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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탭 기본권 | 스탭의 현실과 처우 개선을 둘러싼 난상토론

첫 만남이라는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그동안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오던 비둘기 둥지 등 스탭과 제작자, 투자자들의 첫 만남은 <씨네21>의 기대만큼 순조롭게 풀리지 않았다. 스탭들이 생존권 보장 대책을 제기한 표준계약서, 개별계약제, 최저임금 보장, 인센티브 제도 등을 논의한 뒤 감독급 스탭의 처우문제, 그리고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영화의 시스템 개조 등을 차례로 이야기하려던 애초 계획은 스탭들의 현실에 대한 치열한 문제제기와 제작자들의 고민에 묻혀 충분히 이뤄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날의 테이블은 스탭 생존권을 해결하고 한국영화 시스템을 합리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앞으로 펼쳐질 스탭과 제작·투자자들의 속내 깊은 이야기를 기대하며 이날의 뜨거운 분위기를 지면에 담았다. 편집자 ▶ 참석자 김혜준 (사회·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실장) 김광호 (비둘기 둥지 운영진, 아이디 ‘김호’, 시나리오 작가) 김영철 (촬영감독)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 이은 (명필름 이사·영화감독) 황우현 (튜브엔터테인먼트 이사) ▶ 시간 5월16일 오후 5시 ▶ 장소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 김혜준 지난 1997년에도 몇몇 프로듀서들과 함께 한국영화 시스템 개선을 위해 고민한 적이 있다. 지금은 스탭들의 처우개선이라는 문제가 돌출되어 나온 셈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때 논의와 비슷하다. 고민은 시스템 중 일부는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한편 여전히 문제로 남은 부분들도 존재한다는 데 있다. 그 부분을 고려한다면 또 아직 구체적인 데이터 확보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따라서 한국영화 시스템 개선이라는 큰 틀을 전제하되 표준계약서, 개별계약제, 최저임금 보장 등 제기되고 있는 각 사안들을 떼어놓고 또 부문별로 나누어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오기민 개인적으로 표준계약제에 대한 개념을 재검토하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표준계약서를 주장하지만 그것이 드러내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균일하지가 않다. 일괄계약제에 반대하는 개별계약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든 스탭들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적용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김광호 표준계약제와 관련해서 스탭들이 주장하려는 바는 간단하다. 물론 커진 파이를 더 많이 달라는 수준에 그치지는 않는다. 한 인간으로서 소속감을 갖고 일하게끔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조수들이 말하는 표준계약서, 개별계약제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오기민 물론 그걸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가치판단을 떠나서 그렇다면 일괄계약과 개별계약의 현실적인 차이를 추후에라도 말해달라. 이은 매체를 통해 접하는 현장의 목소리에는 구체성이 결여된 듯 보인다. 비둘기 둥지만 해도 주체와 목적,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잘 안 보인다. 주체문제의 경우 김영철 기사처럼 개인이 제작자를 상대로 요구를 하거나 배우들처럼 에이전시를 통할 수 없다면 집단적인 의지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연출부로서, 제작부로서, 촬영부로서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황우현투자사의 입장에서 계약 상대가 제작사이고, 제작사가 스탭과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니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제작사를 겸하고 있는 입장에서 투자와 제작 이 두 부분이 상충하는 것은 사실이다. 투자자 입장과 제작자 입장에서 합리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나 입장 자체가 다를 수 있다. 처우 개선과 전문성 확보의 함수관계 김혜준 일단 조수급 스탭들로부터 불만이 터져나온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산업의 현황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등 기록적인 흥행작들이 나오고 몇몇 해당 제작사들의 시스템 안정화문제와는 별개로 일부에서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과연 한국영화의 보편적인 경향이 그러한가라는 반문도 있을 수 있겠고. 김광호 시스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뭔가 달라졌다고 하지만 회원들 공통 의견은 사실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프로듀서 혹은 제작자들이 흥행작을 내고 산업적인 측면에서 회사 경영만을 중시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김영철 ‘우리는 지금 잘하고 있다는’ 식의 논리만으로는 곤란하다.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사실 변화가 없다. 단순히 지금이 아니라 좀더 멀리 내다봐야 하지 않을까. 제작자들이 시급하다고 말하는 스탭들의 전문성 확보문제 역시 현 스탭들의 처우개선이 이뤄진다면 길이 뚫릴 것 같다. 오기민 중요한 것은 스탭들의 처우개선문제와 전문성 확보문제가 선후 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건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스탭들이 “돈 이정도 받고 무슨 전문성이냐”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제작자쪽에서는 “임금을 올려주면 전문성이 확보될 것”이라는 주장을 온전히 믿기 힘들다. 한국영화 발전을 이야기하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에 만족할 수 없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두 가지 문제를 함께 풀어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요즘 현장에 나가면 스탭 50명 중 3분의 1 정도가 두개의 작품을 채 만들지 못한 스탭들이다. 감독의 경우 도제시스템은 이미 무너졌고, 그로 인해 연출부의 경우 2개 작품 정도만 하고나면 감독 밑에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감독들 역시 그를 데리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능력있는 스탭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악순환을 해소하고자 전문 조감독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아직 전문 조감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임자가 있어 현재 촬영중인 <고양이를 부탁해>의 경우 그런 시스템을 지향하고 준비하는 작품이다. 10편 이상 참여한 조감독 한 사람만 있어도 현장은 달라진다. 그걸 제작자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런 이들이 있다면 임금을 더 주고서라도 그들을 데려오려고 할 것이다. 이은 연출부와 제작부 이야기를 하는데, 내 경우는 마술피리보다 2∼3년 앞서 만들어졌으니까 회사 차원에서 그런 고민들을 좀더 빨리 했다. 연출부의 경우 과거 긴 기간 동안 붙잡아뒀지만, 우리의 경우 시간을 쪼개서 고용하는 편이다. 대신 제작부 인원의 절반 정도를 정직원으로 채용하고 이들에게 제작파트 프로덕션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제작부라 하더라도 다들 영화적 지식들을 갖추고 입문하기 때문에 손쉽다. 반면 반고용 상태의 프리랜서 연출부, 제작부들의 경제적인 처우개선은 최저생계비에 대한 기준을 만들고 그들 스스로 조직적인 모임을 꾸릴 수밖에 없다. 그 안에서 또한 취업 정보를 공유하고, 일자리를 나누는 일 등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충무로 스탭들의 실태 오기민 프리랜서의 임금과 관련해서는 일단 전체적으로 근거있는 통계가 필요한 것 같다. 개별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대로 했다고 생각하는데, 비둘기 둥지쪽이나 현장에서는 난 그렇게 못 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분명 나온다. 심지어 믿을 수 없을 만큼 황당한 이야기들도 있다. 아직도 이런 데가 있나 싶을 정도로. 전체 한국영화판에서 조수급 스탭들이 어느 정도를 받고 있고, 이를 기준으로 그 이상과 이하를 받는 이들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아보는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지금 우리 이야기가 진척되지 못하는 것도 여기서 기인하는 것 같다. 김영철 동의하지만, 그에 앞서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다. 스탭이 소모품인가 하는 점이다. 그 생각을 안 버리면 답이 안 나온다. 제작사쪽에서는 퍼스트든 막내든 필요에 따라 고용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제작이 끝나면 어떤가. 한마디로 버린다는 느낌밖에 안 든다. 처우도 마찬가지다.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스탭들의 처우에 대해 제작자들이 드는 근거들을 봐라. 다 똑같다. 그게 오히려 더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황우현 제작자들을 선별하지 않고 싸잡아서 문제라고 매도하는 것은 문제다. 내 경우 여러 제작사와 작업을 하는 입장이다보니 한마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 제작사의 경우는 제작부로 하여금 연출부 일을 많이 하게끔 한다. 조감독으로 뽑힌 사람은 감독이 데려오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런 까닭에 편차가 너무 심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 중 돈도 한푼 못받았다는 그간의 사정에는 제작사가 파이낸싱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인력을 붙잡아두려고 하는 것이 한 이유다. 효율적인 제작 공정 확보가 필수다. 김광호 스탭들이 그 정도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구별할 줄 안다. 단 좋은 영화사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아주 강압적이고 관행적인 계약서부터 시작해서 권리를 찾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김혜준 요즘 제작자들 중 심심찮게 타깃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웃음) 개인적으로 스탭들은 이들을 제작자들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보는 이들이 “저 제작사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하는 심리를 일으키게끔 하는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본다. 김광호 감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고 보긴 힘들다. 한 메이저 제작사에 시나리오를 보낸 적이 있다. 그것도 다섯 종류를 보냈다. 결국 영화화는 못하겠다고 해서 곧바로 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없다는 거다. 저작물을 요구한다면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해당 제작사가 다른 방식으로 유용하리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또 좋은 제작사가 있다는 것도 안다. 인정하지만 그건 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오기민 시나리오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마술피리에도 시나리오가 많이 온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다. 끝까지 검토를 하겠다면 모르겠지만.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고 그쪽과 연락이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일단 진행되던 이야기부터 마무리하자. 전문 조감독제를 운용하든 연출부의 역량을 제작부로 이양하는 것이든 개별 제작사별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1년6개월 동안 50만원 받으며 일했다는 비둘기 둥지 사이트에 올라 있는 한 익명의 글을 봤다. 내용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파이낸싱이 이뤄지기 전부터 연출, 제작부들을 꾸리거나 이에 대한 보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분명 있다. 하지만 지양될 것이다. 그건 제작사와 감독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은 한국영화가 빨리 성숙해져야 한다는 촉구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까. 처음부터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없다. 선의를 갖고 일하는 어떤 제작자가 새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갖고 감독과 연출부를 데리고 왔는데, 미안해서 밥이라도 먹이고 있다가 최선을 다해 파이낸싱해도 안 된다고 했을 때 이것의 객관적인 잘잘못은 굉장히 애매한 문제다. 오기민 동감한다. 