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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부모잃은 자매 웃어도 웃는게 아니지 <작별>

낡은 사진첩 속의 얼굴들이 행복하게 웃고 있다. 모노톤의 인물들에 색이 입혀지며 영화가 시작된다. 사진첩 속의 단란하던 일가는 갑자기 닥친 자동차 사고로 산산조각 난다. 부모와 막내를 잃고 세상에 내던져진 열일곱 살의 메메(잉그리드 루비오)와 여덟 살의 아네타(히메나 바론) 자매는 고향인 아르헨티나의 빌라 빅토리아를 떠나 두 고모가 살고 있는 우루과이로 간다. 사고로 평생 다리를 절어야 하는 메메는 고향을 떠나며 “이 빌어먹을 동네에 다신 오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아홉 살 터울의 메메와 아네타 두 자매는 나이 차이만큼이나 행복했던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방식이 다르다. 아네타는 늘 가족 사진첩을 끼고 다니며 펼쳐보는 게 일이다. 그럴 때마다 언니 메메는 “사진 좀 그만 봐, 다 죽은 사람들이야!”라고 구박한다. 언니로서 엄마 노릇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메메에겐 오히려 과거를 직시할 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메메는 아기를 낳는 게 소원이다. 추억의 힘에 기대 살아가느니 빨리 사랑을 찾고 아이도 낳고 새로운 삶을 가꾸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이웃 청년이든 유부남이든 무모하리만치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메메의 구애는 늘 상처만 남기고 실패로 끝난다. “불완전한 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이라는 메메의 말처럼, 영화는 너무 어린 시절 남다른 상처를 안은 두 자매가 세상을 배워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 고모네 집에 얹혀 살다 우연히 만난 엄마의 친구 돌로레스(노르마 알레안드로) 덕분에 새로운 희망과 즐거움을 맛보지만, 유부남과 사랑에 빠진 메메는 유산을 경험하면서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해 술과 담배로 스스로를 학대한다. 사고 때 폐 하나를 잃은 메메에게 흡연은 자살행위와 같다. 영화 속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자기 속내를 감추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다. 특히 메메의 밝은 미소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삶의 신산함을 알아버린 주인공이 복잡한 내면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다. 마지막 자막이 뜰 때 나오는 노래 호안 마누엘 세라트의 <내가 기억하는 작은 것들>은 영화를 보며 감상에 젖길 즐기는 팬들의 눈시울을 적시기에 충분히 애닯고 서정적이다. 지난 96년 산세바스찬 영화제에서 스페인 영화 <가을의 태양>으로 주목을 받은 에두아르도 미뇨냐(62)는 소설가로 출발한 아르헨티나 감독. 지난 83년 <에비타, 민중의 소리를 들으려 했던 그녀>란 작품으로 데뷔한 뒤 텔레비전 프로듀서로 경력을 쌓았다. <작별>(원제는 ‘남쪽의 등대’)은 그의 98년 작품으로, 스페인어 영화권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고야상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7일 개봉. 글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O.S.T

시사회장에서 안내를 맡은 분이 ‘장선우라는 이름을 지우고 영화를 보라’고 주문하여 그렇게 해보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그게 잘 안 된다. 장선우라는 이름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대목임이 분명하다. 성냥팔이 소녀는 총을 들고 게임 속에 재림하여 호접지몽의 사상을 몸으로 살고 열린 내러티브, 열린 결말 속으로 사라졌다. 이 어찌 장선우답지 않다 하겠는가. 이 영화는 후진 현실을 뒤엎는 시적인 아름다움을 총질한다. 아니, 최소한 ‘야, 이거 시적 아름다움 맞지?’ 하고 자기 거울에다가 되뇐다. 음악은 여전히 달파란이 맡았다. 그간 장선우 영화에서 달파란이 해낸 역할은 상당하다. ‘싸구려틱한 샘플’들을 가져다가 뭔가 세련되고 알뜰하며 정확한 방식으로 다시 엮는 특유의 ‘뽕테크노’는 <나쁜 영화> 이후의 장선우 영화에서 중요한 코드로 작용해왔다. 물론 지난 영화들과 이번 영화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음악도 그에 걸맞게 달라진다. 지난 영화들이 일상의 진부함과 벌거벗은 인간성을 적나라한 화면에 담는 ‘산문적’인 의식의 작업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그 헐벗은 절망이 장자적인 상상력과 만나 고통을 털어내는 ‘시적’인 연금술의 과정이 덧붙여져 있다. 그 과정이 영화 전체를 통해 성공했는지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음악에 관한 한 그러한 과정이 비교적 일정한 성과를 낸 것 같아 보인다. 지난번까지는 뽕짝의 두 박자 리듬을 하우스의 두 박자 리듬과 개념적으로 겹꿰매면서 줄줄이 소리들을 재단해나갔는데 이번에는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물론 이박사나 남대문 시장 유의 ‘히, 히’ 하는 외침을 코러스로 쓰는 일도 여전히 마다않는다. 