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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라이언 쿠글러 감독 X <잠>의 유재선 감독

호러영화 연출자들의 마스터스 토크 시네마엔 국경이 없다는데, 게다가 같은 장르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이 만나면 대화가 더 잘 통할까. 이번 마스터스 토크는 이같은 호기심에서 출발해 그 가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사회문화적 맥락이 녹아든 블랙 호러 영화 <씨너스: 죄인들>(이하 <씨너스>)을 연출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지난 5월16일 러브 스토리와 호러를 절묘하게 엮은 <잠>의 유재선 감독과 온라인으로 만나 여러 이야기를 깊이 있게 나누었다. 전통적인 고딕호러의 소재인 뱀파이어를 1932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로 이식시키는 이야기로 운을 뗀 이날의 대화는 오랫동안 쿠글러 감독을 사로잡았던 공포소설과 초자연적인 존재들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이번 마스터스 토크는 미국의 86년생 젊은 감독과 한국의 89년생 신인감독간 만남으로도 요약할 수 있다. 기존 창작자들과 달리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원작 없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씨너스>로 북미 극장가에서 흔치 않은 흥행 기록을 세웠다. 오리지널 영화가 2억달러를 돌파한 것은 가족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이후 8년 만의 기록이다. 게다가 그는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와 협상을 벌여 2050년이면 <씨너스>의 저작권을 가져가는 데 성공했다. 많은 영화인들이 원작이 될 창작물의 판권을 사거나 리메이크에 몰두하는 사이 자신만의 시나리오로 기존의 관행을 깨는 파격적인 행보는 쿠글러 감독 특유의 젊은 에너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작품 내적인 이야기는 물론 그가 이끄는 제작사 프록시미티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도 마스터스 토크 지면을 통해 공개한다. <씨너스>를 본 관객은 물론 많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줄 이날의 대화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유재선 안녕하세요, 감독님!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씨너스> 굉장히 잘 봤고요. 감독님의 열렬한 팬으로서 마스터스 토크에 참여하지만 이제 영화 한편을 연출한 감독으로서 배우는 학생의 느낌으로 <씨너스>를 보고 궁금했던 질문들을 왕창 쏟아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라이언 쿠글러 아닙니다. 유재선 감독이 품은 어떤 질문이든 그를 바탕으로 대화할 수 있어서 행복한걸요. 이렇게 유 감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한국영화를 사랑하며, 부산에서 제 영화 <블랙 팬서>를 촬영하고 그곳에서 큰 시사회를 가진 적 있습니다. 부산이 참 그립네요. 젊은 나이에 첫 장편영화를 완성한 유재선 감독의 멋진 커리어에도 축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제 첫 번째 장편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마쳤을 때를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에 어떤 기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땐 저 역시 영화를 계속해서 배우는 중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장편영화, 단편영화, 학생영화, 뮤직비디오, 광고 등 하나의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도전하는 걸 결국 해냈다는 의미더군요. 지금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실력이 필요했을 겁니다. 저는 유 감독님을 학생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우리가 만난 ‘마스터스 토크’라는 코너도 적합한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유재선 정말 감사합니다. (웃음) 운이 좋은 케이스였습니다. <블랙 팬서>를 한국에서 촬영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봉준호 감독님의 <옥자> 연출팀으로 일하던 당시, 많은 스태프들이 <블랙 팬서> 촬영에 참여했고 그 현장을 너무 즐겁게 추억하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는데요. <블랙 팬서>가 한국을 배경으로 두었기 때문에 한국 관객에게도 특별히 더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씨너스>를 이야기하는 자리지만 <블랙 팬서>도 굉장히 잘 봤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독님의 데뷔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잖아요. 전작인 <크리드>는 원작 영화가 있었고, <블랙 팬서>는 원작 코믹스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씨너스>는 감독님의 오리지널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연출하셨을 때 전작과 다른 접근 방식이나 마음가짐의 차이가 있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이언 쿠글러 정말 많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전작을 창작하면서 배운 것들을 교훈으로 삼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이 영화가 데뷔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처럼 하룻밤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24시간 영화’가 되리란 걸 알았어요. 다만,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처럼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든, 코믹스를 각색하든, <록키> 세계관을 다른 방식으로 그리든 간에 거기엔 연출자가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해요. 예술가에겐 쉽지 않은 일이죠. 이번 작품 <씨너스>는 따라야 할 스토리의 규칙이 없고, 이 영화를 보러 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관객도 감을 잡을 수 없어 오히려 신났어요. 물론 문학과 영화, 텔레비전에서 이미 다룬 ‘뱀파이어’를 소재로 작업했기 때문에 관객이 뱀파이어 서사에 기대하는 지점과 규칙들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화나 원작이 있는 영화를 만들 때와 비슷한 지점도 있으나 더 쉽기도 했고, 때때로 더 어렵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씨너스>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영화를 판매하는 거였어요. 영화를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준다는 게 무척 어려웠죠. 세상엔 볼거리가 많잖아요. 관객 입장에선 익숙한 세계관의 작품을 선택하는 게 안전하죠.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선택하기엔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케팅의 관점으로 말하자면, 실화를 기반으로 하거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 오리지널 영화를 홍보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유재선 이 영화를 제작했을 때 어려운 점이 영화를 소개하고 판매하는 마케팅 부분이라고 말씀하셔서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감독님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프로듀서인 아내에게 최초로 피칭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본 적 있습니다. <씨너스>를 처음 어떻게 소개하고 피칭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라이언 쿠글러 네, 피칭했죠. 진지 쿠글러는 제 프로듀서이자 아내이고, 파트너인 세브 오해니언 세 사람이 같이 제작사 ‘프록시미티 미디어’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린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 때문에 작업 전에 아이디어 테스트하는 것에 익숙해요. 아내 앞에서 스토리에 대해 피칭하고 제가 상상한 것들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진지는 정말 좋은 첫 번째 반응자예요. 저에 대해 잘 알고 제 취향에 대해서도 잘 알죠. 제가 얘기하면 진지는 “이건 잘 모르겠어” 아니면 “이거 좀 멋지네”라고 말하곤 해요. 이번엔 집에서 피칭했는데 이야기에 빠져드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진지가 듣고는 “꽤 괜찮네”라고 말했어요. 이야기를 다듬어서 캐릭터들이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이 어떤지에 대해 확고히 해야 했죠. 이 영화는 블루스 곡 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한 건물에 여러 친구를 불러 파티를 여는 내용의 노래예요. 시끄러운 사람들이 모여 멋진 파티를 열고 그 파티에 초자연적 만남이 벌어지는데 정말 멋지죠. 진지와 저는 이 아이디어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뱀파이어가 돼야 할까? 늑대인간이 돼야 할까?”라면서요. 유재선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늑대인간 소재도 고려했는데 뱀파이어로 최종 확정 지은 계기는 무엇인가요. 라이언 쿠글러 뱀파이어는 제 초기 아이디어 중 하나였어요. 다른 신화적 존재들이 뭐가 있을까 살펴봤지만, 계속 뱀파이어로 돌아왔어요. 제가 뱀파이어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스티븐 킹의 뱀파이어 소설 <살렘스 롯> 덕분에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살렘스 롯>은 정말 강렬한 책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무서운 소설이었어요. 저는 항상 이 소설과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유령, 늑대인간, 크리처, 그리고 좀비들까지 다 좋아하지만 이번엔 뱀파이어가 제일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초자연적인 존재들보다 뱀파이어가 이 영화에 잘 어울렸습니다. 유재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뱀파이어가 아닌 다른 무엇을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로 뱀파이어 설정이 테마와 맞물려 있어서 이보다 더 완벽한 선택이 있었을까 싶어요. 라이언 쿠글러 네, 확실히요. 음악산업, 자본주의, 편견, 종교 등 모든 것이 뱀파이어란 개념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현대적 측면과 역사적 측면 모두 그랬죠. 지금 돌이켜보면 뱀파이어 외에 다른 소재였다면 이렇게 영화와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프록시미티 미디어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그의 아내이자 제작자인 진지 쿠글러, 제작자이자 시나리오작가인 세브 오해니언이 2018년에 설립한 멀티미디어 제작사다. 음악감독 루드비그 예란손도 공동 창업자로 참여했다.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영화는 물론 다큐멘터리, 시리즈, 사운드트랙 음반을 제작한다. 설립한 지 약 3년 만에 프록시미티 미디어는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로 아카데미 시상식 5개 부문에 후보 지명을 받았으며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결과를 냈다. 참고로 라이언 쿠글러는 1986년생, 진지 쿠글러는 1985년생, 세브 오해니언은 1987년생 젊은 영화인들로 알려져 있으며, 라이언 쿠글러와 오해니언, 예란손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동문이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을 사로잡은 <살렘스 롯>이란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이 1975년 출판한 공포소설로, <캐리>에 이어 두 번째 집필한 책이다. 주인공 소설가 벤이 다음 소설을 쓰기 위해 25년 만에 고향 메인주 ‘살렘스 롯’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로, 벤은 마을의 텅 빈 유령의 집이 오스트리아 이민자 커트에게 팔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긴 여행을 떠났다는 커트는 마을에서 보이지 않고, 어쩐 일인지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밤이 되면 사망했거나 사라진 주민들이 송곳니를 드러낸 채 돌아다닌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살렘스 롯은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으로, 책 <살렘스 롯>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킹은 다른 작품에서도 여러 번 활용한다. *이어지는 글에서 라이언 쿠글러 감독과 유재선 감독의 마스터스 토크가 계속됩니다.

