다”라는 전략적 방향성을 남겼다. 한국에선 넷플릭스와 티빙 등이 광고 요금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넷플릭스코리아는 최근 관련한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하는 팀을 신설하며 본격적인 광고 요금제 시장을 확장하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OTT 시청자의 광고 요금제 집중도 등 관련 연구와 정책은 미비한 상황이다. 결국 맥스의 전사적 전략에 따라 맥스가 한국 OTT 시장에 진출할 근거가 아직 미약한 셈이다. 하지만 맥스는 궁극적인 해외 진출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단언한 상태다. 맥스는 언제든 한국 시장으로의 진출 기회를 잡으려 할 것이다.

[임소연의 클로징] AI블루와 파면블루

지난 3월 말부터 SNS를 가득 채운 풍경이 있었다. 챗지피티가 만들어준 지브리 스타일의 사진들. 처음에는 누군가 올린 이미지를 보고 ‘오, 진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네’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런데 어느새 타임라인에 지브리풍 이미지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다들 즐거워 보였다. 그들은 지브리풍의 따뜻한 색감 속에서 사랑스러운 인물로 다시 태어난 자신을 대체로 마음에 들어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처럼,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한순간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되는 모습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네달 가깝게 이어진 현실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바라보는 지브리 세상은 유독 더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의문이었다. 도대체 왜? 왜 자기 사진을 AI에게 주고 바꿔 달라고 하고 그것을 SNS에 공유하는 것일까?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브리 스타일을 좋아하는 걸까? 그러다가 질문이 바뀌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른 이들의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가 SNS에 도배되는 모습을 보는 것조차 괴로웠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나는 남들이 AI에게 자신의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변환해 달라고 하는 걸 지켜보는 것조차 괴로울까? 나는 왜 새로운 AI 기능이나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감탄하고 놀라워하는 이들을 보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이 불편함은 사실 새롭지 않다. 한창 생성형 AI가 만든 젊은 여성 사진 이미지가 SNS를 뒤덮었을 때에도 그랬으니까. AI의 이미지 생성 기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하겠다는 목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젊은 여성의 얼굴과 몸 이미지를 만들고 온라인 공간에 전시하는 이들을 보는 일은 참 불쾌했다. 그들은 실제 여성을 촬영한 사진처럼 보이는 AI 이미지를 만들어놓고는 ‘불쾌한 계곡(언캐니 밸리)’을 극복했다며 “대유쾌”해했는데 그들이 유쾌해할수록, 그들이 찬사를 보낼수록, 나는 더 불쾌했다. 이후 딥페이크 성범죄가 그렇게 전국적인 규모로 벌어져 이 불쾌함의 실체를 확인하게 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지브리 밈’에 대한 나의 불편함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미 수년 전 AI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을 “삶에 대한 모독”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거나, 오픈AI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학습에 활용하면서 허가를 받거나 정당한 보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그런데 이게 다일 것 같지 않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가 SNS에 “우리 그래픽처리장치가 녹아내리고 있다”거나 “우리 팀이 자야 하니 이미지 생성을 좀 자제해 달라”라며 호들갑을 떨었다더니 지브리 밈이 퍼졌던 일주일 동안 챗지피티 유료 구독자 수가 450만명 증가했고 생성된 이미지만 7억개가 넘었다는 뉴스가 들린다. 다음은 뭘까, 과연 AI와 관련하여 흐뭇하고 기분 좋은 소식을 언젠가는 들을 수 있을까. 과학기술을 연구한다는 사람이 AI에 이렇게 우울한 소리만 하면 어쩌나 마음에 안 드실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개발자이자 테크-페미 활동가인 조경숙과 AI 연구자 한지윤이 함께 쓴 책 다. 부제는 ‘기술에 휩쓸린 시대를 살아가는 마음들’. 지난 몇달간 그리고 지금도 내란에 휩쓸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마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2025년 4월4일 오전 11시22분, 내란 수괴 대통령의 파면 선고에 기쁨도 잠시,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지 않고 불안한 이 상태를 ‘파면블루’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나는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 감정을 다스리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귀 기울이고 분석해야 한다.”