다시 말해 싸구려를 포용하는 시도는 여전하다. 그러나 두 박자의 리듬을 벗어나 약간은 정글이나 빅비트의 리듬 쪼개기를 떠올리게 하는 펑키한 그루브를 기본 박자로 도입하는 시도가 보인다. 또 국악이나 기타 민속음악적 리듬에서 차용한, 약간 무당기가 서린 리듬들을 도입하기도 한다. 불교음악에서 차용한 대목도 보이는데, 그건 아마도 장선우 감독의 주문을 많이 반영한 것이리라. 게다가 케미컬 브러더스 류의, 샘플된 스트링을 과감하게 기름진 테크노 리듬과 섞어돌리는 방식도 보인다. 라운지적인 데도 있고. 이번에 특히 돋보이는 건 달파란의 ‘서정성’이 추가되었다는 점. 그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모든 음악적 재료들이 테크노적 방법을 통해 버무려진다. 사이키델릭한 키보드와 노이즈와 어울리며 때로는 B급영화의 펑키한 테마들로, 때로는 시적인 꿈들로, 싸구려 오락실의 테마로 변주된다. 달파란의 테크노는 이제 스타일화의 경지에 도달하는 듯하다. 달파란은 송곳이다. 딱 필요하다 싶은 자리에 다트놀이 하듯 리듬을 팍! 꽂아넣는다. 리듬이 복잡해졌다고 해서 너저분하게 들리진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특이한 대목 중 하나는 강타가 달파란의 곡에 노래를 했다는 점. 아예 강타는 거의 뮤직비디오처럼 영화의 3분 정도를 완전히 자기 코너로 만들고 있다. <나쁜 영화> 같은 영화를 만든 장선우 감독의 영화에 강타가 등장한 것은 왠지 뜻밖. 노래도, 달파란의 곡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타스럽다. 케이블 텔레비전 같은 데에는 이 노래가 O.S.T의 타이틀 곡으로 홍보되겠지?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MBC 선정적 화면 가장 많아

MBC가 방송3사 가운데 올 여름철에 신체노출 및 신체접촉행위 등의 선정적 장면을 가장 많이 방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하윤금 책임연구원은 지난 8월19~25일 「지상파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선정성 분석」에 관한 모니터 보고서를 25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월19~25일 평일 오후 5시 이후와 주말 종일 KBS1,KBS2,MBC,SBS의 전 프로그램(스포츠 제외)을 대상으로 선정성 빈도를 조사한 결과, 총 690건의 선정적 장면 중 MBC와 KBS2가 각각 213건과 211건을, SBS가 202건, KBS1이 64건을 방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정성은 신체노출과 선정적 동작, 신체접촉행위 등으로 나누어 조사됐다. 선정적 장면수가 가장 많은 프로그램은 조사 기간에 해외의 누디스트 생활을 다뤘던 MBC <와! e멋진세상>(28건)이었고, KBS 2TV 영화 <식스데이 세븐나이트>(25건)와 MBC <섹션TV 연예통신>(22건) 등의 순이었다. 특히 <섹션TV …>(3위), KBS2 <연예가중계>(5위)등 연예정보프로는 특정 연예인의 출연 드라마 중 자극적인 장면만 모아 반복해서 보여주는가 하면 MC와 패널, 리포터들의 옷차림에서도 여성의 과다 노출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MBC <출발 비디오여행>(4위), KBS2 <영화 그리고 팝콘>(7위), SBS <접속무비월드>(11위) 등 주말 오전 시간대 방영되는 영화 정보 프로그램도 정사 장면 등 가족들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한 선정적 화면이 많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프로그램 장르별로는 드라마(54건), 시트콤과 오락버라이어티(24건), 영화(12건) ,뉴스(11건) 순으로 선정적 장면 빈도가 높았다. 특히 신체노출이 이뤄진 장면 총 359건 중 여성의 노출이 252건(70.2%)에 달해 여성의 신체가 TV프로그램에서 선정적 소재로 이용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비디오, 주말에 뭘 볼까

챔피언 198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챔피언 레이 맨시니에게 도전했다가 사망한 복서 김득구의 삶을 그렸다. 시골에서 어렵게 자란 김득구는 막연한 성공의 꿈을 안고 상경해 보따리 장사로 전전한다. 권투 명문 동아체육관의 김현치 관장과 우연히 만난 그는 권투선수로 입문해 빠르게 성장한다. 체육관 아래층 사무실에서 일하는 애인 경미에게 챔피언 벨트를 매고 돌아온 뒤 결혼하자고 약속하며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 주제곡을 비롯해 촌스런 운동복, 바가지 머리 등으로 드러나는 70년대 말, 80년대 초의 복고적 분위기가 감독의 전작 <친구>와 비슷하다. 곽경택 감독. 엔터원, 25일 출시. 미션 바라바 텔레비전과 책으로도 소개됐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한국인 아내의 도움으로 새 삶을 살게 된 야쿠자 출신 나카지마 데쓰오의 실화가 바탕이다. 산세가이파와 나카모리파의 대결 속에서 각각 중간 보스 격인 유지와 시마는 오히려 자신의 조직에 쫓기는 신세들이 된다. 이들에겐 한국인 아내가 있다. 은둔생활을 하며 방황하던 유지는 교회를 통해 새 삶을 찾고, 거대한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죄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일본종단 십자가 행진에 나선다. 유치한 감정표현도 있지만, 두 야쿠자들의 팽팽한 긴장감과 내적 갈등을 잡아내는 연출은 매력적이다. 한국인 아내 역으로 나영희·윤유선이 출연했다. 사토 고우이치 감독. 인피니티, 30일 출시.

