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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프랑스는 여름축제중? 아니, 성난 예술인들 파업중

연극 및 무용 부문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아비뇽 연극축제가 57년 역사상 처음으로 시작도 못한 채 막을 내리게 되며, 프랑스 뉴스의 머릿기사는 ‘성난 예술인’에게로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부터 프랑스는 각 지방마다 끊임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축제들로 으레 시끌벅적한 생기가 넘치곤 하지만, 올해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배우, 감독, 기술 스태프 등 공연 및 시청각 분야 예술인들이 실업수당을 비롯한 처우개선안을 놓고 정부와 정면 대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아비뇽에서 시작된 파업은 비슷한 시기에 라 로쉘과 엑상 프로방스에서 각각 열리는 샹송축제와 오페라 축제로까지 번져나가고 있어,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여름축제들이 잇따라 취소 또는 파행 운영될 위기에 처한 상태다. 여름 동안 여러가지 영화축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던 파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매년 7~8월 약 두달간 매일 밤마다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넓은 잔디밭에서 영화를 한편씩 무료로 상영해 파리지엥들의 명물로 각광을 받아온 ‘빌레트 공원 야외 영화제’도 개막을 당분간 연기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파리 시청일 것이다. 올해 여름은 파리 시의 야심작인 영화 축제 ‘파리 시네마’의 탄생을 선포하는 해였기 때문이다. ‘문화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파리 시내에 다양하고 참신한 문화 프로그램을 추진해 온 베르트랑 들라노에 시장은, 다양한 프로그램의 영화들을 상영하는 기존 영화제의 틀에 각종 전시, 강연, 토론회 등을 결합시킨 대규모 영화 축제를 준비해 왔다. 그러나 지난 1일 막을 여는 자리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된 <인생의 값> (감독 필립 르게)의 상영은 기술 스태프의 파업으로 인해 한 시간이나 지연되었고, 개막식장은 순식간에 정책 토론장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를 중심으로 구성된 보수 내각의 등장 이후, 정부와 노동계 사이에는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번 자유 예술인들의 파업 역시 퇴직 연금제도 수정안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최근의 노동계 총파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파업에 참가한 배우와 스태프로 인해 영화 및 텔레비전 시리즈 등의 촬영이 중단되고 있으며 카트린 드뇌브, 샤를르 베를링, 파트리스 르콩트 등 수많은 영화인들이 파업 지지에 앞장서고 있으나, 정부는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현행 법에 따르면, 프랑스의 자유 계약직 배우, 스태프, 작가 등은 12개월 동안 최소 507시간의 고용계약을 맺고 활동하기만 하면 그 이후 12개월 동안은 국가에서 지불하는 실업수당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다. 이러한 수당지급기간을 대폭 축소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에 맞서 거리로 나선 예술인 노조의 시위 행렬이 프랑스 전국을 뜨겁게 달구는 7월, 이들의 모습이 천국보다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파리/여금미·파리 3대학 영화학 박사과정

[인터뷰] <똥개> 여주인공 정애역 엄지원

"경쾌한 영화랬는데‥펑펑 울었어요" 가운데 손가락에 조잡한 ‘왕’자 문신을 새겨넣고, 압구정동에 있다는 로데 ‘오’거리에 원두커피전문점을 차리는 게 꿈인 아가씨. 영화 <똥개>(곽경택 감독) 속 정애는 처음 보여주는 겉모습보다는 속이 훨씬 깊은 애다. 수돗가에 있는 철민(정우성)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게 된 날이다. 버림받는 걸 확인하게 될까 두렵던 그 순간을 진한 사투리로 정애는 무심하게 이야기한다. “감독님이 경쾌한 영화니까 눈물은 그냥 담고 있는 정도만 하라 했거든요. 근데 처음엔 정말 펑펑 울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엄지원(25)은 정애에 푹 빠져 있었다. 아침드라마 한편과 <오버 더 레인보우>의 작은 역할 정도가 전부였다가 “거친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서” 3차까지 오디션을 치르며 따낸 역이었다. 자전거도 못 타던 엄씨는 몇주간 집중적인 연습과 부상 끝에 밀양의 좁은 골목을 철민과 누비며 영화의 ‘최대 추격신’을 해내기도 했다. “처음엔 세상 거칠게 산 불량소녀라고만 생각했는데 갈수록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어요.” 영화에서 느껴지지만, 엄지원은 나오는 장면마다 얼굴이 달라 보이는 배우다. 야한 화장의 다방 배달아가씨가, 맨얼굴로 똥개와 뒹굴며 텔레비전 보는 소도시 청춘의 느낌이 다른 맛으로 살아난다. 시나리오에 그냥 띄어쓰기 없이 쓰여 있던 로데오거리를 엄씨는 대사연습부터 자연스레 로데 ‘오’거리라 읽었다 한다. “한번도 태어나 서울에 가본 적 없는 애잖아요. 그냥 천안 삼거리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면서도, 정애라는 애의 삶을 대사 한마디로 그려 보인 셈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20살까지 살아온 덕인지 영화 속 엄씨의 사투리 연기는 그 누구보다 자연스럽다. 본인은 “부산쪽이랑 사투리가 달라서, 나중엔 우성오빠가 ‘니 좀 이상하다’라며 가르쳐주기까지 했어요”라고 겸손해하지만. 정작 어려운 건 철민(정우성)과 미묘한 연애감정을 잡아나가는 것이었다. 정애는 또 영화에서 똥개와 똥개 아버지(김갑수)를 바라보는 관찰자다. 세상 밑바닥을 혼자 힘으로 살아온 정애의 눈에 애증이 오가는 철민 부자는 부러운 존재인 한편, 철없는 한국 남성들은 한심하면서도 연민스런 존재다. 발랄해보이기만 하는 엄지원에게 이런 미묘한 감정과 투박한 정서의 영화가 힘들진 않았을까. 하지만 우연히 서울의 언니에게 놀러왔다가 거리에서 캐스팅돼 오락프로그램의 코너 진행자로 데뷔한 그는 자신을 “아날로그적 인간”이라 잘라 말한다. 연기자의 삶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고. 신문사 한 구석에 쌓여 있던 만화책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금세 퍼질러 앉아 먼지를 탁탁 털어가며 책장을 넘긴다. “컴퓨터로 클릭하는 것보단 이렇게 책장을 넘기는 게 좋아요.” 그러면서도 “굿은 많지만 베스트는 하나다”란 말을 되새기며 베스트가 되겠다는 꿈을 밝히길 서슴지 않았다. 당차면서도 야무진 게 역시 정애다. 글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조지 클루니 감독 데뷔작, <컨페션>

