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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인터뷰] 신숙옥, 촌철살인의 전사, <호루몽> 이일하 감독

도쿄 한구석에 박힌 다다미 넉장 반의 단칸방. 이른 아침 텔레비전을 켠 이일하 감독은 한 여자를 마주했다. 혐한 발언에 맞서 눈 하나 깜짝 않고 자기 할 말을 하는 여자는 가난한 유학생의 “움츠러든 삶에 사이다가 터지는 느낌”을 선물했다. ‘헤이트스피치’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투쟁기인 <카운터스>를 만들면서 그와 재회한 이일하 감독은 그제야 확신했다. “당신이 주인공인 영화를 꼭 찍어야겠다!” 다짐을 밝히자 뜨거운 화답이 돌아왔다. “네가 찍는 거라면 내 한몸 불살라볼게!” 재일 한국인 활동가 신숙옥은 그렇게 이일하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다큐멘터리이자 올해의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상영작 <호루몽>에 불을 붙였다. 영화는 신숙옥이 자신을 악의적으로 곡해한 극우 시사 프로그램 제작사와 다툰 기록을 중심에 둔다. 감독은 “소송 결과가 안 나오면 영화도 안 끝난다”는 걸 알았다. 다행히 한달간의 일본 로케이션 촬영 기간에 판결이 나왔고, 신숙옥이 통화로 이를 전해 듣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그와 한 공간에 있던 중 격앙된 소리가 들려와 바로 카메라를 잡고 튀어나갔다. 운이 좋았다.” 명예훼손 소송이라는 주요 에피소드를 지탱하는 건 여성 3대를 골자로 한 가족사와 다수의 방송 출연 화면이 증빙하는 개인사다. “가이 리치 감독을 좋아하고, 뮤직비디오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경쾌한 다큐멘터리스트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클래시컬한” 접근을 시도하고 싶었다는 이일하 감독은 이 정보량 많은 영화를 어떻게 관객과 만나게 해야 할지 골몰하다 “몸짓”을 떠올렸다. “음악을 베이스로 장면을 상상하는 습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이니치’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무용수들이 3대가 연결되기도 해체되기도 하는 모습을 구현해주기를 원했다.” 바닷가를 누비며 역사의 질곡을 은유하던 카메라가 신숙옥의 얼굴 앞에 멈출 때마다, 인터뷰이로서의 신숙옥은 “듣고 싶은 말을 제때 해주는 촌철살인의 전사로서 감독이 쾌재를 부르게 했다”. 그 호소력은 전주에서도 통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20대 여성들이 신숙옥을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더라.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분야에서건 어른을 찾아보기 어렵다. 젊은 여성들이 신숙옥을 강하고 믿음직한 동네 언니처럼 느끼길 바랐다.” 이처럼 이일하 감독은 <울보 권투부> <카운터스> <모어> <청년정치백서-쇼미더저스티스>를 거쳐 <호루몽>에 이르기까지 인간적 매력을 지닌 투사들로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반사회적 인간들, 한마디로 ‘미친놈’에 매료”되어왔기 때문이다. 드럼과 베이스를 치던 청년 시절 최애 밴드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Rage Against the Machine)이었다고 한다. 지금 그의 카메라는 누구를 향해 있을까. “특정한 신념이나 관심사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다만 일본에서 인생의 반을 지냈기 때문에 자이니치 친구들과 일본의 정치적 상황을 건드리는 영화를 계속 찍을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유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도 있다. 홍보를 위한 영상도 찍는다. 고정해서 생각하기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작업하고 싶다.”

[조현나의 CANNES 레터 - 2025 경쟁부문] <르누아르> 최초 리뷰

“우리는 사람이 죽을 때 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우리 스스로가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학교에 제출한 에세이에서 후키는 한 소녀의 장례식을 지켜본다. 상주 자리에 선 부모님을 보며 후키는 그것이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본인의 판타지 에세이에 전술했듯 11살의 후키는 종종 죽음을 상상한다. 나아가 상실을 겪은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수시로 영혼을 불러오는 주술을 행해보고 텔레파시에 심취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암 환자인 후키의 아버지에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고 그런 그를 간호하고 생계를 잇느라 어머니는 후키를 돌볼 여유가 없다. 고요한 집에서 아이는 자주 외로움을 곱씹는다. 제7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르누아르>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자신이 천착하는 죽음과 연대라는 주제를 공고히 한다. 데뷔작 <플랜75>을 통해 70대 여성의 시선에서 노년의 생과 사에 주목한 데 이어 <르누아르>에선 11살 소녀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예견된 이별 앞에 데려다놓는다. 후키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무감해 보일 때가 많은데 그렇기에 죽음 전후의 상황을 긴밀히 채집하는 상황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후키의 과거인지 상상인지 불분명한 신들이 아이의 현실 속에 자주 틈입하고 그 대부분이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기억이다. 후키와 부모님의 내면에 관한 내밀한 묘사들은 <르누아르>가 성인이 된 후키의 회상이라는 인상을 안긴다. 11살 소녀가 상상조차 불가한 아버지의 부재에 관해 11살의 소녀가 이해하려는 시도에는 천진함만큼이나 간절함이 녹아들어있다. “10대, 20대 초부터 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버라이어티>)고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이야기를 전보다 더 안정적인 리듬의 작품으로 완성해냈다.

