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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타이형 블럭버스터,<방라잔>

■ Story 1765년 미얀마의 왕권을 잡은 망그랑 왕은 그의 반대 세력을 지원하는 야유디야를 공격하기 위해 두개의 부대를 출정시킨다. 그중 하나인 네메아오의 부대는 방라잔 마을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친다. 방라잔 사람들은 뛰어난 전사인 잔을 찾아 마을 사람들을 통솔해줄 것을 부탁한다. 방라잔 사람들은 미얀마군의 대포에 맞서기 위해 야유디야에 대포 원조를 요청하지만 실패한다. 큰 전투가 다가올 즈음, 대포가 도착하지만 그것은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방라잔 사람들은 스스로의 칼과 창으로 마을을 지켜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 Review 타이, 야유디야 시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방라잔의 활약은 수세기에 걸쳐 문학과 영화, 텔레비전 시리즈로 전해져왔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왜 싸우는지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으며, 그 이유를 알고도 감정의 파고를 타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이인들에게 이 소재는 너무나 낯익은 역사의 교과서일 것이다. 지금도 마찰을 빚고 있는 미얀마와의 관계 속에서 이 영화는 타이인들의 민족적 의지를 자극하며 타이 내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현실의 문제가 역사의 한장을 빌려와 재생되고 있으며, 그 민감함이 산업적 흥행으로 보증받은 셈이다. 타닛 감독은 묘사의 초점을 방라잔 사람들과 미얀마군 사이의 대립에 맞추어놓았다. 미얀마군의 잔인한 학살장면과 그에 저항하는 방라잔 사람들의 정의로운 투쟁이 이분의 선을 긋는다. 여기에서 타이인들은 의문의 여지없이 한편에 서려 할 것이다.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그 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타닛 감독은 쉽게 그저그런 흔한 싸움처럼 보일 수 있음을 염려하면서도, 이것이 정말 벌어진 일임을 각인시키면서도(처음과 끝을 열고 닫는 설명들), 한편으론 캐릭터의 전형화와 상업영화로서의 구색들을 갖추어놓는 것에 많은 신경을 쓴다. 격렬하게 벌어지는 전투장면들, 특히 방라잔 사람들이 전멸당하는 장면들은 생생한 전투를 실감시키기 위해 많은 인력과 장비가 동원되었음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전투장면말고도 좀더 작은 로맨스가 있고, 로맨스 사이사이에는 그보다 또 좀더 작은 부분의 웃음이 있다. 누구도 따를 자가 없는 뛰어난 전사, 술에 곤죽이 되어 있으면서도 용기백배한 반골적인 전사, 남자들에 못지않은 열정을 지닌 여전사, 이들에 맞서는 잔인하게 추상화된 미얀마군, 그리고 어김없는 희생자들이 방라잔의 전투현장을 메운다. 결국 방라잔은 미얀마군에 의한 몰살의 현장이 되고, 그들의 정의로움과 로맨스와 웃음은 미얀마군조차 칭송할 정도였다는 영웅적인 겨레의식의 수준으로 고취된다. 현재도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의 맥락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전형적인 대립의 서사구조가 실력있는 솜씨로 담아져 있다는 점에서, 그 둘이 취합되어 상업적인 환호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아마도 ‘타이형 블록버스터’쯤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정사헌/ 영화평론가 taogi@freechal.com

대통령 후보 릴레이 인터뷰를 끝내며

대통령 후보들의 영화·문화정책을 묻는 릴레이 인터뷰를 약속대로 이번호로 종결한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 사이의 단일화가 이루어져, 19일의 선거에 나설 후보는 그 가운데 셋이 되었는데, 4주에 걸쳐 나간 기사의 형식과 분량은 동일하지 않았다. 그것은 인터뷰의 형식을 따른 것이었다. 서면인터뷰냐, 직접 대면한 경우냐를 기사에 반영했다. 활자로 얻은 답일 경우, 실제 만난 것처럼 분식하는 일은 피했다. 그것이 취재의 노고나 우리 매체의 ‘권위’를 과대포장하는 허위를 벗어나는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육성을 서면답변보다 무겁게 대했다. 추상적 의견에 육성, 그리고 존재의 무게를 합산한 결과였다. 연속인터뷰의 지상중계를 마치며 둘러보니 이번 선거는 영화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통령선거가 되어 있다. 여당이 전국구 의석 하나쯤을 문화예술단체의 장에게 배정해주고, 상대 후보의 선거를 돕는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던 문화는 이제 정말 퇴장당한 상태다. 