[특집] 상실을 경험한 아이는 더 빨리 성장한다, <르누아르> 하야카와 지에 감독

전작 <플랜 75>에서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75살 이상 노인의 죽음을 지원하는 정책을 권장하는 근미래 일본을 배경으로, 노년 여성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말년의 모습을 담담히 제시했다. <르누아르>에선 80년대 일본으로 시선을 돌려 11살 소녀 후키(스즈키 유이)의 일상에 주목한다. 이번 신작에서도 죽음을 주요하게 다루지만 어린아이를 통해 그려지는 죽음은 “단순히 두려움뿐만 아니라 경험해본 적 없는 매혹적인 호기심의 대상”이다. 후키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고, 일찌감치 상실을 경험해본 이들의 심정을 궁금해하며 영적 존재와 소통하는 텔레파시에 몰두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에 끌린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후키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영화의 색감을 통해 표현하려고 했다.” <르누아르>는 80년대에 실제로 11살이었던 하야카와 지에 감독의 경험이 상당수 반영됐다. “스즈키 유이 배우가 캐스팅된 이후로 배우의 면모가 많이 반영됐지만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캐릭터의 70~80%가 나와 닮아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셨고 나 역시 10살부터 20살까지 병원을 자주 오가며 죽음을 마주하고, 가족의 고통을 분담하는 이들을 자주 봐왔다. 이후로 죽음이 내게 중요한 주제가 됐다.” 10, 20대 때부터 <르누아르>를 연출하고 싶었으나 어른이 된 현재로선 당시 부모님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한 채로 영화를 완성하게 됐다고 말한다. “10대 때 영화를 연출했으면 아마도 어머니 캐릭터를 더 비판적으로 그렸을 것이다.”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얼마나 보여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프레임 밖의 것들을 관객이 어떻게 인식하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대사에 없는 감정까지 관객이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후키의 감정 연출에 각별히 유의했다. 다만 후키를 연기한 스즈키 유이는 맡은 역에 관한 설명을 자세히 듣길 원치 않았고 감독 역시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한번만 읽고 느끼는 대로 연기하길 요청했다고.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죽음을 다루되 극을 냉담히 마무리 짓진 않는다. <플랜 75>에서 그랬듯 <르누아르>에서도 연대의 순간이 등장하는데 이는 후키와 학원의 영어 선생님 사이에서 일어난다. “둘이 대단히 가까운 관계는 아니다. 다만 영어 선생님은 미국과 일본 혼혈이라는 설정이라 감정 표현에 자유롭다. 일본인들은 신체 접촉을 거의 하지 않는데 그와 달리 자신을 기꺼이 안아주는 선생님을 보며 그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깨닫는다.” “상실을 경험한 아이는 더 빨리 성장한다”고 믿는다는 하야카와 지에 감독은 자신의 분신과 다름없는 후키를 통해 죽음과 연대라는 주제를 더 깊이 탐구해낸다.