[이나라의 누구의 예술도 아닌 영화] 초상화, 윈도, 스크린 앞에서, 프리츠 랑과 장 르누아르

이나라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교수 대학교에서 범죄심리학을 강의하는 중년 남성이 기차역에서 바캉스를 떠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배웅한다. 일거리에 파묻혀 사는 남성은 함께 떠날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곗거리에 불과했던 것 같다. 가족이 떠난 후 남성은 자석에 이끌리듯 갤러리 쇼윈도에 진열된 여성의 초상화에 시선을 빼앗기더니, 저녁 무렵에는 초상화 속 여성을 꼭 빼닮은 여성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 비교적 덜 알려진 프리츠 랑의 <창가의 여인>(1944)은 이렇게 시작된다. ‘정상’ 가족을 꾸리던 건실한 남성이 범죄의 세계와 연루되고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초상화를 ‘팜므파탈’만큼이나 위력을 가진 요소로 상상한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던 여러 편의 고딕 로맨스물이나 누아르영화, 히치콕의 <레베카>(1940), 오토 프레민저의 <로라>(1944), 윌리엄 디터리의 <제니의 초상>(1944), 약간의 시차를 두고 만들어진 앨버트 르윈의 <판도라>(1951) 등도 초상화의 위력을 서사적 동기로 활용했다. 이중 영원히 바다를 떠도는 유령선 전설을 소재로 삼은 <판도라>에서 초상화는 영화 속 존재들에게 유령적 힘을 행사하는 유일한 사물이 아니라 유령선, 선장, 판도라적 여성 등 영화 속 여러 유령적 존재 중 하나로 나타난다. 반면 <레베카> <로라> <창가의 여인> 등에서는 초상화 자체가 위력을 떨친다. <레베카>에서 거대하고 어두운 성 복도에 걸린 망자 레베카의 초상화는 이곳에 새로 도착한 여주인공을 압도할 뿐 아니라 공간 자체를 압도한다. <로라>에서 로라의 죽음을 파헤치는 형사는 로라가 사라진 어두운 빈방에서 로라의 초상화에 매료된다. 이 두편의 영화에서 초상화를 바라보는 인물들은 어두운 극장 안에서 거대한 스크린 위의 압도적 크기의 ‘영화적 얼굴’을 바라보는 관객, 지금 여기 이 극장 안에 없는 존재의 유령적 이미지에 매혹당한 관객을 닮았다. 이들 영화에서 초상화의 위력은 육신을 가진 관람자를 오히려 압도하는 ‘이미지’의 위력이자 영화적 이미지의 위력을 드러낸다. 고딕소설의 전통을 이어받은 <레베카>에서 초상화가 걸려 있는 폐쇄적인 실내공간은 초상화의 위력을 더욱 강화한다. 반면 <창가의 여인>에서 주인공이 바라보는 초상화는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에서 주인공의 욕망과 환상을 부추기는 것은 초상화일 뿐 아니라 초상화가 놓인 조건, 곧 진열장과 진열장 창이다. 갤러리의 진열장, 갤러리 진열장의 그림은 앤 프리드버그와 같은 학자가 스크린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를 빌리자면 일종의 “가상 창문”에 가깝다. 프리드버그는 스크린이 17세기 대형 유리창의 확산 이후 건축과 문화의 핵심이 되었던 유리창을 대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창이 실내에서 바깥 경치를 액자처럼 보여주는 틀이었다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값싼 대형 유리가 생산되면서 유리창은 상품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상품 진열장이 시각적 소비문화 시대를 열었다면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 화면의 ‘창’은 가상 공간을 연다. <창가의 여인>에서 주인공은 밤늦게 클럽을 나서며 낮에 보았던 초상화가 놓인 진열창 앞에 멈춰 선다. 그는 진열창 ‘너머로’ 초상화를 본다. 이때 초상화 옆에 한 여인의 상이 초상화보다 더 초상화 같은 모습으로 나란히 맺힌다. 주인공 남성이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것은 길에 있는 한 여인의 거울상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진열창을 통해’ 초상화를 처음 만날 뿐 아니라 초상화 속 여인을 닮은 한 여인 역시 ‘진열창에 비친’ 상을 통해 만난다. ‘진열창 덕분에’ 초상화는 진열창에 맺힌 주인공의 상과 여인의 상 ‘사이에’ 놓인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 <창가의 여인>의 뻔한 도덕적 결말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창가의 여인>은 중년 남성에게 아름다운 여성의 유혹에 빠진 죄과를 묻는 영화처럼 흘러간다. 남성은 의도치 않게 살인에 연루되고 협박을 받으며,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하지만 남성은 순간 잠에서 깨어난다. 이 모든 이야기와 이미지는 진열창 속 그림을 본 남성이 꿈속에서 스스로 꾸며낸 것이다. 그러니 <창가의 여인> 속 창은 한편으로 거리를 걸어가는 산보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19세기적 시각 소비문화의 진열-창이고, 다른 한편 관객을 먼 시간과 장소로 이끄는 스크린-창이며, 관객의 적극적 상상-꿈꾸기 속으로 이어지는 프레임-창이다. 그러니 <창가의 여인>은 초상화 속에서 영화적 얼굴과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이기보다 창의 문화와 스크린 문화가 맺고 있는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일 것이다. 프리츠 랑은 <창가의 여인>을 만든 다음해에 만든 <진홍의 거리>(1945)에서도 그림을 소재로 삼았다. <진홍의 거리>는 장 르누아르의 <암캐>(1931)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오작동하는 무능한 예술가를 극 중 인물로 즐겨 소환하는 르누아르는 <암캐>에서도 자신이 실제로 태어나 자랐던 파리 몽마르트르 지역을 배경으로 삼아 고단한 삶을 사는 평범한 소시민이자 그림에 위안을 얻는 아마추어 화가 모리스 르그랑(미셸 시몽)이 살인에 이르고 노숙자가 되는 과정을 영화로 옮겼다. 그런데 장 르누아르와 프리츠 랑의 영화에서 그림은 어떤 마법적 위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약탈적 사회에서 주인공의 그림은 아내나 정부에게 잡동사니 쓰레기 취급을 받거나 돈벌이 수단으로만 간주된다. 이 세계에서 그림은 자본주의 상품 경제의 무자비한 작동 방식과 주인공의 소외를 증명하는 사물이다. <암캐>의 노숙자 모리스 르그랑은 갤러리 ‘진열장 너머’로 아버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을 무관심하게 바라본다. 르누아르는 여기에서 부르주아와 노숙자,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예술과 노동, 회화와 영화 사이에 위계를 정하는 대신 이를 차별 없이 가로지르는 돈의 문화를 환기한다. 이제 미셸 시몽은 진열장 너머의 그림보다 그것을 구매한 부르주아가 던져준 20프랑짜리 동전에 더 흥분하는 걸인이 되었다. 그는 자유인이지만 돈에 종속된 자유인이다. 감독 장 르누아르는 “인생은 물살에 떠가는 코르크 조각과 같다. 물결에 몸을 맡겨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인용한 적 있다. 그런데 물결은 이제 데이터 또는 데이터가 된 돈의 흐름의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할까? 이 질문은 르누아르의 쇼윈도 시대에도 오늘날 컴퓨터 윈도 시대에도 영화와 예술이 나누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일 것이다.

