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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9404)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

‘크기’로 압도할 것인가. ‘입지’로 방어할 것인가. ‘마케팅’으로 승부할 것인가.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지난해부터 전국적인 영토확장에 나서면서, 지방 극장가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메가박스의 10월27일 개관으로 CGV, 롯데 등 3대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부산에서 벌이는 최초 결전은 올해 하반기 전국 극장가의 가장 큰 이슈다. 이들 3개 업체가 들어서는 곳은 부산의 새로운 영화중심으로 떠오른 서면 일대로, 관객을 유인하기 위한 멀티플렉스의 싸움은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부산이 ‘풍부한 어장’이라는 점도 이들 업체들의 경쟁을 부추긴다. 부산은 1999년 27개이던 스크린 수가 지난해에는 45개로 늘었고, 관객 수 역시 22%의 증가세를 보였다. 연간 1인당 평균 관람횟수도 1년 사이에 다른 지역과 비슷하던 1.6회에서 1.9회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는데, 상승곡선은 올해도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부산 중심 극장가, 서면에서 남포동으로 이동 사실 부산 극장가의 판도는 지난해 5월, CGV가 서면에 등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존 남포동에 위치한 대영시네마와 부산극장에 의해 좌우돼왔다. 그러던 것이 올해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서면은 남포동에 스크린 수, 좌석 수 모두 뒤진 상태인데도 상반기 권역별 점유율에서 오히려 3∼7%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 6월16일 롯데시네마 서면점의 11개 스크린이 가세하면서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기 시작했다. 올해 8월, 한 배급사가 집계한 박스오피스 자료를 보면 점유율은 남포동 극장가와 10% 이상 차이가 난다.여기에 7개 스크린, 1500석을 갖춘 메가박스가 밀리오레 서면점에 들어서면 하반기 무게중심은 급격히 서면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5개관을 갖춘 대영시네마의 경우, 최근의 주말 박스오피스가 선두를 달리고 있는 CGV와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성수기 주말 성적을 기준으로 놓을 때만 그렇다. 서면의 멀티플렉스가 일찌감치 매진사태를 빚어 관객들이 남포동으로 넘어오는 역류현상의 결과일 뿐이다. 비수기나 평일 관객동원 면에서는 멀티플렉스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나마 대영시네마 혼자 버티고 있을 뿐, 한때 잘 나가던 부산극장은 지금 자금난을 겪고 있는데다 조만간 자갈치 3개관을 폐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영시네마의 김도현 운영본부장은 “광복동 등의 상권이 가라앉은 게 가장 큰 이유다.게다가 서면에 스크린 수까지 뒤지는 데다 주차 등의 문제까지 걸려 있어 평일에는 멀티플렉스를 따라잡기 힘들다.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수요가 20% 정도 창출되긴 했지만, 앞으로 남포동 극장가가 변하지 않으면 기존 관객마저 뺏길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 극장이 개관한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지난 9월3일부터 1200석 규모의 관을 나누어 10개관 이상의 스크린을 갖추고, 전면적인 시설공사에 들어간 것도 멀티플렉스의 파상공세를 막아내기 위한 방편 중 하나다. 인천, 멀티플렉스 바람에 토착극장 낭패 부산에 이어 멀티플렉스 업체들이 가장 군침을 흘리는 지역은 대구다. 인구 수가 많고, 아직까지 이 지역을 선점한 이가 없다는 점을 멀티플렉스 업체들은 주목하고 있다. 현재 가장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은 메가박스. 대구역 부근에 2002년 3월 10개관, 2500석 규모의 멀티플렉스를 선보인다. 외곽지역이긴 하지만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데다 현재 개발중인 스펙트럼 시티라는 쇼핑몰 내에 위치하고 있어 멀티플렉스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CGV와 롯데시네마 역시 구체적인 사이트를 물색하면서, 현재 70%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도심 극장 중앙시네마와 한일극장의 아성을 메가박스가 어떻게 깨뜨릴지 지켜보는 상황. 변수는 기존 단관 극장들이 대규모 멀티플렉스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년 만경관이 15개 스크린을 갖추고 2500석이 넘는 좌석을 배치, 대구MMC라는 이름으로 재개관을 준비하고 있으며, 아카데미극장 역시 7개관으로 거듭난다. 아카데미극장의 한 관계자는 “메가박스를 비롯해 앞으로 멀티플렉스가 속속 들어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말로 증관 배경을 설명했다. 멀티플렉스의 파상공세를 이미 맛본 부산을 곁에서 지켜본 대구 극장가에는 폭풍 전야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지난해까지 41개 스크린으로 늘어난 인천은 2000년 전년 대비 71%의 관객 증가율을 보이는 이변을 연출하며 또 한번 멀티플렉스 파워를 입증했다. 14개관, 3589석을 갖춘 CGV가 입항했고, 부평쪽에 키넥스 5개관이 들어선 결과다. 대신 주안과 동인천지역의 기존 극장들은 CGV의 독식으로 공멸의 상태에 처했다. 미림극장의 한 관계자는 “상권이 쇠퇴한데다 기존의 송현동, 신흥동 등의 주택지역이 재개발 대상지로 결정되면서, 남아 있던 관객마저 신시가지쪽에 위치한 CGV쪽으로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올해 흥행작이 많았던 시네마서비스 라인의 인형극장과 애관극장만이 <신라의 달밤> <엽기적인 그녀> 등을 걸면서 상대적인 호황을 맛봤을 뿐, 다른 극장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광주는 기존 극장이 우세 대전은 부산과 반대로 롯데시네마가 선점하고, 뒤이어 CGV가 가세한 경우다. 멀티플렉스의 입점 시기 앞뒤로 기존의 동백시네마가 갤러리아백화점 내에 5개관을 유치하고, 선사시네마가 둔산시네마를 통합운영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 멀티플렉스의 공세를 당해내지는 못한 듯 보인다. 대전지역 극장조사를 맡았던 한종성씨는 “대부분의 극장이 2개관 이하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 지역 관객이 멀티플렉스에 몰리는 이유가 자명하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온 제일극장, 동보극장, 수정아트홀은 급격한 관객감소를 경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시네마의 경우, 주말 심야상영에도 평균 좌석점유율 70%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CGV의 등장은 10% 수준이긴 하지만 롯데쪽에까지 타격을 입힐 정도로 막강하다. 여기에 시내 중심부인 태평로에 10개관 멀티플렉스가 들어선다는 말도 돌고 있어, 기존 극장가는 변신을 꾀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광주는 아직도 전통 극장가의 입김이 거센 편이다. 롯데시네마 6개관이 들어서긴 했지만, 크기나 입지면에서 월등하지 않아 6개관으로 늘린 무등극장이나 올해 시네마서비스와 손잡고 4개관으로 변신한 제일극장 등 시내 중심부의 기존 극장들이 장악한 시장을 넘보지는 못하고 있다. 경쟁사로부터 견제를 받아 흥행작을 수급하지 못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어 초반 관객몰이에 실패한 것도 이유다. 롯데시네마의 한 관계자는 “점차 관객이 늘고 있다”면서도 “기존 극장들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스크린이 들어선 롯데백화점이 어정쩡한 시내 주변에 위치한 것도 약점이다. 새로운 관객을 공급해줄만한 주택지가 배후에 없다. 코리아픽쳐스의 김길남 배급팀장은 “소비 중심 도시이긴 하지만, 유동인구가 한정된 권역에 몰리는 지역이라 다른 곳보다 입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분석한다. 인구 대비 스크린 수가 서울을 뺀 대도시에서 가장 많다는 점 역시 여타 멀티플렉스를 머뭇거리게 만든다. 현재로선 시내에 위치한 쇼핑몰 밀리오레에 메가박스 5개관이 들어가는 것이 전부다. 서울에 비해 전국 극장가의 가열 속도는 느리고, 또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2년이면 지방 역시 서울 못지않은 ‘전장’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한 극장 관계자는 “극장도 다른 업종과 똑같다. 아무래도 서울이 지방보다 낫지 않겠는가”며 현재 멀티플렉스 업체들의 관심이 지방보다는 서울의 부심쪽에 쏠려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울이 1∼2년 안에 스크린 포화상태에 이르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전국의 극장가에 도래할 전면전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금, 극장가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글 이영진 anti@hani.co.kr▶ 멀티플렉스 춘추전국시대 누가 살아 남을 것인가? ▶ “우리에겐 그림의 떡이야” ▶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 ▶ CGV서면12 서용석 점장 인터뷰

영어가 아니어도 좋아!