낮엔 피디 밤엔 킬러‥꽉찬듯 텅빈 삶 조지 클루니의 감독 데뷔작, <존 말코비치 되기> <어댑테이션>의 찰리 카우프만 각본, 스티븐 소더버그 제작, 샘 록웰·드루 배리모어·줄리아 로버츠·조지 클루니 출연에 브래드 피트, 매트 데이먼의 카메오까지…. <컨페션>(원제 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은 여러모로 화제를 모을 만한 작품이다. 게다가 소재인 척 배리스라는 실존인물의, 소설 같은 자서전 자체가 흥미롭다. 60~70년대 미국 텔레비전의 인기 프로그램이자, 방송을 저질 쓰레기통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한몸에 들었던 <데이팅 게임> <신혼부부게임> <땡쇼>의 피디인 척 배리스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CIA의 청부킬러로 동유럽 등지에서 33명을 죽였다고 주장한 것이다. 클루니는 다큐멘터리 같은 실존인물들의 인터뷰에 황색 톤의 텔레비전 쇼 같은 낮생활과 블루 톤의 누아르 분위기의 밤생활을 교차해가며, 가벼운 팝송처럼 배리스의 이중 삶을 깔끔하게 스케치해나간다. 별 것 아닌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는 길로 스파이의 생활을 선택한 배리스(샘 록웰)는 평범한 삶에 신물난 인간들이 가짐직한 이중적 욕망의 투사체다. 보기에 따라 <컨페션>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의 삶을 다룬 영화들이 그러하듯, 사람들을 정신분열로 몰고가기 딱 십상인 70년대 미국 대중문화의 이면을 엿볼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 방송에 열광하는 대중들은 신형 냉장고를 얻기 위해 기꺼이 배우자를 팔아먹고(<신혼부부게임>), 음치임을 조롱당하면서도 텔레비전에 나오려 기쓰는(<땡쇼>) 모습을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 벌거벗은 몸으로 뉴욕의 모텔 방 안에 서서 배리스가 “개뿔도 못 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텔레비전에선 레이건의 취임연설이 흘러나온다. 클루니의 데뷔작은 보다 야심찬 작품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생존인물이란 점 때문인지, 클루니는 시대의 숨막힐 듯한 공기와 그 속에서 절망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촘촘히 실어나르기보다는 흥미로운 삶을 산 사내의 이야기에서 딱 멈춰버린다. 배리스는 자신이 만들어간 프로그램을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구원의 대상은 히피 같은 기질의 페니(드루 배리모어)뿐이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느껴지는 배리스의 낮생활에 대한 고민은 충분하지도, 깊지도 않다.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대중은 애정을 담은 풍자의 대상이 아니라, 배리스의 삶의 풍경일 뿐이다. 그를 청부킬러로 이끄는 CIA 요원 조지 클루니나 줄리아 로버츠가 밋밋하게 보이는 건 당연하다. 줄리아 로버츠는 영화 속에서 “자신을 경멸하는 자는 경멸할 줄 아는 자신을 존경한다”는 니체의 말을 들려준다. 그것이 배리스의 변명이자 미국 대중문화 생산자들의 자족적인 자기 변명처럼 들린다면 너무 심술궂은 해석일까. 샘 록웰은 이 영화로 올 베를린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안았다. 25일 개봉.

할리우드 속 TV,미국의 분열을 말하다 [2]