[특집] <누벨바그> <에딩턴> <르누아르> <다이, 마이 러브> 최초 리뷰

누벨바그 Nouvelle Vague 리처드 링클레이터 / 프랑스 / 2025년 / 105분 / 경쟁 <카이에 뒤 시네마> 사무실의 서랍을 열어 지폐 몇장을 몰래 훔치는 청년, 장뤼크 고다르(기욤 마르벡)가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4:3 흑백 셀룰로이드 화면에 대고 말한다. “영화를 비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링클레이터가 택한 가장 좋은 방법 역시 그렇다. 1959년 촬영한 고다르의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 작업기를 경쾌하게 좇는 신작은, 고다르의 걸작보다 <누벨바그>를 먼저 볼 세대를 위해 앞장서 띄우는 한통의 러브레터처럼 다가온다. 오토 프레민저 감독과의 악명 높은 작업을 마치고 프랑스로 건너온 할리우드 배우 진 셰버그(조이 도이치)가 고다르의 즉흥성과 충돌하며, 프로듀서인 조르주 드 보르가르는 대중을 위한 플롯과 메시지를 역설하는 상황. 넷플릭스 코미디 <히트맨>과 1940년대 미국 브로드웨이로 돌아간 소니 영화 <블루 문> 이후 칸에 입성한 링클레이터는 인디영화와 상업영화를 횡단하는 동안에도 작가성을 유지해온 자신의 여정에서 누벨바그라는 출처를 찾는다. <보이후드> <블루 문> 등에서 영화의 시간성을 조각해온 정신 또한 고다르와 일군의 친구들에게서 수혈된 것이다. 다만 그는 영화사에 기록된 혁신적 문법을 자신의 스크린에 외형상 재현하는 고다르의 경구들을 되새기고 당대의 에너지를 옮기는 데 충실하다. 이 점이 곧 <누벨바그>의 매력이자 결여일 것이다. 독창적 각주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누벨바그>의 세련된 경쾌함, 링클레이터다운 온유함이 일면 해석의 부재로 다가올 수도 있다. 온기, 유머, 관용의 거장인 링클레이터의 미덕이 날 선 누벨바그의 기수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임은 분명하며, 올해 칸영화제에서만큼은 경쟁부문의 어떤 영화보다도 애정 어린 호응을 이끌어냈다.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영화들에 깃든 오래된 유산을 향해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에게 뤼미에르 대극장은 길고 신나는 박수로 화답했다. /김소미 에딩턴 Eddington 아리 애스터 / 미국 / 2024년 / 145분 / 경쟁 아리 애스터의 신작 <에딩턴>은 정치적 극단주의를 풍자하는 광란의 사회실험극이자 공동체의 파멸을 선고하는 아리 애스터식 아포칼립스다. 트라우마로 점철된 장르의 세계에서 현대 미국 웨스턴으로 초점을 확장한 아리 애스터의 신작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정면으로 반영한 최초의 할리우드영화이기도 하다. 연대기적 상징성을 떠나 아리 애스터 필모그래피의 시계열을 넓혀 바라볼 때 중요한 분기점임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는 팬데믹, 인종 갈등, 온라인 음모론, 쇼츠와 가짜 뉴스, AI 빅테크 기업의 침투 등 동시대 미국의 지옥도를 대변하는 요소들을 작은 집단에 거침없이 욱여넣은 모양새다. 때는 2020년,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보수 성향의 마을 보안관 조(호아킨 피닉스)는 극우 유튜버를 신봉하는 아내(에마 스톤)와 장모 사이에서 무력한 나날을 보낸다. 진보 성향의 시장 테드(페드로 파스칼)가 펼치는 보건 정책에 반감을 품게 된 그가 직접 차기 시장 선거에 뛰어들면서 영화는 본격적인 전환점을 맞는데, 소통 대신 폭력을 택한 주인공의 폭주와 함께 후반부는 전작 <보 이즈 어프레이드>가 그랬듯 초현실적인 피카레스크를 향해 내달린다. 칸 현지 반응은 극렬히 나뉘었다. 미국 기자들은 자국을 겨냥하는 과격한 촌극에 손을 들어준 한편, 노골적 도상들로 가득 찬 쇼케이스를 과시하는 아리 애스터의 호들갑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급진화된 백인 청년들의 모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그려지는 온건파 흑인 경찰들의 무고한 희생 등 주변부의 묘사가 외려 날카롭게 반짝인다. /김소미 르누아르 Renoir 하야카와 지에 / 일본, 프랑스,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 2025년 / 116분 / 경쟁 “우리는 사람이 죽을 때 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우리 스스로가 안쓰러워서 우는 걸까?” 학교에 제출한 에세이에서 후키(유키 스즈키)는 한 소녀의 장례식을 지켜본다. 상주 자리에 선 부모를 보며 후키는 그것이 자신의 장례식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본인의 판타지 에세이에 전술했듯 11살의 후키는 종종 죽음을 상상한다. 나아가 상실을 겪은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수시로 영혼을 불러오는 주술을 행하고 텔레파시에 심취한 모습으로 등장하기까지, 이 모든 건 암환자인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시한부인 아버지, 그를 간호하고 생계를 잇는 어머니에겐 딸을 돌볼 여유가 없다. 고요한 집에서 아이는 자주 외로움을 곱씹는다. 데뷔작 <플랜 75>를 통해 노년 여성의 생과 사에 주목한 데 이어 <르누아르>에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11살 소녀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예견된 이별 앞에 데려다놓는다. 버블경제 붕괴 이전, 풍요로웠던 사회의 외형과 반대로 가족간의 유대는 약화된 1980년대 일본의 시대상이 바탕이 됐다. 자전적 작품인 만큼 성인의 관점에서 회상한 과거임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후키의 과거, 상상의 결과물이 현실과 자주 교차되는데 여기엔 아버지의 부재에 관해 필사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소녀의 간절함이 녹아들어 있다. 소마이 신지의 <이사>,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의 자장 아래 놓인 작품임은 분명하나 <플랜 75>보다 한층 과감한 시도, 안정된 만듦새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자신의 영역을 굳건히 다진다. /조현나 다이, 마이 러브 Die, My Love 린 램지 / 캐나다 / 2025년 / 118분 / 경쟁 잡화점 직원이 묻는다. “필요한 건 다 찾으셨나요?” 여자는 받아친다. “뭐, 인생에서?” 직원은 꺾이지 않고 유모차의 아기한테 찬사를 쏟아낸다. “어머 이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 봐요.” 점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여자가 일축한다. “댁은 생각은 하면서 말하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쉬지 않고 입을 나불나불하는 건가?” 이 가시 돋친 여자의 역설적인 이름은 그레이스. 배우는 이런 부류의 대사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제니퍼 로런스다. 파트너 잭슨(로버트 패틴슨)과 그레이스는 자력으로 장만할 수 없는 넓은 집을 잭슨의 숙부가 물려주자 뉴욕에서 몬태나의 외진 시골로 이사하고 곧 아기가 태어난다. 왕성하던 섹스는 드물어지고 깊어가는 고립 속에 작가지망생인 그레이스는 책상에 앉지 못한다. 발산할 곳을 찾지 못한 여자의 욕구불만은 관계를 잠식하고 말 그대로 집을 파괴해간다. 벌레의 웅웅거림과 아기의 울부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가운데 히스테리가 불꽃놀이를 벌이는 <다이, 마이 러브>는 보기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럼에도 이 불꽃놀이에는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다. <케빈에 대하여> <너는 여기 없었다> 등에서 정신적 만성통증의 탁월한 연구자임을 보여준 린 램지 감독은 관객의 청각, 촉각, 시각을 난사하며 관객을 한 여자의 신경증 속으로 데려간다. <툴리>를 비롯해 산후우울증을 다룬 많은 영화들과 다르게 린 램지는 그레이스를 치유하려 들지 않는다. 건전한 정상성의 세계로 끌어내려 하지 않는다. 벽지를 손톱으로 긁고 타일을 부수며 그 뒤쪽의 무엇을 잡아 쥐려는 그레이스의 폭력적 몸부림을 변명하지 않는다. 한동안 스타덤에 의해 거세됐던 제니퍼 로런스의 야성과 무시무시한 재능이 봉인해제된 이 영화는 <가여운 것들>이 에마 스톤에게 그랬던 것처럼 로런스의 연기 편람으로 내년 오스카의 영광을 점치게 한다. <다이, 마이 러브>의 억압은 나쁜 남편, 못된 시어머니보다 거대한 것으로부터 온다. 잭슨과 그의 어머니 팸(시시 스페이섹)은 결코 악역이 아니다. 외려 남편의 죽음으로 가족에 봉사하는 역할을 완료한 팸과 출산에 의해 그 길목에 접어든 그레이스가 마주 보고 만들어내는 그림은 이 영화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한다. /김혜리

