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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김정영의 오!컬트,<결혼피로연>

부모님 손바닥 위에서 나이먹기 내 사촌동생은 얼굴은 조폭인데 웃으면 눈이 빙긋이 초생달처럼 그어지는 아주 매력적인 촌놈이다. 마치 만화 <엔젤전설>에서 ‘키야약’ 소리를 지르고 ‘친구 100명 만들기가 소원’인 주인공처럼 얼굴은 험상궂어도 마음속엔 소녀가 앉아 있는 녀석이다. 그 녀석이 휴학하고 군대지원서 내고 집에 내려가기 전 며칠 우리집에 머물렀다.학교 다니며 다니던 회사의 병역특례를 기다리다가 회사사정이 안 좋아져서 그냥 군대에 지원서를 낸 것이다. 말이 집이지 결혼도 안 한 30대들이 우글거리는 우리 형제들에게 20대 초반의 이 생생한 녀석은 벌써부터 암울한 미래가 감염되기 시작한다. 수칙1) 방엔 아무도 들어가서 자지도 않고 모두 거실에서 함께 잔다.수칙2) 밤마다 시작되는 우리끼리의 술마시기에 동참…. 수칙3) 텔레비전 보면서 자기 멋대로 욕하기. 수칙4) 절대로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느덧 이녀석은 우리의 행각에 넌덜머리가 나는지 술 좀 마시지 말라며 뜯어말린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는 자신의 아버지(즉 나에겐 삼촌이시다)가 술 만날 마시는 것 때문에 괴로운데 이 집은 왜 이러냐 하면서… 진저리를 친다…. 그 삼촌이란 분은 잘 나가는 대기업을 다니다가 어느 날 복어조리사 자격증을 턱 따시고 지방에서 복집을 하면서 손님들과 대작하며 사시는 술꾼 삼촌이시다. 그 삼촌이 웬일인지 양복에 서류가방을 들고 올라오셨다. 입사동기들이 이제 모두 사장이 되었다 하시면서 친구도 만날 겸 올라오신 거란다. 마침 아버지 제사도 끝내고 함께 음복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니 삼촌이 나를 앉혀두고 김치담그기 강의를 하신다. 동치미는 말이지 소금 위에 무를 굴려야 한다는 등….여하튼 투박한 삼촌의 김치담그기 강의를 열심히 들으며 과연 삼촌은 안정된 회사원보다는 요리사란 직업을 좋아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그때 양복에 맞춰 들고 오신 서류가방을 여시더니 “옛다, 내가 콩이파리 무쳐서 들고 왔다”(경상도는 깻잎보다 콩잎을 더 많이 먹는다)며 주신다.“앗! 삼촌 이 서류가방에 뭔가 대단한 게 들어 있는 줄 알았는데….” “어데, 너희 반찬 하라고 이거랑 내 양말밖에 없다, 마….” 하하 이런 아버지를 어떻게 술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난 웃으며 삼촌이 자신의 아들, 컴퓨터 병역특례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러 10년 만에 사장이 된 옛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해보았다. 리안 감독의 <결혼피로연>에서 마지막에 영어로 말하는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 멋진 장면. 동성애 커플이 대만에서 오신 부모님 앞에서 가짜 결혼식을 하고 그 해프닝 속에서 그들은 부모님 앞에서 영어로 싸운다(물론 대만에서 오신 부모님은 당연히 영어를 못 알아들으실 거라 생각하고). 물론 부모님은 못 알아들으신 표정을 짓고 계신다. 자기가 게이라고 밝히는 아들에게 “아버지에게는 얘기하지 마라, 돌아가실 거다”하고 받아들이는 어머니 반응과 달리 아버지는 아들의 실제 파트너인 남자와 조깅을 하다가 이 며느리(?)에게 선물을 주며 “나 영어 조금 하네” 그런다. 늙은 아버지를 잘 그리는 리안의 죽이는 저 솜씨…. 자식들은 부모가 자기를 이해 못하고 부모들은 왜 이리 고집불통인가 해도 부모들은 사실 다 알고 있다. 삼촌 서류가방 속 양말과 함께 싸온 ‘반찬’ 선물처럼 은근히 우리에게 생활의 냄새를 풍긴다…. 인생에 대해 안다고 말하지 말라며 말이다…. 삼촌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새해엔 술 조금만 드세요.김정영/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프로듀서 sicksadworld@orgio.net

희망의 술잔을 기울이며, <상계동 올림픽>

지루한 일상 속에서 술로 일탈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꼭 술 깨는 오후엔 따뜻한 햇볕에 몸을 데우면서 생각에 빠져드는 것을 즐긴다(물론 대부분은 수분 섭취와 잠을 자지만). 지나간 일기장을 뒤지듯 마음속으로 낙서를 하면서 지나간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그러다가 얼굴이 벌게지는 일이라도 생각나면 이내 이불 속으로 숨어버리지만 기분 좋은 일이나 가슴 뭉클한 기억들이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서성이면서 앞으로의 삶에 대해 결의(?)를 다지곤 한다. 그런 기억들은 지금을 사는 나에게 새로운 힘이 되고 활력이 되며 지침이 된다. <상계동 올림픽>을 처음 접한 때가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선배들과 함께 본 노이즈가 잔뜩 들어간 사운드와 간간이 사라져버리는 이미지들. 처음엔 뭐 그렇고 그런 운동권 비디오인 줄만 알고 봤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뭔가 모르는 정신적인 충격에 휩싸였다고 할까. 투박한 내레이션 너머로 허물어져가는 집들 사이로 희망이 꿈틀거리며 생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고 손아귀에서 땀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첫 대면은 끝났고 시간을 잊은 채 2년이 흘렀다. 물론 내 기억 속에서 <상계동 올림픽>은 시간 속에 묻혔다. 첫 만남은 노이즈 잔뜩 낀 화면처럼 먹구름같이 먹먹하게 끝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영화니 영상이니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군대에 갔고 거기에서 만난 친구를 통해 영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단편영화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영화를 한번 해보자는 결심. 주변을 기웃거리게 되었고 그러다가 만난 것이 ‘영상창작동아리 한누리’였다. 지금은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진실된 삶을 영상으로 담아내는’이라는 앞구호가 붙은 영상창작동아리 한누리의 시작은 비디오 하나와 고장난 텔레비전이 전부였다. 부족했지만 따뜻한 의지가 모인 공간, 그곳에서 <상계동 올림픽>을 다시 만났다. 첫 만남 이후에 기억 속에서 지워진 다큐멘터리가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먹먹했던 가슴에 후련한 빗줄기가 뿌리는 듯했다. 상계동 173번지 철거촌. 그곳에서 카메라와 상계동 철거민은 하나가 되었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슬픔과 분노를 희망으로 지켜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과 함께 밥 먹고 자고 지내면서 그들을 가슴 깊이 담아낸 김동원 감독. 나에게 누가 연출자고 누가 주민인지 모르는 헷갈림은 시간이 지나가도 지워지지 않는 그 작품만의 진실로 기억되고 살아난다. 물론 김동원 감독은 이 작품 하나로 무척이나 큰 짐을 지게 되었지만, 그의 다큐멘터리를 아직도 볼 수 있는 기쁨을 관객이 누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하튼 우울과 몽상만으로 끝날 수 있었던 20대에 빛줄기처럼 찾아온 영화 <상계동 올림픽>은 아직도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작품이고 또 나태한 나의 삶에 채찍이 되어주는 힘이다. 나의 이런 수줍은 고백은 나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지 싶다. 간간이 만나는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상계동 올림픽>은 자신을 망친(?) 주범이라는 고백들을 아직도 듣고 있으니 말이다. 농담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사람 여러 명 조졌다”라고 말하면서 신나게 웃던 그 술자리가 생각이 난다. (^^;;) 한편의 영화가 결코 세상을 나아지게 할 수 없지만 그 영화로 하여금 다양한 변화가 생겨난다면 언젠가 우리 사회가 변화하지 않을까. 상계동엔 <상계동 올림픽>이 더이상 없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억압받는 사람들이 모두 상계동 주민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상계동 올림픽은 계속될 것이다. 행복한 상상에 맘껏 희망의 술잔을 채워본다.