모든 사람이 악의를 갖고 시작한다는 생각은 안 한다. 아무리 선의를 갖고서 출발했을지라도 애초 예정보다 8개월이 늘어났다면, 또 그에 해당하는 몫이 스탭들에게 지급되지 않았다면, 일한 사람 입장에서는 선의로만 받아들여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은 일한 사람 입장은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제작자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계약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어려운 현실 속에서 고기라도 사주고 했는데 나가면서 저런 식으로 불만을 가진다니 섭섭한 감정을 갖지 않겠나. 이것이 현실이다. 김영철 파이낸싱이 됐건 어쨌건 제작자의 필요에 의해서 스탭을 고용해서 쓰는 것 아니냐. 그들이 껌을 줍건 뭘 하건 필요한 일이 있으니까 고용한 것 아닌가. 솔직히 스탭 입장에서는 그 영화가 망하거나 흥하거나 이런 것은 잘 모르지만, 영화가 성공하고 나서도 남는 것이 없다는 제작자들의 이야기를 나도 16년 동안이나 들어왔다. 스탭에 대한 애정을 가져달라.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달라. 나 역시 16년 경력 동안 3년 전부터 세금을 내기 시작했다. 조수급 스탭의 처우개선은 당연, 하지만… 김혜준 이 문제는 연동되어 있는 사안들이 많지만, 논의를 할 때는 각각 나누어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책임 소재를 따지다 보면 서로 다른 표적을 세우는 것이 고작이다. 일단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찾아야 한다. 시나리오-프로듀서-감독 사이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할 수 있는 현장의 개선점들도 많다. 그런데도 왜 안 되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된 사항을 조감독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고 전가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감독들에게도 책임은 있다. 다시 돌아가서 스탭들이 제작자를 타깃으로 삼기보다는 프로듀서에게 당신이 지급하는 100만원이 타당한 금액인지를 묻는다든지 그럴 필요가 있다. 제작자들 역시 그런 스탭들과 테이블을 마련해서 그들의 의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은 아까 답했어야 했는데, 스탭을 소모품으로 생각한 적은 절대로 없다. 또 조수급 스탭들의 처우개선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이 정도의 인건비가 적절한 것인가는 갑과 을의 자유의사에 따른 계약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지금 시장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다. 호황인 상황에서 정당한 인건비를 요구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아질 것이다. 또한 제작사들 역시 그런 부분에 대한 관심들을 갖고 있다. 인센티브, 보너스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 것으로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해당 프로젝트 과정에서 얼마나 크리에이티한 기여를 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기술분야 감독급까지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작품들의 특성이 다르고 해당 작품의 퀄리티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분야 역시 다 다르므로 그 범위 내에서 유동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오기민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된다. 아직 돈을 벌어 본 적이 없어 시도는 안 했지만, (일동 웃음) 만약 흥행이 돼서 상당히 벌어들였을 때 그 몫이 배우뿐 아니라 스탭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 비율을 정하는 데 있어서 배우, 주요 메인 스탭, 그리고 나머지 스탭들간에 어떤 기준을 적용해서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김영철 인센티브가 작품 기여도 또는 공헌도에 따른 것이라면 조수급들을 포함한 스탭들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본다. 스탭 역시 영화를 만드는 주체 아닌가. 물론 우리가 단번에 모든 것을 해달라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작자들은 흔히 투자자들 앞에서는 이 영화가 잘될 것이라 말하면서 스탭들에게는 돈 구하기가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또 인건비가 상승되면 제작비가 올라가 투자받기 더욱 어려워진다는 말도 오랫동안 들어왔다. 이런 하소연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가. 왜 우리만 어려워져야 하나. 김혜준 그걸 요구할 수는 있다. 다만 인센티브도 당사자간의 계약을 통해 성립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영철 계약서 작성 자체가 평등하게 이뤄지는 것인가. 동등한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 계약서를 이야기하지만, 사실 충무로에서 작성되고 도장 찍고 하는 대부분의 계약서들이 지금까지의 관행을 따르는 문서 아닌가. 내가 <파이란>을 찍을 때, 촬영 기간과 총회차를 정하고, 이 한도를 넘길 때는 재계약을 해야 한다는 점과 내 아래 스탭들의 경우 모두 개별적으로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주장해서 결국 관철시켰던 것은 처우개선의 의미도 있지만 그동안의 관례를 깨자는 의미 또한 있다. 오기민 제작사 입장에선 턴키 베이스의 일괄계약이 아니라, 스탭들이 개별계약을 원한다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경우 촬영부는 일괄계약으로, 조명부는 개별계약으로 했다.그들이 요구해서 그렇게 했다. 제작사들이 개별계약을 꺼린다고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일단 개별계약의 경우 해당인이 일정한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작사 입장에서 나쁠 이유도 없고, 할 수도 있고, 반대할 이유도 없다. 할리우드에서 개별계약제가 나온 배경이 제작자들이 전권을 쥐고 스탭들을 흔들 수 있게끔 한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찌됐건 지금 상황에서는 모순이 발생한다.촬영부를 예로 들어보자. 촬영감독은 촬영팀 내의 구성원을 통제함에 있어 자신의 손을 통하기를 원한다.그런 상황에서 아래 팀원들이 개별계약을 한다는 것은 뭔가 모순이 있다.또 개별계약의 본래적인 의의를 찾자면 전문화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덧붙여 스탭들의 최저 생계비용이 올라가야 한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 이로 인해 제작비가 대폭 상승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문제는 여러 번 말했지만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스탭들도 이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기 위해서는 촬영쪽에서도 이를 위해 내부적인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영철 우리도 안다. 우리 내부가 깨끗하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오야지’가 중간에서 일부 몫을 가로채는 경우도 있고, 숙련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를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오기민 일례로 최근 개봉작들 중 내가 본 두 작품만 놓고 보더라도 포커스가 나가버린 장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작품들은 신생 제작사가 아닌 충무로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제작 시스템을 갖춘 그런 곳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열악한 상황에서 반복되는 악순환이라는 것도 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이자면 처우개선뿐 아니라 동시에 전문기술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촬영부뿐 아니라 기술 스탭들 내부에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제작자뿐 아니라 “너 촬영감독 되면 많이 받을 수 있잖아”라고 말하는 촬영감독이나 “그래 나 감독되면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스탭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프로덕션 과정에 스탭들이 시간이 지나면 ‘서드’에서 ‘세컨’으로, 또 ‘퍼스트’로 올라가는 일종의 과정으로만 결합한다면 완벽한 결과물을 기대하기는 요원하다는 뜻이다. 김혜준 산업화 단계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터져나오는 문제들이다. 배석한 기자가 제작비가 오른 것에 비해 인건비 상승률은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제작자쪽에서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오기민 내 경우만 이야기해보자. <여고괴담>은 순제작비 6억2천만원짜리 영화다. 따라서 내가 사정하면서 깎을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경우 지금 10억원이 들어간 만큼 스타급 배우들과는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그만큼 올랐다. 물론 스탭들 개개인들로서는 자신들의 경력 때문에 오른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김영철 제작비가 50억원이 되는 영화를 준비하는 쪽과 미팅을 갖던 중 촬영, 조명 합쳐 2억원을 요구했더니 프로듀서가 눈이 동그래지더라. 그때 프로듀서가 부른 값은 1억원이었다. 그러니까 촬영쪽은 5천만원에 못 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3년 전 2700만원부터 시작했으니 많이 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해도 2년에 세 작품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잘 나가는 감독의 경우일 뿐이다. 공동의 모색, 문제해결의 출발점 김혜준 산업화 초기라 갖가지 문제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합리적인 수습이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오늘만 해도 적어도 스탭들의 최저생계비에 관한 부분에 대해서 일정 정도 합의점을 찾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더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일단 최저생계비를 포함 적정임금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상한선과 하한선을 구한 뒤 매뉴얼화 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한마디씩 해달라. 오기민 딴 소리 같지만, 가끔 내가 이 직업을 평생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개인 생활 없는 생활이야 젊었을 때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는 무리한 과정이다. 누군가 “결국은 제작자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어떤 영화처럼 배우스케줄 때문에 촬영기간이 8개월까지 늘어나는 경우까지도 제작사쪽 책임으로 돌린다면 “그것까지 예상을 했어야 하나?”라고 스스로 묻게 된다. 가끔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는 게 나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웃음) 이은 어떤 결론은 낼 수 없는 자리였던 것 같다. 다만 스탭들의 처우개선문제는 각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또한 이해당사자들의 조직적인 요구와 함께 자유로운 의견교환 등을 통해 접점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김영철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렇게 모인 것이 처음이다. 나부터도 익숙지 않다. 비둘기 둥지의 스탭들 역시 한번도 자신의 뜻을 주장해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이다보니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서투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해줘야 한다. 오기민 김영철 감독님이 처음 카메라를 잡았을 때처럼 각 단체들의 문제제기 방식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재로선 비둘기 둥지 구성원들이 이름을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순 없다. 제작자들이 모든 스탭의 적정 인건비를 알아서 챙겨줄 것이라고 기대해선 곤란하다. 주제넘은 바람이지만 이 사안과 관련해서 내부 정리뿐 아니라 이를 위한 조직적인 모임을 중심으로 합리적인 제안을 해올 것이라 기대한다. 김혜준 무엇을 풀 것인가는 난상토론 과정에서 드러난 것 같다. 그럼 ‘어떻게’라는 문제가 남았는데 이는 제작자쪽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준 것 같다. 공은 일단 현장 스탭들쪽으로 넘어간 것 같다. 정리 이영진 기자 ▶ 스탭 기본권, 이제는 말할 때 ▶ 충무로 현장 스탭들의 노동현실 점검, 그리고 대안 모색 ▶ ‘비둘기 둥지’는 어떤 모임인가 ▶ 인터뷰 | 촬영조수협의회(가칭) 임시회장 박용수 ▶ 촬영스탭 보수현황 설문조사 ▶ 해외사례 - 미국 ▶ 해외사례 - 일본 ▶ 해외사례 - 프랑스 ▶ 스탭의 현실과 처우 개선을 둘러싼 난상토론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카사블랑카>에 얽힌 뒷이야기들

