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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영화제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World fantastic cinema)

판타지가 날개를 펄럭이면 메멘토 Memento 미국|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출연 가이 피어스, 캐리 앤 모스| 116분| 2000년 영국 출신 크리스토퍼 놀런의 <메멘토>는 기억과 망각의 조각난 거울 맞추기다. 자신의 아내를 강간하고 살해한 남자와 몸싸움을 하다 뇌손상을 당해, 15분 전의 일을 기억할 수 없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레나드. 그에게 오로지 지속되는 기억은 아내의 마지막 모습과 그녀를 죽인 자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레나드는 기억의 복원을 위해 수사에 필요한 단서를 온몸에 문신으로 새기고,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담는다. 읊조리는 듯한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되는 이야기는 사건의 끝이다. 의 출세지향적 수사관이었던 가이 피어스의 강박적 연기가 돋보이며 <매트릭스>의 캐리 앤 모스가 레나드를 돕는 나탈리로 출연. 샤이너 Shiner 영국| 감독 존 어빈| 출연 마이클 케인, 마틴 란도| 100분| 2000년 낮은 휘파람 소리, 흔들리는 거친 화면, 시작부터 비극의 전조를 띠는 <샤이너>는 비열한 뒷거래가 오고가는 권투계의 실상과 야심으로 인해 서서히 파괴되는 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권투 프로모터인 빌리 샤이너 심슨은 친아들인 에디를 선수로 내세운 타이틀 매치에 모든 것을 건다. 그러나 에디는 시합에서 패한 뒤 살해당하고 빌리는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직접 찾아나선다. 한편 경찰은 불법 권투시합 도중 죽은선수의 살인범으로 빌리를 의심하여 수사를 시작한다. 마틴 란도가 빌리의 상대편 프로모터로 나오고 노장 마이클 케인은 시종일관 혈압 높은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누가미 Inugami 일본| 감독 하라다 마사토| 출연 유키 아마미, 아수로 와타베 | 2001년| 105분 감독 하라다 마사토는 <가미가제 택시> <바운스> <쥬바쿠> 등이 차례차례 소개된 부천영화제의 단골. <이누가미>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기도 하다. 들개신 ‘이누가미’를 숭배하는 일본 시골마을. 이곳의 보노야마가문의 여자들은 대대로 이누가미를 모시는 단지를 지키며 살아야 하는 숙명이다. 이 가문의 여인 미키는 이누가미 저주에 관한 전설과 숭배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도시에서 아키라라는 젊은 교사가 부임해온다. 그가 부임해온 날, 마을은 갑작스러운 안개와 돌풍에 휩싸이고, 그날 밤 마을사람들은 악몽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날부터 미키는 점점 젊어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아키라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을에 불행한 일들이 하나씩 생겨나자 사람들은 미키 때문에 이누가미의 저주가 되살아났다고 믿는다. 한 가족사를 중심으로 근친상간의 금기와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들개신의 전설로 풀어낸 작품. 저주와 공포에 관한 신비주의적인 분위기가 엄숙하면서도 차분하게 영화를 이끌어간다. 인디펜던트 The Independent 미국| 감독 스티븐 케슬러| 출연 제리 스틸러, 맥스 페리치 | 85분| 2000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그늘에 가려진 미국 B급영화, 그리고 독립영화계의 현실과 애환을 모티 파인먼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통해 코믹하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하는 ‘모큐멘터리’. 이 영화의 감독 스티븐 케슬러는 모티 파인먼의 작품세계를 조망하고 삶을 추적하는 헌정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파이먼은 1970년대 이후 무려 427편에 달하는 작품을 연출한 미국 B급영화의 대부. 로저 코먼과 에드우드가 반쯤 뒤섞인 인물이다. 파이먼이 제작한 영화들은 블록버스터와 작가주의를 넘나들며 자신의 방식대로 패러디한 작품이거나 선정적인 방식으로 장르를 뒤섞는 영화들이다. 이를테면 베리만의 <제7의 봉인>을 패러디한 작품, 황당함과 조악함으로 치장된 <치어리더 캠프 대학살>, 와 같은 영화들. 피터 보그다노비치, 로저 코먼, 닉 카사베츠 등이 실명으로 출연, 모티 파이먼의 ‘업적’을 치하하면서 이 가짜다큐멘터리 만들기의 공범자가 된다. 더 홀 The hole 영국| 감독 닉 함| 출연 도라 버치, 데스몬드 해링턴| 102분| 2000년 쫓기듯 달려오는 거친 소녀의 숨소리. 만신창에 피범벅이 되어 쓰러지는 리즈는 2주 전 갑자기 사라진 4명의 학생 중 유일한 생존자. 경찰은 즉각 수사를 시작하고, 리즈와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여성 심리학자 필리파 호워드가 파견된다. 처음엔 착란증세를 일으키는 듯하던 리즈는 서서히 그들의 아지트였던 지하 벙커, 폐쇄된 공간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사라진 젊은이들, 미궁에 빠진 며칠. 얼핏 영국판 <블레어 윗치>처럼 보이는 <더 홀>의 실체는 극단에 이르는 십대들의 질투와 애정 그리고 집착에 대한 보고서다. <아메리칸 뷰티>에서 케빈 스페이시의 반항적이고 예민한 딸로 출연했던 도라 버치가 유일한 생존자 리즈 역을 맡아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지막 반전을 이끈다.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Beating of the Butterfly’s Wings 프랑스| 감독 로랑 피로드| 출연 오드리 토투| 90분| 2000년 적도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북태평양에는 허리케인이 인다! 이른바 카오스이론을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적용해서 풍자적으로 그려낸 코미디영화. 파리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서로 스치듯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우연적인 행동과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출근을 하던 이렌느는 한 여인에게서 바로 오늘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리라는 점괘를 듣는다. 하지만 오히려 직장인 슈퍼마켓에서 좀도둑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고, 택시 안에서는 누군가 던진 돌멩이로 차가 급정차하는 바람에 얼굴을 다치는 등 불행의 연속이다. <숏컷>이나 <매그놀리아>처럼, 카메라는 특별히 주인공을 설정하지 않은 채 이렌느로 시작해서 그녀가 스치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포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우연한 행동들은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다시 이렌느에게 특별한 인연과 사건으로 되돌아온다. 복잡하게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유쾌하게 콜라주되는 작품. 로랑 피로드 감독의 장편 데뷔작. 스탠리 큐브릭: 영화속의 인생 Stanley Kubrick: A life in Pictures 미국| 감독 얀 할란| 출연 톰 크루즈, 마틴 스코시즈| 143분| 2001년 1999년 3월 생을 마감한 스탠리 큐브릭에 대한 다큐멘터리. 생의 동반자였던 아내 크리스틴 큐브릭를 비롯하여 마틴 스코시즈, 시드니 폴락, 우디 앨런, 스티븐 스필버그, 잭 니콜슨, 말콤 맥도웰, 니콜 키드먼 등이 그를 추억하며, 등의 초기작과 큐브릭의 어린 시절을 담은 홈비디오, 육성 인터뷰도 들을 수 있다. 다만 큐브릭의 일대기를 그저 연대기순으로 따르는 형식이라 다큐멘터리로서의 참신함은 돋보이지 않는 편. 유작 <아이즈 와이드 샷>에 출연했던 톰 크루즈가 내레이션을 담당했다. 가위 바위 보 Tails You Win Heads You Lose 독일| 감독 한스 귄터 뷔킹| 88분| 1999년작 여성다운 정체성과 욕망을 실현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진취적이고 주저함이 없는 세명의 여자가 과격한 방식으로 삶의 도발을 시작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 마야와 그녀의 친구 코라. 어느날 자신의 오빠 카를로가 코라를 겁탈하려하자, 마야는 총으로 위협한다. 한데 이에 놀란 카를로가 심장마비로 어이없게 죽고 만다. 눈엣가시 같은 카를로가 제거되자 마야와 코라는 이탈리아로 휴가를 떠난다. 그곳에서 마야는 요나스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골인해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녀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고, 결국 마야는 코라에게 돌아간다. 코라는 부유하고 지적인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코라의 남편은 보기와 달리 코라를 억압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여기에 마야의 아버지까지 불쑥 찾아오자 이들의 갈등은 더욱 고조된다. 결국 이들은 코라의 남편과 마야의 아버지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여기에 코라의 가정부까지 가세해 완전범죄를 이룬다. 여성의 삶에 폭력적으로 끼어드는 남성들에 대해 죽음으로 응수하는 여인들의 황당하고 도발적인 독일식 블랙코미디. 정지연/영화평론가 백은하 기자 lucie@hani.co.kr 이소룡을 찾아랏! Looking for Bruce Lee 한국| 감독 강론| 출연 크라잉 너트| 74분| 2001년 홍대 앞 라이브클럽에서 맘껏 뛰고 지르는 록밴드 크라잉 너트의 일상과 현장에 늘 이소룡의 사진을 흘리는 연쇄살인자를 쫓는 경록의 수사과정에서 나타나는 판타지. 다큐멘터리와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작 <이소룡을 찾아랏!>은 하나의 형식이나 내러티브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간다. 와일드 제로 Wild Zero 일본| 감독 다케우치 데츠로| 출연 엔도 마사시| 98분| 2000년 외계좀비에 맞서 싸우는 로큰롤의 제왕? 황당하고 유치한 유머와 B급영화의 ‘피칠갑’한 상상력이 총 동원된 영화. 경쾌한 로큰롤음악과 함께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머리를 빗어올리는 에이스는 주유소에서 만난 청순한 토비오와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말못할 신체의 비밀이 있다. 씨네락 나이트 상영작 파우스트 Faust 스페인| 감독 브라이언 유즈나 | 98분| 2000년 괴테의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한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의 고어 액션영화. 악당들에게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존은 자신의 영혼을 팔아 암흑세계로부터 강력한 힘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악함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은 존은 이들에 대항하게 된다. 이미지보다 머쉰 헤드, 콜 챔버 등의 음악이 강렬한 작품. 방콕 데인저러스 Bangkok Dangerous 타이| 감독 옥사이드 팡 & 대니 팡 | 105분 | 2000년작 홍콩 누아르의 영화적 감각과 정서로 연출된 타이작품. 주인공은 귀머거리이자 벙어리인 젊은 킬러. 이를 중심으로 영화는 도시의 뒷골목으로 물러난 젊은이들의 소외되고 그늘진 삶을 포착한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멜로적 감성과 복수에 대한 고독한 킬러의 암울한 분위기가 드리운 작품. 딥 리버 Suspicious River 캐나다| 감독 린 스톱케윅| 출연 몰리 파커| 89분| 2000년 강물 옆에 있는 모텔에서 일하는 레일라는 손님들을 유혹해 매춘을 한다. 그러다 게일이라는 남자를 알게 되는데 그의 가학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에게 빠져들고 만다. 강으로 상징되는 여성의 성적 욕망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 등이 미스터리하게 조우된 작품. <키스드>에 이은 린 스톱케윅의 두 번째 작품. 아이와 나무 The Tree 싱가포르| 감독 데이지 첸| 95분 | 2001년 한 사내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경찰이 수사를 나선다. 사내의 죽음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은 9살 난 그의 의붓아들. 그러나 소년은 입을 열지 않고, 그의 집 앞에 기이하게 서 있는 나무에만 집착한다. 경찰은 이 사건의 소년의 친아버지와 나무에 얽혀 있는 미스터리사건임을 알아낸다. 강호고급 Jiang Hu, The Triad Zone 홍콩| 감독 임초현| 출연 양가휘| 108분| 2000년 주성치 영화에서 보았을 법한 극단적 클로즈업, 과장된 몸짓과 표정, 현란한 촬영과 편집이 어울어진 ‘짬뽕’ 코미디. 지하조직의 ‘넘버1’인 지미는 상대편 조직과의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스스로를 암살하라는 ‘쇼’를 벌인다. 그러나 이 암살기도를 통해 지미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참모습을 알게 된다. 세븐 데이 투 리브 Seven Days to Live 독일| 감독 세바스찬 니이만| 출연 아만다 플러머, 션 퍼트위| 93분| 2000년 아들을 잃은 엘렌과 마틴 부부는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시골의 외딴집으로 이사온다. 음산한 기운이 도사린 이 집은 사실 23년 전 미친 남자가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죽인 사건이 일어난 곳. 집에 드리운 악령의 기운은 점점 엘렌과 마틴을 광기에 이르게 한다. <샤이닝>부터 <폴터가이스트>까지 공포영화에서 상당부분은 따왔지만 엔딩은 다소 미약한 편. ▶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부천초이스 (Puchon Choice) ▶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World fantastic cinema) ▶ 제한구역 (Forbidden Zone) ▶ 패밀리 섹션 (Family Section) ▶ 판타스틱 단편걸작선 ▶ 몇 개의 회고전들 ▶ 부천초이스 단편부문 ▶ ‘할리우드 고전 공포영화 특별전’ 등