외화는 나의 힘?

할리우드 프로덕션 유치를 둘러싼 국가들 사이의 경쟁 치열 할리우드영화 및 TV시리즈 프로덕션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부쩍 치열해지고 있다. 캐나다 재경부 존 맨리 장관은 2월18일 저녁 캐나다에서 이루어지는 해외영화 및 TV프로덕션의 세금감면 비율을 11%에서 16%로 상향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할리우드를 비롯한 외국 제작자들이 캐나다에서 영화를 찍으면 캐나다 노동력에 지불한 비용의 16%를 환급받게 됐다. 최근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미국영화와 TV시리즈로는 <캐치 미 이프 유 캔> <위험한 마음의 고백> <스몰빌> 등이 있다. 즉시 효력을 발휘할 이번 조치는 할리우드 프로덕션 유치를 둘러싼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부쩍 뜨거워지면서 캐나다 프로덕션 업체들이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 결과로 보인다. 캐나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의원 데이비드 다이어와 민주당 하워드 버먼 의원이 할리우드의 해외 프로덕션 바람이 미국 경제에 끼친 손실(약 100억달러 추산)을 지적하며, 임금 2만5천달러 이하 스탭 고용비에 대한 25%의 세금 감면을 제안한 것에 대응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영화 프로덕션이 시장 안에서 창출하는 보이지 않는 경제적 효과는 실제 비용의 7배에 달하다는 것이 통설. 세계 최대 자국영화산업이 캐나다, 호주, 유럽 등지에서 판을 벌임으로써 후반작업 시설부터 출장 요리업계에 이르기까지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되는 현상에 대한 미국인들의 위기감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18일 리처드 M. 데일리 시카고 시장은 아카데미 최다 노미네이션을 따낸 영화 <시카고>가 토론토에서 촬영된 사실에 유감을 표하면서 “우리가 돈과 크리에이티브를 댄 작품의 프로덕션을 왜 해외로 내보내야 하는가?”고 덧붙였다. 어처구니없게도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의 전기영화 촬영지를 몬트리올에 뺏긴 뉴욕시 영화·텔레비전 오피스도 2월18일 토론회를 열어 세금 혜택을 디지털영화에 확장하는 등의 방안을 논의했다. <버라이어티>는 뉴욕시가, 닷컴기업 거품이 남긴 건물들을 스튜디오 시설로 전환하는 정책도 고려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경쟁적으로 고급한 인력과 저렴한 비용 조건을 제시하고 있는 해외 로케이션은 미국의 공세적 방어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당분간 할리우드 제작자들을 유인할 것으로 보인다. <미션 임파서블> <스타워즈> 등 블록버스터의 요람으로 주가를 올린 호주는 <피터팬> <크로코다일 헌터> 프로덕션을 유치했다. 자원과 역량을 집중했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마무리짓는 뉴질랜드는 북섬에 <라스트 사무라이>의 무대인 19세기 일본을 부활시킨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외에 부상하고 있는 할리우드 해외 촬영지는 저임금의 고급 인력 외에도 유럽영화 전성기의 유적인 유서깊은 거리와 스튜디오를 보유한 동유럽. 체코 프라하는 2003년 <밴 헬싱> <헬 보이> <추한 미국인> <그림 형제> 등 4편의 할리우드 메이저영화와 의 히틀러 전기물 <악의 기원>에 로케이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슬로베니아는 옛 수도 류블랴나에 800만달러를 투자한 종합촬영소를 열었으며, 헝가리도 <스파이게임> <아이 스파이> 프로덕션을 끌어들인 실적을 이어나갈 전략을 세우고 있다.