[Masters' Talk] 정통 뱀파이어와 오리지널 시나리오 사이의 묘, <씨너스: 죄인들>의 라이언 쿠글러 감독 X <잠>의 유재선 감독

호러영화 연출자들의 마스터스 토크 시네마엔 국경이 없다는데, 게다가 같은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이 만나면 대화가 더 잘 통할까. 이번 마스터스 토크는 이같은 호기심에서 출발해 그 가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사회문화적 맥락이 녹아든 블랙 호러 영화 <씨너스: 죄인들>(이하 <씨너스>)을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지난 5월16일 러브 스토리와 호러를 절묘하게 엮은 <잠>의 유재선 감독과 온라인으로 만나 여러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었다. 전통적인 고딕호러의 소재인 뱀파이어를 1932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로 이식시키는 이야기로 운을 뗀 이날의 대화는 오랫동안 쿠글러 감독을 사로잡았던 공포소설과 초자연적인 존재들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번 마스터스 토크는 미국의 86년생 젊은 감독과 한국의 89년생 신인감독간 만남으로도 요약할 수 있다. 기존 창작자들과 달리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원작 없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씨너스>로 북미 극장가에서 흔치 않은 흥행 기록을 세웠다. 오리지널 영화가 2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가족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이후 8년 만의 기록이다. 게다가 그는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와 협상을 벌여 2050년이면 <씨너스>의 저작권을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많은 영화인들이 원작이 될 창작물의 판권을 사거나 리메이크에 몰두하는 사이 자신만의 시나리오로 기존의 관행을 깨는 파격적인 행보는 쿠글러 감독 특유의 젊은 에너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작품 내적인 이야기는 물론 그가 이끄는 제작사 프록시미티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도 마스터스 토크 지면을 통해 공개한다. <씨너스>를 본 관객은 물론 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줄 이날의 대화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유재선 안녕하세요, 감독님!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씨너스> 굉장히 잘 봤고요. 감독님의 열렬한 팬으로서 마스터스 토크에 참여하지만 이제 영화 한편을 연출한 감독으로서 배우는 학생의 느낌으로 <씨너스>를 보고 궁금했던 질문들을 왕창 쏟아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라이언 쿠글러 아닙니다. 유재선 감독이 품은 어떤 질문이든 그를 바탕으로 대화할 수 있어서 행복한걸요. 이렇게 유 감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한국영화를 사랑하며, 부산에서 제 영화 <블랙 팬서>를 촬영하고 그곳에서 큰 시사회를 가진 적 있습니다. 부산이 참 그립네요. 젊은 나이에 첫 장편영화를 완성한 유재선 감독의 멋진 커리어에도 축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 첫 번째 장편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마쳤을 때를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에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땐 저 역시 영화를 계속해서 배우는 중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장편영화, 단편영화, 학생영화, 뮤직비디오, 광고 등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도전하는 걸 결국 해냈다는 의미더군요. 지금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실력이 필요했을 겁니다. 저는 유 감독님을 학생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우리가 만난 ‘마스터스 토크’라는 코너도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유재선 정말 감사합니다. (웃음) 운이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블랙 팬서>를 한국에서 촬영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봉준호 감독님의 <옥자> 연출팀으로 일하던 당시, 많은 스태프들이 <블랙 팬서> 촬영에 참여했고 그 현장을 너무 즐겁게 추억하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데요. <블랙 팬서>가 한국을 배경으로 두었기 때문에 한국 관객에게도 특별히 더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씨너스>를 이야기하는 자리지만 <블랙 팬서>도 굉장히 잘 봤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독님의 데뷔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잖아요. 전작인 <크리드>는 원작 영화가 있었고, <블랙 팬서>는 원작 코믹스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씨너스>는 감독님의 오리지널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연출하셨을 때 전작과 다른 접근 방식이나 마음가짐의 차이가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이언 쿠글러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전작을 창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교훈으로 삼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이 영화가 데뷔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처럼 하룻밤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24시간 영화’가 되리란 걸 알았어요. 다만,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처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든, 코믹스를 각색하든, <록키> 세계관을 다른 방식으로 그리든 간에 거기엔 연출자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해요. 예술가에겐 쉽지 않은 일이죠. 이번 작품 <씨너스>는 따라야 할 스토리의 규칙이 없고, 이 영화를 보러 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관객도 감을 잡을 수 없어 오히려 신났어요. 물론 문학과 영화, 텔레비전에서 이미 다룬 ‘뱀파이어’를 소재로 작업했기 때문에 관객이 뱀파이어 서사에 기대하는 지점과 규칙들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화나 원작이 있는 영화를 만들 때와 비슷한 지점도 있으나 더 쉽기도 했고, 때때로 더 어렵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씨너스>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영화를 판매하는 거였어요. 영화를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게 무척 어려웠죠. 세상엔 볼거리가 많잖아요. 관객 입장에선 익숙한 세계관의 작품을 선택하는 게 안전하죠.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선택하기엔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케팅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실화를 기반으로 하거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 오리지널 영화를 홍보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유재선 이 영화를 제작했을 때 어려운 점이 영화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마케팅 부분이라고 말씀하셔서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감독님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프로듀서인 아내에게 최초로 피칭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본 적 있습니다. <씨너스>를 처음 어떻게 소개하고 피칭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이언 쿠글러 네, 피칭했죠. 진지 쿠글러는 제 프로듀서이자 아내이고, 파트너인 세브 오해니언 세 사람이 같이 제작사 ‘프록시미티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린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에 작업 전에 아이디어 테스트하는 것에 익숙해요. 아내 앞에서 스토리에 대해 피칭하고 제가 상상한 것들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진지는 정말 좋은 첫 번째 반응자예요. 저에 대해 잘 알고 제 취향에 대해서도 잘 알죠. 제가 얘기하면 진지는 “이건 잘 모르겠어” 아니면 “이거 좀 멋지네”라고 말하곤 해요. 이번엔 집에서 피칭했는데 이야기에 빠져드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진지가 듣고는 “꽤 괜찮네”라고 말했어요. 이야기를 다듬어서 캐릭터들이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이 어떤지에 대해 확고히 해야 했죠. 이 영화는 블루스 곡 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한 건물에 여러 친구를 불러 파티를 여는 내용의 노래예요. 시끄러운 사람들이 모여 멋진 파티를 열고 그 파티에 초자연적 만남이 벌어지는데 정말 멋지죠. 진지와 저는 이 아이디어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뱀파이어가 돼야 할까? 늑대인간이 돼야 할까?”라면서요. 유재선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늑대인간 소재도 고려했는데 뱀파이어로 최종 확정 지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라이언 쿠글러 뱀파이어는 제 초기 아이디어 중 하나였어요. 다른 신화적 존재들이 뭐가 있을까 살펴봤지만, 계속 뱀파이어로 돌아왔어요. 제가 뱀파이어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스티븐 킹의 뱀파이어 소설 <살렘스 롯> 덕분에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살렘스 롯>은 정말 강렬한 책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무서운 소설이었어요. 저는 항상 이 소설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유령, 늑대인간, 크리처, 그리고 좀비들까지 다 좋아하지만 이번엔 뱀파이어가 제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초자연적인 존재들보다 뱀파이어가 이 영화에 잘 어울렸습니다. 유재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뱀파이어가 아닌 다른 무엇을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뱀파이어 설정이 테마와 맞물려 있어서 이보다 더 완벽한 선택이 있었을까 싶어요. 라이언 쿠글러 네, 확실히요. 음악산업, 자본주의, 편견, 종교 등 모든 것이 뱀파이어란 개념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현대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 모두 그랬죠. 지금 돌이켜보면 뱀파이어 외에 다른 소재였다면 이렇게 영화와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프록시미티 미디어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그의 아내이자 제작자인 진지 쿠글러, 제작자이자 시나리오작가인 세브 오해니언이 2018년에 설립한 멀티미디어 제작사다. 음악감독 루드비그 예란손도 공동 창업자로 참여했다.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 시리즈, 사운드트랙 음반을 제작한다. 설립한 지 약 3년 만에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로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에 후보 지명을 받았으며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결과를 냈다. 참고로 라이언 쿠글러는 1986년생, 진지 쿠글러는 1985년생, 세브 오해니언은 1987년생 젊은 영화인들로 알려져 있으며, 라이언 쿠글러와 오해니언, 예란손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동문이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을 사로잡은 <살렘스 롯>이란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이 1975년 출판한 공포소설로, <캐리>에 이어 두 번째 집필한 책이다. 주인공 소설가 벤이 다음 소설을 쓰기 위해 25년 만에 고향 메인주 ‘살렘스 롯’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로, 벤은 마을의 텅 빈 유령의 집이 오스트리아 이민자 커트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긴 여행을 떠났다는 커트는 마을에서 보이지 않고, 어쩐 일인지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밤이 되면 사망했거나 사라진 주민들이 송곳니를 드러낸 채 돌아다닌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살렘스 롯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으로, 책 <살렘스 롯>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킹은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활용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유재선 감독의 마스터스 토크가 계속됩니다.

[특집] 상실을 경험한 아이는 더 빨리 성장한다, <르누아르> 하야카와 지에 감독

전작 <플랜 75>에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75살 이상 노인의 죽음을 지원하는 정책을 권장하는 근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노년 여성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말년의 모습을 담담히 제시했다. <르누아르>에선 80년대 일본으로 시선을 돌려 11살 소녀 후키(스즈키 유이)의 일상에 주목한다. 이번 신작에서도 죽음을 주요하게 다루지만 어린아이를 통해 그려지는 죽음은 “단순히 두려움뿐만 아니라 경험해본 적 없는 매혹적인 호기심의 대상”이다. 후키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고, 일찌감치 상실을 경험해본 이들의 심정을 궁금해하며 영적 존재와 소통하는 텔레파시에 몰두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에 끌린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후키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영화의 색감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다.” <르누아르>는 80년대에 실제로 11살이었던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경험이 상당수 반영됐다. “스즈키 유이 배우가 캐스팅된 이후로 배우의 면모가 많이 반영됐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캐릭터의 70~80%가 나와 닮아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셨고 나 역시 10살부터 20살까지 병원을 자주 오가며 죽음을 마주하고, 가족의 고통을 분담하는 이들을 자주 봐왔다. 이후로 죽음이 내게 중요한 주제가 됐다.” 10, 20대 때부터 <르누아르>를 연출하고 싶었으나 어른이 된 현재로선 당시 부모님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한 채로 영화를 완성하게 됐다고 말한다. “10대 때 영화를 연출했으면 아마도 어머니 캐릭터를 더 비판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얼마나 보여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프레임 밖의 것들을 관객이 어떻게 인식하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대사에 없는 감정까지 관객이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후키의 감정 연출에 각별히 유의했다. 다만 후키를 연기한 스즈키 유이는 맡은 역에 관한 설명을 자세히 듣길 원치 않았고 감독 역시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한번만 읽고 느끼는 대로 연기하길 요청했다고.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죽음을 다루되 극을 냉담히 마무리 짓진 않는다. <플랜 75>에서 그랬듯 <르누아르>에서도 연대의 순간이 등장하는데 이는 후키와 학원의 영어 선생님 사이에서 일어난다. “둘이 대단히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다만 영어 선생님은 미국과 일본 혼혈이라는 설정이라 감정 표현에 자유롭다. 일본인들은 신체 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데 그와 달리 자신을 기꺼이 안아주는 선생님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깨닫는다.” “상실을 경험한 아이는 더 빨리 성장한다”고 믿는다는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자신의 분신과 다름없는 후키를 통해 죽음과 연대라는 주제를 더 깊이 탐구해낸다.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 우리가 잃어버린 숏