우연이 만든 컬트 영화사 100년을 결산하는 걸작 100선은 물론, 이런저런 톱텐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카사블랑카>(1942). 전쟁이라는 위기상황 속에 갇힌 인간들의 선과 악이 교차하는 가운데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먼의 사랑이야기가 정점을 이루는 이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컬트영화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 불후의 명작이 크고 작은 우연의 아귀가 절묘하게 맞아들면서 빚어진 모자이크라는 사실을 아는지? <카사블랑카>는 일단 대타들의 행진이다. 여주인공 일자 룬트 역에는 원래 프랑스 여배우 미셸 모르강이 캐스팅됐다. 그러나 자신의 주가를 과대평가한 모르강은 출연료 5만5천달러를 제작사 워너브러더스에 요구했다. 당시로는 워낙 엄청난 액수라 제작자 할 월리스가 골머리를 앓던 중, 스웨덴 여배우 한명이 수줍게 찾아왔으니 이름하여 잉그리드 버그먼. 헤밍웨이 원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여주인공 캐스팅에서 탈락한 버그먼은 모르강이 요구한 출연료의 반도 안 되는 2만5천달러로 만족했다. 걸핏하면 성질을 부리는 통에 악명을 날리던 마이클 커티스 감독도 워너브러더스로서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군입대를 결정하는 바람에 까탈스런 커티스를 대타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험프리 보가트, 즉 릭 블레인의 술집에서 가끔 ‘그 노래’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샘은 엘라로 불릴 뻔했다. 그러나 재즈의 여왕 엘라 피츠제럴드가 빡빡한 스케줄로 출연을 포기, 피아노 건반도 두드릴 줄 몰랐던 둘리 윌슨이 ‘그 노래’를 연주하게 됐다. 정말 가슴 섬뜩한 얘기는 릭 블레인 역이 로널드 레이건에게 돌아갈 뻔했다는 사실. 레이건 입장에서야 평생 통탄했을 일이지만, 험프리 보가트 아닌 레이건의 릭을 봐야 할 고역을 면한 관객으로서야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레이건이 릭을 연기했다면, 덜렁 큰 키로 유명했던 버그먼과 눈높이를 맞추느라 보가트가 사과궤짝에 올라갈 일은 없었겠지만…. 작가 7명이 참가했던 시나리오 작업도 내내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툭 하면 대본이 바뀌기 일쑤라 잉그리드 버그먼은 자기가 남편과 애인 중 누구를 선택하게 될지 끝까지 감도 못 잡았다고 한다. 작가들의 변덕에 질린 보가트는 버그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대사를 자기 맘 내키는 대로 뱉어버렸고. 마지막 공항장면에서 부패경찰 루이스에게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보가트의 그 유명한 대사는 한참 뒤에 덧칠된 것이다. 촬영이 끝나고 3주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이 말이 제작자의 머리에 떠오르는 바람에. 보가트와 버그먼의 사랑의 주제곡 가 영 맘에 안 들던 작곡가 막스 스타이너도 그 참에 러브신을 재촬영하고 싶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배역을 다시 따낸 버그먼이 머리를 잘라버렸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경로로 조금씩 새어나왔던 <카사블랑카>의 제작일화들을 묶어 총체적 전말을 밝힌 것은 미국 영화저널리스트 알리안 하메즈의 저서 <카사블랑카, 과연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나?>이다. 하메즈는 자료수집을 위해 아예 워너브러더스 자료보관실에 눌러 살면서 먼지가 켜켜이 앉은 제작노트, 영수증, 조그마한 메모 쪽지까지 빠짐없이 챙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 자료들로 퍼즐을 엮어가며 이빠진 부분들은 아직 살아 있는 <카사블랑카> 제작 일원들의 인터뷰로 보충했다. 하메즈는 <카사블랑카>의 성공이 제작 당시의 정치상황, 즉 2차대전과 밀접히 연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처음엔 전쟁이 불행수로 작용하는 듯 보였다. 일본의 진주만 침공으로 미국이 참전을 선포한 다음날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는데, 폭격 위험으로 할리우드에 야외촬영 금지령이 내려 커티스 감독은 마분지로 공항 세트를 만들어야 했다. 그 조잡한 꼴을 숨기려니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 안개라곤 절대 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안개제조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물자절약을 위해 세트를 재활용하느라 <사막의 노래>에 쓰인 세트의 상점 간판들을 불어로 바꿔 달았는데, <카사블랑카>의 프렌치 스트리트 분위기가 그나마 살아난 것은 전적으로 앵무새 두 마리의 우정출연 덕분이다. 이토록 우울했던 상황이 반전된 것은 우연한 계기 덕이었다. 촬영 후반 작업에 들어가는 시점에 연합군은 북아프리카로 진격, 곧바로 카사블랑카를 점령했다. 워너브러더스의 신작 제목이 하필이면 <카사블랑카>라는 사실에 다른 제작사들은 배가 아파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우연의 일치에 고무된 제작자 할 월리스는 연합군의 카사블랑카 점령장면을 새로 끼워넣고자 했지만, 커티스 감독의 유명한 고집 덕택에 3류 전쟁영화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던 <카사블랑카>는 불후의 명작이라는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1943년 1월, 작품이 개봉된 첫주, 고맙게도 처칠과 루스벨트가 카사블랑카에서 만나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카사블랑카>의 행운은 절정을 이룬다. 전쟁이 영화를 팔아주니 더 좋은 선전효과를 어디서 바랄 것인가! 지난 4월 초 출간된 하메즈 저서의 독일판 추천사를 쓴 베를린 영화박물관장 게로 간더트는 유대계 독일영화인들의 운명이 <카사블랑카>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말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나치 군인들 역할도, 나치를 피해 미국행 비자를 학수고대하는 망명객들 역할도, 실제로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독일배우들이 열연했기 때문이다. 버그먼의 남편을 못 잡아 안달하는 독일장교 슈트라서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 출연했던 독일영화계의 스타 콘라트 바이트다. <카사블랑카> 촬영장에 출근하다시피했던 빌리 와일더 감독도 “독일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 꼭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베를린=진화영 통신원