<바람난 가족> 서 바람난 시어머니 윤여정

"김기영감독 없어서 십수년 영화 안했다 최근 촬영을 마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에서 “야심적인 캐릭터”는 옆집 고삐리와 바람나는 30대 아내 은호정이나 남편의 애인인 20대의 김연 보다도, 60살의 시어머니 홍병한 여사다. 알콜중독으로 골병든 남편과 지난 15년간 잠자리 한번 없다가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며 삶에 희열을 느끼는 인물. 문소리·황정민 등 젊은 배우와 함께 ‘온가족이 바람나는’ 이 대담하고 뻔뻔스런 가족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역할로, 윤여정(54)씨가 스크린에 복귀한다. 고 김기영 감독의 미개봉작 <죽어도 좋을 경험>(88) 이후 십수년 만인 셈. 지난주 막바지 촬영이 한창인 동대문의 한 캬바레에 예의 그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기영 감독과 명자 70년대 김기영 감독의 <화녀><충녀>와 텔레비전 <장희빈>에 잇달아 출연할 때 윤씨는 ‘한국의 팜므파탈’이라 불렸었다. 어느 작곡가집의 가정부로 들어가 임신을 하고 낙태를 당한 뒤 주인집의 아이를 죽음에 몰아넣고 소유욕에 미쳐 남자에게 동반자살을 강요하는 명자, 윤씨의 나이 불과 23살때였다. “김기영 감독, 되게 집요해요. 당시 최무룡씨가 날 예뻐해서 고영남 감독에게 데려가 영화를 찍고 있었어. 그때 김감독이 자꾸 오더니 그때까지 찍었던 비용까지 다 물어줬다니까. 점점 사슬에 묶였지.” 계약조건에 몇달동안 하루에 1~2시간씩 감독과 만나는 게 들어있었다. 매일같이 이야기하며 매일 보러다니던 영화가 나중에 생각하니 “엄청난 수업”이었다. 김감독이 리얼리즘 경향에서 인간, 특히 여성의 내면세계를 ‘해부’하는 영화로 옮겨갈 때, 윤씨는 김감독의 ‘명자’였던 셈이다. 당시만 해도 20대초반의 나팔 청바지 펄럭거리며 발랄한 이미지였던 윤씨에게서 김감독은 “청승스러움”을 미리 보았고, “내 말을 유일하게 알아듣는 배우”라며 아꼈다. “김감독처럼 대단한 사람이랑 처음 영화를 하고나니 다른 사람이랑 못하겠더라고. 그 분이 없어서 그동안 영화를 안 했던 것 같아요.” 임상수 감독과 병한 그랬던 윤씨가 병한역을 맡은 건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50대이상 배우에게 흔히 요구하는 ‘어머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다른 역 하는게 가장 좋아. 이것도 맨날 눈물지으며 쌀 씻는 역이면 안했어요.” “원래 내가 캐스팅 1순위가 아니었다우. 감독이 거짓말 했으면 그때 안한다고 했을꺼야. 영화촬영이란 게 기억도 가물가물한 데다 감독이 처음 생각했던 이미지와 내가 너무 다르지 않을까 겁도 났지. 근데 걱정하는 내게 임상수 감독이 ‘연기는 해석 아닌가요’ 하더라고. 그래, 배우는 해석자지. 또 물었지. 근데 시나리오에서 왜 애는 느닷없이 죽이우. 임감독이 ‘우리모두 느닷없이 죽지않나요’했어요. 그래, 우린 참 느닷없이 죽지.” 50대의 나이가 되었으면 둥글둥글도 해지련만 윤씨는 싫은 사람에게 좋다고, 연기 못하는 사람에게 잘한다고 말할 줄 모르는, 대신 자신이 납득하면 몇배의 정열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김기영 감독이 사람연구를 참 많이 한 사람이었다우, 근데 임감독을 보고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난 나보다 못한 사람이랑 작업은 싫지만, 아 저사람이 나보다 낫구나 싶으면 납작 고개 숙여요.” 이날 촬영을 위해선 생전 처음 며칠간 사교댄스 하드 트레이닝까지 받았다. 90년대 윤씨가 도시적이며 깐깐한 어머니, 특히 억센 운명을 담배 연기 한모금으로 날려버리는 여인을 연기할 때, 비록 작은 텔레비전 화면일지라도 사람들은 매순간 자신을 불사르는 듯한 그를 느꼈었다. 여성들이 볼 때 정말 통쾌함이 느껴지는”(임감독) 영화에서 윤씨의 모습을 기대하는 마음이 특별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글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사진(명필름 제공)

