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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중국, 배급 독점 깨진다

외화상영 통제 완화, 사스공포 감소로 극장가도 활기 중국 영화시장을 덮고 있던 ‘죽의 장막’이 조금씩 틈새를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새로운 배급회사인 화하전영공사가 6월20일에 창립된다고 발표함으로써, 2년 전 외국영화 수입과 상영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완화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지금까지 중국에선 중국전영공사가 영화배급을 독점해왔다.중국의 옛 명칭에서 이름을 따온 화하전영공사는 전 중국영화국 장관 리우지엔종이 대표로 취임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다른 영화 관련 회사 간부들이 영입되면서 현재는 결과가 불투명해진 상태. 화하전영공사는 7월부터 B급영화 몇편을 시험삼아 배급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가 수입을 허가하는 외국영화는 1년에 모두 20편. 화하전영공사는 중국전영공사와 각각 절반씩 외화를 나누어 배급하며, 중국영화 배급은 1년 동안의 실적을 평가해서 배당받게 된다.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은 새로운 배급망의 등장을 환영하면서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실질적으로 중국 정부가 좌우하는 중국전영공사와 차이나 미디어 그룹이 화하전영공사의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차이나 미디어 그룹이 소유한 지분은 단일 회사로는 가장 높은 수치인 20%. 거기에 애초 2년 전에 창립됐어야 할 화하전영공사가 중국전영공사 및 지방전영공사들 사이의 이권 다툼 때문에 창립 일정이 밀렸다는 전적도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러나 어느 미국 영화관계자는 “일단 경영을 시작하면, 정치적이고 관료적인 질서도 그 활동을 돕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은 2003년 말까지 디지털 스크린 수를 100개까지 늘릴 예정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상영될 외국영화의 쿼터 제한도 함께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스때문에 문을 닫았던 극장들은 이번주부터 할리우드 화제작을 연이어 상영한다. TV와 영화제작 분야도 이전보다 많은 부분을 개방하고 있다. 파룬궁에 대한 보도 때문에 제재 조치를 받기 전, 영국 방송사 는 <텔레토비>를 방영해 큰 성공을 거뒀고,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스타 그룹은 광둥지역에서 엔터테인먼트 채널권을 확보했다. 공동제작도 꾸준하게 늘고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과 존 달의 <그레이트 레이드>가 지난해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촬영을 했고, 올해 1월부터는 마이클 윈터보텀이 홍콩과 상하이에서 < 코드46 > 촬영을 시작했다. 이안 소프틀리의 <상하이>도 제작준비가 되는 대로 상하이를 찾을 예정. 이 영화들의 제작사인 미라맥스는 중국 최대 규모의 수출작이었던 장이모의 <영웅> 미국 배급을 맡으면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움직임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사스 확산이 주춤해지면서 다시 문을 열기 시작한 극장가의 기지개다. 7주 동안 문을 닫았던 베이징 극장들은 이번주부터 할리우드 화제작을 연이어 상영한다. 6월20일 <데어데블>을 시작으로, 27일에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 7월18일엔 <매트릭스2 리로디드>가 상영되는 것. 중국에 기반을 둔 홍콩 영화제작사 만다린엔터테인먼트 역시 다국적의 아시아 배우들을 캐스팅한 코미디영화 <잃어버린 수평선>을 비롯해 그동안 미뤄둔 10편의 영화제작 일정을 재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만다린엔터테인먼트는 사스에 관한 세편짜리 옴니버스영화를 제작, 영화계뿐 아니라 홍콩 경제 전체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던 사스의 기억을 털어버리겠다고도 밝혔다.김현정

공포심의 노예가 될래,말래?

로션이 떨어져서 화장품가게에 갔더니 점원 아가씨가 로션을 팔고나서는 다른 상품들도 권한다. 이거 한번 써보세요. 요즘은 이렇게 비누도 크림 형태로 나오지요. 아직도 딱딱한 비누로 세수하세요? 어쩌나, 피부가 거칠고 빨리 노화되는데. 집에 자녀는 몇이시죠? 아이들은 특히 피부가 약해서 빨리 비누를 바꿔주셔야 돼요. 초등학교 다니는 딸에게 ‘*** 영어교실’을 시키고 있는데, 한 외국어고등학교 교사가 와서 부모들에게 외고 입학과 수능시험에 대비한 특강을 하니까 오라고 한다.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인데 벌써 그럴 필요 있겠냐고 안 가겠다고 하자 선생님이 놀라서 소리친다. “수능, 그렇게 먼 거 아녜요. 지금부터 준비하셔야죠.” 요즘 TV에 나오는 손해보험협회의 공익광고캠페인도 장난이 아니다. “아빠, 일찍 들어와” 하는 어린 딸의 목소리가 보이스 오버로 깔리면서 희미하게 웃음짓는 중년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바로 다음 순간 이것이 교통사고로 길바닥에서 비명횡사하는 남자의 마지막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이어 자막이 뜬다. ‘가족과의 소중한 약속, 속도를 줄이면 지킬 수 있습니다.’ 공포영화 스타일을 차용한 캠페인이라니! 세끼 밥의 반찬쯤으로 공포를 떠먹이는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줄기차게 아침저녁으로 상쾌한 비누세수를 해왔건만 그 익숙한 비누로 세수를 하는데 이젠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젠장. 미국의 ‘꼴통’ 반골인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은 공포심을 퍼뜨려서 권력을 유지하는 집단과 공포심을 퍼뜨려서 돈을 버는 집단을 성토하는 다큐멘터리다. 앞의 것의 대표적인 예는 공화당 정부이고 뒤의 것의 대표적 예는 무기산업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총기협회 회장 찰턴 헤스턴은 “총으로 사회를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고 외치고, 테러사건에 연루됐던 자칭 좌파 인사는 “썩어빠진 사회를 다 쓸어버려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컬럼바인고등학교 총기난동 사건 때 문제학생들이 마릴린 맨슨의 팬이었다는 이유로 맨슨이 이 사건의 원인제공자로 집중공격을 받았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다큐멘터리 인터뷰들에서 가장 논리적인 건 마릴린 맨슨이다. “텔레비전은 온통 공포를 조장한다. 홍수, 에이즈, 살인…. 광고도 공포효과를 노린다. 그게 우리 경제의 기초다? 사실, 공포의 메커니즘이란 모든 조직과 사회의 실존적 기반이다. 그것은 인류역사만큼이나 유서 깊다. 그것은 역사의 지층들을 통과하는 동안 상식이 되고 관습이 되기도 한다. 유대인들에 대한 악소문이 종교가 다른데다 우수한 소수자에 대한 박해 차원에서 생성된 것처럼, 호남 사람들의 인간성을 매도하는 말들도 ‘차령 이남 사람은 등용 안 한다’는 고려조 이래 지배권력이 피억압지역인 동시에 곡창지대인 이곳 사람들을 견제하려고 퍼뜨렸을 것이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수많은 속담이나 미신들도 가만히 보면 모두 어떤 현실적인 필요가 있다. 가령, 밤에 손톱을 깎으면 재수없다는 것도, 옛날에 어두컴컴한 호롱불이나 촛불 밑에서 손톱을 깎다보면 다칠 수 있다는 데서 나온 얘기일 것이다. 밤에 휘파람을 불거나 피리를 불면 귀신 또는 뱀이 나온다는 속담도 비슷한 맥락이다.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은 규율을 관철시키는 손쉬운 방법이다. 브라질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한다. ‘망고를 따는 사람이 그걸 먹으면 병 걸린다.’ 이 속담은 농장 주인들이 지어냈다고 하는데 그 의도가 빤히 보인다. 망고를 따는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망고를 슬쩍슬쩍 먹으면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도 공포의 유령들이 그야말로 떼거지로 배회하고 있다. ‘개혁이 나라 망친다’는 공포도 그중 하나다. 재수가 더럽게 꼬여서 ‘극렬 좌경 세력’에 국가권력을 내주긴 했지만 10년 이상은 절대 용납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개혁에 대한 공포를 퍼뜨리는 주범이다. 하나, 전세계적으로 공포제조의 명가는 역시 부시 정부다. 대량살상무기의 이동을 막기 위해 북한을 해상봉쇄해야 한대나 어쩐대나. 조간신문을 열면 아침밥과 함께 입속으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공포들이 떠밀려들어온다. ‘이 공포신드롬 가운데서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반드시 가려내야 해. 그걸 못하면 너는 공포심의 노예가 되고 마는 거야!’ 등골이 서늘하다. 아니, 이건 또 누가 퍼뜨리는 거지? 조선희/ 소설가