[21세기 영화란 무엇인가?]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 우리가 잃어버린 숏

지난 세기를 건너온 다음 다시 되돌아서 그런데 그때 무슨 일이 있었지, 라고 질문하는 대신 무얼 잃어버렸지, 라고 물어보면 비로소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도 있다. 그래서 영화가 해나간 일들이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무엇이었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 숏이 있었다. 거기에 카메라가 있었고, 카메라가 찍으면 그 시간은 영화라는 사건이 되었다. 이걸 구태여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기차가 역으로 들어온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한다. 아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아이가 물장난하는 것을 영화라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홍상수는 바다로 나가는 배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물결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눈싸움하는 거리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또 보았다. 거기에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거기에 무엇이 출현한 것일까. 여기에 개념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다음 각자 개념의 차이라는 구도 아래 의미를 부여하고, 영역을 나누고, 그 사이에서 서로의 공약 불가능한 자리를 만든 다음 그 차이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멀어질 때 결국은 숏에 대한 믿음의 부재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면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자동적으로 숏이 발생한다는 믿음으로부터 숏이라는 힘이 발생할 때 그것이 비로소 숏이라는 의심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의심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첫 번째 힘. 그러면 두 번째 힘은 어디에 있는가. 거기에 있다. 거기? 거기가 어디? 다시 한번 이미 들었던 예를 가져오겠다.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퇴근하는 노동자. 다시 한번 읽어주길 바란다. 나는 주어의 자리를 옮겨놓았다. 동시적으로 움직이는 세상 안에서 연장하는 힘으로서의 그것. 매번 바뀌겠지만 항상 식별 가능한 그것. 그것들은 힘을 보여준다. 힘은 어디에 있는가. 운동이라는 인상. 시간이라는 이미지의 연장. 여기에 증인들이 있다. 첫 번째 증인. 플라톤. 당신들은 헛것을 보게 될 거예요. 벽 앞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니라 죄수이고, 해방은 미루어질 것이다. 그저 우화라고 지나쳐갈 수 있을까. 영화가 우리 앞에 왔을 때 이미 질문이 시작되었다, 오래된 질문. 왜 무(無)가 아니고 존재가 있는가. 1895년에 무언가 잘못되었다. 헛것을 중심을 두고 공허한 벽을 홀린 듯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우리를 바친다면, 그런 다음, 거기서 무언가를 보았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간다. 그렇게 영화의 역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기에 헛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음과 서로 뒤얽히면서 두리번거렸다. 두 번째 증인. 마르크스. 영화가 발명되기 전 1845년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카메라 옵스큐라를 예로 들면서 삶의 과정이 위아래가 뒤집혀 보인다면 그건 이데올로기 때문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데올로기라는 말에 질겁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 없는 이데올로기야말로 유령의 예술인 영화의 동어반복이라는 걸 먼저 인정해야 한다. 뻔한 정의. 이데올로기는 상상적인 표상이며, 동시에 물질적인 토대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문장 바꾸기. 이데올로기의 자리에 영화를 가져다놓는다고 해도 문장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반격. 그런 다음 개인들을 호명할 것이다. 당신은 개인으로 화면 앞에 앉아 있다. 그렇지 않은가요. 만일 이것을 부정하면 우리는 영화를 삭제시킬 용기를 내야 한다. 세 번째 증인. 귀스타브 플로베르. 1857년 <마담 보바리>에서 엠마는 마차를 타고 가면서 트래블링 숏의 시점으로 길거리를 바라본다. 그 문장을 따라가고 있으면 뤼미에르, 르누아르, 로셀리니, 고다르, 키아로스타미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들이 플로베르를 읽기는 했겠지만, 플로베르는 그들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네 번째 증인. 에두아르 마네. 1862년 50mm 표준렌즈로 야외에 나가서 찍은 것만 같은 초점으로 풀밭에서의 점심을 그렸다(<풀밭 위의 점심 식사>). 마치 아마추어 배우들 같은 어색한 시선 처리. 카메라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누드의 여성. 마주쳤다기보다는 바라보는 시선. 카메라를 애써 피하려는 것 같은 신사복의 남성.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 라파엘로, 조르조네를 카피하면서 조롱하는 이 거리감에서 어떤 서사도 상징도 없이 풍속의 외설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이 그림 앞에 서면 한참 뒤에 고다르가 이 장면을 극장에 가서 나나에게 요구했을지도 모른다고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비브르 사비>). 사진이 아니라 인상주의 그림들이야말로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교육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된다. 이들이 교육한 것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이 아니라 카메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미래의 감독들이었다. 다섯 번째 증인. 샤를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1869년, 마침내 마차에서 내려서 길거리를 쏘다니면서 파리의 여기저기를 시선으로 건드린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지나가다(promener), 라는 동사를 쓴다. 때로 지나가면서 열린 창문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문장의 주어 산책자(frâneur)는 영화가 정지해서 시작했을 때보다 먼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영화적인 것이 있었다. 이걸 다시 각색한 베냐민의 마지막 순간까지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영화를 보는 방법에 관한 가장 위대한 책이다. 그다음에는 탄식이 있었다. 1947년 어느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그리피스, 대부분 <국가의 탄생> 혹은 <인톨러런스>를 말하지만, 나에게는 <부서진 꽃>과 <동쪽으로 가는 길>로 기억되는 그리피스. 그가 사망하기 한해 전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영화에서 사라진 게 있어요.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아름다움이요.” 나무도 그대로 있다. 바람도 그대로 불고 있다. 사라진 것은 무엇인가.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숏. 이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할 것이다. 먼저 선을 그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지금 앙드레 고드로와 톰 거닝이 초기 영화사에서 잡아당긴 시네마 오브 어트랙션(들)(cinema of attraction(s))2)으로 돌아가는 따분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신 이 아름다운 대답을 나는 일부러 잘못 읽을 것(misreading)이다. 그리피스의 대답은 전쟁 직후에 나온 것이다. 물론 그리피스가 아직은 우리보다도 이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전쟁은 서쪽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끝났고, 동쪽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끝났다. 영화에서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스펙터클. 우파(UFA)의 실내 세트장, 치네치타의 야외 세트장, 파리의 카페에 모인 초현실주의자들, 모스크바의 쿨레쇼프 공장의 제자들, 로스앤젤레스의 값싼 오렌지 농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세상을 자신들의 현장에서 다시 만든다고 믿었다. 하지만 세상 안에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접속부사로 하나의 역사를 둘로 절단시키는, 문자 그대로, 단절이 있었다. 1945년보다 영화와 세상이 더 멀리 벌어진 적은 없었다. 네장의 사진으로 남은 수용소. 빛에 눈에 멀어버린 백색 필름과 남겨진 참상으로 이루어진 두개의 도시. 구태여 사망자의 수를 헤아릴 필요가 있을까. 건설 대신 파괴가 있었고, 발명은 전멸로 이어졌다. 세상에 대해서 영화는 갑자기 몰이해의 상태가 되었다. 로버트 플래허티는 알래스카에 가서 가혹한 추위와 바람 속에서 5분20초 동안 바다표범을 잡는 에스키모 나누크를 ‘연출’했다. 지가 베르토프의 기록. (혁명이 벌어지는) 세상을 영화는 과장하고 있었다. 험프리 제닝스의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 영화는 세상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 매듭이 끊어졌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화는 세상의 현실에서 소외되었다. 네오리얼리즘 영화들은 소외를 다룬 것이 아니라, 영화가 놓인 소외 상태를 다룬 것이다. 안간힘을 쓰고 쫓아가는 안나 마냐니는 차를 놓쳤고(<무방비 도시>), 아버지와 아들은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자전거 도둑>). 잉그리드 버그먼은 가까스로 손을 놓친 남편과 포옹하지만, 군중은 주위에 서서 영화 촬영 현장을 구경한다(이탈리아 여행>).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는 맞은편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며(<달콤한 생활>), 모니카 비티는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화산 에트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정사>). 그들은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을 보지 못한다. 물론 그들은 보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은 텅 빈 공백의 의미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이 홀로 남겨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편의 영화가 본 것이 없음을 인정한다. 클로드 란즈만은 어떤 자료화면 없이 증인들을 만나고 또 만난다. 그리고 아우슈비츠에 관해서 듣고 또 듣는다(<쇼아>). 여자가 말한다. “나는 전부 보았어요.” 남자가 말한다. “아니, 당신은 본 게 아무것도 없어.”(<히로시마 내 사랑>) 이보다 더 간명하게 영화가 처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저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공백을 바라보면서 기표만을 경유하여 기의를 상상한다. 영화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를 상상하는 예술이 되어갔다. 나는 똑같은 이야기를 한번 더 할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 할리우드의 위대한 이름들이 일제히 스튜디오로 철수한 것은 사물(das Ding)로서의 세상을 마주 보지 않기 위해서, 왜냐하면 너무 흐릿해서 구별할 수 없는 사물로서의 장소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그래서 세상과 비슷한 장소로서의 사물의 시뮬라크라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스튜디오로 피난하였다. 장소와 사물을 뒤집어서 두번 사용한 자리를 반복해서 읽어주길 바란다. 스튜디오의 정치경제학과 유토피아 사이의 협상. 명단의 목록들. 전쟁이 끝나자 필름누아르가 전염병처럼 음산하게 창궐한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서부극은 얼마나 안전했을까. 멜로드라마는 히스테리와 신경증으로 가득 찬 ‘홈’(home) 안으로 철수하였다. 그들은 문법의 대가들이었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그들은 나무를 흔드는 바람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들은 영화를 세상과 더 잘 구분시켜주었다. 그러면서 어떤 객관적인 재현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무게로부터 그렇게 자유로웠을까.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이 은유에 몸을 감추었을 때 무언가 거기서 결여의 형상이 되었으며, 환유로 대체됐을 때 물신주의에 사로잡히면서 세상을 피해갔다. 그러면 재난 이후를 겪는 영화에서 무엇을 느껴보아야 할까. 재난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견뎌내지도 못했을지라도 느껴볼 수는 있을 것이다. 아직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미지 앞에 마주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 수수께끼 앞에 서서 느껴보는 감정은 더도 덜도 아닌 고독이다. 기댈 곳 없는 그 느낌. 영화의 고독. 고다르는 구태여 영화의 죽음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고다르는 영화가 죽은 다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한 일은 그걸 확인하는 것이었다. 세상은 폭력이 펼쳐놓은 형상으로 남겨졌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폭력을 보게 될 것이다. 고다르는 영화의 고독을 마주 본 첫 번째 영화감독이다.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말하겠다. 고다르는 그리피스 이후 두 번째 영화감독이다. 고독한 영화가 질문을 했다. 여전히 가능한가? 무엇이 가능한가? 어떻게 가능한가? 시급한 질문. 눈앞에 있는 세상. 손에 든 카메라. 그 둘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영화와 세상 사이에서 안과 바깥을 질문하는 대신에 이제는 항상 영화가 세상 안에 있음을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긍정하고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계속해서 세상을 향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영화의 새로운 윤리가 되었다. 그렇다.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이 아름답다는 것 을 볼 수 있을 때가 끝났다. 그러면 나무가 재가 되었을 때 바람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의 세계성(Weltlichkeit)은 다시 정의되어야만 했다. 재난 이후의 영화 앞에 서 있는 고다르의 고독은 그런 의미에서 실존적 고독이 되었다. 이때 고다르는 에이젠슈테인과 마찬가지로 몽타주를 사용했지만, 그들은 정반대로 이용했다. 한쪽은 그렇게 해서 낡은 세상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의 원리를 만들어냈지만, 다른 한쪽은 재난을 감추는 세상의 스크린을 찢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도 부숴야만 했다. 재난 이후에 세상이 더이상 즐겁지 않은 것처럼 고다르는 재난 이후에 극장이 더이상 즐거워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두 가지 사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렇게 고다르가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자마자 찬사를 바쳤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왜 허우샤오시엔이 <네 멋대로 해라>를 보고 비로소 <펑꾸이에서 온 소년>을 찍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기까지 따라오면서 틀림없이 내게 충고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아주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어요. 나도 알고 있다. 영화에서 자본의 문제. 고다르는 애처롭게 돈을 빌려 달라고 옛 친구 트뤼포에게 편지를 썼다. 로셀리니는 텔레비전 방송국에 가서 영화를 찍어야만 했다. 히치콕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주겠다고 했을 때 퉁명스럽게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에게 양보했다. 영화에서 자본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미학만 논할 때 철이 없어 보이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처음에는 둘로 나눠진 것처럼 보였다. 한쪽에서는 자본의 문제, 다른 한쪽에서는 정치의 문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다음 이제 단 하나의 문제가 되었다. 자본의 문제. 그때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단 한순간도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데이비드 O. 셀즈닉은 앙드레 바쟁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앙드레 바쟁은 셀즈닉이 제작한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MGM 스튜디오의 누구도 크리스티앙 메츠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크리스티앙 메츠는 못마땅하지만 를 예로 든다. 아메리칸 조이트로프는 장 보드리야르에게 관심이 없다. 장 보드리야르는 <지옥의 묵시록>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로 들었다. 영화의 이론(들)은 한가하게 영화를 개념화하면서 자본의 법칙을 외면하고 고상한 언어를 노래한다. 교실의 학생들은 현장에 나가서야 비로소 영화라는 상품의 하부 토대의 실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런 다음 자신이 하는 일이 예술인지, 사기인지, 아니면 범죄인지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영화를 선택했을 때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분쇄기 안에 들어갔음을 인정해야 한다. 영화라는 자본주의의 식민지. 일단 영화 안에 들어오면 누구도 방관주의자가 되지 못한다. 로베르 브레송은 돈을 구하기 위해 로마까지 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타르콥스키는 독일 제작자들과 긴 협상을 벌이다가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데이비드 린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내내 제작사와 방송국을 번갈아 전전하며 돈을 구하러 돌아다녔다. 예술가들은 진정성을 말한다. 자본가들은 이 시장에서 진정성이 잉여가치를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연대하면서 대항한 긴 역사가 있다. 일시적이지만 세 번째 길을 이야기한 영화들이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용기 있는 영화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자본가들은 이 저항을 통해 점점 더 세련된 전선을 만들어낸다. 더이상 아무도 ‘해방’을 믿지 않는다. 실재를 보기 위해서 애쓰지만, 현실이 이 모든 것을 덮어쓰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이데올로기가 개입한다. 나는 맨 처음 이야기로 돌아오고 있다. “오늘날 영화에서 사라진 게 있어요.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아름다움이요.” 당신이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무슨 영화를 보아야 하나요. 자, 알겠다. 이제 여기서는 그걸 보기는 틀렸다. 하지만 다른 별에서는 그걸 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자포자기한 아리아가 어디선가 들린다. <스타워즈>는 서둘러 도착한 다음 세기의 첫 번째 영화이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스페이스오페라라고 불렀다. <니벨룽겐의 반지>가 예고한 것은 나치즘이었다. <스타워즈>를 찍으면서 조지 루커스는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미 다음 세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부르는 아리아, 한번 더 부르겠다. 어디에 나무를 건드리는 바람의 숏이 있나요.

