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교체불만(交滯不滿)

처방전2 교통체증에 탈진했다면 연휴만 되면 교통방송의 열렬 애청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장거리 여행객(?)들은 연휴가 휴가가 아닌 교통지옥처럼 느껴질 것이다. 차 안에서 장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게다가 믿었던 교통방송마저 뒤통수를 친다면 연휴의 대부분을 도로 안에서 보내야 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실제로 교통방송이 처음 생긴 90년대 초에 우리 가족은 교통방송만 믿다가 서울에서 경상남도 사천까지 가는 데 무려 22시간이 걸린 적이 있다. 여하튼 비행기로 지구 반대쪽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을 내내 차 안에서 보내야 한다는 건 대단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차 안에서 얻은 어지럼증이 가시는 즉시 영화 속의 뻥 뚫린 공간으로 침입해보자. 자동차는 달리고 싶다 답답한 자동차 대신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드라이빙하는 상상을 한다면 <이지 라이더>부터 시작해보자. 영화는 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시원하게 달리는 두대의 오토바이로 시작한다. 원래 ‘이지 라이더’는 ‘늙은 창녀의 기둥서방’이라는 뜻이라지만 원래 뜻이 어쨌건 이들이 ‘easy rider’임은 딱 보기에도 너무도 자명해보인다. 그들이 달리다가 멈추는 경우는 멈추고 싶을 때뿐이다. 사막을 또는 도시를 배경으로 달리는 그들의 주변에 다른 차량이라고는 보이질 않는다. 낮이 밤이 될 때까지, 도로는 마치 그 둘을 위해서 만들어진 양 한가하다. 60년대 말 미국 기성세대를 비꼰 이 영화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고독해보이는 피터 폰다와 <스피드>의 악역 데니스 호퍼. 둘은 각각 이 영화의 제작자와 감독이기도 하다. 게다가 30년 전의 잭 니콜슨까지 볼 수 있다. 그러나 피터 폰다의 불편해보이는 오토바이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60년대 음악,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편집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이번에는 <아리조나 유괴사건>(Raising Arizona, 우일, 1987)을 보자. 코언 형제의 수작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영화의 도로도 한번에 한대 이상의 차를 허용하지 않는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홀리 헌터 부부의 차, 유괴범들의 차 그리고 해결사의 오토바이 뿐, 애리조나의 한가로운 도로 위에는 엑스트라 차량이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도 속도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기저귀를 훔치는 시퀀스.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경찰차를 피해 뛰는 이 장면은 당시 23살의 청년이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휘청거릴 정도로 깡마른 몸과 꺼벙한 표정과 합세해 묘한 짜릿함을 준다. 13년의 세월을 건너뛴 니콜라스 케이지. 그는 여전히 도둑이다. 그러나 이번엔 아기가 아니라 고급차 전문 털이범.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식스티 세컨즈>(Gone in 60 Seconds, 브에나비스타, 2000)에서도 그는 도둑질에서 손을 떼려는 건실한 청년으로 나오지만 상황은 그를 놔두지 않는다. 한 시간 안에 50대의 차를 훔칠 만한 재량을 갖춘 케이지 같은 도둑이 연휴길 도로의 차들을 싹쓸이해갔으면 싶겠지만 차를 증발시키지 않는 이상 차량 절도범도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별다른 수가 없을 것이다. 도로교통법을 위반하고 온갖 기교를 부려서라도 도착지에 일찍 도착하고 싶다면 기막힌 운전솜씨를 가진 택시운전사를 부르라. 홍보를 위해서 제작자이자 각본을 쓴 뤽 베송의 이름이 붙었지만 ‘뤽 베송의’ <택시>를 감독한 제라르 피레를 우습게 볼 것도 없다. 카레이서 출신의 피레는 실제로 시속 220km로 달리는 차의 모습을 찍기 위해 일주일간 도시의 중심도로를 폐쇄하기까지 했다. 이 영화의 아슬아슬한 속도감은 겨우 시속 60km로 달리는 <스피드>의 대형버스와 맞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샬랑거리는 불어가 난무하는 영화 중간에 갑자기 귀에 쏙 들어오는 한국말과 불쌍한 한국유학생들의 비애도 놓칠 수 없는 황당한 웃음거리. 그러나 주변에서 이런 멋진 기술을 자랑하는 택시기사를 보기가 힘들다는 것은 꽤나 자명한 사실. 무턱대고 속도전을 감행하다간 기껏해야 앞차와 충돌하기밖에 더하겠는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크래쉬>는 자동차 충돌과 성적 흥분을 연관시켜 풀어나간다. 자동차 충돌이 생산적인 성에너지의 해방이라는 묘한 발상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꾸만 의도된 충돌사건을 재현하게 하고 그 위에 성적인 교접이라는 뉘앙스를 흘린다. 이런 위험하고 도발적인 시선을 읽는다면 그나마 안전하게 모범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당신의 차가 조금은 사랑스러워질지도 모른다. 멈춘 차가 꿈꾸는 타임머신 그래도 성이 차지 않는다면 약간의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한방에 날 수도 있다. 물론 비행기라고 해서 충돌사고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탄 비행기가 공중납치되어 63빌딩을 향해 돌진한다는 무시무시한 가능성은 가능성으로서 엄연히 존재하니까 말이다. <에어 포스 원>에 탄 승객들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백악관을 비웠던 부시 대통령과는 달리 해리슨 포드 대통령님께서는 친히 기관총도 쏘시고 테러리스트들과 격투까지 벌여 인질들을 탈출시키기 때문이다. 영원한 악역 게리 올드먼은 이 영화에서 반미 러시아 테러리스트로 등장한다. 추락 위기에 놓인 비행기 안에서 믿을 사람이 대통령뿐이라니 역시 현실과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아예 현실을 포기하고 환상을 꿈꿔볼까. 하루를 꼬박 차 안에서 보내는 게 연휴길 교통승객의 현실이라면 1분 안에 몇십년을 오갈 수 있는 것이 타임머신을 탄 마이클 제이 폭스의 현실이다. 시간여행 영화의 고전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 CIC) 1·2·3편을 한꺼번에 복습해보자. 그야말로 ‘연작’이라는 개념에 충실하게 잘 짜여져 과거-현재-미래를 종횡무진하는 세개의 이야기는 도로 위에서 멈춰진 시간을 사는 것 같은 우리에게 약간의 위안이 돼줄지도 모른다. 2편과 3편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슈의 앳된 모습도 숨은 볼거리다. 이 모든 얘기가 꿈만 같고 정말 미칠 듯이 답답하다면 최후의 방법은 당신의 발로 직접 뛰는 것. “Run forrest, run!”이라는 제니의 말만 믿고 끝없이 뛰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CIC, 1994)처럼 생각없이 달리다보면 당신은 백구처럼 어느새 고향에 도달해 있을 거다. 느리고 고지식한 <포레스트 검프>의 감독은 앞서 시간여행의 환상을 심어준 <백 투 더 퓨쳐>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가장 빠른 것과 가장 느린 것은 결국 종잇장 차이인가. 그렇다면 결론 역시 무책임해질 수밖에. 여유를 갖자! 여유를 가지면 당신의 지친 다리도, 정지해 있는 자동차도 타임머신이 될 수 있다. 손원평/ 자유기고가 wetsox@hanmail.net▶ [한가위특집] 만월 만병통치(滿月 萬病通治) ▶ [추석만찬1] 비디오 클리닉 - 야만가족(野蠻家族) ▶ [추석만찬1] 비디오 클리닉 - 교체불만(交滯不滿) ▶ [추석만찬1] 비디오 클리닉 - 비대오불패(非隊伍不敗) ▶ [추석만찬1] 비디오 클리닉 - 오부이토(汚腐以吐) ▶ [추석만찬1] 비디오 클리닉 - 횡재수다(橫財數多)

