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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그들은 징징거리지 않는다

그들은 오랜 동안 부모들, 특히 아버지들과의 싸움에 ‘청춘’을 걸었다. 성장기의 억압은 그들에게 어떤 상흔을 남겼나를 분석하는 일이 유행이었다. 집 밖에서는 또 다른 커다란 억압을 분석하고, 거기 맞서는 싸움이 오래 진행됐다. 바깥의 싸움이 지리멸렬해졌다. 그들을 불러내는 건 그런 싸움이 아니다. 엔터테인먼트를 닮은, ‘약간의 폭력도 있지만’ 본격적 유혈은 없고 컵 하나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그들의 정체를 알고 싶다는 욕망들이 곳곳에서 부글거린다. 전경과 고복수와 미래는 바로 그 세대의 젊은이들이다. 이들 역시 지난 시대의 싸움에 관심이 없다. 백은하 기자가 이번 특집에서 인용했듯 “세상을 바꾸는 건 죽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중심은 ‘나’다. 그래도 진화론자들은 이들에게서 지난 시간의 흔적들을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그건 모든 수직적 권위가 이들 앞에서 위력을 잃어버렸다는 극중 ‘사실’이다. 드라마 속 사람들은 대체로 평등의 수혜자들이다. 억압의 피해자 자리에서 일어난 자식들은 대등해진 부모의 결함(비밀은 없다)까지 어루만진다. 담당형사가 남자주인공의 전과사실을 폭로했어도 동료들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 ‘어이, 전과자!’라는 애칭을 선사하는 계기가 될 뿐이다. 이 자유는 세상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에서 나온 것. <네 멋대로 해라>라고 제목이 지시하는 대로,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그들은 중력을 벗어나는 것이다. 세상은 거기 그대로 있다. 이들은 다만, 징징대지 않을 뿐이다. ‘드럽지만 쿨하게’ 패자의 패를 택한 이 개인주의자들은 우리 텔레비전 드라마에선 드물게 새로운 인물들이다. 욕망과 관습의 관성을 비껴나는 그들의 주법을 제시하는 형식 또한 빼어나다. 그래서 <네 멋대로 해라>를 이번의 특집으로 다뤘다. ‘요즘 젊은이’들의 정체를 그들이 사랑하는 드라마를 통해 알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칼럼니스트 황진미씨가 <오아시스>의 평을 보내왔다. 리얼리즘영화 <오아시스>가 제시한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들과 충돌하는 해피엔딩에 동의할 수 없다는, 비판적 견해가 담겼다. 우리 지면이 언제나 생산적 토론의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시사기와 <죽어도 좋아>의 재심의를 앞두고 마련한 충무로 검열의 연대기도 같은 효용을 발휘하리라 믿는다.

가을 문턱 ‘애니 축제’ 알알이

여름의 막바지에, 전혀 이질적인 두 애니메이션 세계로의 초대장 두장이 날아들었다. 한 장은 비상업적이며 실험적 형식과 자유로운 정신이 가득한 캐나다 애니메이션의 전통에로, 또 한 장은 상업적으로 세계를 제패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재로의 초대다. 13일부터 엿새간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선 2002 캐나다 애니메이션 특별전-NFBC(캐나다국립영화제작소) 스페셜( www.ani.seoul.kr,02-3455-8363)이 계속된다. 서울시와 주한캐나다대사관이 공동주최하고 서울산업진흥재단 서울애니메이션 센터가 주관하는 이 행사는 엔에프비시의 작품을 위주로 단편 50여편이 선보인다. 특히 전설적인 작가 노만 맥라렌(1914~1987)의 작품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라 애니메이션 팬들의 마음을 달뜨게 할 만하다. 맥라렌은 1950~60년대 ‘실험적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라 불렸던 인물. 다정한 이웃간에 사소한 이유로 경계를 만들고 다툼을 벌이는 <이웃>(1952)이나, 사람이 깔고 앉는 의자가 반항한다는 내용을 단순히 의자라는 소품 하나를 통해 보여주는 <의자 이야기>(1957) 등은 지금봐도 혁신적이다. 원래 엔에프비시는 1939년 영화·다큐·어린이물 등 시청각 작품들을 제작·배급하는 기관으로 설립됐다. 그 가운데서도 40년대초 맥라렌이 본격적으로 합류한 이후, 엔에프비시가 만들어낸 ‘캐나다 애니메이션’은 실험적이면서도 철학적 깊이를 가진 독특한 색깔로 세계 애니메이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 특별전엔 맥라렌 외에도 대표적 작가인 이슈 파텔, 자크 드루엥, 코 회드만, 캐롤라인 리프 등의 작품들이 상영된다. 한국인 최초로 엔에프비시의 애니메이터가 된 김인태씨의 <한국어>(1967)도 포함됐다. 특별전엔 이런 ‘역사’ 외에도, 90년대 이후 작품들이 다수 선보인다. 