고백할게.실은 나 이영화 좋아해,감독들의 커밍아웃 [2]

류 승 완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감독 옛날 옛적 이 땅에 뮤턴트들이 살았나니? <변강쇠> 1986 | 감독 엄종선 | 출연 이대근, 원미경 <사망유희> 재개봉! 충청남도 온양에 있을 때 중학교 1학년이었으니 1986년이었을 것이다. 난 스크린에 부활한 이소룡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동시상영관 중앙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이 합기도장에 다니던 친구와 함께였는데, 우리가 당도했을 땐 동시상영작인 <변강쇠>의 프린트가 먼저 돌아가고 있던 차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내 성적 판타지의 대리물은 학교 앞의 영화포스터만으로 충분했다. <어우동> <어울렁 더울렁> 등등. 가슴을 풀어헤친 포스터 속 여인네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교하는 나를 그윽한 눈으로 맞아줬는데, 그래선지 굳이 에로영화를 봐야겠다는 마음은 좀처럼 일지 않았다. 그날 <변강쇠>를 굳이 봐야 했던 것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변강쇠>가 상영되는 동안 극장 매점 옆의 의자에 앉아 비디오나 보면서 시간을 때우려고 했는데 그만 매표소 아저씨가 “바깥에서 누가 보면 안 된다”고 우리를 극장 안으로 떠밀었던 것이다. 장내는 대만원이었다. 특히 변강쇠가 폭포수 같은 오줌을 날리는 장면에선 폭소가 터져나왔다. 언덕에서 소방호스로 물을 뿜어댄 것이 분명한데도 누구도 그런 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저렇게도 영화를 찍는구나” 하고 킥킥댔지만, 얼마 되지 않아 악역 전문 조연이었던 장혁 아저씨가 원미경 아줌마의 가슴을 더듬는 장면에선 나 또한 아저씨들과 함께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다. 대개 이야기를 들어서라도 알고 있겠지만, 영화에서 변강쇠가 판을 벌이면 여인네들은 쓰러지고, 옹녀가 판을 벌이면 줄초상이 난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에게 해를 가하는 조선시대 성적 초능력자들이다. 변종인간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라고 보면 과장일까. <엑스맨> 시리즈보다 한참 빨리 나왔던 셈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변강쇠와 옹녀가 사람들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는 엔딩이 슬펐던 것도 그런 연유 때문인 듯하다. 10대 시절에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에로영화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문 승 욱 - <이방인> <나비> 감독 외계에서 온 천사의 슬랩스틱 <미스터 빈> Mr. Bean | 1990~1995 | 연출 존 버킨 외 | 출연 로완 앳킨슨 어느 날인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미스터 빈>이란 영국의 코미디 단막극을 보았다. 거의 무성영화에 가깝게 대사없이 슬랩스틱으로 꾸며진 코미디였다. 많이 웃었다. 정말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가뭄에 콩나듯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에서 매우 점잖은 영국식 악센트를 느낄 수 있었고 엎어지고 무너지는 과장된 슬랩스틱한 몸짓이 아닌 꽤나 우아한(?) 작은 몸짓으로 폭소를 자아내는 기이한 코미디를 난 그때 정말 인상적으로 보았다. 나중에야 그 코미디가 <미스터 빈>이란 제목으로 설날마다 우리의 안방극장을 찾던 유럽식 시트콤이란 것을 알았다. <미스터 빈>을 보던 날은 비가 몹시 오는 그런 우중충한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영화의 투자자를 찾는 기약없는 나날이 몹시도 나를 지치게 하던 그런 비오는 날…. <미스터 빈>은 세상에 나말고도 외롭고 지치고 바보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가 벌이는 코미디의 포인트는 자기의 얄팍한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멍청한 잔머리 굴리기에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상처받기 쉬울 것 같은 여리고 소심하지만 맑은 그의 외로움이 기이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미스터 빈의 낡고 작은 아파트로 찾아가게 만드는 것 같다. 내가 정말 바보 같이 느껴질 때 찾아가서 위로받고 싶은 그런 친구 같다. 외롭지만 꿋꿋하게 잔머리를 굴리며 오늘도 세상과 한바탕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벌이는 미스터 빈에게 살아갈 여유도 얻을 수 있다. 웃기는 일이지만 사실 그날 미스터 빈으로부터 받은 위로는 대단한 것이었다. 미스터 빈은 혼자 허름하지만 나름대로 깔끔한 자기만의 공간에서 산다. 여자친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낸다.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와서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는 애처로움이 느껴지는 그런 인물…. 아니면 외계인 같다고 해야 할까? 지구라는 세상을 그리고 인간을 처음 대하는 그런 신기함으로 삶을 살아간다는 거…. 사실 좀 거창하게 예기하면 예술가들의 그런 천진함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미스터 빈>을 보면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가 생각난다. 그래… 어쩌면 미스터 빈도 천사였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가 지상에 떨어진 이유는 너무 잔머리를 굴려서일 것이다. 천사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잔머리였지만 닳고 닳은 우리에게는 불어터진 자장면처럼 김이 빠지지만…. 그래도 그의 잔머리에서 천사들의 소박함을 느껴본다. 너무 감상적인가? 후후… <미스터 빈>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이렇게 감상적이 된다. 민 규 동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공동감독 야동 세상의 복음서 <색즉시공> 2002 | 감독 윤제균 | 출연 임창정, 하지원 1.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피아노 반주자로 나오는 주인공의 친구가 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웃긴 춤을 춰. 풀 죽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야. ‘사람들을 웃겨라!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외치는군. 윤제균 감독의 영화는 날 위로해줬어. 왜냐고? 웃기니깐. 2. 벼랑 끝으로 몰려가는 ‘양’보다 스테파네트의 ‘질’을 택하리라 맘먹던 시절, <그로잉 업>이라는 걸출한 영화를 만난 뒤, 미국 10대의 섹스코미디는 모조리 훑었지. 결국 라는 전설적인 영화도 만났어. 스쿨버스 맨 뒷좌석, 남자애들 4명이 순진한 여학생 한명의 옷을 벗겨 한 꺼풀, 또 한 꺼풀, 이내 질 속까지 탐구해 들어가는 프롤로그로 시작되는 영화야… 아! 그 영화는 끝내 보지도 못했으면서 아직도 왜 이렇게 기억이 선명한 걸까? 3. 기숙사는 늘 침투해보고 싶은 곳이었어. 특히 여대생 기숙사엔 만날 아라비안나이트가 펼쳐질 것 같았어. 낙엽 쓸리는 소리는 누군가의 치마 벗는 소리로, 커피 따르는 소리는 비누 거품 샤워소리로 들리던 곳. 이 영화는 다 알지만, 보고 싶지만, 잘 모르고, 보고 싶지 않은, 태고 때부터 한치도 진화하지 않은 아·우·性을 양념으로, ‘주인공은 죽도록 고생할 것 그리고 절대 희망을 잃지 말 것’이라는, 채플린이 막스 형제에게 그리고 우디 앨런에게까지 절절히 이어준 코미디의 2가지 원칙을 다채롭게 풀어내는군. 그가 어느새 이 비법을 체화한 걸까? 4. 나도 한때 사람들을 웃기는 걸 소명을 삼았던 광대였어. 말 못할 고독과 슬픔 따윈 가면 뒤로 숨길수록 좋다고 믿었어. 그래야, 사람들이 웃고 지나간 뒤 곤혹스럽게 찾아오곤 하던 허무감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으니깐. 발가벗고 무대 위에 올라 한바탕 쇼를 보여주고,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가 다음 레퍼토리를 고민하는 그를 사랑해. 