<오토 포커스>를 <컨페션>과 연이어 말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텔레비전의 아이콘에 미국이라는 이름을 덧입혀 이중적인 잣대를 재보는 영화들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텔레비전 쇼의 주인공들이 그 대부분이다. <시네아스트>가 “<호건스 히어로>가 역사적 외설로 공격받았다면, 척 배리스의 플릭 쇼는 문화적 역병으로 경멸받았다”고 두편의 쇼에 대해 비교분석을 할지언정 두편 모두 인기를 얻었다. 대중은, 미국은, 여기에, 이들에게, 광분했다. 대신 그 주인공들이 미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부연하자면, 텔레비전 쇼의 주인공들을 불러들이는 영화에는 다른 이유의 한축이 있다. 텔레비전 ‘쇼’ 자체를 부정하고, 쇼 비즈니스 산업으로서의 텔레비전을 비판하는 영화들이 있다. <트루먼 쇼>는 텔레비전의 기획된 세트장 안에 갇혀 일생 동안 양육된 남자를 주인공으로 텔레비전의 관음증에 비판의 칼날을 세웠고, <퀴즈쇼>는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텔레비전 퀴즈쇼의 시스템을 비판했다. 또는 밀로스 포먼의 <맨 온 더 문>은 앤디 카우프만이라는 걸출한 실제 코미디언을 주인공으로 하여, 오히려 텔레비전 쇼에 보내는 대중의 욕망을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컨페션>은 그 프로그램의 질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가, 또는 텔레비전이 어떤 문화적인 중요도를 갖고 있는가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대중의 놀이인가를 보여주려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적, 공적으로 이중적인 관계에 얽혀 있는 한 인간의 분열적인 정체성이 중심이다. 게다가 그는 미국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유명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가장 대중적인 쇼프로의, 가장 기괴한 프로듀서. 어느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그이기에, 그가 정부의 지시에 의해 33명을 죽였다고 말하는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서 미국이 숨겨둔 분열의 호흡을 전달한다. 텔레비전을 영화의 중심 소재로 삼는 <캐치 미 이프 유 캔>, 쇼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를 주인공으로 하는 <컨페션>은 둘 모두 텔레비전의 ‘작품’은 아니다. 그런 점들이 소재가 되었을 때 얼마나 근접하여 미국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데에서 역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텔레비전을 영화로 가져오는 직접적인 하나의 방법이 있다. 이미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텔레비전 시리즈들을 직접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가장 손쉬운 예는 시리즈의 영화화가 있다. <아담스 패밀리> <플린스톤> <로스트 인 스페이스> <샤프트>가 이런 성향에 의한 텔레비전 시리즈 영화화의 전초전이었다. 각양각색의 이유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영화화된 모든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미국의 분열증을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인가에 따라 무엇을 보여주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올해 개봉한 두편의 영화 <미녀 삼총사: 맥시멈 리스크>와 <헐크>가 바로 그런 작품들이다. <미녀 삼총사> vs 강하고 섹시한 미국이라고? <미녀 삼총사> 1, 2편이 보여주는 미국은 보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미국이다. 우선 팔등신의 미녀들이 70년대를 훌쩍 지나 2000년대에 안착하면서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신세기 액션을 선보인다. 그런 액션이 아니어도 단지 이 세 미녀가 스크린에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자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쇼다. 놀라운 속도로 한꺼번에 볼거리를 무진장 쏟아내 보여준다는 의미에서의 쇼다. 그런데 이 쇼는 미국주의에 관한 가장 긍정적인 호응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또 요구하는 쇼다. 그런 점에서 병적이다. 1편에서 그들이 등장하는 오프닝 시퀀스를 생각해보자. 피상적인 의미에서의 성공적인 미국주의를 상징할 때 동원대는 요소들. 미녀들은 돈을 따가는 퀴즈쇼에 나와 승승장구하고, 우주복을 입고 당당하게 전진한다. 또는 그런 오프닝 시퀀스가 아니더라도, 그들이 온몸에 휘장처럼 두르고 있는 성조기와 그것으로 도배한 날씬한 스포츠카가 이들의 미국에 대한 긍정을 대변한다. 찰리가 누구인가는 상관없어 보인다. <미녀 삼총사>의 원제목 찰리의 천사들은 곧장 미국의 천사들로 대치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위력과 풍모를 갖춘 백만장자라는 거대성에 의해. 말하자면 미국주의 홍보하기 쇼는 ‘강한 미국과 섹시한 미국’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악당을 만났을 때 그녀들은 세상 누구보다 더 강하고 무서운 자들이다. 그러나 연인을 상대할 때는 그 누구보다 섹시함을 발휘한다. 미녀들이 갖고 있는 그런 양면은 가히 최첨단의 군국을 자랑하는 미국주의 그 자체의 강대함과 풍족하고 자유로운 그래서 아메리칸 드림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데 손색이 없는 섹시한(매력만점인) 미국의 미끈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1976년 처음 시작하여 1981년까지, 그러니까 척 배리스가 세상이 끝난 것처럼 한숨 쉬고, 레이건이 새로운 람보로 등장하기 이전까지 텔레비전 시리즈 찰리의 천사들은 방영됐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그 70년대를 ‘분열증의 시대’(Schizo Time)라고 말하면서 텔레비전 베스트 모멘트를 뽑았고, 찰리의 천사들은 거기 당당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렇게 분열증의 시대를 살아남은 텔레비전 시리즈 중 하나인 찰리의 천사들은 영화로 들어와서도 그 분열증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립된 미국의 긍정적인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중증이라는 것은 영화가 가져오고 있는 복고적인 스타일과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쓰이는 오리엔탈리즘이 서로 뒤섞인다는 사실에서 진단해볼 수 있다. <미녀 삼총사> 1, 2편은 미국의 복고풍을 의상과 춤 등을 동원하여 맵시있게 가져온다. 