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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새 영화] 나이아 바르달로스의 <나의 그리스식 웨딩>

시끌벅적 결혼과정, 미 전역이 환호했다. “우리가 철학을 할 때, 너희 조상은 나무를 탔다구.” 시카고에서 이름도 근사한 그리스식당 `춤추는 조르바'를 운영하는 그리스계 미국인의 민족적 자긍심은 하늘을 찌른다. 등교길의 딸들에게 상기시키기를 잊지 않는다. “그리스의 3대 발명은” 입을 모아 하는 대답, “천문학, 철학, 민주주의!” 딸들은 그리스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믿는 아버지의 딸 툴라가 앵글로 색슨 남자와 결혼을 하겠단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지긴 하는데, 신랑감 이안은 50명 대가족 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 야단법석 절차를 치뤄내야 한다. 이 시끌벅적한 결혼이야기 <나의 그리스식 결혼>은 2002년 할리우드 최대의 돌출 성공작. 영화는 주인공 툴라 역의 그리스계 카나다인 니나 바르달로스의 1인극이 원작이다. 14일 개봉. 툴라가 당신을 얼마나 닮았느냐는 한 영화잡지의 질문에 니나 바르달로스는 “바로 내 얘기”라고 대답했다. 니나는 그리스 이민 2세대고, 툴라처럼 뒤늦게 이안 고메즈라는 `기사'를 만났고, 이안은 영화속 이안처럼 그리스 대가족에 합류하기 위해 영세를 받고 그리스 정교도가 되었다. 모험심이야말로 현실과 허구의 두 인물의 공동자산. 툴라가 자기 삶을 개척하기 위해 식당을 벗어나 대학으로 갔다면, 니나는 캐나다를 떠나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 그러나 `소수민족' 그리스계 배우에게 기회는 바로 주어지지 않았다. “네 얘기로 직접 연극을 하면 어때” 한 친구의 말에 되묻기. “무슨 얘기” “네 결혼 이야기.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렇지, 내 결혼과정의 문화충돌기는 털어놓기만 하면 파티장을 웃음으로 뒤흔들었지. 그래서 니나 바르달로스의 그리스식 결혼은 스탠드 업 코미디로 태어났다. 이것이 바르달로스 출세기의 제1장. 1인극의 관객 중에 톰 행크스의 아내 리타 윌슨이 있었다. 리타는 즉각 남편에게 이걸 영화화하자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한번 써보지, 라는 제안에 바르달로스는 대뜸 시나리오를 내놓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연극은 입소문이 나서 몇몇 영화사로부터 그런 제안을 받고 써둔 시나리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리스를 이탈리아나 히스패닉으로 바꾸자는 조건을 붙이는 바람에 “무슨 소리야”라고 거절을 해왔던 것. 그런데 리타에겐 그리스피가 반쯤 섞여 있었다. 그리스계, 당연히 원작대로 통과. 영화는 작게 시작됐다. 바르달로스가 받은 각본료는 5백 달러, 출연료는 15만 달러. 제작비는 5백만 달러였다. 감독으로 텔레비전 드라마를 몇편 만든 조엘 즈윅이 선정됐지만, 바르달로스에겐 캐스팅부터 음악과 편집까지 전과정을 주관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졌다. 그리스계 배우들로 `들끓는' 촬영현장에서 그래도 유명배우는 이안 역의 존 코빗. 바르달로스와 코빗의 만남도 극적이다. “그리스식 결혼에 관한 영화대본을 받았는데, 맘에 들어 연락을 해보니 제작진이 미국에 없다는 거야.” 영화촬영 차 머물던 그가 친지에게 투덜대는 그 순간, 그 호텔 레스토랑에 바르달로스 일행이 앉아 있었다. 영화는 배급도 작게 시작됐다. 마케팅 예산이 1백만 달러.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보통 그 25배를 쓴다고. 대신 적은 수의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해, 입소문과 웃음소리가 그곳에서 터져나오게끔 했다. 그리스계 미국인들의 지지는 없었냐고 웬걸. 이탈리아나 유태인 영화는 있었어도, 그리스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는 처음이라서 일대 소동에 가까운 열광이 터져나왔고, 그 환호는 미국 전역으로 전염되어 버렸다는 이야기. 남은 논란은 니나 바르달로스가 신데렐라냐, 미운 오리새끼냐 정도라 할까.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지난 1월26일 현재 미국에서만 2억3천 88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기록했고, 바르달로스는 할리우드가 가장 탐내는 인물 대열에 올랐다. 지금, <코니와 카를라>라는 영화를 준비중이다.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

[새 영화] <언디스퓨티드>

무적의 교도소 권투선수에 도전자. 의 감독 월터 힐의 신작 <언디스퓨티드>는 남성의 육체성을 과시하는 순수 권투영화다. 권투선수 초년병 시절, 아내의 남자에게 주먹을 휘둘러 결과적으로 살인을 한 뒤 종신형을 선고받은 먼로 허친(웨슬리 스나입스)은 교도소 무적의 챔피언. 바깥세계의 챔피언 아이스맨 챔버스(빙 레임스)가 마이크 타이슨의 일화를 연상시키는 강간혐의로 이곳에 수감된다. 격돌이 없을 수 없다. 형사 콜롬보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온 피터 포크가 둘의 대결을 주선하고, 교도소에서 일전이 벌어진다. 월터 힐은 힙합과 일대가격을 연상시키는 화이트아웃의 효과정도를 가미했을 뿐, 정말 노골적으로 단순하게 대결의 순간으로 내닫는다. 이건 마치 랩과 권투경기의 결합 가능성을 묻는 시험용 영화같다. 시험 결과는 월터 힐의 다음 영화 어디선가 확인해봐야 할 듯. 경기 결과를 밝혀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을 성 싶다. 아이스맨은 출옥하여 라스베가스에서 케이오 승을 거둔다. “무적자 아이스맨”을 연호하는 장면을 텔레비전 중계방송으로 보던 감옥 동료들은 안다. 진짜 무적자는 먼로 허친임을. 그 아이러니가 영화의 미덕이다. 그런데 월터 힐은 이 역설로 단편을 만들었거나, 디테일을 더 채웠거나 양자택일을 했어야 했다. 7일 개봉.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

[새 비디오] 섹스 앤 시티 시즌 3