˝이 나이에 데뷔한 게 난 참 좋다˝<동갑내기‥> 김경형 감독

김경형 감독은 마흔세살이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수완과 지훈이 스물한살이니, 그는 자기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아이들이 싸우고 연애하는 이야기로 첫 번째 영화를 만든 셈이다. 경험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는지라 이 나이먹은 신인감독은 물론 걱정이 많았다. “본격적인 청춘영화라… 내 나이가 벌써 몇인데.” 그러나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토닥토닥 치고받는 경쾌한 대사와 단 한 장면에도 미련을 남기지 않으면서 빠르게 종종걸음치는 전개로 공감을 얻어 개봉한 지 3주 만에 전국관객 3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인터넷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는 점과 독특한 캐릭터 때문에 <엽기적인 그녀>와 자주 비교되는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2년 꿇은데다 방자하기 그지없는 문제적 고등학생 지훈과 한 학기 등록금이 아쉬워 지훈에게 도전하는 과외선생 수완이 이끄는 코미디. 이 영화는 “진실성이 없다”거나 “청춘이 그런 것만은 아닐 텐데”라는 비판과 함께 젊은이들의 감성을 놀랄 정도로 밀접하게 따라붙었다는 칭찬을 동시에 얻었다. 그 자신의 설명대로 “젊어 보인다기보단 철딱서니없어 보이는” 외모와 행동을 지닌 김경형 감독은 “첫 번째 영화에서 내 모든 걸 보여줄 순 없지 않겠나”라는, 약간은 속편한 대답으로, 일단 흥행에선 뿌듯한 성공을 거둔 자신의 데뷔작을 옹호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가 예상보다 훨씬 좋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축하인사를 많이 받을 것 같다. → 뭐, 별로 그렇진 않다. 평소 덕을 쌓지 못해서. (웃음) 영화만 봤을 땐 감독이 이 정도로 나이가 많을 줄은 몰랐다. 너무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라서 부담스럽진 않았는가. → 내가 한 건 요즘 아이들 듣는 CD를 항상 들은 정도? 그래도 뒤처지지 않은 까닭은, 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놓기 때문이라고 하고, 집사람은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한다. (웃음) 원작과 시놉시스를 받고 삼일 동안 고민하긴 했다. 처음 원작을 읽고나선 이게 어떤 영화가 될까, 영화가 되긴 할까, 걱정됐고, 내 나이가 몇인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코미디라는 장르가 자신없기도 했다. 하지만 데뷔작으론 가벼운 영화가 좋겠다 싶었다. 드라마에 승부를 걸고 시나리오를 쓰면 괜찮을 것 같았고. 찍다보니 내 안에 코미디와 잘 맞는 부분이 있다는, ‘발견의 기쁨’도 겪었다. 캐릭터나 이야기가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 → 원작엔 캐릭터라고 할 만한 게 아예 없었다. 대신 원작자 최수완의 문체가 독특했다. 발랄했고, 자극을 받았을 때 움츠러드는 대신 팍 치고 일어나는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런 느낌을 살려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수완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지훈은 많이 달라진 경우다. 원작엔 사마귀처럼 눈도 찢어지고 얼굴도 길다고 나오는데 잘생긴 부잣집 자식으로 바꿨다. 지훈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유를 권태로 잡았다. 권태는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지만, 살아가는 목적이 없는 아이의 특징이 아닐까. 지훈이 말수가 적은 것도 세상과 문을 닫은 아이로 설정한 탓이다.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고나니 드라마가 필요했다. 지훈이 가출하고 수완과 맺어지는 부분은 원작엔 없다. 앞서 드라마에 승부를 걸었다고 말했지만, <동갑내기 과외하기>엔 느닷없는 장면들도 있다. 지훈을 짝사랑하는 동급생 호경이 술마시는 지훈과 수완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장면이 그렇다. → 남자를 정말 좋아하면 다 그렇게 된다. (웃음) 방송작가로 드라마를 쓰면서 우연은 세번까지 용서가 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열심히 썼다. 우연이 몇번이나 되는지. (웃음) 사실 신경을 안 쓴 건 아니다. 수완의 집안 형편으로 보면 지훈을 강북으로 불러내서 술을 마셔야 했겠지만, 지훈을 찾아 헤매는 호경 눈에 띄는 장소여야 했다. 그래서 압구정동 실내포장마차를 섭외해서 찍었다. 수완은 지훈과 계급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적인 형편이 차이나는 데도 그 간격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 그런 문제를 생각하면 또 다른 층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의식하지 말자고 결정했다. 수완이 지훈 집에 처음 찾아가는 장면에서 그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김하늘과 의논을 했다. 그냥 씩 웃자고 합의를 봤다. 나는 한 학기 등록금 구하려고 너네 집에 와서 과외를 한다. 너는 이만큼 잘사는구나. 근데 그게 어때서? 이런 표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힘도 어쩌면 그런 태도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 안에도 분노는 있는 거다. 김하늘과 권상우는 그렇게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선 캐릭터와 잘 맞는 연기를 보일 뿐 아니라 호흡도 잘 맞는다. → 권상우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배우다. 그만큼 노력을 한다. 초반엔 경직돼 있었지만, 세트 촬영에 들어가니 애드리브도 늘었다. 김하늘에게 “내 아를 나도” 하고 소리지르는 건 권상우의 애드리브였는데 그대로 살려줬다. 김하늘은 좀 다독였다. 내가 수완이에게 이메일을 쓰는 것처럼 “수완아, 오늘은 잘 지냈니. 지금 밖에 비가 오는데 닭 배달은 잘했는지 모르겠구나” 하면서 메일을 보냈다. 그게 좋았던 모양이다. 사실은 두 사람이 워낙 친해져 내 역할이라고는 사소한 조율이 전부였던 것 같다. 난 연출하는 사람은 배우를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이를 먹어서 그럴 수 있는 것 같다. 이 나이에 데뷔한 게, 난 참 좋다. 경력이 참 다양하다.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는가. →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서울극장에서 <대부>를 보고 필이 꽂혀서 재개봉관까지 쫓아다니며 서른번도 넘게 봤던 게 영화를 처음 하고 싶었던 때다. 그랬는데 이번에 서울극장 간판에 내 이름이 떡 하니 써 있어서 너무 기뻤다. (웃음) 하지만 대학에선 영화를 할 수 없었다. 내가 다니던 경희대엔 영화과가 없었다. 제대하고 나니까 영화 동아리가 생겼더라. 영화평론가 이효인씨가 창단멤버여서 믿고 찾아갔는데 그분은 없고 애들만 서클룸에 있었다. 그애들이 복학생은 안 받아준다고 했다. 그래서 8mm 카메라와 영사기를 샀다. 학보사 기자했던 고학번들한테 장학금 주는 게 있었는데 집에는 말 안 하고,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장학금으로. (웃음) 그 카메라로 무지 많이 찍었다. 가투며 연극공연이며 다 찍다가 방송사에 특채로 들어갔는데, 재미없어서 도저히 못하겠더라. 들어가자마자 8·15 특집극 찍는데 쫓아다니다가 더위 먹어서 입원까지 했다. 그래서 그만두고 나왔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조감독으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그뒤 한참 공백이 있다. →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는 인맥이 참 재미있었다. 김성홍 감독에 각본은 강제규, 배우로는 이범수, 공형진, 연출부엔 <단적비연수> 박제현 감독도 있었다. 근데 그 사람들이 전부 중앙대 출신이었다. 그 사이에 끼어서 무지 외로웠다. 자기들끼리 농담을 하긴 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고. (웃음) 그렇게 영화를 끝내고 나니까 전망이 너무 불투명했다. 사람들도 못 믿겠고, 막 직배가 시작되던 때라 산업적인 기반도 불안정했다. 도대체 언제나 기회가 올까 막막한 심정에 환경마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방송사에서 일할 땐 그 무렵에도 텔레시네가 있었다. 그런데 충무로에 오니까 편집실 바닥엔 담뱃불 구멍투성이고 바퀴벌레가 막 기어다니고…. 편집할 땐 영사기로 벽에다 화면을 쏘는 거였다. 심지어 영화하겠다면 금치산자 취급하는 분위기까지 있었다. 여자친구도 도망가고. (웃음) 유학도 고려했지만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CF 연출을 시작했다. 잘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건방이 들어서 독립제작사를 차렸는데 6개월 만에 망했다. 그냥 혼자 시나리오나 쓰고 있는데 친구인 오종록 PD(<피아노> 프로듀서, 영화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촬영 중)가 전화해서 혹시 괜찮은 작가 없냐고 물어봤다. 있다, 누구냐, 나다, 그랬다. (웃음) 그렇게 방송작가를 시작했는데, 연예인들이 술도 자주 사주고 내가 쓴 대로 드라마를 찍고 그러니까 그 달콤한 맛에 한참을 빠져 있었다. 굳이 영화로 돌아온 까닭은 뭔가. →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항상 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영화가 너무 하고 싶어서, 시기를 놓치면 영영 못할 것 같아서, 97년에 작가일을 완전히 접었다. 정말 돈이 없을 때만 간간이 대본을 썼다. 그뒤 5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인데 어떻게 버텨왔나. → 영화가 몇편 엎어지다보면 5년, 금방 간다. (웃음) 시나리오를 쓰고 사람들을 설득하다가 프로젝트가 무산되면 1년이 훌쩍 가 있었지만, 그 1년의 하루하루는 무척 고달팠다. 영영 데뷔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건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주변엔 정신병원에 간 사람이 있을 정도다. 영화제작 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소재도 날마다 새로워지는데, 나는 한번도 나 자신을 입증하지 못하고 밀려나는 게 아닐까, 영원히 잊혀지는게 아닐까 두려웠다. 하지만 꿋꿋하게 견뎠다. 힘들어질 땐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를 즐겨 부르면서(웃음) 자기 최면을 열심히 걸었다. 혼자가 아니었다는 게 가장 큰힘이 됐다. 곁에서 지켜봐 주고 믿어주는 가족이 있었으니까. 마음에 두고 있지 않던 장르, 마음에 두고 있지 않던 영화로 시작했다. 만족하는가. → 감독이 어떤 영화를 택할 때는 그 장르가 적용하는 룰에 맞추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다. 지훈과 수완의 마음속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할 수 있는 데도 안 했다는 변명은 필요없을 것 같다. 주어진 일정, 조건, 장르 안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절대 감상적이어선 안 되는 영화였고, 사랑이 막 시작되려는 쿨한 느낌에서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영화였다. 그 이상의 뭔가를 하고 싶었다면 다른 영화를 해야 했을 거다.최소한으로 잡은 목표는 가짜 휘발유나 불량식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거였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즐거워하면, 그것으로 행복하다.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갱스 오브 뉴욕> 맛보기 광고만으로 주말점령

