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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카메라 예더봉

공원 잔디밭에서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우리 아줌마들이 팥주머니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다. 기다란 사각형 안에서 서른명의 사람들이 팥주머니를 피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나라별로 부스도 만들었다. 공원에 놀러나왔다가 만나는 구경거리다. 그 부스를 돌며 하얀 손수건에 아시아 각 나라 글씨로 사인도 받는다. 준비해둔 그 나라 음식들도 한점씩 맛본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운동회날이다. 중앙의 무대에선 나무판과 스티로폼으로 네모난 방을 하나 후닥닥 만들어 놓는다. 일일 감옥 체험프로그램이라도 하려나. 구경꾼이 구경을 놓칠 리 없다. 영화상영을 합니다. 집을 짓던 엉터리 목수가 잡는다. 무슨 영화? <데모크라시 예더봉>일까, 한국에서도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하는 노동자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였으니까 이런 데서 어울리긴 하겠네. 영화를 튼다는 방송이 나가자 아이들 대여섯이 신이 나서 달려든다. 그런 게 아니구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직접 찍은 겁니다. 엔지 필름을 잘라내지도 않은, 찍힌 순서대로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는 초보 중에도 진짜 초보자의 솜씨다. 툰툰라 ‘감독’이 세상에서 처음 만들어본 영화들. MBC의 8·15 특집프로그램의 화면이 흔들거리며 건들거리며 스크린을 채우고, 감독 겸 주인공 툰툰라의 해설이 시작된다. 텔레비전 화면을 클로즈업하려는 감독의 의도와 달리 카메라가 옆에 선 자신을 비키지 못하자 툰툰라는 하는 수 없이 화면 오른쪽으로 자꾸자꾸 도망을 간다. 그러면서 할말은 한다. 오늘은 한국의 독립기념일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독립운동을 소개하는 특집방송들을 내보냅니다. 그런데 미얀마 방송은 이런 프로그램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미얀마에서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다뤘으면 좋겠습니다. (치졸한) 극적 효과를 위해 감독의 국적을 지금에야 밝혔다. 정적인 아웅산 수지의 부친의 독립운동행적을 들추지 않을 수 없기에, 미얀마 군사정부는 그런 특집극을 금했을 테지. 강제추방에 항의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행진을 보여주다가도 툰툰라는 옆길로 샌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데모를 합니다. 미얀마에서도 군사독재가 끝나면…. 에이, 재미없다. 아이들은 툴툴거리며 부스럭거리며 자리를 뜨는데, 나이든 구경꾼은 코끝이 찡해진다. ‘카메라 예더봉(봉기)’을 준비하는 이 <데모크라시 예더봉>의 주인공들 앞에서.

21세기판 `성실한` 액션 히어로,<본 아이덴티티> 맷 데이먼

“도대체 라이언 일병이 어떻게 생긴 놈이야” 베를린을 함락시키기 위해 남은 전력을 모두 밀어붙이던 연합군 소속 밀러 대위 수하의 대원들은 자신들에게 떨어진 명령이 한심하고 화가 나기까지 한다. 적과 싸우기에도 힘이 부치는 판에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졸병 하나를 찾아서 고국으로 돌려보내라니.영화 절반이 지나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라이언 일병은, 그 모습만으로도 감동이었다. 귀여우면서도 믿음직한, 우리 모두의 막내가 거기 있었다. 전선의 한가운데에서도 기죽지 않고 생기가 남아 입을 활짝 벌리고 웃는 그 청년이라면 세상 어디에서도 남들의 신뢰를 잃지 않고 잘 해나갈 것 같다. 맷 데이먼은 바로 그런 인상이다. 어쩌면 이 인간은 딴따라판보다 건실한 조직사회에 몸담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사소한 감성의 차이에 연연하는 까탈스러움이나, 타인의 감정을 후벼팔 위악적인 느낌이 없다. 대신 긍정적이며 책임감이 강해 보인다. 앞짱구에 주걱턱까진 아니라도 적잖이 솟아난 턱이, 위 아래로 눈·코·입을 옥죄는 구도는 고집스러움에 더해 어딘가 편집증이 있을 것 같은 혐의도 준다. 아무래도 자발적으로 아웃사이더가 되기는 힘든 얼굴이다. <레인메이커>에서 시작해 <본 아이덴터티>까지 그가 주연한 영화가 10편 남짓한 영화는, 이중인격인 <리플리>, 야인의 냉소를 드리운 <베가번스의 전설> 같은 예외적인 캐릭터를 빼고 대체로 정신적으로 건실하고, 육체적으로 성실한 인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모처럼 도전한 액션영화 <본 아이덴터티>도 변신이라고 말하긴 힘들다. 책임감이 강해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지만 킬러로 살아갈 만큼 잔혹하지는 않아 보이는 인상이, 킬러가 기억상실증을 계기로 그 비정한 세계를 떠나는 드라마에 어울린다. 하지만 변화는 있다. 눈동자는 항상 가운데에 놓고 고개를 돌려 옆을 보는 우직하던 그가 익숙하고 재빠르게 곁눈질을 한다. 훈련된 전사처럼 민첩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석달 동안 복싱과 필리핀 무술 ‘칼리’를 단련한 결과다. 그에겐 비슷한 일화가 많이 따라다닌다. <커리지 언더 파이어>에선 체중 45파운드를 줄인 탓에 내분비장애를 앓았고, <베가번스의 전설> 때는 골프를 연습하다가 갈비뼈를 다쳤다. 89년 텔레비전영화에 캐스팅되기까지, 10년 동안 하버드대학도 중퇴하면서 ‘수천번의 오디션’을 거쳤다. 이런 끈기와 성실함이라면 루저가 되기도 글렀다. 앞짱구마저 들어가 기름기 흐르는 번듯한 이마가 됐다면 참 매력없을 인간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마지막 전투장면을 앞두고 스필버그 감독은 자기가 찍은 최고 명장면이 될 거라고 했다. 나는 보호받아야 할 라이언 일병 역이어서 이선에 있어야 했다. 톰 행크스는 행복하겠다 싶으면서 못내 속상했다.