맛있는 섹스·당당한 독신,커리어우먼 4명의 자아찾기 30대 독신 여성들의 사랑과 섹스에 대해 대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케이블 텔레비전 드라마 <섹스 앤 시티> 시즌3이 비디오로 출시됐다. 현재 캐치원과 OCN을 통해 방영중인 이 드라마는 <프렌즈>, <앨리의 사랑만들기>에 이어 케이블 드라마 붐을 몰아가고 있는 작품이다. <섹스 앤 시티>의 주인공은 서로 다른 연애와 결혼관을 가진 네명의 뉴요커 여성이다. 잘 나가는 홍보회사 대표인 사만다는 그야말로 ‘맛있는’ 섹스에만 일로매진하는 섹스지상주의자이고, 변호사인 미란다 역시 결혼과 동거에 냉소적이고 안정적인 연애마저 불편해하는 강박적 독립주의자다. 이들의 반대편에 낳지도 않은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놓을 정도로 결혼을 꿈꾸는 미술관 큐레이터 샬롯이 있고 그 가운데 쯤에 하룻밤의 사랑과 안정적인 관계 사이에서 망설이는 캐리가 있다. 칼럼니스트인 캐리가 연재하는 ‘섹스 앤 시티’라는 칼럼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30분짜리 드라마는 언제나 질문에서 시작한다. “뉴욕의 멋진 40대 남성은 왜 모두 유부남이거나 게이일까”“여자의 미모는 지성이나 유머감각보다 중요한가”등 캐리가 던지는 질문은 그 회의 주제이고 이와 관련된 네 친구들의 에피소드가 코믹하게 얽힌다. 미국의 유료 케이블 채널인 HBO에서 98년 첫방영된 이 드라마는 이전의 섹스 코미디들이 엄두도 내지 못했던 노골적인 이야기들로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여성시청자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그 이유는 오랫동안 ‘섹스’를 주제로 한 드라마들이 세워놓았던 남녀의 관계를 역전시켰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철저히 네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풀어가고 그들이 스쳐가는 “그 많은” 남성들은 도구적인 존재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함께 잤던 남자의 성기크기를 야유하거나, 괴상한 성적습관을 놀잇감으로 만드는 등 ‘남자들끼리의 대화영역’이었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뱉어낸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섹스 코미디’로만 소개하기 부족한 건 섹스라는 매개를 통해 독신여성의 삶과 관계에 대해서 간단치 않은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시즌 마지막에서 결국 애인과 결별한 캐리는 “내가 빅(자신을 차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전 애인)을 길들이는 데 실패한 게 아니라 그가 나를 길들이는 데 실패했을 뿐이야”라고 결론내린다. 네명의 주인공들은 오색찬란한 남성편력과 좌절을 겪으면서 그를 통해 자아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체 12편으로 엮였던 1,2시즌과 달리 18편(전 6권)으로 나온 세번째 시즌에서 샬롯은 ‘드디어’완벽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지만 성적 문제 때문에 3개월 만에 별거에 들어간다. 미란다는 오랫 결심을 흔들며 다감한 남자 스티브와 동거에 들어가고, 캐리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지만 옛사랑의 그림자를 잊지 못한다. 여전히 도시적이면서 젊은 여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유머가 풍부하지만 시즌1,2에 비해서는 다소 진지해졌다. 이번 달 초부터 캐치원에서는 시즌5를 매주 금요일 밤 10시에 방영하고 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48권의 책으로 읽는 감독의 길 -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5]

아니메의 모차르트, 혹은 사람의 아들 <만화가의 길> 분명히 세상에는 천재가 있다. 살리에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모차르트가 있다. 데즈카 오사무보다 뛰어난 만화를 그린 만화가는 시라토 산페이나 쓰게 요시하루 등등 많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분명 데즈카의 작품들을 능가한다. 하지만 작품의 방대함과 그것이 만들어낸 세계 전체를 들여다보면, 데즈카에 필적할 인간은 없다. 세계를 창조한 신이라면 모를까. 그렇다. 데즈카 오사무는 일본 만화의 신이다. 단순한 치사가 아니다. 데즈카 오사무가 죽었을 때 ‘데즈카 선생은 외계인이다. 어딘가 우주 저편에서 지구로 와서 사명을 다하고 돌아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데즈카 오사무는 전후 일본 만화의 부흥을 이끈 주역이며 세상의 모든 것을 만화로 만들어냈다.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불새>를 비롯하여 SF <메트로폴리스>와 <우주소년 아톰>, 의학물 <블랙 잭>, 종교물 <붓다>, 정치물 <아돌프에게 고한다> 그리고 <리본의 기사> <밀림의 왕자 레오> <키리히토 찬가> 등 엄청나게 광범위한 소재와 주제를 작품에 담아냈다. 일본 애니메이션도 데즈카 오사무의 손에서 출발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 데즈카 오사무는 세계 전체를 재창조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데즈카 오사무와 동등해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데즈카 오사무는, 범인은 도저히 오를 수 없는 타고난 천재일까? <만화가의 길>(황금가지 펴냄)을 보면 그렇다는 생각도 든다. 의사생활을 하면서 십여편 이상의 만화를 그리고, 그 와중에 1년에 365편이 넘는 영화를 보는 생활은 보통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데즈카가 다니던 의대 교수가 “이 상태로 의사 공부를 계속한다 해도 어차피 제대로 된 의사는 되지 못할걸세. 아마 환자 대여섯은 죽이고 말걸. 이 세상을 위해서라도 의사는 그만두고 만화가가 되게나”라고 충고했어도, 듣지 않는다. 어머니의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하거라”는 말을 듣고 만화가의 길로 정진하지만, 그러면서도 공부를 계속하여 의사 면허를 딴다. 하지만 데즈카 오사무가 유머러스하게 풀어놓은 과거지사를 들어보면, 천재가 만들어지는 것은 재능 이상으로 역시 ‘꿈과 노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데즈카는 2차대전 당시 청소년기를 보냈다. 만화에 미쳐 있던 데즈카 오사무는 폭탄이 떨어지는 군수공장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만화를 그렸다. 단지 그리는 것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매일 아침 화장실 안쪽 벽에 만화를 붙였다. 쭈그리고 앉으면 누구나 볼 수밖에 없는 정면의 벽에. 그렇게 날마다 만화를 그리고, 의대에 가서도 변함없이 만화를 그렸다. 데즈카 오사무 지음 | 김미영 옮김 | 황금가지 펴냄 데즈카 오사무가 그린 만화의 영역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는 세상의 모든 것에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극렬한 호기심으로 얻은 지식들을 자신의 작품에 투여했다. 영화적 기법을 만화에 도입하여 스토리 만화의 기틀을 잡았고, 소재와 주제를 바꿔가면서 독자를 사로잡았다. 한마디로 데즈카 오사무는 엄청난 일중독자였다. 한때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고 일어났을 때, 데즈카 오사무가 처음으로 한 말은 “제발 부탁이니까 일을 하게 해줘”였다. 데즈카 오사무는 자신의 주장과 논점이 명확했다. 영화에서 펠리니는 좋아하지만 고다르는 평론가와 마니아나 좋아할 감독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몇 작품을 뺀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는 “내용이 무의미하고 안이하다”고 비판한다. 