마틴 스코시즈의 대작이 한국 극장가에 바람을 일으킬까. <갱스 오브 뉴욕>은 극장티켓 사이트인 맥스무비의 예매순위에서 26일 오전 현재 예매율 35% 정도로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3위로 끌어내리며 1위를 달리고 있다. 극장이나 텔레비전 광고에서 보인 맛뵈기만으로도 압도적인 느낌의 화면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카메론 디아즈, 대니얼 데이 루이스 등 인기도와 비평 면에서 모두 지지를 얻는 배우들의 열연이 관객들의 기대를 부풀리고 있는 듯. ‘뻔한 신파’일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베스트셀러의 원작을 차분한 감정으로 연출해낸 멜로물 <국화꽃 향기>는 예매순위 2위에 올랐다. 영화인회의의 박스오피스 발표가 중단(<한겨레> 25일치 39면)되면서, 흥행의 윤곽은 이같은 예매순위와 각 영화사가 자체 발표하는 수치에 기대어 잡아볼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지난주는 유난히 수작들이 한꺼번에 개봉해 다양한 영화에 목말라하던 관객들에게 행복한 주였을 듯싶다. 일단 성적상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영화는 홍콩 누아르의 부활이라는 <무간도>. 영화사 쪽 집계에 따르면 전국 15만 정도의 관객이 들었다. 전통적인 장르를 따르는 듯하면서도 감상적이거나 남성적인 영웅주의가 아닌 이야기가 새로운 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은 에미넴이 인기가 있다지만, 아직까지 랩이라는 장르가 확실히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실정에선 전국 12만명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보였다. 전국 6만명에 머물렀지만, 감정몰입이 쉽지 않은 영화 <디 아워스>가 전국 6만명 가까이 든 것도 반가운 소식이며, 일본의 공포영화 <검은 물밑에서>는 높은 객석점유율을 보였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익숙한 장치로 서늘함 자아내는 공포영화 <검은 물밑에서>