만화 클리닉 2

개봉관에서 매표에 실패했을 때 <봄날은 간다> 대신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이루어질 듯 말 듯한 사랑의 줄다리기를 찾아 극장으로 가셨던 분들. 도우메 게이의 알싸한 사랑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서보라. 기오 시모쿠의 처럼 사랑을 겪는 주인공들의 미묘한 감정을 잘 찾아들어가지만, 그보다는 밝고 젊은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신주쿠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변변치 않은 남학생 우오즈미, 그의 곁에 까마귀를 데리고 다니는 묘한 여자아이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을 눈치채기도 전에 옛날의 여자친구 시나코가 먼 도시에서 돌아오는데…. 도우메 게이, 학산문화사, 현재 2권 발간 <무사> 대신 <바람의 나라> 거대한 화면에 펼쳐지는 호쾌한 무사들의 액션을 무엇으로 대치하랴. 다만 역사 속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인간들의 ‘진정한 이야기’를 느껴보려면, 김진이 만든 <바람의 나라>를 방문해보시라. 특히 이름만 빌려간 온라인 게임의 환상에 질린 사람이라면 본연의 역사 판타지만화가 지닌 진정한 즐거움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고구려 대무신왕의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가상의 이야기는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 두 날개의 붉은 까마귀 등 갖가지 설화들이 뒤얽혀 화려한 베를 짜낸다. 그 속에는 영웅 호걸들의 피끓는 전투, 아름다운 사랑의 속삭임, 권력을 사이에 둔 치졸한 싸움, 마법으로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이미지들이 뒤섞여 있다. 김진, 시공사, 현재 18권 발간 <조폭 마누라> 대신 <키드 갱> 웬만한 어깨들이 벌벌벌 떠는 무서운 부인? 그렇다면 이쪽엔 잘 나가는 어깨들이 고개를 조아리면 그 머리 위로 오줌을 갈기는 아기가 있다. 어쩔 거야? 때릴 거야? 이렇게 귀여운 아기를? 보스 강대봉은 자기 부하들을 잡아간 형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아기를 유괴하는데, 하필이면 바로 그때 가스 폭발로 부모가 모두 죽어버린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졸지에 유괴범에서 탁아소 보모로 바뀐 조폭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조폭들을 가지고 노는 아기와 엉터리 조폭들의 요절복통 코미디가 펼쳐진다. 그런데 정말 조폭들이 이렇게 순수해도 되는 거야? 신영우, 시공사, 현재 10권 발간 <러시아워2> 대신 <키리코> 성룡만이 만들어줄 수 있는 화려한 코믹액션은 없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비장하고 드라마틱한 하드보일드의 세계가 있다. 성룡-장쯔이 콤비에 맞서는 액션 커플은 거대한 덩치의 무데뽀 형사 아키라와 피도 눈물도 없는 팜므파탈 키리코. 어두운 범죄 세계를 파고들어가는 그들의 모험은 명절음식 맛을 탓하는 우리를 조롱한다. 송편 안의 솔잎을 조심하라. 프로페셔널에겐 그것도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기바 고이치, 학산문화사, 전 5권 <아메리칸 스윗하트> 대신 <크라임 더 마운틴> 화려한 할리우드의 뒷얘기. 그것도 연애담과 어우러지면 더욱 흥미진진한 현대판 왕족의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그러나 가와하라 유미코는 연예계의 또다른 세계. 3류 에로비디오 감독과 그에게 희롱당하며 자라난 소년을 주인공으로도 제법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속에도 자존심이 있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정열이 있고, 일급 스타로 자라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너절한 인생들의 솔직한 행동들과 뒤얽혀 즐거운 웃음의 파티를 만들어낸다. 가와하라 유미코, 서울문화사 명절음식에 질렸을 때, 과식했을 때 <헤븐> 남이 차려준 상은 이래라저래라 하기 참 좋다. 음식 만들 때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한 사람이 명절음식을 배불리 먹고 나서는 뭔가 시원찮았다는 듯 부엌을 보며 한소리 해대기 일쑤. 당신은 어쩌면 이 만화에 등장하는 프랑스 레스토랑의 여주인과 같은 종류의 인간일지도 모른다. 책임감도 없고 노력할 생각도 안 하지만, 남의 대접만큼은 확실하게 받고 싶은 사람. 작가 생활로 벌어들인 약간의 돈으로 그저 재미삼아 레스토랑을 차린 여주인. 그러나 그곳에 생계를 걸고 있는 사람들은 여주인의 방해를 물리치고 이 식당을 훌륭한 맛의 전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새로 개업한 프랑스 레스토랑을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맛과 인간, 인간과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발랄한 웃음의 소스를 뿌려 전해준다. <닥터 스쿠르> <못말리는 간호사>의 사사키 노리코라면 제법 그 솜씨가 느껴지겠지. 사사키 노리코, 삼양출판사, 현재 2권 발간 <홍차왕자> 밀어넣을 대로 밀어넣은 배. 더이상 혹사시키지 말고 향그런 차 한잔으로 다스려봄이 어떨까? 어느 평범한 고등학교 홍차클럽. 그런데 달빛 아래 차를 마시면 홍차 속에서 왕자가 나타난다는 전설이 그만 현실로 나타나면서, 모두들 멋진 왕자를 하나씩 거느리게 되는데. 아름다워라. 아쌈 왕자. 얼그레이 왕자. 홍차를 마시는 즐거움과 잘생긴 왕자를 감상하는 즐거움 중에 어느 쪽이 더 클까? 그런 고민하지 마시고, 이 만화에서 맛나는 홍차 만들기를 배워 고생하신 어머님, 형수님께 한잔씩 대접해보는 건 어떨까? 야마다 난페이, 대원씨아이, 현재 13권 발간 <중국인의 저택> 제사상에 올라간 음식을 먼저 먹으면 부정이 탄다는 말. 제사음식을 조금씩 떼서 문 밖에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르신의 말씀. 모두 코웃음치기 일쑤지. 하지만 이 만화로 음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마. 중국 음식점을 해서 재산을 모은 중국인의 집. 건물을 호텔로 개조하고 싶지만 이상한 것들이 자꾸 나타난다. 사람들에게 잡아먹힌 북경 오리의 유령들이 뒤뜰에 줄지어 걸어가고, 저장실에는 술의 정령이 울고 있다. 게다가 벽에는 이상한 얼룩, 음, 다행히 그것은 토마토 소스. 하지만 집안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설거지와 뒤처리도 중요하지. 좋아, 정리라도 도왔으면 할아버지께서 담가두신 술을 꺼내 한잔씩 맛을 보여주마. 음, 예전 시골에서 술을 담그면 밀주라고 해서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는데…. 하츠 아키코, 대원씨아이 <명가의 술> 배부르게 먹고 얼큰히 취해 둥근 달을 바라보면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지. 하지만 그 알딸딸한 술이 그냥 얼떨떨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네. <명가의 술>은 그 명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피를 필요로 하는 것이네. 못 믿겠다면 나츠코의 집을 찾아보라. 가난한 시골 양조장의 딸 나츠코, 양조장의 후계자인 오빠가 죽어버리자 젊은 여자의 몸으로 술 만드는 가업을 이어받는다. 아버지는 도시로 갔으면 그곳에서 프로가 되라고 하지만, 아예 ‘일본 최고의 술’을 만들겠다는 당당한 포부까지 내세우는데. 요리만화의 기본적인 룰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다른 음식으로 밥배가 불렀으니, 이제 술배와 만화배를 채워나가는 게 낫겠지. 오제 아키라, 서울문화사, 전 12권 도박하다 파산했다면 <도박묵시록 카이지> 궁지에 궁지, 그 끝까지 가서 이제는 더이상 통장의 잔고는커녕 현금 서비스의 한도까지 넘어버렸다고? 그렇다면 더이상 도박에 덤비지 말고 일단 이 책부터 펼쳐보라. 그리고 자신의 장래를 결정하라. 너절한 백수 인생 카이지가 친구의 잘못으로 파산 지경에 이르고, 정체불명의 도박선 에스포와르호에 오른다. 그가 겪는 기기묘묘한 도박의 세계. 과연 돈은 인간을 얼마나 타락시킬 수 있는지, 아직 우리 인생은 얼마나 더 많은 희망 속에 존재하는지 알게 해준다. 혹시 카이지 정도의 신념으로 인생을 이겨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도박을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 신념이라면 무슨 일이든 못할까? 괜히 동네 도박에서 카이지 흉내를 내서 좋은 우애를 망치지 말고 자기 인생에 정열을 투자하는 법을 배우라. 카이지는 훌륭한 처세술과 경제학의 교과서다. 후쿠모토 노부유키, 학산문화사, 현재 16권 발간 <타로 이야기> 이 만화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아무리 경제력 없고 사치스럽고 무책임한 부모라도 자식 하나만 잘 키우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 그러니까 아무리 도박으로 파산을 할 위기에 처해 있어도 장난감을 사달라는 자식의 부탁은 들어주는 게 좋다. 주인공 타로는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에 하얀 피부, 고결한 몸매를 지닌 미소년. 누구라도 귀족 가문의 자제라고 생각할 만하다. 하지만 정작 그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동생들까지 줄줄이 늘어서 밥 달라고 보채는 한마디로 현대판 흥부네집. 이 놀라운 아이러니 속에서 타로는 철저한 경제관념을 가지고 동생들을 보살피지만, 친구들은 그의 행동을 또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부잣집 아이의 장난 정도로 여긴다. 이러한 타로 덕분에 철없는 부모는 해외여행으로 시간을 보내고, 집에 있더라도 타로가 피땀으로 모아둔 돈을 털어 밍크옷을 사버리기까지. 정말로 파산하더라도 이런 부모라면 되어보고 싶다. 모리나가 아이, 전 14권, 대원씨아이 <니아 언더 세븐> 미래세계에 풍요가 있다니 그게 무슨 허튼 말. 이 변두리 중의 변두리 들깨꽃 마을에 부와 문명이란 없다. 게다가 이 마을에 바글거리는 염치없는 외계인들이라니. 지지리 궁상, 가난한 재수생 마유코에게 안테나도 없는 저급 ‘언더 세븐’의 외계인 니아까지 식객으로 얹혀살게 되었다. 오랜만에 흰 쌀밥을 먹게 되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그 밥을 땅에 쏟아도 3초 룰(바닥에 음식을 떨어뜨려도 3초 안에만 주워먹으면 주위 사람들의 혐오스런 시선을 피할 수 있다는 훌륭한 관습)을 외치며 주워먹는 인생. 그러나 그 가난뱅이의 삶도 어쩐지 흥겹고 재미있다. 어쩌면 그렇게 찢어져야만 삶이 만들어내는 작은 가치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누군가는 해바라기의 아름다움을 모르지만, 해바라기 씨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니아는 그 꽃의 찬란함을 깨닫는다. “아이, 먹을 수 있는 거라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아베 요시토시, 시공사, 전 2권 <타짜> 그래도 다시 한번 도박으로 재기를 노린다고? 뭐 어쩌겠나? 당신 인생인데. 도박으로 집을 날리든 인생을 종 치든,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말릴 수도 없지 않은가? 어차피 당신이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한들, 몇푼 보태주지도 못할 텐데. 대신 당신의 열의를 빛낼 교과서를 소개해준다. 해방 이후에서 오늘날까지 섰다, 고스톱, 포커, 훌라를 넘나드는 모든 도박의 세계를 정말로 리얼하고 치밀하게 묘사한 작품. 김세영-허영만 커플의 <타짜>가 있다. 그러나 정말 명심할 것은 교과서에 적힌 내용을 따라서 할 수 있는 인간은 천명에 한명도 안 나온다는 사실. 그래서 ‘정상적인 고교 교육과정을 마치면 누구나 맞힐 수 있는’ 수능고사에 만점자가 외계인 취급을 받고 있지 않나? 글 김세영, 그림 허영만, 도서출판채널, 현재 3부3권 발간. 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arspray.com ▶ [한가위특집] 만월 만병통치(滿月 萬病通治) ▶ [추석만찬1] 만화 클리닉 1 ▶ [추석만찬1] 만화 클리닉 2

