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나는 대학생 말투가 싫다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말투를 보면 대게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지는 걸 알 수 있다. 하나는 운동권 말투고 하나는 양아치 말투다. 얼마 전 우연히 특강을 하는 자리였는데, 대학교 3, 4학년들이 대상이었다. 한 대학생이 질문을 한다. “감독님은, 척박한 한국적 영화현실 안에서 자신 스스로 견지하고 있는 운동성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어떤 방법으로 수렴하고 노정하실 건지 말씀해주세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숨이 턱 막힌다. 이게 질문이야?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대답하라고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아… 네, 참 좋은 질문입니다”라고 하거나 “시간 관계상 길게 말씀드릴 순 없고…” 하면서 딴 얘기를 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삐질삐질 땀 흘리면서 못 들은 척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 질문에 대답을 충실히 하지 못한 죄 때문에 특강이 끝나고 나서 그 질문자에게 조용히 다가가 인기나 만회할려고 “한국영화에 대해서 공부 많이 하세요?” 하면서 비굴하게 웃어보이면 그 친구는 생뚱맞은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네? 저 한국영화 안 보는데요” 한다. 난 너무도 기가 막혀 눈을 커다랗게 치켜뜨고 “뭐라고? 야∼ 이 똥땀을 내고 뒈질 자슥아, 너 아까, 척박한 한국영화 현실 안에서 뭐 어쩌구 했잖아?” 하며 그 학생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환상에 잠시 빠진다. 현실로 돌아와서도 내 상태는 환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머리에 김이 난다. 만화로 표현한다면 내 머리 위에 목욕탕 표시가 여러 개 떠 있었을 거다. 어느 장소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또 그 말을 누구한테 했는지 모르지만 뜬금없이 “난 대학생 말투가 싫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대학생 말투가 뭐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말은 없지만 어쨌든 그런 말투가 있다. 예를 들면 특강 때 조금 전 예를 든 그 학생의 화법 같은 거다. 말로 친다면 틀린 말도 아닌데다가 쭈욱 풀어놓으면 뛰어난 문장에 적확한 단어선택과 풍부한 어휘구사력, 한결같이 빼어나고 완전하기 이를 데 없는데 듣고 있으면 단 한 가지도 알아들어 먹을 수 없는 말 같은 거,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말 같은 거, 이런 게 있다. 이런 것이 내가 말하는 대학생 말투, 다른 말로 운동권 말투라고 하는 것이다. - 이 지점에서 아무쪼록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운동권인사를 폄하하거나 희화화할 의도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기 바람. 오히려 오늘날 변절한 수많은 얼치기 운동권자들을 야유하기 위해 쓰임.- 어쨌든 나는 리얼리티가 없는 말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미숙함, 그런 것을 대충 싸잡아 운동권 말투, 대학생 말투라고 한다. 운동권 말투, 대학생 말투는 대학생만 쓰는 게 아니다.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가진 사람까지도 그런 말투를 쓰는 사람이 있다. 뭐 이것 저것 좋은 말을 많이 하는데 한개도 알아듣지 못하는 거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가장 좋은 말이란 자기가 맨눈으로 보고 느끼고 맨몸으로 부딪혀서 느끼고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그 고민의 과정이 사유과정이라면, 그렇게 사유화했다가 최종적으로 말로 또는 글로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단순한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엽기 코믹 에로틱 호러물 <록키 호러 픽쳐쇼> 보면서 시종일관 낄낄거리다가 끝날 때 “아∼ 쓰발, 슬프네. 왜 슬프지? 이 영화가 슬픈 게 맞는 거야? 누구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게, 사랑받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야?” 뭐 이러면 되는 거 아닌가 한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말이 살아 숨을 쉬고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건 다 양아치 말투다. 물론 얼치기 양아치 말투도 있다. 운동권, 대학생 말투처럼 이 얼치기 양아치 말투도 귀에 안 들어오고 싱겁고 재미없긴 마찬가지다. 나는 어떠냐면, 그러니까 상당히 안 좋은 케이스인데 말할 때는 운동권 말투로 하고 듣는 것은 양아치 말투만 듣는다. 이건 무슨 위선일까? 김지운/ 영화감독·<조용한 가족> <반칙왕>

주문을 걸어봐, 늘 자유로울 수 있게, <스워드 피쉬>의 할 베리

허름한 트레일러 앞에 맘춘 빨간 스포츠카, 늘씬한 몸매의 곡선을 숨기지 않는 빨간 원피스의 그녀가 내려선다. 짧게 곱슬진 머리 아래 링귀걸이를 살짝 흔들며 `슬로비디오`로 다가오는 그녀의 이름은 진저. <스워드 피쉬>에서 천재적인 컴퓨터해커 스탠리를 거액의 범죄로 끌어들이는 유혹의 전령이다. 골프 스윙을 연습하던 스탠리에게 골프채를 받아든 그녀는, 짧은 원피스를 아찔하게 걷어올려 매끈한 다리를 과시하는 자세로 멋진 샷을 날린다. 그리고 전처와 사는 딸을 찾고 싶어도 소송비는 커녕 막일로 생계를 때우기에도 벅찬 그에게 한마디. “이런 상태가 좋진 않잖아요? 벗어나요.” 구원처럼 매력적인 이탈의 주문을 거는 팜므파탈, 할 베리가 택한 새 분신이다. 스탠리에게 건네는 <스워드 피쉬>의 대사는, 사실 베리가 자신에게 걸어온 주문과 비슷하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를 둔 베리는, 4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어머니를 따라 백인 위주인 클리블랜드에 살면서부터 이미 혼혈과 검은 피부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 했으니까. `얼룩말`이라고 놀림받던 그때부터 졸업 파티의 퀸으로 뽑혔다가 백인 아이들에게 조작이라는 지탄을 받아야 했던 고교 시절, “흑인 여성을 어디다 써야 좋을지 모르는” 할리우드에서 제 몫의 연기를 만들어가고자 애쓰는 지금까지도,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여성이라는 것은 극복해야 하는 문제다. 흑인이라는 것? 물론이지. 난 내가 원하기만 하면 그런 조건에 저지당하거나 그걸 변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아니면 외모에 의존하지 않고 마약중독자나 좀더 성격파 역할을 맡으면서 더욱 다양한 역할을 위해 싸울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베리는 후자의 길을 걸어왔다. 