그의 쇼가 추잡하다고? 쳇, 또 볼 거면서! 5. ‘Sperm Fry’ 먹어봤니? 진짜 해봤다. 그거 안 된다더라. 말이 많더군. 실은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생텍쥐페리처럼 사막에 좌초됐는데, 어린 왕자를 못 만난다면, 어떻게 살아남을래? 몇 가지 방법이 떠오르지만, 아무래도 이거 괜찮은 것 같애. 틈틈이 정액을 짜내서 태양으로 튀긴 스펌 프라이 먹고 살아 남는 거야! 그나마 당최 꺼지지 않는 마법의 샘 아니니? 6. 추신. 요즘 불만사항? 요새 왜 이렇게 메일이 많이 오니? 에잇, 긍휼할 야동 천지 세상! 인데, 너무들 하는 거 아냐? 박 기 용 - <모텔 선인장> <낙타들> 감독 오, 고독한 늑대의 낭만이여! <돌아온 외팔이> Return of the One Armed Swordsman | 1969년 | 감독 장철 | 출연 왕우 1970년대 중반, 서울 종로의 재개봉관 화장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일단의 까까머리에 검은 교복 차림의 중학생들이 볼일을 보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평소에는 까불거리던 아이들도 왠지 입을 굳게 다물고 말이 없었다. 모두들 방금 보고 나온 <돌아온 외팔이>의 비장한 무사 왕우 같은 표정이었다. 우리반에서 제일 덩치가 크고 쌈을 잘하던 창식이는 혼자 창 밖 야경을 바라보며 고독을 씹다가 피우던 담배를 발로 천천히 비벼 끈 다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나가서 한잔 때리자.” 모두들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때, 화장실 문이 ‘팍’ 하고 열리면서 처음 보는 다른 중학교 애가 화장실 안으로 튀어들어왔다. 모두들 그 애의 입에서 나온 “단속 떴다” 한마디에 순식간에 혼비백산이 되어 서로 먼저 화장실 창문을 넘어 밖으로 도망가려고 난리가 났다. 고독한 무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철부지 중학교 2학년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내 중학교 시절은 이소룡과 함께 보낸 시간이었다. 4편 모두 평균 30번 정도는 봤고 우리집 빗자루대와 개줄은 전부 쌍절곤 재료로 쓰여 남아나질 않았다. 이소룡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시절 왕우는 이소룡과는 다르게 나를 사로잡았다. 이소룡이 현대적이고 가벼운 느낌이라면 왕우는 고전적이고 무거운 느낌이었다. 미국 물을 먹은 이소룡이 서구적이었다면 왕우는 철저하게 동양적이었다. 이소룡이 주로 맨손이었다면 왕우에게는 장검이 있었다. 이소룡이 요절한 천재였다면 왕우는 호흡이 긴 남자였다. 이소룡의 절권도가 스포츠 같았다면 왕우의 검술은 필살의 무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우는 외팔이였고 늘 고독한 냄새가 났다. 시쳇말로 ‘독고다이’였다. 그때는 ‘외로운’, ‘외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전율이 났었다. 동네 고아원 애들이 부럽기만 하던 나이였다. 오래 전 영화계를 떠난 왕우가 대만 암흑가의 두목이 됐다는, 그리고 진짜 외팔이가 되었다는 헛소문이 떠돌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왕우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왕우라면 영화 밖에서도 강호의 의리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제 영화의 내용은 거의 다 잊었지만 부러진 칼을 들고 상대방을 길게 응시하던 짙은 눈썹의 왕우의 이미지는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고백할게.실은 나 이영화 좋아해,감독들의 커밍아웃 [1]

영화감독 16인이 밝힌 '나를 매혹시킨 영화' 16편 영화의 매혹은 때때로 너무 지나쳐 보는 이의 취향, 이데올로기, 노선, 철학을 보잘것없게 만들곤 한다. 스크린 위로 퍼지는 빛의 포자가 일단 뇌리에 진득이 달라붙기 시작하면 감성은 이성을 배반하고, 흥분은 지성을 지배하며, 쾌락은 도덕을 압도한다. 객관적으로야 대단할 게 없지만, 정말 사소한 이유 때문에 마력을 발휘하는, 이런 영화들은 이율배반의 긴장을 동반한다.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는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터. 영화가 뿜어내는 강렬한 섬광에 눈이 멀어버리는 건 감독들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의 내밀한 구석을 추적하는 박기용 감독은 <돌아온 외팔이>의 왕우에게 홀딱 반했고, 코미디의 대가 장항준 감독은 영국서 날아온 삼류 멜로영화에 눈물을 쏟았다. 굵은 선의 남성영화가 트레이드 마크인 김성수 감독은 ‘호스티스영화’ <벌레먹은 장미>에 충격받았고, <색즉시공>은 섬세한 감성의 민규동 감독의 성장선에 자극을 줬다. 그리고 ‘쌈마이 코미디’의 대가 김상진 감독은 빔 벤더스의 시적 영상에서 영화를 발견했다니…. 한국을 대표하는 16인의 감독이 자신이 추구하는 영화세계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들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즐거움을 선사한 영화들에 대한 애정을, 드디어 고백했다. 이름하여 감독들의 ‘나 홀로 사랑한 영화’, 또는 커밍아웃. - 편집자편집 권은주 곽 경 택 - <친구> <챔피언> 감독 거세된 남자 사이로 보이는 감독의 힘 <내시> 1986년 | 감독 이두용 | 출연 안성기, 이미숙 그때 <내시>가 상영되던 극장으로 들어간 건 우연이었다. 대학 1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당시 부산 극장가에 나갔을 때 시간대가 맞고 표가 남은 것은 <내시>밖에 없었다. 결국 무슨 영화인지도 모른 채 ‘눈물을 머금고’ 극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때 사랑했던 여인이 후궁으로 들어가자 그녀를 따라 내시로 입궐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선 안성기가 주인공 내시 역할을 맡았고, 남궁원이 내시들의 대장인 내시감으로, 길용우가 왕으로 나왔으며, 이미숙, 김진아도 출연했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는데, 우선 영화의 템포가 엄청나게 빨랐다. 한 장면 안에서 기승전결을 다 보여주느라 축축 늘어졌던 당시의 한국영화와 달리 이 영화의 편집 리듬은 굉장히 가벼웠다. 내시끼리 이야기를 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내시감이 방문을 열고 뛰어들어오는 장면이 바로 이어지는 식으로 이야기는 순발력이 있었다. 영화에 대해 별 관심이 없던 내 눈에도 또렷하게 남았을 정도였으니까. <내시>는 내시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도 뒤집는다. 특히 남궁원은 간사한 목소리로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지 않고, 그 특유의 굵은 목소리와 뛰어난 무공을 보여준다. 왕을 최측근에서 모셔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저렇게 무술을 잘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인형을 감싸안으며 왕에 대한 경호 훈련을 받던 내시들을 남궁원이 몽둥이로 때리자, 안성기가 머리로 남궁원을 치받는 장면이나 거세당하면서 울부짖는 내시의 모습 등 한 장면 한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시들의 바지를 벗기고 ‘검사’를 하는 장면에서 고등학생들이 엑스트라로 동원됐다는 뒷이야기도 머릿속에 남아 있을 정도다. 그때 이후로 나는 <내시>를 비디오로 한번 봤고, <친구>를 끝내고 잠시 사극을 고민할 때 영상자료원에서 프린트를 텔레시네로 떠 몇 장면을 참조한 적도 있다. 어찌보면 이 영화는 굉장히 전형적인 영화며 당시 유행하던 코드들을 뒤섞은 작품에 불과하다. 나 또한 이 영화를 ‘떡치는’ 영화라 기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시>는 내게 영화감독이라는 지위를 인식하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뒤에 있는 감독이, 힘있고 템포 빠른 영화를 만드는 이두용 감독이 처음으로 내 눈에 보였던 것이다. <내시>는 나의 뇌리 속으로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열심히 ‘뻠뿌질’해준 영화인지도 모른다. 김 상 진 -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감독 천사가 꾸는 꿈, 인간이 되는 꿈 <베를린 천사의 시> 1993 | 감독 빔 벤더스 | 출연 브루노 간츠, 솔베이그 도마르틴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은 베를린의 하늘에서 사람들을 살펴보고 기록하는 임무가 있었다. 다미엘은 그렇게 베를린 시민들 사이에서, 때론 그들의 마음도 어루만지며 그냥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미엘은 서커스에서 가짜 날개를 달고 공중곡예를 하는 여인을 발견하곤 깊은 연민과 사랑을 시작한다. 