영화인회의 비상대책위원장 명계남

● 투사의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전략을 세운 뒤 우회로까지 꼼꼼하게 챙기는 것이 하나라면, 정면돌파만이 최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스타일도 있다.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영화인회의 명계남(49) 비상대책위원장은 누가 봐도 후자다. 그의 원칙은 단 하나.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팔짱 끼고 불구경만 하지 말고 뛰어들라”는 것이다. “관객으로부터 박수받으면 그냥 좋은 평범한 배우”였던 그가 ‘입바른 소리 잘하는 영화인’이라는 평판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능력이 많아 서너 가지 일은 너끈히 해내는 친구 문성근”과 달리 “잘 하는 것이 없어 변죽만 울리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는 게 본인의 해석이지만 ‘모나면 칼 맞는’ 영화판에서 꼿꼿하게 버틸 수 있었던 그의 열정을 폄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올해 심광현 영상원장 임용시 일부 교수들이 “영화인이 아니라”며 문제를 제기하자, “심광현이 영화인이 아니라면, 나도 영화인 안 하련다”며 도발적으로 맞장뜨고, 대종상 사태와 관련 “관객에게 죄스럽다”며 집행부 총사퇴를 강하게 주장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 “배우야 원래 이기적인 존재이니, 빚진 것 갚는다는 생각에서 일할 뿐”이라며 “솔직히 영화제작에만 몰두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의 바람이 쉽게 이뤄질 것 같진 않다. 적어도 당분간은. 1년 전, 벌여놓은 일 정리한다고 했는데. 올해 더 바빠진 것 아닌가. 내 국내선 마일리지만 벌써 10만점이다. 이 정도 되면 전용기는 아니더라도 누가 공짜로 태워줘야 하는 것 아닌가. (웃음) 서울과 부산을 1주일에도 몇번씩 오갈 텐데. 보통 주말에 올라온다. 그래서 주초에는 이스트필름 일을 보고, 다음날 영화인회의 비대위회의를 하고 난 뒤 부산에 내려간다. 얼마 전까지 드라마 <비단향꽃무>에 출연하느라 주중에 두번씩 오간 적도 많았다. 힘들겠다…. 혹시 감투 쓰길 좋아한다고 오해하는 사람은 없나. 내 위치가 뒷선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자꾸만 나서게 되니까 그런 말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일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있나. 영화인회의만 해도 그렇다. 다들 현장에 매여 있으니까. 머릿속으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실행하기가 쉽지 않지. 한 조직의 동력을 끌어낸다는 게 그래서 힘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물질적인 피해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도 피곤하다. 어쨌든 그런 부분은 차치하고 뛰는데 이상한 놈이라는 말 들으면 어떻겠나. 어떨 땐 심리적인 공황 상태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문성근하고도 자주 “어떡하면 좋으냐” 서로 묻는데, 결국엔 “해야지, 해야지” 한다. 대종상을 보수적인 영협과 개혁적인 영화인회의가 함께 치르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우려를 표한 사람들도 많았는데. 입장이 다를 수는 있다. 함께 행사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종상 끝난 다음에 어떻게 됐나. 우리가 어른도 몰라보는 패륜아로 몰리지 않았나. 그런 식으로 귀한 인력들이 쓸데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대종상 사태를 겪으면서 느낀 바가 클 것 같다. 영화제의 주인은 관객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아니다. 함께 일하면서 영협쪽과 가장 큰 시각 차이가 벌어진 건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추후 태도에서도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나. 최근 대종상 사태와 관련, 언론이 양비론의 자세를 취했다고 강한 불만을 털어놨는데. 모두 다 똑같은 이기주의자로 싸잡아서 내치는데 안 그럴 수 있나. 자기 이익을 위해 뭔가 노리다니, 말이 되나. 그럴 땐 정말 환멸이 느껴진다. 신구 갈등? 그거 누가 만든 거야. 혹시 언론이 부풀린 것은 아니야? 대종상 사태와 관련해서 결과만 놓고보면 신구갈등, 그게 영화계 현실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속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입장 차이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속시원히 밝히려는 이들이 없다. 젊은 놈들이 다 해먹었다고? 정말 그런가. 경력과 나이와 목소리 크기로만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말 씁쓸하다. 정부의 태도도 그렇다. 조용히 넘어갔으면 하는 그런 마음만 갖고 있으니…. 모양새만 갖춘다고 화합이 되나. 영화진흥위원회 문제도 그렇다. 한쪽에서 영진위 위원들을 두고 말도 안 되는 자격시비를 자꾸 거는데 정부쪽에서 자꾸 귀를 빌려주는 것이 문제다. 추후 일처리는 어떻게 해갈 것인가. 대종상 백서 작업도 그렇고. 대종상 사무국에서 백서가 제대로 나오는지 두고 보겠다. 내년에도 대종상을 함께할 것인가 말 것인가 등의 세부적인 문제는 다음 집행부가 결정할 사항이다. 대종상 사태와 관련, 집행부 사퇴 이후 비대위가 꾸려졌는데. 비대위 논의에서 앞으로 영화인회의의 행보가 결정되지 않나. 다른 이들의 의견들을 좀더 취합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좀더 젊고 진보적인 단체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오기민 프로듀서, 최인기 유니코리아 이사 등 젊은 영화인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인가. 연령이 많이 낮아졌는데, 하던 사람들이 또 해선 곤란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인회의 일처리방식이 제안한 사람이 책임지는 구조라 내가 비대위 위원장을 맡긴 했어도. 영화계가, 그리고 관객 패러다임의 변화가 얼마나 빨라. 그걸 따라가고 끌어가려면 좀더 진취적이고 진보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 정지영 감독이 더 했어야 하지만 우리가 나서게 됐듯이 이제는 좀더 젊은 영화인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문성근 같은 배우가 더 나와야 한다는 말이지. 그런 귀한 일꾼이 1∼2명만 있어도 큰 힘이 되거든. 의식있고, 실천력 강한 그런 사람…. 막말로 언제까지 문성근, 안성기 찾을 거야. 지난번 심광현 영상원장 임용을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는데. 결국 이 문제로 제협을 탈퇴하기도 했다. 자기 시간 내서 연구하고 정책 입안하고 또 정부 관계자들과 싸우기도 하고. 그 사람은 영화계를 위해 자기 몫을 희생한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인이 아니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들어 임용을 취소하라니. 그때가 처음이 아니다. 정지영, 문성근에게도 똑같이 그랬잖나. 문제는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사시로 바라볼 때야. 가슴에 손 올리고 한번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앞에 나서 일하는 사람들 상처주는 일은 그만 해야지. 그들도 사람인데 안 지치겠어? 안 섭섭하겠어? 그런데도 인신공격에 온갖 음해를 해대니…. 아이고. 서울이 싫다. 부산 이야기를 좀 하자. 영상위원회쪽 일은 맞는 편인가. 재밌다. 그렇게 된 건 전 운영위원장이었던 박광수 감독 공이다. 그 사람, 조직 꾸리는 데는 천부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처음 이 일 시작할 때 아무도 박수친 사람 없었다. 이만큼 이뤄낸 건 다 박 감독 덕택이다. 박광수 감독이 후임으로 추천한 것인가. 감독은 새 작품을 구상해야 하니까. 오랫동안 이 일 하느라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자신이 미리 설계 다 해놓고서 나에게 맡아달라고 하더라. 처음엔 나도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더라. 우리나라 문화산업이 다 서울 중심이고 이를 극복하려면 지방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위원회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았고,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잡은 것 같다. 이어받았으니 열심히 할 생각이다. 부산 영상위원회 활동과 관련해서 올해 목표가 있을 텐데. 수영만 요트경기장 옆에 올해 11월까지 스튜디오를 만든다. 그게 가장 시급하다. 지금은 스튜디오가 없으니, 부산에서 촬영하다가도 일부장면 촬영을 위해 다들 서울로 간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예산은 13억원 정도 들 것 같고. 기존 무역전시관 용도를 변경하는 것이라 법적 절차가 까다로운 편이다. 또 하나는 부산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울산 같은 가까운 지차체들과 결합, 영상위원회를 부산에 국한시키지 않고 광역화할 계획이다. 그래서 요즘은 설명회도 부지런히 다닌다. 덧붙여 올해 말쯤 필름커미션 국제박람회도 계획하고 있다. 각 지역 필름커미션들이 부스를 설치할 텐데, 이 기회를 발판으로 아시아권 필름커미션들을 중심으로 협의체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뉴스위크> 같은 데서는 ‘아시아우드’라고 부르지 않나. 부산에서 자체적으로 펀딩이 가능하게 되고, 지역제작사들도 활기를 띠게 되면 금상첨화지. 아무래도 관쪽과 같이 일하다보면 불같은 성격 때문에 틀어지는 일도 많을 텐데. 이창동 감독이 매번 나보고 그런다. 화내지 말라고. (웃음) 공무원사회가 예전과 달리 경직성이 많이 풀렸다고 하지만 나 같은 놈은 적응하기 힘들다. 바깥에서 해주는 좋은 제안들을 들고 가도 설득이 쉽지 않다. <쥬라기공원>이 벌어들인 돈이 자동차 몇백만대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식의 진부한 비유만으로는 발빠르게 대응할 수 없다. 부산영화제만 해도 그렇다.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아시아영화의 흐름을 보기 위해 전세계 인사들이 모여든다. 이런 기회를 적극적인 프로모션의 장으로 삼을 수 있는 프로그램 지원을 아껴서는 안 된다. 부천이나 전주도 마찬가지다. 스타 몇명 더 데려오려고 하지 말고, 영화제를 지역 몇몇 인사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말고 좀더 크게 봐야 한다. <박하사탕> 이후 제작자로서 소식이 없는데. 무슨 소리. 준비하고 있다. 비대위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프로듀서 일에 전념할 거다. 부산에 ‘씨네 씨’라는 영화사도 차려놨다. 마르시아스 심의 <떨림>이 원작인데, 배우 방은진이 연출을 맡는다. 원래 감독을 하고 싶어했던 친구다. 그에 걸맞은 능력도 있고 데뷔 준비도 했고. 이스트필름이야 이창동 감독 데뷔시키고 꾸준히 영화 만들 수 있도록 만든 영화사니까, 하나쯤 더 만들어 재밌는 상업영화 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이창동 감독 신작은 언제쯤 들어가나. 이스트필름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이창동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상하이영화제 다녀오면 본격적으로 들어갈 것이다. 찍기 시작하는 건 아마 11월쯤. 나중에 이스트필름 빚도 갚고, 돈도 좀 벌면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영화 꼭 할 거다. 사실 내가 뭐 하겠다고 해놓고 안 한 게 많은 놈 아닌가. 이번에도 그러면 안 되니까 때가 되면 비밀리에 추진할 생각이다. (웃음) 그래도 명계남은 배우다. 아직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불명>과 아직 개봉 안 한 임종재 감독의 <스물넷>을 끝냈다. 지금은 장선우 감독의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조폭 마누라> 찍고 있고, 곧 <게이머>에 출연한다. 뭐 많은 분량은 아니다. 홍상수 감독이 형은 드라마하지 말고 영화하면서 배우만 하라고 했는데. 술먹고 취해서 그런 건지 소식이 없다. (웃음) 배우 수입으로 생활 유지가 되나. 수입이 더 있어야 하는데, 쓰는 일만 만들어내고 있다. 요즘 배우들 몸값이 치솟고 있는데, 개런티 책정도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할 듯싶다. 이건 어떤가. “어, 저기 명계남이 간다” 하면 100원, 누가 다가와 터치하면 1천원, 싸인해달라고 하면 1만원 뭐 이런 식으로 적립해서 몸값을 매기는 것도 좋은 방법 아닌가. 요즘 몸이 피곤해서 정신상태가 엉망이다. 이해해달라. (웃음) 글 이영진 기자 사진 정진환 기자

