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김형구가 말하는 “잊기 힘든 이 장면”

<비트> 초반부에 태수(유오성)과 민(정우성)이 오토바이가게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신. 이 신은 오토바이가게 앞에서 찍은 것이 아니고 사실 편의점 앞에서 찍었다. 오토바이가게 인서트는 따로 찍고 두 사람의 대화는 편의점에서 나오는 밝은 불빛을 이용해서 찍은 뒤 편집 때 붙인 것. 또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민이 두손을 손잡이에서 뗀 채 오토바이를 타는 신 역시 실제로 민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운전컷을 찍을 때 사용하는 레커차 위에서 찍었다. 결국 둘 다 가짜인데 두 신의 분위기만큼은 진짜 이상의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아름다운 시절> 총 131컷밖에 안 되는 영화 중에(칸에는 119컷이 갔다) 애정이 안 가는 컷이 있을까. 성민이네가 마차를 끌고 이사오는 풀숏은 원래 한번 촬영했는데 전봇대를 피해서 찍으려다보니 엉성한 앵글이 되어 맘에 안 들었다. 결국 그 자리에 있는 전봇대를 뽑고 가장 좋은 앵글에 자연광이 제일 좋은 시간대를 기다렸다가 다시 찍었다. 또한 애들이 방앗간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것을 찾으면서 노는 방앗간 신은 자연광이 아니라 실내라이팅을 만들어서 했다. 영화의 중요 모티브가 되는 방앗간의 느낌을 가장 자연스럽게 살려낸 신이다. <태양은 없다> 이 영화에서 김성수 감독이 해보고 싶어한 것이 플래시 포워드였다. 홍기(이정재)와 도철(정우성)이 채무자의 과일가게를 습격하는 시퀀스에서 습격 전 상황, 가게습격장면, 실패하고 돌아와 옥상에 있는 장면, 이렇게 3장면이 믹스되어 편집돼 있다. 이건 편집 때 그냥 그렇게 붙여본 게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것이라 혼란을 피하기 위해 비주얼적인 면에서 완벽한 차별점을 두어 찍어야 했다. 습격 전 상황은 영화전체의 색조를 따랐고, 과일과게는 노란색, 옥상은 녹색조로 3개의 색깔로 나누었다. <이재수의 난> 제주도는 말그대로 그림인 곳이 많았지만 이상하게 카메라에서 프레이밍만하면 육안으로 보는 감동이 전혀 안 살아서 고생했다. 이재수(이정재)가 통인 시절 화산 분화구에서 소리지르고 팬하면 바다가 보이는 롱숏. 바람이 정말 세게 불어서 몸이 흔들릴 정도였는데 큰 스크린으로 봐도 팬하는 데 별다른 흔들림이 없는 것을 보고 나 스스로 칭찬할 만하다 생각했다. <박하사탕> 지금까지 찍은 작품 중 가장 공들였고 심혈을 기울여 찍은 작품이다. 유독 비오는 장면이 많았던 영화인데 우리나라에는 비의 굵기를 제대로 조절하는 장비가 없어서 ‘부슬부슬’한 비를 만들기 위해 조명량을 많이 늘렸다. 영호(설경구)가 군산에 갔을 때 만난 선술집 아가씨와 하룻밤을 보내는 집 외부는 마포의 재개발지역에서 찍었고 실내는 세트에서 촬영했다. 빨랫줄에서 물이 한 방울 똑똑 떨어지는 장면부터 시작해 빨랫줄을 따라 두 사람의 알몸을 비추는 신. 아쉽게도 앞부분은 잘려나갔지만, 집 외부나 방안에 감도는 분위기가 좋았다. <무사> 사막에는 아침해와 넘어가기 직전 해가 아니면 모든 사물이 밋밋하게 찍히고 입체감이 사라진다. 결국 풀숏은 아침 저녁에 집중적으로 찍었다. 해질 때만 되면 그 짧은 시간을 놓칠세라 스탭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걸 보고 안성기 선배는 ‘지랄숏’이라고 불렀다. 그중 사막의 익스트림 롱숏으로 점 같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장면은 영화의 초반부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자막의 배경그림으로 쓰였다. 또 마지막 전투라고 부르던 토성 전투신, 흐린 날씨에 비장미 있게 찍어내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검은색 고무타이어어 같은 걸 태워서 인공으로 검은 바람이나 구름을 만들어냈다. 또한 액션신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서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속으로 찍었다. <무사> 탭 전체 톤은 오렌지 빛깔인데 그 부분에서는 <태양은 없다>식의 무채색 느낌이 나도록 했고 영화 전체와의 확연히 다른 장면으로 만들려고 했다. <봄날은 간다> 거의 모든 숏을 예쁘게 찍었던 것 같다. 허진호 감독이 세트촬영을 싫어해 세트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촬영공간이 늘 협소해 벽이라도 뚫고 들어가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상우(유지태)네 집은 골목길에 쭉 들어와 안쪽에 있는 집인데 골목이 영화에서 좋은 역할을 한 것 같다. 상우집 마당에서 할머니하고 상우하고 대화하는 장면의 경우,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개량한옥과 비슷하기도 하고 공간이 주는 정서적인 공감을 얻기 좋았다. ▶ 당신은 감정을 찍었군요 (1) ▶ 당신은 감정을 찍었군요 (2) ▶ 김형구가 말하는 “잊기 힘든 이 장면”

한국영화 점유율 40% 시대의 고민 [3]