비영어권 영화들이 2001년 들어 미국시장에서 흥행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10월17일치 <스크린 데일리>가 보도했다. LA와 뉴욕 중심으로 제한된 수의 스크린에서만 개봉되는 것이 보통인 외국어영화의 ‘고지’는 100만달러. <스크린 데일리>는 연말을 두달 남겨둔 10월 현재 2001년 개봉해 북미지역 입장수입이 100만달러를 넘어선 외국어영화가 예년보다 많은 11편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수위를 차지한 영화는 미라맥스가 미국 배급, 크리스탈필름이 캐나다 배급을 맡았던 프랑스영화 <클로셋>으로 총 630만달러 수입을 기록했다. 2위는 라이온스 게이트의 멕시코영화 <아모레스 페로스>(540만달러), 3위는 미라맥스가 배급한 프랑스영화 <당신의 영원한 친구 해리>(380만달러)가 차지했으며, 파트리스 르콩트의 <길로틴 트래지디>가 310만달러로 그뒤를 이었다. <와호장룡>이 바람을 일으킨 지난해까지 <시네마천국> <일 포스티노> <인생은 아름다워>로 외국어영화 가운데 미국시장에서 가장 강세를 보였던 이탈리아영화의 전통을 이어 2001년 가장 높은 성적을 올린 이탈리아영화는 <빵과 튤립>. 281만달러로 5위를 기록했다. 아시아영화 중에는 USA필름이 배급한 왕가위의 <화양연화>가 274만달러를 벌어 6위에, <와호장룡>의 개가를 올린 소니 픽처스 클래식의 영화, 장이모의 <집으로 가는 길>이 126만달러로 외국어영화 흥행 9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2001년 미국 내 비영어권 영화 흥행 10걸의 명단은 남은 두달간 고쳐 쓰여질 전망. 최대의 기대주는 프랑스 국민 다섯명 중 한명이 관람하는 초현실적인 성공을 거두고 현재 영국 박스오피스에서 <시라노>가 보유했던 기록을 깨고 역대 프랑스영화 중 최고 속도로 순항중인 <아멜리에>. 11월2일 전미 개봉을 앞둔 <아멜리에>만한 강풍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자크 리베트의 영화 <알게 되리라>가 9610달러의 매우 높은 스크린당 수입을 기록하며 10월 둘째 주말 스크린 수를 3개에서 7개로 늘렸고 메넴샤사가 배급해 장기상영에 들어간 <데뷔>도 같은 주말 6개 스크린에서 6만4670달러의 탄탄한 수입을 올리며 지구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그런가 하면 1993년에 만들어진 원화평의 <철마류>는 북미 배급권을 소유한 미라맥스를 통해 지난 10월12일 뒤늦게 개봉되어 박스오피스 6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주말 동안 1225개 스크린에서 601만4653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스크린당 입장수입으로는 박스오피스 1위 <트레이닝 데이>에 버금가는 4910달러를 기록한 <철마류>의 개봉 첫주 성공은, 몇해 전 홍콩영화 마니아로서 <철마류>와 원화평을 미라맥스에 천거했다가 심드렁한 반응만 얻었던 쿠엔틴 타란티노를 득의양양하게 만들 것이라고 <로이터>는 전망하기도 했다. 제아무리 세계화시대라도 미국 박스오피스가 알아듣는 언어는 영어가 유일하다는 것이 할리우드의 격언. 지금까지 미국 관객의 주류를 움직인 외국어영화는 <특전 U보트> <니키타> <롤라 런>등 따뜻한 휴머니즘영화나 액션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자막이 있는 영화로서 지난해 주거지역 멀티플렉스까지 진출한 <와호장룡>의 위업에 이어, 올 들어 외국어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파이팅은 비영어 영화를 수용하는 미국 관객의 취향이 다양해지는 게 아니냐는 희망적 관측을 낳고 있다. 김혜리

