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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야비…냉소…, 배용준 변했다

배용준(30)은 하얀 얼굴과 부드러운 미소 뒤에 단단한 고집을 숨기고 있는 배우다. 그가 텔레비전 연기자 생활 10년 만에 첫 영화로 선택한 작품은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모두들 의외라 했다. 배경이 조선시대인지라 상투 틀고 안경을 벗어야 했는 데다 충무로에 다른 배우의 이름이 공공연히 떠돌던 작품이다. 매니지먼트 회사를 포함해 주변에서 선뜻 찬성하는 이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내가 먼저 시나리오를 찾아 읽고 영화사에 연락”할 정도면 옹골찬 고집 없이는 힘들었을 터. “원래 제가 친구랑 게임을 할 때도 조건을 불리하게 만들기를 좋아해요. 성취욕이 있잖아요. 승부사 같은 기질이랄까.” <스캔들…>은 배용준의 10년 연기인생에서 하나의 ‘승부수’일지 모른다. 꼭 상투 틀고 수염 붙였서만은 아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정조시대 희대의 바람둥이 조원. 야심만만한 사촌누이 조씨부인(이미숙)과 내기를 걸고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정절녀 숙부인(전도연)의 유혹에 나선다. 세 인물 가운데 영화 속에서 가장 격렬한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가 조원이다. “너무 부드럽고 착한 말투”라는 말을 몇번씩 들어가면서 그는 느물거림과 야비함, 그러면서 세상사에 냉소적이지만 후반부 비극적 사랑을 하는 조원을 통해 자신에게 숨어있던 팔색의 스펙트럼을 펼쳐보였다. 찍는 과정은 “단 한 장면도 쉽게 찍은 게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상투를 틀고 있으니 피가 안 통해 “생각이 마비될 것 같”았다. “나름대로 준비 많이 했죠. 조선시대 나온 영화부터 생활사 책들까지 다 뒤져보고, 근데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순서대로 찍지도 않고 후시녹음하는 것도 낯설었고….” 배용준은 영화 ‘신인’임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여러 역을 해왔지만 사실 제 이미지는 하나죠. 아마 내 색이 파랑색이라면 이제까진 그 색과 비슷한 색을 덧칠해온 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는 아주 다른 원색일 거에요. 앞으론 이렇게 다른 원색을 칠하고 싶어요.” 90년대초 충무로에서 연출부로 시작한 그는 “유학갈 돈을 마련하고 싶어”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전 끼 없어요. 노력이에요. 어렸을 땐 내성적이라 남들 앞에서 노래도 못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를 사랑하는 팬들에 대한 책임감이 날 이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더라.” “이전엔 남들에게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보이기도 했죠. 고집세고. 근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없어져요. 어떨 땐 내가 현실과 타협하는 게 아닌가 싶어 씁쓸할 때도 있지만…”이라면서도 그는 이제 “사람들과 깊이 오래가는 관계를 맺고 싶다”고 말했다. “나를 오빠, 아들, 친동생처럼 여기는 팬들”이 바꿔놓은 그의 모습이다. 배용준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반자동 카메라엔 꽤 손길이 닿은 흔적이 보였다. 카메라에 대한 배용준의 생각은 바로 자신의 삶, 자신의 연기에 대한 생각이기도 했다. “디지털은 느낌이 싫어요. 뭔가 공들이지 않은 듯한 느낌이랄까. 디지털은 그냥 공짜잖아요. 마음에 안 들면 지워도 되고. 상이 한번 맺히면 이건 지울 수 없잖아요. 그래서 신중하게 눌러야죠.” 그 신중한 첫번째 선택, <스캔들…>은 내달 2일 개봉한다.

안방극장! 그런데 5.1채널은 되나요?

극장에서 듣는 박진감 넘치는 생생한 음향을 안방에서도 들을 수 있는 돌비 디지털 5.1 입체음향 서비스(개념도)를 제공하는 영화 채널들이 잇따라 등장해 눈길을 끈다. 시제이 미디어가 다음달 1일 개국할 예정인 신규 영화오락 채널 엑스티엠(XTM)의 개국과 함께 5.1 입체음향 서비스를 실시하는 데 이어 유료 영화 채널인 캐치온에서도 곧 일부 영화들을 같은 서비스로 제공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위성방송 사업자인 스카이라이프는 5월부터 국내 최초로 돌비 디지털 5.1 사운드를 유사 주문형 비디오(Near Video On Demand) 서비스인 ‘스카이초이스’ 13개 채널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돌비 디지털 5.1이란 정면과 좌우 서라운드 스피커와 1개의 저음용 스피커로 구성된 디지털 사운드 시스템의 총칭으로 실제 극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원음을 제공한다. 하지만 영화채널을 통해 만족할 만한 음질을 맛볼 수 있는 가구가 아직은 많지 않다는 데 한계가 있다. 우선 고품질의 오디오 시스템과 고해상 텔레비전은 필수다. 현재 이런 고품질의 음향시스템을 갖춘 가구가 53만에 이르고 고해상 텔레비전 보유가구도 170만을 넘어섰지만, 이들 가구도 스카이라이프에 가입해야 하며, 각 방송 채널에서 송신하는 돌비 디지털 5.1 입체음향을 수신할 수 있는 디지털 셋톱박스도 갖춰야 한다. 케이블채널에서는 이런 고품질 음향을 수신해 서비스할 수 있는 기술적 장치를 보유한 종합유선방송국(에스오)은 2군데밖에 없어 서비스 제공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스카이라이프는 5월에 출시한 두번째 셋톱박스인 쌍방향 셋톱박스를 통해 돌비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는데 구매 가격은 안테나 등을 포함해 9만9000원선이라고 밝혔다. 기존 셋톱박스를 갖고 있는 가입자의 경우에는 7만7000원을 내면 교체가 가능하다고 한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한국영화 회고록 신상옥 14

