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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다 네 덕이야

한국영화 5월까지 점유율 42.4%, 지난해보다 10% 상승 <친구>가 지난해 30%대에 머물던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을 40%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배급사 아이엠픽처스가 집계한 지난 1월1일부터 5월31일까지의 흥행기록에 따르면 한국영화의 점유율은 42.4%. 2000년 1월1일부터 12월3일까지 한국영화 점유율이 32.9%인 것과 비교하면 10% 정도 오른 셈이다. 지난해 5월까지의 관객 수와 비교해도 차이가 많이 난다. 2000년 5월까지 한국영화 관객은 249만6천명인 반면 2001년 같은 기간 한국영화 관객은 511만8287명으로 관객 수로도 지난해의 2배가 넘는다. 물론 다 <친구> 덕이다. <친구>가 이 기간에 불러모은 관객만 240만여명. <친구>는 개봉 82일째인 지난 6월20일 전국관객 800만명을 넘었다. 올 상반기 극장가가 지난해보다 활황이었음은 분명하다. 전체 관객 수로도 1200만명을 넘겨 지난해 914만9천명보다 300만명 정도 늘었다. <친구>뿐 아니라 멀티플렉스의 영향도 있다. CGV는 지난 4월 한달에만 전국 6개 CGV극장을 찾은 관객 수가 105만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2000년 전국 4개 CGV극장을 찾은 같은 기간 관객 수 43만명의 2배를 넘는 기록으로 멀티플렉스의 영향력을 실감케 한다. 아이엠픽처스의 통계에 따르면 5월까지 전체 배급편수는 137편. 미국 직배영화의 점유율은 23.2%에 머물렀는데 이는 흥행성수기인 여름이 지나면 의미없는 숫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진주만> <미이라2> <툼레이더> <슈렉>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행렬이 8월까지 쉬지 않고 이어질 것이다. 5월까지 흥행순위에서 2위와 3위는 <버티칼 리미트>와 <캐스트 어웨이>이다. 서울관객 50만7400명을 동원한 <번지점프를 하다>가 4위, <왓 위민 원트>와 <선물>이 45만명을 넘어 5위와 6위, <인디안썸머> <한니발> <하루>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순으로 10위까지 흥행성적이 나왔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서울관객 20만명을 넘긴 17편의 영화 가운데 한국영화가 8편이나 있다는 점. <친구>로 인한 단기간 점유율 상승만 놓고 축포를 터트릴 순 없지만 여러 영화가 고루 흥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람직한 현상일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한국영화 거품이 걷히고 있다며 우려했던 것에 비교하면 올해 상반기엔 낙관론이 우세하다. 제작비 상승에 대한 부담이 커지긴 했지만 하반기에 나올 대작들이 <친구> 못지않은 폭발력을 가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 물론 영화는 직접 보기 전까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지금까진 산업적 측면에서 적색신호를 발견하기 힘들다. 남동철 기자

툼 레이더

■ STORY 고고학자이자 탐험가인 라라 크로프트(안젤리나 졸리)는 아버지 크로프트경(존 보이트)의 유품 속에서 이상한 시계를 발견한다. 이 시계는 시간을 통제하는 고대의 신비한 석판 ‘빛의 트라이앵글’로 통하는 열쇠. 행성이 일렬로 배열돼 트라이앵글의 힘이 절정에 이르는 5천년 만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주의 운명을 장악하려는 비밀결사 ‘광명파’에게 시계를 도둑맞은 라라는, 지구 양끝에 숨겨진 조각난 트라이앵글을 먼저 찾아 세계를 구하고 죽은 아버지와 재회하기 위해 캄보디아와 베니스, 극지대를 차례로 방문하는 장도에 오른다. ■ Review ‘최초의 실리콘 섹스 심볼’이라 불리는 라라 크로프트. 고매한 지성과 일당백의 전투력 그리고 최소한의 옷가지로 완전 무장한 그녀가 마침내 스크린에 당도했다. 에이도스 인터랙티브 게임 시리즈가 탄생시킨 라라 크로프트는, 마돈나가 부럽지 않은 전지구적 스타덤을 만끽해온 캐릭터. 남자들은 그녀를 열망하고, 여자들은 그녀를 선망하며, 이미 1억 인구가 모니터 앞에서 그녀의 손발이 되어 목숨 건 탐험에 기꺼이 뛰어들었다. 영화는 과연 우리가 아는 라라를 얼마나 온전히 보여줄 것이며, 우리가 모르는 라라를 또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 <툼 레이더>는 수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영화의 시동을 건다. 발코니에 서서 바람이라도 쐬는 듯 한가로운 표정을 한 안젤리나 졸리의 옆얼굴이 보이는가 싶으면 카메라가 빙그르르 돌고, 관객은 라라가 실은 어딘가에 거꾸로 매달린 고난도의 포즈를 취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감탄할 사이도 없이 라라는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로봇의 ‘내장’을 신나게 뜯고 내동댕이친다. 구구한 소개가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는 투다. 알고보면 이 살벌한 시퀀스는 ‘연습 모드’. 그리고는 이내 졸리의 조각 같은 몸매가 PG-13등급의 카메라 앵글을 희롱하는 샤워신이 뒤풀이처럼 이어진다. 도입부가 요약하듯 <툼 레이더>의 라라는 매사가 이런 식이다. 중력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적수와 장애도 라라의 스타일을 구기지 못한다. 안젤리나 졸리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존 트래볼타처럼, 의 미녀들처럼 계산된 보폭으로, 계산된 올 수의 앞머리를 휘날리며 영화 속을 폼나게 활보하고 활강한다. 이 고귀한 혈통의 부유하고 섹시한 여성판 인디애나 존스는, 팔 여섯 달린 움직이는 석상을 가볍게 때려눕히고, 올림픽 다이빙 선수처럼 폭포에서 몸을 날리며, 캄보디아 사원의 승려나 원주민 소녀들과 그들의 언어로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썰매 끄는 시베리안 허스키종 개들과도 척척 호흡을 맞추기도 한다. 라라가 지닌 이같은 고수의 여유와 차원 다른 무공이 어울려 빚어내는 초현실적 멋은, 그녀가 잠자리 체조 삼아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을 틀어놓고 번지점프 줄에 매달려 벌이는 공중곡예장면에서 아찔한 정점에 달한다. 그런가 하면 이 장면은 영화 <툼 레이더>가 너무 일찍 맞이한 절정이기도 하다. 최근 액션영화들이 다 그렇듯 <툼 레이더>에서도 벽과 천장, 바닥의 구분은 거의 의미를 상실한다. 주인공 라라는 이력서에 따르면 영국 상류사회를 떠나 혼자 여행할 때만 삶의 참맛을 느끼는 타고난 방랑자라지만, 영화 <툼 레이더>는 라라가 크로프트저택에 머무는 동안 가장 생기있다. 액션만 놓고 봐도 예의 공중곡예에 이어지는 악당들의 크로프트저택 습격 시퀀스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대목. 한편 영국 문화재관리공단이 보살필 법한 광활한 저택에서 <배트맨>의 집사 알프레드를 닮은 살림 도우미와 전형적인 컴퓨터 천재 타입의 기술 도우미를 거느리고 말괄량이 공주처럼 살아가는 라라의 생활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온갖 가재도구가 구비된 바비인형의 예쁜 집을 엿보는 아기자기한 재미까지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어드벤처의 주인공으로 태어난 만큼 라라는 떠나야만 한다. 모험의 목표는 5천년 만에 가공할 위력을 발할 ‘빛의 트라이앵글’이지만, 그거야 제5원소가 됐건 건축무한육면각체가 됐건 별 차이가 있을 리 없다. 여행의 출발과 함께 영화는 멀미를 시작한다. 스토리텔링의 기교를 고민하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은 탓인지 막판의 재편집이 거칠었던 탓인지 시간과 우주를 장악하려는 비밀결사, 라라의 옛 남자친구, 유명을 달리한 라라의 아버지가 연루된 플롯은 전혀 정교하거나 조밀한 편이 아닌데도 따라가기가 수월치 않다. 런던에서, 캄보디아로 다시 베니스에서 시베리아로 어지럽게 바뀌는 영화의 공간 속에서 각 캐릭터들의 동선이 명료하게 잡히지 않는 것이 첫째 이유고, 둘째로는 라라를 중심으로 내적 플롯을 이루는 아버지와 라라, 라라와 옛 애인 사이의 심리적 고리가 너무 상투적이거나 너무 허술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폭발과 반전의 쾌감이 약화된 <툼 레이더>는 차례로 스테이지를 바꾸어갈 뿐, 레벨이 높아지는 흥분은 안겨주지 못한다. 안젤리나 졸리의 카리스마에서 잠깐 눈을 돌려보면, 전투 시퀀스의 기술적 연출도 미진한 편. 거대한 기계장치나 괴물을 프레임 안에 들여놓고도 촬영과 편집은 인물의 거리감이나 동선의 교차를 정밀하고 명확하게 전달함으로써 일으킬 수 있는 서스펜스와 쾌감을 번번이 놓친다. 라라는 지나치게 탁월한 전사인 까닭에 흔들리는 오벨리스크 위에 서 있다 해도 긴장을 자아내지 못하고, 옛날 모험영화에서 빌려온 듯한 움직이는 석상들은 생김새만 고풍스러운 것이 아니라 전력도 구형이다. 여기에는 좁은 운신의 폭을 고려하더라도 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 악역 캐릭터의 부진도 일조한다. <툼 레이더>의 게임 디자이너들은 파라마운트쪽에 전적으로 영화의 조이스틱을 맡겼다지만, 결국 <모탈 컴뱃> 등 예전 게임영화들과 비교할 수 없는 우수한 각색물을 내놓겠다는 <툼 레이더>의 약속이 흡족하게 지켜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툼 레이더>는 원작 게임이 그랬듯 주인공 이외의 요소는 모조리 들러리의 팔자를 감내해야 하는 영화다. 관능미와 박력에 도도한 조롱의 표정까지 머금은 입술과 가슴, 땋아내린 머리채와 허벅지. 안젤리나 졸리의 육체를 구성하는 크고 작은 기막힌 커브들은, 어떤 <툼 레이더> 영화가 나온들 그녀만한 라라를 찾기 힘들 것이라는 예감을 품게 한다. <툼 레이더>의 실수는, 주인공 라라에게 모든 조명을 집중한 데에 있다기보다, 게임을 3차원의 살아 숨쉬는 여성에게 옮겨올 때 의당 욕심낼 만한 입체감과 생동감을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데에 있다. 캣 우먼의 폭발적인 섹시함 속에는 풍만한 몸매와 붙는 의상 너머의 무엇이 있었다. 현지 소식대로 크로프트저택의 가구를 고이 보관해둘 만큼 파라마운트가 속편을 확실히 염두에 두었다면, 두고두고 일용할 양식인 캐릭터에 좀더 애정을 쏟는 것도 나쁜 투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김혜리 기자 vermeer@hani.co.kr 게임 <툼 레이더> 액션어드벤처의 신천지 94년에 처음 기획되어 96년에 첫 선을 보인 <툼 레이더>는 달리고, 쏘고, 퍼즐을 푸는 전형적인 3D 액션어드벤처게임이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로의 전환, ‘라라 크로포트’라는 캐릭터 개발을 통해 다른 게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성공을 거두었다. <툼 레이더>가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에 비해 차별화에 성공한 점은 ‘어드벤처’의 강조다. 일단 쏘고 시작하는 다른 게임과는 달리 애크러배트에 가까운 묘기로 뛰고, 넘고, 기면서 퍼즐들을 풀어나간다. 이런 게임 진행이 거대한 고대 유적들의 신비로움을 꽤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는 그래픽과 맞물리면서 게이머 자신이 모험을 한다는 기분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차별화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라라 크로프트’라는 캐릭터가 게임 속에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반쯤 깡패들인 일반적인 액션게임 주인공과 달리 고고학 박사 수준의 지성, 동양에서 깨닳음을 얻었다는 신비함, 귀족의 딸이라는 고귀한 이미지는 라라라는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리고 이 요소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건 도움만을 바라는 기존 여성 캐릭터와 달리 라라가 보여주는 ‘당당함’과 ‘자신감’ 때문이다. 수십명 남자 악당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며 쏘아대는 쌍권총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게이머들도 많다. 매년 시리즈의 속편이 나와 현재 5편까지 출시되어 있고, 옛날 버전은 ‘골드’라고 이름붙여 다시 출시되고 있다. 2편을 정점으로 인기가 떨어지면서 ‘라라’를 벗기려고 하는 제작사의 모습은 꼴보기 싫지만 그래도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어드벤처를 개척한 <툼 레이더>의 의의는 게임사에 있어선 퇴색되지 않을 거다.

