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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이민용표 착한 영화` <보리울의 여름>

■ Story 한적한 보리울 마을의 성당에 30대 초반의 젊은 주임신부(차인표)가 찾아온다. 그곳에는 단정한 자태의 원장수녀(장미희)와 털털하기 그지없는 우남 스님(박영규)이 미묘한 갈등을 이루고 있다. 보리울 마을의 새 기운은 축구에서 비롯된다. 보리울 마을팀 아이들이 읍내 축구팀에 도전했다가 형편없이 무너지고 햄버거를 ‘헌납’당한 뒤, 축구이론에 해박한 우남 스님에게 축구감독을 부탁한다. 또 말썽꾸러기들이 주축이 된 성당 아이들도 축구팀을 꾸려 주임신부가 감독을 맡게 되면서 양팀이 경쟁에 들어간다. ■ Review <보리울의 여름>은 악다구니 같은 여름 한날의 소동 속에서 한 가닥 진실을 ‘선동’하던 <개같은 날의 오후>와 달리 아주 ‘착한 영화’다. 애초부터 악의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인간들이 쏟아져나와 너스레를 떨며 소동을 벌이다가 행복하게 화해한다. 못된 인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갈등을 마련하고 해결의 쾌감을 높이기 위해 극소수를 인위적으로 배치했을 뿐이다. 사실감을 증발시킨 악의가 위기감을 주기는 어렵다. <집으로…>의 못된 손자나 <선생 김봉두>의 퇴폐 교사가 진실로 못된 인간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들이 만들어내는 슬픈 현실이 진짜가 아니라며 안도할 수 있었다. <보리울…>의 못된 인간들이 갖는 비현실성은 이들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러티브의 긴장감은 어디서 생겨날까. 흥미롭게도 착한 캐릭터들 곳곳에서 대립각이 돌출한다.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 곤란할 지경이다. 이것이 ‘이민용표 착한 영화’의 힘이다. 정색하고 달려들었으면 감당키 어려웠을 대립각들이 애초부터 평화로운 인물들 속에서 시빗거리로 떠오를 가능성을 미연에 없애버린 것. 이제 안전하고 즐거운 갈등의 세계를 즐기면 된다. 너스레에 관한 한 노하우를 쌓고 쌓았을 박영규는 가장 문제적 인물이라 할 우남 스님을 맡아 첫신부터 ‘기습’을 감행한다. 새로 부임해오는 주임신부와 우연히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초등학생 형우를 보고 우남 스님이 반색한다. “니가 형우 맞나? 많이 컸다. …아부지를 봤으몬 꾸벅 인사부터 해야제.” 물론 마을 사람들에게 이들은 부자지간이 아니다. 우남은 아마도 출가 전에 낳았을 형우를 방학 동안 잠시 머물기로 한 신자의 아들로 위장한다. 스님 아버지라는 낯선 존재감 때문에 형우는 적잖이 갈등하겠지만, 스님의 과거나 솔직과감한 작금의 행실은 비난거리가 되지 않는다. 스님은 또 내놓고 곡차를 즐긴다. 술김에 주임신부에게 자신의 첫사랑을 털어놓으며 “청승을 떨고”는 다음번에는 당신 차례라고 다짐한다. 그렇지만 우남은 신심을 생활화한 충직한 승려다. 주임신부와 만나던 첫날처럼 틈만 나면 기싸움을 벌인다. “목도리처럼 찬 거, 그거 뭐라카능교?”“아, 이거요? 로만 칼라라고 합니다.”“로만 폴라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네예. 푹푹 찌는 여름철에 폴라 입고 갑갑해서 우찌 삽니꺼? 우리 불교는 자윱니더. 더우면 벗고 런닝고만 입고 이리 삽니더. 수행자가 옷가지 같은 것에 구속받으면서 무슨 수행을 하겠습니꺼. 하하하.” 우남의 진짜 적수는 젊은 주임신부가 아니라 대단히 금욕적이고 끊임없는 노동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원장수녀다. 쇼핑, 특히 예쁜 옷 사기를 좋아하는 젊은 바실라 수녀(신애)에 비하면 원장수녀는 안타까움이 절로 들 만큼 고지식하다. 우남(‘어리석은 남자’란 뜻이 아닐까. 실제 법명은 ‘운암’인데 사람들 부르기 편한 대로 고쳐버렸다)과 ‘웬수’(아이들은 원장수녀를 줄여서 이렇게 부른다)로 상징되는 불교와 천주교의 대립은 적대적이지 않다. ‘웬수’를 끝내 자유롭고 유쾌한 영역으로 끌어내는 이는 주임신부의 측면지원을 받는 ‘우남’이다. 대립은 계속된다. 보리울 마을(혹은 보리울 아이들)과 읍내(혹은 읍내 아이들)는 계급적으로 부딪치고, 씩씩한 축구선수 동숙이나 똘똘하고 당찬 순옥 같은 소녀는 어리석은 남성을 대변하는 듯한 소년들과 성차로 대립한다. 우남과 `웬수` <원장수녀>로 상징되는 불교와 천주교의 대립은 적대적이지 않다. `웬수`를 끝내 자유롭고 유쾌한 영역으로 끌어내는 이는 주임신부의 측면지원을 받는 우남이다. 정작 아찔한 건 느슨하게 펼쳐지는 이런 갈등이 아니다. 소년들이 늦은 밤 원장수녀와 바실라 수녀 방을 훔쳐볼 때, 혈기왕성한 김 신부와 해맑은 바실라 수녀를 투숏의 화면으로 잡아챌 때다. 원장수녀가 텔레비전 드라마에 빠져 “둘이 헤어지려 하고 있어”라고 안타까워할 때, 아이들이 속옷 입은 바실라 수녀를 엿보며 농짓거리를 주고받을 때, 무더운 여름날 신자들 집을 방문하다 시원한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는 김 신부와 바실라 수녀를 카메라가 조용히 응시할 때, 작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어쩌려고…. 물론 착한 영화는 모든 걸 평화롭게 매듭짓는다. 우남 스님의 경우처럼 주임신부와 수녀를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로 낮추기 위해 인간적 ‘약점’을 살짝 노출하거나 암시했을 뿐이다. 소박함이 과잉에 빠져들 때, 순수를 자꾸 더 하얗게 치장할 때 오히려 그 미덕은 갉아먹힐 위기에 처한다. <보리울의 여름>은 이따금 그 함정 속으로 위태롭게 다가선다. 그게 착한 영화의 한계이기도 할 것이다. 이민용 감독 인터뷰"현장 분위기가 꿈처럼 좋았다" - <개같은 날의 오후>(1995)로 주목받는 감독이 됐다가 당시로선 대작이었던 <인샬라>(1996)로 ‘쓴맛’을 봐야 했던 이민용 감독이 각고의 시간 끝에 세 번째 작품을 만들었다. 한때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대작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에둘러온 긴 시간에 아쉬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 긴 시간 끝에 작품을 내놓은 소감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건 현장 분위기다. 배우, 스탭 모두가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일하면 결과도 좋게 마련이다. 여름날의 촬영현장은 꿈결같이 느껴질 정도로, 인생에서 다시 올 것 같지 않을 만큼 좋았다. 게다가 스탭과 배우도 영화를 보고 만족스러워하고. 결과를 떠나서 이미 감사하는 마음이다. - 대사가 아주 찰지다가도 갑자기 범상해지기도 한다. 어느 선에서 조율을 했나. 상업영화에서 보편적으로 끌어들이는 큰 사건을 일부러 배제했다. 시골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했는데 그러자니 경쟁력의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스님, 신부, 수녀의 3각 대립으로, 3자간의 화학반응으로 재미를 주려고 했다. 예컨대 우남 스님의 캐릭터는 삼류 땡추 같은 것과 선불교 같은 게 섞여 있는데 짓궂게 보이면서도 내공이 있어 보이도록 했다. 이웃집 남자 같다가도 불교를 표출하기도 하고. - 성직자의 인간적 면모가 많이 나온다. 종교적인 계율과 엄중함을 표방할 종교영화는 아니니까. 수녀 방은 어떤 남성도 보지 못했을 텐데, 상상으로 만들었다. 수녀가 야한 속옷을 입기도 하고 피부관리를 하기도 한다는 건 직접 들은 이야기다. 또 스님 중에서 술 드시는 분도 꽤 있지 않은가. 종교를 모욕하지 않는 선에서, 관객이 받아들이는 데 큰 부담없는 선에서 묘사했다. - 배우들의 진짜 면모를 극중 인물에 투사한 것 같은데. 장미희 선배는 평생 수녀처럼 독신으로 사는데 커리어우먼의 독신 여성처럼 계율중심적인 면이 있는 반면 독신이기 때문에 소녀적 감성을 잊고 있지 있는 게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가면서 어쩔 수 생기게 마련인 모성적 느낌도 고려했고. 박영규 선배는 우남 스님 같은 자신의 인생역정이 반영됐다고 했고, 차인표는 겸손하고 성실하고 반듯해서 신부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가미카제와 여전사들

