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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1997)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2]

박기형 감독 인터뷰 소통이 단절되는 순간이 바로 두려움의 시작 “제발 호러 전문 감독이라고 쓰지 말아주세요. 다음엔 코미디 하고 싶어요.” 다소 의외지만 박기형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1996년 단편 <과대망상>에서 올해 <아카시아>까지 7년간 어두운 상상력에 짓눌렸던 탓이다. 어쩌면 <아카시아> 이후 한동안은 박기형의 공포영화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오랜 시간 공포영화를 고민했던 그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아카시아>는 <여고괴담>의 제목이 될 뻔했다고 들었다. 오래전부터 아카시아에 대한 공포영화적 이미지가 있었던 것 같다. 아카시아에 대한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다. 아카시아향이란 게 따로 방향제로 팔 만큼 향기롭고 꽃이 피면 예쁘고. 어릴 때 노래 있었잖나.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그런 식으로, 아련하고 예쁘고 추억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아카시아 나무가 일종의 괴담에도 등장한다. 가령 워낙 생명력이 강해서 주변 식물을 고사시킨다든지, 어느 무덤을 팠더니 아카시아 나무뿌리가 관을 뚫고 시체를 옭아매고 있더라, 그래서 집안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났었다라든지, 일본에서 우리나라 식물을 고사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아카시아 나무를 심었다든지. 어느 하나도 정확한 근거가 있는 얘기는 아닌데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호러영화의 기본개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고괴담>을 할 때도 <여고괴담>이라는 제목이 강하긴 한데 고등학교 시절이 갖는 아련하고 예쁜 기억 이면에 삭막하고 힘들었던 느낌이 표현될 수 있는 것 같아서 <아카시아>라는 제목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아카시아>는 배우들이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기 속내를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고 마지막에 이르기 전까지 감정을 자제해야 한다. 그것은 정말 너무 넘쳐서도 너무 모자라서도 안 되는 미묘한 균형을 표현하는 작업인데 연기를 통제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은 어떤 것이었나. 배우들한테 그런 말을 많이 했는데, 표정이 읽히면 안 된다, 당신이 지금 여기서 어떤 상태인지가 상대배우에게 읽히면 안 된다, 그게 극중 인물이 견지할 입장일 수 있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다른 가족에게 읽히지 않게 해야 한다, 라고. 그러면서 긴장이 쌓이고 그러면서 갈림길에 서는 영화라고. 그런데 배우 입장에선 자기가 어떤 심정인지 아는데 그걸 표현하는 걸 최소단위로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어려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안으로 쌓는 연기를 했고 그런 면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심혜진, 김진근의 캐스팅은 어떻게 결정했나? 심혜진은 오랜만에 주연을 한 영화이고 김진근은 낯선 배우인데. 김진근은 주연급으로는 처음 나오는 배우인데 사적으론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배우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높다는 건 배우로서 기본이지만 <아카시아>에 캐스팅한 데는 ‘인성’(人性)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다. 굉장히 성실한 사람인데 영화에 나오는 성실한 가장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 그런 성실함이 어떤 사건에 엉켰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 보통 때 부드럽고 신사적인데 저 사람, 화를 내면 엄청 무서울 거 같다는 느낌, 섬뜩함이 이 영화에 필요했다. 심혜진은 시나리오 볼 때부터 딱 맞는다는 느낌이 있었고 제작사쪽에서도 미리 얘기가 오간 상태였다. 요즘 영화들 보면 30대 여배우들이 맡을 역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그 배우들에게 기회가 많아졌으면 싶다. 배우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의 생명력을 길게 만드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심혜진이라는 배우를 쓸 수 있는 기획이라는 사실이 내가 이 영화에 좀더 관심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박기형 감독의 영화는 <여고괴담>에서 <아카시아>까지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비판의식을 깔고 있다. <여고괴담>의 학교, 늙은 여우와 미친 개, <비밀>에서 미조의 부모, 원조교제하는 어른 등, 기성세대는 썩어 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질식당한다. 그렇게 볼 수 있겠다. 일부러 그랬냐고? 글쎄.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기성세대라는 게 어떻게 보면 가진 사람, 이룬 사람, 그런 걸 텐데 반감 같은 게 있나보다. 영화를 하면서 뭔가 비판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의무감, 양심, 그런 건지도 모르고. 순수한 영화적 재미만으로 가는 게 태생적으로 자꾸 안 되는 것 같다. 또 다른 공통점으로 당신의 영화들에서 사람들은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을 추구한다. <여고괴담>에서 진주가 그랬고 <비밀>에선 텔레파시를 통한 소통이 중요하다. <아카시아>에서는 아이와 나무의 대화를 단절시키려는 데서 문제가 벌어진다. 소통하려는 의지와 그것의 단절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사람끼리 부딪치면서 살아야 하는 거고. 개인적으로도 사람들 만나면 어떻게 소통하지, 걱정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소통이 안 되면 어떻게 되는지 겁나기도 하고. <여고괴담> <비밀> <아카시아> 세편 모두 피를 뿌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고괴담> 때 피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었다는 일화가 떠오르는데 늘 피가 많이 필요한 영화를 찍는다. 피가 흥건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나.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이 규모가 큰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방식이 필요했다. 사람과 공간만으로 진행되는 영화가 극적 정점에 이르면, 일종의 이 영화 안에서의 스펙터클로서 화면을 온통 피로 적시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제한된 틀에서 움직이던 영화가 쫙 펼쳐지는 느낌을 주자면 뭔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뭘까, 하다보면 피가 나오게 된다. 자꾸 그런 그림이 떠오르고 대중영화의 미덕인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호러는 피의 장르’라고 말했는데 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호러가 여러 가지 이미지로 변형되지만 본질적인 것은 피의 이미지가 아닌가. 김지운 감독과 했던 인터뷰를 보니까 스스로 한국적인 공포영화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엔 미국 공포영화와 대비되는 동양적 공포가 무엇인지 고민했다면 얼마 전부터 일본영화와 다른 공포에 대해 궁리가 많다. 일본 공포영화는 동양적 공포의 모범적인 텍스트로 보이는데…. 모르겠다. <큐어>가 정말 잘 만든 공포영화이긴 한데 한국 관객에겐 어떨까, 생각해보면 반반인 것 같다. 왜 그럴까? 너무 냉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독하고 너무 정확한데 조금 떨어져서 보면 너무 차가운 느낌. 그래서 ‘신파’라는 정서가 어느 정도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처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과대망상>을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전문적으로 공포나 스릴러 장르를 찍을 감독이 나오겠구나 싶었다. <아카시아>까지 장편 세편이 모두 공포영화 혹은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영화였다. 이런 장르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과대망상>에선 느끼지 못했지만 겉으로 공포영화라는 장르로 장식을 하면서도 지금 사회에 대한 비판적 관찰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공포영화 장르를 택한 것은 그냥 테크닉에 대한 관심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뭔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테크닉을 사용하긴 하지만 앞뒤를 잘 맞추는 쾌감은 사실 찾고 싶지 않다. 난 호러에서 기술보다는 정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호러나 스릴러 장르를 택하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보는 관점 때문인 것 같다. 같은 이야기라도 다르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 계속 호러를 하게 된 이유는 그동안 내 정서가 좀 어두워서일 순 있지만 내 정서가 밝아지면 전혀 다른 장르를 할 수 있을 거다. 달라지지 않겠나? 사실 호러영화 만들면 만드는 재미는 있는데 너무 힘들다. 밝고 신나는 얘기가 아니니까 만드는 내내 밝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이 별로 없다. 감독 입장에선 시나리오 쓰는 내내, 촬영하는 내내, 편집하는 내내 그런 무드에 젖어 있으니까 그렇게 산다는 게 힘들다. <과대망상> 때부터 7∼8년 그렇게 지내니까 다른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나 코미디처럼 다른 장르에 손을 대고 싶다. 멜로는 <비밀> 때 해봤는데 나한테 멜로 감성은 별로 없구나 싶어서 멜로드라마는 아닌 것 같고. 지금 내가 다른 장르의 영화를 하고 싶어한다는 소문을 많이 내서 호러말고 다른 기획이나 시나리오 의뢰가 왔으면 싶다. (웃음) 글 남동철 namdong@hani.co.kr·사진 정진환 terran61@hani.co.kr ▶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1] ▶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2]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1]

