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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시간을 잊은 사막 위, 14세기를 재현하다

김형구 촬영감독은 국내에서 시대극을 찍는 어려움을 잘 안다. <이재수의 난>이나 <아름다운 시절>을 찍으면서 그는 시간을 거스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아름다운 시절>을 찍을 때는 곳곳에 보이는 전봇대가 말썽이었다. 50년대라는 시대 설정에 어울리지 않는 전봇대를 피하느라 때로는 전봇대를 파서 옮기는 수고도 해야 했다. <이재수의 난>은 더 심했다. 흠집을 낼 수 없는 문화재인 제주의 성곽에서 전투하는 장면을 찍자니 속이 타지 않을 수 없었다. 토성전투장면을 찍을 때 싱청의 <무사> 촬영장을 찾은 박광수 감독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박광수 감독은 중국 미술팀이 만든 토성에 감탄했다. 만약 미술팀이 토성을 지을 수 있었다면 <이재수의 난>의 화면이 달랐을 거라는 아쉬움이다. 시간을 역행할 틈이 없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아직 과거를 품은 땅이 많다. 거기에 중국 미술팀의 노하우가 덧붙여져 14세기의 풍광을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성수 감독은 <무사>를 구상하면서 크게 두 가지 이미지에 사로잡혔다. 하나는 끝없는 모래사막을 가로지르는 고려무사 일행이고 다른 하나는 해안에 자리잡은 작은 토성이다. 사막을 찍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중국 헌팅의 첫째 이유였다. 제작진은 중웨이와 인촨에서 모래사막과 황무지를 찾았고 영화의 전반부는 여기에서 이뤄졌다. 사막 촬영은 섭씨 40도를 넘는 폭염과 싸우면서 진행됐다. 그나마 모래의 반사가 심해 한낮엔 찍어도 모든 사물이 허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막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는 시간은 해가 뜬 직후와 해가 지기 직전뿐. 이 짧은 시간에 한컷이라도 더 건지기 위한 몸부림이 스탭들 사이에 ‘지랄숏’이라고 불린 것이다. 해안토성이 지어질 공간은 6개월간 헌팅한 결과 찾은 장소이다. 미술감독 훠팅샤오가 찾은 이곳은 땅콩밭이 있던 곳으로 제작진은 밭을 갈아엎고 마른 풀을 심어 영화 속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조민환 프로듀서는 중국이 SF영화를 찍기에도 적합한 장소라고 말한다. 시간의 흔적을 말끔히 집어삼키는 사막에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거기에 무엇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과거도 만들 수 있고 미래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 다음엔 중국에서 SF영화를 찍어올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남동철 기자 namdong@hani.co.kr 컴퓨터그래픽 ENO digital films 티없는 CG, 실사 뒤에 숨었다 <무사>에서 컴퓨터그래픽은 양지보다 음지, 스포트라이트보다 암전을 택했다. 김성수 감독이 추구한 ‘사실적 액션’의 컨셉에 맞추어서. 특수효과를 메인으로 삼되, 화살이 눈에 꽂히거나 목을 관통하는 등 실사가 불가능한 장면이나 배우가 연기하기에 안전도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을 경우 등에만 CG를 사용하자는 것이 기본생각이었다. 프롤로그가 끝나고 펼쳐지는 공사중인 난징성은 배경에 그림을 그려넣는 ‘매트 페인팅’ 기법으로 만들어낸 장면이다. <무사>에서 컴퓨터그래픽이 가미된 분량은 8∼10분쯤 된다. 영화의 특성상 주로 액션신에 몰려 있으며, 약 60여컷 정도. Shake After Effect 등 2D 컴포지팅 프로그램과 XSI LIGHTWAVE 등의 3D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묻자 김태훈 실장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와 현장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기로 계획되어 있지 않았다가 후반작업을 하면서 추가로 하게 된 컷들의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예를 들면 후반부에 몽고장수 람불화가 최정과 대결하다 칼을 맞는 장면은 람불화가 옆구리로 끼어드는 칼을 받는 식으로 촬영했는데, 나중에 아무래도 찔린 느낌이 살지않아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컴퓨터그래픽이 예정된 장면은 레퍼런스 촬영(촬영현장에서 사람이나 소품없이 연기하는 장면을 찍는 것)을 한다. 예를 들어 화살이 꽂히는 장면이라면 화살을 따로 찍어두는 것이다. 그래야 현장의 화살 질감과 광량, 빛의 방향 등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미 찍혀 있는 영상을 지우고, 빈 배경을 만들어내야 하는 등 공은 몇배로 더 들고, 완성도는 마음에 안 찬다고. 문제의 장면에선 람불화가 끼어든 칼의 각도와 손의 각도가 달라 애를 먹었다. 그러나 그런 작업도 “카메라 뒤에서 헌신적으로 작업을 도와주신 모든 분들이 함께 수고한 결과물”이라며 현장 스탭들에게 고마움을 꼭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위정훈 기자 ▶ 전인미답의 장관을 꿈꾸다 ▶ 포인트1 - 시네마스코프의 마력 ▶ 포인트2 - 사실적 액션 ▶ 포인트3 - 사지절단의 특수효과 ▶ 포인트4 - 거대한 말떼의 질주 ▶ 포인트5 - 되살아난 중세중국의 풍광