캐나다의 최근 애니메이션들은 실험의 형식이라는 전통을 이어받으며 삶의 가치를 일깨우는 교육적 내용들을 담백한 느낌의 화면에 자연스레 녹인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대중문화 장르라는 애니메이션과 전통적으로 순수예술로 분류된 미술작품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들의 영상은 인상적이다. 셀 작업과 손가락 페인팅을 아름답게 결합한 <스노우 캣>이나 그림책을 보는 듯한 화면에 따뜻한 가족애가 돋보이는 <할머니와 함께> 등이 포함됐다. 이번 행사엔 또 <구슬 게임>(1977) 등 실험 애니메이션의 세계적 감독이자 교육자로 유명한 이슈 파텔이 내한해 14~15일 직접 워크숍을 가질 예정이다. 입장은 무료지만, 많은 객석이 이미 찼을 정도라 예약을 서둘러야 할 듯 하다. 캐나다 애니메이션이 일반관객에겐 ‘낯선 충격’이라면, 11일부터 닷새간 애니마떼끄가 주관해 서울 건국대 새천년 기념관 홀에서 여는 제4회 국제 판타스틱 애니메이션 페스티벌(fanta-ani.com, 02-455-1897)은 좀더 대중적인 행사다. 전체 13편의 장편 필름 또는 OVA(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상영된다. 이성강 감독의 <마리 이야기> 이외엔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 최근작들이며 대부분 사이버펑크적인 에스에프물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됐다. 화제는, <공각기동대>(1995)의 후속작 텔레비전 시리즈물 <공각기동대: 스탠드 얼론 컴플렉스>의 세계최초 공개다. <공각기동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배경으로 사이보그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에스에프물로, 오랫동안 후속작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왔다. 극장판은 현재 1편의 감독인 오시이 마모루가 2004년 개봉을 목표로 작업중이다. 극장판 개봉에 앞서 영화의 제작사인 스튜디오 I.G는 23편의 텔레비전 시리즈를 제작했고 그 가운데 <공안 9과>와 <폭주의 증명> 2편의 에피소드가 이번 행사에 초대된 것이다. 감독의 색채가 진한 극장판에 비해 텔레비전물은 원작자인 시로 마사무네의 분위기에 충실한 편이다. 정보네트워크화가 삶의 구석구석까지 장악한 미래에서 네트워크에서 의도적으로 이탈한 사람들의 심리(‘스탠드 얼론 상태’)를 그리고 있다. 또 하나의 스페셜 프로그램으론 요시나가 나오유키 등의 <기생충 인형(패러사이트 돌스)>이 역시 세계 최초로 상영된다. 인공인간인 ‘부머’로부터 성적으로, 심리적으로 위안을 얻으려는 인간욕망을 그린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다. 이밖에 국내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들 사이에선 입소문이 났던 학원 에스에프물 <후리크리>나 <사쿠라 대전-활동 사진><엑스 드라이버> 등이 상영된다. 스페셜 프로그램 7000원, 일반 프로그램 5000원.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난니 모레티 감독의 <4월>

Aprile 1998년감독 난니 모레티 출연 난니 모레티EBS 9월14일(토) 밤 10시 난니 모레티는 최근 국내에 <아들의 방>을 통해 소개된 적 있다. 이 영화만 본 사람이라면 정통적인 드라마를 만드는 연출자로 난니 모레티를 기억하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이전까지 감독은 전혀 상이한 영화를 만들었다. 난니 모레티 감독은 ‘이탈리아의 우디 앨런’이라고 칭해진다. 그럼에도 우디 앨런과 비교할 때 난니 모레티의 관심사와 영화적 행보는 차이가 있다. 우디 앨런이 뉴욕과 남녀의 섹슈얼리티, 재즈음악에 관해 일관된 관심을 보인다면 난니 모레티는 정치문제에 민감하다. <4월>은 감독의 ‘정치영화’ 중 한편으로 1996년을 중요한 기점으로 삼는다. 이탈리아에서 좌파가 정권을 잡게 된 것인데 감독은 격변기에 관한 스케치, 득남에 관한 개인사를 에세이풍의 영화로 만들어냈다. <4월>에서 난니 모레티는 실명으로 등장한다. 영화를 만드는 난니 모레티는 이탈리아 정치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마음먹는다. 이탈리아에서 좌파가 정권을 잡게 된 해에 난니 모레티는 아들을 얻는다. 마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얻은 아들이라 감회가 남다르다. 아들이 태어난 날, 선거에서 좌파의 승리가 확정되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거리엔 시민들의 함성이 넘쳐흐른다. 난니는 아들의 탄생을 기뻐한다. 이후 난니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계속하면서 이탈리아 정치현실에 실망감을 감추지 않는다. 