영화인들이 운동과정의 ‘화동’, 아니 ‘꽃’의 역할을 하던 시대를 종영하고, 각자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과 희망을 행동으로 적극 표현하고 흐름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발전’의 한 양상으로 보인다. 영화인들은 효순과 미선, 두 여중생의 압사사건의 무죄평결을 규탄하며 소파개정을 촉구하는 도도한 물결에도 합류하고 있다. 박찬욱, 류승완 감독이 광화문에서, 김지운 감독이 영화촬영현장에서 왜, 어떻게 머리를 깎았나를 조종국씨가 ‘충무로 다이어리’에서 고백하듯 보고했다. 한국영화의 정신이 한국의 현실과 유리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은 당연히, 우리들의 씨네스코프가 되었다. 우리들의 관심은 다시, 텔레비전 토론과 정치광고들이 대규모 유세를 대체하는 오늘의 선거로 돌아간다. 한쪽은 1988년 미국 대선에서 그 효용을 과시한 이른바 네거티브 광고와 전략을 택했고, 또 한쪽은 21세기와 상대하겠다며 포지티브 전략을 택했다. 그 효과는 앞으로 관계전문가들에게 흥미있는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진위판단과 비평은 오늘 당장 해야 할 일이다. 연구업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19일의 선택을 위해서.

역사의 한 장 그대로… 타이인의 나라지키기 ‘방라잔’

2000년 개봉돼 타이에서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방라잔>이 국내에 개봉된다. <잔다라>, <아이언 레이디>에 이어 국내에 세번째로 소개되는 타이영화로 18세기 전쟁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763년 고대 타이의 수도인 아유디야는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버마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버마의 망그라왕은 1775년 그의 반대세력을 지원하는 아유디야를 물리치기 위해 대부대를 출정시킨다. 원정군 가운데 하나인 네메아오 장군의 부대는 아유디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방라잔 마을 사람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힌다. 수세기 동안 문학과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던 방라잔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3·1운동처럼 타이 국민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며 또한 가장 극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타닛 지트누쿨 감독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대규모의 액션스펙터클로 스크린에 옮겨놓았다. <방라잔>은 제작과 흥행 규모에서 최초로 기록될 만한 타이형 블럭버스터영화다. 상영시간의 상당부분을 전투장면에 할애하는 이 영화는 방라잔 사람들의 목숨을 건 투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가족을 버마군에게 잃고 도적이 돼 살아가던 아이잔을 비롯해 술주정꾼 아이인, 노인과 여성들까지 모든 마을사람들이 버마군의 집요한 괴롭힘 속에서 용맹스런 전사가 된다. 버마군의 여덟번째 공격에서 방라잔 사람들은 어른아이 할 것없이 마지막 저항을 벌이지만 결국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수만명의 엑스트라와 물소 떼를 동원해 연출한 마지막 전투장면은 쓰러져가는 주인공들을 느린 동작으로 잡아내며 사실성과 함께 비장함을 이끌어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방라잔을 접수한 버마의 장군까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용기를 칭송한다. 주인공 아이인을 연기한 위나이 크라이부트르는 지난해 <방라잔>과 함께 자국영화 붐을 일으켰던 <낭낙>에서도 주연을 한, 타이에서 가장 주가높은 배우다. 13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장화,홍련><살인의추억> 등 프로덕션디자인의 매력 <4>