보따리 풀어라, 대목에 한몫 보자

1980년대 - 시대의 우울을 녹인 ‘속곳 바람’ 1981년 불황, 불황, 불황. 신군부의 군화정치에 짓밟힌 것이 영화뿐이겠느냐만, 한가위 명절에도 극장들은 상영중인 영화 간판을 계속 걸거나 창고 속 영화들을 다시 꺼내는 수세적 방책으로 일관했다. 김영애, 원미경 주연의 <빙점 ’81>도 꽁꽁 얼어붙은 추석에 재상영을 거듭했고, <닥터 지바고> 등의 외화들도 당시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극장들에겐 요긴했다. 그러나 영화가 어둠 속에서 생명을 얻는 빛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바람불어 좋은 날>과 함께 리얼리스트가 되어 돌아온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25만5817명)이 추석을 관통, 연장상영됐다. ‘언제나 거기 있던’ 임권택 감독이 <만다라>(12만8932명)로 재발견된 것도 이때였다. 외화로는 <차타레 부인의 사랑>(26만3513명), (28만4285명), <캐논볼>(20만4723명) 등의 신작들이 추석명월과 대련,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개봉작 중 <차타레…>와 은 국내 검열을 의식해 도중 수입사가 바뀌기도 했다. 결국 용기있는(?)자가 흥행선을 집어탄 셈이 됐다. 관객 수와 극장 매출액은 예년에 비해 크게 감소했지만,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한해. 1985년 어우동의 ‘속곳 바람’은 뜨거웠다. 추석을 시작으로 3개월 동안 개봉관인 단성사를 다녀간 관객만 39만2678명. “계집이 사내죽일 때 칼 쓰는 줄 아세요”라며 웃음을 흘리는 ‘이조(李朝) 최대의 스캔들 메이커’ 어우동의 등장으로, 같은 시기 선보였던 영화들은 흥행가도에서 일찌감치 떨어져나갔다. 열풍까지는 아니었지만, 추석 시즌 극장가에서 <어우동>의 독주는 예상한 일이었다. <무릎과 무릎사이>에 이어 링에 올라선 이장호-이보희 콤비에 대항할 만한 작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 경쟁작인 프랑스영화 <마이 뉴 파트너>가 7만3천명, <싸이렌스>는 11만명을 불러모으는 데 그쳤다. 대적할 만한 작품으론 늦여름 개봉해서 장기상영중이던 <람보2>뿐이었다. <어우동>이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49만5573명)과 함께 흥행 쌍두마차를 끌었지만, <킬링필드> <인디아나 존스> <람보2> 등 여름을 강타한 외화 ‘삼총사’를 막진 못했다. 80년대 초반, 외화와 거의 대등한 수준이던 한국영화 점유율이 17% 이상 떨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크린쿼터 폐지하라는 미국의 압력이 시작되었다. 그 압력에 개정된 영화 관련법에서 외화수입제한, 외화수입액상한제 등이 날아갔고, 영화사 설립이 등록제로 완화됐다. 법개정의 진짜 핵심은 할리우드 직배 허용. 이를 발판으로 87년 직배사가 한국에 상륙한다. 1988년 ‘지상 최대의 쇼’ 올림픽을 앞두고, 영화계는 그야말로 초비상이었다.걸어둔 영화들마다 흥행이 바닥을 쳤다. <뽕2> <변강쇠3> <이조춘화도> 등 추석 개봉작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화도 상황은 마찬가지. <더 플라이>(18만5천명)와 <잡초>(13만8천)만이 그럭저럭 관객을 불러모았다. 전년 대비 관객 수는 7.5% 상승했다지만, 벤 존슨과 칼 루이스의 트랙 위 경주 탓에 9, 10월엔 오히려 관객이 줄었다. 45만9천명을 동원, 최고 히트작이 된 <다이하드> 역시 올림픽 열기에 밀려 초반 부진을 면치 못했을 정도였다. 추석 개봉작 중 한국영화로는 <매춘>(43만2천명)만이 유일하게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이뤄진 동구권문화개방 물결을 타고 소련영화 <전쟁과 평화>가 처음으로 수입, 개봉해서 11만1천명의 관객의 호기심을 자아낸 것도 이즈음의 화젯거리. 한편 할리우드 직배사 UIP가 첫 직배영화 <위험한 정사>를 상영해 국내 영화인들의 거센 반대운동을 불러일으켰다. 1990년대 - 직배의 물량공세를 뚫고 점유율 40%까지 1990년 역시 <장군의 아들>이었다. 초여름 개봉했으나 극장행렬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추석 극장가 수성은 수월했다기보다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추석을 하루 앞두고서 한국과 소련의 수교가 이뤄졌고, 연휴에 진입해선 동독과 서독의 통일 소식이 전해져오는 통에 추석특수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개봉작인 박철수 감독의 <물 위를 걷는 여자>가 13만명을, 홍콩영화 <첩혈가두>가 15만명을 겨우 넘겼을 뿐, <지옥의 반담>(5만3677명),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5만5천명) 등은 그저그런 성적표를 남겼다. 80년대 흥행제조사였던 배창호 감독의 <꿈>도 3만명을 채 넘기지 못하고 분루를 삼켰다. 이에 비해 직배사들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일례로 연말 1개월 상영만으로, UIP의 <사랑과 영혼>은 56만명을, <다이하드2> 역시 38만7천명을 끌어모았다. 외화의 관람인원수가 한국영화의 5배에 달할 정도로 격차가 심했다. 그래도 1990년은 한국영화의 회생을 점칠 수 있는 해였다. <남부군>의 정지영,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장길수 감독 등 중견감독들의 영화가 30만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등 호응을 받았고, 박광수(<그들도 우리처럼>), 장선우(<우묵배미의 사랑>) 등 두 중량감 있는 신인감독들의 신작들이 모습을 드러낸 해이기도 했다. 1994년 외화의 프린트 벌수 제한이 풀린 94년 추석 극장가는 한국영화와 외화의 명암이 확연히 엇갈렸다. 단성사와 국도극장을 진지로 삼은 <태백산맥>은 개봉 이전 임권택 감독의 명성뿐 아니라 총제작비 30억원, 촬영횟수 132회, 7천명의 엑스트라 등 제작부터 화제를 불러모았던 작품. 장현수 감독의 <게임의 법칙> 역시 한국적인 누아르영화라는 호평을 등에 업고서 출정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 <태백산맥>은 약 23만명, <게임의 법칙>은 13만4천명에 그쳤다. 반면, 같은 시기 포문을 연 <트루 라이즈>와 <칼라 오브 나이트>는 10월까지 연장상영하며, 각각 87만4664명과 43만9391명을 끌어들였다. 뒤이어 개봉한 장선우 감독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38만1578명)와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86만400명)가 만회에 나섰지만, 전국 50개 스크린에서 와이드 릴리스 전법을 구사, 80만명 이상을 동원한 <라이온 킹> <스피드> <쉰들러 리스트> 등 직배사들의 물량공세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1997년 97년 추석, <접속>과 <창-노는계집 창>이 벌인 ‘흥행대국’은 볼 만했다. 장윤현과 임권택, 명필름과 태흥영화, 금융 자본 대 충무로 자본이라는 신구 대결구도도 흥미로웠고, 충무로의 명보극장과 종로의 피카디리 사이의 자존심 싸움이 걸린 한판이라는 점도 놓칠 수 없었다. 박빙의 승부는 계속됐지만, 2주가 지나면서 같은 시기 단성사와 중앙극장에서 개봉했던 정지영 감독의 <블랙잭>이 떨어져나갔고, 명보극장과 같은 상권에 있는 중앙극장에 <접속>이 들어가면서, 승리의 여신은 <접속>(67만5천명)의 편에 선다. 60만명이라는 고지를 놓고서 서울극장의 <에어포스 원>과 <접속>의 제2라운드가 이때부터 시작된다. 한편, 할리우드 직배사는 88년 국내 상륙 이후 가장 많은 1960만명을 동원했고, 본국에 송금하는 로열티 액수만 280억원을 상회할 정도로 기세를 더했다. 하지만 더이상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홍콩영화에 이은 ‘넘버3’의 처지가 아니었다. 혼자 튀는 대박영화는 없었지만, <편지>(60만3701명), <창>(41만1591명), <비트>(34만9800명), <할렐루야>(31만1천명) 등 5위권 이내의 영화들이 고른 지지를 얻었던 해였다. 또한 97년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25.4%는 이후 40% 시대를 열기 위한 이정표이자 서막이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 추석, <봄날은 간다>와 <조폭 마누라>, 한국영화 두편이 극장 잡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아직 대작 <무사>가 버티고 있다. 세편의 영화야 스크린을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해 보름달 아래 안간힘을 쓰겠지만, 한여름 <엽기적인 그녀>와 <신라의 달밤>에 혼쭐난 직배사들의 눈엔 한국영화의 도원결의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 참고자료 <한국영화작품전집>(영화진흥공사), <한국의 영화포스터Ⅰ, Ⅱ, Ⅲ>(정종화, 범우문화문고), <한국영화연감>(영화진흥공사) ▶ [한가위특집] 만월 만병통치(滿月 萬病通治) ▶ [추석만찬3] 한가위 흥행 40년사 - 보따리 풀어라, 대목에 한몫 보자 ▶ [추석만찬3] 한가위 흥행 40년사 - 보따리 풀어라, 대목에 한몫 보자 ▶ [추석만찬3] 한가위 흥행 40년사 - 카피 따로 영화 따로

