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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사람들] 조폭 에미나이 고저 앉아보라우

나, 이번에는 여기 나옴둥~~. 때로는 자상한 아버지, 때로는 웃기는 아버지, 그래서 무엇이 진짜인지 모를 아저씨, 주현이 <조폭 마누라2: 돌아온 전설>(감독 정흥순, 제작 현진시네마)에 ‘고사채’로 출연한다. <박대박>에서는 못 말리는 얌체 변호사 아들을 상대로 코미디 법정극 한판을 겨루는 성실 그 자체의 판사로, <해피엔드>에서는 늙수그레하면서도 심성 고운 서점 주인으로, <친구>에서는 무서운 아버지이자 전설 속에 묻혀간 조직폭력배의 두목으로, 그리고 <굳세어라 금순아>에서는 전설을 타고 돌아오자마자 굳센 아줌마에게 곤죽이 되는 조폭 두목 백사로, 정직한 판사에서 웃기는 조폭 두목까지 어느 것 하나 어색하지 않은 이 아저씨. 그 아저씨의 또 다른 배역 고사채가 무슨 뜻이냐고? 말 그대로 높은 사채! 북한에서 미그기를 몰고 남하하여 대한민국 시장통 한구석에 사채업을 차린 이 불굴의 평안도 사나이, 그에게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으니 그녀가 바로 기억을 잃어버리고 어찌어찌 중국집 ‘슈슈’의 여종업원이 된 여두목 차은진. “에미나이 고저 앉아보라우.” 악랄하게 모아둔 돈을 앞세워 흠모의 정으로 뻔뻔하게 늘어붙는 고사채의 역이 이번 <조폭 마누라2: 돌아온 전설>에서 주현의 모습이다. 오래 전에 이미 <서울 뚝배기>라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독특한 억양을 구사하며 “껄랑요~”라는 유행어를 창조해내기도 했던 실력으로 이번 영화에서도 멋들어지면서도 코믹한 평안도 사투리를 구사할 예정이다.

[새 영화] 11일 개봉 <링0-버스데이>

사다코가 우물에 빠진날 공포는 시작된다 스즈키 고지의 소설 <링>과 나카다 히데오가 감독한 영화 <링> 사이에 몇가지 차이가 있지만, 공포를 유발하는 요소는 같다. 비디오라는 흔하디 흔한 매체를 통해 죽음의 바이러스가 유포된다는 것, 그리고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텔레비전 수상기에서 원혼이 머리 풀고 기어나온다는 것. <링0-버스데이>는 제목(‘버스데이’)이 말하는 대로 그 공포의 시원을 밝히는 영화다. 사다코가 어떻게 우물에 빠졌는가를 보여주는데 93분이 바쳐진다. 어머니가 죽고, 고향을 떠나 극단에서 새 삶을 찾는 사다코는 아직 자신의 초능력을 깨닫지 못한다. 천진하고 섬세한 성격의 사다코가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그 힘은 반사적으로 그 요인을, 사람을 치명적으로 파괴한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꼬리를 물자 흥분한 단원들은 사다코를 살해한다. 초능력은 다르게 발전할 수도 있었다. 사다코를 사랑하게 된 음향감독 도야마가 병원에서 목격한 기적과 같이. 사다코는 불치의 환자를 일어서게 한다. 쓰루타 노리오 감독은 초능력의 대립되는 두 측면을 갈등시키며 <링0…>를 비극으로 끌고간다. 순결한 여주인공과 악마적 초능력을 분리시키려는 과도한 노력이 사다코라는 인물을 얇게 만들어버린 결과를 빚었다. 한가지, 이 영화는 <링> 애호가를 위한 외전이지만 시리즈를 못 봤어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독립적인 ‘전편’이다. 11일 개봉. 안정숙 기자 namu@hani.co.kr

10여년 만에 스크린에 나타난 배종옥

당찬 여성에서 떠도는 여인으로 세월의 더께 배종옥 연기의 변화 <질투는 나의 힘>이 주는 또다른 즐거움은, 작은 텔레비전 상자에 갇혀있던 배우 배종옥을 <걸어서 하늘까지>(1992) 이후 10여년 만에(그는 97년작 <깊은 슬픔>은 자신의 ‘본격적’인 영화에서 제쳐놓는다) 스크린에서 만난다는 사실이다. “의사가 곡기를 먹으래”라며 텅빈 냉장고 곁에 뻥튀기 한봉지를 두고 사는 성연의 얼굴을 볼 땐 가슴이 휑하게 쓸쓸하다. 그는 성연을 ‘과거에 커다랗게 믿었던 부분에서 상처를 받은 여자, 그 순간 빠질 수 있는 공황상태에 있는 여자’일 거라 생각했다. “늘 담배와 술을 가까이하는 여자, 나를 그냥 내버려두고 사는 여자, 내 감정 가는 대로 사는 느낌의 이런 자유로운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게 즐거웠어요.” 아마 드라마 <거짓말>과 <바보같은 사랑>이 없었다면 배씨의 이런 모습은 몹시 당혹스럽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한때 그는 ‘당돌한 커리어우먼의 표상’ 아니었던가. 당찬 여성에서, 무너질 듯한 삶의 여성에서, ‘세상을 부유하는’ 듯한 성연에 이르기까지 배씨는 한겹한겹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혀왔다. 