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가 찾는 영화 정보를 손쉽게!

‘바람' 검색결과

기사/뉴스(9404)

대장정의 숨은 공신들

황톳빛 모래와 작열하는 태양으로 달궈진 사막에서 귀향을 꿈꾸며 끝없는 싸움을 치러야했던 고려의 무사들. 이들의 거칠고 고단한 숨결을 담은 <무사> 뒤에는, 이들 못지않게 힘겨운 강행군을 견뎌야했던 또다른 ‘무사’들이 있었다. 바로 김성수 감독의 지휘 아래 뜨거운 사막과 혹한의 바닷가를 누빈 한·중 양국의 스탭들이다. 지난 9월 한국을 찾았던 장샤와 리밍산, 황바우롱은 <무사>의 대장정에 의기투합했던 중국 스탭 3인방. 언어가 통하지 않는 현장에서 수개월간 <무사>와 동고동락하며, 600여년 전 고려 무사들의 여정을 실감나는 그림으로 직조해낸 사람들이다. 새삼 <무사>의 작업을 돌이켜보는 인터뷰에서 “정말 강행군”이었다고 입을 모았지만, 영화를 몇번이나 봤냐며, 여러 번 봐야 되는 영화라고 강조하던 이들은, 고달팠던 기억보단 만족스러운 웃음으로 <무사>의 경험담을 풀어놨다. 우선 중국쪽 프로듀서를 맡은 장샤는 중국전영집단(전 베이징제편창) 소속의 여성 프로듀서. 세월이 곱게 앉아 소녀 같은 분위기와 자그마한 체구만 보면 어디서 거친 현장을 다독이며 이끌 힘이 나올까 싶지만, 리밍산과 의상의 황바우롱 등 현지의 유능한 스탭들을 꾸려낸 공로자다. 현재 3개 제작부로 나뉘어져 있는 중국전영집단에서 제1제작부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주로 합작영화를 담당한다고. 어려서부터 영화에 관심을 갖고 프로듀서가 된 데는 영화적인 환경을 갖춘 집안의 영향이 컸다. 베이징제편창 시절 소장의 비서였던 아버지가 합작영화 담당을 거쳐 베이징아동영화제작소 부소장을 지내며 영화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87년부터 영화일에 뛰어든 장샤의 손을 거쳐간 작품은 <현 위의 인생> <패왕별희> <시황제 암살자> 등 첸카이거의 영화를 비롯해 20여편에 이른다. 90년대 중반 홍콩, 대만과의 합작은 많았지만 <무사>는 한국과의 첫 합작 경험. “가장 힘들었던 때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였다.서로 접근하고 이해하는 과정이고, 처음 같이 해보니까 작업방식도 달랐다.” 초기에는 언어 소통의 문제도 컸지만 일정한 적응기가 지난 뒤에는 자연스레 이해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프로듀서가 창작쪽은 거의 관여하지 않는” 중국과 달리, “시나리오를 들고 여기저기 의견을 물어보는”가 하면 서로 토론을 아끼지 않는 조민환 프로듀서와 김 감독의 풍경이 인상 깊었다고. “본능적이고 사실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무사>의 작업은 물론 힘든 만큼 재미있었지만, 원래 액션과는 아니다. “문예영화라고 할까? 인간미가 흐르는 영화, 같은 잔잔한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그는, 이미 <요원한 뽈, 초원>이란 차기작을 진행중이다. 장샤를 통해 <무사>에 합류한 도구와 소품의 리밍산, 의상의 황바우롱은 이미 여러 작품에서 손발을 맞춰온 콤비. 각각 80년과 84년에 베이징제편창에서 영화를 시작한 이들은 서극의 <촉산> <패왕별희>와 <시황제 암살자>, 가장 최근의 <와호장룡>과 <무사> 등 줄잡아 7편 정도를 함께해왔다. “<무사> 덕분에 처음 한국에도 와 보게 됐다”며 사람좋은 웃음을 웃는 두 사람은, 인터뷰가 못내 쑥스럽다고 서로에게 답을 넘기곤 했다. 처음에야 말도 안 통하고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눈빛만 봐도 알아서 중국 사람은 중국말 하고, 한국 사람은 한국말로” 얘기하며 지냈다는 <무사>는, “인정이 너무 깊어서 다른 영화랑 달랐다”며 말문을 열었다. 바람을 가르는 여솔의 창과 위력적인 가남의 도 등 <무사>의 병장기를 제공한 리밍산은 3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도구 및 소품을 담당해온 베테랑. <와호장룡>의 날렵한 청명검을 세공해낸 솜씨로, <무사>에서 대형 병장기 40여종과 단검 20여종을 포함해 수백개의 무기를 생산해냈다. “처음으로 한국영화를, 한국의 영화인들과 하는 거라 일단 시나리오를 숙독하고 감독과 얘기하면서 소품의 톤을 정했다.” 9명 무사의 병기들이, 인물의 성격을 잘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감독의 주문대로, 그의 무기들은 각 인물들에 잘 어울려 있다. 색목인에게서 구한 만큼, “서구적인 스타일과 인도, 중국 스타일을 결합”한 창은 여솔에게 맞도록 날렵하고, 진립의 활 역시 그의 몸놀림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곡선을 이룬다. 병장기마다 클로즈업을 위한 진짜와 싸움에 쓰일 가짜를 꼼꼼히 만든 것도 수시로 칼이 부딪치는 <무사>의 액션에 생동감을 더했다. 수천개의 무기가 필요한 <시황제 암살자> 같은 영화에 비하면 작업량은 중간급이었지만, “동작이 파워풀해서 두세 테이크 찍으면 쉽게 무기가 부서지는” 터라 수리할 일이 많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고. 리밍산의 도구와 함께 영화와 시대의 분위기를 톡톡히 살려낸 의상의 황바우롱 역시, 30편가량의 영화에 옷을 입혀왔다. 도구 이상으로 인물의 성격을 고려한 <무사>의 의상은, 시나리오를 읽고 전체적인 이미지 샘플을 만들어가며 수정을 거친 결과. “처음에는 언어소통문제도 있고, 감독이 어떤 걸 원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이해한 대로 만들어가면 이게 아니다, 그러면 다시 얘기하고, 연구하고.” 전체적인 이미지는 “소박하면서도 가벼운 듯, 바람에 날리는 듯한 느낌”으로 잡되, 최정과 가남에게는 위풍을 드러내는 갑옷을, 여솔에게는 자유로움이 느껴지록 심플하면서도 옷자락이 펄럭이는 의상을, 부용공주에게는 황실의 색상인 황색 의상을 입혔다. 활동적이면서도 정신적 지주로서의 위엄을 담아야 하는 진립의 의상이 가장 까다로웠다고. 현대의 옷감만으로는 풍부한 질감을 낼 수 없어 다양한 재료를 구하고, 제 색을 찾기 위한 작업에 연출부고 제작부고 매달려 “거의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인물마다 새 것, 약간 낡은 것, 완전히 낡은 것 등 3종씩을 준비하면서 새로 지어낸 옷만 180여벌. 대여한 것까지 합치면 모두 400여벌에 이른다. “내가 만든 의상을 입은 배우가 리밍산이 만든 소품을 들고 있으면 잘 어울린다”는 황바우롱의 은근한 자랑은, <무사>에서도 유효하다. “소품실에 가면 의상 담당 아저씨가 앉아 있고, 의상실 가면 소품 담당 아저씨가 앉아 있고. 그래서 늘 노는 것 같지만 서로 보면서 참고를 많이 한다”고들 말할 만큼 호흡이 잘 맞는 동료들이니까. 비단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이들의 행로는 꽤 비슷하다. 고교를 졸업한 뒤 농촌이나 오지에서 노동 현장을 경험하는 하방운동의 일환으로 농촌에서 일하다가, 당 기관의 배치에 따라 베이징제편창에 들어간 것이다. “중국과 한국은 체제가 다르다”는 리밍산의 설명에 따르면,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베이징제편창에 배치될 때부터 소품부여서” 소품 담당이 됐다고. 의상부에 배치된 황바우롱도 마찬가지. 둘 다 “특별히 영화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라지만, 하면 할수록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이 작품에 적합한 게 뭘까 고민하다 보니 항상 배우는 과정”인 것도, “내가 만든 게 스크린에 나왔을 때, 그 효과가 바라던 느낌으로 나오는” 재미도, 영화라는 소우주의 창조를 그만둘 수 없게 했다. 두 계절을 꼬박 상납한 <무사>를 뒤로 하고, 지금은 장이모의 신작 <영웅문>을 함께 준비 중이다. 글 황혜림 blauex@hani.co.kr·사진 임종진