주먹세계 오야붕은 연기도 오야붕, <야인시대>서 구마적 열연 이원종씨

에스비에스 드라마 <야인시대>(월·화 밤 9시55분)가 35%대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야기는 김두한(안재모)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만 조연들의 빛나는 연기는 드라마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균형추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구마적을 맡은 이원종(37)은 주먹뿐만 아니라 두목으로서의 통큰 통솔력을 선굵게 연기해 드라마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지난 24일 서울 종로의 한 극장 근처에서 최근 그가 출연한 영화 <남자 태어나다>의 시사회가 끝난 뒤 그를 만났다. 사실 손가락이 좀 굵어 손이 다른 사람에 비해 좀 크다는 점을 빼고는 그에게서 `조선 주먹의 오야붕’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청바지와 검은 재킷차림에다 그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인 것은 극중에서와 같은 두툼한 궐련이 아닌 가는 담배였기 때문이다. 구마적이 본 ‘구마적-쌍칼-하야시’=구마적은 아주 정치적인 인물이다. 그는 김두한이 등장하기 전 강한 주먹과 포용력을 두루 갖춰 10여년간 주먹세계의 ‘오야붕’으로 군림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최근 야쿠자와 손잡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하야시의 마수에 걸려 발을 잘못 내디딘 것이다. 이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은 나중에 나오지 않을까 싶다. 쌍칼은 참으로 멋진 인물이다. 성급하게 구마적에게 도전장을 던져 깨지지 않았더라면 구마적의 후계자로 삼을 만하다고 본다. 하야시도 제대로 된 건달이다. 안하무인적인 신마적은 오히려 구마적의 정치성을 잘 드러나게 한다. 신마적이 구마적 앞에서 막되먹은 행동을 해도 구마적이 절대 건드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액션연기 어렵지 않나=쉽지 않다. 매일 운동을 할 수도 없고 기본체력으로 버티는데 점점 힘들어진다. 다행히 드라마에서는 실제 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두번밖에 없다(그는 `오야붕’으로 그동안 싸울 일이 없었다). 지난번 쌍칼과의 대결장면을 뒤에 모니터해보니 많이 아쉽더라. 연기인생과 가족=대학재학중이던 86년 극단 `미추’ 입단으로 시작해 마당극 등 연극을 30여편 했다. 텔레비전은 `용의 눈물’로 데뷔해 <왕과 비>, <야망의 전설>에 출연했다. 영화도 <달마야 놀자>, <신라의 달밤>, 이번에 섬마을의 코믹한 권투선생역을 맡은 <남자 태어나다> 등 10여편 출연했다. 연극은 내 연기인생에서 `젖줄’이자 `삶을 돌아보는 공간’이다. 지금도 1년에 1편씩 꾸준히 출연하려 하고 있다. 아내 김영화는 국악방송(99.1㎒)에서 <우면골 상사디야> 진행을 맡고 있다. 그리고 큰딸은 7살, 작은딸은 다음달 12일이 돌이다. 오셔서 축의금 좀 내고 가시라. 이원종은 최근 인기 바람몰이를 하면서 유명세도 많이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길 가다 아는 체하며 사인을 부탁하는 팬들 때문에 때론 “불편할 정도”라고 한다. 그는 다음달 4일 경기 부천 세트장에서 <야인시대>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김두한과의 마지막 결투장면을 찍는다. 주먹세계에서 진자는 말없이 떠나듯 시청자가 그를 볼 날도 머지 않았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레니 리펜슈탈 49년 만의 신작 다큐 <해저의 인상>

독일 파시즘 선전영화의 대표적 인물로 지난 반 세기 동안 추앙과 질책을 동시에 받아왔던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이 지난 8월에 100살을 맞았다. 여인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가장 말썽 많았던 인물”답게 숱한 화젯거리를 만들면서 미디어의 여파를 계속 타고 있다. 우선 독일에서만도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쥐트도이치 차이퉁> <디 차이트> 등 일급 신문에서부터 <보그> <안나벨> 등의 대중 여성잡지에 이르기까지 100주년 생일을 배경으로 큼직큼직한 기사가 나갔고 독일의 제1, 제2 국영 텔레비전과 아르테는 물론 지방 방송사들이 서로 다투어 특집 프로그램을 짜서 여러 차례 방영했다.그 밖에도 그와 관련된 전기, 사진집들이 새로 출간되고 그의 영화에 대한 글과 회고전이 여러 곳에서 발표되는 등 그야말로 리펜슈탈 증후군이 퍼지고 있는 와중에 100살 노인이 ‘세상을 위한 선물’을 내놓아 또 하나의 화제가 됐다. 선물의 내용물은 9월 초 베를린에서 초연된 신작 다큐멘터리 <해저의 인상>으로 리펜슈탈이 1956년 영화작업을 중단한 뒤 49년 만에 다시 연출한 것으로서, 71살 때 스쿠버다이빙 시험을 통과하고는 2천번이나 바닷속을 드나들며 30년에 걸쳐 끝마친 현대판 오디세이 작품이다.