아웃사이더의 계관시인

● 미국에서 발행되는 영화 비평지 <시네아스트>의 조지 라파엘과 영국의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의 크리스 다크는 클레르 드니의 근작 <아름다운 직업>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공교롭게도 동일한 문구로 시작한다. 이 둘은 공히 “프랑스영화계가 가장 잘 감춰온 비밀스런 존재”라는 말로 클레르 드니를 정의한다. 여기서 두 평자들이 드니라는 영화감독이 지금껏 지나온 행보에 대해서 경탄과 안타까움이 반반씩 뒤섞인 감정을 갖고 있음을 읽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드니가 이룩해놓은 견고한 영화 세계를 되짚어보면 분명히 경탄할 만하지만, 미국에서나 영국에서나 일반 극장에서 ‘공식적으로’ 소개된 그녀의 영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또한 안타까움을 주기에도 충분한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해 드니는 지금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아 마땅한 그런 시네아스트인 것이다. 한번 더 외지를 인용해보자. 미국의 영화 비평지 <필름 코멘트>는 드니를 가리켜 “아웃사이더들과 유랑자들을 그리는 식민지 시대 이후(post-colonial) 프랑스영화의 계관 시인”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드니의 영화 세계를 간명하게 아주 잘 요약한다고 볼 수 있다. 다소 도식적으로 풀어보자면 드니의 영화들은 사회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있거나 도태되었거나 버림받은 주변인들, 많은 경우 과거의 식민주의 경험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크린 위에 담으면서 그 위에 서정적인 시정(詩情)의 바람을 불어넣은 것들이다. 드니는 데뷔작인 <초콜렛>부터 그런 세계를 구축하면서 그것을 정교하게 다듬고 세련되게 발전시켜 왔다. “모든 인간은 인종, 국가, 신조 혹은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아니면 적어도 어떤 것은 할 수 있다.” 드니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죽음은 두렵지 않다>는 체스터 하임즈가 <부조리한 나의 삶>에서 쓴 구절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이민자인 주인공 다(Dah)가 도입부에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한번 더 들려주기도 하는 그 구절은 다의 머릿속 깊은 곳에 박아 넣은 인생 교훈이기도 하지만 감독인 드니 자신이 굳게 견지하고 있는 세계관의 중요한 한 단편인 것처럼도 보인다. 마치 그것을 증명해보기라도 하듯 드니는 자신의 영화 속 세계를 어떤 특권적 위치, 혹은 정상적 혹은 중심적(이라고 믿어지는) 위치에서 벗어난 사람들, 이른바 ‘주변인들’이 무언가를 하는 세계로 만들어낸다. 그녀의 세계는 인종적 주변인들(특히 흑인들)을 정말이지 자주 접할 수 있는 세계이다. <초콜렛> <죽음은 두렵지 않다> <잠이 오질 않아>처럼 흑인들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 영화가 아닌 경우에도, 예컨대 <네네트와 보니> 같은 영화에서도, 드니는 스토리의 전개와 전혀 상관없이 인종적 주변인들에 대한 ‘불필요한’ 크로키를 군데군데 끼워 넣는다. 그렇다고 해서 드니가 그들 주변인들에 대해 맹목적인 호의만을 갖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 식민주의의 존재 이유를 물을 때 흑인- 주변인은 그 어떤 백인 귀족보다도 고결함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지만(<초콜렛>) 현대 도시에서의 악의 진부함을 그릴 때 흑인 게이인 이중적 주변인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게도’ 악덕에 물든 연쇄 살인자로 그려진다(<잠이 오질 않아>). 드니의 영화에서 주변인들이란 어느 한쪽으로 편향된 거창한 정치학을 설파하려는 도구라기보다는 그저 무언가를 해나가는, 살아가는 인물들, 그러면서 자기가 속할 곳을 스스로 질문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프랑스'라는 이름을 가진 아프리카의 말 드니는 ‘국외자적인 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매료된 사람임에는 분명한데, 이건 많은 부분 아웃사이더로서 그녀 자신의 실제 경험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드니는 자신을 가리켜 ‘아프리카의 딸’(une fille d’Afrique)이라고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1948년 생인 그녀는 태어나기는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삶의 첫 번째 시기를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그녀가 태어난 지 불과 2개월 되었을 때 가족이 모두 아프리카로 이주를 하게 되었고 그녀는 열네살 무렵까지 이제 제국주의의 악몽에서 막 깨어나려 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았던 것이다. 유년기를 검은 대륙에서 보내고 프랑스로 돌아온 드니는 마치 자신의 영화 <아름다운 직업>의 외인부대에서 쫓겨난 갈루가 자기는 민간 생활에 부적합하다고 여길 때와 똑같은 그런 적응불능을 느꼈다고 한다. 바로 그때 그녀가 발견한 것이 아프리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영화라는 새로운 영토였다. “영화는 내가 생존해갈 수 있는 영토처럼 보였다.” 당시 장 뤽 고다르, 로베르 브레송,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라는 굉장한 신대륙을 ‘발견’했던 드니는 결국 영화학교(HIDEC)에 진학해 영화를 공부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에두아르도 드 그레고리오, 짐 자무시, 두상 마카베예프, 자크 리베트, 빔 벤더스와 같은 출중한 감독들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며 현장경험을 충실히 쌓았다. 적지 않은 수의 영화감독들이 그러하듯 드니 역시 실제 자신의 유년기 기억 속에서 캐낸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겨내면서 본격적으로 영화인생을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 인생의 첫 시기가 시작된 지점을 영화인생의 출발점으로 삼은 셈이다. 드니의 첫 장편영화인 <초콜렛>은 그녀가 세네갈에서 지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만든 반(半)자전적인 작품이다. 그런 태도를 직접적으로 반영이라도 하듯 영화는 드니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주 상징적이게도) ‘프랑스’라는 이름을 가진 한 젊은 여자가 아프리카를 찾아와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살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렇게 과거로 들어가면 열살도 채 안 되는 보이는 어린 프랑스가 지역의 고급 관료인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 그리고 그 백인가족에게 헌신적이며 성실하고 기품있는 흑인 하인 프로테와 지냈던 고요한 삶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리 특별하달 수 없는 두개의 사건을 맞으면서 가족은 미묘한 ‘분열’의 과정을 겪게 된다. 아버지의 출장이 혹 어머니와 하인 프로테 사이에 있었을지도 모를 성적인 긴장을 알 듯 말 듯 ‘불완전하게’ 노출하고 비행기 사고로 인해 프랑스 가족의 집에 머물게 된 몇몇 백인들은 흑인이라는 저급한 인종에 대한 경멸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렇게 여성과 흑인이라는 식민주의의 두 종류의 주변인이 경험하는 심적인 고통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초콜렛>은 식민주의의 존재에 대해 대놓고 소리치며 항변하기보다는 ‘과연 식민주의가 왜 존재하는 것인가?’ 하고 지극히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한편으로 영화는 어린 프랑스의 불완전한 시점을 고수하면서 이런 이야기에 대해 매력적이게 자신없는 태도를 취하고 또 그럼으로써 유년 시절의 노스탤지어로의 함몰이라는 함정에 알게 모르게 발을 집어넣기도 한다. 이런 다소 불확실한 태도를 드니는 오히려 아프리카의 프랑스를, 즉 아프리카의 자신을 아무것도 모르는 ‘타자’로 낙인찍으면서 무마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가 끝날 무렵 프랑스를 태워준 흑인은 그녀의 손금을 좀 보자고 말한다. 그런데 어릴 적에 당한 화상으로 인해 프랑스의 손금은 지워지고 없는 상태다. 그걸 본 흑인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겐(즉 프랑스엔) 과거도 미래도 없군요.” <초콜렛>은 어떤 면에서는 아프리카(확장하자면 ‘국외적인 것’foreignness)에 대한 드니의 참을 수 없는 매혹이 중심에 있는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화한 여느 백인 아이와는 달리 어린 프랑스는 프로테가 건네주는, 버터 위에 개미를 가득 바른 식빵도 덥석 잘 받아먹고 맹수의 습격을 당해 비참하게 죽어 있는 가축들도 신기하다는 듯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뻔히 쳐다본다. 프랑스의 그런 태도를 고스란히 체화한 영화는 호감이 담긴 시선으로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또 그런 장면으로 끝난다. 낯선 세계에서 발견한 짜릿한 관능성에 주목 드니는 아프리카에 대한 이 아름다운 영화를 만든 이후에도 계속해서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을 다룬 영화, 그렇지만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그들을 프랑스의 차가운 도시로 데려간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 후속작들인, 불법 투계(鬪鷄) 사업에 관여하게 된 두 흑인의 이야기를 건조한 톤으로 그린 <죽음은 두렵지 않다>(이 영화의 제목은 두 흑인 가운데 하나가 애지중지하며 훈련을 시키고 또 함께 의식(儀式)을 벌이는 싸움닭의 이름에서 따왔다)와 노파들만 골라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이자 게이바의 댄서인 한 흑인을 비롯해 크게 세 가닥의 스토리를 꼬아 가는 누아르풍의 영화 <잠이 오질 않아>는 <초콜렛>과 함께 흔히 식민주의와 그 여파에 대한 3부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전작에서와 달리 나중의 두 작품에서 고향을 떠나 이국(異國)의 낯선 도시에 불시착한 흑인 주인공들은 검은 대륙의 공기로부터 기원하는 듯한 일종의 고결함을 상실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그저 타락한 시스템에의 순응이 몸에 밴 또다른 ‘현대인’들일 뿐이다. 그러자 드니는 (흑인이라는, 또는 남자라는) 그 ‘낯선 세계’에서 다른 유의 매력을 찾아낸다. 그건 아마 그 ‘낯선 세계’에서 발견되는 짜릿한 관능성이라고 불러도 될 듯싶다. <잠이 오질 않아>에서 드니는 흑인 주인공인 카미유의 단단한 육체에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벗고 있거나 게이바에서 춤추는 그로부터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관능성을 찾아내서 기록해낸다. 이후로 여성의 눈으로 본 ‘낯선 세계’의 관능성이란 드니가 영화를 통해 포착하는 중요한 것들 가운데 하나가 되기에 이른다. <초콜렛>에서부터 드니 영화를 관통하는 또다른 주요한 특징 하나는 그녀가 이야기를 주조해내는 방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 드니는 굳이 동기나 인과관계의 연결을 치밀하게 고려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그녀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대답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답을 하지 않고 해답을 미루거나 방기한 채 그저 무언가 응시한 바들을 이어가는 식이다(그렇기에 <잠이 오질 않아>같이 크게 세명의 인물이 관련되는 대단히 ‘현대적인’ 이야기 구조에서도 세 인물들에 대한 터치들을 잇고 또 잇는 식이지 그로부터 아주 정교하게 맞물린 퍼즐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그녀가 바라본 그 지속시간 동안만큼 인물들은 자신들을 드러내고 그들을 보는 관객은 관찰과 사고를 행하게 된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와 <잠이 오질 않아>처럼 현대 도시에서의 가혹한 삶을 그린 영화에서도 서정적 시정이 배어나오는 데에는 이런 ‘생략적인’(elliptical) 방법에도 적지 않은 공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 프랑스영화의 숨은 재능 클레어 드니 (1) ▶ 프랑스영화의 숨은 재능 클레어 드니 (2)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가을이다. 외로운 남정네의 가슴팍을 꼬집고 때리고 할퀴며, 시원한 가을 바람은 여지없이 스쳐간다. 거리에 창궐하는 쌍쌍들의 행렬에 오늘도 가슴 가득 허전함을 안고, 그렇게 26해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봄날이 갔다고 슬퍼하는 이들은 알까나? 봄날이 오지도 않은 이의 아픈 맘을…. 이럴 땐 본디 가슴 따스한 사랑 이야기로 시리고 아픈 속을 달래줘야 한다.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 이처럼 시린 가슴을 급속히 데워주는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일본 애니메이션 하면 떠오르는 인물, 미야자키 하야오. 그가 만든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1993년 TV영화로 만든 이 영화는 <마법의 천사 그리미 마미> <변덕쟁이 오렌지 로드> 등을 만들었던 모치즈키 도모미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일본의 모 잡지에서 연재되었던 인기 청춘물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코우치라는 지방도시에 전학온 어여쁜 소녀 리카코와 우리의 순진한 의리파 주인공 무토우. 그리고 리카코를 처음부터 사모했으나, 결국 아쉬움과 함께 친구 무토우에게 사랑을 양보하는 마츠노. 이렇게 세 인물을 중심으로 서로간 얽혀 있는 사랑의 실타래를 풀어간다. 모든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도 실사영화에서조차 보기 힘든 정밀한 일상의 묘사와 정성어린 땀내 가득한 화면들 위로 투명한 청춘들의 로맨스를 조심스레 담아낸다. 무토우는 연휴를 맞아 오랜만에 집으로 향한다. 그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옛 고교 시절을 떠올려본다. 고교 2학년 시절 매미가 유난히도 울어대던 그날. 아르바이트를 하던 무토우에게 마츠노가 황급히 전화를 건다. 학교에 도착한 무토우에게 막 도쿄에서 전학온 리카코를 소개하는 마츠노. 무토우는 마츠노가 리카코를 짝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단짝친구를 뺏긴 것 같아서 섭섭해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건들. 하와이로 간 수학여행에서 갑작스레 리카코의 부탁으로 빌려준 돈 때문에 그는 졸지에 도쿄에까지 함께 가게 되고, 거기서 함께 1박까지 하게 된다.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무토우는 리카코를 이해 못할 건방진 아이로 보기도 하고, 때론, 이혼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리카코의 측은한 모습에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그들의 도쿄여행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점점 무토우와 리카코 사이에 여러 갈등들을 늘어뜨리며 미묘한 감정들을 불러모은다. 도쿄에서 온 도도하고 잘난 여자애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촌동네 남자아이의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 큰 사건도 없다. 그리 직접적인 표현들도 없다. 그러나 도쿄에서 한밤중 무토우의 호텔 방에 들어와 울면서 갑작스레 무토우의 품에 안기는 리카코, 술에 취해 쓰러진 리카코를 위해 욕조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하는 무토우의 모습 등엔 그들의 애틋하고도 귀여운 사랑의 모습들이 듬뿍 담겨 있다. 또한 영화의 극을 끌어가는 무토우의 회상과 내레이션은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처럼 처음엔 별로 행복스럽지 않은 일들을 나열하다가 이내 그 모든 것이 리카코와 무토우의 소중한 사랑의 시간들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사람에게 자신의 맘을 전달하는 것만큼 힘든 게 있을까? <러브레터>의 후지이 이츠키가 그의 사랑을 남들이 안 보는 먼지 쌓인 고서적 열람증마다 적어두었듯이 무토우도 자신의 사랑을 마츠노와의 우정으로 가린 채 꼭꼭 숨기고 있다가 훗날 학교를 졸업하고서야 자신이 진정 바랐던 것은 아름다운 경치를 리카코와 함께 보는 것이었다는 걸 늦게나마 깨닫는다. 혹자는 이런 사랑이 환상이며, 현실의 사랑이 아니라고 하지만, 현실만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때론 꿈을 꾸는 게 행복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것도 재밌지 않은가? 가을이다. 맘에 두고 있던 고백의 말들, 그리고 마음들을 이 계절이 가기 전에 풀어봐야겠다. 그래서 나도 바다가…, 바다를 듣고 싶다. 민동현/ 단편영화 <지우개 따먹기> <외계의 제19호 계획> 연출