울버린, 삭제할 수 없는 이미지 파일, <엑스맨>의 휴 잭맨

늑대처럼 외로운 눈빛, 기다란 강철손톱, 온몸의 골격이 아다만티움이라는 특수한 물질로 이루어진 후천성 돌연변이 인간. 지워진 과거의 기억. 강철손톱이 튀어나올 때마다 아프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더욱 아픈, 어두운 캐릭터. 지난해 여름, 휴 잭맨은 <엑스맨>의 울버린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것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까? <엑스맨> 이후 휴 잭맨이 맡은 역은 모두 상처를 간직한 사람이다. 애슐리 저드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썸원 라이크 유>의 에디는 첫사랑의 상처를 간직한 바람둥이이며, <스워드 피쉬>의 스탠리는 전처가 못 만나게 하는 딸을 만나기 위한 소송비용을 마련하고자 악당들한테 협력하는 컴퓨터 해커다. 날 때부터 혈관 속에 연기자의 피가 흐르지는 않았다. 1968년, 세계적인 미항 시드니에서 영국계 이민자의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휴 잭맨은 소년 시절엔 럭비, 크리킷, 수영, 테니스, 배구, 서핑 등을 즐기는 활력 넘치는 스포츠맨이었다. 그의 미래는 영화나 연기가 아니었다. 자의식이 강한 소년도 아니었고, 자폐적인 사춘기를 보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열여덟, 그때가 생애 첫 갈림길이었을 것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예비 변호사나 판사, 정치가의 요람인 크녹스 그래머 스쿨에 진학했다. 그러나 학교의 공기가 그를 질식시켰을까. 곧 휴식을 취하고 싶어졌다. 휴 잭맨은 쉬기 위해, 생각하기 위해 훌쩍 떠났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도 긴 여행 동안 깨달음을 얻었다. 영국 등을 돌아다니다가 학교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돌아와 저널리즘을 공부했지만, 전공에 딱히 끌리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정해야 했던 마지막 학기에 그는 두 번째 갈림길에 섰다. 선택과목을 2개 신청해야 했는데, 아주 쉽다는 친구의 말에 극작과목을 택했던 그는 쩔쩔맸다. 지난 10년간 연극을 하지 않았던 담당교수가 그 학기에 연극을 하기로 한 것이다. 배역도 마음대로였다. 모자 속에서 사람 이름을, 또다른 모자 속에서 배역을 끄집어내서 낙점을 했는데, 연기의 ‘연’자로 모르는 휴 잭맨이 그만 주연을 맡게 되었다. 결국 다른 모든 수업시간을 합쳐놓은 것보다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지만, 보석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엉뚱한 전공 선택해서 3년간 잘못 살았다.” 분석이 아닌 창조의 길을 선택하기로 한 그는 1년 과정인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언 아카데미 오브 퍼포밍 아츠를 마친 뒤 TV에서 배우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 (오스트레일리아방송)에서 방영한 <코렐리>에서 데보라 리 퍼니스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 만난 데보라는 그의 반려자가 되었다. 영화 데뷔작은 로드트레인 운전사이면서 로맨스 소설가라는 또 하나의 비밀직업을 갖고 있는 남자로 분했던 코미디 <페이퍼백 히어로>(1998). <에르스키네빌 킹스>(Erskineville Kings, 1999)에서는 난폭한 아버지를 피해 집나간 동생의 형 역할을 맡아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카데미상격인 오스트레일리아 필름 인스티튜트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원래 울버린 역에 내정되었던 더그레이 스콧이 <미션 임파서블2>의 촬영지연으로 <엑스맨>에 합류하지 못하게 되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급히 대타를 구했다. 그리고 휴 잭맨이 보낸 오디션 테이프를 본 감독은 도박을 결심했고, 그 베팅은 성공이었다. 그리고 <썸원 라이크 유> <스워드 피쉬> 등 할리우드와의 만남이 쭉 이어졌다. 휴 잭맨이 멜 깁슨의 뒤를 이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스워드 피쉬>에서의 휴 잭맨에 대해 <뉴스위크>는 “늑대인간의 갈기와 젊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구레나룻이 없으니 훨씬 보기 좋다”고 했지만, 울버린의 어두운 눈빛과 지독한 상처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기억을 되찾은 그의 귀환을 기다릴 것이다. 지금 촬영중인 <케이트와 레오폴드>(Kate & Leopold)가 한발 먼저 찾아올 예정이지만.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김홍준 집행위원장