난니 모레티 감독은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그는 연출, 주연뿐 아니라 제작과 각본을 겸하기도 한다. 다른 이의 간섭이 필요없는 ‘나 홀로’ 시스템이다. 같은 특징은 영화에도 스며들어 있다. 아내의 임신과 출산, 가족과의 사소한 에피소드 등 <4월>은 연출자의 자기반영성을 중요하게 취급한다. 또한 영화 속 난니 모레티는 정치 토론에도 빠지지 않는다. 감독의 정치 성향을 분류하자면 중도파 회의론자에 가깝지 않을까? 온갖 매스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난니 모레티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TV와 잡지, 신문 등 언론에 대해 그는 좌우익 구분을 뛰어넘어 분노하고 좌익의 상업논리에도 저항한다. 이를 요약하는 것은 세상에 갓 태어난 아들과 난니 모레티가 방에 깔린 일간지 지면 위에서 태평스럽게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될 것이다. 매스미디어, 특히 신문이나 텔레비전의 매체 성격을 논하면서 영화란 무엇인가를 재고하는 것은 감독 영화의 주요한 테마다. <4월>은 영화서사가 사소한 에피소드의 나열로 이루어진 탓에 한편의 개인적 기록 같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는 결말로 향하면서 전작 <나의 일기>(1994)와 연결되는 구석이 있다. 스쿠터를 타고 달리면서 난니 모레티는 이탈리아의 전원 풍경을 마음껏 음미한다. <4월>에서 가장 느긋한 이 대목에서 카메라는 난니 모레티의 뒤를 따르면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모든 회의(懷疑)로부터 잠시 해방됨을 뜻하는 것이다.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

15분

15 Minutes, 2001년감독 존 허츠펠드 출연 로버트 드 니로 KBS 9월28일(토) 밤 10시10분 ‘드 니로가 저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은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영화다. 영화의 시작은 평범한 범죄영화로 막을 올리고 있다. 미국 땅에 발을 딛은 유럽 출신 범죄자들의 행적을 뒤쫓는다. 이후 형사 버디물로 약간 모양새를 바꾼다. 고참과 신참, 전형적인 파트너가 만나 티격태격하면서 수사를 벌인다. 특이한 설정은 아니다.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주연인 로버트 드 니로가 영화 마지막까지 멋진 포즈를 과시하리라, 는 예상을 깨고 은 그를 처참한 죽음으로 몰고 간다. 이후 영화는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 마구잡이로, 막무가내로 지그재그의 발걸음으로 달려간다. 장르적인 독창성을 발휘한 은 같은 이유로 주목할 만한 할리우드영화다. 에밀과 올렉은 뉴욕으로 날아온다. 그들은 감옥에서 나온 뒤 자신들 몫을 동료로부터 챙길 목적을 지녔다. 둘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한 뒤 장면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다. 호텔에서 미국 텔레비전 방송을 본 에밀과 올렉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살인현장을 촬영한 뒤 테이프를 판매하고 정신병자처럼 위장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베테랑 형사 에디는 수사관 조디와 사건을 조사한다. 에디는 투철한 직업정신을 지니고 있으면서 매스컴을 꽤 의식한다. 조디에게 수사방법 등을 가르쳐준다. 그는 자신이 에밀 일행의 범행의 타깃이 되고 있음을 눈치채지 못한다. 은 익숙한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분노의 역류>에서 <올리버 스톤의 킬러>, 그 외의 범죄영화들이 될 것이다. 동유럽에서 온 올렉이라는 캐릭터는 튀는 존재다. 미국으로 건너와 범죄를 저지르고 있지만 실은 미국의 문명과 문화를 숭배하는 편이다. “미국인들은 아무도 자신의 행동을 책임지지 않아!”라며 시니컬한 태도로 일관하는 동료 에밀은, 그에 비하면 단순과격분자일 따름이다. 올렉은 미국적 이상주의를 코미디 장르에 투영했던 프랭크 카프라 감독에 대한 연모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새로운 매스미디어 환경, 그리고 미국적 신화에 중독된 이방인들이 어떻게 할리우드의 고전 내러티브를 영화적으로 해체하는지 은유하는 것 같다. 은 인터넷과 개인 비디오, 엔터테인먼트가 주요한 환경이 된 시대를 은근히 풍자한다. 범죄현장은 범죄자들의 손으로 녹화되고 테이프는 TV관계자 손에 넘어가며 시청자들의 호기심 대상이 되어버린다. 아무도 왜? 어떤 연유로?’ 라고 묻기 전에 재미와 흥미 여부를 따지려 들고,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등을 돌려버린다. 서늘한 풍자다. 같은 견지에서 은 신종 미디어 환경이 범람하는 미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폭력성, 미디어에 관한 냉소를 담는다. 