인디포럼 | 극실험영화

<바다가 육지라면> 연출 김지현·김나영| DV6mm| 41분| 컬러 대표적인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에 대한 각양각색의 조리법을 TV요리쇼 형식으로 보여주는 영화. 가장 손쉬운 요리인 라면에서 사람들의 개성과 가치관을 읽어내는 아이러니를, 참신한 화법으로 풀어간다. 문화예술계 인사들로 보이는 일곱명의 사람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와 무관하지 않은, 창의적인 방법으로 라면을 끓여보이며 라면의 유래나 특성, 라면에 얽힌 개인적인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계룡산에서 터득했다는 ‘수행정진’ 방법으로서의 라면 끓이기, 화학 조미료의 맛과 향을 배가시키는 방법, 라면에 자연재료를 가미해 자연식품화하는 방법, 양 많은 라면을 골라 대충 끓여 먹기, 라면의 사각 모양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방법 등이 소개된다. 공동 연출자인 김지현 감독은 이번 인디포럼에 리얼리티와 말맛을 살린 또 한편의 극영화 <연애에 관하여>를 출품했다. 인디포럼 개막작. <삶은 달걀> 연출 황철민| DV6mm| 37분| 컬러 삶은 무엇인가? 삶은 달걀. 조금은 썰렁한 유머지만, 여기엔 철학이 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도, 지나고 나면 아무 일 아닌 듯 가볍게 느껴진다는, 현자의 철학. 폐광과 카지노가 나란히 들어선 강원도 산골, 아버지의 굴레는 죽음이고, 딸의 굴레는 아버지다. 딸은 카지노에서 모든 것을 잃은 중년 남자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딸은 그를 집으로 데려와 자살을 권하고, 이를 저지하던 아버지는 자신에게도 미약하나마 생의 의지가 남아 있음을 깨닫는다. 신산스러운 겨울 풍경과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는 작품. 지난해 서울넷페스티벌에 <푸른 하늘 은하수>를 선보이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이고 있는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황철민 교수의 최근작이다. <미미> 연출 임창재| DV6mm| 10분| 컬러 강렬하고 독특한 이미지의 실험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임창재 감독의 신작. 사회 부적응자들이 품은 내밀한 상처나 고민들을, 물과 날개 등의 이미지로 표현해온 임창재 감독은 <미미>에서도 비슷한 테마와 상징을 동원하고 있다. 인형 미미는 외계에서 또는 천상에서 내려온 전령이다. 미미는 강을 건너고 차를 타고 길을 걸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가학적인 소년들의 장난감이 돼서도, 미미는 그들과의 만남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려 하고 간직할 추억거리를 찾으려 한다. 저항하지 못한 채 웃고만 있던 미미는 단절과 폭력으로의 추락을 경험한다. <부적격자> 연출 유상곤| 16mm| 17분15초| 컬러 옥탑방에 사는 남자는 매일 화초에 물을 주고, 술을 마시고, 고무인형과 섹스를 한다. 가끔 멀리 차를 몰아 바람을 쐬러 나가기도 하지만 일상은 여전히 건조하고 지루하다. 꿈 속에서 그는 커다란 성기를 달고 돌진하는 군인도 되고, 바닷속을 거니는 꽃게도 된다. 가끔은 고무인형과 화초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고무인형에 담뱃불로 구멍을 내 보기도 하지만 반창고로 그 상처를 동여주고 다시 일상의 파트너로 삼는다. 스스로 사회와 격리돼 자폐적인 삶을 살아가는 옥탑방 남자는 ‘부적격자’의 전형. 어떤 면에서, 얼마간은 우리 자신도 ‘부적격자’가 아닌지를 생각게 하는 작품이다. <외계의 제19호 계획> 연출 민동현| 16mm| 15분| 흑백 동심의 세계를 만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펼쳐낸 작품. 고등학교 불량배들에게 쫓기던 초등학생들이 낯선 폐건물에 다다른다. 이곳에는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제3의 시선이 있었으니, 그들은 지구를 지배하려는 야심으로 외계에서 날아온 귀신들이었다. <지우개 따먹기>를 선보인 바 있는 민동현 감독은 이번에 다시 한번 동심으로 회귀했다. 대사를 말풍선에 담아 자막으로 처리하는 등 흑백 무성영화 스타일로 가다가, 80년대 댄스그룹 스타일의 춤과 노래로 꾸민 뮤지컬 시퀀스를 보여주는가 하면,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나라 여행>을 패러디하고, <토마토 공격대>의 컬트적인 상상력을 곁들이는 등 발랄한 실험들을 가미했다. <박하사탕>에서 영호의 첫사랑 순임을 연기한 문소리씨가 처녀귀신으로 출연한다. <달이 지고 비가 옵니다> 연출 박혜민| 16mm| 13분30초| 컬러 올 서울여성영화제 아시아단편경선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아가는 어린 남매의 풍경화 같은 일상에,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포개놓은 성장영화다. 집 나간 엄마를 그리며 서로 보듬고 사는 남매는 문둥이네라고 소문난 외딴 집을 기웃거리다 한 청년을 만난다. 동전 마술을 보여주는 청년과 친해진 남매는 함께 어울려 숨바꼭질을 하고, 이 와중에 누나는 청년에게 강간당한다. 누나가 엄마처럼 의지하던 달은 하늘에서 사라지고, 동생은 비오는 하늘에서 떨어진 미꾸라지를 발견한다. 자연 사물의 표정으로 많은 얘기와 느낌을 전하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 <오후> 연출 장명숙| 16mm| 13분| 컬러 덥고 나른한 오후에 쓸 만한 피사체를 찾아 헤매던 사진작가에게 한 청년이 인사를 건넨다. 작가는 청년의 얼굴에 나 있는 화상으로, 오래 전 자신의 카메라 앞에 섰던 꼬마를 기억해낸다. 흉터 때문에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하던 꼬마의 하소연을 흘려 들으며, 꼬마의 얼굴 각도를 고쳐주고 카메라에 담아내는 데 몰두했던 기억. 작가와 청년은 어색한 인사를 마치고, 각자 가던 길을 재촉한다. “삶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비밀스런 우물 같고, 내 두레박은 너무 초라하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사람과 인생을 이야기할 때마다 마주치는, 가책에 가까운 고민과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희망이 없으면 불안도 없다> 연출 염정석| 35mm| 8분| 흑백 늦은 밤, 역 대합실에서 남자와 여자가 마주친다. 남자는 일자리를 구하러 낯선 도시에 찾아온 것이고, 마중 나온다던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다. 여자는 오가는 남자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창녀다.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허탕치고 있던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사람에 대한 기대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는, 어둡고 무거운 오늘의 빛깔과 질감이, 흑백의 나른하고 건조한 영상 속에 녹아 있다. <광대 버섯>의 염정석 감독 작품. <뉴스데스크> 연출 허종호| 16mm| 18분20초| 컬러 <뉴스데스크>는 이야기 전체를 뉴스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무장 탈주범의 인질극, 편의점 습격사건, 40대 실직문제, 불곰 출현 소동, 기상예보와 휴일 스케치가 이어진다. 무장 탈주범의 인질극은 기자가 현지 인터뷰를 시도하면서 비극적인 국면을 맞는다. 공교롭게도 이 날 헤드라인 뉴스에는 모두 탈주범이 연루돼 있었다. 뉴스 토막을 퍼즐 조각처럼 활용, 탈주범의 어제와 오늘을 설명하는 구성의 묘미가 돋보인다. <나는 날아가고… 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 연출 김영남| 16mm| 46분20초| 컬러 올 칸영화제 시네 파운데이션부문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던 작품. 등만 바라보는 사랑,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서 중심을 잃은 사랑을, 남루한 일상의 단면 속에 담아내고 있다. 여자는 사귀어 오던 남자친구가 아니라 자기 친구의 애인을 사랑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친구는 여자의 남자친구를 불러내 여자가 자기 애인과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한다. 여자의 위험한 충동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관계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괴테의 시에서 따온 영화 제목은, 남자가 헤어진 여자친구를 위로하는 극중 대사이기도 하다. 화법과 분위기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향이 느껴지는 작품. <봉자바라> 연출 조명희| DV6mm| 8분| 컬러 소매치기가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질주하는 중이다. 경찰은 그를 저지하기 위해 뒤에서 봉을 휘두르는데, 이때 소매치기가 그의 봉을 바통처럼 이어받아 달리기 시작한다. 경찰은 계주 선수로 선발돼 함께 뛰었던 어린 시절의 소매치기를 기억해낸다. 성인이 되어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마주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낸 작품. <굿 로맨스> 연출 이송희일| DV6mm| 36분| 컬러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유부녀와 10대 남학생의 ‘원조교제’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이 남녀가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왜 만나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자가 남자를 찾아가 밀린 얘기를 하고, 여관을 찾는 식의 데이트는 이들에게 익숙해 보인다. 이들은 감정이 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서로의 존재가 이미 절실해져, 사랑하고 다투고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한다. 흔들리는 남녀의 섬세한 감정의 결을 잘 살려낸 수작. <슈거 힐>에서 동성간의 사랑을 그렸던 이송희일 감독은, 다른 사랑, 다른 세대간의 사랑 역시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살 비디오> 연출 최양현| DV6, 8mm| 23분10초| 컬러 자살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연극배우와 웨이터가 여관으로 향한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는 연극배우의 후배로, 촬영을 부탁받고 찾아왔다. 열심히 살아온 데 대한 보상이 없고 살아가는 의미가 없어 자살을 결심하게 됐다는 하소연을 들으며 후배는 한번만 더 생각해 보라고 말리지만 소용이 없다. 이들의 최후를 찍는 동안 후배의 흐느낌은 거세진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회한, 죽음을 목격하는 이의 공포와 번뇌가 불안정한 앵글로 고스란히 전해져 ‘실제 상황’으로 착각할 법하지만, 이는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픽션, 즉 가짜 다큐멘터리다. 인디포럼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는 문제작. 박은영 기자 ▶ 독립영화의 축제 인디포럼2001 ▶ 애니메이션 부문 ▶ 극실험영화 ▶ 다큐멘터리부문 ▶ 특별상영작부문