완전한 변신이라기보다, 세월과 함께 쌓인 변화가 선후 없이 조금씩 안에서 비쳐나온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배씨가 “성연이 참 나이를 알 수 없는 여자 같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라 말할 때, 그 말은 그 자신에 대한 말 같기도 했다. 현실은 “아마 내 앞에 성연 같은 인물이 있다면 왜 그렇게 사니, 붙잡고 얘기할 것 같아요.” 가끔 “스스로 자학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야 할 일을 노상 꼽고, 작품에 들어가면 세상사·가족사에 신경을 꺼버려야 한다는 배씨다. 성격이나 말투 모두 배씨는 선명했다. 그동안 영화를 외면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그는 “벗는 게 싫어서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질투는…>의 시나리오에는 원래 성연의 가슴 노출 장면이 있었다. “정말 하고 싶은 캐릭터인데 도저히 감독님이 바꿀 수 없는 장면이라면 다른 배우를 선택해달라 감독에게 전화했어요.” 문화예술인 대상 시사회가 끝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 “저기 머리 곱슬한 분도 감독님이에요”“저 감독은 어떤 영화 만들었죠” 스스럼없이 물어보는 것도 아는 척-있는 척 하는 것보다 명쾌하다. 그 선명함이, 여배우들에겐 (참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치명적’이라는 이혼을 겪고도 끊임없이 시청자와 관객에게 ‘새로운 발견’을 안겨준 배우 배종옥의 힘이 아닐까.

아톰! 나의 지구를 지켜줘!

아톰 생일맞아 일본열도 '들썩'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흐르며 눈을 뜨고, 팔을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아톰의 모습을 기억하는지. 지난 7일 ‘우주소년 아톰’의 탄생일은 일본뿐 아니라 아톰을 보고 자라난 전세계 팬들에게 설레는 날이기도 했다.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에 따르면 아톰은 2003년 4월7일 도쿄 다카노바바의 ‘과학성’에서 탄생했다. 덴마박사가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만든 또다른 아들 아톰은 10만마력의 힘과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로켓추진의 빨간 장화를 신고 하늘을 가르며 사람들을 구했었다. 아톰의 탄생일을 맞아 일본 후지 TV에선 새로운 아톰 시리즈 50부작이 시작됐다. 아톰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된 건 1963년, 1980년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아스트로보이·철완 아톰>(감독 고나카 가즈야)이라는 제목의 이번 시리즈의 무대인 ‘패러럴월드 메트로시티’는 아톰처럼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들이 차례로 탄생해 인간과 공존하고 대립하는 세계다. 또한 1976~88년 오사무가 스튜디오를 설치했던 도쿄 다카노바바에는 열차 발착신호음이 아톰 주제가로 바뀌고, 아이 이름을 아톰으로 짓는 게 유행하는가 하면, 아톰 과자·초콜릿·신용카드·기념주화 등이 날개돋친듯 팔렸다. 3월부터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한 다카라츠카 시립 데즈카 오사무 기념관의 ‘아톰탄생의 순간’을 재현하는 특별전시실엔 매일같이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7일자 신문에서 3개면에 기사를 실으며 “우리세대의 로봇 관계자들은 아톰이나 철인 28호를 동경했던 사람들”이라는 과학자들의 말을 전했다. 데즈카의 딸이 기획한 음반을 비롯해 아톰 기념 CD도 속속 등장해 침체한 음반산업에 희망을 줄 정도로 아톰은 경기침체의 일본에 다시 효자구실을 하고 있다. 세계 팬들 추억에 젖어 하지만 아톰이 일본에게만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1950년 한 잡지에 데즈카 오사무가 <아톰대사>를 연재할 때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아톰은 ‘평화의 상징’이었다. 당시의 수폭실험 등을 보고 데즈카가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사용하는 가상의 나라를 ‘아톰(원자) 대륙’이라 이름붙여 시작한 시리즈물.