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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영화사들 잇단 소송 ‘배신감 때문에?’

최근 영화사와 배우 사이에 두 건의 소송이 잇달아 영화계가 씁쓸해 하고 있다. 우선 <친구>의 820만 관객신화의 주인공이었던 곽경택 감독과 배우 유오성씨가 각각 관계된 진인사필름과 JM라인이 소송을 내고 곽 감독이 지명수배를 당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지난 7월 <챔피언>의 개봉도중 투자배급사인 코리아픽처스 등이 자신의 동의없이 광고를 내보내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유씨가 소송을 낸 데 이어, 지난달 31일 제작사인 진인사필름은 유씨를 상대로 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이다. 진인사 필름의 양중경 대표는 “곽 감독이 그간 민사소송의 참고인으로 소환받았지만 그동안 유씨와 관계를 생각해 출두하지 않았더니 지명수배가 내려졌다”며 “조만간 검찰에 나가 조사를 받을 것”이라 전했다. 또 한 건의 주인공은 <바람난 가족>의 출연을 둘러싼 명필름과 김혜수씨다. 김씨가 텔레비전 드라마 <장희빈>과 병행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이미 6일부터 새 영화의 촬영스케줄을 짜두었던 명필름은 사실상 영화촬영이 불가능해졌다며 김씨에게 5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명필름쪽은 “김씨에 대한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영화의 모든 게 스타에 의해 휘둘리는 충무로의 관행을 우리만큼은 거부하겠다는 의미”라 말했다. 반면 김씨는 전화통화에서 “장희빈이라는 캐릭터는 내가 배우가 되길 꿈꾼 계기가 되었던 것이라 개인적으로 특별한 의미였다”라며 “끝까지 양해를 얻으려고 방송국과 계약도 마지막까지 미뤘으며 지금도 영화에 출연할 자세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두 건의 소송은 모두 남다르게 돈독한 관계를 자랑했던 영화사와 배우 사이에 일어났다. 당사자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돈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인 배신감과 신뢰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한 치밀한 계약서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인간적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하면 더 치명적이다. 당사자들이 하나같이 ‘도덕적인 우위가 자신에게 있음’을 강조하며 언론을 통한 ‘기싸움’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제해결의 길이 아닌 듯 하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작가영화(1)

영화제 상영작 리스트에서 가장 먼저 감독의 이름을 보는 사람. 시네마테크의 크고 작은 행사가 늘 모자란 듯 아쉬운 사람. 영화제에서 일년치 영양 보충을 해야 한다고 덤벼드는 취미가 있는 사람. 동서양의 거장과 예비 거장들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올 부산영화제는 다종다양한 ‘성지순례’ 코스를 제공할 것이다.문석 / 박은영 / 김현정 / 유운성(영화평론가) 임소요 Unknown Pleasures ▶ 아시아 영화의 창/ 일본·한국·프랑스/ 지아 장커/ 2002년/ 113분 ▶ 11월 16일 오후 5시 대영1, 11월 20일 오후 8시 대영1 중국 탄광촌 아이들의 ‘청춘잔혹이야기’. <소무>와 <플랫폼>에 이은 지아 장커의 세번째 장편 <임소요>는 그가 디지털 카메라로 작업했던 단편 <공공장소>와 <개들의 처지>의 무대가 되었던 바로 그곳, 샨시성(山西省) 따퉁(大同)에 거주하는 19살 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서로 동갑내기인 빙빙과 샤오 지는 영락한 탄광촌인 따퉁 이곳저곳을 하릴없이 쏘다닌다. 빙빙은 가끔 여자친구를 만나 비디오방에 가서 영화를 빌려보는데 그녀는 곧 대학입시를 치를 예정이며 합격하게 되면 이 도시를 떠나게 될 것이다. 샤오 지는 어느 날 댄서 차오차오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에겐 과거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으나 지금은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다. 빙빙과 샤오 지의 비루한 삶은 출구가 없어보이고 결국 그들은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임소요>는 보는 내내 답답함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이지만 예기치 않게 우리의 가슴을 파고들어서는 끝내 한없이 슬픈 기분에 잠기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은 이 영화가 단지 중국이라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소요>는 여기 이곳 아시아에 덧입혀진 자본의 시간을 눈과 귀를 통해 생생히 체험하게 만든다. 여전히 과거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는 배경들과 더불어 어울리지 않게 뒤섞여 있는 동시대의 징후들- 댄서를 내세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주류 홍보 이벤트, 따퉁의 공기를 가르는 복권광고, 미군기의 중국영공침범이나 베이징까지의 철도건설계획을 알리는 텔레비전 뉴스 등- 은 또한 인물들과도 충돌하면서 모순과 균열의 지점들을 때로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가슴 아프게 노출시킨다. 가령 차오차오와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샤오 지가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에 대해 떠들어대는 장면과,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역시 <펄프픽션>을 모방한 그들의 댄스장면은, 정말이지 젠체하는 오마쥬나 우스개로 끼워넣은 패러디가 아니라 비통한 진심이 담긴 자화상인 것이다. 미학적 과시로 넘쳐나는 거장들의 영화들 틈에서, 지아 장커의 <임소요>는 영화작가 자신이 놓인 현실에 대한 냉철한 사유의 흔적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영화이자 부산을 찾을 여러분이 꼭 봐야 할 영화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름다운 시절 The Best of Times ▶ 2아시아 영화의 창/ 대만, 일본/ 장 초치/ 2002년/ 109분 ▶ 11월16일 오후 2시 대영1, 11월20일 오후 5시 대영1 가진 것 없는 젊음, 총 한 자루를 얻었다. 첫장면을 꼭 기억해두고 싶은 영화가 있다. 