존 허츠펠드 감독은 TV시리즈 여러 편을 연출한 경력이 있다. 잡종 장르영화인 에서 허츠펠드 감독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소재를 능란하게 배치하고 다룸으로써 장르영화에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을 실어낼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다. ★ 공중파 TV 영화관련 프로그램 편성표 보기 <툼레이더>부터 <천국의 아이들>까지, 추석영화 열전 <▶ 사이먼 웨스트 감독의 <툼레이더> <▶ 하워드 혹스 감독의 <붉은 강> <▶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 <▶ 존 허츠펠드 감독의 <▶ 식스센스,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외 3편 <▶ 친구, 글래디에이터, 신라의 달밤 외 2편

메리 크리스마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일종의 성탄극으로 쓰여졌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요즘 같으면 텔레비전의 크리스마스 특집극 같은 것일 텐데, 즐거운 명절을 맞아 이웃을 생각하고 우리 안의 탐심을 다스려보자는 계몽적 뜻을 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이야기 가운데 단연 명편은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다(적어도, 서양동화를 많이 읽고 자란 내겐). 서양의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가족들을 불러모으는 한국의 명절을 겨냥해 개봉하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그런 종류라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추석을 앞두고, 다시 두툼한 합본호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분량으로는 아주 작은 글 한편을 심어넣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련다. 9·11 테러 한돌을 앞두고, 스위스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우리의 해외기고가 임안자 선생이 이라는 옴니버스 다큐멘터리에 관한 글을 써줄 수 있다고 통지해왔다. 마침 이 다큐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됐고, 황혜림 기자가 가 있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도 초청돼 있었다. 그런 사정을 전달받은 선생의 편지가 나의 전자우편함에 도착했다. “9·11 영화에 대해서 <씨네21> 기자가 쓴다니 잘된 것 같네요. 애초 전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제작자의 동기)와 사건 이후 영화감독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정치적·예술적 차원에서 밝히면서 현재 미국 정부의 중동정치에 대해 유럽에서 세차게 일고 있는 지성인들의 저항의식을 말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건 사견이지만요, 9·11 같은 영화를 한 영화제의 테두리 안에서 쓴다면 많은 영화 가운데 하나로 다뤄지지 않을까 싶네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핵심은 미국으로부터의 자유를 향한 집단적인 노력입니다. 이라크를 공격하겠다는 부시 정부에 대한 슈뢰더 독일 총리의 계속되는 반대성명도 유럽연합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 9·11 영화를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영화전문지로서 <씨네21>의 가능성과 한계를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씨네21>이 생긴 동기에 아직도 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선생의 편지는 젊은 세대의 발랄함 못지않게, ‘기성세대’의 혜안도 우리 지면에서 보고 싶다는 말로 끝났다. 뒤를 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을 내다보며, 영화의 바깥을 널리 살피는 시선을 보여달라는. 스위스에서 날아온 해외기고는 그러다보니, 한가위 명절을 앞둔 우리의 <크리스마스 캐롤>, 아니면 <성냥팔이 소녀>가 되었다. 또, 이번호부터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서는 김훈씨의 뒤를 이어 이 시대의 걸출한 이야기꾼, 소설가 성석제씨가 귀한 글을 보여준다. ‘기성세대’는 여기서 보수를 뜻하지 않는다는 걸, 노파심에서 덧붙인다.