검은 피부는 물론이거니와, 미모라는 또다른 틀에서 자유롭고 싶어서다. 17살때 우연히 나간 미스 틴 오하이오부터 86년 미스 USA에 입상하기까지 각종 미인경연대회를 거치고, 모델로 먼저 성공을 거둔 베리에게 아름다운 육체는 늘 타고난 재능이자 장애였다. 모델들은 연기가 안 된다는 할리우드의 선입견이 공고하고, 베리 역시 그저 화면 속의 아름다운 정물이 되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난 내가 진지한 연기자란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약 중독자를, 터프걸을 택했다. 내 자신의 성적인 면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그런 TV시리즈를 접은 뒤 과감하게 선택한 스크린 데뷔는 91년작 <정글 피버>에서 새뮤얼 잭슨의 마약중독자 여자친구. 그뒤 백인 여성에게 입양된 아기를 되찾기 위해 싸우는 <제시카 랭의 모정>의 미혼모, 정치가 워런 비티의 관심을 받는 <불워스>의 거친 빈민가 여성 등 피부색이나 미모에 상관없이 연기력을 다질 수 있는 역할들로 주목을 끌었다. 물론 사이사이 <마지막 보이스카웃>의 이국적인 댄서, <에디 머피의 부메랑>에서 바람둥이 에디 머피의 참사랑 등 다양한 조연들을 거쳤고, 생계를 위해 졸작 코미디 의 스타지망생 같은 역도 했지만, `몸`이 아니라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가장 최근작인 <엑스맨>에서 비와 바람을 부르던 은발의 `스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베리에게 가슴을 드러낸 반라의 모습으로 독서를 하는 등 “미모와 섹슈얼리티를 이용하는” <스워드 피쉬>의 연기는 하나의 도전이었다고. 노출신이 있다면 아예 시나리오를 보내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는 베리가 자신의 금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도로시 댄드리지 소개하기>덕분이다. 99년작 <도로시...>의 호연으로 평단의 찬사와 함께 골든글러브, 에미상을 수상하는 고지에 올랐다. 그리고 “늘 뭔가 증명해야 한다는 강렬한 욕구를 가져왔는데, 드디어 배평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는 말대로, 한결 홀가분해진 것이다. “삶의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거치면서 난 마침내 내 자신이라는 게 편안한 위치에 이르렀다”는 할 베리. 뉴올리언스에서 촬영중인 신작 <몬스터 볼>(Monster`s Ball)에서 또 달라질 행보 역시, 자유롭기를.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으로 본 <타인의 취향>

“타자는 타자로서 고귀함과 비천함의 차원을 스스로 지니고 있다. 영광스런 비천함. 타자는 가난한 자와 나그네, 과부와 고아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나의 자유를 정당화하라고 요구하는 주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 에마뉘엘 레비나스 1. 대화 혹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떤 부조리극 타인의 얼굴은 낯설다. 가족이든 동료이든 삶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이를 인파가 북적이는 길가에서 마주쳐본 사람은 알리라. 타인이라는 익명의 섬으로 다가오는 오래된 이들의 얼굴을. 이윽고 ‘익숙한 타인’이 된 그를 어색해하며 외면하는 순간, 갑자기 내가 안다고 믿었던 모든 정보를 부정하며 다가오는 ‘그들’의 얼굴은, ‘너’도 아니고 ‘우리’도 아닌 현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날선 칼날이기도 하다. 내가 진정 저 얼굴을 알았던가? 나 자신이 세상에 그려넣었던 모든 기호와 표상을 무화시키는 저 얼굴을 보라. 친숙한 낯선 이에 대한 외면은 곧, 나 자신의 이 세상에 대한 존재의 부정이 아니던가. 아녜스 자우이의 신작 <타인의 취향>에는 많은 대화들이 나온다. 라신과 입센에 대한 연극 이야기도, 오늘밤 자고 싶은 남자에 관한 취향도, 오래되어 절어버린 강박관념에 가까운 예전의 직업적 실수도 들어가 있다. 입담 좋은 영화는 식탁의 대화에서 시작하여 주인공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합주로 끝난다. <타인의 취향>에는 독백이 없다. 그러나 타인의 취향의 주인공들이 ‘대화’한다는 것은 우리 존재 자체에 대한 불완전성을 증거하는 끊임없는 부조리극을 행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10년 만에 만난 남자 앞에서 태연히 ‘같이 잤어요. 그게 다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바텐더 마니는 30년 동안 300명의 여자와 잔 프랑크에게(이 재미있는 계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타인의 취향>은 한번쯤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침대 위에서 자신은 남자친구가 없다고 알려준다. 웁스. 그러나 그 순간 마니 집의 도어벨은 경종을 울리고 마니는 부스스한 차림으로 웬 남자를 맞이하러 나선다. 마니의 ‘남자친구 없음’은 거짓말이었을까? 마리화나 장사를 하는 마니의 처지를 알고 나면 이 한밤중의 남자가 ‘어쩌면 고객’이었다는 확증이 들기도 하지만, 쉴새없이 낯선 이에게서 전화를 받는 마니를 보고 정작 프랑크는 ‘인기좋다’고 질투어린 시선을 보낸다. 결국 <타인의 취향>에서 행해지는 사람과 사람간의 오해와 부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존재 자체에 대한 무기력의 경험이며, 자율적 통제가 되지 않는 어떤 메타적인 경험이기도 할 것이다. 이름붙일 수도 없고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너도 나도 아닌 상황에 처해 있는 부조리.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각도를 달리해 반사되어 침입하는 타인의 말과 언어. 타인의 존재, 타인의 얼굴은 너와 나의 대화가 부정 교합되는, 일상의 모퉁이가 들이닥치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알지 못하는 낯선 암호와도 같다. 2. 지적 속물주의의 폭로 부자 사장 카스텔라와 그의 아내 앙젤리크의 대화는 어찌 보면 보디가드인 프랑크나 운전사인 브루노의 대화보다 더 재미없어 보인다. 앙젤리크와 카스텔라는 주로 TV드라마와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때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순진한 동물애호가인 앙젤리크는 타인의 배려조차도 자신의 취향대로 강제한다(그녀는 시누이인 베아트리체의 집들이를 자기 식으로 꾸몄다). 실상 카스텔라의 영어 선생이자 연극 배우인 클라라가 나타났을 때, 카스텔라와 클라라는 완전히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마찬가지 처지이다. 영어와 불어라는 상징적인 두 언어의 부딪힘이 그러하듯, 카스텔라가 직면한 것은 클라라라는 여자를 사랑해서 당도하게 된 보도 듣도 못하던 많은 지식으로 무장한 예술가집단이다. <타인의 취향>의 최고 매력포인트는 관객이 카스텔라에게 품었던 생각- 즉 몰리에르나 버나드 쇼의 희극에 등장하는 속물 부르주아 같던 카스텔라의 인상 역시 ‘편견’이었음이 드러나는 대목. 아녜스 자우이는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카스텔라의 매력을 역전시키고, 카스텔라를 비웃고 왕따시키는 지식인집단의 지적 속물주의를 폭로한다. 