<지구를 지켜라!>비틀리고, 휘고, 엇물리고 어떤 영화‥‥‥‥‥‥‥‥ 지구가 크나큰 위험에 처했다. 개기월식 때면 외계인들은 지구를 파괴할 것이다. 오직 한 사람, 병구만이 이 사실을 알고 지구를 수호하려 한다. 이를 위해 외계인으로 추정되는 강 사장을 납치해 잔인하게 고문하는 병구는 과대망상 환자이거나 편집광처럼 보인다. 강 사장은 병구가 예전에 다니던 공장의 사장으로, 병구의 모가지를 자른 장본인이며, 병구 어머니를 혼수상태에 이르게 한 주범이기도 하다. 병구가 마약 중독자라는 점으로 짐작건대 외계인과 지구파괴 음모에 관한 그의 생각은 망상의 발로처럼 보이지만, 그의 논리는 꽤나 정연하고 구체적이다. 이처럼 <지구를 지켜라!>는 납치한 사람과 납치당한 사람의 대결에 관한 이야기이며 망상과 현실의 괴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장준환 감독의 야심은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의 화살촉이 노리는 과녁판에는 인류의 역사에서부터 지금의 사회제도까지를 포함하는 ‘전 지구적’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미지 컨셉‥‥‥‥‥‥‥‥ 장준환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습도와 더위, 그리고 콘트라스트를 화면 안에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전개되는 병구네 오두막의 지하실은 어두컴컴하며 음습한 데 반해, 오두막의 외부는 신록의 산뜻한 녹색을 보여주는 등 전반적으로 강한 대비를 보여주겠다는 의도. <양들의 침묵>의 지하실 분위기나 <쎄븐>의 강한 콘트라스트 등은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미지. 후반부 지구의 역사를 보여주는 부분에선 <메트로폴리스>의 실제 화면이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패러디 장면도 오마주 차원에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는 워낙 극적 반전이 많고 공간과 시간을 마구 넘나드는 작품이다보니 영향을 끼친 원형적 이미지 또한 다양하다. 때문에 프로덕션디자인에서 의상까지 비주얼 전반에 관한 책임을 맡았던 장근영, 김경희 미술감독은 “워낙 많은 이미지들이 종합돼 몇 가지를 짚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공간의 이미지‥‥‥‥‥‥‥‥ 장근영, 김경희 미술감독이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은 “병구를 포함한 각각의 캐릭터가 공간에서도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장준환 감독과 콘티 작업부터 함께했기 때문에 충분한 고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가장 신경을 쓴 공간은 대부분의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는 병구의 집, 그중에서도 지하실이었다. 고문실이 있는 비밀공간, 외계인에 대처하기 위한 병구의 연구실, 마네킹을 제작하는 작업실 등 3개로 나뉜 지하공간은 병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편집광적이며 정신병자 같지만, 그럼에도 열정적인 독학으로 외계인과의 전투를 준비해온 병구의 흔적을 드러내기 위해 모든 벽면은 실험도구, 고문기구, 무기, 온갖 기괴스런 표본, 연구 자료 등으로 꽉 채워졌다. 세트, 소품, 의상 등 각각의 요소들은 ‘의도적 조악함’이라는 차원에서 설계됐다. 병구의 캐릭터로 봤을 때 뭔가 어설프지만 정교하기도 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두명의 미술감독은 이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스스로 병구의 입장이 돼, 아니 병구처럼 살면서 공간을 고민해야 했다. 결과물은 그야말로 ‘병구스럽다’. 강 사장을 고문할 때 사용한 의자는 이발소 의자에 변기를 바닥에 붙이고 치과 장비 같은 기구를 붙인 희한한 모양새였고, 외계인의 강력한 텔레파시 공격을 막는다며 병구와 순이가 늘 쓰고 다니는 헬멧에는 라이트, 배터리, 안테나 등을 달았다. 김경희씨는 “고문기구며 무기며 모든 소품은 새 것을 구입해 부순 뒤, 여러 개를 뒤섞어 재조합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설명한다. 또 세트 제작자가 “여기는 뭐 똑바로 된 게 하나도 없어”라고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했을 정도로 모든 공간과 소품은 뭔가 비뚤어지고 휘고 엇물리는 느낌으로 디자인됐다. 때문에 음침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이 엿보이는 지하실 공간은 마치 병구의 복잡한 뇌 속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전한다. 헌팅 & 세트‥‥‥‥‥‥‥‥ 강원도 함백산 1300m 고지에 세워진 병구네 집 세트도 “병구가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산골짜기에서 조달할 수 있는 나무로 외관을 꾸민 너와집을 만든 것이나 울퉁불퉁 거친 느낌을 강조한 것도 이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장마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팀은 2개월 동안 상주하면서 자연스런 느낌이 나도록 돌 하나하나를 주변에서 갖다 날랐고, 풀을 한 포기씩 떠서 심었다. 폐광촌의 산 정상 부근에 만들어진 이 세트가 주위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신경도 각별히 썼다. 