막 어둠이 걷히기 시작할 무렵, 낮고 맑게 깔리는 음악 속에 하루를 시작하는 소음이 섞여들고, 카메라가 부엌과 식당과 방을 침착하게 오가는 <아름다운 시절>이 바로 그런 영화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한번 끌려들어간 시선을 접을 수도 없다. <아름다운 시절>의 화자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십대 소년 웨이. 불치병을 앓는 누나가 있는 웨이는 사촌 지에와 함께 범죄조직 수금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둘은 첫번째 임무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권총까지 한자루 받아들지만, 성미 급한 지에가 그 총으로 다른 조직 보스를 살해하면서 궁지에 빠지게 된다. <아름다운 시절>은 범죄영화와 가족영화, 성장영화가 서로를 도와주는 것처럼 들어차 있는 영화다. 총을 얻고 기뻐하는 아이들, 도망간 아이들이 보내는 한때, 그들이 막무가내로 붙들고 있는 믿음. <아름다운 시절>은 아무런 할 일을 찾아낼 수 없는 이 젊은이들의 무력한 현실을 서글프면서도 희미하게 빛나도록 담아냈다. 금요일 밤 Friday Night ▶ 월드 시네마/ 프랑스/ 클레어 드니/ 2002년/ 90분 ▶ 11월15일 오후5시 대영1, 11월22일 오후5시 메가박스6 충동적인, 그러나 예비된 일탈의 하룻밤. 모두가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추운 겨울의 금요일 밤은 특히 그렇다. 내일이면 남자친구와 동거에 들어가는 로르는 저녁 약속을 위해 차를 달려보지만, 교통 체증은 언제 풀릴지 알 수 없고, 인내심을 잃은 사람들은 도로 위에서 우왕좌왕한다. 그 혼란 속에 정지화면처럼 홀로 서 있던 남자가 로르의 차 안으로 들어오고, 그 밤에 그들은 헤어짐과 만남을 거듭한다. 대부분의 영화 속에서 대상이고 객체였던 여성의 자리를, 클레어 드니는 남성에게 물려준다. <아름다운 직업> <잠이 오지 않아> 등에서 남성의 육체에 대한 매혹을 숨기지 않았던 클레어 드니는, <금요일 밤>에서도 하룻밤 일탈의 자유와 주도권을 여성에게 쥐어주고 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할리우드 스타와 범죄전력

미녀 배우 위노나 라이더(31)가 절도 혐의로 최근 유죄평결을 받은 가운데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이 7일 그녀의 재기 가능성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범죄전력을 다룬 기사를 게재, 관심을 끌고 있다. 라이더는 평소에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기인(奇人)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지난해말 베벌리힐스 고급의류점에서 5천500달러짜리 옷을 훔친 그녀의 좀도둑 행각은 그녀에 대한 이러한 평판을 더욱 무색케 하고 있다. 할리우드는 한물간 배우들을 내팽개치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한편으로는 추락한 배우들에게 두세번의 기회를 주는 관습도 있다. 유죄평결을 받았지만 실형은 면할 것으로 보이는 라이더는 재기를 위해 영화 관계자들에게 그녀에 대한 신뢰감을 확신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리처드 기어와 주연을 맡은 <뉴욕의 가을(Autumn in New York)> 등이 극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등 그녀가 출연한 영화 흥행에도 이미 좋지 않은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녀의 복귀 가능성과 관련, 힛 뉴스(Heat News) 편집자이자 유명인사 해설가인 폴리 허드슨은 "그녀가 살인을 한 것은 아니므로 (할리우드에)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도 또한 그녀를 용서할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폭스사 출신의 제작자인 탐 세락은 “할리우드는 세상에서 가장 큰 가슴을 갖고 있다. 그녀는 훌륭한 배우이며,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이라며 복귀 가능성을 점쳤다. 휴 그랜트, 할 베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도 범죄 후 스타반열에 오른 대표적인 할리우드 배우들이다. 휴 그랜트는 지난 95년 매춘부와 관계를 가진 것이 알려져 명성을 쌓아가던 배우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뻔했다. 그러나 그는 래리 킹 등 텔레비전 토크쇼에 출연, 그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팬들과 여자 친구 엘리자베스 헐리에게 공개 사과를 했고, 팬들은 솔직한 그의 용서를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노팅 힐> <브리짓 존슨의 일기> 등의 흥행과 함께 A급 배우로 성장했다. 할 베리도 재작년 뺑소니 사고를 내고 도주한 혐의로 집행유예 3년, 1만3천500달러의 벌금 및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았지만 최근 2년연속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스타급 배우가 됐다. 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지난 96년 코카인.헤로인과 권총을 차량에 불법소지한 혐의로 체포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아 1년을 복역했으며, 재작년에도 코카인 불법소지로 체포됐다. 그러나 그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큰 상인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 내년 출시 예정인 영화 <노래하는 탐정(Singing Detective)>에 주연급 배우로 캐스팅됐다. 재판중에 영화 출연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라이더에게는 이번 재판이 그녀에게 다시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킬 최상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광주에 온 세 감독,삼색 데뷔기 [3] - 루크레시아 마르텔