신필림 탄생, 기업적 영화제작 불붙다 “배우·작가 전부 전속이었지” 1961년과 63년 두 차례 고시와 법령을 통해 이루어진 영화사 통폐합 과정에서 등록 요건에 미치지 못한 군소 프로덕션들은 사라졌고, ‘신상옥프로덕션’은 ‘주식회사 신필림’으로 전환했다. 이처럼 1960년대 기업적인 영화사의 등장은 군사정부의 영화정책과 연관이 깊다. 그러나 <성춘향>의 성공이 ‘잘 만들어진 국산영화’의 시장 장악력을 입증한 한편, 투기성 자본이 성행하던 조건은 영화인들에게도 합리적인 체계와 질서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것이 정부가 강행한 구조조정의 결과이든 아니든, 대형영화사 신필림의 등장은 새로운 영화 제작 패턴을 보여주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때 아마 영화사가 100여개 있었나? 영화가 된다, 하니까 모두 다 영화한다고 나섰으니까. ‘독립푸로’의 그 부작용으로 불미스런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영화라는 게 갬블이니까, 영화 맨들지 않고 도망간다든가 이런 것도 있고, 망하면 도망가고 없어지고. 이래선 안 되갔다, 정비해야 되갔다 생각한 게 군사정권이다. 그래서 영화사 정비도 했고. 그러나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봐야지. 앞서도 얘기했지만 영화가 시설로 되는 건 아니니까. 정비하고 나서는 영화사가 16갠가 몇갠가 남았는데, 그것도 모순인 게, 한날 한시에 조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부작용이 많았다. 기계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할 수도 있고, 창고만 빌리면 다 이백평 스타디오가 됐다. 이백평이라는 게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방음이 되든지 안 되든지 촬영 못할 데도 아무 기준없이 덮어놓고 이백평만 되면 됐으니까. 완전히 시행착오지. 신필림 사무실은 그때 서울의 동명빌딩, 동명빌딩이라는 게 지금 뭐 자릴까? 거기 있었고, 스타디오(원효로 스튜디오)는 동양제과 옛날 공장 자리. 철도까지 들어와 있는 커다란 창고였는데, 철도 양옆으로 동양제과하고 우리가 같이 있었다. 시설은 카메라가 한 여남은개. 왜 그런고 하니 동시녹음 카메라가 아니라 비싸지 않았으니까. 거기서 동시녹음은 힘들지, 기차 소리 때문에. 안양촬영소에서밖에 동시녹음 못했다. 또 줌렌즈가 한두개 있었는데, ‘나크’라고 주로 일본에서 맨든 걸 사다 썼다. 아마 <로맨스 그레이>부터가 줌렌즈 본격 사용일거야. 그전 한국영화는 줌렌즈가 없었지 아마. <성춘향> 때 시네마스코프 하느라고 ‘울트라 스코프’라고 독일제 렌즈를 사다 썼고, 낮에 밤신 찍는 기술, 그건 <연산군>이 처음이다. 그때 기술적인 문제로 천연색을 어떻게 찍느냐 하는 문제가 많이 논의됐었다. 그러니까 낮에 밤신 찍는 기술이라든가. 대체로 낮에 밤장면 찍는 줄을 몰랐거든. 그때는 전체 라이트 비출 수가 없으니까 대략 일광을 이용해서 밤신처럼 찍었다. 그때 우리 주로 쓰던 게 코닥필름이니까 코닥필름의 적성에 맞는 특수한 기술들, 그런 걸 많이 이용했다. 이런 게 기술적으로 특이하다면 특이한 건데, 역시 회사가 있으니까 됐지, 개인이 하기는 참 힘들었을 것이다. 신필림이 기업이 돼가지고 영화를 양산했다 하는 것은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피라미트처럼 됐다고 봐야지. 예를 들어 영화 하나 나오기 위해서 찍기는 둘을 찍어야 되고, 둘 찍기 위해서 배우가 넷 있어야 되는 식으로 영화는 하나 나오는데 아래는 길게 쫙 퍼진다. 배우(스타급 배우) 하나에 시나리오라이터 하나씩 붙어야 되는 형편이니까. 도금봉도 그때 전속이고, 배우들 전부 전속이었는데, 그 사람들도 그 사람들 욕망이 있으니까 거기 맞춰서 찍어야 할 거 아냐? 배우뿐 아니고 시나리오라이터도 전부 전속이었다. 임희재, 김강윤, 곽일로, 이런 사람들. 임희재는 <사랑방>(<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쓰고, <성춘향>도 쓰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김강윤이는 <상록수> 쓴 사람. 그 외에 이상현이라는 사람, 임춘희라는 친구, 또 <덕이>(텔레비전 드라마) 쓴 이희우, 주로 그런 사람들이 활동했다. 감독은 본인들이 작품을 가져오든가 아니면 우리가 지원하든가, 일종의 하청이지. 이만희 위시해서 이형표, 김수용, 뭐 어지간한 감독은 다 했다. 지금 감독협회 있는 임원식, 테레비의 대부처럼 있는 김수동이, 모두 그때 감독들이었다.대담 신상옥·이기림정리 이기림/ 영화사 연구자 marie320@hanmail.net

영화사 신문 제21호(1952~1953)