튜브엔터테이먼트 인수하는 미디어플렉스 상무 김우택

빠르게 상승하는 한국영화의 위상만큼이나 영화산업의 판도도 하루가 다르게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요즘 들어 이 변화의 중심에는 단연 동양제과(대표 담철곤)의 영상 관련 계열사인 미디어플렉스가 버티고 있다. 미디어플렉스는 서울시 강남 극장가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메가박스 시네플렉스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극장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온 데 이어, 이번에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튜브 2030> 등에 각각 50억원이 넘는 규모의 투자를 감행하며 한국영화 투자, 제작, 배급에서 공격적인 자세를 보여온 튜브엔터테인먼트(대표 김승범)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모기업의 또다른 계열사인 온미디어가 HBO, OCN 등 케이블TV 영화채널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디어플렉스의 향후 행보는 충무로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미디어플렉스를 충무로의 태풍이라고 한다면, 이 업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우택(37) 상무는 그 태풍의 눈이라 할 만하다. 케이블채널 투니버스를 통해 영상업계에 뛰어들어 현재 메가박스를 이끌고 있으며 앞으로 튜브엔터테인먼트 운영에도 깊숙하게 관여할 것으로 보이는 그는 “향후 미디어플렉스는 메가박스와 튜브엔터테인먼트의 지주회사 구실을 할 계획”이라며 좀더 전면적으로 한국영화계에 뛰어들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튜브엔터테인먼트 인수를 공식 발표했다. 배경이 궁금하다. =애초부터 한국영화 배급과 제작은 우리가 고려하고 있던 사안이었다. 그럴 때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 독자적으로 하는 것, 둘째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체질이 맞고 비전과 꿈이 비슷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세 번째가 가장 적당해보여 파트너를 찾던 중 튜브엔터테인먼트의 김승범 대표를 우연히 만났다. 시스템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강하고 갖고 있는 꿈이 우리 생각과 일치했다. 그동안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좋은 느낌을 받았다. 해서 김 대표에게 같이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김 대표뿐 아니라 튜브는 운영이 투명하고 시스템이 받쳐주며 조직이 젊다는 점에서 우리 그룹이 갖고 있는 속성과 잘 맞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튜브와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정립할 것인가. 튜브쪽이 튜브엔터테인먼트라는 간판과 경영권을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해왔다는 소문이 들리더라. =현재 인수를 위한 구체적인 실사작업이 진행중이므로 아직 뭐라고 이야기하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튜브가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그만큼 고생했다는 점을 적극 인정한다. 그동안 튜브가 노력해서 일종의 브랜드파워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깨뜨릴 이유가 있겠나. 당연히 그 브랜드는 유지된다. 또 경영권에 관해서 말하자면, 한마디로 건드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는 우리가 튜브를 인수했으니까 당연히 경영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새롭고 더 좋은 방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경영권을 갖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 김승범 대표가 가장 잘하니까 경영을 믿고 맡기는 것이다. -튜브는 그동안 공격적인 경영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도 여러 개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기조가 계속 유지될 것인가. =앞서 말했듯이 아직 얘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김승범 대표의 전략이니 맞다 틀리다를 말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새롭게 같이 간다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전략을 강구할 것이다. 김 대표와 내 생각을 털어넣고 다시 짜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는 중요치 않다는 점이다. 앞으로 어떻게 가느냐가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외부의 기대와 우려가 많은 것도 알고 있다. 말도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외부 시각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리고 신규진입자가 공격적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전략적으로도 공격적 운영은 필요하다고 본다. -튜브에 대한 투자조건과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얼마가 들어가든 자금조달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내 경험상 좋은 사람과 좋은 조직이 있다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더라. 지분은 약 60% 정도 확보할 생각이다. 그러나 51%면 어떻고 70%면 어떤가, 그런 세세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예산규모를 대충 말한다면 김승범 대표의 생각과 비슷한데, 1년에 메이저 배급사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자금은 대충 300억∼400억원 정도 되는 것 같다. 일단 현재 튜브쪽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놓은 자본이 꽤 되고 모자라는 부분만 채우면 될 것 같다. 그리고 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은 선택의 문제다. 펀드를 조성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프로젝트 파이낸싱도 있다. 외자유치도 고려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 자본조달은 걱정하지 않는다. -김승범 대표는 연초에 올해 목표가 배급업계 1위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비슷한 생각인가. =앞서도 말했듯이 이제까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의 팩트를 놓고 어떻게 운영하는가가 중요하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 배급하면 자연히 1위가 되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배급업계 순위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보다는 장기적으로 배급사업을 할 수 있는 체질을 가져가는 것이 목표다. 회사운영 측면에서 볼 때 좋은 영화를 배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회사가 오래 가려면 어느 해에는 1등을 했다가 어느 해엔 10등을 하는, 그런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튜브의 구조조정을 시도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구조조정을 한다 안 한다의 문제라기보다는 영화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우리의 방침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도가 좋으냐를 판단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 튜브의 자회사 처리문제는 그런 고려 속에서 결정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리할 수도 있고 오히려 그 사업을 더욱 크게 넓혀나갈 수도 있다. -튜브엔터테인먼트 인수는 동양그룹으로 볼 때 어떤 의미를 갖나. =동양이나 나나 영상산업에 뛰어든 지 올해로 6년이다. IMF 위기를 맞아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기회가 많이 생긴 것 같다. 우리는 외자유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대기업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케이블 영화쪽에 크게 비중을 뒀었다. 그러다 메가박스를 하게 되면서 프로젝트가 의외로 커졌다. 운도 잘 따라 좋은 투자 파트너도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방향 속에서 우리는 종합영상그룹을 지향하며 1차 윈도를 수직계열화하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룹 전체로 볼 때 영상산업쪽의 비중이 커지는 것인가. =그룹의 영상산업 전략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영화의 비중이 굉장히 크다. 결국 DVD와 비디오를 제외하고 많은 부분을 구조적으로 갖췄다. 비디오도 언젠가 뛰어들지 모르겠지만 타이밍과 방법의 문제를 고려해 판단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동안 갖춰놓은 구조 속에서 실행을 어떻게 하느냐이다. -대기업이라 아무래도 경영노선이 다소 보수적이고 의사결정이 더딜 것 같다. =우리 그룹이 다른 대기업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선 외국의 시스템과 노하우를 한국적으로 로컬화하는 데 강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온미디어, 베니건스, 메가박스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 하나는 조직문화 자체가 의사결정과정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 유연하다는 점이다. 영화산업을 하기 위해선 다른 산업의 조직과 같이 갈 수 없다. 또 우리 회사는, 대표 또한 그렇지만 생각이 보수적이라기보다는 굉장히 디테일하다. 모양보다는 내실에 포커스를 맞춘다. 튜브와 함께 가더라도 이점에 있어선 똑같다. 배급, 제작, 투자에 시스템적인 요소를 가미할 것이다. 한국영화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적인 측면과 시스템이 동시에 발전해야 한다. -90년대 말 삼성, 대우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영화산업에 참여했다가 모두 실패하고 시장을 빠져나갔다. 이에 대한 우려는 없나. =그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선발주자로 들어왔던 대기업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들이 지출한 비용을 통해 우리도 투자해야 할 부분과 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알게 됐다. 그렇게 만들어진 토양 위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진입 자체는 용이했다. 하지만 접근방식은 그들과 좀 다르다. 우리는 케이블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확장하고 있는 중이다. 케이블 다음에는 하드웨어 요소인 극장을 확보한 뒤 그 네트워크를 넓혔고, 그뒤 소프트웨어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사실 삼성, 현대, 대우에 비하면 우리 그룹의 규모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어서 한꺼번에 많은 부분에 관여하면 제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견고하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영화산업은 리스크가 크고 투자규모도 큰 편이다. 시스템으로 많이 받쳐줘야 한다. -관리적인 차원을 많이 강조한다. 운영에 원칙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한국영화산업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대박을 기대하는 문화다. 영화산업은 속성상 ‘높은 위험과 높은 수익’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가끔 대박이 나오는 게 좋은 일이긴 하다. 하지만 투자와 배급을 할 때는 위험과 수익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좀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위험을 피할 수도 있다. 영화 투자, 배급 라인업을 갖고 포트폴리오를 수립한다는 개념이 정착돼야 한다. 일정한 평균수익률을 설정하고 다양한 작품을 가져간다면 괜찮을 것이다. 최근 들어 아시아시장,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아직은 국내에 포커스를 맞추는 형편이다. 현재로선 국내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해야 한다. 제작, 투자, 배급도 마찬가지다. 후발주자로 진입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메가박스가 그랬듯이 기존 관행과 다른 시도를 많이 해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만 신선한 마인드가 중요하다. 극장의 금요일 개봉만 해도 그렇다. 처음엔 누구도 성공하리라는 예측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안정화된 느낌이다. 솔직히 말해 대기업 입장에서 남들보다 하루 일찍 개봉해서 몇회의 수익을 더 뽑는다 한들 단기적으로 무슨 이득이 있겠나. =하지만 우리가 시도한 뒤 다른 극장들도 따라왔고 관객의 문화 또한 따라오고 있다. 완전히 정착된다면 주말뿐 아니라 금요일 시장이 커질 것이다. 사실 우리 영화시장 규모는 다른 산업의 매출규모와 비교한다면 너무 작다. 물론 파생산업의 규모까지 보면 더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보다 더 커져야 한다. 이건 혼자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이 좋은 시기다. 투자, 제작, 배급이 변화하고 멀티플렉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시스템과 자본이 받쳐주고 있으며 기존 관행들이 깨지고 있다. 이 시기가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적기라고 본다. -대기업인 동양의 영화산업 진입은 머지않아 금융자본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충무로의 중장기적 전망 때문에 더 관심을 모은다. =현재 자본이 영화산업으로 몰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좋은 현상이다. 물론 금융자본의 속성상 투자를 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이 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다보니 시장이 안 좋으면 빠지는 것이다. 금융자본 속성이 그런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도 자신감이 있고 타이밍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금융자본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금융자본이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는 현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약 어떤 프로젝트가 좋다면 당연히 수익성이 눈에 보일 것이고, 그렇다면 금융자본이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메가박스도 개관한 지 1년 정도 됐다. =5월13일로 딱 1년을 맞았다. 원년 실적이 플러스라면 괜찮은 것 아닌가. 걱정과 기대가 많았지만 시장 진입은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현재 서울에 하나뿐이어서 영향력이 작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메가박스라는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좋게 인식시키면 브랜드파워도 커질 것이라고 본다. 지방 사이트도 계속 늘려갈 것이다. 올해 안에 수원에 5개, 부산 서면에 7개, 내년 초에는 대구에 10개 스크린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스크린 수도 50개 가까이 된다. 아마 CGV와 롯데가 들어가 있는 부산 서면 시장의 판도가 재미있을 것 같다. 규모는 우리가 가장 작지만 서비스 차별화로 도전할 것이다. -멀티플렉스가 관객이 드는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다보니 개성있는 영화는 극장을 잡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멀티플렉스에는 장단점이 있다. 사실 괜찮은 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상영하는 것이 멀티플렉스의 속성이기도 하다. 좌석규모가 다른 스크린을 여러 개 운영하다보니 효율화를 위해 그렇게 하게 된다. 물론 비판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변화하는 과정으로 파악해달라는 것이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확보한다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져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극장이나 영화라는 게 참 어렵다. 산업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이 혼재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윤을 확보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므로 산업적 측면을 많이 고려할 수밖에 없다. 산업이 커지면 문화가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가박스의 투자자인 LCI를 포함해, 미국에서는 거대 멀티플렉스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한국에서도 벌써부터 극장의 포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그런 경향은 존재한다. 우리가 스크린을 계속 확보하는 것은 스크린 수를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지방에 여러 개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것은 전략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극장도 산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충무로에 들어와보니 이상한 경향이 있더라. 극장 산업을 저평가하는 것이다. ‘영화는 역시 제작과 투자야’라면서 극장은 단순한 인프라로만 보더라. 더 큰 문제는 극장을 부동산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빌딩의 분양을 잘하기 위해서 극장을 유치하기도 한다. 물론 멀티플렉스의 과열 경향은 인정한다. 그 실체는 곧 드러날 것이다. 2∼3년 내에 경쟁이 치열해져 과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다. 결국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리라 본다. -스크린 확장 속도가 다른 업체에 비해 빠르지 않은 것 같다. =극장을 확장하는 데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 지방 사이트를 늘려야 한다는 것과 각각의 극장이 모두 흑자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볼 때는 후자에 더 강조점이 찍히는 것 같다. 현재 계획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모두 자체 손익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한 군데에서 영업을 잘못 가져가면 브랜드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1∼2년 사이에 50개 가까운 스크린을 확보한다면 빠른 것 아닌가. -동양그룹의 또다른 방향에는 온미디어라는 막강한 케이블TV 네트워크가 있다. 미디어플렉스와 온미디어의 관계는. =그동안 온미디어와 사업적 협의는 계속해왔다. 케이블과 극장이 함께할 사업은 많다. 그리고 서로가 겹치는 부분도 논의를 해야 한다. 분명 영화채널을 갖고 있다는 것은 힘이다. 작품을 구매할 때 판권문제에서도 분명 시너지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본다. -CJ엔터테인먼트와 CGV의 예에서 보듯, 극장과 배급을 함께하는 것은 큰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메가박스와 튜브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배급과 상영관은 철저하게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고 본다. 분명히 극장을 갖고 있으면서 배급을 하면 시너지효과가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운영면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배급할 영화가 극장에 도움이 안 된다면 과감하게 뺄 수도 있다. 경쟁 배급사의 영화가 더 메리트 있다면 당연히 그쪽으로 돌릴 것이다. 결국 배급과 극장 양 사가 자생적으로 살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물론 다른 업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편의를 봐주기는 하겠지만 기본 입장은 분리 운영이다. 만약 서로 의지하게 된다면 둘 다 망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지마다 ‘참을 인’자를 새겼죠”