두려움을 벗고, 새로운 꿈을 입고,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이얼

“두려워하지 마세요. 함께라면, 해볼 만할 겁니다.” 무대에, 카메라 앞에 서지 않고, 순수 ‘민간인’으로 살아온 지 4년째 되는 어느날이었다. 이얼에게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시나리오와 함께 임순례 감독의 편지가 배달됐다. 이얼은 “연기를 하지 않아도 재미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간 수많은 직업을 전전해왔지만, 알 수 없는 권태와 단절감으로 답답해하던 참이었다. 임순례 감독의 편지는 연기자의 길로 되돌아올 ‘고마운 핑계’를 준 셈이다. 이얼은 이제 임 감독을 ‘은인’이라고 부른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이얼은 밴드의 맏형 성우였다. 성우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고, 밴드를 지킨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니까, 행복하냐?”고 묻는 옛 친구에게, 그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끝내 음악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 않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성우는 뭔가를 저지르는 대신 당하는 편이고, 겉으로 표출하는 대신 안으로 삭이는 스타일. 오랜만에 연기활동을 재개한 이얼로서는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세친구>를 보고 나니까 그림이 섰어요. 거기 주인공(무소속)이 꼭 성우 같더라고요. 그렇게 당하기만 하고 제대로 표현 안 하는 역할이 ‘힘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연기를 안 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억지로 꾸며내거나 과장하면 안 되겠다 싶었죠.” 노래와 연주 ‘연기’도 “워낙 음감이 없어서”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가, 영화 속에서는 “야간업소의 비틀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더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맹훈련 탓인지, 이얼의 네살배기 딸은 아버지가 ‘기타치는 사람’인 줄 안다나. 지난해 가을과 겨울에 촬영을 마치고, 올 봄 전주영화제부터 개봉을 앞둔 지금까지, 각지에서 열린 일반 시사회를 십여 차례 따라다닐 정도로, 영화에 정이 흠뻑 들었다. “재밌어서 봐요. 볼 때마다 기분이 다르거든요.” 한 가지 꿈을 좇아 사는 성우와 달리, 이얼은 ‘한우물 파기’보다는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 많았다. 이공계열 전공자이지만, 연극계에 몸담은 친구를 따라 92년부터 극단 연우무대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마술가게>(초연)와 <산불>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이얼의 얼굴에서 설경구를 떠올리지만, 그에겐 ‘대학로 3대 미남’에 꼽힌 화려한 전적(?)도 있다. <축제> 등 영화에도 간간이 얼굴을 내밀었고, 2회차 촬영 뒤에 접은 영화 <들소>는 임순례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된 작품. 그러나 그에게 연기는 ‘대체 불가능한 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연기를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와 공포가 있었다”는 그는, 결혼과 동시에 연기를 접었다. 타이에서 장사를 하기도 했고, 지방에서 에어컨 가설과 부동산 중개일을 하기도 했다. 연기 아닌 다른 일에서 삶의 ‘재미’를 찾을 줄 알았지만, 연기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더라는 깨달음이 찾아왔을 때, 마침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얼은 영화에 대한, 연기에 대한 애정을 ‘재발견’한 만큼, 다음 작품은 신중히 고를 생각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성우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 다른 인물이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 “앞으로 좋은 작품을 열편 정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쯤이면, 배우로서의 나를 어느 정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굴곡있는 삶을 살아온 듯한, 연륜과 깊이가 있는 얼굴. 임순례 감독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내세운 조건이다. 이얼에게는 뭔가 더 있다. 50대가 되면 사교댄스를 배우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꿈을 꾸는 소년의 말간 호기심과 수줍음 같은 것이 얼핏 스치고 지나갔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