영화 속 주인공들만큼이나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역시 주인공들의 배역 때문에 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을 보고 키득키득 웃는 우리네의 웃음이 더이상 여유로울 수만은 없게 됨도 이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취향>의 주인공들은 가면 갈수록 우리처럼 삶의 미세한 균열로 풍치를 앓는다. 많은 여자들과 자본 척하며 연하의 동료인 브루노에게 인생에 대해서 한수 가르쳐주려 하는 보디가드 프랑크는 정작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한 채 전전긍긍한다. 순진한 듯 보이는 부르노는 자신도 딴 여자와 잔 처지에 여자친구가 변심한 것에 상심해한다. 영어 회화조차도 “재미있게 배우는 방법 없나요?”라고 물어보던 실용주의자 카스텔라가 사랑 때문에 콧수염을 밀고, 어줍지 않은 영어 시를 지어 바치자, 이 모습을 본 프랑크는 자신의 사장을 ‘사람은 좋은데 바보’라고 평한다. 그러나 프랑크가 술이나 담배는 합법이고 마리화나는 불법이라며 마약을 파는 마니의 집 앞에서 머뭇거릴 때(그의 마니에 대한 사랑의 또다른 난관 중 하나는 남녀의 역할에 대한 그의 고정관념에서 나온다) 타인의 취향을 접수하고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사람은 오히려 카스텔라쪽이었다. 3. 상처받음으로 타인을 이해하다 카스텔라와 클라라가 계급/지식/사회적 지위라는 측면에서 마니와 프랑크 커플보다 훨씬 연애의 경사도가 급격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결국 희미하게나마 자신들의 진심을 소통할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는 것은 왜일까? 자나깨나 카스텔라를 지켜보던 보디가드 프랑크는 그러나 한순간의 방심으로 결국 강도들의 습격에서 카스텔라를 지켜내지 못한다. 피를 흘리는 카스텔라의 머리를 닦아주며 마니는 카스텔라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입센의 비극 <헤다 가블러>를 공연하는 클라라는 비록 연극 속에서지만 자신의 머리를 쏘는 상징적인 ‘자살’을 감행한다. 반면 카스텔라의 부인 앙젤리크는 흥분한 상태가 되어 운전사 브루노에게 위선과 죄, 그리고 상처를 모르는 동물이 사람보다 더 좋다고 강변하다 망신살이 뻗친다. 앙젤리크의 순진한 이데올로기를 받아 넘기는 브루노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럼 디즈니랜드나 가야죠.” 클라라와 카스텔라는 상처입고 피흘리고 상징적인 자살을 감행함으로써 취향과 편견을 넘어선 진정한 사랑의 대열에 살짝 낄 수 있게 된다. 남편을 애완동물 다루듯 “과자 줄까요?”라고 물어보던 앙젤리크마저도 카스텔라가 집을 나가자 처음으로 시누이인 베아트리체에게 그녀의 취향도 좋은 것 같다고 인정해준다. 타인의 얼굴이 어떤 기호로도 그려지지 않는 막막한 이질성이라면, 그리고 그 미세한 현실세계로서의 현현이 바로 취향의 문제라면, 역설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힘은 상처받을 가능성, 레비나스의 말을 빌리자면 일종의 타인의 얼굴에 대한 무저항에 근거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영화 <타인의 취향>은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가 끊임없는 오해와 부조리의 인생 속에서도 진정으로 타인의 취향을 접수하는 힘은 상처받는 힘이라고, 타인의 존재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이는 융통성과 용감함의 미덕에 대해 말해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뭐니뭐니해도 <타인의 취향>에서 가장 매력적인 향기를 내뿜는 것은 자유로운 바텐더, 마니가 아닐까 싶다. 아녜스 바르다의 <방랑자>의 상드린 보네어에 버금가는 매력적인 캐릭터 마니는 10년 만에 만난 단 한번 같이 잔 남자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도 이를 쾌활하게 받아넘긴다. 여자들은 아무 남자하고나 자지 않는다며 운전사 부르노가 여자에 대한 자신의 고정관념을 피력해도 마니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아무 남자하고나 자는 여자도 있어요.” 사실 바텐더와 마약장수라는 두개의 직업으로 사람들에게 술과 약물을 공급하는 그녀는 뒤집어보면 사람들에게 구체적 위안을 공급하면서도 고무줄 같은 유연성으로 어떤 제도의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의 숨결을 타고난 여자이다. 4. 영화 속 연극, 심리묘사를 위한 장치 우스꽝스런 삶의 위선과 사람들의 내밀한 감정의 결을 ‘아이스케키’라며 들춰내는, <타인의 취향>은 에릭 로메르 유의 수다쟁이 프랑스코미디의 전통과도 무관하지 않은 계보를 그린다. 그러나 진정 아녜스 자우이가 <타인의 취향>의 연출에 마음을 두었던 것은 그녀의 뿌리인 연극 무대의 전통을 영화와 접목시키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몇몇 영화적인 기교, 즉 자동차 프레임이나 혹은 고전 멜로영화에서 보였던 화려한 인테리어에 포위된 카스텔라의 처지를 시각적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을 제외하고, 자우이의 카메라는 그 동선을 상당히 자제하는 편이다. 게다가 심지어 실외장면에서도 그녀의 카메라는 하늘이나 지면 같은 여백없이 인물 중심으로 타이트하게 화면을 죄어 나간다. 마치 연극을 구경하는 우리의 눈과 엇비슷한 화면짜기를 보여주는 자우이의 연출은, 화려한 편집과 카메라워크 없이 관객과 상당히 지적이면서도 미묘한 의사소통을 꾀한다. 특히 <타인의 취향>에서는 음악과 대사가 그 어느 장치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면 오페라 <리골레토>의 2막에 나오는 아리아 ‘caro nome’를 ‘화니타 바나나’로 착각하는 카스텔라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못해 감독의 자상한 손길마저 느껴지는 대목(카스텔라 역의 주인공 장 피에르 바크리는 아녜스 자우이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심증의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영화 속에 장시간 등장하는 입센과 라신의 연극일 것이다. 라신과 입센의 비극은 연극사에서 순수비극 혹은 사실주의의 비극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동시대의 극작가 코르네유가 ‘있어야 할 인간’을 그렸다면 라신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 연극의 총아로 떠올랐다. 클라라의 내면을 형상화한다는 측면에서뿐 아니라 모두 지독한 비극이라는 점, 인물의 심리적 묘사와 리얼리티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이들 연극은 <타인의 취향>의 대칭거울 같지 않은가? 상처에 대해서 보여주기보다 상처에 대해서 ‘공연’한다는 측면에서 <타인의 취향>은 가볍지만 그리 가볍지 않은 어떤 측면을 지닌 것 같다. 5. 타자의 얼굴을 쓰다듬으라 영화 초반 같은 식당에서 다른 공간을 점유하고 다른 이야기를 나누던 세 남자 카스텔라, 부르노, 프랑크는 이윽고 비슷한 사랑의 치명타를 입고 나란히 술집에 앉아 술집 여자들을 꼬시는 신세가 된다. 상/하 관계나 주인공/타자 관계를 넘어서 <타인의 취향>은 자신의 주제의식에 걸맞게 영화 속 주인공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에 골고루 귀를 기울여준다. 