지난 6월14일 서울 시네코아에서 열린 ‘<파이널 환타지> 인터내셔널 프레젠테이션’이라는 행사는 좀 특별했다. 영화 시사회도 아니고 스타가 등장하는 것도 아닌 이 행사의 주인공은 디지털 아티스트 김종보(39)씨. 그렇다고 그가 참여한 3D애니메이션 <파이널 환타지>의 데모 필름이 약 20분가량 상영됐고,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해설이 이뤄진 이날 행사가 지루했다는 뜻은 아니다. 생경한 전문용어가 머릿속으로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이날 공개된 <파이널 환타지>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웬만한 영화치고 컴퓨터그래픽이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드문 요즘이지만 이 작품 속의 컴퓨터 생성 이미지(CGI)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특히 이 3D애니메이션 속 사람의 모습은 그동안 보였던 어떤 그래픽 이미지보다 생생한 느낌을 전달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찰랑거리며 휘날리는 모습, 피부에 스며 있는 잡티와 주근깨, 눈의 홍채나 보송보송한 옷의 질감까지 너무도 정교해 일부 장면은 실사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이 영화에서 김종보씨는 시퀀스 슈퍼바이저와 애니메이션 워크플로 슈퍼바이저로 활동했고, 후반부에는 34개 신의 컴포지팅을 담당했다. 도무지 알쏭달쏭하기만 한 그의 담당업무를 알아듣기 쉬운 것부터 대충 정리해보자면, 1)그는 실사 화면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이 디지털영화의 스탭으로 참여해 15∼16명의 직원을 이끌었다. 2)그가 담당한 일은 우선 시퀀스 슈퍼바이저로, 이 영화의 36개 시퀀스 중 네 번째 시퀀스에서 어떤 기술적인 요소가 필요한지, 어떤 프로그램을 활용해야 하는지 등을 체크한 뒤 필름으로 뽑아져나올 때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었다. 3)또 영화의 각 캐릭터와 이야기를 애니메이션화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일해야 하는지 기술적으로 연구해 체계적인 공정으로 확립하는 애니메이션 워크플로 슈퍼바이저 역할도 맡았다. 4)극중 외계인인 팬텀을 애니메이션으로 직접 만들기도 했던 그가 마지막 4개월 동안 한 일은 제대로 된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캐릭터, 배경, 각종 특수효과 등의 레이어를 덧입히는 컴포지팅이었다는 것. 대학 시절 회화를 전공하다 2년 만에 응용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꾼 뒤 일본으로 유학, 비디오아트와 동영상,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에 관한 공부를 이어나갔던 그는 윌코라는 일본의 컴퓨터그래픽 회사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디지털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이 업체의 미국 자회사인 모션 신디케이트의 부사장으로 일했고, 격투게임 <토발2>의 동영상을 제작한 것을 계기로 99년에는 <파이널 환타지>의 원조인 게임업체 스퀘어의 미국 지사에 수석급 아티스트로 입사하게 된다. 그뒤 그는 이 업체가 있는 하와이에서 스스로를 유폐시킨 채 이 영화 제작에만 매달려왔다. 이토록 생생한 디지털 영상을 뽑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것 중 하나가 ‘인내’였다고 그는 말한다. 점과 선으로만 이뤄진 가장 단순한 그래픽을 레이아웃하는 데서 출발, 실제 사람의 동작을 디지털로 옮긴 모션캡처, 각종 3D 렌더링 등의 과정을 계속 더해가며 질감, 동작 등에 온갖 테스트를 거쳐야 비로소 원하는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480개가 넘는 요소를 결합한 장면도 있을 정도. 때문에 이 영화의 제작공정 중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인내심이 있어야 제대로 된 화면을 만들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인내력 테스트’까지 공식적으로 존재했을 정도다. 이제 영화도 완성됐고 곧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잠시 쉴 만한데도 “사실 이번 작업도 많이 모자랐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의 피부나 근육 이미지는 아직 만족하지 못한다. 머리카락도 현재의 6만개로는 부족한 것 같다. 또…”라며, 그는 가상적이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참을 인’자를 수없이 새겨넣을 각오를 보여줬다. 글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사진 손홍주 기자 lightson@hani.co.kr