예술이여 아직 살아 있는가, 별은 빛나건만

이탈리아의 저명한 문화평론가 비토리오 지가르디는 베니스영화제 개막식 초청에 응하는 대신 언론과 마주앉았다. 그리고 초대장을 보낸 영화제 집행위원장 알베르토 바르베라의 가슴에 비수를 날렸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죽어간다. 아르테(arte)가 죽어가고 있다.” 비난의 요지는 영화제를 포함한 베니스 비엔날레가 덩치 불리기에만 급급해 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상업화돼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올해 베니스영화제의 외양은 많이 화려해졌다. 메인 행사장인 리도섬에서 공식상영이 끝나면 베니스 시내와 메스트레, 마르게라 등 주변 지역 극장에서 릴레이 상영을 하는 식으로 판을 크게 벌였고, 영화제 주요 행사장의 수와 규모를 늘렸으며 그중 카지노 건물은 영화제쪽이 직접 매입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3년 동안 많은 변화의 노력이 있었고, 그만큼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부한다.” 개막식에서 바르베라가 볼멘 소리로 이런 자화자찬을 한 것은 지가르디를 겨냥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타인들>, 대중적·비평적으로 호평 적어도 지금까지는 베니스영화제가 덩치를 불림으로써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베니스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자긍심은 하늘을 찌를지언정 동네에서 벌어지는 행사에 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일년 내내 이런저런 페스티벌 속에서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은 웬만한 자극제 앞에서는 시큰둥한 얼굴이다. 행사장의 공기는 이런 이유로 연일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또 리도의 행사장은 만원이지만, 시내 릴레이 상영은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현지 취재진과 관객이 상기된 얼굴로 환호를 보내는 것은 할리우드 스타를 대면할 때뿐인 것 같다. <타인들>의 니콜 키드먼이 베니스에 도착해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동안 사진기자로 가득 찬 보트 8대를 따돌렸다거나, <옥전갈의 저주>의 섀를리스 테론이 영국 출신 남자친구와 베니스에 동행했다거나, <트레이닝 데이>의 덴젤 워싱턴이 휴가철에 베니스를 자주 찾아온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신문과 잡지의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 특히 할리우드 스타가 영화제의 꽃이 되는 것은 어디서든 마찬가지지만, 베니스의 경우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영화들을 비경쟁부문에 몰아놓음으로써, 할리우드산 영화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스타들을 출품자 자격으로 초청해 관객을 불러모으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비상업적인 영화들로 꾸린 상업적인 영화제인 셈이다. “베니스는 이제 국제영화제의 주도권을 프랑스 칸으로 넘겨버렸다”는 얘기가 이탈리아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오가고 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를 달구고 있는 또 하나의 이슈는 바로 세계화 논쟁이다. 지난 7월 제노바에서 열린 G8정상회담 당시 반세계화 운동가들의 시위에서 사상자가 발생한 뒤 반세계화 움직임은 점차 가열되고 있으며 영화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이탈리아 감독들이 당시 상황을 기록한 다큐를 제작하고 있고, 영국의 사회파 감독 켄 로치도 영화제 기간 동안 이들에게 지지의 뜻을 전한 바 있다. 이런 움직임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출품작의 상당수가 2개국 이상의 합작품이라는 사실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다국적 또는 무국적의 영화 제작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 즉 영화계에도 세계화의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는 현실 때문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제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지금까지 올 출품작에서 드러난 하나의 경향이라면, 시대극의 풍작과 연극적 표현의 과잉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경쟁부문에서만 <타인들> <에덴> 등 줄잡아 8편이 시대극이고,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랑의 승리> 등이 연극과 섞여 있거나 연극적인 표현을 차용한 작품들. 커다란 화제를 뿌린 작품들은 주로 메인 경쟁부문인 ‘베네치아 58’에 몰려 있다. 그 가운데 대중적으로, 비평적으로 가장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작품이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타인들>이다. 이 작품은 2차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는 스릴러로, <식스 센스>와 유사한 설정이라는 지적을 들을 만하지만, 관객을 시종 긴장시키며 장르적으로 잘 이끌어간 영화라는 호평이 지배적이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중앙역>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바 있는 월터 살레스의 신작 <달의 뒤편에>도 관객으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은 작품. 아버지의 존재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파드레 파드로네>와 비견되지만, 두 집안의 해묵은 반목이 천진한 형제의 삶을 앗아가는 과정을 유려한 영상으로 펼친 이 작품은 관객을 좀더 감성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작품별 평점- <당신은 누구십니까?> 1위 영화제 중반을 기점으로 주간지 에서 발행하는 데일리가 15개 이탈리아 일간지와 잡지에 의뢰한 작품별 평점을 공개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는 포르투갈의 궁정사극 <당신은 누구십니까?>가 폐막 사흘 전까지 1위를 달렸다. 병약한 한 소녀를 통해 16세기 포르투갈의 왕정사를 짚어보는 작품으로, 의도적인 연극적 연출이 특징적이다. 철도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켄 로치의 신작 <네비게이터>도 감독의 대표작 반열에 오를 만하지는 않지만, 그런 대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리푸블리카>는 “노동자 계급을 다루는 감독으로서의 치열함과 부드러운 애정, 그리고 솔직함이 돋보인다”고 호평했다. ‘값진 발견’으로 꼽을 만한 작품도 있다. 서로 상처를 주고 또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독과 절망을 차갑게 담아낸 오스트리아영화 <한여름>, 투표날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란사회의 여러 단면을 투사해내고 있는 <비밀 투표>는 극의 완성도와 재미가 높아 많은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비포 선라이즈>의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결합시켜 만든 <웨이킹 라이프>는 호평과 혹평이 크게 엇갈리는 대표적인 경우다. 반면 애초 기대를 모았던 거장들, 아모스 기타이, 앙드레 테시네, 베르너 헤어초크가 신작의 봉인을 뜯자 관객과 평단 모두 실망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편 데일리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김기덕 감독의 <수취인 불명>은 15개 작품이 공개된 시점에서 5위에 랭크돼 있다. 매체별로 내놓은 점수의 편차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적은 편으로, 찬반이 엇갈리는 대신 고른 지지를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경쟁부문 ‘오늘의 영화’에서 상영된 송일곤 감독의 <꽃섬>은 ‘견고한 구성의 영화’라는 조용하지만 견고한 평가를 받았다. 박은영 기자 cinepark@hani.co.kr ▶ 제58회 베니스 영화제 ▶ 송일곤 <꽃섬> 현지반응 ▶ 유세프 샤인의 <조용히... 지금은 촬영중>과 스즈키 세이준의 <피스톨 오페라> ▶ <조용히...> 감독 유세프 샤인 인터뷰 ▶ <피스톨 오페라> 감독 스즈키 세이준 인터뷰 ▶ <타인들>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인터뷰