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였던 로봇은 1953년 인간의 마음을 가진 <철완 아톰>의 주인공으로 사랑을 받았고, 1963년 텔레비전 애니메이션화된 뒤 전세계 40개국에 수출되었다. 데즈카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술취한 미군 병사들에게 ‘점령국의 언어’를 못한다고 무섭게 얻어맞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것은 내 만화주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지구인과 우주인의 알력, 이민족 사이의 분쟁, 로봇과 인간과의 비극…. 아톰의 테마가 바로 이것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마지막회, 지구를 지키기 위해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던 아톰의 모습은 지금과 같은 시기, 더 생생할 수밖에 없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만만치 않는 주제들의 대중적 친화력,<그녀에게>

■ Story 식물인간이 된 발레리나 알리샤(레오노르 발팅)를 담당하고 있는 남자 간호사 베니그노(하비에르 카마라)에게는 평소 흠모해오던 알리샤를 돌볼 수 있게 된 것이 생애 최고로 기쁜 일이다. 그로서는 사랑을 하는 중이다. 여자 투우사 리디아(로사리오 플로레스)를 취재하러 갔다가 사랑에 빠졌던 저널리스트 마르코(다리오 그란디네티) 또한 소에 받혀 식물인간이 된 리디아 때문에 병원에 온다. 같은 사정을 가진 베니그노와 마르코는 서로 우정을 나누지만, ‘여자친구’의 엇갈리는 운명에 따라 두 남자의 운명도 서로 엇갈린다. ■ Review 코마 상태의 여자를 사랑해서 결혼까지 하겠다는 남자 이야기. 이건 사실 기이한 강박증이고 호러영화에나 어울릴 법한 소재다. 그런데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 시원찮은 남자에게 숭고한 사랑의 서사를 부여한 뒤 다시 모든 것을 미세한 분말처럼 가공해서, 마치 아기 피부에 스며드는 고급 영양크림처럼 보는 이의 가슴에 스며드는 멜로드라마로 만들어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을까. 인간은 대개 삶과 죽음 사이에 줄을 하나 죽 그어놓고 이쪽 아니면 저쪽을 사유한다. 물론 귀신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어차피 건널 수 없는 경계라는 전제 위에서 만들어진다. 알모도바르는 특이하게도 삶과 죽음 사이에 그어진 그 줄 자체를 유심히 응시한다. 그리고 줄 위에 걸쳐져 있는 존재를 발견한다. 이른바 식물인간이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귀찮아하는 이 존재에 대해서 알모도바르는 특별한 방식으로 주목한다. 바로 식물인간의 살아 있는 몸을 매개로, 사랑의 육체성을 이야기해보는 거다. 살아 있는 몸(알리샤)을 돌보고 애무하고 그 몸이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대신 체험해본 다음에 자상하게 들려주는 사랑의 행위(베니그노). 영화 <그녀에게>는 이 커플이 얼마나 근사한지를 그럴듯하게 꾸며 보여준다. 이건 사실 능청맞은 코미디다. 그러나 알모도바르는 이 유머러스한 로맨스가 아늑한 공상에 안주하도록 놓아두질 않는다. 그는 이 사랑이 은폐된 한에서만 지켜지며, 노출되는 순간 하나의 질병 혹은 범죄로 받아들여지고 격리되리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친구’인 마르코조차도 베니그노에 대해 연민은 갖고 있지만 베니그노의 사랑이 관념적이라고 생각한다. 여행 전문 저널리스트인 마르코는 섬세함과 현실주의를 겸비한 캐릭터다. 그는 폭 넓고 예민한 정서 덕분에 리디아와 베니그노의 특이한 내면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현실주의 때문에 식물인간이 된 자신의 연인을 사실상 포기한다. 그는 기적과도 같은 증거가 눈앞에 나타난 다음에야 ‘그녀에게 말을 걸라’(Talk to her, 스페인어의 원제 Halbe con ella는 이런 맥락에서 왔다)던 베니그노를 진심으로 이해한다. 너무 늦은 시간에. 마치 우리처럼.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비극이 된다. 주인공들은 모두 무언가에 감금되어 있다. 여자 투우사의 스캔들을 캐내려고 악귀처럼 달려드는 텔레비전 진행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치부되는 식물인간 등 여성이 일차적인 희생자로 시작한다. 이어서 그 여성들에 대해 연민과 사랑을 갖게 된 남성들이 차례로 감금된다. 