… (<본 아이덴터티> 이후) 내 이름은 액션 히어로의 명단에 올랐다. 스탤론이나 슈워제네거 같은 노장들이 계속 액션을 할 테니까 새로운 이가 나오는 것도 좋지 않은가.” 정말 액션영화에 맛을 들인 걸까. 몇달 전 볼프강 페터슨 감독이 <배트맨과 슈퍼맨>에 맷 데이먼을 캐스팅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구애를 보냈으나 그는 아직 대답이 없다. 대신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할 예정인, 미국 대기업 ADM의 비리사건을 다룬 <밀고자>(가제)에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출연할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맷 데이먼은 지난 10월8일 한 레스토랑에서 가족, 20여명의 팬, 봄볼로티 파스타, 새우칵테일과 함께 생일파티를 열고 만 32살이 됐다. 미니 드라이버, 페넬로페 크루즈, 위노나 라이더를 거쳐 만난, 한때 벤 애플렉의 비서였던 오데사 휘트마이어와 내년 겨울에 결혼할 예정이다. 막내로 있기는 더이상 힘들다. 귀엽고 믿음직하던 그 인상이 가장의 지위가 돼서 어떤 이미지를 띠게 될까. 어떻든 주류사회에 들어선 뒤에도, 아트영화 같은 모습으로 펀딩을 못해 구스 반 산트가 사재를 털어넣은 <제리>(2002)에 출연하고 벤 애플렉과 함께 ‘그린라이트 프로젝트’를 통해 신인 감독을 발굴·지원하고 있는 그라면, 돈과 규모로 승부하는 할리우드에 좀더 인간의 체취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해도 될 것 같다.

김형태의 오!컬트 <플레이어>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풍경 때문에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어떤 산골에 마을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입소문이 퍼지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게 되면서 땅값이 오르고, 자본이 투입되어 마구잡이 개발로 대규모 리조트가 형성되고 깔끔한 도로와 위락시설들이 들어차게 될 것이다. 풋풋한 인정을 느끼게 해주었던 농부들은 집을 팔고 어디론가 떠나버렸거나 영악한 장삿꾼으로 변하게 되리라. 오직 관광객의 호주머니만을 털어내도록 개발된 그곳에서 사람들은 점점 환멸을 느끼고 ‘여기도 변했어’라는 말만 남기고는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설정은 가정이랄 것도 없다.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더이상 이런 일이 생길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일어났었으니까. 문화예술이란 것도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찾아보는 여행지 같은 것이라고 비유해 보면, 그 운명도 관광단지가 되어 번영을 누리다가 결국엔 파괴되고 버림받는 산골마을과 닮은 과정이 있다. 처음에는 무목적의 거칠고 순수한 몸부림에서 시작된 어떤 창작의 행위들이 그 순수한 감동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면 그 다음에는 자본가가 꼬여들게 마련이다. 자본을 투자하고 규모를 키운다. 하지만, 자본가와 결탁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자본가의 것이 되고 만다. 왜냐고 다름 아닌 자본주의 사회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가 왕이고 천재고 전문가고 권력이고 표준이고 지침이고 모범답안이다. 자본을 잘 모으고 많이 불리는 사람만이 최고의 발언권을 가진다. 왜냐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그러나 자본이 투입되고 자본을 관리하는 전문가가 개입되는 순간부터 창작의 주체는 예술가가 아니라 그들, 이른바 기획자라고 불리는 자본관리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돈을 버는 대가로 모든 것을 파괴시킨다. 이를테면 음악에서 돈냄새가 나면 이들은 즉각 달려가 ‘기획’에 착수한다. 작곡자를 사서 음악을 ‘주문제작’ 하고 어디선가 가수를 구해 온다. 필요하면 그룹도 결성시키고 구관조를 조련하듯 가수를 키운다. 모든 것은 구매욕을 자극하기 위한 기획이고 설정이다. 그 결과물과 행위들이 모두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지만 나중엔 그것이 음악이 아니었음을 알고는 외면하기 시작한다. 그런 이유로 요즘 음반 업계는 사랑받는 가수도, 존중받는 장르도 없이 늙은 창녀처럼 쫄딱 망해가는 중이다. 영화계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대체할 경쟁 장르가 없기 때문일 뿐이다. 영화는 이미 철저히 흥행을 목표로 기획된 위락시설일 뿐 예술작품이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많은 기획자들이 개입되어 있고 예술가들의 발언권은 너무나 초라하다. 주문제작되는 시나리오와 고용된 감독. 그리고 제작 조건으로 제시되는 캐스팅. 흥행예감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 되는 작품의 방향. 그렇게 흥행 전문가들에 의해서 철저히 제작되는 구조 덕분에 우리는 너무나 재미있는 영화들을 끊임없이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는 우리는 가장 천박한 문화예술 장르로 영화를 꼽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현재 모든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가요 프로그램이 가장 천박한 지경이 된 것을 목도하듯이 말이다. 사람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선수는 기획자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선수는 예술가들이다. 사람들이 처음 어떤 문화에 대해 주머니를 열었던 이유는 그것이 먼저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란 것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현재의 그 어떤 흥행대작도 그 원인은 대규모 제작비와 슈퍼스타를 동반한 탁월한 기획이 아니라 털끝만큼이라도 엿보이는 어떤 순수한 예술성 때문이라는 소박한 진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자본가들이여, 기획자들이여, 오래오래 잘살고 싶으면 예술가를 끝까지 존중하라.김형태/ 화가, 황신혜밴드 http://hshband.net