이번 전쟁으로 졸지에 스타(?)로 떠오른 이라크의 공보장관이 언젠가 미·영 동맹군에 ‘자살공격’을 가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실제로 한 이라크군 장교의 자살공격으로 미군 병사 네명이 숨진 데 이어 며칠 뒤에는 두명의 여성 전사가 자살공격으로 다시 세명의 미군 병사를 살해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미국과 영국의 언론은 이것이 마치 임신부를 인질로 잡은 테러인 양 보도했으나, 나중에 그 “임신부”라는 여인도 이른바 ‘순교’를 자원한 전사로 밝혀졌다. 한손에 코란을 다른 손엔 소총을 들고 결연하게 순교를 맹세하는 장면이 아랍쪽 방송을 타고 흘러나왔다. 내게 이 보도는 충격이었다. 여성이 자살공격을 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그보다 ‘임신부’라는 말이 매우 끔찍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뱃속에 든 생명을 보호하는 게 어미의 본능일 터,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야 자유의지라 해도, 자신의 결정에 아기의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 여인이 정말로 임신부였는지, 아니면 미군 병사들을 유인하기 위해 임신부를 연기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궁금하다. 어느 쪽이었을까? 이 자살특공대에 서구의 언론들은 ‘가미카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살공격은 전세가 불리한 쪽에서 사용하는 전술로, 그 자체가 그들의 좌절과 절망을 반영한다. 여기서 정치의식은 극단화하여 종교와 하나가 된다. 자살공격은 정상적으로는 이룰 수 없는 어떤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종교의 힘을 빈다. 그 가망없는 몸짓으로 기적을 창조하기를 바라는 것도 실은 종교적 심성에 가깝다. 이 점에 관한 한 사실 가미카제와 이슬람 자살특공대는 서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신도를 원용한 가미카제와 이슬람을 원용한 자살특공대 사이에는 또한 차이가 있다. 가령 일본은 고대 그리스처럼 다신교의 문화를 갖고 있고, 반면에 이슬람은 유대의 헤브라이즘처럼 강력한 일신교 문화를 갖고 있다. 일본에는 고대 그리스처럼 선악의 피안에 서 있는 ‘신화’가 있다면, 이슬람에는 고도로 발달한 ‘신학’이 있다. 일본의 문화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다면, 이슬람에서 절대자와 유한 자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이 문화적 차이가 자살공격에 각각 다른 색깔을 부여한다. 실러의 말대로 “신들이 더 인간적이었을 때, 그때 인간은 더 신적이었다.” 신들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에서는 인간이 제 존재를 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삶의 최고 목표가 된다. 신화 속의 신들은 선악의 도덕에 구애받지 않기에, 신이 되려는 인간들은 ‘선’이 아니라 ‘우수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다. 이렇게 인간을 초극하여 신이 되려는 자들을 규제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이 아니라 초인의 ‘미학’이다. 가미카제가 주는 감동은 윤리적 감동이 아니라 예술적 감동. 그것은 ‘신에 대한 헌신과 희생’이라는 종교적 코드가 아니라, ‘인간의 자아 초극’이라는 존재미학에서 흘러나온다. 이슬람 자살특공대의 경우는 다르다. 가미카제가 ‘영웅’이라면, 이슬람 자살특공대는 ‘순교자’다. 가미카제가 자결을 통해 제 존재를 ‘완성’하려 했다면, 이슬람 자살특공대는 헌신을 통해 제 존재를 ‘포기’하려 한다. 가미카제가 죽음이라는 인간적 한계를 넘는 ‘초인’의 경지로 자신을 끌어올린다면, 이슬람 자살특공대는 한갓 신의 뜻을 실현하는 ‘소도구’로 자신을 끌어내린다. 가미카제가 극단적인 ‘우월함’의 미학을 실천한다면, 이슬람 자살특공대는 극단성적인 ‘겸손’의 도덕을 지향한다. 가미카제가 ‘불멸의 명성’을 얻어 세속에서 영원성에 도달한다면, 이슬람 자살특공대는 대가로 신으로부터 천상에서 영원한 생명과 낙원을 약속받는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미학이나 윤리를 전쟁의 원리로 도용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는 한 가지다. 과연 자살공격은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그것의 가치는 그것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잘 아는 법. 가령 사담 후세인은 텔레비전에 나와 “순교를 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렇게 외치던 후세인 자신을 보자. 순교할 절호의 기회가 왔는데, 그 천금 같은 기회를 어디 활용하던가? 그의 천국은 이미 지상에 있기에 따로 천국에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순교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며 천국을 팔아먹던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엘리야처럼 병거를 타고 산채로 승천을 한 것일까? 진중권/ 문화평론가

<지구를 지켜라!>를 격찬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조사는 끝났소. 당신은 당신의 탁월한 상상력을 원망하도록 하시오. 때때로 탁월한 것들은 단지 그 탁월성 때문에 희생되기도 하는 것이오. 그 탁월함의 내용이야 다르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미 그런 희생을 받아왔소.” - 이승우, <수상은 죽지 않는다> 거대한 광기는 그에 걸맞은 정교한 논리를 필요로 한다. 즉 그것은 스스로의 환상을 실현시킬 하나의 세계를 필요로 한다.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러한 세계이다. 근래 보기 드문 최고의 데뷔작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생각건대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여러 장르들의 혼합과 인용을 통해 구성되는 하이브리드(hybrid) 장르들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 또한 <지구를 지켜라!>는 영화광적 감수성과 B급 취향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경박한 영화광들에게 경쟁의식에 사로잡힌 숨은그림찾기의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그러한 영화도 아니다(그런 쪽에 각별한 취향을 지닌 이들이라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이 어서 빨리 개봉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쎄븐>과 <양들의 침묵>이 보여주는 연쇄살인범의 밀폐된 공간, 의 모노리스, 식의 ‘우주적’ 음모론 내지는 <미션 투 마스> 후반부에 보인 외계생명체에 의한 진화가설, <미저리>의 캐시 베이츠, <길>의 젤소미나와 <블레이드 러너>의 위안부 레플리컨트 프리스 등- 이상 언급한 것들은 특별히 숨은그림찾기의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이 아니다- 을 <지구를 지켜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해서 이 영화를 위와 같은 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경솔하게 ‘지구인’ 병구의 광기어린 상상을 외계인-적들의 손에 넘겨주는 꼴이 된다. 우리의 현실을 이 영화들처럼 바라보는 것은 병구이며, 그가 현실을 오직 이 영화들을 통해서만 바라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감독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결코 혼합장르, 장르의 패러디가 아니며 오히려 지금/여기/이곳의 우리에 관해서는 오직 장르를 통해서밖에는 사유할 없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영화인 것이다. 그 둘을 혼동하는 순간 오해가 생겨난다. 그런 까닭에, 몇 가지 피상적인 유사성을 근거로 장준환을 팀 버튼에 비견하는 것은, 비록 찬사라 할지라도 정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일 만한 것이 못 된다. 팀 버튼의 영화에서는 그러한 안타까움을 결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환상과 망상은 다르다 프로이트는 <환상의 미래>에서, 환상의 특징은 인간의 원망에서 유래한다는 점에 있고 이 때문에 정신병적 망상과 비슷하지만 반드시 허위이거나 실현불가능하고 현실과 모순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현실과의 모순을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취하는 망상과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또한 환상은 증거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지구를 지켜라!>를 떠받치고 있는 환상의 구조를 정확하게 설명한다. 환상을 통해 완성된 병구의 세계에서 우리는 그 기저에 놓인 원망을 발견한다. 원망 없이도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두명의 인물은 ‘줄 위의 젤소미나’ 순이 그리고 강 사장이다. 이들 가운데 순이는 어쩌면 돈키호테 같은 병구의 환상이 만들어낸 산쵸 판사와 둘시네아의 결합물 같은 존재이다. 돈키호테의 환상이 기사도 소설의 세계 속에서 인물들을 재창조한다면, 병구의 환상은 장르영화의 세계 내에서 인물들을 재창조한다. 순이는 멜로드라마의 세계에서 연인을 떠나가는 비련의 여인이 되는가 하면, <블레이드 러너>의 프리스처럼 병구를 뒤쫓는 김 형사를 공격하기도 하고, 마침내는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처럼 로봇팔에 매달린 채 죽어간다. 각각의 장면들은 그녀의 고통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병구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이며 초라하지만 애처로운 상상력의 결과일 수도 있다. 