(子運れ狼:三途の川の乳母車) 1972년, 감독 미스미 겐지 출연 와카야마 도미사부로, 도미카와 아키히로 장르 무협 출시 아이비젼 “갑자기 숲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어디서 나는 것인가. 아, 내 목에서 나고 있구나. 이 소리는 늘 다른 이의 목에서 들렸건만, 이젠 내가 듣는구나. 내 목을 가르는 바람소리여!” 저승사자라는 별명의 자객이 주인공의 칼에 목을 베어 쓰러지면서 내뱉는 마지막 대사다. 주인공은 비운의 닌자, 천하제일의 검객이며 고독한 킬러. 그의 칼이 바람을 가르면 어김없이 분수처럼 피가 솟고, 잘려나간 팔과 다리와 목이 사방을 뒹군다. 당대의 고수들이 쉴새없이 그의 목을 노리지만, 그는 결코 당하지 않는다. 예정된 살육전을 치른 뒤 작은 웃음조차 없는 어두운 얼굴로, 5살난 아들을 작은 달구지에 태운 채 황량한 들판을 걸어갈 뿐이다. 때론 그만큼 깊고 어두운 눈매를 지닌 적의 목을 벨 때, 그의 그늘은 더욱 깊어간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은 이렇게 유치하고 감상적이다. 동시에 아주 자극적이고 매혹적이다. 원작 <아이 딸린 늑대>는 일본잡지에 연재되었던 만화인데, 만화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28회의 TV시리즈와 7편의 시리즈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은 7편의 영화 중 제2편. 주인공 오가미 이토는 원래 에도시대에 많은 닌자를 거느리고 있던 유기유가문 소속이었지만 누명을 쓰고 야기유의 자객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자객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아들을 동반한 검객>에선 아와마을의 청부로 막부가 보낸 전설적인 3형제 자객을 상대한다. 이른바 일본 B급 장르영화의 매력을 알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이 영화엔 새로운 점이 있다. 고독한 킬러야 동서고금의 픽션들이 애호한 주인공이고, 그가 가공할 솜씨의 적들과 싸워 이긴다는 이야기 역시 극히 상투적이지만 <아들을 동반한 검객>은 주인공이 피투성이 검투를 어린 아들과 함께 치러야 한다는 특별한 곤경을 첨가하면서 그의 캐릭터를 더욱 고독하고 비정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뭔가 달라보이고 세련돼 보이려는 노력을 접고, 상투적인 캐릭터의 상투적인 액션과 제스처를 노골적으로 과장하고 반복하는 데 있다. 피가 솟아오른는 장면이 반복 등장하고, 아주 투박한 클로즈업으로 주인공의 경악하는 표정이 잡혀도 그건 더이상 촌스럽지 않고 멋진 것이다. 소란스럽고 빠른 홍콩무협에만 익숙한 관객이라면 <아들을 동반한 관객>의 정적인 연출에 마음을 뺏길지도 모르겠다. 결투장면만 제외하면 이 영화는 인적없는 들판을 걸어가는 특별한 부자의 고요하게 느린 여정을 긴 호흡으로 그린다. 이 때문에 뒤이을 결투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진다. 주연을 맡은 와카야마 도미사부로는 실제 유도 4단에 뛰어난 검술의 소유자로 당대 최고의 검객배우로 이름을 떨쳤으며, <블랙 레인> 같은 미국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허문영 moon8@hani.co.kr

긴장과 위트를 쥐락펴락

<킬러들의 수다>에서 음악을 맡은 한재권은 장진 감독의 오랜 파트너이다. 그는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극단적 하루> 등의 영화뿐만 아니라 <박수칠 때 떠나라> <택시 드리벌> 같은 연극에서도 장진 감독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에서도 한재권은 비교적 편안하게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는 스릴을 느끼게 하는 긴장어린 분위기에서부터 코믹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다양한 단면을 화면에 담고자 한 장진 감독의 의도에 발을 맞추고 있다. 계속되는 반전이 있기는 하나 음악의 대강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초반전에는 스릴러 분위기, 중반전에는 코믹한 분위기, 그리고 클라이맥스라 할 <햄릿> 상연장면에서는 웅장한 분위기. 끝에 가서는 긴장감 있는 분위기와 강렬한 록 비트의 혼합. 초반 스릴러 분위기의 음악은 관객의 심리를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깡패 두목인 탁문배의 의뢰를 받아 이루어지는 암살 과정을 그린 초반의 분위기는, 네명의 주인공들이 약간 깨는 애들이긴 하지만 실제 킬러라는 사실을 일단 관객에게 주입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음악도 약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긴장감 있게 처리됐다. 물론 음악에 조금 더 위트를 부여하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그렇게 하여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는 실제 킬러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라기보다 킬러라는 낯선 직업을 일상으로 끌고 들어와 거꾸로 우리 일상이 낯설게 보이도록 하는 영화, 다시 말해서 일종의 ‘우화’라는 걸 음악적인 복선을 통해 암시하는 방식 말이다. 그리고나서 영화는 점차 킬러들의 일상성을 장진 특유의 독설적이고 썰렁한 유머가 담긴 대사들을 통해 보여주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음악은 초반의 분위기보다 눈에 띄게 가벼워지고 코믹한 느낌을 많이 보여준다. 때로 음악이 지나치게 일상적이어서 어딘지 ‘드라마 음악’ 같은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 있지만, 그건 오히려 관객에게 편안함을 안겨주는 특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햄릿>의 상연과 오영란이 의뢰한 연극배우 암살이 조 검사의 추격전과 함께 겹쳐지며 벌어지는 오페라 하우스 장면은 어쩌면 이 영화의 백미일 수도 있다. 영화의 일상성과 연극의 신화적 비극성을 오버랩시키는 이 대목에서, 영화음악은 그대로 연극음악이 된다. 한재권은 오케스트라적인 웅장함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이 대목을 무리없이 처리해냄으로써 영화음악과 연극음악 양쪽 모두에 경험이 많은 작곡가라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영화에는 하드코어밴드 어비스의 강렬한 노래, 펑크밴드 레이지 본의 신나는 노래, 그리고 본 조비의 록음악 등 몇곡의 록음악도 삽입되어 있다. 다른 곡들도 꽤 괜찮지만 특히 자막이 올라갈 때 들리는, O.S.T에도 삽입돼 있는 레이지 본의 음악은 들을 만하다. 장진 영화의 묘미는 기지와 독설, 그리고 그뒤에 숨어 있는 따뜻함이라 할 수 있겠다. <킬러들의 수다>에서도 그러한 것을 표현해내는 그의 재능은 여기저기서 번뜩인다. 그런데 그 ‘여기저기’서 발휘되는 기지와 독설이 전체적으로 폐부를 찌르는 신랄한 메시지나 진한 감동으로 모아지는 걸 느끼기는 조금 힘들다. 그런 건 아마도 재능에서 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음악 역시 약간은 집중력을 발휘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