좋다. 만화의 신인 데즈카는 그럴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신랄한 비판이 가능했던 이유는 데즈카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의심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작품을 다듬었기 때문이다. 소년 시절 데즈카의 작품을 읽고 자란 사이토 다카오, 다쓰미 요시히로 등이 만화가로 데뷔하여 ‘극화’라는 새로운 형식의 만화를 만들어내며 성인 독자가 증가하던 시기가 있었다. 질투심과 함께 매너리즘이라는 독자의 비판을 받은 데즈카는 노이로제가 심해져 계단에서 구르기도 하고, 마침내 의학도로 돌아가기 위해서 나라에 있는 은사를 찾아가 공부를 하며 학위까지 받는다. 한 편집자는 높이 쌓인 만화잡지를 엄청난 속도로 넘기며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검토하던 데즈카의 모습을 전해준다. 데즈카 오사무는 언제나 맹렬하게 받아들이고, 치열하게 쏟아냈던 작가였다. 일본 만화의 신은, 신의 자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데즈카는 언제나 자신을 의심하고, 타고난 호기심과 노력으로 신천지를 만들어낸 위대한 인간의 자식이었다. 데즈카 오사무가 걸었던 <만화가의 길>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인간 데즈카의 땀냄새와 일상의 유머가 가득 배어 있기 때문이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데즈카가 더 궁금하다면 <만화가의 길>은 에세이풍으로 듬성듬성 쓴 자서전이다. 유머가 풍부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들어 있지만 데즈카 오사무의 성장과정 등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힘들다. 보완을 원한다면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데즈카 오사무 지음/ 누림 펴냄)를 보면 좋다. 86년부터 88년까지 데즈카가 했던 강연과 각종 기록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는 중학생 시절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대부의 아들>도 전편이 담겨있는데, 이지메당하던 데즈카가 만화를 통해 마음의 교류를 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데즈카 오사무의 역할을 알고 싶다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모든 것을 정리한 책 <일본의 아니메>(日本のアニメ/준비위원회 지음/ 보도사 펴냄)의 7장 ‘데즈카 오사무-국산 30분 텔레비전 아니메의 시조 데즈카 오사무. 그 거대한 발걸음’에 잘 정리되어 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인터뷰] 매춘여성 국회의원 ‘예지원’

처음엔 이런 감정을 느낄 줄 몰랐다. 단지 에스메랄다처럼 “삶을 돌아보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윤락녀 캐릭터를, 무엇보다 “여성이 이끌고 나가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깜찍하고 발칙한” 발상의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출연하게 됐다. 배우 예지원, 아니 기호 4번 고은비 후보의 ‘국회의원 선거 출마기’다. 헌법 제1조를 아시나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처음엔 대사로 줄줄 외웠죠. 하지만 영화속 합동유세때 실제 장애인, 노숙자분들 등 1500여명의 보조출연자들이 추운 날씨 아랑곳 않고 고은비를 환호하는 데 정말 감동받았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왜 이들은 1조의 권리를 누리지 못할까. 고은비가 그랬듯이.” 선거를 치르며 고은비가 점차 못가진 자, 소외된 자의 상징이 되어간 만큼 예씨는 소중한 감정을 배우게 된 듯 했다. 영화의 대부분 촬영은 전주에 있는 실제 윤락가에서 촬영됐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우릴 미워하면 어떡하나. 근데 그곳에 있는 분들 정말 평범해요. 단지 밤이 되면 진한 화장과 야한 옷을 입는다는 것 뿐이에요. 방 빌려줄테니 와서 쉬라는 언니, 옷 빌려주겠다는 언니, 와서 밥먹으라고 부엌 빌려준 주인… 모두 못 잊을 분들이에요.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실제 고은비의 감정을 못 느꼈을 거에요.” 일간지의 사회면을 장식한 ‘국회 월장’ 촬영까지 마치고 영화개봉을 앞둔 지금, 예씨는 ‘국회의원 당선소감’을 당당히 밝혔다. “말단 샐러리맨이 사장될 수 있고 소외받은 소시민이 능력 발휘하는 세상, 그것이 고은비가, <대한민국…>이 바래는 사회죠. 노무현 대통령도 어떤 의미에선 고은비인 거에요. 이전같으면 이 영화가 ‘시원하다’는 소리만 들었겠지만 이젠 좀더 실현이 가능해진 것 아닌가요” 전주 매춘가에서 촬영 ‘어색한 거 깨게… 뽀뽀 할까요’ 당돌하게 말하던 <생활의 발견>의 쓸쓸한 얼굴의 명숙처럼, 바람처럼 길처럼 자유로워보이는 예씨는 한 구석 애잔함을 간직한 배우다. 으로 데뷔해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촬영중인 <귀여워> 등 어느 하나 ‘교과서에는 없는’ 캐릭터를 맡아온 이 배우는 “관객들에게 팬터지를 주는 역이 아니라, 관객들과 비슷해 그들이 위로해주고 싶은 역들이죠. 남들은 그만 망가지라지만 전 너무 즐거워요. 속이 후련해요”라 말했다. 텔레비전 드라마 <꼭지><줄리엣의 남자> 정도를 제외하곤 “자주적이고 개척하는 여자”를 해온 셈이다. 촬영중 남진씨의 팬들이 서울에서 버스 하나를 대절해 김밥싸고 내려왔던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그 나이에도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겠어요” 말하던 예지원 ‘당선자’에게 궁극적인 포부를 물었다. “가만 있어도 향기가 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어떤 영화? 야당의 국회의원이 여당쪽에서 보낸 듯한 윤락녀와 정사를 벌이다 복상사(물론 대외발표용은 ‘과로사’다)하며 여야 동수가 된 가운데 수락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열린다. 여당, 야당, ‘단군할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를 외치는 무소속 후보에 기호 4로 이 도시 윤락가에서 일하는 고은비가 출마한다. 끔찍한 성폭행을 당한 동료 사건이 윤락녀란 이유로 수사조차 못받자 분개해, 사투리 ‘징하게’쓰는 욕쟁이 괴짜신부 베드로, 아나운서를 꿈꾸는 동료 세영 등의 도움으로 나섰다. <대한민국 헌법제1조>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시원하리 만큼 명확하다. 여기서 악은 국민들의 속내엔 관심없는 정치인들의 우스꽝스런 모습 그 자체다. 반대편엔 윤락녀를 비롯해 장애인, 노숙자 등이 있다. 정치적으론 너무나 올바른 의식이 장점이라면, 풍자라 하기엔 너무 직설적이고 단면적인 묘사방식은 단점이다. ‘사실적’이라고 넘어가기엔 전반부의 과도한 섹스코드는 불쾌감을 줄 정도. 그럼에도 이 거친 대중영화는 ‘내질러 보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감정과 의식과잉 속에서도, 정많고 서로를 보다듬는 소수자들의 따뜻한 마음만은 진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사가 있는 출연자만 75명인 영화 속에서 임성민, 최은주 등이 연기한 윤락녀 동료, 기호 3번 후보역의 장대성, 386 세대를 풍자한 듯한 캐릭터 방송기자역의 이문식까지 많은 배역에 골고루 눈길이 가는 것도 미덕. 특히 베드로역의 남진은 안정감있게 영화를 뒷받침해준다. 14일 개봉.