이 장면들이 웃음과 슬픔 사이에 놓인 기묘한 감정을 끌어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정교한 논리 위에 구축된 거대한 광기는 하나의 세계를 필요로 하고 반드시 만들어낸다. 광부로 일하다 죽은 아버지, 수업료를 내지 않는다고 매질을 가하던 선생, 살인미수로 감방신세를 지게 된 자신을 폭행하던 교도관, 노동쟁의에 참가했다가 구사대에 맞아 죽은 애인, 화학공장에서 일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중독증상으로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 이 모든 일에 대한 단 하나의 원인을 찾아 내려 시도하는 순간 병구의 강박적인 외계인 ‘연구’는 시작된다. 한때 우리는 여러 불합리와 모순의 원인을 찾기 위해 구조 속의 한점, 특별히 인격화된 요소에 집중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시기는 지나갔고 ‘모순의 중층결정’은 상식이 되었지만, 더불어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회의주의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알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추적하던 김 형사에게 던지는 병구의 말,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고통받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물음은 정확히 그런 식의 패배론을 향한 공격인 것이다. 이때 음모론은 회의에 맞닥뜨린 이들이 마지막으로 도달하게 되는 숭고한 광기이다. 병구는 다시 한번 구조 속의 한점, 인격화된 원인을 찾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붓고 마침내 외계인/지구인이라는 ‘황당무계한’ 이항대립의 구도를 통해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 이른다. 병구는 안드로메다의 PK-45 행성에서 날아온, ‘로얄분체교감유전자’를 이식받은 유일한 외계인인 ‘꾸오아아떼꾹’(quoaaktekguk)을 납치, 그를 통해 외계인 모선의 왕자와의 교신을 시도하고자 한다. 병구는 스스로가 완성한 세계로 ‘현실’세계에 맞서는 전투를 시작한다. 병구가 노리는 것은 노조간부 폭행교사, 수뢰, 섹스 스캔들, 주가조작의 장본인-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 혐의는 있으나 증거불충분과 완강한 부인을 무기로 풀려나곤 하는- 인 유제화학의 사장이자 경찰총장의 사위로서의 강만식이 아니라, 고통을 강하게 겪었기 때문에 좀더 수월하게 유전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병구의 어머니를 실험대상으로 삼은 외계인 꾸오아아떼꾹이다. 병구에게 있어서 강만식으로서의 그의 비리는 자신이 외계인임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저지른, 병구의 말마따나 ‘너무도 평범한’ 행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이것은 정말이지 너무 평범한, 그리고 진부하기까지 한 설정이다. 하지만 그걸 진부하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우리 또한 외계인의 위장에 속아 넘어가고 말게 되기 때문이다. 병구가 병원에서 훔쳐내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환각제의 양은 그의 원한의 강도에 비례하며, 이에 대해 외계인은 그 원한의 원인을 자꾸 불가해한 구조 탓으로 돌리고자 한다. “너희 어머니 죽은 게 나 때문이야?” 그토록 진부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병구는 다시 “화만 내면서” 살 도리밖에는 없다. 연대감을 가져라 진부하다고 말하는 우리를 향해,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는 그 거대한 광기의 힘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난 미친 게 아니야!” 병구의 경고대로, 우리는 아직 외계인의 텔레파시를 차단하기 위한 모자를 벗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진부해 보이는 비리 자본가 강만식을 외계인으로 전환시켜서라도 증오의 힘을 간직해야 한다. 우리의 영화가 모종의 패배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지구를 지켜라!>는 환상의 힘으로 거기서 가볍게 빠져나온다. 즉 전략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전술의 급진적 변화를 시도한다. 이 환상의 전술을 가능케 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창조주는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 오직 연민의 시선을 던질 뿐이다. 마침내 구출된 강 사장이 차에 오르기 전 잠깐 뒤돌아 서서 던지는 시선은 바로 그러한 연민의 시선이다. 그것은 외계인의 시선이며, 이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존재할 자격이 없는 자의 시선이다. 나는 앞에서 병구의 환상 속에 원망이 없이도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인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강 사장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병구의 환상을 마침내 자기의 것으로 만든다. 외계인이기를 거부하고 비리 자본가 강 사장으로서 자기규정을 함으로써 병구의 환상과 경쟁하던 그가 외계인이기를 받아들이는 순간, 병구는 도리어 혼란스러워진다. 그래서 이 순간은 자꾸 지연된다. 이 ‘영악한 외계인 새끼’는 병구의 환상을 내러티브화한다. 모든 것은 안드로메다 PK-45 행성의 75대조 선왕이 푸른 별 지구를 발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이어지는 그의 ‘우주적’ 규모의 설명은 병구조차 아연실색하게 만들 지경이다. 병구가 자신의 어머니만이 아닌 ‘인류’를 생각하게 되면서 그의 전투는 패배쪽으로 향해가게 된다. 외계인들의 모선에 오른 강 사장이 검버섯이 돋은, 귓볼이 긴 외계인 꾸오아아떼꾹으로 변화되고 결국 지구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결말부는 죽어가는 병구가 만들어내는 최후의 환상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는 그토록 불편함을 느껴야 할 이유가 없다(사실 강 사장은 정말 외계인이었다. 영화 초반부, 대리운전자가 몰고 온 차에서 내리던 만취상태의 강 사장이 내뱉은 말을 기억하는가? 잘 들어보면 <지구를 지켜라!>에서 그가 최초로 외계인의 언어로 말하는 때가 바로 이때였음을 알게 된다. 그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 말 뒤에, 그는 건물을 손가락으로 한번 빙 둘러 가리키며 “맞아… 이거 다 내가 만들었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강 사장은 화학공장 사장이지 건축업자가 아니다. 그 말에 담긴 것은 창조주의 자부심이다). 외계인이 병구에게 들려주었던 ‘우주적’ 규모의 내러티브를 가능케 했던 보편적 휴머니즘은 급기야 (역시 ‘우주적’ 규모의) 생태주의를 원용한 종(種) 말살론에 이른다. 따라서 이것은 병구의 환상이 아니라 외계인의 기획이다. 억압받는 자들의 상상력을 모방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권력의 속성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이 마지막 장면만큼은 그 의도를 거슬러서라도 ‘거꾸로 뒤집어’ 읽어야 한다. 좀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비리 자본가 강만식이 ‘우주적’ 근심을 품은 외계인 왕자 꾸오아아떼꾹이 되었다고 해서 착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 혹은 <지구를 지켜라!>의 결말을 미이케 다카시의 <데드 오어 얼라이브>식의 냉소적인 자멸극으로 보아서도 곤란하다. 그런 자멸극을 볼 때만큼은 얼마든지 웃을 수 있었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다. <지구를 지켜라!>는 사실 평가가 아니라 연대감을 요구하는 영화다. 이 황당무계하지만 탁월한 상상력이 그저 재기발랄한 농담으로 치부되고 만다면 그건 슬픈 일이다. 차라리 병구의 광기를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편이 낫다. 여기에는 세계관을 건 전투가 있으며 아직 저들을 향한 증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꼭 필요한 선언, “우리는 지구인이다!” 우리는 절대로 당신들의 죄의식을 대신 걸머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리보는 <엑스맨2> X - Men2 [1]