유분함량 제로, 수분함량 100%! <무사>의 주진모

누가 그를 느끼하다고 했던가. 미간을 가득 메운 진한 눈썹에, 묵직하고 큰 코, 동양인치고는 꽤나 굵직굵직한 이목구비로 달려온 주진모는, 처음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 게임 더해?” 농구시합 끝에 땀이 흥건한 모습으로 코트에 누워버린 자양강장제 CF 때문인지, 온몸 흠뻑 젖는 춤을 보여준 <댄스 댄스> 때문인지, 가질 수 없어 더욱 집착적인 사랑을보였던 <해피앤드>의 김일범 때문인지 그간 주진모에 대한 총평은 “잘생겼지만 왠지 모르게 끈적하다”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8명의 고려무사들과 함께 떠났던 <무사>의 1년 만의 귀향길에 만난 주진모는 머난먼 이국땅의 담백한 정기를 한껏 빨아들이고 온 듯했다. 계산하지 않고 내뱉는 솔직한 말투,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다정한 음성, 여전히 고려장군 ‘최정’의 기운이 서려 있는 듯한 호기로운 몸짓. 몇번을 다시 재어보아도 그는 분명 유분함량보다는 수분함량이 놓은 싱싱한 스물여덟 청년이었다. 의(衣) 20kg 정도 되는 갑옷은 너무 꽉 껴서 소화가 안 될 정도였어요. 처음엔 입는 데만 10분, 벗을 때는 5명이 도와줘서 5분 정도? 아, 그래도 화장실 갈 때는 그보다 더 빨라졌어요. (웃음) 나중에 교묘히 구멍을 내서 일을 봤는데 이 꼼꼼한 중국 의상팀이 뜯어진 줄 알고 밤새 기워놨더라고요. 아휴… 1375년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 귀양길에 오르게 된 고려무사들의 악전고투 귀환일지 <무사>에서 주진모는 왕실경호대 용호군의 장군 ‘최정’ 역을 맡았다. “최정은 속마음은 여리고 따뜻한 인물이지만 장군이라는 신분 때문에 속내를 숨긴 채 냉혈한인 척 연기해야 했던 인물이에요.” 캐스팅 단계에서 여솔 역으로 함께 출연한 정우성이 주진모를 추천했고 그는 너무나 존경했던 김성수의 영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뜻 “무슨 역인지 물어보지도 않은 채” 출연을 결심했다. “그래도 이렇게 큰 역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무리를 이끄는 장군, 최정이 모든 에피소드의 시작을 열어가다보니 그가 한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영화 전체가 삼천포로 갈 수 있는 상황.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첫 촬영 끝내고 ‘최정 분량을 줄이자’는 말까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많이 긴장했고 갈피를 못 잡았던 게 사실이었어요. 이를 꽉 물었죠. 혼자 시나리오 안고 고민하고 며칠 밤 꼬박 새우기도 하고, 진짜 피곤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했어요.” 식(食) 음식을 처음엔 한국식으로 먹었는데 자꾸 탈이 났어요. 결국엔 중국 스탭들 먹는 거랑 똑같이 먹었더니 신기하게도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인간이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졌나봐요. 그 기후에 맞는 생활과 식습관을 가지도록… 말도 못할 고생은 영화의 내용인 동시에 모든 촬영팀의 생활 그 자체였다. 영상 40도와 영하 20도를 왔다갔다 하는 현장. 발에는 거미와전갈들이 판을 치고, 콧물이 흐르면 닦아낼 필요없이 그대로 고드름이 되어 떼어내기만 해도 되었다는 반년간의 고된 촬영. 처음엔 뺀질뺀질 윤이 나던 얼굴은 점점 초췌해졌고, 꼭 맞아 활동이 불편했던 철갑옷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헐거워지고 있었다. ‘찐득’한 피분장 그대로 4일 내내 샤워도 못하고 촬영을 강행한 적도 다반사. 어느덧 모두 촬영에 ‘취해’ 여기저기 진짜 피가 뚝뚝 흘러도 “어! 간지(느낌)가 훨씬 좋아!”하며 카메라를 더욱 신나게 돌리기도 했다. “촬영이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을 읽겠더라고요. 연기했다기보다, 그저 그냥 내가 최정이 되고보니 눈물도 나고 화도 나고… 순간 3~4일 찍을 신이 한번에 오케이가 나더라고요. 단 10분 망에 찍은 거죠.” 연기에 감을 잡는 순간부터 주진모에게는 한 신을 찍더라도 “이거 편집당하면 안 되는데…”하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김성수 감독과는 멱살잡고 싸울 만큼 의견충돌을 벌인 적도 많았어요. 사실 감독님은 배우가 자기 의견을 충분히 표현하는 걸 좋아하세요. 결국 이렇게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두 사람 생각대로 다 찍어보는 거에요. 덕분에 힘은 배로 들었지만 만족스러운 장면이 나온 것 같아요.” 고(苦) 지난해 5월 중순부터 승마, 검술, 체력훈련을 기본적으로 하고 촬영에 들어갔지만 현지에 가보니 한국에서 배운 무술은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었어요. 우아하게 타는 ‘승마’가 아니고 끝도 안 보이는 대륙의 모래바람 속에 사정없이 달리는 진짜 ‘말타기’. 많이 떨어지고 다치고… 물론 이젠 눈감고도 타죠. 몸고생이야 모두들 같이했죠. 오죽하면 안성기 선생님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진모야, 내가 지금껏 100편 넘는 작품을 찍었지만 이렇게 고생한 영화는 생애 처음이다”라고 말씀하셨을까. 하지만 “신인이 처음부터 이런 영화 찍을 수있었던 걸 행운으로 여겨라”는 말씀도 함께 해주셨어요. 모든 촬영을 끝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이미 크리스마스였다. 과거에서 갑자기 현재로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랄까? 처음엔 적응이 안 되기도 했고,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드러누워서 일주일 동안 한번도 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샤워하려고 알몸을 보니 상처가 20군데도 넘더라고요. 병원가서 치료받고, 낚시도 가고, 그 사이 들어온 시나리오 읽고… 그러다 <와니와 준하>를 보게 되었어요. 잔잔한 느낌도 맘에 들었고 이젠 편안한 역할도 어색하지 않게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긴 가뭉이 끝나고 하늘에서 촉촉한 단비가 내리던 날. 사랑하는 와니(김희선)의 방황과 아픔을 품을 줄 아는 섬세한 시나리오 작가 준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나타난 주진모. 사막의 모래 바람 속, 건기의 한철을 보낸 그 남자는 어느덧 새로운 우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바닷가 우체국처럼, <일 포스티노>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 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시 ‘바닷가 우체국’의 일부분이다. 사람들이 이 시를 읽고는 종종 이렇게 묻곤 했다.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셨죠? 영화에서 보이는 이탈리아의 한적한 바닷가 풍경과 시의 분위기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시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모르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게으르다는 핑계로, 또 바쁘다는 이유로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이따금 누군가 좋은 영화를 소개해 주어도 뒤로 미루다가 결국은 번번이 놓치기 일쑤다. 그래서 영화관에 두어 시간 느긋하게 앉아 있을 시간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내 인생이 때로는 한심하고, 때로는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소설을 읽는 일에도 나는 게으른 편이다. 영화와 소설은 서사라는 뼈대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장르다. 그런데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고 나서 내 아둔한 머리는 그 줄거리를 제대로 저장하지 못한다. 영화관 문을 열고 나와서 머리에 햇빛을 쬐고 나면 그 흥미진진하던 이야기의 줄거리는 봄눈 녹듯 녹아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영화의 이미지만 실루엣처럼 남는다. 건더기는 사라지고 국물만 남는 격이다. 그래서 아예 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애써 건더기를 건져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국물 떠먹는 맛을 더 즐기고자 한다. <일 포스티노>를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와 처음 보던 날도 나는 황동규의 시 ‘즐거운 편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주인공 마리오 루폴로가 네루다에게 사랑의 시를 써달라고 부탁할 때 문득 그에게 읽어주고 싶었던 시다. 영화를 보면서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고 내 맘대로 이리저리 ‘해찰’을 하는 것, 그것도 영화를 보는 쏠쏠한 재미 중 하나다. 그동안 <일 포스티노> 비디오를 나는 세 차례나 빌려보았다. 그 이유는 이 아름다운 영화 속에 아스라이 문학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란 무엇인가, 에 대한 해답을 이처럼 쉽고도 절실하게 설명해놓은 문학 교과서를 나는 보지 못했다.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칠 때 나는 <일 포스티노>를 종종 활용하곤 한다. 수백 마디의 말보다 <일 포스티노>를 함께 보고 토론하면 그것으로 시의 본질에 훨씬 깊숙하게 가닿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기도 했다. 시를 공부하면서 은유에 시달려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몇번이나 무릎을 쳤을지도 모른다. 마리오 루폴로가 네루다에게 보내기 위해 고향의 여러 가지 소리들을 녹음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여기서 해변의 파도소리를 녹음하는 게 은유의 출발이라면 어부들이 그물을 걷어올리는 소리를 담고자 하는 모습은 은유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서 나아가 밤하늘의 별빛을 녹음하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장면에 이르면 은유는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더이상의 구차한 설명이 필요없게 되는 것이다. ‘일 포스티노’는 이탈리아어로 우체부라는 말이다. 우리 동네 비디오 가게의 <일 포스티노>는 수많은 사람들의 집을 방문한 나머지 화면 상태가 아주 불량하다. 까짓것, 이 기회에 우리 집에서 나 혼자만 만날 수 있는 <일 포스티노>를 하나 구입해 버려?