제한시간 60초, 시스템에 접속하라

Swordfish 제작 조엘 실버, 조너선 D. 크레인 감독 도미니크 세나 각본 스킵 우즈 촬영 폴 카메론 편집 스티븐 E. 리프킨 음악 크리스토퍼 영 프로덕션디자인 제프 만 출연 존 트래볼 타, 휴 잭맨, 할 베리, 돈 치들 수입·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개봉예정 8월중 스피디한 액션과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대형 폭발은 여름 극장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진주만>의 폭격이나 게임 출신 여전사의 액션, 미라의 부활이 한 차례 지나간 뒤 극장가에 접속할 <스워드피시>는 첨단 컴퓨터시스템과 속도로 무장한 액션블록버스터. <식스티 세컨즈>의 감독 도미니크 세나가 제리 브룩하이머에 이어 또 하나의 액션블록버스터 제작자 조엘 실버와 손잡고 만든 두 번째 영화다. 60초 안에 모든 종류의 차를 훔치는 <식스티 세컨즈>를 잇는 신작 <스워드피시>의 과제 역시 60초 안에 일을 해치우는 것이다. 스탠리 잡슨은 FBI의 컴퓨터시스템에 침투한 뒤로 전자제품 가게 근처에도 못 가도록 접근 금지령을 받은 해커. 허름한 트레일러에서 살아가는 그의 소박한 바람은 이혼한 아내와 사는 딸 홀리를 데려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가브리엘과 그의 파트너 진저가 새출발을 돕겠다며 유혹적인 제안을 건넨다. “60분이면 끝낸다지? 불행히도 난 60초 안에 끝낼 사람이 필요한데”라며 접근해온 가브리엘은 국제적인 테러를 다스리겠다는 야심을 가진 스파이. 그를 위한 자금이 필요한 가브리엘은 최첨단 경비시스템에 둘러싸인 채 이자만 쌓여가는 정부의 불법 비자금을 털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목표는 코드명 스워드피시, 마약단속청의 불법 비자금 세탁 프로젝트로 쌓인 수십억달러. 하지만 까다롭기 짝이 없는 컴퓨터시스템을 뚫고 금맥에 다가가려면 스탠리 같은 최고의 해커가 필요하다. 스탠리는 일단 가브리엘의 제안에 응하지만, 곧 사이버 은행을 터는 것 이상의 음모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존 트래볼타가 가브리엘, <엑스맨>의 ‘울버린’ 휴 잭맨과 ‘스톰’ 할 베리가 각각 스탠리와 진저로 사이버 공간과 LA대로를 넘나드는 액션에 가담했다. 황혜림 기자

다시 대종상

다시 제38회 대종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종상 문제를 다룬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끝부분을 우연히 보게 됐는데, 우리집 텔레비전 수상기는 사랑받아 마땅한 우리의 대종상이 신구세대의 갈등에 희생이 되고 말았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세대간의 화합을 강권하고 있었다. 정말 대종상은 세대갈등에 상처입은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보면 대종상의 역사는 온갖 로비설과 음모설이 서식해온 어두운 터널이었다. 오죽하면 당대의 활동성 높은 영화인들이 대종상을 거부하자는 집단적 움직임을 두어번씩 되풀이했을까. 불공정심사 의혹으로 상처입고, 운영비조차 마련 못해 해걸이를 하는 수모까지 당한 상. 철지난 냉전논리로 냉전이데올로기에 찌든 당국의 검열을 통과한 영화조차 빨간 딱지를 붙여 시상대 진출을 막던 상. 빛나는 영화의 싹을 발견할 힘을 잃은(아니면 시력이 애초부터 없었던) 노안을 과시하던 상. 빈사 상태의 대종상을 새숨을 불어넣어 긴급구조해온 건 언제나 영화였다. 대종상은 이따금 상 자체와 무관하게 뻗어나가는 한국영화의 뿌리를 잡고 자기가 파놓은 함정을 벗어나곤 했으니까. 대종상의 생존력은, 그래도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상을 갖고 싶다는 영화인들의 소망과 하루저녁 스타탄생의 경주를 기다리는 우리들의 욕망에서 나오는 건 아닌지. 신구가 화합하여 대종상을 살리자는 제안 역시, 대대적인 기획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런 소박한 바람의 표현이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대종상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오답이다. 영화상이란 어떤 의미에서건 일종의 비평적 기능을, 영화의 가치와 의미를 나름대로 읽어내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발견하고, 선택한 영화를 옹호하고, 격려하는 것, 그 일을 제대로 했느냐 못 했느냐가 그 상의 정당성을 결정한다. 올해 인터넷을 통해 관객들 사이로 유례없이 빠르게, 폭넓게 번져간 대종상 시비는 바로 그 역할에 관한 부정적 평가에서 비롯됐다. 왜 대종상은 그런 결과를 보여주었는지, 누구 또는 무엇 때문인지를 정확하게 갈라보는 대신 ‘아버지에게 효도를!’만을 외친다면, 상처는 속으로 곪아들어갈 뿐이다. 무슨 희망으로 대종상을 다시 얘기하느냐는 힐난의 소리도 들린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대종상의 자랑스럽지 못한 수명연장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니 책임을 면하기 어렵겠다. 그러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종상의 문제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자.