영화사신문 제21호 The Cine History 격주간·발행 씨네21·편집인 김재희 1922 ~ 1924 시네마스코프 시대 도래 2.55 대 1 와이드 스크린 <성의> 개봉, 스펙터클 앞세워 TV공세 대응 1952년 들어 가정에 텔레비전 보유대수가 크게 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 영화계가 ‘하드웨어’ 부문에 혁명에 가까운 기술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1952년 화면의 입체감을 강조한 ‘시네라마’(Cinerama)와 화면에서 사자가 관객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은 3차원 영화 <브와나 데블>이 등장하더니, 1953년에는 정상 화면보다 가로로 훨씬 긴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 화면을 이용한 영화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시네마스코프로 시작된 ‘와이드 스크린’이 TV화면을 훨씬 뛰어넘는 웅장함을 선사하고 있어 향후 영화제작의 대세가 될지도 모른다”고 전망하고 있다. 영화제작 역사의 한 ‘혁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폭스사가 채용, 첫 번째 시네마스코프 영화인 헨리 코스터(Henry Koster) 감독의 <성의>. 1952년 9월 뉴욕에서 선보인 <이것이 시네라마다>(This is Cinerama)는 3대의 특수 카메라를 동시에 가동해 세 방향에서 화면을 영사함으로써 관객을 완전히 삼키게 되는, 롤러코스터에 탄 듯한 스릴을 제공하는 기행영화였다. 극장 근처의 약국들은 영화를 보다가 멀미하는 관객에게 멀미약을 팔아 한몫 잡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최근 개봉한 이십세기 폭스사의 <성의(聖衣)>(The Robe)는 스크린의 가로:세로비율이 2.55 대 1로, 영화의 탄생 이후 표준으로 간주돼온 1.33 대 1에 비해 가로 방향으로 훨씬 긴 화면이다. 폭스는 텔레비전 보유대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영화산업의 사활을 걸고 파격적 화면비율을 채택한 것이다. <성의> 역시 시네마스코프라는 새로운 스펙터클과 깊은 신앙을 결합시켜 큰 성공을 거뒀는데, 이 영화 홍보담당자들은 시네마스코프의 넓은 이미지가 고대 그리스 연극의 타원형 무대와 같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관객은 마치 영화장면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십세기 폭스의 성공에 이어 마릴린 먼로 주연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와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역시 연이어 와이드 스크린으로 제작돼 이제 시네마스코프는 시장의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성(性), 외설이라구? 예술이야! 할리우드 청교도적 제작강령 조롱, 성욕 그린 <푸른 달> 상영 밀려드는 TV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 할리우드는 안방극장에서 다루기 힘든 좀더 논쟁적인 주제인 성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제작자들은 좀더 과감한 주제의 제작윤리강령(Production Code) 비승인 영화들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제작강령은 더욱 약화됐다. 그 포문을 연 것이 독립제작자인 오토 프레밍거다. 영화산업 자체 검열기구인 미국영화협회(MPAA: Motion Picture Association of America)는 오토 프레밍거의 <푸른 달>(1953)의 승인을 거부했지만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이 영화를 개봉했다. 프레밍거는 계속해서 제작강령을 조롱하며 그의 작품을 MPAA의 승인없이 배급했고, 그럼으로써 그동안 자유로운 창작에 방해가 됐던 제작강령은 실효성을 잃어갔으며 오히려 제작강령을 거부한 영화는 역(逆)광고효과를 얻기도 했다. 프레밍거의 과감한 코미디 <푸른 달>은 문제적 처녀 매기 맥나마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윌리엄 홀덴의 성적 욕망을 그린 영화로, 이 영화엔 예전에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터부시됐던 ‘처녀’라든가 ‘유혹하다’라는 단어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 개봉을 계기로 할리우드는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청교도적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뉴요커들 말라깽이 유럽공주에 ‘홀딱’ 네덜란드 신인 오드리 헵번 <로마의 휴일>로 ‘만인의 연인’ 윌리엄 와일러의 <로마의 휴일>은 막을 열자마자 뉴욕 관객을 단숨에 매료시켰다. 유럽의 한 젊은 공주가 로마에서 보내는 낭만적인 하루에 대한 보고서인 이 영화는 뉴요커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첫 시사를 마쳤다. 성공적인 시사로 흥행에 장밋빛 기대를 품게 한 사람은 무엇보다 이 영화로 첫 스크린 데뷔에 나선 네덜란드산 신인 여배우 오드리 헵번이었다. 사람들은 글래머러스한 여배우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헵번의 어린아이와 같은 깡마른 체구, 동경하는 듯 빛나는 미소, 그리고 유난히 크고 인상적인 눈매에서 더할 수 없이 가벼운 천상의 우아함을 보았던 것이다. 네덜란드 남작부인과 영국계 아일랜드인 은행가의 딸로 태어난 24살의 헵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점령하의 네덜란드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녀의 독특한 깡마른 체구는 종종 기아 상태에 놓여 있었던 그녀의 열악한 성장기를 증명하는 듯한데, 흡사 어린아이와 같이 가느다란 그녀의 몸매는 오히려 글래머러스한 여배우들의 전통 속에서 돋보이는 그녀만의 차별적인 매력으로 작용했다. 헵번은 원래 발레리나가 꿈이었지만 자신이 클래식 발레를 하기엔 너무 키가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쟁이 끝날 즈음 런던 뮤지컬의 합창단에 들어갔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작가 콜레트에게 발탁되어 <지지>의 브로드웨이 공연 주역을 따내게 되었고, <로마의 휴일> 제작진들은 <지지>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그녀를 주저없이 공주 역으로 캐스팅하게 된 것이다. <로마의 휴일>은 공식 방문차 로마에 들른 유럽의 공주가 신분이 주는 제약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무단 이탈을 감행하는 하루 동안의 자유로운 외출과 로맨스를 그린 영화다. 오드리 헵번은 첫 스크린 데뷔작인 이 영화로 만인의 연인이 되었다. 중국영화, 아 옛날이여 중화인민공화국 들어 제작편수 급감, 그나마 대부분 선전용 1930∼40년대 유명 국제영화제에서 독창성을 인정받았던 중국영화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 따르면, 건국 이후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해온 중국의 영화 제작편수는 건국 3년째인 올해(1952) 모두 8편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그나마도 올해 제작된 8편의 영화들은 최근 2∼3년 새 제작된 <중국의 딸들> <백의의 천사> <강철전사> 등 ‘선전영화’들과 엇비슷하다는 지적이다. 평론가들은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맞바꿔도 괜찮을 정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건국 이전 1930∼40년대의 좌익 영화인들은 고유한 문화와 낯선 영화미학으로 빚은 시각적이며 중국적인 예술을 창조해냈다. 그 결과 당시 영화들은 중국 정치상황의 사실적 기록이자 소시민인 대중의 대변자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예컨대 1934년 좌익 성향의 영화인들이 상하이에서 제작한 <어부의 노래>(漁光曲, 감독 차이추성 蔡楚生)는 이듬해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평론가들은 “검열과 정치적 탄압을 피할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중국영화 사상 최초로 사용된 변증법적 몽타주 기법은 형식적으로도 고도의 경지를 일궈냈다”고 평가했다. 국공내전 같은 혼란의 시기조차 <봄날의 강물은 동쪽으로 흐른다>(1947) 등 뛰어난 작품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공산당의 영화제작에 대한 통제 때문에 영화계의 숨통이 죄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할리우드 해외로케 붐 잠재울까 영화배우조합 “자국시장 부진 원인” 성명, 상반된 주장도 있어 8천명이 넘는 할리우드의 프로배우들을 대변하는 미국 영화배우조합(the Screen Actors Guild)은 할리우드영화의 해외 제작편수의 증가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는 리포트를 발표했다. 1953년에 발표된 이 리포트에 따르면, 당해 영화 제작편수가 사상 유례없는 최저 수치를 기록했다고 유감을 표했다. 더구나 이런 현상은 즉시 개선될 전망이 희박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 리포트는 현 미국 영화시장의 부진은 무엇보다 값비싼 영화 신기술의 할리우드 선점(先占)과 해외 제작편수의 증가 때문으로 보고 이를 강하게 비난했는데, 할리우드 영화감독들도 “미국영화의 국외 제작”이 국내 영화시장을 잠식하는 것에 저항해서 싸울 것과 “미국 내에서의 영화제작을 장려할 것”을 서약했다. 그러나 미국영화의 해외 제작 증가가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 반드시 국익에 반하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영화의 해외 제작은 무엇보다 와이드 스크린이라는 기술적 변화 때문이었는데, 와이드 스크린은 시원스런 스펙터클을 담기 위해 스튜디오 세트 촬영보다 이국적 지방색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외 제작은 국내 제작보다 예산이 적게 든다는 이점이 있었다. 또한 해외에서 촬영함으로써 미국 제작자들은 자기네 영화를 세계의 곳곳에서 환영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여러 나라 배우들을 더욱 쉽게 끌어모으기도 했다. 이렇듯 영화와 스타들의 국경없는 자유로운 교류, 국가간의 합작과 해외 로케이션 영화의 증가는 관객에게 좀더 다양한 각국 문화 체험과 함께 할리우드영화만이 유일한 종류의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 미국과 등지나? <라임라이트> 이후 재입국 거부 당해, 공산주의 동조 혐의 1947년 <베르두씨> 이후 5년 만인 1952년 <라임라이트>를 연출한 63살의 거장 찰리 채플린이 미국을 영영 떠날 것으로 보인다. 채플린의 한 측근은 “영화 <라임라이트> 시사와 홍보를 위해 고국인 영국에 머물고 있는 채플린이 유럽의 한 국가로 이주해 정착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채플린이 이주를 고려하고 있는 국가는 스위스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매카시즘이 기승을 떨치는 와중, 채플린은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와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같은 ‘알려진 공산주의자’와의 교분으로 인해 공산주의 동조자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설상가상으로 올해에는 뮤직홀 코미디에 대한 정치성이 배제된 채플린의 자서전적 영화 <라임라이트>가 재향군인회가 주도한 전국적 보이콧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 시민이 아니었던 채플린은 미국에 재입국할 허가를 우선 확보한 뒤 영화 홍보를 위한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지만, 출국 직후인 9월 미국 법무장관은 채플린이 미국 재입국 허가를 받으려면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대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재향군인회 역시 채플린이 미국에 돌아와서 정치적 입장을 밝히기 전까지 <라임라이트>에 대한 보이콧을 계속 하겠다고 결의했다. 채플린은 의회반미활동위원회(HUAC: 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앞에서 강제 증언했던 할리우드 동료들이 겪은 시련에 자신을 맡기기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그의 유럽 망명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1930년대 <시티 라이트>(1931)와 <모던 타임즈>(1936) 등을 통해 현대 문명의 기계만능주의와 인간소외를 풍자했던 채플린은 40년대 들어 영화 속에서 정치적인 색채를 강화해갔다. 특히 5년 전 <베르두씨>에서는 제국주의 전쟁의 범죄성을 파헤치기도 해, 미국의 보수세력으로부터 공산주의자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정치적 박해로 인해 오랜 영화활동 중단 이후 만든 <라임라이트>는 정치색과는 무관한 영화로, 전성기가 지난 코미디언과 발레리나의 사랑을 통하여 삶에 대한 열정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이전 채플린 영화와 마찬가지로 채플린이 감독·제작·각본·주연을 도맡았다. 단 신 들 미조구치 겐지 <우게츠 이야기>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수상 그 나라 고유의 전통과 문화에 깊이 천착한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1953년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한 미조구치 겐지의 신작 <우게츠 이야기>는 탐미적 영상과 정제된 세련됨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격정적이면서 명상적인 이 영화는 일본 전통 장르인 역사적 프레스코화와 애가(哀歌), 환상 이야기와 가부키를 포괄하고 있다. <우게츠 이야기>는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중세의 한 마을, 한 가난한 도공이 신비스런 여자(유령)에게 홀려 자신의 헌신적인 아내 곁을 떠났다가 후회하고 집에 돌아와보니 아내 역시 유령으로 변해버렸다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다. 미조구치는 아키나리 베다의 18세기 괴담과 프랑스 작가 모파상에게서 이야기를 착안했다고 회상했다. 데보라 카, 우아한 장미의 섹시 유혹 품위있고 우아한 이미지로 영국의 장미로 불리던 데보라 카가 일대 변신을 했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 며칠 전의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군인의 금지된 사랑을 그린 제임스 존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프레드 진네만의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그녀는 우아함 속에 숨겨진 섹슈얼리티를 과감하게 보여주었다. 데보라 카는 1947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멜로드라마와 모험영화 등에 출연해 주로 장식적인 역할을 하는 데 그쳤었다. 그러나 진네만의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그녀는 부정(不貞)한 부인 카렌 홈즈를 연기하면서 이전의 제약을 벗어버리고, 상대역 버트 랭커스터와 열정적인 해변 러브신을 연출했다.