재능이 길을 열어준 건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부터 찍고 보자는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방법은 맨땅에 헤딩하기만큼이나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데뷔기는 좀더 신중했고, 프로듀서의 조력도 있었다. 영화전공자가 아닌 그녀는 30대 중반에 데뷔를 마음먹고는, 효율적으로 투자자를 구하기 위해 영화제에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 →투자자 확보 →영화 완성 →베를린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 수상 →유럽 수출로 수지를 맞추고 두 번째 영화를 안정적으로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36살보다 젊어 보이는 이 미인 감독은 서툰 영어를 안타까워하면서 자기 뜻이 제대로 전달됐다 싶을 때까지 수차례 말의 방향을 바꿔가며 설명하는 열의를 보였다. -아르헨티나에 살면서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하면서 곁눈질처럼 애니메이션을 공부했지만, 실력이 안 됐다. 영화를 시작한 동기는 단편 시나리오가 상을 받으면서였다. 95년에 그걸 영화로 만들어 또 상을 받았다. 그뒤 장편 <늪>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걸 본 당시 텔레비전 프로듀서 리타 스탠틱이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에 내보라고 했다. 영어로 번역해야 하고, 우편으로 부쳐야 하고 귀찮아서 말려고 했는데 그가 계속 부추겨 보냈다. 그 시나리오가 당선되니까 돈줄을 찾기 쉬워졌다. 원래 당선되면 일본 와 <브뤼셀TV>가 지역 배급권을 사게 돼 있었고, 이들 외에 이탈리아-스위스 합작인 몬테치네마, 스페인 방송사, 프랑스 정부 지원금 등을 지원받았다. 또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지원금 20만달러를 받았다. 그래서 120만달러로 만들었다. 상업적인 영화가 아닌데도 큰돈을 모아 영화를 만든 건 행운이었다. -흥행은. =영화 완성뒤 2001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과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두곳에서 초청이 왔다. 아무래도 경쟁이 낫겠다 싶었고, 또 칸영화제 전에 개봉을 해야 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3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이런 성격의 영화치고는 성공인 셈이다. 또 베를린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17개국에 수출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보면 본전치기는 했다. -두 번째 영화는. =신앙심이 매우 깊은 10대 소녀의 이야기이다. 신이 자기를 여기에 살게 만든 이유가 뭘까 고민하던 소녀가 길거리에서 50대 남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한다. 소녀는 ‘아! 신이 나더러 저 남자를 구원하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는 거꾸로 그 남자를 쫓아간다. 제목은 <홀리 걸>로 그동안 수차례의 오디션을 통해 1300명 가운데서 두명의 소녀 배우를 뽑았다. 일종의 블랙코미디인데, 종교와 섹스가 섞이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 스캔들이 일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화제가 될 테니까 아무래도 흥행도 좀 낫지 않을까. 이미 유럽에서 투자자들을 확보했고, 시나리오도 완성된 상태다. 리타 스탠틱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는 뉴 아르헨티나 무비에 관심을 갖고 TV에서 영화로 뛰어든 뒤 많은 젊은 아르헨티나 감독들을 발굴해내고 있다. 부드럽고 섬약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루크레시아 마르텔은 원칙주의자였다. “보수적이고 인종편견이 심한” 북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보수성뿐 아니라 이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에 가깝고, 이 나라 영화가 미국영화에 눌리고 있는 사실을 개탄했다. -아르헨티나 경제난으로 영화인들도 힘들지 않은가. =힘들다. 90년대 들어 영화학교가 급증하고 많은 감독 지망생이 나왔지만, 99년 경제난 이후로는 특히 더 국내 영화산업이 그들을 소화해내지 못한다. 나는 운좋게도 경제난이 터지기 전에 <늪>에 착수해 정부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이 경제난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난 이전의 90년대 초·중반은 환영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은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미국의 식민지인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그대로 까발려지게 됐다. 이런 정체성을 확인하는 건 영화를 만드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영화의 내용면에서는 도움이 되더라고 실제로 돈 구하기는 힘들 것 아닌가. =돈이 없어도 아이디어가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 그러나 아이디어 없이 돈만 있다면 뭘 하겠는가. 우리가 정말 현명하다면 새로운 계기다. 어떤 삶을 선택할지 생각하게 하는 기회다. 아르헨티나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광주에 온 세 감독,삼색 데뷔기 [2] - 데이비드 고든 그린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아직까지 몸이 가볍다. 비싸게 굴지 않는다. 광주국제영화제쪽으로부터 한국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은 바로 다음날 가겠다는 대답을 보냈다. 광주 체류 중에도 인터뷰, 대담, 파티 등의 행사가 10∼20분씩 늦어져도 군말없이 앉아 있는다. 27살에 연출작이 한편밖에 없는 신인 감독으로서 당연한 태도라고 여겼다. 그러나 인터뷰를 마친 뒤,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165cm 남짓한 자그마한 체구의 이 젊은 청년은 1∼2년 뒤면 인터뷰하자고 명함도 내밀기 힘든, 할리우드의 거물 감독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돈을 모아 만든 첫 영화가 호평을 받아, 두 번째 영화가 발표되기도 전에 미라맥스 영화사와 세 번째 영화 계약을 맺었다. 스티븐 소더버그, 드루 배리모어 등이 제작자로 참여하는 큰 예산의 야심찬 프로젝트다. 이게 성공하면 그는 스티븐 소더보그, 쿠엔틴 타란티노의 뒤를 이어, 미국 인디 출신의 드문 스타감독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예술학교를 졸업한 98년부터 현재까지 4년간 그의 행보는 성공사례로 꼽기엔 너무 드문 행운의 연속이었다. -첫 작품 <조지 워싱턴>을 어떻게 만들었나. =졸업 전부터 1년 반 동안 7개 직업을 전전하면서 3만5천달러를 모았다. 카지노의 잡역부, 정신병원 청소부, 의료기구 회사의 주사기 포장작업, 마케팅 회사…. 