<리버티 뉴스> 제작, 그리고 3D 입체영화 조감독으로 일하기까지

50년 미국 공보원 영화부에서 내가 맡은 일은, 미국에서 제작된 홍보영화를 번역하는 거였어. 순전히 영어 실력이 요구되는 일이었기에 나에게 주어진 거지. 다큐멘터리를 처음으로 접하는 순간이었어. 정작 나에게 영화의 길을 열어준 건 미군이 된 셈이야. 그뒤 53년 국제연합한국재건단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영화제작의 길로 들어서게 돼. 운크라(UNKRA)라고 하는 한국재건단은 50년 12월 제5차 국제연합 총회의 결의에 따라 6·25전쟁으로 파괴된 한국의 부흥과 재건을 돕기 위해 설립했던 기구였어. 국제연합 회원국들의 갹출금으로 식량 원조도 하고 산업, 교통, 통신, 의료, 교육시설을 복구하는 게 주요 임무였지. 53년 7천만달러의 기금으로 부흥사업에 착수한 이래, 60년까지 계획된 물자를 원조했는데, 그 실적은 1억2208만4천달러에 달했어. 이 기구의 원조로 건립된 주요 시설로는 인천판유리공장·문경시멘트공장·국립의료원 등이 있었지. 그런 운크라에선 전쟁 직후 한국의 실태를 알리는 다큐와 미군의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홍보영화 제작에도 관여했어. 특히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방영되던 <대한뉴스>를 대신해 <리버티뉴스>를 찍기도 했어.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번역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들을 따라다니며, 현장의 인력들을 대신 지휘하고, 기술자들에게 카메라, 조명기계 등의 매뉴얼을 번역해주기도 했어. 그러다가 차츰 스크립트도 맡게 되고, 카메라도 만지게 됐지. 일종의 어깨 너머 배운 지식들이야. 뉴스나 다큐멘터리는 극영화처럼 많은 인력이 분담해서 만드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노력하에 생산됐어. 혼자서 극본을 쓰고, 카메라를 잡는 시스템이었지. 그래서 제작 전반의 지식을 얻는 것이 수월했어. 이곳 저곳을 기웃대며 얻을 필요가 없었던 거지. 그렇게 기록영화로 나 자신을 이끈 건 다름 아닌 전쟁이었어. 전쟁 직후의 한국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장소였어. 다큐란 사회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나 역시 외국의 시각이 아닌 한국인의 눈으로 조국의 폐해를 알리고 싶었어. 내 손으로 직접 카메라를 든 건 미국의 (Columbia Broadcasting System)와 (National Broadcasting Co.)에서 각각 텔레비전 특파원으로 뉴스와 기록영화를 만들면서부터였어. 전쟁다큐를 찍어 뉴스거리로 제공한 것은 나중에 <대한뉴스> 재개의 시초가 되지. 55년 한국 공보처에 둥지를 튼 나는 <코리안 퍼스펙티브>와 <낙원제주> 등의 홍보영화 제작과 함께 <대한뉴스>를 주관하게 돼. <대한뉴스>와 같은 뉴스영화란 보통 1주일에 1회, 상영시간 10분 이내로 편집·제작된 것으로 정기적으로 영화관 프로로 상영됐어. 텔레비전 수상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의 뉴스영화라 지금은 옛 추억의 대명사가 되버린 <대한뉴스>는 극장에 간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청해야 했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94년 말까지 <대한뉴스>는 한국의 대표적 뉴스영화로 살아남았어. 한국의 전망을 담은 <코리안 퍼스펙티브>와 제주도의 명승지를 한눈에 담은 <낙원제주>는 둘 다 총천연색 코닥필름으로 시도된 거였어. 한국영화로선 최초의 컬러 영상이었지. 코닥필름의 경우, 종전 뒤 구하기 어려운 힘든 물품 중 하나였는데, 다행히 근무하던 곳에서 미군을 통해 정식 절차를 밟아 수입할 수 있었어. 두 영화 모두 필름을 찾지 못해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미국에서 <코리안 퍼스펙티브>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해서 영상원에 보관 중이야. 공보처에서 일하던 어느 날 나에게 또 한번의 행운이 찾아와. 미국 파라마운트영화사에서 <휴전>(Cease Fire)이라는 3D 입체영화를 만드는데, 조감독으로 발탁된 거야.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영화제작에 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을 물색하던 중 내가 적격이라는 판단을 내린 거지. <휴전>의 감독은 오언 클램프라는 사람이었어. 내게는 미국영화 신기술과 더불어, 극영화 제작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 현장에서 틈이 날 때마다, 스탭들과 대화하며 새로운 기술을 전수받았고, 기계를 다루는 것도 점점 익숙해질 무렵 영화가 끝났어. 