지난 세기를 건너온 다음 다시 되돌아서 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지, 라고 질문하는 대신 무얼 잃어버렸지, 라고 물어보면 비로소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가 해나간 일들이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이었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 숏이 있었다. 거기에 카메라가 있었고, 카메라가 찍으면 그 시간은 영화라는 사건이 되었다. 이걸 구태여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기차가 역으로 들어온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한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아이가 물장난하는 것을 영화라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홍상수는 바다로 나가는 배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물결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눈싸움하는 거리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또 보았다. 거기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거기에 무엇이 출현한 것일까. 여기에 개념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다음 각자 개념의 차이라는 구도 아래 의미를 부여하고, 영역을 나누고, 그 사이에서 서로의 공약 불가능한 자리를 만든 다음 그 차이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멀어질 때 결국은 숏에 대한 믿음의 부재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면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자동적으로 숏이 발생한다는 믿음으로부터 숏이라는 힘이 발생할 때 그것이 비로소 숏이라는 의심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의심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첫 번째 힘. 그러면 두 번째 힘은 어디에 있는가. 거기에 있다. 거기? 거기가 어디? 다시 한번 이미 들었던 예를 가져오겠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퇴근하는 노동자. 다시 한번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주어의 자리를 옮겨놓았다. 동시적으로 움직이는 세상 안에서 연장하는 힘으로서의 그것. 매번 바뀌겠지만 항상 식별 가능한 그것. 그것들은 힘을 보여준다. 힘은 어디에 있는가. 운동이라는 인상. 시간이라는 이미지의 연장. 여기에 증인들이 있다. 첫 번째 증인. 플라톤. 당신들은 헛것을 보게 될 거예요. 벽 앞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죄수이고, 해방은 미루어질 것이다. 그저 우화라고 지나쳐갈 수 있을까. 영화가 우리 앞에 왔을 때 이미 질문이 시작되었다, 오래된 질문. 왜 무(無)가 아니고 존재가 있는가. 1895년에 무언가 잘못되었다. 헛것을 중심을 두고 공허한 벽을 홀린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우리를 바친다면, 그런 다음, 거기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간다. 그렇게 영화의 역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에 헛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음과 서로 뒤얽히면서 두리번거렸다. 두 번째 증인. 마르크스. 영화가 발명되기 전 1845년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예로 들면서 삶의 과정이 위아래가 뒤집혀 보인다면 그건 이데올로기 때문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데올로기라는 말에 질겁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 없는 이데올로기야말로 유령의 예술인 영화의 동어반복이라는 걸 먼저 인정해야 한다. 뻔한 정의. 이데올로기는 상상적인 표상이며, 동시에 물질적인 토대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문장 바꾸기. 이데올로기의 자리에 영화를 가져다놓는다고 해도 문장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반격. 그런 다음 개인들을 호명할 것이다. 당신은 개인으로 화면 앞에 앉아 있다. 그렇지 않은가요. 만일 이것을 부정하면 우리는 영화를 삭제시킬 용기를 내야 한다. 세 번째 증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1857년 <마담 보바리>에서 엠마는 마차를 타고 가면서 트래블링 숏의 시점으로 길거리를 바라본다. 그 문장을 따라가고 있으면 뤼미에르, 르누아르, 로셀리니, 고다르, 키아로스타미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들이 플로베르를 읽기는 했겠지만, 플로베르는 그들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네 번째 증인. 에두아르 마네. 1862년 50mm 표준렌즈로 야외에 나가서 찍은 것만 같은 초점으로 풀밭에서의 점심을 그렸다(<풀밭 위의 점심 식사>). 마치 아마추어 배우들 같은 어색한 시선 처리. 카메라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누드의 여성. 마주쳤다기보다는 바라보는 시선. 카메라를 애써 피하려는 것 같은 신사복의 남성.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라파엘로, 조르조네를 카피하면서 조롱하는 이 거리감에서 어떤 서사도 상징도 없이 풍속의 외설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 그림 앞에 서면 한참 뒤에 고다르가 이 장면을 극장에 가서 나나에게 요구했을지도 모른다고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비브르 사비>). 사진이 아니라 인상주의 그림들이야말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된다. 이들이 교육한 것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미래의 감독들이었다. 다섯 번째 증인. 샤를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1869년, 마침내 마차에서 내려서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파리의 여기저기를 시선으로 건드린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지나가다(promener), 라는 동사를 쓴다. 때로 지나가면서 열린 창문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문장의 주어 산책자(frâneur)는 영화가 정지해서 시작했을 때보다 먼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영화적인 것이 있었다. 이걸 다시 각색한 베냐민의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영화를 보는 방법에 관한 가장 위대한 책이다. 그다음에는 탄식이 있었다. 1947년 어느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그리피스, 대부분 <국가의 탄생> 혹은 <인톨러런스>를 말하지만, 나에게는 <부서진 꽃>과 <동쪽으로 가는 길>로 기억되는 그리피스. 그가 사망하기 한해 전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영화에서 사라진 게 있어요.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아름다움이요.” 나무도 그대로 있다. 바람도 그대로 불고 있다.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숏. 이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할 것이다. 먼저 선을 그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앙드레 고드로와 톰 거닝이 초기 영화사에서 잡아당긴 시네마 오브 어트랙션(들)(cinema of attraction(s))2)으로 돌아가는 따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 아름다운 대답을 나는 일부러 잘못 읽을 것(misreading)이다. 그리피스의 대답은 전쟁 직후에 나온 것이다. 물론 그리피스가 아직은 우리보다도 이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전쟁은 서쪽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끝났고, 동쪽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끝났다. 영화에서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스펙터클. 우파(UFA)의 실내 세트장, 치네치타의 야외 세트장, 파리의 카페에 모인 초현실주의자들, 모스크바의 쿨레쇼프 공장의 제자들, 로스앤젤레스의 값싼 오렌지 농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세상을 자신들의 현장에서 다시 만든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 안에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접속부사로 하나의 역사를 둘로 절단시키는, 문자 그대로, 단절이 있었다. 1945년보다 영화와 세상이 더 멀리 벌어진 적은 없었다. 네장의 사진으로 남은 수용소. 빛에 눈에 멀어버린 백색 필름과 남겨진 참상으로 이루어진 두개의 도시. 구태여 사망자의 수를 헤아릴 필요가 있을까. 건설 대신 파괴가 있었고, 발명은 전멸로 이어졌다. 세상에 대해서 영화는 갑자기 몰이해의 상태가 되었다. 로버트 플래허티는 알래스카에 가서 가혹한 추위와 바람 속에서 5분20초 동안 바다표범을 잡는 에스키모 나누크를 ‘연출’했다. 지가 베르토프의 기록. (혁명이 벌어지는) 세상을 영화는 과장하고 있었다. 험프리 제닝스의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 영화는 세상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 매듭이 끊어졌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는 세상의 현실에서 소외되었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소외를 다룬 것이 아니라, 영화가 놓인 소외 상태를 다룬 것이다. 안간힘을 쓰고 쫓아가는 안나 마냐니는 차를 놓쳤고(<무방비 도시>), 아버지와 아들은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자전거 도둑>). 잉그리드 버그먼은 가까스로 손을 놓친 남편과 포옹하지만, 군중은 주위에 서서 영화 촬영 현장을 구경한다(이탈리아 여행>).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맞은편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며(<달콤한 생활>), 모니카 비티는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화산 에트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정사>). 그들은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을 보지 못한다. 물론 그들은 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은 텅 빈 공백의 의미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이 홀로 남겨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편의 영화가 본 것이 없음을 인정한다. 클로드 란즈만은 어떤 자료화면 없이 증인들을 만나고 또 만난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 관해서 듣고 또 듣는다(<쇼아>). 여자가 말한다. “나는 전부 보았어요.” 남자가 말한다. “아니, 당신은 본 게 아무것도 없어.”(<히로시마 내 사랑>) 이보다 더 간명하게 영화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저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공백을 바라보면서 기표만을 경유하여 기의를 상상한다. 영화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를 상상하는 예술이 되어갔다.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번 더 할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 할리우드의 위대한 이름들이 일제히 스튜디오로 철수한 것은 사물(das Ding)로서의 세상을 마주 보지 않기 위해서, 왜냐하면 너무 흐릿해서 구별할 수 없는 사물로서의 장소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그래서 세상과 비슷한 장소로서의 사물의 시뮬라크라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스튜디오로 피난하였다. 장소와 사물을 뒤집어서 두번 사용한 자리를 반복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스튜디오의 정치경제학과 유토피아 사이의 협상. 명단의 목록들. 전쟁이 끝나자 필름누아르가 전염병처럼 음산하게 창궐한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서부극은 얼마나 안전했을까. 멜로드라마는 히스테리와 신경증으로 가득 찬 ‘홈’(home) 안으로 철수하였다. 그들은 문법의 대가들이었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그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들은 영화를 세상과 더 잘 구분시켜주었다. 그러면서 어떤 객관적인 재현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무게로부터 그렇게 자유로웠을까.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이 은유에 몸을 감추었을 때 무언가 거기서 결여의 형상이 되었으며, 환유로 대체됐을 때 물신주의에 사로잡히면서 세상을 피해갔다. 그러면 재난 이후를 겪는 영화에서 무엇을 느껴보아야 할까. 재난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견뎌내지도 못했을지라도 느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미지 앞에 마주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수께끼 앞에 서서 느껴보는 감정은 더도 덜도 아닌 고독이다. 기댈 곳 없는 그 느낌. 영화의 고독. 고다르는 구태여 영화의 죽음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고다르는 영화가 죽은 다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일은 그걸 확인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폭력이 펼쳐놓은 형상으로 남겨졌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폭력을 보게 될 것이다. 고다르는 영화의 고독을 마주 본 첫 번째 영화감독이다.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말하겠다. 고다르는 그리피스 이후 두 번째 영화감독이다. 고독한 영화가 질문을 했다. 여전히 가능한가? 무엇이 가능한가? 어떻게 가능한가? 시급한 질문. 눈앞에 있는 세상. 손에 든 카메라. 그 둘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영화와 세상 사이에서 안과 바깥을 질문하는 대신에 이제는 항상 영화가 세상 안에 있음을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긍정하고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계속해서 세상을 향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영화의 새로운 윤리가 되었다. 그렇다.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이 아름답다는 것 을 볼 수 있을 때가 끝났다. 그러면 나무가 재가 되었을 때 바람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의 세계성(Weltlichkeit)은 다시 정의되어야만 했다. 재난 이후의 영화 앞에 서 있는 고다르의 고독은 그런 의미에서 실존적 고독이 되었다. 이때 고다르는 에이젠슈테인과 마찬가지로 몽타주를 사용했지만, 그들은 정반대로 이용했다. 한쪽은 그렇게 해서 낡은 세상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의 원리를 만들어냈지만, 다른 한쪽은 재난을 감추는 세상의 스크린을 찢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도 부숴야만 했다. 재난 이후에 세상이 더이상 즐겁지 않은 것처럼 고다르는 재난 이후에 극장이 더이상 즐거워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두 가지 사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렇게 고다르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자마자 찬사를 바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왜 허우샤오시엔이 <네 멋대로 해라>를 보고 비로소 <펑꾸이에서 온 소년>을 찍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틀림없이 내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 영화에서 자본의 문제. 고다르는 애처롭게 돈을 빌려 달라고 옛 친구 트뤼포에게 편지를 썼다. 로셀리니는 텔레비전 방송국에 가서 영화를 찍어야만 했다. 히치콕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주겠다고 했을 때 퉁명스럽게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에게 양보했다. 영화에서 자본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미학만 논할 때 철이 없어 보이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처음에는 둘로 나눠진 것처럼 보였다. 한쪽에서는 자본의 문제,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의 문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다음 이제 단 하나의 문제가 되었다. 자본의 문제. 그때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단 한순간도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데이비드 O. 셀즈닉은 앙드레 바쟁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앙드레 바쟁은 셀즈닉이 제작한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MGM 스튜디오의 누구도 크리스티앙 메츠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티앙 메츠는 못마땅하지만 를 예로 든다. 아메리칸 조이트로프는 장 보드리야르에게 관심이 없다. 장 보드리야르는 <지옥의 묵시록>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로 들었다. 영화의 이론(들)은 한가하게 영화를 개념화하면서 자본의 법칙을 외면하고 고상한 언어를 노래한다. 교실의 학생들은 현장에 나가서야 비로소 영화라는 상품의 하부 토대의 실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 다음 자신이 하는 일이 예술인지, 사기인지, 아니면 범죄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영화를 선택했을 때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분쇄기 안에 들어갔음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라는 자본주의의 식민지. 일단 영화 안에 들어오면 누구도 방관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로베르 브레송은 돈을 구하기 위해 로마까지 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타르콥스키는 독일 제작자들과 긴 협상을 벌이다가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데이비드 린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내내 제작사와 방송국을 번갈아 전전하며 돈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예술가들은 진정성을 말한다. 자본가들은 이 시장에서 진정성이 잉여가치를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연대하면서 대항한 긴 역사가 있다. 일시적이지만 세 번째 길을 이야기한 영화들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용기 있는 영화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자본가들은 이 저항을 통해 점점 더 세련된 전선을 만들어낸다. 더이상 아무도 ‘해방’을 믿지 않는다. 실재를 보기 위해서 애쓰지만, 현실이 이 모든 것을 덮어쓰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이데올로기가 개입한다. 나는 맨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고 있다. “오늘날 영화에서 사라진 게 있어요.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아름다움이요.” 당신이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무슨 영화를 보아야 하나요. 자, 알겠다. 이제 여기서는 그걸 보기는 틀렸다. 하지만 다른 별에서는 그걸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자포자기한 아리아가 어디선가 들린다. <스타워즈>는 서둘러 도착한 다음 세기의 첫 번째 영화이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스페이스오페라라고 불렀다. <니벨룽겐의 반지>가 예고한 것은 나치즘이었다. <스타워즈>를 찍으면서 조지 루커스는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미 다음 세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부르는 아리아, 한번 더 부르겠다. 어디에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숏이 있나요.