그리고는 영화와는 상관없이 보여주고, 또 보여준다. 지나가버린 미국의 향수를 상기시키는 의상과 춤의 한편에는 ‘동방’에 대한 습관적인 오리엔탈리즘이 있다. 흑인 여성이 아니라 루시 리우가 천사들 중 한명인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미녀 삼총사> 1, 2편은 ‘강하고, 섹시한’ 아름다운 미국의 두 모습에 사로잡혀 분열증을 앓고 있다. <헐크> vs 서부영화의 공간에 우두커니 서다 이안이 바라보는 미국은 미쳐버린 과거로서의 미국이다. <헐크>의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가장 고대되던 말은 “나를 화나게 하지 마라”였고, 언제나 그 이전이 아니라 그 이후가 더 시선을 끌었다. 아마도 미국의 관객은 영화로 펼쳐지는 ‘헐크 쇼’의 재연을 다시 보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리안은 가장 값비싼 작가주의를 동원하여 무척 심심하고, 괴상한 쇼를 만들었다. “나를 화나게 하지 마라”는 이제 “나를 슬프게 하지 마라”처럼 들린다. 그러니까 <헐크>에는 그가 녹색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이 헐크의 슬픔이다. 군부대에 쫓겨 그랜드 캐년과 유타 사막을 가로질러 도망다니던 헐크가 잠시 시선을 던져 바라보는 썩어가는 녹색 풀 한 포기. 베티를 찾아간 순간 나무 옆에 서 있는 헐크는 나무와 차이가 없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안 보이지만, 황토색 절벽과 사막에서는 오직 그만이 녹색공처럼 얼룩져 있다. 리안은 왜 헐크가 녹색인가에 의미를 부여했다. <헐크>의 녹색을 자연친화적인, 혹은 우주적인 친화성으로 개념화한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대구로 서 있는 아버지의 변이이며, 그가 헐크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과거로서의 무서운 아버지가 쇳덩이의 무력과 친화력을 갖는다면, 헐크는 이제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자연들과 친화력을 갖는다. 그래서 그는 괴물이다. 뒤틀린 과거 때문에. 때문에, 그의 아슬한 기억에 ‘핵 버섯’이 피어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까, <헐크>가 <와호장룡>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것은 외면할 길이 없다. 대나무를 타고 설 줄 아는 우주의 음양에 대한 이해가 헐크에게로 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바로 미국이다. 녹색의 헐크가 마치 미국 서부영화의 공간 같은 절벽과 사막으로 들어오자, <와호장룡>의 친밀한 경외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대신 외로운 도주만 남아 있게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아시아적 정서를 지닌 리안, 그가 미국의 분열성을 이해하는 태도에서 온다. 리안은 그 분열적 사회에, 그 내부에서 가장 분열적인 인물을, 가장 쓸쓸하게 만들면서 반면교사한다. 그래서 <미녀 삼총사>를 볼때 오리엔탈리즘이 자신들의 복고풍을 화려하게 뒷받침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분열적인 긍정은, 자신들의 서부영화 역사의 공간에 아시아적 정서의 색을 지닌 괴물이 들어서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것이다. 리안의 <헐크>를 둘러싸고 벌어진 찬반은 이런 점에서 바라보아야 좀더 이해가 가능해진다. 두 얼굴의 사나이. 헐크뿐만이 아니라 <캐치 미 이프 유 캔> <미녀 삼총사>와 <컨페션> <헐크>의 그 모든 인물들이 두 얼굴을 갖고 있다. ‘내가 아닌 나’로의 동행, 또는 방황. 프랭크 에버그네일 주니어는 그 다른 나를 여러 개 바꿔가면서 사용한다. <미녀 삼총사>는 섹시함과 강함의 양날 선 모습에 푹 빠져 있다. <컨페션>의 척 배리스는 정부 요원과 대중 쇼 프로듀서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프랭크 에비그네일 주니어와 척 배리스와 헐크는 영화 속에서 자꾸만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미국의 분열증을 말해온 영화 속 인물들 역시 그러했다. 그들은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여기, 이곳의 분열증이 무엇인가 고민한다. 그렇게 텔레비전은 영화로 다시 들어온 것이다. 1960~80년대 초 미국엔 무슨 일이? 75년 베트남전 끝나고 다음해 <미녀 삼총사> 방송 <캐치 미 이프 유 캔> <컨페션> <미녀 삼총사> <헐크>는 대략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의 시기를 공유하고 있다. 그들이 영화의 시간을 살아가는 그 때, 미국은 어떤 시간을 살았을까? 모두가 들어 알고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그 시간에 방점을 찍어본다. 1968년, 프랭크 에비그네일 주니어 프랑스 감옥에 수감생활 중 -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실제 주인공 프랭크 에비그네일 주니어는 이 시기 프랑스의 감옥에 투옥 중이었다(한 가지 잡설, 실제 인물 프랭크 에비그네일을 마지막으로 잡은 건 유능한 FBI 요원이 아니라 길가에서 핫도그를 먹고 있던 두명의 경찰이었다). 1968년 5월 프랑스에서는 68혁명이 일어났고, 이때 미국에서는 비폭력주의자이자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승리로 이끈 마틴 루터 킹이 제임스얼 레이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러나 이 암살의 배후는 CIA였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해 닉슨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76년, <미녀 삼총사> 시리즈 시작(1977년에는 빌 빅스비/루 페리뇨 주인공의 <헐크> 시리즈 시작) - 1975년 베트남 전쟁이 종식되었다. 1961년 존 F. 케네디가 처음으로 정규군을 파견한 이후 1965년 북폭을 개시했고, 1968년부터는 ‘파리회담’을 통한 평화교섭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전쟁은 캄보디아, 라오스로 확산되었고, 1975년 프놈펜이 크메르 루주군에 함락되면서 베트남 전쟁은 종식되었다. 1981년, <컨페션>의 척 배리스가 허름한 모텔에서 인생을 되돌아보다 - 1980년 영화배우 출신 공화당 후보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이듬해 취임했으며, 같은 해 암살위협을 받았지만 목숨을 유지했다.