거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젊어질 뿐이다

영화제의 절반 이상이 흘러가도록 베니스에는 입성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동정 이외에는 특별한 이슈나 화제가 없었다. 이 와중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면, 이번 베니스영화제가 거장들의 컴백무대를 제공했다는 사실. 올 베니스영화제는 동서양의 현대영화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명의 ‘마에스트로’에게 특별한 오마주를 바치고 있다. 일본의 스즈키 세이준, 이집트의 유세프 샤인, 그리고 포르투갈의 마뇰 드 올리베이라가 그들이다. 이들은 각기 자신들의 신작을 들고 베니스를 찾아왔고, 족히 3세대와 5개 대륙을 아우를 법한 너른 관객 앞에 그들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재미있는 아이러니는 중견 또는 신진감독들이 그닥 새로울 것 없는 작품들을 내놓는 반면, 평균 연령 75살이 넘는 이들의 신작은 도전과 실험의 의욕과 에너지로 충만하다는 사실이다. 우러르며 비결을 묻는 후배들 앞에서도 이들은 폼을 잡지 않았다. 셋 중 막내뻘인 일흔넷의 유세프 샤인은 작품 속 대사를 통해 이렇게 둘러댔다. “일흔 넘은 사람들의 말은 무조건 옳다. 그건 일종의 권리다.” 일흔여덟살의 스즈키 세이준은 이렇게 받아쳤다. “무슨 거창한 의미나 명분은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뿐이다.” 남미에서 돌아온 여든줄의 마뇰 드 올리베이라는 한술 더 떴다. “난 벌써 다음 작품에 들어갈 준비를 다 끝냈다. 생각만 해도 신바람이 난다.” 결코 ‘마지막’을 말하지 않는 이들의 열정과 저력에 베니스의 관객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스즈키 세이준, 반갑지만 다소 실망스런 지난해 베니스 경쟁부문, 올 칸 경쟁부문, 그리고 올 베니스 비경쟁부문에 지속적으로 출품하면서 반년에 한편꼴로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보이고 있는 마뇰 드 올리베이라 감독은 너무 자주 영화제에 드나든 때문인지 관심권 밖으로 약간 밀려난 반면,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은 스즈키 세이준과 유세프 샤인을 향한 취재진과 현지 관객의 관심은 뜨거웠다. 67년작 <살인의 낙인>의 리메이크 <피스톨 오페라>를 들고온 스즈키 세이준은 가장 많은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안겨준 감독. 스즈키 세이준은 <도쿄 방랑자> <치고이네르바이젠> 등 독특한 스타일의 B급영화로 일본 대중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은 장본인이다. 서구에서는 90년대 이후 로테르담 등의 영화제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그의 작품이 오우삼, 짐 자무시, 쿠엔틴 타란티노 등이 즐겨 만드는 펄프 액션물의 원조라는 정보 때문에 뒤늦게 더욱 유명해졌다. <피스톨 오페라>는 ‘넘버1’이 되고 싶어하는 킬러의 이야기 <살인의 낙인>의 여성버전으로,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이 작품을 “<니키타>와 <레옹>을 연상시킨다”고 소개하기도 했지만, 여성킬러(전사)가 등장한다는 점말고는 언급된 작품과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미유키는 킬러 조합에서 공인한 ‘넘버3’ 킬러. ‘넘버4’의 급습을 받고 그를 죽이는데, 그 현장을 목격한 소녀 사요코까지 죽이지는 못한다. ‘넘버1’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조합원들 사이에 혈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미유키는 자신을 따르는 사요코가 킬러가 되길 원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워한다. 과연 ‘넘버1’은 누구일까, 존재하긴 하는 걸까,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들이 그녀를 괴롭힌다. <피스톨 오페라>는 오리지널인 <살인의 낙인>처럼 기이하고 강렬한 이미지로 말을 거는 영화지만, 연극과 무용, 가부키 등의 형식을 차용하고, 현란한 컬러와 조악한 컴퓨터그래픽까지 동원해 인공미의 극한을 향해 한층 더 과격해진 형식실험을 보여준다. <피스톨 오페라>를 상영하는 극장 앞에는 관객이 줄을 이었고, 일부는 입장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등 큰 성황을 이뤘지만, 결국 상영 도중 가장 많은 관객이 빠져나간 영화 중 하나가 됐다. 영화의 이미지와 화법이 낯설고 거북했던 탓이다. 과거의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설정과 일본적인 것을 상품화하는 데 대한 반감도 작용한 듯. 그러나 베니스에서 만난 일본 영화인들의 반응은 거의 열광적이었다. <키네마순보>의 평론가 사이토 아쓰코는 이 작품에 대해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여전히 혁신적이다. 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고 평했다. “그는 많이 늙었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관심이 없다. 그저 영화를 만드는 데 의미를 두고 또 그걸 즐기고 있다. 감독을 좋아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그가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는 게 놀랍고 반갑다.” 유세프 샤인, 국가대표급 유쾌함 유난히 유쾌한 영화를 좋아하는 이탈리아 관객의 각별한 호응을 얻은 <조용히… 지금은 촬영중>의 유세프 샤인은 제3세계의 대표적인 감독. 79년작 <알렉산드리아… 왜?>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면서 이목을 끌었지만, 그전부터 고국 이집트에 대한 애정을 품고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상업영화의 관습을 따라 관객이 쉽게 이해하고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이번 작품 역시 코미디와 뮤지컬을 결합한 독특한 드라마 속에 황금만능주의에 젖은 이집트사회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가수 겸 배우 말락은 결혼에 실패한 뒤에도 사랑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때 말락의 후광을 입고 출세하려는 국가대표급 바람둥이 라메이가 접근하고, 말락은 자신의 커리어를 망쳐가면서 라메이에게 빠져든다. 말락의 동료들은 라메이의 본색을 드러내기 위해 그에게 말락의 딸을 접근시키기로 한다. 말락은 라메이의 정체를 똑바로 보게 되고, 안정을 되찾아 춤과 노래와 연기에 복귀한다. 1940년대와 50년대 미국 코미디와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인물과 상황 설정이 다소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독특한 생기와 유머가 넘친다. 영화(공연)와 현실의 경계를 풀어놓고, 코미디와 뮤지컬과 드라마의 장르를 뒤섞는 이음새는 과연 45년 경력의 영화거장다운 솜씨다. “이건 러브스토리다. 예술가와 야심가의 위험한 사랑에 관한 얘기다. 하지만 예술가와 정치가들에게 일깨워주고 싶은 진리 한 토막을 감추고 있다. 일단 갈 길을 결정하면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스즈키 세이준은 “이해할 수 없는 영화만 만든다”며 소속 스튜디오에서 해고당하는 계기가 된 바로 그 작품을 리메이크했고, 유세프 샤인은 정치적인 갈등으로 오래 전에 등진 조국 이집트의 정서와 문화를 담은 또 한편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공교롭게도 한 자리에서 만난 이들 두 작품은 40년 가까이 그들을 지탱해온 예술혼, 그 고집과 열정의 결정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은영 기자 cinepark@hani.co.kr ▶ 제58회 베니스 영화제 ▶ 송일곤 <꽃섬> 현지반응 ▶ 유세프 샤인의 <조용히... 지금은 촬영중>과 스즈키 세이준의 <피스톨 오페라> ▶ <조용히...> 감독 유세프 샤인 인터뷰 ▶ <피스톨 오페라> 감독 스즈키 세이준 인터뷰 ▶ <타인들>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인터뷰

