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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 제작, 그 천일간의 기록

1997~2001, 중국 대륙의 모래바람 뚫고 김성수 감독의 <무사>가 태어나기까지, 그 험난한 여정의 기록 600여년 전 한 무리의 고려인들이 원말 명초 혼란기의 중국 대륙에서 자취를 감췄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그들에게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사>는 공식적인 역사서에서 물음표로 남겨둔 여백에서 출발한 영화다. 김성수 감독은 여기서 난생처음 사막의 모래폭풍에 휩싸인 사람들을 떠올렸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인간 한계를 넘는 한발한발을 내딛는 사람들, 그들은 오래 전 구로사와 아키라의 와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같은 영화들에서 자신을 매혹시켰던 존재의 극단에 있는 인간이었다. 어느날 아침 수백명이 바삐 움직이는 <무사> 촬영장에서 그는 자신의 꿈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걸 봤다. 역사가 눈길을 돌린, 실패한 자들의 전쟁을 복원시키는 작업이 중국의 낯선 풍광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었다. <비트> <태양은 없다>에서 연달아 김성수 감독의 파트너였던 조민환 프로듀서, 김형구 촬영감독, 이강산 조명감독, 정두홍 무술감독, 배우 정우성 등은 김성수의 비전을 필름에 담는 데 동의했다. 자신들에게 닥칠 고난을 각오한 그들에게 5개월간 1만km를 횡단하는 <무사>의 여정은 도전해볼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2000년 8월6일 크랭크인해서 12월22일까지 112회 촬영에 4천컷을 찍은 무리한 일정은 <무사> 제작진을 곧잘 한계상황에 몰아넣었다. 40도가 넘는 모래사막에서 여름을 보내고 영하 30도로 떨어지는 혹한 속에 한달 동안 전투장면을 찍어야 했던 그들은 때로는 일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때로는 오한과 구토로 하루 3∼4시간밖에 허용되지 않는 밤잠마저 설쳐야 했다. 나중에 편집과정에서 들어낸 부분이지만 안성기씨가 “그토록 고향에 가고 싶었는데 막상 고향 생각이 잘 나지 않아. 그저 이 끝도 없는 행군이 어서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이야”라는 대사를 할 때 다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후일담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 강행군이었던 것이다. 프로듀서 조민환씨가 쓴 제작일지는 시대극을 만드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한국영화가 미지의 땅에서 먼 과거를 불러들여 확보한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영화가 공개된 뒤 비로소 알 수 있겠지만 제작진의 수고만큼은 따로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영화는 어쩔 수 없이 한 개인의 상상력에 기반하는 예술이지만 수십, 수백명의 피와 땀이 직조하는 수공업적 노동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편집자 ▶ <무사> 제작, 그 천일간의 기록 ▶ <무사> 제작일지 (1) ▶ <무사> 제작일지 (2) ▶ <무사> 제작일지 (3) ▶ 숫자로 본 <무사> ▶ <무사> 등장인물 ▶ <무사> 스탭 ▶ <무사>가 달려온 길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1)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2)