[인터뷰] 디아스포라 이미지-텔링, <트랙_잉> 조한나 감독

조한나 감독이 다른 3명의 감독과 공동 연출한 <트랙_잉>은 새로운 유형의 영화를 만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한국과 카자흐스탄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갖고 살아온 4명의 연출자가 모여 만든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독특한 방식으로 엮었다. “학교가 맺어준 인연으로 공동 작업을 하게 됐는데 20가지 넘는 기획이 꾸려지다가 자꾸만 엎어지는 과정을” 거친 감독들은 회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쇼츠 영상을 만들어내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아이디어가 인트로에서 머무르면서 작업이 진행되지 않자 서로의 아이디어를 교환했던 텔레그램 메시지, 번역기를 거치며 오갔던 텍스트들, 화상회의 앱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 등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조한나 감독은 두 나라의 서로 다른 기차의 이미지와 화면을 가득 메우면서 등장하는 텍스트 등으로 영화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데이터 조각들을 나누던 우리의 공간”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트랙_잉>만의 “UI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트랙_잉>은 전통적인 영화의 구성 요소로 이뤄진 작품이 아니어서 장르를 구분하거나 명명하는 것도 어렵다. 평론가들마다 저마다의 언어로 새로운 유형의 영화의 목도를 기록하는 중이다. 이 작품은 영화의 전통적인 프레임을 컴퓨터의 인터페이스처럼 활용한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충돌은 그 자체로 새로운 <트랙_잉>만의 프레임/공간을 형성한다. 영화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텍스트 중에서 86년 동안 달리는 기차를 설명하는 부분은 카자흐스탄이란 낯선 나라에 강제 이주한 사람들의 삶의 궤적으로 가리키기도 한다. 낯선 나라 의 기차를 타고 느낀 것은 “출발지는 있지만 내릴 곳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의 감각, 어쩌면 영원히 기차에서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이 감독에게 하나의 데이터가 되었다. 조한나 감독이 영화를 설명하면서 쓰는 어휘에서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영화는 “키워드를 생성하는 AI”를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AI가 인간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점점 AI를 따라하면서 살게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도 이번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다. 또한 영화의 프레임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텍스트는 AI를 거쳐서 만들어졌다. 한편의 영화에 공존하면 어색할 것 같은 요소들이 한데 모이는 것은 조한나 감독이 <퀸의 뜨개질>에서 보여준 표현 전략에 대한 고민과도 맥이 이어진다. 감독 자신의 정체성, 자아에 대한 고민을 매듭짓고 나아가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던 <뱃속이 무거워 꺼내야 했어> <퀸의 뜨개질>은 조한나 감독에게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세상을 다루기 전에 거쳐야 했던 작업”이었다. <트랙_잉>을 통해 공동의 협업까지 경험한 그는 최근에 4번째 작품을 완성했다. 자신의 고향 여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우리 단지>는 여수의 산업단지에서 일해온 근로자들의 삶과 유년 시절의 기억 등을 엮어 만들었다. 4월24일부터 시작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표적인 정례 전시인 <젊은 모색 2025>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인터뷰] 영화도 인생도, 소동의 반복 -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

호나스 트루에바는 텔레노벨라의 토양 위에서 누벨바그의 꿈을 꾸는가. 14년 연애 끝에 헤어지기로 한 커플이 ‘이별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반복되는 상황과 대화의 연속으로 풀어가는 스페인영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에릭 로메르풍 여름을 통과하는 예술가 커플 알레(잇사소 아라나)와 알렉스(비토 산스)의 눅진한 관계를 탐구한다. 영화사의 전통을 혼합하고 능동적 오마주를 구사하는 호나스 트루에바의 영화는 정체된 현대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균열을 내는 움직임이다. “헤어짐에도 의식이 필요하다”는 독특한 철학이 호나스 트루에바의 만화경을 만났을 때, 영화와 인생은 혼란스럽게 닮아가고 마침내 하나의 소동으로 수렴된다. - 오래된 커플이 이별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구상의 출발점을 소개해달라. 나의 아버지, 페르난도 트루에바는 실제로 내가 청소년이던 시절부터 “결혼식이 아니라 이별식이 필요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물론 당시에는 영화 아이디어라기보다 인생의 조언으로 들렸다. 그런데 그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영화의 전제로 싹트게 되었다. 할리우드의 고전 코미디들, 특히 1930~40년대 작품들엔 늘 신부의 아버지라는 인물들이 존재하지 않나. 내 아버지는 결국 영화에서도 알레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영화를 향한 사랑과 삶에 대한 태도,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가 시작됐다. - 배우 잇사소 아라나, 비토 산스와 <어거스트 버진> <와서 직접 봐봐> 등 여러 작품에서 협업했고 그들은 대부분 커플을 연기했다. 배우들이 각본에도 참여했는데 세 사람의 오랜 창의적 관계는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비토는 전통적인 매력을 가진, 유머 감각이 탁월한 배우이고 잇사소는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배우이다. 