배급독과점 - 스크린 216개 개봉작 7개, 시장논리가 다양성을 죽인다 지난해 배급사별 시장점유율 1, 2위를 차지한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는 연초에 상반된 전망을 내놓았다. “올해는 할리우드영화들이 세다. 피해가는 게 상책”이라는 게 CJ의 입장이었던 반면 시네마서비스 대표 강우석 감독은 “여름 극장가까지 한국영화가 휩쓸 것”이라고 자신했다. 결과는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으로 드러났다. 요즘 시네마서비스 배급팀은 행복한 고민에 휩싸여 있다.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에 이어 <세이 예스>까지 개봉시키자니 극장잡기가 만만치 않다. <엽기적인 그녀>를 걸기 위해 <신라의 달밤>을 종영시킬 수도 없고 <세이 예스>를 위해 <엽기적인 그녀>에 양보를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화 1편 걸기도 만만치 않은 시기에 3편을 배급하는 지금 상황은 1년 전만 해도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시네마서비스 배급팀 이사 최용배씨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자귀모>를 여름에 개봉시키면서 불안해하던 생각을 하면 흥행확률 90%가 넘는 영화들이 줄지어 서 있는 지금 상황이 낯설 수밖에 없다. 90년대 중반 대우 영화사업부에서 일했던 그는 한국영화가 지금과 같은 힘을 갖게 된 데는 “메이저 배급사의 출현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개별 영화사가 1년에 1∼2편 제작해서 직접 배급하던 시절엔 1년치 배급물량을 확보한 직배사와 경쟁이 안 됐다. 시네마서비스, CJ로 대변되는 한국영화 메이저 배급사가 생긴 뒤로 직배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사실 시네마서비스가 탄탄한 1년 라인업을 짤 수 있었던 것도 불과 2년 전 일이며 CJ도 지난해 비로소 안정적인 한국영화 배급체계를 갖췄다. 강우석 감독은 한국영화를 배급하는 메이저가 1∼2개 더 생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올 상반기 1위를 차지한 <친구>의 코리아픽처스, <엽기적인 그녀>의 아이엠픽처스, <파이란> <수취인불명> 등을 배급한 튜브엔터테인먼트 등이 그 후보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친구> 제작사도 극장을 못 잡는다 그러나 <신라의 달밤>과 <엽기적인 그녀>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눌렀다는 사실만으로 배급시장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시장논리가 다양성을 죽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선택의 폭이 넓은 메뉴를 제공하리라 기대했던 멀티플렉스는 올 여름 한 영화가 3∼4개관씩 차지하는 극약처방을 택했다. 무려 16개관을 갖춘 메가박스에서 7월 첫주 볼 수 있었던 영화는 5편에 불과했으며 7월 첫주와 둘쨋주 극장에 새로 걸린 영화는 통틀어 7편이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1차적 이유는 ‘무조건 개봉관을 많이 잡겠다’는 와이드 릴리스(Wide Release) 배급전술 탓이다. 지난 6월1일 여름영화로서 가장 먼저 개봉한 <진주만>은 서울시내 전체 스크린 수 216개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72개 스크린을 확보했다. 이에 뒤질세라 <미이라2>가 65개, <툼레이더>가 59개, <슈렉>이 50개, <신라의 달밤>이 48개, <엽기적인 그녀>가 45개, <쥬라기공원3>가 44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영화 1편당 스크린 수가 40개를 넘다보니 극장에 걸릴 수 있는 영화 편수가 10편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5대 직배사와 시네마서비스, CJ, 튜브 외에 중소배급사 가운데 7월에 영화를 개봉한 곳은 거의 없다. <친구>로 상반기 점유율 1위를 기록한 코리아픽처스조차 끼어들 엄두를 못 낼 만큼 올 여름 극장잡기 경쟁은 치열했던 것이다. 스크린 확보전쟁은 영화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전국 200만명을 넘긴 <진주만>이 개봉 5주 만에 메가박스 1개관을 제외하고 전부 간판을 내린 것은 상징적이다. 이처럼 영화의 회전율이 빨라진 것은 배급사의 와이드 릴리스 전술과 극장쪽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극장은 되도록 빨리 간판을 바꿔줌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고 배급사는 초반에 왕창 벌고 빠진다. 배급사와 극장 모두 만족스럽지만 관객 입장에선 괜찮을 수 없다. 입맛대로 선택할 폭이 좁아지고 그나마 선택을 하더라도 서두르지 않으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216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7편에 불과했던 건 여름 시즌에 한정된 특수한 경우이긴 하지만 이런 경향 자체는 지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비수기에 상대적으로 틈새가 많다 해도 와이드 릴리스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와이드 릴리스 일변도의 배급방식은 제작에도 영향을 끼친다. 미국에서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보편화된 와이드 릴리스는 작품의 질보다 마케팅에 신경을 쓰는 영화를 양산했다. 덕분에 전체 관객 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반대급부로 질적 하락을 동반할 가능성도 크다. 당연히 미국에선 와이드 릴리스하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가 확연히 갈리고 각각에 맞는 배급전술을 구사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선 와이드 릴리스 외에 다른 배급방식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개봉주말 성적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심정이 되는 제작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와이드 릴리스를 선호한다. 여기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영화의 회전율이 빨라진 탓에 개봉 첫주 성적이 나쁘면 바로 간판을 내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극장들도 와이드 릴리스하는 영화를 선호한다. 결국 중소규모의 영화, 작가영화, 예술영화 등이 끼어들 자리가 좁아지고 제작하기도 힘들어지는 악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2000년 1월 개봉한 <박하사탕>이 서울관객 30만명을 넘긴 것은 요즘 상황에 견주어볼 때 놀랍다. 당시 익영영화사 배급담당으로 <박하사탕>을 배급한 코리아픽처스 배급팀장 김길남씨는 개봉관 수를 줄이고 장기상영하는 배급방식이 주효했다고 말한다. 시네마서비스 최용배 이사도 다양한 배급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주유소 습격사건>은 개봉 첫주보다 둘쨋주에 관객이 더 많이 들었고 뒷심을 발휘한 덕에 장기흥행에 성공했다. 두 영화 모두 올해 개봉했다면 상황이 달랐겠지만 와이드 릴리스가 능사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예이다. <타인의 취향>이 주는 교훈 최근 <타인의 취향>의 성공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씨네큐브 한 극장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평균 좌석점유율 70%를 넘기며 지금까지 2만7천여명의 관객을 모았다. 백두대간 이사 마상준씨는 “<타인의 취향>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무리 블록버스터 시즌이라도 이런 유의 영화를 보려는 관객은 존재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문화학교 서울 주최로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에릭 로메르 회고전이 6천명 넘는 관객을 동원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에릭 로메르 회고전이 성황을 이룬 배경엔 극장가의 과도한 편식 때문에 갈 곳이 마땅치 않은 관객이 많았던 점도 작용했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스크린 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피카디리, 단성사, 신영, 대한극장 등이 증관 또는 멀티플렉스화를 시도하고 있어 서울 시내 스크린 수는 머지않아 300개에 이를 것이다. AFDF 배급팀장 김선호씨는 “올 여름의 집중현상은 과도기적 현상”이라며 “스크린 수가 300개가 되면 중소규모 영화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그도 “시장논리에 모든 걸 맡기는 건 위험”하다는 데 동의한다. 명필름의 이은 이사는 “지금은 제작비 규모가 얼마가 됐든, 예술영화든 상업영화든 같은 배급망을 탈 수밖에 없다. 예술영화전용관, 독립영화전용관 등 차별화된 극장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백두대간 마상준 이사는 현재의 지원방식이 유명무실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술영화전용관에 문예진흥기금 환급 혜택을 주는 정도인데 그나마 내년부터는 문예진흥기금 자체가 없어진다. 빨리 다른 방식의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건 영화시장이 지금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엔 직배사의 독점에 맞설 만한 규모있는 메이저 배급사가 절실히 요구됐지만 이제는 규모가 작은 영화도 빛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시급해졌다. 한국영화라는 사실만으로 지지와 응원을 끌어낼 수 없는 지금은 ‘다양성의 확보’라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배급방식의 변화이든 정책적 지원이든 여러 종류의 영화가 고루 빛을 볼 수 없다면 한국영화의 전성기는 의외로 짧게 끝날 수도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부율, 이제는 말할 때 “한국영화도 외화처럼 대접해달라” 극장에서 한국영화는 오랫동안 찬밥신세였다. 스크린쿼터제가 없었다면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한국영화가 그나마 극장에 걸릴 수 있던 데는 부금비율(부율)이 극장쪽에 유리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현재 배급사와 극장은 외화는 6:4, 한국영화는 5:5라는 부율을 지키고 있다. 한국영화를 걸면 극장이 취하는 몫이 많다는 얘기다. 마지못해 한국영화를 걸던 시절에 만들어진 부율이 지금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흥행 순위 앞머리를 한국영화로 도배하는 상황에서 이런 부율은 당연히 불합리하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제작자들이 아직 별다른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의아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금까지 제작가협회, 영화인협회, 영화인회의 등 어느 단체에서도 부율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일은 없다. 제작가협회 회장인 기획시대 대표 유인택씨는 “배급사, 투자사, 제작사가 한목소리를 내야 되는 데 극장의 힘에 밀리는 듯한 인상이 있다”고 말한다. 극장쪽 반발을 무마할 만한 조직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 하지만 부율조정의 필요성에 동의하지 않는 제작, 투자, 배급 관계자는 없다. 메이저 제작사들과 배급사가 공조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누군가 먼저 얘기를 꺼내고 공동대응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 명필름의 이은 이사는 “제작가협회가 됐든 메이저 영화사 관계자들의 모임이 됐든 빨리 부율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에선 부율을 좀더 탄력적으로 운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상영기간이나 영화의 성격에 따라 부율이 달라지는 것이 지금처럼 외화 대 한국영화라는 단순한 이분법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라는 얘기. 상영기간에 따른 부율조정이 자유로워지면 장기상영이 수월해지고 그러면 와이드 릴리스 배급방식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한국영화 부율을 외화와 동등하게 만든 뒤에 고민할 문제이긴 하지만 지금이 부율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필요한 시점인 건 분명하다.