40년을 이어온 <스타트랙>의 매력 [3]

<스타트랙> 핵심 체크 엔터프라이즈호 샌프란시스코에서 건조된 첫 번째 엔터프라이즈, 정식명칭 U.S.S. 엔터프라이즈 NCC-1701호는 미국의 개척정신을 이어받은 우주선이었다. 최소한 엔터프라이즈를 지휘했던 미국 출신 세 번째 선장 제임스 T. 커크는 그렇게 자부했을 것이다. 400명 넘는 승무원을 싣고 우주공간을 도약하는 ‘워프’ 시설과 순간이동 장치를 갖추었던 우주선. 그러나 호전적인 행성 클링곤과의 전투를 겪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 커크 선장의 뒤를 이어 <스타트랙> 시리즈를 이어받은 장 뤽 피카드 선장은 성능이 개선된 U.S.S. 엔터프라이즈 NCC-1701-D호를 지휘했다. 승무원과 승객 1012명을 실을 수 있는 엔터프라이즈-D, U.S.S.는 워프 속도가 빨라졌을 뿐만 아니라 중추부분이 위험에 처했을 경우 선체를 분리할 수 있는 기능도 갖추었다. 이 분리 기능은 클링곤과의 전투에서 유용하게 쓰였던 방어수단. <스타트랙> 시리즈는 이외에도 엔터프라이즈-E, U.S.S.와 엔터프라이즈 NX-01 등을 선보였고, 이들 대부분은 선체의 기본 형태가 원형이었다. <스타트랙> 제1세대 제임스 T. 커크 선장이 이끌었던 1960년대 세대. 은하연합 사상 최연소 선장이었던 커크 선장을 비롯해 전형적인 외계인의 외모를 한 일등항해사 스포크와 동양인 엔지니어 줄루 등이 인기를 끌었다. 지구 출신인 커크 선장은 따뜻하고 로맨틱한 심성과 은하연합을 향한 헌신적인 충성이 돋보인 인물이었다. 스물다섯살짜리 외아들을 잃고, 사랑하는 여자를 후회 속에 떠나보낸 아픔을 겪으면서도, 은하연합과 엔터프라이즈호와 함께 끝까지 운명을 같이한 모범적인 선장. 과거와 미래가 겹치면서 한번 더 모습을 드러내, 다음 세대에 속하는 피카드 선장을 도와준 적이 있다. 커크를 충실하게 보좌한 스포크는 길쭉한 눈썹과 뾰족한 귀를 가진, <스타트랙> 시리즈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인물이다. 지구인 어머니와 불칸족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인간의 감정과 불칸 행성 특유의 엄격한 태도 사이에서 갈등하는 운명. 외교와 과학 양쪽에서 재능을 발휘했고, 예술에도 폭넓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인종을 포용하겠다는 <스타트랙>의 신조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캐릭터는 줄루 대위다. 고향은 샌프란시스코지만, 동양 출신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는 캐릭터. 펜싱과 동양무술, 오래된 총기 수집이 취미다. 줄루는 트렉키들이 제작사 앞에 몰려가 항의시위를 벌이면서 <스타트랙: 보이저> 시리즈에 그를 출연시켜 달라고 요구했을 정도로 인기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외모만 동양인일 뿐, 전혀 동양인 같지 않다는 점에서, 겉만 동양인이라는 뜻의 속어 ‘줄루’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스코티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기적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했던 수석 엔지니어 몽고메리 스코트와 커크 선장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의사 닥터 맥코이 등이 엔터프라이즈호의 모험에 동승했다. <스타트랙> 넥스트 제너레이션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피카드 선장이 지휘하는 일행. 첫 번째 시리즈보다 한 세기 뒤인 24세기를 무대로 활동했으며, 20년 차이를 두고 제작된 만큼, 발달된 특수효과를 선보였다. 여성 승무원들의 비중도 훨씬 늘어났다. <엑스맨>의 패트릭 스튜어트가 연기한 피카드 선장은 아내도 아이도 없으며, 위기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고, 가끔은 어린 시절 익혔던 피아노도 연주하는 선장. 외교부문에서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클링곤이나 로물루스와의 접촉에서 일선을 담당했다. 부함장 윌리엄 T. 라이커는 두번이나 함장으로 승진할 기회를 거절하면서 ‘넘버 원’ 피카드 곁에 ‘넘버 투’로 머무른 심복. 따뜻하고 밝은 심성을 가지고 있지만, 두살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도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스타트랙> 열 번째 극영화 <네메시스>는 라이커와 카운슬러 디아나 트로이의 결혼식 장면으로 시작된다. 지구와 베타조이드의 피가 반씩 섞인 디아나는 텔레파시 능력이 있고 현명하며 동정심이 많다. 언어에도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편. 라이커와 디아나는 제각기 다른 상대와 풍부한 로맨스를 엮어가는 성향이 있다. 안드로이드 장교 데이타는 이름 그대로 백과사전에 필적하는 지식을 축적한 두뇌를 가진 첨단기계다. 그러나 스스로 발전하는 두뇌 덕분에,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이분법을 무너뜨리면서 끊임없이 존재에 관한 의문을 던진다. 피카드 선장의 오랜 친구의 미망인인 닥터 베벌리 크러셔가 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엔터프라이즈호 담당의사다. 불칸과 로물루스 <스타트랙> 시리즈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행성 중 일부이며, 그 관계에 대해선 많은 팬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붉은색의 메마른 행성 불칸은 은하연합의 일원. 그곳에 사는 종족은 이성을 앞세우고 논리적이며 엄격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 스포크가 불칸의 피를 이어받은 인물이다. 반면 쌍둥이 행성 레무스와 함께 그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한 로물루스는 호전적인 전사 종족이 거주하는 행성이다. 신기한 것은 전혀 다른 불칸과 로물루스가 같은 기원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 수천년 전, 불칸이 내전에 휩싸였을 때 일부 주민이 고향을 떠나 정착한 행성이 로물루스인 것이다. 그러나 시리즈가 지속되면서 로물루스가 은하연합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오히려 불칸이 고립정책을 취하기도 했다. 칸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극영화 시리즈 중 한편인 <스타트랙: 칸의 역습>의 악당이며, <스타트랙> 공식 사이트가 선정한 가장 매력적인 악당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세기 지구에서 태어난 칸은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도 했던 초인적인 인물이었다. 추방당한 뒤 2세기가 넘도록 우주를 떠돌던 칸은 커크 선장과는 오랜 앙숙. 이미 한번 커크에게 패한 상처가 있는 칸은 복수와 ‘제네시스’ 계획 탈취를 위해 다시 한번 엔터프라이즈호에 도전한다. 인도 혈통을 지녔다. Q 인간의 이해 범위를 뛰어넘는 외계의 존재. 에너지와 시간을 통제할 수 있고, 개별적인 인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체로 공존한다.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과 통찰력을 가진 Q는 데네브 행성을 찾은 피카드 선장 일행을 동물에 가까운 야만적인 종족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자신의 시험에 들었던 엔터프라이즈호를 놓아줄 무렵에 이르러서는 인간이란 독특하고 신기한 생명체라고 마음을 바꿔먹기도. 하나로 엉겨 있지만 그 안에서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성(性)이 없으면서도 가족의 개념은 있고, 그 처음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존재다. 때로는 그들 중 대표격인 하나만을 Q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김현정 parady@hani.co.kr ▶ 40년을 이어온 <스타트랙>의 매력 [1] ▶ 40년을 이어온 <스타트랙>의 매력 [2] ▶ 40년을 이어온 <스타트랙>의 매력 [3]