어둠에 대한 집요한 연구

1972년 할리우드는 전설적인 흥행성공 앞에서 영화역사를 새로 써야 하는 기대치 않은 수확을 거둬들인다. 마피아를 소재로 한 식상한 각본에, 적은 예산으로 고용한 젊은 제작자와 배우로 꾸려진 이 달갑지 않은 프로젝트는 개봉 9주 만에 5330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거두는 기염을 토해냈다. 단순히 폭력의 세계만을 그려내는 데 그치지 않은 영화의 진정성에도, 냉혈한 모습과 인간적인 면을 두루 갖춘 대부의 내면을 훌륭히 소화해낸 말론 브랜도의 연기에도, 이 모든 것을 조율해내는 코폴라의 탁월한 연출력에도 이미 영화의 성공은 내재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도입부의 어둠 속에 그려진 돈 코를레오네,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하면서도 위엄있는 마피아 대부의 이미지는 뛰어난 연기, 탁월한 연출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영화의 분위기를 창출하는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의 손길은 이미 그곳에 맞닿아 있었다. ‘이 시대 최고의 촬영감독’이라는 수식이 무색지 않은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 그의 영화인생은 뜻하지 않은 사이 이루어진다. 불황으로 워너브러더스의 분장사로 일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촬영장을 드나드는 사이, 아역 배우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영화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영화계 사람들과의 친분과 평소 가졌던 사진에 대한 관심은 군복무 이후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이어졌고, 그뒤 광고계의 카메라 조수로 일하던 그는 우연히 아람 아바키안의 <종말>의 촬영을 맡게 된다. 극영화는 처음인지라 딱히 기대할 것도 없었지만, 그간의 다큐멘터리와 광고작업으로 쌓은 실력은 다소 미숙했던 첫출발임에도 유감없이 드러났다. 특별한 기교없이도, 효과적으로 사용된 광학효과와 아름답게 그려낸 영상으로 그는 촬영에 대한 자신감과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촬영감독으로서 본격적인 태세를 갖추는 것은 물론 <대부> 시리즈를 함께 작업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의 만남 이후이다. ‘암흑의 왕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어둠에 대한 그의 탐구는 집요하다. 등장인물의 얼굴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건 일쑤이고 더러는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장면에 이르기까지, 심도가 깊어 화면의 특정부분을 살리기 어려운데다가 디테일이 살지 않는 어두운 화면은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마뜩치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장면 자체가 하나의 연기가 될 수도 있기에, 때로 배우의 표정을 살리는 것보다 장면의 분위기 연출이 의미전달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밝음과 짝을 이루어 더욱 극명하게 살아나는 어둠의 효과는 작품 곳곳에서 포착된다. <대부>에서의 밝은 결혼식과 어두운 방 안의 대비는 선과 악이라는 내적 감정선을 따라 유유히 흘러들어가며, 영화의 주조를 이루는 황금색 톤과 어우러진 성공적인 화면 창출은 이후 영화계의 전형이 된다. 77년 <애니 홀> 이후 콤비를 이룬 우디 앨런과의 일련의 작업은 이전의 장중함과는 다른 화면으로 또 한번 그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흑백필름과 시네마스코프방식으로 뉴욕의 도회적 정서를 그려낸 <맨하튼>과 낡은 흑백필름의 분위기를 재현해낸 <젤리그>의 영상은 실험성과 독창성을 기반으로 전천후 촬영감독의 면모를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제작자와 감독들은 앞다투어 함께 일할 것을 청했고, 앨런 파큘라, 제임스 브릿지, 허버트 로스 등과의 지속적인 작업이 이어진다. 작품이 이룩해낸 이러한 성과와 달리, 애석하게도 아카데미는 한번도 그의 화면을 인정하지 않았다. 극적 요소가 없는 다분히 일상적인 코미디의 영상이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할리우드의 시각 탓도 있지만, 작품 외적인 사교활동에 중요한 본질을 잃을 수 없다는 그의 외골수적인 성격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원인었다. 그는 직접 연출한 영화 <윈도즈>로 그는 연출자로서의 역부족을 시인했다. 그러나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었기에 그는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훗날 그가 세인의 바람대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가치를 둔 것이 아니었기에 그것으로 그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촬영준비에서 후반작업에 이르기까지 결코 긴장을 늦추지 않는 철저한 완벽주의와 현장 통솔에 누구보다도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가 말하는 좋은 영상의 조건은 외적인 풍족함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창의적인 정신이다. 이화정/자유기고가 zzaal@hanmail.net 필모그래피 <데블스 오운>(The Devil's Own, 1997) 앨런 파큘라 감독 <맬리스>(Malice, 1993) 해롤드 베커 감독 <대부 일대기>(The Godfather Trilogy: 1901-1980, 199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의혹>(Presumed Innocent, 1990) 앨런 파큘라 감독 <대부3>(Maio Puzo’s The Godfather Part III, 1990)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재회의 거리>(Bright Lights, Big City, 1988) 제임스 브릿지 감독 <환상의 발라드>(The Pick-up Artist, 1987) 제임스 토박 감독 <머니 핏>(The Money Pit, 1986) 리처드 벤자민 감독<퍼펙트>(Perfect, 1985) 제임스 브릿지 감독 <카이로의 붉은 장미>(Purple Rose Of Cairo, 1985) 우디 앨런 감독 <젤리그>(Zelig, 1983) 우디 앨런 감독 <내 사랑 시카고>(Pennies From Heaven, 1981) 허버트 로스 감독 <스타더스트 메모리스>(Stardust Memories, 1980) 우디 앨런 감독 <윈도즈>(Windows, 1980) 고든 윌리스 감독 <맨하탄>(Manhattan, 1979) 우디 앨런 감독 <컴즈 어 호스맨>(Comes a Horseman, 1978) 앨런 파큘라 감독 <애니 홀>(Annie Hall, 1977) 우디 앨런 감독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 1976) 앨런 파큘라 감독 <명탐정 하퍼2>(The Drowning Pool, 1975) 스튜어트 로젠버그 감독 <대부2>(Maio Puzo’s The Godfather Part II, 1974)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암살단>(The Parallax View, 1974) 앨런 파큘라 감독 <대부>(Maio Puzo’s The Godfather, 1972)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콜걸>(Klute, 1971) 앨런 파큘라 감독 <리틀 머더>(Little Murders, 1971) 앨런 아킨 감독<주인님>(The Landlord, 1970) 할 아쉬비 감독 <주인님>(The Landlord, 1970) 할 애슈비 감독 <사랑>(Loving, 1970) 어빙 커쉬네르 감독 <이웃 사람들>(The People Next Door, 1970) 데이비드 그레네 감독 <종말>(End of the Road, 1970) 아람 아바키안 감독