“어떤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제일 편하세요?”라고 묻자, 김홍준(44) 감독은 ‘감독’도 ‘위원장’도 ‘(영진)위원’도 ‘선생님’도 모두 다 편하다고 말했다. <장미빛 인생> 그리고 <정글 스토리>. 삶의 꺼칠한 얼굴을 맨살 그대로 렌즈에 담은 아주 리얼한 영화를 만들었던 김 감독은, 지난 2월27일부로 판타지영화 축제의 호스트가 됐다. 할 일이 주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버린다는 그에게, 7월12일 개막하는 영화제 준비가 ‘시뮬레이션 훈련’ 단계에 들어가고, EBS의 <한국영화 걸작선>을 몰아서 녹화하느라 밤을 새면서 영진위 일과 영상원 학생들 성적까지 처리하는 요즘은 ‘게으름 지수’가 마이너스로 치닫는 나날이다. 인터뷰 도중에도 연방 울어대는 휴대폰에 응하며 종이 케이스가 끼워진 다이어리를 꺼내 0.7밀리 샤프펜슬로 스케줄을 채워 가는 김홍준 위원장에게 수첩이 예스럽다고 참견하자 금세 “물에 젖어도 되고 전자파도 발생하지 않는다”며 합리적으로 설명해준다. 그의 말 속에서 언제나 혼돈은 정리되고 문제는 명백해지며, 해결 방안은 가능성의 순서대로 단정하게 늘어선다. 긴 시간을 들여 올해와 더 먼 미래의 부천영화제를 위한 명료한 도면의 두루마리를 펴보인 그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스탠리 큐브릭의 DVD 세트가 막 배달됐다고 소년처럼 자랑하며 자리를 떴다. -언젠가부터 영화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부천영화제 일을 1997년에 처음 맡았고, 영상원의 객원 전임이 된 것은 1998년, 영화진흥위원은 2000년에 시작했다. 본디 이렇게 동시에 많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책임감의 힘이 크다. 문제는 여러 일을 하다보니 쉬지 못한다는 것이지만 이제 다른 쪽 일로 모드를 전환하면 그것이 곧 한쪽 일의 휴식이 되는 것 같다. 영진위가 한창 어려웠고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까지 맡아 평생 가장 힘들었던 올해 초는 마침 학교가 방학이었다. 그런데 수업이 없어 고민에 계속 빠져 있게 되니 그게 오히려 곤욕이더라. -프로그래머를 사퇴하게 했던 원인은 해소됐나. 지역사회의 요구와 마찰이 있었던 건 아닌가. =프로그래머로서 일이 더이상 새롭지 않다고 느꼈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사퇴의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 영화를 찍는 일이 그리 절박하지는 않다. 부천 지역사회도 균질적 집단이 아니고 시민들 안에도 영화제를 대하는 다양한 성향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가능하면 각 집단의 요구를 수용하고 일관된 목소리로 설득하는 창구 역할을 할 것이다. -프로그래머로서 일할 때와 차이는. =영화제에 맞는 작품과 게스트 섭외를 공격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프로그래머의 일이었다면, 집행위원장으로서는 살림꾼 노릇을 하고 싶다. ‘업무 플로’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사무국 부서별로 각기 갖게 마련인 욕심을 갈등이나 충돌이 아닌 합력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첫째다. 영화제를 만들어가는 업무들은 이질적이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이 안 되면 곧장 카오스다. 예컨대 작품 수가 늘어나면 번역, 출판, 카탈로그, 자원활동가, 상영팀으로 연쇄 과부하가 걸리고 결국 펑크가 나 관객에게 피해를 주는 거다. 한편으로는 영화제 집행부 책임자로서 어떻게 인적 자원과 인프라를 안정시킬지 구체적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는 바람직한 리더가 되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책방 가면 괜히 ‘훌륭한 리더가 되는 법’ 같은 책을 기웃거리게 된다. (웃음) 프로그래머를 할 때에는 개인 김홍준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어 김홍준 영화제라는 말도 들었는데 집행위원장은 반대로 스탭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다. 집행위원장이라는 우리말은 왠지 관료적인 느낌을 주는데, 정확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제가 영화라면 프로그래머는 감독이고 집행위원장은 익제큐티브 프로듀서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유바리와 도쿄판타스틱페스티벌의 요이치 고마즈자와 집행위원장은 ‘페스티벌 프로듀서’라는 신직종을 만들어냈는데 말되는 표현이다. -영진위의 경험이 집행위원장직 수행에 도움이 되나.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공적 기구 안에서 예산, 조직, 정책을 조율하는 법이라든가, 정관, 규정, 협약 같은 것에 대한 감을 공부할 수 있었다. 또 하나 는 것은 회의 진행하는 요령이고. 대학 다닐 때 답사간 마을에서 만난 이장님은 몇살 때 결혼하고, 집사고, 이장이 되겠다는 계획을 이미 스무살 때 완벽하게 짜놓고 그대로 사신 분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이분과 정확하게 반대의 인간형이다. 초등학교 때도 누가 장래희망을 물으면 ‘편의상’ 과학자가 될래요 했지만 그냥 접대용 멘트였다. 지금도 내겐 뭐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몇살쯤엔 기어이 무엇을 성취해야지 하는 개념이 없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마치 모든 일을 예정한 것 같다. 감독이 되기 위해 영화동아리에 들고,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되기 위해 공공 기관에서 일을 하고 교수가 되기 위해 책을 쓴 것 같지 않은가. (웃음) 어쨌거나 반복을 싫어하고 호기심이 많고 냉소적이기 때문에 낙천적일 수 있는 나에게 지금 사는 방식은 잘 맞는 것 같다. -부천영화제에서 오래 일할 생각인 것 같다. =‘종신직’이라는 농담 섞인 표현도 썼지만, 집행위원장으로서 영화제 10주년은 맞이하고 싶다. 그래서 10주년 되는 해에 역대 페스티벌 레이디를 다 초청하면 “부천영화제에 스타가 없다”는 말은 다시 안 나오지 않을까? (웃음) -여느 해보다 프로그램의 색깔이 다양하다. 특히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부문에는 언뜻 봐서 ‘판타스틱’이란 표현에 딱 들어맞지 않는 영화들도 있다. =지난해가 도발적이라면 올해는 전체적으로 다양성을 강조한 프로그램이다. 그건 우리가 의도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런 영화들이 나와줘야 가능한 일인데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경쟁부문 부천 초이스는 ‘판타스틱’을 좁은 의미로 해석한 영화들을 모은 섹션이고 해당 장르 안에서 경력을 쌓았으나 덜 알려진 감독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 반면 월드 판타스틱은 판타지의 정의에 구애받지 않는 대중성에 초점을 둔다. 판타스틱영화제를 장르로 규정된 영화제로 보거나 마니아들을 위한 영화제로 보는 생각은 수능시험적 발성이다. 중요한 건 수용의 맥락이다. 예를 들어 <스탠리 큐브릭: 영화 속의 인생> 같은 다큐멘터리도 부천에서 틀면 관객에게 다르게 다가간다. -올해의 빅 이슈인 호금전 회고전의 의의를 말한다면. =아시아의 판타스틱영화제인 부천영화제가 아시아와 판타스틱이라는 두 화두를 결합하고 과거 영화를 복원 회고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호금전만한 대상은 없다. 타이밍 면에서는 물론 <와호장룡>의 바람을 탔다. 부천에 오니 의외로 이런 보물이 있구나라는 사람이 있으면 행복하겠다. 한국 로케이션 촬영한 호금전의 영화는 한국적 공간의 재해석도 보여줄 것이다. 전혀 예비지식이 없는 관객도 호금전 영화 속에서 불국사 단청을 발견하고 흥미를 느낄 거다. 이번 부천영화제의 숨은 테마는 인연이다. 제2대 페스티벌 레이디 추상미, 제2회 경쟁 장편 심사위원장 존 베리와의 인연이 특별 상영을 통해 부활하고, 국제영화제라면 의무사항이라 볼 수 있는 자국영화 회고전은 선배 세대와의 인연을 더듬는 자리다. 호금전 회고전도 그렇다. 김영덕 프로그래머의 추억도 <씨네21> 기사를 읽고 알았지만, 나 역시 중1 때 생전 처음 본 홍콩영화가 <방랑의 결투>였고 그것이 <대취협>임을 지난해에야 알았다. 그 이후 고등학교 갈 때까지 한국에 수입된 칼싸움영화는 다 봤다. 나약한 모범생이었던 나의 억눌린 폭력성을 만족시켜준 건지.(웃음) 실은 1회 때부터 감독 오마주를 호금전에게 바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무리라고 다들 말렸다. 호금전 회고전의 성사는 이제 부천영화제에 그만한 내공이 생겼다는 증거다. -부천은 축제의 성격이 강한 영화제다. 영화가 아직은 공동체적 경험이라고 생각하는가. =디지털이 부상하면서 영화를 제작하고 수용하는 방식은 점점 개인화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를 파는 쪽에서도 그걸 강조한다. 그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매체 민주주의라기보다 시장 확장의 의도다. 브뤼셀영화제를 가보니 그쪽 사람들은 디지털을 하나의 테크놀로지로서 관심을 가질 뿐 지각변동이 올 듯 요란을 떨지 않더라. 영화가 예술이자 산업으로서 영상산업의 종가 역할을 했던 시대가 가고 물적 토대가 바뀌면서 영화제의 역할도 달라진다. 