[새 영화] <카우보이 비밥>

서기 2071년‥화성에 폭발사고가 터졌다 위상차 공간 게이트 덕분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혹성을 오가는 서기 2071년의 미래. 화성에서 트럭 한대가 폭발하며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져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경찰은 3억 우롱이란 현상금을 내건다. 스파이크가 이 현상금을 못본 척 지나칠 리 없다. 스파이크 스피겔. 98년 <도쿄 TV>와 <와우!와우!>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으로 세상에 등장한 현상금 사냥꾼, 일명 카우보이다. 스파이크는 비밥호의 식구들- 제트, 페이, 에도 그리고 천재강아지 아인과 함께 페이가 우연히 사건현장에서 촬영한 흐릿한 화면을 단서 삼아 범인을 찾아나선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어두운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렸다는 점에서 영화의 악당 빈센트는 어찌 보면 스파이크의 또다른 분신이다. 빈센트는 마이크로 로봇을 이용한 인체실험의 희생물이었고 자신의 연인도 잊은 채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돌아왔다. 그래서 “언제나 혼자지. 마치 꿈 속에서 사는 듯한 사람”이라는 초반부의 독백은 빈센트를, 동시에 스파이크를 말하는 듯 들린다. 일본에서 방영된 1998년 TV 시리즈 극장판, 현상금 사냥꾼들 이야기 텔레비전 시리즈는 1940년대 즉흥적인 재즈음악 ‘비밥’의 음율처럼 자유롭게 캐릭터들을 내세우고 빼내며 때론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때론 가슴 저리도록 아프고 무겁게 에피소드들을 흘려보냈다. 이에 비해 극장판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은 명백히 스파이크를 단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텔레비전 시리즈를 보지 않았던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 구도로 만들어진 셈이다. 그렇다고 시리즈가 원래 풍기던 자유로우면서도 허무한 분위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색채는 더 강해졌다. 마지막 사랑하던 이를 기억해내는 빈센트의 추락을 지켜보는 옛 연인과 스파이크, 그들 위로 장자의 나비가 가루를 흩뿌릴 때 영화는 꿈과 현실의 경계, 기억과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까지 이른다. 역시 간노 요코가 음악을 맡았으며, 모노톤의 쓸쓸한 오프닝 장면은 <인랑>의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이 만들었다. 2일 씨어터 2.0, 중앙시네마 2곳에서 개봉한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사진 그루브 제공