게임의 기초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북쪽 응원단에 관한 텔레비전의 특집방송을 봤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시인했다는 뉴스 속에 빠져버리고 난 지금, 그 프로그램을 볼 때는 피식 웃으며 지나친 장면이 기억의 맨 앞줄로 기어나온다. 한판 붙게 된 남과 북의 여자레슬링 선수들이 애써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남북의 자매애를 상징하는 장면을 유도하고 싶어하는 카메라의 의중도 모른 척한다. 친밀감을 느끼면 경기진행이 어려워져서 저러는 거라는 해설이 곁들여진다. 뒤집어 생각하자면, 대결의 긴장을 눅이기 위해서 북쪽 선수들과 응원단은 반도 남단까지 찾아왔고, 이두용 감독은 신작 <아리랑>의 프리미어를 하러 평양으로 갔던 것이다. 이라크 공습 계획을 밝힌 미국 정부는 반대로 자기네 국민들의 전의상실을 염려해서 이란 감독들의 입국을 차례차례 거부했던 것이고. 그러니까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호전과는 거리가 먼, 지극한 평화주의자들이라는 사실도 아무런 소용이 되지 못한다. 그저 외면할 뿐이다. 대화의 기운이 다시 충만해진 가을날, 북한 핵문제는 세계 곳곳에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왜 이 시점에 북한이 핵무기 개발계획을 시인했는지, 미국이 그 사실을 밝혔는지 분석들도 분분하다. 아무리 그렇다한들 반도 남단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만큼 심사가 복잡한 이들은 없을 것이다. 햇볕정책의 실패라고 공격하는 쪽이건, 한국이 북의 핵포기를 이끌어내면서 북미관계의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건. 미국의 반응에 시청각을 집중하다가 북한과 이라크는 경우가 다르다는 발언에 안도하고, 핵문제를 대화로 일괄타결하고 싶다는 북쪽 관계자의 인터뷰 행간을 뒤져보는 이유야 물론 설명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네고시에이터> 같은 할리우드영화로 치자면 이 대치극의 인질들이니까. 잡지 마감 틈틈이 선 자리에 따라 시선이 달라지는 일간지들의 속보와 해설을 뒤져보다가, 아주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이건 레슬링이 아니다. 스포츠의 긴장은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해보아도 쾌락이 목적이지만, 이건 아니다.

1980년대 분위기 찾아 유랑극단처럼 전국일주하는 <살인의 추억>

전남 해남군 황산면, 너른 갈대밭에서 80여명의 경찰이 성인의 키를 훌쩍 덮는 갈대를 헤치며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크레인 위 카메라가 서서히 움직이며 찍고 있는 이 풍경은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이다. 25일 언론에 처음 공개된 촬영현장은 갈대밭에 버려진 여성 실종자의 사체를 발견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자못 긴장된 촬영 현장 옆에서 박두만 형사를 연기하는 송강호씨는 조용구 형사 역의 김뢰하씨와 실뜨기를 하고 있다. 서울서 온 서태윤 형사(김상경)가 전경들과 함께 실종자의 사체를 수색하는 동안, 두 형사는 실뜨기로 하릴없는 시간을 달래며 실종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찍기 위한 ‘리허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삼엄한 사체 수색과 실뜨기 놀이라니. 부조화해 보이는 두 그림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살인의 추억>의 독특한 분위기를 집약해 보여준다. 봉준호 감독이 고민 끝에 이 영화를 ‘농촌 스릴러’라 분류했다. “‘농촌’과 ‘스릴러’처럼 어울리지 못하는, 충돌하는 이미지와 에피소드의 공존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정서가 될 것”이라는 게 봉 감독의 설명이다. 형사들이 밤낮없이 수사만 하고 또 명쾌하게 사건을 해결해내는 장르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하고자 하는 의도로 들린다. 논리적으로 사건에 접근하려는 서울 형사와 발로 뛰는 지방 형사의 갈등은 이 드라마의 중요한 축이다. 전형적인 형사물이라면 복장에서부터 차이가 나겠지만 현장에서 두 사람의 초췌한 행색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또한 형사물이라면 거침없는 액션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런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적 리얼리티가 아닌 날것의 사실성에 영화는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그 사실성은 이날 촬영된 장면처럼 소름돋는 공포와 난데없는 웃음을 옆자리에 나란히 앉힌다. 지난 8월 말 시작된 촬영은 지금까지 전체의 40% 정도가 진행됐다. 해남, 장성, 부안 등 전남북 일대와 인천 강화, 강원도 횡성 등 스태프들은 전국을 “유랑극단”처럼 돌아다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80년대 중반의 분위기가 훼손되지 않은 곳을 찾기는 그만큼 어려웠다. 에서 치고 달리느라 그을린 얼굴이 <살인의 추억>으로 더 검어진 송강호씨는 “풀리지 않는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통상적인 추리물의 결론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마지막에는 가슴 짠한 여운을 주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월에 경찰서 세트 촬영으로 마무리한 뒤 <살인의 추억>은 내년 봄께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김상경 인터뷰 너무도 달라진 수척한 얼굴 옆에 두고도 “김상경 어딨지?” 