문손잡이 만드는 회사에도 다녔는데 거기선 산을 다루는 일을 했기 때문에 보수가 높았다. 또 정자은행에 정자도 팔았다. 여자친구 아버지에게서 1천달러를 꾼 것 합해서 4만달러로 촬영을 시작했고, 편집한 것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투자를 받았다. 그래서 후반작업 때 6만달러를 더 얻어 전체 제작비는 10만달러 정도 들었다. (기존의 제사를 찾아가보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연줄이 전혀 없어서 시도하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자기 돈으로 만들면서 시네마스코프로 찍은 건 특이하다. =장비 대여회사에 가장 좋은 걸 빌려달라고 했더니, 시네마스코프용 장비를 빌려줬다. 또 내 첫 영화를 시네마스코프로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흥행은. → 원래 저예산이어서 돈을 벌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미국 내 80개 도시에서 개봉해 나 개인을 빼고는 영화에 참여한 모두에게 적절한 보수를 줄 만큼의 수익은 올렸다. 물론 비평가들의 찬사에 비하면 흥행은 훨씬 저조한 편이다. 그러나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에 배급이 이뤄지고 텔레비전 방영권도 팔아서 아직도 돈이 들어오고 있다. <조지 워싱턴>이 비평가들의 눈에 띈 건 2000년 베를린영화제에서였다. 이 영화제 영포럼 부문 상영을 계기로, 그해 토론토, 토리노, 스톡홀름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미국비평가협회가 주는 신인 감독상을 받아 같은 해 말 미국 개봉의 길이 열렸다. 곧이어 제작자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소니픽처가 두 번째 영화의 돈을 대겠다고 나서더니, 스티븐 소더버그가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왔다. -베를린영화제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 =처음 선댄스영화제에 필름을 보냈다가 탈락했다. 그런데 상영작 선정위원 중 한명이 영화가 무척 좋다며 베를린영화제쪽에 추천을 해줬다. 그뒤 베를린에서 연락이 왔다. -두 번째 영화는. =소니픽처에서 다음 아이템이 있냐고 먼저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내가 쓴 시나리오에, <조지 워싱턴>의 스탭과 배우 그대로 참여하는 <올 더 리얼 걸스>를, 제작비 200만달러를 미리 받고 찍었다. 소니픽처는 일년에 몇편의 저예산 영화를 제작해왔다. 그래도 통상 완성된 영화의 배급권을 사는데 이번에는 먼저 돈을 줬다. 미친 게 아닌가 싶다.(웃음) 촬영은 다 끝났고 내년 2월 개봉예정이다. -첫 번째 영화 10만달러에서 두 번째 영화 200만달러, 세 번째 영화는 미라맥스 제작인 만큼 예산이 더 클 것 같다. =64년에 쓰여졌는데, 저자가 자살한 뒤인 88년에 발표된 소설이 있다. 존 케네디 툴의 <바보 동맹>(A Confederacy of Dunces)인데, 이걸 영화로 만들려고 스캇 크레이머라는 프로듀서가 22년 동안 매달렸다. 거기에 스티븐 소더버그, 드루 배리모어가 제작자로 가세해 나를 찾아왔다. 원래는 소더버그에게 감독을 맡기려 했으나 그가 거절하면서 나를 떠올린 것 같았다. 이제까지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디렉터-라이터’만 생각했는데, 믿을 만한 책이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미라맥스에 가지고 가 계약을 맺었다. 시나리오는 완성됐고, 캐스팅과 예산을 짜고 있는 중이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나름의 인지도가 있는 한 배우를 내가 제안했더니, 그 배우보다 비싼 스타로 가야 한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예산이 커질 것 같다. 나는 프로젝트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데.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의대 교수이고 세 누나가 모두 교직에 종사한다. “아카데믹한” 집안 분위기에 어긋나게, 막내인 그만 “학교 수업 빼먹고 여행 다니며” 자유분방하게 자랐다. -엄청난 행운아다. =내가 보고 싶어서 만든 걸,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행운이지만 세 번째 영화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전 같으면 내 취향대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세 번째 것은 제재가 많지 않겠는가. -미국 독립영화에서 모처럼만에 큰 기회를 맞은 감독인 것 같다. 그런데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이는 너무 빨리 성공해서 스트레스가 많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가 절대 성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나는 느슨할 수 있는 게 좋다. 다음에는 제작을 할 수도 있고 음악을 맡을지도 모른다. 또 다른 감독 영화의 촬영을 할 수도 있다. 테렌스 맬릭을 존경하는데, 그는 조류관찰자이면서 야구도 잘하고 철학교수이다. 영화는 세편밖에 안 찍었지만 모두 좋지 않은가. 그렇게 쿨한 게 좋다.

<야인시대>,<장희빈>으로 부활한 그들의 가상대화

* <야인시대> SBS 월·화 밤 9시55분* <장희빈> KBS 수·목 밤 9시55분 김두한: 안녕하쇼, 나 김두한이요. 장희빈: 과연 배짱깨나 두둑한 인물이로구나. 네가 한때 조선의 국모였던 내게 이다지도 방자한 태도를 보인단 말이냐. 김두한: 이거 왜 이러쇼. 지금은 21세기요. 17세기에 살았던 사람이라 잘 모르나 본데, 양반이니 상놈이니 하는 말은 오래 전에 사라졌어요. 요즘은 돈 많고 유명한 사람이 대접을 받는다오. 나는 월요일과 화요일, 희빈 마마는 수요일과 목요일에 이 나라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처진데, 내가 마마랑 맞장을 못 뜰 이유가 없지. 21세기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스타’라고 부르는데, 그건 알랑가 모르겄수. 장희빈: 만나는 사람들마다 맞장뜨는 걸 업으로 삼더니, 네가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다. 내가 살아생전보다 죽고 난 뒤에 더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나라고 왜 모르겠느냐. 남인과 서인이 서로 물고 뜯는 와중에 전하(숙종)마저 내게 등을 돌리고 결국 억울하게 죽음을 맞았는데, 그나마 후세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어 조금은 위안이 되는구나. 김두한: 생각해보면 마마도 참 장하쇼. 대체 몇 번째요 방송만 따져도, 이 땅에 텔레비전이 보급된 뒤에 가장 자주 등장한 인물이 아닌가 싶은데. 