씨네21 추천도서 -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인권 최전선의 변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창비 펴냄 영화 <해피엔드>에서 코우와 유타는 길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재일한국인인 코우만이 체류 증명서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다. 근미래가 배경인 영화지만 이와 유사한 사건은 한국에서도 시시각각 발생하는 중이다. 몽골인 부모님과 어릴 때 한국으로 이주한 고등학생 민호는 친구들 싸움에 휘말리고, 경찰은 민호만 연행한다. 친구들이 “얘는 잘못 없다”고 증언했음에도 경찰은 민호가 미등록 신분이라서 내보낼 수 없다며 출입국 당국에 인계하고, 민호는 수갑이 채워진 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거쳐 구금 시설인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내진다. 한국에서만 살아 몽골어도 서툰 민호는 강제 퇴거를 명령받고 몽골로 쫓겨난다. 부모와 함께 이주한 아동은 부모의 한국 체류 자격이 상실되면 미등록 이주 아동으로 분류되어 기본권도 보호받기 어렵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법’의 울타리에는 무수한 인권의 빈틈이 존재한다. 민호는 미성년 아동으로서 보호자에게 보호받을 권리를 박탈당했고 가족과 강제 분리조치되었다. 연고도 없이 몽골로 쫓겨난 민호 사건 역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변론을 맡았다.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인권 최전선의 변론>은 공익변호사단체 ‘공감’이 수행한 사건들 가운데 한국 사회의 차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을 중심으로, 담당 변호사들이 법정에서의 과정을 조밀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주 난민이라는 이유로 붙잡혀 보호소 독방에서 새우 꺾기 고문을 당한 무라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피해자, 건강상의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었음에도 취업을 강요받고 사망한 피해자, 성소수자 난민의 인정 소송, 동성 동반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등. 인간의 기본 권리조차 싸워 얻어내야만 했던 이들과 함께한 변호사의 기록은 한국 사회의 가장 아픈 물음이다. “설마 그래도 여긴 한국인데, 이렇게까지 야만적으로?” 변호사 스스로도 자문했다는 사건 과정을 읽으면 부끄러우면서도 암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민호의 담임 선생님이, 피해자가, 그의 가족과 이웃이 포기하지 않고 끝내 혐오와 편견, 차별에 맞서 싸운 낱낱의 기록은 우리가 쉽게 세상을 비관하지 않고 여전히 사람을, 인권의 최전선을 지켜야겠단 다짐을 하게 한다. 여성, 난민, 아동, 이주민, 노숙인, 성소수자, 장애인, 임시직 노동자… 누구도 차별해도 괜찮은 존재는 없기에. 오늘도 나와 다른 타인의 삶에 대해 공감하고 상상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제도의 빈곳을 찾아 소수자들의 자리를 기입하고자 분투합니다. 단 한명이라도 제도 밖의 예외적 존재로 남겨두는 것은 결코 정의(正義)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52쪽