장비를 철수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오언 감독에게서 편지 한통이 날아왔어. “Dear Mr. Lee”라고 시작하는 그의 편지엔 한국에서 영화촬영을 하는 동안 현장의 인력 지휘와 명령의 전달, 그리고 스탭간의 훌륭한 조직력을 이끌어낸 나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어. 구술 이형표/ 1922년생구술 50년대 미국공보원(USIS)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에서 군 홍보 및 기록영화 제작구술 미국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뉴스 제작구술 60년대부터 극영화 86편 작업구술 <서울의 지붕밑> <말띠 여대생> <애하> <너의 이름은 여자> 등구술 80년대 중반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각종 전시관 기획, 설계, 시공 총괄구술 현재 등급위와 진흥위원회에서 활동 중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 /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타투>,모험을 감행하다 모호함만 남다

■ Story 이제 막 경찰학교를 졸업한 신참 슈라더는 밍크 반장에게 꼬투리를 잡혀 억지로 강력계에 들어가게 된다. 린이라는 여자의 죽음을 계기로 연쇄적인 살인 사건들의 전모가 드러나고, 슈라더와 밍크 반장은 문신이 새겨진 인체를 사고 파는 암거래망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살인용의자로 지목되던 군첼의 죽음과, 딸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을 이기지 못한 밍크 반장의 자살. 슈라더는 진범을 잡기 위해 마지막 생존자 마야를 미끼로 작전을 펼치지만, 동료는 죽고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 Review 썰렁하게 혼자 웃긴 했지만 첫 장면은 그래도 웃긴다. 인육이 뜯겨져 나간 채 피를 흘리며 거리를 헤매던 나체의 여인은 질주해오던 트럭에 받히면서 불에 타 죽는다. 이렇게 잔인한 장면이 웃음을 유발하다니. 보는 사람의 정신상태에 이상이 있는 것일까? 때때로 잔인함은 폭소를 반응양식으로 비틀어 만들어내도록 작동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그 잔혹함이 건드린 무엇인가의 증후적 반응일 때도 있지만, 이 영화의 첫 씬이 웃긴 것은 이미지를 '한 방에' 디스플레이하고자 하는 감독의 강박적 욕구가 얼핏 도를 넘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너희들 이래도 안 무서워?' 대답. 물론, 무섭기도 하다. 텔레비전 스릴러물을 만들기도 했던 로베르토 슈벤트케는 하드고어적인 이미지들로 화면을 채우며 음산함을 피워 낸다.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는 이미지들은 냉혈한 살인의 세계를 이루는 대기가 되고, 그 안에 나뒹구는 인체들의 인육과 피는 눈을 찌르기에 충분하다. 어스름한 달빛이 스며드는 생물실을 상상하는 공포가 <타투>에는 있다. 소재의 측면에서 얼른 <양들의 침묵>을 떠올리게 하지만, <타투>는 그런 깔끔한 내러티브를 축으로 하는 헐리우드 스릴러 영화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타투>는 모든 구체성을 상실하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그 뒤에 남는 잔여적인 모호함들을 잡으려고 한다. 이 과정에는 부작용도 역시 있다. 인물들의 성격창조는 굳어져 있고, 모티프들은 느슨하게 연결되어 결락되어 있다. 그런데도 인물들은 지칠 줄 모르고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고, 굳이 소개되지 않아도 상관없어 보이는 대사들이 내러티브를 파먹는다. 영화 전체가 단단하게 묶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각 씬에서 표현 수위가 생동하는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엮어진 전체는 약화되는 결말에 이르기 때문일 것이다. 밤과 낮의 구분이 아닌 푸른 기조와 붉은 반점의 충돌로, 즉 빛이 아닌 색으로 영화를 구성해내고자 하는 <타투>는 헐리우드 스릴러 영화들이 갖는 일반적인 차원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 의지를 표명한다.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과장된 하드고어적 이미지들 역시, 그 깔끔한 뇌의 충격들을 뒤집어 놓기 위한 구토의 전략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의도들이 구성의 제자리에 박혔어야 한다는 것이다. <타투>는 공포와 범죄의 근원성을 끌어내는 것에 언제나 탁월한 예능을 보여왔던 독일 영화의 역사에 일면 기대어 있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헐리우드의 장르적 요소들이 전혀 다른 물적 토대의 장에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