<무사> 제작일지

프롤로그 영화 <무사>의 시작은 199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비트> 후반작업을 할 때 김성수 감독이 “한 무리의 무사들이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이야기를 하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처음 했다. <용문객잔> <유성호접검> 같은 무협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좋다”고 말했지만 그런 영화를 언제 찍게 될지는 몰랐다. <태양은 없다>를 개봉하고 감독이 다시 그 얘기를 꺼냈다. “지난번에 내가 했던 얘기 기억하냐? 그 영화, 성을 짓고 찍었으면 좋겠어”라고. “응,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뭐.” 건성으로 듣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두려움이 밀려왔다. 성을 짓는다고? 이 양반이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서 감독이 입버릇처럼 칭찬하는 영화 를 봤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엔 장풍도 없었고 칼바람도 없었다. 내가 생각한 무협영화와는 전혀 다른 액션이 아닌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에 끼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9년 2월 <쉬리>가 흥행신기록을 향해 질주하면서 제작비 30억원 규모의 대작도 가능한 여건이 조성되는 걸 느꼈다. 그 무렵 감독이 고려사에서 중요한 단서를 하나 찾았다고 말했다. 원말 명초의 혼란기에 중국에 갔던 고려 사신 일행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였다. <무사>라는 제목도 그때 나왔다. 한 가지 희망이 생긴 건 감독이 자기가 생각한 성이라며 그려온 그림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성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해안토성이다. 혹시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하 TV드라마의 세트작업을 많이 했던 청솔아트센터에 가서 성을 지을 수 있겠냐고 문의했더니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곳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1999년 9월, 감독이 태흥영화사에서 먼저 찍기로 했던 영화가 안 될 거 같다며 본격적인 준비를 요청했다. 그해 10월 처음 중국에 갔다. 정말 <무사>를 시작하게 될 줄이야. 1999년 10월 베이징에서 첸카이거의 <현위의 인생> <패왕별희> 등을 만든 중국 프로듀서 장시아를 만났다. 이렇게 작고 호리호리한 아줌마가 <패왕별희> 같은 대작을 만들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동사서독>을 찍었다는 위린에 가는데 흉흉한 소문을 들었다. <동사서독> 찍을 때 산적들이 나타났고 조명기를 도둑맞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 외국인 출입금지구역인 이곳에는 3개의 관문이 있다. 자칫 잘못 걸리면 벌금을 물어야 하지만 담배 한갑으로 무사 통과할 수 있단다. 안내를 한 친구가 한국인이 이곳에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막상 도착한 위린은 훌륭했다. <무사>를 찍는 데 필요한 사막과 계곡이 모두 있었다. <무사>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2000년 1월 조동호 조감독과 은천에 갔다.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 위린에 비해 비교적 큰 도시여서 괜찮겠다는 판단을 했다. 근처에 사막이 있냐고 물어보니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다. 막상 차를 타고 가보니 3시간30분이 걸렸다. 중국인들은 그 정도를 가깝다고 말한다. 우리랑 거리 개념이 다른 게 실감났다. 싼관, 중웨이 등 드라마의 전반부가 펼쳐질 공간을 찾았다. 2000년 2∼7월 베이징에 아파트를 얻고 베이징제편창에 사무실을 임대했다. 17평 아파트에서 연출부 4명, 제작부 3명, 중국유학생 3명, 감독과 나 모두 12명이 수용소 같은 생활을 시작했다. 베이징영화학교 출신 김필정으로부터 부용 공주 역으로 장쯔이가 괜찮을 거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을 보고 매력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장예모가 제2의 공리로 키우고 있는데다 리안과 <와호장룡>을 찍고 있다는 것이다. 5월에 칸영화제에서 <와호장룡>을 본 노종윤 이사가 전화를 했다. 장쯔이를 캐스팅하면 좋을 거 같다는 얘기였다. 서극의 <촉산전>을 찍고 있는 장쯔이를 처음 만났다. 그 전에 오천련, 양영기, 이가흔 등 홍콩 여배우를 여럿 만났지만 장쯔이가 느낌이 좋았다. 감독도 부용 공주 이미지로 어울린다고 말했다. 2번째 만남을 가질 때 장쯔이가 자기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보자고 하자 중국쪽 프로듀서를 맡기로 한 장시아가 장쯔이 캐스팅에 반대했다. 감독과 제작자에게 ‘이리로 오라’고 요구한 것부터 맘에 안 드는데다 <와호장룡> 촬영장에서 리안 감독이나 스탭과 사이가 안 좋았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 감독과 한번만 더 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역시 소문은 실제보다 부풀려지는 법인가보다. 감독과 난 둘 다 만족했다. 며칠 뒤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장쯔이의 출연계약서에 ‘하루 12시간 수면을 보장할 것’이라는 조항이 있었다. 언제 24시간 촬영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다. 크랭크인이 2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라 지금 와서 배우를 바꾸기도 힘든 상황이지만 이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순 없었다. 일부러 “배우를 바꿀 거 같다”는 소문을 냈다. 사흘 뒤 장쯔이가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정말 <무사>를 꼭 찍고 싶었나보다. 그녀는 매니저가 끼어들 틈도 주지 않고 내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 장쯔이의 시원스런 태도가 맘에 들었다. 6월 말 미술감독 후팅샤오가 씽청에서 토성을 지을 공간을 찾아냈다. 직접 가서 보니 구릉과 바다가 예전에 감독이 구상했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토성이 들어설 곳에 있던 어장을 철수시키기로 하고 씽청현과 협의에 들어갔다. 토성을 지어 현에 기증할 테니 길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영화를 찍을 공간과 배우가 확보됐다. 2000년 7월31일 심하게 나흘을 앓았다. 힘겹게, 힘겹게 준비해오면서 많은 불안감이 한꺼번에 덮쳐오면서 감기가 왔나보다. 오랜(?) 준비를 했다지만 부족한 것 투성이다. 시나리오, 콘티, 의상, 기타 셀 수 없이 많은 복병들이 영화 <무사>의 행군을 가로막겠지. 아이들이 그리운 저녁, 작은 미열들이 이마에서 재잘거린다. 몸이 고단할수록 그리움이 자란다. 2000년 8월3일 당초 8월1일로 잡았던 고사를 연기해서 오늘 지냈다. 중국 스탭들이 8월1일은 재수없는 날이라며 고사일을 미루자고 제안한 탓이다. 그런 게 어딨어, 하고 밀어붙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현장에선 공연한 일로 스탭들을 자극하거나 불안하게 만들면 안 된다. 괜히 8월1일로 고집했다가 행여 사고라도 나면 ‘재수없는 날, 고사를 지내서 그랬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영화 <무사> 되게끔 하시고 항상 행운이 떠나지 않게 하시고 거듭거듭 안전하게 하옵소서.” 내가 쓴 제문의 구절대로 ‘안전’을 다시 기원해본다. 2000년 8월6일 베이푸투어에서 첫 촬영에 들어갔다. 남경성에 들어가려는 고려 사신 일행을 명나라 관리들이 저지하는 장면. 엑스트라, 스탭을 합쳐 400여명이 동원됐고 말만 60마리다. 감독이나 나나 이렇게 규모가 큰 장면을 찍어본 적이 없다보니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카메라 3대를 세팅하고 엑스트라를 통제하는 데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새벽부터 준비했지만 11시30분이 돼서 처음 카메라가 돌아갔다. 과연 이렇게 찍어서 일정대로 마칠 수 있을까? 2000년 8월9일 “워쓰 가오리.” 현장에는 늘 유행어가 생긴다. <무사> 현장의 첫 번째 유행어는 “워쓰 가오리”다. “나는 고려인”이라는 뜻이다. 영화에서 최정 장군(주진모)이 명나라 군사와 마주칠 때 하는 대사인데 주진모가 이 대사를 할 때마다 스탭들이 계속 웃는다. 주진모가 연기를 할 때 누군가 옆에서 “앗싸 가오리”라고 말하자 감독도 스탭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정우성과 감독이 주진모에게 장난을 친다. “워쓰 가오리, 앗싸 가오리.” 2000년 8월14일 사막장면을 찍기 위해 베이징에서 중웨이로 이동했다. 기차로 꼬박 23시간, 차로 4일이 걸리는 대장정. 달리 수송할 방법이 없는 말 50필은 4일간 서서 중웨이까지 왔다. 베이징과 달리 이곳에 오자 카메라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A, B조로 나눈 카메라는 A조가 주연배우들이 연기하는 장면을 찍고 B조가 인서트 장면이나 특수효과 장면을 찍는다. 한낮엔 50도까지 올라가는 폭염이지만 일단 가속이 붙은 카메라는 종횡무진이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사막을 횡단하는 지친 고려인들을 찍자니 스탭들이 바빠질 수밖에 없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은 무더위지만 뛰지 않으면 안 된다. 화면에 보이는 위치에 발자국이라도 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사막은 정오부터 2시까지 워낙 반사가 심해 화면에 허옇게 나와버린다. 하지만 오후 4시부터 해질 때까지 사막은? 오, 정말 아름답다. 하루중 광선이 제일 좋은 시간, 이걸 놓칠 순 없다. 스탭들이 자기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자 답답해하며 감독이 소리친다. “야! 지금 우리 발버둥 시간이야. 발버둥쳐도 찍을까 말까 한데 이렇게 느리게 움직일래?” 누군가는 이걸 ‘지랄샷’이라고 했다. 한 컷을 건지려는 몸부림이 처절하다. 2000년 8월16일 드디어 중국 스탭들이 허옇게 질렸다. 분명 우리를 ‘미친놈’이라고 여길 것이다. 우리 모두가 모래폭풍 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모래폭풍을 처음 발견한 건 감독이다. “저게 뭐지?” 하는 말을 듣고 감독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까 뭔가 회오리 같은 게 멀리 보였다. 바람이 만든 모래기둥이 분명했다. 중국 스탭들은 그걸 보고 철수를 준비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극중 이지헌 부사로 나오는 송재호씨가 한마디했다. “하늘이 주신 기회야. 강풍기 100대를 동원해도 저런 효과는 못 낼 거야.” 모래폭풍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 있었고 강풍기를 동원해 찍기로 예정했던 대목이었다. 그러나 감독의 눈을 보니 벌써 결심이 선 게 분명했다. 난 제작부를 불러 스탭들에게 고글과 마스크를 나눠주라고 했다. 달리 지시할 게 없었다. 감독이 뛰기 시작하자 스탭, 배우 모두 일제히 뛰었다. 모래폭풍 속으로. 카메라를 멀리 세워놓고 찍는 장면이라 대역배우를 쓰려고 했지만 이번에도 송재호씨가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연기자 중 최연장자가 그렇게 나오는데 누가 대역을 쓰겠는가? 모래폭풍은 대단했다. 말하려고 입을 벌리면 입 속으로 한 움큼 모래가 들어갔고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배우들은 연기를 했고 김형구 촬영감독은 다양한 앵글로 모래폭풍장면을 찍었다. 