이 여인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천사’ 같은 인간 마리온이었다. 천사 다미엘은 천사였다가 인간으로 환생한 영화배우 피터 포크를 만나게 되고, 결국 다미엘은 천사로서의 생명을 끝내고 한 인간으로서 마리온을 찾아간다. 이것은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빔 벤더스 작품의 간략한 줄거리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천사가 인간이 된다는 것과 덧붙여 천사였다가 인간으로 환생한 영화배우 피터 포크를 만난다는 설정 때문이다. 엄숙하고 진지하기만 할 것 같은 이 영화에서 갑자기 나타난 피터 포크를 보는 순간의 반가움과 그 발상의 기발함이란 눈앞에서 별이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건 막 영화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동숭아트센터에서 하는 시사회를 보러 갔는데 독일어 대사에 프랑스어 자막이었다. 그러니 내용에 충실하기보다는 영상과 느낌만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영화가 가진 심오한 이야기는 나중에 한글자막을 보고 알게 되었지만…). 그렇지만 느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베를린 장벽, 시민, 기념탑, 문, 낙서 이런 것들이 풍겨오는 것에서 천사인 주인공이 왜 불멸을 포기하고 그 속의 인간이 되려고 하려는지…. 물론 내 자신이 전쟁에 대한 심오한 사상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인간을 너무도 사랑하고 구원하고 싶어하는 천사의 느낌만큼은 가슴에 와닿는 것 같았다. 이소룡의 영화들, <영웅본색>, 그리고 수많은 할리우드영화들을 보고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던 내가 이 영화를 보며 ‘아, 영화를 통해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이었다. 덧붙여 언젠가 베를린에 가볼 기회가 생긴다면 영화 속에 나오는 그 수많은 전쟁의 상처가 깃든 곳들을 꼭 가봐야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까지 수차례에 걸친 유럽 여행과 출장을 갔으면서도 아직 베를린을 못 간 이유는 왜일까? 그 영화 속 모습들이 현대적 모습으로 바꿔지지 않고 보존되어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 언제가는 베를린에 꼭 가볼 결심을 새삼 확인하며…. 김 성 수 -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감독 에이젠슈타인이 다 뭐냐! <벌레먹은 장미> 1982년 | 감독 정회철 | 출연 정윤희, 이영하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1982년인가 83년이었다. 저녁에 TV를 켜면 늘 미디엄바스트숏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나왔고,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냥 깜깜했고, 앞으로 무얼 하며 살지 답답했다. 대체 나란 인간은 어느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가망없는 청춘이었다. 주체할 수 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죽이는 데는 술먹고 꼬장부리거나 동시상영하는 변두리 극장을 찾는 게 최선이었다(그때까지 영화를 만든다거나 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조차 없었다). 군입대를 얼마 앞두고 학내 연극에 흠뻑 빠져 있던 그 무렵, 과 동기인 세명의 단짝 친구들과 함께 화양리 동부극장에서 한국영화 <벌레먹은 장미>를 봤다. 스토리도 가물가물하지만 웬일인지 몇몇 시퀀스는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대학원생 이영하를 뒷바라지하는 착한 술집아가씨 정윤희는 작은 아파트에서 여동생(친동생은 아니었지 아마)과 함께 살았는데, 이영하와 정윤희가 그 짓을 할 때면 여동생은 어김없이 벽에 난 구멍(평상시엔 <펜트하우스>의 성기모양 립스틱이 그려진 종이로 가려져 있음)으로 훔쳐보며 자위행위를 했다. <해피엔드>만큼이나 그 당시로선 무척 충격적인 영상이었다. 바로 그 장면 중간에 뜬금없이 대로변에서 복개공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육교가 뒤로 보이는) 이어서 건장한 남자가 굴착기로 땅을 뚫는 장면이 클로즈업되고 그 요란한 진동소리와 함께 훔쳐보는 장면으로 다시 되돌아온다. 후반부에 이영하가 정윤희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차 안에서 정사를 벌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핸드브레이크가 풀려 강으로 빠져 죽는, 착한 술집여급을 배반한 기회주의자의 인과응보를 그토록 자극적으로 묘사하다니…. 우린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셋은 썰렁한 극장 안에서 쉬지 않고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비아냥거리는 투로 낄낄댔지만 사실은 한국영화도 진짜 꼴X게 만든다는 사실에 흥분했던 것 같다. 함께 영화를 본 두 친구(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유하와 MBC의 안판석 감독)는 몇년 뒤 같이 영화서클을 만들었고, 이른바 고상한 유럽영화를 안주 삼아 떠들다가도 이따금 <벌레먹은 장미>를 떠올리곤 했다. 격동의 80년대 초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론에 필적할 만한 한국영화가 있었노라고! 한국영화 보는 걸 부끄러워하던 그 시절, 외국영화만 화제로 삼던 그 무렵 <벌레먹은 장미>는 혈기방장한 우리를 흥분시킨 걸작이었다!! 김 용 균 - <와니와 준하> 감독 링 위는 지옥이다. 외롭고 추운 <지옥의 링> 1987년 | 감독 장영일 | 출연 조상구, 전세영, 신성일 나는 가끔 뒤지게 얻어맞는 꿈을 꾼다. 아무 이유도 없다. 날 때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다. 길 가다가도 누군가 다짜고짜 퍽치기를 할 것 같아 움찔 놀라곤 한다. 왜 그런 망상에 사로잡히나 생각해봤다. 지은 죄가 특별히 많거나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약간의 정신병이겠거니 여기기로 했다. 아무튼 나는 맞는 게 죽기보다 싫다. 나는 사람을 때리는 것도 싫다. 아마도 사람을 때리는 일이 생긴다면 맞기 싫어서 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 키 크고 힘센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동네 극장 앞에서 평소 그 친구를 경계하던 무리들과 맞닥뜨렸다. 녀석들 중 하나가 시비를 걸더니 다짜고짜 선빵을 날렸다. 기습적으로 얼굴을 가격당한 친구는 상대의 멱살을 잡고 버티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내 친구를 에워쌌다. 나는 녀석들에게 덤비지 않았다. 점잖게 타일렀다. 친구는 녀석들에게 둘러싸여 외롭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덤벼들지 않았고 극장 앞이라 말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그뒤 오래도록 나는 부끄러웠고 후회스러웠다. 까짓 좀 맞으면 어때서 친구가 맞는 꼴을 보고만 있었다니. 그 무렵 나는 이현세와 허영만의 만화를 즐겨봤다. 주인공 까치와 강토의 공통점은 깡말랐지만 열정적이고 의지력이 강한 인간이면서도 한편 너무 섬세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 결국 무너지고 마는 비극적 영웅이라는 것이다. 내 취미는 까치의 눈빛 만들기, 목표는 강토의 몸 만들기였다. 현재 나는 살은 뺐지만 배는 볼록 나왔고 눈빛은 술 먹어서 뻘겋기만 하다. 까치는커녕 토끼눈이 됐다. 이현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지옥의 링>을 나는 고3 때 봤다. 진주 고향집을 가출한 뒤 무작정 서울로 왔는데 고작 영화라니. 하지만 링 위에 고독하게 서 있는 심정이던 내게 이 영화는 절실했다. 영화적으로야 허술하기 짝이 없었지만, 세상이라는 링 위에 선다는 것은 지옥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임을 보여준 까치의 눈빛은 여전히 절절하다. 맞는 건 누구나 두렵다. 맞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도 여전히 맞는 건 두렵다. 하지만 괜찮다. 자꾸 맞다보면 그것도 쾌감이 생긴다. 문제는 두려움이다. 그걸 이겨내야 한다. 비록 죽더라도 그게 뭐 대수인가? 열심히 싸웠으면 됐지.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가편집본 인터넷 유출 뒤 악성 리뷰에 시달리는 <헐크>