그러나 아녜스 자우이는 사람들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변해도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변화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타인의 취향>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주제음악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의 강박관념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 와중에 미래와 시간을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어하는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타인의 취향>의 마지막은 서툰 솜씨지만 사람들 속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아니,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를 합주하는 브루노의 모습. 재미있게도 <타인의 취향>의 첫 대사는 바로 프랑크의 <말도 안돼> 라는 대사였다. 그렇다면 결국 이 취향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새로운 시작을 불러들이는 부정과 더이상의 가변성을 허락하지 않는 완고한 부정성 사이에서 왔다리갔다리했던 것일까? 레비나스는 타자의 출현을 받아들이는 것이, 타자의 얼굴을 쓰다듬고 여전히 낯선 것으로 놓아주는 것이 결코 자기다움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었다. 브루노의 ‘미미미미미미미∼’의 음조로 시작되는 <아니,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가 그토록 흥겹고 아름다워보이는 것은 그가 타인들과 섞이되 또한 섞이지 않는 부분도 있기 때문일 터. 이런 걸 사람들은 카스텔라의 대사대로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인생극장의 마지막 커튼 콜이라고 해야 하나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조선희가 만난 첸 카이거

한국영화 <몽유도원도>찍는 첸 카이거, 신작 구상과 50년 삶을 말한다 <패왕별희>의 첸카이거 감독이 지난 7월12일 내한했다. 한국영화 <몽유도원도>를 연출하기로 결정한 이후의 첫 방문이다. 장이모와 함께 중국영화를 세계에 알린 중국 5세대 감독의 선봉장 첸카이거 감독은 1992년 <패왕별희>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거장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자신의 첫 할리우드영화 <킬링 미 소프틀리>의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가을에 찍을 <베이징 바이올린> 촬영이 끝난 직후인 내년 2월경에 <몽유도원도> 촬영에 들어간다. 한국의 전통설화를 다룬 작품이어서 더욱 설렌다는 첸카이거 감독을 그의 열혈팬을 자임하는 조선희 <씨네21> 전 편집장이 만났다. 편집자 조선희(이하 조) 한국에는 언제 왔나. 첸 카이거(이하 첸) 지금 방금. 도착한 지 채 2시간도 안 됐다. 조 촬영장 사진을 많이 봤는데, 스탭드랗고 배우들 사이에 있는 걸 보면, 키가 껑충하게 커서 꼭 학생들 사이에 있는 선생님 같았다. 오늘 보니까 정말 키가 큰데, 몇 센티미터인지. 첸 한국식으로는 184cm정도. 6피트 2인치이다. 근데 원래 키 큰 게 학생이고 키 작은 게 선생님 아닌가.(웃음) 조 영화감독은 몸을 혹사하는 직업이고 게다가 당신은 지구를 몇 바퀴씩 돌면서 작업하는 감독인데, 건강한가. 첸 건강하다. <몽유도원도> 끝내기 전까지는 괜찮을 것이다.(웃음) 조 다음 기착지가 한국이 될 가능성이 70%인데, 기분이 어떤가. 첸 아직 <킬링 미 소프틀리> 후반작업이 한달 정도 남아 있다. 그뒤 베이징에 가서 <베이징 바이올린> 작업을 끝내고, 그뒤에 <몽유도원도>에 착수할 거다. <몽유도원도>는 많은 장면을 한국에서 찍게 될 것이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영화로 만들고 싶다. <몽유도원도>로 한국의 설화세계에 접근 조 <몽유도원도> 프로젝트는 무엇에 끌렸나. 첸 이주익씨가 프로듀서라는 점. 조 그건 외교적인 발언이고(웃음) 진짜 이유를 얘기해달라. 첸 원작을 보는 순간 든 생각이 있다.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영국에 가면 영국에 쫓아오고, 미국에 가면 미국을 찾아온 이 사장의 끈질긴 설득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그 스토리와 인물에 끌렸다. <몽유도원도>는 현대적인 감성을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다. 조 첸 감독에게 한국은 외국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생각, 그 철학적 기반이 상당히 비슷하다. 그래서 우리 설화나 아랑이야기도 어쩌면 낯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첸 한국문화에 대해 두 가지 얘기를 하고 싶다. 첫째, 조선문화는 매우 아름답다. 중국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은 표현에 능하다. 가무를 즐기는 것도 그렇다. <몽유도원도>에도 나타나는 그러한 아름다운 감정표출을 예술적으로 화면에 담아보고 싶다. 둘째, 나는 호금전 감독을 존경하는데, 호금전은 <공산영우><산중전기>등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은 영화들을 찍었다. 나는 그것들이 지금의 <와호장룡>을 있게 한 기초가 됐다고 생각한다. 조 <몽유도원도>는 고대설화라 복색이라든지 사회상에 관한 자료도 충분치 않을 텐데, 그거슬 영화적으로 표현하는 데 대한 걱정은 없는가. 첸 <몽유도원도>는 고대물이지만 현대인의 감각에 맞는 이야기다. 현대인이 보고도 즐거울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작정이다. 그래서 고증에는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조 <해자왕><황토지><현 위의 인생>같은 초기 작품들에는 상당히 신비주의적이고 초월적인 화면들이 있다. <해자왕>이나 <황토지>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설화적인 표현에 익숙할 것 같은데. 첸 나는 이 영화를 국제성 있는 작품으로 만들려고 한다. 따라서 내게는 <몽유도원도>를 얼마나 신비주의적인 영화로 만드느냐보다 세계의 관객에게 얼마나 많은 감동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동양에는 동양의 미학이 있고 서양에는 서양의 미학이 있고 그 사이에는 거리가 상당히 있지만,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최근 <타임><뉴스위크>와 인터뷰했는데 그때 기자가 아시아영화의 중심이 한국으로 옮아오고 있다는 말을 하더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이렇게 공부도 할 겸 한국에 와 있다.(웃음) 진담이다. 조 한국쪽 스탭들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니까. 첸 한국영화를 최근 많이 봤는데, 직업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국영화는 최근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도 상당한 발전을 한 듯하다. 