또 워낙 감정의 기복이 심한 영화이다보니 보는 위치나 조명에 따라 평화롭게도, 그로테스크하게도 보일 수 있도록 외면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절벽 위에 집을 지은 것도 위태로워 보이는 느낌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 사실, 이 영화가 폐광촌을 배경으로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미술적인 점을 고려한 때문이었다. 장준환 감독은 “어찌 보면 60∼70년대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현대적인 듯도 하고, 광산촌은 여러 가지 느낌이 조합돼 뭔가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이런 고민 때문에 시나리오를 쓰면서 폐광촌을 배경으로 삼은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한 장면‥‥‥‥‥‥‥‥ 지하 2층의 비밀 공간에서 병구의 추궁과 강 사장의 부인이 반복된다. 어느 순간부터 오히려 강 사장은 정연한 논리로 병구를 몰아붙이기 시작한다. 당당한 강 사장과 흠칫하는 병구, 두 사람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오른다. 낡아빠진 듯한 외벽이나 소품들, 그리고 어지러이 얽혀 있는 전깃줄이 공포감을 유발하고 병구의 혼란스러움을 보여준다. 특히 효과적으로 사용된 조명은 병구의 표정에 음영을 드리우고, 박박 민 강 사장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강조한다. 일부만을 비추고 있는 조명은 그 아래 어둠 속에 감춰진 기괴한 분위기를 더욱 드러내고, 바닥의 끈적끈적한 느낌을 강화한다. 푸른빛과 붉은빛의 대조도 갈등을 증대시킨다. 무언가 폭발하기 직전의 이 긴장은 형사들의 추격, 강 사장의 반격으로 이내 이어지게 된다. “각자의 캐릭터에 맞는 공간 창조”라는 말이 들어맞는 장면이다. 프로덕션디자이너 장근영, 김경희 <지구를 지켜라!>는 장근영, 김경희가 프로덕션디자인을 맡은 두 번째 작품이다. 지난해 <화산고>로 처음 프로덕션디자이너라는 이름을 걸었지만, 영화계에는 1994년부터 뛰어들었다. 미대 조소과를 나란히 나와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영화미술 작업을 하기로 결심한 두 미술감독은 <은행나무 침대>를 시작으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해왔다. 데뷔작 <화산고>는 30개도 넘는 다양한 공간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힘든 작업이었지만, <지구를 지켜라!>는 공간을 꽉 채워진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엄청난 소품과 싸움을 벌여야 했다는 점에서 쉽지 않았다. 그 소품이란 것도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재조합을 해 만들어야 했던 탓에 어려움은 더 했다. 특히 100쪽 가까운 병구의 연구 노트를 일일이 구상하고 만들기까지 했기에 이들은 자연스레 병구처럼 편집증과 과대망상에 빠져들어갔다. “그동안 떨어졌던 에너지를 채우고 있는 중”이라는 이들은 <화산고>와 <지구를 지켜라!>에서 그랬듯,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작업에 또다시 도전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피아노를 치는 대통령> 음악감독 박혜성

시청률 50%대를 돌파한 화제의 드라마 SBS <야인시대>가 2002년 가을 최고의 이슈로 떠오르자 주제곡 <야인>을 부른 가수가 누구냐에 관심이 쏠렸다. 허스키하고 파워풀한 창법의 주인공으로는 김정민, 박상민, 캔 등 각종 가수들의 실명이 오르내렸다. 이에 <야인시대> O.S.T 제작사 TTM인터내셔널 프로덕션은 주제곡을 부른 이가 신인가수 강성이라고 밝히는 등 각종 ‘정보 흘리기’에 들어갔다. 또한 제작사쪽은 O.S.T 담당 프로듀서가 강성의 목소리에 매료돼 오디션을 부탁한 데서 비롯됐으며, 80년대 소녀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경아> <도시의 삐에로>를 히트시킨 바 있는 가수 박혜성이 O.S.T의 제작자 겸 작곡가라는 사실도 함께 전했다. 94년부터 꾸준히 광고음악을 해온 박혜성이 처음으로 도전한 드라마 O.S.T를 통해 프로듀서로서 성공적인 데뷔식을 치렀다는 소식은 분명 놀랍고 반가운 뉴스였다. 그러나 놀라운 소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페라 CM으로 올해 광고대상을 수상한 하이마트의 CM송을 비롯해 그전부터 PCS oneshot 018, 신세대 중형차 라노스, 백지연의 뉴스 진행 형식으로 관심을 끈 누비라, 체어맨, 무쏘, 매그너스 등의 자동차 광고음악 등 역시 그의 손을 거쳤다는 것. <경아> 이후 아이돌 스타의 이미지만을 남겨놓고 사라졌다고 여긴 그가 실은 내내 우리 곁에 머무르며 쟁쟁한 광고음악가로 거듭났음을, 탄탄한 사업가가 됐음을 알리는 무시할 수 없는 증거들이었다. 