“오이소, 안 되는 기 없십니더”

17:00 국제시장 <정글쥬스> 촬영현장 “촬영보다는 뒷정리보는 게 더 중요해요.” “가시나들이 저리 미치니, 영화배우 안 할 사람 누가 있노!” 귀를 찢는 듯한 괴성과 함께 장혁의 스타크래프트를 쫓아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파도처럼 빠져나간 공간은 단추가게, 털실가게 등이 밀집한 국제시장. 두명이 어깨를 나란히 할 공간도 모자랄 만큼 좁은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는 국제시장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글쥬스>는 이정표씨 담당구역이다. “낮 신인데 벌써 불 들어온 간판이 있어서 그런가 봐요.” 먹자골목으로 이동한 촬영팀 중 한 사람이 ‘오늘 촬영 쫑’이라는 표시의 큰 엑스자를 온몸으로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이정표씨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뭐 특별한 액션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를 막을 일도 없지만 그는 촬영 뒤, 그곳이 원상태 그대로 아무 일 없이 정리되는 것을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절저한 사후관리 덕에 “다음에 와서 다시 찍어라”는 말까지 들어가며 현장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에게 모든 지원은 “할 수 있는 한 한다”가 원칙이다. 그러다보니 한번은 인도에서 뮤직비디오를 찍는다고 해서 초청한 사람들이 알고보니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던 웃지 못할, 정말 그들 말대로 “시껍 똥쭐 탄”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다. “의심이 안 간 건 아니지만 우리에게 신청을 한 사람들이고 국제필름커미션협회(AFCI)까지 들먹이며 사기를 치는 통에 참, 어이가 없죠….” <친구>에서 장동건이 죽어가던 국제호텔 앞 촬영을 위해서는 3일 동안 정류장을 폐쇄했고, 아이들이 내기하며 걷던 영도다리엔 전면적인 차량통제가 이루어졌다. 버스정류장 위치를 옮겨야 할 때는 직접 봉고를 몰아 시민들을 바뀐 정류장으로 실어나르는 난데없는 마을버스 기사노릇을 하기도 했다. 위험했던 순간이 왜 없었을까? <리베라 메>의 병원폭파를 위해선 당시 비어 있었던 침례병원을 섭외해 실제로 방화와 폭파, 화재 진압장면을 촬영했고, 배우가 1인용 쓰레기차를 운전해야 했던 한 영화 때는 안창마을에서 백운포까지 이르는 가파르고 고르지 못한 길에서 차가 구르는 바람에 병원까지 동행하며 가슴을 졸인 일도 있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한 장면은 복잡하기로 유명한 서면 롯데백화점 앞에서 있었다. 6차선 도로의 4차선을 막고 드럼통을 세워놓았는데 바람에 드럼통이 날아가는 통에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야속하기도 해라. 그때 누군가 “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롯데 앞 신 재촬영한데!”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 한숨과 탄식이 화살과 같이 날아왔다. 19:00 디렉토리작업 “한번 고생하면 여러 사람 편하잖아요.” 부산영화제 기간인 11월11일부터 열리는 부산국제필름커미션박람회(BIFCOM) 준비를 위해 늦은 시간에도 사무실은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영화 관련업체와 영화계 스탭들, 지역관계자들의 주소와 전화번호 홈페이지 주소까지 일일이 조사한 디렉토리는 현재 사진과 원고가 2/3정도 넘어간 상태긴 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었다. 처음하는 행사다보니 행사장 세팅부터 행사에 필요한 물품 챙기는 일까지 기획팀장 박여영씨에겐 나가서 식사할 시간도 없을 만큼 과부하가 걸렸다. “바쁘죠. 그래도 한번 고생하면 여러 사람 편하잖아요. 결국에 필름커미션은 자료싸움이기 때문에 디렉토리작업만큼 중요한 것이 없거든요.” 부산영상위 홈페이지(www.bfc.or.kr)에 들어가보면 주제별, 지역별로 정리된 4500장의 로케이션 자료가 업로딩돼 있다. “사진 한장이 제 땀 한 방울입니다.” 데이터베이스팀 양성영씨의 말대로 이 사진들은 부산지역 16개구를 한달 동안 8명의 사람이 2개구씩 나누어 일일이 돌아다니며 찍은 로케이션의 정보와 주소 등을 담고 있다. 올해 안에 “만장까지 올릴 예정”이라는 데이터베이스작업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계속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분야다. 이들이 이미 실시한 시민대상의 ‘로케이션사진전’이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동영상 서비스 등을 통해 좀더 구체적이고 케이스에 걸맞은 자료를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향한 길은 아직 멀지만 이미 시작되었다. 부산은 조금 희한한 동네다. 산이 있는가 하면 바다가 있고, 고층의 아파트 건너편엔 여전히 왜식 건물들이 공존한다. 그러나 이 공간은 꽤나 오랫동안 그저 산복도로에 빽빽이 들어선 판자촌의 이미지나 용두산공원 꽃시계 앞의 비둘기 풍경처럼 절대불변의 판에 박힌 이미지로 박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늘 서울의 동네들을 영화 속 고향으로 보고 살던 부산 관객에게 자신이 생활하며 숨쉬는 공간에서도 드라마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기이한 경험이다. 유바리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때 일본 관계자가 “부산하면 <돌아와요 부산항에> 다음이 부산영상위원회예요”라고 했다는 자랑을 꺼냈다가도 금세 쑥스런 미소를 짓고,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진짜 애향심이 아니면 못한다니깐요”라며 순진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마음좋은 시골청년들 같지만 이들이 품은 욕심은, 사실 서울내기들 못지않다. 남해에서 경주시까지 범경상도를 네트워킹화하겠다는 작업은 이미 추진중이고 오는 11월에 부분 완공될 수영만 스튜디오가 자리를 잡고, 촬영지원 같은 일들은 “공문 한장만 팩스로 넣어주면” 가능할 정도의 시스템을 정착시킨 이후 이메지카 같은 현상소까지 들어온다면 정말 촬영부터 후반작업까지 가능한 ‘영상도시 부산’을 만들 수 있으리라. 그렇게 지역의 숙박업, 요식업, 관광업의 발전과 함께 구체적인 고용창출을 이루겠다는 청사진은 그저 원대하기만 한 꿈일까? 2년간의 짧은 시간 동안 부산영상위의 성장을 이룬 것은 위풍당당한 광역시의 깃발 아래 집행된 공권력이 아니었다. 6차선 대로에서, 폐공장 뒤뜰에서, 비내리는 영도다리 위에서 초조함과 걱정으로 피워내려갔을 줄담배와 촬영 끝난 항구에서, 다시 오란 인사 뒤에, 불꺼진 영화관에서 누가 볼까 슬며시 지어보는 이들의 미소가 다시 땅으로 스며들어 그들을 키웠던 진짜 자양분이었던 것이다. 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부산영상위의 하루 따라잡기 (1) ▶ 부산영상위의 하루 따라잡기 (2) ▶ 부산영상위 사람들 - 그들의 하루는 48시간 ▶ 주목! 2001 부산국제필름커미션박람회