특수효과로 결코 만들 수 없는 장면이 정말 실감나게 찍혔다. 그걸 목격한 중국스탭들 표정은 가관이었다. 다른 영화처럼 여유부리며 찍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걸 비로소 실감했다는 듯 절망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쟤들 실력은 어떤지 몰라도 악과 깡은 남부럽지 않은 애들’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진정 한국 영화인의 기개를 중원에 떨치고 있다! 2000년 8월25일 사막장면을 찍은 중웨이에서 이동해 은천의 스웨이똥코에 왔다. 몽고보다 조금 아래 있는 중국의 내륙지방인 이곳은 황사현상의 근원지라고 한다. <무사> 촬영팀에 대한 환영인사인지 정말 채 몇 컷도 찍기 전에 심상찮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에 실려오는 모래가 옷 속으로, 코로, 입으로, 귀로 하염없이 밀려들어온다.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눈, 코, 귀를 꽁꽁 싸매고 일부 스탭은 랩으로 얼굴을 포장했지만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마침내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오늘은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2000년 8월26일 헌팅할 때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라고 해서 택한 지역인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려고 보니 여기저기 푸릇푸릇 풀이 돋고 있다. 제작부와 창공(중국의 현장잡역부)들의 오늘 임무는 카메라 방향에 있는 풀을 뽑는 일. 발자국을 내지 않기 위해 신발까지 벗고 다들 풀뽑기에 정신이 없다. 어제 황사현상 때문에 찍지 못한 밤장면을 찍으려 장소를 옮겼는데 이번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치기 시작한다. 벼락은 무서운 속도로 현장을 향해 다가왔다. 수십번 벼락이 치더니 마침내 돌멩이만한 빗방울이 떨어진다. 결국 다시 철수. 2000년 8월27일 일주일새 세 번째 24시간 촬영이 이어진다. 계속되는 밤촬영과 악천후 때문에 일찍 철수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새벽 6시 기상해서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촬영이 진행된다. 일주일 동안 하루 빼놓고 매일 밤새우고 3번씩 24시간 촬영을 하려니 탈진한다. 게다가 사막의 밤추위는 뼛속으로 파고든다. 일출장면까지 찍고 촬영이 끝난 시간은 오전 7시. 숙소에 들어가면 8시인데 오후 2시에는 다시 기상해야 된다. 2000년 8월28일 오늘도 역시 밤촬영. 어디선가 낯익은 노랫소리가 들린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은 모니터 앞 작은 오디오다. 김추자의 노래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감독, 배우, 스탭 할 것 없이 다들 잠시 감상에 젖는다. 안성기 선배가 정서 함양을 위해 사서 현장에 기증한 작은 오디오가 삭막한 현장의 짧은 휴식을 달콤하게 휘감는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꽹과리 소리가 들린다. 웅성거리는 사람소리도 그치지 않는다. 제작부장을 급파해 진상을 파악해보니 근처 농민들이 옥수수밭을 훼손하는 멧돼지를 쫓는다고 내는 소리란다. 그들 중 가장 어른격인 사람에게 200원(한화로 약 3만5천원)을 주고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다시 평화가 찾아들었다. 다음날 이 사람들은 다시 꽹과리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라, 돈을 좀더 뜯어내겠다는 거구나. 하지만 이젠 필요없다. 우리는 사운드 없는 장면을 찍고 이곳을 철수했다. 그곳 농민들의 태도가 조금은 귀엽다. 2000년 8월30일 타올러로 이동해 한달 만의 첫 휴식을 맞는다. 스탭들이 쉬는 동안 나와 감독, 촬영감독, 조명감독, 미술감독은 객잔장면을 찍을 세트에 갔다. 미술감독 후팅샤오에게 외부만 찍을 테니 겉만 멀쩡한 객잔세트를 만들면 된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내부까지 완벽한 세트를 만들어놓았다. 의자며 탁자도 오랜 세월 그곳에 있던 것처럼 손때가 묻어 있고 진흙벽에 그을음까지 만들어놓았다. “왜 이랬냐”고 물어보니 한다는 대답. “감독들은 겉만 찍는다고 해놓고 갑자기 안을 찍기도 하지 않는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자인데다 놀라운 솜씨를 갖고 있다. 객잔을 보니까 호금전의 <용문객잔> 한 장면이 생각난다. 화살이 날아오면 술병에 담아 되받아치던 젊은 무사의 모습에 나는 얼마나 감동했던가? 어쩌면 <무사>를 선뜻 하겠다고 나선 것도 <용문객잔> 때문이었으리라. <무사>에는 <용문객잔> 같은 액션이 없지만 번듯하게 지어놓은 객잔을 보니 나를 매혹시킨 기억이 새록새록 다가온다. ▶ <무사> 제작, 그 천일간의 기록 ▶ <무사> 제작일지 (1) ▶ <무사> 제작일지 (2) ▶ <무사> 제작일지 (3) ▶ 숫자로 본 <무사> ▶ <무사> 등장인물 ▶ <무사> 스탭 ▶ <무사>가 달려온 길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1)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2)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 워낙 강행군이라 스탭들의 불만도 많았을 텐데. = 불만이 많이 쌓였을 텐데 밖으로 표출한 적은 없다. 촬영분량 중에 진립이 별장 가남에게 “그토록 고향에 가고 싶은데도 막상 고향 생각이 잘 나지 않아요. 그저 이 끝도 없는 행군이 어서 끝났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고 있던 스탭들이 눈시울을 적셨을 정도로 힘들긴 했다. 사막의 경우 기온이 50도 정도 되는데 더위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하니 탈진한 스탭도 많았다. 많이 지쳤을 것이다. + 그럴 땐 잘 다독이고 그랬나. = 절대 그렇지 않다. 다독여서 어떻게 영화를 찍겠나. 내가 그들을 위로하고 다독인다며 시간을 낭비한다면 일 끝나고 오히려 그들이 잘못했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이 힘들 때, 독려한다고 뭘 하는 게 아니라 조 이사와 내가 먼저 뛰었다. 사실 아닌게아니라 꼭 그래야만 했나 하는 반성도 든다. 좀 심하긴 심했는지 나이 50쯤 된 중국 제작부장이 우리 스탭을 끌어안고 울었다고 하더라. “너네 감독이 인간이냐”면서…. (웃음) +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 힘들었다기보다는 좀 다른 성격의 순간이 있었다. 영화를 시작한 지 15년쯤 된 것 같은데, 아직까지 후회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힘은 들지만 늘 즐거웠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토성 촬영에 들어간 지 한달쯤 지났을 때인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냥 아무 이유없이 촬영장에 나가기 싫더라. 어린애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니고 그냥 바닷가 호텔에서 즐기러 온 것이면 어떨까 하는, 내가 처한 이 모든 상황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런 통보없이 방에 혼자 있었다. 어쨌거나 신선한 하루였다. + 비용과 시간이 당초보다 늘어나 부담이 되진 않았나. = 물론 부담이었다. 찍다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속도로 찍지 못하겠더라. 애초 2천컷 정도를 쓸 것으로 생각해 넉넉잡아 2500컷만 찍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늘 내가 짜놓은 콘티보다 많이 찍게 됐고, 하루에 찍기로 했던 분량을 채우지 못하고 하면서 길어졌다. 사극은 분장, 말, 소도구, 액션 이런 게 생각보다 준비할 게 많아 어려운 것 같다. 그래도 <무사>와 같은 여건이라면 한 감독으로선 최고를 맛본 것 같다. 촬영 도중 언덕에서 모래 일으키며 말들이 달려오고, 오아시스에서 전투를 벌이는 배우들이 뒤엉키는 모습을 볼 때 “야, 이거 꿈이 이뤄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 후반작업은 어땠는지. = 불만족스러운 요소는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한 것 같다. 편집은 좀 쫓겨서 했지만 사운드에 관해서는 원이 없다. 특히 사기스 시로의 음악은 마음에 쏙 든다. 나는 시로에게 동양음악인지 서양음악인지 국적이 없는 음악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자신이 일본에서 태어났음에도 유럽을 돌며 살고 있는 무국적자니까. 또 가슴에 닿는 듯한 민요가락과 애잔한 피리소리를 넣어달라는 주문도 했고, 생북소리를 많이 넣어 흥분감과 전쟁의 기운을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결과물은 너무 좋다. + 영화를 찍으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라기보다는 영화를 찍으면서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한 장면의 경우, 그 신이 나오기 10분 전부터 짜증이 난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우리는 10개월 정도 준비하고 했는데 막상 중국에 가보니까 더 시간을 들여 준비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세분화된 일의 진행방식이라든가 일의 효율성을 획득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다. + 이 영화를 통해 ‘무사’란 어떤 존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 내가 생각하는 무사의 정신은 어떤 대의명분이 옳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신분상 ‘무사’라는 지위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근엄함이나 멋에 관해선 의심해왔다. 어떻게 사람이 늘 그런 고매한 생각을 갖고 살 수 있나. 이 영화에는 신분상 무사가 아닌 사람이 절대다수 등장한다. 무사가 아니긴 하지만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에는 무사처럼 행동할 수 있었으면 했다. 또 가식적이고 거룩한 명분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소한 이유라거나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고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행동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애초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이 무언가 결정을 내리게 되고 그 결정을 내린 순간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관객에게 감히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면, 객관적으로 볼 때는 사소한 것이지만 자신을 감동시키고 움직였던 작은 대의명분에 기꺼이 목숨을 던진 그 사람들이 우리와 닮아 있고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친근감을 느껴줬으면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유치한 영웅주의 같은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은 늘 나를 흥분시키고 감동시킨다. 글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사진 정진환 기자 jungjh@hani.co.kr ▶ <무사> 제작, 그 천일간의 기록 ▶ <무사> 제작일지 (1) ▶ <무사> 제작일지 (2) ▶ <무사> 제작일지 (3) ▶ 숫자로 본 <무사> ▶ <무사> 등장인물 ▶ <무사> 스탭 ▶ <무사>가 달려온 길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1) ▶ <무사> 김성수 감독 인터뷰 (2)