한영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혜성의 가수 데뷔 뒤에는 엄격한 집안의 동의를 구하는 설득과정이 있었다. <경아>로 텔레비전 데뷔식을 치른 86년 12월6일은, 그래서 학력고사를 치른 뒤 열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시험까지 완전히 마무리해놓고 방송활동을 하길 원한 부모님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학교수업에 더욱 충실하고자 했던 동국대 연영과 재학 시절부터 점차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4집 <낯선 시간 속으로>의 발표를 마지막으로 그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듯했다. 그뒤 노래보다는 작사에 치중한 소리없는 그의 암행이 시작된다. 일본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보면서 당시로선 전혀 새로운, 컴퓨터 작곡 프로그램도 익힌 그는 다른 가수들의 앨범 작업을 돕는 한편, 광고와 드라마음악으로 점차 활동영역을 넓혀나간다. <야인시대>는, 연출을 맡은 장형일 PD와 2년 전 <신TV문학관>을 통해 쌓은 인연으로 O.S.T 제작까지 맡게 된 케이스. <피아노 치는 대통령>의 음악을 맡으면서, 그는 완전한 꿈을 이루게 됐다. 평소 그의 지론은 영화와 음악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인데다 고전적인 로맨틱코미디 음악은 그에게 새로운 의지와 감흥을 안겨주었다. “따뜻하고 예쁜 그림에 어울리는 음악을 입히려고 했어요. 마치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나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쓰인 음악처럼 말이죠.”그리고 또 하나 그가 심혈을 기울인 엔딩곡에 대한 설명. “영화를 다 보고 극장문을 나섰을 때 밀려오는 공기를 마시는 기분, 때맞춰 눈이라도 내렸으면 하는 기대감, 그런 것들을 상쾌하고 가벼운 엔딩곡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만 하면 96분의 러닝타임을 기다려 그의 선물을 받고 싶어지지 않을까.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프로필 → 1971년생→ 1집 <경아>, 2집 <도시의 삐에로>를 시작으로 3집 <사랑 친구><쥴리아>→ 4집 <낯선 시간 속으로>, 듀엣 앨범 <센세이션>→ KBS 드라마 <꽃피고 새울면> 출연→ 89년 KBS 음악담당→ 2000년 KBS <신TV문학관> 중 <새>의 음악담당→ 2002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음악감독→ 각종 자동차, PCS 광고음악 제작. 전자제품 쇼핑몰 <하이마트> 광고음악 제작→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으로 음악감독 입봉→ 현재 <하이마트> 오페라 CM시리즈 마지막편인 4편 녹음 중

지구는 옆집 아가씨가 지킨다?,새로운 여성영웅 <킴 파서블>

여성 영웅들을 한번 꼽아보자. 귀밝은 ‘소머즈’와 고혹적인 미소의 ‘원더 우먼’. 그리고 근육질의 ‘소냐’와 재기발랄한 ‘미녀 삼총사’. 아, 두툼한 입술의 ‘툼레이더’도 빼놓을 수 없다. 거의 마초 스타일로 힘만 앞세우는 남성 영웅들과는 달리, 여성 영웅들은 때론 그 존재만으로도 강력한 무기가 된다. 디즈니는 지난 6월 미국 텔레비전을 통해 여성 영웅들의 대열에 이름 하나를 새로 등록했다. ‘킴 파서블’(Kim Possible). 열다섯살난 여고 2년생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얕보면 곤란하다. 학교 과제물 준비와 교내 치어리더 연습에 바쁘고, 새 옷을 사고 싶어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도 빠질 수 없는 평범한 학생이지만 악당 드라켄이 출몰하면 금세 지구를 지키는 여전사가 된다. 이런 일상성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 구조야말로 <킴 파서블>만의 매력으로 보인다. ‘옆집 사는 처녀’(어느새 누나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가 돼버렸다!) 같은 평범함에 스노 보드, 스케이트 보드, 암벽 등반, 공중제비 돌기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아주 적절히 배합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키 마우스나 푸 같은 전통적인 캐릭터에 안주하는 것처럼 보였던 디즈니가 어떤 변신을 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지난 7일부터 주말마다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의 디즈니채널(CH 654)을 통해 방영되는 그녀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이 작품의 독특함을 금세 느낄 수 있다. 