어떤 일그러진 ‘스위트홈’의 기억 현대가족의 이면을 그린 또 하나의 공포영화 <아카시아> 그리고 감독 박기형 가족은 괴물이다. <장화, 홍련>이나 처럼 박기형 감독의 신작 <아카시아>도 가족의 폐부에 기생하는 비극을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그려낸다. 화사한 꽃무늬로 단장한 집이 기괴한 사이코드라마의 무대가 됐듯, 단란한 가족을 위해 마련한 4인용 식탁에 죽은 아이들의 냉기가 자리하듯, 앙상했던 아카시아 나무가 꽃을 피울 때 그 속에선 죽음의 향기가 배어난다. 2003년의 가족호러 3부작라 불러도 좋을 세편 가운데 <아카시아>는 못지않게 불온한 영화다. “내 쉴 곳은 오직 집, 내 집뿐”이라고 노래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가족의 초상은 뒤틀리고 일그러진다. <아카시아>는 가족이 괴물이 된 이유를 따지고 들어가는 영화다. <여고괴담>에서 우리의 학창 시절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들추어냈던 박기형은 이 영화에서 가족의 포근함 속에 깃든 잔인함에 주목한다. 가족의 사랑이 집착과 강박으로 변할 때, 진실은 외면하고픈 추악한 실체를 하나둘 드러낸다. 핏줄에 대한 강박, 악몽이 된 출산 <아카시아>는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한 상류층 가정이 아이를 입양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홈드라마로 시작해 호러물의 관습을 거쳐 비극의 여운으로 마무리짓는 이 영화에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세 가지 이미지가 있다. 첫 번째는 뭉크의 <절규>를 닮은 그림이고 두 번째는 집안을 장식한 붉은 실이고 세 번째는 출산하는 장면이다. 먼저 뭉크를 닮은 그림은 아이가 그린 것이다. 죽은 엄마가 나무가 됐다고 믿는 아이는 나무를 그리고 그 옆에 사람을 그린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아이가 그린 그림에서 사람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이 따로 없다.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 아이가 마음먹기에 따라 그것은 엄마가 되기도 아빠가 되기도 한다. 아마 죽은 부모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은 당연한 것이리라. 아이는 상상으로 부모의 얼굴을 만드는 대신 사람의 형체를 그린다. 문제는 그 그림이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매우 불길하게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표정없는 얼굴이 주는 기괴한 느낌은 눈, 코, 입이 제 위치에 있는 그림에만 익숙한 어른들을 긴장시킨다. 여기엔 어떤 트릭이 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림의 의미가 달라지듯 아이의 특이한 행동도 관점에 따라 무섭게도 측은하게도 보인다. <아카시아>에 내재한 긴장감은 이렇게 일방적인 해석을 교란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림 속의 사람들처럼 <아카시아>의 인물들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유지한다. 온화한 얼굴 뒤에 무언가 감춰진 듯한 느낌이 평온한 홈드라마를 예민하고 섬세한 공포물로 만들어간다.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에서 대표적인 초현실적 이미지는 붉은 실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장면이다. 아이를 질식시킬 것 같은 붉은 실의 공포는 핏줄에 대한 집착을 시각화한다. 그리고 <아카시아>에서 가족은 자기 핏줄에 대한 강박증을 표현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입양한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여자는 임신을 하고 입양된 아이는 그 순간부터 마음의 짐이 돼버린다. 말하지 않지만 가족은 이 아이가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이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가족의 욕망이 뒤틀려가는 것이다. 차츰 기형성을 드러내는 홈드라마는 아이를 사산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산부인과 의사인 남편의 꿈에 등장하는 얼굴없는 산모와 아이, 흔히 숭고하고 아름답게만 묘사되는 출산이 <아카시아>에선 악몽이 된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 가족을 만든다는 것이 두렵고 겁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아카시아>의 출산장면은 한눈에 보여준다. 가족은 이상적 가족이 되고 싶다는 그 욕망 때문에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심장을 가진 원혼 다소 살벌하고 끔찍한 이야기지만 <아카시아>가 차갑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여고괴담>이 그랬듯 박기형은 원혼에게도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아이가 죽은 엄마의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메마른 아카시아 나무는 <여고괴담>의 진주가 9년간 학교를 배회하며 소망했던 친구 지오처럼 아이가 유일하게 소통하는 대상이다. 아이는 나무에 올라 나무에 잎이 피기를 소망하고 나무와 대화한다. 하지만 그런 아이의 모습이 어른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오를 괴롭히는 선생님을 향했던 진주의 분노처럼 아이는 나무에 손을 대려는 어른들에게 저항한다. 박기형의 영화에서 비극은 진심이 오가는 관계를 깨뜨릴 때 벌어진다. <비밀>은 그런 점에서 박기형 영화의 핵심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누는 구호와 미조, 그들의 만남이 방해받을 때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나간다. 박기형은 이런 소통의 단절이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어떤 것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고괴담>에선 입시경쟁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비인간적 교육시스템이 문제였고 <비밀>에선 원조교제로 대변되는 도덕의 붕괴와 사회적 편견이 걸림돌이었다. <아카시아>가 공격하는 대상 역시 기성세대의 죄악이다. 그들은 핏줄로 남과 나를 가르고 세상의 더러움을 욕하면서 자기 몸에 묻은 오물은 보지 못한다. 입양은 결국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고 만다. 박기형 영화에서 언제나 극단에 내몰리고 자살을 결심하며 집을 뛰쳐나오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아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고발하는 한편 그 속에서 비극의 정서도 이끌어낸다. 영화는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질식당한 아이들의 억울함 때문에 슬퍼진다. 박기형에게 호러는 무서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장르인 것이다. <아카시아>, 2003년 호러의 피날레 이처럼 박기형이 호러 혹은 스릴러라는 틀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장르의 유희가 아니다. “영화광이었던 적도 없고 특정 장르에 열광한 적도 없는” 그가 주목한 것은 장르의 기교가 아니라 장르의 가능성이었다. “처음 영화를 시작한 곳이 김동빈, 홍기선 감독 등이 작업하던 파랑새영화사였다. 장산곶매가 <파업전야>를 만들 때 그 옆에의 작은 사무실에 있던 영화사였다. 영화운동의 열기가 사그라들 무렵, 영화운동의 중심부가 아닌 변두리에 끼어들어 영화를 배웠는데 그게 지금의 내 영화가 갖는 정체성이자 한계인 것 같다”는 말은 박기형이 장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90년대 후반 등장한 다양한 젊은 감독들 가운데 박기형은 장르와 비판의식의 접점을 제대로 잡아내며 돋보이는 데뷔전을 치렀다. <여고괴담>은 흥행성공 이전에 장르영화의 돌파구로서 의미가 컸던 작품이다. <여고괴담>의 성공에 비해 참담한 흥행결과를 낳았지만 <비밀>에서도 박기형은 자신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멜로드라마의 감정을 구축하는 데 실패한 탓에 외면받았지만 <비밀>의 표현방식에는 비범한 면이 있다. 그는 손쉬운 관습적 표현에 투항하지 않고 장르의 한계를 돌파하려 했다. 초능력 소녀가 나오는 미스터리멜로물이라는 장르적 성격부터가 익히 보던 것이 아니었다. <아카시아>는 박기형의 스타일이 다시 진일보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장르의 틀에서 새로움을 모색하는 작가적 집요함의 결과물로서 그는 과장과 왜곡을 최소화하면서 시종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도발적인 공포영화를 만들었다. <아카시아>는 감독 박기형에 대한 믿음을 확인시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2003년 호러영화의 피날레로 손색이 없다.남동철 namdong@hani.co.kr ▶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1] ▶ <아카시아>와 박기형 감독 [2]