스위스 텔레비전을 통해 영화의 일부를 봤지만, 무거운 산소 호흡기를 달고 지중해의 깊은 바다 밑에서 물고기떼들을 따라다니며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 감독의 얼굴엔 어떤 비장한 결의마저 엿보였고, 영화에 대한 집념 또한 대단해 몇 십년 동안 찍은 엄청난 분량의 필름을 집에서 혼자 편집했는데, 이 영화에 자신의 명예를 걸고 있는 듯 작업에 혼신의 힘을 쏟았던 것 같다.리펜슈탈은 작품 동기에 대해 마틴 루터 킹의 유명한 1965년 연설 가운데 ‘나에겐 꿈이 있다’를 인용하면서 “내 꿈은 지구의 자연 보존이며 나는 70년대 초부터 녹색운동 그린피스의 회원”이라고 했다.동기야 어쨌든 리펜슈탈은 <해저의 인상>을 들고 영화감독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어쩌면 정치와 상관없는 ‘비전’의 영화를 만들어 과거의 누명을 씻고 다시 감독으로서의 명예회복이 이뤄지길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간단하지만 않는 듯하다. 독일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로 봐서 리펜스탈에 대한 경계심이 그렇게 쉽게 늦추어질 것 같지 않고, 한동안 그토록 푸짐했던 언론 프로그램도 따지고보면 인간 리펜스탈보다는 이제 몇 남지 않은 나치정권의 심벌로서 더 관심을 끌었던 게 사실이다. 예상대로 감독의 나치정권 협조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와 더불어 예술의 창조적 자유와 감독의 사회모럴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시 여론을 들끓게 했다.그런 상황에서도 리펜스탈은 조금도 자성하는 낌새를 보이지 않은 채 한결같이 "나는 나치 당원도 아니었고 나치 이데올로기를 따른 적이 없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며 내게 중요한 건 영화의 형식미고 내용엔 관심이 없다. <의지의 승리>와 <올림피아>는 히틀러의 위탁으로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난 그 때문에 숱한 어려움과 고통을 겪어야 했다”라는 이미 너무도 잘 알려진 무죄 주장을 반복했고, 여인의 뻔뻔함에 분노한 언론쪽에선 리펜스탈을 대고 “동침을 못했던 히틀러의 연인(<슈피겔>), 홀러코스트 경고 기념물(<디 차이트>), 파렴치한 인간(<팍트>)” 등의 악평을 퍼부었다. 그리고 런던의 일간지 <디 인디펜던트>는 “리펜스탈이 나치 과거를 파묻기 위하여 마지막 시도로서 물고기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꼬집었다.리펜스탈은 자신의 과거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자기는 전후 50건의 법적 소송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실지로는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기 위한 빈틈없는 전략의 결과다. 예를 들어 히틀러 앞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춤을 췄다는가, 아돌프 아이히만을 위해 집단수용소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비방이 사실이 아님이 판명된 정도다. 그와 달리 리펜스탈은 1969년에 나치 시기에 나온 자신의 영화에 대한 사용권 신청을 했으나 판사로부터 무효 판결을 받았고, 최근에 리펜스탈의 거짓말이 폭로되는 사건이 터져 지금 법적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리펜스탈은 1940∼44년 사이에 <낮은 땅>을 만들면서 집시들을 단역배우로 썼고 이들 거의가 나중에 집단수용소에서 죽었다. 그럼에도 리펜스탈은 올 4월에 어느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자신의 영화에 협조한 덕분에 안 죽고 모두 살아 남았다고 했는데, 그게 유가족들의 소송으로 거짓말임이 드러났고 리펜스탈의 입에서 처음으로 용서를 비는 말이 나왔다. 리펜스탈은 언젠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언론의 공격에 분노하여 “나는 기자들의 공격에 죽임을 당하여 유령이 됐다”고 했는데, 리펜스탈의 유령 현상에 대해 영화평론가 엘리자베스 부론펜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리펜스탈은 창조면에서는 세기적인 인물이다. 그의 영화는 오늘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데가 있다. 문제는 여인의 꺾일 줄 모르는 자가당착이며 그로 인해 생기는 역사에 대한 왜곡을 우리는 받아줄 수 없기 때문에 논쟁은 끊임없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내 여론과 아옹다옹하는 사이에 리펜스탈을 지지하는 단체나 개인이 9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갈수록 늘고 있다. 리펜스탈은 <프랑크푸터 룬트샤우>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언론은 아주 긍정적이다. 