배꼽이 드러나는 탱크톱에 헐렁한 힙합바지를 입은 눈 큰 소녀 킴에게는 우선 악당을 물리치기 위한 특별한 장비가 없다. ‘007’에게 첨단 무기를 전해주는 닥터 Q처럼, 악당 드라켄의 출현을 알리고 새로운 장비를 전해주는 10살짜리 천재소년 웨이드가 있긴 하지만, 그 장비라는 것도 헤어드라이어 모양의 갈고리이거나 특수유리가 부착된 콤팩트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자동차 번호판을 떼어내 부메랑처럼 날리거나 친구들의 도움을 얻어 악당 드라켄을 제거하는 킴의 모습은 여자 맥가이버쪽에 가깝다. 그녀의 남자친구 론은 평소엔 어리숙한 덜렁이지만, 마음속 깊숙히 킴을 신뢰하고 결정적인 상황에서 킴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낸다. 그래서 눈치빠른 시청자들은 작품이 론이 있음으로써 킴의 활약이 종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백마 탄 왕자가 등장하는 가부장적 구조의 사고를 디즈니가 여전히 끌어안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올 법한 대목인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젊은이들의 건강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킴과 론의 학교생활은 지극히 모범적이다. 킴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역시 전형적인 중산층의 모습이다. 크리스티나 밀리안이 부른 주제곡 는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진지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경쾌한 음악으로 풀어낸다. 디즈니에서 14년간 일해온 베테랑 감독 크리스 베일리는 <인어공주> <라이온 킹> <헤라클레스> 등의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션 제작 경험과 실사영화 <가제트 형사> 등을 만든 특수효과 노하우, 뮤직비디오와 독립단편영화 등을 만들어오며 익힌 재주를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숙련된 조각가의 두툼한 손 안에 들어 있는 도자기처럼, 자연스런 화면에서 느껴지는 농익은 연출력은 지난 3/4분기 미국에서 이 작품에 200만통이 넘는 이메일이 답지하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국내 한 업체의 이름과 익숙한 한국식 영어이름 십 여개를 찾을 수 있다. 외국 작품에 등장하는 한국 이름을 보고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이 치졸한 애국심 아니냐고 한다면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정형모/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hyung@joongang.co.kr

일본, 1년 내내 오즈

<만춘> <도쿄 이야기> 등을 통해 서구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미조구치 겐지와 함께 일본의 3대 영화거장으로 존경받아온 오즈 야스지로에 관한 행사가 2002년 12월을 시작으로 1년간 계속된다. 1962년 <가을 오후>를 끝으로 생을 마감한 오즈 야스지로는 마틴 스코시즈,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의 스승으로 추대되었으며, 빔 벤더스는 자신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오즈를 영화의 ‘천사’라고 부르기도 했었다.“두부장수는 두부를 만들 뿐”이라는 말에서처럼, 오즈는 평생 54편의 영화를 쇼치쿠영화사에서만 제작(그러나 현재 보관하고 있는 필름은 33작품)했으며, 그만의 순환적이면서도 반복적인 독창적 영화스타일(다다미 숏, 필로 숏, 360도 공간 사용 등 수많은 영화적 개념들이 그의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따라붙었고, 전통적인 것과 모더니즘적인 것 사이의 논쟁지점이기까지 했던)을 창조해냈다.오즈에게서 순환은 영화의 운명만이 아니었다. 1903년 12월12일 태어났던 오즈는 1963년 12월12일 자신의 60번째 되는 생일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완벽한 동양적 윤회의 삶을 살다간 사람이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2년 오즈 타계 39주년을 기점으로(또는 오즈 탄생 99주년을 기점으로) 쇼치쿠의 주도하에 ‘오즈의 해’ 행사가 2003년 12월까지 일본에서 시행된다. 이에 걸맞은 행사로 일본 내에서는 오즈 영화의 특별상영이 준비 중이며, 텔레비전에서는 상영 프로그램이 계획 중이다. 또 그에 관한 책이 새롭게 간행 준비되고, DVD 또한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2003년 동안 닛폰항공사는 이 행사의 일환으로 비행 중 승객 12명을 뽑아 오즈의 영화를 증정한다. 이미 다가오는 베를린영화제가 특별회고전을 통해 오즈의 영화 5편을 상영 준비 중이고, 뉴욕페스티벌도 오즈 영화의 상영 계획을 갖고 있다. 