그녀들의 일기

이영아 팀장, 올해 나이 29살. 박재현 팀장, 올해 나이 27살. 명필름의 국내마케팅 1, 2팀장들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주인공 브리짓처럼 과년한 노처녀도 아니면서 그녀들은 현재, 애인이 없다. 그렇다고, 브리짓처럼 골초에 술을 탐하는 것 같지는 않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 보이지도 않는다. 그녀들은, 휴 그랜트 같은 바람둥이에게 홀라당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은 안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콜린 퍼스 같은 ‘피플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된 미남이 지극한 애정을 보내는 말 그대로 ‘영화 같은’ 로맨스도 물론 없다. 그녀들은 지금, 연애에 목숨을 거는 대신 ‘일’에 목을 매고 산다. 현재 목을 맨 바로 그 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마케팅이다. ‘사상 최대의 릴레이 시사회’라는 이벤트 때문에 벌써 몇달을 밤늦은 시간에 총알택시를 탔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녀들은, <봄날은 간다>가 무지 부럽다. 무슨 이야기냐고? 유지태, 이영애라는 스타시스템과 허진호라는 유명감독 때문에 일찍이 공중파 TV의 연예정보 프로그램들과 종합일간지, 영화주간지 등 온갖 매체에 도배되다시피 소개되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다. 빅스타 없고, 한방에 쏙 들어오는 이야기도 아닌 <와이키키 브라더스>란 물건을 머리에 이고 한손에 든 채, “어떻게 우리 배우들로 표지 한번 안 될까요”, “이런 아이템이 있는데 한 꼭지…”. 그녀들이 아이템 컨택을 이유로 여러 매체들과 통화하고 있는 모습은 거의 ‘구걸’에 가깝다. ‘스타’를, ‘이슈’를, ‘자극’을 찾아 민감하게 움직이는 매스컴은, ‘한국영화 흥행 이상 기류’ 운운하며 지금 대중문화의 소비행태를, 한국영화의 흐름을 걱정하는 듯하지만, 또한 판매부수와, 시청률이라는 절체절명의 숙제로 표리부동하며 그녀들에게 “글쎄요…. 그게 뭐, 재미있겠어요?”라며 난감한 거절 의사를 날릴 뿐이다. 한번에 50만원 이상 들여가며 마련한 무료 시사회에 초대된 관객들 중에 보다 나가는 서너명을 발견할라치면 쫓아가 뒤통수를 갈기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지만 차마 그렇게 못하고, 시사회 다음날 영화 홈페이지 게시판에 그 누군가가 올린 다섯개짜리 별과 상찬의 글을 읽고는 눈물이나 찔끔 흘리는 마음 여린 그녀들이다. 그녀들은 <봄날은 간다>의 30여만명의 관객동원 수가 주는 ‘흥행 이상 기류’보다는, 김기덕 감독의 역작 <수취인불명>의 1만명짜리 흥행성적표, 올해의 발견이라는 칭송이 모자람 없는 <소름>의, 그러나 소름 돋는 흥행성적표가 정말 ‘불안한 기류’라는 생각이다. 스타 없는 영화, 화려한 판타지가 없는 영화, 그 대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용감하게’ 가고자 했던 감독의 의지가 맥없이 스러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그녀들은, <나비>와 <라이방>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또다른 그녀들의 일기장도 궁금하다.

문화적 세련됨과 정치적 올바름

지난 주말 모 대학교 캠퍼스에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초읽기에 들어간 시점이라서 ‘놀러 간다’는 일이 찜찜했지만, ‘놀 땐 놀고’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공연장을 향했다. 공연장은 ‘놀고 있는’ 젊은애들로 득시글거려서 ‘인디’나 ‘언더’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였다. 유명 브랜드로 정착한 기업에서 주최한 행사답게 무대도, 음악인도, 청중도 세련되어 보였다. ‘아, 이제 드디어 인디음악도 제대로 된 비즈니스 시스템에서 작동하기 시작하는구나’라는 섣부른 예상과 ‘아냐 이건 어쩌면 또 하나의 상업화일지 몰라’라는 옹색한 반발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그동안 인디음악을 ‘운동의 대의’에 무리하게 동참시키려고 하거나, ‘인디는 비즈니스와 타협하면 안 된다’고 맨땅에 헤딩을 계속시키는 단계가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왈가왈부는 ‘인디 커뮤니티’ 내부의 이야기이므로 이 지면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이야기할 주제는 인디 커뮤니티의 ‘정치적’ 성향이다. 나 같은 사람의 눈에 그날 모인 청중을 포함한 인디음악 청중은 정치적 성향을 논하기 이전에 정치라는 주제 자체에 무관심해 보인다. 이를 두고 ‘아무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소통의 곤란을 주관적 억측으로 대체하는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무언가 생각의 코드가 달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한국에서는 문화적 세련됨과 정치적 올바름은 영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씁쓸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어쩌다가 문화적으로 세련된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급진적 정치사상을 신봉하는 젊은 친구들을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도 ‘정치적 올바름을 문화적 세련됨의 하나의 장식품 정도로 취급한다’는 의심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사회주의든 무정부주의든 다른 무엇이든 급진적 사상을 실천하는 삶이 문화적 욕구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면(이걸 부정할 수 있을까?), 지금 그걸 기꺼이 수용할 사람이 젊은 세대 중에 얼마나 있을까는 회의적이다. 그래서 가끔은 ‘펑크 밴드에 열광하는 것과 <엽기적인 그녀>에 열광하는 것이 과연 뭐가 다를까’라는 우문을 던지게 된다. 현답은 그들 스스로 내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한 가지 주제가 더 있다. 그건 한국에서 문화적 세련됨을 추구하는 일은 불가피하게 ‘영미 문화의 추종’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관련된다(따지고 보면 정치적 올바름이란 것 대부분도 ‘서양 급진사상의 추종’으로 출발한다). 그 자체가 좋으냐 나쁘냐라고 논란을 벌이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최근 세계정세는 이런 ‘피곤함’을 가중시킬 것 같다. 20년 전에 그랬듯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과 ‘앵글로의 침략적 전통’이 여실히 나타나는 이때, 문화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현할 여지는 협소해질 것 같다. 물론 ‘미국인과 앵글로족은 다 나쁜 놈들’이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문화적 실천에는 심리적 제약이 많아지고 때로는 곤욕스러운 일도 발생할 것 같다. 그건 1990년대 시대정신(?)이었던 ‘니 멋대로 해라’는 에토스가 시효만료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래된 정치적 신념을 재확인하면서 ‘재미를 희생하면서 의미를 추구하라’고 요구하기도 힘들 것 같다. 오히려 문화적 세련됨을 추구하는 실천 속에 숨겨진 정치적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이 필요해 보인다. 개인적 견해를 밝히자면 문화적 세련됨과 정치적 올바름이 찰떡처럼 접속될 것이라는 무리한 기대는 버리기로 했다. 그 대신 ‘두개의 지향이 서로 적대시하거나 무관심하지는 말고 그럭저럭 어울렸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갖기로 했다. 만약 국산(國産) 인디음악이 ‘영미 문화의 맹목적 추종’이자 ‘문화 제국주의의 산물’이라는 견해가 있다면 나라도 나서서 반대하겠지만, 만약 영미 문화의 추종을 신성한 사명처럼 생각하는 실천이 보인다면 그것들과는 거리를 두어야겠다. 그렇다고 해서 20년 전 이맘때처럼 ‘관제 축제’에 출연한 ‘그룹 사운드’의 공연을 저지하기 위해 계란과 짱돌을 던지겠다는 일은 천부당 만부당한 것이지만. 우스운가. 그땐 그랬다. 앞으로는 어떨지…. 신현준/ 문화수필가 http://homey.wo.to