영화제는 사회적 의의로 봐서도 도리어 아날로그로 가는 방향이 맞지 않나 싶다. -그와 관련해 ‘메이드 인 코리아’ 섹션에서 인터넷영화를 굳이 스크린에서 상영하는 뜻이 궁금하다. =파편화된 맥락에서 소비되는 인터넷영화를 집단적 경험의 장인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셈이다. 영화는 복제물일지 몰라도 관람은 극장이 어디냐 관객이 누구냐에 따라 하나하나의 상영이 라이브 퍼포먼스다. 이제 35mm와 화질 구분이 안 되는 디지털영화가 프로젝터로 상영되는 시대가 오면, 영화제를 가야만 영사사고를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영사사고, 그거 얼마나 재미있는 건지 모르지?”하면서 말이다. 즉 영화제가 영화의 고전들을 창작자가 의도하는 형태로 영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교회 제단화. 귀족 초상화가 맥락에서 떨어져나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박제화되어 나란히 걸려 있는 미술관과 달리, 영화제에서 필름을 튼다는 것은 그 영화가 태어나서 살았던 공간을 관객만 바꿔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이다. 내가 있는 한 부천영화제는 아날로그의 전통을 이어가고 싶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단편 상영작을 동영상으로 미리 틀지말자고 했다. 앞서가는 ‘퇴행’이랄까. -회고전의 한국영화는 젊은 관객에게는 오히려 이국적인 오락이 될 것 같다. =영화 교육, 영화 수용에 단절이 없던 미국의 영화광이라면 고전 할리우드영화를 주말에 TV만 틀어도, 비디오 가게만 가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미국에는 산업적 연속성, 유럽에는 문화적 연속성이 있는 반면 한국영화의 70, 80년대는 단절이다. 각국 영화제를 다녀봐도 ‘화합’이라는 갈등을 전제로 한 정치적 용어를 영화계에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래서 옛날 한국영화를 본다는 것은 한국영화로서는 자신의 옛모습을 보는 일인 동시에 낯선 일이다. 어찌 보면 타자의 영화이며 한국어를 사용하는 외국영화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한국영화에 대해 국내외 관심이 고조된 지금이, 한국영화를 단순히 복고취향이나 호사가적 관심, 자기 비하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로서 재발견, 재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1930년대 유니버설 호러나 해머 호러 같은 특수한 회고전을 부천에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기획이 좋아도 문제는 섭외다. 미라맥스가 호금전 영화 판권을 전부 사들이려 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모르긴 해도 아마 흩어져 있는 판권 소유자 수십명에게 팩스하다가 지쳤을 것이다. (웃음) 스탠리 큐브릭 회고전도 여러 영화제가 약속까지 받아놓았지만 워너가 올 스톱시켰다. -해외 판타스틱영화제들과 프로그램 교류성과를 자평한다면 =판타스틱영화제는 비주류의 대안영화제들인 까닭에 우정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서로 친구가 되어 영화를 추천하고 섭외를 돕는 인적 네트워크가 구축된 점이 중요하다. 부천영화제는 유럽판타지필름페스티벌연합의 준회원이고, 헬싱키를 필두로 판타스포르투, 브뤼셀, 판타아시아, 북미의 유일한 판타스틱영화제인 몬트리올에서 한국영화 스페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지금까지는 홍콩영화로 버텼는데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그들에게 한국영화가 대안이 될 거라고 말했다. -여름에 열리는 부천영화제의 고충은 한국영화 프로그래밍이다. 이번 부천에 출품된 <나비>와 <소름>에 대한 소감은. =영화가 그 영화제에 도움이 되느냐, 그리고 영화제가 그 영화에 도움이 되느냐 하는 판단에 따르면 <나비>와 <소름>은 그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각각 경쟁작과 폐막작으로 상영되는 것이 각 영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진정성이 드러나는 영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요즈음 미덕이 있는 영화들이라고 영화를 오래 봐온 관객으로서 느꼈다. -예산이 24억5천만원이다. 영화제 기간 시설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계획은 없나. =부천의 문제는 영화 전용관이 아닌 공공 시설을 이용하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영화관으로서 닦고 조이고 기름칠 수 없다는 점이다. 시설이 영화제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제 예산으로 교체할 수 없고 그렇다고 건물 운영주가 영화제를 위해 자기 예산을 투입하기도 어렵다. 올해는 스크린 교체, 영사기 보수, 렌즈 확보를 영화제 예산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공영 건물에서 영화제를 하는 장점도 있다. 타이베이영화제에 갔더니 직배사가 운영하는 멀티플렉스 2∼3관에 세들어 행사를 치르는 모습이 딱했다. 멀티플렉스 때문에 관객의 기대치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를 볼 때 화질이 전부가 아니듯 시설이 다는 아니다. -사무국이 연중 상설 운영되지 않는 데에서 오는 어려움이나 영화제 노하우가 잘 축적되지 않는다는 고민이 있을 것이다. =운영 노하우의 매뉴얼화는 90%쯤 이루어졌다. 이제 문제는 시스템을 채워주는 인력을 어떻게 안고 가느냐다. 영화제 치르는 것만 일이라면 사무국은 프로그램팀을 제외하고 6개월 이상 일할 이유가 없다. 전문성을 생각하면 상설 조직이 필요하지만 단기간의 연례 행사를 치르는 효율을 생각하면 반대라는 데에 고민이 있다. 영화제 사무국이 영화제 행사뿐 아니라 영화제로 조직된 인프라와 인적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다른 사업을 통해 상시적으로 시민과 만나 지역 문화, 경제, 영상 문화 안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중이다. 예컨대 부천영화제가 꼬마 영화제와 시네마테크의 프로그래밍을 맡는다거나 부천 미디어센터 같은 기관을 통해 시민들에게 매체 교육을 실시하고 시민들이 영상 기자재를 사용해 매체 민주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게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면서도 영화제 스탭들의 개인적 전망이나 재원 확보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별도 합의된 바는 없지만 집행위원장으로서 이러한 내용을 제안해 놓은 상태다. 신자유주의 원산지인 미국에서도 공적 서비스 기관의 성과는 이익의 폭이 아니라 기관의 원래 목적에 부합하는 사업으로 얼마나 많은 인구를 끌어들였느냐로 평가된다. -EBS <한국영화 걸작선>에 대한 애착은. =기술적인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텔레비전에서 한국영화가 제대로 대접 못 받는 것은 제대로 포장이 안 됐기 때문이다. 자의적인 가위질이 분명한데 맥락에 대한 아무런 안내가 없고 엔딩 크레디트도 뜨기 전에 광고가 치고 들어온다. 이래서는 영화를 이미 알고 애정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하면 부정적 인식만 확산될 뿐이다. <한국영화 걸작선>의 진행 섭외를 거절못한 것은, 감히 말하건대 영화에 대한 존경을 갖고 필름을 원형대로 보여주는 것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유일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같은 경비로 텔레시네를 새로 뜨고 극장 협찬으로 촬영을 하고 원로 영화인들 인터뷰를 따는 데 모든 스탭이 인건비 개념없이 일하고 있다. 가끔은 레터박스로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내보내면 “왜 가려서 보여주냐”고 항의하는 어르신도 있다. (웃음) 이 프로그램의 예기치 못한 수확은 워낙 판권 섭외가 어려워 가능한 영화를 다 틀다보니 라이브러리가 완벽했다면 간과했을 영화 중에 보석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이번 부천영화제에서도 상영되는 <아! 백범 김구 선생>의 전창근 감독님 영화에서 대단한 진정성을 보았고, 임권택 감독님이 20대에 만든 영화, 유현목 감독님의 코미디를 보는 재미도 대단하다. 영화한다는 사람으로서 창피하지만 허장강이라는 배우가 세계 영화사를 통틀어 최고의 배우임을 재발견했고 김지미, 전계현 같은 옛날 여배우들의 매혹도 발견했다. <한국영화 걸작선>을 통해 영화인협회의 원로 영화인들이 당신들의 작업에 대해 몸담았던 한국영화의 시대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자화상 같은 영화를 한번쯤 찍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의 자전적 이야기라기보다 내가 자란 시대가 제대로 대변된 걸 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였다. 무시험 고교 진학 세대로서는 전혀 모르는 1970년대 후반 일류 고등학교의 문화를 그려보고 싶다. 하도 엘리트 의식을 주입해서 축구를 해도, 놀아도, 예술제를 해도 꼭 일등하고 잘해야 하는 아이들에겐 참 재미있는 면이 있었다. 반마다 작은 예술가들이 있었고 나는 그런 애들을 동경하며 <종합영어> 대신 <한국회화 소사>를 학교에서 읽던 ‘딜레탕트’였는데, 문학상 휩쓸고 나팔 불던 친구들도 다들 의사가 되고 법관이 됐다. 동창회에 가면 나는 연예계 대표 인사 대접을 받는다. 아마 장르는 코믹멜로 판타지가 될 것 같다. (웃음)