[특집]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지브리화되었나

지난 3월 말,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이 자신의 SNS에 챗GPT-4로 생성한 지브리 스타일의 프로필 사진, 일명 ‘지브리 프사(프로필 사진)’를 올리자 전세계 사람들이 너도나도 따라 올리는 이색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챗GPT 사용자도 5억명에서 2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특히 한국에선 미국 다음으로 사용자가 늘면서 이 유행을 주도했다. 그렇다면 때아닌 이 지브리 밈은 우리나라에서 왜 그토록 관심과 인기를 끌었을까? 그 원인을 생각하다가 문득 1990년대 어느 해 겨울, 홍대 거리의 한 카페 앞에 서 있던 토토로 모양의 눈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살짝 해볼까 한다. 아침잠을 설치게 한 특선 만화 지브리 밈과 관련해 머릿속을 정신없이 뒤지다 보니, 어느새 기억 저편의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마땅한 놀이가 없던 시대, 텔레비전에서 매주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에게 큰 위안과 즐거움을 주었다. 당시 애니메이션은 ‘TV 만화’로 불리며 일본산 작품이 방송국마다 경쟁하듯 전파를 탔다. 특히 방학이나 공휴일 아침 시간대에 ‘특선 만화’라는 타이틀로 미국이나 일본의 극장용 작품을 자주 방영했는데, 눈곱 낀 눈을 비비면서 비몽사몽 본 기억이 난다. 지금은 세계의 거장이 된 스튜디오 지브리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20대에 참여한 도에이 초창기 작품들도 이때 처음 보았다. 그중 1975년에 방영된 <장화 신은 고양이>가 뇌리에 짙게 남아 있다. 무서운 마왕에게 쫓겨 높은 탑 꼭대기에 올라 제발 해가 뜨기를 빌며 부둥켜안은 소년과 공주…. 자신도 모르게 두손을 꼭 잡고 흑백 브라운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던 추억, 나만 갖고 있지는 않을 듯싶다. 웃픈 사실은 이 작품들이 일제가 아닌 미제로 둔갑해 소개됐다는 점이다. 미국에 수출된 일본산 필름을 미국산인 것처럼 수입했기 때문.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며 일본 문화를 개방하지 않았던 시절, 방송심의규정을 통과하기 위해 쓴 깜찍한 속임수였다. 그래서 누가 그렸는지, 어떤 회사가 만들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미야자키와 처음 만났다. 이후 그가 메인으로 참여한 명작 동화 소재의 <플란다스의 개>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가 차례로 방영되면서 비로소 지브리 스타일이라는 것을 접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하자면, 지브리 스타일은 미야자키 고유의 것이 아니다. 1958년의 <몽견동자> 와 <백사전> 때부터 제작사 도에이 동화에 하나의 전통처럼 내려온 화풍에다 미야자키의 만화적인 몇몇 특징이 더해져 탄생했다. 이는 지금도 후배 애니메이터들에 의해 미세하게 진화하고 있다. 열혈 소년과 감성 소녀, 안방극장을 찢었다! 코난 세대 구별법을 아는가? 코난을 아느냐고 할 때 <미래소년 코난> 을 말하면 구세대, <명탐정 코난>을 말하면 신세대라는 철 지난 우스갯소리다. 이처럼 <미래소년 코난>은 1980년대 우리 어린이 문화의 아이콘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지브리 스타일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기발한 액션과 세기말 메시지로 TV 시청률도 고공행진이었는데, 방송국에 재방영을 요청하는 어린 시청자들의 전화가 쇄도했다는 뒷얘기도 있다. ‘푸른 바다 저 멀리’로 시작하는 주제가는 가을 운동회 때 응원가로 목이 터져라 불렀고, 반마다 포비(코난의 단짝)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이 한둘은 꼭 있을 만큼 몰입감도 상당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한국 최초의 지브리 밈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래소년 코난>이 남자아이들의 로망이었다면, 1985년에 방영된 <빨강머리 앤>은 여자아이들의 로망이었다. 이화여고 신지식 선생이 국내에 처음 번역한 캐나다의 성장소설이 지브리 스타일로 TV 화면에 나오자 사춘기 여학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앤을 담당한 성우 정경애의 목소리는 캐릭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높은 인기에 한몫했다. 그녀의 호소력 있는 감성 보이스는 일본의 오리지널 성우보다 찰떡궁합이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우리 문단엔 소설가 백영옥처럼 당시 <빨강머리 앤>을 보며 작가가 된 사람이 꽤 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시청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가 크다. 201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 한자리를 차지한 ‘앤 컬처’도 이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미녀와 야수> 하면 디즈니 작품을 떠올리듯 이제 <빨강머리 앤> 하면 어김없이 이 지브리 스타일의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애니 덕후의 소장 1티어 1980년대 후반, 비디오의 대중화로 지브리 스타일은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서울 명동의 회현 지하상가는 애니메이션 덕후들이 전국에서 시도 때도 없이 모여드는 본산이 되었다. 그곳을 통해 이전까지 애니메이션 잡지나 무크 등 해설과 스틸컷으로만 봐왔던 귀한 작품들을 비디오테이프로 소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가게가 용산이나 잠실에도 있었지만 명동처럼 많지 않았다). 당연히 이들 모두 불법복제였다. 해상도 420이라는, 당시로선 높은 해상도를 자랑하는 레이저디스크로 암암리에 카피한 해적판…! 하지만 일본 문화 개방이 안된 상황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은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팔전자, 현대전자, 형음악실 등 애니메이션을 좀 봤다는 사람치고 이들 가게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품목은 <이웃집 토토로>나 <천공의 성 라퓨타> 등 지브리 작품이었다. 구입을 예약한 사람이 너무 많아 일주일 이상 기다리는 것도 예사였다. 무엇보다 이 비디오테이프들이 전국 대학가를 돌면서 지브리를 테마로 한 소규모 애니메이션 영화제와 PC통신 동호회가 주도하는 감상회가 열렸다. 한편 일부 덕후들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영화 개봉일에 맞춰 직접 일본에 가서 <붉은 돼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을 직관했다. 이른바 ‘원정 관람’이었다. <모노노케 히메>가 발표된 1997년은 그 기묘한 현상의 정점을 이루었다. 그래서 대체 지브리가 뭔데 비싼 해외여행 비용을 써가며 보느냐는 말도 무성했다. 유난을 떤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은 지브리처럼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동경의 싹을 틔웠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 중 많은 수가 훗날 대중문화 각 분야로 진출해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서두에 언급한 홍대의 카페에 서 있던 토토로 눈사람도 아마 그런 꿈을 가진 학생이 만들지 않았을까? 지금은 꼰대가 됐을지 모를 X세대의 자유로운 일상의 한편에 어느새 이렇게 지브리가 들어와 있었다. 젊은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1998년 일본대중문화개방 이후 지브리는 우리 일상에 더 깊고 더 넓게 자리 잡았다. 물론 지브리 판권 전쟁이 치열하게 치러진 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필두로 국내에 정식 개봉된 지브리 명작들은 성적이 그리 썩 좋지 않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힘든 시기를 지나 2002년 개봉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덕후의 벽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큰 호응을 얻으며, 관객 200만명이라는 디즈니급 흥행을 거두었다. 2004년 겨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300만명을 흥행 몰이해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대세임을 입이런 사실을 직접 들었다. 이같은 현상은 영화계에만 국한되지 않는증했다. 이후 <고양이의 보은> <게드 전기: 어스시의 전설> <벼랑 위의 포뇨> 등 신작이 속속 개봉하면서 지브리는 어느 영화 제작사보다 우리와 가까워졌다. 이런 흥행력과 친근감은 당연히 관련 굿즈의 판매로 이어졌다. 학생들의 가방에는 토토로 액세서리가 달리고, 책상에는 하울의 피규어가 놓였다. 과거 지브리 캐릭터에 고개를 갸웃하던 사람은 줄고, 굿즈를 모으는 사람은 늘어 두터운 팬층을 이루었다. 이에 지브리 굿즈 숍은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지브리 음악으로 잘 알려진 히사이시 조는 <시네마 천국> 등의 엔니오 모리코네와 함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음악가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테마곡 는 지금도 여전히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그램에 곡 신청이 이어지고, 클래식 음악 콘서트에선 단골 연주곡으로 눈길을 끈다. 지브리 작품은 시각뿐 아니라 청각의 즐거움마저 주고 있다.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에 미야자키의 세계관이나 지브리의 성공담을 다룬 프로그램이나 기사의 노출도도 급상승했다. 2000년대, 트렌드 측정 기준이 된 포털사이트 검색에도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단어는 매년 5위 안에 들었다. 젊은이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브리 스타일로 불리는 미야자키의 화풍은 불법의 시대 이후 합법의 시대에 우리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이 모두가 현재진행형이다. 토토로는 옥자를 낳고 2017년 프랑스의 칸영화제에서 <옥자>의 감독 봉준호는 “어릴 때부터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랐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 중에 자연과 생명에 대한 작품을 만들면서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듯하다”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옥자>는 <이웃집 토토로> 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토토로의 배 위에서 곤히 잠든 메이를 연상시키는 해외 포스터만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전 <설국열차>는 사회 계급의 갈등이라는 미야자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를 답습했고, 최신작 <미키 17>에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왕충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크리퍼라는 벌레형 우주 생명체도 선보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에게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창작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었다. 과거 다른 영화에도 비슷한 예는 여럿 있다. 2005년 극장가 흥행 1위였던 <웰컴 투 동막골>은 마치 <미래소년 코난>의 무대 하이하버를 실사로 옮긴 듯하다. 어릴 적 <미래소년 코난>에 열광했던 경험과 그 메시지를 말하던 박광현 감독의 인터뷰로 미야자키의 영향력을 십분 느낄 수 있다. 또 같은 해 발표된 <청연>은 원래 <붉은 돼지>를 롤모델로 삼은 본격 항공영화였다. 지브리의 열렬한 팬이던 해당 기획자에게 이런 사실을 직접 들었다. 이같은 현상은 영화계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 유행에 민감한 대중음악도 마찬가지다. 이승환의 노래 <꽃>의 뮤직비디오에선 <천공의 성 라퓨타>의 SF 세계관을 느낄 수 있고, 그룹 코나의 <마녀! 여행을 떠나다>와 장나라의 <키키>를 들으면 <마녀 배달부 키키>를 떠올리게 된다. 드라마 <궁>의 주제가 를 제이와 듀엣으로 부른 남자 가수는 ‘하울’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드라마, 상업디자인 등 대중문화는 물론이고 생각지 못한 다양한 분야에까지 지브리가 끼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그야말로 ‘지브리 사조(思潮)’라고 불릴 만하다. 올봄, 세계인의 SNS을 뜨겁게 달군 챗GPT의 지브리 밈은 이 거대한 흐름의 한 지류에 불과하다. 순수하고 아련한 세계를 여는 열쇠 미야자키가 일으킨 지브리 사조는 오래전부터 전세계인의 창작 영역에 소소하게, 혹은 막대하게 영향을 끼쳐왔다. 2021년 블록버스터의 본고장인 할리우드에 아카데미영화박물관이 세워졌을 때 첫 전시회로 미야자키의 창작 세계를 다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상업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나라보다 강한 미국에서, 게다가 자신들의 영화 역사를 드러내는 대규모 시설에서 개관 기념 전시의 테마를 미야자키 하야오로 정했다는 사실은 이미 그의 영향력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이 대단한 인지도는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 1963년 <멍멍 주신구라>에 동화 참여를 시작으로 2023년 마지막 장편으로 발표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미야자키는 백발의 야윈 모습이 가엾을 정도로 꼬박 60년을 제작 현장에서 쉼 없이 달려왔다. 필름영화, 흑백TV, 컬러TV, 2D 디지털영화, 3D CG영화의 시대를 거치며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꾸준히 주목받은 세계 영상 역사상 유일무이한 행보다. 미야자키는 모든 세대를 관통한다.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TV나 영화를 보기 시작해 사춘기를 거쳐 청년이 되고 중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창작 세계와 함께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또 지브리 작품의 영상과 그림은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AI 시대에 지브리 스타일이 유행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그저 그 시점이 언제일지가 문제였을 뿐…. 순수하고 아련하다는 말은 지브리 스타일을 가장 잘 대변한다. 부드러운 선과 따뜻한 색감은 그 느낌을 구현하는 수단이다. 미야자키 작품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AI로 만든 지브리 프사는 우리가 지브리의 순수하고 아련한 세계로 들어가 빡빡한 현실을 잠시 잊고 쉴 수 있는 비밀의 열쇠였는지도 모른다.