<엑스맨2> LA 시사기 돌연변이들의 고뇌와 반란, 그리고 진화 2000년 여름 블록버스터 레이스에서 <엑스맨>은 영광의 다크호스였다. 알록달록한 스판덱스를 입은 영웅의 발차기를 예상했던 우리의 허를 찌른 이 마블 코믹스 영화는 액션블록버스터 무리 가운데 우뚝했다. 3년만에 1편이 착륙한 자리에서 2편이 시작된다. <엑스맨2>의 새로운 진화가 궁금하다. 그래서 전세계 동시 개봉을 앞두고 김혜리 기자가 미국 LA으로 날아갔다. - 편집자 LA=김혜리 vermeer@hani.co.kr 스톰(날씨를 다스리는 엑스맨)에게 무슨 불쾌한 일이라도 있는 걸까? 26개국 기자들을 초청한 <엑스맨2>의 시사 및 회견이 열린 4월13일의 LA는 종일 궂은비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캘리포니아 하면 비치 보이즈부터 상상했던 방문객의 시무룩한 눈이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순간 번쩍 뜨였다. 후줄근한 검정 점퍼에 때묻은 운동화, 소품 조수쯤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 <엑스맨> 시리즈의 사령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다. 폭스의 마케팅 부서 직원이 이튿날 인터뷰 스케줄을 다짐하는 중이다. 푸석한 얼굴로 끄덕거리던 감독이 갑자기 펄쩍 뛴다. “그런데, 나 아마 내일 8시 반에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아침 8시 반에? 저런, 무슨 일이죠?” “어어… 무슨 기술적 문제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기억이 안 나네.” 전편보다 아무리 촬영 스케줄이 늘어나고 예산이 늘어났다 해도, 일찌감치 못박힌 세계 동시개봉 스케줄은 변함없이 감독에겐 목에 감긴 쇠사슬인 모양이다. 과연 브라이언 싱어의 과로는 보상받았을까? 돌연변이들이 뭉쳤다 >> 2000년 여름 블록버스터 레이스에서 <엑스맨>은 영광의 다크호스였다. 알록달록한 스판덱스를 입은 영웅의 발차기를 예상했던 관객의 허를 찌른 첫 장면- 수용소에 감금된 유대 소년의 비명이 나치의 철조망을 엿가락처럼 우그러뜨리는 프롤로그부터, 이 마블 코믹스 영화는 액션블록버스터 무리 가운데 우뚝했다. 특수효과가 캐릭터를 시중들고, 성숙한 갈등과 적당한 위트가 어울린 이 영화에서 블록버스터 리그치고는 검소한 7500만달러의 예산은 알차게 쓰였다. 브라이언 싱어는 놀랍게도 전작 <유주얼 서스펙트>의 앙상블 연출력과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의 주제의식을 폐기하지 않은 채 초능력 돌연변이들의 화려한 판타지 속으로 들어갔다. 싱어 감독은 기본기를 인정받아 메이저 스튜디오에 고용된 선댄스 키드가 아니라, 거대 스튜디오의 자산을 취미에 맞게 활용하고 있는 행운아처럼 보였다. <엑스맨2>에서 전선(戰線)은 이동한다. 1편에서 돌연변이 등록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인간을 무력으로 절멸시키려는 매그니토와 인간과 공존을 모색하는 자비에 교수가 말콤X 대 마틴 루터 킹의 구도로 맞섰다면, 2편은 비범한 이족을 멸종시키려는 인간의 도발에 돌연변이들이 일시적 연합전선을 형성해 맞선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건 뮤턴트이건 전혀 ‘유주얼’하지 않은 용의자들이 잔뜩 등장한다. <엑스맨2>는 1편이 착륙한 자리에서 그대로 시작한다. 기억을 찾아 캐나다로 떠난 울버린은 아직도 여행 중이고 자비에 ‘영재’학교의 학생들은 자연사 박물관에 견학을 갔다가 초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소동을 일으킨다.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준 스톰. 2편에서 더 큰 활약을 보인다.(왼쪽) 뮤턴트를 멸시하고 두려워하는 보통 인간들의 가시돋친 시선이 로그와 그녀의 남자친구 아이스맨, 불을 조작하는 파이로를 포위한다. 한편 백악관에서는 대통령 암살 미수범이 ‘돌연변이 해방!’이라는 슬로건이 적힌 단도를 남기고 달아나 뮤턴트에 대한 사회의 공포와 적개심이 극에 달한다. 이처럼 <엑스맨2>는 요새와 학교로 제한됐던 1편의 무대를 처음부터 벗어난다. 브라이언 싱어가 인간 대 돌연변이의 종족대결로 갈등이 평면화하는 위험을 무릅쓰며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가족과 또래집단, 사회라는 좀더 넓은 평면에서 엑스맨들이 처한 위치다. 돌연변이에게 대응하려는 미국 대통령 앞에, 음지에서 일해온 전직 장성 겸 과학자 윌리엄 스트라이커(브라이언 콕스)가 등장해서 비책을 제시한다. 돌연변이 기지인 자비에 학교를 비밀리에 초토화하자는 제안이다. 그는 뮤턴트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약물로 선한 돌연변이 나이트크롤러에게 암살을 교사하고, 감옥의 매그니토에게 정보를 빼내 포위망을 좁혀온다. 1편 말미에 매그니토가 자비에에게 던졌던 “그들이 네 아이들을 공격해오면?”이라는 물음은 끔찍한 현실이 된다. 진과 스톰이 나이트크롤러를 찾아 급파되고 교수와 사이클롭스가 매그니토를 면회간 사이, 돌아온 울버린과 주니어 엑스맨들만 남은 학교를 스트라이커의 부대가 급습한다. 특별한 아이들이 무방비한 상태로 잠든 기숙사에 테러진압 부대가 들이닥치는 장면은 관객에게 대단한 자극과 긴장을 준다. 격노한 투사 울버린은 “오랜만이다”라는 스트라이커의 소름끼치는 인사에 다시 지옥 같은 과거를 대면하게 된다. 세레브로(자비에 교수가 텔레파시를 증폭하는 장치. 모든 돌연변이, 모든 인류의 뇌파를 움직일 수 있다)를 통한 돌연변이 일망타진을 꾀하는 스트라이커는 세력규합을 위해 도망치는 울버린과 로그 일행을 뒤쫓지 않는다. 스트라이커의 목적은 세계 지배나 지구 멸망이 아니라 돌연변이의 홀로코스트다. 세상을 향한 야심이 아닌 개인적 원한에 뿌리를 둔 그의 악의는 깊고 집요하다. 레이디 데쓰스트라이크의 급습으로 스트라이커의 포로가 된 사이클롭스.(사진 왼쪽)진 그레이와 사이클롭스 커플의 사랑싸움? 스트라이커의 세뇌는 연인의 혈투를 부른다.(사진 오른쪽) 강력해진 액션, 진해진 로맨스 >> <엑스맨2>는 97분가량으로 다소 미진하게 끝났던 <엑스맨>보다 20분 이상 길고, 스토리는 1편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말대로 이제 와서 보면 1편은 한 영화의 긴 전반부를 잘라서 독립시킨 듯한 느낌이다. 2편 역시 바른 마침으로 완결된 인상보다는 기나긴 이야기의 한마디를 임의로 끊어낸 인상이다. 등장인물 머리 수나 에피소드의 부피면에서 성경이 부럽지 않은 만화 <엑스맨>의 40년사를 생각하면 놀랍지 않다. 주역 엑스맨들의 특출한 재능과 콤플렉스를 이미 소개한 터라 <엑스맨2>는 그것을 바탕으로 한 액션과 유머로 곧장 돌입한다. 전편을 보지 못한 관객이라도 재치있는 팁들을 통해 인물과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지만, 만약 전편을 보았다면 잠재된 서스펜스와 조크를 처음부터 100% 즐길 수 있다. <엑스맨>을 기억하는 관객은 이제 상황만 보고도 엑스맨 중 누가 능력을 뽐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엑스맨들이 곤경에 처하면 머릿속으로 분주히 직소 퍼즐을 맞추는 즐거움이 있다. ‘여기서 로그가 파이로의 성미를 다스리는 동안, 미스틱이 변신해서 잠입하고 아이스맨이 강을 얼린 다음 진이 염동력으로 빙하를 날리면?’ 하고 상상하는 것이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모노노케 히메> 지브리 스튜디오 제작기 [3]

콘티 변경 담쟁이 덩굴과 키 큰 나무들로 둘러싸인 조용한 작업실 `지브리`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뜨거운 바람`이라는 이름처럼 엄청난 산고를 거쳐 <모노노케 히메>를 내놓았다 97. 1. 6일 | 어젯밤 11시30분, 드디어 <모노노케 히메>의 그림 콘티가 완성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룻밤 더 생각해 일부를 수정한다. 정말로 완성이다. 어제 1월5일은 미야자키 감독의 56살 생일이다. 미야자키 감독은 스탭들의 축하 인사에 “55살 안에 완성하고 싶었다”며 약간 시무룩해진다. 아침부터 그림 콘티의 카피를 시작하려 했으나 카피기의 상태가 안 좋다. 점심시간 직전 드디어 카피기가 고장난다. 수리 기사를 불렀다. 이것은 ‘모모노케(원령)’의 저주가 아닐까. 완성한 그림 콘티를 베이스로 러닝타임을 계산해본 결과 130분을 넘어버렸다. 엔딩도 넣지 않았는데 말이다. 으아… 스즈키 프로듀서에게 뭐라고 말하나. 97. 1. 8 | “콘티, 이대로 괜찮을까?” 스즈키 프로듀서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캐릭터마다 공격을 시작한다. 생각에 잠겨 있던 미야자키 감독이 “좀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끝내는 방법이 생각났다”며 콘티 변경을 선언한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 97. 1. 10 | 미야자키 감독의 콘티 변경에 오히려 러닝타임과 컷 수가 늘어났다. “프로듀서가 컨펌을 냈기 때문에 괜찮다” 말하고 있지만, 이 이상 늘어나면 스케줄이 문제다. 미야자키 감독이 “늘어난 부분의 레이아웃을 그려야 한다”며, 15컷 정도 그려낼 수 있는 에니메이터를 찾아보라고 지시한다. 이전에 지브리의 작품을 도와줬던 I씨에게 연락을 한다. “그게… 좀… 시간이 없어서….” “다른 작품을 그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좀처럼 넘어오지 않는다. 해당 콘티를 보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하기에 미야자키 감독을 재촉해 러프한 콘티를 완성한다. 내일 그와 만나는 자리에 미야자키 감독이 동행하기로 했다. 97. 2. 14 | 이대로는 도저히 동화가 완성될 것 같지 않다. 우선 한 사람이 어느 정도의 페이스로 끌어올리면 될지를 알리는 안내문을 만든다. 최근 ‘인생에 지친 사람들’의 아지트가 돼가고 있는 캐릭터 상품부를 미야자키 감독이 급습한다. “이제 좀 방을 정리해!” 