김형태의 오!컬트 <바보들의 행진>

“이봐 병태야, 너 이다음에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 그땐 무얼 할거니?’ 아름다운 햇살이 쏟아지는 캠퍼스의 잔디밭에서 영자가 병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영화가 왜 ‘바보들의 행진’인줄 몰랐다가 (몇번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며칠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다가 저 대사를 듣고서야 그 이유를 새삼 알게 되었다. 영자가 ‘이담에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저 바보들…”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영화속의 병태와 영자보다 훨씬 어렸을 때인 10대때 이 영화를 보았고, 또 비슷한 또래였던 20대때에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30대 말년에 또 보게 된 셈인데, 이전에는 병태와 영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그래…, 나는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 뭘하고 있을까?”라며 맞장구를 쳤었다. 그런데 30대 말년에 ‘지켜보게 된’ 저 대사는 정말 바보같은 말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시대란 바로 그때 그들의 등뒤로 떨어지던 낙엽처럼 어느새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탈당한 청춘도 새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보들아. 청춘의 꽃이 활짝 피다 못해 흐드러져 그 향기가 진동을 하는 나이에,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관통하는 그 순간에, 다름아닌 바로 너희들의 시대였던 바로 그 당장에, ‘이다음에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이라니, 이 바보들아. 이 멍텅구리들아. 왜 청춘은 언제나 탕진하기만 하는 것이냐. 누가 그 달콤한 꿀 같아야 할 나이에 정체도 없는 고뇌와 번민을 싸안고 자학적으로 술을 마시며 보이지도 않는 벽을 향해 몸을 던지라고 유도했더냐. 왜 꿈과 이상은 바라만 보다가 흐트러져 사라지고 마는 뜬구름 같은 것이 되어야 하더냐. 왜 사랑은 언제나 나중에 멀리서 찾아 올 것으로만 기대하는 것이냐. 어째서 모든 욕구와 꿈과 이상과 간절한 바램들과 절박한 그리움들을 보류하며 지금이 아니면 결코 오지 않을 ‘우리들의 시대’를 기다리는 것이냐. 바보들아. 너희는 속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20대 중반이 되어 버리는데 그때까지 마냥 ‘인생의 준비기간’인줄 알고 그저 참고 견디다가, 열심히 준비만 하다가 어느날엔가 너희의 자식들까지 대학교육을 다 마쳐 주었을 때, 그때서야 한시름 놓고 잡생각이라도 할 여유가 생길 때 아뿔사! 깨닫게 되리라. 제기랄, 우리들의 시대는 20여년전 쯤에 지나가버렸구나. 날새고 노름판 다 끝났는데, “저 아까 아까 광 팔았는데요”라고 말해봐야 광값은 커녕 바보취급만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 값 비싼 인생의 광들을 양손 가득히 쥐고서도 판에 끼어들어 승부를 보기보다 헐값에 팔아버리고도 광값도 못챙길, 너희는 바보들이다. 기득권만 믿고 사는 기성세대는 너희들이 부디 착한 학생신분으로 그 질풍노도같은 혈기와 도전정신을 학교에서, 군대에서, 혹은 깡술이나 마시고 춤이나 추다가 탕진해버리고나서 폐건전지처럼 되었을 때, 입에 풀칠이나 하겠다고 자기들 앞에 머리 조아리고 입사원서 내기를 기다린단 말이다. 그때면 너희가 갈망하던 ‘우리들의 시대’가 시작될 것 같으냐? 바보들아. 그리고 70년대 청년문화가 생맥주와 청바지와 통기타였다는 것은 가증스런 거짓말이다. 그럼 80년대는 브레이크 댄스와 전자기타가 그 시대의 청년문화냐? 이 시대 청년의 고뇌는 컴퓨터게임과 핸드폰이냐? 더러운 위정자들의 대변인들아. 그 가련한 청춘들을 고작 통기타와 생맥주와 청바지라는 싸구려 낭만에 흥청거렸을 뿐인 바보들로 날조하지 마라. 동해바다에 몸을 던진 절망의 청춘이 과연 그것 때문이더냐? 그가 잡아오겠다던 고래가 고작 맥주안주였더란 말이냐?김형태/ 화가·황신혜밴드 http://hshband.net