<옥탑방 고양이>부터 <좋은 사람>까지,새로 등장한 남자 캐릭터들

귀염둥이 전성시대 못생긴 주제에 귀엽지도 않으면 죽어야 한다. 최소한 연애생명은 끝이다. 게임의 법칙이다. 아무리 개겨봤자 소용없다. 무조건 귀여워야 사랑받는다. 깜찍해야 살아남는다. 그닥 잘생기지도 않은 당신이 연애의 정글에서 강퇴당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자들은 물론이다. 남자들도 열외는 아니다. 어쩌면 남자가 더하다. <좋은 사람>의 조한선(태평)을 보라. <옥탑방 고양이>의 김래원(경민)을 잊었는가. <별을 쏘다>의 조인성(성태)은 또 얼마나 깜찍했던가. 아∼ 이 드라마들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연애 황금기, 결혼 적령기의 여성들이 그 푼수들의 깜찍함에 자지러지고, 양아치들의 성공담에 심금을 울렸던가. 깨물어주고 싶어 안달이었던가. 이토록 훌륭한 모델을 동원해서 그토록 다양한 ‘교본’들을 날마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아직도 조한선 따라잡기, 김래원 흉내내기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남성 칠거지악’에 해당되는 중죄인이다. 당신이 못생긴 여자는 용서해도 뚱뚱한 건 용서 못한다고 여자친구를 협박하는 동안 당신의 여자친구는 못생긴 남자는 용서해도 뻣뻣한 놈은 용서 못한다는 신념을 굳혀가고 있다. 왜냐고? 귀여운 건 노력하면 되니까. 지금 드라마에서 벌이고 있는 ‘귀여운 남자’ 캠페인의 교훈은 바로 그것이 아닌가. 귀엽지 않은 당신, 떠나라. 아니면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개인기를 연마하고, 깜찍한 표정을 연습하라. 불철주야 텔레비전을 보면서. 당신은 이의를 달아서는 안 된다. 조인성, 김래원, 조한선은 얼굴부터 먹어준다고? 아니다. 당신이 드라마를 보지 않은 탓이다. 조, 김, 조 트리오는 2% 부족한 미남으로 ‘설정’된다. 물론 2% 부족한 미모는 귀여움으로 보충돼 100% 남성으로 완성된다. 맞다. 그 설정이 문제다. 굉장히 멋있으면서 뭔가 모자란 것으로 설정되는 것. 그래서 안 생긴 당신도 ‘하면 된다’는 이데올로기가 유포된다. 드라마를 본 당신의 여자친구는 말한다. “못생겼으면 귀엽기라도 해야 될 거 아냐.” 그래서 가끔 그들이 깜찍할수록 나는 끔찍하다. 그런데 조, 김, 조 트리오는 너도 알고, 나도 알다시피 흠잡을 데 없는 미남이다. 깎은 듯이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무척 잘생겼다. 그런데도 방송사는 “안 예쁘다”고 우긴다. 신문들은 입을 모아 “귀여운 남자가 뜬다, 안 예쁜 데도 뜬다”고 입에 발린 칭찬을 일삼는다. 이즈음이면 귀여우면 성공한다, 는 신화까지 가세한다. 까막눈인 풋내기 연기자(조인성)는 정상급 배우로 일떠서고, 등쳐먹는 고시생(김래원)은 검사님으로 발딱 서고, 근본없는 양아치(조한선)는 마침내 뼈대있는 민주 경찰로 환골탈태한다. 귀여움이라는 필살의 무기로 일신우일신, 일취월장하여 각고의 노력없이 마침내 성공신화가 탄생한다. 물론 잘생긴 바보온달 곁에는 저고리 고름 입에 문 ‘차칸’ 평강공주가 있다(아마 이 평강공주들은 틀림없이 드라마 작가 언니들의 환생일 터이다). <좋은 사람>의 소유진, <옥탑방 고양이>의 정다빈 역시 2% 부족한 미인들이다. 심지어 기자 오빠들한테 “평범한 얼굴”이라는 심한 말까지 듣는다. 그러나 방송 못 타는 필부필녀들에 비하면 무지하게 예쁜 얼굴이다. 안 예쁘다는 말 앞에는 “김희선에 비해서, 장동건과 비교하자면”이라는 말이 생략돼 있는 것이다. 물론 평강공주들도 전가의 보도, 귀여움으로 2%의 갈증을 채운다. 사실 그 얼굴에 뭔 짓을 한들 안 귀엽겠는가. 게다가 물심양면으로 바보온달을 성공시키고야 마는 구원의 여성상이 아닌가. 작금의 강호의 도는 남녀불문하고 귀천 따지지 않고 귀여워야 사랑받는다, 는 명제로 정리된다. 바야흐로 백마 탄 왕자님들의 시대는 ‘거’했다. <옥탑방 고양이>의 이현우는 헛물만 켜다 채였고, <좋은 사람>의 신하균은 숨겨진 거짓말이 탄로나 나쁜 사람으로 몰릴 신세다. 단 한번의 윙크로 뭇 여성들을 녹이던 왕자님들은 이제 바보온달의 성공담을 빛내주는 고정 조연으로 연명하고 있다. 무릇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다운 법. 이제 백마 탄 왕자님들은 백마 타고 떠나야 한다. <사랑을 그대 품 안에>의 차인표, <토마토>의 김석훈 같은 고위층 왕자님들은 서서히 몰락해가는 이 나라 재벌들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고 있다. 강호의 남성들이여, 왕자님들과 함께 그대들의 시대도 저물고 있다. 왕자님들을 흠모하는 여성들에게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 보지도 마라”고 타박할 수 있었던 꽃시절은 지나갔다. “못생긴 게 성격도 나쁘다”는 타박은 “못생긴 주제에 귀엽지도 않다”는 답으로 당신의 가슴팍에 꽂히고 있다. 다 자업자득이니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지어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무조건 귀여울지어다. 스마일~ (주의: 안 멋있는 당신이 깜찍한 척 하다가는 “깬다”는 구박만 당하기 십상이다. 세상에는 노력으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깜찍한 짓도 깜찍한 애들이 해야 깜찍해진다.)신윤동욱/ <한겨레> 기자 syuk@hani.co.kr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3]