코믹한 스타일과 사실적 묘사와의 균형,<대한민국 헌법 제1조>

■ Story 윤락여성이 길에서 집단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나 경찰은 피해자의 직업적 특성을 들어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이에 분개한 동료 고은비(예지원)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후보로 출마한다. 여야후보들의 정치공작과 주위의 냉대로 고은비 자신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들이 갖가지 시련에 부딪히지만 결국 똘똘 뭉쳐 선거 유세에 나선다. ■ Review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바로 윤락여성과 정치인이다. 영화는 초반부에 이 두 집단을 극단적으로 희화화하면서 유사성을 부각시킨다. 야당의 정치인이 여당의 사주를 받은 윤락여성과 정사를 하던 도중 복상사한다는 설정은 이같은 희화화의 극단적인 예다. 그런데 이 두 집단이 인간성 차이를 노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윤락여성이 강간을 당한 일에 대해 경찰과 정치인 등의 공권력이 “창녀에게도 강간이라는 게 성립하느냐”는 태도로 일관한데 반해 윤락여성들은 헌신적인 동료애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로써 두 집단은 화해할 수 없는 대립으로 접어들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의 맞대결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이때부터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영화 속 지역 구민 혹은 영화 밖 관객을 향해 정치인은 윤락여성만도 못하다고, 혹은 윤락여성의 도덕성은 기성 정치인을 제치고 국민의 대표자가 될 만하다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문제에 대해 선악 이분법을 구사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우리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이 단지 ‘언니들’과 함께 울고 웃기만 하면 된다. 영화가 취하는 이같은 입장은 상당히 파격적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새삼스러울 만큼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극중 베드로 신부(남진)의 말대로 예수님조차 “죄없는 자가 저 여인을 돌로 치라”고 했을 뿐더러 어떤 사람의 직업적 특성이 그 사람의 존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은 현대사회가 합의한 윤리성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고은비 후보와 그의 선거 캠프에서 주변의 어마어마한 편견과 멸시를 딛고 자신들의 존엄성을 향해 한발한발 나아가는 모습은 새삼 감동적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헌법 조문과 마주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총강 제1조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고은비 일행은 윤락여성인 자신들도 ‘국민’의 일부이며 국회의원의 권력 또한 자신들을 포함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각성에 이른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따르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윤락여성도 `권력`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이 영화의 세부 사항 가운데 상당수는 실제 현실로부터 직접 인용되었거나 차용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포르노 배우 출신 국회의원 치치올리나는 말할 것도 없고, 윤락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라는 발단은 근년 들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미군문제에서 뇌관 일부를 제거한 이슈로 보인다. 또한 극중에 등장하는 여성 경찰서장(정경순)은 윤락가를 깨끗이 청소하고 싶어했던 김강자 서장을 연상시킨다. 영화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성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파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하며, 마지막에 서장이 고은비 앞에 와서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이같은 발상은 약자의 편에 서서 활동해온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공개적으로 피력한 적이 없을 만큼 도전적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 영화의 바탕에 깔려 있는 시선은 자못 비판적이다. 백성기(이문식)라는 정치부 기자를 통해 386세대로 상징되는 젊은 진보세력의 역할에 대해 회의하고 조롱할 뿐만 아니라, 기성 정치를 총체적으로 불신하면서 성매매 여성, 가난한 계층, 장애인, 노인 등 소외 세력이 단결해야 한다는 소망을 피력하고 있다. 특히 윤락녀를 가족으로 둔 부모가 “어쩌자고 텔레비전에까지 얼굴을 비추느냐. 창피해서 양잿물 먹고 칵 죽어야지 못 산다”며 울부짖는 모습은 이 영화의 코믹하고 과장된 전체 스타일에 균열을 낼 만큼 사실적이고 섬뜩하다. 좋은 감상문은 여기까지다. 아무리 훌륭한 설교도 그 자체로 영화다움을 보장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정치의식과 영화적 세련미 사이의 간격이 너무 멀다. 마치 윤리 교과서를 낭독하는 어린 학생 앞에서 망연자실한 어른처럼, 관객은 영화의 자의식 과잉과 치기를 속절없이 바라보게 된다. 룸살롱에서 폭탄주 마시면서 낄낄댐직한 농담을 코미디나 유머와 혼동하는 버릇은 이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자신도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자 국민이라는 각성을 갖게 된 고은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영접한 사람도 윤락여성`이라고 강론하는 신부님으로부터 큰힘을 얻는다. 더욱이 이 영화의 정치 의식은 최근 대중적으로 형성된 비판의식의 수준과 내용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거나 기껏해야 모사하는 수준에 그친다. 도덕적 중심이 윤락여성에게 있고 공권력은 도덕적인 패배자로 출발해서 시종일관 희화화를 면치 못하는 설정은 그저 앙증맞은 흑백 논리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관객의 시선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술꾼들의 농담은 아무리 유치해도 웃기는 데가 있고, 편집이 제구실을 해준다. 무엇보다 윤락가와 정가를 대비시켜 가치와 상식의 전도를 일으키는 한국 대중영화의 거칠고 무모한 힘과 용기를 근본 원인으로 들어야 할 것이다. 김소희 cwgod@hani.co.kr