당황한 사람들이 갖고 있던 만화책을 버렸지만 누군가 숨기고 있던 자동차 책이 걸렸다. “이것은 일의 성격상 필요한데….” 그가 필사적으로 변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97. 2. 16 | 두 시간 반 거리를 늘 걸어다니는 미야자키 감독도 오늘은 비 때문에 차로 출근했다. “<에반게리온> 극장판 2부 제작에 들어가다….” 신문 기사를 본 미야자키 감독은 “괴롭겠구나…”라는 말로, 그들이 짊어지게 될 창작의 고통을 예감한다. 바깥에서 도와주고 있는 원화맨이 잇따라 원화를 갖다주는데, 레이아웃 작업이 따라가지 못해 미야자키 감독이 괴로워하고 있다. 97. 3. 1 | 러시 체크가 있다. 작화 추가, 특수효과 수정 등등 리테이크해야 할 것이 제법 많다. 지난해부터 매주 토요일에 신체 교정 및 지압사가 방문해 하루 대여섯명씩 치료하고 있다.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를 비롯한 스탭 대부분은 치료 직후엔 나아지는 것 같다가도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금방 피곤한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97. 3. 7 | 지각 상습범 E씨가 1시가 돼도 출근하지 않자, 동료 K씨가 E씨의 책상 위에 “정신차려! 회사도 그만둬!”라고 쓴 메모를 붙여놓았다. 미야자키 감독을 흉내내서 한 일이었다. 메모를 본 E씨의 얼굴이 유령처럼 창백해졌다가 K씨의 장난임을 알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C파트의 커팅을 두고, 구로다가 마지막 배경장면에 고전하고 있다. 일단 동화 촬영은 했지만 어떻게든 기한에 맞추도록 하고 싶은데…. 예상보다 매수가 늘어났기 때문에 창고에 여유분으로 있던 셀을 가지러 간다. 많이 사놓길 잘했다. 97. 3. 25 | 아침 9시경 지브리의 북쪽에 있는 집에서 불이 났다. 지붕까지 불길이 올라오는 걸 보니 굉장한 화재다. 소방차가 달려온 지 15분쯤 뒤엔 거의 진화가 된다. 작업에 뚜렷한 진전이 없어 답답해하던 미야자키 감독이 중얼거린다. “지브리도 같이 타버렸으면 좋았을걸.” 원화 체크 완료 97. 4. 25 | 미야자키 감독의 원화 체크가 완전히 끝난다. 할 일이 갑자기 없어져버린 미야자키 감독은 선촬영의 준비를 위한 채색을 시작한다. 즐거워 보인다. 바쁜 작업 사이사이에 취재에 응하고 있다. 97. 5. 13 | 0일분 정도 쌓였던 제작 실적표를 한번에 채웠다. 외주에 부탁한 완성품의 남은 매수가 아직 5천장 정도 있다. 단, 1컷에 평균매수가 130매를 넘기 때문에 컷 수로 하면 40컷도 안 된다. 금방이다. 97. 5. 31 | 11시부터 러시 체크. 미야자키 감독은 텔레센에 가기 전에 체크를 끝냄.완성된 러시를 다시 교체. 키리 스튜디오의 이세쓰가 인사차 회사에 옴.CG실의 작업이 전부 종료. CG룸에서 스페셜 건배!!! 97. 6. 7 | 몇몇 스탭들이 음악이 깔린 러시를 함께 감상한다. 디지털6채널의 음향은 굉장히 박력이 있다. 음악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깔리는 등 멋있기까지 했다.한편, 장기간의 텔레센을 한 것 때문에 예상대로 미야자키 감독, 스즈키 프로듀서, 와카바야시 등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스탭들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에 과자를 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게임도 하고 하는 모습들이 무척 새롭게 느껴졌다. 이 얼마만의 여유인가. 롤3, 4의 최종 믹스 종료. 97. 6. 12 | 아침 9시에 세야마 편집실에 들러서 음향의 네거를 맞추는 데 필요한 기자재를 차에 싣고 이마지카를 향해 간다. 10시 좀 넘어서 도착했으나 전체적인 작업이 약간 늦어져서 11시 넘어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최종 원판 짜맞추기를 새벽 3시까지 했던 세야마는 “30분 더 잘 수 있었는데”라고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마지카에서도 11시부터 컷1, 2의 옵티컬의 재체크. 이번에는 확실하다! 97. 6. 14 | 한숨을 돌린 탓일까, 미야자키 감독은 방에서 원고를 쓰기도 하고, 소파에서 낮잠을 즐기기도 하고, 독서도 하고 있다. 미술팀의 쫑파티가 있었다. 97. 6. 17 | <모노노케 히메>의 완성 쫑파티가 기치조지에서 행해졌다. 이 작품의 관계자 300여명이 몰려들었지만, 준비한 선물도 부족하지 않았고, 스즈키 프로듀서의 행사 진행도 완벽했다. 쫑파티까지 무사히 종료.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97. 6. 20(금) | 미야자키 감독과 스즈키 프로듀서는 작품 홍보를 위하여 오늘 출발. 스튜디오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지브리에도 태풍이 상륙해서, 나무가 쓰러지고 있다. 안전을 생각해서 동네 소방서, 인근 주민들의 협력으로 위험한 나무를 잘랐다. 결국 톱까지 동원하게 되었다. 역시 살아 있는 나무를 자르는 것은 쉽지 않고 또 옳지 않은 일…. 7. 6. 25(수) CG실에 기자재를 반입하다. 모노리스 같은 거대한 장치가 설치되었다. 이것은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기록하고 각 컴퓨터를 백업하는 장비다. 마감 때 모습과는 딴판. 마치 사무실처럼 컴퓨터가 배치된 풍경이 낯설다. 유락초 마리온 극장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미야자키 감독을 비롯해 스탭과 목소리 연기자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사진제공 웍스튜디오 * 이 제작기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제공한 내용 중 일부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 원고지 300매 분량의 원문은 지브리 스탭들이 함께 썼으며, 제작실 스탭인 다나카 가즈요시가 정리 책임을 맡은 것입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제6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1]

이 한국코닥주식회사와 함께 주최하는 코닥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제도가 6회를 맞았다. 올해는 이 제도의 수혜작들을 꾸준히 소개해 온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 주최사로 처음 합류해 시행했다. 총 120편의 응모작 중에서 지원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김성숙 감독의 <세라진>, 원신연 감독의 <빵과 우유>, 박은교 감독의 <자전거 경주> 등 총 3편이다. 올해의 심사위원인 정성일(영화평론가), 문승욱(영화감독), 김소희(영화평론가, <씨네21> 기자), 홍효숙(부산영화제 와이드앵글 프로그래머)씨가 만장일치로 선정한 작품들. 함께 최종심에 오른 다른 세편 <소풍>(임재수), <새 신발>(정광준), <흡연 모녀>(윤은정)에는 부분 지원의 혜택이 돌아간다. 당선작 세편에는 35mm 필름 1만 피트를 제공하고, 이 필름의 무료 현상과 인화, 35mm 카메라 장비 대여, 편집 작업료 할인, 텔레시네 작업료 할인 등의 지원을 하게 된다. 이들 지원작 세편은 2003년 말까지 완성해야 하며,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 출품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심사평 : 개성과 새로움, 그리고 제작 가능성을 봤다 120편의 응모작 가운데 시나리오를 중심에 두고 제반 자료들을 검토한 끝에 6편이 최종심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주요하게 고려한 요소는 단편영화다운 구성력, 개성과 새로움, 현실적인 제작 가능성 등이었다. 기괴한 상상을 통해 충격을 주려는 시도, 자신의 일상을 다소 안일한 기분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하나의 유행이 아닌가 생각된다. 당선작으로 올린 김성숙의 <세라진>, 박은교의 <자전거 경주>, 원신연의 <빵과 우유>는 감독이 그 작업을 통해 하려는 바가 분명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의 경험이나 기억, 일상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여타의 응모작들과 크게 다를 바 없으나, 그 경험의 본질을 천착하면서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라는 형식과 스타일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진전되어 있다는 점이 뚜렷하게 식별되었다. 2차 면접심사 과정에서도 이같은 사실이 분명해서 당선작을 내는 데 심사위원 전원이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함께 후보로 올라온 작품 중에 정광준의 <새 신발>은 가난한 집안의 어린 막내아들을 절에 출가시키는 애틋한 정경을, 임재수의 <소풍>은 소풍가기 전날 어린 아들과 어머니가 연출하는 따뜻한 기억 한 토막을 묘사했다. 유은정의 <흡연모녀>는 가족 몰래 담배를 피우는 엄마에 대한 어린 딸의 미묘한 공감과 모녀의 각성을 다루었다. 다만 세편 모두 연출에 대한 구상을 좀더 진전시켜야 하는 단계라고 판단했다. 나름의 성취와 고통의 흔적을 담고 있는 응모작 모두로부터 싱그러운 에너지를 전달받았다는 점에 대해 심사 역을 맡은 사람으로서 감사드린다.