멀티플렉스, 이제는 전국시대

멀티플렉스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지난 8월14일 대전CGV9이 오픈했고 2개관이던 청주 쥬네쓰시네마가 8월부터 6개관을 늘려 영업을 시작했다. 8월24일에는 울산에 롯데시네마 8개관이 들어선다. 롯데월드, 백화점, 호텔과 함께 들어서는 이 극장은 1450석 규모. 롯데는 내년 2월 창원, 5월경 영등포에도 극장을 오픈할 계획이다. 한편 CGV는 대전에 이어 12월21일 명동 아바타에 5개관을 오픈하며, 비슷한 시기에 구로 애경백화점에 2200석 규모 10개관도 개관할 예정이다. CGV강변11과 메가박스의 성공 이후 들불처럼 번지는 멀티플렉스 바람은 최근 가속도가 붙었다. 부산 서면에 롯데 11개관과 CGV 12개관이 나란히 들어선 데 이어 대전CGV9가 오픈함에 따라 대전도 롯데와 CGV가 경쟁하는 구도가 됐다. 이미 부산, 광주, 일산, 대전을 확보한 롯데는 2003년까지 대구, 안양, 안산, 전주, 미아리 등에 멀티플렉스를 지을 예정이며 CGV는 목동, 수원, 해운대, 청량리 등 2003년까지 전국 12개 극장, 112개 스크린을 확보할 계획이다. 여기에 수원, 대구 등에 멀티플렉스를 지을 동양그룹 계열 메가박스까지 가세하면 전국 주요도시가 멀티플렉스 체인에 얽히게 된다. 전국의 멀티플렉스 체인화와 더불어 주목할 것은 기존 극장들의 멀티플렉스화이다. 피카디리, 단성사, 대한, 신영 등이 멀티플렉스로 바뀔 예정이며 서울극장, 연흥, 신촌그랜드 등도 증관계획을 세웠다. 동대문 MMC를 운영하는 대구 만경관도 15개관 멀티플렉스로 거듭 태어날 예정이며 강제규필름이 운영하는 주공공이는 2002년 6월 평촌에 12개관을 오픈할 계획. 영화계는 이런 상황이 관객 창출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과열되는 분위기에 우려를 표한다. “이르면 2년 안에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고 그런 다음엔 망하는 극장들이 나올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다. 최근 미국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속속 도산한 사태는 그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낙관론도 만만찮은 근거가 있다. 아직 1.5회에도 못 미치는 1인당 영화관람횟수가 선진국 수준인 3회 정도까지 늘어나리라는 예상이다. 특히 올 여름은 극장관계자들에게 멀티플렉스의 위력을 실감케 한 시기였다. 멀티플렉스는 관객 수에 따라 스크린 수를 조정함으로써 빈 좌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어쨌든 관계자들은 멀티플렉스 건설 붐에 이어 조만간 멀티플렉스간 경쟁이 격화되는 시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멀티플렉스라는 사실만으로 객석점유율을 파격적으로 올릴 수 있는 상황이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부에서 멀티플렉스가 건설경기만 반짝 올리는 효과를 낳고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남동철 기자