촬영현장에서 만난 서태윤 역의 김상경(30)씨는 수척해 보였다. 배역을 위해 일부러 다이어트를 한 건 아니지만 매일되는 술자리 탓에 한참 몸이 불었던 <생활의 발견> 때보다 10kg 정도가 빠졌다. 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둔 머리칼은 귀밑을 덮었다. 사건 현장에서 그을린 얼굴을 만드느라 생전 처음 선탠까지 했다. 덕분에 촬영현장에 구경온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은 그와 눈을 마주치고도 “김상경 어딨니” 옆의 친구에게 묻는다고 한다. “첫 영화가 독특해서 다음 작품 고르는 데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렇지는 않았어요.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죠. 새벽 세시에 시나리오를 다 읽고 감독님과 통화하고 싶어서 밤을 샜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서태윤이 “틀에 박힌 인물이 아니라 좋다”고 했다. “서울서 온 형사라면 바바리 깃 날리는 엘리트적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근데 전혀 아니거든요. 중국집에서 사건을 가지고 심각하게 논쟁하다가도 “아줌마 짜장하고 면하고 따로 주세요”하는 말을 툭 던져요. 폼나는 것과는 거리가 멀죠.” 첫 영화 때 영화호흡에 적응하느라 고생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 영화는 많이 편해졌다. “텔레비전 드라마 같으면 벌써 수십 신을 찍었을 시간에 영화는 한 컷도 못찍는 경우가 많죠. 늘 쫓기면서 촬영하다가 하염없이 기다리려니 안절부절못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오히려 연기에 대해 차분히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좋습니다.” 김씨는 <살인의 추억>에서 서태윤이 관객들에게 “비현실적인 영웅심보다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좌절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특별히 영화만 고수하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영화가 “내 몸에 꼭 들어맞는 옷이 될 때까지” 당분간은 몰두하겠다는 계획이다.

˝70년대,영화의 경쟁자는 TV가 되었지˝

<맹물로 가는 자동차>에 이어 개봉한 <속 이별>(1974)은 선 굵은 외모에 시원한 가창력을 자랑하던 패티 김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였어. 그녀의 경력 중 유일무이한 스크린 나들이일 텐데, 여배우의 서구적인 마스크를 잘 살려내기 위해 나 역시 카메라 구도에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었지. 딸을 키우며 혼자 살아가는 인기 여가수가 죽은 남편의 고향을 찾았다가 자유분방한 아내 때문에 고민하던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실은 바로 전해에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이별>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어. <이별>이 크게 히트를 하자, 내용과 캐릭터는 다르지만, 제목을 그대로 따온 거지. (웃음) 물론 신 감독도 흔쾌히 허락을 했고. 60년대 후반을 거쳐 70년대 들어서면서, 아줌마 관객을 텔레비전에 뺏긴 영화계는 젊은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했어. 60년대 후반에는 중앙의 5개 라디오 방송국이 방송한 연속극의 총수가 한해 160편에 달했고, 치열한 청취율 싸움이 벌어진 바 있지. 특히 1966년 MBC가 가을 개편 때 신설한 <전설 따라 삼천리>는 해설을 맡은 성우 유기현의 독특한 목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프로그램으로 10여년 동안 MBC 라디오의 대표주자였어. 더구나 당시 한국영화가 중흥기를 맞고 있던 시점이라 라디오 연속극은 쓰기만 하면 대본이 영화로 팔려나가고 인기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방송도 되기 전에 영화사에서 제목만 보고 계약을 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났지. 당시 충무로의 ‘시사통신사’(時事通信社)는 영화, 방송 등 문화·연예계에 정통한 통신사로 알려져 있었어. 시사통신에 방송사에서 기획하는 다음 연속극의 제목과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는 고정란이 있었는데 여기 소개된 작품 내용만 보고 영화사들이 앞다투어 작가들을 찾아다녔어. 1967년은 라디오 드라마에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열풍이 몰아친 해로, 동아방송의 <조선 총독부> <태평양전쟁>과 동양방송의 <광복 20년> <근세 대한 백년>, 문화방송의 <북한 7,300일>, 기독교 방송의 <한국 기독교 70년사> 등 다큐멘터리 드라마 경쟁이 본격화됐지. 이같은 현상은 그뒤 MBC가 개국하고 점차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큐멘터리 드라마가 라디오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분야로 인식되면서 더욱 성해졌어.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1968년은 라디오 연속극이 범람한 해야. 이 해를 정점으로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그 수가 줄어들고 텔레비전 연속극 시대가 열리면서 라디오 연속극은 그 명맥을 유지하기도 어려워지지. 그동안 전성기를 누려온 라디오라는 음향매체에서 70년대 들어서 텔레비전이라는 영상매체로 넘어가는 결정적 시기를 맞은 것이야. 텔레비전 일일극이 방송의 꽃으로 자리매김하는 일대 전환점이 마련되는데, 그 계기를 제공한 것이 1970년 3월2일부터 TBC에서 9시40분에 방영하기 시작한 임희재작 <아씨>였어. 