사카린 같이 스며들던 상처야! <애정만세>

‘오늘은 기필코 한놈 건져 보리라.’ 2001년 9월 어느날, 집에 들어서자마자 황급히 컴퓨터를 켠다. 채팅사이트가 뜨자, 밀려들던 졸음이 후딱 달아나버린다. 먼저 ‘지역’과 ‘나이’를 입력한다. 경기, 30. 다음은 닉네임을 정하는 순서. 머뭇거린다. 머리 속에서 온갖 단어들이 다툰다. 먼저 ‘파졸리니’가 떠오른다. 안 돼, 이 닉을 썼다간 어제처럼 파리 날리기 십상이지. 탁탁탁탁…. 손끝으로 자판을 퉁기며 자못 심사숙고에 빠져든다. 순수사랑? 쪽팔려, 지금 바로? 너무 노골적이야. 아… 나를 살짝 드러내면서 넘들에게 어필할 이름은 정녕 없는 걸까? 비탄에 빠질 무렵, 구원처럼 떠오르는 네 글자, 애.정.만.세. 유레카! 그래. 차이밍량을 아는 놈이라면 채팅시간을 허비해도 아깝지 않지. 설령 그 영화를 몰라도 날 “사랑밖에 난 몰라”쯤으로 오해할 거 아냐? 애인 구하는 사이트에서는 딱이야. 양날의 칼이라구. 오케이! Enter. 재빨리 대화자의 닉을 일별한다. 애정만세가 눈에 띈다. 내 닉이군. 스친다. 일단 눈에 확 들어오는 닉 없음. 다시 꼼꼼히 닉을 살핀다. 애정만세, 서울, 28. 어? 나말고도 애정만세가 있었네? 아, 이건 신의 계시야. 섣부른 확신에 찬 손가락이 서둔다. ‘닉이 똑같네요.’ 쪽지가 날라가고 곧바로 1대1 대화방이 만들어진다. 애정만세: 차이밍량 좋아하시나봐요. 애정만세: 네. 애정만세: 애정만세 주인공 이름 기억 나세요? 애정만세: 여자는 메이였는데…. 애정만세: 남자는 시아오강 하고 아정. 애정만세: 어떤 장면이 젤 기억에 남아요? 애정만세: …. 시시껄렁한 대화가 이어진다. 아무리 질문 세례를 퍼부어도 ‘놈’의 대구는 ‘네’와 ‘글쵸’ 사이만을 오락가락한다. ‘아닌가 보군….’ 이른 체념과 함께 ‘애정만세’를 내 인생의 영화로 만든 그때 그놈에 대한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20대 중반의 내가 ‘평생 다시 없을 사랑’이라고 호언장담케 만들었던 놈. 으르고 구슬리고 애원하고 협박까지 했으나 끝끝내 나를 거절했던 놈. <애정만세>를 보러 가자고 약속해 놓고 바람맞힌 놈. 95년 가을 어느날, 난 충분히 쓸쓸해질 준비를 하고 극장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떤 침묵은 처절한 비명이란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부동산업자 메이, 길에서 옷을 파는 아정, 납골당을 파는 시아오강. 마음 둘 곳 없는 청춘들은 낮에는 타이베이 거리를, 밤에는 빈집을 떠돈다. 무엇보다 시아오강을 잊을 수 없다. 메이와 아정이 정사를 나누는 텅 빈 아파트의 침대 밑에서 숨죽여 흐느끼던 시아오강. 끝내 아정을 향한 시아오강의 마음은 ‘말하지 못한 내 사랑’으로 남았다. 그리고 내내 먹먹했던 가슴에 마지막 카운터 블로, 롱테이크가 찾아왔다. 메이는 공원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메이의 어깨처럼 내 어깨도 주체하지 못하고 들썩이고 있었다. 애정만세를 부르지 못하고, 20대 후반의 봄날이 갔다. 물론 그놈도 잊혀졌다. 잊고 나니, 그 시절의 ‘오버’가 더없이 민망해졌다. 그리고 올 여름 간만에 또다른 놈에게 매혹당했다. 어느새 서른살이었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 우리 철판 깔았네’(최승자 ‘삼십세) 그놈을 괴롭히는 나의 슬로건이었다. 결국 최후 통고가 날아들었고, 그날 혼자서 <봄날은 간다>를 보러 갔다. 한바탕 통곡을 해보겠다는 심사였다. 영화비가 아깝지 않을 만큼. 가끔씩 코끝이 시큰해지기는 했으나, 끝내 울음은 터지질 않았다. 오히려 상우가 심각해질 때마다 키득키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가 한껏 애처로운 눈길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대사를 읊을 땐 “얌마, 사랑이 어떻게 안 변하니?”라고 면박을 주고 싶을 정도였다. 도통 순정에 몰입하지 못하는 내가 기특하고도 징그러워졌다. 집에 돌아와 허수경의 시, ‘봄날은 간다’를 다시 읽었다. ‘사카린 같이 스며들던 상처야…/ 안타까움보다 더 광포한 세월아//순교의 순정아/ 나 이제 시시껄렁으로 가려고 하네/ 시시껄렁이 나를 먹여 살릴 때까지.’ 철판 깐 얼굴에, 시시껄렁의 나날에, 애정만세의 몰입이 다시 찾아올까? 설마.

[LA통신] 필리핀 피가 자랑스럽다

미국땅에 사는 필리핀인이 필리핀 동포들의 자본을 모아 할리우드에서 찍은 영화는 ‘필리핀영화’일까 ‘할리우드영화’일까. “나의 영화는 할리우드영화”를 당당히 내세우는 한 필리핀-아메리칸 영화 청년의 씩씩한 행보가 이곳 영화 관객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른살 동갑내기인 진 카자욘 감독과 작가 존 마날 카스트로 콤비가 만든 <데뷰>는 지난 10월5일부터 LA의 6개 극장에서 상영중인 코미디영화다. 전통적인 필리핀 이민 가족으로서의 자신을 혐오하는 한 고교 졸업생이 동생의 18번째 생일파티를 치르면서 미국인이 되고 싶어하는 자신과 부모세대의 갈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본다는 내용이다. 필리핀 전통 대나무 춤과 힙합 댄스가 교차하고, UCLA 메디칼 스쿨에 장학생으로 아들을 보내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바람과 칼 아츠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싶어하는 아들의 소원이 엇갈리는 영화는 이곳에서 거의 접할 기회가 없었던 필리핀-아메리칸들의 삶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린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영화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의 게릴라식 홍보 방식이다. 진-존 콤비는 현재 자신의 영화가 상영중인 LA지역 6개 극장을 일일이 상영시간마다 돌며 관객을 만나고 있다. 7일 UCLA 근처 한 극장의 상영이 끝난 뒤 무대에 오른 카자욘 감독은 당당했다. “나의 영화엔 백인도 흑인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영화는 할리우드영화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필리핀-아메리칸 역시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관객에게 “돌아가서 한 사람의 관객이라도 더 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 가는 길에 CD나 티셔츠를 꼭 사주기 바란다. 한 사람의 입장료라도 더 모아야 이 영화가 한 군데서라도 더 개봉할 수 있고 그것이 미국영화의 민족적 다양성에 보탬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당부했다. 이들의 게릴라식 영화 만들기는 제작비를 모으는 데서 시작됐다. 미리 만든 10분짜리 16mm 트레일러를 미국에서 성공한 필리핀 갑부에게 보여주며 기부를 권했지만, 거부당한 이들은 필리핀 블루칼라 동포들로부터 제작비를 모으기로 작정하고 미리 티셔츠나 모자 등의 상품을 팔면서 영화내용을 홍보해 제작비의 일부를 마련했다. 지난해 하와이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뒤 올해 3월 샌프란시스코 아시안 아메리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이들은 영화 상영 며칠 전부터 자원봉사자들을 동원, 근처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팩스를 보내거나 포스터를 붙이며 적극적인 홍보를 펼쳐 당일 극장을 매진시켰다. 이들의 당돌함은 필리핀 혼혈인으로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 딘 데블린(<패트리어트>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의 작가)을 불쑥 찾아갔던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은 그의 사무실에서 “왜 필리핀-아메리칸으로서 정체성을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지 않는 거냐. 당신은 필리핀임이 창피한가”라며 호통을 쳤고, 결국 이 유명 작가의 적극적인 후원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도 계속 CD나 티셔츠, 책 등의 관련 상품을 부지런히 팔아서 극장 배급료를 마련해 한 극장 한 극장씩 늘려가겠다”는 이들 다부진 각오는 ‘할리우드 인디펜던트’로서 소수인종의 영화인들이 생존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던지고 있다. LA=이윤정 통신원

케이블영화 <여기보다 어딘가에>

Anywhere But Here 1999년, 감독 웨인왕 출연 수잔 서랜던 10월20일(토) 오전 9시40분 이 어머니의 꿈은 정말 단순하다. 너무나 간단할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이루어지기 무척 힘든 것이라는 점. 딸아이가 배우 오디션을 받고, 스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어머니의 꿈이다. 고급 승용차를 타고, 사람들에게 대접받겠다는 욕심은 꿈의 일부분일 따름이다. 막상 딸은 어떨까? 어머니의 비현실적인 꿈을 어이없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그녀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기보다 어딘가에>에서 수잔 서랜던과 내털리 포트먼은 전형적인 ‘모녀’관계를 뒤집어 역전시킨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철없는 어머니가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 즉 “아무것도 아닌 마을에서 아무것도 아닌 여자로서” 살아왔던 인생을 딸에게 유전시키고 싶지 않다는 게 그녀의 바람인 것.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조이 럭 클럽>(1993)을 만들었으며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중국계 감독인 웨인 왕의 영화로 관습적인 멜로드라마를 무난하게 만드는 감독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다. 앤은 엄마와 단둘이 사는 처지다. 이 모녀는 마치 서로 역할이 바뀐 듯한데 조숙하고 차분한 앤과 달리 엄마 아델은 철부지 아이 같다. 아델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앤에게 말하지만 앤은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결국 딸을 배우로 만들겠다는 아델의 고집은 앤과 끊임없이 대립하고 라스베이거스로 가서 살림을 꾸리게 된다. 엄마는 욕구불만에 가득 차 있지만 딸인 앤은 엄마가 뭔가 사고를 치면 조용히 뒤에서 그녀 행동을 챙겨주는 역할을 떠맡을 수밖에 없다.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드라마를 구성하고 있지만 배우들 연기는 챙겨볼 만하다. <델마와 루이스>의 수잔 서랜던, 그리고 <뷰티풀 걸>의 내털리 포트먼이 앙상블 연기를 하고 있으며 정감어린 연기대결을 펼치고 있다. 모나 심슨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으로 웨인 왕 감독의 연출력은 다소 식상한 대목도 없지 않지만 여성들간의 대립과 화해의 과정을 꾸밈없이 화면에 재현하고 있다.