웃다가 울다가 “역시 아리랑”

이두용 감독의 ‘아리랑’ 평양 시사회 동행취재기 지난 9월30일부터 10월4일까지, 이두용 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평양 시사회 참가 및 남북영화 합작사업 추진을 위해 남한의 영화 관계자 6명이 북한을 방문했다. 주코그룹 주수도 회장을 단장으로 하고, <아리랑>을 제작한 시오리 엔터테인먼트의 이철민 대표와 조성인 이사, 주코그룹 산하 제이유프로덕션 호수정 사장, 영화인협회 신우철 회장, 영화진흥위원회 남북영화교류소위원회 위원인 이민용 감독 등으로 이뤄진 이 방문단의 평양일정을 <한겨레>가 단독으로 동행 취재했다. 편집자 [사진설명]<아리랑> 시사회가 열린 평양국제영화회관 앞에 선 북한방문단과 북한배우들. 오른쪽에서 네번째 한복을 입은 배우가 리금순./<아리랑> 시사회가 끝난 직후의 상여장.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다./인민배우 김윤홍(왼쪽)과 김춘송 감독(가운데)/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일본마을 세트. 평양 순안비행장 입국심사대. 여권을 건네주고 기다리며 서 있는 나에게 심사원이 물었다. “앞에 들어간 영화 관계자들과 일행이십니까”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난데 없는 대답이 나왔다. “예스!” 목소리도 컸다. 뒤에 줄서 있는 사람들의 동그래진 눈을 의식하며 얼굴을 붉힌 채 황급히 검색대를 통과했다. 영어도 잘 못하는 주제에 우리말하는 동포에게 ‘예스’라니! 낭패감을 이렇게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가보는 평양의 입구에서 그렇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라고…. 도착 당일(9월30일) 밤, 숙소인 양각도 호텔에서 북한 조찬구 문화부상(우리식으로 하면 문화부 차관)이 주최한 만찬이 열렸다. 그는 6·25때 7살의 나이로 전쟁고아가 됐지만 커서 영화평론가, 신문기자, 대학학장 등을 거친 지식인이었다. 지난해 10월에 평양의 문화예술인과 시민 300명을 상대로 열린 <아리랑> 1차 시사회 때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아리랑>은) 영화가 참 잘 됐습니다. 젊은 날의 혈기 같은 게 솟기도 하고. 영화가 재미도 중요하겠지만 역사를 다룰 때 만큼은 철저히 사실주의에 입각해야 합니다. 우키시마 마루호 사건을 다룬 일본 영화(<아시안 블루>)를 봤는데 결말이 다 용서하고 잊자는 거예요. 그건 틀렸지요. 그런 역사는 잊어버리면 되풀이됩니다. 우리가 그 사건을 다룬 영화(<살아 있는 령혼들>)는 다르지 않습니까.” 같은 맥락에서 조 부상은 지금 북한에서 독도문제를 다룬 <피묻은 략패>를 촬영중이라고 전했다. 독도문제 다룬 대작 사극 <피묻은 략패> 조 부상은 <피묻은 략패>의 제작을 말하면서 자랑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기를 꺼리는 듯했다. 뒤에 인민배우 김윤홍이 들려준 바에 따르면, 북한은 1년에 20~24편의 ‘예술영화’(극영화)를 찍으며 현대물과 사극의 비중이 9대1 가량이다. 1990년대부터 현대물의 비중을 크게 늘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양 방문에서 만난 북한 영화관계자들은 현대물에 대해 얘기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아마도 현대물은 국내용이 많고, 대외적으로 홍보하고 수출도 하는 영화는 사극인 듯했다. <피묻은 략패>는 2000년 작 <살아 있는 령혼들>, 2002년작 <청자의 넋>을 잇는, 국가적 차원에서 제작을 주도하는 대작으로 보였다. 조 부상은 “보통 영화들은 감독이 아이디어를 내지만, 이런 큰 영화는 (국가에서) 감독을 정하지요”라고 말했다. 감독은 촬영기사 출신으로 <청자의 넋>으로 데뷔한 표광이 맡고, 남한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림꺽정>으로 남한에도 얼굴을 알린 인민배우 최창수(61), <살아 있는 령혼들>과 <청자의 넋>의 주연으로 지금 북한에서 가장 인기 좋은 여배우로 꼽히는 김련화(34)가 출연한다고. 지금 막바지 촬영중이며 후반작업 거쳐 11월중에 북한에서 상영될 예정이라고 조 부상은 전했다. 인민배우 김윤홍, ‘계월향’ 리금순 10월2일 오전에 <아리랑>의 2차 시사회가 열렸다. 