“이야기는 얇게 음악은 풍성하게, 그것이 뮤지컬의 마술”

<물랑루즈>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가. 기본적인 착상은 어떤 장소에서 비롯됐다. 그 장소는 이를테면 스튜디오54(반문화의 표상이던 뉴욕의 나이트클럽) 같은 곳이다. 그곳엔 싸구려 대중문화에 중독된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젊은 연인이었고 규칙을 깬다. 여자는 사랑에 빠진다.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당신의 꿈속에 존재하는 나이트클럽이 물랑루즈인 것이다. 물랑루즈는 돈 많은 자, 권력을 가진 자와 젊은이와 미녀와 무일푼인 자가 한데 어울리는 곳이었다. 물랑루즈는 밥 딜런이나 에미넴에 비견될 만한 그들 시대의 록스타들, 전위적이고 흥미로운 예술가들의 세계였다. 오페라를 연출해본 것이 이번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줬나. 난 늘 뮤지컬과 음악을 사랑했다. 난 어디라고 말해도 아무도 모르는 정말 작은 촌동네에서 자랐다. 우리 집은 주유소와 농장을 갖고 있었는데 석유를 대주던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는 바람에 잠시 극장을 소유하기도 했다. 그런데 음악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오페라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거기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어떤 것이 있었다. 자세한 전후과정을 생략하자면 그다음 난 연극과 오페라를 만들었고 영화로 건너뛰었다. 난 항상 상상했다. 지금 이 시대에 맞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언어란 어떤 것일까, 누군가 그걸 이루는 걸 꿈꿔왔다. 그렇다면 <물랑루즈>는 어떤 영화인가?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가 오페라부파가 아니라 뮤지컬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포스트모던 뮤지컬 혹은 포스트모던 오페라라고 부른다. 어쨌든, 아주 간단한 스토리지만 그걸 음악극화할 때 반향이 일어나고 복합성이 생긴다. 거기서 앙상한 이야기를 살찌우는 마술이 일어난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오랜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그러므로 이건 오페라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오페라의 정의를 뭐라고 내릴 것이냐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전체 대사를 노래로 부르는 걸 말하는가? 노래가 일부만 조각조각 나뉘어 들어가도 오페라인가? <마적>을 오페라가 아니라 쇼라고 부를 것인가? <오페라의 유령>은 어떤가? 이것은 오페라인가? 내 생각엔 이런 문제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점은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물랑루즈>를 만든 계기는? 다른 영화들에서 영감을 얻지는 않았나. 다른 영화는 아니다. <댄싱히어로>부터 <물랑루즈>까지 세편의 작업은 어떤 공통된 생각과 원칙이 무르익어 나온 것이다. 첫째는 신화적인, 아주 간단한 스토리이다. <댄싱히어로>는 억압을 극복하는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이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회와 갈등관계에 놓인 사랑이다. 연인들이 자리잡은 세계는 아주 멀리 있는 창조된 세계다. 불가능한 장벽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에 이르는 밝은 세계를 그릴 필요는 없었다. 내가 다루고자 한 것은 내적 성숙에 관한 신화이다. 이상주의자인 한 젊은이가 지하세계에 들어선다. 그는 죽음, 이뤄질 수 없는 관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 등을 느끼면서 어른이 된다. 이야기를 만들어낸 출발점은 그런 것이었고 그 다음은 세팅하는 것이었다. 보헤미아에 대해 공부한 적 있는 나는 전에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 <라 보엠>을 연출한 적이 있다. 우리는 70년대 스튜디오54 같은 1999년의 보헤미아를 <라 보엠>에서 경험했다. 그리고 1900년이 시대적 배경으로 채택됐다. 그 시기는 현재의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19세기로 돌아갈 것인가, 20세기로 전진할 것인가 사이에서 격동이 있었고 엄청난 기술적 변화가 있었다. 나는 그 시기에 대해 조사했고 파리에 갔다와서 플롯을 짜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고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다. 여주인공에게 아기가 있었다거나 등장인물들이 모두 모르핀 주사를 맞는다든가 하는. 어쨌든 다음 과정은 간단한 이야기를 뮤지컬로 변모시키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에 플롯을 끼어맞춘 영화로 보일 텐데 사실은 정반대다. 드라마틱한 순간에 어울리는 노래를 선곡하는 과정은 아주 신중하고 냉정한 일이었다. 그것은 대단히 집약적인 노동이었고 단지 일이었다. 몇 가지 다른 장르에서 따온 음악적 요소를 뒤섞은 것은 의도적인 것이었나. 단순한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음악은 지난 100년간 존재했던 것이어야 한다는. 과거를 그리면서 요즘 음악을 사용하는 건 아주 오래된 아이디어다. 1900년이 시대배경인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에서 주디 갤런드가 부른 40년대 히트곡 <트롤리 송> 같은 게 대표적인 예다. 그녀는 지금 팝음악에서 벡이 부르는 노래에 비견될 만한, 당시 라디오 방송에 자주 흘러나오던 노래를 부른다. 과거의 인물과 장소를 이해하기 위해 현대적인 음악을 쓰는 것이다. 우리는 그걸 더 밀고나갔을 따름이다. 스토리는 다른 데서 따온 게 아니라 창작한 것인데. 그렇다. 하지만 이건 기본적이고 근원적이며 대중적인 19세기 유산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에밀 졸라의 <나나>, 뒤마의 <춘희>, 오페라 <라 보엠> 등을 검토했다. 이것은 포스트 모던 <라 보엠>, 포스트 모던 <라 트라비아타>일 수 있다. 구조는 따왔지만 스토리는 고유한 창작품이다. 그리고 여기엔 위험부담이 있다. 아다시피 오페라와 뮤지컬의 기본적인 룰은 관객이 스토리를 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날지 알기 때문에 뮤지컬은 플롯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플롯에 공명하는 소리와 사운드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관객이 호응하게 만드는 방법이지만 관객은 여전히 “음, 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다 아는 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뻔한 플롯이 을 통해 전달되면 관객은 “젠장, 정말 멋진 아이디어인 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관객이 영화에 참여하는 메커니즘이다. 로트렉은 어떤 캐릭터인가? 로트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 것이었나. 로트렉은 팝아트의 선구자였고 1890년대의 앤디 워홀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역할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그가 영화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할 것인가였다. 고전적 문법대로 말하면 그는 슬픈 어릿광대이고 버스 차장 같은 인물이다. 그가 약물중독자였고 잘생긴 젊은이들을 사귀어서 그들을 분신삼아 여자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는 건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하이코미디로 다루었다. 존 레기자모는 손꼽히는 캐릭터 배우이고 자기 배역을 훌륭히 소화했다. 배우들은 어떻게 뽑았나? 캐스팅 전에 그들이 노래를 잘한다는 걸 알았나. 몰랐다. 노래를 잘 부르는 배우들이 누구누구라는 구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 많은 배우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하고, 뻔한 배역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내가 이번 영화에 맞는 배우들을 고르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나는 여러 곳에서 수많은 배우들을 만났고 그들이 노래를 할 수 있는지 테스트했다. 니콜 키드먼은 적역이었다. 나는 그녀와 10년 전에 일한 경험이 있었다. 그녀는 흔히 예상하는 니콜 키드먼과 달리 매우 쾌활했고 난 그녀가 스크린에서 대성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마를렌 디트리히나 마릴린 먼로를 연상시키는 면을 갖고 있었다. 난 자신의 목소리로 감정을 실어나를 수 있는 남자배우도 찾아야 했다. 이완 맥그리거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머큐쇼 역으로 오디션을 본 적 있는 배우였다. 당시는 <트레인스포팅>에 나오기도 전이었다. 그가 진짜 로맨틱한 영웅으로 나오는 건 이번 영화가 처음일 것이다. 어느날 이완 맥그리거가 노래하는 걸 들려줬을 때 엘튼 존이 말했다. “세상에, 그는 진짜 가수야”라고. 주연들이 직접 노래하지 않는 방식을 고려하진 않았나. 그러지 않았다. 그간 <물랑루즈>는 뉴욕, 칸, LA 등에서 상영됐다. 만약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더빙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리라 확신한다. 그 점에 관해선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당신이 사용한 노래들의 판권섭외 과정을 설명해달라. 어려운 점은 없었나? 너무 비싸지는 않았나. ‘All you need is love’ 같은 가사 한 대목에 50만달러를 내라는 식의 요구는 없었다. 희소식을 전하자면 내가 작업한 모든 뮤지션들, 데이빗 보위를 비롯해 돌리 파튼, 엘튼 존 등 모두가 뮤지컬에 자기 노래가 들어가는 걸 반가워했다. 그들의 노래가 들어가는 건 그들 스스로 뮤지컬을 쓴 셈이 되는 것이니까. 그들이 상당한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아주 적은 돈을 썼을 뿐이다. 비틀스 노래 한곡을 쓰는 데는 25만달러에서 100만달러에 달하는 돈이 들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돈을 줄 수 없었다. 우리는 단지 30초나 15초를 쓰는 식으로 작업했고 판권료로 총 100만달러를 썼다. 다들 우리에겐 파격적으로 낮은 금액을 책정했다. 판권회사들은 우리가 노래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걸 알고 관대해졌다. 우리는 아주 운이 좋았다. 당신이 원한 모든 걸 영화에 쏟아넣었다고 생각하나? 아쉬운 점은 없나. 내 영화 가운데 어떠한 것도 내가 원한 그림의 50% 정도다. 모든 걸 다시 찍었으면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선이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선을 넘었다. 위대한 결과가 아니라도 의도대로 만들어졌다면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무한한 시간과 자본이 주어진다면 누구나 미켈란젤로가 됐을 것이다. 정리/ 남동철 namdong@hani.co.kr 이 인터뷰는 ‘themovieclicks.com’, ‘ 온라인’, 방송홍보용 인터뷰 자료 등을 재구성한 것임.▶ <물랑루즈>로 돌아온 스펙터클의 흥행사 바즈 루어만 (1) ▶ <물랑루즈>로 돌아온 스펙터클의 흥행사 바즈 루어만 (2) ▶ 포스트모던 혼성 뮤지컬 <물랑루즈>의 족보 ▶ 바즈 루어만 인터뷰