자기 희생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간 한 여인의 한평생을 통해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을 그린 <아씨>는 다음해 1월까지 253회에 걸쳐 방영되면서 텔레비전 단일 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지. 초창기 일일연속극들이 대부분 20∼30회로 횟수가 제한되던 관례에 비하면 <아씨>의 방영 횟수는 기록적인 것이었어. 이 드라마의 선풍은 텔레비전 3국이 1971년에 하루 3편, 1972년에는 하루 4편의 일일연속극을 제작 방영하는 일일연속극 전성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 이런 분위기에서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제작자들은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젊은 관객의 시선을 끌고자 했지. 그렇게 등장한 영화가 바로 <고교얄개>(1977, 석래명 감독), <괴짜만세>(1977, 이형표 감독) 등의 이승현표 하이틴영화‘얄개 시리즈’와 전영록 등의 인기 가수가 직접 등장하는 <미인>(1975, 신중현·이남이 주연), <제7교실>(1976, 임예진·전영록 주연), <너무 너무 좋은 거야>(1976) 등이 마구 쏟아지게 되지. 거기에 난 누구보다 빨리 적응한 거고, 제작자들이 가져다놓는 고만고만한 비슷한 기획들에 파묻히는 꼴이 됐어. 그러나 그러한 청춘물의 제작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한 것일 뿐 나의 사상이나 취향과는 상관없었지. 구술 이형표/ 1922년생구술 50년대 미국공보원(USIS)과 국제연합한국재건단에서 군 홍보 및 기록영화 제작구술 미국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뉴스 제작구술 60년대부터 극영화 86편 작업구술 <서울의 지붕밑> <말띠 여대생> <애하> <너의 이름은 여자> 등구술 80년대 중반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각종 전시관 기획, 설계, 시공 총괄구술 현재 등급위와 진흥위원회에서 활동 중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 /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좋은` 영화 <아이 엠 샘>이 오싹한 이유

<아이 엠 샘>은 못났지만 사랑스러운 애인 같다. 7살짜리 지능을 가졌다는 샘(숀 펜)이 이끄는 대로 132분 동안 따라다니다보면, 샘의 등 뒤에서 팔을 내밀어 그를 안고 넥타이를 매듭지어주던 리타(미셸 파이퍼)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마음 깊은 곳을 만지는 따뜻함. 우린 그것을 얼마나 바랐던가. 이처럼 따뜻하고 저항하기 어려운 정서적 힘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잘 짜여진 영화적 힘으로부터 온다. 우선 소재가 특이하고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다. 7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정신지체 아버지가 어머니의 도움없이 어린 딸을 키운다는 설정 자체가 공감과 연민을 끌어들일 여지가 많다. 이러한 플롯을 선명하고 풍부한 스토리라인으로 증폭시켜가면서 관객의 감정과 여유있게 승부를 벌이고 있다는 점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재능 혹은 할리우드의 노련미라고 해야 할까.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1- 입체적이고 윤기 흐르는 캐릭터 플롯 지향적인 영화가 대체로 캐릭터를 정형화하기 쉬운 데 반해서, 이 영화는 상당수의 인물들에 다면적인 입체감과 윤기를 불어넣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물론 샘이 있다. 무언가 심하게 부족해 보이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택한 영화가 모두 그렇듯이, ‘정상’적인 관객은 샘이 가진 결핍을 은근한 경멸이나 연민 혹은 재미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점차 그의 내면적 가치에 동화되고 급기야는 정상인 자신의 비정상성을 성찰하게 된다. 그저 무관심하게 스쳐지나왔을 어떤 존재들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정상과 비정상에 관한 편견 가득한 시선을 역전시키는 것,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아이 엠 샘>으로부터 감동받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샘의 캐릭터는 첫 번째 장면부터 효과적으로 설명된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습득된 규칙대로 익숙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 규칙 안에서라면 샘은 유능하고(!) 평화롭다. 스타벅스의 커피잔과 설탕을 느리지만 정성껏 제자리에 둔다든지, 누가 어떤 주문을 해도 항상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탁월한 선택이십니다”라고 말하는 일을 8년 동안 싫증내지 않고 계속하는 데는 아마도 샘이 1등일 것이다. 감탄스러운 일은 또 발견된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비관하지 않고 놀랍게도 그 벽을 넘어서기 위해 언제나 노력한다. 우리가 샘과 더불어 평화롭게 공존하고자 한다면, 오직 그가 계산대 앞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덧셈과 뺄셈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줄 몇초간의 인내심 정도만이 필요할 뿐이다. 결정적으로 샘은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조건없는, 아니 조건을 알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다. 조건없는 사랑은 인간의 영혼 혹은 신성의 본질이라고 한다. 