다이내믹하게 변화하는 영화사회를 보는 것은 나로서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조 어떤 한국영화를 보았는지. 첸 <태양은 없다> 같은 영화는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이정재와 정우성, 두 청년은 연기를 아주 잘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영국에 있지만, 중국에 있는 친구들이 한국영화를 보고 상당히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다.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영화찍기 조 <킬링 미 소프틀리>는 MGM영화다. 그동안 외국자본으로 영화를 많이 찍었지만, 처음으로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찍은 것이다. 그 경험이 앞으로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줄까. 첸 아시아인이 한명도 없는 데서 영화를 찍기는 처음이다. 상당히 좋은 경험이었다. 중국에서는 감독이 태양처럼 모든 일의 중심에 있다. 영국에서도 물론 그렇지만, 아시아사람이 서양이야기를 찍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스탭이나 촬영기사의 도움을 많이 얻어가면서 중심을 찾아 영화를 찍었다. 그렇지만 익숙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예산이 큰 영화이다보니 스케줄이 상당히 엄격하게 관리되었다. 일종의 공업적 생산 시스템 속에서 감독도 시간적인 컨트롤을 받는 거다. 특히 겨울의 런던에서 촬영할 때, 짧은 일조시간 안에 영화를 찍는 건 상당히 어려웠다. 게다가 거기는 모두 조합원들이라서, 그 와중에도 1시가 되면 꼬박꼬박 점심을 먹여야 했다. (웃음) 조 <현 위의 인생>부터 외국자본으로 찍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90년대 들어 작품세계가 많이 달라졌는데, 외국자본으로 영화를 찍으며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첸 그건 영토싸움과 같은 거다. 초기작 몇편은 순수하게 만들어 사람들에게서 감동을 끌어내는 작품이었다. 그런 작품들을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했을 때, 아 내가 여기까진 할 수 있구나, 그러고선 또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그렇게 영토를 넓혀나간 거다, 끊임없이 품격을 변화시키고 영화의 색깔에 변화를 주면서 해나가는 것이 용기있는 태도이고 의미있는 일이다. <킬링 미 소프틀리>는 내가 영국사람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해준 경우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영화를 잘 찍었다고 생각한다. (웃음) 앞으로 찍을 <베이징 바이올린>은 여태까지와 달리 요즘 베이징사람들 이야기이고 보통사람들 사이의 일과 사랑을 다룬다. 감독의 내면이 엿보이는 이런 작품을 만들면, 어떤 이는 첸카이거 초기작 냄새가 난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전혀 새로운 작품이라고도 할 것이다. 영화감독의 행로는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한번 성인이 되고 나면, 다시 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 (웃음) “<황토지>의 열정은 잊지 않는다” 조 한국에도 첸카이거 감독 팬이 많고, <황토지>나 <해자왕>은 시네마테끄의 인기 레퍼토리였다. 그때부터 첸 감독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황토주의자들`이어서, <풍월>이나 심지어 <패왕별희>까지도, 양심적 지식인의 훼절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게 이미 성인이 된 사람을 어린아이로 되돌리려는 수작이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전공에서 너무 멀리 나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첸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과거에 어떤 영화를 찍었는지 잊어버리는 거다. 나는 전작들을 완전히 잊고 새 작품을 하려고 노력한다, 쉽진 않지만. 자기의 필모그래피를 등에 없고 새로이 메가폰을 잡는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거나 스스로를 교만하게 만드는 일이다. 물론, <황토지> 찍던 때를 나는 아직도 그리워한다. <황토지>는 중국산 카메라를 가지고, 30명의 사람으로, 자동차는 3대를 쓰면서, 7만달러를 써서 만든 영화다. 영화지식도 별로 없이 열정만 가지고 찍었었다. 그때의 열정만큼은 늘 간직하려 한다. 그레 바로 어린애로 돌아갈 수 있는 비결이다. 조 92년인가, 첸 감독이 뽑은 `좋아하는 영화 베스트 10`에 스코시즈나 코폴라 영화들과 함께 10번에 <황토지>가 들어 있었다. 실수인지... (웃음) 첸 실수 아니다. (웃음) 조 (웃음) 상당히 뻔뻔하다. 첸 역시 어린아이와 어른의 비유를 하자면, 어린아이는 아무리 저항을 해도 어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황토지>는 나에게 첫사랑과 같은 작품이다. 조 데뷔작은 그래서 특별한 것 아닐까. 어떤 사람에게 딱 한마디만 말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하게 될 정직한 말 한마디가 데뷔작일 거다. 이런 비유도 가능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이 고문당하기 전에 “이전에 내가 한 말만 진실이고 앞으로 내가 하는 말은 믿지 말라”고 하는 것. 영화감독에게 고문이라는 건 명성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거대예산이라든가 영화의 규모라든가 영화기술 이런 것의 유혹일 텐데. 첸 일리있다. 하지만 나는 `How to Survive Success`, 즉 어떻게 성공에도 살아남는가를 늘 생각한다. 그런 인식이 내게는 있다. 영화에는 물론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그걸 신경쓰면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 내가 견지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건 하고 좋아하지 않는 건 절대로 안한다는 거다. 조 영화는 엔터테이먼트이고 비즈니스이기도 하지만, 작가 개인의 예술 창작행위이기도하다. 당신에게 영화만들기란 어떤 것인가. 첸 상당히 중요한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을 매일 스스로에게 한다. 감독이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영화를 보이고 싶어하는 존재인데, 어떤 관객은 <황토지>를 좋아하고 또 어떤 관객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사실 감독은 자유로운 직업이 아니다. 요리사오도 같다. 요리사는 모든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만들기도 하지만, 특별한 친구가 왔을 때, 그만을 위해 특별한 요리를 만들기도 하지 않나. 어떨 땐 나 스스로가 내 작품의 관중이기도 하다. 관객으로서 나는 오락영화를 보면 재미있고 진지한 영화에서는 감동을 받는다. 