조디 포스터, 스티븐 스필버그, 마돈나가 나의 삶을 영화화하고 싶어하고 나는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고 하면서 현재 자기 영화는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값으로 팔린다고 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최근 일부 여성 언론·영화인들이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리펜스탈의 삶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이름난 페미니스트 언론기자 엘리스 쉬바르저는 “살인적인 시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리펜스탈은 오늘 틀림없이 20세기의 천재 여성감독으로 인정받았을 텐데, 독일 국민 대부분이 그랬듯이 그도 히틀러에 홀렸던 것인데 그들과 다른 점은 히틀러도 리펜스탈에 홀렸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독일의 페미니즘 영화감독 헬마 산더 브람스는 “리펜스탈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큰 나머지 50년이 지난 뒤에도 그의 영화를 배척하는 독일 지성계의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면서 남성평론계에 항의 질문을 던졌다. 또 미국 웨슬리언 칼리지의 영화학 여교수 지닌 베이싱어는 만일 <의지의 승리>와 <올림피아>를 남성이 만들었다면 그 사람은 그리피스 다음가는 유명 감독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대학의 저명한 영화학과치고 리펜스탈의 작품을 사용하지 않는 데가 없지만 감독의 이름은 항상 뒷전으로 밀린다”고 공정치 못한 학계의 현실을 비평했다.그런가 하면 할리우드의 배우 출신의 감독인 조디 포스터는 “20세기에 어떤 여성도 리펜스탈처럼 비방과 찬사를 받지 못했다. 그는 영화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여성이 될 재능을 갖고 있다”며 리펜스탈의 삶에 대한 영화를 만들 예정이며 연기와 연출을 자신이 맡겠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저명한 여성 수필가 수잔 손탁은 리펜스탈의 영화는 파시즘의 미학을 기본틀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현실의 미화, 건강한 신체의 강조, 흠 없애기” 등을 예로 들었다. 바젤=임안자/ 해외특별기고가▶ 리펜스탈의 다섯 조각의 인생

국제영화제의 모든 것(1)

다음과 같은 분들은 아마도 이 글을 건너뛰실 거라고 예상합니다. 1. 영화는 방에서만 본다. 텔레비전 채널 이리저리 돌려가며 재미난 장면만 편집해 봐도 줄거리는 다 파악된다. 비디오 자주 빌리고, 때에 따라 비디오방에도 간다. 2. 멀티플렉스 로비에서 팝콘 한 봉지 들고 서 있으면 숨이 멎을 것만 같다. 형광색 인테리어, 게임기의 우당탕 소리와 댄스음악의 황홀한 조화. 아,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3. 이 세상에 스티븐 스필버그보다 더 훌륭한 감독은 없다고 본다. 조지 루카스도 스필버그만큼 훌륭한가, 이것이 나의 유일한 고민이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분들을 위해 쓰여졌습니다. 의견 있으시면 제 이름 옆에 붙은 주소로 보내주십시오. 1. 마지막으로 극장에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 안 나지만 영화는 필름으로 봐야 제 맛이라는 느낌은 남아 있다. 더빙을 하거나 양옆으로 잘린 화면을 보면 열받기 때문에 주말의 명화도 보기 싫다. 2. 친구들과 함께 극장에 가면 꼭 나 혼자 튄다. 지루해 보이는 영화쪽으로 기웃거려서 성격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3. 어디론가 탈출하는 꿈을 매일 꾼다. 낯선 곳으로 가서 하루에 영화 네편씩 보며 며칠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4. 영화제에 관한 보도가 나오면 대극장 앞의 붉은 주단을 확 뒤집어보고 싶다. ‘저건 쇼야’ 하는 직관이 발동한다. 5. ‘무슨무슨 영화제 초청’ 이런 거 대문짝만하게 써붙인 광고 보면 거부감이 든다. 유럽 한 바퀴 돌고 와서 잘난 척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재미있고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6. 칸이나 베니스영화제말고 ‘곤충공포영화제’ 뭐 이런 거 없나 공상한다(그런 거 물론 있다. 8월에 미국 일리노이의 한 대학 캠퍼스에 가면 곤충요리 먹으면서 희한한 영화 볼 수 있다). 7. 국제영화제의 미학적, 산업적, 정치적 효과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상관성에 대해 관심있다(당신은 영화진흥위원회에 취직하거나 <씨네21> 기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 목적1 - 할리우드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와 같은 구분에 깔려 있는 다소 오만한 기색은 국제영화제의 기능 자체에 어느 정도 원인이 있다. 국제영화제의 목적을 한마디로 정의해보자면, ‘할리우드 틈새에서 살아남기’라고 말하겠다. 100년이 넘는 영화역사 동안 지역별, 시기별로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지구상의 영화시장은 대부분 할리우드 차지다. 우리나라 또한 일제강점기인 1926년의 한 신문이 “미국영화가 8, 9할, 유럽영화가 나머지를 차지한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다”고 분개한 이래 오늘날까지 미국영화의 우세가 뒤집힌 적은 없다. 