지능이 낮은 모자란 샘이라고 제시 넬슨 감독은 비틀스의 목소리를 빌려 대답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이야(All you need is love). 숀 펜은 샘이라는 시나리오상의 인물을 생생하게 형상화하는 데에 각별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정신지체 성인의 보디 랭귀지를 완벽하게(우리가 보기에는) 구사할 뿐만 아니라, 제한된 육체 안에 깃들어 있는 고결한 영혼의 느낌까지도 전달한다. 그는 <데드 맨 워킹> 이후 신뢰할 만한 배우로서, 9·11 테러를 성찰하는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 계획에 대해 공개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양식있는 인사로서 세월이 갈수록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샘의 세계를 떠받치는 배우들의 앙상블도 재미있다. 광장공포증을 가진 피아니스트 애니(다이앤 위스트)를 비롯해서 실제 장애를 가진 두 연기자를 포함한 다섯명의 친구들이 지원 그룹을 이룸으로써, 샘을 이색적이고 어쩌면 완벽한 양육자로 만들어준다. 슬픔을 이해하고 있는 총명한 아이 특유의 얼굴을 지어 보이는 루시(다코타 패닝), 잘난 상사에게 기가 눌려 있지만 속으로는 결코 존경할 수 없는 어린 비서 등 상당수의 캐릭터가 각각의 자리에서 어떤 뉘앙스를 발한다. 체면 때문에 샘을 돕게 되는 여성 변호사 리타 해리스는 샘의 세계를 가장 극적으로 대조되어 보이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를 통해 <아이 엠 샘>은 가정은 소중하다는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가정은 소중하다는 진일보한 생각을 전달한다. 특히 리타가 법정에서 반대편 증인을 심문할 때 “당신은 자식을 키울 때 혼란스럽고 무기력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느냐”라고 던진 질문은 우리의 도도한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마지막 일격이다. 감독과 작가가 폭넓은 사례 조사를 통해서 내린 결론은 이렇다. “장애를 가진 부모들을 거듭 만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들이 일반적인 지성이란 의미에서의 능력은 부족하지만 성격이 개방적이고 자신들이 성취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자녀 양육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고결성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영화가 사랑스러운 이유2- 오! 비틀스 촬영과 편집 역시 멜로적인 호소력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극영화와는 사뭇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샘의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려는 듯 여백과 단절이 많은 장면 설정과 촬영, 배우와 촬영감독 사이에 카메라 이외의 모든 기계장치를 배제하기, 콘티뉴이티 커팅(continuity cutting)이라는 할리우드의 전통적인 편집방식을 파괴하고 캐릭터의 감정적 기복을 따라가는 구상적이며 실존적인 편집 등이 한데 모여 밀도 높은 에너지를 구축하고 있다. <아이 엠 샘>은 또한 주인공 샘이 비틀스 강박이라는 설정을 빌려 영화 전편에 걸쳐 비틀스의 노래들을 멋지게 깔아놓는다. 하늘과 땅에 있는 다섯명의 비틀 역시 아마도 자신들의 음악이 소외된 인간의 실존과 사랑을 이토록 일관되게 옹호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지 않을까. 특히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 이어 두번이나 최고의 비틀로 칭송된 조지 해리슨의 기쁨은 더 클 것이다. 그외에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부터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성공적인 대중영화에 대한 계속된 인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레인맨>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제8요일> 등은 단순한 인용이나 추억의 차원을 넘어서 이 영화에 직접적인 영감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싹한 이유- 왜 여성의 무능에 대해서는 그렇게 잔인한가 <아이 엠 샘>에 대한 경탄은 여기까지다.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그 훈훈한 이야기의 한켠으로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듯한 찬 기운도 아울러 흐르는 것을 느낀다. 우선 익숙한 이야기부터. 리타 해리라는 여성 변호사가 맡고 있는 진부한 역할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리타는 미셸 파이퍼의 이미지에 기댄 전형적인 스타 캐스팅인데, 조지오 알마니 옷을 떨쳐 입은 일중독자로서 한번도 좌절해본 적이 없는 출세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아들의 사랑도 제대로 받을 줄 모르는 주제에 잘난 척하고 성질이 급하고 자기밖에 모르고 체면을 중시 여기며 권력 지향적이다. 그는 샘 앞에 눈물로 참회하고 아들과 함께 운동회에 나타남으로써 드디어 구원받는다. 지능이 부족한 샘이 스타벅스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딸을 키우려 노력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영화가, 왜 육아의 어려움 속에서 일하는 여성의 ‘무능’에 대해서는 이토록 잔인할까. 교외에 사는 백인 중산층 가정에 대한 미국인들의 향수는 아직도 끈질기다. 