두 사람은 스페인에서 각자 극단을 운영하며 직접 글을 쓰고 연출도 한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이들과 일하는 걸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자기 역할을 넘어서 영화 전체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쌓여 내 영화에서 이미 여러 번 커플을 연기했기 때문에 이번 영화에선 그동안 쌓인 기억을 자연스럽게 가져오는 방식으로 작업한 점이 새로웠다. - 이별식을 공표하는 커플과 이를 접하는 주변인들의 대화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느슨한 패턴을 그린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키르케고르의 <반복>을 빌리자면, 반복은 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앞으로 향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형식미학을 넘어 인생에 관한 철학적 은유로 자리 잡는 반복에 대하여 당신이 탐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 역시 반복은 정체가 아니라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반복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인생 자체가 반복의 연속이니까. 우리는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고, 그렇기에 다시 새로움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는 반복을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예술이다. 샹탈 아케르만의 <잔느 딜망>, 해럴드 래미스의 <사랑의 블랙홀>, 오즈 야스지로와 존 포드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 감독인 알레와 배우인 알렉스가 편집 중인 영화의 장면이 곧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하나로 겹친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내러티브를 구체화한 과정을 들려준다면. 영화 속 영화를 집어넣겠다는 발상은 이후 두 배우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여기엔 약간 자조적인 관점이 담겨 있다. 직업전선에 있는 우리 세 사람에게 영화란 늘 멋진 게 아니다. 편집하며 겪는 좌절, 끊임없는 의심도 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속에서 알레가 편집하는 영화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가 겹치기 시작했다. 영화와 인생은 매우 닮아 있다. 이것은 그사이에서 느끼는 혼란을 가능한 한 충실히 담으려는 시도다. - 미학자 스탠리 카벨이 레오 매케리 감독의 <이혼 소동> 등 1930~40년대 할리우드 재혼 희극(remarriage comedies, 스크루볼코미디의 하위 장르)을 탐구한 저서 <행복의 추구>를 인용했다. 잉마르 베리만 감독과 배우 리브 울만의 관계, 프랑수아 트뤼포가 묻힌 파리 묘역 등도 주요 소재다. 현실 세계의 각주를 거침없이 활용하는 연출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우선 카벨은 내게 큰 영감을 주는 사상가다. <눈에 비치는 세계> <말들의 도시들>도 자주 읽는다. 그는 때론 철학보다 영화가 더 철학적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단순한 인용이 아닌 오마주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내 영화의 일부이다. 과거의 유산이 실제 내 창작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노출시키면서 관객과 나누고 싶다. 화면 속 배경이든, 등장인물의 대사든, 여러 요소로서 스크린 안에 함께 존재하게 만들려고 한다. - 카메라의 존재와 화면의 표층을 노골화했다. 분할화면, 디지털 줌인, 덜컹이고 삐걱대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식이다. 나는 영화의 어느 시점에 반드시 카메라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다. ‘나 여기 있어!’ 하는 과시적 양태가 아니라 흔들림 혹은 불완전함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 불완전성은 진정성과 연결된다. 관객에게 카메라 뒤에 있는 이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 더 가까워진다. 이런 연출이 지적인 유희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감각적인 차원에서 전달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 실재하는 장소성, 지역성을 살리고자 한 로케이션이 있다면. 주인공 커플의 집이 대표적이다. 마드리드 중심부, 라바피에스 지역의 오래된 아파트다. 오늘날 이 동네는 관광객을 위한 숙소가 대다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지역의 성격이 그대로 보존된 공간들이 있다. 우리는 아파트 한층에 두집으로 나뉜 공간을 다시 하나로 연결해 촬영했고, 계단과 가벽을 더해 고전 스크루볼코미디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물들이 문을 여닫으면서 소통하는 공간 구조를 만들었다. - 당신의 여름영화들은 느슨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어질 또 다른 연인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나는 늘 이전 영화가 다음 영화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전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들지만 결국엔 비슷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게 중요한 건 영화 한편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이어지는 여러 영화들을 통해 삶에 일관된 리듬을 유지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홍상수 감독을 존경한다. 그의 영화가 스페인에서도 꾸준히 개봉되기 때문에 항상 챙겨 보고 있다. 홍상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등불이다.