흥행돌풍 <조폭마누라> 제작자를 만나다

<조폭 마누라>의 흥행 성공이 지금 영화계의 최대 화제다. 평단에서는 혹평이 많았음에도 지난 주말까지 2주반 동안 전국 관객 320만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독특한 건, 충무로에서도 이 영화의 흥행을 놓고 반기는 이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며 우려하는 이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 영화의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서세원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서세원(45)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영화평론가 심영섭(35)씨가 지난 15일 이 영화를 배급한 코리아픽처스 사무실에서 서씨를 만났다. 지난 85년 <납자루떼>를 만든 뒤 16년 만에 다시 영화에 뛰어든 서씨는 “지금 나는 승자이니까 욕을 들어도 행복하다”며 특유의 코믹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인터뷰에 응했다. 심영섭 <조폭마누라>(줄여서 <조폭>)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가. 서세원 좋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적으로 좋은 영화가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십계> <사운드 오브 뮤직>, 근간에는 <택시 드라이버> 같은 로버트 드 니로 나오는 영화들. <조폭>은 약간 복고적인, 70~80년대 홍콩영화의 아류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 잘 알지요(웃음). 심 그런데도 전 재산을 다 댈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 건 왜인가. 서 서세원이 바라보는 좋은 영화는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영화다. 나는 예술성은 없는 사람이다. 작품도 중요하지만 투자는 돈 놓고 돈 먹는 것이다.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일 수도 있고, 욕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 흐르는 한국적인 느낌이 있다. 그래서 투자했다. 지난 3월 투자를 결정할 당시 <조폭>은 돈을 못 구해 7개월 동안 표류하고 있었다. 조진규 감독이나 신은경씨, 현진영화사 이순열 대표 모두가 막다른 길이었고, 나도 막다른 길이었다. 모두가 궁지에 몰렸으니 한방 터질 것 같았다. 그게 진짜 터졌다. 하느님이 서세원에게 한방 준 거다. 심 투자자로서 상업주의 논리에 부합해 성공하는 영화가 가장 좋은 영화라는 말로 들리는데, 그러면 이 영화가 우리 사회나 한국영화에 끼칠 영향은 생각했는지. 서 사회에 끼칠 영향을 생각한다는 건 관객을 우롱하는 일이다. 박정희부터 노태우 정권 때 좋은 영화를 채로 걸러서 수입했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거다. 관객은 즐기고 문 나오면서 잊어버린다. <친구>가 최근 한 살인사건의 원인이 됐다고 시끄러운데 <친구> 때문에 살인했다는 건 말이 안된다. <봄날은 간다> 보면 모든 국민이 녹음기 들고 연애하겠네. 심 <조폭>이 대박 터진 뒤로 어떤 제작자가 앞으로 무슨 영화할지 갑갑하다고 했다. 흥행기류가 변하면서 앞으로 아류작이 많이 나올 거다. 홍콩영화도 누아르의 아류작이 마구 나오면서 무너진 것 아닌가. 서 홍콩처럼 오갈 데 없는 데서는 아류작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르다. 다 따라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이런 것 하고, 저 사람은 저런 것 하면서 배분이 된다. 이주일씨, 신영균씨 국회의원 됐다고 서세원이 출마하느냐? 나는 영화한다. 갑갑하다는 사람은 영화 안하면 된다. <조폭>은 한 시즌에 1등한 한편의 영화일 뿐이다. 심 <조폭>의 흥행요인은 뭐라고 보는가. 나는 막가파 영화라고 본다. <투갑스>부터 시작한. 막가파 영화는 절대적인 확신과 서비스 정신으로 밀고 간다. 올봄에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등 그런 영화가 다 잘 된다. 하지만 <교도소 월드컵>은 안 됐다. 다 같은 막가파인데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서 우선 <투캅스>는 <마이 뉴 파트너>라는 프랑스 영화의 아류다. <조폭>은 조진규 감독이 5년간 연구한, 정성이 많이 들어간 막가파다. 같은 막가파라도 성능있는 막가파와 베낀 막가파는 다르다. 그리고 <신라의 달밤>은 한국적 정서가 있다. 누구나 경주에 수학여행 가서 패싸움하고, 학교 때 아무 것도 아니었던 애가 출세해서 큰소리 쳐서 속상한 일이 있을 거다. <엽기적인 그녀>처럼 요즘 젊은 애들 술 먹고 오바이트 하는 여자 등쳐준 경험이 있을 거다. 거기에 이어 <조폭>은 요즘의 모계사회적 분위기를 잘 그렸다. 우리 집도 마누라가 돈줄 쥐고, 내가 코너에 몰리면 유엔군처럼 나타난다. 영화 마지막에 박상면이 신은경에게 가위 건네주는 장면은 의미가 깊다. 아무리 남자가 복수해도 주도권을 여자에게 준다. 남자의 비애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조폭>은 참 좋은 영화다. 조진규 감독은 우리 시대 최고의 감독이다. 심 여성평론가의 입장에서 이 영화는 한국영화로는 드물게 여성전사를 내세우면서, 그 여성전사가 성을 무기로 삼지 않는다. 신은경은 힘과 물리력으로만 승부한다. 착한 여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가 사용하는 가위는 거세의 이미지다. 하지만 여성성을 접대부에게서 배운다든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새가 뭐냐”는 아이의 질문에 “짭새”라고 말하는 무지를 드러내는 데서 유머를 추구한다. 여성을 세우는 척하지만 그 안에는 여성비하가 함께 들어있다. 서 그래서 신은경의 어린 시절을 많이 넣었고 신은경의 여성적 측면도 나오는데 시간적 제약 때문에 뺐다. 결손가정이고 고아원에 버려지고, 인성교육을 뭇 받고, 그래서 황폐해지고…. 그런데 스피드와 (관객들이)즐기는 것에 승산을 두니까 편집에서 다 드러냈다. 그래서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미안하다. 그런데 참 정확하게 찍네. 다른 평론가들과 달라(웃음). 심 재미와 안이한 발상은 구별돼야 할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공감하면서 재밌게 보는 영화가 있다. 지나치게 상업주의로 가고, 상업주의라는 논리로 면죄부를 받으려는 건 납득이 잘 안된다. 서 면죄부가 아니다. 옛날에 <미드나잇 카우보이> 같은 좋은 영화를 국제극장에서 열명 남짓한 관객과 함께 보면서 영화는 많이 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25년간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 더 깊어졌다. 우선 시청률이 높아야 한다. 서세원쇼도 시청률이 높으니까 살아 남는다. 많이 보면 된다는 신념은 내 어머니도 아버지도 심영섭씨도 못 말린다. (심)그게 그말 아닌가. 성공하면 된다는. (서)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같다고 본다면 할 수 없다. 평행선이다. 심 대중들에게 어떤 문화적 아이콘이 되고 싶은가. <조폭>의 이미지와 중첩되길 원하는지, 아니면 스스로 인정하는 좋은 영화의 이미지와 중첩되고 싶은지. (서)나는 변신을 잘 한다. 다음 영화가 발표되면 그 뒤로는 그 영화가 내 이미지가 될 거다. (심)그렇다면 서 대표의 명예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 서 이 영화로 지금까지 세금 빼고 한 40억원 벌었는데, 전부 영화에 투자할 거다. 영화로 돈 벌어서 절대 다른 데 쓰지 않는다. 3분의 1은 코믹, 3분의 1은 액션, 나머지 3분의 1은 이른바 좋은 영화에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7월부터 극비리에 찍고 있는 영화가 있다. 조폭과 무관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코미디다. 또 내년에는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찍으려 한다. 내년까지 여섯 편 만들어서 모두 합해 1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게 목표다. 그러나 캐스팅에 수억원씩 쏟아붓지 않을 것이다. 지금 충무로는 배우들을 움켜쥐려고 캐런티를 올리면서 서로 제살 깎아먹고 있다. 나는 A급 배우는 안 쓰고, 배우를 개발해 나갈 것이다. 정리 임범 기자 isman@hani.co.kr