할리우드 속 TV,미국의 분열을 말하다 [1]

미쳐버린 미국, 할리우드와 TV는 어떻게 광기를 실어나르나 최근에 연달아 개봉한 <미녀 삼총사> <헐크> <컨페션>, 그리고 올해 초에 선보였던 <캐치 미 이프 유 캔>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섹시한 언니들을 내세워 소프트포르노의 쾌락을 노린 <미녀 삼총사>,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위반하면서까지 초록 괴물의 슬픔에 집착한 <헐크>, 미디어와 정치의 착란상을 요지경 속으로 묶어낸 <컨페션>, 유려한 솜씨를 가진 사기꾼이 날 잡아보라며 활개치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미국영화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외견상 아무런 닮은 점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한석 기자는 이들이 ’미국’영화라는 바로 그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 네편의 영화가 TV시리즈나 TV쇼를 통해 먼저 유명해진 다음 영화화됐거나 영화의 소재로 등장했다는 사실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대중문화 상품의 대대적인 인기는 그 사회의 집단 심리나 증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네편의 영화는 상이한 소재, 상이한 스타일에 불구하고 한결같이 미국인의 내면에 관해 고백한다. 놀랍게도 그들이 그려내는 자화상은 분열증 환자다. TV에 나와서 미친 척하고 ‘리얼리티 쇼’를 벌이던 척 배리스는 자신이 CIA 요원으로 30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고 고백한다(<컨페션>). 이같은 미디어와 정치의 광란을, 정한석 기자는 냉전시대 미국의 의인화라고 지적한다. <미녀 삼총사>의 세 미녀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보는 영화 속 남자/영화 밖 관객이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는 ‘강하고 섹시하다’는 이미지는 미국인들이 스스로에 대해 갖고 있는 긍정주의적 환영에 다름 아니다. 10대 사기꾼이 흉내내는 것들은 또 무엇인가(<캐치 미 이프 유 캔>)? 그 소년을 ‘캐치’하는 것은 무엇이 가짜이고 진짜인지 알 수 없는 미국 시스템을 붙잡는 것이다. <헐크>를 만든 리안 감독은 미국적 히어로를 통해 미국의 슬픔을 우두커니, 그러나 예리하게 들여다보는 이방인이다. TV에서 흘러나와 영화로 들어온 이들 네편의 영화는 미국사회에 넘실대는 분열증을 이러저리 실어나르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 우리는 미쳐가고 있다. 어쩔래? 마이클 무어가 바라보는 미국은 ‘미쳐버린’ 미국이다. 한때, 마이클 무어는 그런 미국을 (1994년부터 1995년까지 1회 60분 분량으로 에서 방영되었다)이라고 불렀고, 흑인 연기자와 함께 거리로 나가 뉴욕의 택시는 정말 흑인 승객의 승차를 거부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말하자면, 이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동시에 들어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 텔레비전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과 미국이 곧 텔레비전 국가라는 사실. 무엇보다도 그의 장기는 논쟁과 육탄전이지만, 숨은 효력은 연출과 조작에서 온다. 그는 ‘미국이 얼마나 미쳤는지’를 말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상황을 연출하고, 또 조작한다. 쇼를 한다! 이것이 마이클 무어가 미국의 관객을 사로잡은 전략이다. 현재 미국에서 그보다 더 쇼를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사기와 조작을 동원하여 쇼를 보여주고, 거기에 시선을 꽂고 웃고 있는 미국의 대중에게, 미국이 앓고 있는 분열증을 고스란히 되돌려 보여준다. 대중이 욕망하는 모습에 가장 가까이 갔을 때, 그 친근함으로 그들을 사로잡을 때, 숨겨진 분열의 증상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텔레비전은 영화보다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요즘 할리우드가 과거의 텔레비전 프로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현상은, 이미 거기에서 확인된 인기를 재영유해보겠다는 계산에 의해서지만, 그건 자연스럽게 그 안에 있던 어떤 증상까지도 같이 실어나르는 결과를 갖는다. 할리우드가 ‘과거의 텔레비전’ 문화를 끌어들이면서 대중의 욕망을 사로잡으려 하는 순간, 그것에 묻어 있는 분열증적 증상까지도 휘어들이게 된다. 올해 개봉한(개봉하는) <캐치 미 이프 유 캔> <컨페션> <미녀 삼총사2: 맥시멈 스피드> <헐크>는 모두 과거의 텔레비전 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거나, 그 소재이거나, 주인공들이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분열증적 증상들에 관한 몇 가지 보고서는 위의 영화를 바탕으로 쓰여질 수 있을 것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vs 10대의 이상한 분열 스필버그가 믿고 싶은 미국은, 미쳤지만 아름다운 미국이다. 여기에서는 미국을 속이고, 미국의 역사를 속여야만 쇼가 이루어지고, 스타가 탄생할 수 있다. 10대 소년 프랭크 에비그네일 주니어의 실제 사기행각과 그 전기를 영화로 옮긴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소재로 한다. 그러나 스필버그는 원작을 가져오며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 아버지의 모습을 바꿔놓았고, FBI 요원과 주인공 프랭크 사이의 관계를 심화했고(실제 프랭크 에버그네일 주니어는 크리스마스에 전화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당대의 대중문화를 투입하여 길 잃은 늑대소년의 변장술을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원작에서 종종 끊겨나가는 개연성들은 스필버그가 삽입해넣은 대중문화의 코드들로 다시 이어진다. 스필버그는 생각한 것이다. 10대 사기꾼 소년은 과연 무엇을 보고 흉내를 낼 것인가? H. 램버트의 코믹북 의 주인공 배리 앨런, 영화 (1965), (1961년에서 1966년까지 방영된 젊은 인턴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1957년에서 1966년까지 방영된 능력좋은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은 그런 이유로 쓰여졌다. 때문에, 스필버그는 당당하게 “그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지 프랭크 에버그네일의 자서전을 쓰려는 건 아니었다”고 못박는다. 사실이다. 오히려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두고 “<플레이하우스90>(1956년에서 1961년까지 방영된 텔레비전 시리즈) 같다”고 말하거나, “TV 라이브 쇼 같다”고 비유한다. 10대의 사기꾼은 텔레비전을 모방하여 미국의 시스템에 구멍을 내고, 또 그 이유로 텔레비전 스타로 인기를 얻는다. 오스카를 타고 싶을 때면 여지없이 역사를 끌고 들어오는 스필버그- <아미스타드> <칼라 퍼플>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가 그 역사를 외면하면서 넓힌 영화적인 풍성함은 ‘60년대의 순수’를 자극한다. 그러나 역사를 지우고 만든 복고적인 60년대의 아름다움은 지구상 한쪽에 ‘베트남이 없었던 척’한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오프닝으로 등장하는 쇼. 당대 최고의 가짜를 데려다놓고, 이 셋 중 누가 진짜 프랭크 에비그네일 주니어냐고 묻는 이상한 분열의 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 <컨페션> vs 냉전 시대의 기괴한 TV 프로듀서 조지 클루니가 엮어내는 미국은 인물을 미치게 하는 미국이다. 우선, <컨페션>은 아주 사적인 설정인 것처럼 보인다. 감독 조지 클루니는 말한다. “<컨페션>은 어느 날 깨어난 한 남자가 그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어느 것 하나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후미진 모텔 방에 벌거벗은 남자가 서 있고, 보이스 오버가 들려온다. “젊음은 곧 무한한 잠재력. 거칠게 없다. 까짓 아인슈타인 못 되란 법 있나. 근데 나이를 먹으면서 죄다 물 건너간다. 아인슈타인은커녕 개뿔도 못 되니.” 한 인간의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평범함에 대한 탄식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감독으로서 말하고 싶은 영화적인 욕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탄식에 앞서 들려오는 텔레비전에서의 목소리. “나 로널드 레이건은 미 대통령 직책을 충실히 이행한다….” 1981년이 시작되고 있고, 1970년대가 끝났다. 그 순간 한 남자는 자신의 인생이 끝이라고 말하고 있다. <컨페션>은 실존인물 척 배리스의 ‘공인되지 않은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다. 그 믿지 못할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 텔레비전 프로듀서였지만, 살인기계 CIA 요원이기도 했다.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가? 어느 것이 허구이고, 어느 것이 실재인가? <캐치 미 이프 유 캔>과 달리 <컨페션>은 그 질문 자체가 관건이고 대답이다. <데이팅게임>(1965∼73), <신혼부부쇼>(1966∼74), <땡쇼>(1976∼80). 텔레비전 역사학자가 “최근 미국 텔레비전 방송 중 가장 기괴한 프로그램”이라고 평하고, 저널리스트들이 “텔레비전을 망치는” 저속한 쇼라고 악평한 그 쇼의 프로듀서가 동시에 냉전의 무대 동유럽을 떠돌며 살인을 일삼던 정부의 대리인이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수많은 대중 앞에서 그들의 유치하고 저속한 노출증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자의 등에 걸쳐져 있는 냉전의 분위기. 말 그대로 <컨페션>에서는 척 배리스의 개인적인 분열의 삶 안으로 미국의 시대적인 분열증이 쏟아져 들어온다(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지라도). <컨페션>이 그 분열의 결을 묻혀 오는 것은 다름 아닌 척 배리스가 누구보다 대중 가까이 있는 텔레비전 쇼의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방송을 통해 개인적인 인준과 끝없는 섹스, 재정적인 성공을 찾았던 냉전 세대”, 척 배리스의 이야기는 미국 한 시기의 증상을 의인화하여 담아내고 있다. 국내 개봉을 하지는 않았지만, 폴 슈레이더의 <오토 포커스>(2002) 역시 <컨페션>과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주제와 소재를 다뤘다. <오토 포커스>는 가죽 비행사 재킷을 입고 텔레비전 시트콤 <호건스 히어로>(1965∼71)에 출연하여, 전 미국의 호인으로 통했던 배우 밥 크레인의 불운한 생애를 다룬다. 시트콤 <호건스 히어로>는 미국 신디케이션의 녹색 평원의 희망을 유포시켰다. 그러나 영화는 한 모텔 방에서 카메라의 삼각대를 쥐고 살해당하기까지의 그의 행로를 거꾸로 거슬러올라가며 고통스럽고, 염세적인 미국에 대한 논문 한편을 완성한다. 밥 크레인은 전 미국의 가족주의자로 통했지만, 결국 섹스에의 독을 매개로 양면적인 삶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또한 <호건스 히어로>가 밥 크레인을 인기 정상에 올려준 쇼이지만, 그는 전쟁 캠프 안에 갇혀 있는 죄수를 주인공으로 코믹함을 만드는 그 쇼를 “나치같다”고 경멸했고, 그의 부인은 “홀로코스트 코미디”라고 불렀다. 그들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일링 코미디, 해머 호러를 기억하시나요?