감옥에 갇힌 베니그노는 말할 것도 없고, 마르코 역시 알리샤에게 접근하지 말도록 요구받는다. 그런데 사회체제의 관용없음을 다루는 알모도바르의 방법이 너무나 부드러워서 고통마저도 감미롭게 여겨진다. 이처럼 알모도바르의 시선은 현실(real)로부터 붕 떠오르되(sur) 낮은 높이에 체공하면서 현실을 다시 바라본다. 이 짓궂음과 통찰을 쉬르리얼리즘(surrealism), 초현실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그녀에게>가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적 그림이나 안토니오 가우디의 분방한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것은 비단 스페인 출신이라는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특성이 멜로드라마 장르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는 것도 <그녀에게>의 커다란 특징이자 힘이다. ‘아트영화’로 낙인찍힐(?) 만한 요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친화력이 강한 것은 멜로드라마의 힘일 것이다. 이 틀 안에서 알모도바르는 육체성, 욕망, 사랑과 성, 사회적 편견 등 만만찮은 주제들을 편안하면서도 탐미적으로 풀어나간다. 사실 멜로드라마에 대한 경애는 알모도바르를 명망있는 대부분의 영화작가들과 구별짓는 중요한 속성인 것으로 보인다. 신파조 섞인 사실주의 톤으로 극을 끌어가는 배우들의 능청도 이 유머러스하면서도 비극적인 멜로드라마에 단단히 기여한다. 특히 하비에라 카마라는 영화의 절대적인 중심이다. 단순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베니그노의 외모뿐만 아니라 눈빛과 목소리, 손길 등 모든 것이 베니그노식 사랑을 표현하면서 카메라를 자기 정서대로 끌고 다닌다. 한 작가가 이보다 더 나은 작품을 낼 수 있을까 두려워지는 상태. 알모도바르는 지금 절정에 도달한 것 같다. 가장 대중적인 매체 안에서 가장 대중적인 장르를 취해 키치적인 악동으로부터 대중예술가로 정련해간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영화를 넘어서서 스페인이 배출한 여러 분야의 최고 예술가들과 나란히 거론될 만하다. :: <그녀에게> 속 예술지적이고 감각적인 <그녀에게>는 다양한 예술 장르들을 영화 안에 직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사고를 당하기 전의 알리샤와 딱 한번 대화를 했던 베니그노는 알리샤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들을 섭렵하고 다닌다. 병원으로 돌아와서 알리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그런 편력 중 하나가 흑백무성영화 <애인이 줄었어요>(Shrinking Lover)다. 여성과학자를 사랑하는 알프레도는 애인이 개발 중인 약품을 들이마신 뒤 몸이 점점 작아지는 부작용을 겪는다. 손가락만한 크기로 줄어든 나머지 애완용 인형처럼 애인의 몸을 더듬다 못해 드디어 여인의 몸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자궁 속으로의 퇴행이라는 남성 콤플렉스를 시각화한 이 기막힌 유머는 알모도바르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영화 안에 7분 분량으로 삽입한 것이다. 피나 바우쉬가 직접 공연한 무용은 이 영화의 앞과 뒤를 열고 닫는다. <카페 뮐러>가 영화의 첫 장면으로 사용되었는데 무대 위에 있는 두 여성의 고통을 눈물지으며 바라보는 객석의 두 남성까지 연결지음으로써 영화의 상징적인 서두 기능을 맡도록 했다. 근년의 피나 바우쉬는 한 도시에 오래도록 머물며 창작한 ‘세계 도시 시리즈’를 발표 중인데, 이 영화의 끝장면에 삽입된 것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배경으로 한 ‘마주르카 포고’다. 짧은 분량이지만 연극과 무용의 경계를 통합적으로 확장한 피나 바우쉬의 혁신성을 맛볼 수 있다. 가장 친숙한 것은 ‘쿠쿠루쿠쿠우우’ 하는 비둘기 울음소리가 인상적인 <비둘기>(Cucurrucucu Paloma)라는 노래. 19세기 스페인의 작곡가 이라디에르가 쿠바를 여행하던 중 하바네라 음악에 매료되어 만든 곡으로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에도 나온다. 이 영화에서는 브라질 출신의 카에타노 벨로소가 직접 출연해서 불렀는데, 여자 투우사 리디아의 강인한 섹시함과 공존하는 감상적인 슬픔, 죽음의 전조를 환기시킨다. 이 노래를 듣기 위해 극장 표를 구입한다고 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다.