영화? 세계의 터무니없음을 드러내는 표현수단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인터뷰 2년 전 인터뷰를 한 뒤, <밝은 미래>와 <도플갱어> 두편을 보았다. 당신의 영화에는 자신의 사상을 다소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카리스마> <인간합격> <밝은 미래> 유형과, 장르의 틀을 허물고 부수면서 새로운 지형으로 나아가는 <큐어> <카이로> <도플갱어> 유형이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당신을 창작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 * * 나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자기자신과 영화 자체의 갈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과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영화라는 틀이 서로 어우러져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밝은 미래>는 영화의 역사성보다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실감쪽에 좀더 강하게 뿌리를 두고 만들었다. 한편 <도플갱어>는 영화 그 자체에 좀더 깊이 몰입해서 만들었다. 아울러 작가가 살아 있는 실감을 ‘현실’이라고 하고 영화의 역사성을 어떤 의미에서 ‘장르’라고 부른다. 현실과 장르, 작품에 따라서 비율의 차는 있겠지만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영화는 비주류다 이전에 당신은, 일본에서 영화는 비주류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런 상황은 여전한 것 같다. 얼마 전 개봉했던 <춤추는 대수사선2>가 대성공을 거두었어도 그것은 TV의 연장선으로 보일 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열악한 상황이 일부 일본 감독들에게는 오히려 독특한 영화를 만들게 하는 조건처럼 보인다. 현재의 상황, 조건이 당신의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 * * 일본에서 현재 영화는 전혀 메인 미디어가 아니다. 영화를 만들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애니메이션이나 텔레비전에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극명하다. 이런 일본의 상황에서도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인간은, 웬만큼 영화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나도 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난 영화가 좋아서 영화를 만든다. 돈을 벌 목적도 아니고 유명해질 생각도 없다. 이런 감독의 존재를 연명시키고 있는 것이 일본 영화계의 최대의 특징일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익도 명예도 아닌 ‘역사에 남을 걸작’을 만들 날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카이로>같은 영화는 마치 유럽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전 당신은 누벨바그 등 유럽영화에 심취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지옥의 경비원> 이후 만든 영화들에서 공포영화에 막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당신이 장르영화, 그중에서도 특히 공포영화에 헌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 * 난 유럽영화도 좋아하지만 할리우드영화도 좋아한다. 그래서 예산이 빠듯한 일본영화로 어떻게 하면 할리우드영화에 버금가는 오락성을 창출할 수 있을까 옛날부터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듭해왔다. 그러던 중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공포영화라고 하는 장르에 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질의 공포는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충분히 오락으로 성립한다. 이것은 옛날부터의 영화이론이다. | 장르가 된 구로자와 기요시 <도플갱어>를 보고는, 당신이 만드는 장르영화는 이제 완전히 ‘구로사와 기요시’만의 것이 되었다, 는 생각이 들었다. <강령>은 장르의 자장 안에서도 자신만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도플갱어>는 아예 장르의 구조 자체를 바꿔버린다는 느낌이다. 당신은 영화라는 매체에서 어떻게 장르를 활용하는가. * * * 영화의 장르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다. 영화는 대개 100분 정도인데 그건 왜일까? 물론 역사적인 우연이 몇번 거듭되다 보니 그렇게 됐겠지만, 아무래도 장르라고 하는 것은 100분을 법칙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항상 이 100분을 어떻게 구축해갈까 생각한다. <강령>에서는 한개나 두개 정도의 장르를 사용하려고 생각했고 <도플갱어>에서는 사용할 만한 장르는 다 사용해보자는 각오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장르와는 전혀 동떨어진 영화로 만들려고 했던 <밝은 미래>까지도 최종적으로 100분 정도의 길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나 자신한테 문제가 있었나 아니면 영화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밝은 미래>의 마지막은 묘했다. 체 게바라의 티셔츠를 입은 불량스러운 아이들에게 과연 우리의 미래가 있는 것일까? 몇년 전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요즘의 일본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그래서 흥미롭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 * 물론 젊은이에게는 미래가 있다. 나한테도 있고, 누구라도 나름대로 다 미래가 있다. 이것은 ‘일본의 미래’, ‘한국의 미래’, ‘세계의 미래’라고 하는 것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나는 젊은이들에게만 ‘일본의 미래’를 다 맡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아무리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보기엔 우리 기성세대가 이해 못할 존재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는 것은 곧 매력적인 것이다. 반대로 이해는 위선이다. 인간이 타인을 애써 무리하게 이해하려고 할 때, 오히려 ‘굴욕’이라든가 ‘굴종’이 작용한다. 나는 그런 게 싫다.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적어도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한다. |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러나 대화한다. <밝은 미래>의 해파리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보살핌이 필요하고 건드리면 독을 뿜는 존재는 젊은 세대를 말하는 것인가. * * * 그렇다. 해파리는 원래 바다 생물이니까 바다로 돌아가면 되지만, 인간은 젊은이든 그렇지 않든 사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젊은이들을 ‘반사회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해파리가 아니다. 사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들을 사회 밖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나는 존재를 인정하는 시점에서 출발하고 싶다. <밝은 미래>에서는 기성시대와 젊은 세대의 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그런 세대간의 대화가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 * * 대화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젊은이뿐 아니라 타인이라면 누구라도)는 내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고 있다. 그걸 알기 위해서도 대화는 필요하다. 젊은이들이 알고 있은 것을 다 가르쳐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탐색해가면서 결코 이해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런 인간이 존재한다고 하는 사실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 <도플갱어>의 하야사키를 인공 신체를 연구하는 학자로 설정한 이유는. * * *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트럭으로 옮길 수 있는 것, 그리고 많이 흔들리면 부서지는 것, 그런 기준으로 이것저것 생각하다 문득 떠올랐다. <도플갱어>에서 왜 하야사키는 도플갱어를 보고도 죽지 않는 건가. <카이로>에서는 ‘귀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그는 단지 자신의 내면을 본 것뿐인가? 당신이 생각하는 도플갱어는 무엇인가. * * * 마지막에 등장하는 하야사키는 어느 하야사키일까라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실을 말하면 줄거리상 하야사키 본인은 이미 죽었다. 분명히 이해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도플갱어는 하야사키한테 살해당했고, 하야사키 자신도 차에 깔려 죽고, 마지막에 두 사람이 제3의 하야사키로 등장한다는 구조이다. 현실에서는 전혀 있을 수 없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지만. | <도플갱어>, 인간과 세계의 분열 하야사키와 도플갱어가 함께 등장할 때, 화면분할이 빈번하게 쓰인다. 그것은 그들의 상황만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서 점유한 영역을 말하는 것 같다. 화면분할의 의도는 무엇인가. * * * 말한 대로다. 이 영화에서는 하나의 인간이 분열하여, 동시에 그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도 분열을 시작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것을 영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나는 두 사람이 하나의 세계에서 갈등하고 있는 장면으로서 합성화면을, 두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장면으로서는 편집에 의해 교체를, 그리고 두 사람의 인간이 두개의 세계에 공존하고 있는 장면으로서 분할화면을 사용하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서 미국영화에서 유행했던 분할화면을 언젠가는 해보리라고 30년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실현된 셈이다. 도플갱어가 죽은 뒤, 그의 존재는 마치 하야사키 안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야사키의 내면에 숨겨진 것이 드러났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야사키가 도플갱어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 * * 하야사키는 모든 걸 깨달은 전혀 별개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가 손에 넣은 것은 새로운 세계다. 그것은 일명 ‘자유’라는 이름의…. <도플갱어>의 이야기는 불쑥불쑥 튀어드는 사건들로 연결된다. 그건 난데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필요없는’ 장면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예를 들어 하야사키를 쫓던 무라카미는,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트럭에 깔려 죽어버린다. 그들에게 세상이란 불가해하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무엇이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 *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는 대답할 지식도 자격도 없다. 그건 모르겠다. 세계는 불가해하고 터무니없다는 사실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사에 의한 영화만이 이런 터무니없는 세상을 터무니없는 사실 그대로 그릴 수 있는 양질의 표현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 나는 희망을 원하는가? 당신의 영화는 늘 사회에서 이탈하거나 멀어져가는 사람을 그려왔다. <큐어> <카리스마> <카이로>를 지배하는 것은 비관적인 정조다. 그런데 <밝은 미래>와 <도플갱어>의 결말에서는 묘한 희망 같은 것이 엿보인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 당신은 비관적인가, 희망적인가. * * * 나는 항상 희망적인 영화를 찍으려고 한다. 그러나 개인의 희망이 사회적 가치와 일치하지는 않는다. 때로 인간은 완전히 반사회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절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부자유스러운 상황이 갑자기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혀 배려없이 행한 행동이 남을 구할 수도 있다. <카이로>까지 나는 ‘사랑과 증오’, ‘사회와 반사회’, ‘자유와 부자유’라고 하는 것을 가능한 한 대등한 가치에 두도록 유념했었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는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밝은 미래>부터는 좀더 명확한 ‘사랑’, ‘사회’, ‘자유’의 방향으로 발을 내디디려고 생각한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인지, 9·11 사태를 겪어서일까 아니면, 단순히 내 나이 탓일까. 앞으로 당신이 꼭 만들고 싶은 영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 * *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나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은 절대 변경 불가능한 현실이 버티고 있을 것이다. 첫 번째 대답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지금까지의 나 자신과 영화 그 자체와의 갈등 속에서 작품을 성립시켜왔다. 또 한 가지 요소, 즉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하는 요소를 가미하면 어떨까, 한번 실험해보고 싶다.김봉석 lotusid@hani.co.kr ▶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1] ▶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2] ▶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3]