[충무로는 통화중] 싸움은 오래 지속된다

홍기선의 두 번째 영화 <선택>이 과연 시장의 간택을 받는 데 성공할 것인가? 지난해 영화진흥위원회의 극영화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돼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이후 10년 만에 홍기선 감독에게 연출할 기회를 제공한 영화 <선택>이 오는 9월20일경 첫 촬영을 준비중이다. 45년간 장기수로 복역하다 북송된 김선명씨의 삶을 다룬 이 영화는 그간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은 작품. 몇개월간 투자자를 찾아다니던 <선택>은 올해 5월경 조재현씨가 출연의사를 밝히고 씨네월드가 제작을 맡겠다고 나서면서 좌초될 위기에서 벗어났다. 곧이어 김갑수씨도 출연의사를 밝혔고 촬영은 <파업전야> <코르셋> 등을 찍은 오종옥 기사가 맡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씨네월드에서 확보했던 투자자가 말을 바꾸는 바람에 <선택>은 다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9월20일 첫 촬영을 목표로 삼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프로덕션을 마칠 만한 제작비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선택>의 전체 제작비는 10억원 규모. 이중 영진위에서 3억7천만원을 지원받았고 1억3천만원은 네티즌 펀드인 엔터스닥에서 공모를 통해 확보할 예정. 남은 제작비 5억원이 문제인데 하루빨리 투자자를 구해야 할 입장이다. 홍기선 감독은 “투자자와 이야기를 진행중이지만 더이상 촬영을 미룰 수 없어 일단 촬영에 들어간다. 본격적인 촬영은 12월부터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일단 마케팅과 배급은 씨네월드에서 계속 진행하기로 했으나 제작비 조달은 촬영과 병행해야 할 상황. 엔터테인먼트 일변도의 영화시장과 벌이는 홍기선 감독의 싸움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남동철

드디어, `눈부신` 봄날이 왔다

<봄날은 간다>는 그냥 예쁜 멜로드라마인가? 예술가의 개성적 스타일이 담긴 작가영화인가? 지난 9월13일 기자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봄날은 간다>가 던진 질문이다. 때는 전자의 견해가 많았으나 <봄날은 간다>까지 나온 뒤엔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허진호 감독이 평단의 외면을 받기 쉬운 멜로드라마라는 장르에서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시사회 반응은 대체로 좋다. 올 초 유행했던 최루성 멜로물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끄는 정서적 힘이 대단하다는 평이 주류를 이룬다. 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9월28일 개봉하는 이 영화가 추석 시즌 극장가를 평정하리라는 성급한 예상도 나오고 있다. 최근 개봉한 <무사>가 미국 테러사건의 영향으로 고전하고 있는 제작사 싸이더스는 <봄날은 간다>에 대한 호평에 다소 고무된 분위기.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소감도 있다. 일부에선 “이영애의 캐릭터가 납득이 안 간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설정이 식상하다”, “상업성과 타협한 흔적이 눈에 띈다” 등 몇 가지 아쉬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첫 영화 에서 보여줬듯 허진호는 카메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차곡차곡 담아낸다. 사운드 엔지니어인 청년 유지태가 녹음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지방방송사 아나운서 이영애를 만나 교감하는 과정은 평범한 사람들의 연애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자연스레 가까워진 둘의 관계를 쳐다보는 시선 그대로 헤어짐의 과정도 바라본다. 소란스런 극적 갈등이나 가혹한 운명의 소용돌이를 그리지 않는데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건 그 안에 들어 있는 연인의 모습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것이기 때문. 유지태가 보여주는 여리고 맑은 젊은이의 표정은 여성관객의 기대에 어울리는 것이며 이영애 역시 그런 청년의 마음을 빼앗을 만한 매력을 드러낸다. 허진호는 남녀의 마음만을 담아내는 걸로 만족하지는 않는다. 그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등장시켜 사랑이라는 감정에 시간의 깊이를 새겨넣는 한편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잎새와 눈내리는 산사와 더운 여름날의 나무그늘 같은 공간을 통해 삶의 눈부신 한순간을 붙잡으려 한다. 시간과 공간을 매만지는 감독의 손길이 <봄날은 간다>를 ‘잘 만든 상업영화’라는 카테고리에만 가둬둘 수 없게 한다. <봄날은 간다>는 멜로드라마이자 성장영화이며 오즈 야스지로와 허우샤오시엔의 호흡이 느껴지는 상실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봄날은 간다>는 국내 영화로는 처음으로 사전기획 단계부터 일본, 홍콩의 자본을 유치한 공동투자작품이기도 하다. 일본의 쇼치쿠, 홍콩의 어플로즈가 싸이더스의 파트너로 아시아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도 관심거리다. 남동철