<턱시도>로 스필버그와 돌아온 성룡 “진짜 드라마 있는 영화가 꿈이에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거리, 75년 된 차이니즈 극장에 은은한 불이 들어왔다. 박스오피스 정상을 노리는 할리우드의 중요 블록버스터 첫 시사회가 열리는 밤이면, 수백m 도로가 차단되고 포토라인이 쳐지는 곳이다. 지난 18일 저녁에도 양쪽 도로를 메운 사람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키! 재키!” 20여년 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던 홍콩의 배우 재키 찬(청룽, 성룡)이었다. 스필버그 “당신에겐 ‘턱시도’가 딱이다” “어제 영화 재미있었어요” 19일 한국기자들을 만난 재키는 “영화를 만들면 아시아 팬들의 반응부터 궁금하다”며 한국어로 인사말(물론 그 이상은 힘들다)을 건네왔다. 그의 이번 영화는 드림웍스의 <턱시도>다. 로스앤젤레스의 ‘총알 택시’ 운전사 지미 통은 정보기관 최고의 비밀요원 클락 데블린의 운전수로 스카웃된다. 전자동 방어시스템이 갖춰진 신비로운 ‘턱시도’가 데블린의 비밀병기다. 몸으로 하는 재키의 액션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와이어 액션과 컴퓨터그래픽이 적잖이 등장하는 <턱시도>가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재키 찬이 보여주는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와 춤, 특유의 무술 연기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어느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전화를 해왔다. 만나러 갔더니 문을 열자마자 스필버그가 ‘내 아이가 팬’이라며 사인부터 해달라더라. 사인을 해주며 ‘어떻게 공룡과 사람이 함께 걸어다니는 영화를 찍냐’고 물어봤더니 ‘굉장히 쉽다, 이 단추 저 단추 꾹꾹 누르면 된다’고 대답하는 거다. 이번엔 스필버그가 ‘재키, 당신은 어떻게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날아다니며 연기를 하느냐’고 묻길래 ‘그건 더 쉽다, 롤링! 액션! 점핑! 컷!이 전부’라 말해줬다.” 48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너지와 유머가 넘쳤다. “스필버그가 멋진 아이디어가 있는데 ‘턱시도’가 나에게 딱이라 말하더라. 처음엔 입는 턱시도인 줄 알았다.” 동양의 꼬마에서 할리우드 스타로 6살 때 경극학교에 들어가 스턴트맨이 될 운명이었던 그는 ‘제2의 리샤오룽(이소룡)’으로 영화계에 들어와 그의 액션 연기와는 다른 연기를 보여주며 70년대 후반 이미 아시아의 스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81년 <캐논볼>을 위해 할리우드에 왔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동양의 꼬마’였다. “홍콩에서 왔다 하면, 일본의 한 지역이냐 물을 정도였다. 어쩌다 알아보는 사람은 여자친구가 중국인이라 당신의 영화를 봤다는 사람 정도였다.” 홍콩으로 돌아가 그는 <프로젝트 A><폴리스 스토리> 등을 꾸준히 자기식으로 만들었다. 마침내 95년 <홍번구>는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첫 홍콩영화가 되었다. “이젠 ‘재키 식 영어’를 해도 할리우드가 먼저 날 부른다. 실패 이후에도 재키식으로 꾸준히 영화를 만든 것, 그것이 내 첫번째 성공요인이다. 또 다른 요인이라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처럼 미국의 새로운 세대들이 어려서부터 내 영화를 비디오로 본다는 점이다.” 영화 뿐 아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미국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재키 찬 어드벤처>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다. “언제나 변하고 싶다” 요즘 그의 활동은 연기와 제작쪽으로 중심이 옮겨져 있다. “감독을 맡으면 일단 시간이 걸린다. <미라클> 찍는데 1년 반, <프로젝트 A>는 9개월이 걸렸다. 배우를 하면 1년동안 3편은 찍을 수 있다. 난 더이상 젊지 않다. 은퇴하기 전 더 많은 영화로 관객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물론 꿈이 있다. 진짜 드라마가 있는 영화를 하는 것이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나 <글래디에이터> 같은 영화도 왜 못하겠는가. 물론 죽어도 해안가에서 여자들과 슬로우 모션으로 뛰어다니며 키스하는 영화는 못 찍겠지만….” 그는 “변하고 싶다”를 반복해 말했다. 뉴욕에 가서 앙리(이안) 감독을 만나고, 베이징에 가 장이모우 감독을 만나 새 영화를 의논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폴리스 스토리 1, 2, 3… 관객들은 좋아하지만, 나에겐 너무 괴롭다. 나는 변하고 싶다. 이번에 <턱시도>지만 차기작 나 <샹하이 나이트>는 또다른 캐릭터다.” 재키의 소박함과 에너지는 만나는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마력과 같은 듯 했다. <턱시도>의 케빈 도노번 감독과 주인공인 제니퍼 러브 휴잇도 인터뷰 내내 재키의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스튜디오와 예산과 일정문제로 감독이 힘들어하면 재키는 감독에게 “힘내라”고 편지를 썼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글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