<라이방> 주연 시나리오작가 출신 김해곤씨

장현수 감독의 새 영화 <라이방>(11월3일 개봉)의 절정 부분은 두고 두고 곱씹게 만드는 감칠 맛이 있다. 친구사이인 세 택시 운전사가 저마다 돈많은 점쟁이 할머니 집을 털기로 하지만 막판에 셋 가운데 가장 소심한 해곤(김해곤)은 불참을 선언한다. 거사 당일 밤, 나머지 둘이 땀 투성이가 돼 겨우 문을 따고 할머니 집에 들어간다. 그때 해곤은 술에 잔뜩 취한 채 그 집을 찾아와 친구들의 이름을 고래고래 부른다. 넘어지고 벽에 부닥치고 난리를 떤다. 들킬까봐 어쩔줄 몰라하는 두 친구를 붙잡고 해곤은 말한다. “야, 니들 정말 보고 싶었다. 나 반갑지?” 평생 철 들지 않을 것 같은 인간. 정 많고, 우스개 소리도 잘 하지만 도무지 고독할 줄 모르고 모진 판단을 못 내리는 이 인간은 친구들의 삶까지 다 소극으로 만들어 버린다. 주변에 있을 법한, 잘 연출된 이 캐릭터가 김해곤(37)씨의 연기로 더욱 뚜렷한 생명력을 얻어 소극 <라이방>의 리얼리티를 더욱 강화한다. “장 감독이 평소 니 모습 그대로 연기하라고 했다. 다만 살을 더 찌워야 한다면서 데리고 다니며 돼지고기 사먹이고 밤에 라면 끓여 먹이고…. 7~8㎏ 더 쪘다. 원래 호리호리 할 때는 예쁜데(웃음). 실제 성격도 다르다. 나는 그렇게 착한 스타일이 아니다. 원래 극중의 해곤은 마누라를 두고서 바람 피는 이였는데 `영화가 지저분해진다'는 감독의 판단에 따라 노총각으로 바뀌었다. 나는 원래 것이 더 좋았는데…” 김씨는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장군의 아들>(89)로 데뷔해 <깊은 슬픔>(97), <남자의 향기>(98) 등에 출연했지만 구실이 미미해 주목하는 이가 드물었다. 그러다가 98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된 <보고 싶은 얼굴>이 여러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올해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의 시나리오를 쓴 것을 계기로 고료가 가장 높은 A급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여배우 오현경씨가 출연하는 <블루>의 시나리오를 최근 마쳤고, 인조반정을 다룬 사극 <청풍명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출연하라는 주문은 전혀 없고 시나리오 요청만 쇄도한다. 시나리오는 제작자나 감독과 싸울 일도 생기고 쓰기도 힘들고, 나는 연기가 좋다.” 김씨가 들려준 <파이란> 시나리오 작업과정은 이랬다. “전부터 친구였던 해성이(송해성 감독)가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들고 왔다. <러브 레터>처럼 본 적도 없는 이를 사랑하는 이야기가 감상적으로 보이지 않겠냐며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맞다, 이 영화의 주인공 강재처럼 3류 양아치가 그런 사랑을 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강재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의미를 주자. 그랬더니 민식이형(최민식)도 반겼다.”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한 걸 쳐도 김씨는 한참 늦깍이다. 80년 광주사태 때 시민군과 함께 “트럭 타고 다니다가”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서울로 와서 안양예고를 들어갔지만 “공부가 싫어서” 무작정 대학로로 나갔다. 연극을 하고 영화로 옮기고 했지만 풀리는 게 없어 3년동안 막노동도 했다. “일산 호수공원, 정동극장 등의 공사판에서 바닥인생을 배웠고, 그게 참 많이 도움이 된다.” <라이방>이 개봉하고 나면 김씨는 배우로서도 새로 주목을 받을 것 같다. 여러모로 올해는 김씨에게 가장 행복한 한 해가 될 듯하다. 임범 기자is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