평양영화제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한 평양 국제영화회관 안 300석 규모의 상영관에는 북한 영화예술인과 김일성 종합대학, 김책공업대학, 김형직사범대학, 음악무용대학 등 4개 대학 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행사를 담당한 북한의 한 관계자는 대학생들 중 지원자가 많아서 참석자를 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전했다. 상영 도중 여러차례 웃음이 나왔고 비극으로 끝나는 결말 부분에선 몇몇 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랑> 상영에 이어 15분 가량 휴식한 뒤 북한영화 <살아 있는 령혼들>을 이어 틀었다. <살아 있는 령혼들>은 1945년 해방 직후 일본에 살던 한국 동포들 수천명을 싣고 한국으로 올 예정이었던 선박 우키시마 마루호가 침몰해버린 사건을 다룬 영화로 남한에서 수입이 추진되다가 실패했다. 시사회 뒤 <살아 있는 령혼들>에 출연한 인민배우 김윤홍(57)과 김춘송 감독, 시사회 사회를 맡은 여배우 리금순과 배우 정광남이 북한 방문단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아리랑>은) 의상, 소도구가 30년대 맛이 나게 잘 고증됐습니다. 주인공 영진이가 마지막에 춤추는 장면에서 감독의 의도가 잘 나타난 것 같습니다. 민족의 긍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김윤홍) “(나운규가 감독한) 원작은 못 봤지만 <아리랑>은 민족의 상징인데 이런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온 데 대해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왜놈들에 대한 항거의 정신이, 민족주의의 감정이 영화 전반에 풍기는 게 좋았습니다.”(김춘송) <살아 있는 령혼들>에서 악역인 일본인 헌병장교역을 맡은 김윤홍은 37년 동안 150편에 출연한 노장배우다. 실제로 볼 때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풍부했고 농담을 즐겨하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작고하신 영화작가 리종순 선생이 명언을 남겼는데, 여자배우는 성적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90분을 볼 수 있죠. 남자배우도 여자들에게 성적 매력이 있어야 하고.” 방문단 중 한명이 “김윤홍 선생도 성적 매력이 풍부하시다”는 말을 건넸다. 그랬더니 바로 “제가 여자를 좋아하지요”라고 답한다. 리금순은 한 사극에 계월향 역으로 출연해 북한 사람들이 계월향으로 부른다고 했다. 리금순은 김윤홍에 대해 “여배우들이 제일 믿는 남자배우”라며 “촬영장에서 옷 갈아입을 때도 김윤홍 선생이 오면 ‘괜찮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윤홍이 받아친다. “내가 그러지요. 너희들 내가 남자라는 걸 무시했다간 큰일난다고.” 김윤홍은 배우로서의 자부심이 확고해 보였다. “1급 영화에 3급 배우가 나오면 3급 영화가 됩니다. 반대로 3급 영화라도 1급 배우가 나오면 1급 영화가 되지요. 배우는 영화의 얼굴입니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평양에 있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는 남한의 영화인들이라면 탐낼 만했다. 1947년에 설립됐고 지금까지 극영화, 기록영화, 아동영화 합해서 1000편이 이곳에서 제작됐다. 상당수의 북한 감독과 배우들이 이곳 소속 직원으로 월급을 받는다. 배우 150명을 포함해 직원이 2천명이라고 했다. 촬영소 안 전시실에 들어가면 정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피바다>의 촬영현장에 나가 촬영을 ‘지도’하는 모습을 담은 대형 벽화가 그려져 있다. 여러 방으로 나뉘어진 전시실에는 김 위원장이 ‘비준하여 주신’ 극영화 시나리오들이 진열돼 있다. 안내원이 김 위원장은 <피바다> 촬영장에 114번 방문해 ‘지도’했고, <꽃파는 처녀>는 원래 여주인공 의상이 여러 벌이었던 것을 김 위원장이 ‘그렇게 옷이 많은 여자가 꽃을 팔겠냐’며 한 벌로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야외 세트는 초가집 동네, 조선시대의 궁궐, 유럽마을, 일본 마을, 중국 마을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각 마을마다 실제 골목 두 블록 이상되는 규모로 전체 둘레가 40㎞이며 건물이 100동이다. 아쉽게도 영화를 찍는 현장은 만나질 못했다. 평양/ 글·사진 임범 기자 isman@hani.co.kr