찾고싶다, 절망의 돌파구를

제작연도 2001년 제품명 나(Na) 광고주 KTF 대행사 웰콤 제작사 매스메스에이지(감독 박명천) 황량한 바람이 불고 있는 인적없는 어느 곳. 저 멀리 철탑의 중턱에 한 소년이 앉아 있다. 길 잃은 한 마리 새처럼 정처없고 외로워 보인다. 카메라가 그 소년의 얼굴을 비춘다. 상념에 잠겨 있는 소년. 그의 눈은 무슨 일인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위태로운 표정과 달리 꾹 다문 입술을 타고 평화로운 허밍이 흘러나온다. 이어지는 소년의 독백. ‘나는 학교에 간다. 학교에 가고 싶다. 나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학교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 무엇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내레이션에 이어 급기야 소년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손에서 은색의 스프레이통이 힘없이 벗어나 바닥을 구른다. (중략) ‘나’의 얘기가 달라졌다. 지난해 소비자를 향한 ‘나’의 말걸기는 ‘아버지 나 누구예요?’란 일자머리 총각의 난데없는 질문으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그룹 god가 촌티나는 동네 한량,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어설픈 외계인 등으로 분장해 ‘공짜가 좋다’며 허허실실 웃음을 실어날랐다. 촌티, 엽기, 복고란 유행의 삼요소를 총망라한 ‘나’ 광고의 여파는 광고 밖으로 뻗어나갔으며 ‘나’는 TTL과 더불어 1823세대의 대표적인 이동통신브랜드로 자리를 다졌다. 한동안 공백기를 갖더니 ‘나’가 새로운 테마로 단장해 나타났다. 그 사이 선발브랜드인 TTL은 한 차례 변화를 겪었다. 신비소녀 임은경은 베일을 벗은 뒤 우물 밖을 뛰쳐나갔고, 임은경의 후임으로 이름모를 소년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1823세대에 의해 만들어지는 희망에 찬 TTL공화국을 기치로 TTL은 아성 다지기, 혹은 넓히기에 주력하고 있다. 전략상 TTL을 의식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나’는 휴식기 동안 경쟁자의 발걸음을 예의주시했을 것이다. 그 결과, ‘아직 희망을 말하기에는 이르다’며 TTL의 슬로건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1823세대를, 방향성을 상실한 어두운 세대로 인식했다. 학교에 가고 싶지만 학교에 가지 않는, 또 무엇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야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들의 고민에 눈을 돌렸다. 방황하는 십대란 진부할 수도 있는 테마. 그런데 이번 ‘나’의 얘기엔 다시 한번 귀를 기울이게끔 유도하는 힘이 있다. 독창적인 화법으로 새삼스러운 주의와 환기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분명 박명천 감독의 공이 엿보인다. 초기 TTL 광고에서 스무살을 아이도 어른도 아닌 미완의 세대로 규정해 성장을 갈망하는 그들의 심리를 독특한 이미지로 체현한 바 있는 그는 다시 한번 특유의 장기를 발휘했다. 즉각적인 감성의 파문을 낳으면서도 그 동인(動因)의 실체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게 만드는 ‘안개 전법’을 이번에도 사용하고 있다. 그의 광고는 단순하고 쉬우며 새로운 게 좋은 것이란 우수광고의 일반론을 배신한다. 그렇다고 잰 체하는 어려움은 아니다. 이미지의 실타래를 버겁지 않을 만큼 안겨주며 광고의 잔상을 곱씹게끔 만든다. 이번 ‘나’ 광고에서 창백한 소년은 학교에 가지 않은 채 이른바 땡땡이를 치고 있는 것 같다. 마른 눈물, 절박함의 역설적 표현 같은 맥없는 허밍, 갈팡질팡하는 내레이션 등이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난 그의 불편한 심정을 암시한다. 후반부에 등장한 은색통의 이미지가 의미심장하다. 제작진은 은색통의 정체가 ‘나’라는 브랜드를 새겨넣기 위한 스프레이통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 물체의 이미지는 환각의 도구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 싶다는 절망의 정조를 풍기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나’의 얘기는 우울함만으로 얼룩져 있진 않다. 마지막에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세상이 나를 속일지라도’ ‘나’를 통해 ‘세상을 다 가져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소년의 막막한 내면에 젖어들다보면 너무 성급한 명암의 전환이란 인상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대목에서 얼굴을 손으로 감싼 채 눈물흘리며 환하게 미소짓는 소년의 모순된 표정은 설득력없는 상업적 메시지를 위해 문제를 봉인했다는 허탈함을 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한 가지 뒷맛이 찜찜한 것은 이 광고가 유발한 호감이 단순히 피상적 스타일의 힘에서 비롯한 것은 아닌가 하는 점. 이동통신브랜드 ‘나’는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에 힘겨워하는 나(소비자)의 대변인을 자처했지만 광고에서 형상화된 나 세대의 모습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실제 그들에 대한 반영이라고 보기엔 다소 멋스럽게 포장된 측면이 있다. 광고가 미학적 가치를 간과해서는 곤란할 터이다. 그러나 영상이 예쁘네라든지, 저 모델 누구인지 참 잘 골랐네라는 정도에서 소비자의 호기심이 머무른다면 이 광고가 던진 10대의 고민거리는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점에 다가가지 못한 것일지 모른다. 참고로 ‘나’ 광고는 올해 ‘세상은 나를 속일지라도’라는 주제 아래 취업난, 가정문제 같은 사회문제를 시리즈로 다룰 예정이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eoul.co.kr