[특집] 변화한 광장의 풍경, 카메라의 여러 갈래 길 - 탄핵 정국 마주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활동과 실천들 ➁

느슨한 연대, 새로운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진입 이러한 상황에 대한 다큐멘터리 진영의 실천적 답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느슨한 연 대의 차원이다. SNS와 온라인을 통해 각종 집회, 촬영 정보가 공유되긴 했으나 집회의 규모와 형태가 급속도로 커지고 다양해지면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개인 작업에도 제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에 그들의 작업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 지난해 12월 말경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 차한비 사무국장과 박소현 감독 등은 현장에 나서는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텔레그램 방을 개설했다. 처음엔 6~7명이 함께했지만 “현장에서 마주치는 감독들이 텔레그램 방의 존재를 공유” (허철녕)했다. 알음알음 모인 30명가량의 감독이 각자의 상황을 공유하며 현장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촘촘하고 조직적이라기보단 다소 느슨하지만 각자의 아카이브를 공유할 수 있는 장”(박소현)이 마련된 것이다. 과거 기성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주축이 됐던 비상행동 미디어팀 역시 차근차근 새로운 형태를 갖춰갔다. 2월경부터 김영욱 팀장을 중심으로 꾸려진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에는 다양한 성질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시민미디어팀을 모집하자 20대 대학생부터, 여러 노조를 통해 활동하던 50~60대 활동가”까지 10여명이 모여 팀을 결성했다. 3월 초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석방되기 이전 정기적으로 열렸던 토요 집회와 다양한 시민 프로그램 현장을 기록했고, 석방 이후 산발적인 집회가 늘어났을 때도 구성원들은 자율적으로 많은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갔다. 1500여 단체가 모여 각종 시민행동과 집회를 주최했던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의 기조 영상을 만들고 현장의 각종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미디어팀 소속이자 <오류시장> 등을 연출한 최종호 감독은 “카메라의 존재가 많을수록 카메라의 오용 역시 늘어나는 시대이다 보니 시민들 역시 자신이 촬영되는 일에 민감한 경우”가 있었지만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이라는 소속 덕분에 더 친밀하게 집회 참여자들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라는 소감을 들려줬다.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의 빈자리를 채우며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한 신진 다큐멘터리스트들 역시 나타났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보지 않았던 영상방송학과 전공자 박채한 감독은 SNS를 통해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에 참가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온라인의 반응을 보면 과거 민주화 운동권 세대와 달리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는 말이 보이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이 정세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대학생들의 결집을 막고 극우 세력의 여론이 대학생들의 활동을 억제하는지”(박채한) 알릴 필요를 느낀 것이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개인적으로 이어오던 최호영 감독은 “2016~17년 촛불 집회 당시엔 모인 사람이 많았으나 그 결과물이나 후속 조치가 아쉬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미디어팀 활동으로 여러 현장을 다니며 세상에 이토록 많은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기록에 대한 욕망”을 다시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더 많고 다양한 카메라로 최호영 감독의 말처럼 12·3 계엄 이후 이어진 일련의 사태는 다큐멘터리스트들의 고심인 동시에 그들의 새로운 가능성이자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 진영의 두 번째 실천적 답변은 바로 ‘다양한 카메라의 가능성’이었다. 