죽은 자의 존재증명 살아 있는 것이 일개 사물로 화하는 순간, 곧 죽음의 순간을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이다. 하지만 스크린상에서 진행되는 죽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즉각 오싹한 공포가 우리에게 엄습해오리라고 가정하는 건 잘못된 것일 터,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나의 죽음이 아닌 타인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는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가 결코 물리적으로 치명적인 일격을 직접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이러한 일차적인 믿음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 장르이다(만일 그런 믿음이 없다면 그 누가 영화관을 찾을 것인가). 이때 영화는 타인들의 죽음이 전시될 공간을 무대화하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죽음의 광경을 볼거리로 만든다. 그리하여 공포영화는 그 과잉과 소비 혹은 낭비라고 하는 즐거운 유희와 함께 심지어 우리에게 웃음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이를테면,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연작,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 같은 영화들이 그러하다. 거대한 환상, ‘억압된 것들의 귀환’ 때로 영화장치를 이용한 심리적 조작을 통해 이러한 믿음의 굳건함을 잠시나마 의심하게 만드는 이들도 있다. 즉 스크린은 더이상 안전한 장벽이 아니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 <링>은 이런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한을 품은 여귀는 텔레비전 모니터상에 재현된 일개 이미지이기를 멈추고 그 바깥으로 서서히 기어나와 사내의 눈앞에 선다. 그러나 공포영화가 두려움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환상이 필요하다. 살아 있는 것이 사물로 화하는 순간이 우리 스스로의 실존적인 체험으로 주어지지 않는 이상 그리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사물을 활성화시켜버리는 것은 어떨까? 여기서 공포영화에서 익숙하게 반복되는, 그러나 결코 단순한 반복이 아닌 변주로서 나타나는 중요한 환상 하나를 떠올릴 수 있겠다. 그건 바로 사물(事物)이 더이상 사물(死物)이기를 멈추는 것이다. 이른바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고도 명명되었던 이 환상은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밑에서>을 지탱하는 가장 거대한 환상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그저 낡은 아파트 천장의 물 얼룩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물이 그저 콘크리트의 약한 부분을 뚫고 새어나온 단순한 사물이라고 생각할 관객은 없다. 윤종찬의 <소름>에 나왔던 미금아파트 천장의 그을음, 혹은 클라이브 바커의 <헬레이저>에서 마룻바닥에 떨어졌던 몇 방울의 피, 이들은 점점 활성화되어가고 있는 ‘이미 죽은’, 혹은 ‘죽어 있는’ 것들의 존재증명이다. 그러나 <검은 물밑에서>의 주인공 요시미가 아파트에 처음 방문했을 때, 그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공포영화에서 사물들이 점점 생기를 띠게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결국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장본인이 바로 그 사물들 곁으로 찾아온 인물들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인물들 또한 점점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보다는 다소 뒤늦지만 결국은 알아차리게 된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그 사물들이 그/그녀로 인해 활성화될 뿐 아니라, 동시에 그/그녀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사물(死物)이 되기를 멈춘 사물(事物)들은 살아 있는 것들을 사물화(死物化)하려 달려든다. <검은 물밑에서>의 아파트를 살아 움직이게 만든 것은 바로 요시미이다. 여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가 2년 전에 죽은 소녀 가와이 미츠코의 혼령이 자신의 딸 이쿠코를 데려가려 한다며 절규할 때, 그것은 기실 그녀의 현실- 이쿠코를 두고 이혼한 남편과 벌이고 있는 양육권 투쟁- 이 환상의 공간에 확대되어 투사된 것에 다름 아니다. 미츠코의 혼령- 아파트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요시미 그녀 자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미츠코를 그저 아파트라는 공간과 딸 이쿠코 사이의 감응이 만들어낸 일종의 ‘폴터가이스트’로 생각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그저 공포영화에서의 ‘사물의 힘’과 그것의 운동을 기술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하간 나카다 히데오는 그것을 이 장르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밀어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아파트 공간 이곳저곳은 생명을 얻은 사물이 터뜨리는 광기어린 움직임으로 인해 점점 빠르게 공포의 공간으로 변해간다. 물을 줄줄 흘리며 금세 터져나오기라도 할 듯 쿵쾅거리는 옥상의 물탱크, 곳곳에서 흐르는 물로 물바다가 되어버린 405호, 그러다 마침내 서서히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쏟아져나오는 엄청난 양의 물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에서 엘리베이터 입구를 통해 물이 쏟아져나오는 장면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서 거의 그대로 따온 것임이 분명하다. 큐브릭의 <샤이닝>은 공포영화의 형식적 요소들만을 차용하여 이 장르가 순수 형식의 유희를 위한 무대로 기능할 수도 있음을 입증한 바 있지만, 나카다 히데오의 <검은 물밑에서>는 그렇게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형식의 유희에 대한 일종의 알리바이와도 같은 서사가 개입한다. 요시미와 그녀의 딸 이쿠코, 그리고 2년 전에 죽은 소녀 미츠코, 이 세 캐릭터는 결국 ‘하나를 위한 삼중주’이다. 그들은 모두 서로간에 문제가 있는 부모들의 자식들로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영화는 간단히 말하자면 이들의 ‘엄마 찾기’, 혹은 ‘엄마 되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엄마 없이 홀로 놀다 옥상의 물탱크에 빠져 죽은 미츠코의 원혼은 마침내 요시미를 차지하게 되고(동시에 요시미는 영원히 곁을 떠나지 않을 딸을 갖게 된 셈이다), 엄마 없이 홀로 자란 이쿠코는 10년 만에 돌아간 아파트에서 엄마의 혼령과 조우한다. 흡사 지난해에 개봉된 영화 <쓰리>에서의 진가신의 에피소드(<고잉 홈>)처럼, <검은 물밑에서>라는 공포영화의 외피를 감싸고 있는 것은 이처럼 ‘애틋한’ 가족드라마이다. 원한, 죽지 않는 몸부림 이와 같은 서사가 일개 장식물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또한 여기서 드러나는 이른바 ‘모성’ 이데올로기를 지적하는 것은 옳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소한 문제이다. 그 누구도 눈물을 흘리기 위해 공포영화를 보러 가지는 않는다(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덤’에 불과하다). 나카다 히데오는 이 서사를 진심을 다해 공들여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그가 어디까지나 서사적 드라마를 공포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형식적 장치로 다루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허풍으로 가득한 특수효과에 의해 서사가 결국 핑곗거리로 밀려나고 마는 최근의 할리우드산 공포영화들과 비교할 때, 이 점은 물론 간과할 수 없는 미덕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요시미가 자신이 끌어안고 있던 아이가 딸 이쿠코가 아닌 미츠코임을 알게 되는 장면 역시 <샤이닝>의 유명한 욕실 시퀀스와 일견 유사하지만, 거기엔 나카다 히데오의 전작 <링2>의 우물장면에서 보여졌던 썩은 몸뚱어리를 지닌 원귀의 이미지가 동시에 겹친다. 큐브릭은 결코 제시하지 않았던 추악하고 두려운 형상의 과거를, 나카다 히데오는 집요하게 드러낸다. 특히 <검은 물밑에서>는 하나의 사물, 아파트라고 하는 거대한 사물에 그보다 훨씬 거대한 감정, 즉 원한이라고 하는 감정을 덧씌운다. 서사가 작동하는 것은 바로 여기서이다. 왜 사물은 그저 죽어 있기를 멈추는가, 라는 물음에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 즉 <검은 물밑에서>의 서사는 원한이라는 거대한 감정을 사물의 편으로 실어 나르는 축인 셈이다. 이때 아파트-사물은 몸을 뒤틀고 눈물 흘리며 그 자체 오싹한 공포의 이미지가 된다. 그러나 이 사물은 그토록 거대한 감정을 수용할 만큼의 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결국 모든 원한은 틈을 비집고 나와 바깥으로 흘러 넘친다. 지난 세기 빠르게 들어선 새로운 주거공간으로서의 아파트, 그리고 이 공간과 결부된 가족형태의 변화가 <검은 물밑에서>와 같은 공포영화를 가능케 했음은 물론이다. 한때 새로운 주거공간이었던 것은 이제 오래된 기억들의 무덤, 망각된 것들을 위한 비석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검은 물밑에서>의 아파트는 곧 파괴될 것이고 거기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아파트와 무엇보다도 닮아 있는 것은 바로 나카다 히데오의 영화이다.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은 흡사 지난 시절 공포영화들의 무덤을 방문하는 것과 같다. 그의 영화는 공포영화 장르의 관습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지만, 이 장르를 구성하는 익숙한 요소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조합을 만든다. 이 장르에 익숙한 이들에게라면 아마 <검은 물밑에서>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주술처럼 읽힐 것이다. 그리고 각자가 발견한 빨간 가방을 따라 두려움의 여정에 동참하다가 운이 좋다면 마침내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검은 물밑에서>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결말부에 살짝 달라붙은 ‘십년 뒤’ 에피소드이다. 여기서 어느덧 열다섯이 된 이쿠코는 예전에 어머니와 살던 아파트를 방문했다가 어머니의 혼령을 본다. 이쿠코는 거기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녀의 등 뒤에서는 미츠코의 혼령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중이다. 안타깝게도 모녀는 다시 헤어질 수밖에 없다. 이 부분은 공포영화에서 익숙한 ‘최후의 깜짝 쇼’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정작 문제삼고 싶은 것은 그러한 상투성이 아니라 호러 장르를 다소 벗어나 드라마를 다루는 데 있어 나카다 히데오가 보여주는 안이함이다.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그런 쪽으로는 재능이 없다. 흡사 <링>을 보던 중 갑자기 <유리의 뇌>가 튀어나오는 격이랄까. 활성화된 거대한 사물, 아파트는 어머니의 품으로 치환되고 만다. 간단없을 것만 같던 공포는 여기서 종결된다. 기가 질려 불가해한 대상을 응시하는 대신, 이쿠코는 등 뒤로 솟은 낡은 아파트를 뒤로 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된 미츠코의 원한이 왜 어머니에게로만 향해야 했던가에 대해서는 더이상 묻지 않아도 된다. 그걸 묻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검은 물밑에서>의 상상적인 속편을 머리에 그려보아야 한다.유운성/ 영화평론가 akeldama@netian.com