“변사 비판하는 평 썼다 집단항의 들었지”

조선배우학교를 열심히 했습니다. 선생들도 재능이 있고 했지만 학생들은 자기를 포기하는 정도였죠. 그래 내 생각에 하루라도 빨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박승필(단성사 사장. 한국인 최초의 극장 경영인- 필자)씨가 나한테 제안을 했어요. 배우학교와 단성사가 합작을 하자는 겝니다. ‘배우학교측에서 배우, 의상, 소도구, 각본, 감독을 맡고 기술에 대한 책임, 자제, 진행비는 단성사에서 맡겠다’ 하는데, 이게 절호의 찬스란 말이에요. 명실공히 배우학교로서의 바탕이 있으니 어서 제작하잔 말이야. 그런데 이제 승필씨 생각은 좀 달라요. 아직 이르단 말이야. 한 이삼년 가르쳐가지고 만들자는 거지. 그래 내가 ‘그런 말씀하지 마시오. 실수를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거란 말이오. 먼저 실천 의욕을 주어야지. 지금 이 사람들의 정열을 본다면 주연하고도 남아. 그러니 시킵시다’ 했지. 그래 그런 식으로 나하고 왈가왈부하다가 승필씨가 결국 ‘그럼 하자’ 했죠. 공중을 나는 장면 찍고 싶었지만… 이게 25년도입니다. 그래 박승필씨는 <심청전>을 하자고 그래요. 나도 <심청전>을 하자고 했죠. 그런데 윤백남 프로덕션에서도 <심청전>을 한다는 겝니다. 이경손 감독에다 김조성이가 변사를 보고 나운규가 나오고…. 안 되겠다 싶어서 박승필씨에게 이야기해서 판권 등록을 했습니다. 이게 최초죠. 그래 이렇게 옥신각신 하는데 단성사에서 꼭 그것만 해야 되겠느냐 말이지, 아무거나 빨리 하자는 겝니다. 그래서 현철씨가 <숙영낭자전>을 제안하게 됐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차라리 <전우치전> 같은 거, 공중을 떠서 날아다니게 하고 좀 예술적으로 특별한 것이 좋겠다 싶었는데 기술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숙영낭자전>으로 떨어졌죠. 단성사하고 이익배분 얘기에 들어갔는데, 단성사에서는 3:7로 3부를 배우학교로 하자고 그랬죠. 현철씨가 천길만길을 뛰는 겝니다. “딱 까놓고 단성사에서는 돈만 냈다 뿐이지 우리가 전부 다 한 게 아니냐?” 이런 말이야. 여기에서 충돌이 났습니다. “여보, 이거 합시다. 3:7이라도 해놓으면 2회전, 3회전 커지면서 학교도 살고, 한국영화도 건설될 게 아니오. 이런 좋은 찬스를 놓칠 거요?” 나는 그랬습니다. 결국 단성사에서는, 현철이란 사람 알고보니까 이거 안 되겠다는 말이야. 구영이만 나와 놓으란 말이야. 그래 하니까 현철씨가 나하고는 완전히 의를 상하고 둘은 쪼개져버렸지. 쫙 그냥! 그러니까 배우학교도 그치게 된 거지. 결국에는 <숙영낭자전>도 무산이 됐습니다. 자존심에 그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제 훈정동에 촬영소를 만들었어요. ‘고려영화제작소’요. 필우(이필우, 지난호에 다룬 바 있다- 필자)하고 이걸 만들고 이제 시나리오는 내가 주로 집필을 하는데, 거기서 만든 것이 <쌍옥루>입니다. 그해가 을축년(1925년)입니다. 필우하고 나하고 자꾸 의견 충돌이 돼서 시나리오 쓰는 데 거진 한달을 잡아먹었습니다. 필우는 카메라맨으로서 주장을 하지만 나는 작가로서 주장하는 것이었으므로 결국은 내 주장대로 시나리오가 됐고, 그때 그 시나리오 가지고 그냥 연출도 했습니다. 여기에 상당히 긴 얘기가 많습니다. 특히 주인공 맡은 김택윤이하고 대결한 게 많습니다. 하나 말씀드리자면, 애초에 김택윤이하고 한달에 개런티 50원을 정했습니다. 최초로 개런티를 매긴 거죠. 그런데 장마가 있어 영화촬영이 한달을 넘게 됐어요. 그러니까 김택윤이가 개런티 100원 더 내라는 겁니다. 우리가 고의로 안 찍은 것도 아니고 불가항력으로 이래 됐으니 타협을 하자고 했죠. 그런데 결렬됐어요. 그러자 김택윤이가 필름을 가져가버렸어요. 거진 촬영이 끝나갈 무렵인데, 보니까 없어진 게 김택윤이가 나오는 장면들이더라고. 결국은 싸우고 찾아냈죠, 필름을. 참, 인간적으로 뭐라 할 것도 없고…. 우리는 그냥 그러고 말았는데, 그 반동으로 김택윤이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너만 만드냐’ 하는 식의 오기였죠. 그게 <흑과 백>(1927년)이라는 영화입니다. 나중에 우미관에 올렸죠. 카메라 하나가 촬영소 하나 그리고 그해 말에 내가 단성사에 입사를 했습니다. 단성사의 선전국장이 되면서 눌러앉은 것이 되겠죠. 그때 한국사람이 하는 극장이 몇 군데밖에는 없고, 전부 일본사람이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영화의 애로라는 것이, 뭐 터가 있어야 영화가 사는 것이죠. 만드는 것, 이게 장한 게 아니고 어떻게 육성하느냐 그건데, 육성할 수도 없었고…. 단성사 있을 때 내가 문단에 계신 분들하고 대개 다 가까웠어요. 그러다 춘원 이광수 선생도 알게 된 건데 한번은 이 양반이 조선영화계를 살리자면서, 좋은 카메라가 왔는데 이것을 놓치지 말고 꼭 사라는 말이야. 그래 내가 구경을 좀 해도 되겠냐고, 카메라를 봤습니다. 보니까, 현대영화의 카메라다운 모습이 나오고 좋아요. 1901년제로 샌프란시스코 제작인데 공장 이름은 ‘윌리아드’죠. 구라파에서 뉴스촬영을 하고 오다가 여기까지 떨어진 거라고 하더군요. 이것을 사야 되겠는데, 얼마나 하면 되겠냐고 물었더니 천백원인데 더이상 깎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 길로 내가 단성사로 급히 갔습니다. 이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란 말이야. 그래서 그 카메라를 사게 됐죠. <낙화유수>(1927년작- 필자)가 그 카메라로 된 겁니다. 그거 사진을 보세요. 아닌게아니라, 화면이 상당히 밝았죠? 렌즈가 좋고 하니까…. 