4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7편

25일 막올라 35개국 170편 상영. 지명도 높은 화제작들 매진 임박 제4회 전주국제영화제( www.jiff.or.kr)가 오는 25일 개막한다. 올해 행사는 민병록 집행위원장, 김은희·정수완 프로그래머 등 집행부가 새로 들어선 탓에 성격이 바뀔지 모른다는 예측도 있었으나, 여전히 실험적이며 논쟁적인 영화들로 ‘대안영화제’라는 모토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지명도 높은 감독의 화제작도 많다. 개막작인 박광수·박진표·박찬욱·여균동·임순례·정재은 감독의 옴니버스 인권영화 <여섯 개의 시선>, 폐막작인 토드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텐>, 카를로스 사우라의 <살로메>, 아요야마 신지·바흐만 고바디·박기용의 <디지털 삼인삼색> 등은 이미 매진이 임박한 상태다. 35개국 170여 편의 상영작 가운데 부문별 특성과 감독의 지명도 등을 감안해 7편을 추렸다. 실험·논쟁적 색채짙은 '대안영화' 풍성 유년시절 충격으로 마음 닫아 ◆스파이더(시네마 스케이프 부문)<크래쉬>(1996), <엑시스텐즈>(1999) 등 혐오스럽고 기괴한 영상을 즐겨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지난해 칸에 들고 갔던 <스파이더>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가는 사내 이야기다.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데니스는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숙소에 머문다. 그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옛 술집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나던 술집 여자와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린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은 소년으로 하여금 자신이 스스로 자아낸 실의 미로에 걸린 거미라고 상상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사실과 상상의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다. 프로이트의 <늑대인간>이 유아기 노이로제에 대한 임상의학자의 분석 일지라면, 크로넨버그의 ‘거미인간’은 그 노이로제가 만들어낸 폐쇄적인 심리공간에 대한 음울한 영상 보고서다. 황폐한 가정의 10대 차갑게 그려 ◆켄 파크=(디지털 스펙트럼 부문)미국의 래리 클라크 감독은 42살에 내놓은 데뷔작 <키즈>(95)부터 줄곧 10대의 삶을 섹스와 폭력 위주로 관찰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4번째 장편 <켄 파크>(2002)는 10대 소년 켄 파크의 자살로 시작해 그의 친구 네 명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숀은 여자친구의 어머니와 섹스를 나누고, 클라우드는 마초적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살던 와중에 아버지로부터 동성애적 성희롱을 당한다. 테이트는 할머니의 사생활 간섭과 할아버지의 지겨운 전쟁 이야기에 시달리다가 둘을 살해한다. 여자인 피치스는 의붓 아버지와 강제결혼을 당한다. 테이트는 경찰에 잡혀가고, 나머지 셋은 서로를 보듬고 한탄하며 그룹 섹스를 한다. 미국 중하층의 황폐한 가정사를 연이어 펼친 뒤 그 마을 10대들의 히피공동체 같은 광경을 들이미는 이 영화는, 클라크의 전작보다 온기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논쟁적이다. 느닷없이 당한 폭력 필연일까? ◆우연의 연대기에 관한 71개의 단편들=(전주 불면의 밤) 최근 <피아니스트>로 급부상한 오스트리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세 편이 26일 밤 관객과 만난다. 그중 가장 근작인 <우연…>(94)은 93년의 겨울을 배경으로, 특별한 인과관계가 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짧게 토막내 교차시키면서 이어가는 독특한 형식의 영화다. 사이사이에 사라예보, 레바논, 터키 등 전쟁과 집단학살의 현장을 중계하는 텔레비전 뉴스와, 그 텔레비전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돼 있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끼어든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전날 한 청년이 은행에 들어가 사람들을 쏘아죽이는 살인극으로 마무리된다. 하네케는 묻는 듯하다. 이 느닷없는 폭력의 인과관계를 엮어낼 수 있을까. 일본의 전설 기타노 다케시 자전 ◆아사쿠사 키드=(디지털 스펙트럼) 일본의 살아있는 전설 기타노 다케시의 자전적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시노자키 마코토 감독의 이 영화에서 다케시역을 비롯해 주연들은 실제 다케시의 제자이고, 등장하는 극장·아파트 등도 실제 공간에서 촬영됐다. 아사쿠사의 한 스트립쇼장에 취직해, 평생의 스승 센자부로 후카미를 만나 코미디 수업을 받던 다케시의 젊은시절이 그려진다. 