차승원 스토리 [1]

"달라 보이나요? 여전히 웃기고요? 그럼 됐군요." 부패 교사 ‘김봉두’가 온다. <신라의 달밤>으로 일약 코믹 캐릭터의 중심으로 도약한 차승원은 <라이터를 켜라>와 <광복절특사>에까지 그 이미지를 밀어붙였다. 차승원의 입장에서 보면 ‘삼부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코믹한 캐릭터가 짙어질 것이라는 소문과 달리 <선생 김봉두>는 조심스럽게 전환을 모색하는 차승원의 행보가 보인다. 차승원은 결코 화려한 연기 인생을 살아온 노배우가 아니다. 약력을 펼쳐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흔치 않은 출구를 통해 배우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그가 살아온 ‘또 다른 나’, 영화 속 캐릭터를 따라가며 그를 물어본다. “리딩할 때부터 열심이더니 차승원은 갈수록 에너지를 쏟아낸다. 처음 만난 날이었던가. 문어체 대사를 원래 싫어하니까 그냥 쉽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가도 좋다고 했더니 그는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서 시나리오를 고쳐왔다. 고3 수험생처럼 그는 시나리오를 무슨 글씨인지 모를 정도로 새까만 뭉치로 만들어왔다. 그런 그가 요즘은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내놓느라 골몰하고 있다."("<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이 쓴 눈물나는 제작일지". 씨네 21. 361호. 장항준) “제가 워낙 소심해서요, 뭐 그런 거 있잖아요. 제가 관여 안 하면 안 되는 거. 편집실에 가본다든가 포스터를 찍었는데 어떻게 됐나, 이런 거. 개인적으로 바쁜 거죠. 남들은 남는 시간에 쉬면 되지 왜 그러냐 그러는데 제가 못 견디거든요. 거의 뭐 2월 중순까지는 못 쉬었어요. 이제 조금 쉬는 거죠. 근데 쉬는 게 여유롭지가 않아요. 마음은 오히려 찍을 때보다 더 불편하고 안절부절하고.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지 않나요?” 틀린 말이 아니다. 그의 말처럼 모든 배우들이 다 그렇다. <선생 김봉두>의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배우’ 차승원은 모든 배우들이 그렇듯 긴장으로 얼룩진 기다림의 시간을 지내고 있다. “에이 차승원 스토리는 무슨, 설경구 스토리라면 모를까”라고 너스레를 떨긴 했어도, 그는 이제 배우에게 너그러운 휴식이란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은연중에 고백하고 있었다. 만약 차승원이 배우로서의 자의식을 고민하지 않고, “소모품”의 용도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았더라면, 수려한 외모만이 배우의 모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그 말은 정말 우습고 진부하고 가식적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차승원은 이미 많은 고민과 그 안에서의 몇 가지 해답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차승원의 말처럼 그는 이미 한 분야에서 “일등을 해본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등을 해본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도 일등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흔치 않은지는 스스로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보통의 경우들이 그렇잖아요. 그 당시의 이슈가 될 만한 남자들을 끌어다가 잘못된 용도로 쓰죠. 그리고는 얘는 별로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애, 라고 하죠. 그중에 하나였죠. 소모품이 돼버린 많은 사람들의 전철을 밟아왔던 거죠.” 차승원은 그렇게 영화를 시작했고, 또 동일한 이유로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왔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기 싫어한다. 자멸의 시간을 앞당겨 간단하게 폐기처분당할 수도 있었던 궤적을 그는 한마디로 일축한다. “내가 아닌 내가 나오니까 너무 싫었어요. 그건 제가 아니잖아요. 남들에 의해서 그렇게 만들어지고 포장된 거니까.” 그는 99년 말부터 텔레비전 출연을 그만뒀다. 암담했다.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 안에는 다른 사람이 있단 말이지”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여전히 지금도 “그렇게, 그렇게 방송을 해왔을 거고, 흘러갔을”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그 다른 자아를 “꼭 한번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영화의 길이 트인” 것이다. “내가 아닌 나는 너무 싫다” 그러나 그가 “어차피 산업”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처럼, 영화 역시 처음부터 그에게 자신 속의 다른 자아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지는 않았다.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 그의 첫 등장을 기억해보자. 호텔 909호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타난다. 남자는 문 밖에 서 있는 벨보이를 향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없이 느끼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뭐지~?” 차승원이 영화에서 말한 첫 번째 대사다. <홀리데이 인 서울>에서의 차승원은 영화 시작 30분이 지나면 죽어 잊혀지는 인물이었고, ‘완벽한 다리’의 스쳐가는 애인일 뿐이었다. 