<베사메무쵸> 은밀한 유혹 응할 것인가

<단적비연수>에 이은 강제규 필름의 신작 <베사메무쵸>(감독 전윤수)는 여러모로 로버트 레드퍼드와 데미 무어가 주연했던 <은밀한 유혹>을 떠올리게 만든다. 부동산 투자에 실패하고 집까지 빼앗길 위기에 처한 젊은 부부에게 한 백만장자가 100만달러를 대가로 아내와의 하룻밤 잠자리를 제안하는 영화였다. 고심 끝에 부부는 이 `게임'에 응하지만, 그 결과 심각한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베사메무쵸>는 주인공의 이름 만큼이나 꽤나 `한국적'이다. 철수(전광렬)와 영희(이미숙) 부부는 간신히 마련한 18평 아파트에서 네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 없지만 행복하다. 그런데 증권사 과장인 철수가 회사의 주가조작 작전지시를 거부하면서 직장에서 쫓겨나더니 친구의 빚보증이 잘못 되는 바람에 집을 차압당할 위기에 처한다. 돈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부부에게 제각기 은밀한 유혹이 찾아든다. 영희에게는 학창 시절 선배가, 철수에게는 고객이던 젊은 사업가의 부인이 단 한 번의 잠자리에 1억여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던진다. 그리고 어느 한 쪽이 이 거래를 성사시킨다. 20대 관객의 극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실에서 62년생의 두 배우를 주연으로 세워 30·40대를 겨냥한 <베사메무쵸>는 무척 도전적이다. 하지만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과감성은 신파조의 완고함으로 대체된다. 전반부의 초점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영희가 떠맡아야 할 억척스러움과, 평범한 부부의 일상을 위협하는 이 사회의 잔혹함이다. 대형 할인 매장에서 벌어지는 주부들의 눈물어린 투쟁을 극적으로 보여주거나, 아이들로 복닥거리는 집안 풍경을 꽤 오래도록 묘사하는 식이다. 그런데 위기와 유혹이 동시에 찾아든 중반 이후 질문은 정조의 문제로 급격히 돌아선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거래였음을 내내 보여주고는 갑자기 인물 사이의, 인물 내부의 갈등을 모두 정조의 문제로 몰고가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결혼 10년차쯤이면 생활에 치이느라 부부의 애정에 어떤 골이 있었던 건 아닌지 탐색해가는 게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모든 문제와 상처가 극적으로 봉합되는 결말에 이르면 `가짜 같은 가짜'를 보는 느낌이 절정에 이른다. <은밀한 유혹>에서는 정조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 상호간의 믿음에 어떻게 균열이 생기고 그 틈이 커져가는지 보여주는 데 꽤 오랜 시간을 돌렸다. 이 영화 개봉 당시 같은 내용의 `잠자리 제안'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 여성의 80%가 기꺼이 응하겠다고 밝혔다. 설문 대상이 미국인이었지만, 이런 현실과 <베사메무쵸>가 전하는 내용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다. 이성욱 기자lewook@hani.co.kr

브리짓 존스의 일기

■ STORY 브리짓 존스(르네 젤위거)는 런던의 출판사에 다니는 32살의 미혼여성. 명절 때면 남자를 엮어주려는 어머니와 애인 없냐는 주변의 참견에 스트레스를 받는 그녀는 새해부터 칼로리와 흡연량, 주량 메모를 포함한 일기를 쓰면서 생활을 개선하자고 결심한다. 성탄파티에서 소개받은 무뚝뚝한 인권변호사 마크 다시(콜린 퍼스)와 떨떠름한 첫인상만 남기고 헤어진 브리짓은, 바람둥이 직장 상사 다니엘 클리버(휴 그랜트)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나 연인의 아파트에서 벌거벗은 여자와 마주친 날 브리짓의 짧은 사랑은 파국을 맞고, 새 애인을 사귄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아빠를 돌보는 일까지 짊어진다. 방송사 리포터로 이직한 브리짓은 마크의 도움으로 특종을 얻고 파티에 그를 초대해 따뜻한 한때를 보내지만 불쑥 찾아온 다니엘의 구애와 두 남자의 주먹다짐으로 서로를 오해한 채 헤어진다. 다니엘과 마크의 과거사를 알게 된 브리짓은 마침내 마크를 향한 감정을 확신하지만 마크와 다른 여성의 약혼이 발표된다. ■ Review “일정한 나이를 지난 여자가 제 짝을 만날 가능성은 원자폭탄 투하 뒤 살아남을 확률보다 낮다.” 이제는 클래식이 된 로맨틱코미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나오는 몰인정한 대사다. 서른두살 먹은 런던의 노처녀 브리짓은 말하자면 그 희박한 확률의 ‘희생자’다. 근사한 남자친구의 에스코트를 후광으로 두르고 다니지 못하는 거야 아쉬운 대로 참을 만하지만, 문제는 온 세상이 합세해 몰아세우는 통에 어느새 스스로도 자신을 동정하게 된다는 처량한 사실. “술병을 애인 삼아 끼고 여생을 보내다가 어느날 독신자 아파트에서 홀로 죽고 나면 3주 뒤에 기르는 애완견에게 1/3쯤 뜯어먹힌 시체로 발견되겠지.” 영화가 상상 화면까지 친절히 곁들여 보여주는 브리짓의 악몽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감난다. 니코틴과 알코올과 칼로리 섭취량을 강박적으로 체크하는 브리짓의 일기는 그녀를 가위눌리게 하는 불안의 단면이다. “서른살 넘은 독신여성과 게이남성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유대가 형성된다. 이들은 모두 부모를 실망시키고 사회로부터 괴물 취급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원작인 헬렌 필딩의 베스트셀러가 내놓은 정리(定理)다. 그래서 브리짓은 결혼한 친구들의 쌍쌍 저녁파티에 초대받는 일을 고문으로 여기고, 모든 런던 시민이 자기 체중을 주시한다는 노이로제에 시달리며, 밤이면 를 목놓아 따라부른다. 독신 직장여성들의 ‘애환’을 다룬 포스트 페미니스트 문화상품으로는 TV쇼 <앨리의 사랑 만들기>과 <섹스 앤 시티>가 이미 잭팟을 터뜨렸으나 미국산 자매품들과 달리 영국산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수더분하다. 속내야 어쨌건 화려한 커리어를 남녀 관계에 대한 교훈을 얻는 일종의 학습장으로 이용하는 두 TV시리즈의 여피 헤로인들과 달리, 브리짓은 퇴근시간만 고대하는 실수투성이 월급쟁이다. 실연 이후 방송사라는 폼나는 직장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그 역시 그녀의 숨은 지성이 발견돼서라기보다 면접담당 간부가 “상사와 연애하다” 그만뒀다는 브리짓의 고백에 솔깃했기 때문이다. 한편, 흑맥주와 피자로 몸를 만들었다는 르네 젤위거가 호연한 브리짓은 <뮤리엘의 웨딩> 이후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정상 체중의 여성. 지방으로 울퉁불퉁한 허벅지를 내려다보며 데이트에 야한 란제리를 입을까 보정용 속옷을 입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는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연애의 묘약이 필요한 브리짓에게 다가온 두 남자는 섹시한 편집장 다니엘 클리버와 우울한 인권변호사 마크 다아시. “오늘은 스커트가 병가를 냈나?” 이렇게 썰렁한 농담으로 수작을 건 연애가 제대로 풀릴 리 없지만, 브리짓은 패션감각 없는 다아시보다 세련된 다니엘에게 기운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의 현대판을 자임하는 <브리짓…>에서 승자는 정해져 있다. 심지어 6년 전의 인기시리즈 <오만과 편견>에서 미스터 다아시 역을 맡았던 콜린 퍼스가 연기하는 마크 다아시는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와 <센스, 센시빌리티>의 브랜든 대령, <엠마>의 나이틀리가 그랬듯이 여주인공의 철부지 행각을 지그시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 사려깊은 손길을 내민다. 마크 다아시가 제인 오스틴 가문 출신이라면 브리짓 존스는 공동각색자 리처드 커티스가 세운 전통에 따라 든든한 친구들을 거느린다. 브리짓이 히스테리를 일으킬 때마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집합하는 입담 험한 페미니스트 샤자와 골칫거리 애인을 둔 주드, 왕년의 팝스타였던 게이 톰은 원작에서도 중요한 조연이지만 <네번의 결혼식, 한번의 장례식>, <노팅힐>에서 리처드 커티스가 창조해낸 사랑스런 패거리 친구들의 또다른 버전이기도 하다. 뒷얘기를 들추자면 영화 <브리짓…> 자체도 동아리문화의 산물. 다큐멘터리 출신의 데뷔감독 샤론 맥과이어는 브리짓의 친구 샤자의 모델이고 작가 커티스는 필딩의 옛 남자친구였으며 커티스의 현 부인은 이 영화의 홍보에 참여했다고 한다. 공동작가 앤드루 데이비스는 콜린 퍼스가 출연한 TV판 <오만과 편견>을 썼고, 이만한 내부자는 아니지만, “총명한 희극적 창조”라고 필딩의 원작을 칭찬했던 작가 샐먼 루시디도 깜짝 카메오로 등장한다. 로맨틱코미디의 귀재로서 각색에 센 입김을 끼쳤으리라 짐작되는 커티스는 원작의 일기체를 영화의 얼개에 거의 반영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일상 스케치는 줄어들고 드라마틱한 연애담이 부각됐다. 그러나 <브리짓…>에는 여전히 극중 인물을 비하하거나, 웃기고야 말겠다고 악착을 떠는 법이 없는 리처드 커티스식 코미디의 여유가 있다. 마크와 다니엘이 어설픈 주먹다짐을 벌이다 밀려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얼떨결에 생일 축하송을 따라부르는 시퀀스는 그런 미덕을 보여주는 수수한 명장면.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커피 테이블의 수다 같은, 공감의 영화다. <네번의 결혼식…>의 전복성도 <노팅힐>의 감동도 원작소설의 재기도 능가하지 못하지만, <브리짓…>은 인생의 특정한 느낌을 공유하는 관객, 즉 ‘그리 우아하지 못한 싱글’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바싹 다가앉아 사근사근하게 말을 건다. 친척 모임에 빠질 핑계를 만드느라 고민한 적 없나요? 영화 <위험한 정사>를 보며 남들이 통쾌해하는 글렌 클로즈의 죽음을 연민한 적 없나요? 퇴근 뒤 화장을 지우다 거울 앞에서 멍해진 적은? 회식이 끝난 뒤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울음을 터뜨린 적은? 당신은 그런 적이 없나요? 김혜리 기자 vermeer@hani.co.kr ▶ 브리짓 존스의 일기 ▶ 마크 다아시 역의 콜린 퍼스