씨네21 추천도서 -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인권 최전선의 변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창비 펴냄 영화 <해피엔드>에서 코우와 유타는 길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재일한국인인 코우만이 체류 증명서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다. 근미래가 배경인 영화지만 이와 유사한 사건은 한국에서도 시시각각 발생하는 중이다. 몽골인 부모님과 어릴 때 한국으로 이주한 고등학생 민호는 친구들 싸움에 휘말리고, 경찰은 민호만 연행한다. 친구들이 “얘는 잘못 없다”고 증언했음에도 경찰은 민호가 미등록 신분이라서 내보낼 수 없다며 출입국 당국에 인계하고, 민호는 수갑이 채워진 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거쳐 구금 시설인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내진다. 한국에서만 살아 몽골어도 서툰 민호는 강제 퇴거를 명령받고 몽골로 쫓겨난다. 부모와 함께 이주한 아동은 부모의 한국 체류 자격이 상실되면 미등록 이주 아동으로 분류되어 기본권도 보호받기 어렵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법’의 울타리에는 무수한 인권의 빈틈이 존재한다. 민호는 미성년 아동으로서 보호자에게 보호받을 권리를 박탈당했고 가족과 강제 분리조치되었다. 연고도 없이 몽골로 쫓겨난 민호 사건 역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변론을 맡았다.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인권 최전선의 변론>은 공익변호사단체 ‘공감’이 수행한 사건들 가운데 한국 사회의 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담당 변호사들이 법정에서의 과정을 조밀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주 난민이라는 이유로 붙잡혀 보호소 독방에서 새우 꺾기 고문을 당한 무라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피해자, 건강상의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었음에도 취업을 강요받고 사망한 피해자, 성소수자 난민의 인정 소송,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등. 인간의 기본 권리조차 싸워 얻어내야만 했던 이들과 함께한 변호사의 기록은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물음이다. “설마 그래도 여긴 한국인데, 이렇게까지 야만적으로?” 변호사 스스로도 자문했다는 사건 과정을 읽으면 부끄러우면서도 암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민호의 담임 선생님이, 피해자가, 그의 가족과 이웃이 포기하지 않고 끝내 혐오와 편견, 차별에 맞서 싸운 낱낱의 기록은 우리가 쉽게 세상을 비관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을, 인권의 최전선을 지켜야겠단 다짐을 하게 한다. 여성, 난민, 아동, 이주민, 노숙인, 성소수자, 장애인, 임시직 노동자… 누구도 차별해도 괜찮은 존재는 없기에. 오늘도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대해 공감하고 상상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제도의 빈곳을 찾아 소수자들의 자리를 기입하고자 분투합니다. 단 한명이라도 제도 밖의 예외적 존재로 남겨두는 것은 결코 정의(正義)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52쪽