간염에 관한 인류학적 관찰

● 지금까지 적지 않은 수의 일본의 영화감독들이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던 여러 전선(戰線)으로 달려가서 이런저런 패전의 경험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예컨대 <들불>(1959)의 이치가와 곤이 달려간 전장이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병사들을 결국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야수들로 만들어내는 지옥이었다면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1983)의 오시마 나기사가 뛰어든 태평양전쟁은 서로 낯설기만 한 하나의 문화와 또다른 문화가 미묘하게 만나고 충돌하는 장이었다. 구마이 게이는 <바다와 독약>(1986)에서 산 사람이 일본군에 의해 생체실험에 이용되는 끔찍한 현장을 지켜봤고 또 <검은 비>(1989)에서 이마무라 쇼헤이는 원폭이 터진 이후 서서히 일본의 한 마을을 잠식하는 죽음의 그림자에 카메라를 갖다대기도 했다. <검은 비> 이후 9년 만에 태평양전쟁의 시대로 돌아온 이마무라 쇼헤이는 이들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말이지 아주 색다른 전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전쟁의 환부를 진단하는 뜀박질 간장선생>이 시선을 두는 곳은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당시 일본의 어느 어촌 마을이다. 이곳은 간염의 확산이 이미 위험 수위에 오른 곳이다. 이건 주인공인 의사 아카기만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는 그렇게 굳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마을 곳곳을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간염박멸이라는 성전(聖戰)을 홀로 치르고 있다. 그런데 아카기의 외롭고 둔중한 뜀박질에 동참하다보면 순간 우리는 앞에서 거론한 영화들이 그렸던 것과 같은 모습의 전장들이 어느새 슬쩍슬쩍 눈앞을 지나쳐갔음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카기의 ‘특별한’ 진단 탓에 생소하게만 보였던 <간장선생>의 시공간도 알고 보면 이미 우리가 알고 있었던 전쟁의 다양한 양상들이 여기저기 잠복해 있는 그것에 다름 아님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간장선생>의 기저에 놓인 의미관계에 대해 극히 진부한 설명을 내놓는 데 아주 안이해지기가 쉽다. 우선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간염 진단을 내리기 때문에 ‘간장선생’이라 불리는 아카기의 입에서, 그리고 그가 주인공인 이 영화 속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단어는 당연하게도 간염이라는 것인데, 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세상을 파괴로 이끄는, 전쟁(과 군국주의)이라는 치명적인 전염성 병균에 대한 상징으로 보면 얼추 들어맞을 테니까 말이다. 요컨대 중세를 다루는 이야기들 속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흑사병의 현대적 대체물 같은 것이 곧 간염일 것이다. 그렇다면 <간장선생>은 일차적으로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알레고리로 읽히게 된다. 정석에 충실한 이런 ‘규격 해석‘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마무라의 영화는 확실히 그것의 독선으로부터 슬그머니 빠져나오는 기이한 매력이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마무라 영화들은 대체로 혼돈 속을 헤집는 사람들에 대한 인류학적인 관찰로부터 비롯되었고 그것에서부터 힘을 얻었지 그들에 대한 어떤 설명의 도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간장선생> 역시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간장선생>은 이상하게도 아카기가 그토록 그 박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간염이 어떤 식으로 일본사회를 뒤덮고 있는지 그 증세를 실감나게 잘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카기의 환자들이 간염에 걸린 것은 단지 ‘선생’이 그렇게 진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일 정도다. 간염을 일본사회에 미만한 군국주의 세포의 비유로 본다고 해도 그 증세는 중증에 해당할 정도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아카기 일행에게 직접적으로 물리적 위해를 가하기 전으로 한정해보자면 아카기와 반대편에 있는 제국의 군인들은 아카기보다 어리석거나 꽉 막혔거나 그도 아니면 그저 아카기와 의견을 달리할 뿐이다. 증상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데 아카기는 매번 간염이라는 진단을 하고 잘 먹고 푹 쉬라는 똑같은 처방을 내린다. 그렇게 무언가 ‘불완전한’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그는 웃음을 불러오는 존재다. 하지만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중요한 사항을 빠뜨린 것이 되고 만다. 언제나 똑같은 진단과 처방을 내리더라도 그러기 위해서는 아카기의 육체적 움직임이 있어야만 한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행위를 반복할 때, 그래서 그것이 일종의 소명임을 몸으로 입증할 때, 그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들썩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된다. 그리고 오히려 그야말로 간염 바이러스처럼 전염의 힘을 가진 존재가 된다. 그래서 포로수용소를 탈출했다가 도로 잡혀온 네덜란드인 피트가 자신을 마구 구타하는 일본군한테 “네 놈은 머리끝까지 간염에 걸렸구나”라고 소리칠 때 감지되는 것은, 간염의 실제 확산이라기보다는 간염이 널리 퍼지고 있다는 인식의 확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 아카기가 달리는 것을 멈출 때, 아니면 적어도 달리는 횟수를 줄일 때, 그는 점점 병든 존재가 된다. 아들의 전사소식을 듣고 난 뒤부터 그는 간염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데 거의 편집증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한다. 이런 아카기의 행동은 처음엔 에너지의 적극적 선용(善用)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차츰 비상식적인 무모함으로 변질되어버린다. 간염 바이러스를 연구한답시고 현미경만 들여다보던 그는 환자 왕진하는 일을 미루고 결국 그 환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게 되는 것이다. ‘치료’는 환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의사 아카기에게도 필요한 것이 된다. 어떤 면에서 <간장선생>은 아카기 자신의 치료기이기도 한 것이다. 성적 에너지, 그 근원적 생명력 <간장선생>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주제들 가운데 하나가 치료라고 했을 때 아카기만큼이나 중요한 또다른 인물이 바로 소노코이다. 아카기의 조수로 일하는 그녀는 아카기만큼이나 또는 어떨 때에는 그보다도 더 치료라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물로 보인다.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피트를 치료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그녀이고, 또 아카기가 현미경에 집착하고 있을 때 환자를 보러가야 한다고 자꾸 재촉하는 것도 그녀이다. 하지만 일종의 ‘치료사’로서 소노코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것은 그녀가 가진 근원적 생명력, 즉 성적 능력을 발휘할 때이다. 영화의 초반부에 한 중년 여인이 창녀였던 소노코에게 간곡하게 부탁한다. 총알이 숫총각을 좋아한다고 하니 곧 전쟁터로 떠나야 할 숫총각인 자기 아들의 동정을 떼달라고. 그렇게 해서 아들의 생명을 꼭 지켜달라고. 소노코는 여인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건 어린 시절 친구이기도 한 그 여인의 아들에게 소노코가 가장 잘해줄 수 있는 심심한 배려 같은 것이었다. 전쟁중과 그뒤에 어쩔 수 없이 매춘에 빠져들게 된 여성들이 그동안 영화 속에서 어떤 대접을 받아왔던가를 한번 살펴본다면 이 소노코라는 여성이 얼마나 특별한 캐릭터인가가 잘 드러날 것이다. 예컨대 여간해서는 고요한 일상성의 테두리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도 매춘과 관련해서 가장 폭력적인 장면이 연출된 적이 있다. <바람 속의 암탉>(1948)에서 유부녀인 도키코는 전쟁이 끝나고도 남편의 귀환 소식을 듣지 못하자 병든 아이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몸을 팔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 집에 돌아온 남편은 이 사실을 알고는 분을 못 참고 아내를 계단 아래로 던져버린다. 오즈의 이 영화에서처럼 대부분 여성들의 매춘은, 아무리 전쟁통에 어쩔 수 없이 한 것일지라도 심한 학대를 받아야 하고 또 그러고나서야 용서받을 수 있는 행위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마무라는 그런 일반적 공식을 과감하게 뒤집는다. <간장선생>에서 소노코의 아버지는 딸더러 ‘더러운 매춘부’라며 역정을 내다가 그만 죽고 만다. 이마무라가 보기에 오히려 그런 식의 비난은 근원적인 생명력을 가진 여성에게 해서는 안 될 금지된 말인 것이다. 해피엔딩은 아직 이르다 언뜻 보면 모자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소노코는 분별력을 갖고 있는 여성이다. 마을사람들이 아카기를 두고 ‘돌팔이’라고 놀려댈 때 그녀는 아카기의 진심을 알아낸다. 아카기로 하여금 할 일을 일깨워주고 또 그의 속 깊은 곳에 억눌려 있던 성욕을 슬며시 끄집어내준다. 그렇기에 <간장선생>은 의술과 두 다리로 병든 세상을 치료하고자 하는 의사 아카기에 대한 영화이면서 또한 왕성한 생명력으로 그를 치료하고 또 세상을 어루만져줄 여성 소노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처럼 나이 지긋한 남자와 그보다 훨씬 어린 여성 사이의 관계라는 구도는 사실 이마무라의 영화들에서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일본곤충기>(1963)에서는 콜걸과 그녀의 나이 많은 정부 사이의 뒤틀린 관계가 그려져 있고, <인류학입문>(1966)은 8mm 포르노영화감독과 그가 관계를 맺던 과부의 어린 딸 사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복수는 나의 것>(1979)에는 잔혹한 연쇄살인자의 아버지와 그 살인자의 아내 사이의 미묘한 관계가 다뤄진다. 그런데 이 영화들에서 남녀관계란 대개가 가혹한 운명이나 또는 저열한 착취관계로 인해 파국을 맞았다. 반면 <간장선생>은 이마무라의 영화들 가운데 아주 드물게도 희미하게나마 남녀 주인공의 화합으로 끝을 맺는 듯하다. 영화가 끝날 무렵 아카기와 소노코가 배 위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다면 이마무라의 냉정한 시선도 노년에 와서 안착점을 찾으려 하는 것일까?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한숨 놓으려는 찰나 우리는 바다 저 멀리서 하늘 높이 치솟는 원자폭탄의 버섯구름, 아니 아카기의 표현대로라면 “비대해진 간”을 보아야 한다. 남녀의 결합 앞에는 엄청난 파괴, 그리고 더 거대해진 질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괴하고 섬뜩하며 부조리한 이마무라의 상상력은 벌써 끝난 게 아니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antihong@hitel.net