그런데 여기에 한국 최초의 주제가가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영화주제가라는 것이 그게 최초입니다(이 영화 이후로 <풍운아> <춘희> <승방비곡> 등에서도 주제가가 만들어졌다- 필자). 이정숙이라고 내 누이가 있는데 우리나라 동요는 얘가 혼자 다 불렀어요. 얘가 그때 극장 꼭대기에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차지(charge)가 그때 돈으로 10원입니다. 작곡은 김영환이가 했고 가사는 아주 저속합니다(‘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어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밤을 홀로 세울까’ 주제가 <강남달>의 가사- 필자) 어쨌든 그 카메라 때문에 한국영화가 훨씬 쉬워졌죠. 우리는 그때 카메라 한대 있으면 막 이야기해서 촬영소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화가 하나 생기는 거예요. 카메라 한대면 재산이라 말이죠. 그걸로 내가 <승방비곡>도 찍었습니다. 29년에 동양영화주식회사에서 찍었는데 그거는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돈으로 8천원 들었습니다. 사장 양정환이 남의 자본을 끌어온 거죠. 그런데 그게 이자가 많이 붙어 파산지경이 됐습니다. 게다가 소요산 로케이션을 잡았는데, 비가 2주일 연달아 오는 바람에 영화가 제대로 못 나왔죠. 그 바람에 회사가 문을 닫게 됐습니다. 영화배급도 끊어지고, 또 우리는 월급도 한푼 못 받았었어요. 월급은 다른 사람이 갚아주기로 했죠. 지금은 납북되어 갔지만, 그때 <매일신보> 사회부장이던 정인익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영화사를 인수했습니다. 이게 30년 됐을 땐데, 그 사람에게 월급을 찾았죠. 그래 우여곡절 끝에 촬영하고 완성해서 그해 3월인가 4월에 단성사에서 개봉을 했죠. <금붕어> 관객에게 금붕어 선물 이제 내 영화 얘기는 그만하고 단성사 있을 때 일들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초기의 선전이라는 것은 광고지를 뿌리는 것으로서 16절지를 3천장 박았습니다. 특별상영 때라고 하면 8절 3천장이고. 닷새에 한번씩은 영화가 갈렸으니 포스터라고 하는 것은 거의 없었고, 만들 필요도 없었죠. 으레 선전하는 게 ‘마찌마와리’라고 해서 악대를 선두로 해서 기(旗)를 들고 브라스 밴드에 맞추어서 서울 시내를 한번씩 도는 게 있는데, 네 시간 동안 서울을 돌아요. 이때 기라고 하는 것은 그 극장의 기가 두개, 앞장을 섭니다. 그리고 이제 걸리는 영화, 그것이 네댓장 정도 됐죠. 그렇게 했고. 또 20행에서 25행 정도의 광고를 매일매일 신문에 내줍니다. 한달에 광고료가 5원. 참 쌌죠. 또 다음에 중요한 것은 간판입니다. 간판이 대개 다섯장 내지 여섯장입니다. 극장 전면에 걸리는데, 한개에 2원 50전입니다. 그리고 이제 프로그램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프로그램에는 최초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영화 제명, 해설을 누가 한다, 이것뿐이었지. 그나마 64절로 1500장 박았습니다. 광고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죠. 그래서 내가 단성사에 입사하고 첫 번 계획한 것이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 이게 광고지도 아니고 그냥 영화 타이틀만 떡 적어놓고 변사, 거기 해설 누구 한다는 이거밖에는 없으니 벌써 무엇을 상영하는지 손님이 아는 이상에는 주나 마나죠. 그러니 무엇인가 손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즉 영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의미에서 좀 필요하다 해서 내가 계획한 거죠. 그래 내가 32절을 반 접어서 64절을 해서, 펴면 그게 16절이 되는 것으로 만들어서 그 위에다 이제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영화 캐스트, 감독은 물론이고 간단한 스토리, 그리고 밑에 다음에는 뭘 한다고 하는 예고 정도를 적어 출발했죠. 그것이 최초의 개혁이었는데 한 1년 가다보니 암만 해도 욕구불만입니다. 그래 이제 프로그램을 확장해서 8절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조선극장과 경쟁이 붙으면서 그걸 30페이지까지 만들었어요. 거기는 외국영화와 국산영화의 움직임, 또 해설 시간도 몇분 동안 몇번 한다는 것을 통째로 집어넣고, 그리고 어떤 비판을 좀 썼어요(이구영은 한국 최초의 영화평론가라고 할 수 있다- 필자). 내가 변사의 해설이 진부하다고 몹시 한번 친 일이 있는데 그때 서울 시내 변사 한 10여명이 와가지고는 항의문을 제출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금붕어>(1927년작)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을 적에, 극장에서는 선전물을 줄이려고 했지만 나는 무엇인가 이색적인 광고를 해서 손님을 더 끌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죠. 그래서 신문광고에 <금붕어>를 구경오시는 분에게는 금붕어를 세 마리씩 그냥 거저 드린다는 광고를 냈었어요. 그것이 주효해가지고 히트했죠. 이게 나운규 영화였는데, 이 다음에 <아리랑> 얘기를 하도록 하죠. 이게 사건이었습니다. 정리 최예정/이영일출판프로젝트 연구원 shoooong@netian.com 이 기록은 고 이영일 선생이 남긴 귀중한 자료인 원로영화인 녹취테이프를 소장 영화학도들이 풀어 정리한 것입니다.