영화창작의 본질에 대해 조 기본적으로 관객, 즉 수용자에게 상당히 신경을 쓴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지식인 작가로서의 자의식은 졸업햇다고 할 수 있나. 첸 지식인이라는 얘기, 재미있다. 얘기하자면 길지만. 나는 베이징에서 자랐고, 가정환경은 엄했고, 그러다가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시절을 겪었다. 그런 게 모두 지금 나의 성향을 이룬 게 아닌가 한다. 질문에 답하자면 나는, 생활을 좀더 낙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조 소설이든 영화든 마찬가지인데, 이야기를 들어 잇는 창작품은 보상이나 구원일 수 있다. 장 그르니에는 글쓰기가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라고 했고, 카뮈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우해서 창작을 한다고 했다. 당신도 그런 식이 아닐까. 50년대 이후 중국사회를 헤쳐오면서 나름대로 활로를 찾아낸 것이라고 보는데. 첸 그 얘기를 하니 갑자기 엄숙해진다. (웃음) 나는 베이징전영학원 다닐 때 외국영화들을 많이 봤다. 유럽, 일본, 그리고 옛소련의 영화들. 아버님이 영화감독이었지만 사실 영화에 대한 이해는 깊지 못했다. 그 당시 내가 봤던 영화의 감독들은 자신들의 눈에 비친 세상을 그렸고, 나는 그들의 눈을 통해 보여진 세상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나 스스로 내 감정과 사고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영화창작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중국은 5천년 역사를 갖고 있는데, 왜 그렇게 불합리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늘 일어나는 것일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한때 나는 천진하게도 영화를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인성이라는 것은 변할 수가 없는 거구나, 하는 결론을 얻었다. 나의 일은 인성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표현을 하면 할수록 자기해방도 커진다. 지금 질문에 말려들었는데, (웃음)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영화를 만들 줄 알기도 하지만, 실은 나도 `그쪽` 감독이다. (웃음) 조 (<나의 홍위병 시절-어느 영화감독의 청춘>(한국판,1991년)이란 책을 보이며) 혹시 이 책, 본 적 있나. 첸 (통역자가 책 제목을 읽어주자) 91년에 내가 쓴 거 맞다. 하지만 한국 판이 나온 것은 몰랐다. 인세도 받은 적이 없고. (웃음) 이 책은 일본에 갔을 때 고단샤가 제안해서 쓰게 됐다. 재미있게도 중국에서는 바로 2개월 전에 이 책의 초판이 나왔다. 조 아, 그런가.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이 책을 보면서, 중국에서 이 정도 표현이 가능한 건가 의구심을 가졌었다. 사실 나는 첸 감독의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을 봤고, 많이 울었다. 한 영화감독의 수기로 읽기보다는, 한때 중국혁명을 신봉했던 세대로서 문화혁명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었는데 그 부분을 냉정하게 잘라내준 책이었다고 기억한다. 첸 완전히 이해하겠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크고, 이해 못할 일이 많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나는 아내(배우 첸홍)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 문화대혁명 때 내 경험을 얘기해도 아내는 못 미든ㄴ다. 하지만 문화혁명 때의 일을 모든 게 잘못됐다고 부정할 수는 없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모두 몽상을 햇는데 그 몽상이 우리의 영도자에 의해 이용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평탄한 삶을 살지 않은 셈인데, 문화혁명 시절을 겪은 뒤 나중에 내가 20대를 맞이해서 중국에 개혁개방 바람이 불었으니, 사회가 완전히 다른 각도로 나가기 전에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이 나한테는 좋은 경험이었다. 거기에는 희극성도 들어 있다. 조 당신은 대단히 성능 좋은 여과장치를 갖고 있는 듯하다. <황토지>를 보고 그 안의 균형감각에 굉장히 놀랐다. 첸 우선, 난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중국문화에는 어떤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바둑기사 이창호를 예를 들면, 그의 별명은 석불이라고 한다. 50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다 똑같았다더라. 나 역시 중국역사에 대해, 문화혁명에 대해 그런 자세를 갖고 있다. 문화혁명 이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죄를 물었다. 나는 이 책에서 나 스스로에 대한 고발을 하고자 했다. 상당히 많은 잘못이 있었고, 나도 그 일부였다는 것이다. 조 지금은 중국 정부로부터 총애를 받고 있는 시즌인가. 첸 (웃음) 아무도 나를 총애하지 않는다. 총애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기에 이미 들어섰고. 동양문화의 특징이 아버지 노릇을 하는 건데, 나는 이미 아버지 세대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큰아들이 4살인데 내가 아버지라는 느낌이 안 든다. 나는 내가 그 아이의 형 같다. (웃음)“이제는 관용이 나의 방법” 조 그동안 중국 정부와 끊임없는 애증관계였는데, 그런 정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용서하는지. 첸 중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크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급회전을 하지 못한다. 옳지 않은 시스템을 나도 아주 싫어하지만, 중국은 그런 것을 갑자기 바꿀 수 없는 나라다. 그래서 나는 긴 세월을 두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 말은 결국, 내가 감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조 중국인으로 태어난다는 건 행복일까 불행일까. 20세기에 중국도 대다한 격동의 시기였지만 원래부터 중국 역사는 변화무쌍했다. 민족과 민족의 투쟁의 역사이고 200~300년된 왕조들이 흥망성쇠하는 역사였다. 그래서 중국인은 늘 정치적으로 시련을 겪고 정신적으로 수양을 하는 그런 운명 아닌가 싶다. 첸 아마 나약했다면 불행의 시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걸 스스로 결정할 수 없듯이. 남은 일은 그 운명 속에서 어떤 경험을 하며 그것을 겪어나가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행운아이다. 경험하기 힘든 많은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유감스러운 과거는 하나도 없었다. 있다면 한창 젊었을 때 여자친구가 없었던 것 정도? (웃음) 조 중국에는 시나리오 사전검열이 아직 있는데, 그것 때문에 못 찍은 영화는 없나. 첸 물론 있다. 문화대혁명에 관한 영화를 찍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책에도 나와 있듯, 나는 농촌으로 하방됐었다. 십대에 내가 보고 겪은 이야기를 영화화하고 싶다. 조 첸 감독도 이제 50이다. 나이 50이 되어 바라보면 무엇이 보이는지. 첸 지천명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상당히 관용적으로 된다. 젊었을 때는 항상 내가 옳고 남이 틀린 것 같았는데 말이다. 이제는 관용이 나의 방법이다. 대담 조선희/전 <씨네21> 편집장정리 최수임 기자 sooeem@hani.co.kr 사진 이혜정 기자 hyejung@hani.co.kr디자인 한정연 han7329@hani.co.kr ▶ 조선희가 만난 첸 카이거 ▶ <몽유도원도>는 어떤 이야기? ▶ <몽유도원도>를 만드는 사람들