윤여정, 전인화, 정선경 같은 연기자들이 마마의 분신으로 활약했지, 아마 이번에 나오는 김혜수라는 배우는 한번 출연하는 데 700만원이나 받는다던데, 마마의 몸값이 그야말로 금값이구려. 장희빈: 내 삶이 허구의 형식을 빌려 인구에 회자된 것이 어찌 방송에서뿐이겠느냐. 심지어 내가 두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 동안에도, 나를 소재로 한 소설이 발표되었더니라. 웬수 같은 서인놈들 중에 김만중이라고 글깨나 쓰는 인물이 있었는데, <사씨남정기>라는 소설에서 인현왕후를 편들고 나를 몹쓸 첩으로 몰아대지 않았겠니. 그때부터 줄곧 인현왕후는 어질고 후덕한 왕비로, 나는 야심 많고 질투 심한 첩으로…, 어리숙한 숙종의 혼을 빼놓고 종사를 어지럽힌 못된 여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느니라. 요새는 이런 여자를 ‘팜므파탈’이라고 하는데, 무식한 네가 그걸 알는지 모르겠구나. 김두한: 역시 희빈 마마시구려. 농담 한번 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으니. 그래도 이번에 방송하는 <장희빈>은 좀 다를 거라고 들었수. 장희빈: 시대가 변하질 않았느냐. 가부장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는 남성중심 사회에서야 내가 ‘현모양처 신드롬’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 시청자들도 보는 눈이 생겼느니. 날 때부터 이마에 ‘악녀’라고 써붙이고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다더냐. 중인인 아버지와 그 집 종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남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대주던 숙부의 간계로 궁궐에 들어갔고, 당시 20대였던 전하를 만나 한때 좋은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나 같은 천출이, 남인과 서인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궐 안에서 제 명대로 살자면 독한 맘을 품지 않을 수가 있었겠느냐 남정네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평범함을 거부했던 한 여인의 삶이 얼마나 신산하고 덧없는 것이었는지, 이번에는 좀 제대로 보여주었으면 좋겠구나. 자네야 늘 영웅으로 묘사되니 나 같은 설움은 없겠구먼. 김두한: 천만의 말씀이요. 애초에는 “인간 김두한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겠다”고 하더니, 내가 종로바닥 평정하는 과정에서 시청률이 50%까지 오르니까 그 부분을 주야장창 늘려서 벌써 두달 넘게 싸움질만 하고 있수. 이런 이야기를 할 거면서 왜 굳이 나를 불러냈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강호를 평정하는 무사를 등장시킬 것이지. 마마는 시대가 변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다니까. 시청자들은 우리 삶의 한 단면만 좋아하거든. 마마도 안심하지 마세요. 희빈 마마가 인현왕후와 맞장을 뜨고, 서로 시기 질투하는 부분에서 시청률이 높아지면 재해석이고 뭐고 물거품이 될 테니. 장희빈: 허허, 자네가 품은 한이 있었던 게로군. 그래도 그리 꽁한 마음을 먹을 일만은 아니네. 방금 자네가 말한 그 부분이, 우리가 끊임없이 이야깃거리가 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일제시대에 종로를 주먹으로 평정하고,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양반 출신의 중전과 대적해 승리하고. 그래도 자네와 나는 자부심을 가져야 해. 장희빈과 김두한에 대한 드라마가 이처럼 끊임없이 만들어지면, 드라마 속에서 우리를 묘사하는 방식이 그 시대를 읽는 잣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그게 후손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게야. 김두한: 희빈 마마가 이렇게 너그러운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네. 근데 이걸 어쩌지 벌써 하야시와 맞장뜰 시간이요. 오늘은 이쯤 해두고, 다음에 또 찾아뵙겠수다. 장희빈: 그러시게. 나도 갈 길이 멀구먼. 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

김은형의 오!컬트 <트윈픽스>

언제나 양지를 지향하는 나는 “음울한”, “기괴한”, “모호한” 따위의 말을 싫어한다. 당연히 그런 분위기도 싫다. “아늑한”, “청량한”, “유쾌한” 등의 말로 수식되는 그런 분위기가 좋다. 전에도 밝힌 것처럼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은 온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보고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트루먼의 동네나 레이스 커튼 달린 집에서 레이스 달린 앞치마를 입고 다정하게 “Honey, I’m Home”을 외치는 남편을 기다리는 ‘플레전트 빌’이다. 그런데, 왜! 왜! 왜! 나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좋아하는 걸까. 이렇게 말하면 ‘잘난 척하고 있네’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다. 내 수준 알면서 왜 그러는가. 린치가 작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작가주의 영화를 보고 나와서 사람들이 품평을 할 때면 괜히 시계를 보며 황급히 자리를 뜨는 나로서는, 모호하고 난해한 린치 영화에 대한 나의 호감이 모호하고 난해하기만 하다. 내 인생 양지였을 땐 안 그랬다. <광란의 사랑>을 보고 “이 뱀가죽 재킷은 내 자유의 상징이다”라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대사를 흉내내며 낄낄대기는 했지만 감동 수준은 전혀 아니었고 <블루 벨벳>을 보고나서는 “감독, 변태 아니냐”라는 말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다. 정말 그때까지는 내 삶도 남부럽지 않게 청량했던 것이다. 내가 데이비드 린치를 좋아하게 된 건 텔레비전 시리즈 <트윈 픽스>를 보면서였다. 92년쯤 매주 토요일 밤 10시에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장면인데 나는 첫 장면부터 완전히 압도돼버렸다. 멀리 떨어지는 폭포수를 어둡게 잡던 카메라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조앤 첸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멍하니 창문을 보고 있다. 거기에 깔리는 바달라멘티의 음울하고 불길한(그러나 너무나 멋진!) 테마음악. 뒤로 이어지는 로라의 창백하고 아름다운 시체와 붉은 커튼 뒤의 거인과 난쟁이, 질식할 것 같은 교외의 풍경. 모든 건 낯설고, 섬뜩했고, 그리고 매혹적이었다. 