영국 장르영화의 명가 해머필름과 일링스튜디오 부활 움직임 전후 영국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일링스튜디오와 해머필름이 새 경영자를 맞아 전성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버라이어티>가 보도했다. 일링과 해머는 각각 ‘일링 코미디’와 ‘해머 호러’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장르영화의 명가들. 당대 비평가들에게는 말초적인 오락물이라는 경멸을 받았지만, 산업화에 대항해 전통적 공동체의 가치를 옹호한 일링의 코미디와,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아이콘 캐릭터를 앞세운 해머 필름의 고딕호러는 영국 안팎에서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두 회사가 새삼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근본적 이유는, 일링의 괴짜 코미디와 해머의 B급 호러가 최근의 판타지, 비주류적 코미디의 유행과 상통하기 때문. <버라이어티>는 팀 버튼의 <슬리피 할로우>나 해머의 대표 배우인 크리스토퍼 리의 인기, 코언 형제와 톰 행크스가 일링 영화의 리메이크에 착수한 점을 지적했다. 일링의 부활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파라마운트에서 <웨인스 월드> 등의 코미디 제작에 참여했던 프로듀서 바나비 톰슨. 톰슨은 동업자 우리 프루트만과 함께 이끌어온 자신의 영화사 프래자일필름과 일링을 병합해, 촬영소 임대를 주업으로 삼고 있는 일링을 제작사로 부흥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02년 일링의 간판 아래 <진심의 중요성>을 제작한 바 있는 톰슨은 미라맥스와 퍼스트 룩 계약(프로젝트에 관해 투자, 배급 우선권을 주는 계약)도 맺었고 TV쇼도 제작하고 있다. 현재 8천만 달러 규모로 개축에 들어간 일링 촬영소에는 <슈렉>의 프로듀서 존 윌리엄스가 작업할 CGI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영국 텔레콤의 모바일 콘텐츠 개발팀이 입주할 예정이다. 한편 일링은 스튜디오 내에서 운영 중인 코미디 클럽을 통해 아이디어와 신예 코미디언을 발굴해 TV와 영화로 가공한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70여편의 클래식호러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컬트팬층이 일링보다 확고한 해머 필름은 라이브러리 자체가 큰 재산이다. 1983년 이후 실질적 제작활동을 중단한 해머필름의 재건은 전직 언론인 테리 일로트와 배급사 퍼스트 인디펜던트 필름에서 일했던 피터 내시가 이끌고 있다. 광고 재벌 찰스 사치, 워너뮤직 영국 지사장 롭 디킨스, 출판사업가 윌리엄 시그하트 등이 이들이 확보한 투자자. 해머는 리메이크와 공포영화 전문 케이블채널과 같은 기본사업부터 신작 영화, 연극, 호러 캐릭터를 이용한 게임, 장난감 사업까지 진출한다는 구상이다. <버라이어티>는 RKO나 모노그램 같은 옛 스튜디오를 부활시키려는 할리우드의 시도는 좌절했지만, 일링과 해머는 특정 장르에 기반한 선명한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일링과 해머의 새 경영자들은, 투자자와 배우, 감독을 유혹할 수 있는 유서 깊은 브랜드는 출발점일 뿐 성공의 보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대다수 20대 멀티플렉스 관객에게 일링이나 해머는 낯선 이름이기 때문이다. 신규 관객층을 확보하고 멀티미디어 시대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일링과 해머는 과거 트레이드마크였던 일링 코미디의 영국적 정서나 해머 호러의 야하고 유치한 스타일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근 10년간 히트한 영국영화의 다수는 넓게 보아 일링 코미디”라는 톰슨의 해석이나 “복고적 이미지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도 성공적이었다. 스타일을 고급화하는 것이 관건이다”라는 일로트의 견해는 일링과 해머의 진로를 짐작게 한다. 김혜리