기사 윌리엄

■ STORY 어려서부터 기사를 동경하던 윌리엄(헤스 레저)을 지붕수리공 아버지는 액터 경에게 맡긴다. 액터가 돌연사하자 그를 수행하던 윌리엄은 투구로 얼굴을 감추고 마상창술시합에 나가 승리한다. 동료 와트와 롤랜드를 설득해 ‘가짜 기사’ 울리히 폰 리히텐슈타인으로서 각지의 무술시합을 순례하기로 한 윌리엄 일행에, 유랑하던 미래의 문호 제프리 초서(폴 베타니)도 합류해 ‘바람잡이’ 역을 맡는다. 루앙대회에 나간 윌리엄은 귀족의 딸 조슬린(섀닌 소세이먼)과 사랑에 빠지고, 연적이자 라이벌인 기사 아데마 백작(루퍼스 스웰)과 충돌한다. 승승장구하는 윌리엄의 인기와 함께 아데마의 시기심도 높아가고, 런던에서 열린 최고대회에서 윌리엄을 뒤밟아 출신의 비밀을 캐낸 아데마는 비겁한 승리를 획책한다. ■ Review 14세기 유럽의 마상창술(말을 타고 나무 창으로 상대를 공격해 점수를 얻는 경기) 시합장에 입장하는 <기사 윌리엄>의 관객은, 류트나 파이프의 연주가 아니라 20세기 밴드 퀸의 노래 의 영접을 받는다. 화면 밖 음악인가 잠시 생각해보지만, 시합장 관중도 노래가 들리는지 농노, 귀족 할 것 없이 드럼 비트에 맞춰 네 박자 응원을 하고 가사를 따라 부른다. 도대체 이 음악은 어디로부터 들려오는 것일까? 가 흘러나오는 미지의 장소, 혹은 윌리엄이 사칭한 가짜 귀족 울리히 폰 리히텐슈타인의 존재하지 않는 영지 ‘겔더랜드’, <기사 윌리엄>은 이처럼 ‘어디에도 없는 곳’에 주소를 둔다. 영화 <기사 윌리엄>은 젊은 주인공 윌리엄처럼 꿈을 이루기 위해서, 태어난 집을 떠나 낯선 품에 몸을 맡기는 영화다. 고향을 떠난 윌리엄이 이방의 땅을 주유할 때 <기사 윌리엄>은 시대착오를 의도한 소품들이 흩뿌려진 연대불명의 공간에서 행진한다. 미묘한 뉘앙스가 베일을 드리운 의 세련된 시나리오를 썼던 브라이언 헬겔런드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전혀 다른 종목의 게임에 뛰어든다. 주인공 윌리엄의 여정에는 무찌를 용도, 구원할 공주도 없지만 <기사 윌리엄>은 ‘기사 이야기’(A Knight’s Tale)라는 싱거운 원제가 예고하는 대로 동화와 디즈니식 영웅담의 전형들을 꿰어 ‘10대를 위한 사극’을 조립해간다. 정체를 감추고 세상에 뛰어든 어린 영웅, 익살스럽지만 충성스런 조력자들, 고귀한 신분의 연인, 다스베이더 같은 생김새의 악당까지. 그러나 <기사 윌리엄>의 재미는 여정의 동기나 목적지가 아니라 길가의 소소한 구경거리들에 있다. 재미의 기본 처방은 역시 ‘시대착오’. 월드컵 경기의 서포터를 연상시키는 관객이 운집한 마상 시합장의 바람잡이들은 WWF의 프로레슬러를 소개하는 사회자처럼 허풍을 떨고, 주인공 윌리엄과 조슬린은 졸업무도회에 나온 고교생들처럼 데이비드 보위의 에 맞춰 국적 불명의 디스코를 춘다. 콜로세움도 군중 전투신도 없는 <기사 윌리엄>의 스펙터클을 대신하는 것은 의상. 기사와 종자, 귀부인과 시녀들이 수시로 갈아입는 옷가지들은 고증된 의상이라기보다 ‘중세’를 컨셉으로 한 오트 쿠튀르 패션쇼에 나올 법한 작품들이다. 특히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스타워즈 에피소드1>의 아미달라 여왕 버금가는 칠보단장을 빠뜨리지 않는 조슬린의 머리와 옷은, 윌리엄 역의 청춘스타 헤스 레저와 더불어 영화의 타깃인 10대 여성관객을 붙잡을 만한 서비스 메뉴다. 이 밖에도 <기사 윌리엄>은 여성관객의 자존심에 민감하다. 그것은 <에버 애프터>를 비롯한 할리우드 개량시대극들의 기본원칙이기도 하다. 아데마 백작이 악한이라는 확증은 여자를 우승 트로피와 말 다음 가는 재산으로 취급하는 오만에 있다. 한편 조슬린은 그녀를 위해 승리하겠다는 윌리엄의 구애를 “어디 나를 위해 패배해봐요!”라는 말로 일축함으로써, 남자들의 승부놀이에 들러리 서기를 거절한다. 굳이 가야 할 곳도 없다는 듯 여러 도시를 소요하는 중반까지 <기사 윌리엄>의 가벼운 행보는 영화의 내용과 조화롭다. 그러나 대단원에 접어들면 영화는 유희의 태도를 황급히 접고 정색을 한다. 시대극 유행을 부채질한 지난해의 히트작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장군이 그랬듯 탁월한 전투력으로 대중의 스타가 된 윌리엄은 비열한 적이 불리하게 조작해놓은 최후의 결전을 통과해 교훈적 해피엔딩으로 진격한다. 일관성에 대한 아쉬움은 세부에도 있다. 윌리엄은 아름다움을 찬미하던 조슬린에게 갑자기 “치장밖에 모르냐”며 짜증을 내고, 삼각관계를 이룰 듯하던 대장장이 케이트의 캐릭터는 어느 순간 시들어버린다. 카메라의 움직임도 특이한 앵글 잡기에 애쓰지만 혼돈을 초월한 하나의 스타일로 완결을 본 것 같지는 않다. 이처럼 <기사 윌리엄>은 분명 독특한 대중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위원회’에 의해 집체 창작된 조립품 같은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마치 윌리엄 일행이 전원의 머리를 모아서 조슬린에게 쓴 연애편지처럼. 영화가 과거와 현재를 한 프레임 안에 구태여 비끄러매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영화가 어떤 형태로건 과거와 현재 사이에 길을 내려 한다고 믿는다. 에이미 해커링의 <클루리스>나 데렉 자만의 르네상스 3부작, 바즈 루어먼의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당대인들이 체감한 세계상이나 고전문학의 본색을 노크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그러나 로맨틱 어드벤처 <기사 윌리엄>은 그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브라이언 헬겔런드 감독은 중세의 병풍을 둘러친 앞에 현대의 소품들을 디스플레이한 다음 “중세도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과 별다르지 않았어”라고 호기롭게 외친다. 시원스럽긴 하지만 룰이 너무 단순한 스포츠를 관람한 기분이다. 김혜리 기자 vermeer@hani.co.kr ▶ 기사 윌리엄 ▶ 실존인물 제프리 초서(1340∼1400)

실존인물 제프리 초서(1340∼1400)

바람잡이? 실은 진중한 중세의 대문호 <기사 윌리엄>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자 지적인 대사를 독차지하는 캐릭터는 폴 베타니가 연기한 유랑작가 제프리 초서. 초서가 남긴 중세유럽 이야기 문학의 기념비 <캔터베리 이야기>(1393∼1400)의 한 에피소드에 느슨하게 기초해 <기사 윌리엄>의 각본을 쓴 브라이언 헬겔런드 감독은 불경하게도 대문호를 윌리엄의 ‘바람잡이’로 캐스팅해 “내가 주의를 끌어놓았으니 나가서 관중의 마음을 뺏어봐!” 같은 대사를 하게 한다. 런던 포도주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초서는 왕실에 봉사하는 청년집단에 들어가 에드워드 3세부터 헨리 4세까지 세 국왕의 신임을 받은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기사 윌리엄>의 왕자 에드워드는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자 헨리 4세의 아버지. 영화에서처럼 마상시합의 안내 역을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군인, 궁정대신, 외교관, 산림관, 공사감독 등을 두루 거친 초서의 이력은 그에게 인간본성에 대한 살아 있는 이해를 선물했고 이후 창작의 밑거름이 됐다. 백년전쟁 중, 1359년에 프랑스 루앙전투에서 체포됐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프랑스어, 라틴어, 이탈리아어도 유창하게 구사했던 초서는 직접체험뿐 아니라 당대의 중요한 서적에도 정통했고 점성술과 과학에 대한 지식도 풍부했다고 전해진다. 페스트로 사망한 후원자를 애도하기 위해 쓴 초기작 <공작부인의 책>(1370)은 프랑스문학의 영향이 보이는 작품. 미완성작인 <명예의 전당>(1372∼80)은 자전적 요소를 담은 저작으로 불린다. 성 밸런타인 축제를 위해 쓴 시 <새들의 의회>(1380∼86)부터는 관심의 초점이 현실로 고정됐으며 같은 시기에 쓴 <선한 여인의 전설> <트로일루스와 크레시다>는 사랑의 영원성을 다룬 작품들이다. <캔터베리 이야기>는 토머스 베킷 사원을 향하는 30명의 순례자의 이야기시합 형식으로 연애담, 우화, 설교, 성인전 등의 장르를 아우른 최후의 대작이다. 독창적 유머, 아이러니, 철학적 성찰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본성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서 셰익스피어의 선구가 됐다. ▶ 기사 윌리엄 ▶ 실존인물 제프리 초서(1340∼1400)

국제영화제, 내년까지는 안심, 그러나...