[특집]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지브리화되었나

지난 3월 말,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이 자신의 SNS에 챗GPT-4로 생성한 지브리 스타일의 프로필 사진, 일명 ‘지브리 프사(프로필 사진)’를 올리자 전세계 사람들이 너도나도 따라 올리는 이색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챗GPT 사용자도 5억명에서 2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특히 한국에선 미국 다음으로 사용자가 늘면서 이 유행을 주도했다. 그렇다면 때아닌 이 지브리 밈은 우리나라에서 왜 그토록 관심과 인기를 끌었을까? 그 원인을 생각하다가 문득 1990년대 어느 해 겨울, 홍대 거리의 한 카페 앞에 서 있던 토토로 모양의 눈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살짝 해볼까 한다. 아침잠을 설치게 한 특선 만화 지브리 밈과 관련해 머릿속을 정신없이 뒤지다 보니, 어느새 기억 저편의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마땅한 놀이가 없던 시대, 텔레비전에서 매주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에게 큰 위안과 즐거움을 주었다. 당시 애니메이션은 ‘TV 만화’로 불리며 일본산 작품이 방송국마다 경쟁하듯 전파를 탔다. 특히 방학이나 공휴일 아침 시간대에 ‘특선 만화’라는 타이틀로 미국이나 일본의 극장용 작품을 자주 방영했는데, 눈곱 낀 눈을 비비면서 비몽사몽 본 기억이 난다. 지금은 세계의 거장이 된 스튜디오 지브리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20대에 참여한 도에이 초창기 작품들도 이때 처음 보았다. 그중 1975년에 방영된 <장화 신은 고양이>가 뇌리에 짙게 남아 있다. 무서운 마왕에게 쫓겨 높은 탑 꼭대기에 올라 제발 해가 뜨기를 빌며 부둥켜안은 소년과 공주…. 자신도 모르게 두손을 꼭 잡고 흑백 브라운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추억, 나만 갖고 있지는 않을 듯싶다. 웃픈 사실은 이 작품들이 일제가 아닌 미제로 둔갑해 소개됐다는 점이다. 미국에 수출된 일본산 필름을 미국산인 것처럼 수입했기 때문.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며 일본 문화를 개방하지 않았던 시절, 방송심의규정을 통과하기 위해 쓴 깜찍한 속임수였다. 그래서 누가 그렸는지, 어떤 회사가 만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미야자키와 처음 만났다. 이후 그가 메인으로 참여한 명작 동화 소재의 <플란다스의 개>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가 차례로 방영되면서 비로소 지브리 스타일이라는 것을 접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하자면, 지브리 스타일은 미야자키 고유의 것이 아니다. 1958년의 <몽견동자> 와 <백사전> 때부터 제작사 도에이 동화에 하나의 전통처럼 내려온 화풍에다 미야자키의 만화적인 몇몇 특징이 더해져 탄생했다. 이는 지금도 후배 애니메이터들에 의해 미세하게 진화하고 있다. 열혈 소년과 감성 소녀, 안방극장을 찢었다! 코난 세대 구별법을 아는가? 코난을 아느냐고 할 때 <미래소년 코난> 을 말하면 구세대, <명탐정 코난>을 말하면 신세대라는 철 지난 우스갯소리다. 이처럼 <미래소년 코난>은 1980년대 우리 어린이 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지브리 스타일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기발한 액션과 세기말 메시지로 TV 시청률도 고공행진이었는데, 방송국에 재방영을 요청하는 어린 시청자들의 전화가 쇄도했다는 뒷얘기도 있다. ‘푸른 바다 저 멀리’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가을 운동회 때 응원가로 목이 터져라 불렀고, 반마다 포비(코난의 단짝)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이 한둘은 꼭 있을 만큼 몰입감도 상당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한국 최초의 지브리 밈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래소년 코난>이 남자아이들의 로망이었다면, 1985년에 방영된 <빨강머리 앤>은 여자아이들의 로망이었다. 이화여고 신지식 선생이 국내에 처음 번역한 캐나다의 성장소설이 지브리 스타일로 TV 화면에 나오자 사춘기 여학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앤을 담당한 성우 정경애의 목소리는 캐릭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높은 인기에 한몫했다. 그녀의 호소력 있는 감성 보이스는 일본의 오리지널 성우보다 찰떡궁합이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우리 문단엔 소설가 백영옥처럼 당시 <빨강머리 앤>을 보며 작가가 된 사람이 꽤 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시청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가 크다. 201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 한자리를 차지한 ‘앤 컬처’도 이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미녀와 야수> 하면 디즈니 작품을 떠올리듯 이제 <빨강머리 앤> 하면 어김없이 이 지브리 스타일의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애니 덕후의 소장 1티어 1980년대 후반, 비디오의 대중화로 지브리 스타일은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서울 명동의 회현 지하상가는 애니메이션 덕후들이 전국에서 시도 때도 없이 모여드는 본산이 되었다. 그곳을 통해 이전까지 애니메이션 잡지나 무크 등 해설과 스틸컷으로만 봐왔던 귀한 작품들을 비디오테이프로 소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가게가 용산이나 잠실에도 있었지만 명동처럼 많지 않았다). 당연히 이들 모두 불법복제였다. 해상도 420이라는, 당시로선 높은 해상도를 자랑하는 레이저디스크로 암암리에 카피한 해적판…! 하지만 일본 문화 개방이 안된 상황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은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팔전자, 현대전자, 형음악실 등 애니메이션을 좀 봤다는 사람치고 이들 가게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품목은 <이웃집 토토로>나 <천공의 성 라퓨타> 등 지브리 작품이었다. 구입을 예약한 사람이 너무 많아 일주일 이상 기다리는 것도 예사였다. 무엇보다 이 비디오테이프들이 전국 대학가를 돌면서 지브리를 테마로 한 소규모 애니메이션 영화제와 PC통신 동호회가 주도하는 감상회가 열렸다. 한편 일부 덕후들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영화 개봉일에 맞춰 직접 일본에 가서 <붉은 돼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을 직관했다. 이른바 ‘원정 관람’이었다. <모노노케 히메>가 발표된 1997년은 그 기묘한 현상의 정점을 이루었다. 그래서 대체 지브리가 뭔데 비싼 해외여행 비용을 써가며 보느냐는 말도 무성했다. 유난을 떤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은 지브리처럼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동경의 싹을 틔웠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 중 많은 수가 훗날 대중문화 각 분야로 진출해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서두에 언급한 홍대의 카페에 서 있던 토토로 눈사람도 아마 그런 꿈을 가진 학생이 만들지 않았을까? 지금은 꼰대가 됐을지 모를 X세대의 자유로운 일상의 한편에 어느새 이렇게 지브리가 들어와 있었다. 젊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1998년 일본대중문화개방 이후 지브리는 우리 일상에 더 깊고 더 넓게 자리 잡았다. 물론 지브리 판권 전쟁이 치열하게 치러진 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필두로 국내에 정식 개봉된 지브리 명작들은 성적이 그리 썩 좋지 않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힘든 시기를 지나 2002년 개봉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덕후의 벽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큰 호응을 얻으며, 관객 200만명이라는 디즈니급 흥행을 거두었다. 2004년 겨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300만명을 흥행 몰이해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대세임을 입이런 사실을 직접 들었다. 이같은 현상은 영화계에만 국한되지 않는증했다. 이후 <고양이의 보은> <게드 전기: 어스시의 전설> <벼랑 위의 포뇨> 등 신작이 속속 개봉하면서 지브리는 어느 영화 제작사보다 우리와 가까워졌다. 이런 흥행력과 친근감은 당연히 관련 굿즈의 판매로 이어졌다. 학생들의 가방에는 토토로 액세서리가 달리고, 책상에는 하울의 피규어가 놓였다. 과거 지브리 캐릭터에 고개를 갸웃하던 사람은 줄고, 굿즈를 모으는 사람은 늘어 두터운 팬층을 이루었다. 이에 지브리 굿즈 숍은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지브리 음악으로 잘 알려진 히사이시 조는 <시네마 천국> 등의 엔니오 모리코네와 함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음악가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테마곡 는 지금도 여전히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에 곡 신청이 이어지고, 클래식 음악 콘서트에선 단골 연주곡으로 눈길을 끈다. 지브리 작품은 시각뿐 아니라 청각의 즐거움마저 주고 있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에 미야자키의 세계관이나 지브리의 성공담을 다룬 프로그램이나 기사의 노출도도 급상승했다. 2000년대, 트렌드 측정 기준이 된 포털사이트 검색에도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단어는 매년 5위 안에 들었다. 젊은이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브리 스타일로 불리는 미야자키의 화풍은 불법의 시대 이후 합법의 시대에 우리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이 모두가 현재진행형이다. 토토로는 옥자를 낳고 2017년 프랑스의 칸영화제에서 <옥자>의 감독 봉준호는 “어릴 때부터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 중에 자연과 생명에 대한 작품을 만들면서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듯하다”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옥자>는 <이웃집 토토로> 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토토로의 배 위에서 곤히 잠든 메이를 연상시키는 해외 포스터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전 <설국열차>는 사회 계급의 갈등이라는 미야자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를 답습했고, 최신작 <미키 17>에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왕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크리퍼라는 벌레형 우주 생명체도 선보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에게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창작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었다. 과거 다른 영화에도 비슷한 예는 여럿 있다. 2005년 극장가 흥행 1위였던 <웰컴 투 동막골>은 마치 <미래소년 코난>의 무대 하이하버를 실사로 옮긴 듯하다. 어릴 적 <미래소년 코난>에 열광했던 경험과 그 메시지를 말하던 박광현 감독의 인터뷰로 미야자키의 영향력을 십분 느낄 수 있다. 또 같은 해 발표된 <청연>은 원래 <붉은 돼지>를 롤모델로 삼은 본격 항공영화였다. 지브리의 열렬한 팬이던 해당 기획자에게 이런 사실을 직접 들었다. 이같은 현상은 영화계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 유행에 민감한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이승환의 노래 <꽃>의 뮤직비디오에선 <천공의 성 라퓨타>의 SF 세계관을 느낄 수 있고, 그룹 코나의 <마녀! 여행을 떠나다>와 장나라의 <키키>를 들으면 <마녀 배달부 키키>를 떠올리게 된다. 드라마 <궁>의 주제가 를 제이와 듀엣으로 부른 남자 가수는 ‘하울’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드라마, 상업디자인 등 대중문화는 물론이고 생각지 못한 다양한 분야에까지 지브리가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그야말로 ‘지브리 사조(思潮)’라고 불릴 만하다. 올봄, 세계인의 SNS을 뜨겁게 달군 챗GPT의 지브리 밈은 이 거대한 흐름의 한 지류에 불과하다. 순수하고 아련한 세계를 여는 열쇠 미야자키가 일으킨 지브리 사조는 오래전부터 전세계인의 창작 영역에 소소하게, 혹은 막대하게 영향을 끼쳐왔다. 2021년 블록버스터의 본고장인 할리우드에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이 세워졌을 때 첫 전시회로 미야자키의 창작 세계를 다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상업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미국에서, 게다가 자신들의 영화 역사를 드러내는 대규모 시설에서 개관 기념 전시의 테마를 미야자키 하야오로 정했다는 사실은 이미 그의 영향력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이 대단한 인지도는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1963년 <멍멍 주신구라>에 동화 참여를 시작으로 2023년 마지막 장편으로 발표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미야자키는 백발의 야윈 모습이 가엾을 정도로 꼬박 60년을 제작 현장에서 쉼 없이 달려왔다. 필름영화, 흑백TV, 컬러TV, 2D 디지털영화, 3D CG영화의 시대를 거치며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꾸준히 주목받은 세계 영상 역사상 유일무이한 행보다. 미야자키는 모든 세대를 관통한다.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TV나 영화를 보기 시작해 사춘기를 거쳐 청년이 되고 중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창작 세계와 함께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또 지브리 작품의 영상과 그림은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 시대에 지브리 스타일이 유행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그저 그 시점이 언제일지가 문제였을 뿐…. 순수하고 아련하다는 말은 지브리 스타일을 가장 잘 대변한다. 부드러운 선과 따뜻한 색감은 그 느낌을 구현하는 수단이다. 미야자키 작품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AI로 만든 지브리 프사는 우리가 지브리의 순수하고 아련한 세계로 들어가 빡빡한 현실을 잠시 잊고 쉴 수 있는 비밀의 열쇠였는지도 모른다.