전직과 외모 탓인지 차승원의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배우로서 그의 용도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저를 보면 고생도 안 하고 나름대로 순탄하게 살아온 것 같다고 얘기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거든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그는 라면회사 사장이라는 지위를 얻어 상류층으로 등장했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약간은 치사한 사장님께서 여배우를 앞에 두고 장황하게 라면광고를 설명하며 하는 말. “너 라면 먹고 싶다!” 대사 속에 드러나는 중의적인 농담이 차승원의 이미지에 처음으로 균열을 낸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인물 역시 스스로의 자평에 의하면 그와는 “일치하는 면이 거의” 없었다. <리베라 메>에서 차승원은 어릴 적 트라우마로 연쇄방화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성 범죄자를 연기했다. “일단 비주얼로 센 걸 하면 50%는 관객에게 흡수가 빠르다는 걸”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인지도 모를 그 역은 새로운 도전인 셈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한번은 그런 걸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장르로 말하면 스릴러가 가장 적당할 것 같다”는 말이 <리베라 메>에서의 희수를 자꾸만 상기시킨다. 그만큼의 아쉬움이 그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오히려 <리베라 메>에서의 연쇄방화범을 맡기까지 차승원에게는 중요한 하나의 성격이 지속적으로 부여된다. ‘바람둥이.’ 영화 <자귀모>에서 그는 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의 일원이 되도록 애인을 내팽개치는 몰염치한 바람둥이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신혼여행>에서는 끝내 그 바람둥이의 최후로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명백하게 이 두 작품 모두 배우 차승원에게는 단 한 걸음의 전진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조각 같은 외모가 이끄는 당연한 부정성으로 휩쓸리고 있었다. <세기말>에서 보여준 그의 모럴 헤저드한 면모가 단순한 방식으로 성격화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다시 돌아가 <세기말>은 차승원에게 무척 중요한 영화로 남는다. <세기말>에서 처음으로 차승원이라는 배우에 대해 묘한 느낌을 받았다는 말에 그는 “<세기말>은 저하고 가까운 부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경우는 그 사람이 충분히 이해가 되겠어요.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못 들어가고, 그래서 욕하고, 그런 게 이해가 돼요”라며 동의를 표시한다. <세기말>에서 차승원이 연기하는 대학강사 부분의 소제목은 ‘모럴 헤저드’였다. 이성복의 시와 루카치의 문장을 비틀어 인용하며 세상을 질타할 줄 아는 지식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낮에 다른 여자와 여관방을 찾아 “영혼을 잃어버리는”, 그리고 그외에도 몇명의 애인을 더 두어 결국 간통죄로 인생을 접어가는 유부남을 연기하며 차승원은 처음으로 입방체의 성격을 드러낸다. 여관방에서 나와 차에 붙어 있는 불법주차 딱지를 떼며 “이런 씨발 새끼들”이라고 욕할 때의 그 대학강사의 무식한 표정과 액션은 영락없이 최기동과 양철곤과 최무석을 연기할 때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차승원을 알게 된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그간 술도 같이 먹고 어울리면서 <신라의 달밤>의 ‘최기동’ 이미지를 많이 봤다. 시나리오를 받아 본 차승원이 ‘이건 날 위해 쓴 시나리오’라는 말을 했는데 조금 오버이긴 해도 차승원의 실제 모습과 굉장히 닮은 인물이다. 기동이로 변신한 게 아니라 자기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편했다. ”("쌈마이?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거다". 씨네 21. 311호, 김상진) “저를 잘 써먹은 거죠. 제가 갖고 있는 부분을. 평상시의 차승원을 써먹은 거예요. 지금도 가끔 얘기하는데, 차승원이 이런 걸 누가 알까, 이런 말들을 하거든요. 저한테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쓴 거죠. 없는 거 자꾸 꺼집어내려는 거 억지잖아요.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게 그런 거예요.” 어떻게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코미디 연기를 하게 된 것 같으냐는 질문에 차승원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을 알아야 그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해서 덧붙였다(차승원을 알 만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지적한 문구와 말들을 여기에 달아놓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신라의 달밤>의 “최기동 같은 경우는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남성상이에요. 왜 고등학교 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언행을 따라 하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그런 유의 남자예요. 그런 남자가 나는 매력이 있어 보이고 굉장히 투박하고 둔탁해 보이지만 또 따뜻한 마음도 있고요.” 깡패 같은 체육선생으로, 더 깡패 같은 짓을 해가면서, 정말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연기하면서 차승원은 기존의 자신이 갖고 있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었다. 촌티나는 체육복 안에 잘 빠진 몸을 숨기고, 공중을 날아 헛발차기를 하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이때부터 차승원은 과장된 코미디 캐릭터 연기라면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섰고,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움을 심어줬다. 최기동의 캐릭터를 영화배우 차승원과 동일시하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신라의 달밤>에서 최기동을 연기하는 차승원의 모습은 <라이터를 켜라>의 양철곤과 <광복절 특사>의 최무석에까지 이르러 숙련된 자기만의 스타일을 세워놓은 것이다. <신라의 달밤>에서 마주친 최기동이 차승원 그 자신에게 또 다른 자신으로의 표출이었다면, 관객에게 최기동은 차승원이 연기하기 때문에 더 놀랍고 새로운 캐릭터였다. 그리고 이어진 양철곤과 최무석은 그 놀라움을 불식시키는 명료한 확인작업이었으며 수긍이었다.