신이 원하는 것(What God Wants)

1990년의 걸프전 이후 상식이 되었지만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 테러, 지진 등의 대재앙들은 ‘텔리바이즈’되고 있다. 사전적으로 따지면 ‘원거리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처참한 장면들이 월드컵 축구 결승전이나 프로권투 세계 타이틀 매치처럼 ‘스펙터클’로 다가온다. 그래서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 너무 불쌍하다”라는 인지상정이 들기 전 “비행기가 들이박았다고 해도 어떻게 거대한 빌딩 전체가 1시간 정도 만에 폭삭 무너져내릴 수 있을까?”라는 과학적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TV는 이런 의문을 전문가의 해설로 해결해준다. “누가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도 “어떻게 저렇게 치밀하게 작전을 짰을까”라는 질문에 밀려버린다. TV는 나의 신이고, 신 앞에서 나는 무력하다. 이런 현상은 글 쓰는 사람의 인성이 단정치 못한 탓도 있겠지만, TV가 그렇게 ‘만든’ 면도 적지 않다. 내가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고 참여하는 자격은 ‘시청자로서’ 이외에는 없다. 사건의 원인과 책임을 따지는 일은 시청자의 몫이 아니다. 혹시 한국인의 유구한 전통인 ‘구경의 문화’가 작용해서 정도가 더 심한지도 모른다(참고서적: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1>). 어쨌든 TV 시청이란 ‘강건너 불구경’ 이상이 아니고, 원거리에 있으니 발을 동동 구를 일도 없다. 게다가 구경은 혼자 할 때보다 여럿이 할 때가 더 재미있는 법. 그래봤자 <다이 하드> <에어포스 원> <비상계엄> 같은 영화를 들먹이면서 “영화랑 똑같네”, “아냐, 영화보다 더해”, “브루스 윌리스는 뭐하고 있어”, “해리슨 포드가 대통령 하지”라면서 ‘수다’를 떠는 게 고작이지만(이런 걸 신문기사랍시고 쓴 것도 여럿 보았다). “미국도 한번 당해봐야 정신차린다”, “테러영화로 떼돈 벌더니 자업자득이다”라는 반응도 있지만 평생을 반미운동에 바칠 사람이 아닌 이상 ‘객기’에 지나지 않는다. 중립적 입장을 취하면서 “역사는 바보들을 위한 것이고, 게르만인은 유대인을 죽이고, 유대인은 아랍인을 죽이고, 아랍인은 인질들을 죽이고, 그리고 바로 이런 것들이 오늘날의 뉴스다”라는 노래가사를 인용하는 것도 괜히 심오한 척하는 것일 뿐이다. ‘문명의 충돌’ 어쩌고 하면서 철지난 담론을 들먹이는 일은 ‘이보다 더 한가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할 짓이다. “무구한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를 위해 혹은 자신의 나라 때문에 죽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정부통치(government)를 중단하라”는 어떤 아나키스트 그룹의 성명서도 지금으로서는 양비론으로만 들린다. 언젠가 했던 말이지만 ‘세상에는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도 나는 심심하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사촌 이내의 친지와 절친한 친구의 안전만 확인되면, 사해동포주의란 교과서에나 나오는 이야기이고 값싼 동정심만 잠시 요동칠 뿐이다. TV를 켜놓은 동안만.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일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지 세계평화에 대한 갈망과는 거리가 멀다. ‘이번 사건으로 세계경제와 국제정치가 혼란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도 마찬가지다. ‘과연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은 ‘나는 어떻게 될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답은? ‘God Knows!’다. 미국 대통령은 TV에 등장하여 신과 성경을 들먹이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응징하겠다”고 말했다. 슈퍼테러를 감행한 세력도 ‘알라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을 것이다. 그런 게 ‘신이 원하는 것’? 어쨌든 이 글이 나올 때쯤이면 한쪽의 신의 뜻을 따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미국의 적들을 ‘응징’한 다음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신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줄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테러리스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라는 점이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떤 신도 아무 말이 없다. TV에 의해 테러 용의자로 ‘만들어진’ 오사마 빈 라덴의 모습이 잠시 나왔지만, 우리는 ‘말’보다는 ‘외모’에 신경이 쓰이도록 길들여져 있다. 결국 나는 TV라는 신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신의 사제들에 대한 나의 바람도 소박하고 째째한 것이다. 다름 아니라 웬만한 동네에서는 유선 TV로 을 볼 수 있으니 어설픈 동시통역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영어 못하는 국민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겠지만 영어도 한국어도 둘 다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신의 계시를 저렇게 망쳐놓으면 되겠는가. 이 글의 제목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출신의 로저 워터스(Roger Waters)가 1992년에 발표한 솔로 앨범 에 수록된 곡의 제목 를 번역한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가사도 여기 실린 라는 곡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신현준/ 방송 에세이스트 http://homey.wo.to

가족은 없다 (2)