제5회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 발표 - <플레쉬>의 이준일 [2]

잘된 스릴러에는 인간이 있다가작 <플레쉬> 작가 이준일 성명 이준일. 경성대 무역학과 졸업. 그러나 전공과목 학점보다는 교양으로 듣던 연극영화과 수업 성적이 월등히 높았음. 32살(69년생) 되던 해에 더이상 좋아하는 영화를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고 판단, 급기야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둠. “영화 마니아”로서, 부산 토박이로서 글을 써오던 중 2001년 ‘시나리오 뱅크’ 공모전에 스릴러 시나리오 <하드코어>가 당선되어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함. 그리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 “잘 풀릴 줄 알고 올라왔는데”, 현재 그의 표현대로라면, “재야 시나리오 작가”군에 속해 있음. “보통 3∼4일 정도면 화장실도 안가면서 한편을 써내고, 쓰고 나서도 수정을 잘하지 않는 편”인 천재형 작가. 이미 30여편의 습작들을 써오며 정련해온 바, “이제는 좀 차분해졌고, 뭐가 뭔지 알 것 같다”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음. 그동안 써온 습작 중 한편을 공모준비용으로 다듬은 것이 이번 막동이 시나리오의 가작 당선 <플레쉬>. 크고 작은 충무로 각색 작업에 잠깐씩 참여해본 적은 있지만, “내 작품 하나 쓰고나서 각색해야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인 각색 제의는 모두 거절. “이제부터는 죽을 때까지 영화만 할 거고”, “이상적인 최종 목적지는 아니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감독도 해볼” 생각을 갖고 있음. 주로 어떻게 소재를 결정하나. 사실 나는 처음부터 글쟁이는 아니었다. 영화마니아 출신이다. 그래서 대사에도 약한 편이다. 하지만,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때가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그 영상을 글자화로 옮기는 거다. 그럴 땐 텔레비전도, 신문도 보면 안 된다. 글하고 나하고의 관계만을 생각하는 거다. 인물과 내가 친구처럼 느껴질 때까지. 그게 내 스타일이다. 시네필로서 오히려 상상력에 제한을 받는 경우는 없나.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더 독특해야 돼,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2년 동안 서울에 있으면서 고민한 부분도 그거다. 내가 원래는 글쓰는 성향이 좀 어둡고 컬트적이다. <환상특급>류의 영화들이 내 성향에 맞는다. 하지만 식상하다고 재미없는 건 아니다. 그걸 변주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는 그런 식상함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지금은 관객을 먼저 생각한다. 특히, 장르영화로. 시나리오 <플레쉬>는 스릴러다. 왜 이 장르를 택했나. 스릴러 장르를 원래 좋아한다. 스릴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영화 <이중간첩>도 좀 재미있었고, 요즘 본 것 중에는 <돈 세이 워드>, 그리고 히치콕은 지금 봐도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플레쉬>는 한 남자의 상황이 먼저 떠올랐다. ‘만약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상상했다. 원래의 내용은 약간 코믹하고, 굉장히 복잡한 편이었다. 3시간 정도 분량이 될 수도 있었다. 애초 계획에는 ‘반전’도 중반쯤에 나왔는데, 분량이 길어지면서 뒤에 보여주기로 했다. 주인공 영우의 이야기를 좀더 심도있게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긴 하다. 공포 요소도 섞여 있는 것 같다. 맞다. 내가 귀신영화에 관심이 많다. 단순히 귀신이 나온다는 게 아니라, 귀신의 존재감, 그렇게 되는 이유 등을 생각하며 귀신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흐름상 대립각을 설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플레쉬>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라스트신. 나한테는 반골기질이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을 보고도 남들은 다 이상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마지막 장면이 참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는 어떤 시나리오를 쓰고 싶나. 각색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거의 거절했다. 중간에 엎어진 것들도 많았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원하는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 요즘에는 코미디도 한편 쓰고 있다. 아무래도 스릴러가 편하긴 하다. 멜로는 참 막막하고.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된 스릴러에는 인간이 다 있다. 글 정한석 mapping@hani.co.kr·사진 이혜정 socapi@hani.co.kr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도쿄] 짱구의 역습

어른도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의 최신작 <짱구는 못말려: 폭풍우를 부르는 영광의 불고기 로드>(クレヨンしんちゃん: 嵐を呼ぶ榮光のヤキニクロ-ド)가 4월19일 일본 전역에서 개봉됐다. 개봉 주말부터 좋은 성적을 거둔 이 작품은 총흥행수입이 20억엔에 달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에 걸쳐 사장을 중심으로 회사원의 생활을 그린 <사장 시리즈>, 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코미디언 그룹인 크레이지 캐츠를 등장시킨 <크레이지 시리즈> 등의 코미디 시리즈는 일본영화에 황금기를 가져온 주역. 그러나 69년부터 등장한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가 96년 주연배우인 아쓰미 기요시의 죽음으로 중단된 이후엔 <낚시 바보 일기> 시리즈 등이 그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이 와중에 등장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는 남녀노소를 불문한 폭넓은 관객을 동원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짱구는 못말려>는 성인용 잡지에 연재되던 우스이 요시토의 만화가 원작이지만, 텔레비전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어린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고, 93년에 극장용 애니메이션 1탄 <액션 가면 vs 하이그레 마왕>이 제작됐고, 그 이후 매년 새로운 극장용 에피소드를 선보이고 있다.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는 1탄의 경우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사랑받았지만, 2001년에 개봉한 9탄 <폭풍우를 부르는 모레트! 어른 제국의 역습>에 이르러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한계를 넘어 좀더 너른 지지와 평가를 받게 됐다. 이 작품은 현대의 문명을 부정하는 조직 ‘어제여 다시 한번’(Yesterday Once More)이 70년대를 재현한 테마파크를 설립하고 어른들을 불러모으려 하자 우리의 주인공 짱구(노하라 신노스케-일명 신짱)가 그들에게 싸움을 건다는 내용으로, 복고풍의 배경과 그 시대에 대한 향수가 어른 관객에게도 크게 어필했다. 2002년에 선보인 <폭풍우를 부르는 압파레! 전국대전투>는 짱구가 전국시대로 거슬러올라가 전투에 휘말린다는 설정의 시대극이었다. 최신작 <영광의 불고기 로드>는 시리즈 중 6편을 연출했던 하라 게이이치가 콘티를, 콘티를 맡았던 미즈시마 쓰토무가 연출을 바꿔 맡은 작품.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해서, 짱구의 가족이 저녁 식사로 불고기를 먹기 위해 악의 조직과 싸운다는 내용이다. <짱구는 못말려>의 트레이드마크인 야하고 썰렁한 개그는 물론, 자전거로 하는 추격전과 액션장면 등이 첨가돼 보는 재미가 더하다. 심플하고 스트레이트한 실사 오락영화가 적어진 이즈음, 일본 영화계에서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는 귀중한 작품이다. 한국의 관객은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변종 호걸들 의리없는 세상으로 귀환하다,<엑스맨2>