절정의 높이에 오른 작품 <이웃집 토토로>

■ STORY 11살의 사츠키와 4살의 메이는 아버지와 함께 시골집으로 이사를 간다. 곧 퇴원하실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공기가 좋은 시골을 찾아온 것이다. 도시와는 달리 사방이 논과 밭, 그리고 도토리 숲으로 둘러싸인 곳. 사츠키가 학교에 간 뒤, 혼자 뛰어놀던 메이는 뒤뚱거리며 숲으로 도망치는 동물을 발견한다.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뒤따라가던 메이는 갑자기 나무 밑둥으로 굴러 떨어진다. 떨어진 곳은 바로 숲의 요정 토토로의 커다란 배 위. 집으로 돌아온 메이는 토토로와 만났다고 떠들어대지만 사츠키는 믿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 날, 사츠키와 메이는 우산을 가지고 아버지 마중을 나간다. 컴컴한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사츠키와 메이 앞에 다시 나타난 토토로. 그날 이후 사츠키와 메이는 토토로와 함께 즐거운 날들을 보낸다. 그러나 어머니의 퇴원이 연기되고, 불안해진 메이는 병원에 가겠다며 나섰다가 길을 잃는다. 메이를 찾아 헤매던 사츠키는 마지막 시도로 토토로에게 구원을 청한다. ■ Review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천공의 성 라퓨타>에는 ‘일본적’인 무엇이 없었다. 상상 속의 공간은 유럽을 닮아 있었고, 하늘을 찌르는 성과 비행선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웃집 토토로>는 다르다. 여기는 50년대 일본, 그것도 시골이다. 성이 아니라 검댕 먼지가 나오는 낡은 시골집과 비행선 대신 고양이 버스가 아이와 어른의 동심을 하늘로 훌쩍 띄워준다. 그들의 일상 역시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복을 위해, 나날의 기쁨을 위하여 기도하고 일상을 가꾸어간다. 아주 작은 이야기, 그러나 모든 이들이 원하던, 지극히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 <이웃집 토토로>는 가족영화, 애니메이션으로는 누구도 감히 넘보기 힘든 절정의 높이에 오른 작품이다. 88년 개봉된 <이웃집 토토로>은 순식간에 일본인을 사로잡았고, 그해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한국에서는 10여년이 지나서야 <이웃집 토토로>를 보게 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감동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다. <이웃집 토토로>는 순수나 동심이라는 말로 미처 다 표현할 수 없는, 모든 이에게 절실한 ‘꿈과 추억’을 되살려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72년 <팬더와 아기 팬더>라는 TV시리즈를 만들었다. 이이들이 좋아하던 캐릭터 ‘팬더’는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로 이어진다. 통통한 몸매와 웃음, 달리기를 좋아하는 점은 팬더에서 가져온 개성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기에 부엉이, 너구리, 곰 등 숲 속의 동물들과 북구의 요정 트롤, 일본 전래 도깨비 등의 이미지에서 차용하여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토토로를 만들어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5배가 넘는 스케치와 3배의 제작비를 들인 <이웃집 토토로>는 자연의 풍경묘사에서 놀라운 테크닉을 발휘한다. 미야자키가 특히 애착을 가지는 것은 ‘숲’이다. 인간의 모든 것이 숲에서 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미야자키는, <이웃집 토토로>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둘을 매개해주는 요정의 존재를 통해 새삼스러운 자각을 안겨준다. <이웃집 토토로>는 “애니메이션의 속성 중에는 물체를 움직이게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의미로 물체가 변화한다는 것도 있다. 그것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애니메이션 작업”이라는 미야자키의 말을 실감케 하는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의 국민감독이다. 누구나 미야자키 하야오를 알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를 좋아한다. 놀라운 사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 일반 관객만이 아니라 이른바 ‘오타쿠’한테도 걸쳐 있다는 점이다. 오타쿠에서 출발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야키는 “재패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투에 의해 가꾸어졌다. 우리 TV시대가 바로 그 목격자다”라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는 그냥 아름답고 화사한 것 같지만, 미야자키의 작품에는, 애니메이션에 통달했다고 자신하는 오타쿠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놀라운 테크닉들이 숨어 있다. “소리를 없애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히치콕이지만 그것을 완성시킨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다”라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감독 로버트 와이즈의 찬사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늘 한계를 돌파하고, 정밀한 테크닉으로 만인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사람들이 잠을 자는 사이에 토토로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의 광활한 숲을 고독하게 가꾸어온 것이다. 만인을 위하여. <이웃집 토토로>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런 정신이 깃들어 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고, 눈앞에 논밭이 펼쳐져 있고, 멀리에는 숲과 산이 있었다. 그런 곳에서 마음껏 뛰어다닌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 즐거움을 그리고 싶었다.” 자신의 즐거움을 타인에게도 맛보게 해준다는 것. 그런 순수한 선의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는 듬뿍 담겨 있다. <이웃집 토토로>는 보고 있으면 웃음과 눈물이 절로 난다. 게다가 그 환상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튼튼하게 얽어매져 있다. “칸타가 성인용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해도 다리가 닿지 않아 고민한 끝에 해결책으로 몸을 비틀어서 비스듬히 페달을 밟는다. 지금은 잊어버린 그런 장면에 무의식적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미야자키의 세밀한 예술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평처럼 <이웃집 토토로>는 사실적이다.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잊어버렸던 과거, 우리가 지금도 끊임없이 잃어버리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파이널 환타지