린치의 영화가 그렇듯 내 열광의 전후좌우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뒤로 가면서 이야기는 좀 황당하기도 하고 튀기도 했지만(전체 시리즈를 여러 감독이 나눠서 연출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당시 심야 라디오 영화음악 프로에 게스트로 나오던 정성일씨한테) 린치가 직접 연출했다는 1, 2, 3부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중에 영화로 나온 <트윈 픽스: 불이여 나와 함께 걸어라>는 맥빠지는 수준이었다.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다소 잦아들었던 나의 열광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면서 되살아났다. 그리고 조금은 깨달았다. 내 열광의 정체를. 영화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한 장면이 내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배우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LA에 온 베티가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까지 가는 짧은 순간이었는데 이 평범한 하나의 중간 컷을 린치는 기묘하게 꼬아서 지독하게 낯설고 황량한 풍경으로 만들어놓았다. 분석적으로 그의 작품을 읽을 능력은 없지만 나에게 그의 영화가 매혹적인 건 이런 장면들 때문인 것 같다. 왜 그런 장면들을 좋아하는데 라고 굳이 묻는다면, 글쎄… 아마 내 인생 청량한 시절 다 끝났기 때문이지라고 대답할밖에. 김은형/ <한겨레> 기자 dmsgud@hani.co.kr

<본 아이덴티티>의 주무대 파리에 대한 아저씨의 단상

지하철 삼성역에서 메가박스까지 가는 땅속길은 지금도 내게 미로다. 코엑스몰이라는 언더그라운드 상업도시는 이방인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할 만큼 거만하다. 간신히 찾은 메가박스는 여느 주말처럼 붐볐다. 아내와 나는 매표구에 다다르기 위해 40분 넘게 서 있었다. 매표구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망설였다. 그 이름도 찬란한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와 처음 듣는 이름인 더그 라이먼의 <본 아이덴티티> 사이에서. 느려터지게 줄어드는 줄 속에서 우리는 당초 <본 아이덴티티>를 골랐었다. 그런데 매표소 앞에 이르자 채플린이 그 명성의 힘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위대한 독재자>를 포함해 채플린 영화를 이미 대부분 본 터였지만, 그건 오로지 브라운관을 통해서였다. 그러니 매표소 앞의 망설임은 작은 스크린으로 이미 본 명품을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느냐, 아니면 이왕 돈 들여 시간 들여 보는 건데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는 ‘쌤삥’ 영화를 보느냐 사이의 망설임이었다. 매표원이 건네는 재촉의 눈길 속에서 망설임이 길 수는 없었다. 아내가 결단을 내렸고, 내가 맞장구쳤다. 우리는 다시 2시간 반을 기다려 <본 아이덴티티>를 봤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다. CIA를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체하면서도 실상 그 전능함을 선전하는 꼼수,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자기 과거의 단서를 찾을 때마다 어김없이 닥쳐오는 위험, 어울려 보이지 않는 남녀의 우연한 만남을 필연적 사랑으로 바꾸는 조홧속 등 그 상투적 코드들이 주는 기시감(旣視感)에도 불구하고 <본 아이덴티티>는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였다. 처음 이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줄곧 그것을 born identity, 곧 ‘타고난 정체성’으로 해석했다. 그것이 본(Bourn)이라는 사나이의 아이덴티티를 가리킨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영화를 보면서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말놀이일 터이다. 그러니 <본 아이덴티티>(Bourn identity)는 본이라는 사내의 ‘타고난 정체성’(born identity)에 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본(本)아이덴티티로도 읽힌다. 아무튼 영화 속의 제이슨 본은 기억을 잃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늘 본능적으로 사위를 경계하고 민첩하게 위기를 벗어난다. 타고난 CIA 최정예요원답게. 그의 이름이 가장 유명한 살인면허 소지자 제임스 본드와 닮은 것도 우연 이상일 터이다. 기억 상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언젠가부터 술자리에서 ‘필름이 끊기는’ 일이 잦다. 이게 알코올 중독의 초기 증세라는 말을 들은 듯도 하다. 술을 마시다가 필름이 끊긴 이튿날엔 불안과 자괴로 우울하다. 서로 다른 이름의 자기 여권들 앞에서 본이 난감해하듯, 술 먹은 이튿날에는 주머니 속에서 나온, 모르는 사람들의 명함과 메모 때문에 난감하다. <본 아이덴티티>의 주무대는 파리다. 30대에 바람이 들어 다섯해 동안 그 도시에 산 적이 있다. 그 바람의 기원은 어린 시절 텔레비전의 케미슈즈 광고에서 인상 깊게 보고들은 에펠탑과 <파리의 하늘 밑>이라는 노래인 것 같다. 자라면서 나는 그 도시에 프랑스 혁명과 파리코뮌과 레지스탕스의 이미지를, 앞에 신(新)자나 반(反)자가 붙은 역사학 철학 소설 연극의 이미지를, 그리고 구조주의니 해체주의 하는 기괴한 주의들의 이미지를 보탰다. 실상 이것은 파리에 대한 상투적 이미지다. 그리고 이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은 프랑스인들만이 아니라 미국인들이기도 하다. 몇 개월 전 케이블로 본 한 미국 방송은 파리를 “2000년 동안 술과 연애에만 몰두해온 도시, 가끔 제 정신이 나면 예술과 혁명에 몰두했던 도시”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술과 연애의 도시 파리’라는 상투에 가장 충실한 문학 작품 가운데 하나가 헤밍웨이의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일 터이다. 술과 연애로 젊음을 탕진하는 소설 속의 미국인들, 그 ‘길 잃은 세대’는 10대의 내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 소설의 영향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그럴듯하게 생각된 영미인들은 대체로 파리를 거쳐간 사람들이었다. 에즈라 파운드, 헨리 밀러,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코트 피츠제럴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제임스 조이스, 맨 레이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 ‘파리의 미국인들’이 진짜 파리 사람들과 어울리며 빚어냈다는 1910~20년대 파리 풍경은 내 상상력 속에서 헛바람으로 한없이 부풀었다. 