■ Story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에 괴한이 침입한다. 인간의 눈에 포착되지 않을 만큼 빠른 움직임, 경호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괴한은 “돌연변이에게 자유를”이라는 구호가 새겨진 단도를 남겨둔 채 사라진다. 암살기도가 있고 난 뒤 돌연변이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돌연변이 전문가 스트라이커(브라이언 콕스)는 문제의 진원지로 사비에 영재학교를 지목하고 나선다. 한편 사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는 대통령 암살미수사건 이면에 정치적 음모가 있음을 간파하고 암살자를 추적, 스톰(할리 베리)과 진(팜케 얀센)을 급파하는 한편 사건의 단서를 얻기 위해 매그니토(이안 매켈런)를 찾아간다. 하지만 엑스맨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비에 영재학교로 스트라이커의 특수부대가 급습한다. ■ Review 묘하게도 <엑스맨>의 슈퍼히어로는 무협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정파와 사파가 대립하고 강호의 고수들이 서로 다른 무공으로 자웅을 겨루는 이야기, 그것은 정작 홍콩무협영화에선 제대로 표현되기 힘든 세계였다. 방대하고 광활한 무협지적 상상력을 가감없이 스크린에 펼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서극의 위대한 실패작 <촉산>이 입증한 대로 그것은 영영 가닿을 수 없는 이상향일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엑스맨>은 흥미롭다. <반지의 제왕>이 그랬듯 <엑스맨> 또한 홍콩무협영화가 시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무협지적 흥분과 쾌락에 근접해간다. 정파와 사파의 대립이 주축을 이뤘던 <엑스맨>에 이어 <엑스맨2>에서 정파와 사파는 일시적 동맹을 맺는다. 정사의 구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위기, 강호의 피바람을 막기 위해 엑스맨과 매그니토가 힘을 합치는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엑스맨>은 무협지와 다르다. 1963년 마블코믹스의 만화 <엑스맨>이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미국에선 ‘백인전용’이라는 간판을 단 술집과 식당이 드물지 않았다. 1편이 사비에 교수와 매그니토가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의 대립구도로 이뤄진 데서 알 수 있듯 <엑스맨>은 미국의 정치, 사회현실을 판타지라는 필터에 걸러 투영한다. <엑스맨2>는 이런 점에서 1편보다 정치적이다. 2편의 오프닝에서 관객은 링컨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 가운데 한 문장을 듣게 된다. “우린 적이 아닌 친구입니다. 열정 때문에 우정이 깨져선 안 됩니다.” 그러나 링컨의 교훈은 현실의 폭력 앞에 무용지물이다. 백악관의 투어가이드가 상냥한 목소리로 감동적인 연설을 이야기하는 동안 대통령 집무실은 아수라장이 된다. 총알보다 빨리 움직이는 돌연변이의 대통령 암살기도, 뒤이어 돌연변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9·11 이후 미국이 아랍인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상기시킨다. 공화당 매파의 우두머리(혹은 이 묘사한 정치가)처럼 보이는 스트라이커가 사비에 영재학교를 소탕하려는 대목 또한 이라크전을 시작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스트라이커는 학교 농구코트에서 튀어나온 엑스맨의 비행기 사진을 보여준다. 빌미가 확보되자 전쟁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현실의 정치역학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엑스맨>의 무기는 따로 있다. <엑스맨2>는 이 프랜차이즈의 진정한 매력이 이야기가 아니라 캐릭터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1편에서 살을 뚫고 솟아나는 칼날이 “매번 아프다”고 말하던 울버린이 같은 운명을 타고난 여인 데스스트라이커를 물리칠 때 느껴지는 상실감, 텔레파시가 점점 강해져 괴로워하던 진 그레이가 홀로 남아 염동력으로 비행기를 떠올릴 때의 희생정신, 목숨이 위험하지만 로그에게 입맞춤하고픈 욕망을 참을 수 없는 아이스맨의 순진한 열정, 강한 존재에 대한 선망으로 매그니토의 제자가 되려는 파이로의 반항심 등 <엑스맨2>는 일일이 돌보기 힘든 수많은 등장인물들에게 한순간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내면 깊은 곳에서 공감을 끌어낼 만큼 충분하지 않다 해도 액션의 리듬을 만드는 데는 부족하지 않다. 1편의 악당 매그니토가 탈출하는 순간 전율이 흐르는 이유도 그것이다. 매그니토는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비에 교수에게 “학교 아이들이 잡혀가는 악몽을 꾸지 않나?”고 물어본다. 그리고 2편에서 매그니토가 예견한 사건이 벌어지자 그는 플라스틱 감옥을 유유히 빠져나온다. 매그니토가 악의 편이라고? 메시아의 재림처럼 위풍당당한 그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낄 때, 그런 선입견은 철저히 무너진다. 동방불패 못지않은 위대한 악당에게 박수를! 재기넘치는 감독 브라이언 싱어는 여기에 촌철살인의 유머를 더한다. 1편에서 엑스맨 복장에 대해 투덜대던 울버린이 이번엔 “이중 누군가는 알 거야”라는 매그니토의 말에 “난 할말 없소”라고 답했다가 핀잔을 듣는다. “자네만 주인공인줄 착각하지마.” <엑스맨> 시리즈의 성격을 드러내는 이런 농담은 울버린이 무기를 버리라는 경찰의 명령에 손마디에서 삐져나온 칼을 내보이며 “그렇게 할 수 없어”라고 답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엑스맨2>의 다양한 메뉴 가운데 액션쪽은 이번에도 남자보다 여자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미스틱은 2편에서 레베카 로민-스타모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며 전편에 이은 우아하고 유연한 몸동작에다 성적 매력의 파괴력을 추가했다. 2편에 새로 등장한 데스스트라이커의 예리한 발차기나 나이트크롤러의 번개 같은 움직임도 미스틱의 강렬한 카리스마에는 미치지 못한다. 프랜차이즈영화가 다 그렇듯 <엑스맨2>도 개봉하면 1편과 비교해서 나은지 아닌지에 관한 여러 견해가 나올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엑스맨2>를 보고나면 이 시리즈가 스펙터클의 규모에선 못 미치지만 이야기와 캐릭터의 무궁무진함에선 <반지의 제왕>에 필적하리라, 확신하게 된다는 점이다. 40년간 발간된 만화가 인기를 유지했던 비결을 <엑스맨2>는 잊지 않고 있다. 1편은 매그니토가 만든 자기증폭장치가, 2편에선 사비에 교수가 만든 세레브로가 강호에 파란을 몰고온 ‘무공비급’이었다. 무공비급이라는 맥거핀을 차지하기 위한 강호 고수들의 격돌, <엑스맨> 시리즈는 거기에서 사랑, 성장, 배신, 질투, 복수의 드라마를 그린다. 할리우드 무협지의 최신판 <엑스맨2>는 동방의 영웅호걸들과 자웅을 겨룰 만한 상대다. 제작자 로렌 슐러 도너 “007 같은 장기 프랜차이즈 꿈꾼다” - <엑스맨> 1편을 만들 때 이미 2편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 영화산업이 예측불능의 비즈니스이긴 하지만 <엑스맨>은 40년에 걸친 스토리와 캐릭터를 갖고 있는 만큼 성공해서 007 시리즈 같은 프랜차이즈를 만들길 희망했다. 본드 시리즈가 15편 넘어서며 시들해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엑스맨12>를 만들고 “자, 우린 할 만큼 했으니 그만 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이미 3편 계약을 맺은 멤버도 있다. -<엑스맨2> 제작에서 가장 큰 도전은. 1편에서 보여준 내용을 반복해 팬들이 식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한편 1편을 안 본 관객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두 가이드라인 사이의 균형이었다. - 현란한 CG가 널린 시대에 만화책이 아직도 인기있는 이유는 뭘까. 미국에서 만화책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누린 것은 2차대전 직전이었다. 슈퍼 히어로를 통해 도피하면서 경찰이나 총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액션을 즐길 수 있는 방편이었다. 할리우드 역시 만화를 통해 액션영화의 새로운 차원을 얻었다고 본다. - 냉전 히스테리는 지금도 테러 등의 계기로 이어진다. 편견과 불관용은 줄곧 존재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당신이 마이너리티라도 사회 속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60년대 태어난 <엑스맨>의 또 다른 재미는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다. 그들은 남자 흉내를 내지 않으면서도 남자들의 엉덩이를 걷어찰 수 있을 만큼 세다. - 캐나다를 로케이션으로 고른 것은 저렴해서인가. 미국 달러의 65% 비용이 들고 세제 혜택도 받는다. 더욱이 눈 내리는 날씨가 필요했다. - 캐스팅이 국제적이다. 해외 시장의 중요성 때문인가. 그것보다 연기력이 우선 기준이다. 수많은 세계의 좋은 배우를 두고 미국 배우에게만 기회를 준다면 어리석다. <엑스맨> 1편은 미국 내 수입보다 해외 시장 비중이 컸다. 기본적으로는 1:1이 평균이지만. 과거에는 스튜디오들이 비미국 배우 캐스팅을 반대한 적도 있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 반전 무드로 다른 나라 관객이 할리우드 보이콧 운동을 벌일 가능성을 염려하는지. 깊이 사태를 인식하며 걱정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일부 멍청한 미국인들 때문에 거대한 반미 의식이 생겨났다. 뭐, 항의할 일은 해야 하지 않겠나. -“미지의 존재에 대한 한 사람의 공포가 불관용을 재난으로 악화시킬 수 있다”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제작노트를 당신의 말과 연결지어도 될까. 나란히 연결해도 좋다. 백악관 상영회를 해보라고? 그들이 원한다면야! LA=김혜리