헐크의 화를 돋우는 건 영화 속 악당만이 아니다. <와호장룡>의 성공으로 작가주의 블록버스터 대열에 동참하게 된 리안 감독의 <헐크>(미국 개봉 6월20일, 국내 개봉 7월4일)가 개봉 직전부터 사나운 ‘입담’에 시달리고 있다. 첫 시사를 2주 정도 앞두고 가편집본이 인터넷에 유출된 ‘사고’가 시작이었다. 가편집본이 인터넷을 통해 나돌아다니게 된 운명은 <스파이더 맨>이나 <니모를 찾아서>도 겪은 일이지만, 문제는 악성 리뷰다. 미완성본을 돌려본 네티즌들이 영화에 대한 가십을 다루는 웹사이트 ‘에인트 잇 쿨 뉴스’에 불만족스런 리뷰를 잔뜩 올렸다. 컴퓨터그래픽으로 탄생한 헐크가 표적이었다. “이 영화의 성공은 관객이 헐크가 사실적이라고 믿는 데서 출발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린트는 그게 그렇지 못하다는 걸 보여준다.” <헐크>에 1억5천만달러로 추정되는 제작비를 쏟아부은 유니버설이 가만있을 리 없다. CG 작업이 끝나지 않은 걸 보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건 공정치 못하다며 인터넷사이트쪽에 리뷰 삭제를 요청했다. 어쩐지 이 사태는 영화 속에서 브루스 배너 박사가 감마선을 잔뜩 뒤집어쓰고 고통스런 주인공이 된 사고를 연상케 한다. 북미 개봉 직전, 각종 매체가 포문을 열었다. <뉴욕타임스>는 텔레비전 시리즈의 제목이었던 를 빗대 “믿을 수 없을 만큼 길고(러닝타임 137분), 믿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과장됐다”고 몰아쳤다. “문제는 그들이(리안과 프로듀서이자 각본을 맡은 제임스 샤무스) 동시에 10가지의 다른 방향으로 영화를 몰고가더니 제작과정에서 시각적 명쾌함, 내러티브의 힘, 감정적 효과 등과 같은 기초 요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버라이어티>는 좀더 진중한 표현을 썼지만 우호적이지는 않다. “결말을 제외하고는 10대 초반의 관객이 혼동을 일으키거나 당황케 하는 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스파이더 맨’의 군중이 그리스 비극의 이중적이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인 갈등의 이야기에서 따뜻함을 느끼기란 힘들어 보인다.” 물론 호평도 있다. <뉴스위크>의 데이비드 앤선은 “어쨌든 <헐크>를 봤다면 누구나 원시적이고 강력하면서,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미지를 잊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헐크>는 매혹스런 통합체다. 낡은 것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이기도 하며, 어디선가 차용한 듯하기도 하며, … 녹색의 그 무엇이기도 하다”고 칭찬했다. 비평의 수위가 어찌됐든 가장 궁금스런 대목은 성난 ‘헐크’의 이미지다. <롤링스톤스>의 피터 트래버스는 이 영화에 별 셋을 주면서 오래된 질문부터 시작했다. “15피트에 이르는 거대한 녹색 헐크로 변할 때, 이런 궁금증을 떠올리게 된다. 왜 브루스의 바지는 찢어지지 않을까?” 트래버스는 헐크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표했다. “헐크의 몸은 중량감이 부족해 보인다. 특히 그가 사막에서 녹색 비치볼처럼 튀어오를 때.” 과학자 브루스 배너 역을 맡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에릭 바나는 배너가 헐크로 변한 뒤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녹색 거인 헐크는 컴퓨터그래픽으로 탄생됐으니까. 그런데 실은 그 녹색 거인을 리안이 ‘연기’했다면? 리안은 기술 스탭에게 자신이 원하는 헐크의 액션을 보여주기 위해 커다란 옷을 입고 직접 실연을 했고 이를 카메라로 찍어 활용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글쎄, 사랑도 변하더라니까, <봄날은 간다>

사실 그날 밤 우리가 왜 다퉜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대개의 부부싸움이 그렇듯이 싸우다보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말다툼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각자의 공간에서 마음속에 높은 담을 쌓은 채 누군가가 먼저 말 걸어주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화풀이 상대로 고른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보다가 혹시 그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워봐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말 한마디만 하면 나도 모른 척 넘어갈 텐데, 미안하다고 말할 텐데…. 1분 1초가 흐르는 것조차 셀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가는 시간 앞에 헛기침 한번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가 잠들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갑자기 밀려오는 무력감과 허탈감. ‘나는 속상해서 죽을 지경인데 잠이 오나?’ 정말 야속하다. <봄날은 간다>를 토요일 밤. 하필이면 남편과 싸운 그날 밤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쌩하니 아리다. 특히 상우가 은수에게 했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혼잣말 같은 이 말은 큰소리가 되어 한참을 머릿속에 뱅뱅 돈다. 결혼하기 전 어느 해인가 많은 눈이 내렸던 12월31일. 그는 한해의 마지막날에 내 얼굴 한번 보겠다며 연휴 근무를 선배와 바꾸고 목포에서 서울까지 길이 얼어 차가 빙빙 돌고 갓길로 처박히는 무시무시한 고속도로로 차를 끌고 온 적이 있었다. 서울에 도착해 그가 열심히 내게 삐삐(비퍼)를 치는 그 시간에 나는 입사 동기들과 종로거리를 헤매느라 그가 온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다. 그가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겠다며 그날 밤 목포로 돌아가버린 사실을 이튿날 알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는 연락 한번 없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다 잡은 물고기(?)라고 이럴 수가 있나? 누구든 그랬겠지만 적어도 내 사랑은 남들과 다르다고 믿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우리의 사랑은 처음 그대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되도록 백년해로하자고 마음먹었는데, 아니 그것도 모자라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우리 또 결혼하자고 했었는데 다 철없을 때의 이야기인가? 그날 밤 내린 결론, ‘그래 우리의 사랑도 변했다!’ 그렇게 영화는 완전한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 사랑이 변하면 끝장나는 거야. 난 상우의 열병 같은 첫사랑을 담담하게 군더더기 없이 그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대나무숲에서 들리는 소소하지만 부드러운 바람소리가 좋았다. 초등학교 다닐 적 해남 외갓집 담에는 하늘처럼 높은 대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댓잎을 꺾어 조리를 만들고 입으로 피리를 불어봤지만 풀풀거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또 외할아버지 제사 때마다 일가친척이 다 모여 하얀 쌀떡을 조청에 찍어 먹던 기억과 깨끗한 적삼저고리를 입고 은비녀를 꽂은 외할머니의 단아한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은 여든을 훌쩍 넘기신 외할머니가 세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간혹 정신을 놓으신다는 엄마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들었었지. 내 봄날은 영화와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사랑이 지나가버린 기억 속의 봄날이지만 나는 끝나지 않았다.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흘러 내 감정도 내 일상도 봄을 지나 소나기가 내리는 여름날 어느 하루쯤에 와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누가 먼저 변했는지 알 수 없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변한 것 같다. 다음날 회사에서 방송을 준비할 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목소리. “영아야. 지금 나 출근하는데 비가 내리네. 우산 안 가지고 왔지? 회사 앞에 나 와 있어. 지금 바로 내려와.” 퉁명스럽던 내 목소리가 자꾸만 작아지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하룻밤 뒤척이면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연분홍 치마처럼 휙… 하니 날아가버린다.