“웃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디테일이 살아 있는 코미디는 처음 봤어요.” “질문할 거 생각하며 거리를 두고 보려 했는데 금방 몰입이 돼서 정신없이 웃다 나왔어요.” 두 감독은 서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소 특별한 친분이 있던 사이는 아니지만 장진과 봉준호는 ‘나를 알아주는 그대’를 한눈에 알아본 듯했다. <킬러들의 수다>와 <플란다스의 개>에 어떤 공통점이 있었는지 떠올리면 두 감독의 친화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상한 코미디’라고 할 수밖에 없는 두 영화는 낯설고 신선한 웃음을 보여준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공포와 긴장감이 폭소로 돌변하던, 아파트 경비 아저씨 보일러 김의 장광설을 기억하는지? <킬러들의 수다>에서 원빈의 감동적인 연설에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하는 녀석들은 어쩐지 <플란다스의 개>의 보일러 김과 내통한 듯 보인다. 참을 수 없는 진지함에서 폭소를 불러오고, 엉뚱한 소동에서 삶의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그들은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프로페셔널 광대들이다. 강퍅한 현실을 돌파하는 유희정신의 힘을 실감케 하는 장진과 봉준호의 유머감각은 ‘21세기적 상상력’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중국 최대 명절이라는 쌍십절, 10월10일 저녁 장진 감독이 대표로 있는 문화창작집단 수다의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시종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물리치며 진행됐다. 그들 영화에 드러나듯 선천적인 코미디 감각을 뿌리칠 수 없는 두 사람은 조금 지루해질 만하면 실감나는 연기까지 보태가며 참관자의 귀를 즐겁게 했다. <킬러들의 수다>를 둘러싼 장진과 봉준호의 유쾌한 수다를 들어보자. 편집자 봉준호(이하 봉) 현장이 아주 재미있었다고 들었어요. <간첩 리철진> 찍을 때도 하도 재미있게 일해서 모든 스탭들이 감독님과 웃기는 이야기하면서 떠들다가 “그런데 우리가 왜 안 찍고 있지?”, “다 찍었잖아” 그랬다던데. (웃음) 장진(이하 장) 난 촬영현장에 조크가 없으면 죽어버릴 것 같아. 긴장하는 것 싫어하고. 농담이 없으면 밤도 못 새워요. 힘들어서. 그럴 때가 있어요. 현장에서 다음 장면 세팅하는 동안 웃고 떠들다가 문득 주위가 너무 조용한 것 같아서 “그런데 뭐가 아직 안 된 거지?” 물어보면 “세팅 아까 끝났는데요” 그러는 거야.(웃음) 봉 <킬러들의 수다> 보면 되게 웃긴데, 몰아붙이거나 강요하는 느낌이 없거든요? 미묘한 뉘앙스로 쬐그만 걸로 웃기기 때문에 찍는 입장에서는 컨트롤을 한다 해도 순발력이 상당히 필요할 것 같던데. 장 리허설 때 대사 연습은 끝내요. 그래서 현장이 여유있어요. 리허설을 충실히 하면 현장에서 다른 장면 찍기가 참 좋아요. 좀 변화를 줘서 다시 해볼래, 해도 마스터가 있기 때문에 배우들이 안 흔들려. 원빈이 절창할 때 “정우형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어. 형은 모를 거야”까지 하고 11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웃을 거야, 했는데 그건 좀 일찍부터 웃기 시작하더라고. 봉 그 장면이 압권이었는데,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아요. 장 근데 그게 킬러에서 연기자들에게 요구했던 코미디의 가장 정석적인 부분이었어요. 장난은 시나리오에서 칠 테니까 너희는 진실을 보여줘라. 원빈은 대사 두 마디 하니까 눈에서 눈물이 죽 흘러요. 그게 ‘꼼짝마’ 코미디거든요. 배우들의 절실함과 진실함이 원체 폭이 크니까 관객이 보기에 조금씩 삐끗하는 게 보이는데도 아, 저거 웃으면 안 되지 그러면서 꼼짝 못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이만큼 옆구리에 웃음이 와 있거든요. 봉 그 대목에서 정재영씨 얼굴이 제일 먼저 나오지요. 옆에 앉아 있던 관객 얼굴을 살펴봤는데 반응이 재미있더라고요. 세명이 나란히 앉았는데 처음 약간 둔한 관객이 몰입해야 되는 줄 알고 “어후, 닭살이야-” 그러더라고요. 그러자 옆에 있는 애가 “일부러 그러는 거야, 일부러” 하고 가르쳐주면서 웃기 시작해요. 그러다 십몇초 지나고 나니까 둔했던 친구도 따라오면서 뒤집어지기 시작하더라고. 난 너무 통쾌했어요. 한국영화 중에 몰입을 강요하는 게 많잖아요. 관객은 안 울고 있는데 배우들이 먼저 울어버리는. 관객은 쟤 왜 화내고 있지? 그러는데 배우는 나 지금 화내잖아! 그러는 거. 근데 <킬러들의 수다>에서 원빈이 절창하는 대목은 한국영화에서 흔히 강요하는 그런 몰입을 조롱하는 거라 되게 통쾌하더라고요. 신현준, `장진의 배우'로 거듭나 봉 전 신현준씨 연기가 아주 좋았어요. 프롤로그에서 오영란 차에 탔을 때도 부탁하니까 “오우, 아, 예…” 이러잖아요. 그 장면 보니까 <은행나무 침대>에서 “너희가 고독을 알아!” 하고 소리치던 장면 생각도 나면서 되게 좋더라고요. 진작에 저 양반이 저런 걸 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하는구나. 다행스럽고 좋고 매력적이더라고요. 본인도 하고 싶어했어요? 장 사실 이 영화 하면서 개인적인 오기 같은 게 있었다면 신현준씨 연기폭이 얼마나 넓은지 보여주는 것이었요. 보면 다 신현준은 저런 배우, 저런 역만 해야 돼 하는데 그게 본인이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연출자들이 다른 걸 못 시켜. 자기들이 못해놓고 배우 탓을 하는 게 싫었어요. “자, 니들은 신현준 데리고 맨날 똑같은 거만 하라고 하지만 난 다른 걸 보여주겠다” 하는 욕심이 있었어요. 킬러들, 우리 모두의 대변자 봉 그래도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장 본인이 코미디에 대한 강박관념이 좀 있었어요. 우리가 아는 코미디를 하더라고요. 코미디인데 이렇게 해야 되는 게 아니냐, 그래서 안 그래도 된다, 작게 할수록 더 웃긴다고 설명했죠. 현장에서 딱 두 마디면 됐어요. 좀만 더요, 혹은 좀 죽여요. 리허설에서 끝났기 때문에 감정이 이래야 된다는 얘기는 필요없고 현장에서 양조절만 하면 됐어요. 끝나갈 무렵엔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한숨 한번 쉬고 오면 무슨 소린지 알았어요. 봉 킬러로 나온 배우 네명, 밸런스 맞추느라 힘들지 않았나요. 장 신현준씨한테 고마워요. 다른 친구들을 정말 잘 챙겨줬어요. 한달간 리허설한 건 물론이고 다른 세 친구들하고 계속 어울렸어요. 매일 같이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고. 봉 벌써 3번째 장편영화를 만든 중견감독인데요. (웃음) 인터넷영화 <극단적 하루>도 있고. <극단적 하루>가 어떻게 보면 출발점 같은 거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눈에 띄게 확 다른 게 신현준이 의뢰인들과 커다랗게 사진 찍어 벽에 걸어둔 것 있잖아요. 묘한 감동이 오기도 하더라고요. 거기 있는 사진들의 서민적인 얼굴 같은 것들이. 그런데 반대로 <극단적 하루>에서는 죽인 사람들 얼굴이 있더라고요. 그게 무슨 차이일까요. 장 화두가 바뀌었어요. <극단적 하루>는 오해와 포장이 과대해진 사회거든요. 그러니까 얘는 아무것도 못하는 앤데 오해와 포장으로 엄청난 애가 돼서 엄청난 일을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결국엔 상실된 진실이 거짓이었는데 진실이 되어버리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였고. 이번에는 의뢰인들에 대한 얘기였거든요. 그런 에피소드들이 원래 시나리오에서 많이 날아갔어요. 살았으면 그런 화두가 잘 살았을 텐데. 봉 킬러들 이야기를 생각한 계기는요? 누군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나쁜 감정이 있고, 그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사람이 오히려 피해자요, 억눌린 사람이다, 이런 것에서 출발한 건가요? 장 커다란 의미에서 출발하진 않았고, 꼭 굳이 킬러가 아니라도 좋아, 조폭이라도 좋고. 용역센터에 있는 사람들도 생각해봤고. 누군가가 뭔가 바라요. 누군가의 바람을 들어주는 사람의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우린 살면서 대개 좋은 걸 바라잖아요. 너 소원이 뭐냐 그러면 뭐가 되고 싶어요, 뭐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해피한 것말고 너 바라는 게 뭐냐 그러면 난 저 새끼가 망했으면 좋겠어, 이런 바람 있잖아요. 왜 100만명이 들어, 그런 영화에. (웃음) 이런 심정들 만연하고 우리가 본의 아니게 순간순간 저 사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드는 게 너무너무 싫어요. 내 작가노트에 농담삼아 쓴 문구가 있어요. ‘옛날에는 가장 심한 욕이 어휴 저 나쁜 놈, 가다가 콱 넘어져라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던데, 요즘은 초등학생 애들이 서로 싸울 때 저 개XX 확 죽여뿔라 이런다. 요즘은 화가 나서 싸울 때 누군가를 꼭 죽여야 되며, 죽이기 전에 항상 동물을 만들어야 되며…’, 그런 것들이 만연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얘기죠. 첨엔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자로 시작했어요. 그랬는데 <극단적 하루>를 하면서 아, 이건 요 소재를 확장된 드라마로 가보자.▶ <킬러들의 수다> 장진 감독,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과 대담, 혹은 수다 150분 (1) ▶ <킬러들의 수다> 장진 감독,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과 대담, 혹은 수다 150분 (2) ▶ “새로운 것에 끌린다” - 장진 생각 ▶ “저질? 관객은 다 알고 웃는다” - 봉준호 생각