올해를 마지막으로 중단될 것으로 알려졌던 국내 국제영화제에 대한 국고지원이 일단 내년까지는 이뤄지게 됐다. 문화관광부는 8월17일 기획예산처가 내년 예산안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여성영화제에 전년과 동일한 예산을 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각 영화제는 내년에도 애초 신청했던 대로 국고지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내년 각 영화제가 확보한 국고지원금은 부산영화제가 10억원, 부천과 전주영화제가 각각 5억원, 여성영화제가 3억원이다. 문화부 관계자는 “기획예산처가 각 지방단체에서 주최하는 영화제가 많아지다보니 모두 지원할 수는 없지 않으냐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특성이 확실히 있고 내용이 알차다고 판단되는 영화제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지원한다는 것이 문화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정부의 방침에 따라 한때 가슴을 졸였던 각 영화제쪽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이 취약하고 기업 등의 후원을 얻기가 까다로워 국고지원금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는 영화제 조직위원회로서는 그동안 예산이 확정되지 않아 내년 사업계획을 본격적으로 세울 수 없었기 때문. 김동호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기획예산처가 영화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8월16일 기획예산처 차관, 예산실장 등을 만났다. 신설되는 여러 영화제들이 예산을 요구하는 바람에 나름의 지원 기준을 세우기 위해 고민중이었지만, 기존 영화제에 대한 지원에 관한 한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제 관계자들은 아직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일단 내년도 예산은 확보했지만, 2003년 이후에도 국고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매년 그랬듯 또다시 지방자치단체의 영상 관련 기금 확보, 지자체 예산 확대 등의 근본적인 대안이 제기되고 있으나, 현재 상황에선 실현이 어려운 이야기일 뿐이다. 한 영화제 관계자는 “내년에도 그 다음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힘겹게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할 것 아니냐.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석 기자

[충무로는 통화중] 또 불똥 튀었군

바람잘 날이 없는 영화진흥위원회에 새로운 불똥이 떨어졌다. 16일부터 심사에 들어간 극영화제작지원사업의 심사위원 선정이 유길촌 위원장의 독단으로 이뤄졌기 때문. 유 위원장은 지난 15일 그동안 위원, 사무국과의 협의를 통해 심사위원을 선정하던 전례를 깨고 본인 혼자만의 판단으로 7명의 심사위원을 선발, 다음날부터 심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유 위원장은 9명의 심사위원을 추천했던 영화진흥위원들은 물론이고 사무국의 실무자까지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단적인 심사위원 선발 조짐은 8월14일 급작스럽게 주무부서인 국내진흥부장의 인사 발령을 내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전에 사무국장이나 노조와 협의를 갖는 관례를 따르지 않은 이 인사 발령 직후, 유 위원장은 실무자를 배제한 채 심사위원을 선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결정에 영진위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 위원장과 조희문 위원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의 위원은 “현재 위원장은 자신이 (합의기구의) 위원장이 아니라 사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며 “이는 영화진흥법에 명시되어 있는 합의기구로서의 이 조직의 위상과 성격, 태생 자체를 전면 부정하고 있는 행태”라는 내용의 성명을 16일 발표했다. 한 영진위원은 “선발된 심사위원의 면면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과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며, 사업의 취지를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서 심사위원 중 영진위원 2명 정도가 포함돼야 한다고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겼다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들 위원들은 21일 정례회의 직전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유길촌 위원장은 “담당 부장과 위원들의 추천명단을 참고했다. 위원 추천을 통해 선정된 심사위원은 1명이다. 위원을 심사위원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그동안 3차례의 심사 과정에서 항상 말썽을 빚었기 때문이다. 사무국의 실무선을 배제한 것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심사위원 선정 과정에서 규정이나 법을 어긴 게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지원사업이 어떤 결말을 맺더라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문석 기자