“나는 영화장이, 정신건강이 허락하는 한 만든다”

● 황기성 사장은 지나간 일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60년대 신필림 시절 영화에 투신해 40년 가까이 활동해온 한국영화의 산증인이지만, ‘회고’보다 ‘구상’에 가치를 두는, 현재진행형 영화인이다. 황기성이라는 제작자가 흥미로운 또다른 이유를 <영자의 전성시대> <어둠의 자식들> <고래사냥> <성공시대> <안개기둥>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닥터 봉> <고스트 맘마> <찜> 등으로 채워진 필모그래피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때마다 적절한 이슈를 골라내고, 당대 관객에게 어필하는 영화를 기획·제작하는, 흥행사로서의 녹슬지 않는 감각이다. 젊은 관객과 호흡하려는 노력은 또한 젊은 영화인(장선우, 박철수, 강우석, 김성홍, 이광훈, 한지승)의 발굴과 재발견의 결실로도 이어져왔다. 황기성 사장이 최근 새로이 관심을 기울인 장르는 스릴러. <신장개업>에서 함께 작업한 김성홍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세이예스>는 정체불명의 살인마에게 쫓기는 젊은 부부의 처절한 여행담을 충격적인 영상에 담아내고 있다. <세이예스>가 막 극장에 내걸린 시점이라, 영화에 대한 자체 평가나 흥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좀 일렀던 듯. “장사중이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 힘들다”는 황기성 사장의 입장에 따라 <세이예스>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가 오가지 않았다. 사실 ‘영화청년’ 황기성의 새로운 포부, 근간의 한국영화계에 대한 근심과 전망을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 개봉날 극장 앞이 아니라 북한산에서 전화를 받아서 놀랐다. = 영화 만드는 일이 좋은 건, 어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인데, 다 지난 일 신경써서 뭐 하겠나. 개봉하면 영화는 이미 제작자 손을 떠나는 거다. 제작자가 관객이 오고 안 오는 것, 반응 여하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상업영화 만들면서 흥행을 바라는 건 당연한 거지만 크게 보고 크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산꼭대기에 올라간 거다. 크게 조감하려고. * 영화가 막 개봉된 민감한 시점이라 인터뷰를 거부한 거였나. = 그런 이유도 있지만, 본래 인터뷰를 싫어한다. 황기성사단(이하 황사단)의 사주가 이렇게 늙은 사람이라는 것이 글과 사진으로 공개되면, 우리 영화도 늙어보일 것 아닌가. 그건 제작사로서 큰 손해다. 내가 올해로 예순셋이다. 사실 많은 나이는 아니다. 그런데 자꾸 나이를 부각시키는 건 ‘당신은 늙었으니 빨리 물러나라’는 뜻 같기도 하고. 어느 예술분야에서든, 60대면 막 철들고 눈뜨기 시작하는 때인데 말이다. 또다른 이유는 내가 매체에서 조명될 만큼 대단하게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 1년 반 만에 새 작품을 내놓았는데, 전에 황사단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액션과 호러가 가미된 유혈낭자한 스릴러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 나이먹은 제작자의 시각으로 볼 때, 한국영화 제작자들이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해외시장에 팔리는 한국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수시장에서는 정부와 젊은 영화인들의 노력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이 이뤄졌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산업적 뿌리가 있나. 스크린쿼터에만 의존하기엔 너무 위태롭다. 자기 발로 서고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바깥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국제시장을 나가보면, 거래가 잘되는 품목이 액션, 스릴러, 에로다. 언어나 문화를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장르니까. 그런데 한국의 주력상품은 멜로 아니면 코미디다. 한국 언어와 문화를 모르는 해외시장에선 상업성을 갖지 못하는 장르다. 액션은 할리우드를 따라가기 힘든 반면, 스릴러는 한국감독들이 접근할 가능성과 성공할 전망이 높다. 계산력과 표현능력이 뛰어난 감독들이 많다고 본다. 스릴러야말로 가장 영화적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10대, 20대 관객이 좋아하는 색깔의 감독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만, 스릴러는 영화적 경험이 풍부한 40, 50대 감독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중에서도, 그간 스릴러영화에 집착해온 김성홍 감독에게 주목하고, 그와 함께 작업해온 여혜영이란 작가를 주목하며 애정을 갖다보니, 함께하게 된 거다. 비인기 장르를 지속해온 그들을 독려하고 싶었다. <신장개업>은 스릴러에 코미디를 가미한 영화였고, <세이예스>는 스릴러에 멜로를 가미했다. 하나의 장르로 영화를 구분짓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기자나 평론가들이 장르의 잣대로 영화를 평가하지 않나. 하지만 모든 영화는 생물처럼 변한다. 카테고리나 이론에 갇힌 게 아니다. 이를테면 히치콕의 <싸이코>를 스릴러의 원전으로 놓고, 우열을 재단하는 건 위험한 생각이다. 어쨌든 앞으로도 이 장르가 다른 제작사에 의해서도 많이 개발되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해외 마케팅하는 이들의 가방이 무거워질 것이다. 팔 물건이 늘어날 테니까. * 기획단계부터 해외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것이었나. 어떤 약속이나 성과가 있었는지. = 지금 자막 작업중이다. 구체적으로 진행한 내용은 없고. 로맨틱코미디가 황사단의 주조인 것도 아니고, 좋은 액션과 스릴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부터 했다. 어떤 시장에서 관심을 가져줄지 아직은 모르겠다. 아시아권은 대개 한국 내 흥행작에 관심이 높다지만, 유럽권은 어떤 물건이냐에 관심을 둔다고 한다. 영화의 상품성 자체는 엄정한 거다. * 이번에는 직접 아이템을 낸 뒤 감독을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감독의 원안과 시나리오를 채택한 경우다. 제작자로서 <세이예스>의 어떤 점을 가장 흥미롭게 생각했나. = 작가와 감독이 하고 싶은 아이템을 ‘나도’ 하고 싶을 때, 그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쫓아온다는 상황이 정말 공포스럽다고 봤다. 종전에는 범인의 히스토리를 풀어주는 게 상식적인 트루기였는데, 관객의 상상에 맡기고 풀어주지 않았다는 점도 매력있었고. 지금 시대의 ‘악’은 정신병적 요인을 많이 갖고 있어서 배경이 논리정연하거나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 그간 황사단의 영화에는 폭력과 섹스가 거의 없었다. 지난 인터뷰에서 그런 착한 영화들을 지향한다고 했는데. = 무엇에든 얽매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폭력적인 걸 일부러 찾아가는 건 물론 문제가 있지만, <세이예스>가 그런 영화는 아니지 않나. 영화에서 폭력성을 소화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기피하거나 소화 못하는 것은 이 시대에 걸맞지 않다. 폭력화되고 있는 시대를 문화 속에서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가 숙제지, 기피하는 건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세이예스> 제작자 황기성 (1) ▶ <세이예스> 제작자 황기성 (2)