그러고보면 <본 아이덴티티>도 파리의 미국인들 얘기다. 술과 연애 얘기라기보다 음모와 배신과 살인, 총싸움, 몸싸움 얘기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모든 세대가 그 당사자들에게는 길 잃은 세대라면, 영화 속의 제이슨 본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정말로 길을 잃지 않았는가. 그 길 잃은 본이 파리의 길을 헤맬 때, 그 도시의 낯익은 거리들이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이방인들의 파리 애호는 대체로 허영심과 뗄 수 없다. 내 파리 애호도 그럴 터이다. 그러나 나는 이 소박한 사치를 거두고 싶지 않다. 길 잃고 망가진 40대 아저씨가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사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고종석/ 자유기고가 aromachi@hk.co.kr

영화평론가 정성일,십대영화의 어떤경향에 주목하다(2)

정성일 영화를 처음 만들어본 건 언제예요 조대완 본격적으로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전에, 청소년영상제작캠프에서 3박4일 동안 6분짜리를 여럿이서 만든 적이 있고, 그 단체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작업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정성일 <음악에>를 같이 작업했던 친구들은 어떤 친구들이에요 조대완 <음악에>는 완전히 혼자서 했어요. 원래는 학교 영화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하려고 했는데 촬영지가 진도이다보니, 친구들 집안에서 반대를 했죠. 여름방학 때 진도에 가서 혼자 찍었어요. 정성일 진도에는 누가 계셨나요 조대완 어머니가 계세요. 몸도 좀 안 좋으시고 해서 도시에 살기가 불편하다, 하시던 차에 진도에 우연히 가게 되셨고, 그곳이 좋아서 아예 살고 계세요. 정성일 그러면 영화구상은 진도에서 한 건가요 조대완 어머니가 진도에 계시고 그곳 풍경이 좋고 하니까 거기서 영화를 찍어볼까, 했어요.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진도에 가서 썼고요. 정성일 촬영은 몇회에 걸쳐 했나요 조대완 집에 있는 장면은 하룻밤을 새워서 일산 집에서 찍었고요, 진도와 완도를 오가며 찍었는데, 진도 하루, 완도 하루 이렇게 이틀 걸렸어요. 콘티없이 자전거 바구니에 카메라 넣고 삼각대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여기 경치 좋다’ 그러면 즉석에서 자전거를 멈추고 삼각대 세우고 찍고, 그렇게 했어요. 정성일 <서편제>를 제일 처음 본 건 언제였어요 조대완 제가 1985년생이거든요. <서편제>는 굉장히 어렸을 때 개봉한 영화라서 극장에서는 못 보고, 나중에 텔레비전에서 봤어요. 처음엔 별다른 감흥은 없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학교에서 다시 볼 기회가 있었어요. 국어교과서에 이청준의 <선학동 나그네>가 있어서 수업시간에 <서편제>를 교실에서 단체관람했죠. <서편제>는 원래 보고 싶던 영화였어요. 정성일 원래 왜 보고 싶었나요 조대완 제가 학교에서 영화동아리를 만들면서 동아리 이름도 ‘bleeding eyes’(피흘리는 눈)이라고 지었어요. 청소년들이 가진 한 같은 것을 영화로 표현해보자는 의도에서였어요. <서편제>가 예술을 위해 한을 품는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정성일 <음악에>도 그런 십대의 한이 들어 있는 영화인 셈인가요 조대완 음, <음악에>는 단소는 못 불고 피아노는 잘 치는 학생의 얘기예요. 단소 시험을 앞둔 학생이 연습은 않고 걱정만 하다가 <서편제>를 보고 감명을 받은 뒤 <서편제>의 꿈속으로 빠져드는 내용인데, 꿈이 ‘너 한번 한을 느껴봐라’ 하는, 일종의 벌 같은 거죠. 정성일 그 내러티브가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조대완 <서편제>에서 주인공들의 여정은 한의 길이잖아요. <음악에>에서 저는 주인공이 <서편제>의 여정을 따라 길을 걷는 것을 우리 음악을 소홀히 여긴 것에 대한 조상들의 벌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정성일 한치고는 영화가 너무 예뻤던 것 같지 않나요. 이를테면 임권택 감독은 끝내 한을 풀어 없애지 않잖아요. <음악에>는 그게 그냥 쉽게 풀려버린 게 아닌가. 조대완 만약 주인공이 나중에 단소 연주를 잘하게 됐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꿈에서 깨어나고 나서도 단소를 잘 부는 건 아니거든요. 대신 피아노를 치는데 가야금 소리가 나오는 장면으로 여운을 남겼죠. 정성일 국악에 대한 관심이 많나봐요. 국악에 대한 관심이 어디서 시작됐어요 조대완 어머니가 국악을 하세요. 정성일 그럼, 한편으로 <음악에>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면도 없지 않아 있겠네요. 조대완 네, 그런 면이 있어요.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하시는 국악보다 대중음악을 좋아했는데, 계속 국악을 많이 듣는 환경 속에서 살다보니까 국악이 좋아지더라구요. 지금은 여러 종류의 음악을 폭넓게 듣는 편이에요. 정성일 <음악에>에서 다른 종류의 음악을 만나게 한 것도 취향의 반영일 수 있겠네요. 그런데 그렇다면,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음악을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영화를 택한 이유는 뭐예요. 음악을 본인이 해볼 생각은 없었나요 조대완 네, 그런 생각은 없었어요. 음악을 직접 하기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았고, 연극영화쪽은 직접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하나의 길, 두 가지 풍경 정성일 어떤 영화를 좋아해요 조대완 제 영화에 대한 관심은 액션블록버스터영화로 시작됐어요. 오우삼 감독을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좋아했는데, 오우삼 감독이 샘 페킨파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샘 페킨파 영화를 보게 됐어요. 샘 페킨파 감독의 <와일드 번치>를 굉장히 재밌게 봤어요. 정성일 샘 페킨파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 속에서 <서편제>라는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샘 페킨파와 임권택, <와일드 번치>와 <서편제>는 어떻게 만날 수 있나요 조대완 글쎄요…. (웃음) 거의 출발점이 다르죠. 