<여우계단> 주인공 송지효, 박한별

보이지 않는 고통 심했어요 원래는 28개지만 절실한 소망을 빌면 29번째 계단이 열리며 소원을 들어준다는 영화속 ‘여우계단’, 송지효(22)와 박한별(19)이야말로 29번째의 계단을 밟은 이들인지 모른다. 영화사 씨네2000이 올초 ‘여고괴담’ 시리즈 3편의 네 주인공을 뽑기 위해 만나본 이는 3000여명, 그 가운데 주인공 진성과 소희로 뽑힌 이들이니 말이다. 지난 26일 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선입견도 있었다. 꽤 독한 친구들이겠군, 영화 속처럼 서로에 대한 경쟁심도 만만찮지 않을까 하지만 신문사 옥상의 정원을 보고 “와~” 탄성을 지르며 겅중겅중 뛰는 송지효, 그를 보자마자 “언니, 우리가 (영화속에서) 동성애래, 책임져!” 어리광 부리는 박한별은 아직 어린 티가 채 가시지 않은 평범한 젊은이였다. “한별아, 언니가…언니가…” 말하는 송지효는 영락없는 큰 언니였다. 물론 최종 오디션에 12명이 올랐을 때 “싸~하던” 분위기를 그들은 잊지 못한다. “발레복 입고 오디션을 봐야 해서 7시간 동안 배 나올까봐 물 한모금 못 먹었어요. 너무 배고파 먹는 얘기한 게 처음 말한 거예요.” 영화 속 박한별은 무엇이든 학교 1등인 소희, 송지효는 모차르트를 이기지 못하는 살리에르 같은 진성 역을 맡았다. “진성만큼 끔찍할 정도로 남을 질투하고 시기한 일은 없어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음 속 한구석엔 그런 감정이 숨겨져 있지 않나요”(송) “요즘 애들 그런가 오히려 친구들을 보면 요즘엔 더 의리있는 편인 것 같은데….”(박) 촬영이 끝난 뒤에야 한 발자국 떨어져 편하게 이야기하지만, 배우가, 프로가 되는 과정은 진성과 소희가 흘린 땀과 피 못지 않았다. 인문고와 세무학과를 나온 송지효는 물론, 한국무용을 예고 시절 전공했던 박한별조차도 토슈즈를 신고 몇시간 서 있으면 발가락이 터져버렸다. “보여지는 건 1시간30분짜리지만 보이지 않는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송) “여고괴담 나오면 무조건 뜬다고 하도 얘기 들으니 두려워요. 사람들은 쉽게 찍어 쉽게 뜬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박) 여고괴담 시리즈가 배출한 배우들의 면면은 만만찮다. 최강희, 박진희(1편), 김민선, 이영진, 박예진(2편) 등이 그들. 송지효와 박한별이 부담을 느낄 만도 하다. 그래도 송지효는 좀 느긋한 편이다. “원래 제가 긴장을 안 하는 편이거든요. 오디션때도 제일 천하태평이란 소리도 들었고. 솔직히 좀 더 준비가 된 다음 영화를 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꽤 많은 CF를 했지만 “얼굴이 찍을 때마다 달라 보이는 탓인지” 길거리에 나서도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 생활이 좋다고 털털하게 말한다. 그러면서도 “영화 속에서 순간 집중력이 떨어져 보인다”며 장면을 이야기할 땐 신인답지 않다. 부천국제영화제에 페스티벌 레이디로 유독 박한별이 선정된 데 대해 서운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자 “사진을 찍어도 주로 한별이를 오래 찍더라고요. 같은 주인공인데 처음엔 시기하는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근데 동생 같아선지, 이젠 한별아 니가 해, 자꾸 그렇게 되더라고요.” 박한별은 소희와 닮은 구석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리틀앤젤스 활동을 하며 “학교, 연습, 학교, 연습” 때문에 처음 극장에 가서 본 게 “중1때 본 <여고괴담> 1편이었”을 정도. 중3때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돼 연기자의 준비를 했지만 고2때 인터넷에 친구들이 띄운 앨범사진 하나로 ‘얼짱’(얼굴짱) 소리를 들으며 유명해졌다. 전지현을 닮았다는 얘기는 하도 들어 이제는 “무감해졌지만” <여우계단> 덕에 “전지현이 아니라 박한별로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곧장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는 박한별과 달리 송지효는 “느긋하게 여행 좀 했음 좋겠다”고 말했다. 하긴 어떠랴. 이들은 이제 막 여우계단의 첫 계단을 디뎠을 뿐이다.

`남기남표` 여름방학 블록버스터,<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

■ Story 평화로운 어느 옛 고을에 서양귀신 드라큘라(임혁필)가 나타나 숫처녀들을 잡아가는 소동이 벌어진다. 세상의 난세에 대비하여 무술과 마술을 수련하던 갈갈이(박준형), 옥동자(정종철), 느끼남(이승환) 등 ‘갈갈이 패밀리’는 도사의 명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하산한다. 마을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모여든 장비와 무당과 강시는 오히려 드라큘라의 부하가 되고, 갈갈이 삼형제는 납치된 마을 유지의 딸 아씨(김다래)를 구하기 위해 드라큘라의 거처로 쳐들어간다. ■ Review 1989년 남기남 감독이 만든 <영구와 땡칠이>는 270만명의 아이들을 동원했다. 그 270만명의 아이들은 이제 더이상 어리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남기남 감독은 또 다른 지금의 아이들을 겨냥하여 ‘남기남표’ 여름방학용 블록버스터를 2003년에 선보인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인기몰이에 앞장선 갈갈이 삼형제가 시대에 뒤처진 공룡 <영구와 땡칠이>를 대신하고, 나머지 개그맨들 역시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등장하여 전체의 내용에 상관없이 귀에 익은 유행어와 성격과 장기를 선보인다. 그러나 만약 <개그콘서트>를 보지 않는 아이들이라면(혹은 보고도 웃지 않는 아이들, 또는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는 매우 재미없는 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갈갈이 패밀리와 드라큐라>는 인물들의 웃기는 외양, 또는 혼자 쓰러지고, 넘어지는 바보 같은 행동들, 그러니까 통상적으로 웃기다고 우기는 수준에 전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텔레비전 프로에서 재치있다고 환호받았던 그 말과 성격과 행동을 영화로 가져온다. 그래서 때때로 어느 대사는 초등학생의 유머 타이밍을 넘어서고, 그 순간만큼은 어른의 웃음도 유도한다. 영화적인 매끄러움과는 상관없이 ‘시청자’만이 눈치챌 수 있는 사전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일정한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므로, 옛날 배경에 웬 하수구 구멍이냐고 물어도 영화는 호응해주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주저앉혀 돈을 벌어보겠다는 제작자의 의도는 껄끄럽지만, 한 노장감독의 서바이벌 영화 만들기는 기어이 또 한번 기한을 맞춰냈다.