[리뷰] 몽환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실험, <퀴어>

1950년대 멕시코시티, 작가 리(대니얼 크레이그)는 술과 마약에 중독된 채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리는 곁을 지켜줄 상대라면 가리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그의 호의는 종종 불쾌한 추파로 오해되거나 자신을 겨냥한 조롱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외로움으로 방황하던 리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유진(드루 스타키)을 발견한다. 아름다운 유진에게 마음을 빼앗긴 리와 달리 유진은 그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유진에게 “일주일에 두번 정도만 다정하게 대해달라”며 리는 어떻게든 유진과 마주할 시간을 가지려 한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뒤로 유진에 대한 리의 갈망은 더욱 강해졌지만 유진은 여전히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어느 날, 리는 상대와 텔레파시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약초 야헤에 관해 듣는다. 어떻게 해서든 유진의 마음을 얻고 싶었던 리는 야헤가 있다는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의 정글로 유진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진의 숨겨진 진심을 확인하고자 한다. <아이 엠 러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본즈 앤 올>에 이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다시 한번 사랑의 열망에 빠진 이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챌린저스>를 촬영할 무렵부터 각본가 저스틴 커리츠케스와 <퀴어>에 관해 논의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차기작에서도 그와 합을 맞췄다. 소설가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의 자전적 소설이 바탕이 됐으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20대 때부터 해당 소설을 영화화하길 바라왔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현실적이지 않은 몽환적인 색감의 멕시코시티”를 원해 <퀴어>는 로마의 치네치타 세트장에서 촬영되었다. 감각적으로 배치된 레스토랑과 거리를 오가며 리와 유진은 조금씩 거리를 좁힌다. 원작 소설의 기본적인 설정과 뼈대는 유지하면서도 리와 유진이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순간을 농밀한 몸짓을 더한 마술적 시간으로 묘사한 것이 인상적이다. 해당 시퀀스만큼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도전적인 연출 중 하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리와 유진은 교집합이 거의 없는 대조적인 위치에 서 있다. 청년과 중년이라는 시점 차이가 종종 강조되는데,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반면 무언의 초조함을 느끼는 리와 달리 유진은 시종 느긋하다. 리처럼 부유하진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정착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덕이다. 이러한 대비에는 자신이 퀴어임을 인정한 자와 부정하는 자 사이의 갈등 또한 주요하게 작용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배우들의 변화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헬레이저>, 드라마 <아우터뱅크스> 등에 출연한 드루 스타키는 유진 역으로 전작에서 발견하지 못한 매력을 선보인다. 대니얼 크레이그는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는 리로 분해 극의 화자로서 리의 예민한 내면을 전한다. 오랫동안 제임스 본드의 영역 안에 머물렀던 그의 또 다른 일면이 낯설고 반갑다. <퀴어>는 제8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이 영화로 대니얼 크레이그는 제96회 전미비평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제8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드라마 부문, 제30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제31회 미국배우조합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호명됐다. close-up 리와 유진이 처음 만난 순간, 난데없이 닭싸움이 펼쳐진 멕시코시티 거리의 혼란스러움을 뒤로하고 리는 오직 유진에게만 시선을 고정한다. 슬로모션으로 서서히 멀어지는 유진을 바라보는 리의 표정은 사랑에 빠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대변한다. check this movie <본즈 앤 올>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2022 정체성 혼란을 겪는 상대를 거울 삼아 스스로를 돌아보고, 함께 일탈성 여행을 떠나는 리와 유진의 모습은 일면 <본즈 앤 올>의 리(티모테 샬라메)와 설리(마크 라일런스)를 떠올리게 한다. 긴밀히 결속된 리와 설리 같은 관계를 <퀴어>의 리 또한 갈망했겠으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리뷰] 인생에 불순물이 좀 섞여줘야 면역력도 커지는 법이지, <후레루.>

햇볕이 직선으로 내리쬐는 작은 시골 마을. 함구증 증세를 보이는 초등학생 오노다 아키는 다른 친구들과 쉬이 섞이지 못한다. 어느 날 같은 반 소부에 료, 이노하라 유타와 장난스레 뒤섞이다가 고슴도치 같기도, 강아지 같기도 한 후레루를 마주한다. 후레루는 예부터 섬마을에 전해내려온 전설의 동물. 후레루만 있으면 사람들이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속마음을 전할 수 있다. 텔레파시의 힘은 실로 놀랍다. 세 친구는 허물없이 빠르게 가까워졌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뢰의 단층이 탄탄해졌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각기 다른 관심사와 취향이 생겨도 세 친구는 여전히 하나다. 그리고 이제 스무살. 섬마을을 떠나 도쿄에 상경한 이들은 기울어져가는 주택을 개조하여 함께 살아간다. 월셋집은 대도시를 부유하는 젊은이를 불안하게 하지만 내가 너고 네가 나 같은 단짝들은 동고동락하며 안정적으로 정착한다. 그리고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귀여운 후레루. 신비로운 의사소통 능력을 지닌 영물에게 세 친구는 삼시 세끼 맛있고 영양가 높은 사료를 먹이면서 애정으로 보살핀다. 이제 세 소년의 현실은 모두 다른 방향을 향한다. 아키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전히 말하기 어려운 순간을 맞닥뜨리고, 료는 부동산 회사의 신입사원이다. 유타는 의상디자이너를 꿈꾸며 유명 패션스쿨을 다니지만 아무도 모르는 열등감을 지니고 있다. 여느 날처럼 각자의 박자대로 일상이 흘러가던 어느 밤, 세 친구는 소매치기 당한 두 여성을 도와주다가 새 인연을 맺는다. 과거 유타와 같은 패션스쿨을 수료한 야사카와 나나,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당차게 쏟아내는 카모자와 주리. 그중 나나가 스토커로부터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두 여자가 안전하게 집을 구할 때까지 한집에서 같이 살기로 결정한다. 손만 닿으면 모든 생각을 편리하게 나누는 <후레루.>는 차라리 혼자가 될지언정 남들과 불편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현대인의 피로함에 온화한 상상력을 날카롭게 찌른다. 이들은 언어 없이도 계속해서 느슨한 소통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 오랜 믿음에도 균열이 생겨난다. 한집에 사는 남녀 5인은 자꾸만 어긋나는 연애 감정으로 분노와 질투, 말싸움과 눈치 보기 등 복잡한 감정에 뒤덮인다. 그리고 마침내 후레루의 진실을 목도한다. 후레루를 통한 텔레파시에서는 마찰을 일으킬 불평불만이 자체적으로 제거된다는 것이다. 료의 말마따나 악플이 알아서 삭제 처리되는 것과 같다. 여기서부터 세 친구의 우정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마음과 완벽하게 일치해온 친구들이라 생각했는데. 불평을 일절 하지 않는 선한 사람들이라 믿어왔는데. 부정적인 생각이 후레루에 의해 차단된 것이라면 그동안 그들이 쌓아온 건 진짜 우정이라 말할 수 있을까. 혼란스러워진 세 친구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후레루.>는 상황적 모순에 의한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하면서 소통과 대화의 진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다만 세 친구를 성장시키기 위한 구태의연한 이성애적 위기나 여성 캐릭터 나나와 주리에 대한 편협한 묘사, 스토킹 위협을 두고 피해자를 탓하는 대사 등이 튀어나온 나무뿌리처럼 자꾸만 발을 건다. close-up 생각이 현실이 되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세 친구가 가장 먼저 한 것은 하늘을 나는 것이다. 솜사탕 구름에 통통 튕기면서. 섬마을에서 자연과 가까이 지내던 소년들의 어린 시절이 그대로 묻어나는 장면이다. check this movie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감독 나가이 다쓰유키, 2013 나가이 다쓰유키 감독, 다나카 마사요시 캐릭터 디자이너, 오카다 마리 각본가 3인이 한몸이 되어 작업한 첫 번째 영화. 이외에도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하늘의 푸르름을 아는 사람이여>가 있으며 가장 최근작이 바로 <후레루.>다. 전작을 통해 삼총사의 세계관을 지도처럼 따라가기 충분하다.