민중의 수많은 카메라 속 다큐멘터리영화에 대한 효용을 묻자 홍다예 감독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카메라가 현장을 기록하면서 다큐멘터리스트들의 카메라는 외려 현장의 증거와 증언을 기록한다는 일종의 책무에서 벗어나 더 새로운 실험과 모험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교육제도란 공적문제에 지극히 사적인 서사를 엮었던 그의 전작 <잠자리 구하기>처럼 “윤석열이 쫓겨난다고 해서 모든 사회적 의제가 해결되지 않는 형국인 만큼 탄핵을 축으로 모인 갖가지 문제에 연출자 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엮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에 참여했고 12·3 계엄의 현장을 찍기도 했던 박명훈 감독도 군복무 시절에 겪은 트라우마와 성소수자로서의 고민을 엮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클린>을 제작하던 중, “사회운동의 현장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트라우마를 다큐멘터리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치유의 힘”을 느꼈다는 소회를 전해왔다. 요컨대 광장에 모인 카메라의 수는 더한 가능성이되 한계로 작동하진 않는다. 허철녕 감독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목표로 했던 촛불 집회 이후 8년이 지났지만 그 당시에 꿈꿨던 부당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등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과제”라며 다큐멘터리영화가 단일한 목적의 수단이 아닌 여러 사안의 지속적인 창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그래서 이번엔 윤석열 퇴진뿐 아니라 성폭력 사안을 공론화했다가 부당 해임된 교사, 거제·통영·고성에 있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권리 등 더 다양하고 세밀한 사회적 의제들이 발현되고 있는 현장을 기록하며 새로운 다큐멘터리적 체험”(허철녕)을 겪었다고도 덧붙였다. 다큐멘터리스트들의 형식적인 시도도 이어졌다. <옵티그래프> <오색의 린> 등 주로 필름영화를 작업한 이원우 감독은 ‘인스타360 ONE RS 1인치’ 카메라를 백팩에 부착하고 광장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밀한 사건들을 채록했다. “여의도광장에선 지상파방송의 드론 카메라 등 워낙 화려한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촬영되고 송출됐으니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영화를 통해선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도입을 고민” (이원우)한 결과였다. 상술했던 다큐멘터리영화의 위기는 반복돼왔고 언제나 새로운 답을 찾고 있었다. <미국의 바람과 불> <돌들이 말할 때까지> 등으로 오랫동안 다양한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김경만 감독은 “과거에 보도 언론과 주류 언론사가 다루지 않았던 영역을 독립다큐멘터리가 다양한 미학적 시도를 통해 책임졌던 것”처럼 “현장성과 신속성과 같은 부분은 원래 독립다큐멘터리영화의 몫이 아니었던 듯하다”라고 말했다. 박소현 감독도 “미디어, 영화 생태계가 변하긴 했으나 막상 현장에 나선 다큐멘터리스트들의 마음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다”라며 “각자의 일상에서 이어지는 활동과 연구 차원에서 더 다양한 사람의 손으로 더 다양한 형태의 기록이 등장할 수 있게 됐다”라며 지금 다큐멘터리 생태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봤다. “지금도 여전히 사회에서 덜 조명되는 곳, 사회에 덜 알려진 광장의 사람들이 있다. 그것들을 밝히는 일”(최종호)은 다큐멘터리영화의 변치 않은 존재 이유다. 이 수많은 다큐멘터리스트와 카메라의 움직임이 “나는 새로운 상상의 나라를 보고 있다”(<내가 꿈꾸는 나라>)라는 희망의 발로로 곧 관객을 찾길 바란다. <비상123>(가제) - 상행동 시민미디어팀 비상행동 시민미디어팀은 오는 7~8월경 이번 탄핵 정국의 다양한 현장을 채록한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비상123>(가제)을 공개할 계획이다. 김영욱 시민미디어팀 팀장을 비롯한 박채한, 이명훈, 이현호, 장병철, 최종호, 최호영, 홍다예, 허철녕 감독이 작품 기획과 연출에 참여한다. “사실상 계엄을 ‘당한’ 비상 상황에서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직접 시민들과 호흡한 결과물”이자 “시의성을 강점으로 두고 있되 금방 휘발되어버리는 SNS, 유튜브 콘텐츠와 달리 지난 5개월을 차근차근 복기하는 차원의 작품” (김영욱)이 될 예정이다. 전통적인 형태의 다큐멘터리이되 이번 탄핵 정국을 통해 새로 독립다큐멘터리 신에 진입한 여러 신진감독의 다양한 시선을 종합하는 영화다. <고양이 돌봐드립니다> - 박소현 감독 박소현 감독이 2022년부터 제작해온 <고양이 돌봐드립니다>는 원래 빈집에 홀로 남게 되어 돌봄이 필요한 고양이들, 그리고 나이도 많고 아픈 자신의 고양이들을 함께 돌봐야 하는 연출자의 일상이 전개되는 영화였다. 