기계조차 살아 숨쉬는 미야자키 월드

● 이 글은 미국에서 <원령공주>가 개봉되기 이전인 98년 11월 <필름 코멘트>에 실린 글로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서구 관객들을 대상으로 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소개하는 글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에 이미 친숙한 국내의 독자들에게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지만 아시아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를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시선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글이라 하겠다. 일본의 생태론적 환상주의자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의 마술사이며 새로운 세계의 건설자인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섬세하기 그지없는 상상 속의 비행기를 만들어 내서는 푸른빛으로 넘실대는 언덕의 풍경 속으로 힘차게 날려보낸다. 그리고 이제 그 비행기는 버려진 옛 성터의 우뚝 솟은 기둥들 사이를 누빈다. 이렇듯 마음껏 물건들을 날려보낼 수 있다는 애니메이션만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미야자키의 작품들은 신선하리만치 솔직하고, 또 직관적이라 할 수 있다. 미야자키는 컴퓨터 그래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매 작품마다 전체 프레임 수의 최고 70퍼센트를 직접 그린다. 최근 일본에서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최신작 <원령공주>(1997)에서도 총 14만개의 프레임 중 8만개는 그가 직접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컴퓨터 그래픽의 번들거리는 이미지 없이도, 일본 고대 찻잔 특유의 '유기적' 짜임새와 같은 수공업적 이미지만으로 관객들이 작품 속의 장소들이 실제로, 혹은 '가상적으로'나마 존재한다고 믿게 만든다. 돌려 볼 수도 있고 뒤집어 볼 수도 있는, 다시 말해, 그가 만들어 낸 세계는 어떤 각도에서도 볼 수 있는 하나의 완벽한 입체적 전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원령공주>, 뚜렷한 `일본적` 색채로 포용되다 <원령공주>는 미야자키 자신의 프로덕션 회사인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제작된 여덟 작품 중 하나로 디즈니사에 의해 내년 즈음 미국에 개봉될 예정이다. 이는 마술 왕국의 지배자 디즈니로서도 상당히 과감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미야자키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가족 중심성과 행운담적 줄거리, 이상화된 유년시절 등을 고려할 때,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나 기발한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그의 작품은 분명 굉장히 생소한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로마치 시대(1336-1573), 아름드리 나무들로 무성한 원시의 산림을 떠 올려 보자. 이 이교도적인 낙원은 강력한 철제 무기를 만들어낸 이웃 마을의 침략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영화 속에서의 이 기술적 도약은, 인류가 낡은 신들을 대체해 교활한 인간들 자신을 그 자리에 올려놓으려는 수세기에 걸친 '패러다임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신분 상승 욕구는 야만적인 의식을 통해 표출되는데, 그것은 그 숲의 지배 정령인 사슴신의 목을 베는 일이다. 물론 구질서가 싸움 없이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는다. 동물들과 숲의 정령들은 동조하는 몇몇 인간들과 연합하여 최후까지 저항한다. 여기에 무술 영화적 기개마저 느껴지는 <원령공주>는 결코 긴 머리나 나부끼는 단순한 뉴에이지 스타일의 생태주의 우화는 아니다. 아직 때묻지 않은 이 자연의 피조물들은 결국 그 이빨과 손톱에 피를 묻히고 만다. 숲의 정령들에 의해 길러진 여전사 원령공주는 흰 두목 늑대의 상처를 빨아주는 장면에서 처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렇지도 않게 피를 뱉어내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야구장의 2루수가 입 담배를 씹고 내뱉듯 무심하다. 예쁜 여주인공이 보여주는 이런 식의 터프함은 서구적 관념의 말괄량이 정도는 훌쩍 넘어선 것이 아닐 수 없다. 들리는 바로는 <원령공주>가 일본인들에게 기꺼이 포용된 데는 작품이 가지는 강한 민담적 요소가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일본인들의 정체성을 밝혀 주는 이미지를 찾아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웃집 토토로>(1988)의 귀여운 동물들을 스스럼없이 껴안았을 어린이들도, 그 동물들의 친척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원령공주> 속의 빨간 눈 원숭이나 흉측한 마물 구더기에게는 역겨움을 느낄 것이다. <원령공주>의 강렬함은 일본인들에게도 약간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미야자키가 여가 때면 항공잡지를 위해 가상의 비행기들을 수채화로 그려주곤 하는, 약간은 비행광인 기벽이 있긴 하지만, 전 경력을 통해서는 그는 늘 낙천적인 가족 오락물의 전달자로서 숭배되어왔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키운 것 미야자키는 평생동안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직업을 가졌지만, 영화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된 것은, 일본의 인기 있는 인쇄만화 산업인 망가(manga) 업계에서의 경험을 거친 이후이다.1941년에 도쿄에서 태어나 경제학을 공부한 그는, 아버지가 군수산업 엔지니어였기 때문에 전쟁 중에도 남들보다 풍족하게 지냈던 점에 대해 어린 시절 늘 죄의식 같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얘기한다. 미야자키는 이후에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함께 일하게 되는 동료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도에이 동화에서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장화 신은 고양이>(1969)와 같은 아동용 극에 간간이 참여했다. 그는 <걸리버의 우주여행>(1965)와 다카하타의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1968) 등과 같은 장편 극영화들에서 작가와 애니메이터로 작업했는데 이중 60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은 미야자키와 그 동료들이 가졌던 젊은 시절의 마르크스주의적 이상을 가지고 만들어 낸 것이다. '인류의 화합'을 축하하는 작품의 내용은 실제로 제작팀원들의 아이디어를 '민주적으로' 반영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카하타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후, 미야자키는 드디어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는데 TV용 만화 <미래소년 코난>(1978)과 극장용 장편 <루팡 3세:카리오스트로의 성>(1979) 등이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초기 작품들은 팀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면 전속 감독으로서 참여했던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놓은 캐릭터를 발전시킨 것들이었다. 그러던 중 1980년에 일본의 잡지 <아니마게>(Animage)는 미야자키에게 그의 첫 번째 (그리고 아직까지는 유일한) 인쇄 만화의 연재를 부탁하는데, 이 만화가 바로 그가 나중에 극장용 극영화로 스크린에 옮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이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당시로서는 여러 면에서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었다. '미야자키'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로 성립되기 이전인 80년대는 변신합체 로보트와 초시공 우주요새의 시기였는데 당시의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얼마나 앞서나간 신선한 시도였는지는 기억할 것이다. '메카물'의 번쩍이는 금속과 날카로운 유리의 표면을 미야자키는 매끄런 식물과 곤두선 털로, 그리고 떠다니는 홀씨와 분출하는 홍수 등의 자연의 모습으로 대체한 것이다. 핵전쟁 이후 시대는 혼란스러우리만치 황폐한 황무지로, 거대한 벌레가 스물스물 기어다니고 그 벌레는 다시 유독성 기생버섯의 덩어리인 '부해'에 의해 삼켜진다. 남아있는 몇몇의 사람들은 주위 도시국가와 맞서 싸우며 산 속에 모여 살지만 그나마도 밀려드는 돌연변이 괴물들로 인해 파괴당할 위기에 처해져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생태학적 개념으로 보면 90년대의 서구 과학에서 유행한 '자생적 조직단계 시스템'이라는 테마를 미리 예견한 듯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속에서 과학기술이라는 것은 기계들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만으로 자연의 재료를 얽어 만든 일종의 이미지적 유사품으로 대체된 체 사라져 버렸다 - 이건 마치 선승(禪僧)인 정원사에 의해서 재구상된 <고인돌 가족> 영화같은 것일 것이다. 제2의 시작, <천공의 성 라퓨타> <애플시드>나 <공각기동대>를 만든 메카물의 고수 마사무네 시로우와는 달리, 미야자키는 자기 작품 속의 무기나 장치들에 열광하는 소년 팬들을 위해 굳이 주석을 달지 않는다. (비즈 커뮤니케이션은 4권 분량의 1000페이지가 넘는 설명서를 영문 번역으로 출간한 바 있다). 어떤 '기술적 설명서'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시각적 짜임새만으로 우리는 문명과 복장, 그리고 무기, 가구, 사회적 관습 등을 추론할 수 있다. 버섯 모양으로 진흙을 바른 인간의 집은 시각적으로 식물이나 곤충류의 모습을 부풀린 것과 같다. 작품의 시각적 핵심은 여주인공인 말괄량이 공주(미야자키는 두려움을 모르는 이런 여성 캐릭터를 몇 명 만들었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이 여자다)가 타고 다니는 말벌같은 모양새의 글라이더인데, 여주인공은 이처럼 벌레들과 친구가 되고 바로 그 '부해' 안에서 새로운 재생의 근원을 찾는다. 이런 종류의 작품에는 마치 취미 생활자의 자잘한 기쁨과도 같은 것들이 많다: 조각조각의 잡동사니들로 꽤 멋진 모형비행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순수한 즐거움 말이다. 좀 더 나아가면, 이는 산업화 이전의 기술로 산업주의적 과정을 유사하게 구성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 마치 윌리암 깁슨과 브루스 스털링이 펑크 스타일의 대안 역사 소설 <다른 엔진>(The Different Engine) 속에 나오는 빅토리아 시대의 인공두뇌 고안물이나, 아니메에 대한 연대기적 영화 <로봇 카니발> 중 탁월한 에피소드인 기타 히로유키의 '두 로봇 이야기'에 나오는 증기동력의 사무라이 시대 인조인간처럼 말이다. <원령공주>에서 여자들이 팀으로 앉아 페달을 돌리는 철 주조 공장의 나무 변속기는 (이 역시도 매우 순수하게 가상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이모 감독의 <국두>에 등장하는 나무 바퀴 염색틀을 떠올리게 한다. 미야자키의 두번째 영화에서도 인상적인 기구들이 많은데, 겉보기에는 마치 찌그러진 구 모델의 자동차를 닮아 보이게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다 (로봇의 눈은 마치 에드셀 자동차의 석쇠를 옆으로 돌려 끼워놓은 것 같이 보인다). 유사 빅토리안 풍의 장식과 우스꽝스러운 해적 조연들, 그리고 유쾌한 비행장면들로 가득한 <천공의 성 라퓨타>(1984)는 아마도 미야자키의 작품들 중 가장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최고의 전투 조종사가 되는 쾌활한 돼지의 이야기인 <붉은 돼지>(1991)는 미야자키의 작품들 중 가장 멋진 비행 장면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지만 어떤 작품이든, 마지막 한시간 내내 구름 속을 헤엄쳐 다니는 <…라퓨타>의 그 아슬아슬한 재미에 대적하기는 힘들 것이다. <…라퓨타>는 한편으로는 미야자키에겐 새로운 출발점이였다. 적어도 그것이 하늘에 떠있는 잃어버린 대륙에 관한 모험이라는 고전적인 '소년영화'였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미야자키 영화는 거의 항상 소녀들의 관점을 취한다. 그들은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어리숙하고, 세상과 만나 나가면서 자신의 힘을 테스트 받는 아이들이다. 원령공주는 동물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나우시카에서 여주인공은 괴물인 오무로부터 정신적 신호를 받아 '부해' 속을 다니는 그들과 인류사이의 휴전을 중재하게 된다. 만약 미야자키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과학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그런 능력들이 파워레인져의 능력보다 조금이나마 더 진실되어 보인다면, 그것은 아마 부분적으로는 그의 작품들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둘은 진정으로 은유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녀배달부 키키>(1988)에서 비행 능력은 태동하는 생명력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인데, 주인공은 사춘기 때 겪게되는 자기 정체성의 상실과 함께 일시적으로 그 능력을 잃고 만다. "난 내가 날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너무 당연히 생각했어. 이제 내 자신을 돌아보고 나니까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를 알겠어"라며 그녀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소녀 마녀 키키가 비행선과 함께 위기에 빠진 친구를 구하러 서둘러 나갈 때 그녀의 잃었던 비행능력을 다시 되찾게 된다. 미야자키의 세계는 꼼꼼하다. 그는 각 부분들이 서로 제대로 맞물리도록 세심하게 배려한다. 고대의 벽에 단을 쌓은 돌들이나 나무 잎들의 보드라운 움직임을 보라.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조감된 틴틴(Tintin)풍의 유럽식 배경은 (만약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유럽의 어디에선가 실제로 찾을 수 있었을 풍경일 것이다) 매우 정밀하게 그려져 있는데 역사적 구조물이나, 구역, 그리고 도로 계획들이 기가 막히게 배치되어 있다. 우리는 작품 속에서 비행선이 정박되어 있는 바닷가 공원과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구조장면이 펼쳐지는 중앙 공원, 그리로 이 둘을 잇는 도로들을 조망할 수 있다. 이런 주위 환경과 <이웃집 토토로>에서의 시골풍경에 기울인 세심한 배려는, 마치 예전에 실재했던 한 도시의 완벽한 이면계획도 위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완벽히 환경적 조화로 거슬러올라가는 것이다.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성에 대하여 자연계는 거대한 유기적 기계일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진실된 사람이라면 그 답을 아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역에서 내부적 일관성은 매우 중요하다. 어쨌든, 사회 생태학이란 것은 어떻게 세상이 상호작용하며 돌아가느냐에 대한 좀 더 깊은 한 이해에 불과하다. 어떻게 보면 미야자키 이야기 속의 세계들이나 생태계 자체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풍부하고 다양한 극적 진실을 제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모든 훌륭한 엔지니어들처럼 미야자키는 그의 내면을 뒤집어 보이며 그의 세계를 구축해 간다. 그가 창조하는 것은 단순히 3차원적인 입체감을 조성하기 위해 움직임과 시간을 가미한 2차원 공간의 기능적 모델이 아니다. 그가 상상하는 것은 세상이나 기계의 외면적인 모습만이 아니고 그 내면까지도 포함된다. 그것들은 겉으로만 괜찮아 보여서는 안되고 실제로 제대로 작동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개미>를 만든 애니메이터 팀 존슨은 "만약 당신이 (미야자키의) 그림들로 기계를 만들어 본다면 그들이 멋지게 보이는 만큼이나 진짜로 날아다닐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그냥 하나의 비행기를 생각하든 아니면 지구 전체를 생각하든지 똑같은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내부적 일관성, 대칭, 그리고 원인과 결과의 흠집 없이 매끄러운 연결이 그것이다. "나는 이제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서는 영화를 만들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미야자키는 말한다번역=남수영, 권재현 L.A에 거주하는 필자 데이빗 슈트는 "이 글의 배경 정보의 대부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훌륭한 웹사이트 www.nausicaa.net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밝혔다.