NBC, 비벤디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 합병

제너럴 일렉트릭(GE)과 비벤디 유니버설이 10월8일 각자의 자회사인 NBC 방송사와 비벤디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가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내년 중반 활동을 시작하는 NBC 유니버설은 430억달러의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기업. GE 부사장 밥 라이트는 이 회사가 경쟁자인 바이아컴과 디즈니, 타임워너, 폭스보다 높은 수익을 내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NBC 유니버설이 포괄하게 될 기업은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인 NBC와 그 산하 케이블 채널, 유니버설 테마파크, 제작사 유니버설픽처스, 유니버설 텔레비전 등이 있다. 라이트는 NBC 유니버설의 경영 청사진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사장 론 마이어와 유니버설픽처스 사장 스테이시 스나이더, 그리고 현재 임원들은 크게 지위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정도. 마이어는 “우리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만 입증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해온 대로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라이트 역시 영화사업이 위험한 도박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영화는 극장수입뿐 아니라 비디오와 DVD에서도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 가장 큰 변화는 영화제작보다는 NBC와 유니버설의 업무가 상당 부분 겹치는 TV부문에서 일어날 예정이다. 라이트는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방송사는 13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게 될 것이며, 5천여편에 달하는 영화 판권을 소유하고 있고, 디지털 시대에도 적합한 콘텐츠를 갖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NBC 유니버설 전체 지분 중 80%는 GE가, 20%는 비벤디가 소유하게 된다. 이번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GE는 비벤디 주주들에게 즉시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38억달러 상당의 주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지난해부터 경영악화에 시달려왔고, 현재 17억달러의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비벤디는 좀더 깨끗한 대차대조표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GE와 비벤디는 게임과 음악, 유럽 TV부문도 합병 내지는 합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알려졌다.