“웃다 죽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든다는 것, "얌전해지기" 봉 감독님은 <간첩 리철진>도 그렇지만, 항상 삭막하고 장르적인 직업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상태로 망가지고 흐트러지는 걸 즐기시는 것 같아요. 제목도 그래요. 킬러들의 ‘액션’이나 킬러들의 ‘배신’이 아니라 킬러들의 ‘수다’잖아요. 아줌마들의 수다가 아니라. 제목에서부터 충돌이 되는 것 같은데. 일부러 그런 쪽으로 더 밀어붙인 것 아니에요? 장 어떻게 보면 제목이 좀 연극적일 수도 있어요. 처음에 이 제목을 지었다가 사람들이 연극적이지 않냐 그래서 <킬러들의 여름>으로 바꿨어요. 근데 갑자기 강우석 감독이 니네 미친 것 아니냐. 킬러들의 수다 얼마나 좋냐고. 다른 사람이 만들면 안 어울리는데 장진이 만들면 <킬러들의 수다>로 가야 된다고. 뭐뭐답지 않은 건 늘 재미있어요. ‘답지 않다’라는 건, 예를 들어 쟤는 회사 경리 같지가 않아, 는 별로 재미가 없잖아요. 근데 좀 특정한 직업 대단히 프로페셔널함을 요구하는 직업들 있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격선수야. 근데 그 사람은 수전증에다가 심한 난시야. 그런 식으로 ‘다워야’ 하는데 ‘답지 않은’ 건 정말 재미있는 거예요. 여기에서 내가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바보미학이 나오는데, 네명의 킬러들, 바보같잖아요. 그걸 좀 과장하는 “I never miss you” 해석하는 장면도 그렇고. 그런데 바보를 보면서 우리는 즐거워한단 말이에요. 스크린 속에서 바보짓하는, 뭔가 ‘답지 않은’ 놈들 보면서. 그런 식으로 쟤네들 보면서 즐거워지고 저렇게 바보같이 산다면 세상을 즐겁게 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들의 세상을 동경하게 되고. 그게 바보미학이거든요. 봉 신하균이 거짓말하면 화면이 분할돼서 장면이 바뀌는 것 있잖아요. 그게 경찰 오토바이였어요, 하면 화면이 싹 바뀌는 것. 처음에 발상은 어떠셨어요. 장 그냥 이렇게(테이블에 검지와 중지를 나란히 짚으며) 걸어가기 싫은 거예요. 그냥 이렇게도(옆으로 비틀린 게걸음) 막 가보고 싶고. 사람들이 자꾸 장진식, 장진식 그래도 스트레스는 별로 안 받아요. 그냥 개인 기질이지. 그러다보니까 나이를 먹으니까 얌전해져요. 사실 더 엄청난 에피소드들도 많았어요. <킬러들의 수다2>를 만든다면 해보고 싶은 비사실적인 시추에이션들. 예를 들어 가게 하나를 폭파시켜야 돼. 근데 반드시 12시에 해야 하는 거야. 킬러는 맥주 한병을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어요. 12시가 딱 됐어. 가게엔 뇌선이 다 연결되어 있고. 신용카드를 턱 내미는 거야. 카드를 탁 긋는 순간 뇌관에 연결이 되는 거야. 30초에 뒤에 터지게 되어 있어요. 띠띠띠 띠 하면서. 그런데 종업원이 “맥주 한병 드시고 카드를 주시면 어떡해요! 수수료 떼고 하면 우린 얼마 남지도 않아요” 그러면 “안주도 시켰는데요”, “아니 그건 우리가 서비스로…”, “내가 언제 안주 달라고 했어요?” 이러다 잠깐 커트돼서 나오면 맥주를 양손에 이만큼 들고 나오는 거야. 산 거지. 뭐 이런 식으로. 그런데 그런 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그래서 <킬러들의 수다>에 넣기엔 오버다 생각했죠. “잡탕이 다 끓었다” 봉 장 감독은 아이디어가 너무 넘쳐서 주체하기 힘들 것 같아요. 장 생각을 하다가 안 떠오르면 작업을 안 해요. 그건 고통스러워. 봉 시나리오를 그렇게 빨리, 많이 쓰신다면서요? 잠도 하루에 4시간밖에 안 주무시고. 장 잠은 많이 안 자는데. 5시간 정도? 1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는 게 제일 좋아요. 새벽 1시. 거의 노인네…. 지금 약수터 알아보는 중이에요. 약수터나 배드민턴…. (웃음)봉주체 못할 상상력을 어떻게 정리하세요. 장 흘러갈 것, 잊혀질 것은 나중에 다 잊혀져요. 메모를 절대 안 해요. 봉 예전에 <기막힌 사내들>을 보고 박평식 선생님이 “잡탕이 덜 끓었다”라고 평을 했는데 와닿았다는 기사를 봤는데, 앞으로는 자제 안 하시고 더 과격한 유희를 펼치셔도 잡탕이 덜 끓었다는 말은 안 들을 것 같아요. 관객도 감독님의 스타일에 점점 훈련이 되어가고. 장 봉 감독님은 어떠세요. 사실 <플란다스의 개>를 어젯밤에 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너무 잘 만들었어요. 한국영화 코미디에서 저렇게 디테일이 좋은 코미디는 처음 봤다고. 지금 <날 보러와요> 준비하신단 얘기 들었는데, <플란다스의 개> 같은 힘으로 더 밀어붙여도…. 봉 소재나 장르가 워낙 다르긴 하지만, <날 보러와요>도 첫 장면에서 형사들이 경운기 타고 등장해요. 그리고는 발자국을 보고 “야, 현장 보존해야 돼” 그러고 있는데 경운기가 휙 밟고 지나가고. 당시 우리나라 경찰들 실제로 그랬어요. 전혀 현장 보존 안 되는 시골형사들 이야기거든요. 물론 무섭죠. 실제 범인 있는 거니까. 떨어져서 보면 무섭긴 한데, 표면적으로 ‘전원일기’식 스릴러이기 때문에. (웃음) 그런 면에선 <킬러들의 수다>와 비슷한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떠세요, 옛날에는 흥분되고 재미있던 것들이 재미가 없어지고 그런 건가요. 장 그냥…. 봉 늙는다, 이런 느낌? (웃음) 장 정적인 재미. 바람이 이렇게 살랑살랑 부는 숲이 하나 있어요. 되게 정적이잖아요. 정적인 숲 속에서 누가 가만히 왔다가 가만히 나가도 되게 재밌을 것 같아. 왠지. 그냥 그런 정적인. 별 장난 안 치고 요란하지 않아도. 봉 그건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킬러들의 수다>에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서 관객들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그런 게 좀 있지 않나요? 신현준이 썰렁한 소리할 때 셋이 멀뚱멀뚱 쳐다볼 때라든가 그런 부분이 사실 더 좋거든요. 누구는 그걸 ‘틈새’라고 표현하지만 그게 정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예술의전당 야외에서 신현준이 오영란에 대해 설명하면 정재영이 가만히 있다가 “그럼 오영란이랑 얘기를 했단 말이야?” 하는 그런 부분. 그런데 그 말도 금방 안 하고 한참 가만히 서 있다가 하잖아요. 그 호흡의 재미. 그걸 더 극대화시켜서 가도 될 것 같아요. 장 이번에 뼈저리게 느낀 게 나는 왜 생략과 압축을 이렇게 못할까 하는 점이었어요. 봉 하지만 따지고보면 속도감도 있는 것 같은데…. 장 아니, 그렇게 가려면 <스내치>의 가이 리치처럼 가야지. 