블록버스터에는 없는 것, <엘리펀트 맨>

영화에 대한 나의 인상적인 첫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때 당시 다니던 학교는 철도 밑으로 뚫린 굴다리를 지나야 하는 곳에 있었는데 하교 길에 그만 기둥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제목도 찬란한 <별들의 전쟁>. 조지 루카스가 만든 <스타워즈>가 그런 제목으로 개봉을 알리고 있었던 것인데 웬일인지 나는 그 그림에 빠져들고 말았다. 라이트세이버를 들고 있는 루크와 그 밑에 요염한 자태로 앉아 있는 레이아 공주, 그리고 다스베이더. 게다가 C3PO와 R2D2의 모습은 코흘리개의 심장박동을 사정없이 증가시키고 있었다. 정신없이 그 앞에 서 있다가 어머니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더니 이미 해가 기우는 시간이 아닌가. 어머니께서는 평소와는 달리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 걱정되어 여기저기를 헤매며 찾다가 하교 길 한가운데 넋이 빠져 있는 아들 녀석을 발견하신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두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지금 집사람이 굉장히 재미있어 하는 얘깃거리가 되고 말았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별들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스타워즈>가 개봉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심지어 광팬을 자처하는 친구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영화를 워낙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자라면서 최소한 TV영화는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었던 나는 로셀리니, 펠리니, 히치콕, 존 포드 등의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젊었을 적 국방영화를 촬영하셨던 아버지는 충무로 입성이 좌절되자(도제방식으로 돌아가던 충무로의 촬영스탭들이 외부에서 영입되는 촬영감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있는 앨범에는 헌팅 때 찍었다는 배우 황해와의 사진이 남아 있기는 하다) 어쩔 수 없이 영화를 포기하셨지만 애정만은 포기하실 수 없으셨던지 끊임없이 영화를 보셨고 무척이나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좋은 영화와 그렇치 못한 영화와의 차이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영화를 볼 때 배우보다는 감독을 먼저 보고 고르는 습관도 그때 생긴 것이다. 아버지는 특히 히치콕이 얼마나 대단한 감독인지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버지께서 그런 주장을 펼치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히치콕을 작가로 대접하고 있지 않았더라는 것이다. 상당히 영화 보는 안목이 있으셨던 게 아닐까…. 그러고보면 옛날에는 TV영화의 수준이 상당히 우수했고 영향력도 셌던 것 같다. 지금이야 비디오 세상를 지나 DVD 천국이 돼갈 만큼 주변에 넘치는 게 영화니까 굳이 더빙된 대사를 읊고, 원칙없이 잘려나간 TV영화를 절절히 기다리며 볼 필요가 없지만 주말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버지의 해설을 들으며 찬란한 흑백(!)화면 속으로 빨려들었던 시절이 그립다(궁핍했던 관계로 우리집은 컬러방송이 시작된 한참 뒤에도 여전히 모노톤의 화질과 음질을 감내해야 했다. 아, 물론 영화의 세계에 빠져드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영화를 볼 땐 두뇌의 ‘퍼지’ 기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해지니까). 아마도 그러한 기억들이 내게 영화를 좋아한다는 차원을 넘어 밑바닥 깊숙한 정서의 일부로 당연시하는 의식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어떻게 보면 가난했던 집안살림에 비해 영화적으로는 훌륭한 환경(흑백TV를 제외하고)에서 자랐다는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한다(축복받은 환경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우리집엔 개봉관 초대권이 끊인 적이 없었다. 출처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버지의 과거 인맥과 관련있지 않을까). 그런 축복받은 환경에 속해 있던 나는 끊임없이 영화에 대한 욕구와 그것을 충족시키는 즐거움 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던 어느날, 내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태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는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까지 ‘영화랑 놀자’ 수준에서 맴돌던 내게는 충격 그 자체인 어떤 영화와의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영화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단 한번도 식거나 달라지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재미와 흥분의 대상이었고 늘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당연한 일상의 친근함과 같은 것이었던 나에게 영화가 진지하고 예술일 수 있다는, 그리고 삶의 진실을 얘기하는 매체일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해준 영화를 보게 됐는데 그 영화가 바로 <엘리펀트 맨>이었다. 토요일 오후 교육방송에서 방송되던 명화 시리즈 중 하나로 우연히 빈집에서 무심코 TV를 켠 내게 다가온 <엘리펀트 맨>은 여름방학을 코앞에 둔 까까머리 중학교 3학년 소년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영화를 감싸는 와중에, 흉측한 기형으로 태어난 존 허트의 삶이 너무나도 냉철하게 묘사되고 있는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영화란 무엇인지, 그 매체가 지니는 강렬한 표현력에 어떠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중에 이 영화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이고 실제로(?) 흑백영화인 것을 알게 됐지만 그때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이해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훌륭한 작품이고 컬트팬들을 거느린 영화지만 내가 열다섯 나이에 느꼈던 정서적인 충격은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아우라와는 상당히 다른 ‘어떤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뒤로도 많은 영화에서 <엘리펀트 맨>이 내게 주었던 그 ‘어떤 것’의 다양한 양상을 발견하고 행복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요즘에 개봉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을 보다보면 그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비천무> 등 일본 출간

한국영화, 드라마 등이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김혜린의 <비천무>, 양영순의 <누들누드>, 허영만의 <세일즈맨> 등의 한국의 인기만화 8편이 일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동안 황미나의 <윤희>, 안수길의 <북간도> 등 일본 만화잡지에 연재된 한국 만화가의 작품이 현지에서 출간되거나, 이희재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의 독특한 작품이 산발적으로 일본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이처럼 대규모의 출판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 출간은 한국 자본의 일본 출판사인 타이거북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출판 제작도 한국 내에서 이루어져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추었다. 그리고 앞의 작품 이외에 <기생 이야기>(김동화), <그대의 연인>(한승원), <풀 하우스>(원수연), <호텔 아프리카>(박희정), <울트라 붐붐>(박산하) 등 다양한 취향과 장르의 작품이 포괄되어 있어서, 한국만화의 일본시장 진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고 일본만화계 자체가 참신한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이때, 이미 영화로 소개된 <비천무>를 중심으로 한국만화가 일본 서점가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후루야 미노루의 신작 <두더지> <렛츠고 이나중 탁구부> <크레이지 군단> <그린 힐>의 청춘개그작가 후루야 미노루의 신작 <두더지- 부도덕한 시간>이 인터넷 사이트 ‘코믹스투데이’(comicstoday.co.kr)에 번역, 연재되기 사작했다. 올해 2월 일본 고단샤의 <영 매거진>에 연재되기 시작된 이 작품은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젊은 주인공이 겪는 일상의 에피소드들을 개그와 페이소스로 버무려놓고 있다. 주인공 스미다는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홀어머니가 사랑의 도피행을 떠나게 된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 그의 초조한 일상 속에 감추어져 있던 이상한 분노가 터져나온다. ‘꿈꾸는 보통사람’을 증오하는 스미다. 웃음이 터져나오지만 다시 돌아서면 쓰라린 눈물을 흘리고 진지한 사색에 빠지게 만드는 만화.