어릴적 TV영화 보고 있는 기분 아세요?<다운 위드 러브>의 르네&이완

상대와 공연한 경험에 관해 르네 젤위거= 오랫동안 나는 이완의 팬이었고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관객으로서 그의 영화를 즐겨보러 다녔다. 이완에겐 관객이 극장을 벗어나 그의 여행에 동참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가 내리는 선택은 항상 놀랍다. 그가 복도에서 흥얼거리는 노래를 매일 듣는 것도 참 괜찮은 일이었다. 이완 맥그리거= 이번 공연의 가장 근사한 점은 우리가 줄곧 동행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난제들을 함께 실험하면서 감당할 수 있을지 같이 시험했다. <다운 위드 러브>는 매우 독특한 종류의 코미디 연기, 요즘 로맨틱코미디영화에서 우리가 할 법한 연기와는 다른 연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에 관해 르네 젤위거= 이브와 데니스(공동 작가)는 아주 영리한 시나리오를 썼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일독했을 때 알아차리지 못한 요소들이 보였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약동하고 그것도 아주 빨리 움직여서 관객이 어떤 것들을 놓치기도 하지만 두 번째 볼 때는 새로운 풍요로움이 눈에 들어온다. 페이튼 리드 감독에 관해 이완 맥그리거= 페이튼 리드는 드러머이자 댄서이며 코미디언이고 복화술사인데다가 배우이고 감독이다. 온갖 재능을 갖고 있지만 그 모든 것 저변에는 음악이 있다. 리드 감독의 대단한 리듬감은 그 덕분이다. 복고풍 영화 만들기에 관해 르네 젤위거= 모든 것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 요즘 기준에 대면 로테크영화다. 속임수를 쓰거나 “나중에 고치면 되니까” 하는 경우는 없었다. 1962년 무렵에는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배울 수 있어 황홀했다. 이완 맥그리거= 모든 요소가 카메라 앞에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스튜디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출근하면 근사한 의상과 근사한 동료배우, 멋진 세트가 기다리고, 거기 속임수라고는 없다. 기술적 트릭이 영화나 스토리를 꼭 비인간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영화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8살 어린아이로 돌아가 팔꿈치를 괴고 일요일 오후 방영되던 그 시절의 텔레비전영화들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어 짜릿했다. 자료제공 이십세기 폭스코리아

진심으로 웃기고자 하는 외설적인 영화,<잭애스>

■ Story 스턴트에 일가견이 있는 아홉명이 각종 엽기적인 스턴트를 선보인다. 웬만해선 상상하기 힘든 비정상적인 행위부터 재미삼아 사람들을 놀리는 몰래카메라 형식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경고가 따라붙는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턴트는 전문가에 의해 연출됐습니다. 그러므로 관객 모두는 재미로 시도해보거나 그대로 따라해서는 안 됨을 분명히 말해둡니다.” 그 행위들은 1∼2분 길이의 에피소드별로 편집됐다. ■ Review “당신이 이 영화를 봤을 때, 특히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는 목적일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책임질 수 없다. 이 영화는 R등급(17살 이하는 부모 혹은 성인 보호자의 동반이 필요)이다. 그것은 조잡하고 잔혹하며 외설적이라는 뜻이다.” <뉴욕타임스> 리뷰의 이 마지막 단락이 <잭애스>(jackass는 바보, 멍청이라는 뜻)를 조롱하자는 의미로 쓰인 건 아닌 듯하다. 지나치게 거침없이 만든 영화에 대해 솔직하게 단도직입으로 말한 것뿐이다. 그럴듯해 보이는 평가는 예컨대 이런 문장이다. “사회적 통찰력, 지적인 그럴듯함, 영화적 흥미가 빠져나간 <파이트 클럽>의 다큐멘터리 버전이다.” <잭애스>는 <비비스와 버트헤드> 이후 MTV가 만든 가장 소란스러운 영화이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90년대 초 막 창간돼 기반이 잡히지 않은 스케이트보드에 관한 잡지사에서 미술과 편집장으로 일하던 제프 트레메인은 이 잡지에 자유기고가로 일하던 조니 녹스빌을 만나 감독과 출연자로 <잭애스> 시리즈를 만들었고, MTV는 이를 2000년 10월 24회에 걸쳐 방영했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 시리즈를 영화 버전으로 새롭게 만든 것. 스턴트는 충분히 그로테스크하고 위험하다. 롤러스케이트에 조그만 로켓을 달고 달린다든지 번지점프줄을 팬티에 걸고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식이다. <존 말코비치 되기>와 <어댑테이션>의 스파이크 존즈 감독이 출연하지만 얼굴을 볼 수는 없다. 라텍스 마스크를 쓰고 도로에 뛰어들어 온갖 소동을 벌이니까 말이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제작과 각본에도 참여했다. ‘정크(허섭쓰레기) 프로그램’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MTV는 이 영화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MTV의 프리스톤 레이시 사장은 “이런 영화를 만드는 게 내 경력의 수준을 낮추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엉뚱하고 엽기적인 아이디어에 돈을 투자한 건 관객을 진심으로 웃게 만들자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자 또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별 넷을 줬다.