뽕도 따고, 금메달도 따고

흐릿한 신문광고가 주가 되던 시절, 카피는 영화의 또다른 얼굴이었다. “사랑하거던… 부뜰지 마라. 가슴은 썩어도 그대 사랑이 깃들 곳은 남으리라.” <용서받기 싫다>(1964)는 한 여대생(엄앵란)을 연모하는 조각가(신성일)가 그녀의 육체를 유린한 깡패 일당에게 복수한 뒤, 자수하여 십년형을 언도받는다는 내용. 카피에 신파 멜로의 기운을 흠씬 불어넣었다. “착한 아씨 이쁜 아씨 우리 아씨 계동 아씨”는 같은 해 아세아극장에서 개봉한 <계동아씨>의 카피. 계동아씨로 나오는 최은희를 부각시키되, 단순반복 4자나열 어구로 입에 올리기 쉽게 만든 경우다. 1967년의 <일본천황과 폭탄의사>의 경우는 멜로적인 설정이 어색했는지, 애초 카피에서 이를 설득하는 듯하다. “필살의 폭탄용사! 그는 처절한 레지스탕스의 정의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도 뜨거운 피를 지닌 매력적인 남성이기에 그를 사모하는 조국 여성과의 사랑의 삼각 갈등은 어떻게 헤어날 것인가.” <월하의 공동묘지>(1967) 역시 장문의 카피로 호기심을 자아낸다. “음산한 심산(深山)의 숲속 공동묘지에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바람타고 나타나는 괴물의 정체는? 스릴과 공포의 비명속에 가득찬 장내. 관람중 충격을 받아 놀라게 하는 장면이 있아오니 주의하시압!”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로 이어지는 1970년대였기에, 아류작도 그만큼 많았다. <춘자의 사랑이야기>(1975)도 그중 하나. “결혼은 안하겠어요. 아기는 있어요. 돈은 싫어요. 사랑을 주세요”라는 카피가 눈에 띄긴 하지만, 흥행성적은 부진해 “경아도 가고, 영자도 가고. 드디어 춘자의 시대가 왔다!”는 카피는 뒤에 거짓말이 됐다. 1972년 이상언 감독의 <불장난>은 아예 청춘 멜로를 위한 표어를 뽑는다. “남김없이 태워라. 아낌없이 바쳐라. 외치고 달려라. 불타는 청춘아.” 그때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응원 구호처럼 느껴진다. 1981년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은 추석까지 상영됐던 히트작. 연장상영을 알리는 광고에서 “20만 관객 요청에 카수 영애는 이 추석에도 고향을 못갑니다”라고 절규한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 <변강쇠3> <매춘> 등과 경쟁을 벌였던 <뽕2>는 “남의 계집 탐내는 남정네, 자기 계집 잃느니라”라며 상대 영화를 향한 듯한 계도성 멘트를 날리더니, 그 아래에 “뽕도 따고, 금메달도 따고”라며 본심을 드러낸다. ▶ [한가위특집] 만월 만병통치(滿月 萬病通治) ▶ [추석만찬3] 한가위 흥행 40년사 - 보따리 풀어라, 대목에 한몫 보자 ▶ [추석만찬3] 한가위 흥행 40년사 - 보따리 풀어라, 대목에 한몫 보자 ▶ [추석만찬3] 한가위 흥행 40년사 - 카피 따로 영화 따로

사랑이 `여기` 있었지 (2)

너무 명백하고, 지나치게 의미심장한인물의 김정과 움직임을 하염없이 응시하는 연출은, 그러나 일부 숏의 길이를 애매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소 길을 잃고 연장된 듯 보이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은수가 술 취해 퇴근한 날 밤의 승강이처럼 좀더 끌어줬으면 싶은데 덜컥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봄날은 간다>를 로 부터의 진전이라고 부르기에는 정당한 망설임이 따른다. <봄날은 간다>는 관습적 멜로드라마의 평탕한 대로를 외면하지만, 데뷔작에서 이미 확고한 영화적 비전을 내비친 감독의 두 번재 작품으로는 상당히 안전한 길을 택했다. 유지태와 이영애의 캐스팅을 빼고도 <봄날은 간다>는 영화 내적으로 꽤 많은 확실한 패를 소매 안에 숨기고 게임을 한다.동시녹음 엔지니어라는 주인공의 직업, 세대를 가로지르는 삶의 교감을 대변하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라는 인물 설정은 지나치게 의미심장하고 상우네 식구들이 사는 정겨운 변두리 한옥은 너무 명백하게 소멸과 향수의 정취를 낸다. 반면 두 연인이 부여안고 떨어지고 때로는 외로이 한쪽에 웅크리는 공간, 은수의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바닷가 조그마한 아파트는 멜로드라마의 공간으로서 참신함을 보여준다. 계절과 가족과 사랑이 소도시의 거리에서 녹아들어 조금씩 관객에게 다가오던 에 비해 <봄날은 간다>에서 가족과 연애의 공간은 잘 골라져 묶였다는 인상을 남긴다.그러나 허진호 감독을 작가로 칭하느냐 아니냐의 의논은 전혀 급할 게 없는 일이다. 이제 막 봄날을 보낸 그에게는 여러 계절이 남아있다. 그보다 <봄날은 간다>가 확인시키는 엄연한 사실은 허진호 감독이 놀랄 만한 대중적 호소력을 보존한 채, 자기 미학에 정직한 스타일과 생을 해석하는 사적인 비전을 관철시킬 수 있는 행복한 감독이라는 점이다. 많은 연애에서 약자였으나 그 패배의 기억을 좀처럼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던 남성의 입장에서 이별의 뒤안을 살핀 <봄날은 간다>의 얼개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허진호 감독의 감수성에는 선천적인, 그래서 아마 수명도 길 상업적 저력이 잠재해 있다. 가 일본에 소개된 뒤 평론가 요모타 이누히코는 <키네마순보>에 "홍상수나 허진호가 체현하는 미니멀리즘은 과거의 '설교적' 영화에 대한 비평이다. 일본에서 이들과 평행하게 나타난 작가로 이와이 순지나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들 수 있다"고 썼다. 마치 1970년대 미국감독들이 유럽 예술영화의 어법을 습득해 할리우드의 장르영화를 한층 효과적이고 강렬한 존재로 만들었듯이, 허진호 감독은 멜로드라마의 품을 넓히고 향을 더하고 있다. 자신보다 앞서 걸어간 이명세 감독보다는 느긋한 손길로, 홍상수 감독보다는 온건한 시선으로."무엇인가가 자꾸 통과해가는 영화"오즈 야스지로의 영화가 평론가 시노다 마사히로의 말처럼 "무엇인가가 자꾸만 사라져가는 영화"라면, 허진호의 영화는 '무엇인가가 자꾸 통과해가는 영화'다. 그의 영화에서는 계절이, 사랑과 죽음이 야트막한 담을 넘어 들어와 툇마루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다가 뒤뜰로 면한 창을 열고 멀어져 간다. 영화세계의 넓이와 폭은 각기 다를지언정, 허진호의 영화에서 어쩔 수 없이 오즈 야스지로,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그의 러브스토리 속에 체념하되 결코 냉소하지 않는 아시아 거장들의 휴머니즘적 전통이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동년왕사>의 소년은 고단한 평생을 병으로 마감한 부모와 개미가 끓을 때까지 죽은 채로 누워 계셨던 할머니를 보낸 뒤, 할머니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땄던 과일들을 떠올린다. <동경이야기>의 늙은 아버지는 멀어진 자식들의 집을 순례한 뒤 "좋지는 않지만 좋은 편이었어"라고 되뇐다. 의 정원은 사랑도 언젠가 추억에 불과함을, <봄날은 간다>의 상우는 "뭔가 간절히 바라도 다 잊고 그러는" 쓸쓸한 섭리를 수긍한다. 그들은 모두 이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실망임을 안다. 그리고 환하게 미소 짓는다.화사한 봄날은 가고 이제 다시 태엽을 감아야 할 때. 다음 영화가 어떤 생김새일지 몰라도 인물과 사물에 대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것이고, 일상의 빛나는 순간들을 예쁘지만은 않게 잡아낼 것이라고 띄엄띄엄 들려주던 허진호 감독은 무엇을 하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렇게 낙관적인 사람이라고 문득 말을 맺었다. 세 번째 영화에서도 허진호 감독은 삶의 더딘 시긴을 새기는 모래시계를 뒤집을 것이고, 어떤 이는 채워지는 반족을 보며, 어떤 이는 비어가는 반쪽을 보며 미소지을 것이다. 은수를 보내고 보리밭의 바람 속에서 눈을 감은 채 귀를 기울이던 상우처럼.김혜리 vermeer@hani.co.kr. 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1) ▶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2) ▶ 허진호의 낱말풀이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1)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2)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3)

“잠이 안 와서 수면제 먹어봤나요, 사랑 때문에” (1)