[리뷰] 몽환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실험, <퀴어>

1950년대 멕시코시티, 작가 리(대니얼 크레이그)는 술과 마약에 중독된 채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리는 곁을 지켜줄 상대라면 가리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의 호의는 종종 불쾌한 추파로 오해되거나 자신을 겨냥한 조롱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외로움으로 방황하던 리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유진(드루 스타키)을 발견한다. 아름다운 유진에게 마음을 빼앗긴 리와 달리 유진은 그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유진에게 “일주일에 두번 정도만 다정하게 대해달라”며 리는 어떻게든 유진과 마주할 시간을 가지려 한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뒤로 유진에 대한 리의 갈망은 더욱 강해졌지만 유진은 여전히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어느 날, 리는 상대와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약초 야헤에 관해 듣는다. 어떻게 해서든 유진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리는 야헤가 있다는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의 정글로 유진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진의 숨겨진 진심을 확인하고자 한다. <아이 엠 러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본즈 앤 올>에 이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다시 한번 사랑의 열망에 빠진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챌린저스>를 촬영할 무렵부터 각본가 저스틴 커리츠케스와 <퀴어>에 관해 논의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차기작에서도 그와 합을 맞췄다. 소설가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의 자전적 소설이 바탕이 됐으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20대 때부터 해당 소설을 영화화하길 바라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현실적이지 않은 몽환적인 색감의 멕시코시티”를 원해 <퀴어>는 로마의 치네치타 세트장에서 촬영되었다. 감각적으로 배치된 레스토랑과 거리를 오가며 리와 유진은 조금씩 거리를 좁힌다. 원작 소설의 기본적인 설정과 뼈대는 유지하면서도 리와 유진이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순간을 농밀한 몸짓을 더한 마술적 시간으로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다. 해당 시퀀스만큼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도전적인 연출 중 하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리와 유진은 교집합이 거의 없는 대조적인 위치에 서 있다. 청년과 중년이라는 시점 차이가 종종 강조되는데,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반면 무언의 초조함을 느끼는 리와 달리 유진은 시종 느긋하다. 리처럼 부유하진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정착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덕이다. 이러한 대비에는 자신이 퀴어임을 인정한 자와 부정하는 자 사이의 갈등 또한 주요하게 작용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배우들의 변화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헬레이저>, 드라마 <아우터뱅크스> 등에 출연한 드루 스타키는 유진 역으로 전작에서 발견하지 못한 매력을 선보인다. 대니얼 크레이그는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는 리로 분해 극의 화자로서 리의 예민한 내면을 전한다. 오랫동안 제임스 본드의 영역 안에 머물렀던 그의 또 다른 일면이 낯설고 반갑다. <퀴어>는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이 영화로 대니얼 크레이그는 제96회 전미비평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제30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제31회 미국배우조합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호명됐다. close-up 리와 유진이 처음 만난 순간, 난데없이 닭싸움이 펼쳐진 멕시코시티 거리의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리는 오직 유진에게만 시선을 고정한다. 슬로모션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유진을 바라보는 리의 표정은 사랑에 빠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대변한다. check this movie <본즈 앤 올>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2022 정체성 혼란을 겪는 상대를 거울 삼아 스스로를 돌아보고, 함께 일탈성 여행을 떠나는 리와 유진의 모습은 일면 <본즈 앤 올>의 리(티모테 샬라메)와 설리(마크 라일런스)를 떠올리게 한다. 긴밀히 결속된 리와 설리 같은 관계를 <퀴어>의 리 또한 갈망했겠으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