슈퍼히어로 3인방이 온다 - <엑스맨2> [6]

레이디 데쓰스트라이커 Lady Deathstriker 1. Who are you? 글쎄요. 좀 복잡한걸요. 일단 유리코 노리야마라고 해두죠. 스트라이커님을 도와 자비에 사단의 돌연변이들을 제거하는 일을 맡아서, 레이디데쓰스트라이커라고도 불리지만요. 제 이름에서 죽음의 향기가 나지 않나요? 2. What do you have? 울버린이라고 아시죠? 그 녀석을 제 맞수라고 말하긴 자존심 상하지만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어요. 강철 갈퀴가 손에서 나오는데요, 난 손등이 아니라 손끝에서 손톱처럼 그 갈퀴가 뻗어나온답니다. 아시아의 처녀귀신을 연상하시면 되겠네요. 아, 그리고 전 가라테 같은 동양무술도 뛰어나요. 3. What is your goal? 타도! 울버린! 이게 제 존재 이유이자 필생의 목표랍니다. 스트라이커님이 말씀하시길 그 녀석이 제 부모의 원수라더군요. 기필코 제 손으로 없애버릴 거예요. 4. Character vs Cast 아주 좋아요. <동양특급 로형사>에서 홍금보의 동료 형사로 나왔던, 캘리 후가 저를 연기한다더군요. 최근엔 <스콜피온 킹>에서 마법사로 나왔었죠. 아름답고 섹시하고 신비롭고… 사악한 기운도 풍기고. 게다가 가라테 검은 띠라지 뭐예요. 아주 딱이죠. 궁금한 몇 가지 1. 어떤 얘기인가돌연변이 격리 수용 법안의 지지 여론이 높아지는 등 돌연변이에 대한 인간사회의 반감과 혐오는 짙어만 간다. 돌연변이들의 은신처인 엑스 맨션은 그들을 말살하려는 군대들에 포위당하고, 자비에 박사의 수많은 제자들이 피해를 입는다. 반돌연변이 단체의 리더인 대부호 윌리엄 스트라이커는 자비에 박사를 납치, 그의 텔레파시를 이용해 인간과 돌연변이를 식별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혼란을 틈타 감옥에서 탈출한 매그니토는 자비에 박사에게 돌연변이들의 생존을 위해 ‘일단 연대’할 것을 제안한다. 이 와중에도 사랑은 싹튼다. 울버린과 사이클롭스는 진 그레이를 두고 연적관계가 되며, 로그는 동급생인 아이스맨과 사랑에 빠진다. 2. 뭘 보여줄까 <엑스맨2>의 가장 큰 볼거리는 전편에 이어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다. 2편은 1편의 캐릭터 대부분이 재출동할 뿐 아니라 새로운 돌연변이들과 인간 캐릭터들이 등장해 주요 캐릭터만도 10명을 훌쩍 넘긴다. 울버린, 로그, 스톰, 사이클롭스, 진 그레이, 미스틱, 파이로 등이 한층 성숙된 풍모로 돌아오고, 악마의 형상을 한 염력의 소유자 나이크클로러, 손가락에서 강철 갈퀴가 나오는 레이디데쓰스트라이커, 전신이 강철 골격으로 이뤄진 콜로서스 등이 새로이 등장한다. 돌연변이들이 더욱 막강하고 다양해진데 더해 세트 또한 웅장하고 다양하고 세련돼졌다. 1편에서 제대로 보여지지 않았던 돌연변이들의 트레이닝 시설인 데인저 룸은 각종 무기와 훈련 시설, 텔레파시의 극대화를 위한 장비 등을 갖췄으며, 엑스 제트도 은청색의 슬림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보수됐다. 3. 어떻게 만들었을까<엑스맨2>는 속편의 법칙에 따라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빠르게 만들어졌다. 전편이 대중적으로 또 비평적으로 성공을 거둠에 따라 폭스사는 속편의 제작비를 전편의 7500달러에서 1억달러 이상 훌쩍 올려잡았다. 촬영은 대부분 캐나다 밴쿠버에서 진행됐다. 이들이 밴쿠버에 지은 세트는 4만6천m2로, 북미 최대 규모. 스트라이커의 지하기지는 물론 교회 지붕과 지하통로 촬영분을 밴쿠버 세트에서 해결했는데, 이 세트에서 사용한 전선이 100km, 작업에 동원된 목수가 300명, 제작기간이 6개월에 이른다. 영화의 제작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 1편이 돌연변이 캐릭터들의 과도한 재능과 그로 인한 결핍과 내상을 소개했다면 2편은 더 어둡고 거대한, 돌연변이들의 우주와 그들을 둘러싼 또 다른 우주를 선보인다. 이야기의 연속성은 물론 캐릭터의 발전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편보다 러닝타임이 훨씬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4. 만화 vs 영화 <엑스맨2>는 마블코믹스의 <엑스맨> 시리즈 중 1982년 에피소드인 <신은 사랑하고 인간은 죽인다>를 이야기의 기본 뼈대로 삼았다. 정치적 견해 차이로 대립하던 자비에 박사와 매그니토가 사악하고 강력한 인간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윌리엄 스트라이커의 등장으로, 생존을 위협받는다는 기본 스토리와 주요 캐릭터를 그대로 따왔다. 원작 <엑스맨>의 창시자인 스탠 리가 1편에 대해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고 협조적인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편성했다”고 지적했지만, 2편에선 단명한 캐릭터들까지 등장해 매력적으로 부활하니 같은 이유로 또 트집을 잡긴 힘들 것 같다. 정작 원작과 크게 다른 점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근미래 또는 현재의 느낌으로 시대적 공간적 배경을 바꿔놓았다는 것. 이로써 관객은 영화 속 캐릭터를 훨씬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됐다. 5. 감독 가라사대“엑스맨은 어둡고 신랄하다. 그래서인지 스파이더 맨 같은 종전의 슈퍼히어로와 달리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열혈팬들에겐 그들만의 우주가 있지만, 그외 다수의 대중은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엑스맨은 외계인 같은 낯설고 괴기스런 존재다. 그런 현실은 원작을 해석하는 나의 비전에 영향을 끼친다. 그것이 다른 슈퍼히어로와 비교할 수 없는, 엑스맨만의 색다른 매력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클래식 음악과 화해하기,<렛츠 브라보 뮤직>