[Column]판타지, 현실 위에 핀 시(詩) 혹은 한숨

대학 1년 때던가. 중간고사 시험을 치고 나오니, 어느 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날은 어둑하고 바람까지 서늘하게 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비가 내리는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학교를 나섰다. 버스를 타고 허름한 청계천의 아세아 극장으로 갔다. 눅눅하게 습기를 머금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극장 안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가방을 옆자리에 던지고, 편하게 반쯤 누운 자세로 영화를 봤다. <천녀유혼>이었다.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귀신과 인간의 사랑 이야기.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곳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푹 빠져들었다. 끝나고도 일어나지 않고, 다시 한 번 더. <천녀유혼>은 그 순간의 나에게, 가장 절실한 무엇이었다. 사랑이 아니라, 그 정서적인 판타지가. 아마도 비를 보던 그 순간 다른 공간으로 가는 문을 발견했다면, 나는 극장 같은 것은 떠올리지도 않고 당장 문을 열고 들어섰을 것이다. 가끔은, 아니 자주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흔히 극장을 찾았다. 실연을 당했다거나,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했다거나, 엄청난 위기가 닥쳤다거나 하는 큰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머리가 복잡할 때, 일에 지칠 때 한숨 돌리기 위해 나는 ‘판타지’를 찾았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나는 다른 시공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누구는 그것을 허황되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겐 그것이 우리 인간의 다른 가능성처럼 보인다. 다른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할 것인가. 현실이라는 것이 철저하게 과학적인 논리에 의하여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은 다만 우리가 증명한 것들뿐이다. 증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은 결국 판타지로 포용된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직접 부닥치면 그 불가해성에 허우적거리는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나에게 사랑이란 늘 판타지다.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것.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전혀 낯선 그 무엇. 그 ‘낯섬’을 발견할 때 나는 황홀한 매력을 느낀다. 현실 속에서는 쉽게 벌어지지 않을 법한 그 무엇. 이를테면 악령이라든가, 마법이라든가, 미래의 세계 같은 것들. 우리 인간의 머리 속에서나 가능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그 무엇. 우리가 영화에서 그런 ‘판타지’와 조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영화가 처음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할 때, 눈에 보이는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던 때 멜리에스가 나타났다. ‘마술사’였던 멜리에스는, 영화가 자신의 ‘마술’을 현실로 만들어줄 매체라고 생각했다. 허구의 시간과 공간을 현실로서 체험하게 만드는 것. 시간을 조종하고,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멜리에스는 자신의 마술을 필름에 담았다. 1회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된 멜리에스의 <달세계 여행>은 인간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최초의 마술이었다. 그 마술은 언제나 인간이 꿈꾸었던 무엇이다. 그리고 영화는 인간의 꿈을 현실로 바꾸어주는 가장 ‘사실적인’ 매체다. 요즘의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더욱 그렇다.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모든 것을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만들어준다. 우리가 공룡을 보고싶다고 하면, 공룡을 만들어준다. 악령을 만나고 싶어한다면, 나타나게 해준다. 그것은 분명 테크놀러지가 우리에게 안겨준 즐거움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꿈을 협소하게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공룡이야 화석을 통해 재현하는 것이지만, 상상 속의 그 무엇은 다르다. 우리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마법’이 깨어지는 것처럼, 구체적인 영상으로 드러나는 순간 상상력은 그 틀 속에 묶여버린다. 하지만 잊어버리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영화는 판타지 아니던가. 모든 것은 픽션이다. 자신의 고백을 영화라는 매체에 담는다 해도, 그것 역시 하나의 판타지일 뿐이다. 너무 확장시킨다고? 맞는 말이다. 사실성과 환상성의 구별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사실과 허구 역시 다른 것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등장한 것은, 도저히 사실적인 어법으로 담을 수 없는 ‘엄청난 현실’ 때문이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인디오의 ‘마법’ 때문이기도 하고. 인디오의 마법은 그들의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을 고발하고, 꿈꿀 자유는 주었다. 판타지란 우리의 지독한 현실 언저리 어딘가에서, 혹은 이면에 자리잡은 광기와 몽환의 기억이다. 논리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감성과 욕망으로는 토로할 수 있는, 그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시(詩)와 한숨 같은 것들. 그래서 판타지는 아름답고, 또 비참하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피안의 땅임을 알기에. 정반대로 이 남루한 현실의 시대착오적인 농담임을 알기에.