변태들,나가 있어!호모포비아를 조장하는 방송들

‘느끼하거나 무섭거나.’이 나라 공중파 방송에서 남성동성애자(게이)가 다뤄지는 방식이다. 남성동성애자 (캐릭터)는 코미디 프로그램과 추적 다큐프로그램의 단골 손님이다. 이 두 장르를 통해 이들은 극단적으로 희화되거나 위험집단으로 타자화된다. 90년대 중반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 동성애자가 공중파에 ‘데뷔’한 이래 10년 가까이 흘렀지만,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언감생심 동성애자 내부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이들의 일상을 찬찬히 응시하는 시선을 아직 이 나라의 공중파에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동성애자라는 낯선 존재 앞에 어찌 할 바를 모르는 ‘포비아’(공포증)의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은 조금 딱하다. 최근 한 코미디와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또다시 ‘호모포비아’(동성애 공포증)가 전파를 탔다. KBS2TV <개그콘서트> 갈갈이 삼형제의 ‘느끼남’은 계집애 같은 말투와 행동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게이 캐릭터를 대표한다. 은연중에 게이 캐릭터의 냄새를 풍기던 느끼남이 지난 6월22일 방송을 통해 드디어 커밍아웃을 했다. 아니 형제인 박준형에게 아우팅당했다. 아우팅의 과정은 이랬다. 박준형씨는 이날 ‘호모 XXX’라는 소재로 말장난을 시작했다. 개그맨들의 얼굴사진이 붙은 패널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이들에게 어울리는 ‘호모 XXX’가 무엇이냐고 묻는 방식이었다. ‘댄서 킴’으로 알려진 개그맨 김기수씨는 ‘호모 댄서스’라는 방식이었다. 마지막 질문으로 ‘느끼남’의 사진이 보여졌다. 이어지는 박씨의 자문자답. “호모 느끼스라구요? 아닙니다.” 정답은 “호모”. 관객의 느물느물한 웃음이 터졌고, 느끼남은 특유의 눈웃음으로 ‘애매호모’한 분위기를 돋웠다. ‘느끼함+자아도취+여성스러움=남성동성애자.’ 고전적인 공식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모처럼만의 노골적인 호모포비아였다. 게이 캐릭터를 지겹게 울궈 먹으면서도 끝끝내 커밍아웃하지 않는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오히려 솔직했다. 홍석천씨의 ‘쁘아종’부터 숨겨진 게이 캐릭터는 개그의 단골 소재였다. 한 유명 디자이너의 여성스런 말투를 흉내내는 것이 개그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지는 오래다. 그러나 어떤 캐릭터도 느끼남처럼 당당하게 커밍아웃하지 않았다. 물론 좋게 말해서다. 당연히 이성애자의 웃음은 동성애자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을 게다. KBS의 정통 시사다큐 프로그램 <추적 60분>도 잇따라 호모포비아임을 커밍아웃했다. 제목도 살벌한 ‘에이즈 혈액이 당신을 노린다’ 편은 지난 7월19일 전파를 탔다.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된 10대 소녀 이야기를 다룬 이날 방송에서 동성애자는 다시 한번 에이즈 확산의 원흉으로 지목당했다. 소녀에게 수혈된 ‘나쁜 피’의 헌혈자가 남성동성애자였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예의 그 흐린 창과 코맹맹이의 증언으로 남성동성애자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헌혈을 통해 에이즈를 확산시키는지 증명했다. 감염된 피를 헌혈한 사람이 남성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계집애같이 논다”는 증언까지 끌어들였다. ‘나쁜 피’의 주인공과 인터뷰는 남성동성애자를 파렴치한 집단으로 낙인찍는 화룡점정이었다. ‘에이즈 혈액이 당신을 노린다’ 편이 방송되자 <추적 60분> 홈페이지는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자)들이 득달같이 모여들었다. 게시판에는 ‘동성애자=정신이상자, 신이 만든 불량품’, ‘엽기, 변태 동성애자 때려죽이자’ 등 부화뇌동이 판을 쳤다. 몇몇 네티즌들이 ‘에이즈 수혈감염보다 당신들의 호모포비아가 더 무섭다’고 반박하기는 했지만 이미 공중파가 전국에 뿌려놓은 편견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에이즈를 매개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에둘러’ 드러내는 ‘에이즈 혈액이 당신을 노린다’는 앞으로 반복될 동성애 혐오증의 전조로 읽힌다. 최근의 시사다큐 프로그램은 동성애자를 대놓고 ‘변태’로 몰지는 못한다. 그만큼은 이 사회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증거다. 호모포비아의 현재형은 동성애자를 ‘청소년을 물들이는 오염집단’, ‘에이즈를 퍼뜨리는 위험집단’으로 은유하는 것이다. 하긴 동성애자들이 지워진 존재였던 시절, 동성애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오히려 동성애자의 존재를 증명해 동성애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했다는 미국의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물론 남성동성애자들이 모두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나 <파니 핑크> 등 서구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들이 묘사하듯 이성애자 여성의 가장 좋은 친구, 관계의 현자들은 아니다. 일본 야오이 만화의 꽃미남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이 보여준 촌스러운 재현방식은 이 나라 공중파의 현주소를 확인케 한다. 그들의 ‘개혁 의지’가 협소한 정치의 울타리에만 갇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참, 이 나라 공중파에서 여성동성애자(레즈비언)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은 곧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 인권운동의 고전적인 명제, 침묵은 곧 죽음이다, 가 왜 진실인지를 공중파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증거하고 있다. 게이들은 조롱당하는 정체성마저 감지덕지할 형편이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