성공한 이의 익숙한 회고담이라기보다는 궁상맞은 일상 속에서도 꿈을 찾아 헤매던 거리의 한 젊은 초상이다. 삶보다 진실이 중요하다고? ◆보키에 관하여=(디지털 스펙트럼) 13살 흑인소년이 어느 집의 정문으로 뛰어든 뒤 울리는 총성과 카메라를 잠시 보고 달아나는 그의 얼굴로 시작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감독 랍 데 마지에르와 아담 리스트는 남아공에서 갱들에 이용되어 마약을 운반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아이들 ‘보키’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빛바랜 컬러로 보여주는 보키의 모습 사이로, 스너프 필름과 다를 게 뭐냐는 제작진의 격렬한 반발과 토론이 흑백으로 끼어든다. 다큐멘터리적이지만 현실과 픽션의 경계는 모호하다. 한 스태프가 “진실이 인간의 삶보다 중요한가”라 던진 말처럼, 긴 논쟁거리를 남긴다. 알지도 못했던 아들 나타나 ◆오른쪽 어깨 위의 천사=(아시아 독립영화)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서 한국의 민병훈 감독과 함께 <벌이 날다>(1998)를 만들었던 타지키스탄의 잠셋 우즈마노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어머니가 며칠 못 살 거라는 소식을 듣고 10년 만에 고향에 들어온 캄로. 빚도 탕감하고 마지막 길을 번듯하게 보내드려야 한다는 마을사람의 부추김에 대대적인 집수리를 마치고 집을 팔 약속까지 하고 말았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어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고 알지도 못했던 10살짜리 아들이 캄로의 자식이라고 나타난다. 따뜻한 색감이 돋보이는 영화는 어머니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우화 같은 이야기체로 나직히 들려준다. 파격속 진지함 스리랑카 영화 ◆한쪽 날개로 날다=(시네마 스케이프) 스리랑카에도 이런 파격적인 이야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일 것 같다. <이것은 나의 달>로 호평받았던 아소카 한다가마 감독은 심리스릴러 분위기까지 풍기는 흥미로운 여성 동성연애자의 드라마를 들고 왔다. 남자로 위장해 다른 여인과 결혼까지 하고 사는 한 젊은 여인이 있다. 자동차 수리공장의 동료와 장난치던 중 사고로 병원에 갔던 그의 ‘정체’를 알게 된 의사는 그를 추근대고, 남자 동성연애자인 동료 또한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집요하게 그를 좇던 의사가 그의 ‘비밀’을 드러내자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재미 속에서도 여성동성연애자의 정체성 혼란이라는 진지함을 놓치지 않는다. 임범, 이상수, 김영희 기자 isman@hani.co.kr

페드로 알모도바르 셀프 인터뷰 [2]

<애인이 줄었어요> 부분은, 눈가리개 페드로: 영화 주요 스토리라인에서 갑자기 빠져나와 우회한 까닭이 무엇인가? 알모도바르: 겉보기에 우회로처럼 보일 뿐이다. 왜냐하면 베니그노와 알리시아의 이야기는 <애인이 줄었어요>가 나오는 7분 동안 정지하는 게 아니라 무성영화와 융합되기 때문이다. 무성영화는 하나의 가리개다. 페드로: 뭘 가리는? 알모도바르: 베니그노가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코마 상태의 알리샤에게 한 일을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디테일을 감추고 본질만 보여주는 은유로서) <애인이 줄었어요>를 넣었다. 페드로: 그런 걸 가리켜 ‘조작’이라고들 하지 않나? 알모도바르: 내러티브상의 선택이었고 간단치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더욱 자랑스럽다. 페드로: 어쨌거나 당신 영화 속 인물들이 다른 영화를 빌려 자기를 설명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하이힐>만 해도…. 알모도바르: 맞다. 딸 빅토리아 아브릴은 어머니 마리사 파레데스에게, 엄마를 향한 애증을 설명하기 위해 <가을 소나타>의 한 장면을 외친다. <마타도르>에서 쫓기는 여자와 쫓는 남자는 <백주의 결투>가 상영되는 극장으로 뛰어들어가는데 그때 스크린에 영사되는 남녀가 서로를 죽이는 장면은 두 주인공이 앞으로 맞이할 결말과 똑같다. <라이브 플래쉬>에서도 리베르토 라발과 프란체스카 네리가 싸울 때 텔레비전 화면에 루이스 브뉘엘의 <범죄의 리허설>이 나온다. ’범죄의 리허설’은 그 장면의 제목이 될 수도 있다. <범죄의 리허설>에는 다리가 없어진 마네킹이 나오고 <라이브 플래쉬>에서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범죄의 리허설>에선 마네킹이 오븐에서 불타는데 <라이브 플래쉬>에서는 앙헬라 몰리나가 리베르토로부터 결별을 통고받는 순간 불길에 갇힌다. 우연히도 몇년 뒤 앙헬라 몰리나는 불타는 차 안에서 사망했다. 나한테 영화는 사적 경험의 일부이기에 나는 영화를 경험처럼 이용한다. 그러나 인용된 영화의 감독들에게 오마주를 바치거나 모방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것은 시나리오로 흡수된 요소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는 나의 개인적 기억과도 관련있다. 