그 와중에 박소현 감독은 갑작스러운 탄핵 정국을 맞이하게 되었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광장에 나갔을 때 발견한 ‘집에 돌봐야 할 고양이가 있는 사람들의 모임’ 깃발을 우연히 발견한다. 이는 개인이 일상에서 겪던 돌봄에 대한 감각이 광장으로까지 확장되는 감각을 주었으며, 전작인 <야근 대신 뜨개질>과 같이 개인의 삶에 자연스럽게 광장의 목소리가 들어가는 경험을 반복하게 해주었다. 박소현 감독은 “다시 한번 일상과 정치는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즉 수많은 사회정치적 의제의 발현이 다큐멘터리스트들의 미시적이고 내밀한 사적 경험으로 환원되는 작금의 현상을 포착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인터뷰] 신숙옥, 촌철살인의 전사, <호루몽> 이일하 감독

도쿄 한구석에 박힌 다다미 넉장 반의 단칸방. 이른 아침 텔레비전을 켠 이일하 감독은 한 여자를 마주했다. 혐한 발언에 맞서 눈 하나 깜짝 않고 자기 할 말을 하는 여자는 가난한 유학생의 “움츠러든 삶에 사이다가 터지는 느낌”을 선물했다. ‘헤이트스피치’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투쟁기인 <카운터스>를 만들면서 그와 재회한 이일하 감독은 그제야 확신했다. “당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꼭 찍어야겠다!” 다짐을 밝히자 뜨거운 화답이 돌아왔다. “네가 찍는 거라면 내 한몸 불살라볼게!” 재일 한국인 활동가 신숙옥은 그렇게 이일하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다큐멘터리이자 올해의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상영작 <호루몽>에 불을 붙였다. 영화는 신숙옥이 자신을 악의적으로 곡해한 극우 시사 프로그램 제작사와 다툰 기록을 중심에 둔다. 감독은 “소송 결과가 안 나오면 영화도 안 끝난다”는 걸 알았다. 다행히 한달간의 일본 로케이션 촬영 기간에 판결이 나왔고, 신숙옥이 통화로 이를 전해 듣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그와 한 공간에 있던 중 격앙된 소리가 들려와 바로 카메라를 잡고 튀어나갔다. 운이 좋았다.”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주요 에피소드를 지탱하는 건 여성 3대를 골자로 한 가족사와 다수의 방송 출연 화면이 증빙하는 개인사다. “가이 리치 감독을 좋아하고, 뮤직비디오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경쾌한 다큐멘터리스트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클래시컬한” 접근을 시도하고 싶었다는 이일하 감독은 이 정보량 많은 영화를 어떻게 관객과 만나게 해야 할지 골몰하다 “몸짓”을 떠올렸다. “음악을 베이스로 장면을 상상하는 습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이니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무용수들이 3대가 연결되기도 해체되기도 하는 모습을 구현해주기를 원했다.” 바닷가를 누비며 역사의 질곡을 은유하던 카메라가 신숙옥의 얼굴 앞에 멈출 때마다, 인터뷰이로서의 신숙옥은 “듣고 싶은 말을 제때 해주는 촌철살인의 전사로서 감독이 쾌재를 부르게 했다”. 그 호소력은 전주에서도 통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20대 여성들이 신숙옥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더라.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분야에서건 어른을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여성들이 신숙옥을 강하고 믿음직한 동네 언니처럼 느끼길 바랐다.” 이처럼 이일하 감독은 <울보 권투부> <카운터스> <모어>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를 거쳐 <호루몽>에 이르기까지 인간적 매력을 지닌 투사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반사회적 인간들, 한마디로 ‘미친놈’에 매료”되어왔기 때문이다. 드럼과 베이스를 치던 청년 시절 최애 밴드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이었다고 한다. 지금 그의 카메라는 누구를 향해 있을까. “특정한 신념이나 관심사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만 일본에서 인생의 반을 지냈기 때문에 자이니치 친구들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을 건드리는 영화를 계속 찍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유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도 있다. 홍보를 위한 영상도 찍는다. 고정해서 생각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작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