할리우드를 위해 일하는 재수 좋은 소수에 속하지 않는 전세계 영화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할리우드영화 스타일과 산업구조를 열심히 따라잡아 자국 시장에서 흥행작 내놓기, 아니면 작고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어낸 다음 비슷한 사람끼리 1년에 한번씩 모여 잔치하고 띄워준 다음 서로 팔아주기. 국제영화제가 후자의 방침에 구미가 당기는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할리우드영화가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뛰어난 이야기 구성, 그리고 지구촌 스크린을 한꺼번에 뒤덮을 수 있는 배급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중적 친화력이 강한 할리우드영화와 차별화하려면 정치적으로 교양 쌓기, 미학적으로 세련되어지기, 기술적으로 소박하거나 실험적으로 되기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또한 각국에 존재하는 예술영화 시장을 한데 모으면 할리우드영화를 피해 제법 움직여볼 만한 여력이 된다. 유럽이라고 해도 개별 국가의 예술영화 시장은 매우 협소하다. 그러나 유럽과 미주, 아시아 등지의 주요 국가에 흩어져 존재하는 예술영화 관객을 한꺼번에 움직일 수 있다면 하나의 대안적인 배급망이 가동될 수 있다. 국제영화제는 바로 그 시장을 연결하는 하나의 박람회 구실을 한다. 한국영화가 외국에 수출되는 판로 역시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들 아트영화 시장용인데, 국내에서 흥행하는 작품과 해외에서 팔리는 작품이 다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예술영화라고 인정하는 작품과 해외에서 팔리는 작품 사이에도 다소 불일치가 있다. 교양과 정치적 올바름, 그리고 예술영화 시장에 관한 한 유럽을 따라갈 대륙은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 375개가량의 영화제( ―Adam Langer, 2000년―의 참가신청서 제출 정보 기준) 가운데 압도적인 다수가 유럽에 몰려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위권 영화제는 물론이고 카를로비 바리, 산 세바스찬, 로테르담, 로카르노 등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유수의 영화제들도 태반이 유럽에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곳은 역시 북미 대륙으로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몬트리올, 시애틀 등이 인구에 회자된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호주 등 나머지 대륙의 경우 세상은 넓으나 할 일은 많지 않다. 한국에는 총 24개의 영화제가 있고(영화진흥위원회 웹사이트 수록 정보 기준) 그중 상당수가 국제영화제이므로 땅 넓이에 비해서는 많은 편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명성을 얻는 영화제들은 예외없이 영화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다.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주목할 만한 작가주의 영화 혹은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는 젊은 영화들을 부지런히 챙기고 골라서 푸짐하게 내놓는 것이 이들의 첫 번째 특징이다. 역량이 입증된 감독들의 작품 스무편 안팎을 골라 경쟁부문에 묶어서 흥미를 북돋우고, 나머지는 이런저런 이름의 부대 섹션에 모아둔다. 우리나라 저널들은 해외영화제를 다룰 때 경쟁부문 작품을 리뷰하고 수상 결과를 뉴스로 전하는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그러나 경쟁부문은 국가별 안배, 지명도 등 영화 외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미덥지 못한 선정과 수상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관습적인 냄새를 풍기는 영화도 많아서 보는 재미가 덜하다. 특히 카메라의 시선을 모으기에 유리한 스타를 불러들이자면 경쟁부문 티켓을 가지고 쇼 비즈니스계와 타협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 영화제가 끝나자마자 극장에 내걸리는 영화를 보면 그 이면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거나 영화제쪽에서 이런 일을 연중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짜임새 있고 훈련된 눈을 가진 일련의 조직이 가동되어야 한다. 그 정점에 집행위원장과 소수의 프로그래머가 있고, 이들은 각국의 영화계와 사적이고 외교적인 네트워크를 맺어 수시로 정보를 취득한다. 정보의 상당부분은 남의 나라 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얻어진다. 거물급 인사들은 파티와 극장, 길거리를 낚시질의 장소로 요령껏 소화하게 마련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김형태의 오!컬트 <데블스 에드버킷>