<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과 <소름>의 윤종찬 감독. 멜로와 공포, 장르적으로 양 극단에 서 있는 두 감독은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둘에게선 어떤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분명 장르에 속하는 영화를 만들긴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경계선을 넘어가버린다는 점 말이다. 멜로 아닌 멜로영화를 만드는 허 감독이나 공포 아닌 공포영화를 만드는 윤 감독이나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되새김질하고 추억한다는 면에서 ‘반성적’ 영화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말쑥한 청담동 카페에서 시작해 쩍 벌린 입에 보쌈을 쑤셔넣는 맛이 일품인 주점으로 이어진 두 감독의 대화는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구도의 여행담을 공유하는 자리로 보였다. 이날 대담은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 한편으로 시작, 남녀의 사랑에 대한 속깊은 이야기를 거쳐 결국 감독의 자아와 작품의 관계, 감독이라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윤종찬(이하 윤): 만나서 반갑습니다. 3년 전인가 홍콩영화제 때 만나뵙고 처음이죠? 허진호(이하 허): 그렇네요. 영화 만드시는 데 폐를 끼치진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소름>의 프로듀서였던 백종학씨를 잠시 빼가서 배우를 시켰는데…. 윤: 제작 도중 프로듀서가 바뀌었는데 새로 온 분이 종학씨였죠. 연기를 봤는데 느끼한 남자 역할을 잘해서 진짜 바람둥이로 소문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허 감독님과는 백종학씨를 사이에 둔 인연도 있는 셈이네요. 허: <소름>을 못 봐서 죄송합니다. 제가 영화 만들고 있을 때 개봉해서. 다른 사람들이 보고 와서 굉장히 좋다고 말씀 많이 하시더라고요. 윤: 별 말씀도…. <봄날은 간다>는 어제 봤습니다. 는 미국 유학 시절 봤어요. 학교 근처의 한국 음식 파는 식료품점에서 빌려봤는데 다섯번 이상은 본 것 같아요. 단순하고 깨끗하다는,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두편의 영화를 놓고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가족이더라고요. 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둘이서 살고 <봄날…>을 보니까 아예 3대가 나오더군요. (웃음) 영화를 따뜻하게 봤다면 그런 요인이 가장 큰 것 같아요. 도 그렇고 <봄날…>도 그렇고, 그런 점이 더 강하게 오는 것 같아요. 우선 물어보고 싶은 게, 이 감독이 어떤 집안에서 자랐는지가 가장 궁금하더라고요. 성장배경이라든가…. 허: 성장배경이라…. 뭐 별로 부딪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가족들의 사이가 나빠지는 이유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너는 이렇게 해야 해’라는 것이 큰 것 같은데, 저희 아버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셨지만 강하지는 않았거든요. 예를 들어 철학과 간다고 했을 때나 취직이나, 회사 그만두고 영화 한다고 했을 때나 크게 반대하시지는 않으셨어요. 윤: 대가족이었나요. 허: 어렸을 때는 대가족이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 계시고. 윤: 한집에서 같이 사셨나요. 허: 한집이라고 할 수 있는 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래 사시고 아버지, 어머니는 위에 사셨어요. 윤: 그런데 도 그렇고 <봄날…>도 그렇고, 나쁜 사람이 왜 영화에 안 나와요? (웃음) 친구들도 다 착하고, 가족관계도 원만하고, 그러니까 봄날의 정경을 보는 듯한 그런 게 있는데, 궁금했어요. 그런 사람을 의식적으로 빼는 건지, 쓰다 보면 그런 사람 없이도 얘기가 되는 건지. 나는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쓸 때 선한 사람의 반대편에 있는 인물을 항상 본능적으로 생각하는데. 허: 왜 그런가 생각해봤어요. 일단 사람을 만나면서 저 사람 못됐다, 나쁜 놈이다, 이런 기억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딱 한 사람이 있는데, 군대 있을 때 슬리퍼 신고 밖에 나갔다고 맞은 적 있었는데, 그 사람은 참 안 좋았죠. 윤: 나 같은 경우에는 비교적 다혈질이에요. 싫은 사람은 완전히 싫고. 그러니까 결국 감독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악역이 없는 것도 그런 데서 기인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허: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실제로 학교 다닐 때나, 군대 있을 때나, 회사 다닐 때나 굉장히 나쁜 감정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낯을 가려서 친한 사람과만 어울리고 친하지 않은 사람은 어색해하는 면이 있어서 그런지…. 윤: 때도 그랬지만 <봄날…>을 보니 더욱 허우샤오시엔 생각이 났어요. 거기 할머니 보면서. <동년왕사> 보면 할머니가 저승 갈 노잣돈 만들고 만들고 하다가 돌아가시잖아요. 개인적으로 허우샤오시엔 감독 좋아하지 않으세요? 허: 좋아하죠. 연애, 너무나 사적인, 너무나 보편적인 윤: 자, 이제 좀 영화 안쪽으로 들어가볼까요. 결국 사랑이겠죠. 이번에는 둘이 좀 싸우더군요. 하긴 싸우는 것도 뭐 여자가 만날 라면 끓여달라니까 “넌 내가 라면으로 보이냐” 이렇게, 그게 이별의 시발점으로 보이고. 그런데 에서는 아예 갈등이란 것이 없었어요. 되게 궁금해요. 본인의 경험에서 오는 것인지, 혹시 그런 게 허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인지. 허: 같은 경우는 뭐, 연애 얘기라고 하기에는 좀 다른 것 같았어요. 가족이나 친구나 이런 것들, 죽음이라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둘의 연애를 도와주는 쪽으로만 가는 게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가잖아요. 연애를 시작하기 전 단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좋잖아요, 그때. 좋아하게 돼서 가슴 설레고. 윤: 에서 딱 거기까지만이었잖아요. 허: 거기까지만이죠. 윤: 근데 <봄날…>에서 육체적인 접촉이 있으니까 결국엔 비극으로 끝나버리더라고. 뭐 사랑이 깨졌다는 게 비극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부정적이잖아요. 허: 글쎄 뭐, 아직 연애를 해서 완결을 지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일동 웃음) 대학교 1학년 때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서 한 1년 쫓아다니다가 만났어요. 한 3개월 정도 만나고 나서 내가 헤어지자고 그랬어요. 막 좋아하기 전의 감정이 너무나 컸던 것 같아요. 그 감정이 너무 커서 그런지 막상 만나고 보니까 너무 이상한 거야, 재미가 없어.(웃음) 윤: 그러니까 콩깍지 딱 씌워서 다니다가 막상 대면하게 되니까 요목조목 뜯어보는 심리라는 게…. 사랑이 시작되기 전의 두근거림과 막상 현실로 닥쳐 만나게 됐을 때 생기는 괴리 같은 것을 이 영화가 담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그것마저도 강도가 그렇게 센 것 같지 않아요. (웃음)허: 아니, 원래 강도를 세게 하고 싶었는데. 끝나고 무슨 얘기를 할까, 이런 것 갖고 조금 헤맸어요. 결국 연애 얘기를 하자, 이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까 조금 진도가 빨라졌어요. 그때부터는 뭐, 한달 정도 걸려서 시나리오가 나왔으니까. 연애 얘기는 되게 사적으로 경험하는 것이지만, 막상 얘기하다보면 너도 비오는 데 밖에서 기다렸니, 혹은 너도 잠이 안 와서 수면제 먹고 그랬니, 뭐 이런 식의 경험들이 대개 있더라고요. 아 되게 사적인데 보편적이구나, 연애라는 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재밌을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만나서 좋아해서 같이 자든지 어쩌든지 그러곤 어느 정도 권태기가 있을 것 같더라고요. 이제 생활로 들어온 것 같을 것이고. 싫증나고 부딪치면 서로 싸우고, 그러다가 헤어지고, 집착하고, 어느 순간에는 잊어버릴 때도 있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얘기하려다 보니까 얘기가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이걸 어떡하지, 그러다가 아예 빨리 자고, 빨리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일동 웃음) 윤: 아, 그래서 처음에 만나서 은수가 자고 가라고 그러는군, 바로 그냥. 밀착되는 과정은 빠른데 특이한 것은 균열이 오는 시점은 굉장히 길었던 것 같아요. 라면 얘기부터 시작되서 못 만나고, 안 만나고, 오해 생기고, 헤어지게 될 때까지. 허: 그쪽 얘기를 해보고 싶었던 같아요. 좋을 때나 둘의 일상보다는 헤어지는 것에서 나오는 고통이나 엄청 힘든 상황, 이런 것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연애담 모니터링을 해보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간의 정신병적 상황까지 가더라고요. 왜 나는 잊으려고 하는데 못 잊지, 왜 나는 잠을 자고 싶은데 잠을 못 자냐. 보다는 그런 감정들이 많이 나오는 느낌으로 가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한데 막상 찍다보니까 내가 내 나이에서 알고 있는 연애 이야기와 스물여섯살 먹은 배우 지태가 가지고 있는 연애 이야기가 다르더라고. 이쪽은 아직도 연애감정이나 이런 것에 대한 믿음 같은 게 있더라고. 원래 그런 친구이기도 하고. 윤: 그러니까 영원한 사랑은 있다, 뭐 이런 식으로? 허: 지태 같은 경우엔 그런 것을 믿는 거죠. 한번 좋아하면 영원히 가야 하는 것 아닌가. 바람 피우는 것 싫어하고. 극중 인물이랑 생각하는 것이 비슷했어요. 윤: 근데 나는 영화에서 유지태가 웃고 하는 게 감독 얼굴과 굉장히 오버랩되던데. (일동 웃음) 허: 글쎄, 그게 의도한 부분은 아닌데…. 같은 경우는 내 생활을 영화 속에 많이 집어넣다 보니까, 어머니가 보시더니 발톱 깎는 게 너랑 비슷하더라, 이런 말씀 하시더라고요. 이번엔 지태가 들으면 기분 나쁠지 모르겠지만, 닮았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나야 좋은 얘기지만. (웃음) 그것도 어머니가 말씀하셨는데, 너랑 생긴 게 비슷하더라, 근데 우리 아들이 좀더 낫지 않냐 이렇게. (일동 폭소) 채은석이라고 CF감독이 있는데, 대학교 때 서로 친하니까 집에 와서 역기도 들고 했거든요. 근데 영화에서 유지태가 역기 든 모습에서 자기가 잠시 착각했다는 거야, 이거 허진호잖아, 라며. (일동 웃음) 윤: 허 감독 어머니는 보시고 영화에서 아들과 비슷한 면을 찾으셨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소름>을 보시더니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기냐, 하시더라고. (일동 폭소) 상당히 부러운 얘기예요. 지금까지 어머니는 제가 뭘하고 있는지 몰라요. 아들이 감독이 되긴 된 것 같은데, 어머니 생각으로는 영화라는 것은 훨씬 허 감독 영화에 가까워요. 신성일이 있고, 엄앵란이 있고. 그런 것밖에 없어요. ▶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1) ▶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2) ▶ 허진호의 낱말풀이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1)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2)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3)

“잠이 안 와서 수면제 먹어봤나요, 사랑 때문에” (2)