여전사 캐릭터 열전

<글로리아>의 글로리아(지나 롤랜드) 리플리와 사라와 라라의 어머니격인 전사. 전 마피아 보스의 정부. 우연히 친구네 집에 갔다가 친구가족이 마피아에 몰살당하는 바람에 6살난 친구의 아들을 떠맡는다. 강인하고 굵은 실루엣과 이마를 고스란히 드러낸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하고 갱단 앞에서도 전혀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는 글자 그대로의 여장부다. 갱단을 향해 총을 겨누고는 “와 보시지. 얼마든지 와 봐”라고 여유만만하게 말한다든지 소년을 위해 예전 연인이었던 마피아 보스를 단신으로 찾아가 담판을 짓고, “날 죽이려드는 사람은 다 죽여버릴거야”라고 전의를 불태우는 등 용기와 모성과 연륜을 겸비한 여전사다. 처음에는 아이들 앞에서 “난 애들을 싫어해”라고 내뱉는 등 ‘모성’결핍증세가 심했으나 소년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모성을 느끼게 된다. 6살짜리 꼬마인 주제에 매사에 고분고분하기는커녕 “난 남자예요. 뭐든지 할 수 있어요”라고 툴툴거리는 고집불통 소년과 티격태격하면서 튼실한 교감의 고리를 맺어간다. 할리우드가 샤론 스톤을 내세워 똑같은 제목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지만, 지나 롤랜드의 카리스마를 넘어서기엔 역부족.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 어느날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 평온한 나날이 깨져버린 여성이 보여주는 자기보호 본능에서 출발한다. <터미네이터>에 등장했을 때, 사라 코너는 단순히 그 생존본능에 충실한 ‘여성’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처절한 자기방어를 했을 뿐이다. 그래서 혼란감과 초조감을 숨기지 않고, 일관되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인다. 도망자의 입장이 되어 한번도 터미네이터를 공격하지 못하고, 총은 손에 잡아보되, 한번 쏘지 못한다. 그러다가 <터미네이터2>에서 전사로 거듭난다. 존재 이유는 아들을 지켜내는 것이고 ‘모성’은 당위가 된다. 물론 아놀드 슈워제네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1편에 이어 여전히 ‘도망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몸을 던지는 격렬한 액션보다는 여전사의 ‘이미지’로 승부한다. 다른 여전사들과 달리 일행 중 가장 먼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아들의 부축을 받는 등 전사의 이미지에 약간 먹칠(?)을 하지만 모성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T-1000과의 최후의 대결장면에서 철컥 철컥 소리와 함께 한손으로 총을 쏘아대는 모습은 매혹적이다. <에이리언>의 리플리(시고니 위버) <에이리언> 시리즈가 낳은 최고의 우주 여전사. 4편에 이르는 시리즈에서 각각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에이리언>에서는 신중하고 사려깊고 책임감 강한, 그러나 전사라기보다는 죽음의 공포에 맞서 싸우는 평범한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에이리언2>에서는 모성을 겸비한 여전사의 상을 보여준다. 한손엔 아이를 안고 다른 한손엔 화염방사기를 들고 에일리언의 알들을 화형시키는 슈퍼우먼형 전사. 투철한 모성본능의 철갑을 두르고 거침없이 중장비를 조정하는 힘과 퀸 에일리언과 대적하는 순간에도 침착성을 잃지 않는 냉철함도 갖췄다. <에이리언3>에서는 자신이 에일리언을 임신한 것을 알고는 거대한 재앙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용광로에 몸을 던지는 순교자, 즉 수난에 빠진 성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에이리언4>에서는 전사의 이미지보다는 인간과 에일리언의 경계에서 정체성의 문제로 고뇌하는 모습을 더 부각시킨다. <롱키스 굿나잇>의 사만다(지나 데이비스) <롱키스 굿나잇>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여전사 사만다는 여자 람보 같은 장쾌한 액션을 유감없이 펼쳐보인다. 평범한 아줌마로 살아가다 난데없이 집안에 쳐들어온 침입자를 자기도 모르게 때려눕힌 뒤 손가락에 묻은 크림을 핥아먹는 모습은 오싹할 정도로 동물적이고 원초적이며, 팔로 침입자를 내려치는 장면에선 소머즈가 초인적인 능력을 나타낼 때 들려오던 ‘두두두두…’ 하는 음향효과가 연상될 정도다. 고층빌딩에서 얼음판으로 뛰어내리면서 한손으로 기관총을 쏘아 얼음을 깨뜨린다든지, 고문을 당하다 물 속에서 총을 구해 물 밖으로 나오면서 쏘아대는 모습, 잃었던 기억을 되찾고 사만다에서 찰리로 변신하는 장면 등은 한결같이 강인하고 원초적인 생명력을 보여준다. 거대한 유조차를 운전하고, 쇠사슬을 휘두르며 육탄전을 벌이는 모습은 긴치마 입고 가죽부츠 신은 ‘람보’다. 그러나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는 심각한 모성은 여전하다. <니키타>의 니키타(안 파릴로) 액션에도 프랑스풍이 있다? 마약에 취해 경찰을 살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인간병기로 길러지는 니키타는 베티 블루 같은 광기를 내뿜는 킬러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함을 품은 눈동자와 짧게 커트한 머리카락. 함부로 껌을 씹어대며, 자신을 괴롭히던 경찰의 손을 연필로 찔러버린다든지, 방어태세를 갖춘 교관이 쳐보라는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뺨을 때림으로써 허를 찌르는 등 천부적으로 동물적인 감각을 갖춘 킬러. 몸을 날리는 액션은 그리 많지 않지만, 금속제 무기보다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표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모습이 고혹적인 여전사. 니키타의 모습에 반한 할리우드에서 <니나>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했다. <미녀 삼총사>의 삼총사(드루 배리모어, 카메론 디아즈, 루시 리우) 행여 기싸움에 질세라 상대를 노려보며 정색을 하던 선조들에 비해 싸우면서 웃을 줄 아는 유쾌한 여전사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떠밀려 전투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싸우며 살아가기를 스스로 선택한 그들은 미모와 지성에 힘까지 겸비하고 정의와 유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멋진 인생을 살아간다. ‘내가 왜 이렇게 살지?’ 등의 존재에 대한 고뇌나 회의 따위의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로맨스는 예스, 결혼은 노! 일과 사랑을 병행하는 것은 좋지만 삼총사의 사전에 ‘모성’은 없다. ▶ 할리우드 여전사 나가신다! ▶ 여전사 캐릭터 열전

여성에게 내재한 공포가 호러와 판타지 장르와 통한다.

“우린 아주 집요해요.” 35개국에서 온 140명의 판타스틱한 신부감을 부천의 관객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 이 두명의 매파는, 해외영화제를 ‘보따리 장수’처럼 다니면서 ‘돈안되는 영화제는 NO!’라고 외치는 마켓의 장사꾼들에게 문전박대 당하기 여러번, 한손에 카달로그 한손엔 핸드폰 들고 정말 집요하게 아부하고 협박(?)했다는 기억을 먼저 풀어놓았다. 인디포럼 영화제 기획,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밍 팀장을 거쳐 올해 처음 판타지의 배에 오른 김영덕 프로그래머는 호금전 회고전의 전반적인 진행을 맡았고 1, 2회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거쳐 3회부터 올해까지 프로그래머로 부천에 뼈를 묻은 송유진 프로그래머는 다년 간의 노하우로 조직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마치 몇살 터울 자매처럼 대답을 서로 미루지 않은채 적절히 나누어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프로그래밍 과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작년과 비교해 볼 때 어떤것들이 달라졌나. 송유진 더 재미있다.(웃음) 작년은 프로그래머 외에 많은 모자를 쓰고 일을 해야했다. 수석 프로그래머와 사무국장이 다 떠나고 여러모로 열악한 상황이라 개인적으로 부담도 컸다. 결국 4회는 ‘올해가 없으면 5회는 없다’는 마음으로 서바이벌 모드로 전환시키고 과감하게 진행한 영화제였던 것같다. ‘제한구역’ ‘메가토크’ ‘지정좌석제’ 등이 모두 극한 상황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는데 부작용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시도였고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것에 비하면 올해는 정말로 편하게 본연의 업무인 프로그래밍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김영덕 모든 이들이 원하고 있던 회고전이었는데 다행히 <와호장룡>이 터져 시기적으로 적절해졌다. 필름 수급의 어려움이야 왜 없었겠냐만은 제작자이자 호금전 영화의 배우였던 쉬펑이나 홍콩영화제 회고전 필자였던 스티븐 테오와 피터 리스트를 만나는 등 여러 군데서 운도 많이 따라 주었다. 아쉬운 것은 쉬펑이 얼마전 살고 있는 맨션 계단에서 굴러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언제고 부천에 꼭 오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어서 내년에는 심사위원 자격으로 초청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일은 어떤 식으로 분담하나? 송·김 보통 공동으로 상의하고 조율하는 편이다. 취향이 접목되는 부분도 많지만 다른 부분도 많기 때문에 오히려 균형잡힌 의견이 나온다. 객원으로 일한 정초신 프로그래머는 초반작업과 ‘메이드 인 코리아’ 부분을 담당했다. 사실 <시체유기 자장가> <지킬건 지킨다> 같은 한글 제목을 정 프로그래머가 붙였는데 “한글 제목이 더 죽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역시 ‘흥행감독’은 다른것 같다.(웃음) 세 사람이 다 다른 스타일인데 이상하게 잘 맞았다. 여성 프로그래머로서의 장점이 있나? 송유진 여성 특유의 ‘육감’에 따른 초이스가 관객의 취향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는 듯하다. 그리고 어떤 부분 억압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여자들에겐 기본적인 ‘공포’가 존재한다. 그것이 호러와 판타지 장르를 아우르는 판타스틱영화제와 통하는 부분이 있고. 백은하 “Two Programmers with an Attitude, Ready for Anything” Programmers Ellen Kim and Cassie Yoo Tell us what differences there are from the year before. Cassie Yoo It's much more fun. Last year I had to wear so many other hats other than the programmer's hat. The Chief programmer and director were not present so we were at a very tight edge and had a lot on our shoulders. In the end we vowed to make our best of the situation, thinking 'There won't be a 5th PiFan if we can't survive the 4th." 'Forbidden Zone', 'Megatalk' and a new seat-assigning system were some ideas thought up at the last minute. The Retrospective of King Hu, well known as the master of Martial Arts Films especially catches the eye. Could you tell us something about that? Ellen Kim A lot of people wanted that kind of retrospective and luckily Ang Lee's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was a sensation, so we decided the time was right to have a retrospective on him. Of course we had some difficulty in obtaining the film, but luckily Madame Hsu Feng, an all time favorite actress who starred in King Hu's films agreed to meet us. We also met the writers for the Hong Kong Film Festival's Retrospective category, Stephen Teo and Peter Rist. Unfortunately, just recently Madame Hsu Feng fell down her mansion stairs, injuring her back and could not come to the festival, but expressed that she wanted to be a part of the festival, so we hope to have her here next year as a judge. How do you two divide the work? Kim Usually we discuss things together and work things out. We find ourselves having the same views in some areas, and different ones, too. I think the role of a publicity director is a little different. These three have their differences, but that doesn't stop them from getting along well. What are the benefits of being a female programmer? Yoo I think the inherent instincts of a woman reach out to the audience more easily. Just by living in this world as a 'woman' is pretty much horrific itself, and I think that's what coincides with the Fantastic Film Festival's horror and fantasy genres.