포럼이나 영화에 대한 전형적인 토론(난 그런 자리를 매우 싫어하는데) 얘기가 아니다. 어렸을 때 나는 누이들에게 같이 봤던 영화 얘기를 다시 들려주곤 했다. 내 기억은 흥에 겨워 훨훨 날개를 폈고 나는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각색을 했는데, 누이들은 원래의 영화보다 나의 불확실하고 착란적인 버전을 더 좋아했다. 테라스에 화로를 놓고 테이블에 둘러앉아 바느질하는 누이동생들에게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시간은 평소보다 느리게 흘렀다. 페드로: 손자, 손녀에게 영화를 이야기로 들려주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나? 알모도바르: 모르겠다. 손자를 보려면 이미 좀 늦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난 더이상 영화를 말로 옮기지 않는다. 나는 그런 기술을 잃어버렸고, 오로지 인터뷰에서 강요받을 때만 영화를 이야기하게 됐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2003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38편 프리뷰 [5]

사실 속에서 거꾸로 허구를 찾다 추천작 Part IV - 거장의 다큐, 다큐로 그린 거장 장 외스타슈 <0번> 데릭 저먼 <블루> 2003년 전주국제영화제에는 극영화의 거장들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들이 눈에 띈다. 상상과 허구의 문턱을 넘나들며 창조를 갈망하던 그들이 기록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각자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이루어진 극영화, 그 이상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의 장이 여기 있다. 장 외스타슈는 누벨바그의 주류로 활동한 적이 없지만 줄곧 누벨바그의 동조자였다. 혹은 누벨바그의 영화적 원칙을 흡수했지만, 그들 몇몇이 지닌 중산층적 맥락과는 거리를 두며 가난한 삶과 계급문제를 화두로 끌어들였다. 픽션과 다큐멘터리 양쪽에 관심을 갖고 1963년부터 영화를 시작했던 장 외스타슈는 1981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엄마와 창녀>(1973)는 내용적으로는 냉혹한 전개를, 형식적으로는 열려 있는 구조를 병행하며 68이후 프랑스에 불어닥친 정서적 위기감을 표출한 작품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번에 상영되는 (1971)은 <엄마와 창녀>에 바로 앞서 만든 그의 다큐멘터리이며, 2001년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트 68부문에 상영된 바 있는 자전적 영화 <작은 연인들>(1974)과도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은 장 외스타슈와 그의 할머니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삶의 질곡에 초점을 맞춰간다. 장 외스타슈는 을 완성한 직후 장 마리 스트라우브 등의 몇몇 친구들에게 보여준 것을 제외하곤 극장 상영을 거부했다. 1980년 프랑스에서 (장 외스타슈의 할머니, 그녀의 이름)라는 60분짜리 텔레비전용 영화로 재편집되어 방영한 적이 있다. 데릭 저먼의 <블루>(1993)는 그가 1994년 AIDS로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극장 개봉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의 다큐멘터리이다. 스크린에는 어떤 형상도 등장하지 않는다. 76분의 상영시간 동안 보이는 것은 푸른색으로 밝게 빛나는 스크린뿐이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보이스오버가 들려온다. 영국 출신의 데릭 저먼은 켄 러셀 감독의 프로덕션디자이너로 영화작업을 시작한 이후 첫 장편 으로 감독 데뷔하였고, 1994년 를 통해 방영된 유작 에 이르기까지 난해함과 독창성을 겸비한 작가로 인정받아왔다. <에드워드> <카라바지오> <비트겐슈타인> 등을 통해 독창적인 영화적 실험과 철학적 시도를 확장했던 데릭 저먼은 화가였고, 퀴어 영화의 선구자였으며, 동시에 이미지의 기능공이었다. 마지막 극장 개봉작이 된 <블루>에서 데릭 저먼은 역설적인 방식으로 그 이미지를 다시 한번 창조한다. 죽음에 직면한 자신의 소멸감을 표현하기 위해 형체들을 소멸시키고 푸른 화면 속에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때로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라”고 주문을 건다. 그러나 자신의 정신과 육체의 상태를 이미지화, 또는 무화하는 데릭 저먼의 마지막 제의는 관객을 또 다른 상상적 이미지의 세계로 초대한다. 마틴 스코시즈가 1995년에 만든 <마틴 스코시즈와 함께하는 미국영화기행>이 그 자신의 삶의 터전이자 영화적 토대가 된 미국영화의 역사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과시한 다큐멘터리였다면, <나의 이탈리아 여행>(My Voyage to Italy, 2001년)은 자신의 뿌리이자 회귀의 고향인 이탈리아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또 하나의 시네마 여행이다. “사실상 나의 가족들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영화들을 통해서였다”고 말할 정도로 마틴 스코시즈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루치노 비스콘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페데리코 펠리니 등을 중심으로 자신의 영화인생에서 이들의 영화가 끼친 영향과 반영, 그리고 그에 얽힌 영화적인 추억들을 꺼내놓으며 245분간의 영화 일기장을 펼쳐 보인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다큐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