향토에로, 할리우드 키드를 만나다

정확한 시대배경은 알 수 없다. 다만 가난에 찌든 화전민 마을이 나오고 취발이탈을 쓰고 흥겹게 노는 산대놀이패도 나오는 걸로 보아 일제시대가 아닌가 싶다. 첫사랑의 사내가 금광을 찾아 떠나자 분녀는 스스로 제 욕정을 참지 못하여 마을 남정네들을 두루 거친 끝에 읍내 작부집으로 나간다. 그리고 이후로도 계속 고단한(?) 남성편력과 인생유전을 겪은 다음 마을로 돌아와보니 산에는 온통 저 홀로 익어 터진 산딸기들이 그득하다. <애마부인> <빨간 앵두>와 더불어 끝없는 속편행진을 계속해온 에로영화 <산딸기>의 스토리라인이다. 1980년대 초반의 섹스심벌 안소영이 주연을 맡은 것은 제1편뿐이고 이후로는 선우일란-강혜지-소비아 등으로 그 바통을 이어가는데, 스토리상의 연속성도 없고 여주인공의 직업 역시 사당패-약장수 북녀-신딸 등으로 바뀌어가지만, 남달리 욕정이 강해 한 남자에게 정착하지 못한다는 캐릭터만은 동일하다. 비평에서는 외면을 받았지만 변두리 극장가와 비디오대여점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은 향토에로물 <산딸기> 시리즈의 작가가 유지형이다. 시나리오 데뷔작은 코믹터치의 따뜻한 로드무비 <연분홍치마>. 서세원이 재능없는 기타리스트로, 김민희가 부모를 찾아 헤매는 천진한 소녀로 나온다. 이듬해 유지형은 과 <영자의 전성시대>의 속편들을 쓴 다음 김수형 감독과 손잡고 <산딸기> 시리즈를 발표한다. <산딸기>의 히로인 안소영을 사슴목장을 경영하는 농염한 여주인으로 등장시킨 <암사슴>이 제작된 것도 같은 해이다. 1980년대 초반에 이처럼 에로영화들이 대량생산된 것은 전두환 정권의 자유화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1985년 역시 김수형 감독과 함께 만든 에서는 강수연이 연극배우 지망생으로 나와 열연을 펼친다. 1983년작인 <비련> <김마리라는 부인> <바람 바람 바람>은 모두 삼각관계를 주축으로 하는 낡은 형식의 멜로영화들이다. <각설이 품바타령>의 주연이 심형래였다고 하면 단순한 코미디를 연상하겠지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어이없는 짓을 일삼고 구성진 장타령을 늘어놓는 이 각설이가 사실은 만주로 독립군자금을 운반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하여 이듬해 그 속편격인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만들어지는데 이번에는 임하룡까지 가세한다. 남기남과의 또다른 작품인 <흑룡통첩장>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물이고, <심형래의 탐정큐>는 현대코미디다. 좌충우돌의 어리숙한 탐정 역을 맡은 심형래의 연기와 남기남 특유의 에드우드식 연출이 찰떡궁합이다. 1987년에 유지형은 자신의 주특기인 향토에로물 <됴화>로 감독 데뷔식을 치른다. 어머니가 출산 도중에 도화나무 가지를 부러뜨리는 바람에 괴력에 가까운 성적 능력을 갖고 태어난 한 여인의 남성편력기를 다룬 내용인데, 강수연과 이대근이 스크린을 후끈 달굴 만한 운명적인 맞대결(!)을 펼쳐보인다(이 영화를 꼼꼼히 살펴보면 현재 충무로를 주름잡고 있는 스탭과 배우들의 무명 시절을 엿보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됴화>의 흥행실패로 한동안 작품활동이 뜸했던 유지형은 1990년대에 들어와 수준높은 작품들을 잇따라 내놓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널리 알려진 안정효의 장편소설을 각색한 작품. 정지영 감독 및 그의 연출부들과 함께 시나리오를 썼는데, 높은 흥행성적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평단의 찬사를 한몸에 받은 수작이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미쳐 살다가 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른 병석이라는 캐릭터는 모든 충무로 키드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기도 하다. <금홍아 금홍아>는 1930년대의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야수파 화가 구본웅, 초현실주의 시인 이상, 카페의 여인 금홍의 기이한 삼각관계와 그 파국을 다룬 작품. 퇴폐와 허무를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식민지 지식인들의 방황과 고뇌를 언뜻언뜻 내비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구본웅 역의 김수철과 이상 역의 김갑수의 연기도 좋지만 금홍 역을 맡은 이지은의 연기가 단연 돋보여서 그해에 열린 거의 모든 영화제에서 신인여우상을 독차지했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81년 김원두의 <연분홍치마> 1982년 김수형의 <산딸기> ⓥ ★ 1983년 정인엽의 <김마리라는 부인> ⓥ 1984년 남기남의 <각설이 품바타령> 1985년 남기남의 <심형래의 탐정큐> 1987년 유지형의 <됴화> ⓥ 1991년 하주택의 <여자는 추억 속에 집을 짓는다> 1994년 정지영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 ★ 1995년 김유진의 <금홍아 금홍아> ⓥ ⓥ는 비디오출시작 ★는 자(타)선 대표작