나이를 어느 정도 채우다보니 어느덧 집을 사야 한다는 강박이 현실로 와닿기 시작한다. 즈음해서, 텔레비전에서는 아파트 광고가 부쩍 늘었다. 원래 많았었는데 내가 무심해서 몰랐던 것이었나? “이 아파트를 장만하세요. 그럼 당신 남편이 일찍 들어옵니다. 그리고 가정은 행복해집니다”가 요즘의 아파트 광고의 주된 설정인 것 같다. 하다못해 “노주현은 죽었다”라는 카피로 시작하는 아파트 광고도 등장했다. 섬뜩했다. 그리고 좀 의아해졌다. 고단한 인생살이에 지쳐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노주현이 그 아파트를 사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인지, 그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죽었다는 것인지 좀 헷갈린다. 화면에는 일과 술과 기타 등등의 삶의 현장에 지치고 찌들려 초죽음이 된 노주현을 보여주는 컷과 그 아파트에서 화목하고 행복한 노주현을 보여주는 두 가지 컷이 교차되는데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그 아파트를 장만하느라 지쳐 쓰러져가는 노주현으로 보이더란 말이다. 그러니 어찌 섬뜩한 광고가 아닐 수 있으랴. “노주현은 죽었다. 이 아파트를 사느라고…”라는 카피로 시작하는 광고라니. 욕망을 탓할 수는 없다. 그것은 행복을 얻으려는 갈망의 또 다른 이름이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좋은 집. 품격있는 옷. 권위있는 명함과 신분을 대변해주는 고급 자동차. 그리고 ‘몸뚱이를 안락하게 해주는 물질들과 욕구를 채워주는 환경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조건들이다. 마음을 비우고 타인을 긍휼히 여기고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고 항상 근면성실하고 금욕하라는 가르침은 그런 것들을 독차지하려는 자들의 개수작일지도 모른다. 보아하니 이 세상은 분명코 악마가 경영하는 세계임에 틀림없다. 가장 온유하고 깊은 깨달음으로 가야 할 종교조차도 언제나 미움과 반목이 합리화되는 살육의 동기가 되어왔고 끊이지 않는 전쟁의 원흉이고보면 악마를 섬기는 것이 틀림없다. 이 세상은 물욕의 에너지로 꿈틀대는 악마의 세계이다. 당신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좀더 잔인해질 것이며, 물질과 쾌락만을 삶의 본질로 여길 것이며 그 무한생존경쟁에서 결코 나약해지지 않고 기어코 살아남아 스스로가 악마의 피조물임을 실천해 보이겠노라고 악마에게 맹세하고 영혼을 담보로 계약을 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의 인생은 승승장구. 호화빌라도 당신 것. 예쁜 여자도 여럿. 나약한 것들은 기꺼이 당신 종이 되어서 굽실거릴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성현들은 따끔하게 꾸짖지만 뭐가 문제인가? 이 세상은 원래 악마의 것이거늘. 문제가 있는 쪽은 악마의 세계에 살면서 악마와 적절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쪽에 있는 것이다. 영혼을 팔기를 거부하고, 물욕을 채우기를 거부하고 마음을 비운다는 핑계로 게으른 일상을 누리고 육신의 쾌락을 억제해서 생각이 많아져서 이것저것 자꾸 가치관을 새로 따지는 것. 문제는 그들이다. 그들은 물질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경쟁력이 턱없이 부족해서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해서 언제나 배고프고 물질은 물론 물리적 작용에도 나약해서 때리면 맞고 밟으면 터진다. 물질의 세계에서 영혼과 마음을 이야기하고 욕정의 세계에서 사랑과 자비를 갈구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고 과대망상인 것이다. 그런 불행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치밀한 교육을 받는다. 노력해라. 1등이 최고다. 금메달을 따라. 정상에 올라라. 최고가 되어라. 그리하여 대마왕에게 간택받을 수 있도록, 그분께서 너를 하수인 1등급으로 임명한다면 네 인생은 천하무적 출세길이 열릴 것이다. 당신은 가장 빨리 달리는 당나귀가 된 것이다. 낚싯대에 매어진 눈앞의 홍당무를 먹기 위해서 악마의 수레를 끌고 달리는 당나귀. 당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잠시 빌려 쓰는 것. 그 대가로 당신 인생은 진짜로 지불되고 있다는 것만은 알면 좋겠다. 환불, 반품 절대불가.김형태/ 화가·황신혜밴드 http://hshband.net

<2424> 배우 소유진