왜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갈까, 나도 궁금 허: <소름>은 어떻게 만들게 됐어요? 윤: <소름>은 내가 만든 중편 <메멘토>를 장편으로 하고 싶었다가 그게 돈이 없어서 못했어요, 미국에서. 한국에 와서 준비하다가 한번 고쳐가지고 해보려고 했는데, <메멘토> 찍을 때 불만이, 너무 현실하고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너무 인텔리적이고, 현학적인 느낌도 강했고. 그래서 서민의 이야기로 하려 했는데…. 그게 의도대로 됐으면 어머니도 즐거워하셨을 텐데. (일동 웃음) 허: <메멘토>를 봤거든요. 의외였어요. 봤을 때의 느낌이나 기억들이. 히스토리에 대한 것을 먼저 듣고 봐서 그런지, 굉장히 감성적인 느낌이 많았던 것 같아요. 윤: 개인적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늘 갖는 불만이, 시나리오를 할 때나 사랑을 다룰 때도 평이하게 간다고 찍는데 결국은 뒤틀려서 난해해지고…. 뭐 그런 것들이 불만이에요. 외부에서 보면 그게 강점인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내가 현실로부터 멀어져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현실을 잊기 위해 내가 영화를 할지 모른다는 느낌을 가질 때 공포스러워요. 그런데 이나 <봄날…>을 보면 영화가 현실 속으로 들어가잖아요. 허: 박철수 감독님 <학생부군신위>를 볼 때, 참 인상깊었던 장면이 감독님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초혼이라고 하나 그것을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잡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영화의 표현을 생활에서 많이 찾으니까 내가 무슨 일을 당했을 때도 이거 영화로 만들면 재밌을까, 이런 장면을 영화로 집어넣으면 어떨까, 이러거든요. 윤: <소름> DVD를 녹음하는데 정성일씨가 인터뷰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러더라고. 세상에 나쁜 놈들이 영화감독이라는 얘기가 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와서 고민을 얘기하면 언젠가 영화 보면 그게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허: 그게 참 어떨 때 보면 되게 불편해요. 그런 상황들이 약간 뒤틀려 있거나 영화적으로 그런 느낌이 왔을 때 바로 이걸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촉각이 서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러다보니 좀 피곤하기도 해요. 저 같으면 영화 만드는 방식이 주변에서 조금씩 들은 에피소드들을 쌓아놓았다가 재구성하는 것인데, 그게 참 피곤하더라고. 윤: 저같은 경우엔 좀 추상적이잖아요, 허 감독의 경우엔 구체적이고. 감독의 성장배경이라든가 그런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시종일관 웃기고 때려부수는 영화 같은 거야 그런 성향과 상관없이 가겠지만, 어떤 세계를 탐구하고 깊이를 찾는다는 관점에서 볼 때는 그런 것 같아요. 허 감독의 영화는 굉장히 따뜻해요. 허: (웃음) 차갑다는 사람도 있는데. 윤: 영화기법적으로 보면 차갑죠. 감정의 절제라는 차원에선 차갑지만, 기본적으로 흐르고 있는 메시지라든가 이런 것을 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도 따뜻한 것 같아요. 사랑을 바라보는 눈도 굉장히 긍정적인 것 같아요. 제가 이별 과정을 그린다면 냄비 집어던지는 있었을 거예요. (일동 웃음) 허: 아니, 나도 하려고 했어요. 윤: 싸울 때 사실 삿대질도 하고 그렇잖아요. 상대방 자존심 팍팍 깎아내리고 그러다가 또 화해하고, 이렇게 균열가기 시작해서 헤어지고야 말죠. 이명세 감독님의 <지독한 사랑> 보면 그야말로 애증이잖아요. 닭죽 먹다가도 뽀뽀하던 사람들이 눈탱이 밤탱이 될 때까지 또 때리고. 그리고도 또 좋다고 화해하고. 허 감독 영화를 보면 그런 면이 많이 절제되는 것 같아요. 안 좋은 것에 대해서 그렇게 포인트를 주지 않는 것 같아요. 뒤집어 말하면 세상에는 따뜻하고 좋은 점을 부각시키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굳이 나쁜 것까지 다뤄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식 같아요. 허: 저도 만들고 나서, 내가 왜 이렇게 만들었나 해요. 같은 경우에는 친구와 좀 안 좋은 일도 다 있는데, 왜 그렇게 좋은 기억들만 가지고 갈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그런 게 좀 가식인 것 같기도 하고. 영화라는 게 어떤 시선이 있는 거지만 그 시선이 너무 편중돼 있는 것 아닌가, 그런 고민을 했어요. 좀더 부딪치면서 상처받는 부분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제 성향은 좋은 부분이 재밌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쪽인 것 같긴 해요. 윤: 아니, 뭐 영화를 만들기 위해 굳이 일부러 상처받을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허: 아니 일부러라기보다는. 상처받은 경험도 있는데 그 경험 중에서, 혹은 내가 바라보는 것 중에서 좋은 부분을 많이 선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적이 있었어요. 회사 그만두고 여러 가지 개인적으로도 안 좋은 일이 있었을 땐데, 차를 몰고 가다가 담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재떨이에 있는 담배꽁초를 피우고 있는데, 옆에 있는 택시가 빵빵거려요. 쳐다보니까 창문을 내리라고 해요. 그래서 내렸더니 담배 두댄가를 탁 던져주고 부르릉 가더라고요. 뭐 이런 느낌도 있지 않을까, 살면서. 그런 느낌들이 영화로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쪽을 표현하는 데 내가 관심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 그런 면인 것 같아요. 좋은 것을 봤을 때 기억으로 간직하고 가져가고. 그런데 저같은 경우엔 성향 자체가 좋은 사람이 있는데, 이 나쁜 놈들이 못살게 군다 이런 식이죠. (일동 웃음) 그러니까 이 사람들만 아니면 저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데. 하는 생각. 시각 자체가 어두우니, 세상이 항상 이 모양이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거죠. 이런 게 에너지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감독이 애정을 가지면 전쟁장면도 예쁘게 찍어 허: 아까 <지독한 사랑>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좀더 심하게 하고 싶었어요. 상우가 은수한테 너 그 남자랑 잤니, 이런 대사도 있었어요. 현실에선 그런 말을 많이 하니까. 윤: 하여튼 은수가 상우를 두고 백종학과 놀아나는 것을 불륜으로 묘사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허: 그런 것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할까도 생각했어요. 상우가 은수 집에 갔는데, 백종학 차가 있고, 백종학, 백종학 하니까 좀 이상하다 . (웃음) 극중 이름이 초대손님. 아, 음악평론가 이지운씨다. 김지운 감독한테 좀 미안한데…. 차가 있고 하면 아파트 안에 있을 수도 있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도 했는데 상우라는 인물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피해간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이게 정확히 묘사가 안 되다 보니까…. 물론 관객은 은수가 “달려요“ 하는 것을 보니까 바람 피우는 것을 알지만, 상우의 시선에서야 그 정도 차를 타고 가는 것을 가지고 법석을 떨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윤: 근데 만약 내가 상우였다면 굉장히 끔찍했을 것 같아요. 콘도로 같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 성격이라면 차를 긁는 게 아니라,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알아보려고 하죠. 하긴 성격에 따라 영화를 찍는 것이니, 차라리 안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생각하면 상우에게 너무 잔인하죠. 허: 근데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그래서 백종학씨 한번 더 내려와야 할 것 같다, 그랬죠. (일동 웃음) 콘도의 상황도 원래 백종학씨가 나오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얘가 왜 차를 긁지? 그러려면 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윤: 그것도 화면을 보면 줌 비슷하게 쳐가지고 팬으로 가볍게 했데요. 그런데 이 영화 전체 어디를 봐도 그런 숏은 없었어요. 그렇게 가볍고 무성의한 숏은 없었다고. (웃음) 그러니까 감독이 그런 상황에 대해 굉장히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일동 웃음) 허: 아무 생각도 없이 콘도에 가서 찍으려는데 이거 골치 아프다, 아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내가 농담으로 프로듀서에게 비나 왔으면 좋겠네요, 그랬더니 비가 오는 거예요. 좋다고 철수하지, 그랬다가 잠시 기다리는데 비가 그치더라고. (웃음) 윤: 감독이 애정을 갖는 숏이라면 전쟁이 일어나도 예쁘게 찍어요. 대나무 숲에서 둘이 앉아 있는데 대나무가 일렁거리는 장면 있잖아요. 그런 장면은 아마 비가 3일 와도 찍을 거야. (일동 웃음) 그런데 마티즈 긁는 장면 같은 것은 미장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감독의 애정이 어디에 가 있는지 너무 명확한 것 같아. 허: 아, 그랬었구나. 하하. 사랑의 감정은 사라져버리는 걸까? 윤: 그런데 왜 은수는 헤어지고 싶어하는 거예요? 허: 실제로 이영애씨에게 김치 담글 줄 아냐고 물었어요. 은수라는 인물이 그 집에 들어가 며느리로 산다고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그랬더니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힘들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윤: 그러면 여기서 여주인공은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거구나. 허: 본인 자신이 안정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사는 그런 삶도 행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잘 나오진 않았지만 은수라는 인물은 그럴 수도 있다. 편집본에서는 결혼이라는 게 중요한 문제로 들어갔는데, 내 생각에는 결혼 전에도 연애를 시작할 때처럼 멀리서 뛰어오고, 이런 감정들은 없어지지 않았나, 서로간에. 상우라는 인물 자체는 가족이라는 것으로 만들어가면서 사랑을 새롭게 지속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은수는 그게 힘든 여자였기 때문에 싫증이 먼저 났고. 아니 싫증이라기보다는, 연애하다보면 그런 게 있잖아요, 뭔가 재밌게 해야 하는데 왜 재미가 없지, 이런 단계까지 오지 않았을까. 윤: 그럼 사라져버리는 걸까, 그런 감정이.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둘이 너무너무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라면만 끓여달라고 하고, 떡도 넣어달라고 하고, 김치도 넣어달라고 하고, 그래서 끓여주면 짜증내고. 그러면 혼자 밥 먹게 되고 뭐 이런 균열이 오기 시작하는데. 그럼 여자가 그렇게 나오는 이유가 벌써 싫증을 냈기 때문이에요? 힘들어서 그런 건가. 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둘은 어쨌든 사랑했다고 하고 싶은데, 그래서 그것이 변해가는 것이 내 관심이었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실제로 사랑한 건가. 나는 은수가 상우를 계속 좋아했던 것 같긴 해요. 사람으로서도 좋아하고. 윤: 마지막에 은수가 할머니에게 드리라며 상우에게 화분을 주고 가는데, 다시 와서 우리 같이 있을까, 그러잖아요. 그런 거는 뭐… 다시 즐기자는? (일동 웃음) 허: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랑 안 했다고 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사랑했다고 볼 수도 있고, 되게 어려운 얘기 같아요. 여기서도 너 나 사랑하니, 하면 대답 안 하잖아요. 윤: 그런데 통상적으로 만약에 그 여자가 남자를 사랑했다면, 남자가 너 나 사랑하니, 했을 때 대답하잖아요. 허: 사랑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허: 은수가 다시 찾아올 때는 문득 봤을 때, 아 이 남자가 참 좋은 남자였구나,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리고 자기 생각으로는 이 남자는 부르면 올 것 같다는 생각을 아직도 했을 것 같아요. 화났니, 하면 고개 끄덕거리면서 보고 싶었어, 그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웃음) 윤: 그런데 할머니 대사는 뭐예요. 떠난 버스와 여자는…. 허: 잡는 게 아니다. 윤: 그건 잡는 게 불가능하단 얘긴가요, 아니면…. 허: 잡아도 잡히지 않는다는 거죠. 묘하게 오늘 색보정하면서 다시 보며 연관성을 발견했는데, 아라리 할아버지가 노래 부르시잖아요. 백발이 오지 말라고 했는데, 가로질러 오더라는. 그런 노인들이 갖고 있는 지혜로운 이야기들이 있어요. 떠난 버스와 여자라는 것도. 왜 그게 생각났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게 좀 위험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어떤 감정을 가져가는데. 인위적이기도 하고. 할머니가 느닷없이 정신이 돌아온 듯한 얘기를 하는 것도 그렇고….▶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1) ▶ 허진호와 <봄날은 간다> (2) ▶ 허진호의 낱말풀이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1)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2) ▶ <소름>의 감독 윤종찬, 허진호를 만나다 (3)