정성일 보통은 첫 영화를 찍을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따르게 되는데, <음악에>에서 샘 페킨파의 스타일은 거의 느낄 수 없었어요. 조대완 액션영화는 찍기가 기술적으로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액션 연출에 소질도 있질 않을 뿐더러…. 제가 사실은 몸을 잘 못 써요. 굉장히 게으르고 느릿느릿해요. 정성일 조대완 학생이 생각하기에 임권택 감독은 어떤 사람인 것 같나요. <음악에>라는 영화에 <서편제>를 끌어 안았을 때에는, 조대완 학생 방식으로 그 영화의 내면을 봤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조대완 임권택 감독님 영화는 <서편제> <춘향뎐> <장군의 아들> 딱 3편밖에 안 봐서…. 정성일 98편 다 보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몇명 안 돼요. (웃음) 제가 사실 임권택 감독님을 계속 인터뷰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음악에> 얘기도 했어요. 감독님이 막 웃으시더니 “그 한번 영화를 보고 싶구만” 하시더라구요. 제가 한번 기회가 닿으면 감독님께 보여드릴 생각인데. 조대완 임권택 감독님 영화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영상과 이야기가 어떻게 그렇게 마음에 와닿을까. 왠지 모르게 끌려요. 정성일 오히려 김지운이나 허진호나 박찬욱 감독 영화들이 더 끌리지 않구요 조대완 학생 세대의 영화연출 지망생들과 얘기해보면 주로 그 이름들이 거론되지 임권택 감독 이름이 나오지는 않거든요. 그런 것은 조대완 학생이 처음이에요. 정성일 <서편제>의 그 길을 실제 봤을 때 느낌이 어땠어요 조대완 글쎄, 왜소해 보였어요. 굉장히 먼 길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 안 길어 보였어요. 정성일 <서편제>에서 그 장면을 봤을 때 느낌은 조대완 그 장면만 딱 떼어놓고서는 사실 주인공들간의 관계를 볼 수가 없어요. 동호와 유봉, 송화와 유봉, 송화와 동호의 복잡한 관계들이. 하지만 힘든 길을 가는 와중에 ‘놀아본다’는 것이 <서편제>에서 우리 음악의 힘을 느끼게 하는 대목인 것 같아요. 정성일 촬영지에서는 혼자 돌아다녔나요, 아니면 어머니랑 같이 다녔나요 조대완 혼자 다녔어요. 정성일 좀 이상한 질문일 수 있지만, 어머니가 국악인이고 하면, 여행다니는 주인공을 어머니로 해볼 생각은 안 했어요 조대완 애초부터 그 인물(본인이 직접 주인공 연기를 했다)을 쓰고 싶더라구요. 다른 생각은 하질 않았어요. 정성일 <음악에>에서는 <진도아리랑>을 왜 안 썼나요 조대완 사실 제가 <서편제>의 그 장소를 등장시키는 게 굉장히 위험한 수였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서편제>가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장소까지 따라하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거든요. 정성일 근데도 그렇게 한 이유는 조대완 같은 길이지만, 그 길에서 인물이 하는 행위가 <서편제>와 <음악에>는 서로 다르니까요. <서편제>에서는 세 인물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그 길을 가지만, <음악에>에서는 주인공 한명이 힘들고 지치고 주저앉으면서 그 길을 걸어오죠.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핸드폰속에도 영화제가 ?

모바일 영화 첫 선… 버스 개조한 모바일 영화관 등 이벤트도 풍성 우리는 지금껏 영화관이나 TV, 인터넷을 통해서만 영화를 접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매체를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다소 촌스럽다는 얘기를 들을지 모른다. 손에 쥐고 다니면서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바일 영화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모바일 영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영화제의 공식 스폰서인 SK텔레콤(대표 표문수)이 영화제 기간인 11월14일부터 22일까지 모바일 영화를 볼 수 있는 버스를 마련했다. 모바일 영화를 볼 수 있는 이 버스는 테이블과 원형의자까지 준비된 응접실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각 좌석의 앞쪽에 강아지 모양의 주머니가 있어 그 속에 휴대폰을 넣어둔 채 영화를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발판까지 마련돼 있어 버스를 운행하는 내내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국내 최초로 제작된 모바일 영화 <달걀과 건달>, <마이 굿 파트너>, <프로젝트X> 등 3편의 상영시간은 각 20분∼30분이다. 또“영화는 역시 스케일로 봐야 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예측을 불허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달걀과 건달>은 이성진씨의 건달 연기가 인상적이다. 모바일 영화는 12개 정도의 시퀀스로 나누어져 있어 휴대폰 버튼을 누를 때마다 1시퀀스씩 볼 수 있도록 돼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시퀀스가 끊어지지만 오히려 다음장면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 오히려 시간가는 줄도 모른 채 영화의 세계에 푹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모바일 영화는 버스를 개조한 모바일 영화관과 PIFF광장의 미디어 센터에서 만날 수 있다. 모바일 영화관은 14일부터 22일까지, 부산 남포동 영화의 거리(피닉스 호텔)앞에서 해운대 메가박스까지 매일 아침 9시에서 저녁 8시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물론 이용은 무료. 뿐만 아니라 푸짐한 상품을 받을 수 있는 퀴즈 게임과 함께 공짜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어 있다. PIFF광장에 마련된 미디어 센타에서는 SK 텔레콤이 제작한 3편의 영화와 함께 70여편의 영화제 출품작 예고편과 작품 소개를 휴대폰을 통해 동영상과 텍스트로 서비스한다. 모바일 영화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계속되는 모바일 영화에 대한 세미나를 찾아 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세미나에서는 3편의 모바일 영화 시사회와 함께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유지나 교수, 서울예대 강한섭 교수와 박종원 감독, 이현승 감독 등의 유명 감독들의 주제발표와 모바일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한 감독들과의 토론의 장도 마련된다. 글/ 티티엘 최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