여성이 하얀 레이스가 달린 에이프런을 두르고 남편과 아이를 시중드는 소시민 가정의 중요성을 옹호하기 위해, 일하는 여성을 무언가 결핍된 존재로 가정한 채 공격하는 것은 미국의 대중영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 안에서도 쉼없이 저질러지는 상투적인 편견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감행하는 무서운 이데올로기 공세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 엠 샘>이 가족의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 샘과 그의 친구들, 마지막에는 유능한 리타 해리스 변호사까지 가세하여 공격하는 대상이 무엇인가 바로 사회보장제도다. 아동보호소나 법원이 정하는 양부모 제도 같은 것들은 정상적인 가족 구성이 불가능한 수많은 무너진 가정들을 사회적으로 보완하려는 오랜 노력의 산물이다. 역사적으로 좌파의 입지가 극히 적은 미국사회에서 이것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인 정책가들과 소수의 인권운동가들이 험난한 정치적 역정을 통해서 달성한 것이고, 이는 미국이 그토록 자랑해 마지않는 인권 국가로서의 지표다. 그런데 <아이 엠 샘>에서 샘의 가족을 고난에 빠뜨리는 어리석고 냉혹한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가 하면, 이러한 제도에 대해 신념을 가진 백인 활동가이거나 경찰서와 아동양육시설에서 일하는 흑인 여성이다. 미국 내에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가장 강력하게 요청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 그룹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샘이 가족을 유지하는 것과 사회가 제도로서 지원하는 것은 왜 공존할 수 없는가. 문제가 있다면 제도의 융통성을 촉구해야지 왜 그런 신념 자체를 공격하는가. 영화는 심지어 그 활동가를 대머리라고 인신공격하고, 관객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무렵 샘과 루시를 강제로 떼어놓는 실루엣 속에 그들을 배치함으로써 적대감마저 부추긴다. 미국은 지금 사회 전반에 걸쳐 진보와 보수가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는 것으로 보인다. 제도적인 측면을 예로 들자면, 소수 인종과 여성에 대한 차별철폐를 적극적인 형태로 입법화한 차별철폐조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백인 중산층이 역차별이라며 불만을 표시하고 이같은 공세를 법률로 합리화하는 조치(California 209)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럴 때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가 가하는 문화적 교육은 다른 무엇보다 위력적인 정치 공세이자 이데올로기 공세가 된다. 이것이 바로 디즈니 비판자들이 줄기차게 지적하며 염려하는 지점이다(<아이 엠 샘>은 브에나비스타라는 디즈니 계열사가 배급하는 영화다).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흘러가고 보니 가슴 한구석에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우리의 샘과 루시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자책 섞인 질문이다.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

새비디오 - <이티> 외

-이티 지난해 20주년을 기념해 재개봉한 작품. 적대적으로만 그려지던 외계인을 인간의 친구로 그려 에스에프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과학자인 이티는 동료들과 함께 지구 탐사에 나섰다가 일행과 떨어져 고립된다. 어린 엘리엇은 이티를 발견하고 집안에 숨겨주면서 둘은 특별한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 그러나 결국 은신처가 발각되고 이티는 붙잡혀 감금된다. 재개봉판에서는 이티가 욕조 속에서 목욕을 즐기는 장면과 아이들이 할로윈 데이에 이티를 찾아다니는 장면 등이 새롭게 추가되었고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이용, 몇몇 부분을 매끄럽게 수정했다. 존 윌리엄스 주제음악도 디지털로 재생해 음향 역시 더욱 생생해졌다. 11월1일 출시. 유니버설. -열려라! 엘모의 세상 세계적인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인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가장 인기있는 코너인 ‘엘모의 세상’이 세권짜리 비디오로 출시됐다. 빨간 털북숭이 엘모가 만나는 춤추는 창문, 서랍, 뛰어다니는 텔레비전 등을 통해 사물과 현상에 대한 관찰력을 길러준다. 쉽고 짧은 영어 대화와 노래로 구성돼 있어 영어학습 교재로 사용할 수 있다. 1편 ‘아기, 강아지 세상’은 어린이의 눈으로 본 아기와 강아지에 대한 내용을, 2편 ‘꽃, 바나나 세상’은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을, 3편 ‘노래, 그림그리기 세상’은 노래하기, 그림그리기, 전화걸기 등 아이들의 일상적인 학습 정보를 유쾌한 에피소드로 담고 있다. 각권에는 지도용 영한대본이 포함돼 있다. 10월30일 출시. 인피니스. 김은형 기자

탄환을 동경하던 한 여자의 심장에 관한 영화,<밀애>

■ Story 30대 초반의 주부 미흔(김윤진)은 어느 날 갑자기 집안으로 뛰어든 남편의 애인 때문에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는다. 미흔의 건강이 여의치 않자 남편(계성용)이 나서서 남해안의 한 마을로 거주를 옮긴다. 이웃에 사는 인규(이종원)가 미흔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4개월간 조건 없는 사랑을 나누되 사랑한다고 발설하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는 것이다. 육체적인 탐닉으로 시작된 둘의 관계는 격렬함을 향해 치닫는다. ■ Review 유순하고 청결하고 어떤 야릇한 연약함을 가진 여성이 남편의 외도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회복할 길 없는 상처를 시위라도 하듯이 그는 오래도록 방황한다. 그러니 설혹 불륜에 빠지더라도 그것은 은연 중에 남편의 책임이기도 하다. <밀애>의 프롤로그로부터 이런 냄새를 맡았다고 해서 이 영화가 분노와 눈물을 뒤섞은 페미니스트 신파쯤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그건 당신의 속단이다. 