`교양`은 있는데 만화는 없네?<고래가 그랬어>

1982년 10월1일 첫 창간호가 발행된 <월간 만화 보물섬>은 100% 만화로만 구성된 최초의 잡지였다. 어린이들은 순식간에 <새소년> <어깨동무> <소년중앙>으로 대변되는 아동용 교양잡지를 버리고 두툼한 만화잡지를 선택했다. <월간 만화 보물섬>의 성공에 자극받은 다른 잡지사들도 기사와 동화를 정리하고 만화로만 잡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한권의 잡지에 만화만이 아니라 사진, 기사, 동화 등이 종합적으로 수록된 종합잡지 시대는 <월간 만화 보물섬>의 성공으로 인해 무대의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교양잡지가 나오던 60∼80년대 소년들은 매달 잡지가 나오면 먼저 재미있는 만화를 보고, 그 다음에 재미없는 만화를 보고, 그리고 기사를 보고, 마지막으로 소설까지 읽으며 한달 내내 충실히 잡지를 소비했다. 아무리 재미없고 교양이 넘치는 만화나 기사라도 결국에는 소비되었으니 월간지의 위력은 그만큼 출중했다. 하지만 어린이 잡지 시장이 만화잡지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90년대 들어 일본 만화가 만화의 주류가 된 이후 ‘교양잡지’들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만화는 어린이 문화에서 청소년 문화로 변화했고, 어린이 만화는 사라져버렸다. 만화는 소중한 시장을 잃었고, 어린이들은 상상력과 친구를 빼앗겼다. 2003년 10월, 어린이 종합잡지의 종말을 예고한 <월간 만화 보물섬>이 창간되고 21년이 흐른 가을에 <고래가 그랬어>가 어린이들을 찾아왔다. ‘떳떳하게 그리고 함께’라는 카피를 내세우며, 어린이 ‘교양월간지’가 새롭게 복원된 것이다. 세월이 지난만큼 ‘교양’의 의미도 변화했다. 20여년 전 종합잡지에서 보았던 ‘과학, 문화, 상식’ 기사 대신 ‘인권, 차별, 평화’가 중심을 차지했다. 만화도 많이 달라졌다.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를 다룬 <앗살람 알라이쿰>이나 전태일의 삶을 만화로 옮긴 <태일이>와 같은 작품은 이 잡지가 아니라면 만나기 힘들었을 작품들이다. 하지만 잡지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만화의 구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었다. <고래가 그랬어>에서 다른 기사 페이지에 비해 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광고페이지와 차례 5페이지를 제외하면, 총 171페이지 중 125페이지가 만화다. 73%다. 창간의도를 읽어낼 만한 창간사는 없지만, 적어도 잡지의 구성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고래가 그랬어>가 ‘교양’을 전달하는 매체로 ‘만화’를 선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안타깝게 <고래가 그랬어>에 실린 만화는 대부분 ‘교양’이 전면에 나선다. 이건 아니다. <보글보글 부엌> 같은 요리만화를 보자. 이 만화는 ‘요리만화’가 아닌 ‘레시피’ 만화다. 요리하는 법을 설명하는 만화란 말이다. 이건 ‘만화’라기보다는 캐릭터를 활용한 레시피다. 요리만화가 독자들에게 만화로 읽히기 위해서는 요리를 만드는 법보다는 요리를 둘러싼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흥미로워야 한다. <맛의 달인>이나 <초밥왕>이 인기를 끈 이유는 레시피가 아니라 요리를 둘러싼 이야기 때문이다. <대사각하의 요리사> 같은 경우에는 요리를 통해 문화와 사회, 정치와 외교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레시피는 맨 마지막 페이지에 1페이지로 정리하면 된다. 하지만 무려 4페이지가 레시피다. 4페이지를 레시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8페이지 정도의 이야기가 있는 편이 좋다. 어린이에게 만화를 이용해 ‘교양’을 전달하기 위해서 만화는 ‘교양’보다 ‘이야기’에 충실해야 한다. <고래가 그랬어>에 이야기에 충실한 만화는 <태일이> <신세기 소년 파브르> <열무낭자> <무일푼 쉽고 재미있는 만화교실> 정도다. <뚝딱뚝딱 인권짓기>나 <너 텔레비전 끌 줄 알아?>와 같은 만화가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런 만화가 어린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좀더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가벼운 만화들이 많아야 한다. 그래서 가벼운 만화들이 먼저 읽히고, 그 다음에 ‘교양’을 내세운 만화들이 읽히고, 기사가 읽히고 이런 순서를 밟아나가며 한달 동안 차분하게 소비되어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만화라기보다는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관습에 충실한 몇몇 작품들에는 어린이 만화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더 필요할 듯하다. 좋은 텍스트가 없다면, 국내에 번역된 루이 트롱댕과 요안 스파의 만화를 권한다. 상상력을 키우는 만화그림책이라는 시리즈로 10여권이 번역되었다. 전체 잡지의 분량도 한달을 즐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만화의 독해를 방해하는 디자인의 과잉도 눈에 거슬린다. 모든 만화가 컬러로 구성되어 있는데, 흑백만화의 편수를 늘리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흑백만화에는 위대한 흑백의 상상력이 존재한다. 그 상상력을 구태여 컬러로 막을 필요는 없다. 잡지니까 사진도 더 많았으면 하고, 기사도 더 충실해졌으면 한다. 기사를 만화로 풀어내는 르포만화나 인터뷰 만화와 같은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는 것도 좋다. 상투적인 축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계속 진보하며 발전하는 <고래가 그랬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박인하/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