토드 솔론즈 ‘표’ 영화를 만들다 토드 솔론즈의 독설은 특이한 인물군상의 상황이나 대사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영화에는 자주 정신박약이나 저능아, 호모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에게조차도 감독은 연민의 시선을 거둔다. <인형의 집으로…>를 원래 <호모와 백치들>(Fagots & Retards)로 하려 했다는 감독의 의도에서도 배어나오듯, 그는 뉴저지의 지형도로 대표되는 미국 중산층의 삶을 영혼이 휘발되고 물질주의에 휘둘려 행복이라는 선물을 발로 차버리는 백치의 장소로 제안한다(이러한 측면에서 <인형의 집으로…>의 주인공 이름이 돈 즉 ‘Dawn’인 것도 다운 신드롬의 정신박약을 연상키지 않는가?). 이곳에서는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정체성 상실로 비틀거리고, 아이들은 조숙한 어른처럼 행동하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 늘 삼형제가 부모 사랑으로 티격태격하고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우아한 저녁 식탁이 등장하는 토드 솔론즈의 영화들은 그러나 늘 직장과 집안 곳곳에 들이닥친 칸막이들처럼 사랑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비밀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정서를 은밀히 타인에게 전달하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번번이 호기심과 동정이라는 칸막이 속에 다시 저당잡힌다. 영화 형식적으로도 토드 솔론즈의 주제와 대사는 송곳니처럼 날카로운데도 그의 카메라는 개개의 셧들을 충돌시켜 여분의 의미를 자아내려 하는 법이 없어서 역설적으로 더 따끔하다. 나란히 두 인물을 한 화면에 잡은 투숏 위주의 미니멀한 화면들은 역설의 위선과 거짓의 정다움을 표지하면서 기존의 영화언어를 끊임없이 배반해 나가는 것이다. 그는 이제 쿠엔틴 타란티노와는 완전히 정반대 방식으로 뉴욕과 뉴욕대를 경유하여 미국 내에서 어떤 문화적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다. 40을 훌쩍 넘긴 나이에 세 번째 영화를 만드는 통에 토드 솔론즈는 아직도 젊은 감독의 이미지를 뿌리고 다니지만, 노아 바움바우와 캐시 레먼즈, 브라더 휴 등의 젊은 독립영화 기수들과의 경쟁에서 벗어나 이미 토드 솔론즈 ‘표’라는 확실한 작법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존 말코비치 되기>의 스파이크 존즈와 <쓰리 킹즈>의 데이비드 러셀, 혹은 <매그놀리아>의 폴 토머스 앤더슨. 의 브라이언 싱어의 아메리칸 뉴웨이브군의 감독과도 한데 묶이지 않는다. 두껍게 돌아가는 거북이 등 같은 안경, 더벅머리에 청바지 바람의 하릴없는 뉴욕의 예술가 스타일인 그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결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는 <해피니스>의 극단적인 내용 때문에 유니버설사가 미국 내 배급을 거절하자, 아예 ‘굿 머신’이라는 자체 배급회사를 차려 미국 내 배급을 독자적으로 감행하는 배짱을 보여주기도 했다). <스토리 텔링>, 전작의 상처에 다시 칼을 꽂다 금번 칸에서 선보인 그의 네 번째 작품 <스토리 텔링>은 크게 ‘픽션’과 ‘논픽션’으로 나뉜다. 1부인 픽션에서는 한 금발의 여학생이 퓰리처 수상자이자 흑인인 남자교수와의 지난 밤을 작문으로 그대로 옮겨 써서 수업시간에 발표한다. ‘깜둥이가 백인여자와 섹스한다’를 밤새 외쳐야 했던 여학생은 있는 그대로 일어난 일을 썼다고 강변하지만, 정작 흑인 교수는 그것이 쓰여졌을 때는 이미 픽션이라며 자신의 위선적인 행동을 변호하고,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솔론즈는 이미 하나의 슬로건이나 클리셰로 전락한 미국의 가치들- 장애인, 여성, 유색인종에 대한 입에 발리고 상투적인 논의들의 허물을 벗기면서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야기의 얄팍함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2부의 ‘논픽션’은 그간 토드 솔론즈 표를 충실히 모방해왔던 <아메리칸 뷰티>에 대한 적나라한 조롱인 동시에, 중산층 3부작의 매듭을 짓는 완결편이기도 하다. 그는 여기에서 <아메리칸 뷰티>의 비닐봉지가 바람에 흩날리는 장면을 그대로 차용해, 주인공의 ‘띨한’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그것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나를 희화화한다. 그러나 <아메리칸 뷰티>에서와 달리 <논픽션>에서 비닐은 비닐일 뿐이다. 토드 솔론즈는 마치 <인형의 집으로…>의 주인공 돈이 청년으로 탈바꿈해버린 이야기를 ‘동정없는 세상’으로 거듭 풀어낸 것 같은 반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형의 집으로…>의 마지막 장면은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돈의 서글픈 얼굴이었다. 진정 토드 솔론즈의 영화들은 <아메리칸 어글리>의 전형으로 끝날 것인가? 솔론즈는 아물지 않은 전작의 상처들에 다시 독설의 칼을 꽂아 비틀면서도 여전히 관객을 웃기는 그런 사람이다. <스토리 텔링>은 결국 지구상의 모든 이야기는 일종의 타인의 삶에 대한 거대한 착취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 독설에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겠지만, 신이 주신 불공평함과 타인에게 받는 상처가 매우 균등하게 지구상에 퍼진다면, 어쩐지 그의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을 신성 모독하는 전사들의 윗자리에 토드 솔론즈의 이름을 새기며, 여전히 소멸기간이 불확실한 어떤 ‘전염’으로 다가올 것만 같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필모그래피 1989년, <공포, 근심 그리고 우울>(Fear, Anxiety & Depression) 1995년,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Welcome to the Dollhouse) 1998년, <해피니스>(Happiness) 2001년, <스토리 텔링>(Storytelling) ▶ 가족은 없다 (1) ▶ 가족은 없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