[비평] 환상은 이토록, 홍수정 평론가의 <퀴어>

“자꾸 나랑 자려고 하잖아. 하여간 이래서 퀴어들이 싫어. 그냥 친구로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니까.” 영화의 초반, 리(대니얼 크레이그)와 함께 놀던 남자는 그가 자리를 뜨자마자 뒷담화를 한다. 폭력적인 말을 뒤로한 채 리는 걷는다(이때 스산하던 사운드가 너바나의 로 이어지는 순간의 쾌감이 상당하다). 중절모를 눌러쓴 채 흰색 슈트를 입고 휘적휘적 거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유령 같다. 이 걸음의 끝, 그는 유진(드루 스타키)과 마주친다. 첫 만남. 영혼처럼 흐릿하던 리는 그 순간 생생한 인간으로 돌아와 숨을 몰아쉬고 눈을 번뜩인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생기. 그것은 ‘퀴어’라는 멸칭에 눌려 주변부를 떠돌던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자극하는 강렬한 사랑과 마주하며 인생의 중심부로 복귀할 때 튀어 오르는 스파크다. 그런데 여기서 첫 만남의 짜릿함만큼이나 주목할 부분이 있다. 그건 이 순간에 드러나는 두 가지 대비되는 영역. 바로 ‘환상’과 ‘현실’이다. 거리를 유령처럼 떠돌던 리(환상)는 생동감 넘치는 인간으로 돌아온다 (현실). 거칠게 말하자면, <퀴어>는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리를 따라가는 영화다. 그의 걸음을 쫓을 때 우리는 <퀴어>, 그리고 루카 구아다니노가 진정 닿고자 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환상과 현실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퀴어>를 읽고, 이어 루카 구아다니노 영화에서 반복되는 어떤 결말을 통해 <퀴어>의 마지막을 다시 들여다볼 것이다. 현실과 환각 사이에서 일상에서 리는 유쾌하고 수다스러운 사람이다. 그런 그가 일순간 변하는 때가 있다. 그것은 리가 ‘퀴어’를 향한 세상의 벽을 마주하는 때다. 친구 기드리(제이슨 슈워츠먼)는 그가 만나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에서) “너무 퀴어”하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리는 몸이 굳는다. TV의 치지직대는 소음(리의 머릿속을 표현하는 듯하다)을 배경으로 그는 점점 흐릿해지고 투명해진다. 위에서 처음 설명한 장면에서도 리는 퀴어에 관한 혐오를 받고 나서 유령처럼 배회한다. 퀴어를 세상 밖으로 배격하며 내쫓는 말들. 그 말을 피해 리는 흐릿하고도 환상적인 세계에 들어선다. 이런 연출은 리의 사랑이 장벽에 부딪힐 때도 등장한다. 유진과 데이트할 때, 리의 흐릿한 손이 그의 얼굴을 만진다. 이 손은 리의 육체가 아니다. 유진을 쓰다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리의 마음이 이중 노출로 연출된 것이다. 리가 감춘 마음은 일상 위에 포개어진 옅은 실루엣으로 희미하게 드러난다. 그가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문득 자각할 때, 그러나 현실 안에서 그것을 실현할 수 없을 때, 영화는 환상 같은 이미지로 그것을 이루어낸다. 남미의 환상문학처럼 일순간 현실을 틈입하는 환상은 리의 서글픈 도피처다. 그것은 현실을 벗어나 퀴어의 정체성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는 마법이다. 몸은 현실에 있지만 정신은 환상을 향한 상태. 이것이 퀴어로서 고백하는 “몸과 정신이 분리된” 상태일 것이다. 한편 리와 달리 유진은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인물이다. 그의 직업은 팩트를 다루는 기자다. 또한 그는 공적인 장소에서 여자 친구와 있는 등 헤테로섹슈얼의 규범이 지배하는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남성에게 기대되는 성역할을 잘해낸다. 반대로 리는 마약중독자다. 이는 자꾸만 현실 저 너머로 도피하고픈 리의 열망이 파괴적인 지경에 이르렀음을 드러낸다.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다. 유진이 처음 리와 함께하며 퀴어 정체성을 표출한 순간, 그는 술에 취해 있다. 유진이 토할 정도로 취한 이후에야 그들의 첫 입맞춤은 이뤄진다. 유진에게 리와 함께하는 것은 일상을 벗어나 환각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일종의 배설(구토)과도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슬프게도 리에게 이것은 기다려왔던 순간이다. 환상 안에서만 그를 쓰다듬던 리의 손은 이 순간 스크린 위에서 육감적으로 체화된다. 리의 사랑은 유진의 환각 안에서 성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면 뒤에 곧바로 리는 ‘야헤’를 찾는다. 그것이 환각을 주입하는 동시에, (텔레파시를 통해) 소리내어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전달해줄 것이라 믿으며. 하지만 우연히 만난 남자는 야헤가 새로운 문이 아니라 ‘거울’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거울은 ‘가상의 상’을 만들어내지만 그 안에 보이는 것은 현실의 우리일 뿐이다. 이것은 환상을 찾는 리의 시도가 결국 현실로의 귀환으로 끝날 것임을 암시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야헤를 접하고 환각 안에서 서로를 탐닉하지만, 유진은 더 나아가길 거부하고 현실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 찾은 물질은 그 사랑을 끝내고야 만다. 그의 마지막(장면)에 대하여 이제 <퀴어>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말할 차례다. 리는 아마도 꿈을 꾸는 것 같다. 꿈 안에서 그는 조그만 창을 통해 자기 자신을 본다. 리가 들어선 방에는 자기 꼬리를 문 뱀이 있다. 리는 자기 꿈에서, 자신을 보고, 뱀은 꼬리를 문다. 몇겹에 거쳐 자신의 안으로, 안으로 수렴하는 이런 구조는 지독할 정도로 내면에 꼭꼭 갇힌 채 돌고 도는 운동을 연상하게 한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작품에서 이런 운동은 처음이 아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의 비밀스러운 연인은 상대의 이름을 온전히 부르지 못한 채, 자기 이름을 속삭일 뿐이다. 여기에는 서글픈 회귀 운동이 있다. <본즈 앤 올>(2022)의 마지막은 희귀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연인 사이에 벌어진 비극을 다룬다. 그토록 찾았던 연인은 함께하지 못하고 자신의 내면으로 수렴하고 만다. 루카 구아다니노 작품에서 사랑은 자주 밖을 향해 뻗어가지 못하고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내면에서 팽이처럼 돌고 돈다. <퀴어>는 이러한 운동이 한 인간의 내면을 파괴하는 사례이며, 이것이 루카 구아다니노가 생각하는 퀴어에게 강요된 사랑의 형태다. 리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방에서 빠져나온다.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적 화풍을 연상하게 하는 배경에서 리는 노쇠한 탓인지, 유진에 대한 금단증상 때문인지 몸을 떨다 마지막을 맞는다. 그가 그토록 추구하던 ‘환상’은 결국 리의 요람이 된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운동은 모두 아픈 현실을 피하기 위하여 이뤄진다. 그 목적지가 환상이든, 자기 내면이든, 일종의 도피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것은 낯선 듯하나 실은 익숙한 이야기다. 밖에 꺼내놓지 못하고 안에 가둬두어 숙성 혹은 부패하고야 마는 그 마음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보통 이것은 지나가는 바람이지만, 이 안에서 일평생 살아가는 남자가 <퀴어>에 있다. 루카 구아다니노 영화의 마지막은 언제쯤 달라질 수 있을까.