스크린 쿼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한국영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심한 세대교체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산업적이고 상업적인 측면과 더불어 상상력(creative spirit)과 영상미학의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옛날 감독들이 개성있는 영상미학을 선보이고자 노력했다면, 최근의 젊은 감독들은 새로운 이야기방식, 특히 상상력이 가미된 새로운 소재 발굴에 열심인 듯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영화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정형화된 코드들을 이용해 스토리를 대량으로 찍어내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한국 영화계에 불고 있는 ‘펀드 바람’과 ‘작가 논쟁’이야말로 한국영화계의 위치를 정확히 보여준다.” 피에르 리시앙은 ‘프랑스의 한국영화통’답게 최근 한국영화계의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해 보였다. 공식 직함이 없으면서도 폭넓은 활동을 해온 그는 초청작 <보스만과 리나>의 프로듀서라는 직함도 친구의 빈자리를 대신한 것뿐라고 부연설명. 칸 영화제에 아시아영화를 소개해 온 그는 얼마 전 임권택 감독의 작품을 비롯, 신상옥, 홍상수,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개최하는데 가교 역할을 했다. 프랑스 내의 한국영화 인지도는 점차 높아져 이제는 배용균과 장선우 감독을 추종하는 무리가 생길 정도라고.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를 지지하지만, 스크린쿼터가 전부는 아니다”라는 그는 17일 있을 SRF 프로젝트 메가토크에서 ‘할리우드에 대항하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발제 연설을 한다. 그는 또한 한국을 거세게 강타한 디지털 바람에 대해 “디지탈 카메라가 제작현장에 민주주의를 가져오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디지털 카메라는 단지 누구에게나 셔터를 누를 기회를 제공할 뿐, 누구나 볼 수 있는 작품을 찍게 하지는 않는다. 능력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라고 일갈했다. 심지현/ 객원기자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Beating of the Butterfly’s Wings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 Beating of the Butterfly’s Wings 2000년·프랑스·감독 로랑 피로드 출연 오드리 토투·90분 적도의 나비가 날개짓을 하면 북태평양에는 허리케인이 인다! 이른바 카오스이론을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적용해서 풍자적으로 그려낸 코미디영화. 파리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서로 스치듯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우연적인 행동과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출근을 하던 이렌느는 한 여인에게서 바로 오늘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되리라는 점괘를 듣는다. 하지만 오히려 직장인 슈퍼마켓에서 좀도둑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고, 택시 안에서는 누군가 던진 돌멩이로 차가 급정차하는 바람에 얼굴을 다치는 등 불행의 연속이다. <숏컷>이나 <매그놀리아>처럼, 카메라는 특별히 주인공을 설정하지 않은 채 이렌느로 시작해서 그녀가 스치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포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우연한 행동들은 여러 사람들을 거치면서 다시 이렌느에게 특별한 인연과 사건으로 되돌아온다. 복잡하게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콜라주한 작품. 로랑 피로드 감독의 장편 데뷔작. 정지연/ 영화평론가

<소름> 주연 장진영 “새벽4시면 악몽에 악!”

미스터리 스릴러 <소름>(감독 윤종찬, 개봉 8월4일)의 공포는 아주 새롭다. 피와 살을 흩뿌리지 않고 이야기는 느릿느릿 흘러가는 데도 신경이 쭈뼛쭈뼛 일어선다. 엄청난 공포감을 일으키는 건 주검이나 악령이 아니라, 사람들이 빚어내는 슬프고도 비비꼬인 인연과 사랑이다. 멜로로 소름 끼치는 두려움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아주 지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주연배우 장진영(27)씨가 `페스티벌 레이디'로 선정된 것은 아주 적절해보인다. 장씨는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본 뒤 스태프들과 식사하러 가서 혼자 멍하니 밥도 못먹고 앉아있었다고 한다. “촬영 후반에 들어섰을 때, 한동안 새벽 4시만 되면 깨어나서는 무서워서 눈도 못감고 고통스러워했어요. 똑같은 악몽을 되풀이해서 꾸는 거예요. 그만큼 몸과 맘이 많이 황폐했는데 그런 기억이 되살아나는 바람에….” 그를 이 지경에 몰아넣었던 건 `선영'이란 캐릭터 때문이었다. 하나뿐인 아이를 잃어버리고, 남편의 주먹질에 시달리는 선영의 눈빛은 시퍼렇게 멍든 자국만큼 절망적이다. 단지 본능적으로 살아갈 뿐인데, 악마적 심성을 갖고 있는 용현(김명민)을 만나 작은 위로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과거에 도사리고 있던 지옥같은 악연이 문제였다. 선영으로부터 벗어나려 색깔있는 렌즈를 끼어가며 스스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중이고 다음 영화에선 반드시 행복한 배역을 하겠다지만, 장씨는 선영 덕분에 `진짜 배우'가 됐다. <자귀모> <반칙왕> <사이렌> 등에 출연했지만 거기서 그의 매력을 온전히 보기는 어려웠다.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라서가 아니라 <소름>에선 고운 외모와 달리 `터프'한 속내를, 시에프(CF) 모델의 가공된 미소가 아닌 살냄새나는 얼굴을 화면에 폴폴 풍긴다. “목소리도 그렇고 남성적이란 얘기를 많이 들어요. 실제로 터프해서 여자 같은 내숭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제가 불편해요. 하지만 여자로서의 삶이 고달플 때, <파니 핑크>(사랑도, 인생도 잘 안풀리는 여자를 그린 영화)를 보면서 기분을 풀어요.” 혹시 기존 배우들을 분류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스타와 배우', `실제 생활과 연기가 같거나 혹은 딴판인 배우' 등으로 나눠본다. 자신은 어느 자리에서나 한결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 “97년 데뷔했으니까 늦게 시작했죠. 갓 스물 넘은 이들이 스타덤에 오르는 걸 보면서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일찍 시작했으면 천방지축이었을 거예요. 일을 제대로 해나갈 생각이 부족했을 거란 말이죠.” 그의 몸 안팎은 텔레비전이나 스크린 속보다 훨씬 단단하고 풍성해 보였다. “운동을 즐겨하고, 집에서 조용히 차 마시기를 좋아해요. 술요? 물론 좋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