포스트 냉전시대, 스파이 작가가 사는 법

● 존 르 카레가 그의 차기작인 <테일러 오브 파나마>의 자료를 수집하러 파나마에 방문했을 때, 파나마 정부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영어권의 가장 잘 나가는 스릴러 작가가 파나마를 무대로 책을 쓴다니 그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뉴스였다. 파나마 정부에서는 국민의 혈세를 펑펑 쏟아부으며 존 르 카레를 국빈 대접했다. 그랬으니 르 카레가 <테일러 오브 파나마>를 출판했을 때, 파나마 고관 대작들이 얼마나 열불이 터졌을지 생각해보라. 그렇게 대접했는데도 불구하고 파나마를 타락한 정치가들이 득실거리는 쓰레기통으로 묘사해? 이런 배은망덕한 사기꾼이 있나. 여기서 우린 사실 하나를 유추해내고 유익한 교훈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사실. 파나마 정부 사람들은 그때까지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읽은 적 없다. 교훈. 에릭 앰블러의 뒤를 이은 전통적인 영국 스파이소설 작가에게 정부 선전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특히 냉전시대에 스파이로 일하면서 온갖 끔찍한 일을 다 보고 정부 기관이나 정치가들에 대해 지독한 냉소주의를 쌓아올린 르 카레 같은 남자한테는 말이다. 냉전이 끝난 뒤 스파이물은 스릴러 장르에 새로운 회색무대를 제공했다. 30년대까지 사생아처럼 이리저리 떠돌다가 에릭 앰블러에 의해 세례받고 본격적인 장르로 인정받은 이 세계에서 순수한 선악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인공들은 괴물 같은 거대한 정부에 끌려다니며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발버둥쳤다.007이나 플린트, 나폴레옹 솔로처럼 정부가 제공한 장난감으로 환상적인 모험을 해대는 친구들은 어떠냐고? 그들 역시 이런 회색세계의 산물이었다. 전통적인 액션물에서 주인공의 액션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들은 ‘선량한 주인공’이었으니까. 하지만 007식 스파이물의 주인공들은 ‘착한 편’이라기보다는 ‘이쪽편’이었고 ‘선량한 주인공’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라. 007 이야기를 정말로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제임스 어쩌고라는 지루한 바람둥이 자연인이 아니다. 진짜 흥미있는 것은 그에게 00번호가 붙은 살인면허가 있다는 것이다. 관객은 문명사회의 가장 끔찍한 ‘죄’에도 면죄부가 있는 이 바람둥이를 따라가며 그의 권력 남용을 즐기는 셈이다. 그러나 007 시리즈는 정통적인 스파이물에서는 기형적인 존재였다. 정통적인 스파이물이 제공하는 회색무대는 그보다 덜 분명했다. 정부는 거대한 괴물이었으며 주인공인 개인은 그들이 냉정하게 조작하는 음모의 소용돌이에 말려들며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발버둥쳤다. 선악은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했다고 해도 그건 개인적인 수준에서 제한되었다. 냉전시대는 이 음산한 세계에 더욱 그럴싸한 음영을 넣어주었다. 여전히 국가들은 서로를 물어뜯으려는 괴물들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못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사상을 내세우며 그들의 전쟁을 성전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광신이건 위선이건, 결과는 더욱 극적이었다. 소용돌이는 더 크고 잔인해졌으며 개인은 더 작아졌다. 그리고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시작으로 쏟아져 나온 에릭 리머스나 조지 스마일리와 같은 르 카레의 주인공들은 이런 천박한 세계에서 어떻게든 존엄성을 유지하려 버티는 작은 개인들이었다. 르 카레는 그 시대를 신나게 이용했다. 그러다 냉전이 끝났다. 이론만 따진다면 스파이 작가들은 잃을 것도 없었다. 첩보전은 여전히 존재하고 세계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톰 클랜시처럼 잠수함과 탱크로 글을 쓰는 작가들은 결코 먹을 게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존 르 카레와 같은 사람들은 어쩔 것인가? 그가 그렇게 증오하고 경멸하면서도 끝도 없이 이용했던 세계가 사라졌는데? 새로 탄생한 북적거리는 세계는 그에게 어떤 가능성을 가져다줄 것인가? 파나마, 그곳에 운하가 있으므로 <테일러 오브 파나마>는 부패한 영국 스파이 앤드루 오스나드가 파나마로 파견되면서 시작한다. 고위관료에 닿아 있는 영국인을 찾던 오스나드는 자칭 영국 정통의 재단사이지만 사실은 전직 보험사기꾼인 소악당인 해롤드 펜델을 찾아내 정보원으로 삼는다. 오스나드의 협박에 못 이겨 스파이 행세를 하던 펜델은 서서히 사기꾼 기질을 드러내며 가짜 정보를 양산해내고 오스나드는 그걸 한몫 잡을 기회로 이용하려 한다. <테일러 오브 파나마>는 어떻게 보면 옛 스파이물 작가들을 안심시킬 만한 작품이다. 무대는 90년대 남미로 바뀌었지만 고전적인 스파이 이야기의 플롯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해롤드 펜델과 타락한 스파이 앤드루 오스나드는 30년대 에릭 앰블러 소설에 나와도 전혀 문제가 안 될 사람이다.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디미트리어스의 관>에 나오는 글로덱과 블릭의 관계와 닮았다. 단지 오스나드에게 글로덱의 직업 윤리가 없고 펜델이 블릭보다 쬐끔 더 양심적이고 복잡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테일러 오브 파나마>는 미국의 외교정책이나 부패한 파나마 정권에 대한 비판일까? 그렇게 좁게 볼 필요는 없다. 영화 초반에 보면 영국 대사관 직원이 오스나드를 위해 노리에가 정권과 부시 정부의 뒤얽힌 관계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몇분짜리 비디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 상황설명도 끝이다(다시 말해 관객이 알아야 할 것도 그것으로 끝이란 말이다.). 펜델이 파나마 시내의 마천루들을 가리키며 ‘코카인 빌딩’이라고 떠드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 역시 그리 대단한 정치적 의미는 품고 있지 않다. 후반부에 나오는 야유 섞인 펜타곤 묘사에 그렇게 대단한 의미를 둘 필요 역시 없다. 이런 장면들은 파나마가 아닌 어느 곳에도 해당될 수 있고 꼭 미국이 대상일 필요도 없다. 르 카레가 이 영화에서 원했던 것은 단 하나. 운하다. 자신만의 음모를 만들고 액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도구 말이다. 물론 주변에 적당히 타락한 정부가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고. 어떻게 보면 르 카레가 하는 이야기는 냉전시대와 다를 게 없다. 거대하고 힘있는 정부가 끈을 휘둘러대는 판 위에서 필사적으로 존엄성을 찾아 발버둥치는 작은 개인들. 그런데 언제부터 이 양반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냉소적이 되었을까?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러시아 하우스>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 역시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었지만, 르 카레가 이처럼 냉소적인 코미디를 쓴 적은 없었다. 오스나드는 끔찍한 1차원적 캐리커쳐고 정보국은 바보 집단이며 외교관들은 부패해 있으며, 모두 다 굉장한 어릿광대들이다. 세상이 그렇게 바보스러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은 답이 되지 않는다. 냉전시대라고 세상이 특별히 덜 바보스러웠던 건 절대로 아니다. 나보고 말하라고 한다면 존 르 카레라는 이 양반이 남몰래 냉전시대를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는 냉전시대를 결코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시대에 대한 그의 감정은 그의 문학적 원동력이었다. 그에게 근사한 문학적 배경과 실존적 고민을 안겨주었던 그 처절한 시대는 이제 가고 없다. 거대한 허세가 사라졌으니 고민도 작아졌다. 르 카레에게 현대의 스파이전이 그렇게 가소롭게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계의 운명이 좌지우지된다고 믿었던 냉전시대와 지금과 같은 국지전의 시대는 스케일이 다르지 않은가. 그렇다고 앰블러 시대로 빠지자니… 그럴 수는 없다. 아무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작가들은 과거의 전통으로 그렇게 쉽게 돌아갈 수는 없다. 결국 이 영감은 툴툴거리며 아무에게나 냉소의 화살을 쏘아대는 성질 고약한 영감으로 주저앉았던 것이다. 왜 007 사나이 인가 지금까지 영화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 사실 과연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이 영화를 존 부어맨의 영화로 보고 글을 길게 늘일 생각은 없다. 아무래도 공동 각본가로 참여하고 제작자로 뛰었던 르 카레의 입김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영화가 원작과 다르다고 해도 이 작품은 부어맨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르 카레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르 카레의 작품이다. 대표적인 예가 오스나드 역에 피어스 브로스넌을 기용한 부분이다. 물론 존 부어맨이 브로스넌을 기용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난 별 어려움 없이 이 모든 게 르 카레의 음모라고 믿는다. 생각해보라. 르 카레는 제임스 본드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본드가 한참 유행이던 60, 70년대 당시, 르 카레는 웬만한 어록집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본드 욕을 많이 했다. “제임스 본드는 창녀다”에서부터 “말도 안 되고 천박하기만 한 현실의 곡해”까지 정말 끝도 없었다. 그 덕택에 그의 주인공 조지 스마일리가 반 제임스 본드용으로 창조되었다는 소문도 떠돌았으니까. 지금도 그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그런 욕들이 한마디씩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 그가 제작자인 영화에 진짜 제임스 본드용 배우가 본드의 사악한 캐리커쳐처럼 보이는 사기꾼 악당 스파이로 출연하는 게 과연 우연일까? 심술탱이 영감의 복수로 이처럼 좋은 게 어디 있는가? 이러다보니 이야기는 내가 그린 심술궂은 영감탱이 작가의 초상화로 돌아가게 된다. 아마 이 영화가 덜 심술궂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존 부어맨의 공로일 것이다. 비교적 밝아진 결말과 좀더 친절한 익살스러움은 부어맨 덕택일 가능성이 높다. 부어맨의 진짜 공로는 갈수록 야비해지려는 르 카레의 심술보를 억누르고 예술적 브레이크 역할을 한 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듀나/ djuna01@hanmail.net