미녀와 바람 난 타이어

블랙 제작연도 2001 광고주 한국타이어 제품명 블랙버드V 대행사 웰콤 제작사 엘로우프로덕션 감독 오민호 미녀와 타이어 CF의 상관관계가 오랜 전통을 갖고 있을 것이라 예단했다. 남성을 주요 목표소비자로 삼고 있는 타이어 광고의 속성상, 남자들로 북적거리는 술집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여자사진 일색의 달력이나 주류 광고와 왠지 특별한 친분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이어 광고가 미녀를 내세워 경쟁을 벌이기는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상기해보니 그동안 타이어 광고에서 속도감과 힘을 강조해온 주체는 최불암, 서유석, 최민식 같은 중후한 남성모델이 많았다. 한국타이어의 블랙버드V 광고가 송윤아에 이어 한채영을, 금호타이어의 솔루스스포츠 광고가 엄정화를 모델로 기용해 가열찬 경쟁의 기운을 내뿜고 있다. 섹시함을 이미지 포인트로 삼은 두 미인이 남성의 세계에 진입한 것은 제품 속성에서 비롯한다. 여느 제품과 마찬가지로 타이어 역시 업그레이드의 길을 부단히 밟고 있는 품목. 현재는 스포츠 드라이빙의 개념을 차용한 고성능타이어가 주요 제품군으로 부상해 있다. 일반승용차에 장착하더라도 스포츠카를 모는 듯한 승차감과 속도감을 전해준다는 게 이 타이어의 특징. 블랙버드V와 솔루스스포츠는 안정성과 더불어 날렵한 운전의 맛을 선호하는 20, 30대 젊은층을 주요 소구대상으로 삼으면서 제품의 특징과 타깃의 눈높이에 두루두루 맞는 여성모델에 눈길을 돌렸다. 신사가 금발을 좋아하듯 타이어 광고도 섹시미녀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 제품의 광고가 왜 하필 섹스어필하는 여성을 공통적인 무기로 삼았느냐에 대해서는 뚜렷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여성모델에 대한 1차적 관점은 늘 섹시함에서 출발하게 마련이란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블랙버드V 대 솔루스스포츠’의 경쟁양상이 흥미로운 이유는 솔루스스포츠가 미녀모델로 맞불작전을 구사하고 비교광고의 성격을 지닌 메시지로 블랙버드V에 한판승부를 청했기 때문. 블랙버드V 광고가 시리즈광고의 누적효과를 차곡차곡 챙겨가고 있는 가운데 솔루스스포츠는 갑자기 V보다 빠른 Z가 나타났음을 주장하고 나섰다. 먼저 블랙버드V의 새 광고를 들여다보면 이미 타이어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터를 잡은 브랜드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배경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체코 프라하. ‘휙’ 하는 휘파람 소리가 들리자 블랙버드V가 습기를 머금은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한다. 좁은 골목길을 자유자재로 회전하며 달리는 이 타이어는 손을 어깨춤에 댄 채 도도하게 서 있는 한채영의 다리사이에서 가볍게 급제동한다. 달리는 타이어 앞에 간혹 장애물도 나타난다. 뭉게구름처럼 공중을 부유하는 비눗방울, 민들레씨앗 등 한없이 연약해보이는 소재들이 그것. 그러나 블랙버드V는 비눗방울조차 건드리지 않는다. 그만큼 안정성과 제동력이 탁월한 제품임을 보여주고 있다. 솔루스 제작연도 2001 광고주 금호타이어 제품명 솔루스스포츠 대행사 버튼컴 제작사 IT프로덕션 감독 정창주 이번 광고는 전편에 비해 좀더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자랑하는 길을 택했다. 전작에선 송윤아가 몸에 딱 달라붙는 가죽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노골적으로 섹시함을 과시하며 ‘V가 아니면 달리지 마’라는 도발적인 대사를 들려줬다. 이번에도 ‘V가 아니면 달리지 말라’라는 곱씹을수록 오만(?)하기 그지없는 카피는 그대로 사용됐다. 그러나 새 모델인 한채영은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광고의 여러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로 제구실을 담당했다. 송윤아에 비해 비중은 작아졌지만 이미지는 진일보했다.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꼿꼿한 자세로 타이어를 기다리는 한채영의 자태는 아래위로 여성의 몸매를 훑고 싶은 호기심어린 남성의 시선을 제압하고 남을 만큼 위풍당당하다. 그런가하면 솔루스스포츠는 제품명을 숨긴 채 신제품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티저 광고에서 ‘V보다 빠르다’, ‘Z가 온다’라는 의미심장한 카피를 연달아 사용했다. 비주얼은 자동차의 속도계. 계기판의 바늘은 시속 200km대로 치솟는다. ‘부릉부릉’ 파워를 자랑하는 엔진소리가 귓전을 자극한다. 오픈카에 탄 채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엄정화의 한마디는 ‘따라오지 마’다. 엄정화도 역시 자신만만한 명령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맛보기였고 다음번부터 엄정화는 ‘퀸 오브 카리스마’의 매력을 본격 드러낼 예정이다. 이 광고는 언뜻 블랙버드V를 한수 아래로 취급한 듯 보인다. 솔루스스포츠는 Z개념의 타이어로 보이는데 “V보다 빠르다”고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블랙버드V쪽은 이 광고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갖고 있다. “동급제품도 아니면서 왜 V를 걸고넘어져 상대사 제품에 대해 비방의 뉘앙스를 풍기느냐”며 반발하고 있는 것. 소비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불공정 전략이라는 주장이다. V와 Z는 타이어의 속도등급을 말하는데 솔루스스포츠 광고에서 알려주듯 Z가 한 등급 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속도등급이 타이어의 우열을 논하는 잣대는 아니다. 또 소비자의 타이어 선택기준이 최고속도를 얼마 낼 수 있느냐에만 달려 있지도 않다. 블랙버드V쪽이 반발할 만도 한 것이다. 그러나 타이어가 한번 잘못 구매하면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고관여 제품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다지 정색해 반응할 일은 아닌 듯 보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좋다는 식의 경쟁은 옳지 않지만 이번 광고는 정도를 넘지 않는 장고 끝의 묘수였다. 타이어 시장의 리딩브랜드인 블랙버드V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는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뇌리에 새 개념을 창출하기 위한 좀더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한편으론 이 광고는 블랙버드CF에 대한 관심마저 동시에 유도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솔루스스포츠쪽은 “V와 Z의 차이를 얘기했을 뿐 블랙버드V를 겨냥한 것은 아니니 곡해하지 말라”라고 얘기한다. 얄밉지만 굳이 따질 구석도 없는 소리다. 조재원|스포츠서울 기자

무도장에 부는 복고 바람

Shall We Dance? 1996년, 감독 수오 마사유키 출연 야쿠쇼 고지 HBO 6월3일(일) 오전 9시15분 영화사적 기억으로부터의 해방. 최근 일본 신진감독들의 작품경향을 표현하는 용어다. 1950년대 거장감독들의 모방과 인용이라는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본영화를 만드는 연출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쉘 위 댄스>는 이런 흐름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거꾸로 역행하고 있다. 일본식 소시민드라마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 영화는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영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할리우드 뮤지컬까지 인용하고 있다. <왕과 나> 등의 작품을 모방하면서 <쉘 위 댄스>는 미국식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한없는 찬양까지 내포한다. 어쩌면 <쉘 위 댄스>는 가장 복고적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더 놀라운 점은 이 영화가 미국까지 수출돼 1천만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해 관객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는 것이다. 스기야마는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스기야마는 우연히 댄스 교습소 간판을 발견한다. 그는 여성 강사의 매력에 이끌려 댄스 교습소를 방문하지만 사교댄스를 배우면서 춤의 세계에 이끌린다. 스기야마를 의심하는 부인은 탐정을 고용해 남편의 뒤를 밟게 한다.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스기야마는 춤을 포기하고 자신을 가르친 여선생과 마지막으로 춤을 춘다. <쉘 위 댄스>엔 조연들의 연기가 볼 만하다. 배우 겸 감독인 다케나카 나오토가 춤바람난 중년 샐러리맨으로 분해 익살스런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팬시 댄스>와 <으랏차차 스모부>의 수오 마사유키 감독작이다.

주류는 가라!