안성기 시시콜콜 Q&A [2]

1장 <무사> “나는 날마다 웃었다” -오늘부터 <흑수선> 3일 밤샘 촬영인데, 체력은 괜찮나요. =문제없어. 배우로서 기본이기도 하고. 아침에 집에 들어갔다가 오후에 나오면 되니까…. 괜찮아요. -<무사> 촬영장에서도 제일 부지런하셨다고요. 끝나고는 좀 쉬셨나요. =후반작업이 한 4개월 걸려서, 그동안 잘 쉬었어요. 1주일에 세번 헬스클럽에 나가서 그동안 못한 운동 하고. 그것도 하다보면 욕심이 나서 거울에 근육 확인하고, 웃긴다고. 그렇게 쉬었더니 지금은 일할 때가 맞는 것 같아. -<무사>는 정말 강행군이었죠. =정말 지독했지. 마지막 한달은 날마다 주야로 촬영했어. 밤 11시까지 촬영하고 새벽 4시까지 자고, 또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아주 강행군을 했어요. 그래도 체력에는 정말 문제가 없었어. 중국사람들이 놀라더라고. 날마다 웃는 얼굴인 게 신기한가봐. 난 현장에서 즐거운 맘으로 하는 게 편하다는 걸 체질적으로 알고 있거든. 체력이 안 되는 것도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부터 슬슬 시작되니까. 기다리는 시간이 많고 할 때도 마냥 기다리면 짜증도 나고, 잡생각도 나고 그래요. 즐겁게 기다리는 방법이 필요하지. 돌이 많은 현장 같으면 예쁜 돌 같은 거 구하다보면 시간이 빨리 가요. 후배들한테도 그랬어. 현장에서 마냥 기다리지 말고 즐거움을 찾으라고. -시사회에 간 어떤 사람은 <무사>는 안성기의 영화라고 합니다. =아이구, 그건 아냐. <무사>는 만든 사람 모두의 영화야. 나이든 내가 무게만 잡을 줄 알았는데, 활 들고 풀쩍풀쩍 뛰어다니니까 멋있게 봐준거지. 2장 선배와 가장 “장남이랑 스노보드 타러 간다” -배우, 감독, 스탭, 심지어 영화기자들도 선생님, 선배님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호칭이 마음에 드세요. =선배가 제일 좋지. ‘선배’쪽이 ‘선생’보다 더 넓은 표현 같아. 후배들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애들이 많은데, 난 제발 그러지 말라고 그래. <무사>할 때 우성이도 끝까지 ‘선생님’이야. 자기는 도저히 선배님이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 우성이가 그러니까 진모는, 선배님, 선생님 헷갈려서 왔다갔다하고. -예전에 야쿠쇼 고지와 만났을 때도 잠깐 했던 얘기지만, 이제 현장에 가면 종종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래서 외롭기도 하다고 하셨죠. =그렇지. 그러니까 중훈이 같은 후배들하고 놀고. 아까 전화하면서도 바람 쐬러 한번 올라와라, 그랬더니 봐서 온다고 그러던데. -박중훈씨말고 또 개인적으로 친한 분이 있다면요. =다 작품 하다보면 만나고 그러는 거지. 아니면 행사장에서나. 내가 술을 좋아하면 더 가능했겠지. 야, 술 한잔 하자, 그러면. 전에 중훈이가 해외 촬영하러 가기 전인가 한번 후배들이 모여서 불렀어. 아무래도 못 오시겠죠? 야 이 밤에 어떻게 나가냐, 그랬지. 나중에 그때 후배들 정우성, 장동건, 이정재, 신현준 등등 해서 다시 모였는데, 선배다 보니까 자꾸 일장 훈시를 하게 되더라고. (웃음) -주량은 어느 정도. =소주로 치면 반병 정도. 술값이 안 들잖아. 양주는 잘 받지 않아서, 양주 나오는 술집들은 가길 싫어해요. 소주나 맥주, 포도주면 몰라도. 포도주를 제일 좋아하거든. 내가 삭일 수 있는 알코올 농도가 그 정도인가봐. 한 10몇%. -자상하고 모범가장이라고 소문났는데. 커피 CF 이미지처럼, 실제로도 자상하고 부드러운 성격이세요. =그런 편이지…? (웃음) 설거지는 잘 안 해. 와이프가 원치 않더라고. 청소해주는 건 좋아하는 것 같아. 아마 집에 있는 시간은 일반적인 남자들보다 많을 거야. 지난해처럼 장기간 나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일이 몰려서 그렇지 일 안 하는 시간이 더 많다고. 우리 일이라는 게 일 안 하고 있다고 해서 노는 것도 아니지만. 좀 미안한 건,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고 아주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건 아니라고. 잘 도와주고, 하나하나 챙겨주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고. 좀 시켜먹고, 게으르고, 그런 게 있죠. (웃음) -미국으로 유학간 장남 다빈이가 와 있다는데, 얼굴 볼 시간도 별로 없겠어요. =오늘도 나올 때 일찍 오냐고 물어보더라고. 그 녀석 아주 나를 지그시 보고 그러거든. 중학교 2학년짜린데, 그 녀석 꿈도 배우예요. 아빠처럼 연기를 하고 싶대. 뭐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줘야지. 겨울엔 스키장 가서 둘이 스노보드도 타고 그래. 3장 세월 “내 주름은 중학생 때 거야” -수십년간 공인으로 살아왔는데 사생활은 참 안 드러난 편이죠. =오히려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가장으로서 평범하달 수도 있고. 가정은 늘 화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있고. 잘살고 있다고 얘기하면 그것도 좀 어리석어 뵈는 것 같고, 애써 아니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고. 그냥 놔두는 거지. 우리끼리 즐겁게 살아가면 된다,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그렇게 오순도순.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을 보면, 가정이 화목했던 분은 나이가 들어도 괜찮은데, 그게 흔들렸던 분들은 대부분 뒤가 굉장히 힘들더라고. 평화로운 가정과 프로페셔널하게 일에 몰두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가족들 얘기를 안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나 때문에 좋은 점보다 피해가 더 많아. 애들이나 와이프는 괜히 남의 눈총이나 받지. 불편한 거야. 괜히 얘기하면 너무 하자없이 살아가니까 좀 안됐으면 좋겠다, 그런 시기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 그건 싫지. -20년 넘는 배우생활인데, 남달리 평탄해 보입니다. =그건 운이 참 좋았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난 반드시 뭐가 될 거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 상황에 충실히 살아야겠다, 층계를 건너뛰지 않고 힘들지만 하나하나 다져나가자, 그러면서 좌절하질 않았던 것 같아. 그때 조금씩 쌓아온 것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이 생긴 거지. 사람들한테 일생에 기회가 3번 있다고 하잖아? 그런 기회도 나한테 잘 찾아왔고. -기회라면, <바람불어 좋은 날>을 만나 성인배우로 인정받은 것 말인가요. =80년대에 이장호 감독을 만나고, 그 조감독했던 배창호 감독을 만난 건 나로서는 굉장히 큰 힘이었지. 그뒤 이장호 감독과도 몇 작품 하고, 배 감독하고는 꾸준히 80년대 영화를 채웠으니까. 또 하나 운이라면 운인 게, 70년대 배우생활 했으면 주연하기엔 좀 배우 같지 않다 그랬을 거야. 배우 같지 않다는 분위기 때문에 80년대에 배우를 할 수 있었던 거니까. 그때만 해도 영화가 할 얘기를 잘 못할 때라 어리숙하고, 뭔가 좀 모자란 듯해야 모든 걸 통과할 수 있었으니까 잘 만난 거지. -배우 같지 않은 배우라고 했는데, 실제로 무기력한 이웃, 소시민 같은 캐릭터를 많이 해오셨죠. 스스로 보는 자신의 이미지는? 잘생겼다는 생각 드시나요. =잘생긴 건 아니고, 괜찮게 생겼네… 하하. 그래도 내가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는 말은 좀 잘못된 것 아닌가 싶어. 그런 말을 들어도 가만히 있긴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뭐 그런…. (웃음) 그런 대로 괜찮게 생겼지. -혹 혼자 거울 보다가 언제 이렇게 늙었지, 할 때가 있나요. =음… 확실히 이제 나이가 좀 든 거 같네, 이런 건 있어. 왜 이렇게 늙었지는 아니고. 일을 마치고 피곤해서 집에 들어가 씻고 거울 볼 때. 사람이 나이와 상관없이 힘이 있으면 늙은 게 아니거든. 근데 일을 끝내고 에너지를 다 소진했을 때는 그런 게 보이는 거지. -흰머리는 없는데요. =흰머리 많아. 지금은 염색한 거지. 주름도 깊어졌고. (이마를 짚어보이며) 예전에는 한선이었는데 언제 두선 됐지? 이런 거 있어. 주름이 워낙 어렸을 때부터 있던 거라…. 중학교 다닐 때부터 있었거든. (하회탈 웃음을 지으며) 난 웃을 때 이렇게 구기면서 웃어서 주름이 생길 수밖에 없어. 나이가 들면서 골이 깊어지는 거지. 그래도 내가 젊지 않고, 노숙하다는 표현이 맞을 거야 아마. 실패할 걸 뻔히 알면서도 무모하게 달려든다거나, 패기로 밀어붙인다거나 하지 않고 차분하게 파고드는 쪽이라 어려서도 젊다는 느낌을 별로 안 줬어. 그래서 오히려 지금 젊다는 이야기도 듣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처음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보면 맞겠다. 근데 난 그거 참 좋거든. 사람이 한 10년 뒤에 만나도 전혀 오랜만에 만난 것 같지 않은, 변하지 않는 거. 상대방을 볼 때 변함없는 그 모습이 있으면 아주 반갑고, 고맙기까지 할 때가 있거든. 상대방도 나를 보며 그렇지 않을까.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먼, 그게 가장 좋은 거 아닌가.