단 세컷으로 뉴욕에서 런던까지 가버리는. 시속 160km로 무한질주하는. <킬러들의 수다>에서 문제가 된 부분들은 더 세게 웃긴다 이런 걸 떠나서 생략과 압축의 문제죠. 그래서 이번 작품이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그런 것들을 내가 발견해냈다는 거예요. 봉 상처받는 게 겁나세요, 가끔은? 장 딴에는 맷집이 세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극쪽에서 더 심했어요. 연극은 좀 고루한 집단이잖아요. 그래서 술 먹고 씹으면 집요하다고요, 정말 연극은. 왜 흥행은 돼가지고 (웃음) 왜 24살에 스타가 되가지고. (웃음) 연극평론가들은 ‘가볍다, 치기다’ 이러면서 막 씹어. 어려서 씹혔을 땐 상처받았죠. 그때는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나이가 몇살인데. 이 나이에 인생의 깊이를 알겠어. 이 정도밖에 안 되는데, 나이 먹으면 또 어떻게 되겠지 이러면서 넘어가는 거야. 그때는 속된 말로 자만하고 오만해지는 것밖에 없어요. 심리적으로. 봉 속도의 차이인 것 같아요. 상상력의 차이를 리뷰 등이 따라잡기 힘든 것 같아요. 지금 이미 머릿속으로는 엄청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속도의 갭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장 <플란다스의 개> 보고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동선을 너무 잘 그었어요. 동선을 복잡다단하게 그리면서도 되게. 난 재미있었던 게 병실에서 할머니가 침을 뱉는데 배두나가 거리를 계산해서 휴지통 들고 거리를 재는 장면. 그건 정말 디테일이거든요. 왜냐면 계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배우에게 할 거리를 얼마나 풍족하게 만들어줘. 그러면 관객도 볼거리가 너무 많고. 그런 것이 너무 좋아. 진지한 삶, 예기치 않은 웃음 장 20년 전 내가 초등학생 때 본 코미디인데, 코미디언 중에 고영수씨 있잖아요. 그 양반이 종이를 앞에 이만큼 쌓아놓고 “도대체 이게 몇장인지 언제 다 세라는 거야, 한장, 두장, 세장, 네장, 다섯장…” 하더니 저울을 갖다 놓고 종이 한장의 무게를 딱 재. 그리고 전체 무게를 재서 전체를 한장 무게로 나누는 거야. “아, 몇장이구나!” 그러더니 조금 있다 “그래도 맞나 봐야지” 하면서 다시 “한장, 두장, 세장…” 일일이 세요. 그 호흡을 20년 전에 했다니까. 그거 아직도 생각나요. 근데 그 호흡은, 지금 내가 펼쳐도 대중을 잡아요. 스크린에서 내가 경험한 웃음의 기억이 내가 살면서 문득 그것을 떠올렸을 때 웃어요. 그런 코미디가. 그런데 있긴 있나봐요. 안 잊혀지고 계속해서 남는 그런. 봉 저도 제가 자꾸 분열돼서 생각이 드는데. 누구 코미디영화 이런 것보다, 예를 들어 <박하사탕> 같은 영화도 전혀 코미디가 아니지만 거기서 문소리가 면회갔을 때 거기 위병소 군바리가 “국산품을 애용하자, 통신보안” 하면 사람들이 막 웃잖아요. 그 영화는 사실적인 것이고 전혀 코미디가 아닌데. 예전엔 실제로 그렇게 했잖아요. 전 홍상수 감독 영화가 그렇게 웃기거든요. 비참하고 처절하게 웃기기도 하지만 훨씬 더 웃긴 것 같아요. 코미디로 하는 그런 것보다. 코믹한 순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이고. 장르로서의 코미디는 오히려 너무 웃기려고 애를 쓰다보니까 부담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저는 <플란다스의 개> 할 때 코미디로 포장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더라고요. 사실 폭소 코미디도 아니고 되게 썰렁할 텐데. 장 코미디는 예정되지 않았을 때 가장 웃긴 것 같아요. 서영춘씨 장례 때 얘기인데 그분 영결식 날이었어요. 다들 엄숙한 분위기에서 조사를 들으며 엄숙하게 앉아 있었어. 고 서영춘 선생님께서는 우리 코미디계의 대부로서 1920몇년 어디에서 출생하셨고, 몇년 동안 우리를 이끄셨습니다. 선생님의 대표작으로는 <똘똘이의 대모험> <달려라팔도강산> 뭐뭐뭐뭐 하다가 <요건 몰랐지> 그러는 거야. 사람들은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 막 찌르고. 예정되어 있지 않은 순간을 엄습하는 코미디는 웃기더라고. 또 하나, 포항공대 어느 박사님이, 우리나라 공학계의 선구자였던 분이 돌아가셨을 때 얘기가 있어요. 그분이 교직원 체육대회 날 발야구를 하는데, 파울 볼이 딱 오는데 파울 볼 잡으러 가시다가 철조망에 머리를 딱 부딪혀가지고… 돌아가신 거야. 우리나라 공학계의 선구자가. 그래서 그분의 제자들이 비통함을 달래며 이야기를 나누는 거야. 한참 술을 마시고 얘기를 하는데 누군가가 비통한 목소리로 그러는 거야. “그분께서,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이 마이 볼!”이라고. 너무 진지하게 그러니까 그 옆에서 다른 제자가 “선생님이 규칙만 잘 아셨어도…. 네 번째 파울 볼을 안 잡아도 아웃인데, 선생님이, 그만…” (웃음) 아아, 우리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죠? (웃음) 아, 코미디로 뭘 할 수 있을까…. 웃는 거지, 뭐. 어느 네티즌이 보냈더라고. 누가 자꾸 <기막힌 사내들>을 추천하더래. 어느날 자기 여자친구랑 싸워서 되게 기분이 안 좋았는데 그날 <기막힌 사내들>을 빌려갖고 밤에 혼자 들어가서 봤는데 보면서 너무 웃었다는 거야.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하게 됐대. 그건 되게 소박하잖아요. 그런 거 아닐까. 웃기는 얘기할 때 사람들 보면 꼭 선교사 같아요. 코미디영화 강추할 때 모습 보면 수요일마다 벨 누르는 여호와의 증인 선교사 같은 적극성을 보여요. 나랑 같이 천당 가자, 그러는. 봉 <투캅스> 카피가 생각나네. 웃다 죽어도 좋다. 장 2편은, 그 명성 그대로 저벅저벅.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위정훈 oscarl@hani.co.kr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킬러들의 수다> 장진 감독,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과 대담, 혹은 수다 150분 (1) ▶ <킬러들의 수다> 장진 감독,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과 대담, 혹은 수다 150분 (2) ▶ “새로운 것에 끌린다” - 장진 생각 ▶ “저질? 관객은 다 알고 웃는다” - 봉준호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