Nowhere 1997년, 감독 그렉 아라키 출연 제임스 듀발 장르 드라마 파워 오브 무비 명불허전 “LA에 사는 사람들은 길을 잃은 방랑자들뿐이다.” 토드 헤인즈와 더불어 90년대 하위문화와 게이컬처의 대표주자라 평가받았던 그렉 아라키의 97년작 <아무데도 없는 영화>는 그의 냉소가 잔뜩 묻어 있는 자막으로 시작된다. 그리곤 몽환적인 음악과 함께 이 영화의 주인공 다크가 샤워실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하는 다크는 여자친구 멜의 자유분방한 연애관에 의기소침해 있다. 그런데 몽고메리라는 남학생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그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정작 다크를 황당하게 만드는 일은 다른 데서 발생한다. 갑자기 나타난 외계인이 그의 친구들을 죽이거나 납치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외계인은 다크의 눈에만 보인다. 여자친구의 외도와 갑자기 출몰하는 외계인 때문에 다크는 잔뜩 불안한 상태인데, 한밤에 벌어진 친구의 파티에선 살인까지 벌어진다. 그리고 이제 막 좋아하기 시작한 남자친구 몽고메리는 외계인에게 납치됐다 돌아오더니 바퀴벌레로 변해버린다.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이 영화는 그렉 아라키의 ‘묵시론적 틴무비 3부작’의 세 번째 영화이다. 두편의 전작 <완전히 엿먹은>(Totally Fucked Up), <둠 제너레이션>(Doom Generation)과 더불어 그렉 아라키는 <베벌리힐즈 아이들>류의 주류 틴에이저 영화에 대한 일종의 안티테제로 응수한다. 90년대 LA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10대 아이들의 일탈적인 하위문화와 키치적 감성을 마약과 섹스, 폭력이 뒤섞인 언어로 쏟아놓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에이즈에 대한 공포나 종교화된 미디어, 지배적인 성윤리에 대한 코드들은 모두 풍자와 조소의 대상이 된다. 결코 기성세대 혹은 주류문화와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은 10대의 일탈된 욕망과 공상들을 마치 앤디 워홀의 콜라주된 이미지들처럼 재배열하고 낯설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한편 그렉 아라키의 영화적 도발은 종종 재기발랄함과 신선함을 넘어서 다소 과잉되거나 지나치게 희화화하는 바람에 오히려 그 의미를 상실하곤 한다. 특히 3부작의 마지막인 이 영화의 뒷부분, 카프카의 <변신>을 패러디한 결론에 이르면 ‘도대체 뭘?’이라는 허탈감마저 생기니 말이다. 그런데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생기는 진짜 허탈감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심의를 이유로 주요 장면들이 지나치게 잘려나간 탓에 영화가 더욱 기괴해보인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출시될 때마다 수난을 당하는 그렉 아라키의 영화제목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 영화의 원제 ‘노웨어’(nowhere)가 어떻게 ‘아무데도 없는 영화’로 돌변해버릴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그의 전작, 는 ‘키싱 투나잇’으로 출시되었다).정지연|영화평론가

[인터뷰] <슈렉>의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되었나? =1984년에 디즈니에 입사했으니까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적은 전혀 없다. 나에게 애니메이션은 일이었다. 그런데 이 일과 사랑에 빠졌고 애니메이션은 걷잡을 수 없는 나의 열정이 되었다. 내가 드림웍스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애니메이션을 하기 위해서다. 애니메이션은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은 혁명에 의해 발전한다.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애니메이션의 발전 속도는 경이롭다.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고 있다. `Antz(앤츠)` 이후 2년 만인 지금 `Shrek (슈렉)`을 보면 우리가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어떤 성과를 이루어 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나? =디즈니 스타일은 매우 독특하다. 그러나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에서는 Hertz (미국내 렌터카 시장 1위 업체)대해 Avis(미국내 렌터카 시장 2위 업체)가 취하는 것과 같은 전략을 취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만의 길을 가야 한다. 영화 팬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기다리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바로 이러한 때 <슈렉>이 등장한 것이다. 확실히 <슈렉>은 어느 누구도 생각해본 적 없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이다. 한 회사를 규정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 회사의 상품이다. 그리고 그러한 규정이 내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모두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다. 내가 그러한 것을 의도적으로 주입시키려 한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예술가들이 그들 답기를 원했다. PDI도 그들만의 독특한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전통 애니메이션에서 시도하고 만들어 가는 것들이 새로운 형태를 이루어 내길 바란다. 관객들은 우리에게 그들이 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길 기대하며, 이번엔 또 어떤 걸 보여 줄꺼지? 하고 기대한다. 나는 단 한번도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다는 식으로 영화를 생각한 적 없다. 나는 무엇이 이 영화를 정말 대단한 영화로 만들 것인 가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가 작년에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상을 탔기 때문에 <글래디에이터>를 보러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더 만들 생각이냐? =내가 우리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객이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이것이 가장 큰 목표다. 가족 단위의 어린이 관객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열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는 <슈렉>을 본 16, 18, 20세 관객들의 반응을 지켜 보았다. 그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그것은 가족 관객들이 보이는 것과는 다른 반응이다. 6살, 8살 아이들은 그들 대로 <슈렉>에 나오는 멋진 무술과 불을 뿜는 용,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육체적인 유머나 개그에 즐거워 한다. 당나귀는 그들에게 너무 사랑스로운 캐릭터다. 10대들은 이 영화가 그들이 자라온 세상에 던지는 <불경스러움(?)>에 열광한다. 이 점이 <슈렉>이 10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 방식은 절대 비열하거나 맹렬한 공격이 아닌 장난스러움이다. <슈렉>은 모든 인습들을 꺼내 들어 뒤집고 꺼내 보인다. 등장 인물들에게 풍부하고 복합적인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게 된 것은 첫째, 전형적인 스타일의 동화를 만드는 것이 웬지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전형적인 스타일의 동화를 훌륭하게 만드는 회사가 있다. 나는 우리가 그 분야에서 그들보다 더 잘해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더 이상 그런 전형적인 스타일이 나나 아티스트와 같은 작업자들을 즐겁게 하지도 도전감을 고취시키지도 못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전형적인 동화의 진부한 가치를 뒤집고 조롱하며 독특한 스타일과 톤, 그리고 태도를 갖추게 된 것이다. 나에게 이는 큰 즐거움이며 도전이다. 한 작품으로 5년 반 동안 작업할 것을 생각해 보라. 그 기간동안 쭉 해나가기 위해서는 작품이 재미있어야 한다. -영화를 만들 때 무슨 일들이 진행되는지 알아 보나? 모든 것에 대해 정통한가? =나는 기술자는 아니다. 그러나 20년을 일해오며 배운 것은 목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가 되기 위해 회사가 주창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 말이다. 질문하신 내용에 대한 답변을 하자면 나는 목표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알만큼 충분히 알며,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는데 있어서 객관적일 수 있을 만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적인 면은 잘 모르지만 나는 고성능 측정계와도 같다.(웃음) 사람들이 한방이 가득찰 만큼의 서류를 가지고 와서 그들이 하고싶고 해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그 중 잘못된 것을 금방 알아본다. 예를 들어 Infrastructure를 구축하기 위해 11명의 인력을 쓰는데 왜 48만5천불이나 드냐 어쩌고 저쩌고 물어보면 “어, 4만8천불인데 프린트가 잘못됐네요” 하며 틀린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위험할 만큼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나 다 할 수는 없다. -2002년 아카데미가 최초로 애니메이션 영화라는 별도의 카테고리를 두고 최고 작품상을 수여하게 되는데 <슈렉>이 그 상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받은 선물의 값이 얼마인지 따지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아카데미가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노력과 공로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분수령이다. 가슴이 설렌다. 앞으로 언젠가는 하나의 카테고리에서 평가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이 상은 아까 말했듯이 수만 명의 artist들의 공로를 인정해주는 의미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극영화들과 경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글래디에이터, 초콜릿, 에린브로코비지와 같은 영화와 비교하는데 무슨 차이가 있나? 이 영화들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지 않다. 모두 필름에 찍은 것이긴하다. 그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앞으로 관객들은 무엇을 원하리라 생각하나? =관객들은 영화에 점점 더 많은 것을 바란다. 지금의 실사 영화는 10년, 15년 전 영화와 비교해서 훨씬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애니메이션 영화가 보다 대담하고 기발하기를 바란다. 전통 애니메이션과 컴퓨터 애니메이션 둘 다 할 수 있는 최대한 유닉 (unique)해야만 한다. <슈렉>은 실사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영화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이더라도 실사 영화로는 존재할 수 없다. 내년에 선보이게 될 은 이런 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줄 것이다. 반면에 <엘도라도>는 실사로 만들 수 있는 영화였다. 바로 그 점이 충분히 독창적이지 못한 이유다. 두 쳥년이 파도에 밀려와 벌이는 모험담 같은 영화는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같은 영화로 더 멋지게 만들고 있다. -전체 영화를 사진만큼 진짜같이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나? =그것은 `Creative`에서의 선택이다. 나는 사진처럼 진짜 같은 세상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미학적인 선택이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동화는 아름답고 훌륭해야 한다. 이야기 속의 모든 것들이 실제 삶보다는 더 멋져야만 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과장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과장된 진실이어야 한다. 애니메이션으로 진짜를 만든다는 것은 형식자체의 모순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한편을 만드는 데 수 년이 걸린다. 계획을 세울 때 이미 가능한 기술로 세우는가 아니면 미래에 가능할 기술을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나? =우리는 기술보다 앞서서 영화를 만든다. 돈, 시간, 능력이라는 요소들을 투여했을 때 어떤 것을 해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원하는 바의 90%를 해내든 110%를 해내든 목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어떠리라 생각하나?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18개월마다 변한다. 여기 앉아서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점친다는 것은 미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