비운의 무사들, 모래바람 위에 무협의 서사시를 쓰다

■ Story 1375년 원말 명초의 중국대륙, 고려는 명에 수차례 사신단을 파견한다. 용호군의 젊은 장군 최정(주진모)이 호위하는 사신단도 난징 근처에 이르지만 그들을 맞은 것은 고려를 적성국으로 취급하는 명의 군대였다. 간첩혐의를 받은 사신단 일행은 명의 포로가 되어 귀양길에 오르는데 사막을 가로지르던 행렬 앞에 원의 기병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사신단을 호송하던 명의 군대를 몰살시킨 뒤 고려인들을 놓아준다. 사막에 버려진 일행은 굶주림에 지쳐 도착한 객잔에서 또다른 원의 기병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명의 황제가 된 주원장의 딸 부용 공주(장쯔이)를 납치해 북쪽으로 가던 중이었다. 최정은 공주를 구해 난징으로 돌아가면 명이 고려에 품었던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판단, 그녀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그날 밤 사신단에 끼어 있던 노비 여솔(정우성)도 죽은 주인의 시신을 끌고 객잔에 도착하지만 시신에 침을 뱉는 아랍인을 베어버린 뒤 원의 포로가 된다. 최정은 충직한 부관 가남(박정학)과 경험 많은 하급무사 진립(안성기)의 도움을 받아 공주를 구출하는 전투에 나선다. 완벽한 승리를 거둔 고려인 일행은 공주를 구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들에게 닥칠 위험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Review 무협영화는 대륙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장르다. 그것은 멀리 <삼국지연의>나 <수호지>처럼 공식적인 역사에 기초해 기의 운용에 기반한 한의학과 도교적 세계관으로 살과 뼈를 보탠 중국 역사소설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근자에 들어서는 홍콩의 와이어액션과 서구의 첨단 컴퓨터그래픽이 융화된 스펙터클로 자리잡았다. 기이하게도 <무사>를 보면 무협장르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삼국지연의>의 몇몇 대목이 떠오른다. 조조가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아군의 희생을 감수한 얘기, 유비가 뒤따르는 민초를 뿌리치지 못해 조조의 군사들에게 위협받던 얘기,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을 갑옷 속에 숨기고 죽을 힘을 다해 싸웠던 얘기 등. <무사>는 20세기에 쓰여진 무협소설에 뿌리를 둔 <동방불패>나 <와호장룡>과 달리 수백년 넘게 구전되고 각색됐던 전쟁 무용담을 들려준다. 그것은 이 영화가 택한 사실적 액션과 연관된다. <무사>에는 벽을 바닥처럼 밟고 뛰어넘는 놀라운 경공술도, 칼과 손바닥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삼갑자 내공의 고수도 등장하지 않는다. 화살이 목줄기를 꿰뚫을 때 피가 폭발하듯 품어져 나오고 칼과 창이 상대의 목과 손을 단숨에 베어버린다. <브레이브하트>나 <글래디에이터>에서 목격했던 잔인하고 생생한 폭력의 이미지가 <무사>의 분위기를 기존 무협영화와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어놓는다. <무사>가 택한 서사방식은 그런 면에서 흥미롭다. <글래디에이터> 스타일의 액션이 무협영화의 전형성을 배반하는 한편 이야기는 <글래디에이터>처럼 한 사람의 영웅을 신화화하길 완강히 거부한다. <무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정우성이 맡은 창술의 달인 여솔도, 주진모가 맡은 젊은 장군 최정도, 장쯔이가 맡은 부용 공주도 아니다. 영화에서 진정 ‘무사의 길’을 제시하는 인물은 안성기가 맡은 노련한 하급무사 진립, 박정학이 맡은 충성스런 부관 가남, 중국배우 우영광이 맡은 원의 장수 람불화이다. 그들은 정말 <삼국지연의>에서 튀어나온 인물들처럼 지략에 능하면서 무예도 뛰어난 인물들이지만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이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삶의 주름과 그늘이다. 진립이 유연함으로 젊은 장군의 오만함을 제압할 때, 가남이 위기에 처한 상관을 구하러 달려나갈 때, 람불화가 몽고제국의 몰락을 예견할 때 카메라는 그들의 당당함과 의연함에 경의를 표한다. “전 결과를 알고 행동할 만큼 똑똑한 사람이 못 됩니다”라고 말하며 굳게 입술을 다무는 진립과 “전쟁을 끝낸다”는 한마디 말을 내뱉고 마지막 전투에 임하는 람불화의 무표정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원과 고려의 비운이 깃들어 있다. 그에 비하면 여솔, 부용 공주, 최정의 삼각관계는 뻣뻣하다. 최정이 공주를 바라보는 순간의 고속촬영, 공주가 여솔을 흘끗 보는 시선, 여솔이 그녀의 버릇없음에 화내는 장면 등으로 표현된 <무사>의 멜로드라마는 충분히 무르익은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일행의 마지막 기착지인 토성까지 도달해버린다. 영화의 중요한 한축이 부실한 탓에 비극의 정조가 아프게 다가오기 힘든 것이다. 때부터 김성수 영화는 컷 수가 많고 속도감이 넘치는 걸로 유명한데 <무사>는 <비트>보다 훨씬 빠르게 전개된다. 숨고를 틈도 없이 전개되다보니 신중히 지켜봐야 할 멜로적 감정이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처럼 연약하고 섬세한 부분들이 컷과 컷 사이에서 증발해버려 문제일 정도다. <무사>는 액션과 스펙터클을 다루는 솜씨에서 몇몇 대목, 경탄할 만한 수준을 보여준다. 고무줄을 탱탱히 잡아당겼다 놓은 듯 긴장감이 일시에 폭발하는 액션의 파노라마는 효과적인 사운드 디자인과 사기스 시로의 음악이 어우러져 전장의 살벌함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무사>의 액션연출이 할리우드산 블럭버스터처럼 롤러코스터를 타는 쾌감을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 자신이 영향받았다고 말한 <와일드번치>의 폭력장면처럼 <무사>의 액션은 아름답지만 유쾌하게 보기에 불편하다. 공주를 구하는 전투 도중 진립이 잔인한 살육의 현장을 보며 누구에게 활을 겨눠야 할지 당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건 이 영화를 찍는 감독의 태도이기도 하다. 피로 그림을 그리면서 <무사>는 관객이 야만적 폭력에 몸서리치게 만든다. ‘폭력의 피카소’라 불렸던 샘 페킨파가 그랬던 것처럼. <무사>는 <와호장룡>처럼 우아하고 흠잡을 데 없는 영화가 아니다. 주요 등장인물인 11명 가운데 절반쯤은 매력적이고 나머지는 실망스럽다. 하지만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웅장한 시대극을 연출하려 했던 감독의 야심은 화면 곳곳에 진일보한 기술적 성취를 새겨넣은 제작진의 수고에 힘입어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그것이 단지 스펙터클의 힘일까? <무사>는 결점이 분명하지만 뿌리칠 수 없는 매혹이 있는 영화다.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 ▶ 무사 ▶ <무사>의 액션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