할리우드의 어드벤처 바람

■ <미이라>로 다시 불붙기 시작한 액션어드벤처영화의 매력과 흥행요인 이건 일종의 유행이다. 98년 <딥 임팩트> <아마겟돈>을 고비로 재난영화가 쇠퇴기미를 보이더니 올해 여름 극장가는 어드벤처영화의 쇼윈도가 됐다. <미이라2> <툼레이더> <아틀란티스>, 이 세편의 원전은 같다. 이집트, 고고학자, 도굴꾼, 잃어버린 대륙, 이 정도 키워드만 있으면 금방 눈치챌 것이다. 이들 영화는 모두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영감을 얻었다. 지난해 서사극 <글래디에이터>가 차지한 영토를 전쟁영화 <진주만>이 점령한 걸 제외하면 확실히 유행은 바뀌었다. 회오리바람, 화산폭발, 혜성충돌에 무감각해진 관객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건 이제 풍뎅이떼와 터미네이터 같은 고대 전사들과 3D로 만든 괴물들인 것이다. 모두가 존스의 후예들 눈에 띄는 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시즌 패션은 1999년 <미이라>의 흥행에서 예견됐다. 제작비 8천만달러에, 스티븐 소머즈라는 낯선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 4억달러를 넘기는 성공을 거뒀다. 브랜든 프레이저, 레이첼 와이즈 등 결코 할리우드 A급스타라고 할 수 없는 배우들로도 이만한 결과를 냈다면 연출이 뛰어나거나 대단한 스펙터클이 있어야 정상일 텐데 <미이라>를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피라미드와 모래사막과 괴물이 주연 남녀보다 부각된 포스터는 <미이라>의 출신성분을 슬쩍 감추고 있지만 영화를 본 관객은 그들이 본 게 뭔지 금방 알아차렸다. 미라에 납치된 여인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미국인 모험가 릭 오커넬, 그는 1989년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이후 10년 만에 찾아온, 더 젊어진 인디아나 존스였던 것이다. <미이라>의 흥행비결은 무엇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데 있다. 제작진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저작권을 가진 유명한 공포영화의 캐릭터, 미라를 어린이가 볼 수 있는 눈높이로 맞췄다. 연애담은 말랑말랑하고 폭력장면은 절정에 이르더라도 다량의 피를 분출하지 않는 수준에 머물렀다. 대신 유머와 액션은 쉴틈없이 이어져서 일단 올라타면 정확히 뭘 봤는지 기억 못해도 지루할 틈을 좀처럼 주지 않는다. <미이라2>는 <미이라>의 이런 요소만 버전업한 경우다. 전편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구조에 대해 “이번엔 뭐였냐고? 뭐 미라랑, 피그미랑, 또 큰 벌레들이랑. 늘 똑같지 뭐”라고 스스로 답하는 <미이라2>는 <미이라>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베낀 것을 개정증보판으로 되풀이한 영화인 셈이다. <미이라>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참조한 방식이 공포물 캐릭터인 미라를 수입하고 젊음과 유머를 첨가한 것이라면 <툼레이더>는 영화 밖에서 활로를 찾은 특이한 경우다. 널리 알려졌듯 게임 캐릭터 라라 크로프트는 여자 인디아나 존스다. 1996년 탄생한 <툼레이더>는 인디아나 존스에게 없는 매력으로 치장한 액션어드벤처게임이었다. 1930년대 활약한 인디아나 존스는 채찍이 가장 강력한 무기였지만 현대의 영웅 라라 크로프트에겐 쌍권총을 비롯한 첨단무기가 있다. 게임이 지적매력을 갖춘 터프가이를 섹시한 여성전사로 탈바꿈시키자 할리우드는 그(그녀)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간 할리우드가 <모탈 컴뱃> <수퍼마리오> 등 유명한 게임캐릭터를 초빙해 별 재미를 못 봤지만 <툼레이더> 제작진의 기대는 좀 달랐다. 유명한 영국 고고학자의 딸이라는 표면적인 혈통 외에 그녀가 수차례 스크린에서의 모험으로 10억달러 넘는 돈을 거머쥔 인디아나 존스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이 제작진을 고무시켰다. 게다가 그녀가 안젤리나 졸리라면? 감독 사이먼 웨스트는 “그녀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과장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툼레이더>의 성패는 누가 라라 크로프트 역을 맡느냐에 절반 이상 달려 있었다. 제작진은 그녀야말로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최고의 스펙터클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스토리나 캐릭터가 아니라 안젤리나 졸리에만 관심을 둔 영화 <툼레이더>는 그 증거다. 2001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아틀란티스> 역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빚진 작품이다. <아틀란티스> 제작진은 동화보다 비디오게임에 익숙한 어린 관객을 겨냥해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 <아틀란티스> 제작자인 돈 한은 “우리는 수많은 동화들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뭔가 더 신선한 시도를 하고 싶었고 더 중요하게는 관객의 요구에 귀기울여 종전과 다른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사라진 대륙을 찾아 해저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게 된 계기가 어드벤처영화의 유행을 뒤쫓는 건 아닐까?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디즈니 장편애니메이션 책임자 토머스 슈마허는 이런 견해를 부정한다. “애니메이션은 패션을 쫓는 게 불가능하다. 제작기간만 4∼5년씩 걸리는데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사실 인과관계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미이라>는 유니버설이 80년대 말부터 매달린 프로젝트였고 <툼레이더>는 1996년에 나온 게임에서 비롯된 영화이며 <아틀란티스>는 <해저2만리>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 디즈니의 모험영화 전통에서도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각자 나름대로 정통성을 주장할 근거를 갖추고 있지만 유전자의 절반쯤은 확실히 같다. 유아적인 어른을 위한 가족 어드벤터 그런데 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일까? 우연찮게도 올해는 삼부작의 첫 작품인 <레이더스>가 개봉한 지 20년이 된 해이다. 1981년 6월 개봉한 <레이더스>는 조지 루카스가 제작하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아 콤비를 이룬 첫 작품. 각자 <스타워즈>와 <죠스>로 흥행기록을 작성한 영화신동들이 아직 30대이던 시절, 의기투합한 이 작품은 2천만달러의 제작비로 흥행수입 3억8300만달러를 넘기는 흥행작이 됐다. 그리고 1984년 <인디아나 존스>, 1989년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으로 이어진 삼부작은 80년대를 인디아나 존스의 시대로 만들었다. <스타워즈>에서 조연에 머물렀던 해리슨 포드는 이 시리즈를 통해 특A급 배우가 됐으며 루카스-스필버그조는 할리우드를 쥐락펴락하는 거물이 됐다. 단순히 지난날의 영광을 회고하자는 건 아니다. 80년대를 풍미한 인디아나 존스의 매력을 사람들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 올해 초 영국잡지 <엠파이어>가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서 영국인들은 인디아나 존스를 영화사상 가장 선호하는 액션영웅으로 뽑았다. 3200여명이 참가한 투표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43%,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는 22%,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매클레인은 18%를 차지했다. 시카고대학의 별볼일 없는 고고학 박사가 영국 첩보원 제임스 본드를 앞지른 이 결과는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사실 <레이더스>의 아이디어가 처음 나왔을 때 스필버그는 제임스 본드 같은 플레이보이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중간과정이 정확히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지만 해리슨 포드가 캐스팅되고 루카스, 스필버그 외에 로렌스 캐스단 등이 시나리오작업에 참가하면서 존스는 본드와 전혀 다른 인물로 태어났다. 깔끔한 정장과 칵테일 파티가 어울리는 본드는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고 적을 물리치곤 하지만 존스는 연신 얻어터지고 번번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어쨌든 존스가 플레이보이가 아니란 사실은 관람등급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됐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평론가 로빈 우드는 <스타워즈> 삼부작과 <인디아나 존스> 삼부작으로 대표되는 루카스-스필버그 신드롬에 대해 “성인관객을 염두에 둔 어린이용 영화들, 아니 성인관객을 어린이로, 더 정확히 말하면 유아적인 어른, 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으로 보는 영화들”이라고 말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건 가족어드벤처영화의 순진성에 은근히 배어 있는 가부장제와 보수주의와 인종주의의 편견을 꼬집으려는 것이지만 영화산업은 이런 정치적 의미에 별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그게 흥행이 되고, 그것도 엄청나게 잘된다는 점이었다. 유아적 환상으로 도피할 것을 권하는 스필버그식 모험담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프랜차이즈와 머천다이징에도 적합했다. 삼부작을 기획할 때부터 타고난 사업가인 루카스의 머리에 들어 있던 것이었지만 속편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관련상품(인디아나 존스의 채찍, 모자, 만화 시리즈, 비디오게임, 테마파크 등)이 하나둘 시장에 나왔다. 비아냥거리는 말이긴 하지만 루카스-스필버그가 할리우드를 맥도널드 체인처럼 바꿔놓은 인물이라 말하는 것도 이런 면에서 수긍이 간다. 여하튼 그들이 바꿔놓은 할리우드는 동심을 그리워하는 대중에게 미지에 대한 꿈과 무용담과 현대적 영웅을 선사했고 그건 지금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도 유용한 것들이다. 게다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액션활극으로서 최상급의 작품들. <레이더스>는 최근 미국영화연구소(AFI)가 발표한 가장 스릴있는 영화 100편 가운데 10위를 차지했다. 레이건 시대의 반동적 흐름을 반영한 영화라는 근엄한 평단의 입장이 무색하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지금 다시 봐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게 하는 에너지로 넘친다. 수차례 반복되는 위험한 상황을 스턴트와 재치와 순발력으로 극복하는 이들 영화는 적당한 로맨스와 유머도 잊지 않는 대중영화의 미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 돈냄새가 나는 곳에 블록버스터가 뭐가 돈이 되는지 잘 아는 할리우드의 제작자들이 이런 시리즈를 지난 10년간 묵혀뒀다는 게 오히려 의아하지만 <미이라>가 선수를 치고나간 지점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대한 향수인 것은 분명하다. <레이더스>의 4500마리 뱀, <인디아나 존스>의 2만 마리 벌레들,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의 7천 마리 쥐는 모두 진짜인 반면 <미이라>의 딱정벌레떼와 미라 전사들이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졌다는 차이가 있지만 <미이라>는 내러티브 구조까지 <레이더스>를 빼닮았다. 물론 <미이라>나 <툼레이더>는 결코 그들이 기대고 있는 원작의 수준을 뛰어넘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원작의 영화적 정수는 놓치고 그래픽과 마케팅 기술만 버전업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프랭크 샤넬로가 쓴 전기에서 스필버그는 <레이더스>에 쏟아진 비판에 대해 “<레이더스>는 팝콘이다. 팝콘은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다. 게다가 소화도 잘되고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는다. 결국 <레이더스>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몇번이나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종류의 영화인 것이다”라고 답했다지만 최근의 모작들을 보노라면 아무나 맛난 팝콘을 만드는 건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지금 추세로 보면 <미이라>나 <툼레이더>는 계속 속편을 이어갈 것이다. 비평가들이 아무리 불만스러워해도 개봉 첫주 흥행성적은 어드벤처물의 호소력을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90년대 재난영화들처럼 상당기간 유행을 이어갈지, 잠시 스쳐지나는 바람이 되고 말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인디아나 존스> 4편이 나온다면 상황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스타워즈> 삼부작에 이은 <스타워즈 에피소드1> 열풍이 루카스 제국의 건재를 확인시켜준 경험에 비쳐보면 4편도 만만찮은 반향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이미 스필버그와 해리슨 포드가 합류할 뜻이 있다고 밝힌 4편 시나리오는 현재 <식스 센스>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이 쓰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렇게 <레이더스> 20주년을 기억하고, 시리즈 4편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것 자체가 루카스-스필버그식 마케팅 전략에 말려드는 것 아닐까? 설령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다.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유년은 제다이의 기사나 채찍을 잘 쓰는 헐렁한 옷차림의 고고학자를 만날 때 괜시리 흥분하고 만다.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 ▶ 할리우드의 어드벤처 바람 ▶ 영화 vs 영화