소유진의 얼굴은 낯설지 않다. 드라마 탤런트로, 또 연예프로그램 MC로 일주일에 며칠은 고정적으로 텔레비전에 나왔던 소유진이, 아무리 첫 영화라고는 해도 <2424>를 찍으며 “너무 많이 떨렸다”는 것은 그래선지 의외였다. 그것도 “내가 떠는 게 스크린에 나타날까 걱정”될 만큼 떨었다니. 하지만, 곧 따라오는 설명이 이해를 돕는다. “저, 드라마 처음 할 때는 전혀 안 떨었고, 오히려 당돌했거든요. 백지상태여서 그랬던 거 같아요. 잘하면 좋고, 못해도 뭐…. 그랬죠. 근데 이번엔 벌써 해놓은 게 있어서 그런지 너무 달랐어요.” 발랄, 상큼, 깜찍. 소유진 하면 으레 떠올려지는 이미지는 거짓이 아니다. 그녀에겐 정말 발랄하고 상큼하고 깜찍한 면이 있다. “2년 만에 뭔가 그렇게 뚜렷한 이미지를 갖게 된 건 좋은 일이죠.” 스스로도 그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전부는 아니다. 무명 시절 소유진은 긴 머리를 늘어뜨린, 별로 발랄하지 않고 오히려 청순가련한 여자의 이미지를 내세웠다. 숱한 오디션에서 낙방하고 난 뒤, “차라리 망가져보자”고 마음먹은 게 통할 줄은 스스로도 몰랐다고. 오락 프로그램 <최고를 찾아라>가 그녀의 첫 무대였는데, 거기서 코브라를 먹는 등 엽기적인 모습을 보인 뒤, 그토록 기다리던 드라마 섭외가 들어왔다고 한다. <2424>에서 소유진은 다이아몬드를 밀반출하려는 조직에 맞서는 여형사 ‘독고’를 연기했다. 독고 형사는 거칠고 엽기적인 조폭코미디 속에서 그중 차분한 캐릭터. 브라운관에서 튀는 캐릭터를 주로 했던 것과는 무척 다르다. 액션스쿨을 다니며 배운 액션도 선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순하다고나 할까. 캐릭터의 성격부터 영화라는 전혀 다른 시스템까지, <2424>는 소유진에게 여러모로 실험이었다. 그 실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소유진은, “다음에는 주연을 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겨요. 로맨틱코미디를 하고 싶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모든 처음은 두려움을 안고 있지만, 소유진에게 첫 영화는 유독 그랬던 것 같다. 조금씩 그러나 몰라보게 그 두려움은 녹아 달아날 것이고, 스크린에서도 당돌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소유진의 다음 작품 계획은 텔레비전도 영화도 아닌 라디오다. 10월21에 시작하는 SBS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소유진의 러브 앤드 뮤직>의 DJ를 할 예정. “좋아하는 음악도 많이 틀고 여유로움이 묻어나게 방송하고 싶어요. 제 이름이 붙어 있잖아요. 정말 ‘나의’ 방송으로 만들래요.” 포부를 밝힌다.

프리츠 상영작 13편 미리 보기(3)

<당신과 나> You and Me/ 1938년/ 94분/ 미국 집행유예로 감옥에서 나온 뒤 백화점 점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헬렌은 비슷한 처지의 남자를 만나 사랑하지만 주위의 시선 때문에 남남인 척한다. 전작 <분노> <한번 뿐인 삶>과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랑은 여기에 코미디와 뮤지컬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경쾌한 분위기의 복합장르를 시도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의 음악을 담당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쿠르트 바일이 음악을 담당하는 등 야심찬 기획이었지만 복합장르에 익숙지 않았던 당시 미국의 비평과 관객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사형집행인 또한 죽는다> Hangmen Also Die/ 1943년/ 134분/ 미국 체코를 점령한 나치의 악명 높은 사령관 하이드리히 암살사건과 이에 대한 독일의 대량 보복학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전작인 <인간 사냥>(Man Hunt), <공포의 정부>(The Ministery of Fear)와 더불어 ‘반나치 삼부작’으로 불린다. 각색 작업에 당시 할리우드에 망명 중이었던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참여했지만, 작업 도중 견해 차이로 도중하차했다. 랑은 이 영화를 나치의 본질에 어두운 미국인을 위하여 제작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진홍의 거리> Scarlet Street/ 1945년/ 102분/ 미국 평범하지만 성실한 중년의 사무원 크로스는 어느 날 거리에서 만난 캐서린이란 젊은 여자에게 한눈에 반한다. 이를 눈치챈 그녀는 애인과 짜고 그를 유혹해 돈을 뜯어내기 시작한다. 랑 자신이 설립한 다이아나프로덕션의 첫 영화로 장 르누아르의 <암캐>를 리메이크한 작품. <창속의 여인>과 함께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의 전형을 보여준 영화로 소박한 영혼이 어떻게 해서 자신과 주변의 탐욕에 의해 파멸해가는가를 랑에게서는 보기 드문 세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그려낸 수작. <마부제 박사의 천개의 눈> Das tausend Augen des Dr. Mabuse/ 1960년/ 105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할리우드에 분 매카시 선풍을 피해 다시 독일 정착을 꾀한 랑의 세 번째 작품이자 유작. 이전 작품에서 최면과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던 마부제 박사는 이제 방송국을 통해 모든 것을 감시하고 원자폭탄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항상 동시대의 문제를 영화 속에 담고자 했던 랑의 영화철학이 잘 드러나는 작품.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었던 <마부제 박사>의 지명도를 활용해 흥행에 재성공하려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