클래식 음악을 싫어한다고 고백하는 건 쉽지 않다. 무지하고 품위없고 몰상식하다고 매도될까봐 두려워서다. 거짓말을 할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나서서 떠들어댈 생각은 없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고 선언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겉멋들리고 잘난 척하고 위선적인 사람이란 구설수에 오르기 싫기 때문이다. 오페라가 대중예술이던 구소련의 예를 보면, 클래식 음악이 인간의 본성과는 원래 맞지 않는 존재인 것 같지는 않다. 많은 한국인이 클래식에 대해 솔직할 수 없는 것의 원흉은 아무래도 음악 수업인 것 같다. 학교 수업이란 게 다 그렇지만 음악과 미술과 체육 시간은 특히 괴로웠다. 잘 부르고 잘 그리고 잘 달리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늘 그랬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악보를 볼 줄 모르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고, 감상 시간이면 무조건 음악을 틀어주고 졸면 때렸다. 최악은, 모두의 눈과 귀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리코더도 불고 오르간도 쳐야 했던 기말고사였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즐거운 음악과 클래식 음악은, 음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말고는 아무 공통점이 없어 보였다. <렛츠 브라보 뮤직>은 음악 액션게임이다. <비트 매니아>나 <이지 투 디제이> 등 선풍적 인기를 끈 게임들과 다른 점은,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다. 연주자도 아니고 지휘자, 그러니까 그 모든 악을 총괄하는 대마왕 역을 맡아야 한다. 악기 하나 다루기도 벅찬데 이 무슨 재앙인지 모른다. 실제 플레이해보니 걱정했던 것 이상이다. 신경써야 할 게 너무 많다. 우선 주어진 템포에 맞춰 박자대로 정확하게 버튼을 눌러야 한다. 가끔 템포가 바뀌기도 하는데 허둥대면 절대 안 된다. 강약도 신경쓰고 독주 악기에 신호도 해주고, 훌륭한 지휘자가 되기 위한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잘했나 못했나 박자마다 판정이 뜨고 마디별로 점수가 나온다. 한 박자라도 실수하면 냉정하게 ‘좀더 열심히’다. 콘서트를 보러 온 관객도 있다. 아무래도 전부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 출신인 것 같다. 점수가 조금만 떨어지면 야유가 빗발치고, 일정 점수 이하로 떨어지면 콘서트가 중단되어버린다. 음악 시험의 악몽이 사이버 공간에서 재현된다. 가족 모두가 즐기는 게임을 표명했지만 이 게임의 난이도는 결코 낮지 않다. 아무리 음악에 재능이 없다지만 몇 시간이나 매달렸는데도 한곡도 클리어 못했다. 그래도 때려치우지 않고 계속하는 건, 관객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덜 쪽팔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박자대로 꾹꾹 버튼을 누르는 데만 바쁘지만 하다보면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실력없는 지휘자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눈물겨울 정도로 잘 따라준다. 박자를 놓치면 다시 누를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다음 소절로 안 넘어가고 기다린다. 아무리 느리게 가도 졸지 않고, 성급하게 휘둘러도 불평없이 쫓아온다. 어쩌다 실수로 박자를 맞추기라도 하면 흘러나오는 음악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해봤자 또 실패할 걸 뻔히 알면서도 다시 도전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음치들을 괴롭히기 위해 치밀하게 짜여졌던 음악 수업만 아니었다면 클래식 음악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가 되었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쉬웠으면 아니면 이지 모드라도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거란 마음은 여전하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