한국영화산업 X-ray 7 - 해외시장 경쟁력 확보 방안 [2]

“개별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수용상태, 인식변화에 대한 지식없이는 프로페셔널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모든 세일즈 회사가 직면한 과제이며, 실제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1∼2년 안에 거품처럼 무너질 수도 있다. 각국 시장에 대한 정확하고 충분한 DB 구축, 전문적인 마케팅 능력이 필수적인 단계로 접어들었다. 지금 안으로부터 나오는 정보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문혜주) 요컨대 지금 해외판매 종사자들의 화두는 DB 구축과 지역화(localize)가 되었다. 이 작업은 한국영화를 사서 개봉한 외국 회사들로부터 배급 실적 보고서(sales report)를 받는 데서부터 첫 단추가 꿰어진다. 그 다음 단계는 이들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여러 개의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시장 특성에 대한 분석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고 나면 개별 영화의 판매가를 판단하고 적절한 파트너를 찾아낼 수 있으며 현지 실정에 맞는 마케팅이 이루어지도록 협의하고 지원하는 고도화된 단계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쪽에서 프로모션하는 대상은 현지의 구매자들이다. 그들이 영화를 수입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이쪽의 정확한 목표가 되어야 하고 직접 관객에게 가닿는 문제는 현지 마케터들의 소관 사항”(신철 신씨네 대표)이라는 말이 뜻하는 바도 유념해둘 만하다. 현재 판매회사 가운데 일부는 외국 회사로부터 마케팅 보고서를 받아서 컴퓨터에 입력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되었으나 아직은 DB의 절대량이 부족하고, 자료에 대한 판단 능력도 초보적이거나 개안 단계라는 것이 자체 진단이다. 이런 종류의 일은 민간회사 단독으로 하기에는 역부족이거나 효용성이 떨어지는 작업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끼어들어 근사한 자리를 차지하기에 안성맞춤인 일인데, 민간회사는 “자료를 넘겨줘도 실적 발표용으로 쓰이고 만다”고 푸념하고 당사자들은 “여러 가지 뜻은 있지만 지금 하는 일만 하기에도 일손이 달린다”(노혜진 영진위 해외진흥부)고 하소연한다. 영진위가 무언가 발상을 바꾸고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수립해야 할 때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어쨌거나 이렇게 얻어진 통계들은 “해외가 단일 시장이 아니다”라는 경험 법칙을 뒷받침해준다. “일단은 검은 머리 시장과 그 밖의 시장으로 확연히 나뉘고, 같은 아시아라도 일본, 대만, 홍콩이 다르고 비아시아 시장도 유럽과 미국이 다르다.”(이송원 전 미로비전 이사) 규모로 보면 아시아가 전체의 70%, 유럽과 북미가 20∼30%를 차지한다. <엽기적인 그녀>는 이같은 시각을 얻게 된 전환점이 된 영화다(표 참조). 한국 시장 규모의 1/5에 불과하고 스크린 수가 10개만 넘어도 와이드 릴리즈로 간주되는 홍콩에서 프린트 17벌에 박스오피스가 2천만홍콩달러를 기록한 것을 비롯, 아시아 전역에서 대부분 흥행했다. 이후 외국 바이어들이 한국영화의 상업성에 대해 정서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였고 한국영화가 안정된 가격에 협상할 수 있는 기준으로 작용했다. 판매회사로서는 박스오피스와 마케팅(P&A) 비용의 관계를 인식하면서 개별 시장의 특성과 배급사의 역량에 대한 나름의 판단 기준을 갖기 시작했다. 제작자에서는 “엽기라는 말이 일본에서는 ‘야만적, 잔혹한’이라는 뉘앙스를 갖는다는 것을 몰랐다. 개봉 당시에 ‘서쪽에서 온 그녀’라는 제목을 제안받았는데 도쿄 입장에서 서쪽인 오사카 여자는 욕도 많고 드센 여자를 뜻하며 오사카에서 봤을 때는 한국이 서쪽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신철)고 했다. 결론은 제목 때문에 2∼3배의 시장 가능성을 놓쳤다는 것이다. 04. 국내 영화계 손발 맞춰야 할 때 제작사와 배급사가 대부분 국내 개봉 위주로 후반작업을 서두르기 때문에 해외 판매용으로는 여러 가지 결함을 안고 있다. 예컨대 ME(music & effect)를 따로 분리하지 않아 나중에 비용이 곱절로 들거나 아예 음원이 없어서 처음부터 다시 하기도 한다. 텔레시네의 전반적인 퀄리티 문제로 반려당하는 경우도 많은데, 특히 번짐 현상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특정 공정을 밟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악 저작권도 영화를 팔고나서 사후 해결에 골치를 썩이는 분야. “아시아 지역은 아직 덜 민감하나 미국이나 유럽에 팔 때는 뒷골이 당긴다”는 게 세일즈맨들의 하소연이다. 이러니 최종 합의에 1년씩 걸리는 일도 드물지 않다. 현지 배급에 맞추어 스타들이 홍보에 나설 수 있는 스케줄을 확보하는 것도 희망사항 중 하나. 중국의 불법복제에 대해서는 문화관광부를 비롯한 정부가 나서서 통상 문제 차원으로 협의해야 할 정도라는 것이 현장의 불만이다. <엽기적인 그녀>는 중국에서 800만 카피가 팔렸다는 설이 있고 전지현은 6억원짜리 CF를 하는 한류 스타가 되었지만 한국 회사는 수입이 거의 제로다. 판매회사의 역량 제고에 대한 요청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올해 칸영화제에 부스를 차린 회사를 기준으로 시네마서비스, CJ엔터테인먼트, 시네클릭아시아, 강제규필름, 미로비전, e픽처스, 튜브엔터테인먼트, KM컬처 등 총 7개사가 활동 중인데, 단순히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에서 한발 나아가 영화에 대한 식견과 제작 및 기술 관련 지식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이제 기본 상식에 속한다. 아직은 부딪치면서 보충해가는 형편인데, 그나마 “파티걸 노릇에 그친다”거나 “자사 이기주의에 갇혀 큰 그림을 못 본다”는 불평을 듣는 사람도 없지 않다. 연간 제작편수 50∼60편인 나라에서 판매회사가 7개라는 것은 부담스러운 숫자인데 각자의 장점을 특화해야만 시장의 압력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경우 “단순지원에서 정책수립으로의 방향전환”(이건상)에 대한 요구를 인식은 하고 있으나 몸이 따르지 않는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기존 업무는 선명하고 깔끔한 편이지만, 공적 기관이나 정부와의 관계 전반에 대해서는 요구하는 사람이나 돕는 사람이나 기대 수준이 낮다. 심지어 올해 칸영화제에서 문화관광부 고위 관료와 영진위가 보인 언행에 대해서는 “초를 치지나 말라”는 소리도 나온다. 방향전환의 일환으로 최근 영진위는 프랑스와 공동제작 협약을 맺는 데에 열중하고 있는데, 무려 40개 국가와 유사한 협약을 맺고 있는 프랑스가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교환가치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외에는 아직 기초적인 논의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영진위가 안고 있는 예산상의 한계를 돌파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기업 협동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송원 전 미로미전 이사는 “<쉬리>를 유럽에 내보낼 때 현대자동차가 서유럽에 5천만달러를 지원하도록 설득했다가 IMF 때문에 무산된 적이 있다. 100만달러 정도는 단일기업에서 그리 큰돈이 아니고 영화는 대기업의 마케팅 전략에서도 아직 미개척인 영역이다. 재미있는 캠페인이 나올 소지가 많고 쌍방의 이익이 클 것이다. 이것은 돈이 아니라 머리의 문제”라고 제안한다. 영진위가 아직도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단편독립영화다. “단편독립영화는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주류영화가 잘되는 나라는 반드시 단편독립영화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음미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쪽 감독들은 영화제를 활용하고 다음 프로젝트로 나갈 수 있도록 보살핌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단편독립영화의 제작편수는 400편대에서 고정되는 경향이 있는데 프로모션의 혜택을 입는 것은 상위 25%이고 그중에 10편 정도가 해외 배급채널까지 닿는다. 30∼40편이 꾸준히 서클을 따라 돈다. 외국 시장 규모는 수천만원대, 국내까지 합하면 2억원 정도로 노하우나 네트워크가 쌓이면 장편처럼 큰돈 안 들이고도 활동할 수 있다. 초기 인프라 쌓는 것만 밀어달라”(구정아, 인디스토리 이사)는 요청을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국내의 각종 시스템을 효율화, 고도화하고 그것을 수행할 전문 인력과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라는 것이 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기조다. 이것은 해외문제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브루스 리 프로젝트’라는 7천만~1억달러짜리 프로젝트를 할리우드에서 추진하고 있는 어떤 이는 “과대망상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할리우드의 쟁쟁한 사람들에게 안 꿀린다. 해볼 만하겠더라. 과정은 훨씬 길고 복잡하지만 영화 하는 사람들의 생리적 화학작용은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단 한국에서 확실한 경험을 쌓고 공부해야 한다.”(신철) 이제 슬슬 움직여보는 거다.글 김소희 cwgod@hani.co.kr·편집 심은하eunhasoo@hani.co.kr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인터넷 소설은 어떻게 한국영화를 사로잡았나 [3]