빛의 리얼리스트

촬영장은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긴장지대이다. 방금 전가지 개어 있던 하늘에서 소낙비가 내리는 것이 예사이고, 주연배우의 늑장에 몇 시간씩 작업이 지연되는 등 순발려과 인내심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곳, 프랑스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던 교사에게 기회가 온 것도 그 부산한 촬영장이었다. 우연히 에릭 로메르의 의 촬영장을 구경하다 예의 돌발 상황이 벌어진 것. 카메라맨이 감독과 심한 말싸움을 하다 급기야 현장을 떠나버렸고, 촬영은 돌연 중단되고 말았다. 구경을 하던 교사는 자신이 카메라맨임을 밝혔고 중단된 촬영의 바통이 그에게 넘어왔다. 세계적인 촬영감독 하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스페인에서 태어난 네스토르 알멘드로스(1930~1992)는 프랑코의 파시즘에 반대하는 아버지를 따라 18살 되던 해 쿠바로 이주했다. 학창 시절부터 단편영화를 찍었고 영화촬영을 향한 욕구에 이끌려 뉴욕을 향한다. 그러나 그를 다시 쿠바혁명이 불러들였다. 1959년 바티스타 독재정권이 무너진 뒤 그는 정치다큐멘터리로 카스트로의 쿠바 건설에 뛰어들었다. 이때의 작업은 빠르면서도 정확한 그의 촬영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두편의 영화가 상영금지를 당한뒤, 알멘드로스는 누벨바그가 일렁이던 파리로 거처를 옮겼다. 그것이 새 물결의 해안, 에릭 로메르의 촬영현장에 스페인어 교사가 서성거리게 된 내력이다."가장 훌륭한 조명은 자연광이다." 알멘드로스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찍었다. 1992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는 사실주의에 입각한 자연스러운 화면을 만들어내는 데 평생을 바쳤다. 일상을 철학의 배지로 삼는 로메르와 인공적영상에 염증을 느끼게 된 프랑수아 트뤼포가 알멘드로스를 택한 건 우연일 리가 없다. 그리고 트뤼포의 <야생의 아이> <아텔 H. 이야기>, 로메르의 <오후의 연정> 등을 통해 할리우드는 그를 뒤늦게 발견했다. 할리우드 첫 영화인 테렌스 맬릭의 <천국의 나날들>로 그는 79년 오스카 촬영상을 받았고, 그뒤로도 세 차례나 오스카 후보에 올랐다. 다큐멘터리의 제작과 촬영서적 집필에도 주력한다.그의 화면은 관객에게 상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걸 원칙으로 한다. 가공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카메라를 대하는 그의 태도이다. '사실'이라면 성마른 기록자를 연상하는 이들에게 <천국의 나날들>은 자연주의를 신봉하는 진정한 시선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60년대 미국 남부의 광활한 대지가 밀밭의 아름다운 풍광과 메뚜기떼의 습격이라는 자연의 대재앙을 오가며 70mm 대형화면 위에 가감없이 펼쳐진다. 인상주의 유화를 연상시키는 은은한 화면은 자연의 빛에서 연유한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직전의 30분, 이 '매직아워'의 빛으로 해질녘 밀밭과 농부들의 모습을 자연과 함께 포착해낸 거대한 광경속에서 관객은 인간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러나 지울 수 없는 비애감으로 바라보는 경험을 맛보게 된다.현실감을 살리려는 이러한 시도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다. 불은 있는 그대로의 불빛을 담을 때 가장 생명력을 지니게 되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실제 빛을 이용할 때 방 안의 느낌이 살아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실제 <천국의 나날들>의 캠프파이어신은 스포트라이트에 천조각을 대고 흔들어서 불빛을 흉내내던 기존의 조악한 방법 대한 프로판 가스의 불빛을 이용해 인공적이 불빛에서 탈피한 자연스러운 화면을 구사한 것이었다. 때로 자연광을 기다리는데 한나절이 걸리는 수고가 요구되었지만, 그는 필요이상의 인공장치가 관객을 현혹시키며, 기교를 뽐내려는 과시에서 비롯된다고 여겨 기피하였다.최첨단 디지털 장비로 빠른 편집과 시각을 자극하는 현란한 조명에 길들여져, 현실이 소박한 모습에 흥미를 가질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 시대이다. 매트 페이팅도 그 흔한 특수효과도 없지만, 실재하는 것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긴 호흡에 담아낸 알멘드로스의 아날로그식 화면은 어떤 기교도 따라올 수 없는 기적적인 충만함을 선사한다. 다행히, 그는 자신의 경험을 자서전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비롯한 글 속에 남겨 두었다.이화정/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필모그래피<빌리 배스게이트> (Billy Bathgate, 1991) 로버트 벤튼 감독<뉴욕 스토리>(New York Stories, 1989) 우디 앨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감독<나딘>(Nadine, 1987) 로버튼 벤튼 감독<제2의 여인>(Heartburn, 1986) 마이크 니콜스 감독<마음의 고향>(Places in the Heart, 1984) 로버트 벤튼 감옥<일요일이 기다려진다>(Vivement Dimanche!, 1983)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해변의 폴린느>(Pauline at the Beach, 1983) 에릭 로메르 감독<살의의 향기>(Still of the Night, 1982) 로버트 벤튼 감독<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 1982) 앨런 J, 파큘라 감독<푸른 산호초>(The Blue Lagoon, 1980) 랜달 클라이저 감독<마지막 지하철>(Le Dernier Metro, 1980)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크레이머 대 크레이머>(Kramer vs, Kramer, 1979) 로버트 벤튼 감독<바람둥이 길들이기>(Goin' South, 1978) 잭 니콜슨 감독<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1978) 테렌스 맬릭 감독<코코 말하는 고릴라>(KoKo, Le Gorille Qui Parle, 1977) 바벳 슈로더 감독<메이트리스>(Maitresse, 1976) 바벳 슈로더 감독(Die Marquise Von O, 1976) 에릭 로메르 감독<장군 이디 아민 다다>(Idi Amin Dada, 1974) 바벳 슈로더 감독<나의 작은 연인들>(Mes Petites Amoureuses, 1974) 장 외스타슈 감독<구름에 가린 계곡>(La Vallee, 1972) 바벳 슈로더 감독<오후의 연정>(L'Amour L' apres-midi, 1972) 에릭 로메르 감독<클레르의 무릎>(Le Genou De Claire, 1970) 에릭 로메르 감독<모드집에서의 하룻밤>(Ma Nuit Chez Maud, 1969) 에릭 로메르 감독<모어>(More, 1969) 바벳 슈로더 감독<여성 수집가>(La Collectionneuse, 1967) 에릭 로메르 감독(1964) 에릭 로메르 감독

스무살, 세상밖으로 가출 <고양이를 부탁해>

◈스무살 여자의 세 표정 여상을 졸업하고 세상과 맞대면하게 된 세 여자. 스무살에 이들이 찾아야 하는 건 핸드폰이나 화장품 광고처럼 자신들의 이미지를 치장할 장신구가 아니라, 사회 속에 발디딜 좌표다. 각자의 성격과 상황에 따라 세상을 달리 바라보는 세 주인공이 저마다 힘들고 안쓰러워 보이지만, <고양이를 부탁해>는 그런 안쓰러움을 넘어서 이들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동지감을 준다. 혜주(이요원)에게 사회는 성취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전쟁터이다. “평생 잔심부름만 하는 저부가가치 인간으로 살 수는 없어. 코도 높이고 영어공부도 하고, 반드시 성공할 거야.” 증권회사에 취직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한다. 여상 동창인 친구들에게는 무심하거나 쌀쌀맞을 때가 많다. 세속적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다. 외모에 신경쓰는 게 공주같을 때가 있고 실제로 예쁘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엔 그늘이 있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그가 원하는 걸 이루기란 쉬울 것 같지 않다. 지영(옥지영)은 세상을 버티고 추스려 나가기가 버겁다.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판자촌에서 사는 지영은 공부도 잘 했고 디자인에 솜씨가 있지만 보증 설 사람이 없어 온전한 직장에 취직하지 못한다. 갈수록 생활이 힘들어지는 데 더해 집 지붕마저 자꾸 내려앉으려 한다. 혜주와 학교 때 제일 친했지만, 졸업한 뒤에는 가장 소원해진다. 지영이나 혜주에게 세상은 정해진 사람들의 정해진 자리로 채워져 있다. 그 안에서 둘이 함께 할 자리는 없어 보인다. 태희(배두나)는 다르다. 겪어보고 싶은 게 많고 그래서 세상은 미지의 신대륙이다. “배를 타고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살 거야”라는 그에게 자기 몫의 자리란 큰 의미가 없다. 맥반석 체험실을 하는 아버지의 일을 돕지만 돈벌어 먹고 사는 걸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가족들이 싫다. 뇌성마비 시인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고, 불쌍해 보이는 외판원들이 파는 물건을 거절하지 못한다. 지영의 힘든 사정에도 가장 관심을 보인다. 이 몽상가가 가장 과격한 `사고'를 친다. 아직 젖살이 남아있는 이 스무살 여자가 험한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데, 위태롭게 느껴지기보다 마음 속에서 박수를 보내게 되는 건 왜일까. ◈ 비로소 만나는 온전한 성장영화 `고양이'라는 이름을 가진 가수 캣 스티븐스의 70년대 팝송 <와일드 월드>는 낯선 세계를 찾아 떠나는 여자에게 “오, 베이비 베이비 잇츠 어 와일드 월드”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항상 너를 소녀로 기억할 거야”라고 노래한다. 따뜻한 노래지만 소녀로 기억되는 걸 넘어 성인이 될 때 세상은 `험하다'는 형용사에 따라붙는 수동태로만 남아있을 수는 없다. 그 경계선의 나이, 스무살의 이야기에 고양이가 지닌 “애완동물과 야생동물 사이의 묘한 경계성”을 담고자 한 정재은(32) 감독이 담아낸 세상의 모습은 험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한 영화 평균 30여곳인 로케 장소를 70여곳이나 찾아가 담아낸 인천과 서울의 풍경은 한곳 한곳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진득하다. 주인공들이 방파제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뛰어갈 때 그 바람을 함께 맞고 싶은 유혹이 인다. 화면 자체부터 활자매체로 표현할 수 없는 풍부한 디테일을 가지고 스무살의 가출을 허락한다. 그게 신인 여자 감독의 메시지여서 더 미덥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온전한 성장영화다. 성장을 다룬 대다수 영화나 소설에서 보여지듯, 하나의 주체로 세상과 맞대면하는 데 가출 만큼 분명하고 구체적인 계기는 없다. 그러나 한국영화는 가출을 피해갔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든 <친구>든 주인공 아닌 친구가 가출했고, 그래서 불완전한 성장의 후일담이 돼버렸다. 이 영화에서는 여자가, 여린 감성 그대로 간직한 채 집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 발걸음에 사실감이 배어나는 걸 보면 이 가출은 지금 시대의 한 징후를 먼저 감지해낸 것일지 모른다. <고양이…>는 올해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진취적인 영화로 꼽힐 것 같다. ◈배우들 한마디 -이요원이 본 혜주 “어두운 모습을 절대 친구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친구들 앞에서는 늘 밝고, 바쁘고, 행복한 모습만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속 혜주의 색깔은 다양하다.” -배두나가 본 태희 “어떤 이유든 잡아서 열등감으로 만들어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보통의 20살의 모습이 아니고 은근히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지혜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옥지영이 본 지영 “고양이처럼 마음을 쉽게 열지 않고 고집 세고 남을 경계하지만 실은 여리고 상처를 잘 받는 것 같다. 단지 사람들이 지영이를 고양이처럼 경계하는 것일 뿐이지.” 임범 기자 isman@hani.co.kr