미흔(김윤진)의 육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도 남편의 외도를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고 할 것이다. 미흔의 몸은 마치 탈출을 위해 어딘가 빗장이 열리기를 기다려온 마그마처럼 끓어오른다. 그러니 이 영화는 발칙하다. 발칙하다는 말은 존중받도록 되어 있는 어떤 근엄한 것에 도전하는 것에 붙여진다. 그래서 발칙한 것들이란 대체로 호응과 질타로 양분된 격렬한 반응에 휩싸이고, 그런 반응 자체가 엄숙하게 고정되어 있던 세계의 한 귀퉁이를 무너뜨린다. 작가들은 그중에서도 불륜이라는 테마를 사랑한다. 불륜은 가족제도의 틀을 벗어난 성애에 붙여진 이름이다. 일부일처의 단혼 소가족을 바탕으로 삶의 틀이 유지되는 체계를 고안한 현대사회에서 성애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는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다. 반면에 인위적으로 짜여진 질서에 반발하려는 작가들은 끊임없이 그 문제를 건드린다. 그 도발이 지루한 수준이면 통속적인 3류 드라마가 되고, 무언가 팽팽한 긴장을 지니고 있을 때에는 제도에 대한 개인의 반발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된다. <밀애>는 어느 쪽으로도 해석이 가능해보인다. 그것은 이 영화가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우선 영화는 미흔이 관객에게 어떤 핑곗거리를 가지지 못할 만큼 그의 일탈을 멀리까지 끌고가버린다. ‘그럴 만도 하지, 남편이 너무 했어’라거나 ‘저 정도면 복수한 거야.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지. 뭐 심한 짓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의 변명이 안 통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남편을 혼자 남겨두고 잠옷 바람으로 창문을 넘어 애인의 집에 찾아들었다가, 위험한 짓은 하기 싫다는 남자로부터 퇴짜를 맞고 와서는 남편과 잠자리를 같이한다. 핑곗거리 뒤에 숨어서 도전적인 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밀애>는 페미니즘의 울타리 안에 있는 보수주의자들과 어느 정도 결별했다. 이 영화는 또한 육체의 욕망을 복권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미흔과 인규(이종원)의 첫번째 정사 장면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였을 뿐만 아니라, 원작소설이 갖고 있는 언어의 묘사력에 상응하는 영상의 묘사력을 보여준 장면일 것이다. 단지 육체에 대한 매혹만으로 사랑을 출발시킨 두 사람은 서로의 심금(心琴)이 아닌 육금(肉琴)을 정교하게 울릴 수 있는 숙련된 연주자의 자질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시에 제도가 허용하지 않은 사랑은 불법이고 정신적인 사랑이 없는 사랑은 타락이라는 사랑의 신화가 산산이 깨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두 주연배우의 적절한 감정 표현과 아울러, 어둠과 역광의 조화로 얻어낸 묵직하게 밝은 인상주의 톤의 조명, 숙련된 달리 맨의 덕을 본 정교한 이동 등을 통해 상당히 성공적으로 연출되었다. <밀애>는 아마도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하나의 남성 캐릭터를 끌어낸 영화로도 기억될 만하다. 대한민국에 바람 피우는 남자는 매우 많고 개중에는 쿨 하게 밀고 나가는 남자도 없지 않을 테지만 인규처럼 권태롭게, 죄의식은커녕 자의식도 없다는 듯이 멀뚱한 느낌으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 스크린에 주인공으로 나타난 적은 드물었던 것 같다. 권태란 육체가 한가한 사람들이 햇빛이든 고요든 일탈이든 구속이든 무언가가 숨을 막히게 할 만큼 많아서 시시해 미칠 것만 같다고 느끼는 것을 뜻한다. 권태는 현대성의 본격적인 도래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권태에 사로잡혀 게임을 하듯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지극히 징후적이다. 인규라는 캐릭터는 한국의 멜로드라마가 모더니즘 영화로 비약하는 과도기적인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왼쪽부터 차례로)♣ 남편의 애인이 집안을 침범한 어느날 이후, 미흔의 삶에는 균열이 생긴다. 결혼생활에도, 미흔의 내부에도 더이상 안온한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윗집 사는 의사 인규는 미흔에게 사랑 대신 섹스만 하는 게임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육체에 대한 매혹만으로 사랑을 시작한다. 남해안의 공간과 빛도 인상적이다.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공간을 포착하는 영화는 일단 지지해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영화의 앞뒤로 붙은 페미니스트 신파의 기색은 “이런 건 가벼워야 하는데”라는 인규의 대사에 담긴 염려 그대로 이 영화를 무겁게 만든다. 폴란드에서 온 스탭들이 아무리 훌륭했더라도 이동차는 좀 덜 썼더라면 어땠을까. 먼저 찍힌 시퀀스일수록 감독의 몸이 덜 풀린 듯한 어색함은, 천하의 변영주라도 어쩔 수 없이 데뷔작 만드는 신인 감독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연작을 한창 쏟아내던 당시의 변영주 감독이 자신의 다음 영화는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라는 제목을 가진 극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섬찟한 느낌에 얼이 빠져 있는 내게 “멋지지 않아요”라고 되물었더랬다. 제목은 달라도 이 영화 <밀애>는 탄환을 동경하던 한 여자의 심장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된다.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