할리우드의 어드벤처 바람 | 영화 vs 영화

악당없는 모험은 앙꼬없는 찐빵! |인디아나 존스| 주인공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 고고학 교수이자 종교연구가, 골동품 수집가다. 액션어드벤처의 주인공답게 강인한 성격, 뛰어난 싸움솜씨를 지니고 있다. 그의 매력은 무엇보다 유머감각. <레이더스>에서 그는 마리온의 키스를 받으려고 꾀병 아닌 꾀병을 부리기도 한다. 악당 나치. 히틀러가 고대유물에 관심이 많은 탓에 고대유물 발굴에 나서는 나치가 인디아나 존스가 맞서 싸워야할 악당이다. 나치가 본격적인 악당이라면 <레이더스>에서 나치편 발굴팀에 속한 프랑스 고고학자 벨로그는 존스 박사가 직접 대하는 비굴한 인간. 벨로그는 존스 박사의 성과물을 가로채고 마리온마저 차지하려 한다. 괴물 1편에서는 뱀이 주로 등장하는 가운데 미라나 독거미 등이 나오고 2편에서는 벌레들이, 3편에서는 쥐떼가 등장한다. <레이더스>에서 인디아나 존스와 마리온이 뱀들이 우글거리는 ‘영혼의 우물’에 갇히는 장면은 주인공이 '괴물'과 대면하는 대표적인 장면. 베스트 액션신 <레이더스>에서 성궤가 실린 나치의 트럭을 인디아나 존스가 따라잡아 빼앗는 장면. 달리는 차 안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몸싸움과 인디아나 존스가 트럭 앞에 매달려 있다가 바퀴 사이로 몸을 빼 뒤에서 밧줄에 의지해 다시 차에 오르는 액션이 일품이다. 2편 <인디아나 존스>의 동굴 속 추격신과 3편 <인디아나와 최후의 성전>에서 탱크를 몰고 쫓아오는 나치와 싸우는 장면도 명장면이다. |툼 레이더|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안젤리나 졸리). 유명 고고학자의 딸로, 대저택에서 집사의 시중을 받으며 공주처럼 산다. 본업은 사진작가. 어느날 아버지의 메시지대로 두개의 삼각형을 찾아 앙코르와트사원에 간다. 풍만한 몸매에 탄력있는 근육으로 무장한 몸은 그녀의 강력무기. 높은 천장에 매달린 줄을 이용, 자기 전에 몸을 푸는 습관이 있다. 악당 우리말로는 ‘광명파’라 불리는 비밀조직 ‘일루미나티’의 ‘반역자’들. 일전에 이 조직의 ‘장’이었던 라라의 아버지 헨싱글리 크로프트는, 두 삼각형의 힘을 악용하려는 조직 내 반역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라라의 전 애인 알렉스도 그 일원이다. 괴물 앙코르와트사원의 온갖 부조석상들이 꿈틀거리며 살아나 괴물이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급기야는 팔이 여섯 달린 거대한 불상마저 우드득 하고 일어나 그 팔들마다 칼을 들고 달려들기에 이른다. 베스트 액션신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에 맞춰 춤을 추듯, 저택 내에서 번지점프를 하던 라라가 그 자세 그대로 저택을 습격한 악당들을 물리치는 장면. 부드럽고 우아한, 그러면서도 절도있는 최신 유행의 액션이 아찔하게 펼쳐진다. |미이라| 주인공 에블린(레이첼 와이즈)과 오커넬(브랜든 프레이저). 2편에서는 그들의 아들 알렉스(프레디 보스)도 등장한다. 에블린은 고대 이집트어에 능통하며 고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집트 도서관의 사서. 전생에 파라오 세티 1세의 딸이었다. 오커넬은 프랑스 장교 출신 모험가. 1편에서 에블린과 사랑에 빠져 2편에서는 그의 남편으로 나온다. 알렉스는 엄마를 닮아 똑똑하고 아빠를 닮아 튼튼한 아이. 우연히 스콜피온 킹의 팔찌를 차고 모험에 동참한다. 악당 세티 1세 시대 고대 이집트의 승정원 이모텝(아놀드 보슬루). 파라오의 여인 아낙수나문을 사랑한 죄로 산 채로 미라가 되는 ‘홈다이’ 형벌을 받아 죽은 인물이다. 3천년이 지난 뒤 에블린의 오빠 조나단의 실수로 깨어난 그는 분노에 가득 차 이집트에 저주를 쏟아붓는다. 1편에서는 오커넬 수하에 있던 겁쟁이 베니가, 2편에서는 대영박물관의 하페즈 관장이 이모텝을 받드는 수하로 나온다. 괴물 이모텝을 대장으로 하는 미라 군단, 그리고 사람의 살을 파먹는 풍뎅이벌레들이 연신 시야를 덮쳐온다. 징그럽고 끔찍하기로서는 <미이라>의 괴물들이 단연 으뜸. 2편에서는 피그미 미라와 스콜피온 킹을 위시한 전갈도 합세한다. 베스트 액션신 이모텝이 일으킨 모래바람이 주인공들의 비행기를 공격하는 장면. 모래에는 이모텝의 얼굴이 거대하게 새겨지고 그가 입을 벌리자 비행기가 그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모래바람이 물보라로 대체되어 2편에서도 반복되는 장면. 사막을 가득 메운 미라떼와 이집트 전사들이 맞붙는 ‘인해전술’장면 또한 2편에서 손꼽히는 액션장면이다. |아틀란티스| 주인공 마일로 사치(목소리 연기: 마이클 제이 폭스). 박물관의 지도제작자이자 언어학자다. 탐험가였던 할아버지로부터 미지의 문명에 대한 동경을 물려받았다. 책벌레답게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으며 엉뚱하다는 오해를 받을 만큼 진지하고 다소 과묵한 성격. 용맹하나 장난기는 없다. 루크 선장의 배신을 전혀 예상치 못하기도 한 순진한 학자 스타일. 악당 루크선장. 마일로의 탐험대가 탄 잠수함의 선장이다. 그가 아틀란티스에 가는 것은 물욕 때문. 아틀란티스에 있는 금은보화와 크리스털을 팔아 한몫 차지하려는 그는 아틀란티스에 도달하자 마일로를 배신, 키다 공주를 납치하고 보물들을 챙겨 떠난다. 괴물 3D로 만들어진 해저괴물 리바이어던. 갑각류와 흡사한 딱딱한 몸체를 가진 대형 괴물이다. 리바이어던은 마일로 일행이 아틀란티스에 거의 당도했을 때 그들의 잠수함을 공격한다. 대원들은 작은 배를 타고 잠수함에서 탈출하고 리바이어던은 잠수함을 파괴한다. 베스트 액션신 마일로와 루크 선장의 마지막 전투장면. 신비의 힘을 지닌 크리스털 조각을 이용하여 수세기 동안 잠들어 있던 아틀란티스의 석재 물고기 비행선을 깨워낸 마일로가 배신자 루크에게서 키다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출격한다. 고속 비행선의 강렬한 속도감 속에 긴박한 전투가 벌어진다. 최수임 기자 sooeem@hani.co.kr ▶ 할리우드의 어드벤처 바람 ▶ 영화 vs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