쇼치쿠의 이시다 사토코는 이 밖에도 부산, 오스트레일리아, 카를로비 바리 등의 영화제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김형태의 오! 컬트 <바스키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군이 있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세상에는 두 가지 예술계가 있다. 보통 이상으로 고귀하고 우아하며 탐미적인 풍요로움의 예술, 그리고 보통 이하로 비천하며 번뇌하고 갈구하는 고통의 예술. 감상자들은 풍요로움의 예술을 통해서는 귀족적인 상류사회에 대한 갈망을 간접체험하고 고통의 예술을 통해서는 보잘것없는 자신의 삶을 위로받는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는 기쁨은 풍요로움의 향기가 넘쳐나기 때문이며 고흐와 이중섭이 사랑받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보다 비참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훌륭한 예술이 있고 기특한 예술이 있다. 우아한 예술이 있고 안쓰러운 예술이 있다. 장난스러운 예술이 있고 장인정신을 담은 예술이 있다. 압도적인 예술이 있고 용기를 주는 예술이 있다. 이러한 양분법은 전적으로 예술가의 태생에 의해서 파생된다. 문화선진국에 고귀한 신분의 풍요로운 가정에서 자라난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식민지에서 비천한 신분의 궁핍한 가정에서 자라난 예술가가 있다. 이들이 창조해낸 작품들의 용법, 효능, 효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한쪽에서는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서 예술이 필요하고 다른 쪽에서는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서 예술이 필요하다. 한편은 ‘나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한 예술’이 있고 한편은 ‘너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한 예술’이 있다. 감상자들은 자신의 처지와 그날의 기분과 형편에 따라서 적절한 것을 수시로 취하면 된다. 예술이란 다양한 종류의 가상현실이다. 바스키아라는, 뉴욕의 거리를 배회하며 길거리에 낙서를 하던 흑인 청년은 어떤 부류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태생은 풍요로움의 예술을 보여주는 예술가가 될 뿌리를 갖고 있기보다 고통과 갈망의 예술을 보여주는 예술가가 될 뿌리를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의 무대는 국립미술관이나 상류층을 상대로 하는 갤러리가 아니라 비천한 길거리 담벼락이었고 그의 화구는 몇백년이 지나도 탈색되지 않는다는 비싼 유화물감이 아니라 공업용 스프레이 페인트와 분필조각 따위였다. 그렇게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흑인 청년이 제멋대로 휘갈긴 낙서들이 어떻게 세계적인 걸작이 되고 그가 현대 미술계의 슈퍼스타로 급부상하게 되었을까 그는 정말 숨은 진주, 불세출의 천재였을까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 가운데 가장 얼빠진 것을 꼽으라면 현대미술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한심하고 허위에 가득 찬 예술은 카메라가 발명된 이후 할 일이 없어져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적유희를 하다가 제풀에 가속도가 붙은 나머지 심지어 똥도 사고파는 짓까지 하게 된다(피에르 만조니라는 작가는 자신의 인분을 깡통에 담아 ‘예술가의 똥’이란 제목으로 팔았다). 한번은 ‘제3세계에서 온 젊은 미개인 전’이란 제목의 전시회가 함부르크에서 열린 적이 있었는데 그 작품에 대해서 수준높은 감상자들과 명망있는 비평가들이 모두들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전시회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몰래카메라를 위한 속임수였고 그들이 찬미한 그림은 두 마리의 침팬지에 의한 페인트 범벅일 뿐이었다. 바스키아는 바로 ‘그들’이 보고 싶어했던 ‘제3세계에서 온 젊은 미개인 전’에 딱 들어 맞는 실존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들에 의해서 천재적 예술가로 추대받기에 이른 것이다. 침팬지가 그린 그림보다야 그래도 비싸게 팔 수 있지 않겠는가. 80년대 뉴욕의 예술 애호가들은 잘 조련된 혈통좋은 애완견 같은 예술가들에게 따분함을 느꼈던지 야생동물 같은 바스키아를 사육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정말 야생동물과도 같아서 그 풍요를 누리기는커녕 시름시름 앓다가 곧 죽어버렸다.김형태/ 화가,황신혜밴드 www.hshba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