이제껏 가장 신랄한 반미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은 지금까지(최소한 한국의 극장에서 개봉한) 미국영화 가운데 가장 신랄한 반전, 반부시, 반미영화이다.부시 정권이 꼴보기 싫어 죽을 것 같은 이들에겐 박수가 절로 나오는 공감대를 선사하고, 미국이 왜 저럴까 궁금증이 남아 있는 이들에겐 설득력 있는 답안을 제시한다. 전쟁에 이긴 미국 앞에 다시 지지와 친선을 서약하는 미국인과 서방 각국을 보며 우울함에 잠긴 이들에겐 위로가 될 유머와 격려를 보태준다.이 영화는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더니, 올해 보수적인 오스카의 최우수 다큐멘터리상까지 받았다. 400만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든, 상영시간도 2시간 남짓한, 그것도 다큐멘터리임에도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개봉한 뒤 7개월간 간판을 내리지 않고 2천만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이 영화의 대중적 호소력을 오스카도 외면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99년 4월 콜럼바인 고교생 2명이 900여발의 총알을 난사해 학생 열두 명과 교사 1명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왜? 두 학생은 학교 볼링반이었고, 사건 당일 아침에도 볼링을 쳤다.볼링이 잘 안 맞아 스트레스가 쌓여서 총을 쏜 걸까. 물론 그럴 리가 없다.‘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은, 이 사건을 이해하고 재발을 막으려면 미국 사회의 구조적 병폐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무어의 시각을 깔고 있다.무어는 내키는 대로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다.학교 근처엔 세계 최대의 무기 공장 록히드 마틴사가 있다.공장 간부를 인터뷰하지만 동문서답이다.보수적인 언론에선 과격한 로커 마릴린 맨슨이 학생들을 버려 놓았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2천만달러 수익에 오스카상까지 무어는 마릴린 맨슨을 인터뷰한다.“텔레비전은 온통 공포를 조장한다.홍수, 에이즈, 살인….광고도 공포효과를 노린다.그게 우리 경제의 기초다.” 무어는 ‘공포’라는 키워드를 발견한다.그리곤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를 만든 맷 스톤과 트레이 파커와 만나 미국의 학교교육이 얼마나 끔찍한지 열심히 성토한다.곧이어 이 둘이 그린 10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미국의 역사가 펼쳐진다.구교도가 무서워 아메리카로 건너와서,인디언들이 무서워 학살하고,흑인들이 무서워 차별하고,이제는 집안에 총을 들여놓고 집 문을 꽁꽁 잠그고, 제3세계가 무서워 먼저 그들을 침공하고….이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웃긴지 <사우스 파크>를 본 이들은 익히 짐작할 듯하다. 부시 집안과 원수에 가깝다 저술가, 다큐멘타리 감독, 랄프 네이더의 선거운동 참모 등 이력이 다채로운 마이클 무어는 목에 힘을 주는 스타일이 아니다.50살의 나이답지 않게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투덜대고, 무턱대고 찾아가 시비를 건다.그 여유와 유머로 미국의 역사와 빈익빈부익부의 사회구조, 미국 백인들의 집단 무의식까지 파헤친다.베스트셀러인 그의 저서 <멍청한 백인들>에서 밝혔듯, 그는 부시 집안과 원수에 가깝다.다큐멘터리 <로저와 나>(89년)를 만들 때 함께 일한 케빈 레퍼티가 조지 부시의 사촌인 탓에 이 형제들을 개인적으로 알지만 만날 때마다 “패배감과 함께 초라함”을 느꼈다. 조지 부시는 “어디 가서 취직이나 하라”고 그를 쏘아부쳤고, 동생 닐 부시는 무어가 카메라 없이 나타나자 보란 듯 그의 볼을 꼬집으며 놀려댔다.올해 오스카상 시상식장에서 무어는 “조지 부시, 부끄러운 줄 알아라”고 한방 먹였다.그러나 이라크전이 끝나고 미국 여론은 무섭게 부시 지지로 돌아섰다.무어는 또 다시 패배감을 느낄까. 그는 다음 영화 <화씨 911>를 통해 조지 부시의 아버지인 전직 대통령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 일족 사이의 음모와 모사로 얽힌 관계를 추적해 들어갈 예정이다.24일 서울 메가박스, 코아아트홀 개봉. 임범 기자 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