[서브웨이] 절대 이데올로기로 군림하는 프랑스의 예술지상주의

오! 예술 프랑스는 아직도 봉건적인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나라다. 여성 총리가 나오면 Le Premiere 인지 La Premiere인지 고민하는 나라다. 사무엘 헌팅턴이 지난 2월 초에 파리에 있었다면 서구 전체를 상호충돌하는 여러 문명 가운데 하나로 묶은 것을 후회했을 거다. 외부세계를 중시하는 영미계열 국가들과 모든 사물들에 성별을 매기는 것을 즐길 정도로 정신세계 속으로의 몰입을 즐기는 프랑스, 독일 등의 대륙계 국가들의 차이는 좀처럼 좁히기 힘들다. 무역협상이 올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문화시장개방 반대세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개방주도 세력들이 힘을 겨루고 있다. 이 힘겨루기에서 항공기 제조업이 제조업의 총아이듯이 문화산업의 총아인 영화 및 텔레비전 산업은 매우 중요한 부문이다. 한 세력의 맏형 노릇을 하는 프랑스가 지난 2월2일부터 4일까지 세계 각국의 반대세력을 규합했던 파리회의의 내용과 형식은 문명의 충돌을 연상시켰다(한국은 예술인들의 참여로 영화산업을 지켜낸 기린아로 소개되었다). 대회의 구호인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은 이미 하나의 정치적 신념과 보편적 정의개념으로 완성되어 있었고 자국문화산업 보호라는 즉자적인 목표들에 대한 추호의 부끄러움도 완전히 녹여버리고 있었다. 회의 첫날 엘리제궁에 참가단을 초대했던 시라크 대통령의 연설을 들어보자. “예술가는 인생과 세계에 향취와 감각과 미를 부여한다. 인류의 반사경으로서 인류의 내적 영혼을 드러낸다. 우리 역사의 증인이며, 시대의 모순에 대한 우리의 항거의 화신이며, 더 나은 현실을 위한 우리의 갈망의 화신이다…(중략)… 그는 자유와 신망을 받아야만 한다. 사회는 창작자들과 예술가들에게 정당한 자리를 허용하는 만큼 발전한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사상가들이 특정계급을 찬양하던 그 목소리, 프랑스의 어느 대문호가 사회발전의 척도를 특정 사회적 약자들의 처우에 맞추었던 목소리가 들린다. 대회의 분위기는 반(反)WTO로 진보로 분류할 수 없는 일종의 예술지상주의 바로 그것이었다. 주최단체인 극작가/연기예술인저작권협회(SACD)의 저작권에 대한 입장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카피레프트 얘기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이들의 1차 목표는 우선 예술의 진흥이지 사회변혁도 아니고 민중해방도 아니었다. ‘문화적 다양성’의 중요성만이 철학적 인류학적 수사들로 장식되어 그 흔한 농담 하나없이 발제시간을 넘겨가며 반복, 강조되었고 이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다른 진보적인 명제들과의 타협 및 연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별로 없이 주최쪽이 미리 만들어놓은 결의문이 만장일치의 박수로 통과되었다. 회의를 마치면서 느낀 것은 일종의 자신감이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이다. 돈이라는 매개체 없이도 삶의 질을 고양하는 문화유산이 가득하고 새로운 문화유산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길거리의 휴지통과 우체통 하나도 감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미국에 유일하게 ‘No’라고 할 수 있는 힘은 이 국부(國富)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엄청난 국부를 만들고 유지시키는 원동력은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가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 못지않게 사회발전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강변하며, 아무 부끄럼없이 “바보, 예술이 문제잖아”(It’s art, stupid!)라고 정치인들에게 외치는 예술가들의 고집스러운 신념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신념은 조직적으로 세련되지도 않고 사상적으로 강고하지도 않은 삼류 노동조합식 회의에서 나온다. 필자의 눈에 허술해 보이기만 하는 회의를 하면서도 자신들이 따라가야 할 ‘국제수준’은 없다고 생각하는 프랑스가 부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오기 전날 밤 그 시대의 카뮈들이 동시대의 트로츠키들과 놀았다는 몽파르나스의 어느 카페에서 술을 마셨다. 길 건너의 다른 유명한 카페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박았다. 카페주인이 손을 휘저으면서 왜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고 다른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박느냐며 자신의 술집이 보이도록 바쪽을 향해서도 한장 박으란다. 술집주인은 자신의 카페를 일종의 예술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박경신/ 변호사·법무법인 한결