브라운관 노장들“스크린을 접수하라”

백윤식, 변희봉, 윤여정…. 우리는 이들을 새로 발견했다. 어린시절부터 텔레비전에서 구수한 할아버지로, 잘 나가는 꽃미남으로, 말 끊이지 않는 깐깐한 아줌마로 친숙했던 이들, 지금은 ‘중견’을 넘어 베테랑 탤런트가 되어 있는 이들이 올 한국영화계를 융단폭격하고 있다. 충무로엔 “텔레비전 ‘노인’들의 스크린 역습”이라는 말까지 유행이다. ‘내공’을 갖춘 고수들은 기존의 이미지를 업는 것도, 감초 역할도 사양했다. 새롭고 독특한 영화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가족이라곤 하나도 없는 듯한 젊은 남녀가 나와 뽀뽀만 하던 영화의 시대를 지나, ‘감독영화’라 부를 만한 작품들을 내놓는 비교적 젊은 감독들이 등장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종의 ‘텔레비전 세대’였던 이 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에서 같은 욕지거리를 해도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1급의 연기’를 원했고, 스스로 팬이었던 중견 탤런트들에게서 그 해답을 찾아냈다. 지난달 <지구를 지켜라>의 강만식 사장, 백윤식씨가 던진 충격은 예사가 아니었다. 드라마 <서울의 달> <파랑새는 없다>가 깊이 심어준 인상을 떠올려보라. 그의 연기는 뻔뻔스런 사깃꾼을 할 때도 진짜 악인이라기보다는 참 가진 것 없는 밑바닥 인생의 허풍 같아 연민을 일으키는 구석이 있다. 그 얼굴 때문에 영화를 보며 한순간 강사장이 측은해지려고도 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술에 떡이 된 채 흘리던 외계인의 음성, ‘미친 녀석’ 병구에 끌려가 머리 깎이고 빨간 사각팬티와 레이스 달린 속옷만 입은 채 결사적으로 탈출하려던 절규, 백씨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러닝타임을 꽉 채웠다. “액션부터 시작해서 감정기복이 심하잖아요, 연기자들이 필요로 하는 감정이 다 들어갔더라고. 쭉 해왔던 연기 인생의 정점에서 나를 뒤돌아본다는 느낌이었죠.” 그는 현재 차기작을 검토중이다. “<지구…>는 특별한 케이스였지만 우리 영화엔 중견·젊은 연기자들의 대립각을 세운 작품이 별로 없어요. 우리도 좀 다양해져야 하는데….” 새까만 얼굴에 연필에 침 묻혀 가며 글씨를 힘겹게 써가던 <선생 김봉두>의 최노인이자 <살인의 추억>의 초반부 사건현장에서 멋진 미끄러지기를 보여주는 구식복덕방 주인 같은 구반장, 변희봉씨. 성우로 출발해 1970년부터 연기를 한 그는 텔레비전에선 “대부분 <수사반장>이나 의 도둑놈, 노인, 간첩, 점쟁이역”이었다. 그의 얼굴을 보라. 튀어나온 턱과 눈, 그 눈을 동그랗게 뜰 때의 기이하고 독특함은 작은 텔레비전 화면이 아니라 커다란 스크린에서 본색을 발휘한다. “방송과 똑같은 역만 들어와 절대 영화는 안 찍는다 하고 있”던 변씨는 열렬한 팬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집요한 꾀임에 십수년 만에 <플란더스의 개>를 찍었고 <살인의 추억>까지 인연을 이어갔다. “방송은 순발력이잖아. 영화에 와서 처음엔 밖으로 표현 못했지만 속으로 힘들었어요.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랑 작업한 게 정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요즘 정말 훌륭한 감독들이 많더라고. 난 아무리 영화가 상업적이라도 꼭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감독들에게 그걸 말해요. 조연만 해서 그런가, 수십년이 지난 요즘에야 연기가 뭔지 조금 알 것 같다니까.” 한없이 겸손한 그는 <불어라 봄바람>(장항준 감독)에서 노작가로 변할 예정이다. 완성돼 개봉을 기다리는 <바람난 가족>에서 윤여정씨의 연기는 벌써 소문이 자자하다. 언제나 할 말 다하는 ‘정론직필’형의 그는, 영화 출연 소감을 물을 때도 그랬다. “젊은애들이 왜 영화 하다가 텔레비전 안 하겠다는지 알겠더라고. 영화는 감독이 하루종일 붙잡고 연습시켜 1~2장면 찍잖아. 그거 못하면 연기 관둬야지.” 아버지, 어머니, 시어머니까지 온 가족이 바람을 피우는 이 대담하고 섹시한 가족 이야기에서 그는 평생처음 육체와 감정의 요구를 솔직히 인정하고 바람을 피우는 예순살 여인 ‘홍병한’이 되었다. 윤씨는 억척스런 아줌마이거나, 도시적 여성이거나, 생의 무게에 어깨 돌리던 홀로 된 여인이거나, 아니면 그저 보통의 어머니일 때도 흔한 ‘한국의 어머니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다른 이의 쓸쓸한 인생을 위안하던 그의 연기를 보며, 자기 안의 욕망을 내놓고 말하는 연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도 “맨날 밥상 차리고 눈물 짜는 역이면 안 했을 거야”라고 말했다. 꼽아야 할 이들은 아직도 있다. <살인의 추억>에서 경상도 사투리 진하던 반장 송재호씨, 그가 <이중간첩>에서 악랄한 고문에도 맑은 얼굴로 신념을 지키던 북한 고정간첩역을 했을 때의 존재감은 어땠는가. 비교적 영화에 자주 출연해왔지만 김인문씨도 <바람난 가족>에선 ‘김기영 감독보다 더 변태 같은’ 임상수 감독을 만나 “특유의 하이톤의 쇳소리는 금지당한 채”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식칼’든 김자옥씨나, <오! 해피데이>에서 정말 ‘기∼인’ 육두문자 애드리브를 날리는 김수미씨는 출연시간이 짧은 게 아쉬울 정도였다. 주목할 만한 건 관객의 주요층인 10~20대도 그들에게 환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임상수 감독은 그것을 “정말 좋은 연기를 볼 때 얻는 쾌감일 것”이라 말했다. 그의 말대로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볼 또 하나의 ‘행복한 이유’를 찾은 셈이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말하는 백윤식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가 백윤식씨의 팬이었다며 추천했다. 아, 그렇지, 나도 팬이었는데. 개성이 정말 강한 연기자다. 작업하며 놀란 건 많이 열려 있다는 거다. 배역에 접근하는 것도 젊은 연기자보다 더 분석적이다. 기존의 이미지나 쉽게 갈 수 있는 부분 등 자신의 메리트는 전혀 생각 안 한다. 오히려 버리려고 하더라.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내는 스타일이랄까. 편집할 때 잘라낼 장면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전체 느낌을 보고 계산해서 연기를 배치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초반엔 물론 힘들었다. 그는 테이크 세번 안에 해결하는 연기에 몇십년 동안 익숙했으니…. 본인도 세 테이크 안에 다 뿜어버리니까 여러번 가면 에너지가 좀 떨어진다고 할까, 하지만 금방 적응하더라.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이 말하는 변희봉 변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뜰 때 그 밑에서 조명을 친다, 그 이미지로 <플란더스의 개>의 아파트 관리인 역을 만들어냈다. 그 영화에 혼자 10분 가까이 보일러 김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시나리오로 빽빽하게 2~3장 되는 양을 스님이 불경외듯 줄줄 해내는데 정말 공력이 느껴지더라. <살인의 추억>의 반장역도 애초부터 변선생님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이 작품에 어찌나 애착이 강한지 “봉감독, 이 반장 그냥 죽 가면 안 될까” 말도 하시고, 촬영분이 끝났는데도 현장엘 직접 찾아왔다. 잘 보면 후반부에 그냥 화면을 지나가는 사람 중에 변선생님의 모습이 보일 거다. 지금 세번째 영화의 시나리오를 마쳤는데, 그 영화에도 변선생님을 등장시키려고 한다. 이번엔 선생님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다. <바람난 가족>의 임상수 감독이 말하는 윤여정 병한역은 연기자들이 맡기 몹시 꺼려했다. 텔레비전에선 볼 수 없는, 한국사회에선 금기시하는 이야기를 뻔뻔스레 해대는 주인공인 셈이니. 캐스팅 당시 윤여정 선생님이 1순위는 아니었다. 근데 생각 이상이었다. 첫 촬영날 엄청난 대사를 2~3번 만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게 했다. 사실 난 탤런트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늘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근데 선생님과 작업을 하며 일종의 감동을 받았다. 주요 무대가 텔레비전일 뿐이지, 여전히 새 역할을 꿈꾸고 도전하는, 말 그대로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바로 다음 작품에 역할을 만들어서라도 출연시킬 생각이다. 내가 평생 영화를 만들다면 계속 함께하고 싶다. 김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