[Interview 2] \"<조폭 마누라> 스타일의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

<로빈슨 표류기> 배우 양귀매 양귀매가 부산에 다시 왔다. 그녀는 "솔직히 언제 왔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면서도, "그 때보다 활기 있고 풍부해졌다"고 놀라워한다. 그녀로부터 <애정만세>에서 20분간 울어대던 도시의 그 슬픈 여자를 상상하는 것은 이제 어렵다. 해운대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활력과 매력으로 양귀매가 이끄는 인터뷰. -차이밍량과 많은 작업을 했었다. 이번에 린쳉솅과 작업을 해보니 어떤 차이가 있던가. =사람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그 둘은 성장배경도 다르다. 그래서 영화를 찍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한 가지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진실되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영화를 찍는 방식에서의 그 차이란? =차이밍량과 <애정만세>를 작업할 때는 감독이 정해 놓은 공간에서만 연기를 한 반면 <로빈슨 표류기>에서는 정해지지 않은 공간에서 연기를 해야 했다. 인물과 실제로 가까워지기 위해 여러 장소를 돌아보았다. -<애정만세>로 부산을 찾았을 때 후반부 우는 장면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번에도 그만큼 힘든 장면이 있나? =이번데도 그런 장면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 첸상치와 술에 취해서 우울하게 나무 밑에 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린쳉솅 감독이 요구한 건 실제로 술을 마시고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술 알레르기가 있어서 맥주병에 술을 따라내고 와인을 조금 넣어 마셨다. 한 두어 모금 마셨는데, 정말로 취해서 일어나질 못할 정도였다. 촬영이 끝나고, 카메라가 모두 이동하고, 감독이 됐다고 했는데도 계속 그러고 있었다. 정말 취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 장면은 굉장히 좋았다. -당신의 언어로 이번 영화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차이밍량과 영화를 찍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예를 들면 영화의 마지막에 왜 결과가 없이 흐지부지 끝나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 실제로 고독이나 상실감을 느낄 때면 ‘아, 그때 그 장면의 심정과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영화 역시 결말이 없어 보이지만 그 감정은 몇 년 뒤에 당신들도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차이밍량과 작업을 많이 했으므로 자연스럽게 파트너가 이강생이었다. 친솅치와 연기하며 달라진 점은. = 큰 차이는 없다. -다른 점이 있다. 친솅치가 더 잘생겼다. = 하긴, 만약에 내가 극중 인물이라면 절대로 이강생과는 사귀지 않을 거다. 이건 정말 극중 얘기다.(웃음) -<구멍> 이후 <더블비전>까지 4년 동안 영화작업이 없었다. 이유는. =일반적으로 지금 대만의 영화감독들은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자기 영화에 출연시키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지난 4년 동안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도 이번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그 4년 동안 줄곧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만을 했다. -그렇다. 당신에게는 ‘아름답지만, 외로운 여자’라는 이미지가 있다 =이런 이미지가 왜 심어졌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생활은 안정적이고 풍족하다. 내가 정말 내 영화 속 인물의 상황이라면 답답해서 죽을 것이다. 나는 직설적이고 활기차기 때문에 마음에 고민이 있을 때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털어버리는 성격이다. 그런데 감독들이 나에게 항상 요구하는 것은 고독하고 말도 없는 그런 역이다. 하지만, 진짜 내가 그렇다면 아마 질식사할거다. -차기 계획은? =앞으로 찍고 싶은 영화 스타일이 하나 있다. <조폭 마누라>다. 굉장히 가볍게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자매지간의 정, 비록 조폭과 조폭이지만 형제간의 의리. 굉장히 가볍고 심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낸 그런 영화를 찍어 보고 싶다. -이강생은 이번에 감독으로 부산에 왔다. 당신은 어떤가. =원하지 않는다. 누군가도 감독이 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연기를 하는 생활이 만족스럽다. 적어도 배우를 하면서는 이 인물 저 인물을 하며 누릴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감독을 한다는 건 누리고 즐긴다기보다는 자기의 인생을 투자해야한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감독이 되면 여러 방면으로 공헌을 해야 하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글 정한석 / 사진 손홍주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주 지사 당선

‘돌아온 터미네이터’가 ‘희망의 땅’ 캘리포니아를 접수했다. 배우 출신으론 1966년 로널드 레이건이 캘리포니아주 지사로 당선된 뒤 두번째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47년 미국에 이민간 아널드 슈워제네거(56)는 70년대 숱한 보디빌딩 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날린 뒤 최정상의 액션배우로, 이번엔 정치인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이번에 철저하게 할리우드 방식으로 선거에 임했다. 주지사 출마선언을 8월6일 〈에이비시방송〉의 ‘제이 리노 투나잇쇼’에서 발표해 미국 전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선거 초반 상한가를 치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자 9월 중순엔 역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아내와 함께 출연했다. 공정성 시비는 있었지만, 여성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이 토크쇼 출연과 맞물리며 그의 지지율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는 대신 후보들간의 텔레비전 토론엔 단 한차례만 응했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도 최대한 선거전에 활용했다. 유세 때마다 “터미네이트 데이비스”(데이비스 주지사를 퇴출시키자)를 외쳤다. 〈워싱턴포스트〉는 “그는 유권자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슈워제네거는 할리우드에선 드물게 공화당을 지지해왔지만, 낙태와 총기 규제에 찬성하는 등 정통 공화당 주류에선 약간 벗어나 있다. 이런 점이 이번 선거에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모으는 데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의 아내는 존 에프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딸인 마리아 슈라이버(47). 성추문, 히틀러 찬양 발언 등 잇단 악재 속에서 슈워제네거를 구해낸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엔비시방송〉의 인기 앵커이자 민주당원인 슈라이버는 슈워제네거의 공화당 색깔을 탈색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3일 잇따르는 성추문 폭로로 슈워제네거가 궁지에 몰리자 슈라이버는 “내 남편은 에이 학점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옹호했다. 이튿날 거의 모든 신문엔 슈라이버가 남편에게 키스하는 사진이 실렸고, 이걸로 민주당의 성추문 공세는 완전히 힘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