명제3 | 세상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서사의 중압을 탈피하라 과거사와 인간의 내면이 더이상 흥미롭지 않다면, 의미있는 건 지금 이곳의 사건일 뿐이다. 복잡다단한 인물들의 관계는 최소로 줄어들고, 남녀는 서로간의 옥신각신, 또는 티격태격 공방전으로 거의 모든 내용을 채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엽기적인 그녀>가 나와 그녀 사이의 숨바꼭질일 수밖에 없는 이유, <옥탑방 고양이>가 주인님과 고양이의 쾌유적인 사랑놀이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여기서 구성의 미덕이나 심리적 깊이는 더이상 존중되지 않는다. 인터넷 소설에서는 결론이 중요하지 않다. 때로는 멈춰서는 이야기도 있다. 앞의 사건을 뒤의 사건이 따라붙거나, 앞의 원인이 뒤의 결과를 책임지는 일 등은 드물다. 촘촘하게 얽혀 있는 전체의 틀은 인터넷 소설과 그 영화들의 기준에서는 짊어질 필요가 없는 무게이다. 단지 유사한 양과 사건으로서의 에피소드들이 이들이 원하는 것이다. 벽돌처럼 쌓이면서 원한이 깊어간다거나, 의혹이 짙어가지 않는다. 매번 그회, 또는 그 다음회에 막을 내리며 그들 관계의 동등한 ‘다툼’의 장을 재구축한다. 영화에선 이 점이 한 공간을 구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옥탑방 고양이>의 옥탑방과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2층집 공부방처럼. 물론, 그 에피소드는 단발적인 코미디의 영역에서 소재를 바꿔가며 큰힘을 발휘한다(현재 영화화되는 인터넷 소설 대부분은 유머 사이트에 올랐던 것들이다). <엽기적인 그녀>가 보여주었던 갑작스런 에피소드들, 그러니까, 소나기 패러디, 시나리오 상상 등이 그렇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시도때도 없이 끼어드는 주변 인물들. 에피소드는 모든 전형성을 탈피하려는 의도로 차용된다. 올리고 싶을 때 올리고,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오는, 그런 자유로움을 서사의 방식으로 차용한다. 영화는 그 논리를 따라 신을 나눈다. 따라서 전형적인 인과관계의 요구는 이들 사이에서 묵살당한다. 이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짤막한 에피소드를 통해서이며, 그건 그때마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말이다. 전형의 서사가 강박으로 흐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유쾌하게 빠져나오는 전략을 꾀한다. 여기에 만화적 상상력이 서사의 허술함을 상쇄하는 무기로 등장한다. 명제4 | 만화적 세상을 찬미하라-이모티콘 혹은 만화적 상태에의 동경 인터넷 소설 영화화과정에만 만화가 개입했던 것은 아니다. <비트>는 만화주인공을 스크린으로 데려와 감정이입시킨 성공적인 캐릭터였다. 그러나 인터넷 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인터넷 소설의 특징이 무엇인가? 인터넷 소설의 출현을 영상세대의 소설쓰기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마치 인물들의 감정과 표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모티콘이 사용된다. 일종의 약호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모티콘은 영상으로 사고하는 과정에 만들어진 문자이다. 그러므로 그 이모티콘이 지배하는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다시 한번 영상과 문자 사이의 재협상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 소설이 감정의 표현을 이모티콘으로 소화했다면, 그것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다시 이모티콘을 배우들의 표정과 반응으로 연출한다. 그런 점에서,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수완과 지훈의 표정은 영락없이 살아 있는 이모티콘이다. 이들의 연기가 서투르다는 건 올바른 지적이 아니다. 이들은 만화적인 연기를 하는 것이다. 인터넷 소설 중에서도 서술의 재치에 생명을 거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한 문장과 다음 문장의 행간을 이용하여 상상의 그림을 채워 넣도록 요구하는 작품들이 있다. 10대 작가의 작품일수록 그 수위는 더하다. 이들 행간에는 만화의 그림이 빠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만화를 사이에 두고 인터넷 소설과 영화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상의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만화적 동심의 테이블 말이다. “휜 얼굴… 짧게 올려세운 노란 머리… 쌍커풀 없지만 큰 눈… 일본 혼혈아처럼 생겨 있었다… 일본 만화책에 종종 등장하는 반항아에 전형적인 얼굴….(-_-^)”_ <그놈은 멋있었다> “야옹이가 3개월 동안 부산대 뒷문 근처에 있는 만화방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T.T 아아~~ 그 산더미 같은 만화의 궁전… 만화책 베고 덮고 깔고 하던 그 꿈의 시절.”_<옥탑방 고양이> 에필로그 | 가능성과 한계 말하자면, 인터넷 소설의 독자와 그 영화화된 작품의 관객은 일치하는가? 또는 그 효과는 같은가? 그 사이에는 어떤 융화의 전략이 있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비캠의 김형준 이사는 “잘못하면 생뚱맞은 영화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인터넷 소설 영화화 과정에 신중함이 필요할 때임을 지적한다. 여기서 생뚱맞음이란 여러 의미를 포함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관객을 자극하지 못하는 유효기간 지난 재료로 인터넷 소설이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터넷 소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들의 경험에 바탕하면서도, 그 시기를 이미 훌쩍 넘어버린 관객의 ‘추억’까지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 공감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모색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몇 작품이 그러했듯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품들은 스토리를 보충하고, 또는 덜 엽기적으로 강도를 가라앉히고, 또는 다른 장르적 코드를 가용하면서 통합적인 모습을 띨 것이다. 지금까지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는 흥행적으로 실패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 패러다임의 유효성에 따라 실패와 성공으로 분명하게 양분될 여지가 있다.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에 관한 제작자들의 하나같이 동일한 대답들이 오히려 그 점을 뒷받침한다. 아직 좌표를 잡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는 소재 마련의 용이함이라는 측면으로 쉽게 ‘가능성’이라고 불려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현상이다. 조폭코미디가 코미디를 끌어들였을 때, 그러니까 <넘버.3>가 조폭을 코미디의 대상으로 만들었을 때 그것은 가능성으로 도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당분간 인터넷 소설이 영화의 소재로 각광받을 것이지만, 우리는 그 첨가와 수정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수용의 좌표를 조정해야 할 것이다.정한석 mapping@hani.co.kr 현재진행형의 인터넷 소설들우리 수다가 영화로 된다구요? +_+/// (원작/원작자/제작사/진행상황) ■ 옥탑방 고양이 | 김유리 | LJ필름 | 시나리오 작업 중 반지하방에서 옥탑방으로 ‘위치 상승’한 25살 여주인님과 함께 사는 고양이 두 마리. 한 마리는 3kg. 또 한 마리는 70kg. 이 큰고양이와 동거생활. 남들 머리 위에서 옥신각신,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동거남녀의 이야기. 여주인님은 그를 야옹이라고 부른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달리 원작에 비교적 가깝게 영화화할 예정. ■ 내 사랑 싸가지 |이햇님 |제이웰엔터테인먼트 | 시나리오 작업 중 “니가 아무리 싸가지가 없어도… 넌 내가 사랑하는 왕자님이야….” 싸가지 없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완벽한 안형준. 나(강하영)의 과외선생. 또는 옵빠. 대체로 그넘이라고 부른다. 10대 인터넷 소설의 신호탄. ■ 그 놈은 멋있었다 | 귀여니(이윤세) | BM&LP픽쳐스 | 시나리오 작업 중 10대 인터넷 스타 작가 귀여니의 고2 때 작품. 곱슬머리 파마, 별로 예쁘지도 않은 한예원, 잘생기고 쌈 잘하는 사대천왕 대가리, 지은성에게 맞장을 걸다. 일본 만화의 정서에 한국 여학생의 현실? ■ 백조와 백수 | 나영준 | 청년필름 | 시나리오 작업 중> 인터넷 소설계의 노짱. 끝이 ‘지’자로 끝나는 게임을 하며 만난 그놈 혹은 그 백수. 할 일없어 보이는 그 백조. 백조와 백수가 만들어내는 유쾌한 러브 스토리. 각각 백조와 백수의 시각으로 에피소드를 이끌어간다. <품행제로>의 이해영, 이해준이 작업 중. ■ 삼수생의 사랑 이야기 | 이원영 | 튜브픽쳐스 | 시나리오 작업 중 미대생 유니(이효리 캐스팅 확정)를 짝사랑하는 어느 음대 지망 삼수생의 짝사랑 이야기. 사랑에 대한 인터넷식 유머. ■ 색마전설 | 정성환 | 신씨네 | 시나리오 작업 중 하이텔 성인 유머난의 베스트셀러. 보험회사 대리인인 27살 조거봉과 노처녀 형사 오미란이 벌이는 ‘성적’ 사건들의 연속. 야한 대사, 야한 상상. 제목만큼 밝히는 그넘.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