[비평] 실패의 서사, 소멸의 이미지, 조현나 기자의 <퀴어>

“너랑 대화를 나누고 싶어. 말없이. 널 만지고 싶어.” 유진(드루 스타키)에게 첫눈에 반한 리(대니얼 크레이그)는 꾸준히 구애한다. 특히 그와 접촉하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고 곁을 배회한다. 후반부에서 리는 바라던 대로 유진과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그전까지 반복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투명하게 현신한 리가 곁에 앉은 유진에게 계속해서 손을 뻗는 모습이다. 리의 상상에 기반해 구현됐을 가상의 신체는 그렇게라도 상대와 접촉하고 싶은 리의 욕망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일 테다. 투명한 신체가 리의 욕망을 대변한다는 전제는 영화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 갑작스레 전복된다. 텔레파시를 가능케 하는 ‘야헤’를 마시고 교감할 수 있게 된 상황에서 돌연 리의 눈앞에 있던 유진의 몸이 투명해지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 뒤로 현실은 물론 리의 상상 속에서마저도 유진은 자취를 감춘다. 정사를 넘어선 ‘말없는 대화’가 마침내 가능해졌을 때 리가 그토록 갈구해온 유진의 육체, 유진이란 존재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니 질문해볼 수 있겠다. <퀴어>가 묘사하는 신체의 소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리는 왜 자신의 바람을 투영할 때조차 본인을 지우고 종국엔 사랑하는 유진까지 지워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욕망을 인간의 오감을 통해 드러내길 즐기는 창작자다. 대상이 금기시된 존재일 경우 욕망과 신체적 반응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진다. <아이 엠 러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본즈 앤 올> 등을 거쳐 <퀴어>에 이르러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탐하는 자와 대상간의 신체접촉을 더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그만큼 신체의 부재를 더 자주 드러낸다. 끊임없이 장소를 바꿔가며 현실에 상상을 대입하는 리의 실험을 통해서 말이다. 취할 수 없기에 갈구하는 사랑의 대상 “너 퀴어 아니지?” 술집에서 만난 한 남자에게 리가 묻는다. “쟤 퀴어일까?” 첫눈에 반한 유진을 바라보며 리가 넌지시 동료에게 말한다. 1950년대, 동성애 차별이 만연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이 질문은 화자와 청자를 바꿔가며 되풀이된다. 성적 지향에 관해 리와 유진은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표면적으로 리는 퀴어임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오픈리 퀴어라고 해서 스스로를 오롯이 받아들인 건 아니다. 본인이 동성애자인 건 “저주”이며 “섹스 괴물로 사느니 인간으로 죽는 게 낫겠다”고 여겼던 과거를 리는 유진에게 자조하듯 고백한다. 비슷한 상황이 그의 꿈에서도 이어진다. 자신이 숱하게 건넸던 ‘당신은 퀴어인가’라는 질문이 되돌아왔을 때 리는 부정한다. 그리고 답한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거야.” 그 뒤로도 리는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자주 거론하면서 동성에 대한 이끌림을 전부 육체의 욕구로 치환하고 그것을 본인과 유리시킨다. 자기혐오가 옅게 깔려 있을지언정 이러한 리의 입장에선 몸을 통해 다른 퀴어와 교감하는 것이 가장 명확한 소통 방식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한편 유진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태여 밝히지 않는다. 리와의 접촉을 완전히 끊어내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거리를 두며 그를 외면하려 한다. 그 거리감이 리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내내 모호한 입장을 취하던 유진이 처음으로 자기 정체성을 고백한 건 영화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다. 야헤를 마신 그는 “저 퀴어 아니에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거죠”라고 말하고, 그렇게 리의 환각 속에서 두 사람은 점점 사라져간다. 이를 토대로 보면 유진과 리가 정신과 육체의 분열이라는 이원적 구조를 받아들인다는 점은 같지만,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관해선 확연히 갈린다. 육신을 통해 동류를 감지하고 접촉하길 바라는 리와 달리 유진은 자신이 퀴어임을 자각게 하는 신체 교감이 반복될수록 도망치고 싶어 한다. 육체가 정체성을 드러낼 유일한 언어라 여기며 이를 기반으로 사랑을 표현하려는 자와 끝내 그 언어 자체를 외면해버리는 자. 둘 사이엔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퀴어> 의 “인물들이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타임>)에 관해 다루고 싶었다던 루카 구아다니노의 의도는 이러한 두 인물의 간극으로 구현됐다. <퀴어>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전술했던 신체의 소멸, 그리고 방황을 동반한 자기 탐구다. 특히 후자의 경우 루카 구아다니노가 다뤄온 인물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지점이다. 사랑을 경유해 자기해방을 이룬 <아이 엠 러브>의 엠마(틸다 스윈턴)와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표류하던 <위 아 후 위 아>의 프레이저(잭 딜런 그레이저)와 케이틀린(조던 크리스틴 사먼), 첫사랑의 열병으로 정체성을 깨달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티모테 샬라메), 식인이란 본성을 쉽게 시인하지 못하던 <본즈 앤 올>의 매런(테일러 러셀)과 리(티모테 샬라메). 이중 <퀴어>와의 연결고리가 두드러지는 작품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본즈 앤 올>이다. <퀴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본즈 앤 올>은 각자의 방식으로 분리와 분열의 구조를 체화한다. 엘리오의 첫사랑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 건 오래전 떠난 올리버(아미 해머)가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이며, 서로가 유일한 안식처였던 매런과 리의 동행은 사건 은폐를 위해 매런이 죽은 리의 육신을 섭취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들에게 사랑은 퀴어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성립될 수 없거나 반대로 기피하고 싶던 카니발리즘의 본성을 가장 극한의 방식으로 체화하게 만드는 대상이다. 비약하면 이들은 자신이 자신이라는 이유로 욕망하는 대상을 끝내 곁에 둘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퀴어>에서 그려지는 리의 사랑 또한 필연적으로 실패에 다다른다. 이를 은유하는 시퀀스가 있다. 리와 유진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할 때 표면적으로 둘의 시선은 나란히 스크린을 향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리는 유진에게 손을 뻗는 상상을 한다. 그런 둘을 지켜보던 카메라는 이들을 지나쳐 맞은편의 스크린으로 향한다. 스크린에선 장 콕토 감독의 <오르페>(1950) 중 오르페(장 마레)가 사망한 아내를 되찾기 위해 거울을 통과해 죽음의 세계로 향하는 장면이 상영되고 있다. 오르페우스 신화를 살짝 비튼 이 영화에서 오르페는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여왕에게 반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산 자에게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다. 죽음의 여왕의 신하가 거울 앞에 선 오르페에게 말한다. “거울은 거울일 뿐이고 그 안에는 불행한 남자가 있어요”라고. 아직 죽음의 세계에 발도 들이지 않은 오르페를 두고 그는 왜 불행한 남자라고 칭했을까. 죽음을 갈구하는 이승의 존재에게 일찍이 이별을 예견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스크린에서 극장으로 시야를 넓혀보자. 불행한 남자로 칭해짐에도 결국 거울 안으로, 죽음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는 오르페와 거울처럼 마주 선 이는 누구인가. 제 것이 아닌 이에게 무력화된 신체로나마 닿아보려는 리의 뒷모습이 더없이 처절하게 느껴진다. <퀴어>에서 육체의 감각을 최대로 끌어올려 전시한 장면은 야헤를 마신 리가 유진과 춤을 추는 순간일 것이다. 둘은 서로 동화되다 못해 피부를 투과해 합치된다. 엠비언스 사운드까지 제거된 이 시퀀스가 어쩌면 리가 바라던 말없는 대화가 궁극적으로 실현된 때인지 모른다. 하지만 클라이맥스처럼 전개된 이 신 이후의 상황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리와 교감을 나눈 유진은 앞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리를 외면하고 결국 도망친다. 정글 속으로 사라진 유진을 좇던 리가 잠시 뒤를 봤다 시선을 돌렸을 때 유진은 이미 그 자리에 없다. 곧이어 리는 빨려 올라가듯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그가 처음 유진을 만났던 장소, 멕시코시티에 도착한다. 2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리는 여전히 그곳을 배회하면서 떠난 유진을 그리워한다. <퀴어>엔 나오지 않았으나 <오르페>에도 유사한 장면이 있다. 신화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세계에서 금기를 깨고 뒤를 돌아본 오르페는 곧바로 생의 세계로 복귀한다. 그럼에도 오르페는 여전히 죽음의 여왕을 떠올린다. 리와 오르페, 이들에게 사랑하는 이의 소멸과 부재는, 그로 인한 사랑의 실패는 도리어 상대를 끝없이 갈구하는 발단이 된다. 닿을 수 없어서 꾸는 꿈 리가 복귀한 멕시코시티에 관해 좀더 살펴보자. 멕시코시티에 오게 된 연유에 관해 리는 동성애에 관한 차별로부터 도망쳐왔다고 넌지시 운을 띄운다. 그러나 이 도피처에서도 리가 퀴어라는 이유로 편협한 시선을 던지기란 매한가지고 결국 리는 유진에게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둘의 관계에 본격적인 진척이 이루어진 건 이때부터다. 본거지 밖으로 유랑하고 그곳에서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는 이들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에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엠마는 밀라노를 떠나 산레모에서 안토니오(에도아르도 가브리엘리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엘리오와 올리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도 프랑스의 휴가지에서다. 매런 역시 엄마를 찾아가던 중 리를 만났으며 정체를 숨기기 위해 둘은 주기적으로 외부로 떠돌거나 타지로 이동해야만 한다. 이중 드물게도 리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 자신이 등장한 장소로 회귀한 인물이다. 10대 때부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윌리엄 S. 버로스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하길 원했다고 밝혔다. <데이즈드>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당시 자신이 쓴 <퀴어> 각색본의 첫 페이지에 ‘모든 것은 무대에서 촬영되어야 한다’고 적었고 이번 영화에서 그 계획을 실현했다. 리가 유진을 만난 멕시코시티는 실제 로케이션에 적을 둔 것이 아닌 로마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에 구현된 세트다. 멕시코시티에서 유진의 흔적조차 부재함을 알고 나서야 리는 비로소 유진과 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음을, 가상의 신체를 구현해내더라도 유진과 닿을 수 없음을 절감한다. 호텔로 돌아온 리는 꿈을 꾼다. 꿈에서 리는 거대한 건물 형태의 세트장을 구성한 뒤 전지적 시점으로 내부를 들여다본다. 그곳에서 자신이 유진에게 총을 겨누고 쓰러진 유진이 사라진 뒤, 결국 자신마저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본다. 가상의 무대 위에 펼쳐진 한편의 영화를 관람하 듯이. 정체성, 방황, 자기 탐구, 욕망, 사랑. 주요 키워드로 <퀴어>를 요약한다면 전작들과의 여집합이 쉽게 걸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이 요소들을 긴밀히 엮고 다시 분리시킨다. 유진과의 사랑은 리가 자기부정을 행할 때만이 성립 가능한 일이었고 이는 치정, 불륜과는 결을 달리하는 또 다른 금기다. 정신과 분열된 신체의 언어는 결국 사랑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신체의 언어로 기록된 한 기억이 리로 하여금 반복해 유진의 빈자리를 되새기게 한다. 정글로 여행을 떠났을 때 크게 앓은 리는 옆에 누운 유진에게 덜덜 떨며 다가가 발을 겹친다. 이 기억은 노년이 된 리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의 곁을 지킨다. 마지막으로 가상의 신체를 불러와 그와 나눈 온기를 더듬는 방식으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미 충분히 해석된 감독일까. 연출자로서 오랫동안 품어온 작품인 만큼 <퀴어>는 그의 연출론을 새롭게 바라볼 여지를 남긴다. 실패의 서사와 소멸의 이미지로 가득한 <퀴어>는 그만큼 서글프고,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