영상자료원, 배우 이낙훈 영화 상영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이효인)은 다음달 3-7일 60-70년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던 인기배우 이낙훈의 대표작 다섯 편을 상영한다.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라디오 성우, 영화나 연극, TV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기생활을 했으며 국회의원과 유네스크(UNESCO) 한국위원회 위원 등을 지내기도 했다. 연기를 시작한 것은 11세 때인 1947년. 한국방송공사(KBS) 전신인 서울중앙방송국(HLKA)의 라디오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의 아역 성우로 출발한 그는 경기중학교 2학년 때 연극반 활동을 하며 연기수업을 받았으며 이후 서울대학교에 진학 후에도 연극에 몰두해 대학연극경연대회에서 개인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대학 재학중 역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의 마이애미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지만 연기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62년 KBS 개국과 함께 국내 첫 텔레비전 드라마였던 `빛의 문'에 출연하면서 탤런트로 입문했다. 출연 드라마로는 `그건 그려', `서울이여, 영원하라', `큰형수', `희망' 등이 대표작. 연극으로는 `리어왕', `맥베스', `10개의 인디언 인형',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에 출연했으며 `600만불의 사나이', `형사 콜롬보' 등 TV 외화를 번역하기도 했다. 영화 데뷔한 것은 <갯마을>과 <용사는 살아 있다>에 출연한 65년. <돌의 초상>, <돌종>, <목소리>, <연합전선>, <꽃네> 등이 대표작이다. 79년 탤런트협회 회장이 된 후 그는 민주정의당 소속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등원했으며 86년에는 영화사 '현대휠코'를 설립해 영화 제작과 수입에 손을 댔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후 90년대 들어서는 다시 텔레비전에 출연하며 경기고등학교 출신 연극인들과 함께 `화동연우회'라는 연극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매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내 영상자료원 시사실에서 진행되는 이번 상영회에서는 <돌의 초상>(감독 김기), <섬마을 선생>(김기덕), <꽃네>(고영남), <갯마을>(김수용), <강력계>(김인수)가 상영된다. 한편, 영상자료원은 다음달 8일 '무료 가족시네마 축제'의 일환으로 오후 2시부터 영화 <내마음의 풍금>을 같은 장소에서 무료로 상영한다. (서울=연합뉴스)

영화 <이공(異共)> 제작 발표회

<봄날은 간다> 허진호부터 <살인의 추억> 봉준호 까지… 20명의 감독이 모여 만드는 디지털 단편 옴니버스 프로젝트 <이공(異共)>제작발표회가 10월28일 저녁 7시 압구정동에서 100여명의 취재진과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이공(異共)>은 그것이 숫자이건, 나이이건, 이름이건 관계없이 ‘20’을 주제로 20명의 감독이 각각 5분여로 제작하는 단편을 모은 새로운 형식의 옴니버스 영화다. 이날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이공(異共)>의 김영 프로듀서(<장화,홍련>프로듀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이 모이게 되었고, 디지털을 이용한 자유롭고 빠른 제작방식과 모바일, 인터넷, 극장까지 다양한 관객과의 만남이 용이한 유통방식까지 디지털을 통해 새로운 영화 만들기의 가능성을 열고자 이들 감독이 연합전선을 펼치게 됐다고 밝혔다. 이 날 행사에는 감독들 외에도 김주혁, 김인권, 임수정, 윤진서 등의 연기자가 이번 프로젝트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현재 캐스팅이 확정된 배우는 박경희 감독작품에 출연하는 황정민, 추상미. 그리고 장현수 감독의 <걸어서 하늘까지>에 등장했던 아역배우들이 10년 만에 성인이 되어 장감독의 작품에 다시 출연하며, ‘박카스’ CF 취직편에 등장해 주목받고 있는 신인 최성준은 김태균 감독의 작품 <편의점/새벽 두 시>에 출연한다. 다양한 색깔과 소재로 진행되는 <이공(異共)>프로젝트는 11월초부터 동시다발적으로 크랭크인해 약 2주간 촬영을 마치고, 2주간의 편집작업 뒤 SK 텔레콤 June을 통해 모바일로 단편 한편씩 매일 상영되며, 12월19일 개최되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제 개막작으로 전체 옴니버스 영화가 상영된다. 인터넷 컨텐츠팀 cine21@news.hani.co.kr