여름 노리는 헐리우드 대작 2편

<매트릭스 2>가 이제 그 기운을 다한 가운데, 여름 영화시장을 겨냥한 할리우드 대작영화의 경쟁이 달아오르는 때다. 엄청난 물량, 스케일 큰 액션, 오락에 복무하는 이야기 등 대작영화의 공식은 철저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변종 같은 새로운 영화를 만난다. <헐크>와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는 각각 할리우드 대작영화의 이단의 길과 관성적인 길을 걷고 있다.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 액션만 즐겨라, 내용은 따지지 말고‥ 70년대 텔레비전 시리즈를 영화화한 <미녀 삼총사>(2000)는 팔·다리 늘씬한 언니들이 보여주는 컴퓨터그래픽(CG) 액션의 신선함이 있었다. 섹시한 모습은 도발적이며 여유와 유머의 기운이 있었다. 그건 이야기의 허술함을 상쇄할 만한 매력이었다. 하지만 속편격인 <미녀 삼총사: 맥시멈 스피드>에서 이제 그 신선함은 유효기간에 달한 듯하다. 액션장면 재미있다. 몽고에서부터 캘리포니아를 누비며 삼총사는 긴 다리로 차고 하늘에서 떨어지고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산악을 가르며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근데 황당한 이야기 속에 액션은 일관성도 논리성도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삽입된, 몸매를 드러내는 춤과 노래는 섹시함과 당당함을 넘나들던 전편의 아슬아슬한 선도 넘어버린다. 1편의 멤버 그대로 나탈리(캐머런 디아즈), 딜런(드루 배리무어), 알렉스(루시 리우)는 백만장자인 사설탐정 찰리의 ‘에인절’이다. 이들은 보슬리(버니 맥)의 연결로 스피커 속 찰리의 지시를 받아 몸 바쳐 사건을 해결한다. FBI의 증인 보호프로그램의 암호를 해독하는 2개의 반지를 찾는 게 이번 임무다. 전직 ‘에인절’이자 악녀로 이 영화를 위해 온갖 성형수술을 감행했다는 데미 무어가 등장한다. 미녀 삼총사의 추리력과 운동신경, 찰리에 대한 헌신감은 언제나 궁금증의 대상이다. 어떻게 사건현장만 가면 금방 추리해내 옆동네에서 범인을 찾아내는지, 어떻게 하늘에서 떨어지면 정확히 비행기 날개에 착 매달리는지, 어떻게 얼굴 한번 못 본 찰리에게 그리 희생적인지. 그러니까 따지지 말고 만화 같은 액션만을 즐길지어다, 언니들의 섹시함은 부록으로. 그 ‘막가는 맛’이 영화의 재미일 수도 있으니. 27일 개봉. ●리안 감독 <헐크> 억압적 대상에 무한의 힘 휘두르는 쾌감 1억5천만 달러를 들인 138분 상영시간의 리안 감독의 <헐크>는 독특한, 그리고 진귀한 할리우드 대작영화다. 마블 코믹스나 DC 코믹스의 주인공을 끌고 와 이렇게 인간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어두운 세계를 창조한 영화는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정도일 것이다. 고담시라는 도시의 볼거리가 있던 <배트맨>은 여기에 비하면 아기자기하게 느껴질 정도다. 순간의 정적 뒤에 따라나오는 폭발적인 액션의 대비는 헐크의 운명처럼 쓸쓸하고 선이 굵다.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 등을 통해 끈질기게 가족의 관계를 파고들었던 리안 감독은, 그 고민을 헐크에게 고스란히 짊어지웠다. 1962년 시작된 만화나 77~82년 방영된 텔레비전 시리즈(<두얼굴을 가진 사나이>)와 달리, 영화의 초점은 아들과 아버지에 맞춰 있다. 데이비드 배너(닉 놀테)는 군 기지에서 유전자 변형 실험을 하던 과학자지만 정부가 인체실험을 금지하자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삼는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그가 끌려간 뒤 30년, 그의 아들 브루스(에릭 바나) 역시 과학자로 성장해 있다. 어느날 감마선에 노출된 브루스는 몸 안에 있는 ‘그것’을 발견한다. 분노하면 나타나는, 너무나 특별해서 “세상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 헐크를 그의 동료이자 연인 베티(제니퍼 코널리)만이 감쌀 뿐이다. 영화 시작 50여분이 지나야 등장하는 헐크는, 미스터 아메리카 루 페릭뇨가 연기했던 텔레비전물과 달리 ILM의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의 창조물이다. 시속 140㎞로 달리고 지상에서 4㎞까지 뛰어오르는 거대한 초록 괴물이 우습지 않을까, 커다란 슈렉은 아닐까, 말도 우려도 많았다. 분명 그런 느낌은 있다. 역삼각형 모양의 체형, 에릭 바나의 얼굴을 비슷하게 부풀려놓은 멀끔한 생김새, 통통 튀는 느낌, 무엇보다 끝내 안 찢어지는 팬츠 등이 자꾸 신경쓰인다. 근데 대낮의 광활한 사막과 그랜드 캐년 등을 날 듯이 뛰어다니는 헐크의 액션을 보다 보면 묘한 쾌감이 든다. 날쌘 배트맨의 차나 하늘을 날아오르는 수퍼맨의 망토가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힘은 원시적이고 강력한 매력이 있다. “가장 두려운 건 그 놈이 날 지배할 때 내 스스로가 즐긴다는 거야”라고 브루스도 말했지만, 억압적인 대상(영화에선 군)을 향해 날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힘에선 ‘자유’의 기운까지 느껴진다. 우연한 기회에 힘을 얻는 코믹스의 여타 주인공과 달리, 헐크는 자기의 아버지에 의해 어두운 운명을 타고났다. “내 한계를 극복하려 했을 뿐이야. 진실을 알 때 신의 벽을 넘을 수 있어”라 외치는 데이비드와 그 운명에 분노하는 브루스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의 갈등을 빚는 아버지와 아들인 동시에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 지킬과 하이드처럼 인간의 양면이기도 하다. 리안 감독은 이렇게 CG기술과 엄청난 제작비를 이용해 상상해볼 수 있는 모든 액션(심지어 헐크와 유전자조작된 개들은 나무 위에서 싸운다, <와호장룡>처럼!)을 해보되 드라마는 철저히 자기의 주제를 이야기한다. 그게 좀 심하면 아예 연극무대 같은 조명아래 아버지와 아들을 앉혀놓고 아버지가 연설을 하도록 한다. 베티만을 보면 마음이 녹아버리는 헐크는 어이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리 닭살 돋지 않는다. 단 한번의 유머도 없는 이 오락영화를 사람들이 얼마나 ‘오락적’으로 느낄지 모르겠지만, 할리우드 코믹스 대작영화는 <헐크>로 또 한걸음 나아갔음이 분명하다. 7월4일 개봉.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 촬영현장

조폭 마누라의 메멘토? 대전시 용두동 시장 어귀에 지어진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제작 현진시네마·감독 정흥순)의 야외세트장, 중국집 ‘슈’. “이렇게 하면 되나?” “확 펼쳐야지.” 신은경과 정흥순 감독은 조용조용 어떻게 반죽을 날릴 것인가 고민한다. 이날 현장에서는 신은경이 곧 날리게 될 밀가루 반죽을 ‘진짜’ 수타맨이 촬영 직전까지 다듬었다. 극중 날아간 밀가루는 젊은 처자 차은진에게 흑심을 품고 찾아온 고리대금업자 고사채(주현)의 목에 걸린다. 한편, 영화 <사랑과 영혼>을 패러디하는 것이 오늘의 또 다른 촬영 컨셉. 중국집 주방장 재철 역을 맡은 박준규는 부끄러워하다가도 “감독님 덕분에… 킬킬킬” 하며 농담을 던진다. 뒤늦게 현장에 들어선 이원종은 조동관 촬영감독의 구박에도 꿋꿋하게 슬라이트 입봉식을 거행했다.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은 전편의 여두목 차은진이 기억을 잃어버린 채 중국집 종업원으로 일한다는 설정. 그녀가 조폭 두목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동네 어귀 남자들은 그녀에게 추파를 던진다. <가문의 영광>의 흥행을 이끈 정흥순 감독은 텔레비젼 위에 얹힌 보자기와 벽에 붙은 메뉴판의 값까지 세세하게 챙기는 꼼꼼함을 보였다. “야, 자장면 값 저거 너무 비싼 거 아니냐? 3500원이면 너무 비싼 거야. 우동값하고 바꿔라.”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은 6월29일 크랭크업. 9월5일 개봉예정이다. 대전= 사진 이혜정·글 정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