■ STORY 서기 2065년, 이미 수십년전에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들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에너지 삼아 세를 불려가고, 지구의 생명체는 거의 멸종 위기에 처했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간들은 방벽 도시에서 지구를 소생시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외계인들의 정체를 밝혀가던 아키 박사는 외계인들에 대항할 수 있는 파장을 만드는데 필요한 8개의 영혼을 채집하기위해 목숨을 건 모험도 불사하고, 전쟁 영웅 그레이는 첨단 무기를 보유한 군대를 이끌고 힘겨운 전투를 벌인다. 아키는 자신의 꿈에 나타나는 외계인들이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믿고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 애쓰지만, 위원회의 실력자 헤인장군은 지구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강력 무기로 외계인을 응징하려 한다. ■ Review “판타지가 현실이 된다”는 <파이널 환타지>의 홍보 문구는 여러모로 적절했다. 주인공 아키의 꿈(판타지)은 머지않은 미래의 예실일 뿐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열쇠다. 살아남은 군인들은 보이지 않는 외계인을 무찌르고, 아키는 영혼을 채집해 외계인에 대항할 방어 기제를 만든다. <파이널 환타지>를 이끌어나가는 동력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것은 스토리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스토리는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인간들을 쏙 빼닮은 가상의 배우들로 인해 생명력을 얻고 있다. 그들이 소프트웨어에 불과하다는 건, 믿기 힘든 일이다. 현지 언론이 <파이널 환타지>를 무성영화나 3D 애니케이션의 등장에 비견되는 영화사의 `사건`으로 추어올리며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이퍼 리얼리즘`을 표방한 <파이널 환타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키의 꿈 이미지나 외계인과의 결투 스펙터클도 장관이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인간 캐릭터의 실재감이다. 95년 3D 컴퓨터그래픽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가 등장한 뒤, 컴퓨터로 부활시킬 수 있는 대상은 장난감이나 곤충 또는 괴물에 한정됐다. 사람의 피부 질감이나 머릿결, 표정과 액션 연출은 난이도가 높기 때문. <파이널 환타지>는 이제껏 애니메이션 기획자들이 꺼려온 인간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것도 특징만 살리는 캐리커쳐가 아니라, 최대한 인간에 가까워보이는 정밀묘사로. 제작인은 그 성가를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시`(과시)하고 있다. 6만개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주인공 아키는 가능하면 자주 바람을 쐬고 자주 고개를 흔들어 샴푸모델로도 손색이 없을 탐스런 머릿결을 자랑한다. 모공과 주근깨, 면도 자국과 잔주름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익스트림 클로즈업도 여러 번 시도한다. `완벽하지 않은 피부 상태`까지 사람을 모방해내고 있는데, 특히 70대의 노박사 시드와 흑인 병사 라이언은 진짜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파이널 환타지>가 모방하고 있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이미 기존의 액션 블록버스터로 익숙한 추격신과 폭파신 등을 역시 익숙한 카메라 앵글로 담고, 심지어 의도적인 포커스 아웃으로 실사영화의 원근감까지 훔쳐온다. 야심찬 애니메이션 <파이널 환타지>의 `경쟁 상대`는 바로 실사영화인 것이다. 컴퓨터게임 시리즈 <파이널 환타지>가 언제부턴가 `비주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게임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들었다고 하는데, 영화판 <파이널 환타지>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 게임의 창시자이자 영화의 감독인 히로노부 사카구치와 <아폴로13>의 시나리오팀이 머리를 모은 시나리오는 <에이리언>과 <스타트랙>을 결합해놓은 듯하지만 그 이상의 독창성이나 재기가 엿보이지 않는다. `육체가 죽으면 영혼은 지구 생명체의 근원인 가이아로 돌아간다`는 이론이나 거기서 뻗어나온 `지구 생명의 신비`라는 테마는, 차갑고 어두운 영화의 금속성 질감에 녹아들지 못한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신비로운 테마, 남녀주인공의 애틋한 로맨스, 대다수 캐릭터의 죽음이 빚어내는 비장미,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믿음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기본적인 캐릭터 구축이 부실한 이유로, 감정을 이입해 딸가기가 힘들어진다. 생김새냐 마음씨냐, 만듦새냐 스토리냐 사이의 가치 판단처럼 무의미한 일도 없지만, 분명한 것은 첨단 테크놀로지의 옷도, 퇴행적인 스토리와 평면적인 캐릭터의 험루을 가려주진 못한다는 사실이다. <파이널 환타지>는 혈통은 물론 장르에서도 `혼성`이자 `제 3자`다. 게임을 토대로 한 영화이고, 일본 게임 제작사와 할리우드 스튜디오으 합작품이며, 실사 영화와 실제 배우를 모방한 애니메이션이다. 특히 극사실주의를 표방한 첫 번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은 독자적인 장르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예감케 한다.4년동안 1억 4천만달러를 들였으니, 초기 비용이 조금 과하긴 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7월 13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4위(1140만달러)로 다소 실망스럽게 출발했다. 박은영 기사 cinepark@hani.co.kr ▶ 파이널 판타지 ▶ 게임 <파이널 판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