웃음의 파격 혹은 실험

MBC 월요일 밤 10시55분 70년대 라디오 청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지미 오스몬드의 ‘머더 오브 마인’(Mother of Mine)이 흘러나온다. 이 음악을 배경으로 화면에는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을 상징하듯 검은 교복 차림을 한 개그맨들이 등장하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화면에 등장한 개그맨들은 아무 움직임 없이 조각처럼 굳어 있다. 인위적으로 움직임을 억제해 정지화면을 흉내낸 화면. 정지는 움직임보다 곱절은 힘들어 개그맨들의 몸은 가볍게 떨리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흐른다. 매주 월요일 밤 10시55분 MBC에서 방송하는 <오늘 밤 좋은 밤>(연출 이응주, 김정욱)의 한 코너 ‘추억은 방울방울’의 모습이다.외형적으로 <오늘 밤 좋은 밤>은 다른 코미디들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 고정코너로 구성돼 있다. 그중에는 ‘월요 시사회’나 ‘우리시대 아버지’처럼 전형적인 코미디 포맷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코너도 있다. 하지만 나머지 세 코너, ‘2001 알까기 제왕전’, ‘총리일기’, ‘추억은 방울방울’은 모두 코미디의 관습적 웃음에서는 크게 벗어나 있다. 이중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세상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알까기 제왕전’이지만 파격적인 아이디어와 발상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코너는 바로 ‘추억은 방울방울’이다. 다카하다 이사오의 애니메이션에서 제목을 따온 ‘추억은 방울방울’이 가장 앞세우는 것은 애니메이션과 마찬가지로 회고 정서이다. 2000년대 최고의 문화상품 코드인 복고정서, 그중에서도 영화 <친구>와 드라마를 통해 최근 신세대들에게 고감도로 감정이입된 70, 80년대의 교복 문화가 이 코너의 표면적인 컨셉이다. 소재로만 보면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코미디에서 교복문화의 추억을 이용한 아이디어는 이미 임하룡의 ‘다이아몬드 스텝’만큼이나 오래됐다. 보는 이를 경탄케 하는 것은 바로 이 회고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방법이다. 움직임이 없는 정지동작을 통한 개그.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을까 끙끙거리다가 전에 본 만화책의 한 장면이 문뜩 떠올랐다. 사람을 정지시키면 어떨까?“ <오늘 밤 좋은 밤>의 연출자 이응주 PD는 그 발상을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완성시켰다. ‘움직이는 개그에서 정지동작의 패러디로 바뀐 것이 그렇게 대단한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코미디는 시간의 패러다임 속에서 펼쳐지는 예술이다. 흔히 개그맨들이 ‘터졌다’고 표현하는 폭소 메커니즘의 핵심은 정교한 타이밍, 그리고 ‘시간차 플레이’이다.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의 개그라도 그것이 적절한 타이밍에 구사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썰렁한 농담’에 불과하다. 아무리 평범한 대화라도 0.1초 내지 그보다 더 세밀한 시차를 두고 빨리 벌어지거나 늦게 일어나는 절묘한 시간조절의 마술을 통해 사람들은 포복절도한다. 오죽하면 베테랑 개그맨 이홍렬마저 “마음먹고 던진 조크에 대해 객석의 반응이 나올 때까지 불과 1초도 안 되는 동안 머리 속으로 ‘내가 적절할 때 (조크를) 던졌을까’라는 반문을 수십번한다”라고 말할까? ‘추억은 방울방울’이 대단한 것은 그동안 코미디를 지배해왔던 이런 ‘시간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공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화면의 ‘미장센’을 통해 웃음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개그맨들이 경련까지 일으키며 구성한 화면은 마치 공들여 정교하게 조작한 세공품처럼 구석구석 기발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흔히 기존의 방송 프로그램(드라마를 포함해서)들이 화면 중앙의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과는 달리 이 코너에서는 오히려 화면 한 구석에 시치미 뚝 떼고 천연덕스럽게 자리잡은 인물의 모습이 더 기발한 반전의 묘미를 준다. 다른 프로그램이라면 ‘행인 1’이나 ‘학생 2’에 속할 인물에게 오히려 웃음의 포인트가 있는 것이다. 연속적으로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화면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이곳저곳 꼼꼼히 뜯어보면서 하나하나 웃음거리를 찾아내는 즐거움은 시청자에게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듯한 재미를 준다. 그래서일까, 이응주 PD가 손꼽는 연기자도 서춘화이다. 그녀는 장면의 핵심인물이 아니다. 어떤 때는 선생, 어떤 때는 지나가는 행인이 되는 서춘화는 흔히 말해 어깨 너머의 움직이는 배경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매장면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그녀에게서 우리는 글의 행간을 읽듯, 아기자기한 화면구성의 잔재미를 발견한다. ‘추억은 방울방울’이 시도하는 웃음의 형태는 또 있다. 몇번의 시청을 통해 이 코너의 특성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을 겨냥한 의표를 찌르는 상황 연출이다. 한 사람은 넘어지려 하고, 다른 사람은 그 위로 덮치려 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구도 속에 정지동작을 취한 한 무리의 사람들. 그런데 그 앞으로 누런 시골 개 한 마리. 분위기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지나간다. 바로 인위적으로 구성한 ‘시간의 멈춤’ 위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시간의 흐름’을 덧씌워 웃음을 유도하는 것. 뭐, 어렵게 설명했지만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기차역에서 뛰는 모습을 정지장면으로 연기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이나 뛰어다니는 동네 강아지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추억은 방울방울’은 정해진 틀 위에 안주하려던 기존의 코미디 프로에 새로운 자극이다. 물론 ‘그래봐야 코미디의 한 코너에 불과한데, 웬 호들갑이냐’라고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참신한 감성으로 쓰여진 짧은 시가 대하소설 한편보다 더 깊은 감동을 주기도 한다. 웃음의 밀도에는 시간의 양이 중요한 변수는 아닌 것이다. 한마디 더 ‘추억은 방울방울’의 기발함은 일본까지 알려져 얼마 전에는 일본의 한 민방 제작진이 찾아와 제작현장을 견학하고 가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가 늘 모방의 대상으로 삼던 일본 코미디에서 거꾸로 배우러 온 셈이다. 코너의 아이디어에 대해 자신감을 얻은 이응주 PD는 얼마 전 ‘추억은 방울방울’의 아이디어로 실용신안특허를 신청하기도 했다. 김재범/ 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sports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