[새 영화] 은퇴한 나 무슨 재미로 살지? <어바웃 슈미트>

66살 전직 보험맨 아내잃고 슬퍼하다가 숨겨진 연애편지에 열받고 후원하는 6살 꼬마에게 인생푸념 늘어놓고 사윗감 맘에 안들어 딸결혼 방해작전 펴고...슈미트 역 맡은 잭 니컬슨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여기 66살의 남자 워렌 슈미트가 있다. 퇴임날이다. 의례적인 퇴임파티까지 끝내고 나니 인생은 갑자기 공허해진다. 자신의 기업을 일구겠다던 젊은 날의 꿈이 조직의 체계라는 수레바퀴에 딸려들어가 버린 뒤,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는 것으로 자족하며 살아온 삶. 그런데 이제 무엇을 하지 <어바웃 슈미트>는 주인공의 직업이 보험수리사가 아니어도, 이름이 김갑돌이어도 상관없을 어느 노년의 초상화다. 직장과 가정에 충실했으며, 이웃의 문제에는 눈돌릴 짬이 없었던 중산층 보통사람의 이야기이다. 아서 밀러는 이런 인물로 <세일즈맨의 죽음>의 비극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루이스 버글리의 1996년산 소설을 짐 테일러와 공동각색한 <어바웃 슈미트>는 유머와 회한이 절묘하게 뒤섞인 희비극이다. 은퇴생활에 적응하기도 전, 42년 결혼생활을 함께 해온 아내마저 세상을 뜬 건 비극적이다. 게다가 아내가 못 견디게 그리워져 유품을 뒤적이다가 아내가 옛날 자신의 친구와 주고받은 연애편지를 발견한 것도 비극적이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슈미트는 얼굴을 부비고 파묻던 아내의 옷들을 캠핑카에 쓸어담아다 의류재활용 통에 던져버린다. 분노와 재활용이라는 이질적 요소가 마찰하면 거기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런 식이다. 잭 니콜슨이 워렌 슈미트 역을 맡아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있다. 슈미트의 감정기복을 드러내주는 건 편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린이구호기금 광고를 보고 그는 충동적으로 후원금을 낸다. 탄자니아의 여섯살난 은구두라는 사내아이가 양자로 배정되는데,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글은 그의 분노, 슬픔, 쓸쓸함을 털어내는 배설구가 된다. 66살 인생의 푸념의 대상이 6살이라는 것, 이것 역시 우스꽝스러운 역설이다. 이 역설 역시 슈미트의 노년비극에 몰입하지 못하도록 관객의 등덜미를 잡아채는 효과를 낸다. 감독 페인은 이른바 거리두기 작전을 성공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슈미트의 외동딸 지니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물침대 판매원인 사윗감이 맘에 들지 않지만, 슈미트는 캠핑카를 몰고 딸의 결혼식이 열릴 덴버를 향해 난생 처음 긴 여행을 시작한다. 길 위에서, 또 덴버에서 기다리는 물침대에서 잠을 잘못 자 목을 못쓰게 되고, 몸을 풀러 들어간 온탕에 안사돈(케시 베이츠)이 알몸으로 합류하는 등 참으로 어이없는 소극들이다. 결혼을 막을 수 있으면 막으리라 결심했건만, 온갖 아름다운 축복을 열거한 결혼피로연 축사는 이 소동의 극치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집에서 아름다운 반전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그건, 사는 동안 처음으로 자기 바깥으로 내민 손을 누군가가 따뜻하게 잡아주었다는 깨달음이다. 희극과 비극은 그렇게 겹쳐지고, 겹쳐진다. 아서 밀러의 윌리 로먼과 페인의 워렌 슈미트가 다른 점은 바로 그것이다. 밀러는 “이 사람을 주목하라”며 보통사람의 폐허를 가리키는데, 페인은 그 보통사람에게 출구를 마련해준 것이다. 자신을 벗어나는 순간 생겨나는 그 기적은 반전 시위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조직가능한 연대의 시대, 또다른 세계화의 시대의 증거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사실 하나. 전작 <선거>를 부산영화제에 선보인 적 있는 감독 페인은 캐나다에서 할리우드로 활동무대를 계속 넓혀온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의 남편이다. 7일 개봉.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

[베를린] 조지 클루니의 너무도 예민했던 2번의 기자회견 [2]

#2. 이틀 뒤 저녁 7시10분. <위험한 마음의 고백> 기자회견장 기자a | 베를린이 영화의 주무대 중 하나인데요. 왜 베를린에서 촬영을 했고, 왜 ‘그런 식’으로 촬영을 했나요? 조지 클루니 | 너무 화내지 마세요. (웃음) 미국인들에게는 냉전시대 독일의 ‘스파이 세계’에 대한 판타지가 있어요. 스파이를 찍으려면 독일이 적격이다, 하는 식의. 그 스테레오 타입대로 찍은 거죠. 기자b | 감독을 해보니 배우보다 재미있던가요? 클루니 | 나는 배우 일을 재미있어합니다. 감독도 재미있지만 훨씬 힘든 일 같아요. 이 영화를 만든 것은 내게는 대단한 경험이었지만, 단지 재미있다, 아니다 할 성질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로 제가 감독 데뷔를 했다고들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영화 하나를 만들어본 것뿐입니다. 기자c | <솔라리스> 기자회견 때 당신은 그날 밤 당장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는데요, 아직 안 한 것 같아요. 신부감으로 저는 어떠세요? 클루니 | 아, 주의를 덜 기울이셨군요. 사실 어젯밤 결혼했는데요. (웃음) 당신하고도 결혼을 하도록 하죠. 하지만 그러려면 우선 이혼을 해야겠군요. (웃음) 기자d | 척 배리스를 만날 기회가 있으셨나요? 그가 영화를 봤나요? 클루니 | 샘이 대답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샘 록웰(척 배리스 역, 남우주연상 수상): 네, 만났습니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고 영화도 보곤 했죠. 저는 그와 함께 있을 때 테이프 레코더를 늘 켜두었어요. 그걸 자주 들으며 저는 연기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척 배리스는 이 영화를 보고 좋아했어요. 기자e | 영화의 비주얼 스타일이 독특한데요. 클루니 | 영화를 시작하면서, 저는 촬영을 색다른 관점에서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척 배리스가 활동했던 당시, 그러니까 1960∼70년대 미국영화의 스타일로 돌아감으로써 그것은 가능했습니다. 그 당시 미국영화들은 특별한 사실주의적 스타일을 보여줬지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들인 마이크 니콜스(<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졸업> 등 연출)나 존 프랑켄하이머(<만주인 포로> 등 연출)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체험으로는 9살 때부터 게임 쇼를 보고 자란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게임 쇼를 만드셨거든요. <닉 클루니 쇼>라는 토크 쇼였는데, 아버지가 일하는 세트에서 당시 분위기를 많이 보고 그 안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훌륭한 스탭들이 있었기에 좋은 촬영이 가능했습니다(동석한 프로듀서는, 그러나 “이 영화는 100% 클루니 영화”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기자f | 로마 텔레비전 기자입니다. 당신은 옛날 미국 TV쇼를 이 영화에서 많이 카피했는데요. 저희는 미국 TV쇼에서 타산지석을 발견합니다. 서바이벌류의 쇼 말이죠. 좋은 TV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주겠어요? 클루니 | 미국도 다른 나라 쇼에서 많은 것을 배운답니다. 기자f | (상당히 뜬금없이) 우리나라는 뉴스가 진짜 좋아요. 클루니 | (그래도 친절하게) 그래요? 애석하게도 미국은 더이상 그렇지 못해요.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것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합니다. 제 아버지는 한때 뉴스 앵커맨이기도 했죠. 옛날 텔레비전이 황금기였을 때에는 정말 멋졌어요. 어떻게 좋은 TV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냐, 라고 묻는다면, 글쎄 세계의 진실을 잘 전달해야 할 것 같아요. 뉴스가 경찰 쇼나 폭력 쇼가 돼선 안 되겠죠. 척 배리스는 가짜 쇼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TV가 너무나 오락적으로 된 것에 대해 조금은 죄책감을 갖고 있어요. 아직도 단순하면서 사랑스럽고 도덕적인 그런 프로그램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군요. 저는 사실 요즘의 TV가 걱정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