“나는 아직 목마르요”

한대수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세월이었다. 목소리를 다시 직접 마주하기까지 그는 얼마나 ‘멀고 먼 길’을 돌아온 걸까. 32년 전, 한대수는 동시대 젊은이들의 마른 가슴을 축여주는 젊은 가객이었다. 막걸리처럼 걸쭉한 목소리로 외치는 <물 좀 주소>나 “장막을 걷어라”라고 이상향에의 동경을 읊조리는 <행복의 나라로>는 김민기의 수일한 노래들과 함께 70년대 청춘들의 성가 목록에 올랐다. “목적이 있어서 작곡한 건 아니었다”며, “내 삶을 노래하자니 자연히 둘러싼 현실도 담겨 오더라”는 말대로 그의 음악이 설사 사적인 몽상에 가까웠다 해도, 거기 스민 자유의 내음은 암울한 현실에 위안이 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자신은 노래할 자유를 잃고 미국으로 떠났고, 우리에게 한대수는 오랫동안 음반 몇장과 함께 목소리로만 남아 있었다. 그가 고국의 무대를 다시 찾은 것은, 대중음악과 한국 록음악사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한 뒤의 일이다. 97년부터 몇몇 대형공연에 초대받고 자서전을 펴내는 등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그가, 이번엔 다큐멘터리의 피사체로 돌아왔다. 올 11월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이 확정된 <다큐멘터리 한대수>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 선후배인 이천우와 장지욱, 두 젊은 감독이 카메라로 따라잡은 그의 현재에 대한 기록. 새 음반 작업을 위해 국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던 지난해, 카메라는 그와 걸음을 함께하며 음악인으로서뿐 아니라 ‘사람’ 한대수의 삶을 되짚어갔다. 가편집이 끝난 다큐멘터리를 핑계 삼아, 논현동에 임시로 오피스텔을 얻어 사는 그를 만났다. 단발머리에, 웃옷을 입지 않고 치마처럼 펄럭이는 바지를 휘감은 모습, 마실 것을 권하고는 손수 커피물을 끓이며 그는 “기타, 맥주, 낮잠” 세 단어를 노래하듯 흥얼거렸다. 그에게는, 여전히 틀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한 활기가 있었다. 다큐멘터리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여정을 물어보려는데, 부인의 란제리 차림과 자신의 뒷모습을 담은 기발한 포스터를 가리키며 그가 먼저 물었다. “어때 양호하지?” 그 손끝을 눈으로 좇는데 눈에 띄는 ‘라스트 솔로 콘서트’란 글귀. 그렇지, 그는 무려 32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작정한 국내 단독 콘서트를 앞두고 있었다. #1. 2001 한대수 오디세이의 시작 2000년 7월, 부산의 어느 편의점. 자신의 기사가 난 신문을 본 한대수가 “한 마리 살게” 하자 친구가 “내가 살게” 하고 나선다. 화면 밖의 목소리가 점원에게 “한대수씨 알아요?” “모르는데요.” (웃음)(<다큐멘터리 한대수> 중에서) 확실히 그는 요즘 사람들에게 낯선 얼굴이다. 70년대 중반 한국 땅을 떠난 이래 97년 유니텔 록콘서트 무대에 서기까지, 그는 몇장의 음반으로 남아 있었을 뿐이니까. 그나마 2집 <고무신>은 유신 독재의 서슬 아래 마스터테이프까지 압수당하고 판매금지됐으며, 데뷔음반인 <멀고 먼 길>이나 미국으로 간 뒤에 낸 <무한대> <기억상실> 역시 희귀음반에 가까워 실체를 접할 길은 묘연했다. 60년대 말 김민기, 양희은과 함께 모던포크를 이끌고, 직접 곡을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의 문을 연 한대수. 방랑자 같은 자유에 대한 갈증을 품은 그의 음악은 본의든 아니든 유신 독재의 장막에 갇힌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는 단비였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힘 있는 포크기타 선율, 걸걸한 음색으로 삶의 속내와 이상을 담은 노래는 시대를 떠나 지금도 마음을 파고든다. 그 노래들이 태어난 시대에서 멀리 떨어진 스물여섯의 장지욱씨가 그를 다큐멘터리의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것도 그런 매력 때문이다.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는 님/ 무명 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 하는 <바람과 나>의 가사처럼, 세파에 초연한 보헤미안의 자유로움을 꿈꾸는 바람. #2. 클로즈업: 물 좀 주소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수백개의 눈동자가 나를 관통하는 것이 느껴졌다. (중략)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Set aside all my days….”(한대수 자서전 <물 좀 주소 목마르요> 중에서) 무교동의 음악공간 ‘세시봉’을 첫 무대로 세상에 등장한 68년, 그는 스무살이었다. 외로운 뉴욕 생활에 지쳐 서울의 어머니에게 돌아온 직후. 한창 만개한 히피문화를 누린 자유분방한 품새와 덥수룩한 긴 머리,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기타와 하모니카의 열띤 연주로 불러젖히는 그는 한없이 낯선 존재였다. “엄마가 처음에 잘해줬는데,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 그가 어릴 적 미국으로 유학간 아버지의 돌연한 실종 뒤 재혼한 어머니에게 오랜만에 재회한 아들의 분방함은 생소했다. TV에 출연하면서 ‘신기한 동물’ 취급에 더욱 외로웠던 무렵, 자신을 이해해주는 여자친구와 밤을 보내다가 들킨 그는 어머니의 집에서 쫓겨났다. 명륜동 셋방으로 옮기긴 했지만 용돈도, 끼니를 때울 방법도 막연했다. 마침 기타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두 여성팬의 도움과 영어회화 교습, 세시봉과 TV 방송 출연으로 힘겹게나마 생활은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여자친구는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남겼다. “너무 좋다는 거야, 내 음악이. 드라마센터에서 공연하래. 으아, 당신 돌았소, 아무도 나를 모르는데, 말이 되느냐, 그랬지.” 며칠 뒤 두 사람은 사재를 털어 남산 드라마센터를 예약했고, 그는 지금이라면 예술의전당쯤 되는 그 무대에서 첫 단독 공연을 가졌다. 단독 공연은 그걸로 끝이었지만, 이 공연은 <멀고 먼 길>의 녹음으로 이어져 공식적인 데뷔에 기폭제가 됐다. #3. 인서트: 코리아나 인 뉴욕 “뉴욕이 좋냐, 서울이 좋냐 많이 묻는데, 예전에는 뉴욕이 훨씬 낯익고 편했지. 몇번 오다보니까 이제는 서울에 와도 낯선 느낌이 덜 해. 아는 동네도 생겼고. 지금은 거의 반반이야. 서울은, 한국은 사람들 인정이 더 있잖아. 오목오목 여자 유방 같은 산의 선도 예쁘고. 뉴욕에서 좋은 건 프로페셔널리즘. 그리고 좀 디테일한 거.” 74년 <멀고 먼 길>로 데뷔한 기쁨도 잠시, <고무신>을 낸 지 2주 만에 판매금지의 철퇴를 맞은 그는 미국에 정착하기로 맘먹었다. 미국은 어려서부터 인연이 많은 나라였다.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유학간 공학도 아버지가 실종된 나라고, 연세대 학장을 지내다 선교사로 초청된 할아버지를 따라 나선 그가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곳도 뉴욕이었다. “놀림 무지 받았지. 내가 눈이 좀 째졌잖아. 화장실 가서 애들 패고, 나도 많이 맞고.” 편견과 관습에 매이지 않는 넉넉함은, 인종과 언어, 문화의 이질감을 일찌감치 체득한 덕분이기도 하다. 실종 십여년 만에 FBI가 찾아낸 아버지와 함께 살기 위해 다시 뉴욕으로 간 게 고등학교 때인 64년.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뉴햄프셔대학에서 수의사가 될 뻔하다가 사진을 발견한 것도, 사진학교를 다니며 히피문화의 세례를 받은 곳도 뉴욕이었다. 하지만 음악을 잃고 돌아간 뉴욕에서, 이미 히피시대의 낭만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결혼도 했고, “처음 2∼3년은 방값을 벌기도 바쁜” 생활고에 음악은 뒷전이었다. 디자인 포장센터의 디자이너, <코리아 헤럴드>의 기자 겸 사진작가로 일한 한국에서의 경력을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카메라점의 선적부라는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칭기즈 칸’이란 밴드를 만들어 음악을 재개한 것은, 사진작가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였다. ▶ <다큐멘터리 한대수> 찍고 32년 만에 단독 콘서트 준비중인 한대수를 만나다 (1) ▶ <다큐멘터리 한대수> 찍고 32년 만에 단독 콘서트 준비중인 한대수를 만나다 (2) ▶ <다큐멘터리 한대수>를 만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